[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가 매일 쓰는 한자는 단순히 뜻을 전하는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인의 삶과 습속, 주술과 의례, 노동과 놀이가 응축된 문화의 기록이다. 특히 갑골문 속에서 네 글자-學(배울 학), 孫(손자 손), 布(펼 포), 妻(아내 처)-의 기원을 살펴보면, 동이족의 생활 풍습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흔적으로 이어져 내려왔는지를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다.
□ 學(학) - 윷판에서 시작된 학문
오늘날 ‘학교’의 ‘학(學)’은 배움, 교육을 뜻한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그 뿌리는 의외로 점(卜), 그것도 윷점에서 비롯되었다. 자형을 보면 두 손이 막대기 네 개를 쥐고 있고, 그 위로 집(宀)이 얹혀 있다. 막대기 네 개는 오늘날의 윷과 꼭 닮았다.([그림 16] ‘學’ 참조)
즉, ‘학’이란 원래 ‘윷점을 배우는 집’이었다. 고대 동이족은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윷을 던지고 점을 치며 우주의 이치를 탐구했다. 점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세상 이치를 해석하는 지적 훈련이었다. 은나라 시절, 이 글자는 학문을 닦는 관청의 이름으로 쓰였고, 한나라에 이르러 중앙 교육기관을 뜻하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라는 개념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설날마다 즐기는 윷놀이가 수천 년 전의 윷점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이다. 놀이로 남은 윷이 사실은 학문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배운다(學)’는 말 속에 이미 동이족의 놀이와 점술, 그리고 학문의 기원이 함께 숨어 있는 것이다.
□ 孫(손) - 탯줄과 새끼줄에 담긴 자손의 의미
‘손자 손(孫)’의 갑골문을 보면, ‘아들(子)’과 더불어 배꼽에서 이어지는 선이 그려져 있다. 이는 다름 아닌 탯줄이다. 아이와 어머니를 잇는 생명의 끈이 바로 자손(子孫)의 연속성을 상징한 것이다.([그림 16] ‘孫’ 참조)
동이족은 출산 후 집 대문 앞에 새끼줄을 걸고, 고추나 솔가지를 달아 아이의 성별을 알렸다. 새끼줄은 부정을 막는 주술적 도구였고, 동시에 자손 번영을 기원하는 표식이었다. 지금도 설이나 장례 때 대문에 금줄을 치는 풍습이 남아 있다.
‘孫’의 변천을 보면, 처음에는 탯줄 모양이 강조되다가, 점차 ‘작을 소(小)’와 결합하며 ‘이어짐, 계승’이라는 의미가 굳어졌다. 그래서 손자는 단순히 자녀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혈맥과 삶의 연속성을 나타낸다. 문자 속 탯줄의 그림은 지금도 우리가 자손을 ‘대(代)를 잇는다’고 말할 때 그 깊은 뿌리를 전해주고 있다.
□ 布(포) - 다듬이질 소리에 남은 기억
‘펼 포(布)’는 오늘날 ‘배포하다, 보급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은자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두 손에 방망이를 들고 천을 두드리는 모습, 곧 다듬이질이다.([그림 16] ‘布’ 참조)
고대 동이족 여성들은 짠 천을 두드려 반듯하게 펴고 매끈하게 만들었다. 그 리듬 있는 소리와 동작이 글자에 남아 ‘布’가 되었다. 다듬이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 여성들의 생활을 이끄는 리듬이자 노래였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포(布)’의 발음은 우리말 ‘배’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고대에는 ‘괴 → 배’로 발음이 변해왔는데, 직물을 펴고 나누는 행위가 ‘배(포)’라는 말로 이어졌을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포포하다’ 대신 ‘배포하다’라고 한다. 문자 속 다듬이질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발음과 뜻에 남아 있는 것이다.
□ 妻(처) - 머리를 올린 여인의 상징
마지막으로 ‘아내 처(妻)’를 보자. 갑골문에서 妻는 무릎 꿇은 여인 위에 손이 얹히고, 머리에 장식이 얹힌 모습이다. 이는 ‘머리를 올린 여성’을 가리킨다.([그림 16] ‘妻’ 참조)
동이족 사회에서 머리를 올리는 행위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소녀에서 성인 여성으로 넘어가는 성인식, 그리고 혼인 의례에서 여인은 머리를 올렸다. 머리를 올린다는 것은 곧 성숙, 결혼, 새로운 역할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 풍습은 오랫동안 이어져, 조선시대까지도 혼례 때 여인이 쪽을 찌는 관습으로 남았다. 문자 속에 담긴 상징이 수천 년 뒤의 생활까지도 영향을 준 셈이다. 그래서 妻라는 글자는 단순히 아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의 인생 전환점을 기록한 문화적 표지였다.
□ 문자 속에 남은 동이족의 삶
네 글자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한자는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고대인의 생활 풍습과 주술, 놀이와 노동이 굳어져 남은 문화의 화석이다.
學은 윷판에서 하늘의 뜻을 배우던 점술에서 출발해, 오늘날 ‘학교’로 이어졌다.
孫은 탯줄과 새끼줄에서 비롯되어, 자손 번영과 생명의 연속을 상징했다.
布는 다듬이질의 소리와 동작에서 나와, ‘펼치고 나누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妻는 머리를 올린 여인의 모습에서 시작해, 성인식과 혼례의 풍습을 문자에 새겼다.
이 글자들은 모두 동이족의 삶과 직결되어 있으며, 지금도 우리의 언어와 풍습 속에 숨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 오늘의 우리에게
우리는 문자 속에서 과거를 읽는다. 學, 孫, 布, 妻라는 네 글자는 동이족의 놀이와 주술, 노동과 혼례가 어떻게 언어와 문화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과거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언어와 풍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설날 윷놀이를 하면서, 집 앞에 금줄을 보면서, 다듬이질 소리를 떠올리면서, 혼례 때 쪽진 머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고대의 기억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는 죽은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이며, 문화의 기억이고, 시간을 건너온 메시지다. 學, 孫, 布, 妻 네 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희가 쓰는 말과 글 속에는 이미 우리의 삶이 남아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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