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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인생의 길은 전공이 아니라 도전이 만든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컴퓨터의 선구자 앨런 케이가 한 말로 유명하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무슨 전공을 했는가?”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바꾸고, 최첨단 기술이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에는 전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평생 배우려는 자세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성숙 신임 국무총리다. 그녀는 공학도도, 컴퓨터공학 전공자도 아니었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인문학도였다. 그러나 졸업 후 컴퓨터 전문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기술의 미래를 읽었다. 이후 나눔기술을 거쳐 인터넷 포털 엠파스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국내 최초의 '열린 검색' 서비스를 기획하며 인터넷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어 NHN과 네이버에서 검색과 서비스 혁신을 주도했고, 2017년에는 네이버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CEO)에 올랐다. 그녀가 대표로 재직하는 동안 네이버는 웹툰, 간편결제, 인공지능, 글로벌 플랫폼 사업을 확대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되었고, 이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며 기업 경영과 공공행정을 모두 경험하는 보기 드문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성숙의 인생은 우리에게 묻는다. “전공이 미래를 결정하는가, 아니면 배움이 미래를 결정하는가?” 말이다. 답은 이미 그녀의 삶 속에서 드러났다. 교육학자 존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출발점일 뿐이다. 삶은 졸업 후에도 계속 배우는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선물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 CEO 가운데도 전공과 직업이 일치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중요한 것은 학과 이름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며,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이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과거 기술자가 아니었지만 기술을 이해했고, 경영학도가 아니었지만 조직을 성장시켰으며, 정치인이 아니었지만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까지 나아갔다. 이것이 바로 융합형 인재가 갖는 힘이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꿈이 무엇이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평생 무엇을 배우며 살아갈 것인가?”이다. 직업은 바뀔 수 있다. 산업도 바뀐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서도 살아남는다. 이 시대 최고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교육도 이제는 정답을 빨리 맞히는 학생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암기보다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지식을 저장하는 사람보다 지식을 연결하는 사람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한성숙 국무총리의 성공은 개인의 영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다. 오늘의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영어만 해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꿈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결론은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진리다. 교육은 직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많아질 때 사회는 발전하고, 그런 사람이 혁신을 이끌 때 국가는 미래를 얻는다. 이제 우리는 조용하지만 강한 교육적 메시지를 얻었다. “전공은 출발선일 뿐, 목적지는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날 우리의 청년들은 고용 절벽의 시대를 살아간다. 온갖 스펙으로 실력을 갖추었지만 40만~70만 명의 청년들이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그냥 쉬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어렵게 살아 온 순간의 삶과 축적한 지식, 실력을 그대로 사장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학에서의 전공은 하나의 경우일 뿐이다. 인생의 길은 전공이 아니라 도전이 만든다는 사실을 이 글의 주인공의 삶을 통해 느끼고 모델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교육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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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를 바라보는 교실에서 토론과 질문 중심의 교실로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한국 학생은 하루 대부분을 교실에서 보낸다. 교실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질서와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디지털 교과서도 도입했고, 인공지능 교육도 시작했다. 하지만 반세기 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풍경이 있다. 교사는 칠판 앞에서 설명하고 학생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듣는다. 정해진 진도가 가장 중요하다. 질문은 시간을 늦추는 변수이고, 토론은 진도를 마친 뒤에나 가능한 사치이다. 질문이 사라진 교실에서 자란 아이들은 토론보다 침묵에 익숙하다. 설득과 이해보다 승부와 경쟁에 익숙해졌다. 학교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회는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증폭시킨다. 민주주의는 투표장만이 아닌 교실에서 시작한다. 인간성은 교과서로만 길러지지 않는다. 공감은 대화할 때 자라고, 책임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며, 배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끝까지 들어 보는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문화이다. 그런 문화는 설명보다 대화에서, 경쟁보다 협력에서 꽃핀다. 국가 경쟁력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문명과 혁신도 언제나 한 사람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교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교실의 방향을 칠판이 아니라 학생에게 돌려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공개수업을 하거나 마무리 활동을 할 때만 이러한 학습 형태를 보여주기 위주로 한다. 하지만 거꾸로 학생토론중심 구조가 항시적이고 전체 공유가 필요할 때는 일시적으로 교사 중심 방향이어야 한다. 수업은 토론이 일상화된 학습 구조와 체계가 필요하다. 책상은 언제든 네다섯 명이 마주 앉아 토론할 수 있는 구조로 준비하여야 한다. 교사의 자리는 교실의 중심이 아니라 배움을 연결하는 자리여야 한다. 학생들은 설명을 듣는 시간이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질문과 토론'이 모든 교과에서 자연스럽게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실이 된다면 학교의 문화는 역동적으로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달라질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사고할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평가의 기준도 바꾸어야 한다. 정답을 얼마나 맞혔는가보다 어떤 질문을 만들었는지, 어떤 근거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어떻게 존중하며 토론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교사에게 수업을 연구할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질문 중심 수업은 훨씬 많은 준비와 성찰을 요구한다. 교육개혁은 교사의 희생이 아니라 국가의 투자로 이루어진다. 교실 풍경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도 바뀌지 않는다. 학생이 교사를 바라보는 교실에서 벗어나 서로를 바라보는 교실. 정답을 외우는 교실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교실. 결국 '질문과 토론' 교육 방식은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한 길이다. 이 길은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바뀌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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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피부로 드러나는 전신 염증의 신호 건선, 한의학적 접근을 통한 면역 불균형 정상화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닌 전신 면역 질환, 건선 - 건선(psoriasis)은 단순한 표피의 문제를 넘어, 유전적 소인과 환경적 요인, 그리고 면역 체계의 조절 장애가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전신 염증성 질환입니다. 임상적으로는 경계가 뚜렷한 붉은 반점 위에 은백색의 두꺼운 각질이 덮이는 것이 특징이며, 심한 가려움과 통증을 동반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건선의 핵심은 선천성 및 적응성 면역 체계의 비정상적인 활성화, 특히 IL-23/Th17 축(axis)의 조절 이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수지상세포 등에 의해 분비된 인터루킨-23(IL-23)은 Th17 세포의 분화와 생존을 촉진하며, 활성화된 Th17 세포는 IL-17을 비롯한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과다 분비합니다. 이러한 염증 매개체들은 각질형성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유발하고 염증 반응을 지속시켜 건선 특유의 두꺼운 각질 판을 형성하게 만듭니다. 2. 기존 약물 치료의 한계와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 - 현재 건선 치료에는 국소 스테로이드제, 비타민 D 유사체와 같은 바르는 약부터 메토트렉세이트(MTX), 사이클로스포린 등의 전신 면역억제제, 그리고 특정 염증 경로를 차단하는 생물학적 제제(Biologics)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IL-17이나 IL-23을 표적으로 하는 최신 생물학적 제제는 중증 건선 환자에게서 피부 병변을 개선하는 단기적 효과가 입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이같은 합성약물 치료만으로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생물학적 제제는 높은 치료 비용으로 인해 환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며, 장기 사용 시 약물 내성이 발생하거나 효능이 감소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기존에 널리 활용되어오던 전신 면역억제제는 간독성이나 골수 억제와 같은 부작용의 위험을 동반하며, 국소 스테로이드제의 장기 사용은 피부 위축이나 모세혈관 확장과 같은 비가역적인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약물 투여를 중단할 경우 높은 확률로 증상이 재발한다는 점은, 증상 완화를 넘어선 근본적인 면역 항상성 회복과 관련한 새로운 치료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3. 건선과 밀접하게 얽힌 '전신 대사 증후군'과 '장-피부 축' - 최근 학계에서는 건선을 단순한 피부병이 아닌 심혈관계 질환, 비만, 대사 증후군, 염증성 장질환 등과 동반되는 전신 질환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선 환자의 체내에서 지속되는 만성 염증은 혈관 내피세포 기능 장애를 유발하여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근래의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피부의 염증성 질환에 기여한다는 '장-피부 축(Gut-skin axis)' 이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장내 점막 장벽의 기능이 저하되면 미생물이나 대사 산물이 혈류로 유입되어 전신 염증 반응을 촉발하고, 이는 다시 Th17 세포 분화와 IL-17 발현을 통해 건선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이는 건선 치료가 피부 표면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체내 대사 및 면역, 장내 환경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임을 말해줍니다. 4. 건선에 대한 효과적 대안: 침, 뜸, 한약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최근 기존 약물 치료의 효과를 보완하고, 전신 면역 체계의 종합적 안정을 도모하는 한의학적 치료가 효과적인 대안으로 조명받고 있으며, 다양한 현대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그 효과와 작용 기전이 검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널리 활용되는 약물인 전신면역억제제인 메토트렉세이트에 전침(Electroacupuncture)을 병행한 치료는 피부 병변과 염증을 기존 약물 단독 치료보다 더욱 강력하게 완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연구에 따르면 전침 치료는 피부와 림프절에서 병원성 Th17 세포의 비율을 낮추고, 반대로 면역 반응을 진정시키는 조절 T 세포(Treg)의 빈도를 현저히 증가시켜 Th17/Treg 면역 균형을 회복시킨다고 합니다. 또한, 뜸(moxibustion) 치료는 건선 병변에서 세포 증식 및 발판 단백질 합성을 감소시키고, 혈관의 비정상적인 과다 증식을 억제하며, IL-8, IL-17A, IL-23과 같은 전염증성 인자의 발현을 뚜렷하게 낮추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한편, 건선은 면역계의 이상, 피부 세포의 과증식, 비정상적인 혈관 신생, 그리고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복합 질환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중 경로(multi-pathway)를 동시에 조절하는 한약 치료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각종 피부 질환에 널리 활용되어온 여러 한약 처방의 활성 성분은 여러 병리 표적에 대한 동시조절 기전을 통해 건선을 치료합니다. 예를 들어, 커큐민(curcumin), 바이칼린(baicalin) 등의 성분과 다수의 한약 처방이 NF-kB, MAPK, PI3K/AKT 및 IL-23/IL-17 신호 전달 경로를 동시에 억제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차단하고 각질형성세포의 과다 증식을 막아주는 효과가 규명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복합 한약 처방은 피부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피부 축(Gut-skin axis)'에 작용하여 무너진 장내 유익균의 다양성을 회복시키고 전신 대사 장애를 바로잡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살펴보신바와 같이 한의 치료는 면역 조절, 항염증, 혈관 신생 억제, 장내 미생물 환경 개선 등 신체 전반의 불균형을 총체적 관점에서 바로잡는 효과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근거가 갖춰져 있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건선 자가 관리법 - 성공적인 건선 관리를 위해서는 임상적 치료와 더불어 환자 스스로의 생활 습관 및 식단 교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지중해식 식단: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과일, 채소, 통곡물을 강조하는 지중해식 식단은 강력한 항염증 효과가 있습니다. 이 식단에 풍부한 오메가-3 고도불포화지방산과 폴리페놀은 전신 염증을 조절하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데 유익합니다. •체중 감량 및 저칼로리 식단: 비만은 건선의 진행 및 중증도 악화와 강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과체중 또는 비만인 건선 환자가 저칼로리 식단을 통해 체중을 감량할 경우, 건선 중증도 지수(PASI)가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기존 치료에 대한 반응률이 높아집니다. •간헐적 단식: 식사와 단식 시간을 조절하는 간헐적 단식은 아디포넥틴 분비를 증가시켜 국소 및 전신 염증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 임상 관찰에서도 한 달간의 간헐적 단식이 건선 환자의 PASI 점수를 유의하게 낮춘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글루텐 프리 식단: 셀리악병을 동반하거나 항글리아딘 항체(antigliadin antibodies)에 양성 반응을 보이는 건선 환자의 경우, 글루텐 프리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건선 중증도 감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건선은 평생에 걸쳐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며 삶의 질을 위협합니다. 전신의 면역 균형을 다스리고 피부의 과도한 염증 반응을 진정시키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올바른 식이 관리를 병행한다면, 붉은 반점과 각질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피부로 한걸음 더 다가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Prema SS, Shanmugamprema D. Systemic Psoriasis: From Molecular Mechanisms to Global Management Strategies. Clin Rev Allergy Immunol. 2025 Aug 7;68(1):79. doi: 10.1007/s12016-025-09089-4. 2.Leung A, Kranyak A, Marquez-Grap G, Bhutani T. Nutrition and Psoriasis: The Latest Evidence and How to Approach Nutrition in Clinical Practice. Am J Clin Dermatol. 2026 Jan;27(1):9-16. doi: 10.1007/s40257-025-00992-2. 3.Morrow S, Hawkins P, Griffiths CEM, Tektonidis TG, Harriss E, Scragg J, Jebb S. Impact of weight-loss interventions on psoriasis severity: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 Eur Acad Dermatol Venereol. 2026 Jun;40(6):980-993. doi: 10.1111/jdv.70247. 4.Armstrong AW, Nong Y, Merola JF. Systemic Pharmacological Treatments for Chronic Plaque Psoriasis. JAMA Dermatol. 2026 May 1;162(5):525-526. doi: 10.1001/jamadermatol.2026.0200. 5.Huang F, Zhang T, Li B, Wang S, Xu C, Huang C, Lin D. NMR-based metabolomic analysis for the effects of moxibustion on imiquimod-induced psoriatic mice. J Ethnopharmacol. 2023 Jan 10;300:115626. doi: 10.1016/j.jep.2022.115626. 6.Liu H, Chen Y, Xu S, Chen H, Qiu F, Liang CL, Mo X, Liu J, Lu C, Dai Z. Electroacupuncture and methotrexate cooperate to ameliorate psoriasiform skin inflammation by regulating the immune balance of Th17/Treg. Int Immunopharmacol. 2024 Oct 25;140:112702. doi: 10.1016/j.intimp.2024.112702. 7.Gamus D, Shoenfeld Y. Acupuncture therapy in autoimmune diseases: A narrative review. Autoimmun Rev. 2025 Jan 31;24(2):103709. doi: 10.1016/j.autrev.2024.103709. 8.Jo HG, Seo J, Jang B, Kim Y, Kim H, Baek E, Park SY, Lee D. Integrating network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validation to advance psoriasis treatment: Multi-target mechanistic elucidation of medicinal herbs and natural compounds. Autoimmun Rev. 2025 Jul 31;24(8):103836. doi: 10.1016/j.autrev.2025.103836. 9.Feng W, Liu H, Liang CL, Huang H, Chen Y, Dai Z. Immunoregulatory effect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nd its ingredients on psoriasis. Int Immunopharmacol. 2025 Jun 26;159:114896. doi: 10.1016/j.intimp.2025.114896.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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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대학 간판을 떨쳐낸 SK하이닉스, 그럼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나?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시대를 지배할 인류의 생존 조건으로 아주 독특한 “3대 근육”을 제시했다. 그것은 헬스장의 바벨을 들라는 게 아니라, 미래 인재가 반드시 탑재해야 할 “세 가지 정신 근육”이다. 첫째, ‘생각 근육’으로 AI에게 제대로 질문하고 답을 융합하는 비판적 사고력이다. 둘째, ‘적응 근육’으로 기술 격변의 파도 속에서 빛의 속도로 변신하는 유연성이다. 셋째, ‘공감 근육’으로 기술에 인간성을 불어넣고 타인과 연대하는 소통 능력이다. 이 발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AI 반도체의 심장인 SK하이닉스가 전격적인 행동에 나서 신입사원 채용에서 수십 년간 당연시되던 ‘4년제 학사 학위 이상’이라는 학력 제한을 전면 폐지했다. 즉, 고졸이든 대학 중퇴든 상관없이, 최 회장이 말한 3대 근육만 짱짱하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한민국 최고의 일터로 채용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그동안 말로만 “학벌 철폐”를 외치던 사회에 던진 거대한 폭탄이자, 대학 간판만 믿고 안주하던 교육계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친 유쾌한 인간 승리 선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까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30년 전 삼성 그룹은 이미 학벌 철폐의 선도자로서 발걸음을 떼었고 공공기관에서도 이력서에 출신 학교를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또 다른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즉, 이력서에서 간판을 지웠더니, 제한된 시간 내에 눈에 띄는 ‘말만 번지르르한 지원자’나 ‘고액 사교육으로 떡칠된 외부 스펙자’가 합격하는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밤낮 코피 쏟아 명문대에 간 학생들은 “내 학창 시절의 성실함을 증명할 기회조차 빼앗겼다”며 역차별을 호소했고, 일부 기관에서는 주관적 평가 개입으로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하이닉스의 이번 결단이 본격적인 ‘학벌 철폐’와 ‘인재 혁명’으로 이어지려면, 이제 학교 교육의 판 자체를 새로 짜는 획기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첫째, ‘생각 근육’ 단련을 위해 오픈 AI ‘피신(Piscine)’ 프로젝트의 운영이다. 프랑스의 혁신적인 IT 교육기관인 ‘에꼴 42(Ecole 42)’에는 교수도, 교재도, 주입식 시험도 없다. 오직 동료들과 한 달간 맨땅에 헤딩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피신(Piscine, 수영장)’이라는 서바이벌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의 진짜 역량을 길러내고 있다. 우리의 학교 평가 기준도 ‘암기한 정답’이 아니라, AI에게 어떤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힌트를 얻고, 이를 어떻게 자신만의 논리로 융합하는가의 과정이어야 한다. 둘째, ‘적응 근육’ 단련을 위해 ‘학년 팝업(Pop-up :경계 파괴)’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 오토매틱(Automattic)은 채용 전, 지원자들에게 몇 주간 실제 직무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맡겨 이들이 새로운 툴과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지를 검증한다고 한다. 교육도 이 방식을 적용해 아침에는 로봇 공학 프로젝트를 하다가, 오후에는 기후변화 뮤지컬을 제작하는 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학년의 경계를 넘어 매번 바뀌는 동료와 낯선 과제 속에서 뒹굴어봐야, 어떤 위기가 와도 카멜레온처럼 ‘적응 근육’이 생긴다는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셋째, ‘공감 근육’ 단련을 위해서 ‘동료 평가(Peer Review)’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는 인재를 뽑을 때 아무리 천재라도 독불장군이거나 팀워크를 해치는 자는 가차 없이 탈락시킨다고 한다. 철저히 동료들의 다면 평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 성적표에서 교사의 주관적 평점이나 줄 세우기식 등급을 지워야 한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서로의 협업 태도와 인성을 평가하는 동료 평가 시스템을 공교육 성적의 핵심 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청(소)년들이 스펙 성형외과를 찾아다니며 자소서에 넣을 형식적인 위장 줄글을 만드느라 청춘을 낭비하는 대신, 매일 아침 자신만의 ‘생각과 적응, 그리고 공감’을 키울 아령을 들어 올리는 학교, SK하이닉스가 던진 학벌 철폐의 공을 받아 안는 학교로의 구습 타파 ‘인재 양성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작년 고1 학생 1만 명이 넘게 자퇴한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의 책가방 속에 스트레스 유발의 시험지만 잔뜩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대신 ‘미래를 살아갈 단단한 근육’ 즉, ‘삶의 힘’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환할 때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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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봉선화 물들이기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봉선화 물들이기 구순 앞둔 아버지, 옥상 봉선화를 따 말려 절구에 정성스레 찐다. 이순 앞둔 딸, 손가락과 발가락에 꽃을 올리고 어머니는 실로 살며시 묶는다. 딸의 고운 모습에 모녀는 함께 웃는다. 붉은 꽃비처럼 사랑이 번져간다. 노을빛 속, 시간은 살짝 눈길을 보낼 뿐 지금, 이 순간,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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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육의 ‘정치적 면역계’를 구축하자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 제도를 뜯어고치고, 교육 거버넌스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와 기구를 신설하는 등 주로 ‘제도적 외과 수술’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아무리 법률을 바꾸고 구조를 개편해도, 적대적 거대 양당 정치라는 강력한 구조는 교실이라는 공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선거철만 되면 교육 현장은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가장 자극적인 실험실로 전락하곤 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가 교육을 지배하는 이 고질적인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외과적 수술을 넘어, 교육 현장 스스로가 정치적 외풍을 이겨내는 자체적인 ‘면역계(Immune System)’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제도나 정치인의 선의(善意)에 기대는 독립이 아니라, 교실 내부의 체질을 바꾸어 정치가 감히 침투할 수 없도록 만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 할 것이다. 과거 우리가 거시적인 제도 개혁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이, 정작 교육의 미시적 생태계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왔다. ‘교육 현장의 정책 수용도’ 연구에 따르면, 상향식(Top-down)으로 하달되는 정치권발 교육 정책이 학교 현장에 안착하는 비율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교사들의 교육과정 편성 자율권을 침해하여 공교육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OECD 교육 지표에서도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확보된 국가일수록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일관된 교육 성과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정치가 교육을 흔들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교실이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단기적 성과 위주의 공약들은 학교를 장기적인 안목이 실종된 ‘피로 사회’로 만들 뿐이다. 이에 우리는 제도적 독립을 넘어, 정치의 논리가 교실 문턱에서 스스로 차단되도록 만드는 획기적인 실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과정의 ‘블록체인(Blockchain)화’를 통한 정책 불변성 확보다. 중앙정부나 정치권이 교육과정을 손쉽게 주무르지 못하도록, 국가 교육의 핵심 뼈대를 분산형 시스템인 ‘블록체인’처럼 상호 검증 구조로 묶어야 한다. 지역 사회, 현장 교사, 학부모, 그리고 학계가 공동으로 승인한 교육의 핵심 가치와 장기 로드맵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단독으로 수정할 수 없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는 정치가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합의체만이 교육을 진화시킬 수 있는 안전한 ‘잠금장치’라 할 것이다. 둘째, 진영 논리를 파쇄하는 ‘메타-비판(Meta-Critical) 사고’의 훈련이다. 정치인들이 교육을 도구로 삼는 이유는 대중이 진영 논리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특정 정치적 이념을 가르치는 대신, “왜 저 정치인은 저런 주장을 할까?”, “저 공약 뒤에 숨은 이해관계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분석하는 ‘미디어 및 정치 리터러시’ 수업의 강화가 필요하다. 정치적 수사와 선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아이들 앞에서는, 어떤 정치인도 교육적 야합이 불가할 것이다. 이는 핀란드의 체계적인 ‘가짜 뉴스’ 판별 교육과 같은 맥락이다. 셋째, 세대의 서사로 이념의 독소를 녹이는 ‘격대(Gyeok-dae)교육’의 구조화이다. 정치적 이념은 대개 동시대의 갈등을 먹고 자라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역사적 경험은 갈등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이는 현대의 이념 대립으로 얼룩진 교과서 밖으로 나와, 아이들이 격동의 한국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조부모 세대의 서사를 직접 채록하고 아카이브로 구축하는 프로젝트라 할 것이다. 정치인의 외침이 아닌, 평범한 이웃이자 가족인 조부모 세대의 날 것 그대로의 삶의 궤적을 마주할 때, 아이들은 인위적으로 가공된 진영 논리를 초월해 연대감과 따뜻한 인성의 가치를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제 세계의 미래 교육의 도도한 흐름은 이미 정부 중심의 규제에서 벗어나, 학습자 스스로가 삶의 주체로 우뚝 서는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정치가 교육을 걱정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이제는 교육이 정치의 미성숙함을 걱정하고, 이를 치유할 인재를 길러내야 할 때다.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요요현상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교실 내부의 면역력을 키워 굳건한 교육의 자존감을 세워야 한다. 정치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깊고 단단한 사유의 숲을 아이들의 내면에 심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장 혁신적인 교육 자율성의 확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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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민주시민 교육의 힘과 우리가 나아갈 길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우리는 암흑 같은 터널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는 유⋅초⋅중⋅고 12~15년 기간의 바람직한 민주시민교육의 성과에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다. 이 믿음은 앞으로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는다. 왜냐면 우리 교육의 과도한 ‘경쟁’과 극단적 이기주의인 ‘내 새끼 지상주의’에서 마치 이를 부정하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와 협력 그리고 상생의 싹이 움트는 사회의 기운이 충만한 집단지성과 행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12⋅3 비상계엄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갈라진 민심을 추스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여기에는 각종 비상식과 비정상적인 언어의 배설이 극에 달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행태가 여전한 가운데 동방예의지국이자 기적 같은 선진국 진입이란 국가적 위상에 무색한 철학과 사유의 결핍을 도처에서 목격한다. 많은 사람들의 집단 도착 증상이 심각한 정도를 넘어 이제 그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더 큰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스며든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사고다. 이는 진보·보수 진영 간의 갈등을 넘어 이제는 상식과 비상식, 사유와 무사유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무지는 용서할 수 있어도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밝힌 ‘악의 평범성’은 이제 시대를 건너 21세기에도 현실에 대한 무감각 및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복종과 추종으로 똬리를 틀고 있음에 우려를 금치 못하겠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대학살의 집행자가 된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의 결핍과 철학의 빈곤, 즉 무사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시국은 한국형 ‘아이히만’의 출현을 도처에서 염려할 만큼의 상황이다. 특히 우리 교육이 낳은 엘리트들에게서 그런 경향을 발견함은 심히 우려할 일이다. 하지만 어둠이 압도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어디엔가 희망의 빛은 존재했다. 12⋅3 비상계엄 국면에서 국회 진입을 시도하던 장갑차와 특전사 군인들의 총부리에 맨손으로 맞선 민주시민들,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의 소극적인 대응과 망설임의 몸짓, 겨울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은박지를 온 몸에 둘러싸고 밤을 새워 시위 현장을 지키던 키세스 세대, 남태령 고갯길에 막힌 탄핵 촉구 농민 트랙터 행진에 밤새 응원봉을 흔들며 길을 터준 청년·시민들, 차가운 시위 현장에 따뜻한 커피와 음료, 먹거리를 제공한 민주시민들에게서 이 땅의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의 힘을 확인했다. 이는 진흙 속에서 발견한 진주처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것이었다. 이제 곳곳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MZ세대들의 열띤 정치 토론과 민주시민들의 행동하는 양심을 목도하면서 우리 교육이 길러낼 제2, 제3의 응원봉 세대가 만들어 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튼실한 시민 의식과 예리한 비판적 사유로 무장한 그들이 이끌어 갈 우리 사회는 상식과 사유의 풍성함이 충만할 것이다. 문제는 수구⋅꼴통 기성세대들이 갈수록 극단화되어 이 나라를 위험에 빠트리고, 87년 민주화 이후 이 땅의 ‘완전한 민주주위’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 ‘독재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부추겨 치명적인 민주주의의 퇴행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환경의 오염과 생태계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정(自靖) 작용을 통한 지구의 자생력을 믿듯이, 현재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각종 민주주의 퇴행의 실상에도 불구하고 한 쪽에서 희망의 불씨를 키워가는 이 나라의 젊은 세대들에게서 교육의 힘을 믿고자 한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꽃을 더욱 활짝 피우고 열매를 맺는 길은 이 나라의 미래 세대들을 보다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한 민주시민, 세계시민의 육성에 달려 있다. 회복력이 강한 우리 교육은 바람직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숭고한 교육목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미국의 민중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말한 대로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먼(We have so many miles before we sleep)’ 것이 우리의 교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한 치도 의심함이 없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한 교육에 더욱 힘찬 격려와 응원을 아낌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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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민주시민 교육의 힘과 우리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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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다양성의 인정으로 열린 화엄 세계 - 피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다양한 존재들이 모여 아름다운 균형을 이룬 세상, 그것이 바로 화엄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 우리는 더 풍성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피는 쓸모없다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지혜가 있다. 벼를 방해하는 ‘잡초’라 불리지만, 피는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다. 벼와 닮은 모습으로 변신하며 논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변신술사.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바꾸고,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생명력의 상징. 피는 싸우지 않는다. 그저 벼처럼 모습을 바꾸고, 닮아가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킨다. 강한 것은 단단한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다. 피는 무용(無用)하지 않다. 척박한 땅을 되살리고, 자연의 균형을 이루는 존재. 우리는 너무 쉽게 구분한다. ‘유용’과 ‘무용’, ‘필요’와 ‘불필요’. 하지만 자연에는 버려질 것이 없다. 공존의 지혜. 우렁이 농법처럼, 자연과 함께할 때 길이 열린다. 정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답이다. 피는 말한다. “나는 잡초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우리도 세상의 기준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강한 삶 아닐까.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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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경쾌한 멜로디와 풍자적인 가사로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가사의 일부분이다. 이 노래는 원래 밥 딜런이 불렀다. 이후 양병집이 번안하여 발표하였다. '역(逆)'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군사정권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김광석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가 말했다. 말을 듣기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이 드물다. 논어 학이 3장에 나오는 말이다. 겉모습만 번드르르하고 진심을 속이는 사람을 멀리하라는 의미이다. 요즘 언어와 행동의 이중성이 더욱 심각하다. 언어의 오염도 심각하다. 국민만을 위하겠다는 정치인이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백화점에서 소비자가 쉴 수 있는 의자가 너무 적다. 시골 할머니 간판을 단 음식점이 더 영악한 상술을 펼친다. 화려하고 반짝이고 기름진 언어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한 본능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 편이 이기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논리 방식이 커지고 있다.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한 행위는 알레고리를 통해서 심화하고 있다.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은 이러한 사고의 반영이다. 자기편 불법은 용서가 되고 상대편 불법은 용서가 안 된다. 국민이 체감하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온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간단한 상식이 복잡한 법률적용을 거치면 복잡해지고 아리송해진다. 당연한 것도 당연하게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죄가 없는데도 경찰서에 가면 불안한 이유는 죄가 없는데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대선이 6월 3일로 확정되었다. 전국에서 다양한 국가 공약을 담은 애드벌룬이 떠 오를 것이다. 현란한 언어, 달콤한 속삭임, 화려한 수사, 지방 현안 해결,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 예상된다. 교언영색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콤한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려 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공약도 난무할 것이다.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우리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다.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처럼 한숨만 쉴 수는 없다. 애드벌룬을 보고 아이처럼 들뜨기보다는 애드벌룬을 띄운 속내를 파악하고 진실로 참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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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실력 있고 열정적이던 선생님들에 대한 그리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1976년 필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시절, 대전의 D고교는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의 고교평준화로 인해 전국 최상위를 넘나드는 명문대 진학률을 기록하던 학교였다. 본관 건물 옥상 바로 아래에는 “전국 제패 학생 되고 끌어주는 스승 되자”는 슬로건이 학교의 위상을 대변하는 듯 했다. 입학 당시 고교 입학 학력고사 성적은 200점 만점에 191점이 커트라인이었으며 만점자와 1개 틀린 학생만도 한두 학급(12개 학급 중)이나 될 만큼 우수한 인재들이 전국에서 몰려 들었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공립학교로서 교육청의 정기 발령에 의해 순환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수업마다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은 지금 생각해도 실력은 물론 열정이 그야말로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 권의 참고서를 단권화 할 정도로 설명만으로도 더 이상 참고서가 필요 없던 국어 교과, 외국 대학 입시 문제를 가져다 교재로 쓸 만큼 고난도의 수학 교과, 해석과 문법 설명이 매끄럽고 막힘이 없던 영어 교과, 역사를 종과 횡으로 꿰뚫어 백과사전을 능가하는 역사 교과, 대한민국의 지형과 특징, 세부 사항 등을 현재의 구글 지도 보듯이 펼치는 사회(지리) 교과, 더 이상의 참고 유인물이 필요 없을 정도의 꼼꼼한 과학 교과 … 어느 것 할 것 없이 감탄연발의 수업은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만족으로 연계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교과의 전문성, 즉 실력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닌 열정의 결정체임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들른 교무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책상 위에는 마치 학생들이 단어 외우듯이 까맣게 써가면서 수업준비에 임하는 노력이 있었다. 특히 필자가 졸업 후 지방 대학의 영어영문학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긴 영어 선생님이 쓴 연습장(깜지)은 지금도 기억이 눈앞에 생생한 감동 그 자체였다. 수업 시간에 분필 하나만 들고서 칠판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필기하며 설명하시던 세계사 선생님은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The teacher, the student)’라 할 수 있듯이 필자는 교직 생활 내내 고교시절의 선생님들을 본보기 삼아 그 길을 따르려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잠자는 학생을 단 1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굴기이자 자존심은 어느 날 수업 종료 후 한 학생이 다가와 “선생님, 오늘 수업은 정말 끝내주었어요”라는 짧은 멘트에 완전 보상을 받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중고등학교 관리자(교감, 교장)로 재임 시 줄곧 수업에 대한 강조와 교내장학을 우선으로 학교 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수업하는 교실을 지나치며 교실 안의 학생들의 반응, 언뜻 보이는 교사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이 수업을 학원가의 강사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 수업을 내 자식에게도 믿고 참여시킬 수 있을까?” “이 수업만으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충분할까?” … 수없이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쩌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고 화기애애한 수업 분위기를 목격하면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의 얼굴을 보다 세심하게 응시하곤 했다. 그러면서 “학교 교사의 자존감을 보여주시고 학생들의 호응과 신뢰를 얻으시는 선생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를 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학교의 선생님들은 과거와 달리 수업에만 전념할 상황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물론, 각종 정서적 불안 증세를 겪는 위기의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그만큼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는 일반 행정 업무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몰입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알찬 교원능력평가가 시행되길 바라는 이유다. 세간에서 학원 강사와 학교 교사를 비교해 실력을 판단하려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자 잘못된 방향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교과지도에 보다 집중하여 실력과 열정으로 학생 교육에 나서게 해야 한다. 이제 모든 선생님들이 교단에서 자신감 있고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모습과 실력으로 우리의 미래 세대들에게 학교 교육의 만족도를 높이고 배움이 충만한 즐겁고 행복한 학교로 공교육의 위상을 견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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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실력 있고 열정적이던 선생님들에 대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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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순수한 미니멀리즘의 상징 - 제비꽃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제비꽃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생명체로, 본질적인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단순함의 힘이다. 제비꽃은 조용히 피어난다. 바람결에 흔들려도 뿌리는 깊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충분하다. 떠들썩한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흐르는 물에 스스로를 비춘다. 제비꽃은 경쟁하지 않는다. 더 크게 피어나려 애쓰지 않고, 더 많은 햇빛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꽃을 피울 뿐. 세상은 더 높이, 더 빠르게를 외치지만, 제비꽃은 말한다. “조용히 머물러도 충분하다.” 제비꽃은 강하다. 비바람에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벌이 없어도 스스로 꽃을 피우고, 개미와 공생하며 생명을 잇는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진짜 빛난다. 단순함 속에서 완전해진다. 불필요한 욕심 없이도 풍요롭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쥐고 사는가. 제비꽃은 가르쳐준다. “본질만으로도 충분하다.” 제비꽃은 함께 살아간다. 개미와 씨앗을 나누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삶도 그렇다. 경쟁이 아니라 함께 피어나는 것. 그것이 제비꽃의 지혜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삶,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삶. 떠들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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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순수한 미니멀리즘의 상징 -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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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내면에 충실한 음악, 그리고...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2025년 4월 현재, 세상은 참으로 혼란스럽고 거짓과 교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긍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황이며, 지구 온난화로 야기된 기후 변화가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위기 상황에 부딪히게 만들고 있으며,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가 병들고 있음을 이젠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있고 늦은 것이 아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발전하기도 했지만, 또 그로 인한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 또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AI가 많은 부분에 답을 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에 완벽한 정답은 없으며 여전히 인간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들이 훨씬 많다. 문화 예술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AI가 몇 초만에 그림도 뚝딱 그려내고 새로운 곡도 완성해 만들어 주지만, 그 안에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영혼은 아직 없다. 기술적으론 첨단이지만, 혼이 없는 예술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앞으로 인간이 고민해야 할 또 다른 질문 중에 하나다. 예술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없어질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마도 모든 시대,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세상이 지금처럼 첨단 과학화 되고 화려해지면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예전보다 더 많이 화려하게 연주하고,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화려함 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더 멋있어 보이고 심금을 울리게 만들기도 한다. 음악 연주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는 뭔가 화려하고 거창한 것이 더 멋져 보이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본이 중요하다는 걸 점차 깨달아 알아가서 더 그런 걸까? 클래식 음악 연주자 중에서도 가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한 것으로 유명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기술적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음악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쇼팽 음악에서 인위적인 과장 없이 곡의 낭만적인 정신을 전달하려고 애쓴 연주자이다. 그는 무대에서의 태도와 연주에서도 꾸밈없이 진솔함을 보여 주었고, 청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마치 응접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편안하고 온화한 태도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객과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기술적 완벽함을 넘어 감정을 전달하는 연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현재 음악가들이 단순히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것을 넘어, 곡의 내면적 의미를 강조하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루빈스타인은 ‘전문가’라는 말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보통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연주가 어느 부분을 빠르게 연주하는지, 또 어느 부분을 틀리게 연주했는지 그런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서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것보다는 청중과 교감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음악가라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89세라는 굉장히 늦은 나이까지 연주 활동을 하고 은퇴했는데, 은퇴한 이유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가 아니고 단지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악보 보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매번 연주 때마다 굵직하고 깊은 음색을 보여줬는데 그의 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쇼팽의 녹턴을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그의 음악과 함께 나의 음악도, 또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의 충만함도 기대해 본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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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평초 - ‘마주 잡을 손 하나’의 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부평초는 물 위를 떠다니며 자라는 개구리밥으로, 그 꽃말은 '떠돌이'와 '나그네'이다. 그 이름처럼, 떠돌이의 삶을 상징한다. 부평초는 구조적으로 단순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떠다니는 동안도 중요한 뿌리를 놓지 않는다. 부평초는 물 위에서 떠 있기 위해 엽상체라 불리는 특수한 기관을 발달시킨다. 이 기관은 공기 방을 통해 물에 뜨게 한다. 그럼에도,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뿌리는 중요하다. 부평초는 세력을 늘려가며, 그 유대감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존재들과 연결된다. 마치 사람들도 떠돌이처럼 생존하며, 유대감과 인정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부평초는 겨울이 오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겨울을 준비한다. 이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그 생존전략의 핵심은 ‘단순화’와 ‘기본적인 뿌리의 중요성’에 있다. 이것은 부평초의 생명력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 삶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부평초는 떠돌이 삶을 살지만, ‘마주 잡을 손 하나’만 있으면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 유대감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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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평초 - ‘마주 잡을 손 하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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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국가별 행복지수 56위 한국,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늘려 주자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3월 19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웰빙 연구센터와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국가별 행복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행복 점수 7.736점을 받은 핀란드였다. 8년 연속 가장 행복한 국가로 올라와 있다. 한국은 58위(6.038점)로 작년(52위)보다 6계단 떨어졌다. 높은 순위에 북유럽 국가들이 많다. 북유럽은 사회복지국가 체제로 경쟁적 자본주의보다 사회복지에 힘쓴 국가들이다. 연구진은 특히 배려와 나눔이 사람들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조사 결과 타인의 친절에 대한 믿음이 행복과 훨씬 더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타인과 자주 식사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누구와 친한지 알고 싶으면 그 학생이 학교 급식 시간에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지 보면 된다. 왕따 학생은 보면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계의 단절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식사를 어떻게 영양에 맞게 먹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대화를 하면서 먹느냐도 중요하다. 밥은 생존을 위한 사료의 의미만이 아니다. 식사에는 공감과 관계의 의미가 중첩한다. 행복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보다는 내면의 만족과 감사함에서 온다.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는 행복은 외부가 아닌 소박한 내면의 충족에서 온다고 했다. 행복은 경쟁에서 오지 않는다.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의 책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말살하는 심각한 인식인지를 비판하고 있다. 행복은 경쟁이 아닌 만족과 감사, 공감과 배려의 관계에서 온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낀 것은 코로나19 시대로 학교가 정상적인 등교를 못할 때였다. 당시에 지식은 원격수업으로 가능하지만 인성과 공동체 교육은 등교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의 존재이유가 바로 그 경험의 공유라는 것을 사회는 크게 깨달았었다. 벌써 그것을 모두 잊어버린 듯하다. 행복은 함께하는 것에서 온다. 함께하려면 배려하고 공감해야 한다. 배려와 공감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과정에서 온다. 학생의 행복을 위해 학교는 공유의 경험을 늘려야 한다. 서로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배려와 공감을 위해 학생들이 서로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토의, 토론, 동아리, 캠프, 상담, 친교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도시락 반찬을 나누어 먹고 학급 단위로 합창 연습을 하고 학원에 가기보다는 친구들과 운동과 놀이를 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라면을 먹었던 그 시절에는 행복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서로 함께여서일 것이다. 학교가 단지 지식을 위한 기관이라면 원격으로도 충분하다. 학교는 학생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 배우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기쁨을 느끼는 경험의 장을 최대한 많이 제공해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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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국가별 행복지수 56위 한국,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늘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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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땅빈대(비단풀) - 땅바닥이 천국이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최진규(약초학자) 님이 남미에서 어렵게 구해온 비단풀을, 결국 자신의 사무실 마당에서 발견하고는 탄식했다고 한다. 비단풀은 땅빈대라고도 불리며, 쇠비름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이름처럼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란다. 이 풀의 생즙을 상처에 바르면 신기하게도 곪지 않고 잘 낫는다. 내가 과일을 깎다가 손을 깊게 베었을 때, 비단풀을 짓찧어 붙였더니, 따가운 느낌이 잠시 들더니 피가 멈췄다. 비단풀은 사마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남미 사람들은 사마귀가 생기면 비단풀을 붙여,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귀가 떨어진다고 한다. 최진규 님에 따르면 비단풀은 항암작용이 뛰어난 식물 중 하나로, 특히 뇌종양, 골수암, 위암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거나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돋게 하고 기력을 늘려준다고 한다.(출처: 위키백과) 비단풀의 꽃말은 '집착', '가슴앓이', '희생적인 사랑'이다. 뿌리를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집착의 식물이지만, 암환자에게는 생명초가 된다. 한방에서도 ‘지금초’(지금처럼 땅에 펼쳐진 비단 같은 풀)라는 이름으로 약용된다. 땅빈대는 이름 그대로 땅바닥에 붙어 살아간다. 사람의 발에 밟히기 쉬운 고난의 땅에서 살지만, 그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단풀과 개미의 아름다운 공생은 신도 미소 짓게 만든다. 땅빈대를 보면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가 떠오른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세상의 모든 식물은 햇빛을 향해 자꾸만 뻗으려 한다. 하지만 땅빈대는 처음부터 땅에 엎드려 살아가기 때문에, 밟혀도 부러지지 않는다. 땅빈대는 햇살을 경쟁하지 않고 독점하며 살고, 꽃가루는 나비나 벌이 아닌 개미가 나른다. 꽃도 작고, 수술 하나, 암술 하나로 아주 간단하다. 가성비 최고의 잡초라 할 수 있다. 세상의 가치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땅빈대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에밀리 디킨슨의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를 보자.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 너도 - 역시 - 아무도 아니니? 그럼 우린 한 쌍이 되네! 말하지 마! 그들이 떠벌릴 거야 - 너도 알잖아! 정말 피곤해 누군가가 된다는 건! 유명한 사람이 된다는 건 개구리 같아 자기 이름 알리려고 기나긴 유월 내내 귀 기울여 듣는 늪에 울어대는! 디킨슨의 시는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회복력을 노래한다. 그녀의 「나는 아무도 아니다! 당신은 누구요?」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땅빈대처럼 겸손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기쁨과 단순한 생활 속에서 진정한 성장과 회복력이 나온다는 점을 말한다. 땅빈대의 생존 전략은 인간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키 큰 식물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과 달리, 땅빈대는 불필요한 경쟁 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 사회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에 맞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둘째, 단순함 속의 탄력성이다. 땅빈대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단순한 삶 속에서 우리는 강하고 유연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셋째, 겸손한 만족이다. 땅빈대의 꽃은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효율성에 중점을 둔다. 작은 행동이 더 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겸허함 속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과 성장만을 중요시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땅빈대처럼 회복력 있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조용하지만 심오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개성을 존중하고, 단순함을 신뢰하며, 내면의 회복력을 꽃피우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땅바닥이 천국이다. 땅빈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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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땅빈대(비단풀) - 땅바닥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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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주인 교육’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누구나 학창시절에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역경과 고비의 순간마다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경쟁 체제의 교육에서 그저 앞만 보고 걸어와 인지적 비교⋅판단능력이 염려가 될 때, 이 소설은 위로와 격려가 되며 삶의 힘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다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 믿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꼬박 사흘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상어 떼와도 거침없이 맞붙는다. 노인의 초인적 행동은 어부의 존엄을 갖춘 데서 나온다. 노인은 말한다. “난 될 수 있으면 돈을 빌리지 않고 싶구나. 처음엔 돈을 빌리지, 그러나 나중엔 구걸하게 되는 법이거든.” 도전과 고난의 바다는 같은 바다다. 그 바다 위에서 도전과 고난을 자신의 힘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다는 어머니처럼 품어주기도 한다. 수많은 물줄기가 산과 계곡에서 흘러 내려와 개울과 내를 이루고 강을 지나 드디어 바다에 이른다. 우리 인생의 과정이 이와 같다. 결국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드넓은 공간을 내주어 우리에게 무수한 보상을 베풀어 준다. 하지만 바다가 포효하고 거센 파도를 휘몰아칠 때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를 헤쳐 나가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청새치와 상어와 싸워 나가는 바로 그 힘과 용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금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운명을 개척할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최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등 집에서 쉬고 있는 청년 백수가 지난달 1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청년층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역시 1년 전보다 1만5천명 증가한 420만 9천명을 기록했다. 이 중 별다른 활동 없이 '그냥 쉬는' 청년은 50만4천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경제 성장의 둔화와 내수 부진, 제조업·건설업 불황, 기업들의 경력직·중고 신입 선호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백수'가 늘어난 것이다. 국가는 우선적으로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그들에게 잠재력과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입만 벌리고 하릴 없이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운명을 직접 찾아 나서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예컨대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귀농(귀어)을 하면 농산어촌 지자체 대부분은 상당한 비용을 지원하고 자립할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학벌 타파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모두가 가려는 길만이 정도(正道)는 아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려면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읽고 다양한 지혜를 쌓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목록1호여야 한다. 학창시절, 배움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 어려서 책을 읽는 습관은 평생 든든한 자산으로 기능한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어려서부터 책 읽는 좋은 버릇은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 길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멀리서 어렵게 그 비결을 찾지 말자. 이는 학교에서 배움에 열중하는 가운데 책과의 친화력이 주는 선물임을 잊지 말자. 교육의 역할은 자명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지향점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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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주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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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실질적 학교 교육 강화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현재는 민주국가와 자본주의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육계는 마치 허공에서 살기라도 하는 듯이 경제와 정치를 되도록 학생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국어, 영어, 수학만이 최고의 공부라고 생각하게 하고 있다. 입신양명은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근대국가로 오면서 학력은 국가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봉건사회와 산업사회를 지나서 이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민주시민과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세계화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와 살아가는 환경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유교적 출세주의나 산업화 성장주의가 아닌 선진국의 경제와 민주적 공동체를 지닌 환경으로 전환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시대이다. 세계는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자국의 이익과 자국의 국민의 이익을 강조하고 있다. 살기가 어려워진 결과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제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국민의 인식이다. 교육 현장에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교육은 수박 겉핥기로 보인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과를 나오지 못하면 기본적인 경제 개념조차 희박하다. 경제는 삶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생활에서는 정치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회비용과 경상수지, 디지털 화폐, 소비자신뢰지수, 유동성, 어닝쇼크, 공매도, ELS, 환차임, 모라토리엄, 매매계약에 대한 것을 많은 예시와 실질적인 토의와 토론으로 배워야 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정치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수업에 정당의 공약을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학생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우리는 그런 수업을 할 수 없다.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는 한국이 이룬 선진국 경제 수준과 동떨어진 꼴찌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교육에서 정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탓도 있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성장해서도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경제와 정치는 우리 일상과 밀접한 영역이다. 기준금리, 물가, 부동산, 환율, 무역에 따른 사회변화를 알아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와 ESG경영도 경제와 연관이 있다. 정치에 따라 새로운 사회 변화도 이루어진다. 우수한 몇 명의 결정만으로 국가 경제를 만들어가는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도 정치인 몇 명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국민이 주권의식을 가지고 경제대국, 민주국가를 올바르게 세워가려면 우선 교육에서 그 국민에게 올바르고 실질적인 경제교육과 정치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은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에 보여 준 모범적인 혁신 국가이다.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오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굳건한 국민 의식과 교양, 정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주체성을 지닌 국민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교육은 현실에서 유리될 수 없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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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실질적 학교 교육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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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2 개정교육과정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주어진 교과목과 교과 지식의 부적합성, 교과목과 교육 내용의 과다, 지속적인 개선 노력 부족 등으로 인해 정작 교육과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각 교과의 기득권에 밀려 새로운 교과 운영으로 완전하게 틀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역대 정부는 한때 교육과정 수시개정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생각과 실행의 괴리를 겪으며 흐지부지한 상태에 머무르면서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못했다. 그렇다면 결과가 이렇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과정 개편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교육과정위원회의 구성에서 해당 교과 관련 전문가와 교사가 융합을 이루기보다는 교과의 이기주의를 내세우기 급급했다. 둘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구성을 살리지 못했다. 셋째, 교과 내용의 과다로 창의적 인재 육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창의융합적 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 운영의 주요 장애물은 바로 교사가 교과 지식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어, 이를 활용하고 융합하는 교과서가 과다한 교과목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과정 개정이 기존의 틀을 시대에 합당하게 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일정 시점이 되면 해당 법이 자동 폐기되는 교과목과 교과 내용 일몰제의 적용이 요구된다. 현 제도가 촉발한 문제점은 현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먼저 교사는 각 교과의 핵심적 내용 간 상호 연계성, 학년 간 내용의 위계성을 이해하고 실천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통합된 시각을 가지고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는 교사가 수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창의성은 ‘모방의 모방’이라고 하듯이 기초 개념을 포함한 핵심 지식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이를 응용하는 교사의 역량이다. 또한 교사는 학생의 학습 개선을 돕는 평가, 학생 스스로 하는 성찰적 평가 등 과정중심 평가에도 교육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때 순간순간의 과정 이해 확인 및 총괄평가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핵심 지식의 인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교사는 학생들이 배움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탐구학습 및 협동학습에 기꺼이 참여하고 적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국가와 교육청은 교사가 이런 역량을 갖추도록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 전문학습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및 법정 교사 확충도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부 장관을 지낸 리처드 라일리는 “우리는 아직 발생하지고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 개발되지도 않은 기술을 사용하며, 아직 세상에 없는 직업을 준비하도록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준비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방증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창의력을 배양하기 위해 끈기와 인내력,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려는 집념 등 창의력의 토대가 되는 역량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 또한 창의적인 인재는 창의성이라는 필요조건과 따뜻한 인간애라는 충분조건을 갖추도록 교사로서의 고유 역할에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교사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방법으로 가능한 한 유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노자 성인의 가르침을 제언하고자 한다. “봄날의 새잎은 부드럽고 가을 나뭇잎은 딱딱하다.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고 굳어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다. 상대의 주장이 나와 다를 때 화가 치민다는 것은 내가 굳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모두가 같은 길로 나아가더라도 급류를 차고 튀어 오르는 연어처럼 한 번 거슬러 올라 역행하는 용기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이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교사가 갖추어야 할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역량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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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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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바랭이 - ‘마디’를 만드는 일, 인생 성공의 비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바랭이는 농부들을 가장 귀찮게 하는 풀이다. 어쩌면 농부의 한 해는 ‘바랭이와의 한 판 승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랭이는 잡초의 여왕이다. 바랭이는 땅 위를 기면서 줄기 밑 부분의 마디에서 새 뿌리가 나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간다. 그래서 옛날 우리 부모님들의 허리가 휘도록 밭을 매게 한 잡초가 바로 이 바랭이 풀이다. 줄기를 옆으로 뻗으면서 뿌리도 함께 내리니 미리 뽑지 못하면 결국 뽑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바랭이가 독하고 질기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이보다 더 독하고 질긴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독하고 억센 생명력과는 달리 바랭이는 단맛이 나는 풀이다. 그래서 소나 염소 등 초식동물들이 매우 좋아한다.(출처 : 뉴스서천(http://www.newssc.co.kr)) 대개 잡초의 생존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옆으로 퍼져가며 자신의 생활영역을 점점 늘려가는 진지확대형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 자라며 빛을 독점하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우위성을 도모하는 진지 강화형 전략이다. 바랭이는 여왕답게 이 두 가지의 전략을 다 쓴다. 즉 넓게 트인 곳에서는 줄기를 옆으로 가듯이 뻗어가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고, 라이벌의 작물이 있는 곳에서는 위로 뻗어가며 상대 누르기에 골몰한다. 이것이 바랭이의 생존전략이다.(출처 : 풀들의 전략) 그런데 바랭이의 생존전략 가운데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줄기의 마디다. 바랭이는 줄기 가운데에 반드시 마디를 만드는데, 이 마디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라면서 줄기 가운데 마디를 만들고, 거기로부터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뻗으면 뻗을수록 줄기 끝은 원뿌리로부터 멀어진다. 필요하면 마디에서 뿌리를 만들고 그곳을 통해 최전선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다. 이렇게 바랭이는 마디 뿌리를 이용하여 자꾸 줄기를 뻗어갈 수 있는 것이다. 멀리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갈 수 있다. 그래서 비바람이 거칠게 불어도 쓰러진다거나 꺾인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인간에게 베이거나 뽑히는 일이 있을 때도 바랭이는 괜찮다.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면 된다. 바랭이가 마디를 만들지 않았다면 잡초의 여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디! 인생도 마찬가지다. 긴 인생을 알차게 살려면 마디를 두어야 한다. 인생의 마디는 무엇일까? 그것은 돌, 입학식, 졸업식, 성년식, 결혼식 등 인생을 살면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마디는 휴식이다. 대나무는 외부의 충격에도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가있기 때문이다. 삶의 마디마다 축제를 벌여야 한다. 그러면 삶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축제가 없는 삶은 인간을 쉬 늙어버리게 만든다. 마디를 만들어 젊게 살자. 지속 가능한 삶은 마디가 있는 삶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고비를 만나게 되고. 그 고비를 넘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고비로부터 성장을 향한 재출발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마디를 만들어 고비가 될만한 행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각종 이벤트, 페스티벌, 축제, 기념일 따위다. 부질없는 일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날을 잘 챙기는 것이 결국은 성공의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기념일은 생의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1년은 12달이다. 1월에 세운 계획을 계획대로 행하지 못했을 때, 2월이 있다. 이런 식으로 각 달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된다. 인생에서 마디를 만든다는 것은 인생의 마라톤에서 완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히말라야산(8,848m)을 완등하기란 매우 힘들다. 전문등산가들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 1지점, 제 2지점하는 식으로 일정한 구간을 나누어 등정한다. 한번에 쉼없이 등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도 생각하기에 따라 히말라야산 만큼이나 길다. 바랭이는 베이거나 뽑히더라도 거기에 한 마디만 남아 있으면 거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역경을 넘는 바랭이의 비밀은 튼튼한 마디에 있다. 500~1,000페이지의 책을 앍으려면 책의 챕터별로 나누어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온종일 공부하는 일도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50분, 중학교는 45분 하는 식으로 수업 시간을 나누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온종일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마디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바랭이 풀에서 배워야 할 전략이다. 바랭이의 마디 뿌리는 안정성을 제공하여 멀리 퍼질 수 있고 바람이나 비와 같은 외부 힘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인생에서 이는 기반을 무너뜨리거나 잃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응 가능한 전략과 지원 지점을 갖는 것의 가치를 시사한다. 또한 마디는 여러 위치에 뿌리를 내리고 다양한 지점에서 자양분을 끌어낼 수 있는 미니 지원 시스템 역할을 한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멀리 나아가더라도 우리를 키우고 안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연결과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의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바랭이는 잘리거나 훼손되더라도 마디에서 다시 자란다. 이는 좌절에 직면했을 때 회복력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바랭이처럼 튼튼한 기초가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회복하고 새롭게 성장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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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바랭이 - ‘마디’를 만드는 일, 인생 성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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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비행기에 몇 개의 탁구공을 채워야 가득 찰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비행기 안에 탁구공이 얼마나 들어갈까요’라는 내용을 면접에서 질문받으면 얼마나 당황할까. 바로 구글 회사의 면접 질문이었다. 얼마 전 구글 한국지사에 다녀왔다. 창업자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정보검색을 찾았다고 했다. 구글은 2명을 시작으로 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정말 탁구공이 몇 개나 들어갈까. 답이 아닌 사고 과정을 보려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자면 먼저 어떤 비행기인지, 승객은 있는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자신의 판단만으로 비행기 내부를 자기가 상상해서 판단하고 계산해서 수만 개의 탁구공을 계산하여 답변하면 불통의 이미지만 줄 뿐이다. 세상살이에 정답이 있는가. 답이 없는 인생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지식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을 당해낼 수 없다. 호기심과 질문이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방식이다. 질문하고 성찰하는 인재가 더욱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질문을 해야 다양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판단을 하고 성찰을 해야 한다. 시키는 대로 우격다짐으로 빠른 답이라도 내놓은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인간의 역할은 답변하는 위치에서 질문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개인의 ‘질문 능력’을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을 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정답 찾기와 지식 암기의 기존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질문을 찾는 능력은 인공지능 시대 개인의 역량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능력을 키울 수 없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새로운 교육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왕성한 호기심과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능력이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핵심 능력이다. 차별과 혐오를 놀이로 삼는 학생들의 행동이 요즘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혐오를 ‘유머’나 ‘장난’으로 소비하는 현상이 여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벌어졌던 혐오 정치가 교실까지 확산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이나 사고보다는 남들이 하는 장난을 군중심리로 따라 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른 폐해는 심각하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24년 5월에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2023년 47위에서 15계단 하락한 62위였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를 평가하는데 '좋은 상황(Good Situation), 만족스러운 상황(Satisfactory Situation), 문제적 상황, 어려운 상황(Difficult Situation), 매우 심각한 상황(Very Serious Situation)' 등 5개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대한민국은 '문제적 상황(Problematic Situation)'에 속하고 있다. 질문하는 인간과 성찰하는 인간이 민주시민교육의 토대가 될 것이다. 시대는 인성과 창의성을 갖춘 성찰하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교육자는 이 혼란한 세상에도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사명이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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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비행기에 몇 개의 탁구공을 채워야 가득 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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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허용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학교는 학생을 교육하는 공간이다. 이는 실수나 잘못을 통해 학생 스스로 또는 교사를 통해 뭔가를 깨닫고 배우는 공간이 학교라는 의미다. 그런데 학교는 학생이 수업을 듣고, 받아쓰고, 반복해서 외우기를 제외한 뭔가를 하면 자꾸 제동을 당한다. 따라서 학교에 다닐수록 실수든, 잘못이든 뭔가 할 기회가 차단된다. 그뿐이랴. 만약 학생이 교사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했을 때는 심하게 야단을 맞거나 철저히 설득당하거나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독한 자기 검열을 반복하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때론 억울한 일을 당해 문제 제기라도 하면 ‘모난 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학생은 ‘학습된 비관’이 생기고 침묵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굴종적인 시민으로 훈련되는 것이다. 이는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의 목표와는 유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교는 ‘생활지도’라는 명분으로 이런 교육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실시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해도 보수성이 강하고 수구적 성향의 학교는 사회의 타 분야와 달리 변화의 속도가 대부분 늦은 편이다. 그런데 이조차 학교별,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이 이른바 그 학교의 전통적인 문화가 되고, 결과적으로 교사나 학생이나 사회적 불의와 부정을 보아도 무신경하게 되는 교육을 초래한다. 잠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모 중학교에서 시험 전 A교사는 교과 진도가 일찌감치 끝나 학생들에게 자습시간을 주었다. 그러자 B학생은 습관대로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A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해 압수했다. B학생은 다소 어안이 벙벙해 일단 쉬는 시간에 A교사의 오해를 풀며 사정해 보기로 작정했다. B학생은 A교사로부터 휴대폰 예절을 비롯해 ‘내 자습 시간에는 공부만 해야 한다’는 꾸중과 훈계를 받고 1~5일간의 압수 기간을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A교사는 자신의 담당 학급 복도 바닥을 청소시켰다. 이를 알게 된 담임교사 C는 성정이 여린 관계로 동료교사의 지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 결국 B학생은 A교사 학급의 복도 청소를 하고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이는 사건 자체가 매우 비상식적이고 비교육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학교 특유의 ‘칸막이 문화’로 인해 교사들 간에도 학생지도 방식에 큰 차이를 드러낸다. 이 사건 뿐만이 아니다. 교사에 따라서는 학급 학생이 자신의 지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 곧 바로 괘씸하다는 감정에 치우쳐 청소를 한 뒤에 10분~30분, 심지어는 그 이상의 시간을 학급 전체를 기다리게 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길들이기도 한다. 교사들은 이를 흔히 ‘생활지도’라 부르며 몇 번만 반복하면 학생들이 잘 따른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는 득보다 실이 크다. 당연히 학부모가 민원 제기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방과 후 계획에도 지장을 주는 연쇄적인 부정적 파급 효과를 유발한다. 그런데도 일부 학생들은 그런 담임의 행동을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수용을 하며 길들여지기를 감수한다. 이렇게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을 교육해 왔고 이에 대해 획기적인 개선 없이 오늘에 이르렀고 안타깝게도 지금도 교사에 따라서는 이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가혹 행위를 즐기는 ‘사디스트’로 비교육적인 것은 물론 비인간적이다. 다양한 생각 자체를 억압하고 특히 청소년들의 다양한 의견과 건전한 비판의식을 차단함으로써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목표를 크게 훼손한다.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 발생하는 일들은 학급회나 학생회에 안건으로 위임해 자체적으로 이를 성찰하고 협의에 의해 결정도록 허용하는 방식의 교육을 널리 견지해야 한다. 이것이 학교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보다 배움에 이르는 공간으로 다가서고 자체적인 협의와 공론화의 과정에 따라 학생 자치능력을 최대로 키우는 민주시민교육의 구현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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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허용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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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들 -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어릴 때 연못가에 가면 핫도그가 땅에 박혀 있는 모습의 식물을 본 적이 있다. 그냥 뽑아서 먹어도 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자라서 보니 그게 부들이라는 식물이었다. 꽃가루받이를 할 때 부들부들 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국의 어떤 사람이 부들 줄기를 먹었는데 식감이 젖은 마분지를 씹어먹는 것 같다고 했다. 부들은 갈대와 함께 하천의 수질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주요 식물이기도 하다. 군락을 이루는 습지식물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물을 여과하고 흐름도 조절해 준다. 또한 부들 군락은 하천에 사는 수많은 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꽃말은 '거만'. 서양에서는 꽃이삭이 고양이 꼬리처럼 보여서 그런 꽃말이 생겼나 보다. 꼿꼿한 꽃대가 거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라 붙여진 꽃말일지 싶다.(출처: 생생비즈 https://www.livebiz.today) 『시경』 「진풍(陳風)」 제10편 택피 3장(澤陂三章)에 아름다운 부들과 연꽃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가 있다. 연못가 저 언덕에 부들 연꽃 한창이네 멋있는 저 사나이 훤칠하고 근엄해서 자나 깨나 하릴없이 뒤척이며 지셉니다 ‘저 연못가 언덕에 피어 있는 부들과 연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여, 너로 하여금 내가 속상하고 병 된들 어떠하리오, 자나 깨나 네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물 콧물만 줄줄 흐르는구나.’로 해석된다. 부들을 남성에, 연꽃을 여성에 비유하며 조화롭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들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가에서 한 여인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를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부들의 잎과 줄기의 생김새가 호탕한 성격을 갖고 있어 남성적이고, 연꽃의 꽃잎은 여성스럽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가까이 있으면 좋을텐데, 나는 홀로 있으니 눈물만 흐른다고 그리운 마음을 호소하고 있는 시다. 그 옛날에도 문학적인 소재로 부들이 쓰였다는 방증이다. 부들은 ‘여우의 촛불’로도 부른다. 부들 이삭에 알코올이나 석유 같은 걸 충분히 적셔서 불을 붙여보면 마치 촛불과 같은 예쁜 불꽃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들은 수술과 암술이 너무 가까워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묻기 쉽다. 그래서 수꽃이 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암꽃을 피우게 된다. 또한 부들은 풍매화이기 때문에 부들 씨앗의 아래에는 부들의 이삭털이라 하는 흰 털이 붙어있다. 마침내 때가 되면 이삭 안으로부터 부들 씨앗이 솟아오르듯 나타나 흰색의 이삭털을 이용하여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간다. 부들 이삭 하나에는 씨앗이 대략 35만 개 이상 들어있다. 작은 이삭 하나 속에서 35만 개 이상의 생명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삭 하나에 35만 개의 꽃이 모여 피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래서 부들은 단순한 구조와 크기도 서로 양보하는 것처럼 작게 만들고 있다. 35만 개의 꽃이 모여서 틈 하나 없는 이삭 하나를 이루고 있다. 힘을 모은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구에 살고 있는 65억 인류에게 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어떻게 65억 인류가 하나로 모아질까? 흔히 우리는 하루를 낮과 밤으로 경계 짓는다. 낮은 가시성과 더불어 좋은 것으로, 밤은 어둠과 함께 나쁜 것으로 관계지어 서로 반대쪽에 놓는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하루는 태양을 기준으로 한 지구의 자전의 두 측면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실제는 하나를 가지고 둘로 나누어 경계 짓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즐거움과 고통, 성공과 실패, 선과 악에 대해 언어로 경계 짓고 한쪽의 삶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스트레스와 불만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이원성의 한 면에 집착하면서 다른 면을 거부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계곡 없는 산을 가지려 하는 것과 닮았다. 악 없는 선, 고통 없는 쾌락, 실패 없는 성공은 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해안선을 보라. 그 경계 안에는 바닷물과 모래가 뒤섞여 있다. 경계는 언어가 만들어낸 마법의 환상에 불과하다. 극과 극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불화는 조화로 사라지고, 투쟁은 춤으로 변하며, 오랜 적들은 연인이 된다. 우리는 언어가 준 마법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무한한 자유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실재하는 세상은 무경계다. 경계는 언어가 준 마법의 환상이다. 실제 위에 덧씌운 경계 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면 인류는 하나가 된다. 이진경이 『노마디즘2』에서 말했다. “모든 사람의 적은 자아(自我)다.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라고.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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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들 -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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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기다림의 시간들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연주를 하러 다니다 보면 참으로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어떤 곡을 연주하는 시간보다도 어떨 땐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으니 나의 삶에서 기다림이란 음악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크게는 연주하는 장소까지 오고 갈 때의 기다림, 연주 순서를 기다릴 때의 기다림, 세부적으로 들어가 본다면 연주하는 순간순간에도 악장과 악장 사이의 기다림, 쉬는 부분이 나올 때, 그리고 나의 악기가 다시 나오는 부분을 연주할 때까지의 작은 기다림까지. 삶이 기다림의 연속이다. 굳이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림에 쓰고 있을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린다던가, 로또에 당첨될 날을 기다릴 수도 있고 자신이 목표한 소망이 이뤄질 날을 기다리기도 하고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음악사에서도 보면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곡들도 있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수정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곡들도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세상의 빛을 미처 보지 못하는 곡들도 있다.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도 우리가 아는 7곡은 있지만 나머지 한 곡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향곡의 작곡가로 알려질 만큼 그의 7개의 교향곡은 훌륭하며, 그 자신도 교향곡은 인생의 각 단계에 대한 신앙고백과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8번째 교향곡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대단했던 것 같다. 마지막 교향곡 7번도 작품의 구상부터 완성까지 거의 8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걸 보면 역시 예술작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어쨌든 7번째 교향곡을 완성한 것이 그의 나이 59세 때인데 그 이후로 91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신곡을 세상에 내놓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낄 만큼 예민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8번째 교향곡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오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작곡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아 스스로 벽난로에 던져 태워버렸다고 한다. 시벨리우스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이전의 곡들보다 더 나은 곡들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삶도 오래 준비하고 시도하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긴 기다림에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기다림이라는 오랜 시간이 반드시 해피 앤딩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 보다. 사람들은 기다림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을 것이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기다림에 조급함을 가지기도 하며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급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다림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을 통해 인내심을 배우고, 사색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때로는 희망을 동반하기도 하지 않던가. 결국은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와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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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기다림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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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애국과 인간 존엄 교육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일반적으로 위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애국을 거론할 때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삶을 증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른바 가면을 쓰고 둔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제로는 국가를 해치는 매국의 속성이 배어 있다. 왜냐면 뒤에서는 자신과 집단의 이익과 권력을 철저히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민 전체를 폄훼하고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위정자들이 국민을 그저 ‘혜택 받는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구가한 수법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고통과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분투는 은폐되고 개인은 말없이 희생되기 마련이다. 이런 애국은 충성과 당위만을 강요하고 국민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정자들이 망치는 나라를 국민이 되찾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그 이면에 자기 삶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굳게 내재한다. 개인의 존엄은 누구도 뺏을 수 없고 함부로 폄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제 1조 1항이다. 여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제10조에 대해 의무를 진다. 결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춧돌인 것이다. 우리의 뿌리는 이 땅에서 일군 고단한 국민으로서의 삶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위정자가 규정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도 우리 전체를 결코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국민 개개인의 삶을, 서로를, 지극히 존중해야 한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일갈했다. 누구에게는 더러웠는지 모르지만 고단했던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대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을 전통과 역사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 삶 자체는 한없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고개 숙이거나 지배당할 수는 없다. 이 땅에서 우리 개개인이 살아 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존중받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 왜 위정자와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진흙탕에 빠져 험난한 탈출을 구가하고, 가슴앓이하며 절망 속에서 한숨을 쉬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추어 저 멀리 남미와 아프리카 국민들처럼 퇴락한 국가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것도 부족해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며 살아야 하나? 인간 개개인의 존엄을 어디서 다시 찾아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하루하루 평온하고 안정된 호흡을 하며 살 수가 없다. 대통령부터 자국민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싹 다 정리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과 더불어 평화스럽게, 상호 존중을 하면서 존엄한 인간답게 살 수는 없는가? 왜 이렇게 국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애국을 주장하면서, 나라를 매국으로 몰고 가는가? 인간에 대한 존엄 의식이 없고, 인간을 최고의 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출세와 성공, 권력 지향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이 배출한 최고의 엘리트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 사람이 그 모양인가? 일치와 사랑을 말하는 많은 종교인들조차 등을 돌리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우리의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의 핵심이다. 세상이 불만족스러울 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느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국민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개인은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에 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인간 존엄 교육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 추구하는 행복이고 인간의 권리다. 가면의 탈을 쓰고 애국을 강요하는 나라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나라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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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애국과 인간 존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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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바람개비와 산삼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축제를 하는 곳이나 관광지에 가면 바람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람개비는 자기 의지로 혼자 돌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돌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서 있다. 길가에 죽 늘어서서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바람개비의 삶에 고민은 없다. 그저 바람에 따라 자신의 몸을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고장이 나는 순간까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람개비의 숙명이다. 바람개비의 삶은 기계적 삶이고 순종적인 삶이고 사색 없는 삶이다.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일면 부지런하게 보이지만 바람개비의 삶에서 진실함을 느끼기는 힘들다. 신나게 도는 바람개비는 단지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고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바람이 그치면 바람개비는 혼자 돌지 못하고 돌고 싶은 의지도 없어 보인다. 다만 축제를 위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바람개비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고민도 생각 없는 편안한 삶. 월급이라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삶. 그런 사람은 주어진 일만 하면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바람이 역풍이든 순풍이든 그저 돌기만 하면 된다. 기계와 같다. 폐기가 될 때까지 그저 바람에 순응하며 살다가 낡아지면 폐기된다.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지만 자신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축제장의 바람개비들은 빛깔이 원색으로 화려하다. 그 화려함이 내면의 허전함을 더욱 커 보이게 한다. 산삼은 새가 삼의 씨앗을 먹고 날아가다가 떨어진 씨앗에서 자연 발아한 삼이다. 씨앗이 습하고 적절한 곳에 떨어지는 확률은 매우 적다. 그러한 곳에 떨어졌어도 혼자서 곰팡이균과 수분과 햇빛과 많은 위험을 오롯이 오랜 기간 견뎌야 한다. 인삼은 온전히 인간의 재배로 밭에서 키워진 것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간다. 장뇌삼은 인삼을 산에 옮겨서 심어 키우거나 인삼의 씨를 산에 뿌려 키운 인삼을 통칭한다. 다시 말해 사람 손으로 산에서 재배한 인삼을 말한다. 결국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산삼과 다르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고난이 산삼의 향을 짙게 하듯이 인간에게도 고난은 깊은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는 모든 것이 자동화하고 편리한 것을 우선한다. 그러한 시대의 양상이 인삼이나 바람개비 같은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공장에서 물품이 나오듯이 쉽고 값싸고 보람이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만들어 낸다. 인간에게 도전과 고난과 역경은 깊고 성숙한 인품의 바탕이 된다. 살면서 어려움을 피하고 쉽게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공허함과 허무함만 느끼게 된다. 산삼은 자라는 속도가 인삼보다 훨씬 느리다. 산삼은 인삼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인삼은 빠르게 자라고 크고 굵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쉽게 인간을 맞춤형으로 재배하려는 인식이 몰려오고 있다. 바람개비의 인생을 살 것인가. 산삼의 인생을 살 것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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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바람개비와 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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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칡 - 정작 칡은 갈등하지 않는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를 보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탈출하고 싶은 바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자리가 행복을 가져온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해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가 된다. 칡은 낮잠을 자는 식물로 상당히 게으른 풀이다. 빛이 너무 강하면 광합성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칡은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잎을 세워 지나치게 강한 햇살을 피한다. 또한 밤이 되도 광합성을 할 수 없다. 잠을 자면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입바늘’이라 하는 구조를 잎의 아랫부분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 높게 햇빛을 받아들인다. 칡꽃의 꽃말은 ‘사랑의 한숨’이다. 꽃말답게 산이든 들이든 정원이든 일단 칡에 잡히면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칡의 열매는 산속 굶주린 새들의 먹이가 되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 칡은 대단히 빨리 자라는 잡초다. 나무도 타고 나무를 탈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칡은 바로 땅 위로 줄기를 뻗어간다. 세상의 나무들이나 잡초들이 하늘로만 곧게 자랄 생각만 한다. 그래서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긴다. 칡은 생각을 바꾼다. 위로 올라갈 수 없으면 땅을 본다. 곧장 땅 위로 줄기를 뻗는다. 2022년 방송(tvN 토일 드라마)되었던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옛 애인이었던 동석(이병헌 역)을 찾아 제주에 왔다가 떠나는 장면에서, 동석은 자기처럼 후회하지 말고, 나중이 아닌 현재를 바라보라며 선아(신민아 역)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준다. “아버지 배 타다 죽고, 동희 누나는 물질하다 죽고, 엄마는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저기 떡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버지, 동희 누나, 죽은 바다도 안 볼 수 있는데...” 하며, 앞만 바라보는 선아에게 뒤를 보면 선아 편인 자신도 있다며 조언해 준다.(우리들의 블루스 10회) 우리는 삶을 살면서 수많은 갈등을 한다. 그런 갈등에 함몰되면 삶 자체가 망가진다. 그럴 때는 고개를 돌려 뒤를, 옆을, 아래를 바라보라. 거기엔 갈등이 없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의 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삶에서 갈등이 없으면 삶 자체가 맹맹하다. 싱겁다. 그래서 소설에도 갈등 구조가 있지 않은가.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춘향이와 이몽룡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다 죽었다”라고 한다면 누가 『춘향전』을 읽겠는가. 칡과 등나무의 갈등이 아무리 심해도 해소할 방법이 있다고 한다. 두 덩굴을 조금 느슨하게 감아 올라가게 해놓으면, 갈등을 해결하고 사이좋게 공생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이런 방법이 없는지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갈등 속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잃지 말자.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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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칡 - 정작 칡은 갈등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