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제의 목요칼럼] 바람개비와 산삼
"고난이 산삼의 향을 짙게 하듯이 인간에게도 고난은 깊은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축제를 하는 곳이나 관광지에 가면 바람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람개비는 자기 의지로 혼자 돌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돌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서 있다. 길가에 죽 늘어서서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바람개비의 삶에 고민은 없다. 그저 바람에 따라 자신의 몸을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고장이 나는 순간까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람개비의 숙명이다.
바람개비의 삶은 기계적 삶이고 순종적인 삶이고 사색 없는 삶이다.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일면 부지런하게 보이지만 바람개비의 삶에서 진실함을 느끼기는 힘들다. 신나게 도는 바람개비는 단지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고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바람이 그치면 바람개비는 혼자 돌지 못하고 돌고 싶은 의지도 없어 보인다. 다만 축제를 위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바람개비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고민도 생각 없는 편안한 삶. 월급이라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삶. 그런 사람은 주어진 일만 하면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바람이 역풍이든 순풍이든 그저 돌기만 하면 된다. 기계와 같다. 폐기가 될 때까지 그저 바람에 순응하며 살다가 낡아지면 폐기된다.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지만 자신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축제장의 바람개비들은 빛깔이 원색으로 화려하다. 그 화려함이 내면의 허전함을 더욱 커 보이게 한다.
산삼은 새가 삼의 씨앗을 먹고 날아가다가 떨어진 씨앗에서 자연 발아한 삼이다. 씨앗이 습하고 적절한 곳에 떨어지는 확률은 매우 적다. 그러한 곳에 떨어졌어도 혼자서 곰팡이균과 수분과 햇빛과 많은 위험을 오롯이 오랜 기간 견뎌야 한다.
인삼은 온전히 인간의 재배로 밭에서 키워진 것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간다. 장뇌삼은 인삼을 산에 옮겨서 심어 키우거나 인삼의 씨를 산에 뿌려 키운 인삼을 통칭한다. 다시 말해 사람 손으로 산에서 재배한 인삼을 말한다. 결국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산삼과 다르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고난이 산삼의 향을 짙게 하듯이 인간에게도 고난은 깊은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는 모든 것이 자동화하고 편리한 것을 우선한다. 그러한 시대의 양상이 인삼이나 바람개비 같은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공장에서 물품이 나오듯이 쉽고 값싸고 보람이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만들어 낸다. 인간에게 도전과 고난과 역경은 깊고 성숙한 인품의 바탕이 된다. 살면서 어려움을 피하고 쉽게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공허함과 허무함만 느끼게 된다.
산삼은 자라는 속도가 인삼보다 훨씬 느리다. 산삼은 인삼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인삼은 빠르게 자라고 크고 굵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쉽게 인간을 맞춤형으로 재배하려는 인식이 몰려오고 있다. 바람개비의 인생을 살 것인가. 산삼의 인생을 살 것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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