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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칼럼] '신입생 0명'의 역설, 소규모 작은 학교를 '미래형 혁신 배움터'로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대도시 부산의 동쪽 끝자락, 푸른 바다를 품은 기장군의 한 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노라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당장 학구내의 내년도 취학 대상 아동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서글픈 현실에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강원도 두메산골이나 낙도의 외딴 섬마을 이야기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에서도 매년 수십 개의 초등학교 학급이 줄어들며, 도농 복합 지역과 원도심을 중심으로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추계 통계를 살펴보면 인구 절벽의 경사는 아찔할 정도다. 2023년 40만 명 선을 간신히 유지하던 전국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 수는 2024년 35만여 명으로 급감하더니, 급기야 20만 명대 후반까지 내려앉으며 30만 명 선마저 무너졌다. 부산의 사정도 결코 다르지 않다. 부산 시내 전체 300여 개 초등학교 중 신입생이 20명 미만인 학교가 40여 곳을 훌쩍 넘어 전체의 약 14%에 달하며, 이 중 10명도 채 되지 않는 초미니 학교만 20여 곳에 이른다. 기장군과 강서구 같은 도농 복합 지역은 물론, 영도구와 중·서구 등 원도심에 이르기까지 한 학급조차 온전히 채우지 못하는 학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충격파 앞에서 제시되는 대응책은 여전히 학생 수 기준에 얽매인 통폐합과 휴·폐교 등 구조조정 중심의 양적 접근에 머무르고 있어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학교는 통계표 위의 숫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지역사회의 구심점이다. 농어촌과 원도심에서 학교가 문을 닫는 순간 젊은 층의 유입은 원천 차단되고 마을 공동체는 급속히 붕괴한다. 재정 효율성만을 앞세워 교문을 걸어 잠그는 조치는 결국 지역 소멸을 재촉하는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될 수 있다. 위기의 작은 학교를 살리고 지역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관성적인 통폐합 유도가 아닌 발상 전환적인 정책적 결단이 요구된다. 우선, 주소 이전 없이도 도심에서 전·입학할 수 있는 '광역 자유통학구역'과 '도시형 교육유학제'의 전면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심 과밀학급의 갑갑한 교실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적지 않다. 주소지 제한의 빗장을 과감히 풀고 교육청 차원의 거점 통학버스를 적극 지원한다면, 천혜의 자연환경과 쾌적한 공간을 갖춘 소규모 학교는 도심 학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대안 배움터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국제공인 교육과정인 'IB(국제 바칼로레아) PYP'나 '해양·생태 몰입형 특색 프로그램'의 선제적 유치가 필요하다. 획일적인 교육과정 대신 질문과 탐구, 생태 체험 중심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입혀야 한다. 실제로 특색 있는 교육 모델을 도입한 소규모 학교에 도심 학부모들이 아이를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역유입 현상'은 이미 여러 지역에서 증명된 바 있다. 나아가 인근 소규모 학교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캠퍼스형 공유 학교(Co-learning Campus)'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일상적인 교과 학습은 소인수 학급의 장점을 살려 1:1 맞춤형으로 진행하되, 체육대회나 음악 합주, 체험학습 등 또래 관계 형성이 필요한 영역은 인근 학교들이 연대하여 공동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부모들이 가장 염려하는 사회성 결핍 우려를 해소하면서도 작은 학교의 고유한 생명력을 지켜낼 수 있다. 흔히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역으로 그 마을의 숨결을 이어가는 마지막 심장은 바로 학교다. 학교가 사라진 자리에 공동체가 존속할 수는 없으며, 획일적인 효율성의 잣대로 작은 학교들을 지워버린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 또한 메말라갈 수밖에 없다. 신입생 0명이라는 엄중한 경고음 앞에서, 교육당국과 지자체가 '작은 학교의 미래학교 전환'이라는 담대한 상생의 정책 결단에 적극 나서길 기대한다. ▣ 박진우 ◇ 교육학 박사 ◇ 부산 칠암초등학교 교감
    • 칼럼·피플
    • 칼럼/기고
    2026-09-23
  • [기고]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100% 내 능력이라는 오만과 착각을 넘어야 합니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현대 사회는 성공을 오롯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물로 환원하는 능력주의의 맹신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내 지적 성취와 사회적 지위가 100% 나의 힘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오만이자 착각입니다. 내가 딛고 선 문명의 터전, 수많은 타인의 보이지 않는 조력, 우주 자연의 은혜가 결합하지 않고서는 단 하루의 삶도 온전히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삶의 겸손을 회복하고, 주체적 사유로 문명을 이끌어가기 위한 성찰의 문을 열고자 합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에게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타자 및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몸과 마음의 흐름을 순환시키는 동적인 생명 활동입니다. 안다는 것(지식)은 머릿속에 정보와 활자를 쌓아두는 관념적 박제가 아니라, 앎이 곧 나의 신체적 습속과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행(行)과의 일치’를 뜻합니다. 진정한 앎은 삶의 번뇌를 털어내고 매일 자기를 갱신하는 실천입니다. 결국 ‘산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일치입니다. AI가 답을 쏟아내는 시대에 지식의 양은 경쟁력이 되지 못합니다. 김월회 교수가 강조하는 ‘묻는 힘’은 이미 주어진 전제와 통념에 “과연 그러한가?”라고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소크라테스적 문제 제기 능력입니다. 고전은 정답을 암기하는 책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시대를 향해 던졌던 치열한 물음의 궤적이기에 고전을 통해 우리는 질문을 설계하는 힘을 배워야 합니다. AI 시대에서 실력은 고전에서 길어 올리는 ‘묻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이론, 도덕, 이념을 맹목적으로 받들어 수행하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생각의 노예’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생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기성의 정답을 버리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의 구체적 문제를 내 눈으로 직시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적 결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최진석 교수는 말합니다.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역사 속 인물들이 남긴 궁극의 삶의 기술은 ‘자신의 시대적 결핍과 한계를 역이용하는 유연성’입니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역경 속에서 고유한 사유를 구축한 인물들의 태도, 즉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의 맥락에 맞게 원칙과 타협을 조화시켰던 실천적 지혜(시중·時中)를 익히는 것이라고 김월회 교수는 역설합니다. 또한 고미숙 평론가는 인간이 태어난 목적을 외부의 거창한 성공이나 명예에서 찾지 않습니다.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배움과 수양을 통해 무지(無明)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우주 만물과의 깊은 연대 속에서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구원을 이루는 것 자체가 삶의 궁극적 목적이고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라고요. 워런 버핏의 평생 동반자인 찰리 멍거는 무작정 바쁘게 일하는 근면성을 경계했습니다. 그가 매일 긴 시간 독서와 사유를 우선순위에 둔 핵심은 ‘다학제적 격자틀 정신 모델(Mental Models)’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행동하기 전에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적 여백을 가져야만 어리석은 결정을 피하고 구조적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찰리 멍거는 부자가 먼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핵심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마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첫 장 전체를 부모, 스승, 조상들에게 배운 덕목과 감사를 나열하는 데 바쳤습니다. 황제의 지위와 지혜조차 우주의 섭리와 수많은 인연의 합작품임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라고 믿는 지능과 환경조차 거저 주어진 것임을 인정할 때, 타인에 대한 오만을 버리고 겸허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00% 내 능력이 아니다.”라는 통찰이 절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칸트 윤리학의 핵심은 조건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입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동하라.”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하라.” 외부의 보상이나 처벌이 아닌, 내면의 도덕 법칙에 따르는 자율성이 흔들리지 않는 삶의 뼈대입니다. 칸트의 흔들리지 않는 삶의 원칙, ‘정언명령’을 자신의 ‘고삐’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서 김월회 교수는 “사기열전은 최초이자 최고이다.”라고 한 의미를 음미해 봅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위대한 이유는 제왕과 승자 중심의 역사를 뒤엎고, ‘신념을 지키며 치열하게 고뇌했던 패자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실존’을 역사의 중심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박제된 윤리가 아니라 살아서 꿈틀거리는 인간의 본성과 모순을 가장 입체적으로 포착한 인간학의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월회 교수가 말한 2,200년간 겉과 속이 달랐던 중국의 ‘외유내법(外儒內法)’을 간파해야 합니다. 중국 역대 왕조의 통치 본질은 겉으로는 인의와 도덕을 내세우는 유가(儒家)의 가면을 썼지만, 실제 권력 운용에서는 가혹한 상벌과 군주 독재를 추구하는 법가(法家)의 통제술을 구사했다는 점입니다. 이 이중적 구조(외유내법)를 꿰뚫어 보아야만 동양 정치사의 권력 메커니즘과 그 한계를 냉정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읽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이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는 입신양명이나 스펙을 쌓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닙니다. 내가 갇혀 있는 좁은 에고(자아), 화폐와 소비 중심의 현대적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타인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자유로운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 공부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래서 고미숙 평론가는 공부의 목적을 ‘탈주(脫走)와 순환’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자신의 패를 성급하게 다 보여주는 사람은 타인의 쉬운 먹잇감이 되거나 통제당하기 쉽다고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말합니다. 속마음을 감추라는 것은 비열한 기만이 아니라, ‘상대의 예측 가능성에서 벗어나 주도권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는 자기 보호와 절제의 처세술’이라고 말입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마라.’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고미숙 평론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참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이 구절은 독선적인 고립이나 은둔을 뜻하지 않습니다. 대중의 헛된 유행, 집단의 광기, 타인의 인정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적 도덕성과 진리의 길을 확신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단단한 내적 독립성’을 의미합니다. 강인함과 단단함이 지혜입니다. 최진석 교수의 리더의 자질과 선택 기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어떤 리더인가? 과거를 파헤치는 리더가 아니라 ‘미래의 어젠다를 제시하는 리더’, 편을 갈라 선동하는 자가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높은 도덕적 덕(德)을 구현하는 리더’를 뽑을 수 있는 실력 있는 시민이 절대 필요합니다. 자신의 이념에 취한 자가 아니라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국가의 생존 전략을 설계할 줄 아는 통찰력을 지닌 자가 참된 리더입니다. 인생을 가르는 ‘단 하나의 태도’에 대해서 구범준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질문을 던지고 연결하는 실행력’을 말합니다. 주어진 현실에 불평만 하며 머무는 사람과, “왜 그럴까?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묻고 사람과 지식을 연결해 현장에서 작은 실험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의 차이가 인생의 격차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전 로이터 통신 임원이자 전략가인 투리 문테(Turi Munthe)는 정보의 진위보다 ‘사유의 정당화 과정’을 묻습니다. “네 생각의 전제는 무엇인가? 어떤 근거로 그 결론에 도달했는가?”를 집요하게 되묻는 질문을 통해, 감정적 확증편향과 가짜 뉴스의 늪을 걷어내고 논리적 정합성과 사유의 품격을 회복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고의 품격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묻고 회의하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진석 교수는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시대적 경고를 날립니다. 대한민국은 중진국 추격자의 끝에 서서, ‘생각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생각을 생산하는 선진 전략 국가로 넘어가느냐, 아니면 모방의 한계에 부딪혀 과거로 추락하느냐’의 거대한 문명사적 분기점에 서 있다는 경고입니다. 스스로 철학하지 않는 민족에게 다음 단계의 번영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는 절박한 외침입니다. 공자는 당당하게 사는 3가지 지혜를 말합니다. 군자불기(君子不器)입니다. 특정 용도로 굳어진 그릇처럼 남이 규정한 틀에 갇히지 말고 유연성을 유지하라. 둘째 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조화를 이루되 맹목적으로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기 주체성을 지켜라. 마지막으로 내성불구(內省不疚), 안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면 세상의 어떤 비난과 궁핍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의 염원을 최진석 교수가 대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원한과 낡은 역사적 프레임에 갇혀 내부 총질을 일삼는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남이 만든 정답을 모방하던 ‘전술 국가’를 넘어, 인류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 스스로 개념을 던지고 판을 짜는 ‘전략국가의 아키텍트(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호소입니다. 내가 이룬 것은 세상의 은혜와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오만을 걷어내는 출발점입니다. 당연함이라는 안이함을 버리고 매 순간 겸손함으로 세상을 응시할 때, 타인의 생각에 기생하는 노예의 삶을 끝내고 문명의 주인, 미래 설계자로 당당히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 우리말로 배우는 한자 교육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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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6-09-22
  • [社說] 반복되는 대입 먹통 사태, 땜질식 처방 아닌 근본적 대수술이 필요하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매년 입시 시즌마다 반복되는 수시모집 원서 접수 시스템의 마비는 이제 예견된 인재(人災)에 가깝다. 지난 9월 11일, 2027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마감을 앞두고 주요 원서 접수 대행사인 유웨이어플라이의 서버가 트래픽 과부하로 또다시 멈춰 섰다.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선 수험생들이 접속 폭주와 결제 오류 앞에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공정해야 할 입시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명백하다. 마감 직전까지 접수를 미루는 수험생들의 경향과, 동시에 몰리는 트래픽을 감당하기에는 대행사의 서버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매년 지원 마감 시각마다 접속자가 집중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고용량 서버 분산 시스템이나 비상 대응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술적 무관심이 부른 참사다. 교육당국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오류가 발생하자 마감 시한을 오후 7시까지 1시간 연장하는 급한 불끄기식 처방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공정성 논란을 낳았다. 오후 6시 직전 실시간 경쟁률이 공개된 상태에서 마감이 연장되다 보니, 소신껏 원서를 접수한 수험생들은 “눈치작전으로 유리한 학과를 골라잡은 이들이 득을 봤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피해를 구제한다는 명목이 오히려 또 다른 불공정을 낳은 꼴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교육부 차원에서 대행사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민간 위탁 중심의 대입 원서 접수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여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나, 자칫 또다시 보여주기식 조사나 흐지부지된 가이드라인 정비에 그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첫째, 이원화된 민간 대행사 체계를 전면 개편하거나 공공 주도의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여 대규모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서버 분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마감 직전 접속 폭주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전 입력 기간과 최종 결제 기간을 이원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이번 사태와 같은 비상 상황 발생 시 적용할 수 있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마감 연장 및 정보 공개 가이드라인을 미리 확립해 입시의 신뢰성과 형평성을 완벽히 담보해야 할 것이다. 대입은 공정성이 생명이다. 기술적 허술함으로 수험생들의 땀방울이 헛되이 흩어지지 않도록, 교육 당국의 뼈를 깎는 혁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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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6-09-21
  • 전남광주교육청, 첫 기획조정실장 최보영 부임
    [교육연합신문=장삼석 기자]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 첫 기획조정실장에 최보영(52) 고위공무원이 9월 18일 교육부 인사에 의해 임명됐다. 최보영 신임 실장은 1974년 전남광주 나주 출신으로, 1999년 행정고시(42회) 합격 후 교육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으며,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교육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재직 기간 동안 교육통계담당관,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재외동포교육담당관, 교원정책과장, 고등직업교육정책과장, 교육콘텐츠정책과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정책 전반에 걸쳐 폭넓은 실무 경험을 쌓았다. 또한, 코로나19 대응 학교상황총괄과장으로 재직하며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전국 학교 현장 대응을 총괄한 경험이 있으며, 경상국립대학교 행정본부장을 지내며 대학 행정 운영에도 참여한 바 있다. 특히, 교육정책 기획과 부서 간 조정, 교육 현안 대응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7월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의 조직 안정과 정책 조정, 부서 간 협업을 이끌어 갈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 실장은 부임 인사를 통해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의 첫 기획조정실장이라는 뜻깊고 막중한 소임을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소통과 협력, 현장을 중심에 두고 조직의 방향을 세우며 사람과 부서를 연결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겠다”고 밝혔다. 이어 “통합은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모아 더 나은 교육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며, “구성원들과 함께 우리 교육청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남광주특별시교육감은 “전남과 광주의 교육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최보영 실장님을 첫 기획조정실장으로 모시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다양한 교육정책 분야에서 쌓아 온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부서 간 소통과 협력을 이끌고, 교육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 신임 실장은 오는 21일(월) 오전 광주청사 상황실에서 부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간다. 한편, 지난 7월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은 '우리가 만드는 대한민국 교육: K-교육특별시'를 비전으로 내걸고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와 미래교육 선도를 목표로 순항하고 있다.
    • 칼럼·피플
    • 인사/동정
    2026-09-18
  • [기고]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민간외교관’이라 부른다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광안대교의 야경, 해운대의 푸른 바다, 감천문화마을의 알록달록한 풍경, 자갈치시장의 활기, 국제시장의 정겨운 골목, 돼지국밥 한 그릇의 따뜻한 맛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부산을 떠난 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어쩌면 풍경이나 음식이 아니라 ‘부산에서 만난 사람’일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부산 곳곳을 함께 걸으며 역사와 문화, 음식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관광통역사는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관광통역사는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우리말을 외국어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다. 부산을 설명하고 해석하며, 때로는 문화적 오해를 풀어주고 부산 사람들의 마음까지 외국인 관광객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관광통역사를 부산 관광의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민간외교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관광통역사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만날 때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Hi, I’m Jason. Welcome to Busan.”이 짧은 인사가 관광객에게는 부산과의 첫 만남이 된다. 그 순간부터 관광통역사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관광객이 질문하면 부산을 설명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궁금해하면 이해하기 쉽게 풀어줘야 한다. 낯선 음식과 예절, 문화적 차이까지 자연스럽게 설명해야 한다. 관광통역사의 말 한마디와 표정, 태도가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곧 ‘부산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관광통역사는 ‘번역기’가 아니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번역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상당 부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광통역사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기계는 문장을 번역할 수 있지만 도시가 지닌 역사와 문화, 정서와 맥락까지 온전히 번역하기는 어렵다. 외국인에게 돼지국밥을 “Pork soup with rice”라고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왜 부산 사람들에게 친숙한 음식인지, 부산의 근현대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까지 이야기한다면 관광객이 받아들이는 깊이는 달라진다. 관광통역사는 단어를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와 맥락을 번역하는 사람이다. 광안대교 역시 마찬가지다. “It is a beautiful bridge.” 이 한 문장으로 끝낼 수도 있지만, 좋은 관광통역사는 부산의 바다와 도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왜 광안리의 밤이 부산을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는지까지 이야기한다. 그 순간 관광은 단순한 ‘구경’에서 ‘이해’로 바뀐다. 관광객에게 부산은 ‘도시’가 아니라 ‘경험’이다 관광객은 부산을 평가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부산을 경험하기 위해 온다. 그리고 그 경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관광통역사가 웃으며 “Let me show you the real Busan”이라고 말하는 순간, 부산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들려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해운대에서는 바다를 이야기하고, 광안리에서는 부산의 밤을 이야기한다. 감천문화마을에서는 부산의 역사와 도시재생을, 자갈치시장에서는 부산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설명한다. 관광객이 낯선 음식을 바라보며 “What is this?”라고 묻는다면 관광통역사는 음식 이름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이런 순간에 관광통역사의 가치가 생긴다. 한 명의 관광객이 부산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산 이야기를 한다. 사진과 영상을 SNS에 올리고 “Busan was amazing!”이라고 말한다. 그 기억 속에는 부산의 풍경뿐 아니라 자신을 안내했던 사람의 친절과 설명, 도움도 함께 남아 있다.결국 한 관광객의 부산 경험은 또 다른 수십 명, 수백 명에게 전해질 수 있다. 이것이 관광통역사가 가진 민간외교의 힘이다. 외교관이 국가와 국가를 연결한다면 관광통역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일상적이고 직접적이다. 부산 관광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다 좋은 관광도시에는 호텔과 교통, 매력적인 관광콘텐츠와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설만으로 좋은 관광도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친절이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기억하게 만들고, 작은 불친절 하나가 도시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그래서 관광통역사는 부산 관같은 장소라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관광객의 경험은 달라진다. “이곳은 ○○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Imagine you are standing here 70 years ago…”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관광통역사는 이제 정보 전달자를 넘어 이야기 전달자로 진화해야 한다.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방법은 많다. 국제행사와 광고, SNS, 유튜브, K-콘텐츠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관광객이 부산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만남이 부산에 대한 기억을 만든다. 이름은 서로 달라도 그들이 관광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일 것이다. “Welcome to Busan.”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Let me show you why Busan is special.” 광안대교가 부산의 밤을 세계에 보여준다면, 관광통역사는 부산의 마음을 세계에 보여준다. 부산 관광의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늘도 부산 어느 거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향해 웃으며 인사하는 관광통역사가 있다. 그들이 바로 부산과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의 다리’, 부산의 민간외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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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17
  • [社說] '재정 지원'에 눈먼 졸속 통합, 공주대의 미래와 정체성 버릴 수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충남대학교와 국립공주대학교의 통합 논의는 거대 국립대라는 외형적 성과와 글로컬 대학 30 재정 지원에만 눈이 먼 전형적인 졸속·일방통행식 행정이다. 구성원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민주적 합의가 결여된 채, 돈과 생존이라는 압박을 무기로 밀어붙이는 이번 통합안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양 대학 구성원, 특히 역사적 정체성과 지역 경제의 명운을 위협받는 공주대 구성원들은 이번 찬반투표에서 단호한 반대로 교육의 가치와 지역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한다. 이번 통합안은 7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공주대학교의 정체성을 완전히 말살하고 대전 중심의 충남대에 종속시키는 사실상의 흡수 통합이다. 통합 교명이 충남대학교로 단일화되고 법적 대표 주소지마저 대전으로 지정된 순간, 공주대는 충남대의 일개 분교 캠퍼스로 전락하는 길을 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 본부를 분산 배치한다는 감언이설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모든 행정과 예산 권한이 대전 본부로 집중되면서 공주 캠퍼스의 공동화는 불을 보듯 뻔하며, 이는 대학 하나에 의지해 온 공주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청년 유출로 인한 지역 상권의 도미노 붕괴를 초래할 심각한 재앙이다. 물론 찬성 측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1,500억 원 규모의 글로컬 대학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대학 규모를 키우는 통합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각자도생하기보다 대승적 결단으로 뭉쳐야 지역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대학의 미래와 지역사회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결정을 단지 지원금이라는 눈앞의 떡고물 때문에 쫓기듯 처리해서는 안 된다. 공주시 일각과 학내 구성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듯, 본부는 가장 중요한 학생·주민들과의 소통과 설명회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밀실에서 합의를 끝내고 투표를 강제했다. 정작 중요한 학사 구조 개편이나 유사·중복 학과 조정의 구체적 청사진도 없이 원하지 않으면 현행 유지라는 식의 무책임한 합의서로 구성원을 기만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상실감과 갈등을 봉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미봉책일 뿐이다. 결국 민주적 절차를 상실하고 정체성과 지역 경제마저 내팽개친 통합은 시너지 효과는커녕 학내 갈등과 지역 소멸 가속화라는 대재앙으로 이어질 뿐이다. 대학의 생존은 외형적 규모 확장이 아니라 내실 있는 교육 경쟁력 강화와 지역사회와의 진정한 상생에서 찾아야 한다. 공주대 구성원들은 이번 찬반투표에서 부결이라는 준엄한 심판을 통해 졸속 통합에 제동을 걸고, 공주의 자존심과 지역 상권을 지키는 주체적이고 건강한 자립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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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14
  • [기고] 정답을 베껴 적는 손으로는 결코 새로운 문명의 지도를 그릴 수 없습니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인간에게 ‘생각’이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유하지 않는 존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타인이 만든 시스템과 정답의 부품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의 지식과 기술을 수입해 모방하던 ‘전술 국가’의 성장은 이제 명백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모방의 시대를 끝내고, 스스로 지도를 그리는 ‘전략 국가’이자 사유하는 사회로 대전환하기 위한 본질적 화두를 시작합니다. 생각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교실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의성, 상상력 등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왜, 방법은 그대로일까요? 교육자들 역시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잘 알고 있으나 현장이 요지부동인 이유는 교육 내부가 아닌 외적 평가 시스템의 거대한 관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평가의 편리성과 줄 세우기 입시 때문도 한몫합니다. 수십만 명의 학생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서열화해야 하는 대입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는 객관식 시험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또한 오답에 대한 사회적 공포도 있습니다. 질문과 사유는 본질적으로 방황과 실패를 동반합니다. 그러나 한 번의 오답이 인생의 낙오로 이어지는 서열 사회의 공포가 교사와 학생 모두를 “안전하게 정답만 외우는 수동성”에 가두어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입된 지식을 넘어 ‘생각하는 교실’을 만드는 근본 처방은 없는 것일까요? 남의 전략을 수입해 쓰는 종속적 삶을 독립적 삶으로 바꾸려면, 교실의 문법 자체를 ‘정답 확인’에서 ‘문제 발견’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합니다. 교사의 역할 전환이 필요합니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자에서 학생의 사유를 자극하는 ‘질문 촉진자(Facilitator)’로 물러서야 합니다. 수업의 평가를 “선생님의 설명을 얼마나 정확히 적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독창적이고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졌는가?”,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어떤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는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공자가 말한 참된 학문은 남의 시선에 맞추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의 영혼을 채우는 공부입니다. 그렇다면 내면의 소명 확인이 먼저입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가?”, “죽기 전 세상에 남길 나의 과업은 무엇인가?”를 규정하지 못한 채 기술만 익힌 인재는 결코 문명의 개념 설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문명 건설의 설계도는 타인이 아닌 ‘나’를 깊이 응시할 때 비로소 그려집니다. 미국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하크네스 테이블(Harkness Table)’의 사례입니다. 교탁을 없애고 12명의 학생과 교사가 타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교사의 강의 없이 오직 학생들의 질문과 토론으로만 50분 수업을 채웁니다. 교사는 발언권도 통제하지 않으며 오직 학생 간의 사유 연결만을 관찰합니다. 유대인의 ‘하브루타(Chavrusa)’도 참고할 만합니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에게 끊임없이 반론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며 진리를 파헤칩니다. “질문하지 않는 것은 배움을 포기한 것”이라는 인식이 교실의 기본 규범으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경쟁과 불안입니다. 자연과 문명 어디에나 존재하는 경쟁과 불안은 회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삶의 실존적 조건입니다. 경쟁과 불안은 좋고 나쁨 이전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 아닌, 주체적 성장의 동력으로 이를 전환하는 태도입니다. 불안과 경쟁에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할 것인가가 우선돼야 합니다. ‘부쟁(不爭)’과 ‘위기(爲己)’에 대해서 노자는 말합니다. “스스로 다투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다(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고 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 경쟁(외적 투쟁)을 멈추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덕(德)을 닦는 내면의 성장에 집중할 때 불안은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스토아학파의 ‘통제의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에서 에픽테토스는 세상사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나의 생각, 판단, 행동)’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타인의 평가, 결과, 사회적 경쟁)’으로 나누었습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경쟁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나의 내면적 태도에만 집중할 때 절대적인 평정심(아타락시아)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즉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쟁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Its True. Asians Cannot Think.”, 1999년 미국 타임지의 기사는 서구의 문화적 편견을 담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답 암기에는 능하나 원천 개념 설계와 비판적 사유에 취약했던 동아시아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정곡으로 찔렀습니다. 외국에서는 생각하는 학생을 기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수업을 실행합니다. 프랑스의 철학 수업(바칼로레아)에서는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가?”, “자유는 포기될 수 있는가?”와 같은 열린 질문을 두고 1년간 논리적 에세이 작성과 반박 토론을 훈련합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 기반 정치·사회 수업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특정한 정치적 결론을 주입해서는 안 되며(주입 금지), 실제 사회의 논쟁 상태를 교실에 그대로 재현하여(논쟁성 유지) 학생 스스로 입장을 세우게 합니다. 영국·미국의 P4C(Philosophy for Children, 어린이를 위한 철학)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그림책을 읽고 “공평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같은 철학적 질문을 아이들이 직접 투표로 선정해 토론 서클을 엽니다. 핀란드의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에서는 교과서를 덮고 ‘우리 마을의 쓰레기 배출 문제’, ‘인공지능의 윤리’ 등 현실의 복합 현상을 주제로 잡아 학생들이 가설을 세우고 해법을 탐구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미래를 여는 방향보다는 과거 회귀, 즉 우리 사회의 담론이 끊임없이 과거사 논쟁과 원죄 찾기로 회귀하는 이유는, 교실에서 “이미 확정된 과거의 정답을 외우는 훈련”만 반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기획하는 사유를 배운 적이 없으니 논쟁조차 과거로 향합니다. ‘과거 몰두’와 복고적 함정을 끊어내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요?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방점 이동입니다. 과거의 사실을 ’정답‘으로 숭배하는 복고주의를 버리고, 과거를 단지 미래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참조 데이터’로 상대화해야 합니다. 역사 및 사회 수업의 평가를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는 단답형에서, “당시의 결정을 오늘날의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10년 뒤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미래 기획형 과제로 전면 교체해야 합니다. “세상엔 당연함이 없다.”는 깨달음이 먼저입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굴러가야 한다는 기대가 깨질 때 인간은 분노하고 좌절합니다. 세상이 나의 기대를 들어주어야 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물정관(萬物靜觀)과 연기(緣起)로 인식의 전환입니다. 내가 숨 쉬는 공기, 매일 먹는 밥 한 그릇도 수많은 자연의 운행과 타인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연결되어 도달한 기적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의 연결고리를 역 추적해 보는 격물(格物)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내가 누리는 이 일상이 타인의 어떤 수고와 자연의 어떤 순환 덕분인가?”를 매일 저녁 자문하는 ‘감사 성찰’이 자리 잡을 때, 분노는 사라지고 깊은 겸손이 싹틉니다.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빈말이 아니라, 입 밖으로 나와 다시 내 귀를 거쳐 영혼의 밭에 떨어지는 가장 강력한 씨앗입니다. 아이들의 거친 혐오 언어를 바로잡기 위한 외국의 실천 사례입니다. 미국의 SEL(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사회정서학습)에서는 분노나 혐오 표현을 무조건 처벌하지 않고, 그 언어 이면에 숨은 감정(외로움, 수치심, 불안)을 스스로 관찰하게 합니다. “짜증 나”, “극혐이야” 대신 “지금 내 의견이 존중받지 못해 속상해”처럼 사실과 감정을 정밀하게 분리해 말하는 ‘비폭력 대화(NVC)’를 정규 교과로 훈련합니다. 정답을 베껴 적는 손으로는 결코 새로운 문명의 지도를 그릴 수 없습니다. 대답에 익숙했던 교실의 문을 열고, 아이들의 가슴속에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자유와 여백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질문이 살아 숨 쉬고 언어의 품격이 회복되는 교실, 그곳이 바로 닫혀 있던 대한민국이 비로소 참된 생각을 시작하는 진정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한자를 ‘하늘 천’, ‘따 지’식으로 무조건 외우지 말고 ‘하늘을 왜 천이라 할까?’, ‘땅을 왜 지라고 할까?’라는 식으로 물어야 합니다. 한자를 이렇게 보는 순간, 한자는 음을 중심으로 엄정한 체계와 질서를 드러내게 됩니다. 한자 속에 한글이 녹아 있고, 한글을 알아야 한자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한자를 쓰지 않으면 우리말인 한글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한자와 한글을 분리해서 봐서는 문자의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한자와 한글이 만나야 우리말의 뜻을 다 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문해력 신장과 기초학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한자 교육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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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14
  • [특별인터뷰] 신성환 부산 영도구의회 의장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보수층이 강한 영도구에서 많은 이변이 생겼다. 영도구청장부터 영도구의회 의장까지 더불어 민주당이 다수의 의석을 차지했다. 해양수산부 이전과 맞물려 해양수도 부산의 비상을 염원하는 영도구민의 마음과 기존의 국민의힘당에 식상한 구민들의 선택이 젊은 영도를 꿈꾸고있다. 본지에서는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제10대 영도구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신성환 의장을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봤다. 해양수도부산의 비상에 중심이 되는 영도에서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출신인 신성환 의장의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 제10대 부산광역시 영도구의회 의장으로 취임하신 소감과 앞으로의 의정 운영 비전을 말씀해 달라. 먼저 제10대 영도구의회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겨주신 구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의장은 의원들을 대표하는 자리를 넘어 영도구민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의정에 담아내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도구의회는 ‘구민에게 신뢰받는 의회, 현장에서 답을 찾는 의회, 미래를 준비하는 의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특히 원도심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한편, 교육환경 개선과 청년정책, 어르신 복지, 주민안전 등 구민들의 일상과 직결되는 문제를 꼼꼼하게 챙기겠다. 집행부와는 협력할 부분은 적극 협력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견제와 감시라는 의회의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 ■ 의장께서 생각하는 ‘구민 중심의 의회’는 어떤 모습이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정 철학은 무엇인가? 제가 생각하는 구민 중심의 의회는 의회 안에서만 논의하는 의회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현장으로 찾아가는 의회이다다. 주민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직접 듣고 정책과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저의 의정 철학은 한마디로 ‘현장에 답이 있다’라고 본다. 지역의 작은 민원 하나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주민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것이 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당이나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영도구민의 삶과 영도의 미래를 우선하는 의회를 만들겠다. ■ 부산 영도구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영도의 가장 큰 과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원도심의 활력 저하, 지역경제 침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영도가 가진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본다. 바다와 항만, 해양산업, 한국해양대학교를 비롯한 교육·연구 인프라, 관광자원 등 영도만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많다. 따라서 의회는 단기적인 사업에만 머물지 않고 영도의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정책을 발굴하고 집행부와 함께 실행력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청년이 배우고, 일하고, 창업하고, 정착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데 의정 역량을 집중하겠다. ■ 원도심 재생과 정주환경 개선, 인구 유입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원도심 재생은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이 다시 찾아오고,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도시재생이라고 생각한다. 주거환경 개선과 빈집 문제 해결, 생활 SOC 확충과 함께 일자리와 교육, 문화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가 정착할 수 있는 주거정책, 지역 내 일자리 확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영도의 골목상권과 전통시장도 살리고, 관광객이 지역에서 소비하고 주민 소득으로 연결되는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교육도시 영도구를 만들기 위해 교육환경 개선과 학교 지원에 대해 어떤 정책적 방향을 갖고 있는가? 교육은 영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영도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지역의 학교와 교육환경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학교 시설 개선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진학 프로그램, 문화·예술·체육 활동, 디지털 교육 등을 강화하고, 지역의 대학과 공공기관, 기업이 학교와 연결되는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영도는 해양도시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해양·항만·조선·물류·관광 등 영도의 산업과 연계한 특화교육도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 AI·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학생들의 미래역량 강화를 위해 지방의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AI와 디지털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환경이 됐다. 지방의회는 학교에 필요한 디지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 인프라와 예산을 뒷받침하고, 지역의 교육기관과 학교가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AI 기기를 보급하는 것이 아니다. AI를 활용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 인문학적 소양을 함께 키워야 한다. 결국 미래교육의 핵심은 기술을 잘 사용하는 사람을 넘어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청소년의 진로·진학과 인성교육, 학교 밖 교육활동 지원을 위해 의회 차원에서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영도구와 지역 대학, 기업,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청소년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싶다. 특히 영도의 특성을 살려 해양·항만·조선·관광·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현장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면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학교 안의 교육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관점에서 청소년 문화·체육·봉사활동 등 학교 밖 교육활동도 적극 지원하겠다. ■ 평생교육과 주민교육 활성화를 위해 영도구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평생교육은 특정 연령층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구민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영도구의 특성을 고려해 디지털 교육, 생활문화, 건강·복지교육, 직업·창업교육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주민센터, 복지관, 도서관 등 기존 시설을 잘 활용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한다면 더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배우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영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어르신 평생학습과 디지털 교육 확대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달라. 고령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을 단순히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지역사회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스마트폰, 키오스크, 무인민원기, 모바일 금융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디지털 역량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어르신들이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당당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세대 간 디지털 교육과 주민교육을 확대하겠다. ■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영도구의회가 추진할 정책 방향은 무엇인가? 지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바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이다. 지역경제가 살아나려면 결국 골목상권이 살아나야 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화폐와 소비촉진 정책, 상권별 특화사업 등을 통해 주민들의 소비가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관광객이 영도를 방문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음식점과 카페, 전통시장, 소상공인 매장을 이용하도록 관광과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저는 ‘관광객은 많이 오는데 주민에게는 남는 것이 없는 관광’이 아니라 ‘관광이 주민 소득으로 이어지는 영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기후위기와 재난에 대비한 학교 안전, 통학환경 개선, 생활안전 정책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주민의 안전보다 우선하는 정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을 위해 통학로와 학교 주변 교통환경, 보행환경, 방범시설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영도구의회는 최근 ‘워킹스쿨버스’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보다 나은 통학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의원연구단체를 만들었다. 영도는 지형적 특성상 급경사지와 해안지역이 많기 때문에 집중호우나 태풍 등 재난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도 중요하다. 의회가 현장을 직접 점검하고 위험요소를 찾아내 집행부와 신속하게 개선해 나가겠다.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안전’에서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안전’으로 전환하겠다. ■ 집행부와의 협력과 견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수행하여 구민이 신뢰하는 의회를 만들 계획인가? 지방의회와 집행부는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구민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같다. 잘하는 정책은 의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지원하겠다. 반면 예산이나 정책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있거나 주민의 이익에 맞지 않는 부분은 의회가 당연히 꼼꼼하게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저는 ‘무조건적인 반대도, 무조건적인 찬성도 하지 않는 의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의회를 만들겠다. ■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핵심 정책이나 대표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임기가 시작된 만큼 지금부터 하나씩 만들어가겠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구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첫째, 주민과 소통하는 현장 중심의 의회를 만들겠다. 둘째, 교육환경 개선과 청소년·청년 정책을 강화해 미래세대가 영도에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 셋째, 원도심 재생과 골목경제 활성화를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겠다. 넷째, 해양수산 분야와 연계해 영도가 부산의 해양산업과 해양경제의 중심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정책 기반을 마련하겠다. 임기 마지막 날에 “영도구의회가 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 해수부가 부산으로 이전했다. 국립해양대학교 경제학 출신으로 해양도시 부산에 맞는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부산의 해양수산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산을 단순한 항만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경제의 중심도시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영도는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역사와 현장이 함께 있는 곳이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를 비롯한 교육·연구기관과 항만, 조선·수리조선, 해양관광, 물류산업을 연결해 산학연 협력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양수산 분야의 좋은 일자리가 지역 청년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과 취업을 연계해야 한다. 저는 영도가 부산의 해양특별수도 구상과 북극항로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부산 전체의 해양정책 역량을 높이고, 그 중심에 영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영도구의회에서도 정책적 뒷받침을 해나가겠다. ■ 마지막으로 영도구민과 교육연합신문 독자, 특히 미래세대인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드린다. 영도의 미래는 결국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의 미래이다. 저는 영도가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는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여러분이 영도의 미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도전하길 바란다. 영도에서 배우고, 꿈꾸고, 일하며 여러분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길을 만들겠다.” 그리고 영도구민 여러분께도 약속드리겠다. 영도구의회는 항상 주민 곁에 있겠다. 작은 목소리도 귀담아듣고,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 교육이 살아나고, 청년이 돌아오고, 골목경제가 살아나며, 어르신이 행복한 영도. 그런 영도를 만드는 데 제10대 영도구의회가 앞장서겠다. ▣ 신성환 부산 영도구의회 의장 ◇ 제10대 영도구의회 의장(전반기) ◇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부대변인 ◇ 제8대·10대 영도구의원 ◇ 제8대 영도구의회 행정기획위원장(후반기) ◇ 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청년위원장 ◇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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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8
  • [社說] 지방 국립대 ‘등록금 0원’ 지원, 사립대와의 장학금 역차별 해소가 시급하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가 발표한 2027년 청년지원예산 정책에 따르면, 지방 국립대 신입생 전체에 대한 ‘등록금 전액 무상화’ 조치가 추진된다. 지역 인재 유치와 지방 소멸 방지라는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나, 지방 사립대생에 대한 차등적 지원 정책은 명백한 형평성 논란과 심각한 역차별을 야기한다. 지방 국립대생은 가구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신입생 전원이 등록금 전액 지원 혜택을 받는 반면, 지방 사립대생은 대폭 확대되었다고 하나 선발 인원이 일부에 그치는 ‘지역인재 장학금’의 대상이 되어야만 비로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지역에 거주하며 거주지의 소멸 위험에 함께 직면해 있는 청년들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국립’과 ‘사립’이라는 설립 주체에 따라 국가 지원의 사다리가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것은 공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물론 국가 재정의 한계와 공공성 강화라는 명분을 고려할 때, 국가가 직접 소유·운영하는 국립대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정책 집행의 효율성과 당위성 측면에서 타당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국립대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는 마중물로 삼겠다는 국가적 의도 역시 참작할 만하다. 그러나 지방 소멸 위기의 핵심은 ‘국립대냐 사립대냐’가 아닌 ‘수도권이냐 비수도권이냐’의 구도에 있다. 현실적으로 지방 청년의 다수는 사립대에 재학 중이며, 고액의 등록금 부담을 끌어안고 있는 집단 역시 사립대생들이다. 이들을 소외시킨 채 국립대에만 전액 지원이라는 파격적 혜택을 몰아준다면, 오히려 지방 사립대의 도산을 가속화하고 지역 교육 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다.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지역 정주 청년 지원’에 있다면, 등록금 혜택의 기준은 대학의 설립 주체가 아닌 ‘소득 수준’과 ‘지역 정착 의지’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지방 국립대 중심의 편중 지원책을 과감히 수정하고, 지방 사립대생들 역시 억울함 없이 동등한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장학금 보완책과 수혜 범위를 즉각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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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7
  • [특별인터뷰] 윤일현 부산 금정구청장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2년 전 보궐선거 때 전국적인 관심 속에서 부산 금정구청장에 당선된 후 지난 6.3선거 때 당당하게 재입성한 민선 9기 윤일현 구청장을 본지에서 만나봤다. 세밀하게 행정을 챙기는 세무사 출신 윤일현 구청장은 부산시의회 교육위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육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온화한 스타일로 금정구민은 물론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금정구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함께 짚어봤다. ■ 민선 9기 금정구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앞으로 4년 동안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 금정구의 핵심 현안과 구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성과를 말씀해 달라. 민선 9기의 최우선 과제는 지난 임기 동안 마련한 변화의 기반을 구민이 체감하는 결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랜 현안은 실질적인 해결 단계로 끌어올리고, 구가 직접 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사업은 속도와 완성도를 높이겠다. 큰 과제와 일상의 변화를 함께 챙기는 것이 앞으로 4년의 기본 방향이다. 먼저 침례병원 정상화와 금샘로 완전 개통, 상수원보호구역 문제처럼 주민 생활과 지역 발전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쳐 온 현안은 더 이상 논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부와 부산시, 대학 등 관계기관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금정구도 지역의 요구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협의를 이끄는 역할을 다하겠다. 금정이 가진 자원과 공간을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금정산 국립공원 주사무소 유치와 관광벨트 조성, 부산대학로와 전통시장 상권 활성화를 추진하고, 노포역 일원과 구서IC 주변의 발전 가능성이 금정의 미래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실현 가능한 방향을 마련하겠다. 동시에 통학로와 보행환경, 주차, 문화·체육시설, 돌봄과 복지처럼 구가 직접 챙길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사업은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 4년 뒤에는 대형 현안이 해결의 가시적인 단계에 들어서고, 주민들이 일상에서 “금정이 전보다 분명히 나아졌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나씩 결과를 만들어가겠다. ■ 침례병원 정상화, 어디까지 와있나? 금정구민의 오랜 숙원인 옛 침례병원 정상화의 현재 추진 상황과 향후 일정, 공공의료 거점으로서의 활용 방안을 밝혀 달라. 침례병원 정상화는 폐업한 병원의 기능을 되살리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 금정구민의 건강권과 부산 동북권의 의료안전망을 회복하는 문제이다. 현재 부산시가 침례병원 부지를 확보한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보험자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정부의 최종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부산시가 상당한 재정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아직 정부 차원의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의 결정이 선행돼야 병원의 규모와 기능, 사업 방식과 일정도 구체화할 수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개원 시기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상화가 결정된다면 응급·필수 의료와 고령층 의료 수요 등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부산 동북권의 공공의료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금정구가 사업을 최종 결정할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주민의 요구를 정부와 부산시에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금정구와 부산시,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로 선임된 백종헌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모두 뜻을 같이하고 있는 만큼, 긴밀히 협력해 정부의 조속한 심의를 이끌어 내고, 사업 추진이 결정되면 인허가와 관계기관 협의 등 구가 맡은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책임 있게 지원하겠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주민들께 다시 막연한 기대만 드리기보다, 이제는 실질적인 결정을 이끌어 내는 데 힘을 모으겠다. ■ 노포역과 종합버스터미널 일대를 부산 북부권의 새로운 교통·상업·주거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발 구상은 무엇인가? 노포역 일대는 부산의 끝이 아니라, 부산과 경남을 연결하는 북부 관문이다. 도시철도와 종합버스터미널이 모여 있고 양산 방면과도 연결되는 만큼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현재 부산시는 노포역 일원 대규모 마스터플랜 용역을 추진하면서 도시철도 차량기지 재배치와 터미널 기능 개선, 고속철도 연계 가능성 등 여러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아직 세부 사업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 수립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정구의 입장은 분명하다. 노포역 일대가 단순히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지나가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환승 편의와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상업·업무·주거·공공기능이 조화를 이뤄 사람들이 머물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 주민에게 필요한 생활SOC와 공공시설도 함께 검토 돼야 한다. 개발에 따른 교통과 환경의 영향, 인근 주민의 생활 변화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부산시의 계획 수립 단계부터 주민 의견과 금정구의 발전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개발의 효과가 주변 지역과 지역경제에도 이어지도록 하겠다. 확정되지 않은 청사진을 성급하게 약속하기보다, 노포역 일대가 부산 북부권의 새로운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겠다. ■ 금샘로 완전 개통과 교통난 해소 방안은 무엇인가? 금샘로 개통과 구서IC 주변 교통 개선 등 금정구의 만성적인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 대책을 말씀해 달라. 금정구의 교통 문제는 금샘로 미개통이나 구서IC 주변의 혼잡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앙대로에 집중된 남북 교통축과 부산대 주변의 교통량, 주요 교통 요충지의 혼잡, 주거지역의 주차와 보행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중에서도 금샘로 완전 개통은 끊어진 도로망을 연결하고 주요 간선도로의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핵심은 부산대학교의 학습권과 안전을 충분히 보호하면서, 주민의 이동권과 오랜 교통 불편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금샘로 개설의 주체는 부산시인 만큼 부산시와 부산대학교가 객관적인 기술 검토를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부산시와 부산대학교, 교수와 연구진, 학생, 지역 주민 등 여러 관계자의 입장이 얽혀 있어,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저는 부산시와 부산대학교, 학생 대표, 교수진 등을 차례로 만나 깊이 있게 논의를 나누고 있고, 10월에는 지역현안사업 공론화위원회와 함께 관계자 분들과 전문가 그룹, 지역 주민 등을 모시고 금샘로 개통 관련 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다. 이처럼 금정구가 적극적인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대학 구성원과 지역주민의 의견을 면밀히 파악하고, 검토 과정과 안전대책이 투명하게 공유되도록 협의를 이어가겠다. 구서IC 주변은 부산의 주요 관문이자 여러 교통 흐름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 주변 지역의 개발 구상과는 별도로 교통수요와 도로의 수용 능력, 진출입 동선, 대중교통 연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교통량과 사고·혼잡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교차로와 신호체계, 통학로와 보행환경, 생활권 주차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다. 중·장기적으로는 도로망과 대중교통, 주차와 보행체계를 함께 살펴 금정구 전체의 교통 흐름을 개선할 방향을 마련하겠다. 교통난 해소를 하나의 대형 도로 사업에만 기대하지 않겠다. 금샘로 완전 개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주민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교통·보행 개선도 함께 챙기겠다. ■ 부산대 상권을 다시 살릴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침체된 부산대 대학가와 상권을 청년문화·창업·공연·관광과 연계해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금정구만의 전략은 무엇인가? 부산대 상권의 침체는 소비환경의 변화와 빈 점포 증가, 임대료 부담, 유동인구 감소, 상권 내부의 동선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일회성 행사나 단편적인 지원만으로는 근본적인 회복에 한계가 있다. 부산대역에서 대학 정문까지 이어지는 공간을 단순한 상업거리가 아니라 청년문화와 창업, 공연과 관광이 어우러져 사람들이 찾아오고 머무르는 대학가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이러한 청사진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민선8기 전담조직인 경제산업과를 신설했고, 현재까지 공모사업 3건을 통해서 83억 8천만 원의 사업비를 확보하였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부산대 상권 활성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문화행사와 상권지원 프로그램 등은 행사 횟수보다 실제 매출과 방문객 증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점검하겠다. 효과가 확인된 사업은 지속성을 높이고, 청년예술가와 지역 문화기획자, 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공연과 전시, 거리 콘텐츠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운영방식을 보완하겠다. 빈 점포를 청년 창업이나 문화활동 공간으로 활용하려면 건물주와 상인, 청년의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 상생협약 등을 통해 참여 주체가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 부산대학교의 연구역량과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지역 현안과 상권에 연결하는 협력도 강화하겠다. 대학과 상인, 학생, 주민, 행정이 함께 논의하고 실행하는 구조를 만들어 부산대학로가 다시 청년과 시민이 찾고 머무는 거리로 활력을 회복하도록 하겠다. ■ 청년이 떠나지 않는 금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청년 일자리와 창업, 주거, 문화정책을 연계해 청년들이 금정구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말씀해 달라. 청년에게 지역에 남아 달라고 요청하기에 앞서, 청년이 금정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여건과 머물고 싶은 이유부터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와 창업, 주거와 문화, 청년의 관계망이 각각의 사업으로 흩어지지 않고 자립과 정착의 과정으로 연결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직 지원과 체험형 인턴, 로컬 창업가 육성, 창업 임차료 지원 등의 성과를 점검하고 청년의 수요에 맞게 보완하겠다. 창업 지원도 교육이나 사업비 지원에서 끝내지 않고 대학과 지역기업, 상권과 연계해 지역에서 성장할 기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겠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월세와 전월세 중개수수료 지원 등 현재 운영하는 사업을 충실히 추진하겠다. 국가와 부산시의 주거정책을 적극적으로 연계하면서 금정구 청년의 현실에 맞는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도 살펴보겠다. 청년정책네트워크와 청년 활동공간을 통해 청년이 정책의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지역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기회도 넓혀가겠다. 새로운 사업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취업과 창업, 주거와 문화 지원이 실제 자립과 정착으로 이어지도록 정책의 연결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아이 키우기 좋은 ‘교육도시 금정’의 구상은 무엇인가? 대학과 학교, 지역사회를 연계한 교육지원과 돌봄, 진로체험, 통학안전 등 학부모와 학생이 체감할 수 있는 교육정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교육과 돌봄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어느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도시는 학원이나 교육시설이 많은 도시만을 뜻하지 않는다 .아이가 안전하게 학교에 다니고, 가정의 여건과 관계없이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누리며, 학교 밖에서도 지역사회가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원하는 도시가 진정한 교육도시이다. 금정에는 부산대학교를 비롯해 부산외국어대학교, 부산가톨릭대학교, 대동대학교 등 다양한 대학이 있다. 이러한 지역의 교육자원을 초·중·고등학교와 연결해 대학의 전문인력과 시설, 학생들이 지역 아이들의 배움에 참여할 기회를 넓혀가겠다. 금정희망교육지구와 진로교육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진로·직업 체험, 코딩과 인공지능, 문화예술과 창작 프로그램은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를 반영해 내실을 높이겠다. 협약형 특성화고 육성과 같이 학교교육과 지역산업을 연결하는 사업도 교육청과 학교, 지역기업의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하겠다. 돌봄은 시설의 수뿐 아니라 실제 돌봄이 필요한 시간과 지역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돌봄시설, 도서관과 생활문화공간을 연계해 방과 후 돌봄 공백을 줄일 방안을 마련하겠다. 통학안전은 어떤 교육정책보다 우선돼야 한다. 어린이보호구역과 학교 주변의 보도, 방호울타리, 횡단보도와 교통안전시설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교육청과 학교, 경찰과 협력해 위험요인을 하나씩 줄여가겠다. 입학지원금과 교복구입비처럼 학부모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은 안정적으로 추진하겠다. 교육청이 학교 교육을 책임진다면, 금정구는 학교와 대학, 지역사회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 ■ 노후 주거지역에 대한 재개발·재건축과 함께 주차장, 보행환경, 생활SOC 등 노후 주거지역의 정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해 달라. 안정적인 주거환경은 주민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금정구의 노후 주거지역을 개선하려면 재개발·재건축과 생활환경 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모든 노후 지역을 대규모 정비사업만으로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주민 동의와 사업성, 부산시의 정비계획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구가 사업 시기나 결과를 일방적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관련 절차를 정확하게 안내하고 구의 권한 범위 안에서 행정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지원하겠다. 대규모 정비사업이 어려운 지역에는 빈집과 노후주택 정비, 소규모 집수리, 골목길과 보행환경 개선, 주차공간 확보, 경사로와 계단의 안전시설 보강과 같은 생활밀착형 사업이 필요하다. 지역별 여건과 주민 수요를 살펴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능한 사업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 정비사업 과정에서 도로와 공원, 주차장, 돌봄·복지시설 등 생활SOC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부산시와 사업 주체에 금정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겠다. 오래된 동네를 모두 없애는 것이 주거환경 개선의 목표는 아니다. 기존 공동체와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주민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생활하고, 새로운 주민도 정착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 폭염과 기후재난이 일상적인 재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학교, 경로당, 복지시설 등 폭염 취약시설에 대한 대응방안을 말씀해 달라. 폭염은 이제 잠시 견디면 지나가는 불편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재난이다. 특히 어린이와 어르신, 장애인, 야외근로자와 에너지 취약계층에게는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취약계층 안부 확인과 방문 건강관리, 무더위쉼터 운영, 온열질환 예방물품 지원 등 현재의 대응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우선이다. 폭염 취약시설의 냉방 상태와 실제 이용 여건도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경로당, 복지시설에 필요한 차열·단열, 고효율 냉방기기, 창호 개선, 그늘막 등의 시설은 일률적으로 설치하기보다 시설별 상태와 이용자의 특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유치원과 학교시설은 교육청을 통해 추진 할 사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추진 될 수 있도록 하고, 경로당, 복지시설 등 구에서 관리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시급성과 효과가 높은 시설부터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아울러, 시설 개선에는 국·시비를 적극적으로 확보해 추진하겠다. 시설을 설치하고도 냉방비 부담 때문에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기존 에너지 지원제도와의 연계도 함께 살펴보겠다. 중·장기적으로는 폭염 취약지역을 파악해 그늘막과 가로수, 녹지와 휴식공간을 필요한 곳에 우선 배치하는 방향을 검토하겠다. 도시 공간 자체가 열을 덜 머금고 주민이 안전하게 쉴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폭염 대응을 매년 반복되는 사후 조치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에너지와 교통, 녹지와 도시계획, 복지와 안전을 함께 살피는 지속가능발전의 관점에서 중장기 대응체계를 정비하고, 관련 계획과 부서별 사업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관리하겠다. ■ 앞으로 4년, 민선 9기 임기 동안 금정구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할 변화는 무엇이며, 구청장께서 그리고 있는 ‘미래 금정’의 모습을 구민들에게 말씀해 달라. 앞으로 4년 동안 금정구를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삶의 전 과정을 함께 책임지는 도시’로 만들어가고 싶다. 아이들은 안전하게 배우고 성장하며, 청년은 일자리와 창업의 기회를 찾고, 중장년은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어르신은 익숙한 지역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상인은 다시 활력을 찾고, 주민은 가까운 곳에서 문화와 체육, 복지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공간적으로는 노포역과 구서IC 일원의 발전 가능성을 금정의 미래 성장과 연결하고, 부산대학로와 전통시장에는 다시 사람과 활력을 불어넣겠다. 노후 주거지역은 기존 공동체를 지키면서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 침례병원 정상화와 금샘로 완전 개통, 상수원보호구역 문제 같은 오랜 현안도 더 이상 논의에만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결정과 진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금정산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자원은 잘 보전하면서 지역경제와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가겠다. 임기 안에 구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책임 있게 추진하고, 정부와 부산시의 결정이 필요한 사업은 관계기관이 움직일 수 있도록 지역의 힘과 행정력을 모으겠다. 모든 사업의 완성을 미리 약속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손을 놓거나 책임을 미루지 않겠다. 행정의 성과는 계획을 얼마나 많이 세웠는지가 아니라 주민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4년 뒤 구민들이 “금정에 계속 살고 싶다”, “우리 동네가 전보다 분명히 나아졌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현장에서 답을 찾고 하나씩 결과를 만들어가겠다. 이런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준 교육연합신문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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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6
  • [교육칼럼] AI 시대, 다시 ‘읽는 학생’을 생각하다
    [교육연합신문=신동현 칼럼] AI가 질문에 답하고 숏폼 영상이 몇십 초 만에 정보를 요약해 주는 시대다. 필요한 정보를 찾는 일은 쉬워졌지만,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AI 시대에 독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활동이 아니라 긴 글의 맥락을 따라가고, 멈추어 질문하며,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고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독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종합 독서율은 94.6%로 높은 편이지만 연간 평균 독서량은 2023년 36.0권에서 2025년 31.5권으로 줄었고, 평일 하루 평균 독서시간도 82.6분에서 70.3분으로 감소했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학교급별 격차다. 초등학생의 연간 독서량은 63.5권이지만 중학생은 18.9권, 고등학생은 13.7권으로 급감한다. 학교교육을 오래 받을수록 오히려 책과 멀어지는 현실은 우리 독서교육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교육부가 지난 7월에 발표한 '학교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학생을 주도적 독자로 성장시킨다’는 목표 아래 독서교육 집중학년 운영, 교과 연계 독서프로그램 발굴, 수업 중심 독서교육 선도학교 운영, 독서·토론·글쓰기 동아리 지원, ‘매일 아침 10분 함께 책 읽기’ 확산 등을 제시했다. 읽기를 질문·토론·글쓰기·탐구와 연결하려는 방향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깊이 있는 학습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독서교육 사업이 늘어나면 학생들은 정말 책을 더 읽게 될까? 학교 현장에서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좋은 취지만이 아니라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이다. 좋은 정책도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또 하나의 공모사업과 운영계획서, 실적 관리와 결과보고서가 된다면 독서교육의 본질과 멀어질 수 있다. 독서는 특정 사업이 있을 때 하는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학생의 일상이어야 한다. 프로그램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하루 속에 실제로 책을 펼칠 시간이 존재하는가이다. 따라서 독서교육 정책의 무게중심을 이제 ‘무엇을 더 할 것인가’에서 ‘학생에게 무엇을 돌려줄 것인가’로 옮겨야 한다. 가장 먼저 돌려주어야 할 것은 읽을 시간이다.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학생들이 학교에 바라는 독서 지원으로 ‘수준에 맞는 책 소개’를 가장 많이 꼽았고 학교도서관 이용 편의성, 학급문고 확대, 독서시간 확대 등이 뒤를 이었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거창한 독서행사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책을 만나고 방해받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조건이 먼저다. 독서를 다시 ‘수업의 방법’으로 돌려놓는 것도 중요하다. 독서교육을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분리하면 독서는 교과학습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활동이 되기 쉽다. 사회에서는 읽기를 통해 사회현상을 여러 관점에서 해석하고, 과학에서는 기존의 설명에 의문을 품으며 새로운 탐구 질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에서도 작품과 텍스트를 연결하며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읽기-질문하기-토론하기-탐구하기-표현하기’가 교과를 가로지르는 자연스러운 학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독서교육의 성과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몇 권을 읽었는지, 몇 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만으로 학생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읽은 것을 바탕으로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가, 어떤 질문을 만들어 냈는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만나 자신의 관점을 어떻게 확장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독서량에서 독서의 질로, 참여 실적에서 사고의 성장으로 평가의 관점을 옮겨야 한다. 학교도서관 역시 책을 대출하는 장소를 넘어 학생이 머물며 읽고, 관심을 발견하고, 생각을 나누는 학교의 지적·문화적 중심이 되어야 한다. 좋은 공간과 충분한 장서뿐 아니라 학생과 책을 연결하고 수업을 지원할 전문인력이 필요한 이유다. 2030년까지 사서교사 배치율을 30%로 높이겠다는 계획은 의미 있지만, 동시에 상당수 학교에는 여전히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독서교육은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문화’의 문제다. 교실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고, 수업 중 책과 자료를 찾아보며, 친구와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하는 학교문화는 거창한 프로그램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읽을 수 있는 시간, 쉽게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쌓일 때 만들어진다. AI가 더 빠르게 정보를 찾고 더 정교한 답을 만들어 낼수록 교육은 역설적으로 ‘답을 얻는 능력’보다 ‘답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누구의 관점이 담겨 있는지, 다른 설명은 가능하지 않은지, 그리고 결국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스스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AI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더 많은 독서사업이 아니다. 스스로 책을 펼치고, 오래 읽고,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질문을 만들어 가는 ‘읽는 학생’이다. 학생에게 읽을 시간을 돌려주고, 좋은 책을 만나게 하며, 읽은 것을 질문과 토론, 탐구로 이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 학교 독서교육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 신동현 ◇ 부산 강서초등학교 교장 ◇ 前 부산 장서초등학교 교감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정책연구소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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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4
  • [교육칼럼] AI 교과서 시대, 기술 너머의 '인간적 연결'을 말하다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인공지능(AI)과 에듀테크가 교육 현장의 지형을 급격히 바꾸어 놓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과 에듀테크의 활용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을 진단하고 지식의 습득 효율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신기술이 선사하는 화려한 가능성 뒤편에서, 우리 교육 현장이 혹여 가장 소중한 ‘교육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디지털 기기 활용 증가에 따른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와 집중력 흐려짐, 그리고 스크린 너머로 이어진 인간관계에서의 정서적 고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AI가 맞춤형 문항을 추천하고 정답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깊이 있게 사고하는 능력까지 대신 키워줄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해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인류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기술’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지성’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인 도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관계의 방식을 뿌리째 재구성한다"(프랑스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 디지털 도구가 수업의 주도권을 쥐게 될 때,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 흐르던 눈빛 교환과 정서적 교감의 공간은 자칫 축소될 위험에 처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다루는 교육은 역설적으로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라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처럼 더욱 '인간 중심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시대, 학교와 교사가 지닌 대체 불가능한 가치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생명의 안내자’이자 ‘인격적 멘토’로서의 역할에 있다. 이를 위해 우리 교육당국과 학교 현장은 에듀테크의 거센 물결 속에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세워나가야 한다. 우선, '디지털 활용'과 '아날로그적 문해력'의 정교한 균형(Hybrid Education)을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한편, 종이책 읽기와 글쓰기, 깊이 있는 토론 수업을 강화하여 아이들의 어휘력과 맥락 이해 능력이 퇴화하지 않도록 단단한 기초 체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감과 협력의 가치를 배우는 '정서·사회성 교육'의 전면 강화가 요구된다. AI가 제공하는 개별화 학습에만 몰입하다 보면 공동체성 함양이 소홀해지기 쉽다. 모둠 활동, 체육 및 예술 활동, 생태 체험 등을 확대하여 타인과 협력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인성 교육을 학사운영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나아가 교사가 '기술의 관리자'가 아닌 '인간적 연결의 주체'로 서도록 행정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에듀테크 도입에 따른 교사들의 기기 관리 및 행정 부담을 대폭 줄여주고, 교사가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며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상담과 생활지도 시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동양의 고전 『논어』에는 "인능홍도 비도홍인(人能弘道 非道弘人,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 도구라 할지라도 교육의 주체인 인간을 넘어설 수는 없으며,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따뜻한 격려 한마디와 친구와 함께 땀 흘리며 배우는 협동의 기쁨을 대체할 수는 없다. 디지털 대전환의 길목에서, 기술을 지혜롭게 품어안되 '인간적 연결'이라는 교육의 고귀한 본질을 더욱 단단히 지켜내는 국가적 안목을 기대한다. ▣ 박진우 ◇ 부산 해빛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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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2
  • [기고] ‘생각의 한계에 닫힌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곳으로 만들어 보지 않겠습니까?”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오랫동안 남이 만든 정답과 기술을 모방해 가장 빠르게 추격해 온 ‘전술 국가’, ‘추격 국가’, ‘따라 하는 국가’로서 성공의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지식과 삶의 전략을 수입해 쓰는 단계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교육이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를 길러내지 못할 때, 사회는 극단적 혐오와 분열에 갇히고, 개인은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는 종속적 삶을 살게 됩니다. 지식 수입국을 넘어 주체적인 사유의 전략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오직 서열화된 상대평가와 입시를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에 갇혀 있습니다. 미래 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수동적 지식인을 넘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 나를 완성하는 공부)’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사유하지 못해 타인의 선동과 진영 논리라는 ‘성심(成心: 정해진 마음, 莊子)’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없으니 외부의 잣대로 타인을 낙인찍고 배척합니다. 여기서 孔子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조화를 이루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태도,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서(恕)의 정신을 일상의 언어와 공론장에 복원해야 합니다. 지식 수입국 탈피를 위해 학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정답 채점’에서 ‘문제 제기(Problem Framing)’로의 전환입니다. 선진국이 해결해 놓은 문제의 해법을 암기하는 교육을 멈추고,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내고 정의하는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단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시험 체제를 걷어내고, 학생의 논리적 맥락과 비판적 사고를 평가하는 서·논술형 평가 및 토론 수업을 정규 수업의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남이 해결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모방으로는 결코 선도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내 삶과 현장의 결핍을 직접 들여다보고, 이를 이론적 도구로 해결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생각’은 ‘남’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를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는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도 “자신을 향해 걷는 길이 가장 어렵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할 만한 수고를 해야 합니다. 수고 중에 제일 큰 수고는 ‘지적인 수고’입니다. 알려고 해야 합니다. 알려고 하는 그런 수고도 하지 않고, ‘나는 행복해.’, ‘나는 행복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대책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우리는 진리를 증명할 수 있는가?”와 같이 정해진 답이 없는 철학적 질문에 대해 4시간 동안 자신의 논리로 에세이를 작성하게 합니다. 또한 핀란드의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에서는 교과목의 경계를 허물고 ‘기후 변화’, ‘도시의 교통 혼잡’ 등 실제 현실의 복합적인 문제를 프로젝트 단위로 학생들이 직접 분석하고 대안을 설계하게 합니다. 생각하는 삶으로의 이동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판단의 유보’와 ‘인지적 여백(虛靜)’의 확보입니다. 자극이나 정보가 주어졌을 때 즉각 반응하거나 남의 결론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과연 그러한가?”라는 의심(多聞闕疑)을 품는 3초의 간격을 확보하는 훈련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간은 주어진 자연환경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치를 부여하고 제도를 만들어 변화를 야기하는 ‘문화적 주체’입니다. 학교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은 지식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예술·기술·도덕 규범을 직접 설계하고 표현하는 ‘창작자(Creator)’의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발도르프(Waldorf) 교육은 기성 교과서를 쓰지 않고,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에포크(Epoch) 공책을 직접 글과 그림으로 완성하며, 수공예와 연극을 통해 물질과 문화를 몸소 빚어내는 주체성을 기르도록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하지 못하고 물건을 창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후기 이후 근현대 압축 성장기 동안, 서구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축적한 철학과 기술을 ‘빠르게 베껴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은 선진국이 하고, 우리는 실행만 한다.”는 지식의 하청 기지 구조가 교육과 사회 전반에 무의식적으로 고착화되었습니다. 1999년 타임지 기사(“Asians cannot think.”)의 함의와 한국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동아시아 국가들이 뛰어난 암기력과 제조 기술로 경제 성장은 이루었으나, 독창적인 개념 설계, 비판적 사유, 원천 철학을 창출하는 역량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한 뼈아픈 통찰이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동양에 대한 서구의 문화적 우월주의이자 인종차별적 편견”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분노하는 민족주의적 반응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성찰하고 창의성 교육을 논의하는 자성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와 철학을 기피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기적인 경제 성장과 입시 중심 사회에서 철학은 ‘돈이 되지 않고 비효율적인 학문’으로 치부되었으며, 질문하는 시민보다 지시에 잘 순응하는 기능적 인력을 대량 양성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고등학교 3학년 전 계열 학생에게 주당 수 시간씩 철학을 필수로 가르치며 국가 대입 시험(바칼로레아)의 첫 관문으로 치릅니다. 미국/영국에서는 초등 단계부터 ‘어린이를 위한 철학(P4C: Philosophy for Children)’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그림책이나 일상의 딜레마를 두고 교사와 학생이 둥글게 앉아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문화를 운영합니다. ‘지적인 수고’를 스스로 감당하는 습관을 기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질문 일기’의 생활화입니다. 매일 마주치는 일상이나 뉴스에 대해 “이 현상의 본질적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최소 하나씩 스스로 던지고 3줄 이상 답을 추론해 보는 훈련을 합니다. 더 나아가 즉답(Easy Answer) 피하기입니다.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포털이나 AI의 단편적 검색 결과에 즉시 의존하지 않고, 최소 5분간 스스로 가설을 세워본 뒤 교차 검증하는 ‘지적 인내심’을 체화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을 모르고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서 왔을까요? 외적 비교와 획일화된 정답의 강요입니다. 어릴 적부터 “너는 무엇을 원하니?(不言之敎)”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는 명령(言之敎)만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불안이 한 몫을 합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낙오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문화가 청년들의 내면적 욕망을 마비시키고 안전한 기성 경로(공무원, 대기업 등)에 안주하게 만듭니다. 수월한 삶을 위한 도구로는 ‘추상’과 ‘은유’입니다. 추상(Abstraction)은 복잡한 현실의 군더더기를 쳐내고 핵심 뼈대(본질)만을 추출하는 능력입니다. 은유(Metaphor)는 서로 전혀 다른 두 영역을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을 빚어내는 능력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복잡한 전자 기계가 아닌 “정신을 위한 자전거(A bicycle for the mind)”로 은유하여, 인간의 사고력을 확장하는 도구라는 본질을 직관적으로 규정했습니다. MIT 미디어랩에서는 순수 과학, 공학, 예술, 인문학 연구자들을 한 공간에 섞어 이종(異種) 개념 간의 은유적 융합을 통해 혁신적 인터페이스를 창조합니다. ‘생각하는 삶’으로 넘어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내 안의 기준’ 세우기(爲己之學)입니다. 남의 시선과 사회적 명예(爲人)를 위해 살던 관성을 멈추고,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내 양심을 비추어보는 신독(愼獨)을 실천해야 합니다. “남들이 무엇을 바라는가?”가 아닌 “내 양심과 이성은 무엇을 요구하는가?”로 삶의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것입니다. 남의 대답을 외우는 삶은 노예의 삶이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삶만이 주인의 삶입니다. 주입식 암기의 굴레를 벗고 아이들에게 질문할 권리와 사유의 여백을 돌려줄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남의 뒤를 쫓는 전술 국가를 넘어 세계의 문명을 선도하는 당당한 전략 국가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생각을 시작하는 곳으로 만들 때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 바꿀 때입니다. 경쟁과 불안은 존재의 조건입니다. 좋고 나쁘고 이전의 문제입니다. 경쟁을 나쁘게 보는 것은 약하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강인함을 만드는 원천입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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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1
  • [기자수첩] ‘감투 나눠 먹기’로 끝난 부산강서구의회 파행
    [교육연합신문=한난희 기자] 주민 복지도, 아이들의 교육 예산도 안중에 없었다. 부산 강서구의회가 두 달 가까이 멈춰 선 진짜 이유는 정책 대립이 아닌, 그저 '누가 의장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눈치 싸움 때문이었다.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의회를 찾아 성명서를 전달하고 강력히 항의한 지 나흘 만인 9월 1일, 강서구의회는 임시회를 열어 의장에 김주홍 의원(국민의힘), 부의장에 김정용 의원(더불어민주당)을 선출하며 원 구성을 늦게나마 끝마쳤다. 그러나 이 억지 합의와 의결 과정은 구민들에게 깊은 상처와 분노, 그리고 또 다른 씁쓸함만을 남겼다. 이번 표결 과정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출석 의원 수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4명은 전원 참석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1명의 의원이 본회의에 불참했다. 그간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던 '4대 4 동수 구도'에서 민주당 의원 1명의 불참은 표결의 균형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수개월간 이어진 줄다리기 끝에 발생한 당론 불일치이든, 9월 1일 전·후반기 의장단 분배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수치상 구도를 맞추려 한 '정치적 셈법'이든, 이번 불참은 의회 정치의 무능과 파행을 여실히 증명해 냈다. 본질은 공공의 이익을 뒷전으로 미룬 정치적 파행이다. 북부교육지원청 학교학부모연합회 최훈기 회장을 비롯한 강서구학부모단이 현장에서 강력히 지적했듯 원 구성이 미뤄지는 동안 이미 확보된 국·시비를 반납해야 할 위기에 처했고, 내년도 교육 예산 삭감과 통학로 안전 관련 조례 제정 지연이라는 실질적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과 주민의 몫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회가 도리어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잡고 정쟁을 벌인 셈이다. 주민들이 만들어 준 4대 4라는 숫자는 대화와 협치를 통해 균형을 맞추라는 명령이었지, 약속을 뒤집거나 이탈 표를 낳아가며 의정을 마비시키라고 준 무기가 아니었다. 결국 학부모회의 전격적인 항의 방문으로 합의와 표결은 이뤄냈으나, 감투싸움에 몰두하다 1명 불참이라는 이례적 구도로 억지 마침표를 찍은 강서구의회가 무너뜨린 주민의 신뢰는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 구민과 아이들의 삶을 정쟁의 도구로 삼았던 여야 의원 모두는 이번 자리 배분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구민들의 준엄한 경고와 엄중한 정치적 책임 앞에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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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1
  • [社說] '지방 국립대 등록금 무료화', 근본적 체질 개선 없는 선심성 정책은 한계 있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육부가 내년부터 지방 국립대 신입생을 시작으로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방 국립대 30곳의 신입생 6만 명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인구 유입과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취지다. 청년들의 학비 부담을 줄이고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의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와 정책의 구조적 약점을 따져보면, 과연 이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등록금 0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도 수험생들의 반응이 냉담하다는 사실이다. 조사에 따르면 수험생의 64%가 등록금 혜택이 있더라도 비수도권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청년들이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등록금이 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양질의 일자리, 인프라, 그리고 졸업 후 미래 비전이다. 지방 대학을 졸업해도 일할 만한 지역 기업이나 산업 생태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등록금을 지원한다 한들 일시적인 임시방편에 그칠 뿐이다. 또한, 지역 대학 생태계를 교란하고 국립 대 사립 간의 새로운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점도 중대한 문제다.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지방 사립대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같은 지방에서 공부하는 학생임에도 국립대라는 이유만으로 전액 지원을 받는 것은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재정난과 신입생 미달에 시달리는 지방 사립대의 고사를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 교육부가 지역인재장학금 확대 등 대책을 내놓았으나, 근본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막대한 국가 재정이 소요되는 정책인 만큼 효율성 검증도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첫해 2,100억 원을 시작으로 매년 수천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지만, 대학 자체의 교육·연구 역량 강화나 글로벌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눈먼 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대학 진학률 유지나 선심성 퍼주기식 재정 투입은 국가 재정 부담만 늘릴 뿐이다. 정부는 재정을 쏟아붓는 방식의 단기적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방대를 살리고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지역 산업체와 연계된 실질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청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료 대학 수업이 아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제대로 된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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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31
  • [기고] 부산 관광, 500만 넘어 1000만 도시로 가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2025년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64만 3천여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6년 상반기에도 242만여 명이 부산을 찾으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시는 2028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500만 명, 관광지출 1조 5천억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부산의 질문은 “500만 명을 달성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500만 명 이후 부산 관광을 어떻게 1,0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전시킬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가 돼야 한다.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는 단순히 방문객 숫자를 두 배로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도시혁신의 문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경쟁력은 유명 관광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관광객이 만나는 택시기사, 버스기사, 음식점과 카페 직원, 전통시장 상인, 공무원, 자원봉사자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산의 이미지를 만든다. “Welcome to Busan.” “Can I help you?” 이 정도의 간단한 인사와 친절한 길 안내만으로도 외국인 관광객이 느끼는 부산의 인상은 크게 달라진다. 부산이 1,000만 관광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시민을 단순한 관광객 맞이의 주체가 아니라 ‘관광시민’으로 키워야 한다. 부산시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관광객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공항·항만·철도, 교통, 숙박, 음식, 쇼핑, 전통시장, 문화공연, 의료·웰니스, 야간관광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관광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앞으로는 몇 명이 부산을 찾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소비하며, 어떤 경험을 하고 돌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부산관광공사 역시 단순한 홍보기관을 넘어 세계 관광시장과 부산의 관광상품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국가별·연령별·관심사별 관광 수요를 세분화하고, 관광객의 소비와 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관광상품 개발에 활용해야 한다. 16개 구·군의 역할도 중요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동선이 해운대·광안리·남포동 등 일부 지역에만 집중돼서는 부산 전체가 관광 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중구·동구는 근현대 역사와 피란수도 문화, ▲영도구는 해양·예술, ▲남구는 UN평화문화와 청년문화, ▲해운대구는 MICE와 해양레저, ▲수영구는 야간관광, ▲기장군은 해양·미식·웰니스 등 각 지역이 자신만의 관광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관광객의 질문도 달라진다. “부산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가 아니라 “부산의 어느 지역에서 어떤 경험을 할 것인가”가 된다. 결국 1,000만 관광객보다 중요한 것은 1,000만 개의 부산 경험이다. 부산에서 처음 먹어본 음식, 처음 만난 친절한 시민, 처음 본 바다, 처음 들은 부산 사투리, 처음 방문한 전통시장과 골목길, 부산에서 남긴 사진 한 장까지 모두가 한 사람에게는 ‘부산의 기억’으로 남는다. 부산은 이제 관광하기 편한 도시를 넘어 외국인이 다시 찾고 싶고, 머물고 싶고, 살아보고 싶은 도시를 목표로 해야 한다. 워케이션, 의료·웰니스, 골프, 크루즈, MICE, 교육, 문화예술, 스포츠 등 장기체류형 관광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은 부산시 혼자 만들 수 없다. 부산시는 큰 전략을 세우고, 부산관광공사는 세계시장과 부산을 연결하며, 16개 구·군은 지역별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기업과 소상공인은 관광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시민은 부산의 첫 번째 관광홍보대사가 돼야 한다. 관광객 증가의 효과도 일부 관광지와 특정 업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음식점, 숙박업, 문화예술계, 청년 일자리까지 확산돼야 한다. 500만 명은 부산 관광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1,000만 명의 글로벌 관광도시로 가는 중간 정거장이어야 한다. 부산이 세계인이 찾는 도시를 넘어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행정 중심의 관광정책을 넘어 시민과 기업, 관광업계, 대학, 16개 구·군,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함께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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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31
  • [기자수첩]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정,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에서 사용돼 온 속담이다.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대책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이 속담이 낯설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닥칠지 알 수 없다. 평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아무 일이 없을 때 미리 대비하는 것이 진정한 안전행정이 아닐까. 기자는 과거 한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 수동심폐소생기 등 응급상황에 대비한 안전장비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다들 건강해서 이곳에서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은 왜 실시하는가. 실제 전쟁이나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평소 훈련하고 대비하는 것 아닌가. 안전장비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가 발생한 뒤 “그때 설치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준비돼 있어야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특히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 등 각종 재난이 잇따르고 있다. 재난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피해 규모 역시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안전 대응체계는 과연 충분한가. 얼마 전 기자는 최근 혁신제품으로 출시된 산소마스크를 접했다. 화재 등 비상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제품으로, 제품 설명상 마스크를 착용하면 일정 시간 동안 산소가 발생해 대피 과정에서 호흡을 돕는 방식이다. 특히, 화재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 불길만은 아니다. 화재 현장에서는 유독가스와 연기 때문에 질식 위험이 매우 크다. 실제 화재에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속한 대피와 함께 ‘골든타임’ 안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자는 이 제품이 지자체와 공공기관 등에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 궁금해 몇몇 구청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봤다. 일부 지자체에는 관련 제품이 샘플 형태로 설치된 곳도 있었지만, 상당수에서는 산소마스크 자체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품의 취지와 필요성을 설명해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을 접하면서 기자의 머릿속에는 다시 한 번 그 속담이 떠올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물론 새로운 안전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관공서나 사업장에 설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품의 안전성과 성능, 인증 여부, 실제 재난 상황에서의 효용성, 비용 대비 효과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검토조차 하지 않는 행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업장에서 화재 등 중대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관계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른 책임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자체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화재는 단 몇 분, 아니 몇 초가 생사를 가를 수 있다. 그래서 안전에는 ‘나중’이 없다. 관공서와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학교, 복지시설, 전통시장, 다중이용시설, 사업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는 어떤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지 미리 살펴보고, 필요한 장비와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행정의 기본 책무다. 몇 달 뒤 화재 예방의 달을 맞아 각 기관이 일제히 캠페인을 벌이고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물을 배포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보여주기식 캠페인’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수막 한 장을 더 거는 것보다 실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을 했다는 실적을 남기는 것보다 실제 상황에서 시민과 공무원이 당황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렇다면 ‘적극행정’이라는 말도 안전 분야에서부터 실천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지역에서는 아직 사고가 없었다.”, “건강한 사람들이라 필요하지 않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때 대응하면 된다.” 이런 안일한 생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안전불감증일 수 있다. 재난은 행정기관의 결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한 뒤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열고 장비를 구입하는 행정보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 행정이 진정한 적극행정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장비 하나가 평소에는 ‘쓸모없는 물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재난의 순간에는 그 하나가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더 이상 안전행정의 현실을 표현하는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고가 난 뒤의 후회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의 준비다. 그리고, 그 준비의 출발점은 바로 행정기관의 작은 관심과 적극적인 검토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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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29
  • [社說] 교육재정 흔들면 미래가 무너진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축소 움직임은 AI 시대에 필요한 교육 환경 조성을 가로막고 공교육 기반을 무너뜨리는 극히 위험한 행보이다. 학생 수 감소라는 단순한 산술적 논리에 매몰되어 예산을 줄이는 것은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고 지방 소멸을 가속화 할 뿐이다. 정부는 눈앞의 인구 통계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교육재정을 확보하여 국가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를 보장해야 한다. 지방 교육재정의 확보가 시급한 이유는 오늘날의 학교가 과거와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특히 AI 시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이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첨단 기술을 다루는 디지털 도구 지원과 다채로운 과학적 실험·실습 환경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더욱이 학교 운영에는 학생 수 변동과 무관한 필수 고정비가 존재하며, 기초학력 보장, 학생 맞춤형 교육, 고교학점제 도입, 정서·위기 학생 지원 등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교육 활동 영역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의 소규모 학교일수록 이러한 필수 비용을 교부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감 속에서 국가 전체의 예산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과거와 동일한 수준의 교육 예산을 유지하는 것은 재정적 낭비이며, 남는 재원을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의 다른 경제 활성화 사업이나 인프라 확충에 직접 투입하는 것이 지방을 살리는 데 더 효율적이라는 경제학적 반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교육의 특수성과 질적 가치를 간과한 지나치게 단기적인 시각이다. AI 시대의 공교육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거대한 인재로 키워내는 ‘질적 고도화’에 집중해야 하며, 이는 결코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예산이 줄어들면 지방 소규모 학교의 디지털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며, 첨단 도구를 활용한 실험이나 미래형 수업은 대도시 학생들만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교육 여건이 무너진 지역은 학부모와 이주민들에게 매력을 잃게 되고, 이는 결국 지방 소멸을 더욱 빠르고 치명적으로 가속화 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단순한 예산 배분 장치가 아니라, 대한민국 영토 안의 모든 청소년에게 균등하고 기본적인 교육 여건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책임의 제도적 기반이다. 공교육의 위기를 걱정하는 학부모, 교원단체,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육은 국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장기적인 투자이다. 정부는 교부금 축소 개편안을 즉각 중단하고, AI 시대 청소년들이 마음껏 배우고 실험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교육재정을 확고하게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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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6-08-24
  • [기고] 말과 생각이 그 사람의 삶이 됩니다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말의 성찬’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대를 단숨에 제압하는 화려한 수사학,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세련된 말재간, 그리고 타인을 설득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완이 곧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윤리와 진실, 그리고 말에 대한 엄중한 책임 의식이 빠진 말들은 당장의 이득을 가져다줄지는 몰라도 결국 서로의 품격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진단할 때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진단은 바로 ‘염치(廉恥)의 실종’과 ‘말의 타락’입니다. 말이 도구화되고 수치심이 사라진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내면에서부터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무너진 말의 질서를 바로잡고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본질적 질문에 답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타인을 비난하고 시기하는 거친 말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그 본질에는 외부의 문제가 아닌 자기 내면의 깊은 불안과 결핍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말은 한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성현들은 한결같이 말의 질서가 무너질 때 사회 전체가 붕괴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그 말 속에 과연 진실과 책임이 담겨 있습니까?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를 떠나는 것 같지만, 그 말이 만들어낸 파문과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타인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내면의 결핍을 오롯이 마주하고 성찰하는 ‘반구저기신(反求諸己身)’의 태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요즘 인기 있는 영화 속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오디세우스는 서양 문학사에서 지혜롭고 불굴의 의지를 지닌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동시에 윤리를 저버린 간교한 사기꾼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킬레우스처럼 무력에 의존하던 기존의 영웅들과 달리 탁월한 지략과 이성을 활용하여 10년 동안 끝나지 않았던 트로이 전쟁을 ‘트로이 목마’라는 지략으로 끝내고 온갖 신들의 방해와 여신의 유혹 속에서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고자 했던 불굴의 집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직한 동료들을 속이고 수호신상을 도둑질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함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아가멤논의 요청으로 화해 신청을 하러 온 오디세우스의 언변에 대해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옥의 문만큼이나 위선을 미워한다.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자를 나는 참을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단테의 신곡에서는 화려한 언변과 꾀로 타인을 속이고 사지로 몰아넣은 말의 죄, 즉 구업(口業)을 물어 제8지옥에서 혀 모양의 두 갈래의 불꽃에 휩싸여 영원히 고통받는 벌을 받습니다. 구업(口業)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불교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이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나쁜 언어적 행위를 사구업(四口業)이라 하는데, 먼저 망어(妄語)는 자신의 이익이나 타인의 해악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고하는 행위이며, 기어(綺語)는 진실성이 결여된 채 타인을 아첨하거나 현혹하고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허황되고 도의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양설(兩舌)은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를 오가며 말을 와전시키고 분란을 일으켜 다리를 놓아야 할 언어로 오히려 관계를 갈라놓는 이간질이며, 악구(惡口)는 거칠고 모난 언어로 상대방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과 험담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신중하지 못한 말로 짓는 구업은 결코 공중으로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언어의 주체에게 업보로 돌아오게 됩니다. 어떤 말이든지 그 말의 결과는 말했던 그 사람에게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말에 대한 엄중한 결과가 이러한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난무하는 온갖 비방과 저주와 폭력의 말의 대가는 과연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입으로 악한 말을 내뱉어 구업을 짓게 되는 본질적인 원인은 타인이 아닌 자기 내면의 불안과 결핍에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내공이 부족할 때 인간은 깊은 열등감을 느끼며, 이를 숨기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게 됩니다. 또 타인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비교 의식, 질투, 열등감 같은 심리적인 요소가 내면의 성숙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 억압된 분노는 비방과 저주, 모함의 거친 언어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시선이 자기 내면을 향하지 못하고 타인을 향해서만 있기 때문입니다. 『장자(莊子)』에는 추호(秋毫, 가을철 짐승의 가느다란 털)만큼 작은 이익을 탐내고 남을 시기하느라, 정작 하늘처럼 넓은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털끝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더 많이 차지하려 남을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의 〈질투의 힘〉이라는 시입니다. 시인이 고백한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노라.”라는 고백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타인의 삶을 두리번거리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지금의 어떤 사람들의 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시선을 온전히 자신에게로 거두어들이는 조금은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은 바로 독서와 사유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 문장을 읽는 시간은 자기 자신과 단둘이 마주하는 기회가 됩니다. 책 속 문장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거부감이 드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지금 자신 내면의 결핍이 어디에 있는가를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자신의 사유를 거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살아갈 뿐, 아직 자신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유란? 남이 세상을 보고 개념화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를 사유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결과를 사유하게 되면, 자기의 삶은 없고,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면서 자기의 삶이라고 하는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면 마침내 얻게 된다. 무릇 책을 읽을 때 생각함이 깊지 않으면, 만 권의 책을 읽는다 한들 남의 언어에 휘둘릴 뿐이다. 사유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우물에서 지혜의 두레박을 퍼 올리는 일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유한준(조선 후기 문신, 문장가)에게 전한 이 문장에서도 사유가 없는 독서의 결과인 ‘지적 종속’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쌓아온 구업(口業)을 끊고 신언(愼言)의 태도를 다짐하며 타인을 향해 있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유일한 길은 ‘독서’와 ‘사유’, 그리고 이를 통한 ‘신독(愼獨)’에 있습니다. 내면이 단단하게 채워진 사람은 타인을 시기하거나 남을 깎아내려 자신을 높일 필요를 느끼지 않기에, 그의 언어 또한 자연스럽게 절제되고 담백해집니다. 오늘도 묵묵히 책을 펼치고 깊은 사유의 정적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그 순간이야말로 눈앞의 사소한 이익을 넘어, 마음의 지평을 하늘만큼 넓히고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거니는 '소요(逍遙)'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삼갈 줄 아는 삶의 주인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말은 생각의 집이자 존재의 표현입니다. 한자 言(말씀 언)은 입(口) 위에 매운 침(辛)이 얹혀 있는 형상입니다. 이는 말이 타인을 찌르는 칼이 될 수도, 스스로를 경계하는 죽비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르고 품격 있는 말은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고 사람을 살리지만, 혐오와 기만의 언어는 개인의 영혼을 파괴하고 국가의 근간을 뒤흔듭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羞恥心)이 회복되고 내뱉은 말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무너진 말의 질서가 바로 서고 건강한 신뢰 사회가 열릴 것입니다. 이런 사회를 함께 꿈꾸어 보는 삶! 이것이 한겨레인으로서 마땅한 꿈이 아닐까요? 꿈은 이룰 수 없는 것을 실천하는 용기입니다. 모든 철학의 최상위에 용기가 있는 이유입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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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9
  • [기고]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하고 신뢰받는 무기는 ‘생각’과 ‘말’입니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문명의 거대한 격변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이 인간의 육체와 단순 지능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이 짐승이나 기계와 구별되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무기는 바로 ‘사유(생각)하는 힘’과 그것이 빚어내는 ‘도덕적 신뢰’입니다. 생각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남이 만든 정답을 외우는 전술 국가에서 벗어나, 주체적 사유로 삶과 사회를 개척하기 위한 전략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성찰을 나누어 보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노자의 지혜로 시작합니다. 노자의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인간의 궁극적 필살기입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누워 있는 방관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억지스러운 욕심, 사리사욕, 고집스러운 통제(爲)’를 하지 않음으로써(無爲), ‘자연과 만물의 순리가 스스로 조화롭게 흘러가지 못함이 없게 한다(無不爲).’는 뜻입니다. 억지로 군림하고 조작하려 들지 않고, 구성원 각자가 지닌 본성을 자유롭게 꽃피울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위의 통치이자 문제 해결의 궁극적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과 태도를 정의하였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본능과 생물학적 조건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고 언어와 상징, 예술과 도덕을 일구어내는 ‘문화적 존재(Homo Culturalis)’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어떤 변화를 야기하고 있습니까? 가치 창조의 주체는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의미와 질서를 직조해 나가야 합니다. 생물학적 욕망(식욕, 지배욕,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예(禮)’와 ‘인(仁)’이라는 고유한 규범으로 다듬어내야 한다고 孔子는 말합니다. 후진국은 물건에 시선을 집중하고, 중진국은 제도에 모든 관심을 나타내고, 선진국은 ‘물건과 제도의 이면에 있는 ‘생각과 철학’에 시선을 집중한다고 합니다. 모든 탁월한 물질문명(물건과 제도)은 보이지 않는 ‘고도의 철학과 생각’이라는 토양에서만 싹을 틔웁니다. 즉 철학(사유와 가치관) → 생각(개념 설계) → 제도(시스템) → 물건(기술과 제품)의 순서로 즉, 모든 탁월한 물질문명(물건과 제도)은 보이지 않는 '고도의 철학과 생각'이라는 토양에서만 싹을 틔운다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설계했듯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편리함과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體)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인류에게 유익한 제도와 혁신적인 물건(用)이 탄생합니다. 철학 없는 기술은 흉기가 되고, 생각 없는 제도는 폭력이 된다고 성현들은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돈과 출세만을 목표로 삼는 얕은 생각(爲人之學)에 머물면, 삶 또한 천박한 경쟁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눈앞의 득실을 따지는 일차원적 계산에서 벗어나,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남길 것인가?”라는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품어야 합니다. 즉,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신독(愼獨)의 실천으로 행동의 품격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원천 개념을 창조한 물건이 드문 이유는, 오랫동안 선진국의 지식을 빠르게 베껴 쓰는 ‘전술 국가(추격자)’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고도성장기에는 정해진 정답을 빠르게 습득하는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오지선다형 시험과 서열화된 입시 중심의 ‘위인지학’이 교실을 지배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교실의 평가 기준을 “누가 정답을 맞혔는가?”에서 “누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는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서·논술형 평가, 프로젝트 기반 토론 수업을 정착시키고, 교사 양성 과정부터 철학적 사유와 자율적 교육과정 구성을 허용하는 혁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혁신은 교육지자체 장의 선출에 달려 있습니다. 교육철학과 제도를 창안하고 국민을 시민으로 바꿀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장자가 경계한 ‘인위(人爲)’와 ‘자연(自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질문에서 장자가 인위를 강조했다는 것은 오해이며, 사실 장자는 ‘작위적인 인위(人爲)’를 철저히 비판하고 ‘자연스러운 본성(無爲自然)’을 회복할 것을 필생의 가르침으로 삼았습니다. 인간이 억지로 도덕과 법률, 제도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들수록 세상에는 위선과 도둑, 분열이 늘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장자가 강조한 것은 인위적 규범을 내려놓고, 우주와 사물이 지닌 본래의 결대로 자유롭게 노니는 소요유(逍遙遊)의 삶입니다. 하버드 학생들이 느끼며 자라는 ‘이것’은 ‘지적 겸손(결핍과 호기심)’이라고 합니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적 리더들이 자라며 체화하는 핵심 감각은 ‘결핍에서 비롯된 주체적 호기심’이자 ‘지적 겸손(무지의 자각)’입니다. 왜, 지적 겸손이 필요한가?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오만은 배움을 멈추게 합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소크라테스적 ‘무지(無知)의 자각’이 있어야만 비로소 지식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개척자적 사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시점에서 ‘언지교(言之敎)’에서 ‘불언지교(不言之敎)’로 나아가는 교육 방법이 절실합니다. 노자는 말로 하면, 가르치고 지시하는 ‘언지교(言之敎)’는 상대방에게 저항과 방어 기제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스승이나 부모가 말로 잔소리하고 명령하기보다, 자신의 삶과 태도를 통해 침묵 속에서 행동의 본을 보이는 ‘불언지교(不言之敎, 말 없는 가르침)’를 최고의 교육으로 꼽았습니다. 학생 스스로 감화되어 깨닫게(自化) 만드는 ‘환경과 여백의 교육’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욕망과 편견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 세상을 재단합니다.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법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보여지는 대로 보는 방법으로는 ‘심재(心齋)’와 ‘격물(格物)’입니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관조’라고도 합니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마주할 때 즉각적으로 好不好(좋다./싫다.)를 내리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섭니다. 판단을 일단 유보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선입견을 비워내는 ‘마음의 금식(심재)’을 통해, 사물과 인간이 처한 객관적 맥락과 결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훈련해야 합니다. 莊子가 말하는 成心의 비움입니다. ‘정해진 마음(成心)’의 폐해와 장자의 ‘成心’ vs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가슴에 절절히 밀려옵니다. 내가 살아오며 쌓은 작은 경험과 이념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여 타인을 재단하는 완고한 고정관념입니다. 장자의 成心과 법정의 무소유를 비교해 보면, 장자는 “마음의 집착을 비워라.” 정신적인 지식과 도덕적 확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유의 여백을 회복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는 “물질적 집착을 비워라.” 불필요한 소유욕에 눈이 멀어 영혼의 자유를 잃지 말라는 실천적 경고입니다. 두 가르침 모두 ‘비움(虛)’을 통해 집착의 노예에서 벗어나 ‘삶의 참된 주인으로 서라.’는 영적 해방을 의미합니다. 인간 최고의 무기 ‘신뢰(信)’라고 하는 공자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공자는 국가를 유지하는 세 가지 기둥으로 군대(足兵), 식량(足食),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를 들며, 위기 시에는 군대와 식량을 차례로 버릴지언정 신뢰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民無信不立)고 단언했습니다. 법가 사상가 상앙조차 개혁을 시작할 때, 성문 앞에 나무 기둥을 옮기는 자에게 큰 상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백성들의 신뢰를 얻은 후에야 법을 집행했습니다. 상앙의 ‘徙木立信’입니다. 공자의 신(信)은 말(言)과 사람(人)이 하나가 되는 언행일치입니다. 수레에 바퀴와 멍에를 잇는 쐐기(輗, 軏)가 없으면, 수레가 단 한 치도 굴러갈 수 없듯이, 인간과 사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은 정직함에서 나오는 ‘상호 신뢰’입니다. 이제는 남의 생각에 기대어 사는 노예의 안락함을 버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주인의 사유’를 시작할 때입니다. 깊은 생각에서 피어난 단단한 신뢰야말로 이 혼란한 시대를 건너갈 우리 모두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생각과 말은 한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성현들은 한결같이 말과 생각의 질서가 무너질 때 사회 전체가 붕괴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렸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단순한 심리적 위축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적 자정 장치’입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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