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문명의 거대한 격변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이 인간의 육체와 단순 지능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이 짐승이나 기계와 구별되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무기는 바로 ‘사유(생각)하는 힘’과 그것이 빚어내는 ‘도덕적 신뢰’입니다.
생각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남이 만든 정답을 외우는 전술 국가에서 벗어나, 주체적 사유로 삶과 사회를 개척하기 위한 전략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성찰을 나누어 보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노자의 지혜로 시작합니다. 노자의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인간의 궁극적 필살기입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누워 있는 방관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억지스러운 욕심, 사리사욕, 고집스러운 통제(爲)’를 하지 않음으로써(無爲), ‘자연과 만물의 순리가 스스로 조화롭게 흘러가지 못함이 없게 한다(無不爲).’는 뜻입니다.
억지로 군림하고 조작하려 들지 않고, 구성원 각자가 지닌 본성을 자유롭게 꽃피울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위의 통치이자 문제 해결의 궁극적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과 태도를 정의하였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본능과 생물학적 조건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고 언어와 상징, 예술과 도덕을 일구어내는 ‘문화적 존재(Homo Culturalis)’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어떤 변화를 야기하고 있습니까?
가치 창조의 주체는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의미와 질서를 직조해 나가야 합니다. 생물학적 욕망(식욕, 지배욕,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예(禮)’와 ‘인(仁)’이라는 고유한 규범으로 다듬어내야 한다고 孔子는 말합니다.
후진국은 물건에 시선을 집중하고, 중진국은 제도에 모든 관심을 나타내고, 선진국은 ‘물건과 제도의 이면에 있는 ‘생각과 철학’에 시선을 집중한다고 합니다. 모든 탁월한 물질문명(물건과 제도)은 보이지 않는 ‘고도의 철학과 생각’이라는 토양에서만 싹을 틔웁니다. 즉 철학(사유와 가치관) → 생각(개념 설계) → 제도(시스템) → 물건(기술과 제품)의 순서로 즉, 모든 탁월한 물질문명(물건과 제도)은 보이지 않는 '고도의 철학과 생각'이라는 토양에서만 싹을 틔운다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설계했듯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편리함과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體)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인류에게 유익한 제도와 혁신적인 물건(用)이 탄생합니다. 철학 없는 기술은 흉기가 되고, 생각 없는 제도는 폭력이 된다고 성현들은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돈과 출세만을 목표로 삼는 얕은 생각(爲人之學)에 머물면, 삶 또한 천박한 경쟁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눈앞의 득실을 따지는 일차원적 계산에서 벗어나,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남길 것인가?”라는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품어야 합니다. 즉,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신독(愼獨)의 실천으로 행동의 품격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원천 개념을 창조한 물건이 드문 이유는, 오랫동안 선진국의 지식을 빠르게 베껴 쓰는 ‘전술 국가(추격자)’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고도성장기에는 정해진 정답을 빠르게 습득하는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오지선다형 시험과 서열화된 입시 중심의 ‘위인지학’이 교실을 지배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교실의 평가 기준을 “누가 정답을 맞혔는가?”에서 “누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는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서·논술형 평가, 프로젝트 기반 토론 수업을 정착시키고, 교사 양성 과정부터 철학적 사유와 자율적 교육과정 구성을 허용하는 혁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혁신은 교육지자체 장의 선출에 달려 있습니다. 교육철학과 제도를 창안하고 국민을 시민으로 바꿀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장자가 경계한 ‘인위(人爲)’와 ‘자연(自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질문에서 장자가 인위를 강조했다는 것은 오해이며, 사실 장자는 ‘작위적인 인위(人爲)’를 철저히 비판하고 ‘자연스러운 본성(無爲自然)’을 회복할 것을 필생의 가르침으로 삼았습니다.
인간이 억지로 도덕과 법률, 제도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들수록 세상에는 위선과 도둑, 분열이 늘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장자가 강조한 것은 인위적 규범을 내려놓고, 우주와 사물이 지닌 본래의 결대로 자유롭게 노니는 소요유(逍遙遊)의 삶입니다.
하버드 학생들이 느끼며 자라는 ‘이것’은 ‘지적 겸손(결핍과 호기심)’이라고 합니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적 리더들이 자라며 체화하는 핵심 감각은 ‘결핍에서 비롯된 주체적 호기심’이자 ‘지적 겸손(무지의 자각)’입니다. 왜, 지적 겸손이 필요한가?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오만은 배움을 멈추게 합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소크라테스적 ‘무지(無知)의 자각’이 있어야만 비로소 지식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개척자적 사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시점에서 ‘언지교(言之敎)’에서 ‘불언지교(不言之敎)’로 나아가는 교육 방법이 절실합니다. 노자는 말로 하면, 가르치고 지시하는 ‘언지교(言之敎)’는 상대방에게 저항과 방어 기제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스승이나 부모가 말로 잔소리하고 명령하기보다, 자신의 삶과 태도를 통해 침묵 속에서 행동의 본을 보이는 ‘불언지교(不言之敎, 말 없는 가르침)’를 최고의 교육으로 꼽았습니다. 학생 스스로 감화되어 깨닫게(自化) 만드는 ‘환경과 여백의 교육’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욕망과 편견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 세상을 재단합니다.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법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보여지는 대로 보는 방법으로는 ‘심재(心齋)’와 ‘격물(格物)’입니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관조’라고도 합니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마주할 때 즉각적으로 好不好(좋다./싫다.)를 내리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섭니다. 판단을 일단 유보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선입견을 비워내는 ‘마음의 금식(심재)’을 통해, 사물과 인간이 처한 객관적 맥락과 결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훈련해야 합니다. 莊子가 말하는 成心의 비움입니다.
‘정해진 마음(成心)’의 폐해와 장자의 ‘成心’ vs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가슴에 절절히 밀려옵니다. 내가 살아오며 쌓은 작은 경험과 이념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여 타인을 재단하는 완고한 고정관념입니다.
장자의 成心과 법정의 무소유를 비교해 보면, 장자는 “마음의 집착을 비워라.” 정신적인 지식과 도덕적 확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유의 여백을 회복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는 “물질적 집착을 비워라.” 불필요한 소유욕에 눈이 멀어 영혼의 자유를 잃지 말라는 실천적 경고입니다. 두 가르침 모두 ‘비움(虛)’을 통해 집착의 노예에서 벗어나 ‘삶의 참된 주인으로 서라.’는 영적 해방을 의미합니다.
인간 최고의 무기 ‘신뢰(信)’라고 하는 공자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공자는 국가를 유지하는 세 가지 기둥으로 군대(足兵), 식량(足食),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를 들며, 위기 시에는 군대와 식량을 차례로 버릴지언정 신뢰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民無信不立)고 단언했습니다.
법가 사상가 상앙조차 개혁을 시작할 때, 성문 앞에 나무 기둥을 옮기는 자에게 큰 상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백성들의 신뢰를 얻은 후에야 법을 집행했습니다. 상앙의 ‘徙木立信’입니다.
공자의 신(信)은 말(言)과 사람(人)이 하나가 되는 언행일치입니다. 수레에 바퀴와 멍에를 잇는 쐐기(輗, 軏)가 없으면, 수레가 단 한 치도 굴러갈 수 없듯이, 인간과 사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은 정직함에서 나오는 ‘상호 신뢰’입니다.
이제는 남의 생각에 기대어 사는 노예의 안락함을 버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주인의 사유’를 시작할 때입니다. 깊은 생각에서 피어난 단단한 신뢰야말로 이 혼란한 시대를 건너갈 우리 모두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생각과 말은 한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성현들은 한결같이 말과 생각의 질서가 무너질 때 사회 전체가 붕괴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렸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단순한 심리적 위축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적 자정 장치’입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