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AI 시대, 다시 ‘읽는 학생’을 생각하다
독서교육의 성패는 사업의 수가 아니라 학생의 ‘읽는 시간’에서 시작되어야
[교육연합신문=신동현 칼럼]

AI가 질문에 답하고 숏폼 영상이 몇십 초 만에 정보를 요약해 주는 시대다. 필요한 정보를 찾는 일은 쉬워졌지만,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AI 시대에 독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활동이 아니라 긴 글의 맥락을 따라가고, 멈추어 질문하며,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고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독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종합 독서율은 94.6%로 높은 편이지만 연간 평균 독서량은 2023년 36.0권에서 2025년 31.5권으로 줄었고, 평일 하루 평균 독서시간도 82.6분에서 70.3분으로 감소했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학교급별 격차다. 초등학생의 연간 독서량은 63.5권이지만 중학생은 18.9권, 고등학생은 13.7권으로 급감한다. 학교교육을 오래 받을수록 오히려 책과 멀어지는 현실은 우리 독서교육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교육부가 지난 7월에 발표한 '학교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학생을 주도적 독자로 성장시킨다’는 목표 아래 독서교육 집중학년 운영, 교과 연계 독서프로그램 발굴, 수업 중심 독서교육 선도학교 운영, 독서·토론·글쓰기 동아리 지원, ‘매일 아침 10분 함께 책 읽기’ 확산 등을 제시했다. 읽기를 질문·토론·글쓰기·탐구와 연결하려는 방향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깊이 있는 학습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독서교육 사업이 늘어나면 학생들은 정말 책을 더 읽게 될까?
학교 현장에서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좋은 취지만이 아니라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이다. 좋은 정책도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또 하나의 공모사업과 운영계획서, 실적 관리와 결과보고서가 된다면 독서교육의 본질과 멀어질 수 있다. 독서는 특정 사업이 있을 때 하는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학생의 일상이어야 한다. 프로그램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하루 속에 실제로 책을 펼칠 시간이 존재하는가이다.
따라서 독서교육 정책의 무게중심을 이제 ‘무엇을 더 할 것인가’에서 ‘학생에게 무엇을 돌려줄 것인가’로 옮겨야 한다. 가장 먼저 돌려주어야 할 것은 읽을 시간이다.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학생들이 학교에 바라는 독서 지원으로 ‘수준에 맞는 책 소개’를 가장 많이 꼽았고 학교도서관 이용 편의성, 학급문고 확대, 독서시간 확대 등이 뒤를 이었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거창한 독서행사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책을 만나고 방해받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조건이 먼저다.
독서를 다시 ‘수업의 방법’으로 돌려놓는 것도 중요하다. 독서교육을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분리하면 독서는 교과학습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활동이 되기 쉽다. 사회에서는 읽기를 통해 사회현상을 여러 관점에서 해석하고, 과학에서는 기존의 설명에 의문을 품으며 새로운 탐구 질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에서도 작품과 텍스트를 연결하며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읽기-질문하기-토론하기-탐구하기-표현하기’가 교과를 가로지르는 자연스러운 학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독서교육의 성과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몇 권을 읽었는지, 몇 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만으로 학생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읽은 것을 바탕으로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가, 어떤 질문을 만들어 냈는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만나 자신의 관점을 어떻게 확장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독서량에서 독서의 질로, 참여 실적에서 사고의 성장으로 평가의 관점을 옮겨야 한다.
학교도서관 역시 책을 대출하는 장소를 넘어 학생이 머물며 읽고, 관심을 발견하고, 생각을 나누는 학교의 지적·문화적 중심이 되어야 한다. 좋은 공간과 충분한 장서뿐 아니라 학생과 책을 연결하고 수업을 지원할 전문인력이 필요한 이유다. 2030년까지 사서교사 배치율을 30%로 높이겠다는 계획은 의미 있지만, 동시에 상당수 학교에는 여전히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독서교육은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문화’의 문제다. 교실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고, 수업 중 책과 자료를 찾아보며, 친구와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하는 학교문화는 거창한 프로그램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읽을 수 있는 시간, 쉽게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쌓일 때 만들어진다.
AI가 더 빠르게 정보를 찾고 더 정교한 답을 만들어 낼수록 교육은 역설적으로 ‘답을 얻는 능력’보다 ‘답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누구의 관점이 담겨 있는지, 다른 설명은 가능하지 않은지, 그리고 결국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스스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AI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더 많은 독서사업이 아니다. 스스로 책을 펼치고, 오래 읽고,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질문을 만들어 가는 ‘읽는 학생’이다. 학생에게 읽을 시간을 돌려주고, 좋은 책을 만나게 하며, 읽은 것을 질문과 토론, 탐구로 이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 학교 독서교육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 신동현
◇ 부산 강서초등학교 교장
◇ 前 부산 장서초등학교 교감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정책연구소 장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