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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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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고병구 '어쩌다 의사가 되어'를 읽고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한 해의 작은 달 2월, 설 명절과 입춘이 들어 있는 달, 봄이 다가오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는 달도 벌써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었다. 옛말에 복(福)은 받는 것이고, 덕(德)은 쌓는 것인데, 손(手)으로는 나누고 발(足)로 걸어서 건강을 지키고, 얼굴(容)은 항상 미소를 짓고, 마음(心)으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책(冊)을 골라 독서 하면서 자아(自我)의 성숙과 마음을 키우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번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읽을거리를 찾다가 몇 권의 책 중에서 우연히 “어쩌다 의사가 되어”라는 에세이집을 발견하고 단숨에 반쯤 읽었는데 바로 이 병원의 대표원장이자 저자인 고병구 원장이 의사로서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면서 환한 얼굴로 설명하는 열정이 존경스럽고 위의 말에 부합된 분이라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둘째는 우리 교육연합신문 전국 애독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이 귀한 자료를 알리고, 국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향후 진로와 직업선택에 도움이 되고 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이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장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없는 이익에 대한 탐닉에 빠진 부류들이 많다. 노동을 조롱하고 성실함을 비웃으며 요행을 미덕처럼 기대하고 비트코인, 주식, 불법도박, 마약, 스포츠베팅 같은 투기에 쉽게 빠져드는 현실의 일탈에 젖어 드는 청소년들에게는 시금석이 되고 나침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노력으로 쌓은 인생만이 결국 흔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은 쉽게 버는 돈이 아니라 땀과 기다림, 인내, 그리고 정당한 성공, 공정함과 책임감, 사회적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고 ▲어쩌다 의사가 되어 ▲추억 속의 나날들 ▲내가 잘 할수 있는 것 ▲나를 위한 시간 ▲흔들리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시에 담다.로 나누어 구성됐다. ■ 보이지 않는 얼굴들 "의사로서 나 자신을 평가한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의사에 불가하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의사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보통의 의사다. 대부분 의사들처럼 내가 배운 지식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환자들과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저자 고병구 원장은 겸손(謙遜)이 넘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슈바이쳐 박사는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의사인데도, 40년 전에는 부산 1급지(광복동, 서면 등)에 개업해서 부를 창조했을 수 있는 충분조건에도 중심지를 벗어나 어렵고 불우한 환경의 당감동을 선택해, 지금의 준종합병원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외아들 고지환 원장도 부산의대를 졸업, 동 대학에서 소화기내과 진료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해에는 소화기 종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SCI급 국제학술지 저널 표지모델로 선정돼 장식한 능력가인데도 대학병원, 대형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족 3명의 의사와 외부 원장 3명과 함께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전혀 과시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다. 또, 책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 멋지게 지을 수 있는데도, 의사 가운을 입고 근엄한 모습을 취한다거나 진찰하는 모습을 택할 법한데, 순하고 연한 녹색 바탕에 별이 새겨진 나무(Tree) 한 그루가 전부일 만큼 겸손하다. 물론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책의 머리말에서 나오긴 한다. ■ 머리말 '무슨 말을 해야 할까?'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의 답으로 주말이면 가끔 아내와 함께 운전대를 잡고 시골길을 달릴 때 고향처럼 느끼는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고목의 모습을 본다. 그래, 저 나무처럼 살자. 저 나무처럼 늙어 가자. 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나는 웃으면서 떠나리라”는 문장을 대하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는 우리에게 열매를 제공하고, 잎은 그늘을, 봄에는 새싹으로 희망을, 여름에는 잎의 그늘로 쉬는 휴식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나목으로 우리에게 인내심과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고병구 원장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90년대 중반 한 직장 동료가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의 수좌스님을 뵈러 간다기에 금일봉을 보시했더니 법명을 하나 받아 왔는데 '하목(夏木)'이었다. 나의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인데 나는 깜작 놀랐다. 우연히도 내 한자 이름에는 나무목(木)이 3개 들어 있어, 나는 내 아이디도 hamoksong으로 쓰고, 호(號)도 하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잊을 수 없는 한마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을 본적이 없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 사람으로 여기던 한적한 시골, 산간벽지의 오지 경북 문경의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오직 농사일만 선택할 수 있었던 운명에서, 그래도 꿈이 있어 전액 국비 지원인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을 때, 김천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재종형(고무림 선생)이 찾아와 아버지와 나의 진로를 의논하던 중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하세요?“하던 그 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고무림 선생의 안내로 오늘날 고병구 저자가 된 것은, 마치 존 레논이 아들을 위해 작사한 Beautiful Boy의 가사 일부를 연상케 한다. ”너의 마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단다 날지 못한다고 미리 겁먹지 마라. 세상에는 너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있단다.“ 그 울타리는 가정, 부모, 형제, 학교, 선한 이웃 등이 있다. 문경에서 못살던, 오직 철도고를 꿈꾸던 소년에게 김천고와 경북의대를 안내한 울타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사람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인생길이 바뀌게 되는 숙명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바로 이 저자도 그 은혜를 입었지만,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과 행복은 유지할 수 없었다. 요즘도 의과대학에 진학 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과외를 받고, 고교 성적이 상위 1~5%에 들어야 하며, 경제적 능력과 부모의 관심과 본인의 숱한 어려움과 특출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드는데, 하물며 50년 전 국립의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재종형님의 선견지명과 본인의 얼마나 혹독(酷毒)한 노력을 했을지 예견할 수 있다. ■ 나의 모교 송설학원 김천고등학교 김천고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마지막 궁녀이자 육영사업가였던 최송설당 여사가 설립, 영친왕 보모상궁으로 책봉, 고종황제로부터 송설당 칭호 하사. 재산 전부를 해인사에 희사 예정이었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의 권유로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을 결심, 1931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평북 전주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와 더불어 민족사학 칭호. 개교 당시 영남의 오아시스로 통함. 지금도 3.1절에 입학하는 전통. 1907년 을사늑약 앞두고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 잡혀간 후 귀국 때는 부산에 상륙해 김천에서 내려 김천고 '정걸재'에 들려 송설당을 친견하였다고 함. 지금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로 전국적으로 240명 선발. 교훈은 ”깨끗하게, 부지런하게“(남자고 아닌 여자고 교훈처럼). 풀어 쓰면 마음(心)은 깨끗하게(眞實), 몸(身)은 부지런하게(誠實)라는 뜻이다. 저자는 김천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자부심이자 자신의 은혜로 여기고 있다.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올해(2026년) 3월 1일 모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 격려사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도산 안창호(1878 ~1938)선생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다.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할 것을 강조. 實은 힘쓰자는 것으로 진실, 성실, 거짓 없는 것을 말하며 역행은 반드시 이루자는 뜻. ■ 연좌제의 희생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무관 후보생으로 중위, 대위 계급을 받고 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6.25때 당숙의 월북으로 연좌제에 걸려 무관 후보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등병 의사가 되어 위생병으로 3년을 보낸 원통함이 있었다. 전역을 석 달 남긴 1980년 10월 어느 날 영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국보위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방송을 듣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은 3개월이라도 군위관으로 보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온다.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 아파 제대 후 한동안 동기들 모임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뒷자리로 물러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년 후 대전 군의학교에서 열리는 아들 지환 군(부산의대 졸)의 임관식에서 대위 계급장을 다는 아들의 모습에서 ”비로소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구나“하는 위로와 묘한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연좌제(緣坐制) : 범죄자의 친족 또는 기까운 사이, 범죄자의 주변인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제도. 해방 후 납북, 월북자 가족은 공무원은 물론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당함. 1980년 헌법 금지됨. ■ 잊을 수 없는 추억 추억에는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과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좋은 추억은 잔잔하게 스쳐 지나가는 산들 바람같은 어릴적 동심의 추억부터 기억하기 좋은 것. 나쁜 추억은 죄를 지었거나 상처를 입힌 잔인한 추억이고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은 미숙함으로 수치(羞恥)가 담겨있는 추억으로 자신이 좀 더 자랄 수 있었던 것이고, 가슴 아픈 추억은 칼날 같이 날카롭게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보석 같은 추억이고 나를 자라게 하는 추억이다. 저자는 시간은 과거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요술 지팡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세월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을 심어 주는 일에 내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 꽃과 바람과 물 사방이 병품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문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보이는 것이 산과 꽃과 바람과 물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 매일 병원 건물 사무실 속에서 환자만 대하는 숨막히는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만 산뜻한 들국화가 되고, 시원한 솔바람이 되고, 맑은 물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두고두고 이 자리를 지키다가 고향 언덕에 재로 뿌려지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한 부분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감을 느끼며, 70대 중반을 넘긴 저자나 독자인 내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면서 그래도 남은 삶의 막바지에서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로 1년 늦게 입학했고, 의예과 시절엔 고열, 오한을 동반한 장티푸스에 고생했고, 43세 땐 갑자기 대장에 천공이 생겨 장 절제 수술과, 곧 B형 간염에 걸려 친구들 사이엔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처럼 허약하고 병치레 심한 몸이 어느 날 B형 간염균이 사라졌고, 이것은 로또 당첨될 만큼 드문 확률이라고 한다. 그 후 식사를 잘하고 60이 넘어 운동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고기와 채소, 날과일과 비빔밥 등 ”밥이 보약이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즐겁게 먹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위의 내용은 의사의 전문적 처방이 아닌 일반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말하는 순수한 지혜의 덕담 같아서 더욱 친근감과 신뢰감이 든다. 의사인 저자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오래 사세요“란다.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면 이런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위 내용 외에도 '소 팔자 인생', '나를 위한 시간', '눈썹과 인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굽은 인생길' 등 수많은 울림과 되새겨야 할 내용과 말들이 많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생각 났다. ”절망을 느낄 때 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진리와 사랑의 방법은 늘 승리했다. 우리에겐 선과 진리와 사랑은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준다. 글 전체가 연좌제에 대한 불평 즉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약간 주먹을 쥐고 울분을 터뜨린 것 외는 모두가 긍정적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심장을 안정시켜 주었다. 결국 자기 직분을 다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기쁨과 행복이 멀리 있다 생각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지난 3월 1일(삼일절)날 모교 김천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로 ”격려사(檄勵辭)“를 한 내용을 소개한다. ■ "송설 후배들에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는 비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오늘 여러분처럼 김천고 입학이었으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김천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김천고는 내 정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우리 김천고는 일본의 압제하에 있던 암흑기에 대한의 미래를 위해 송설당 할머니께서 세운 민족학교이다. 초대 정열모 교장 선생께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학교는 공립전환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었다. 이처럼 유서깊은 학교에 여러분이 들어오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며 영광이다. ---중략--- 의사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후배 여러분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시오. 장차 술과 담배, 혹은 다른 약물들을 가까이 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단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70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큰 수술을 받았고, 수개월 동안 병을 앓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하루 8시간 이상 환자를 보고, 나머지 먹고 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은 뭔가를 하면서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진다. 별도의 휴식 시간을 갖지 않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나처럼 바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바빠도 성취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가진 비결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길을 찾아 실천하시기 바란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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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칼럼] 100세 시대를 위한 내 몸 사용 설명서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오십견’은 시간이 약일까? 방치하면 굳어지는 어깨 어깨가 굳어 팔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극심한 통증. 흔히 '오십견'이라 불리는 이 질환의 정확한 의학적 명칭은 '유착성 관절낭염(Adhesive Capsulitis)' 또는 '동결견(Frozen Shoulder)'입니다. 이름 그대로 어깨 관절을 둘러싼 주머니(관절낭)에 염증이 생기고 두꺼워져, 관절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지는 질환입니다. 50대 전후에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십견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PC의 장시간 사용, 운동 부족 등으로 인해 30~40대에서도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 일반적인 오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다?" 오십견에 대해 대중이 가진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특별한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병"이라는 인식입니다. 과거에는 이 질환을 스스로 치유되는 질환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최신 임상 연구에 따르면 이는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사실입니다. 미국 의학 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된 2026년 최신 리뷰 논문에서는 상당수의 오십견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수년이 지나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어깨 관절의 운동 범위가 영구적으로 제한되는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기 염증기에는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고, 이후 관절이 굳어지는 동결기를 거쳐 서서히 풀리는 해동기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 소요됩니다. 따라서 '시간이 약'이라며 고통을 참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염증을 빠르게 가라앉히고 굳어진 관절의 가동 범위를 회복시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현대 과학이 밝혀낸 부드러운 침 치료의 힘 굳어진 어깨를 부드럽게 풀고 통증을 덜어내는 데 있어 침치료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최근 여러 국제 연구를 통해 그 과학적 원리가 명확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첫째, 침과 일반 물리치료를 병행하면 회복이 훨씬 빠릅니다. 2024년 발표된 통증 관리 전문 국제학술지의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두 치료를 함께 받은 환자들이 물리치료만 받은 환자들보다 어깨 통증이 더 많이 줄고 움직임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침 자극이 우리 몸의 천연 진통 물질인 엔돌핀 분비를 돕고, 환부의 혈류를 늘려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돕기 때문입니다. 둘째, 전침이나 약침 같은 다양한 한의 기법은 어깨 속 굳은 조직을 직접적으로 풀어줍니다. 2024년과 2025년의 최신 연구들은 전기 자극을 더한 전침이나 정제된 한약 성분을 주입하는 약침이 단순한 일시적 통증 완화를 넘어 어깨 관절 주변의 염증 물질을 억제하고, 유착되어 엉겨 붙은 근막 조직을 본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 집에서 실천하는 굳은 어깨 회복 운동법 굳어진 관절의 운동 범위를 안전하게 회복하고 2차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스트레칭 프로그램이 필수적입니다.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자가 운동법을 소개합니다. ▶ 전자 운동: 테이블이나 카운터에 건강한 쪽 손을 짚고 상체를 살짝 숙인 뒤, 아픈 팔을 아래로 편안하게 늘어뜨립니다. 시계추처럼 팔을 앞뒤, 좌우, 그리고 원형으로 부드럽게 흔들어줍니다. ▶ 막대를 이용한 수동적 내회전: 등 뒤로 가벼운 막대(예: 자)를 잡고, 건강한 손으로 막대의 반대쪽 끝을 가볍게 쥡니다. 건강한 팔로 막대를 가로 방향으로 당겨, 아픈 쪽 어깨가 통증이 없는 범위 내에서 수동적으로 당겨지도록 30초간 유지한 뒤 30초간 휴식합니다. ○ 오십견 자가 관리 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 오십견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세심한 관리는 병원 치료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스트레칭을 시작하기 전에는 걷기나 고정식 자전거 타기 같은 부담 없는 활동으로 5~10분간 체온을 높여 몸을 웜업해주어야 근육과 인대 손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엄격히 지켜야 할 원칙은 '운동 중 결코 통증을 억지로 참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팽팽한 느낌이 드는 부드러운 범위 내에서만 관절을 움직여야 합니다. 또한 환자의 병기(초기 극심한 염증기인지, 이후 굳어지는 동결기인지)와 환자가 가진 동반 기저질환에 따라 관리 및 운동 방법이 철저히 개별화되어야 합니다. 극심한 염증기에 무리한 운동을 강행하면 오히려 관절낭의 염증이 덧나게 됩니다. 따라서 막연한 자가 판단보다는, 전문가의 정확한 상태 평가를 바탕으로 안전한 치료와 맞춤형 재활 운동을 병행하여 튼튼한 어깨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Achilova F, Daher M, Nassar JE, Daniels AH, Abboud JA. Frozen shoulder: Diagnosis and treatment of adhesive capsulitis. Am J Med. 2026 Jan 23:S0002-9343(26)00055-0. doi: 10.1016/j.amjmed.2026.01.021. 2. Xu B, Zhang L, Zhao X, Feng S, Li J, Xu Y. Efficacy of Combining Acupuncture and Physical Therapy for the Management of Patients With Frozen Shoulder: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Pain Manag Nurs. 2024 Dec;25(6):596-605. doi: 10.1016/j.pmn.2024.06.009. 3. Kim D, Park KS, Kim SA, Seo JY, Cho HW, Lee YJ, Yang C, Ha IH, Han CH. Pharmacopuncture therapy for adhesive capsulitis: A pragmatic randomized controlled pilot study. Integr Med Res. 2024 Sep;13(3):101065. doi: 10.1016/j.imr.2024.101065. 4. Ji R, Huang W, Weng M, Zhang M.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acupuncture-related therapies for frozen shoulder: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Front Med (Lausanne). 2025 Nov 26;12:1673193. doi: 10.3389/fmed.2025.1673193.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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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래의 만세, 기념을 넘어 도시의 품격으로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3월의 동래는 단순히 봄을 맞이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1919년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며, 도시의 정체성과 책임을 동시에 환기하는 무대가 되었다. 동래구가 주관한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는 해마다 열리는 기념행사라는 틀을 넘어, 지역 역사자산을 교육과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하려는 의지가 담긴 자리였다. 행사는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 참배로 시작됐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헌화는 형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어 내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이 이어졌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태극기를 들었다. 그 장면은 세대 간의 기억 계승이라는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동래구가 역사적 동선을 세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동래시장과 수안인정시장 일대를 잇는 만세 행렬은 1919년 당시 실제 만세운동이 전개됐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과거의 현장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게 함으로써 체험형 역사교육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래는 부산에서 가장 치열하게 3·1운동에 응답한 지역이다. 장터와 골목, 동헌과 읍성 일대는 민족의 자존을 외치는 공간이었다. 평범한 상인과 학생, 이름 없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래구가 이러한 역사적 자산을 도시 브랜드의 일부로 재해석한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올해 행사에서는 동래 출신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강화됐다. 지역 인물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구체적 서사로 전달했다는 점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역사적 인물을 지역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재조명한 점 또한 교육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수동식 태극기 인쇄 체험과 독립선언서 낭독 프로그램은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먹 냄새가 번지는 인쇄 체험 공간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나요?” 이 질문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성과일지 모른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는 순간 살아난다. 동래구가 마련한 이 재현의 장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3·1운동의 본질은 ‘만세’라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결단,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았던 책임에 있다. 오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그 장면을 되살린다. 그렇기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가치 앞에서 용기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래구의 이번 재현행사는 지역 역사자산을 문화·교육 콘텐츠로 확장한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학교 교육과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참여 확대, 역사 공간의 상시 해설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이어진다면 동래의 3·1정신은 도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품은 도시는 단단하다. 기억을 자산으로 만드는 도시는 품격이 있다.동래의 봄바람 속에서 울린 만세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동래가 어떤 도시로 서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기념을 넘어 교육으로, 교육을 넘어 책임으로 이어질 때, 동래의 3·1정신은 도시의 품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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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省察?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금 우리의 경제 구조, 정치 구조, 교육 구조가 새로운 방향으로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교육자들도,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기업인들도 다 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누구의 철학을 취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것!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포착해야 할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나타난 철학을 훈고하거나 끌어들여 사용해 보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신적 독립을 시도해 보는 일이 아닐까? 선진 사회, 선진 국가 수준으로 상승하는 일이 아닐까? 이쯤에서 1880년에 태어나 1936년에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의 말을 다시 듣는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생각, 즉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사회나 모두 각자가 가진 시선의 높이를 넘어서 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살아야 딱 시선의 높이만큼 산다. 그래서 시선의 높이는 치명적이다. 시선이 높아야 마음이 크고, 시선이 낮으면, 마음도 작다. 작은 마음은 쉽게 차고, 큰마음은 어지간한 양으로도 잘 차지 않는다. 쉬이 차는 작은 마음은 쉽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르는 마음에 자만과 교만이 깃든다. ‘마음의 크기’가 삶의 크기다. 그래서 老子도 말한다. ‘大器免成’, 진정 큰 그릇에는 완성이 없다. 큰 그릇이 되는 건 끝이 있는 '완료형'이 아닌 계속해서 완성해 나가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만족함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혁신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큰 가르침이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근대 유럽의 정치구조가 나타나는 계기가 된 평화조약)부터 문명은 ‘국가’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적인 새로운 국제질서가 시작되었는데, 1800년대 중반부터 ‘근대’의 큰 흐름이 동아시아에 닥칠 때,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 처해있어, ‘근대’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학습·수용할 수 없었다. 공부도 시켜서 할 때와 주체적으로 알아서 할 때 사이의 실력에 큰 차이가 나듯이, 국가나 문명의 형성과 학습도 주체적이냐 종속적이냐에 따라 큰 실력 차이를 내게 된다. 개인이건 사회이건 국가이건, 앞선 생각으로 주도권을 갖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갖는 분기점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입인들만 앞장 서서 실천을 한다. 왜, 실천을 하느냐? 안 하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교육자들, 관료들은 앞장서서 실천을 안 해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기업인들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한 공동체의 승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인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데,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동시에 생각하는 예민함이 있다. 인문학은 생존과 직결되며,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 서는 예민함의 필요함을 일러주므로 기업가들이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늘 어떻게 해야 할까?, 즉 전방에 보초를 서는 척후병처럼, 모든 주변 상황을 예민하게 주시하는 경계 태세, 즉 조짐을 찾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불안하고 모호하다. 불안과 모호함을 견디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경계에 서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다. 결국, 모호함과 두려움을 오롯이 감내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용기이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함량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려준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려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선진국에서, 즉 일류 국가에서 인류와 미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메시지’, ‘비전’, ‘생각들’을 받아들여서 그 사람들 대신에 잘 수행해 왔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인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창의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을 조금 더 앞서가는 일이다. 그럼,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계속 꿈꿔보는 일이다. 그럼, 창의력과 상상력을 높이는 길은 무엇일까? 대답하는 인재보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높이는 문화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특히 교육은 모든 정치 구조, 인재의 틀을 만드는 디딤돌이다. 한국 사회에서 요체는 뭐냐? 국민 각자가 역사적 책임성을 갖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의 역할’을 몸소 수행하는 것이다. 교육은 역사적 책임을 몸에 배게 하는 훈련장이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시민이 제대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 교육, 행정을 가지고 욕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시민들이 다 만들었다. 시민들이 만든 정치 구조며, 교육 구조, 교육 정책이다. 다 우리가 만든 것이다. 시민이 국가 운영의 방관자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 관료, 교육자들을 욕하기에 앞서, 그분들을 만든 근본이 우리 국민이라는 역사적 책임성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 역사와 사회를 내가 책임진다고 하는 자각과 실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역사적 책임성을 갖추는 것은 한국 사회의 발전과 관련되는 일이고, 우리의 생존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이것을 자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연수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는 일로써 자신의 역할이 끝나서는 어렵다. 이 역사는 우리의 눈물과 피와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일은 앞으로도 쉼 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모두가 曾子 선생의 ‘吾日三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曾子 선생의 성찰은? 인간성의 실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모든 정치, 경제, 교육의 구조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발휘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이 말도 曾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선조들의 진정한 삶의 가치인 ‘살림살이’, 즉 ‘三一哲學’에 이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주로 제자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숙제는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인간의 본질을 묻게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만드는 존재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인간은 변화를 만들며 산다.’고 최진석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문화적 존재다. 인간이 만든 세계, 곧 문명, 인간이 안 만든 세계,자연, 두 무대에서 사는 인간은 보이던 것에서 살다가 안 보이던 것으로 이동해서, 자기 영토를 건축하는 존재다. 해석되지 않은 것을 꿈꾸는 존재고, 생각하는 존재다. 어떻게 변화를 이루는가? 관념에 대한 생각과 질문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 변화는 어떻게 만드는가? 생각을 통해서다. 질문하고 관념을 깨고,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변화를 만드는 삶을 살 것인가? 변화를 수용하는 삶을 살 것인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종속적인 삶을 살 것인가? 자신에게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짐으로써 자신을 변화시켜 간다. 행복과 자유 또한 질문의 대상이지, 행복과 자유는 실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꿈꿀 수 있어야, 자유나 행복을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세계에만 매몰되지 말고, 질문하며 추상의 세상을 사유하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고 묻는 성찰의 시간이 현재의 자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왜? 인간이 변하고 달라지는가?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해결해야 될 내용과 방법도 달라진다. 그 해결하는 내용과 방법을 다르게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인간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은 그냥 들쑥날쑥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人文이라고 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크고 작은 선택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하나둘, 세어보는 삶, ‘自快’하는 삶의 길이지 않을까?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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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스마트팜으로 도약하는 중장년, 제2의 재배를 꿈꾸다
[교육연합신문=이고은 기고] 은퇴 이후의 삶은 더 이상 ‘일의 끝’이 아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지금, 중장년에게 은퇴는 또 하나의 선택지 앞에 서는 전환점이다. 문제는 선택의 폭이다. 제조업 구조조정, 기술 변화, 산업 전환 속에서 중장년이 다시 설 수 있는 현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농업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데이터와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제2의 재배’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스마트팜은 더 이상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농업이 아니다. 센서로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PLC와 제어 시스템으로 온·습도와 생육 조건을 관리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산업이다. 이는 기계, 전기, 설비, 자동화 분야에서 오랜 현장 경험을 쌓아온 중장년에게 결코 낯선 영역이 아니다. 공장에서 설비를 다뤘던 경험은 이제 작물을 키우는 기술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기반 스마트팜 운용·관리 교육과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해당 과정은 단순한 귀농 교육이 아니라, 스마트팜 자동화 이론, PLC 제어 실습, 센서·계측, 환경제어, 설비 보전, 빅데이터, 드론 활용까지 아우르는 실무 중심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충남캠퍼스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스마트팜 중장년 과정은 ‘배워서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쓰는 기술’을 목표로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마트팜을 단독 산업이 아닌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융합 영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팜 설비는 결국 기계와 전기, 제어, 유지보수의 집합체다. 센서 고장 진단, 제어 로직 수정, 설비 트러블 대응 능력은 중장년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 재배 인력을 넘어, 스마트팜을 ‘운영·관리’하는 전문 인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 산업 구조 측면에서도 스마트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충청남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 조성과 디지털 농업 확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설비를 운영하고 관리할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스마트팜은 지어졌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사람은 부족한 현실이다. 중장년 인력이 이 공백을 채운다면, 개인의 재취업 문제와 지역 산업의 인력 수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제2의 재배’란 단지 작물을 다시 심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경험을 새로운 산업에 옮겨 심는 일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던 손은 이제 스마트팜 설비를 관리하고, 데이터를 읽던 눈은 작물의 생육 상태를 분석한다. 과거의 경력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토양 위에서 다시 자라난다.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묻는다.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동시에 답을 제시한다. “당신의 경험은 아직 쓸모가 있다.” 기술로 재배되는 두 번째 인생,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선택이 아닌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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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도자, 어떠해야 하는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분수령이 되는 순간인 대전환의 시기엔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지 않고 그 사회와 시대가 앓는 병을 함께 아파해야 한다. 시대의 병을 시대 문제라고 하고, 그 병을 치료하는 의지가 통치 내지는 정치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어떠한가? 또 우리 조직, 단체의 지도자는? 현재 우리에게 보이는 지도자는 ‘운명공동체’의 지도자가 아니고 ‘이익공동체’의 대표자라는 느낌이 든다.’ 일인자로서 책임과 반성이 없고 교만하며 무절제한 자신감만 있는 ‘아무 말, 행동 대 잔치’라는 연속극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보통 우리가 민주주의 정치에서 채택하는 어떤 규칙, 관행, 문화가 적용되지 않는 지도자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72)은 이런 세계적인 현상을, “앞으로 10년 동안 탈세계화는 더 심해지고, 인권은 더 억압되며, 전제 지도자는 더 많이 나타날 겁니다.”라는 말로 변론했다. 갈등 부추기와 편 가르기, 혐오가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기본적 장치가 되고, ‘탈진실이라는 배경과 맞물려 편 가르기와 상대를 죽이는 행태가 도를 넘고, 상대를 교묘히 헐뜯는 낱말 찾기 대행진의 기획처가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 이것이 우리 지도자들의 민낯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참 뻔뻔한 세상이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의롭지 못한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에게 이로우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널린 사회다.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이 이들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그저 깃발을 따라 좌충우돌할 뿐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만 그렇고 다른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은가? TV 뉴스에 나오는 사람도 그런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아첨과 변신의 최전선들 달리는 사람이다.’라는? 논어 위정편에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라는 글이 있다. 이 내용을 축약한 것이 ‘유치차격(有恥且格)’이다.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품격이 갖추어진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는 덕(德)이 있어야 하고 교육은 예(禮)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모습을 경계한 공자의 예견이었다. 논어 위정편의 부끄러움(恥)이란 낱말을 보며 지금 우리 사회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리낌과 두려움이 없는 사회를 일컫는다. 無忌憚의 사회다. 덕치를 하지 못하고 유치한 싸움만 일삼는 정치도 책임이 크다. 윤리와 도덕을 바탕으로 한 예(禮)를 가르치지 못한 교육의 책임은 더 크다. 결국 예(禮)를 가르치지 못한 사회가 직면할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다. 공자가 예견한 옳은 사회와 정반대에 와있다. 사회의 근간을 세우는 기본은 말과 문자이다. 따라서 말과 문자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 말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를 위한 교육이 절실하다. ‘말’을 왜 ‘말’이라고 하지? 하는 물음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말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학교 교육이 잘못됐다는 것을 사회가 인지하고도 바꾸거나 고치지 못한 것이 이미 30년이 넘었다. 문제는 지금 당장 교육이 바뀌어도 상식이 정상화되는 데도 최소한 20~30년이 걸리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학교 교육이 인성교육은 고사하고 교권 회복도 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이제 사회가 인성교육이 무너진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민본사회 건설을 꿈꾸었던 조선의 대유학자 정도전에게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만 올바르게 사는 것이냐 하는 인간론적 물음’이 그의 삶을 집요하게 지배했다. 그에게는 삶의 철학이 정권의 쟁취보다 앞서는 것이었다. 사유의 결론은 지도자의 위(位)는 인(仁)으로만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치자(治者)가 치자의 위치를 보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천지가 끊임없이 만물을 생성하듯이, 仁한 마음을 지닐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금의 지도자들은 삶의 철학보다는 정권의 쟁취가, 국민의 삶보다는 지도자 자신의 안위와 부귀, 더 나아가 아첨꾼들과의 동거동락, 연회가 더 중요하다. 불신의 정권이 지속되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을 전쟁의 위협을 느끼게 몰고 가는 것이라는 얄팍하고 낯 뜨거운 지식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있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정도전은 말하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참으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뭇 백성은 지극히 약하게 보이지만 힘으로 겁줄 수 없는 것이요, 지극히 어리석게 보이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복종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곧 이반해버린다. 떠나고 붙는 것이 터럭만큼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72)은 갈등을 조장하는 정부 정책에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독재자의 정책 방향을 바꾸라는 일반 시민의 요구도 거세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10년간 국제질서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탈세계화는 더 심해지고 국제규범을 어기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 더 많아지고 전제 지도자는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일단 좋은 성품을 가진 최고지도자가 당분간 많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바란다면, 먼저 정책이 곳곳에서 벽에 부딪혀야 한다. 정책 방향을 바꾸라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져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子曰: ”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繫辭傳』6-1 道行, 道明의 사례를 孔子는 舜이라는 탁월한 지도자의 大知(큰 지혜)를 들어 말하고 있다. 道는 정치권력으로 행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만 행하여질 수 있는 것이다. 큰 지혜란 자기 스스로 큰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 제1의 조건이다.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하달하거나 명령하거나 강요하는 일방적 방식은 우선 지혜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누구의 스승이 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물었을 뿐입니다. 묻는 것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묻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儒敎의 물음은 자신을 깨우치기 위한 물음이다. 끊임없이 자신은 무지한 존재라는 전제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존재, 이것이 修身의 과정이다. 孔子는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스승으로서의 삶의 도리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易 』도 점이 아니라 삶의 “물음”이었을 뿐이다. 청와대에 있었던 사람이건, 용산에 앉은 사람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묻기만 해야 한다. ‘내가 다 아노라.’ ‘국민들이여 나를 따르라.’라는 행태를 보여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시시하게 보이는 말들을 잘 살펴야 한다.’ ‘아녀자들의 말이라도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어린애가 말하는 그 소리에 하나님의 소리가 들어 있다.’라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이 귓전을 맴돈다. 묻지 않는 자는 배울 수가 없다. ‘내가 다 해봤어.’라는 말은 천지자연의 이치인 『易』에 대해 공부해야 함을 웅변한다. 노동판에서 놀았다고 해서 노동자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지금 노동자와 그때 노동자의 형편은 다르다. 모든 게 달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해본 것은 현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게 묻지 않으면 뒤지는 사람이 되고 만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태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끊임없이 묻고 배우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이야말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는 것이다. 모든 교육은 학생이 아니라 지도자를 기르는 것이다. 『學記』 자기를 비우고 아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 상황 상황에서 묻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지식의 획득 방법이다. 모든 지식은 반드시 살아 있는 時中의 지식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죽은 지식은 도서관의 서가에 얼마든지 꽂혀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삶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앎 그 자체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孔子에게서 문제 시 되는 것은 “궁극적 앎”이 아니라 “삶의 상황”이다. 상황의 매 순간마다 닥쳐오는 삶의 문제 해결을 묻는 것이다. 敎育의 목적은 “것”이 아니라 “함”이다. 배울 學의 어원은 ‘하다.’임을 아는 것은 지도자로서 철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信在言前也” 『淮南子』「繆稱」편에 나오는 이 말에 사람이 있고 지도자가 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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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도자, 어떠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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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한 번쯤 기억하면 좋은 말들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학교 현장에서 담임, 부장, 교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회의 혹은 학교장 훈화를 통해 인용했던 말들을 한번 소환해 본다. 간략하게 몇 번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니 재미삼아 가볍게 읽어 주시고 참고하시기 바란다. □ 가시나무새 수많은 전설의 새 중에서 예리한 가시에 찔려 그 처절한 고통을 아름다운 울음으로 승화시켜 100년마다 한 번 우는 새, 우리는 이 새에서 고통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이 새를 좋아한다. 인생 앞날엔 무수한 고통이 전개된다. 희망도 기쁨도 존재하지만 어렵고 힘들 때마다 가시나무새의 교훈을 기억하자. ▪ 사랑의 비극은 죽음도 이별도 아니다. 오직 한 쪽이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 즉, 사랑의 무관심이다. - 섬머셋 모흠의 The Red(빨강머리) 중에서 어떤 이는 짝사랑을 사랑의 극치이며 아름다움이라고도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서로 주고받을 때 완성된다. ▪ 나는 싸울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체와 친화한다. 나는 의심할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체를 믿는다. - 데카르트의 방법서설(方法序說)중에서 용기 없는 자의 겸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기방어와 합리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용기와 충만감은 항상 중요하다. ▪ 명예는 상사(上司)에게 ▪ 훈장은 부하(部下)에게 ▪ 책임은 자기(自己)에게, 강한 개인주의 성향을 표출하는 요즘 MZ세대에는 상사가 시키면 "왜 내가요?"라는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얘기지만 선한 행동은 언젠가는 자기에게 다 돌아오게 되는 것이 삶의 원리다. 우선 손해 보는 듯해도 자신의 마음을 가장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 ▪ 덕(德)없는 지식(知識)은 악(惡)의 씨가 되고 체(體)없는 지식은 불평불만을 잉태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덕체(智德體)를 강조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은 덕체지를 강조해 덕과 체의 함양을 역설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최한기는 덕은 심성이고 더불어사는 사회의 7할을 차지, 지는 2할, 체는 용모로서 1할을 갖는다고 정의했다. -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 중에서 □ 많이 인용한 도산 말씀 ▪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 청년을 신체의 보이지 않는 곳에 비유하여 항상 활동하고 있는 상태 또 젊은이들의 교육을 강조하고 청년학우회, 점진학교, 대성학교, 흥사단 등을 창립했다. ▪ 힘을 기르자: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내가 인물될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다. 흥사단의 마크를 선비士(기러기 표시)로 하고 선비는 엘리트이며, 기러기는 반드시 무리 지어 날므로 단결(힘) 강조. ▪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꿈에라도 거짓말을 하였거든 통회하라.(신의 강조) ▪ 나는 사람을 가리켜 개조하는 동물이라 하오.(국토, 사회, 성격, 생활, 정신개조 주창. 동물은 개조 능력 없음) 비전(vision) 강조, 민족개조론 저작. ▪ 주인정신 강조: 5대 주인정신 (내 인생, 내 운명의 주인, 가정의 주인, 직장의 주인(니체-직업은 인생의 등뼈와 같다) ▪ 지역사회의 주인 ▪ 국가, 민족의 주인(국가와 민족은 선택 아닌 운명적이다) □ 인격자 강조: 지(知)보다 덕.체(德.體)를 강조,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을 가져라.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 웃음은 본인의 건강에도 타인에도 좋다. 돈 들이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시간들이지 않고 화장하는 것이 미소이다. 잠깐 지어도 영원한 것이 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필자는 건국중학교 교장 4년간 이 문구를 플래카드로 본관 현관에 걸어 놓고 수시로 강조했다. ▪ 도산 사상은 새나라 건설, 새 사람, 새 정신 창조이다 □ 우리의 신조(교사) 교육의 열매는 교단에서 영근다. 모든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칭찬, 보다 많은 사랑, 보다 높은 이상, 보다 넓은 자유를 펼쳐 주고, 교육현장에는 더 많은 즐거움, 더 깊은 밀도, 더 높은 기량, 더 굳센 신념으로 가득 채운다.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해마다 신년 수첩에 옮겨 적어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위해 노력해 보자. □ 교사의 길은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세상의 유혹에 귀 기울이지 않고 보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듣는다. 외부의 잡음은 듣지 않고 양심의 지엄한 목소리를 듣는다. 물질적 보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의 거룩한 목소리를 듣는다. - 오천석(吳天錫, 1901~1987))교육학·철학박사 □ 사도 3락(師道3樂) ▪ 고귀한 성직에 종사하는 낙 ▪ 학문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낙 ▪ 성실하고 유능한 국가사회에 동량지재(棟梁之材)를 길러내는 낙. 공자의 3락과 맹자의 3락은 각자의 성장 환경과 활동 배경이 달라 그 시대 경험의 표현이다. 권력과 명성은 행복과 무관하다고 달관한 공자와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기 전 군웅이 활거하는 전국시대를 지켜본 맹자와 비교된다. 현대인들 속에 이를 극복하는 과제는 어렵고 힘들다. 각자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스스로 인격 수양해 행동하는 양심이 직업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 참고 : 교학상장;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모두 자신의 학업을 성장시키는 것, 동량지재; 한 집안이나 나라의 기둥이 될 만한 인재 □ 학교 경영관 ▪ 학생을 보고 교육 한다(교육의 대상) ▪ 자기 힘껏 한다(자아의 실현) ▪ 할 바에는 잘해 본다(교육의 선진) ▪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방을 생각한다(상대방 입장) □ 20여년 전 ㈜농심(農心)이 설문조사한 '바람직한 직장인상 8가지' ▪ 모성애형 - 일종의 주인의식으로 모든일에 능동적 대처 (남의 업무에도 관심을 갖고 협조) ▪ 예의 범절형 - 상하에 예의 중시하고 따뜻한 인사 나눔 ▪ 솔선수범형 - 항상 일을 찿아 한다 ▪ 책임 의식 투철함 - 자기 일에 대한 책임 ▪ 희망 지향형 - 매사에 희망을 갖고 생각 ▪ 왕발형 - 대인관계 원만 ▪ 미래 발전형 -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보고 행동 ▪ 초침 관리형 - 자기 통제를 엄격히 함 사내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직장인의 상’이지만 AI시대 현대 직장인들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추억 같은 내용들이다. 그래도 회사를 경영하거나 직장인으로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번쯤 기억해 보고 실행해 볼 필요가 있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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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한 번쯤 기억하면 좋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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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교육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
- [교육연합신문=서동욱 기고] 제24회 불조심어린이마당 전국대회 본선 결과가 발표되었다. 불조심어린이마당은 소방청과 한국화재보험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회로 교육부에서 후원하며 전국 각지에서 해마다 1만여 명의 초등학생, 약 400여 개 학급이 참여하는 대규모 안전교육 퀴즈대회다. 필자가 지도하는 학생들은 대회 24년 역사상 처음으로 5년 연속 전국 대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동일한 학교가 5년 연속으로 이 대회에서 수상한 적은 없거니와 그중 전국 1위인 대상을 4회 수상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즉 우리 반 학생들은 불조심어린이마당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학생들인 것이다. 그동안 학생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갓 3학년을 벗어난 3월의 장난기가 넘치던 모습에서 이제는 제법 의젓한 11살 4학년 학생들이 되었다. 그동안의 한국119청소년단 체험활동과 훈련, 연습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안전 지식을 습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되었다. 그 역량으로 불조심어린이마당에서 5학년 학생들을 제치고 4학년들이 처음으로 1위를 하여 경남도지상을 수상하였으며 전국대회에도 출전하여 위와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지도를 하는 동안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도록 변화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나는 절대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학생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절대 권유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안전역량을 습득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학생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것도 학생이며 수상하는 것도 학생이다. 학생이 주체이며 교사는 그저 옆에서 가야 할 길을 말해 줄 뿐이다. 그 길을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학생이 선택할 문제이며 그 선택과 결과에 각자 책임을 지면 된다. 이렇게 지도를 하면 학생들은 안전은 스스로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오히려 더욱 열심히 안전교육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 6년간의 대회 참여 경험을 통해 나는 이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교육의 성과는 교사가 학교와 소방서와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유도하였기에 가능했다. 소방서는 지역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안전 유관기관이다. 그리고 학교는 지역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 유관기관이다. 그 중간 지점에서 안전과 교육이 만나서 실질적인 안전교육이 이루어지고 한국119청소년단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주변 선생님들에게 한국119청소년단을 추천하곤 한다. 한국119청소년 단원이 된 학생들의 변화 모습을 보면 이 단체는 안전교육에 정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은 교사다. 교사가 핵심이 되어 이러한 안전교육 환경을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은 바뀔 것이고 지역 사회의 안전 문화 확산 또한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교사이자 소방안전교육사, 안전교육전문가로서 나의 사명을 다하고자 한다. 2019년부터 이어진 이런 노력은 어린이 소방관을 약 300여 명 길러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안전의식이 투철한 이 어린이들이 자라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 서동욱 ◇ 초등학교 교사 ◇ 미국 화재폭발조사관(CFEI) ◇ 소방안전교육사 및 소방학교 외래강사 ◇ 한국119청소년단 지도교사 ◇ 소방안전교육사 국민안전교육실무 교재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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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교육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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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청(自請)하는 효(孝)!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근대화와 서구화를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근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화를 앞당기기 위해서 우리의 고전과 전통을 척결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서구화를 위해서 변법개조(變法改造)와 전반서화(全般西化)를 동시에 결행했다는 말입니다. 서구사회에서 구축한 물리적 체계와 정신적․사회적 체계를 수용하고자 일체의 학문체계를 서구의 학문으로 대체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서구화는 미국화였습니다. 학문도 철학도 교육도 미국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미국을 본받으려고 유학길에 올랐고, 대학 강단 등에서 실력 있는 강사가 되려면 남들이 알아먹을 수 없는 영어로 하고, 듣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도 몰라야 명강사로 일컬어졌습니다. 지금도 그런 풍습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문해력과 소통 능력은 세계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명문 리버럴아츠 칼리지로 꼽히는 애머스트대 마이클 엘리엇 총장은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시대에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문화, 역사, 언어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마음속 호기심에 따라 지적 열정을 찾아보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AI 시대에도 인문학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중요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물론 AI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AI를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질지는 인간이 결정해야 합니다.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AI가 가져올 수많은 도전과 해결책을 이해하고 문화, 역사, 언어의 복잡성을 알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이런 능력을 인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고 한 말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가치관도 20세기를 통해 미국화를 지향할 뿐이었습니다. 말도 옷도 더 나아가 책 제목도 영어로 쓰여 있어야 지식인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20세기 미국 문명은 세계 지성인들의 합심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미국 쌀이라고 하면 안심하고 먹었다고 합니다. 미제(美製)라고 하면 선택의 최우선 기준이었다는 것이지요. 가전도 음식 이름도, 상품 이름도, 음식점 이름도 미제를 최고 가치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놓는 제국주의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도덕성과 보편성, 분별성의 부재를 낳고 있지요. 오늘날 미국 여권(旅券; 패스포트)를 가지고 다니면 봉변을 당한다고 합니다.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대접받지 못하는, 나쁜 나라, ‘나뿐인 나라’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유한하며, 태어남과 죽음을 반드시 공유하며, 인간존재의 연속은 무한하다는 것이 우리 동양 철학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을 위한 집을 사당이라고 하여 집의 뒤쪽 높은 곳에 짓습니다. 사당에 모셔진 조상은 살아 있는 집식구들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밖에 나갔다 오면 먼저 사당에 가서 인사를 하고 부모님을 뵙게 되어 있었습니다. 죽은 자가 죽음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것이 제사입니다. 죽어도 생명으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주역’ ‘계사전’에서도 “生生之謂易”(생생지위역) 곧 “낳고 낳음을 역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생생(生生)은 달리 말하면 “생겨나고 생겨남”입니다. 모든 생겨나는 것은 곧 죽고, 죽지 않는 것은 생겨나지 않는 것뿐이라는 의미입니다. “효(孝)”라는 언어와 그 관념은 우리 민족에게 끊임없이 도덕성의 근거를 제공해 온 위대한 무형자산입니다.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더 충실하게 그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孝”라는 개념은 오직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에게만 통용되는 인간관의 소산입니다. 서양인들에게는 “孝”라는 단일한 관념도 언어도 없습니다. 따라서 “孝”의 가치관이나 미담도 없습니다. 우리는 개화기를 통하여 서양인들의 이러한 ‘상스러움’을 ‘독립심 고양’이라는 맥락으로 오히려 찬양하여 왔습니다. 이게 천손(天孫)이라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까? 현재 우리 사회에는 청년들에게 헌신하고 또 야단치는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국민 모두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영국의 역사가인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CH, 1889년 4월 14일~1975년 10월 22일)는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1973년에 국회의원을 지낸 임덕규 씨의 방문을 받아 한국의 '효 사상과 경로사상, 가족제도'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86세의 노인이었던 토인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의 효 사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 이는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서양에도 '효' 문화가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라며 개인적인 희망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3經 중의 하나로 경(經)의 자격을 획득한 경전이 『孝經(효경)』입니다. 경(經)이라는 글자는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따르면 좋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대적 가치, 이념, 가치관 등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經典)이란 소명(召命)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공부를 합니다. 공부를 통해서 행복해졌는지? 지혜가 커졌는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는 진실한 태도가 일상화되었는지? 등을 살피는 과정에서 경(經)의 참된 의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고루한 동네 향원(鄕愿)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멈추면 끝입니다. 사람으로 완성되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건너가기를 해야 합니다. 깨달음이란 생경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단순한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공부할 때는 모두 다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이런 규칙은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자청한 것이어야지 부과되면 안 됩니다. 남으로부터 부과된 것은 오래 할 수 없습니다. 자청한 것은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부과된 것을 오래 하는 사람은 바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청은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도덕경》에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無爲만 읽고 無不爲를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위하면 되지 않을 것이 없다’라는 내용입니다. 노자의 시선은 무위보다는 ‘되지 않을 것이 없다’라는 뜻인 무불위를 향해 있습니다. 무불위 중에 궁극의 경지는 취천하(取天下), 즉 천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냥 자신이 읽고 싶은 것만 읽어서는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힘 빼는 데 3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을 배울 때는 힘 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고 듣습니다. 힘을 빼는 이유는 더 큰 힘을 더 정확히 구사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이유는 물러섬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더 앞서기 위한 희망에 있습니다. 목적은 결국 앞서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힘은 계력 → 문왕 → 무왕으로 이어지는 3대 문명의 작위와 상통합니다. 주나라를 일으킴은 효의 전범이며 혁명의 3대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孝의 바탕이 없는 혁명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혁명은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3대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태조 이성계 → 태종 이방원 → 세종의 경우를 보아도 문화를 바꾸는 것도 孝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孝란 무엇일까요? "중용"에 좋은 정의가 있습니다. “부효자 선계인지지 선술인지사야(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也)” ‘무릇 효란 사람의 좋은 뜻(유지)을 잘 이어받고 훌륭한 사람의 일(유업)을 잘 저술해서 남기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의 師任은 주나라 혁명의 장본인인 문왕(文王)을 낳은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간절한 의지 표현입니다. 조선왕조의 신기원을 이룩할만한 자식을 키우겠다는 결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申師任堂은 거대한 인문과 정치 혁명의 어머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孝”는 자신의 존재를 역사 속에 남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드는 일입니다. 협애한 가문, 명예의 연속이 아니라 인간세의 근원적이고도 보편적인 도덕성의 연원입니다. 또한 자신을 역사 속에 보장받는 제도입니다.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고 자청하는 것이 “孝”의 근원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역사가 심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한 아가페(agepe)적인 사랑은 두 가지입니다. 어머니와 태양입니다. 태양은 일방적으로 사랑을 줍니다. 생명의 모든 근원은 태양입니다. 태양은 feedback을 하지 않습니다. 대기권에 있는 모든 것은 feedback 체제입니다. 태양처럼 위대한 아가페(agepe)는 없습니다. 태양에 해당하는 삶이 또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효孝”입니다. 반복하고, 반복하면, 감동이 일어나고, 감동이 일어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구일효 일일효 우일효(苟日孝 日日孝 又日孝)’ 하고 외치고 또 외치는 우리의 일상을 기대합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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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청(自請)하는 효(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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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회규범으로서 교육의 필요성과 도움 행동 간의 근접성
- [교육연합신문=김홍태 기고] 지난 9월 20일(금) 오전 10시경 전북 김제시 금구면에서 김제시내로 가던 중 빗길에 승용차 한 대가 전복됐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갈 길을 멈추고 차분히 사고차량의 운전자 한 사람을 꺼낸다. 그리고 의식이 있는지 안심을 시키킨 후 주위를 정리한다. 한 시민은 100m 전방에 위험삼각대를 설치하고 119에 신고한다. 또 다른 시민은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들의 속도를 제지하고 무사히 사고현장을 빠져나가도록 조치한다. 잠시 후 119 구급대가 도착하고 경찰차가 도착하고 신속히 사고 현장을 정리한다. 그 와중에 한 20대 후반 여성이 침착하게 행동을 함으로써 후속 사고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녀의 직업은 김제시내에서 ‘은혜식탁’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인데 “제가 선택한 일에 후회 안 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라며 담담히 이야기하는 도중에 내면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도움행동을 하는 이유는 보상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를 목표로 두는데 이를 사회심리학자는 사회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라고 하고 철학자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라고 한다. 이들 이론은 도움을 줄 때 시간, 주위환경, 불편함 등에 드는 비용을 죄책감의 감소, 사회적 인정, 좋은 감정, 종교적 헌신 등이 이득과 대비시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움행동을 통한 보상이 비용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돕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책임규범(social-responsibility norm)도 있다. 비록 비용이 이득의 가치를 넘더라도 결식아동이나 전쟁 또는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들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규범도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당연한 학습을 해 왔을지라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용기와 실천력이 필요하다. 개인주의가 판치는 현대사회에서 능동적이고 헌신적인 도움행동을 하는 자체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신속히 달려와준 119 대원들, 경찰분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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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회규범으로서 교육의 필요성과 도움 행동 간의 근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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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국민안전문화 확대
- [교육연합신문=김성제 기고] 2024년 8월 22일 저녁 7시 34분경 경기도 부천시 모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경상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에 경찰 당국은 즉시 수사본부를 구성하였고 8월 26일 형법상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혐의를 적용해 호텔 실소유주 ㄱ씨와 업주 ㄴ씨를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하였다. 형법상의 문제는 차치하고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상의 중대시민재해에 관해 논의해 본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기업 관련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를 발생시켰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이다. 동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대시민재해’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우선, 의무 주체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다. 둘째로 의무 대상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이다. 셋째로 재해원인은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이다. 넷째로 피해자는 그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에 중대한 시민재해를 발생당한 사람이다. 만약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중대시민재해의 양벌규정 및 징벌적 손해배상은 중대산업재해와 동일하다. 이러한 재해발생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평소에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은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시행령 11조)를 다해야 한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이란 해당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이용자의 안전·보건을 보호하는데 관련되는 법령을 말한다. ‘안전보건 관계법령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는 원료 및 제조물 관련 중대시민재해와 동일하다. 그리고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공중이용시설의 안전을 관리하는 자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시설 및 설비를 정비·점검하는 종사자가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였는지 연 1회 이상 직접 확인하거나 보고 받고, 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경우, 교육 실시 등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지시해야 한다. 공중이용시설의 붕괴나 대형 운송사고 같이 불특정 다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에게 설계,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한 그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조치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의 업무 수행에 따른 인력이 적정 규모로 배치되고 수립된 안전계획의 시행에 필요한 인력이 구성되어 적정한 업무를 부여하고 수행한다. 인력·시설 및 장비 등의 확보·유지, 안전점검과 수립된 안전계획의 시행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편성된 안전 관련 예산이 목적에 부합하게 집행하도록 관리한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안전점검 등이 적절하게 수행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하거나 보고받아야 하며, 공중이용시설 및 교통수단의 결함 등이 발견된 경우 그 설계, 제조에 대한 보완 요청 또는 보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필요시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 안전관리계획은 안전과 유지관리를 위한 인력의 확보, 안전점검 또는 정밀안전진단 실시와 점검·정비, 보수·보강 등 유지관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 연 1회 이상 수립하여 이행하는지 점검 및 점검 결과를 보고 받는다. 관련 규정된 사항을 반기 1회 이상 점검하거나 점검하지 않는 경우 점검결과를 보고 받는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안전계획의 내용을 수정, 인력을 배치하거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여 집행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실시한다.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포함한 업무처리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해야 한다. 첫째, 유해·위험요인의 확인·점검에 관한 사항, 둘째, 안전을 관리하는 자, 종사자 또는 이용자 등이 유해·위험요인을 발견한 경우 해당 사항의 신고 조치 요구 및 개선에 관한 사항, 셋째,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상자 등에 대한 긴급구호조치, 시설 또는 교통수단의 긴급안전점검, 위험표지설치 등 추가 피해방지 조치, 관계기관 등에 대한 보고, 재해 원인조사 및 재해대책 사항, 넷째, 비상대응계획 등 안전관리체계 수립 여부 및 점검, 다섯째, 비상상황 또는 위급상황 발생 시 대피훈련에 관한 사항, 비상 상황의 위기사항 또는 재해사항이 발생한 경우를 대비하여 비상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대피훈련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번 제반 사안에 관해 현재 종합적인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이며,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내용이 불확실한 상태이다. 관련 법령에 따른 이행점검 시 관련 법령의 의미가 기존 법령인지 현행 법령인지도 다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과거의 선례와 같이 무고한 다수의 시민이 사망하고 중경상을 당한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으로 처벌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정확한 법의 기준이 적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애초에 근세 이후 국민들이 필요에 의해 주권재민사상에 기초해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를 위해 일할 국회의원 등에게 권한을 위임해 국민들의 안전복지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안전문화는 남의 안전을 고려하며 신뢰사회를 형성하게 만드는 바, 국민안전문화 확산으로 상호존중과 남과 공존할 수 있는 함께 사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기반이 되기에 중요시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한국 2023. 12. 31. 기준 1인당 GNI 3만 6194달러)이 되면 안전과 보건 그리고 건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민들이 대부분인 사회로 전화(轉化)되는 바, 지금은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때로는 규제행정으로 인해 CEO 등 개별적인 국민들에게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좋은 규제와 중대시민재해 예방전략이 곧 모든 국민들에게 안전행복을 주는 정책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는다. ▣ 김성제 ◇ 前건국대 대학원 안보재난관리학과 겸임교수 ◇ 서울시립대 대학원 재난과학박사(Ph.D) ◇ 고용노동부 평가위원, 안전기술과 미래경영, ESG 경영전략 공저출판 ◇ 수필가, (사)한국문인협회, (사)한무리창조문인협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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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국민안전문화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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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생각하는 학교 디자인
-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교육적 상상력이란 교사들이 실제 학생들에게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을 학생들에게 적합한 형태로 변형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의 정답, 가치, 신념을 갖고 있으면 교육적 상상력은 길러질 수 없고 발휘될 수 없다. 학교디자인 측면에서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을 정리하자면, 교사의 눈으로 보는 시각은 교육적 상상력이며. 학생과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은 교육적 감성이다. 온실 속 화초를 가꾸듯이 보호하려만 들지 않고 생명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하고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도록 도약하는 것이 교육적 상상력이다. 아이들은 낮에 혼신을 다해 놀다가 해가 저물면 집으로 들어온다. 언제나 따뜻하게 반겨주는 집은 고향이나 어머니에 비유된다. 그들은 우리가 바르게 설 수 있을 때까지 지켜 봐준다. 아이들은 언젠가는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야 한다. 놀이는 혼자 날기를 연습하는 활동이고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둥지를 떠나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시간을 허용하는 것이 바로 사회와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의 교육이다.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은 독일의 놀이터 디자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독일의 놀이터 디자인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알록달록 색을 입힌 우리 놀이터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원목으로 아이들의 놀이터를 구성해 있고 튀어나온 작은 가시를 그냥 두기도 한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위험한 부분도 과감하게 적용하고 있고 매우 활동적이다. 그렇다고 소홀하다거나 아무렇게나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그 위험성조차도 의도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놀이터는 아이들이 탐색해 체험하는 공간으로써 놀이터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 환경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 때 바위나 돌, 나무나 벌레들로부터의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놀이터의 채색도 그런 맥락에서 나무의 원래 색상 그대로 둔다.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면서 그대로 아름다운 색들이 연출되는 것이다. 인위적인 구조나 인공적인 느낌을 배제해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놀이터를 구성하고 있다. 처음부터 놀이터를 통한 아이들의 자유로운 체험을 방해할 수도 있는 완벽하게 안전한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독일의 놀이터 디자인에서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이 가장 교육적이라는 바탕 위에서 아이들에게 놀이터와 놀이기구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배움조차도 배제하지 않으려는 감성과 아이들에 뛰어다니는 공간 속에서 놀이기구만 고려하지 않고 놀이기구와 아이들이 어울려 있는 풍경에 대한 교육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놀이터를 통해 아이들이 배울 것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상상력을 통해서 아이들도 상상력을 키운다. 요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어른이 통제하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는 곳이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로 교육적 감성이다. 그리고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터를 따로 분리해서 만들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몸과 상상력으로 자유롭고 개성있게 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감성이라는 중심이 강할수록 상상력은 높이 높이 오른다. 교육적 감성과 교육적 상상력이 잘 반영된 학교는 학생들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제약하여 보호하며, 단호하고 선명하게 반응해 대응성이 높아 학생과 구성원들에게 활력을 준다. 지나친 배려는 지나친 제약이 되고 아이들의 경우 결국 과잉보호가 된다. 도움은 상대가 필요한 만큼 지원되어야 한다. 학교디자인의 목적으로 '도전과 안전' 이 두 가지의 요소는 상상력과 감성으로 바꾸어 표현된다. 도전은 상상력을 펼칠 기회를 통해서 날개를 펼 수 있고, 그러한 도전은 항상 안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양자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학교디자인의 핵심이며,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적 감성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필요와 요구를 제공하는 것이 학교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 김미영 ◇ 前신남초등학교 교장 ◇ 前부산한솔학교 교장 ◇ [특수교육 교구 제작의 이론과 실제] 저자 ◇ [학교디자인의 실제] 공동 저자 ◇ 부산교육대상 수상 ◇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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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생각하는 학교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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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학자(儒學者)의 덕(德)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등굣길, 출근길, 뱃길, 철길, 고속 도로, 산길, 들길은 그냥 자연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간곡한 인간만의 언어다. 그래서 길은 경건한 부름이다. 부름을 받아, 가고 온 길, 하나하나가 모두 인생이 지향해야 할 바를 가리키고 가르치며 부르는 말이다. 그 길로 가는 것에 대해 순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其善者僞也”, 즉 인간이 힘써야 할 것은 積僞다. 積僞(僞란; 거짓과 위선이라기보다는 人爲의 僞로 해석)란? 인위적인 노력을 쌓아가는 과정이며, 그것이 인생의 길을 여는 물음과 답이다. 더 나아가 自問自答으로만이 자신만의 고유한 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이며, 인생의 마지막에 나지막이 자신만의 미소를 만들어가는 숭고함과 자족이지 않을까? 존재의 근본 상태를 우리는 ‘덕(德)’이라고 말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추종하고 싶어 한다. 기차 안에서도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는 기능에 빠지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통로로 걸어 나가는 불편을 감수한다. 교회에 갈 때도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차를 몰고 가지 않는 불편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우리 세계에서 불편과 수고, 불안, 경쟁은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불안과 경쟁, 불편과 수고를 품는 넉넉함, 불편과 수고스러움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필수조건이다. 살아가는 힘은 지적인 수고와 불안을 감내하는 강인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불평 이전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다. 주어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고 다음은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를 자신에게 묻는 일이다.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물을 수 있고 답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온몸으로 원하여 얻는 답만이 자신만의 세계가 된다. 우리의 삶은 철저히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감각과 본능을 이겨내는 인위적인 활동으로 인간은 완성된다. 눕고 싶어도 눕지 않고, 먹고 싶어도 먹지 않고, 자고 싶어도 자지 않을 수 있고, 말하고 싶어도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데에서 그 사람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제대로 사는 일은 힘이 들고 불편하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을 비판하기는 쉽고, 자신이 직접 쓰레기를 줍는 일은 더 힘들다.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편리를 위해 차를 끌고 오기는 쉽고,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불편하다. 남에게 공부하라고 하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이 책상에 앉아서 공부 하기는 어렵고 책을 보면 눈이 감긴다. 다른 사람에게 생각 좀 하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자신이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공부는 질문에서 시작하고, 질문이야말로 수업의 밀도를 높인다. 그런데 질문은 어렵고 대답은 쉽다. 학생들에게는 질문하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은 질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질문하면 짜증을 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과정은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살이(살아감)에는 불편함이 가득 차 있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이웃 사랑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려면 반드시 일정 정도의 불편과 노고를 감수해야 한다. 德스러운 삶에는 반드시 불편을 감수하려는 강인함과 태도, 더 나아가 불편을 자초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사람의 본바탕이 작동하는 일은 이렇게 어렵고 불편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天地와 더불어 사는 것이고, 인간이 天地 사이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인간이 천지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만큼 인간에게는 책임 의식이 절실하다. 그러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철저한 실천을 주문하고 있는 바가 주역의 부름이다. 계사전 3-2에 “震无咎者, 存乎悔”라는 문장이 있다. 허물을 고쳐서 허물이 없는 것으로 만드는 마음을 격동시킬 수 있는 것은 후회할 줄 아는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그때 내가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후회를 한다는 것은 후회되는 일이 일어났던 단초(기미, 갈림길)를 명백히 파악하여 자기를 단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후회, 자기반성이라는 게 없다고들 한다. 대신 뭉개는 것만 있다고 한다. 이 말을 공자가 들으면 무엇이라고 할까?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나는 부족한 게 많아’, ‘노력할게’. 조선 역성혁명의 기초를 마련한 정도전은 “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 何以守位曰仁.”(계사 하)을 인용하지 않고 聖人之大寶曰位를 앞세운다. 그의 문제의식은 天地보다도 聖人에 두었다. 성인의 철학이 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파한 것이다. 천지 대자연의 마음은 만물을 生하는 마음이다. 반면에 인간의 마음은 서로 죽이고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성인은 天地之大德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살고 싶다고, 그래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마음이 들도록 민본주의 길을 마련한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당신 때문에 못 살겠다', `당신 때문에 되는 게 없다'고 악다구니를 퍼붓거나 그런 마음을 속으로 담아두면 정말 그리되고 만다. `아파도 당신 덕분에 낳을 것 같다고', `힘들어도 당신 덕분에 이 난관을 헤쳐 나간다고' 속삭여야 한다. 이쯤에서 자신에게 묻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되는 게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사는지, 아니면 애써 웃으며 `누구 덕분에', `무엇 덕분에' 일이 잘 풀리고 살만하다고 너스레를 떨고 사는지를 물어보고 답도 써보자. 우리는 잘못을 덮어씌울 사람을 찾는 게 일상이다. 이제는 `덕분에'로 갈아타자.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당신의 남은 생은 물론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와 모든 것들을 위해. `때문에'는 공멸과 나락의 화근이자 지름길이고 `덕분에'는 상생과 공영의 마중물이자 촉진제이며 인간관계의 디딤돌이다. 인간이 天地 사이에 들어와서 天地가 위태롭게 되었다는 것을 성현들이 깨닫고, 인간에게 바른 위치를 인식하게 하려고 周易을 만든 계기라고 한다. 길은 부름이다. 부름을 따라 태어나는 게 인간이 아닐까? 성현들의 말과 글, 성현들의 일상이 우리를 부른다. 길의 부름은 희망이기도 하며, 기다림이기도 하다. 인간이 삶을 꾸리는 세계인 문명은 인간이 그려 넣은(文) 세계다. 인간의 길에서 각자 누리는 문명의 수준이나 내용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에 좌우된다. 그 생각은 자신을 고유한 걸음걸이를 걷게 한다.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 1803∼1877) 선생은 지금의 한국은행 본점 자리에 살았는데, 그 안에 4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부자가 말년에는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今吾不勞而坐致之, 購書雖費, 不猶愈於齎糧而適遠乎?”(내가 성현들을 만나려면, 보통 같으면, 그 천리만리 길을 걸어가서, 말을 타고, 종을 데리고 가도 만날까 말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이 책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렇게 모셔다 놓고, 언제든지 나를 기다리고 있게 하고, 내가 만나고 싶을 때 가서 만난다.)라는 말로 자신만의 길을 만든 선각자가 아닌가? 또한 매천 황현은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길러온 지 500년이 됐는데, 나라가 망한 날을 맞아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위로는 하늘이 준 양심을 지키고, 아래로는 읽은 글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영원히 잠드는 것이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은, 자기 죽음이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요즘 학교 수업의 일부를 보면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잔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도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니, 외부 강사들의 이야기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실태를 듣곤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허물을 줄이려는 태도가 아쉽다. 덮어 놓지 말고 벗겨 놓고 살펴야 고칠 수 있다. 교육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민주 질서란 位가 없는 질서가 아니라 位가 正命을 얻는 일이다. 선생님이라는 位가 없이는 학생들을 지도할 수가 없다. 대통령도 位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다. 位가 없는 사회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位는 모든 조직의 위계적 원리를 의미한다. 길에도 位가 있고 있어야 한다. 내 집이 없다면? 내 나라가 없다면? 내 집도 내 길이 만들고 내 나라도 우리의 길이 만든다. 내 집과 내 나라를 위해 불편과 수고를 감수하고 자초하는 일은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길이지 않을까? 古의 훌륭함을 인정하면 동시에 今의 훌륭함도 인정해야 한다. 옛사람이 훌륭했다고 하면 오늘에 사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我의 훌륭함을 인정하면 동시에 他의 훌륭함도 인정해야 한다. 자기의 잘난 것만 말하지 말고 남의 잘난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큰길(大道)이지 않을까? 유교는 윤리며 상식의 합의일 뿐이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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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학자(儒學者)의 덕(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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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JROTC가 초급간부 확보의 씨앗
- [교육연합신문=박효선 기고] 현재 한국군은 병역기간의 단축과 봉급 인상 등 신세대의 군에 대한 인식변화로 타 공무원 대비 군 간부(장교 및 부사관)의 경쟁비가 최저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 진학 및 입시위주의 교육환경 등으로 올바른 국가관과 인성 및 품성을 교육하는 기회를 상실한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가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적 청사진이 재조명 되어야할 중차대한 시기이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해외 주요 나라에서는 건전한 민주시민 육성과 국가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리더 육성을 위해 중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JROTC JROTC는 ‘Junior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의 약자로서, ‘주니어사관’ 또는 ‘청소년학군단’이라는 용어로 번역되며, 일반적으로 영어 원문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를 받아들여 대한민국ROTC중앙회도 JROTC 분과를 조직 내에 설치하였고, 이어서 2017년 4월에는 사단법인 한국주니어사관(JROTC)연맹이 국방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아 출범했다. 한국에서 JROTC 제도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동아리활동으로 운영하는 제도로, 4차 산업혁명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을 개발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바, 우리사회의 귀중한 자산이며 미래 주역인 청소년들이 JROTC 프로그램을 통해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 그리고 올바른 국가관을 바탕으로 협동정신과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고, 군 관련 진로탐색의 기회도 갖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JROTC 제도는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도입한 것이다. 미국의 JROTC 제도는 1916년 국가방위법(National Defense Act)에 설치 근거가 마련되어 100년 이상 지속되어 이미 관련 법령과 세부 운영규정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국방부 및 각군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제도를 유지·발전시키고 있다. 현재 국방인력 환경은 현존 전투력을 유지함은 물론 향후 청소년 세대의 국가관과 자유시민의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 함양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절실한 상태이다. 이러한 시점에 JROTC 제도 발전을 위한 국가 차원의 보편적인 공감대 조성과 관련 법령이 시급하다. 미국의 JROTC 제도는 국방부 소관 법령과 규정, 그리고 각군의 규정에 근거하여 JROTC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교관급여, 각종 운영경비, 제복 및 교재 등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학교에서도 교육부의 예산지원으로 인해 교관급여의 1/2와 교육시설 운영비용 등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주요 청소년단체는 정부의 각 소관부처에서 관련법령에 근거하여 운영경비와 시설비, 그 밖의 경비를 지원받고 있다. 따라서 국방부에서도 JROTC 제도 발전을 위한 가칭「한국주니어사관(JROTC)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JROTC 제도의 성공적인 발전과 정착을 위해서는 JROTC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 인원에 대한 우대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앞서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JROTC 과정의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을 유지하는 학생은 사관학교 및 ROTC지원 시 가점 및 기초훈련과정 면제, 군 입대시 특혜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부여됨으로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본다. ▣ 박효선 ◇ JROTC연맹회장 ◇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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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JROTC가 초급간부 확보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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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방치된 킥보드, 보행자 안전과 화재 위험에 무방비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기록적인 폭염에 도심 여기저기에서 안전사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모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충전 도중 일어난 화재로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전기차 충전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90% 충전을 권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제조사에 책임도 있지만 안전불감증에 젖어 있는 우리들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잇따르고 있고 또 무질서하게 방치된 전동킥 보드가 보행자들의 보행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어린이들의 안전사고에도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또한, 이로 인한 화재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동킥보드 화재는 고온다습한 날씨에 많이 발생하고 있다. 35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에 거리에 방치된 전동킥보드가 안전에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최근 5년간 발생한 전동킥보드 화재가 총 467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그 대책이 시급하다. 전동킥보드가 보행자의 안전한 보행을 방해하고 좁은 인도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보행자와 자전거 운전자가 충돌 위험이 있는 인도도 많이 보인다. 현장에 나와 보면 답이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구역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탁상행정과 복지부동 자세에서 탈피해 현장으로 다가가는 적극행정으로 시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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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방치된 킥보드, 보행자 안전과 화재 위험에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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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선행학습? 복습이 더 중요하다.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우리나라 제1호 뇌과학자라 칭송받으며, 치매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뇌과학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존경받는 석학인 가천대 의대 서유헌 석좌교수(한국뇌연구원 초대원장 역임)는 수많은 강연, 교육에서 항상 ‘적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필자는 원장님께 그 사유에 대해 물어보았으며, 다음과 같이 답변을 주셨다. “아동의 뇌는 발달 과정에 있기에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한 맞춤형 교육을 해야지 무리한 주입식 교육은 학습에 관한 뇌 부분을 손상시켜 지속적인 학습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아이마다 각자 다른 뇌 발달 과정이 있기에 학부모, 교사는 이를 항상 지켜보면서 적절한 언어학습을 해야지, 무리한 조기 영어교육은 언어에 관한 뇌 신경회로를 망쳐서 국어도 제대로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하시곤 했다. 현재 국내 다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신경과학자들이 과도한 선행학습의 폐해를 지적하며, 아동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고 경고하고 있으나, 선행학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남들은 다 하는데’와 같은 부모의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약 4조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초고령화 사회, 저출산으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내 아이만큼은 더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사교육 시장은 더 커지고 있다. 선행학습 대부분은 주입식 교육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의 주입은 나중에 정보를 수정하기 어렵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뇌는 인지된 정보를 일단 해마(hippocampus)에 저장한다. 그리고 수면 동안 그 정보를 다시 끄집어 내 고차원적 뇌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frontal lobes)과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서 정보를 분류하고 재조립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해마에 저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선행학습으로 뇌에 각인된 잘못된 정보는 수정하기 어렵기에 다수 전문가들은 선행학습을 말린다. 오히려 복습을 통해 정보의 정확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사교육 시장의 유명한 강사들도 방송 등에서 선행학습에 매달리지 말라고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유아기 때 발달된 뇌는 죽을 때까지 그 지능을 유지한다는 근거 없는 속설과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뇌는 망가지고 있다. 전두엽에 과잉 정보를 주입하는 것만으로는 학습량에 한계가 있다. 또한 주입식 교육으로 올바른 인성 육성,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는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할 수 있다. 최근 수능 만점자로 의대에 진학한 수재가 여자친구를 살해하였던 사건을 볼 때(물론 극단적인 사례로 보편화하기는 어렵다), 오로지 입시경쟁만을 위한 교육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유아기, 아동기는 입시경쟁보다는 교사, 학부모와의 강한 스킨십으로 오감을 자극하여 뇌가 전체적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에 자극을 주어 올바른 윤리관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한 외국어에서도 국어를 잘하는 아이가 외국어도 잘하는 말처럼 국어와 문법, 특히 문법에 대한 체계를 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도 인간처럼 의사소통을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언어와 다른 점은 문법에 있다. 동물은 생존 본능, 배고픔, 천적에 대한 공포 등을 위해 신호를 주고받지만 그게 전부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문법이 수반된 언어를 사용하기에 고차원적인 표현, 추상적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국어 문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문법에 대한 개념, 체계를 우리 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외국어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 주입식 교육으로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초연결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원하는 학습,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창의성도 발휘되고 언어능력도 발달이 되겠지만, 그것이 무리한 선행학습과 과도한 지식 주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다른 두뇌 발달 과정을 가진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돌봄의 의무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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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선행학습? 복습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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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다뉴브강의 야경 부다페스트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아내와 함께 동유럽과 발칸반도 6개국을 여행한 지 벌써 8일 차,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3시간 30분 버스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다. 동유럽 2대 야경 부다페스트에서 나이트 워킹 투어로 눈부시게 멋진 전경이 보이는 ‘어부의 요새’,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해 건설한 영웅광장, 역대 헝가리 국왕의 위관식이 거행된 마차시교회 전경 등을 관람해 밤 10시 30분에 예약된 다뉴브(도나우)강을 따라 유람선에 탑승하여 유럽 최고의 야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부다페스트 최고의 관광을 위해 우린 전용 유람선으로 1시간을 둘러봤다. 2001년 중국 상해, 계림, 항주, 소주를 여행했을 때 계림의 이강(離江)에서 배를 탔을 때는 주변 경치가 우리와 다른 이색적인 산으로 한 폭의 산수화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인공으로 된 디지털 문명으로 승화된 그림이랄까? 우리나라도 서울의 한강, 부산의 광안리 야경도 독보적이지만 세계인이 어울려 역사적 현장에서 보는 즐거움은 사치스러운 낭만도 함께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왜 하필 국명이 헝가리(Hungary)일까? 평소에 의문이 많았는데 그 나라를 직접 방문하니 더욱 궁금증이 발동했다. 훈족, 흉노(匈奴)족, 헝거리(배고픈) 등 연상되는 단어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기원전 3세기에 북아시아에 존재한 훈족은 몽골을 기원으로 스키타이와 게르만족의 혼혈이라고도 하는데 코트족과 게르만족을 정복, 로마 영토로 도망가게 한 후 유럽에서 방대한 영토를 세운 종족으로 전쟁 때는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가죽까지 벗겨 잔인한 살생을 했기 때문에 게르만족들뿐 아니라 유럽인들은 치를 떨었다고 한다. hun에서 어원을 연관시킨 것 같다. 흉노족 글자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어감이지 않은가? 중국의 진시왕은 흉노족 침입을 막으려고 그 장대한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하니 그 희생자는 얼마나 됐으며 부역을 한 첫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이 된다. 발음이 비슷한 영어의 ‘배고픈’( hungry)은 또 어떤가? 인간에게 가장 가혹해 비참한 것이 굶주림 즉 배고픔인데 그땐 영어를 하찮게 여겨 그런 국명을 지었을까? 그 수도 ‘부다페스트’는 또 어떤가? 언덕 지역인 부다와 평지 지역인 페스트가 합성된 수도 부다페스트는 더 어감이 좋지 않다. 페스트는 일명 흑사병으로 쥐벼룩에서 전염되는 병으로 1차 6세기~8세기에 5천만 명을, 2차 14세기~19세기까지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공포의 전염병에서 국명과 함께 수도(首都) 이름도 참 우연이고 묘한 이미지를 느끼는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사의한 나라다. 버스가 도착해 시내를 거니는 사람들 모습을 보니 얼굴은 서구인이지만 키가 대체로 작은 서양 사람인 점이 이색적이었다. 반대로 강 이름은 참 예쁘고 정감이 간다. 영어로 다뉴브, 독일어로는 도나우 강이다. 독일에서 발원해 중부 유럽과 남동유럽을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이 강을 거쳐가는 많은 나라와 수도들이 있지만 유독 다뉴브 하면 부다페스트가 유명해진 것은 그 화려한 야경 때문인 것 같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쓴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이오시프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도나우강의 잔물결’도 유명하다. 그 아름다운 강에 우리에게는 2019년 5월 29일 이 강에서 관광 중이던 한국인 25명이 다른 유람선과 충돌하여 침몰 사고를 당한 아픈 기억도 있다. 야경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 제2의 큰 국회의사당 전경이다. 세계 제1의 국회의사당 건물은 영국의 템스강 북쪽에 위치한 복도 길이가 4.8km나 되는 웨스트민스터 궁인데 20여 년 전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그 외모와 언뜻 비슷한 모습으로 보였다. 건국 천년을 기념해 세워진 건물 외벽에는 88명의 통치자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언덕인 부다와 평지인 페스트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인데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고전적이면서 웅장한 자태의 다리로 그 너머로 보이는 부다성, 마차시 성당, 그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19세기 후반 축조한 어부의 요새(어부들이 민병대를 조직해 성채를 지킨 데서 유래) 등이 조명과 함께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2002년도 코로나가 해제되고 난 후의 도나우강 선택 관광 비용이 20유로였다고 하는데 불과 2년 만에 3배 오른 1인당 60유로(약 한화 9만 원)이니 적은 비용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에서 선택 관광비 중 제일 높은 것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 방문이었는데 1991년 유고 내전 때는 연합군의 함포 공격을 막기 위해 유럽의 지식인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파괴를 막았다고 할 만큼 가치 있는 곳이었는데, 첫째 성벽 투어, 둘째 아드리아해를 배를 타고 성채 도시를 둘러보면서 약간 올려 보기, 셋째는 소르지아 산에 밴을 타고 올라가 성채 도시를 바다와 함께 내려다보기인데 1인당 110유로였다(한화 165,000원 정도). 바다를 낀 도시의 주황색 지붕과 하얀 대리석의 이색적인 마을 풍경과 코발트색 바다로 해양과 휴양도시를 감상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를 느낄 만한 코스였다.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전경은 낮에도 크고 웅장해서 멋있지만 밤에 보는 야경은 환상적이다. 우리는 전세 낸 그 유람선에서 선내와 선상을 오가면서 탄성을 질러가며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나이를 초월해 남녀를 불문하고 마치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에서 즐기는 그런 행동으로 봄의 쌀쌀한 야간의 날씨를 만끽하면서 다시 오기 힘들 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람선의 춘야를 맘껏 즐겼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보니 와이프는 소중히 여기던 선글라스도 없어진 줄 모르고 10여 년 전에 친구들과 방문했을 때는 낮에 유람을 해서 또 다른 풍경에 감탄을 했고, 아쉬움과 동시에 즐거움에 푹 빠진 하루가 됐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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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다뉴브강의 야경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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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하루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삼라만상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은 아마 이름일 것이다.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절대의 세계는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없기에 ‘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相對의 세계에서는 記憶하고 기리기 위해 이름을 짓는 것이었으리라. 우리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를 한자에서 살펴보면, ‘이름 名’이라는 글자는 ‘이름’과 ‘명’이라는 우리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름이라는 글자는 ‘∼에 이르다.’ ‘드러낸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名’이라는 글자는 ‘해의 발(夕)’이 현재에 이르는 곳(ㅁ)를 의미한다. 따라서 태어나서 현재에 이르는 곳이 名이다. ‘어디에 이르다.’이다. 그래서 이름을 듣거나 인터넷에서 이름을 치면 그 사람의 현재 위치나 상황을 알 수 있다. 名(이름 명)이라는 한자에서, 이름을 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우리말 명은 ‘드러나다’라는 뜻을 갖는다. 이름을 보거나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나이나 관직에 이르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지위에 맞게 언행을 일치하게 하려는 선인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사회 기풍은 어디에서 찾고 볼 수 있을까? 이제까지의 ‘이름 명’하고 외우는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자는 모양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왜 ‘명’이라고 했을까? 이름도 명도 우리 말이지 않은가? 우리말을 잘 알아야 한자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한자의 생명은 음가(소리)를 아는 데 있다. 그러면 우리말도 한자도 잘 알아서 어휘력의 신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어휘력이 중요하고 그래서 어휘력 신장을 위한 각종 연수회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 말의 의미를 가르치는 연수회는 있기나 한가?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을 대변한다. 그래서 인사 발령 시기가 되면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기관장으로 온다는 이름만 보고도 그 기관의 미래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인간의 언어 시작 또한 사물이나 인간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했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저물어가는 나라에 절망하고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이야기했던 한 청년인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의 첫아들에게 지어준 필립(必立)이라는 이름은 조국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역사에 기록된 사람의 이름을 보면서 손에 불끈 힘을 쥐면서 “나도 저처럼 되리라.”는 희망의 경험 아니면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 왜 그랬을까?”하고 힘이 빠지면서 이름값도 못한다고 생각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私心을 버리고 公心으로 살았다는 삶의 가치를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을 드리는 것이리라.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가치 있는 삶을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같은 이름을 갖고서 빛나는 이름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름에는 부모, 온 가족의 희망이 응축되고 이어져 내려와서 지금에 있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김소월이 ‘招魂’이란 시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에 헤어진 이름이여!”라고 절규한 것도 이름과 생명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룬 것이라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 사람의 이름에는 깊은 철학과 운명이 나타나 있다. 가르침이란 어쩌면 후세들에게 좋은 이름을 남기도록 마음을 다잡고 행동으로 옮기는 최고의 값있는 어른들의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배우는 사람이 “나도 저분처럼 되어야지”하고 다짐을 하게 하는 과정은 아닌가? 그저 남의 이론이나 먼저 읽은 것을 전달해 주거나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무나 돌에도 무늬가 있듯이 사람의 말과 행동에도 무늬가 있다. 가르침은 제자들로 하여금 진리에 도달하도록 하는 데 있다. 진리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삶의 이치인 것이다. 가르침의 내용은 실천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란 그 속에 사는 어른들의 모습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어른들이 소중히 여기는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럼 어른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는 모습은 아닐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외국의 우수한 문물을 받아들여서 우리의 것을 세계의 것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혹시나 외국에서 공부했던 것을 자랑하고 그 문물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혹시나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것을 폄훼하는 일은 없었는가? 더 나아가 우리 후세들에게 事大主義 사고를 주입하게 한 일은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말을 배우는 것보다 외국말을 먼저 배우게 하고, 거기에서 외국의 것이 우수하다는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일은 없었는가? 대화 중간에 영어를 섞어서 사용하면 많이 배운 사람이라는 태도를 부추기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가? 이름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로부터 구분되게 해줌으로써 ‘자아’를 부여하게 한다. 그래서 이름은 인간에게는 거룩하고 무거운 과제라고 이규호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남이 아닌 본인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학교에서는 이름을 소중히 하는 행사는 있는가? 아니면 출석부는 있는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눈 맞춤을 해 본 적은 얼마나 되는가? 자신의 마을 이름과 유래를 아는가? 가슴에 기억하는 이름은 누구인가? 이제마(李濟馬, 1838~1900)는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보약은 현인을 현인으로 알아볼 줄 아는 것 외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賢其賢의 사회 기풍이 보다 좋은 사회로 가는 보약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賢者들의 이름이 이야기되는 사회를 그려보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 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하는 안창호 선생의 외침이 주는 의미를 숙고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의 자세는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안부를 묻고 꿈과 희망을 그리는 자신과의 아침 인사는 유일무이한 삶의 향연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더 나아가 하루에 한 분의 성인을 불러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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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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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신경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최근 대구광역시 교육청에서 장애인 차별 발언 논란이 있었다. 장애인은 일반인과 다르다는 그릇된 인식이 여전히 사회에 팽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에는 유명 웹툰 작가의 자폐 아동 소송 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피해와 논란이 제기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장애인, 특히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개선은 미진하며, 계속 개선돼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사회적 구분에 의한 것이며, 신경과학적으로는 뇌의 구조와 기능이 각자 다르다고 본다. 예를 들면 자폐아의 경우, 뇌 발달 과정이 다른 아동보다 느려서 자폐 성향을 보이는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뇌 발달에 따른 아동에 대한 자세한 관찰로 이를 과학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뇌 구조와 기능이 일반인과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를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이라고 하며 ADHD, 자폐증, 서번트 증후군과 같이 유아 뇌 발달을 중심으로 다양한 증상을 연구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연구팀은 ADHD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ADHD의 대표적인 증상인 감각에는 빠르게 반응하나 지속력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원시시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수렵과 채집이 유일한 생존이었던 시대에는 자원을 빨리 채취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에 빠른 감각과 대응이 중요하며, 이러한 요소가 유전적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발표했다. 농경사회 이후, 정착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기준으로 ADHD를 보면 이상행동이지만, 신경과학적으로는 뇌에 저장된 생물학적 요소의 발현과 계발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다. 과거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며, 종속된 관계라고 오랫동안 인식되었으나, 르네상스와 근대 산업혁명 이후, 여성 인권이 향상되며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꽃인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0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극단적으로 정신적 질병으로까지 지목되었던 동성애는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인식이 전환돼 법률적 권리로까지 인정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기본권에 가까운 개념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최근 법률에서 동성 부부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현재 항소심 중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만큼은 잘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신체장애는 최근 신경과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융합기술 발전으로 다양한 혁신적인 대체 기기, 재활 기기가 등장하고 있어 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 정서장애를 겪고 있는 장애인은 외형으로는 일반인과 구분하기 어려우며, 또한 사회적 수용성이 낮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부는 「교육기본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정서장애를 포함하는 ‘국가교육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장애인과 일반인들의 통합학급을 운영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일상생활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장애인에 대한 교육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통합이라는 교육목표에도 불구하고, 교육-취업으로 이어지는 생애 전주기의 돌봄 과정의 활성화가 더 필요한 현실이다. 국가 주도의 장애인 통합 교육도 중요하지만, 학부모, 교사, 간병인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신경과학에 근거한 뇌 발달 성과의 적용, 그리고 교육-복지-의료의 각 분야에 대한 장애인의 처우 개선을 위한 통합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사회적 인식, 이해, 실천, 정서의 4개 분야에 대한 장애인의 입장에서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장애인 입장에서 우리 일상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과학에 기반한 경험적, 실증적 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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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신경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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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너무나도 복잡한 입시전략, 재미있고 쉽게 이해하는 통로가 필요해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필자가 얼마 전 유튜브와 같은 SNS를 사용하는 걸 최대한 자제하라고 했지만,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하여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SNS 사용 시간을 최대한 줄이면서 목적 지향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최근 관심 사항은 2028년 대학 입시 개편으로 고교학점제와 같은 정책 변화이다. 각종 검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교육부의 정책 자료는 너무 방대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각 대학별로 어떠한 입시전형이 나올지 모르기에 ‘공부 아닌 공부’를 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교육 크리에이터(Creator)를 중심으로 교육 정책, 입시전략 등을 압축해서 정리한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사교육 시장에서 유명한, 소위 ‘일타 강사’를 내세운 것부터 수험생들이 나와서 입시를 설명하는 것 등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교육 콘텐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채널은 따로 있다(구독자 수 약 150만 명). 크리에이터는 5수로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자로, 본인의 입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의 변화, 흐름, 전망을 제시하고, 학과 진로와 취업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한 개인 맞춤형 교육 컨설팅까지 제공하고 있어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 15분간의 영상임에도 실속 있는 내용, 예능으로 포장된 집중감으로 필자도 구독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교육정책 홍보에서도 재미와 예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뇌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두 가지로 구분한다. 2009년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공동연구팀은 뇌가 재미를 느끼는 원리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추리와 추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우측 전두엽(Frontal Lobes)이 크게 반응했으며, 논리적으로 충돌을 느낄 때(개그, 코미디적 요소)는 시각과 갈등을 담당하는 전대상 회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뇌는 두 가지 영역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고 한다. 재미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의 수준을 넘어서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등 뇌과학 기반의 교육 방법 개발에 큰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의대 증원으로 인해 수도권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의대가 아니면 대학이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는 것 같고, 초고령 사회, 저출산(저출생)으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에 적절한 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의대 말고도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회 변화의 새로운 물결에 대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것을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육과 정책 홍보를 위해서는 재미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뇌는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만 시각적, 청각적으로 반응한다. 대통령이 혁신 행정의 사례로 제시하였던 ‘충주시 홍보맨’과 같은 사례처럼 교육정책 홍보도 재미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 재미있는 가운데 진지한 콘텐츠의 내용과 시대의 흐름을 알려 정책 홍보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키워드만 강조하는 고리타분한 홍보 영상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기존의 획일적인 안내, 홍보방식에 뇌는 반응하지 않는다. 공부도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 효과성이 있듯이, 홍보에서도 재미를 강화하는 양질의 콘텐츠로 국민 수요를 충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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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너무나도 복잡한 입시전략, 재미있고 쉽게 이해하는 통로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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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프라하의 봄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이번 동유럽과 발칸반도 6개국 여행(2024.05.24.~06.04.)은 10여 년 전 아내가 친구들과 다녀온 많은 여행지 중 꼭 부부가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해서 과도한 부담과 활동 에너지를 고려해 함께 용기를 낸 곳이다. 笑而不答 心自閑(소이부답 심자한; 웃고 대답 안 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구나)의 자세로 경치나 사물을 보고 나 스스로 즐기기만 하면서 마음에 여유로움을 얻어 편안한 자세로 일정을 보내려고 했다. 위의 문구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중에 나오는 말로 나도 10년 후쯤 되면 “그 시절 참 아름다웠다. 지금은 내가 어떤 모습과 어떤 상태로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문득 들자 참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 제목을 ‘프라하의 봄’ 대신 2일 차 방문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으로 널리 알려진 ‘미라벨 정원’이 됐을 것이고, 음악을 좋아했다면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그림을 좋아했다면 비엔나의 ‘쉔부른 궁전’ 혹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이 됐겠지만, 나는 우리나라에 6.25 때 북한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미운 소련이 60년대 동구권인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동구 여러 나라에 절대적 세력을 떨쳤던 그 나라들에 청소년기에 깊은 연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고, 특히 1968년 1월 5일 집권한 알렉산드르 둡체크(당 제1서기)를 비롯, 개혁파들이 민주화를 시도하자 자본주의 부활이라 믿었던 소련이 8월 21일 밤 장갑차와 탱크를 보내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점령, 시민의 민주화 운동을 강제로 막아 전 세계의 비난이 가중되었고 72명이 사망하고 266명이 중상을 입은 역사적 사건이다. 1969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제가 수립돼 1993년 결국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고 60년대 경제 침체, 서툰 소비에트식 산업화 방식 등으로 한 때 공산주의 국가로 낙후됐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신성 로마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 독일과 국경을 이루면서 독일인의 박해와 지배를 받았고, 1945년 5월 나치독일 항복 후 소련군 진주, 1989년 11월 동유럽 혁명결과 바출라프 하벨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자유주의 정권이 됐으며 1990년 사회주의 공화국서 연방 공화국주의로 전환, 1991년 6월 체코 주둔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연방제 공화국이 되고 체코가 유럽연합, EU, 나토에 가입하자 반대하던 슬로바키아는 결국 연방을 해체하고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군사 무력 마찰 없이 해체된 이 사건을 ‘벨벳이혼’이라 부른다.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연속극 ‘프라하의 연인’을 방송해 어떤 이들은 프라하를 더 잘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패키지여행으로(package tour) 32명이 함께 출발했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동유럽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전 동독쪽) 등 6개국 12일간의 일정이다. 인천에서 KE945를 타고 프랑크푸르트까지 13시간 50분을 타고 갔다. 20여 년 전 서유럽 6개국을 여행했을 때는 독일항공 루프트한자를 타고 갔는데 10시간 정도 걸렸다.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라 러시아 상공을 통과할 수 없어 회항하기 때문에 똑같은 코스에 시간이 엄청 소모됐다. 패키지여행은 각자 다양한 집단이 모이기 때문에 때론 엄청 불편할 수도 있고 여행을 망칠 수도 있어 요즘 젊은 층들은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을 선호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고집과 주장이 주위를 어지럽게 만들며 반대로 한 팀의 배려와 향기가 여행을 향기롭고 훈훈하고 화목하게도 만들 수있다. 다행히도 이번 팀은 서로 배려하고 양보할 줄도 알고 상대를 위하는 팀들이라 여행이 끝난 지금도 그 얼굴들이 한 번씩 떠 오르고 또 역사적 배경과 설명으로 지적 양식도 고양되고, 분위기를 잘 리드한 K가이드와 각 나라 마다 친절한 현지 안내원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여행, 언제나 가슴 설레고 떠나고 싶은 욕망의 심연, 막스 피카르의 '사랑의 얼굴'이란 시 속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이 있다. 지구가 그 얼굴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다. 그러나 '그 얼굴 속에 꽃들이 남아 있다.'는 시구처럼 바로 여행 그 자체가 아름다운 여인이고 지구이고 내 마음 속에 꽃이 되어 남아 있다. 알프스 산속의 요정 같은 낭만적 오스트리아도 좋았지만 1917년 3월 러시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유라시아의 옛 국가사회주의 소비에트연방(소련)이 지배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는 꼭 가보고 싶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곳이다. 헝가리 하면 부다페스트, 그 부다페스트를 가로질러 흐르는 다뉴브(도나우)강에서 배를 타고 즐기는 야간 관광, 체코슬로바키아로 배웠던 우리는 1993년에 두 나라가 분리되었지만 동구 공산권 중에서 공업이 가장 앞섰고, 1968년도 ‘프라하의 봄’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새겨진 그 바츨라프 광장을 꼭 거닐어 보고 싶었다. 계절적으로 체코의 봄은 4~6월이고 여름은 7~8월 가을은 9~10월, 겨울은 11월~3월까지로 대체로 길고 여름이 짧다. 여기서 말하는 봄은 언제나 긴 겨울에서 벗어나는 그리움과 희망, 계절적 순환을 넘어서 삶의 한 단계 시작, 젊음과 생명의 상징, 생동감, 화창함, 소생, 화려하며 아름다운 계절이면서 함축의 미,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봄은 음악, 미술, 시와 소설 등 문학, 연극 등 모든 예술 속에 아름다움과 비애를 모두 표현하며 개인적 갈등을 넘어서서 역사성을 봄과 대립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상화(李相和)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에서도 자연의 순환적 질서와 인위적 박탈을 현실로 대립시키면서 느끼는 감정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고 봄에 낮잠을 자다 잠시 꾼 꿈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하고 덧없음을 표현한다. 프라하의 봄도 한낱 일장춘몽이 됐다. 여행 10일 차에 드디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했다. 저녁 메뉴는 보헤미안 립, 오리지널 갈비와 흑맥주 한잔으로 긴장된 기분을 풀었다. 저녁 식사 후 구시가지 광장을 방문했는데 세계 각국의 어마어마한 사람들로 가득했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 몇몇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이색적인 총각 파티를 하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거리에서 친구들이 요구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 하면서 우정도 돈독하게 하고 어른이 되는 험난한 과정도 익히며 추억도 쌓는 마치 우리의 ‘함잡이 행사’를 연상하게 됐다. 그리고 최고의 야경으로 일컬어지는 프라하의 야간경치를 보면서 밤에 볼타바(몰다우)강 위에 놓인 체코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의 하나인 ‘카를교의 야경’, 불이 들어온 프라하성을 직접 내려다보고 호텔로 향했다. 다음날 현지 교민 가이드를 만나 제일 먼저 프라하성에 도착했다. 프라하의 상징인 화려하고 웅장한 비투스성당을 방문했지만 미사가 열리는 관계로 실내 입장은 불가해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알찬 설명을 듣고, 아픈 역사를 가진 바츨라프광장에서 프라하의 봄에 관한 설명을 듣고 노면전차인 트램을 타고 카를교를 향했고, 다리 입구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행렬을 목격하고, 교탑에 올라 바라본 구시가지와 카를교의 모습을 촬영, 그 후 구 시청사와 천문시계의 정각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에는 기대와 함께 2분도 안 된 짧은 시연에 다소 실망을 느꼈다. 시가지를 걸어가는 여기저기 공원이나 공간에서는 어린 청소년들이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모두가 K-POP을 연습하는 모습이란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말을 배우려 하고 체코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는 인기가 높다고 한다. 20년 전 서유럽 관광 때와는 우리의 위세가 엄청 달라진 격세지감을 느끼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대형버스가 진입할 수 없는 프라하의 옛 모습을 ‘올드카’를 타고 둘러보는 선택 관광을 통해 걸어서 갈 수 없는 언덕까지 올라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행운도 맛봤다. 건축박물관이라 불리는 천년의 고도라고 할 수 있는 프라하는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양식, 바르크양식, 네오고딕 등 모든 양식을 아우르는 국제적 건물들을 보면서 한반도 국토의 1/3밖에 안 되고 전체 인구가 천만 명 정도인데 나라가 꼭 중세도시를 방문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체코의 대표적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 많은 예술가들이 거주했다는 황금소굴을 지나 다양한 볼거리로 항상 붐비는 구시가지 광장을 둘러보고 시청사와 시계탑, 수백 년 체코 조상들의 공간과 모습을 간직한 성당들, 즉 그들의 종교문화의 강성과 석조 문화건축의 융성 그 자체가 그들의 오랜 역사이자 삶이었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나라와 사람들과 역사를 보면서 그들의 위력과 장점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고 내 삶의 주인일 때 비로소 타인과의 이상적인 관계도 수립되고 동반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며 내가 나를 긍정할 때 세상에 대한 긍정의 힘도 생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내가 중심을 잘 잡을 때 모든 설명이나 사물들을 바르게 인식하게 된 것은 내 나이가 고희(古稀)를 지나 희수(喜壽)를 향해 가기 때문일까?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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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프라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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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메타버스, 뇌융합 기술로 다시 부상한다.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몇 해 전 메타버스(Metaverse)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었다. 페이스북(Facebook)은 회사명을 메타로 바꾸면서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메타버스는 고글을 이용한 시각 중심으로 게임 등 일부에서만 사용되다가 보니 다소 주춤했었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과 인공지능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메타버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 기기를 청각, 후각, 촉각 등과 연결하여 가상 세계에서도 실제 감각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가상 세계를 실제와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을 ‘Brain Machine Interface(BMI)’ 또는 ‘Brain Computer Interface(BCI)’ 하며, 의료계에서는 정서장애 치료를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기술을 응용해 실제 체감형 가상현실 세계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유럽,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동물보호를 위해 동물실험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미국은 화장품 개발 실험에서만 사용되던 동물실험도 2035년부터는 폐지하는 등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의생명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기존의 동물실험을 벗어나 메타버스를 이용한 전임상 실험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동물, 인간의 신체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여 가상 세계에서 실험하는 방법, 즉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으로 전임상 단계를 대체하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연구 과정, 데이터 실증 검증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메타버스는 교육 분야에서도 충분한 활용 가치가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문화 인프라(박물관, 전시관, 체험관 등)를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메타버스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교육 방법은 가상 세계에서 진짜와 같은 체험학습으로 다양한 두뇌 발달을 도모할 수도 있으며,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전 세계의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교육계는 학생들의 학습 의욕 고취를 위하여 게임과 교육을 합친 ‘게이미피케이션(Neuro-Gamification)’을 도입하고 있다. 교육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미국 교육학자 듀이(John Dewey)는 ‘놀이 중심의 교육이 학생들의 재미와 흥미를 일깨우고 교육 효과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메타버스와 게이미피케이션의 융합은 우리 교실에서 새로운 기회의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런 방법을 당장 적용하는 것은 아직 기술적 한계 등 여러 제약으로 시범사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시범사업을 확대하여 교육 성과를 축적하고, 실효성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뇌과학, 인공지능 기반의 메타버스와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교육은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강화하면서도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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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메타버스, 뇌융합 기술로 다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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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기유발과 안전교육
- [교육연합신문=서동욱 기고] 교사들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동기유발이다. 동기(motive)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뜻하며 동기유발은 동기형성(motivation)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교육학 용어로 일정한 동기가 발생하는 상태를 뜻한다. 모든 학습 행동은 동기유발에서부터 시작되며 교사들은 동기유발을 그날 수업의 성취기준과 연결하여 수업을 설계한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중장기 프로젝트가 있다면 확실한 동기가 있어야만 긴 시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확실하게 동기가 유발된 학생들은 차원이 다른 학습 능력을 보여준다. 나는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하고자 먼저 학생들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주로 포커스를 맞춘다. 긍지와 자부심을 원한다면 그 점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학급 교육과정을 설계하며 자신감을 원한다면 난이도를 조정하여 단계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학급 교육과정의 설계도를 수정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 점은 교사와 학생의 심리전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설계된 의도대로 학생들을 순차적으로 끌고 들어와야 하는 심리전. 나는 이 심리전에 매우 익숙한 편이며 나의 전문분야인 안전교육과 불조심 어린이마당 대회 준비과정에서 이러한 점은 빛을 발하기도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대회를 열심히 준비하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무리하지 못하도록 말린다. 건강이 상하니 무리하지 말라고. 그리고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취하라고. 열심히 하라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이미 동기유발은 실패한 것이다. 하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동기유발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는지 안 하는지 감독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스스로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그것이 동기유발의 기술이고 지도의 기술이다. 차원 높은 동기유발은 예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동기유발이 충분히 된 상태라면 이제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습방법을 제공하여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정신무장이 되어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달리기라는 재미없는 행위에 재미를 심어주는 것이다. 주로 초등학생들이다보니 인지발달 수준에 맞춘 게임 등을 개발하고 수업과 연계하여 자연스럽게 학습대상을 익히도록 설계한다. 놀이인데 놀이가 아닌 학습, 학습인데 학습이 아닌 놀이가 되도록 하면서 학습을 생활화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것이다. 자. 이제 동기유발과 흥미로운 학습방법의 제공이 있었다면 보상이 있어야 할 시기다. 어른들도 보상이 없는 채로 스스로 채찍질하며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는 쉽지 않은데 어린아이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학생들은 흥미로운 학습을 하다 보니 저절로 보상이 따라오게 되고 이 보상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과정에 대한 존중과 참여상과 같은 상을 주고 동시에 보상에 대해 적절히 차등을 준다. 즉, 출발점 능력이 다르니 노력한 정도를 측정하는 정성평가와 결과에 대한 전통적 정량평가를 같이 병행하는 것이다. 참여를 열심히 한 과정과 성장을 한 정도에 대해서는 정성적 평가를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면서 동시에 정량적 평가를 하여 더욱 잘 해야겠다는 동기를 다시 부여하는 것. 동기유발과 학습, 보상 다시 동기유발로 이어지는 무한궤도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임에 대한 확실한 언급을 한다. 나는 이미 내가 지도하는 대회에 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다. 이쯤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것을 해야 하는지 수업과 어느 부분을 연결해야 하며, 현재 학생들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학생이 진심으로 임하는지 아니면 하는 척만 하는 것인지 보면 바로 한눈에 파악이 된다. 최상의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길을 알려주지만 결국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학생이다. 내가 대신 그 길을 가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책임의식을 가르치는 것이 시대의 화두가 된 민주시민교육이기도 하다. 환경을 조성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를 하되 하지 않을 경우는 그에 대한 합리적인 책임을 지는 것. 종종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학습지도를 하는 경우 아이가 잘 하지 못하면 화가 나거나 감정이 앞서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나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 되었으면 하는데 자꾸 권하는 길로 가려고 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에 화라는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감정이 앞서면 결국 아이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 시대의 스승 법륜스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라고 하면 오히려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아이의 심리를 읽고 역(逆)으로 잘 활용하여 동기유발을 시키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이 방법은 아이마다 다 다르다. 정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교육에 대해 배운 교사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공학의 기술적 방법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안전교육에 대한 가장 확실한 동기유발은 무엇일까. 행복하고 건강하려면 안전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다치지 않고 슬기롭게 가족과 행복을 영위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동기유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서동욱 ◇ 초등학교 교사 ◇ 미국 화재폭발조사관(CFEI) ◇ 소방안전교육사 및 소방학교 외래강사 ◇ 한국119청소년단 지도교사 ◇ 소방안전교육사 국민안전교육실무 교재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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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기유발과 안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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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과 행동에 품격 있는 사람,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사람은 말과 글로 소통한다. 다른 동물들도 나름대로 소통 장치가 있지만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지성은 물론 살아온 환경까지 담아낸다.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말은 신중하고 또 진중해야 한다는 금언이다. 그래서 口禍之門이라 하지 않는가? 요즈음 사람 다르고 말 다르고 실천도 다르다는 말을 자주 하고 듣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않는진기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일까? 한 사람이 말을 걸면 상대는 자신의 휴대전화기에 집중한다. ‘너는 너 하고 싶은 것 하고, 나는 내 하고 싶은 것 한다.’는 요즘 대화의 풍경이다. 각자도생인가? 공자는 '부지언(不知言)이면 무이지인야(無以知人也)'라 했다. 말의 잘잘못을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정당성과 그릇됨을 분별할 수 없다는 말 아니겠는가? 더구나 우리말과 한자를 몰라 어휘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고, 그 말과 글의 어원을 모르고 말하기 때문에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도통 아리송할 따름인 상황을 맞고 있을 뿐이다. 가을밤 뜨는 ‘달’이란 무슨 의미인가? 처음 글자는 만든 사람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나타냈을까? 고등학교 교과목에서 ‘家庭科’인가 아니면 ‘家政科’인가? 만약 ‘家政科’가 옳다면 왜 그런가? 거기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말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될 것이고, 따라서 거기에 맞는 행동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지도자들의 말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한다. 같은 말과 글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익혀지는 횟수가 늘어가고, 그런 삶을 실제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많은 가치관의 혼돈과 좌절을 하게 된다. 말이란 실천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믿을 수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 말하는 사람만 있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불통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러한 불합리한 실제에 대처하는 기관이나 단체, 우리 사회에는 없는 것인가? 결과에만 매달려서 책임 지우려고만 하고,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자세, 책임을 지우려고만 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만 생각하는 사회? 후세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것인가? 말과 글이란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여 하나 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의 초석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말과 글이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다르게 생각하고, 왜곡된다면 사회 존립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매사에 일관된 모습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모든 꽃은 흔들리면서 줄기와 가지를 세운다. 만물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피어난다. 그것이 하늘의 섭리요 자연의 이치다. 개인이나 사회도 끊임없이 궤도 수정을 되풀이하면서 기준을 조정한다. 언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언행일치를 생각할 수 없다. 그 낱말이 지시하는 것에 맞는 행동이 언행일치다. 말의 정확한 이해가 없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행동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말의 뜻과 한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아울러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개념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다면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통합과 발전은 기대 난망하다 할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개념 정립과 아울러 가르치는 사람이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또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분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무자격자의 무한한 연수, 무엇을 얻고자 하는 일인가? 정말로 말과 행동에 품격 있고 기품 있는 그런 대통령, 지도자를 보고 싶다. 당연한 국민의 권리인데 간절한 소망이 된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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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과 행동에 품격 있는 사람,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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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SNS를 끊고 뇌에 휴식을 주자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초연결 사회 진입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돼 왔다. 다수의 선행연구에서 인터넷으로 바로 검색해 결과를 찾기에 인간의 사고력이 약해짐을 우려하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의존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구체적 예를 들면 조금이라도 긴 문장은 제대로 읽지 못하며, 흔히 말하는 ‘3줄 요약’이 아니면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이 만연하다. 특히, 유튜브의 쇼츠(Shorts), 인스타그램의 릴스(Reels)와 같은 압축적, 자극적 영상에 대한 의존은 뇌에 중독 현상까지 유발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 생물학적 원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도파민(Dopamine) 중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엔도르핀(Endorphin), 세로토닌(Serotonin)과 같이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은 뇌의 중뇌 흑질(Substantia Nigra)과 복측피개야(Ventral Tagmental Area)에서 분비되며, 쾌락, 의욕, 기억, 운동 등 다양한 신체기능을 조절한다. 우리가 어려운 과업을 달성해 내었을 때, 뇌는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하게 되며, 인간은 쾌락, 행복을 느낀다. 극단적 사례로 도박으로 큰돈을 벌거나 마약을 접했을 때, 뇌에 도파민이 과다 분비돼 쾌락은 극대화되며, 이런 작용이 순환돼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다른 호르몬과 달리 도파민은 임계치가 없다. 도파민에 중독될 경우, 도파민이 고갈될 때까지 뇌는 자극적인 보상을 갈구하게 되며, 결국 ADHD와 같은 정서장애, 심하면 조현병, 치매가 나타난다. 물론 인간의 중독 현상이 도파민에 의한 것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뇌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생물학적 기전 외에도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SNS 중독의 주된 원인으로 도파민을 거론한다. 온라인 영상 플랫폼이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그리고 쇼츠나 릴스의 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사고력과 통찰력에 지장을 주게 된다. SNS의 일방적이며, 사용자 맞춤형 알고리즘은 뇌의 편향성(Bias)를 극대화한다. 정치적 콘텐츠에서 이념적으로 극단화되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개인마다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 방법이 다르다. 이런 인지적 특징이 SNS 중독으로 이어지면 합리성을 왜곡하고, 비논리적 해석을 극대화한다. 이를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라고 하며, 개인의 인지 편향이 우리 사회에서 집단화할 경우, ‘집단적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우리 사회에 세대별, 경제적,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며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우려도 제기된다. 인공지능 기반의 SNS, 즉 사용자 맞춤형 콘텐츠 추천 방식은 ‘필터 버블(Filter-Bubble)’을 기반으로 한다. 정보 이용의 시간을 더 극대화하며, 기업들은 광고, 마케팅에 활용하여 이윤 창출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개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더 자극적인 것을 보도록 하는 필터버블은 결국 사용자의 태도, 의견, 지배 가치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최근 2024년 3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SNS로 인한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 14세 미만의 어린이는 SNS를 사용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최근 SNS로 인해서 우리의 뇌가 작아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뇌의 주름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고도의 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뇌에 주름 밀도가 중요하다. 대뇌피질에 많은 주름과 깊은 고랑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뇌의 신경 연결망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지능지수와 연결되며 고도의 창의력과 판단력을 키우게 된다. SNS에 집중하기보다는 책을 보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극적인 영상으로 구성된 SNS를 내려놓고 독서하는 것을 권장한다. 다른 장기와 달리 뇌는 늙어서도 계속 발달할 수 있다. 어떤 연구 결과에서는 7세 때 뇌와 80세의 뇌를 비교하였을 때, 지능지수가 똑같았다고 하였다. 뇌에 지적 자극을 계속 준다면 뇌는 계속 발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체적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 소식(小食)과 꾸준한 운동을 하듯이, 뇌 발달을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사고력 발달, 창의력 증진을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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