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05(수)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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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현들의 많은 훌륭한 글귀, 시대를 아울러 전해오는 현인들의 많은 좋은 교훈들, 세상에 넘쳐나는 많은 좋은 지식들, 세상의 많은 좋은 책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식과 지혜가 담긴 글을 실컷 공급받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많고 좋은 지식들이 나에게 어떤 유익함을 줄 수 있을까요? 잠시 자신의 유식함에 취하는 것 이상의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요? 학(學)은 반드시 습(習)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학’과 ‘습’은 단지 공부하고 복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學’은 새로운 지식과 관점의 흡수, 즉 타인의 지혜, 사물의 이치,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와 개념을 새로이 접하고 깨닫는 인식의 확장입니다.


또한 습(習)은 어린 새가 날개짓을 길들이듯(習), 배운 바를 일상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적용하고 몸에 체화하는 실천적 익힘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학’이 AI나 미디어를 통해 지식을 접하는 단계라면, ‘습’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나만의 삶의 언어로 승화시켜 실천하는 ‘자기화 과정’입니다.


다른 의미로 불교에서는 습을 ‘향을 감쌌던 종이’에 비유합니다. 종이에 배어 있는 오래된 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습'은 마음과 행위가 반복되면서 영혼과 무의식(아뢰야식)에 깊게 물드는 훈습(熏習) 또는 그 남은 단단한 버릇인 습기(習氣/업식)를 의미합니다.

 

아침잠을 줄여서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기 쉽지 않죠. 부단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더라도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다시 이른 시간에 일어나기 어려워집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 ‘습’이란 없애야 할 몸에 밴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옷에 향이 은은히 배어들듯, 우리가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이 내면의 성품과 운명을 규정짓는 유전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습은 나쁜 습기(선입견, 번뇌)를 비워내고,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들이는 성찰적 수행을 가리킵니다.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깊이 마음과 행동에 익혀야 할 ‘習’은 무엇이고, 비우고 없애야 할 ‘습’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子貢曰: “君子亦有惡乎?”

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訕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子貢이 말하였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미워하는 것이 있다. 남의 단점을 말하는 자를 미워하며,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며, 용맹만 있고 예의가 없는 자를 미워하며, 과감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를 미워한다.” 


曰: “賜也, 亦有惡乎?”

“惡徼以為知者, 惡不孫以為勇者, 惡訐以為直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야,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남의 일을 엿보아 아는 척하는 자를 미워하고, 불손한 것을 용맹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정직하다고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


《논어》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입니다. 미워하는 것에 대한 스승과 제자의 문답으로 결국 말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미워한다는 것은 사적인 감정을 말하는 미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도덕과 질서, 정의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공분(公憤)입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말입니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라는 혼란기, 왕의 권력을 누르고 대부가 실질적 힘을 행사하는 하극상의 시대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화지만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말과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어떠한 것을 몸에 익히고(習) 어떠한 말과 태도(습)를 버려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말’이란 무엇일까요? 말다(그만 두다), (둘둘)말다, (둥그렇게)말다, 末(끝 말)에서 ‘말’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데 우리가 쓰는 말은 마음의 짝입니다. 마음을 반영한 것이 말이지 않습니까? 또 둥근 것을 하늘의 상징으로, 세상을 회전하는 순환의 과정으로 본다면 처음 시작한 말은 반드시 시작한 곳으로 돌아옵니다. 때문에 말의 끝이 좋으려면 처음이 좋아야 합니다. 말은 하면 할수록 말하는 사람의 실체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책임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바르고 고운 말을 써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말’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서 깨우친다면 아이들 스스로 말의 의미를 바로 알고 바른 말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바른말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는 말, 경우에 맞는 말, 겸손한 말, 결국 자신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노자는 말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언지교(言之敎)'는 반발을 부르지만, 말없이 몸소 삶으로 보여주는 '불언지교(不言之敎)'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스스로 깨어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판단의 ‘여백’의 제공, 정답을 즉시 알려주거나 행동을 지시하지 않고, “너는 이 상황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져 스스로 이성적 추론을 하게 돕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다운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惡勇而無禮者, 惡不孫以為勇者,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己所不欲’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도 원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가까울수록 ‘다 너를 위한 말이야’라며 과도한 개입, 조언, 간섭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만큼 상대방도 그만의 살아온 방식이 있습니다. 편하다고 해서 친한 사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고유한 영역을 마음대로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공자가 제시한 인간의 길, 修己安人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내면을 바르게 가꾸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지식이 지혜가 되고 배움이 삶이 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안의 그릇된 성향을 끊임없이 다스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언행을 부단히 몸에 익혀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올바르게 가꾸고 주변의 모든 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덕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수행은 해와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해는  살이를 하면서, 모든 동물, 식물이 살아가게 합니다. 자신이 사는 길이  남들을 살리면서 살아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살림살이’입니다. 한겨레의 철학입니다. 이 철학을 오늘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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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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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각과 성찰! 주체적 인간으로 서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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