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28(목)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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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治世치세의 근본을 교육에 두고 있다. 모든 사람을 교육시키야 한다 것이다. 공자는 “유교무류有敎無類”라는 말로 유학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즉 “가르침이 있을 뿐 유별은 없다(신분과 지위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준다).” 유교의 근본은 모든 국민을 교육시켜 국민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길을 여는 것이다. 유학은 天命천명을 민명民命으로 바꾸는 일이다. 


대중교육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이다. 국민 전체가 집현전 학자들의 수준이 되었을 때야말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 수 있다. 이때가 되면 좌파, 우파들이 득세를 하더라도 국민들의 수준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 것이다. 『大學』「學記」편에서도 ‘교육은 학생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기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여성 교육’은 집안의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고 있다.


교육을 생명처럼 여기고 수신했던 ‘신비 교육’의 부활이 시급하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별된 상식과 수준을 가진 국민으로 태어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로마서 12:2가 주는 가르침이 내 마음을 뻥 뚫리게 한다.


현재 국제 역학관계들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 민족이 우리 운명에 대해서 독자적으로 우리 운명을 끌고 갈 수 있는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정치와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와 교육의 기본이 바로 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이 방황하고 있고, 겪지 않아야 할 ‘憂患病’을 앓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정치와 교육에서 수준 이하의 논의만 무성하게 되풀이하고 있다.


논의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행위들도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바른 도道를 구현해야 한다. 율곡 선생이 임진왜란을 앞두고 ‘十萬養兵說’을 외쳤는데, 우리는 지금도 그 상황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그 당시에 십만 양병을 했더라면 우리 국민이 그 고통을 덜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근대화를 아름답게 맞이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十萬 養士’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성균관과 전국 모든 향교에서 진정한 선비를 길러야 한다. 나라를 걱정하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유학을 공부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이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십만 양병’의 의미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바로 ‘十萬 養士’ 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야 한다. 


공자와 애공의 대화에서 보듯이 유학의 가르침은 책자에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유학의 가르침이 널리 시행되지 않는 것은 진짜 유학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子曰: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 則其政擧; 其人亡, 則其政息.” 『中庸』20-2. 다시 말해 “方策”과 “其人” 사이에는 깊은 의미의 단절이 있다. 정치의 객관적 사고, 제도적 이념이나 현실태, 행정제도, 그 모두가 “그 사람其人”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실태를 보라! 헌법으로부터 선거제도나 행정 체계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고안한 모든 훌륭한 법제들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러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최고의 지도자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기꾼이나 양아치 수준에도 못 미치는 파렴치한들이요, 고위 관직에 앉은 사람들이 청문회를 통해 점검해 보면 서민들의 수준에서 꿈도 꿀 수 없는 범법행위들을 수없이 자행한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법망이나 도덕적 평가를 교묘하게 왜곡해 대중의 인기와 사적인 치부를 갈취하고 있다. “그 사람其人”이 근원적으로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은 끊임없이 악용될 수밖에 없다. “그 사람其人”은 오로지 “교육”에 의해서만 배양될 수 있다. 그것은 너무도 완만히 진행되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의로운 가치관의 사회 저변에 의하여 훈도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의 연속성이 결여된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것이 유교의 입장이다. 


공자는 말한다: “사람이 도를 넓힐 수는 있으되, 도가 사람을 넓힐 수는 없다. 人能弘道, 非道弘人, 『衛靈公』 28.” 그리고 순자는 이어서 또 말한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임금은 있을 수 있으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나라는 있을 수 없다. 질서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질서를 잘 다스리는 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법이란 홀로 설 수가 없는 것이요, 공동체란 스스로 굴러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을 얻으면 흥하는 것이요, 그 사람을 잃으면 망하는 것이다. 법이란 다스림의 말단이요, 君子야말로 법의 근원이다. 荀子: 有亂君, 無亂國, 有治人, 無治法. 之法非亡也, 而羿不世中, 禹之法猶存, 而夏不世王. 故法不能獨立, 類不能自行, 得其人則存, 失其人則亡. 法者, 治之端也, 君子者, 法之原也.”


아무리 못났어도 내 자식이요, 내 부모요, 내 아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인 감정만으로는 인간 사회의 질서는 성립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공적인 공간, 객관적 감정, 이성적 판단의 세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마땅함宜”이다. 그 마땅함을 우리가 사회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사회 정의의 핵심을 儒家는 “존현尊賢”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한다.


모든 사회적 가치의 마땅함에는 현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賢者를 愚者와 가리는 객관적 잣대가 있어야 하며 주관적 감정이 배제되는 엄격한 등급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확고한 차별성의 세계이며 이성적 판단의 세계인 것이다. 현인을 현인으로서 대접하는 공적 판단력이 없이는 사회 질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국가 사회를 잘 돌아가게 만드는 모든 행정 체계의 밑바닥에도 항상 이 “尊賢”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유가는 믿는다. 鮮末 大儒 이제마도 천하天下의 수병受病이 모두 투현질능妬賢嫉能에서 나오고 천하天下의 구병救病이 모두 호현낙선好賢樂善에서 나온다고 일갈한 바 있다. 


유교적 정서의 궁극적 본질은 민과 더불어 우환을 공유하는 것이다. ‘與民同患’(『繫辭傳』11-1.)이다. 이러한 憂患意識이 없는 자는 성인의 자격이 없다. 장횡거의 스승인 范仲淹범중엄(989~1052)의 유명한 격언, “선천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 후천하지락이락後天下之樂而樂”이야말로 시대정신이 아니겠는가? 누군들 근심하기 좋아하고 즐기기 싫어하겠는가? 그런데 남보다 앞서 근심하여 대책을 마련하고, 남이 즐긴 뒤에야 비로소 즐기는 이는 누구인가? 남을 위하는 숭고한 이상을 지닌 사람이며,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는 선비이다.


앞서 근심하지 못하고 뒤에 즐기지 못하더라도 함께 근심하고 즐거워하기만 해도 좋으리라. 그래서 與民同樂(여민동락·대중과 더불어 즐김)도 관리의 미덕 중 하나라고 본다. 어찌 관직에 있는 이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송나라 때 范仲淹(범중엄)은 거대한 호수 옆에 세운 중국 3대 누각의 하나라는 岳陽樓(악양루)에 이 말을 써놓아 천고에 이름을 남겼다.


공자와 자사는 달도達道와 달덕達德을 知와 行의 측면에서 논의하는데, 인식 능력적 차별이나 실천 경지적 차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차별이나 차등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知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하는 격려에 두고 있는 것이다. 유학에 깔려 있는 위대한 사상으로 인간은 “일상적 노력”의 유무로 보는 보편적 인간관에 근거하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쓴 『아웃라이어Outliers』라는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성공적 천재들이 선천적 재능 때문이 아니라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실로 그 천재성을 이룬다는 사실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해 놓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1만 시간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아웃라이어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십시오.”라는 공자와 자사의 입론(人一能之, 己百之)은 현대 인지과학의 선구적 학설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격려를 발하고 있다.


안세영(23·삼성생명)은 전영 오픈 우승 뒤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등 현지 인터뷰를 통해 "반복에 지치지 않겠다."라고 했다. 안세영은 여자 프로농구 선수 김정은이 한 말을 가슴에 새겼다. "쉴 때 선배 언니가 어린 선수들에게 '반복에 지치지 않아야 한다'라는 그 말이 너무 와닿았다"라고 했다. 


모든 일이 그렇다. 쳇바퀴를 도는 삶은 육체적·정신적 피로감을 주게 마련이다. 그런 삶은 피하면, 일시적으로는 위안을 얻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발전하기 어렵다. 안세영은 "경기 중간에도 반복적인 플레이를 하게 된다. 지치는 순간에 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걸(반복을) 잘 이겨내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김정은 선배님의) 그 말이 더 정말 와닿았다."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안세영이 메시지는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웃음을 되찾은 스물 셋 배드민턴 선수는 자신의 세계 가장 높은 자리에  '반복의 고통'을 이겨내야 웃을 수 있다고 전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몸값. 스포츠 스타들의 삶은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된 반복의 연속이다. 지루한 일상에 지치기는 다른 직군도 다르지 않지만, 그런 반복을 더 잘 해내야 신체와 기량을 더 강해진다는 것이 유자들의 수신이다. 유교는 인간의 구원이나 그 경지에 관한 것을 인간 스스로에게 맡긴다. 일상日常의 철저한 수행만이 “그 사람其人”을! “그 위대함其政擧”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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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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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교儒敎는 교육종교敎育宗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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