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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안도열 교수 특별 인터뷰] 양자역학의 거장, 안도열 교수를 만나다
    안도열 교수, 양자역학의 거장을 만나다대한민국이 기술 강대국으로 되는 그 날까지...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과 교수 얼마 전 개봉한 조니 뎁 주연의 영화 ‘트랜센더스’와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흥행 열풍이 식지 않고 있는 영화 ‘트랜스포머4’.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공상 과학적인 내용을 담아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적 내용상의 공통점을 들 수 있다. 인간의 감각능력과 자각능력을 모두 가지는 슈퍼컴퓨터가 나온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자동차들이 자유자재로 로봇이 되는 세상은 정말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열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적 상상력들이 머잖아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해리포터가 쓰고 다니는 투명망토가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현실로 가능하다면 믿어지겠는가? 사람이 조종을 하지 않아도 세상 어디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한 무인 자동차가 운행되는 것이 실행 가능한 일이겠는가? 이 모든 궁금증의 해답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인물이 있어 <주간인물>이 찾아갔다. 자신의 수많은 업적들과 관련해 ‘운좋게도’라는 말을 쓰며 겸손을 보여주며,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안도열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_취재_이선진, 신재윤 기자/ 글_신재윤 기자 “양자기술을 연구해 신기술을 가지는 것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일명 양자(quantum)기술을 도입해 공공기관의 통신 도·감청을 완전봉쇄하는 내용을 담은 ‘양자 ICT 발전 기본계획(가칭)’을 시행하는 것을 계획 세우고 하반기부터 적극 실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양자정보통신기술(이하 양자ICT)이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현재 전 세계는 ‘정보대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하루에도 수없이 셀 수 없는 천문학적인 양의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누군가는 불법적인 목적으로 정보들을 빼내는 일들을 벌이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중첩’이라는 양자의 고유 특징을 활용해 양자정보통신기술을 더욱 활용한다면 어느 누구도 정보들을 쉽게 빼내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양자역학분야에 관해 권위자로 손꼽히는 안도열 교수는 “양자기술을 연구해 신기술을 가지는 것은 마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가 미래에 더 강한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보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자ITC를 비롯한 양자컴퓨터와 관련해 끊임없는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일례로, 17세기 후반부터 일어난 산업혁명만을 보더라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 일본 같은 국가들이 일찍이 관심을 가지고 산업혁명에 뛰어들며 기술을 연마해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기를 수 있었어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나 청나라는 그것을 무시한 나머지 여러 역사적 아픔을 겪기도 했죠.” 실제로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관심 아래 매년 1조원 가까이 이 분야에 투자중이고, 영국은 꾸준히 5천억, 중국과 일본 같은 경우 2천억 규모의 매년 투자유치를 하고 있다. 호주나 캐나다, 유럽 역시 연간 500억 규모의 예산이 양자산업으로 투자되어진다. 안 교수는 “중국 같은 경우에는 최근 급속도로 양자기술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어 2016년에는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관통하는 양자암호통신망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해요.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최근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도 도합 약 300억에 그치는 수준에 달해 다른 나라들과의 투자 수준과 비교해 볼 때,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자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이다. 안 교수는 이것을 물리학과 연관시켜 설명하며 “물리학에는 크게 미시적 물리학과 거시적 물리학이 존재하는데, 두 물리학은 경험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점들을 연구하는 것이 양자연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고, 미시적 물리학의 세계에서 중요값들이 불연속적 값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현상에 대해 설명하려 하는 것이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역할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자프로세스에 의한 시뮬레이션, 즉 양자컴퓨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효력 또한 막강하다. 위에 언급한 도·감청 방어를 비롯하여 신약이나 신물질개발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관해 안 교수는 “신약개발 같은 경우에 많은 다국적기업에 속하는 제약회사들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개발 및 모델링을 하여 후보를 추린 후 임상시험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기간이 보통 10년 정도를 잡게 되지요. 하지만 양자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신약개발을 훨씬 가속화시킬 수 있어 매우 좋은 기술이 될 수 있죠. 파생기술로서 원자시계라는 것이 있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이와 관련 격인 GPS를 들 수 있어요. 위성으로 신호를 보내고 위성을 다시 받아 삼각측량법으로 위치를 지정하는데, 결국은 우리가 주고받는 시간을 동기화해야 해요. 그래서 거리를 수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원자시계의 오차로 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만약 시간이 10만 배 정도로 당겨지면 GPS오차가 10미터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로 줄일 수가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10미터의 오차에서 차선구별이 불가능 하던 점에서 GPS정밀도가 낮아져 차선 구별이 가능해져 ‘무인운전’이 가능하게 되죠. 이것은 곧 군사적 전술로도 활용될 소지가 있을 수 있겠네요. 원자시계를 개발해 장점을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주식시장이에요. 자신이 주식이 있다고 치면, 바다 건너 뉴욕과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개장한다고 가정하면 어느 누가 사고, 팔았다는 것은 결국 시간이 말해주는 것이죠. 즉, 정밀도가 지금보다 10만분의 1정도까지 줄어들게 되면 훨씬 정확한 주식거래가 이루어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니 주식에 관심 많은 분들에겐 희소식이겠군요.” 이렇듯 양자연구는 인류의 문명을 한 단계 앞당길 수 있는 중요 ‘무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안 교수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3,4년 전부터 <해리포터>에서나 볼 수 있었던 투명망토에 대해 연구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것 또한 양자 역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인데 우주 공간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라는 뜻으로 있는 ‘웜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빛이 휘는 현상을 거꾸로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것은 상대성이론까지 접목시켜서 볼 필요가 있는데, 현실 세계에 그것을 이용해 변화를 주면 어떤 특정한 영역을 전자파가 피해갈 수 있도록 확인할 수 있죠.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을 최근 들어 틈틈이 연구 중이죠.” 사진이나 소설집필 등 다방면에서 ‘세간의 주목’ 받아 이렇게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게 연구 중인 안 교수 역시 어릴 적부터 양자연구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사진, 그림, 혹은 책을 집필하는 작가의 분야까지, 안 교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취재를 간 기자에게 영국의 <게티이미지>라는 이미지 전문 업체와 전속계약을 맺게 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탄성을 자아낼 만큼의 수준이었다. “사실은 고등학교 때까지 사진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을 미대 쪽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집안사정으로 인하여 공대를 오게 되었죠. 그러다가 대학에 와 물리학과에서 양자역학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흥미가 생겨 대학원에 가서 관련하여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하여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게 됐네요.” 대학에 다닐 때 양자역학이라는 한 분야에 빠지게 되어 현존하는 이 분야의 지식인으로 거듭난 안 교수는 국내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많은 활약상을 돋보이고 있다. 국제적으로 제출된 논문만으로도 220편이 넘었고, 미국에 특허를 내기도 했는데 등록된 수만 무려 27개에 이른다. 특허의 종류도 양자 컴퓨터와 관련한 것부터 해서 조명 및 에너지 등 범위마저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특허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안 교수는 “2010년에 등록된 양자컴퓨터 관련 칩인 것 같아요. 자세하게는, 기존의 반도체 공정을 이용, 실리콘 반도체를 이용해서 양자컴퓨터 칩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특허인데, 실용적인 면에서 나중에라도 중요한 특허로 남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라고 말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 서울시립대의 수강신청 서버가 열리면 안 교수의 과목은 순식간에 마감이 된다. 10년 넘게 영어수업을 고수해 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안 교수의 수업방식 또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는 학생들에게 ‘문제풀이능력’을 스스로 기르는 것을 강조한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교육방식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은 ‘참을성’이 길러질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에요.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거나 부모가 학생에게 정해주는 길을 학생들이 그대로 밟는 현상은 요즘 학생들이 자립심을 기르지 못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자기 주도적 인생을 살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것 같아요.” 기자는, 이렇게 무수히 많은 업적들을 남기며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안 교수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항상 이 말 하나만은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따르려는 편이에요. 앞으로도 그럴거구요.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어진 상황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고 잘하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말이다. 한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1만 시간 정도의 물리적 절대량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어느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잘 참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들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획한다 해도 작심삼일이면 끝나는 경우가 사실상 많잖아요. 그래서, ‘재능’이 있다는 말은 그만큼 ‘참을성’이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느 적정 수준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은 반드시 그 결과를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인터뷰 내내 여유롭고 모든 것을 즐기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예술인’의 자유가 느껴지기도 했던 그와의 인터뷰였다. 앞으로, 그의 눈과 손에 따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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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15
  • [(주)3D커넥션 신기진 대표 특별 인터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세상을 위하여!
    [위클리피플= 이선진, 오미경 기자] “for your imagination” 상상을 눈앞에, 3D프린터가 만드는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신기진 (주)3D커넥션 대표 기술은 때때로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불과 몇 년 전에 나온 스마트 폰이 짧은 시간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처럼 말이다. 영화 ‘미션임파서블’에서 탐 크루즈가 얼굴 사진을 기계에 입력하자 정교한 변신가면이 만들어지는 장면에 충격을 받고, 어릴 적 공상 만화 영화 속에서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물건이 만들어져 나오곤 했던 기계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일이 이제 더 이상 상상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 같다. 바로, 또 다른 산업의 혁명을 가져 올 것이란 기대 속에 최근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3D프린터 때문이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세계 여러 나라의 각축전이 이미 시작 된 가운데, 다소 늦은 국내의 움직임 속에서도 조용히 내공을 닦으며 창의적인 역량을 키우고 있는 주인공이 있어 <주간인물>이 찾아 나섰다. 취재 이선진 / 글 오미경 기자 충무로역 근처에 위치한 (주)3D커넥션의 사무실로 신기진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 장마철 변덕스런 날씨 탓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평소 같았으면 걸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빗줄기가 반가울리 없었지만, 상상을 현실화한다는 발칙한(?) 주인공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갑자기 내린 소나기마저 색다른 느낌이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 3D프린터 잉크젯으로 글자나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야 익히 잘 알지만, 3D프린터는 아직 우리에게 조금 낯설다. 그래서인지 신기진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한 이야기부터 풀어 놓았다. “간단히 말하면 컴퓨터를 통해 입체적으로 만든 3차원 모델링 데이터를 프린터로 전송하여 2차원의 평면 프린터와 달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3차원의 실제 물체를 만들어내는 프린터입니다.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는 (Layer by Layer)방식을 사용하는 3D프린터는 현재 금속, 플라스틱, 나일론, 나무, 설탕, 종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어요. 재료의 형태에 따라 크게 3가지 형태로 분류가 되는데 크게 ABS나 PLA 재료로 만든 필라멘트를 사용하는 방식, 액상과 가루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누어집니다. 3D프린터는 이미 27년 전인 1987년 미국에서 모형을 제작하는 용도로 개발되었어요.” 플라스틱 소재에 국한되어 있던 초기를 지나 점차 금속, 나일론 등으로 재료로 범위가 넓어지고, 산업용 시제품을 찍어내던 것에서 진화하여 이제는 신발, 자전거, 모형 비행기, 휴대전화 케이스, 의료 보형물, 자동차 부품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3D프린터. 이는 기존의 주물이나 금형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 때보다 공정이 간소해 시간을 단축시키고, 인건비를 절감시켜 효율적인 생산을 만들며, 다양한 디자인의 시제품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소량 생산이 가능해 개인 제조업에 적합하고, 의료 분야에서는 인공 치아나 관절 등의 보형물을 만들 수 있으며, 복잡한 구조의 모형을 구현해 여러 분야와의 협업을 가능케 하는 등 많은 장점이 있어 이른 바, 산업의 새로운 혁명을 가져올 무한 잠재력의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제품디자이너 신기진, 3D의 세계에 뛰어들다 정통 제품디자인 분야에서 15년 넘게 종사해 온 신기진 대표가 3D프린터 사업에 뛰어든 건 어찌 보면 예견된 운명에 가까웠다. 대구가 고향인 신 대표는 어릴 적부터 미대 진로를 희망했지만 3남매를 뒷바라지해야 했던 부모님은 그에게 처음에 공대를 권유 하셨다. 고3이 되어서야 어렵사리 미대 입시를 준비해 영남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시각디자인전공)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당시 산업자원부 산하의 단설 대학원으로 설립된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에 합격했고, 석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제품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한편, 대학원을 다닐 당시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으로 가 유럽의 디자인이 우리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에 대해 견문을 넓히고 온 신 대표는 대학원 졸업 후, 벤처 회사에서 일을 하다 디자인을 좀 더 공부하리란 생각으로 다니던 회사에 비해 좋지 않은 좋건 임에도 불구하고 제품디자인전문회사로 옮기에 된다. 그 뒤 더 넓은 세상에서의 공부를 목표로 영국유학을 다녀오고, 디자인 용역 업무를 해오던 끝에 2006년 개인 사업을 시작, 2009년부터는 제품디자인전문회사로 등록해 사업을 이끌었다. “디자이너로서 누구나 자신의 상품 디자인 및 개발의 욕심이 있잖아요. 저 역시 외부의 컨설팅이나 제품디자인 용역을 해 오면서 그런 생각을 가졌었고, 용역시장은 오래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제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2010년 4월경 스마트페블이란 휴대폰 악세서리를 자체 개발해 미국, 유럽, 일본, 동남아 등으로 수출까지 이루며 큰 반응을 얻기도 했던 신기진 대표. 그러던 차에 서울디자인센터 주도하에 진행된 공예분야의 작품에 대한 상품화 프로젝트에 2년 정도 참여하면서 3D프린터를 통한 상품화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고, 정부 주도하에 진행 된 창업맞춤형 사업을 지원해 3D프린팅 조명을 개발하게 된다. 3D프린터는 그도 이미 90년대 후반에 접했던 것이었지만 당시엔 시제품을 만드는 정도에 그쳤었는데, 사업을 하면서 다시 만난 3D프린터는 그에게 장기적으로 미래가 보이는 분야로 여겨졌고, 신 대표는 고민 끝에 3D프린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사업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란 무모함을 동반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신 대표는 과감히 모험을 시도했고, 그렇게 출발한 (주)3D커넥션은 현재 외부의 3D프린터 출력 의뢰 서비스부터 자체상품 개발과 외국과 협업을 통한 제작 컨설팅,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을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2014년 말까지 3D프린터사업으로의 완전한 전환을 목표로 비약적인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3D프린터를 통한 산업 간 융합과 실생활용품의 개발에 두각 (주)3D커넥션은 아직 발전 초창기 단계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그 결과물들을 통해 소리 없이 강한 중소기업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중 먼저 이목을 끄는 것은 미국 등 해외의 현황과 달리 국내에선 아직 많이 알려지거나 시도되고 있지 않은 패션분야에서의 의미 있는 활동이다. 작년 제일모직 여성브랜드 ‘구호(KUHO)’의 파리 패션쇼 당시 모델들의 악세서리와 의류 장식의 3D프린팅에 대한 제작 컨설팅을 담당해 국내 유일무이한 활약을 선보였으며, 같은 해 3D프린터 업계에서 유명한 ‘imaterialise’ 주최의 챌린지 공모전에 참여해 한국 전통 혼례에 사용하던 족두리를 모티브로 한 머리띠를 출품, Winner10에 선정되며 세계 무대에 한국 3프린터 산업의 위상을 알리는 하나의 역할을 해냈다. 또 다른 산업과의 연계 및 융합에 큰 뜻을 두고 있는 (주)3D커넥션은 복잡하지 않은, 유럽식의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실생활에서 가까이 접하는 소품과 생활용품의 개발·제조에 참여해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예로 휴대폰 울림통으로 만들어진 ‘사운드페블’은 오로지 내부의 혼 형태 구조만을 사용해 소리를 확장시켜내는 기능의 제품으로 전통문양인 칠보문 디자인을 더해 ‘2013 서울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외 도자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 속에 만들어진 조명과 손잡이만 부분적으로 3D프린터 제작하여 옻칠을 입힌 머그컵, 디자인상 3관왕을 수상한 이마트 쇼핑카트 등 (주)3D커넥션이 만들어낸 제품들은 그 범위가 다양하고, 디자인의 우수성 또한 인정받고 있다. 신 대표는 정신없이 제품을 보고 있는 취재진을 향해 “아직 전문성을 띤다기보다 사람들에게 3D프린팅을 알리는 가까운 기회를 위해 많은 시도를 하다 보니 관심을 주시는 것 같다”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창업 및 3D프린터 관련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에 꾸준히 참가하여 외부와 소통하며 경험을 쌓아 온 그만의 성실한 발자취이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3D프린터 산업의 활성화를 위하여 3D프린터가 무궁무진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 폭발적인 잠재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데 반해, 국내의 3D프린터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 보아야 한다면 아마 의아할지 모르겠다. 명색이 정보통신기술분야의 강국인 우리나라인데 말이다. 신 대표는 이를 두고 “소비자의 인식이 부족하고 시장의 성장 수준이 높지 않아 시장 자체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3D프린터 장비에 대한 관심에 비해 디자인 분야는 더욱 눈밖에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저가형의 보급용 3D프린터를 만드는 회사는 10여 개가 좀 넘지만 산업용 장비를 만드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라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 일반인들 중에 관심 있는 이들이 저가로 산업용 3D프린터를 활용하기가 어려워요. 차세대 유망 시장으로 각광받는 만큼 한국도 3D프린터, 소프트웨어 보급의 지지부진함에 대응할 국가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 대표는 최근 3D프린터 메이커 천만 명을 양성하기 위한 범부처 차원의 프로젝트가 발표되는 등 정부차원의 3D프린터 산업 육성의 움직임이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산업용 프린터의 상품화 차원은 아니라며 좀 더 실질적인 대안으로 얼마 전, 동대문 의류 도매 및 패션 디자인 클러스터인 ‘JABA11’에 창업 관련 지원 공간으로 마련된 패션디자인지원센터를 예로 들었다. “그 안에 3D프린터를 비치해 입점상인과 신진디자이너 들에게 3D프린터 교육 및 제작지원의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처럼 아이디어는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3D프린터로 실제 물체를 만드는 일에 한계를 겪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담당할 공간과 시설이 생겨나고 있는 양상은 긍정적이라고 봐요. 꾸준한 운영 관리와 함께 적극적인 콘텐츠 활용도 필요하고요.” 덧붙여 그는 3D프린터 시장의 대기업 참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사실상 다르다며, 부품의 물성이나 강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가볍게 만들 비행기 부품 등 연구개발이 필요한 분야는 대기업이 참여하고, 생활용품과 어플리케이션 개발 및 3D프린팅 교육의 분야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설명, 교육 분야에서 3D프린터가 광범위하게 활용됨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상상이나 그림으로만 접했던 것들을 실체로 만들면서 체험 하는 것은 새롭고 창의적인 교육 패러다임이며, 또 다른 연쇄적인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 있어 3D프린터란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이야기 보다는 3D프린터 시장 전반의 이야기를 더 많이 쏟아내는 신기진 대표를 보며 그에게 이 사업을 하는 가장 큰 구심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어색해하며 잠시 생각하던 그가 내놓은 답변은 ‘성취감’이다. “아직은 사업적으로 큰 성장을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투자를 열심히 해야 하는 단계에 있지만, 단순한 디자인 용역의 일보다 다른 산업과의 융합이 이뤄지는 작업들이나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재밌고 뿌듯해요. 상품을 만들고 나서도 연계된 또 다른 상품은 무엇이 있는지,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어떤 방법이 좋은지를 고민해야 하고, 직접 제품을 들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제게 큰 성취감을 줍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이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미지의 것에 향한 패기가 동시에 와 닿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신기진 대표.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난 그의 달리기는 이제 어디로 향하게 될까. “3D프린팅 제품이 거래되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는데 최근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3D프린팅을 위한 형상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제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죠. (주)3D커넥션은 1~2년 내에 디지털 콘텐츠를 거래할 수 있는 곳으로 세팅할 예정이에요. 물론 그와 함께 계속 새로운 우리의 자체 상품을 만들고, 3D프린팅 컨설팅과 다른 산업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들을 해나갈 겁니다.(웃음)”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해 본 것도, 가 본 곳도 없고,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도 영웅이 되는 상상만 하던 주인공이 뜻밖의 일을 계기로 난생 처음 상상만 하던 일들을 겪으며 비로소 삶의 중심이 자신의 일상에 있음을 깨닫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영화는, 상상만 했다면 불가능 했을 깨달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상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일생을 상상만 하는 사람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으로. 과연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일까. 분명한건, 작던 크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상상이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온 사람은 아마 윌터와 같이 현재를 더욱 충실히 살아갈 것이란 사실이다. 3D프린터를 통해 상상의 것들을 현실화 해 온 순간들이 현재에 충실한 신기진 대표의 모습을 만들었듯이. 그렇기에 <주간인물>은 내일도 그의 상상이 거침없이 눈앞에 펼쳐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profile.학력사항1988. 03 – 1995. 02 영남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1996. 03 – 1998. 02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 Projection Communicator for a Family2003. 10 – 2007. 09 Ravensbourne College of Design & Communication MA (UK) : The Meaningful Experience with Digital Interactions 경력사항2013. 06 – 현 재 ㈜쓰리디커넥션 대표이사 2006. 03 – 2013. 05 디자인맥스(산업디자인 전문회사) 대표2002. 03 – 2003. 02 ㈜아버디자인: 제품디자인/그래픽디자인 실장 2000. 03 – 2001. 02 ㈜드림앤비지니스: 제품디자인 팀 1999. 03 – 2000. 02 ㈜케이존: 디자인팀장 강의경력2014. 03 – 현 재 전북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출강2006. 03 – 2011. 12 대진대학교 제품환경디자인과 제품디자인 강사2008. 03 – 2008. 06 용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제품디자인 강사2007. 06 LG화학 Pro-E 강의2001. 03 – 2001. 06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제품디자인과 강사 外 다수 수상경력2013 i.materialise Challenge Winner 10 선정2013 제9회 한글문화상품/아이디어 공모전 으뜸상 수상2013 서울 우수관광 기념품 동상 수상2011 Good Design Award 대상 수상2011 PIN UP Design Award 은상 수상2009 우수강의상: 대진대2008 red-dot design concept 선정2007 벤처디자인상 은상: ㈜베이온2007 Good Design Award 선정: ㈜베이온2000 Good Design Award 선정: JUSTEK 전시경력2014. 06 Inside 3D Printing Conference 참가2014. 03 서울리빙디자인페어 2014 참가2011 designboom mart New York ICFF2011 designboom mart Tokyo Designers Week2011 서울 리빙디자인 페어2010 파리 메종 오브제 (서울디자인재단 지원사업)2007 – 2011 대진대 교수 작품전2005. 08 평화의 전시, 이스라엘 이스탄불(공동작품): Digital Forest 2005. 10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공동작품): Digital Forest (Design Parking 전) 기 타2014. 07 전략기술경영연구원: 3D 프린팅 활용 전략과 활성화 방안 모색 세미나 발표2014. 07 PROTOKOR 2014 3D프린팅 기술과 창업: 패션분야 사례 발표2014. 04 금속재료학회 융합재료분과 심포지움(대구컨벤션센터) / 3D 프린팅 활용 사례2014. 04 코리아 그래픽스 월드(COEX) /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제품개발 사례 外 다수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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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14
  • [대한생활체육진흥회 권순정 회장 특별 인터뷰] 생활체육 통한 세대·계층 간 화합을 꿈꾸다
    [위클리피플=이선진, 이민영 기자] ‘우리는 하나’ 생활체육 통한 세대·계층 간 화합을 꿈꾼다 권순정 (사)대한생활체육진흥회 회장 | 체육학 박사 눈부신 경제적 성장과 발전을 이룬 한국. 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단순한 의식주 문제가 아닌 ‘잘 먹고 잘 사는’, 삶의 질 향상이다. 그렇다면 과연 삶의 질을 측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쯤에서 드라마 공식 중 하나를 떠올려 보자. 몸을 사리지 않는 노력 끝에 ‘이제 좀 먹고 살만한’ 날이 오자 그때서야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혹은 부모님과 이때 나오는 대사, “돈은 얼마라도 드릴 테니 살려만 주세요.” 결국, 잃어버린 건강 앞에서는 넓은 집도, 좋은 차도 전혀 소용이 없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건강이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생각하는 주간인물은 ‘건강이 곧 삶의 질’이라며 이 의견에 힘을 싣는 사단법인 대한생활체육진흥회의 젊은 여성 리더, 권순정 회장을 만나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민영 기자 / 글 이민영 기자 인생의 나침반, ‘사람’ “저는 인복(人福)이 참 많은 사람 같아요. 대학 입시, 대학원 입학, 사단법인 설립까지. 제가 인생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늘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 것은 ‘사람’이었어요.” 운동을 시작하기엔 늦은 감이 있던 고등학교 1학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무용 선생님의 말씀에 솔깃한 권 회장은 리듬체조와 함께 체육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그녀가 상명여대에서 국가대표 상비군들과 함께 연습을 하니 눈에 보이는 실력차이에 위축되었고 여기에 성적까지 떨어지자 방황의 시간을 보낸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체육학과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그렇듯 놀기에 여념이 없던 그녀에게 그녀의 재능이 아까웠던 교수님은 대학원 진학과 댄스스포츠를 배울 것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저는 여군이 될 거에요”라고 하며 거절했다가 결국엔 교수님의 말에 따랐다는 권 회장은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잘 한 일이었다며 웃어보였다. 대학원에서 스포츠 교육학을 공부하며 체육의 중요성을 느꼈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체육과목의 실태를 보며 마음 아팠던 권 회장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생활체육의 확대’를 생각했다. 그리고 무용학원을 열어 이 계획을 시작한 그녀는 점차 사단법인을 만들자는 욕심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 사단법인을 설립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다행히 그녀와 뜻을 함께하는 지인들이 동참하여 힘을 보태니 대한생활체육진흥회가 만들어졌다. “대한생활체육진흥회는 2012년에 창립되어 정말 짧은 업력을 가진 기관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눈에 띄게 발전하게 되었어요.” “비싼 턱시도와 드레스는 필요 없어요” 흔히들 생활체육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자들의 활동이라고 생각해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하는 권 회장은 “생활체육은 절대 호화스러운 것이 아니에요. 하물며 뒷산에 가 걷는 것도 생활체육의 하나거든요”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것에는 매스컴의 탓이 크다고 했는데, 댄스스포츠를 예로 들면 보통 스크린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은 프로선수들의 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생활체육 대회도 비싼 돈을 들여 대회복을 맞춰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는 마찬가지라고. “나이 드신 분들은 정말 옷에 달린 반짝이 장식 하나에도 민감하세요. 다른 사람보다 좋지 못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감이 확 떨어지지요. 비단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의상은 어느 연령대이든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특히 예민한 부분이에요. 그렇다보니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드레스를 입어야 하냐고 묻는 분도 간혹 계시고요.” ‘생활체육은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권 회장은 이러한 시각을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대한생활체육진흥회에서 개최하는 대회에는 의상 규정을 크게 두지 않는다. 몸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옷만 아니면 어떤 옷이든 대회복이 될 수 있다고. 생활체육을 통한 소통과 융합 ‘질병 예방의학’으로써의 운동도 중요하지만,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생활체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권 회장의 목표는 모두가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세대차로 인해 갈등하는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보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이에 두 세대의 중간에 있는 40대의 권 회장은 모든 세대가 융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자신이 그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생활체육이 세대 간 화합의 장뿐만 아니라 소외계층과 사회와의 연결통로도 되었으면 한다. 은퇴 후 소속감과 자존감을 잃은 갈 곳 없는 노인들과 복지가 부족한 다문화 가정이 그러한 예이다. 실제로, 그녀는 논문을 준비하며 많은 어르신들이 생활체육을 통해 활기를 찾고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즉 안했나 싶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이 많다고. 그리고 교육은 물론 문화적 혜택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다문화 가정에게 대한생활체육진흥회가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덜어주고 그들 역시 이 사회의 일원임을 알게 해 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후로도 계속 소외되는 이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며 마음이 분주한 권 회장을 보니 이처럼 남을 위해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대한생활체육진흥회에 지속적인 후원을 해주시는 한미약품관계사의 남궁광 (주)‘온라인팜’ 대표님, 저의 은사님이자 저희 사단법인의 수석 부회장이신 왕석원 교수님과 엘리트 선수 출신임에도 뜻을 함께 해주시는 김재엽 부회장님 등 도움을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Health up, Happy up, Level up’을 기본이념으로 한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발전하는 대한생활체육진흥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한마디를 부탁하자 사전에 준비해두지 못했다며 당황하던 권순정 회장은 곧 그 말이 무색하게 뛰어난 말솜씨로 마무리를 지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자신의 모든 성과는 인복(人福)이 많은 덕분이라던 권 회장. 하지만 나비가 꽃에 이끌리듯, 그녀가 품고 있는 좋은 기운이 좋은 사람들을 부르는 것은 아닐까. 국민들의 건강은 물론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의 문화 참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권순정 회장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profile 현) 사단법인 대한생활체육진흥회 대표이사 동서울대학교 연기예술과 겸임교수 한국사회안전학회 이사 전) 댄스스포츠 스탠다드 프로페셔널선수 네이처셋프렌즈 튼튼체조 개발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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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8
  • [강남다방 박한아 대표 특별 인터뷰] 공간의 공유를 실현하는 젊은 공동체 ‘강남다방’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공간의 공유를 실현하는 젊은 공동체 ‘강남다방’ 박한아 강남다방 대표 소셜하우징의 선두 기업 박한아 <강남다방> 대표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집,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공간’에 담은 사람이다. 서울에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단순한 공간을 넘어 가치 있고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주고 있는 그녀. 박한아 대표는 “아직까지 한국 문화는 다른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는 부분에 대해 어색해한다. 그래서 공간비지니스를 통한 이윤 추구와 더불어 기존의 공간문화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며 배경적 이야기로 인터뷰에 운을 뗐다. 쉐어하우스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흐름 가운데, 흐름을 리드하며 “가치 있는 쉐어와 가치 있는 표본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고 당차게 말하는 젊은 리더 박한아 대표를 <주간인물>에서 만나 보았다. “Many rooms make many ways” 그녀는 본래 방송국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디뎠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부동산 경매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법무법인 메리트 자산운영팀에서 업무를 익히며 부동산의 흐름을 배웠다. 그녀의 이력 중 특이한 점은, 창업하기 전부터 부업으로 ‘쉐어하우스’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어쩐지 ‘그녀’와 ‘쉐어하우스’는 운명 같은 인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떠난 호주에서 1년을 지내면서 쉐어하우스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 친구들과 한집에 살며 서로를 알아갔던 시간들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지요.”그녀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놀랐던 건 너무 비싼 집값이었다. 일인가구 기준 원룸 월세는 평균 50-70만원이었고 대부분들의 직장인들이 주거비를 매월 고정비로 지출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그녀는 아이디어를 냈다. 호주에 살던 기억을 떠올리며 초기 자본 1천만 원으로 공간 공유를 시작하게 된 것. 소소하게 집 한 채를 임대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창업으로 이끈 길이었다. 이로써 시작된 ‘강남다방’. ‘다방’에는 다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많을 多, 방(MANY ROOMS), 두 번째는 많을 多, 방향 方(MANY WAYS). ‘공간을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 중심은 사람이다.’ 강남다방은 이 공간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 문화를 지향한다. 이러한 철학으로 박한아 대표는, 서울 전역에 중소형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강남권을 중심으로 직장인 집 문제 해결을 위한 쉐어하우스 그룹을 운영한다.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들은 여행자 마인드를 가지고 소통을 중요시 여긴다. 그녀 역시도 “소통을 중요시 하고 가치를 만드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소통’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쉐어하우스도 오픈하게 되었다고. “한국의 주거문화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창업초기 모델이 ‘다른 사람과도 주거공간을 쉐어 할 수 있어요’ 이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쉐어하우스의 표본모델을 선보이고, 다양한 공간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중점을 둔다고 한다. 그녀는 쉐어하우스의 매력을 손꼽아 나열한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짜릿한 쾌감을 누구나 느끼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랄까? 내가 쉬는 공간에 있을 때 누군가가 같은 공간 내에서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니 말이다.혹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사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공유문화의 기본은 ‘타인을 선하다고 믿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어서 ‘경쟁’만을 외치는 각박한 세상 속에 ‘공유경제’가 주는 혜택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박 대표. “공유는 남과 나누는 것이지요. 공유 경제의 포인트는 유휴자원을 활용을 통한 재생산 활동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 소유물 예를 들어 집, 차 등을 이용하지 않는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기업이 쉐어하우스를 대량생산을 통해 공급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생산자가 만들어 낸 렌탈사업이 되는 것이지만, 소비의 주체인 소비자가 소비의 도구였던 소유물들을 생산 활동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소비자 생산으로 선순환 되는 바. 소비자 생산이 확대되면 우리네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겠어요?”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말이다. 이어서, 박한아 대표는 쉐어하우스가 안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쉐어하우스에서 살아보니 비용 절감이라는 큰 혜택이 있지만 막상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좋은 주거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본질인데, 그 부분에서 온 딜레마인 거죠. 제 입장에서는 단순한 비용절감, 그리고 한국에 없었던 문화, 즉 이상적인 주거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쉐어문화가 잘 된 국가들은 집 구조자체가 복도식 형상으로 되어 있어, 개인과 공동의 생활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집 구조는 평면식 구조인데,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구조’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만 만들려 했던 건 아닌지 그녀는 되돌아보게 되었단다. “운영해 왔던 쉐어하우스를 돌아보니 나름의 생각이 정립되더군요. 구조적인 문제는 보완해 가며 좀 더 주거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쉐어문화는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 공간의 공유를 실현하는 젊은 공동체 ‘강남다방’. 이곳을 이끌고 있는 박한아 대표는 공간이 필요한 분들에게 대안책이 되고 싶은 것이 이상이자 목표라고 말한다. ‘게스트 하우스’에 관해서는 자신이 일궈온 부분을 ‘자신 있게 성공사례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와, 공간에서 비롯된 ‘문화’를 창출해낼 것이라는 다짐. 그녀의 선한 뜻에서 영향력은 발휘된다. 직장인들에게는 직장 외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오픈할 수 있는 선구자 역할을, 집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교류’ 역할을 하겠노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또렷하게 빛이 났다. 변화와 도전을 즐길 줄 아는 박한아 대표, 당당히 자아를 빛내고 있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물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쉐어나, 타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쉐어문화는 다른 것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틀리다고 생각하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죠.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을 통해 ‘공간의 공유’와 ‘가치’를 실현해갔으면 합니다(웃음).”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인생을 맛보는 것. 그것이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라는 박한아 대표. 공간의 공유를 실현하여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낸 그녀의 열정적인 삶과 도전을 <주간인물>이 함께 응원한다.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4-07-08
  • [록시에스테틱 박시연 원장 특별 인터뷰] 손끝에 담은 진심,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열정으로!
    [위클리피플= 이선진, 오미경 기자] 손끝에 담은 진심, 현실에 안주 하지 않는 열정 피부미용 전문가 박시연의 Beautiful Life! 박시연 <록시에스테틱> 대표원장 피부에게 있어 고난의 계절인 여름이다. 높은 온도와 습기에 땀과 피지 분비가 늘어 여드름 등 각종 피부 트러블이 발생하기 쉽고,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자외선은 피부를 칙칙하게 만들기 쉬운 이 때, 더욱 세심한 관리를 좇아 전문가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을 가꾸는 것에 아낌없는 뷰티 리더들은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에스테틱 숍을 찾지 않는다. 얼굴과 몸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실력은 물론, 지친 일상에 진정한 힐링이 되어주는 공간으로서의 그곳을 찾아 심신을 맡긴다. 주간인물이 만난 <록시에스테틱> 박시연 원장의 이야기가 강렬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취재_이선진 / 글_오미경 기자 대통령을 꿈꾸던 소녀, 피부미용의 길에 접어들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단 상상 속에 큰 꿈을 그려보곤 하듯 여장부 같던 성격의 박시연 원장은 평범함보단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큰 사람이 되리란 생각으로 대통령을 꿈꿔왔던 당찬 소녀였다. 그러나 예상할 수 없는 운명은 그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오랜 외국 생활 뒤, 한국에 들어와 그 꿈을 안고 성균관대 법학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법조계는 여자의 직업으론 힘들고, 현실적으로 막연한 공부라는 이유에서 집안의 반대에 크게 부딪쳤어요. 의대를 권유해 시험을 보려고도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어떤 길이 나의 길인지 고민하고 모색해야 했죠.” 그 즈음 한국 생활 적응을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는 문득 ‘정해 놓은 길을 가기보다 순간순간 부딪치는 상황 속에서 배우고 만들어나가는 삶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연찮게 피부미용 분야의 일을 접하면서 그것이 의사 못지않게 피부와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일임을 깨달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스로 터득한 인생의 방향 안에서 에스테티션의 길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박시연 원장은 바디케어부터 시작해 9년 남짓의 시간 동안 자신의 전문 관리 분야를 조금씩 진보시켜왔고, Skin&Body 테라피의 독자적인 전문성을 갖춘 <록시에스테틱>을 선보이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진심’이 만든 오늘여드름 전문 록시에스테틱 <록시에스테틱>은 여드름 관리를 중심으로 기타 문제성 피부 관리, 웨딩케어, 얼굴 축소 관리 등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미용 트렌드와 많은 에스테틱들의 경쟁 속에서도 이곳이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데에는 먼저 박시연 원장의 여드름 관리 노하우를 꼽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자신 역시 여드름에 의한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겪었던 박 원장은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주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왔다. “여드름의 원인은 매우 포괄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른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야하고 초기에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경험이 쌓여 노하우가 되어선지 손끝으로 만지다 보면 미세하게 다른 고객들의 상태를 보다 잘 알 수 있어요. 그에 따라 맞춤 관리를 하죠. 대표적인 여드름 원인이 피지에 의한 모공 막힘이기에 제 때 피지 청소를 하고, 소독을 철저히 하는 등 기본에 충실한 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박 원장은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에스테티션들이 많고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지만, 만성 여드름 고객들이 그녀의 관리로 뚜렷한 피부 개선 효과를 얻은 수많은 후기를 보면 그 실력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 외에도 미용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미적 감각의 선두에 있기를 지향하는 박 원장은 젊은 나이에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세계 5대 미인대회 중 하나인 미스인터콘티넨탈대회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승무원 등 단기간에 뚜렷한 효과를 내고자 하는 이들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노하우와 대외적인 활약상보다 더 큰 이곳의 내공은 바로 고객을 대하는 박시연 원장의 ‘진심’에 있다. 그녀는 “피부미용 관리에 있어서 고객에게 손끝으로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스킨십이 아니라 마음”이라며 “먼저 고객에게 마음을 열고 언니처럼, 동생처럼 다가가다 보니 고객의 몸에 난 이상 뿐 아니라 마음에 난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관리상에 시너지 효과를 냄은 물론, 그녀 자신에게도 하나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고. 박 원장의 이 같은 신념은 <록시에스테틱>이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매우 두터운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는 배경이 됨을 알 수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열정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나누는 마음으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생기는 자신감 있는 모습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는 박시연 원장의 말처럼, 그녀는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계속 가꾸어 나가면서 그녀만의 빛을 내는 사람이었다. 현실에 안주하여 후회하기보다 한 단계씩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늘 시도하고, 부딪치고, 자신과의 약속에 책임을 지고자 노력 해 온 그녀였다. 자신을 향한 꾸준한 채찍질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에 박 원장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척집에서 자라다보니 저도 모르게 늘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컸었어요. 누군가 좋은 점이 있으면 꼭 배워서 항상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었던 것 같아요. 혹자는 그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하지만 저는 긍정적이었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단지 ‘불행’과 ‘행복’의 잣대 안에서만 판단하고 그칠게 아니라 나의 생활과 결부시켜 생각해야 더 나은 내가 되고, 큰 행복이 오는 거라고요.”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당시의 상황이 오히려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지금의 모습과 발전된 자신을 만든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박시연 원장은 이제 어디를 향해 자신만의 빛을 비추어 나갈까. “선량한 사업가이자 미용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진 않지만, 그것은 제 자신을 이겨내고,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존경받는 에스테티션이 되고 싶어요. 또 미약하나마 제가 가진 재능을 어려운 이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치유하고, 여드름 때문에 자살충동에 이르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조금씩 해오고 있는 독거노인 분들을 위한 봉사도 이어나가 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면 피부미용 업계 종사자들의 자부심과 전문성 향상을 위한 국가적 지원도 따라서 좀 더 다양한 혜택을 고객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목표가 있고 ‘가슴이 시키는 일’을 찾은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얼굴엔 아무리 힘들어도 미소가 만연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던 박시연 원장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사업가이자 미용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설 그날을 위해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그녀의 삶은, 그래서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profile.세계미스인터콘티넨탈 심사위원세계미시즈월드 심사위원미스코리아 심사위원한국제일미녀공회 심사위원 국제뷰티아티스트 심사위원뷰티경영컨설턴트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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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8
  • [청담산부인과외과 김태희 원장 특별 인터뷰] "하이푸치료로 종양환자의 삶에 꺼진 희망을 켜드리겠습니다."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종양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 하이푸((HIFU)치료의 국내 발전을 이끌다 “환자의 삶에 꺼진 희망을 다시 켜드리겠습니다” 김태희 청담산부인과외과 원장 / 중앙대학교 외래 교수 여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신체기관인 자궁. 이 자궁의 중요성을 매순간 체감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늦어지는 여성의 초산과 서구식 식생활, 스트레스, 과로 등으로 인해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등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최근 4년 새 급격히 증가했고, 통계로 따지기 힘든 환자들까지 합쳐 약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더욱이 자궁질환 진단을 받은 여성들이 대개 자궁근종절제술이나 심하면 자궁적출술을 권유받게 됨으로써 몸과 마음 모두 상당한 충격에 휩싸여 왔던 것을 생각했을 때 자궁질환은 여성에게 결코 ‘감기만큼 흔한 질환’일 수만은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비수술 요법이 주목 받고 있는 가운데, 자궁근종 및 악성종양의 치료에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는 하이푸 치료의 국내 발전을 이끌어온 주인공이 있어 <주간인물>이 만나보았다. _ 취재 이선진, 오미경 기자 인터뷰 기회가 쉽사리 닿지 않아 아쉬움만 커지기를 몇 달.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인연은 돌고 돌아 <청담산부인과외과> 김태희 원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자궁근종 및 악성종양 환자에 희망 전하고자 병원 열어 “무엇보다 환자가 삶에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자궁근종·선근증 등을 앓는 환자들 외에도 대학병원의 방식과 치료에 따르지 못하고 보다 더 좋은 치료를 위해 떠도는 악성종양 환자, 이른 바 ‘암 난민’으로 불리는 이들에게 삶의 의욕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의료진의 실력과 경험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먼저 개원의 배경에 관심이 쏠렸던 취재진을 향해 김태희 원장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자궁근종 및 악성종양을 다루는 수술이 침습적인 방법에서 비침습의 방법으로 진화되고 있는 가운데 <청담산부인과외과>는 하이푸(HIFU:High Intensity Focused Ultrasound)치료, 고주파용해술, 혈관내치료 등 가장 최신 단계의 시술을 중심으로 환자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국내 유수의 병원에서 하이푸 치료 센터장을 역임하며 실력을 인정받아 온 김태희 원장은 갑작스런 집안일로 잠시 휴직을 했을 당시, 그간 일궈온 하이푸 치료의 성취와 암에 대한 노하우를 그대로 놓을 수 없다고 생각 했다. 다시 환자들을 위한 치료를 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산부인과 전문의 김민우 원장과 함께 뜻을 맞춘 그는 최신 치료법을 뒷받침할 첨단의 장비와 선진진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청담산부인과외과>를 시작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청담산부인과외과>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하이푸 치료를 아시나요? 국내에 많이 보급되지 않은 최신 치료법을 중심으로 이제 막 문을 연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청담산부인과외과>가 주목을 받는 데는 국내 하이푸 치료 외과 의사 1세대로서 지난 2월 하이푸 나이프 국내 최다 시술(1,000례)을 돌파한 김태희 원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현존하는 가장 최신 비수술 요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하이푸 치료의 국내 발전을 이끌어 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하이푸는 일종의 열 치료 요법으로, 돋보기 원리와 같습니다. 돋보기를 이용해 햇빛을 한 점으로 모으면 빛이 모인 초점 부위가 열이 발생하듯, 하이푸는 인체에 무해 한 고강도 초음파를 초점화 하였을 때 65℃~100℃의 고온이 발생해 종양세포를 소멸시키는 원리이죠. 현재의 하이푸 치료기기가 우리나라에 도입됐을 때는 간암 치료용으로 먼저 승인이 되었는데 자궁근종·선근증 환자 중 많은 수가 수술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을 보며 ‘이 치료에도 적용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 교육과 보급을 통해 하이푸는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여 지금에 이르렀어요.” 하이푸 치료는 비절개의 방법이기에 흉터나 출혈이 없어 환자에게 신체적 부담이 없고, 자궁근종절제술이나 적출술 등의 방법과 달리 자궁의 기능상실 우려가 없어 정신적인 부담과 고통까지 덜어주는 치료법이다. 자궁근종·선근증의 경우 미혼과 중장년 층 뿐 아니라, 가임기 여성에게도 치료가 가능해 만족도가 높다. 그 외 갑상선암 치료에 주로 쓰이는 고주파용해술과 함께 <청담산부인과외과>에서 행해지고 있는 시술에는 혈관내치료가 있는데, 이는 암세포 근처에 동맥과 정맥이 얽혀 생기는 신생혈관 때문에 암세포의 전이가 쉬워지는 것을 약물 주입으로 막고,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신생혈관의 불필요한 혈류만을 줄여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항암제의 양은 전신항암보다 적은 1/20이하로 쓰면서 종양조직 내에 농도는 40배가 높고, 합병증이나 통증 등의 부작용이 없으며,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있어도 혈관을 하나씩 찾아 동시 치료가 가능한 장점 등이 있다. 특히 김태희 원장은 유방암이 전이되어 온 환자의 경우 혈관내치료법과 하이푸 치료를 함께 활용해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데 이 치료법은 일본의 종양내과 전문의 오쿠노 교수가 90년대 초반부터 연구해 온 끝에 정립한 것으로, 김태희 원장에게 그는 전문성을 키우는 데 촉진제가 된 인물 중 하나였다. 그가 김태희 원장에게 자기 환자의 하이푸 치료를 맡긴 일이 계기가 되어 김 원장이 혈관내치료를 배우게 되었고, 둘은 지금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김태희 원장은 이러한 최신 치료법을 중심으로 시술을 해옴에 있어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의사가 아닌 환자 중심의 시술 프로토콜을 지향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개척과 성장을 지나 또 다른 도약으로!종양외과 전문의 김태희 원장이 꿈꾸는 내일 젊은 나이지만 하이푸 치료의 국내 개척자답게 ‘초음파 조영제를 이용한 하이푸(HIFU)치료’에 대한 발표를 비롯해 그 동안 꾸준한 연구로 다양한 학술발표를 해오고, 다른 대형병원의 하이푸센터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해온 김태희 원장. 그의 명성은 분명 하루아침에 이룬 것은 아니었다. 처음 하이푸 치료를 접했을 땐 스스로도 생소한 방법에 어리둥절했었던 게 사실이지만, 본인 앞에 주어진 것에 망설이기보다 혼자서 논문을 찾아보고, 세계 최초의 하이푸 국가기술표준안이 발표된 중국과 그 외 일본의 방식들을 비교해가며 ‘김태희 원장만의 오늘 날 하이푸 시술 프로토콜’을 정립할 수 있었다. 지금에 이른 과정을 두고 단지 운이 컸을 뿐이라 말하는 김태희 원장을 보며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군인이셨고, 시골에서 자랐어요. 특별할 건 없었는데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좀 많은 편이어서 책을 많이 읽었고, 철학과 인문학적인 고민도 많이 하며 여러 가지 장래희망을 꿈 꿨었었죠. 그런데 제가 7살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일을 겪으면서 어렸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인상 깊게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결국 의대를 가게 되었고, 전공을 정할 때도 소위 탄탄대로라고 하는 분야보다는 좀 더 배울 수 있는 폭이 넓은 외과 분야의 길을 택하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 덤덤하게 지난 시간을 기억해 내는 동안, 김태희 원장은 자기표현이나 자랑에는 영 서투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은 ‘의료인 김태희’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더 정확히 말해주고 있었다. “유방암이 전이되어 팔을 못 움직이던 환자가 하이푸 치료를 통해 다시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극심한 악성종양의 통증으로 잠도 못 자던 환자가 다시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고, 결혼하자마자 자궁선근증을 진단받고 임신 불가의 상황에 처했던 환자가 드라마틱한 치료 결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는 등 지금껏 만나온 수많은 사례들을 속에서 저도 울고, 또 웃었습니다. 아직 젊다보니 앞으로 거창하게 어떤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주어진 소임에 우선 최선을 다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이푸 치료가 많이 보급되어야 환자들도 정보를 알고, 스스로 치료법을 선택하는 권리를 더 누릴 수 있기에 앞으로 환자 치료는 물론, 제가 가진 하이푸 치료의 지식과 기술을 의사들에게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연구를 통해 현재의 치료 프로토콜을 한 단계 진보시켜 췌장암, 간암 등의 효과적인 치료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가겠습니다.” 닿지 않는 곳에 대한 개척가의 마음처럼, 가능성과 잠재 가치만을 쫒아 어쩌면 무모하게 시작했던 것인지도 모를 하이푸 치료. 그러나 열정과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척박했던 국내 하이푸 치료의 첫 삽을 뜬 김태희 원장은 숙련되고 안전한 시술로 많은 환자들의 삶에 ‘희망’이란 단어를 새겨 온 끝에 이제는 더 큰 희망을 향해 전진 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그가 들려줄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며 <청담산부인과외과>가 내딛은 힘찬 한 걸음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profile. - 종양외과 전문의 / 청담산부인과외과 원장- 유방암 및 여성종양, 간암, 췌장암 치료 전문 / 혈관내 치료 전문 - 중앙대학교 외래교수 - 신기술 평가 위원회(NECA)위원 - 대한외과학회 정회원 - 외과초음파연구회 정회원 -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원 - 종양외과학회 정회원 - 중앙대학교의료원 외과 전공의 수료- 태안보건의료원 응급의학 과장 역임- 강남베드로병원 하이푸센터장 역임 (학술활동)- 2014년 5월 16일 인천 현대유비스병원 컨퍼런스 개최△ “HIFU-Knife를 이용한 간암 및 기타 종양 치료 경험” -2013년 10월 22일 서울 삼성의료원 컨퍼런스 개최△ “HIFU-Knife를 이용한 간암 및 기타 종양 치료 경험“ -2013년 7월 15일 제1회 양츠 최소 침습 및 비 침습치료학회△“자궁근종 치료에 대한 초음파 조영제의 효과”에 대해 발표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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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리더스
    2014-07-01
  • [에이치성형외과 백정환 원장 특별 인터뷰] 3D FIT 안면조소술을 고안한 Dr. Baek Story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준영 기자] ‘과정’도 도전이다!3D FIT 안면조소술을 고안한 Dr. Baek Story 백정환 에이치성형외과 원장 / 성형외과 전문의 어린 시절 백정환 원장은 작은 용돈들을 모아 조립식 장난감과 프라모델을 사서 만드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고가의 장난감이라 할지라도 그의 레이더 망 안에 들면 부모님께 설득을 구해 원하는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꼭 넣었고, 며칠 밤을 새서 조립을 하다가 잠들기도 했던 추억 속 꼬마아이. 어릴 적부터 오타쿠 기질이 있었던 그는 컴퓨터와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이랬던 그가 훗날 의대를 택하여 성형외과 의사생활을 순탄하게 지내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잊고 지냈던 열정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간, 그 불씨를 살린 기회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3D 프린터’와의 인연이다. 오늘 <주간인물>에서는 백정환 원장을 만나 성형외과 의사로서 남다른 재건수술 이야기와 그의 영향력을 조명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준영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3D FIT 안면조소술, 화려한 성형수술 뒤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다 백정환 원장이 미용성형 분야에서 몸 담아 온 기간은 10여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이런 그가 매너리즘에 빠질 무렵 3D프린터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 분야를 시작하게 되면서, 교통사고로 인한 재건과 잘못된 성형수술의 복원에 뜻을 둔 재건수술 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게 된다. “2012년 6월의 어느 날. 한 환자에게서 날아온 편지가 의사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무분별한 사각턱 절제로 턱뼈를 잘못 깎아 고통 받는 환자가 찾아왔는데,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었어요. 이 환자의 x-ray와 CT 사진을 보니 의사로서의 미안함과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이라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백 원장은 “당장은 힘들겠지만, 방법을 찾아 보겠다, 그리고 찾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로 환자에게 약속을 하고, 수술 대안을 찾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오랜 연구 끝에, 백 원장은 3D프린터로 보형물을 제작해 미용, 재건수술에 적용하는 ‘3D FIT 안면조소술’을 고안하게 된다. 자신의 턱뼈를 그대로 3D모델링을 해 3D프린터로 뽑아내고, 그 단면에 딱 맞는 보형물을 만들어 넣는다는 기술이었다. 이 3D프린팅을 성형외과 수술에 도입해 상용화한 것은 국내 최초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획기적인 일이었다.“대학 시절 양악 수술 전 RP model을 통해 수술 전날 수술방에서 늦은 시각에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던 경험과, 3D CT를 통해 하악골과 그 연부 조직을 측정하는 논문을 썼던 경험이 떠올랐어요. 그러던 중 3D프린팅이라는 기사를 2013년 초에 접하게 됐습니다. 이후 3D프린팅을 성형외과 수술에 도입해 정확도, 재료 적합성, 실현 가능성 등을 검증하며 상용화시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요. 오랜 연구와 검증 끝에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장비를 도입하여 실제 임상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양악수술로 심한 개턱현상, 무리한 T절골로 인한 계단현상, 이마나 정수리 등 두상이 함몰된 사람, 앞과 옆 광대의 함몰 등 안면부 안면윤곽의 시술은 모두 3D FIT 안면조소술로 적용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잘못된 시술로 아무리 심하게 잘려나간 턱뼈라 할지라도 90% 이상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간 많은 환자들이 백 원장의 손을 거쳐갔지만 특별히 마음에 남는 환자도 있었으리라 궁금했던 기자는 ‘기억에 남는 케이스’에 물음표를 던졌다. “교통사고로 두개골이 함몰, 변형된 어머니가 계셨어요. 뇌수술을 하신 적이 있고 사고를 당하신 분이었는데 그 분께 복원 수술을 해드린 적이 있어요. 수술 후 환자분께서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복원 수술을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3년 전, 같은 모습으로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신 백 원장의 어머니를 떠오르게 한 이 환자는 시의적절하게 찾아와 수술을 받았고 그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얼마 전에 찾아온 한 환자는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을 주었다. “7년 전 외상에 의해 턱뼈가 금이 간 채 별다른 치료 없이 7년을 보냈다는 이 환자 분은 좌측 하악각이 없었습니다. 입은 틀어지고 음식은 씹을 수 없고 치아는 거의 못쓸 지경이었고요. 입을 벌리는 것도 말하는 것도 불편해하셨지요.” 어떻게 해서든 환자를 치료해주고 싶었던 백 원장.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걸 잘 알았던 그는 수술을 위해 치과 의사와 티타늄 보형물을 제작해줄 업체 CEO를 만나 협력을 구했다. “흔쾌히 수술에 동참해 주겠다고 하셔서 많은 분들의 협력으로 진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여개의 임플란트, 10여개의 보철 치료, 손실된 하악의 재건, 삽입된 티타늄 보형물에 임플란트 식립, 턱관절의 원위치 및 물리치료, 정상 교합을 위한 교정치료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함께 한다면 그야말로 ‘선한 일’이고 보람 있는 일 아니겠냐며 그가 의미를 전한다. 그저 정상적으로 말하고 정상적으로 식사하고 이분의 입가에 미소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에게 ‘도전’이고 이 일을 시작한 ‘이유’라고. 한편, 에이치성형외과의 재건지원프로그램은 기자의 눈에 띄기에 충분했는데, “화려한 성형수술 뒤에 가려진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3D FIT 안면조소술이 해법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사진과 사연을 바탕으로 복원 가능성 및 재건지원프로그램의 취지에 맞는지 여부를 판단한 후 사연이 있는 이들을 선정하여 무료로 수술 지원을 해주며, 선정된 이들에게는 기부금을 자율로 맡겨 선천성 기형 아동 돕기 재단에 납부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과정을 즐기는 ‘오타쿠’들의 ‘콜라보레이션’ 백 원장이 고안한 3D FIT은 내 몸에 딱 맞는 나만의 보형물을 만들 수 있기에, 기존 보형물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체한다는 면에서 분명 장점이 있다. 내 몸에 딱 맞지 않아 생겼던 문제들, 최소한 부작용에서 3D FIT은 해결을 가능케 했고 기술과 의학이 융합된 새로운 접근을 만들어냈다. “엔지니어도 아니고, 3D 시뮬레이션 프로그래머도, 재료공학자, 화학자도 아닌 제가 3D 모델링을 활용해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여기저기 손 벌려야 하는 일이 많지만 일단 질러보니 재미있는 건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군요.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사업이든 취미든 같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우리가 함께해보자’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오던,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제 친구가 있는데요. 어느 날 서울대 화학과 대학원생으로부터 저는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부분에 의견을 나누고자 저희 병원을 방문하겠다고 말이죠. 연배가 지긋하신 교수님을 떠올리며 제가 학교로 찾아뵀더니 의외로 젊은 교수님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제 친구와 그 교수님이 ‘서울대 화학과 동기’간 이더라고요.” 교수진의 특허기술과 백 원장의 연구분야는 응용해서 접목이 되었고, 또 다른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협업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관심 있는 오타쿠들이 모여 물밑작업 하는 것들을 모을 수 있다면, 새롭게 도래한 융합시대에 의미 있고 창조적인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서로의 관심사가 맞아 떨어질 때 시너지는 증폭됩니다. 혼자서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같이 가는 거라 생각해요.” 백 원장은 남다른 깊이와 통찰력이 있었지만, 진중하고 겸손함이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일반 대학병원급에서가 아닌 개인의원에서 3D프린터 장비를 들여놓은 것도 최초요, 전문분야도 워낙 특화되어 있지만 그는 자신이 뛰어나서 이 ‘재건수술’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성형외과 의사로서 미용성형에 대해 염증을 느끼던 시기에 자신에게 재미와 일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것이 ‘재건수술’이었다고. 타 병원에서 수술 후 부작용을 안고 온 환자들, 유행과 광고에 희생된 환자들을 볼 때 너무나 안타까웠다는 백 원장은 한 명의 사람으로서 한 명의 의사로서 그저 작은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엎질러진 물이라고 그냥 바라만 봤던 환자들, 주워 담을 수 없다고 포기했던 환자들. 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기 보다는 가능성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온전히 다 담을 수 없다 하더라도 말이죠.” 재미있고, 보람되고, 의미있는 일 하고파 그가 진로를 택할 때 좋았던 점은 ‘발톱 끝부터 머리 끝까지 다 보는 과’, ‘들어올 때 웃고 나갈 때 웃으며 나가는 과’가 ‘성형외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제 일을 통해 사회에서도 해피바이러스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보람이 의학적으로 내 관심분야로 보람과 재미를 모두 다 가져다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매우 보람 있습니다. 작년에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기둥을 밟고 오르며 서로 이기려고 하는 애벌레 모습에서 우리네 치열한 삶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한 발짝 떨어져서 조망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설령 번데기로 끝날지 나비가 되어 날아갈지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할지라도 그 과정이 저한테는 굉장히 좋아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의학적으로도 사회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지금 하고 있기에 더없이 행복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한 Technique(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술은 예(藝)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Technique(기술)에 감정과 영혼이 녹아들어간 Art(예술)가 그의 손짓을 통해 발현되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한 일. 3D 프린터로 시작한 재건수술. 그는 더 나은 수술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여,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누구든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 엎질러진 물을 조금이나마 담고 싶어 한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ys100ps)를 보여줬다. 포스팅 제목은 ‘3D프린터를 활용한 최초의 팔찌’인데, 3D프린터로 이것저것 해보던 중에 아이디어를 낸 백 원장과 금속공예 작가인 민준석 교수가 제작한 콜라보레이션 작품이란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실물을 7월 10일 이후 전시장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고. 이렇듯 그는 사람들을 만나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얻고 서로의 전문성을 융합시켜 폭발적인 시너지로 창출해내고 있었다. 작은 소망이라면, 온라인 커뮤니티나 작은 소모임이라도 만들어서 오타쿠들의 모임, 전문가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던 백정환 원장. 그는 시대에 부합하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리더였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하고 있을지 몰라도, 도전 속에 과정을 즐기며 재미와 보람과 의미를 찾아가는 백 원장. 그와의 인연으로 많은 이들이 상처에서 치유되길,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사회로 이끌어지길 주간인물이 함께 응원한다. ◈profile성형외과 전문의연세대 의과대학 졸업세브란스 외래교수미국 UPMC 연수대한성형외과학회 정회원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정회원대한두개안면성형학회 정회원현 H성형외과 대표원장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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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1
  • [지성한의원 손덕칭 원장 특별인터뷰] 두뇌신경질환, 환자마음까지 돌보는 평생 동반자 되겠다
    “환자의 마음까지 들여다 볼 줄 아는 평생 동반자로 남겠습니다” 두뇌신경질환 환자의 ‘치유’ 돕는 한방 ‘인의’를 만나다 손덕칭 지성한의원 원장 / 대전대 한의학과 겸임교수 ‘의학은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인술’이라는 말이 상기 시켜주듯, 사람을 치료하는 일이란 단순히 몸에 드러난 상처나 질병만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아프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의 상태에 대해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좀처럼 낫기가 힘든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몸과 함께 마음도 병들기 쉬운 만큼 환자에게 이 말은 더욱 와 닿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치료를 잘하는 이를 명의라고 한다면, 환자를 하나의 케이스로만 보지 않고, 동반자로 여겨 스스로 병을 이겨 내도록 치유를 돕는 의사는 ‘인의’라 부를 만하다. 오늘 <주간인물>은 학업과 업무 등으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현대인들에게 갈수록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두뇌신경계 질환의 ‘치유’를 위해 묵묵히 한 길만을 걸어 온 인의, <지성한의원> 손덕칭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_ 취재 이선진, 오미경 기자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양천구에 위치해 있는 지성한의원을 찾았다. 하루 종일 이어진 환자 진료가 끝나고 마주한 상황에서도 생기 넘치는 목소리와 얼굴로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하는 손덕칭 원장. 한의학을 이용한 난치성 두뇌신경 질환의 치료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궁금해 하는 기자의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이 사람, 질문을 던지자마자 조목조목 쉴 틈 없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한방내과 전문의, 두뇌질환과 신경질환의 관계에 눈뜨다 한방내과 전문의인 손덕칭 원장은 한의원을 열기 전, 한방병원에 있으면서 한의학적 치료를 선호하는 질환인 중풍 환자들을 주로 많이 만나왔었다고 한다. 양방과의 협진이 토대로 된 곳이었기에 신경과 의사와 협진을 통해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손 원장은 당시의 그 과정이 지금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떠올렸다. “그 때 중풍과 같은 뇌질환을 양방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치료해 나가는지 보면서 편두통(간질), 메니에르증후군, 모야모야병 등 기존 한의원들에게서 잘 다루지 않는 난치성 뇌질환들이 양방의 치료에서도 분명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았어요. 오히려 한의학으로 좋아지는 경우를 계속 볼 수 있었죠. 그리고 수련의를 하면서 만난 중풍환자들을 보면 늘 ‘왜 중풍에 걸렸나?’를 물어보고, 고민했었는데 고혈압 등의 원인도 물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는 다들 발병 전 정신적인 데미지를 크게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양방에서는 흔히 정신적인 데미지를 스트레스라고 정의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것이 과연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했고, 저는 중풍환자들을 치료할 때 노래를 불러주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도록 장려하는 방법을 썼는데 환자의 급격한 상태 호전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두뇌질환은 분명 정신적인 것들이 관여되어 나타나고, 치료 또한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뇌질환과 신경질환을 함께 다루며 임상경험을 쌓아간 그는 2008년 <지성한의원>의 문을 열었고, 병원을 전전한 끝에 간절한 마음으로 한의학을 찾는 난치성 두뇌신경질환 환자들의 멘토로 활약해 오고 있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한의학적 치료로 두뇌신경질환의 해법 제시하는 <지성한의원> 손덕칭 원장은 “두뇌의 기혈 순환에 이상이 생기면 다양한 형태의 두뇌질환이 생긴다”고 말하며, 특히 무한경쟁 구조의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정신적 압박과 노동 속에 살아가는 만큼 두뇌로의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두통, 어지럼증, 메니에르증후군, 이명, 간질, 집중장애와 같은 난치성 두뇌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연령에 상관없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성한의원>은 이러한 난치성 두뇌질환의 치료에 어떠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두뇌질환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무겁고, 맑지 않은 상태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한의학은 두뇌질환의 치료 시 적절한 산소의 공급을 핵심이자 기본의 방법으로 두고 있지요.” 손덕칭 원장은 이를 위해 먼저 전정균형검사와 두뇌의 순환상태 진단에 필수인 비침습적 방법의 혈관노화도검사 등을 통해 철저한 두뇌 검사를 거치고 있다. 그리고 두침, 약침 등의 침 치료법과 환자들의 정확한 체질 분석에 따른 한약요법을 병행하여 탁월한 효과를 내오고 있다. 한편 손 원장은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강박장애 등 뿐 만 아니라 정신적인 놀람의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 나타나는 경기나 교통사고 후유증도 신경질환의 하나로 포함시켜 스트레스클리닉을 통해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신경질환의 경우 “과도한 업무와 학업, 팍팍한 삶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지니는 불안함이 바탕이 된다”고 설명하며 무엇보다 예방 차원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집중력 장애 및 ADHD의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침과 한약(총명탕)치료를 통해 개선시키는 등 <지성한의원>은 국민적으로 번져가는 난치성 두뇌신경질환의 발병 양상에 맞서는 체계적인 치료로 환자들의 신뢰는 물론, 한의학에 등 돌렸던 사람들의 인식을 달리 얻는 일에도 기여하고 있었다. 손 원장은 한방 쪽에서는 학계에 보고된 바가 많지 않은 난치성 두뇌신경질환의 치료 사례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계속 이어나가 향후에는 학계에 증례 보고도 할 예정이다. 한의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한·양방 바라보는 균형적인 시각 가져야 그러나 이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해 오는 동안에도 사실 안타까움은 늘 있었다. 치료시기를 놓쳐 뒤늦게야 한의원의 문을 두드리는 많은 환자들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었다. 손덕칭 원장은 “두뇌를 많이 쓰고, 쌓여있는 과업으로 자기 몸은 챙기지 못하는 바쁜 현대인들은 머리가 무거워 지면서 두뇌질환이 생기고,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정신적 어려움을 겪더라도 가볍게 여기거나 회피하거나, 대부분은 양방에서의 진단과 치료만을 1차적으로 떠올리고, 그것을 전부로 생각해 치료를 빨리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저는 급성기의 경우는 오히려 환자들에게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합니다. 실제로 급성기 치료에 있어서는 양방이 더 빠르고 좋은 치료 결과를 내는 방법이거든요. 반면, 만성기의 경우에 있는 환자는 근본적인 원인을 전인적으로 찾아 들어가 치유하는 한방의 방법이 더욱 효과적인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 초기에 치료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한의학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만난 한 예로 메니에르증후군(돌발성난청)을 앓게 된지 6개월이 지난 환자는 양방 병원에서 4개월이 될 때까지 치료를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치료 가능 시기를 넘겨버리자 자포자기 하고 있던 차에 친척의 소개로 마지못해 이곳 지성한의원을 찾았다가 3개월 만에 병이 낫기도 했다. 이 외에도 어렵사리 한의원을 찾은 끝에 호전을 보인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들으며,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되찾는 데 있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점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뇌신경 질환을 비롯한 많은 난치성 질환 치료에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손 원장은 “의학은 사실 어느 쪽도 완벽할 수는 없기에 한·양방 모두 각자의 어려움이 있는 영역을 인정하고, 의학의 근본적인 목표인 ‘사람을 치유하는 것’에 초점을 합일시켜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한의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뒷받침 되어 균형적인 시각에서 한·양방을 바라보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지금껏 한의학이 치료의 재연성이 적고 병의 기전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들어 비과학적인 의학으로 치부되어 온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한방을 ‘한의원+건강원+민간요법’의 범주에서 잘못 이해하는 데 그친 인식의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 민간의 방법이 통용되고, 전문의의 진단·처방 없이 약의 제조와 치료가 이뤄져 온 측면들이 있다는 것은 문제임이 자명하나, 민간요법은 한의학과 통속적으로 엄연히 다릅니다. ‘배 아플 때 매실 액기스가 좋다’와 같이 쓰이는 것이 민간요법이라면, 한의학은 똑같이 배가 아픈 증상이더라도 원인과 체질에 따라 먹는 약과 치료법이 모두 다른 변증치료를 바탕으로 하는 의학이기에 그 본질이 다른 것이죠.” 이는 단순히 한의학의 가치를 왜곡시키는 것에 대한 지적을 넘어 불균형적인 인식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편견이 환자 스스로 본인의 치료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시키는, 즉 치료시기를 놓쳐버리는 현실로 이어지게 하는 만큼 분명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었다. ‘사람들을 선한 곳으로 이끌라’손덕칭 원장의 삶이 향하는 곳 장시간의 인터뷰가 후반부를 향해 가는 동안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환자와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더욱 행복한 미소가 묻어나는 손덕칭 원장을 보면서 한의사란 직업이 그에게 어떤 의미일지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린 시절 겪은 일화 하나를 풀어놓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거예요. 어떤 분이 길을 물어보셔서 알려드렸더니 매우 고마워하셨는데 그 모습이 어린 제게 감정적으로 굉장히 큰 느낌을 주었어요. 누군가에게 아주 사소하지만 무언가 도움을 주었을 때 느끼는 마음, 보람과 기쁨의 감정들이 아주 인상 깊었었죠.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만들어준 기억이고, 직업의 의미도 부여해준 일이었어요.” 그래서일까. 철학처럼 사람과 삶을 통찰하는 일에 관심이 컸던 그는 양방의 체계적인 의학도 좋지만 청소년 시절에 ‘동의보감’ 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한의학의 매력에 눈을 떴고, 아픈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한의사의 길을 진로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스승으로부터 ‘사람을 선한 곳으로 이끌라’는 의미의 ‘도선(導善)’이라는 호를 선물 받은 손덕칭 원장은 그 뜻처럼 크든 작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자 늘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진료활동 곳곳에도 스며들어 손덕칭 원장만의 남다른 한의원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한의원의 이름에서 드러나듯 항상 최선을 다해 부끄럼 없는 치료가 되도록 환자를 지극정성의 마음으로 돌본다는 소신이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기본이 퇴색된 모습이 만연한 오늘 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자 그의 우직한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환자의 평생 동반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점이다. 손 원장은 환자의 몸에 난 상처 뿐 아니라 마음의 고민에도 귀 기울여 진정한 삶의 동반자가 되리란 생각으로 환자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가 한방병원에 있으면서 만난 공황장애를 앓던 한 여성 환자는 심신이 힘들 때마다 고비를 넘기도록 도와주고, 마음을 보듬어 준 그의 치료에 감명 받고 자신도 간호사의 길을 선택해 아픈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정도다. 손 원장은 “난치성 질환을 지닌 환자들은 오랜 병 치료로 마음의 상처가 깊다”며 “단순히 질병을 낫게 해주기보다 그 사람의 삶에 내가 도움이 되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체질에 근거한 환자 맞춤식의 정확한 치료로 건강을 돌보며, 재발예방 및 식생활 관리에 주력하는 철저한 치료 역시 세심하게 배려하는 손 원장의 신념이 묻어난 <지성한의원>의 풍경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더욱 인상 깊었던 건 진료실 밖, 그의 일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도선(導善)’의 삶이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의료를 통한 도움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닿는 도움을 나누어 나가는 일이 그저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였다. 그래서 손 원장은 학회활동을 통해 학생 때부터 해 온 의료 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올해는 처음으로 해외의료봉사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한의원이 위치한 지역 내 독거노인들을 위하여 실내에서 운동할 수 있는 자전거를 기증하기도 했던 그는 아들과 함께 하는 개인 후원 활동도 작지만 소소한 행복으로 지켜나가고 있었다. 천직으로 여기는 난치성 두뇌신경질환의 치료와 어딘가에 도움이 되는 삶을 위해 하루하루 성실히 걸어 온 손덕칭 원장. 그는 마지막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방과 양방의 협진을 토대로 한 두뇌신경질환 전문 한방병원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더 큰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많은 의사들이 고민하는, 또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의사, 좋은 의사란 무엇일까. 병을 잘 고치고 환자가 많은 의사, 방송에 자주 비치는 의사, 소문이 난 의사 등등 물론 기준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필자 역시 여러 번 해본 생각이지만 그 답은 오늘로써 또 한 번 어느 정도 확실해진 것 같다. 진정한 좋은 의사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고칠 줄 아는 의사라는 것’. 제대로 된 치료는 마음을 들어주는 일, 소통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질병은 싹이고, 마음이 뿌리라면 손덕칭 원장은 그래서 뿌리를 볼 수 있는 의사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그의 진료실은 뿌리에 스며들어 시든 싹에 꽃을 피울 한 줄기 단비를 만들기 위해 밤늦도록 불이 꺼질 줄 모르고 있었다. profile. 한의학박사 한방내과전문의대전대 한의학과 겸임교수동수원한방병원 내과과장(역임)사상체질의학회 정회원대한스트레스학회 정회원대한 약침학회 정회원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27
  • [ES피부과 성형외과 박상혁 대표원장 특별 인터뷰] 느리지만, 한걸음씩, 한결같이! 진정한 美를 불어넣는 휴머니스트 닥터를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 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느리지만, 한 걸음씩, 한결같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불어 넣는 휴머니스트 닥터를 만나다 박상혁 ES 피부과 성형외과 대표원장 세상이 온통 빠르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오늘도 속도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스마트 폰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수많은 정보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빠르기만한 것은 중요한 무엇을 놓치게 만들기 쉬워 결코 능사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속도보단, 느리지만 우직한, 한결같은 모습이 목표에 다가가는 진정한 지혜로움이자 느림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의료계 역시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빠르게 변하는 사람들의 미적인 기준까지 아울러야 하는 미용성형의 분야에서 서두르기보다 우직한, 느림의 미학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만나보았다. 취재 이선진 기자/ 글_오미경 기자 새로운 도전 선보이는 ES 피부과 성형외과 “그간에 다룬 의료의 범위가 클리닉으로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진 것이었다면, 이번엔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방향으로 시야를 넓혀 작지만 새로운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2007년 신촌에서 1호점을 시작, 2013년 또 한 번 신촌에 2호점을 연데 이어, 마침 내 미용성형의 메카이자 입성하기 만만찮은 곳이라 불리는 강남 압구정에 지난 달, 세 번째 지점을 연 ES 피부과 성형외과의 박상혁 대표원장은 그 배경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힘 있는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ES 피부과 성형외과는 ‘Esthetic’과 ‘Science’를 합쳐 만든 이름 그대로 궁극적으로 ‘과학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 박상혁 대표원장 이하 총 8명의 전문의가 호흡을 맞춰 오고 있으며, 환자 층의 폭넓은 수용이 어려웠던 신촌이란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신뢰를 쌓아 피부와 리프팅, 눈·코 성형, 지방흡입 및 이식 등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전문성을 만들어 온 덕분에 이번에 문을 연 3호점은 ‘가슴성형’ 이라는, 좀 더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미용성형 분야에 비중을 두게 되었다. 느리지만 정확한 걸음걸음!과학적인 범주 안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만들다 피부과와 성형외과의 포화 상태 속에서도 ES 피부과 성형외과가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한 걸음씩 소신 있게 내딛어 온 박상혁 원장의 가치관과 오너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각자의 득실을 따지기보다 고객우선주의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비록 속도는 늦더라도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다 같이 그 길을 가는 게 맞다 생각해 ES의 모든 것은 제가 직접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S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의사선생님들은 충분한 기간을 봉직 하시면서 신뢰가 생긴 후에야 가족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을 공유하게 됩니다.” ES 피부과 성형외과가 지향하는 방향의 하나는 이름에 나타나있듯 ‘과학적인 아름다움’이다. 이를 위해 레이저 장비의 경우 미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해외 유수 레이저 회사의 첨단 장비를 각 지점마다 모두 구비하는 등 선진의료기술과 장비를 재빨리 수용·도입하였고, 가능한 것과 불가한 것을 정확히 구분하여 불필요한 수술을 권하지 않는 선에서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으며, 풍부한 임상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분야별 전문의들의 체계적인 협진제 속에 이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또 하나의 방향은 조화와 균형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모든 지점에서 상향평준화된 동일한 의료 서비스의 수준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 것이다. 그래서 ES 피부과 성형외과는 매월 의료진들의 정기적인 학술 세미나와 실무자 교육, 각 지점별 서비스 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해오고 있으며, 이 외에도 응급의료장비를 완벽히 갖춘 수술실을 총 7개 보유하고, 3단계 트리플 멸균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안전 최우선주의 신념을 실행에 옮겨오고 있다. 특히, 박상혁 대표원장이 진료를 보고 있는 강남점은 가슴성형 분야의 전문성에 비중을 두고 문을 연 가운데, 그를 신뢰해온 환자들의 입소문으로 벌써 상당수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내시경을 이용한 다이렉트 비전’의 방법을 써서 조직의 손상과 흉터, 통증과 출혈, 구형·구축의 확률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의료진 중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해 있어 국소 수면마취로 안전하게 수술 받고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취재진은 실제 오전에 수술을 받은 환자가 오후에 말끔하게 병원을 나서는 것을 보며 가슴성형을 전문화하는 ES 피부과 성형외과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의사다’ 박상혁 원장이 말하는 진짜 아름다움 눈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한다. 순수한 소년 같은 느낌을 주다가도 꼿꼿한 선비 같은 진중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눈은 빠르지 않더라도, 한 발 한 발 정확한 걸음을 내딛고자 노력해 온 그의 삶과 참 많이 닮은 듯 했다. “제주가 고향인데 어릴 적, 의사 아버지를 둔 한 친구의 여유롭고 반듯한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던 저는 나중에 내 아이와 가정에 저런 것을 갖게 해주려면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고3 시절, 학력고사를 앞두고 적녹색맹으로 판정받는 바람에 의과대학에 진학 할 수 없어, 인문계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듬해부터 대학입학 때 필수였던 신체검사가 공정한 기회를 박탈한다고 폐지가 된 거에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고민하고는 잘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다시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갔어요.” 그 뒤 인턴과 레지던트, 공중보건의 등을 거치는 동안 스스로가 하고 싶고, 확신이 서는 분야를 해야겠다고 맘먹은 끝에 지금에 이른 박상혁 원장. 그 과정이 말해주듯 그는 소신이 강했다. 고등학생 때 학생회장을 지냈고, 의과대학 시절엔 졸업생 대표를, 의사파업집회 당시는 선두에서 사회를 보며 집단의 뜻을 모으기도 하는 등 남다른 리더십이 있었기에 오늘 날 ES 피부과 성형외과의 내공 있는 새 도약에 밑거름을 만들 수 있었다. 박상혁 원장의 새로운 도약은 이제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기존의 클리닉 개념에서 해오던 전문성은 유지하되, 가슴성형의 비중을 둘 3호점은 실력과 환경을 더욱 견고히 갖춰 ES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으나 만약, 향후 우리와 뜻을 함께 하고 싶은 의사선생님이 모이게 되면 애초에 지켜온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5~6개 지점 까지만 생각하고 있어요. 그 때가 되면 저는 조율자의 입장에서 고객들을 만나고 싶고요.” ES의 가족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뜻이 꾸준히 외부에서 전달되고 있는 걸로 봐서 머지않아 그것은 실현가능해 보였다. 아무리 예쁜 꽃도 향기가 없으면 매력이 없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결국, 스스로의 자신감에 달려있다”는 박상혁 원장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미용성형은 얼굴이나 체형의 자신감이 없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고, 그로써 생활의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일인 만큼 의사로서 “기본을 기본답게 지키고, 과학의 범주 안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전하겠다”는 그의 바람은 새로운 도약 끝에 찾아올 ES 피부과 성형외과의 성공적인 내일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profile.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졸업경희대학교 의료원 전문의 前 라마르 신촌점 대표원장 2011년 ES 네트워크 설립 대한 의학레이저학회 정회원대한 비만 체형 학회 정회원한국 미용성형 학회 정회원아시아-태평양 미용성형 학회 정회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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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26
  •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특별 취재] 지구를 지키는 환경공학자! 김조천 교수의 환경이야기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최영하 기자] 지구를 지키는 환경공학자! 친구 같은 professor, 김조천 교수의 환경이야기 김조천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수질·대기·폐기물·토양·해양오염 등의 ‘질병’ 탓에 지구는 현재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까지 인간은 풍요로워지기 위해 지구의 아픔을 외면해 왔지만 이제는 아픔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치료할 때이다. 의학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한다면, 지구의 질병을 치료하는 학문은 바로 ‘환경공학’. 환경공학은 각종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로써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를 치유하는 것이 결국에는 인간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한 환경 공학자를 만나보았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지구를 치료하는 의사라는 자부심으로 환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김조천 교수를 만나 환경에 대해 진지하고도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_이선진, 최영하 기자 글_최영하 기자 김조천 교수, VOC 연구에 파고들다 플라타너스를 본 적이 있는가? 일명 버즘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플라타너스는 공원이나 가로수 길에 아름답게 자리해 나들이하는 연인들이나 가족들에게 낭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플라타너스’라는 시(詩)도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아름답고 낭만적일 것만 같은 플라타너스, 그러나 알고 보면 강한 햇빛을 받을 때는 심술을 부리곤 한다. 그 푸르른 플라타너스 잎에서는 유독 자연 VOC(Volatile Organic Compounds : 휘발성유기화합물)가 많이 배출된다는 것. 일반적으로 VOC는 ‘자연 VOC’와 ‘인위적인 VOC’로 나뉘며, 오존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물질인 오존 전구 물질로 알려져 있다. 세탁소나, 주유소, 자동차 정비소에서 많이 나오는 인위적인 VOC는 물론이요, 플라타너스 잎 등에서 나오는 자연 VOC 역시 너무 많이 배출되면 인체에 직·간접적으로 유해하기에 현재 전 세계적인 이슈로 급부상하는 추세다. 김조천 교수는 이런 VOC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환경공학자다. “건국대학교에 부임했을 때 플라타너스의 VOC 배출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고한 적이 있었어요. 서울시에서 이 부분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었죠. 봄, 여름에는 플라타너스의 잎으로부터 VOC 배출량이 더 많아지므로 잎을 좀 더 많이 잘라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바로 시행되어서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한동안 오존이 떨어지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나무에서 나오는 자연 VOC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됐고, 나무를 심을 때 이러한 측면까지도 고려하게 되는 걸 보며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원래는 화학공학 전공자였다던 김조천 교수. 그는 왜 환경공학자의 길을 택하게 됐을까? 그가 환경공학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오히려 그가 화학공학 전공자였기 때문이었다. “화학공학을 하면서 항상 ‘사람들이 이렇게 화학물질을 많이 뿜어대면 대기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어요. 이렇게 생긴 열의가 저를 환경공학의 길로 이끈 것입니다. 석사 과정 이후 사회에 기여하는 이가 되고자 교수가 되기로 맘먹고,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VOC를 전공하고 연구해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성공을 좇지 말고, 엔도르핀이 도는 대로 행동하라!’라고 학생들한테 이야기해줍니다. 그게 제가 환경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니까요.(웃음)” 김조천 교수가 속한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는 개설 된 지 35년 된 전통 있는 학과로써 1,000명 이상의 졸업생들이 각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조천 교수가 직접 후배 환경공학도를 가르치고 환경공학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으니 그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인공지능형 지하철 공기질 통합 관리시스템’지하철 공기 정화 방안을 제시하다 학자에게 연구와 후학양성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이론과 연구를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과학적 이론이라도 현실 세계에 효용이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 김조천 교수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연구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학자다. 지난해 김 교수는 실제로 큰 성과가 있었다. 지하철 내부 공기 질을 향상시키는 ‘인공지능형 지하철 공기질 통합 관리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2006년 국내 최초로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를 주축으로 뉴사이언스 기반 신기술 융합 사업단을 유치했어요.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이 바로 지하철 내 공기를 개선할 방법이었는데요. IT(Information Technology)와 ET(Environment Technology)의 융합으로 개선할 방법을 골몰했죠.” 그래서 <지하 역사 및 터널의 인공지능형 공기질 제어 및 통합관리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지하철 역사에 공기질 탐지센서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사무실 모니터로 공기질을 자동 확인하고, 공기질의 정도에 따라 환기펜 및 미세먼지 필터를 컨트롤하는 방식으로 대청역과 학여울역에 실제로 설치돼 1년간 운영됐다. “서울시 메트로에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켰던 프로젝트였지만 온 마음을 다해 두드렸더니 진심을 알아주시더군요. 서울 시민들이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보태주셨기 때문에 잘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더 도전적인 연구를 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어요.” 혹자는 지하철 공기가 좋아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김조천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지하철에서 나쁜 공기를 마셔서 파생되는 피로함, 업무 효율 저하, 호흡기 질병 등의 사회적 비용은 누가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이 더 많이 생겨나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의 지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또한 김조천 교수는 지금껏 환경오염 저하를 위한 연구를 해오면서 60여 건에 달하는 특허를 등록해 왔다. 특허는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탄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에 매우 소중하다. 김 교수는 특히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되는 참신한 특허들이 특허 유지에 발생하는 비용으로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특허청에서는 대학교에서 탄생하는 특허들을 더욱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게 진정한 창조경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경제’가 아니고 ‘사멸경제’ 겠죠.” 보석 같은 좋은 기술력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에 굉장한 아쉬움을 피력했던 김 교수. 그의 말처럼 수준 높은 기술력이 대학에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국가기관에서 보호해 주는 방편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We are the friend" 김조천 교수는 후학양성에도 열정적인 ‘교육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이 즐겁게 배우는 것. “학생들이 제 수업이 재미있다고, 그래서 기다려진다고 말해요. 교수인 저와 커뮤니케이션도 자유롭죠.” 이런 자유롭고 재미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것은 김조천 교수의 의지였다. 그가 가진 교육철학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학문적으로는 ‘We are the friend’에요. 친구처럼 편하게 질문하고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권위를 완전히 내려놓아야 가능하죠.(웃음)” 낮은 자세로 가르치는 김조천 교수의 교육철학을 듣다 보니 각자의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첫 번째, 두 번째 박사 제자를 많이 아꼈던 기억이 나네요. 미래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디자인을 함께 구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첫 제자가 잘돼야 그다음도, 또 그다음도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다들 자기 분야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서 고맙고 뿌듯합니다.” “교육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도구다. 교육은 사회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말하는 김조천 교수. 이런 김 교수의 의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한국에 오게 된다면 꼭 한국 교육계를 바꿔보고 싶다’고 말해요. 살아있는 교육을 만들고 싶다는 아들의 말이 기특하고 자랑스럽습니다.” 한편, 그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환경 분야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더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한 고민이다. “환경공학자는 지구를 치료하는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대기 오염을 일으키는 VOC를 제거하는 기술에서 나아가 좋은 물질로 전환하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알게 모르게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 공익이 될 수 있게 기여하는 것이 꿈입니다.” 교육인으로서의 꿈도 잊지 않았다. “국내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해외에서 온 학생들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나중에 잘 커서 우리나라를 얼마나 좋게 생각하겠어요.” 또한 우리나라 학생과 교육에 대한 조언도 건넸다. “첫째는 여유를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徐徐無欲速 汲汲無敢惰(서서무욕속 급급무감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유를 가지되 게으른 마음은 가지지 말란 말입니다. 여유를 조금 갖고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둘째로는 창의력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저 같은 학자와 교육자가 힘써야 할 부분일 텐데요, 그래서 저는 오픈 북 형태의 시험을 통해 ‘창의력’과 ‘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학자의 역할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연구와 실험을 하는 연구인의 역할과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김조천 교수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해 온 학자임이 분명하다. 지구 환경을 치유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치유하는 그의 연구와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그를 지구에 사는 한 생명체로서 응원한다. 모두의 이로움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이 열정적인 학자를 말이다. profile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플로리다주립대학(UF) 환경공학과 석·박사現 한국대기환경학회 방지기술 분과회 회장 국제기후환경연구센터 센터장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24
  • [에이프릴로제 정승례 원장 특별 인터뷰] '체형관리'로 건강과 아름다움 만들어온 소신있는 여성 리더!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체형관리’로 건강과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 진정한 에스테틱의 길을 소신 있게 걸어온 리더를 만나다 정승례 에이프릴로제 원장 | 대한피부미용사회 중앙회 교육이사 긴 설득 끝에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한 기자는 늦은 시각 고객관리를 마치고 나온 정승례 <에이프릴로제> 원장을 어렵사리 마주할 수 있었다. 現 대한피부미용사회 중앙회 교육이사 직분을 맡고 있기도 한 그녀는 건강학과 관련한 강의를 많이 한 경력자답게 똑 부러지는 외모와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피부미용에 앞선 체형관리로 많은 고객들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케어해온 소신 있는 피부관리 전문가 정승례 원장. 오늘 <주간인물>에서는 그녀를 에스테틱 분야 ‘신지식인(新知識人)’으로 소개하여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오미경 기자/ 글 이선진 기자 수지침 봉사로 아픈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하다 “7남매 중 막내인 저는 칠삭둥이로 본래부터 몸이 약하게 태어났습니다.” 정승례 원장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주변의 보호를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수지침학회에서 수지침을 배우게 된 그녀는 농어촌 선교 교회를 섬기며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시작 동기가 순수했던 그녀는 ‘죽을 때까지 수지침은 봉사로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그러자 그녀 앞에 아픈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이 나으면 그걸로 족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수지침 치료를 해주고 나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어요. 저에게 수지침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처럼요.” 입소문은 퍼져나갔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은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신부전증에 간경화까지 앓던 환자를 돌보는 사연을 만나게 된다. 대학병원에서 포기 진단을 받은, 상태가 악화된 환자였다.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정 원장은 침으로 정성껏 다스렸고 환자는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까지 건너가 환자를 돌보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제가 돌봐드렸던 신부전증 환자 분이 어느 날, 비행기 표까지 끊어와 저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어요. 그분과 인연이 되시는 분이 미국에 계시는데 심한 간경화를 앓고 있어 제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청이었습니다.” 아무리 환자 치유가 절실하다지만, 결혼하여 남편과 두 아이들이 있는 그녀가 미국까지 건너가 봉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미국행을 택했고 간경화 환자를 만나게 된다. 때는 2004년도. “72세의 그 환자 분은 피부껍질과 뼈 밖에 안 남아있었고 복수가 차올라 거동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를 어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아니라 ‘까짓꺼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그저 최선을 다했어요. 그렇게, 새벽 6시 30분부터 마사지 일과를 시작하였는데 3일째가 되자 뉴욕 최고의 의료진들이 하나같이 손을 못 썼던 그 분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3일째 되니 ‘헬스를 가겠다’, 5일째가 되자 ‘쇼핑을 가겠다’ 하실 정도로 환자분은 빠르게 호전되었고 한 달 만에 건강을 되찾으시게 되어 저는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돌아온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 없이, 집안에서 나름의 역할을 분담해 끼니를 챙겨 먹고 있었던 어린 두 아이들과 남편을 보자 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웨딩케어, 체형, 비만, 피부관리가 전문적으로 이뤄지는 ‘에이프릴로제’ 정 원장의 실력은 일파만파 퍼져나가 간경화 환자 등 또 많은 환자들이 줄지어 그녀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몸도 좋아지고 미용적으로도 예뻐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체형관리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피부관리실의 문을 열게 된 시초가 되었다. “예뻐지고자 하는 여성은 많지만 대학생, 직장인, 주부, 신부 그중에 누구를 예쁘게 해주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다 신부를 선택하게 되었고 ‘에이프릴로제’라는 이름과 함께 4월의 장미, 4월의 신부라는 이름이 탄생되었습니다. 많은 신부관리로 인해 제2여성의 인생이 에이프릴로제에서 시작, 산전 산후관리가 두각을 나타내며 베이비 관리, 갱년기 관리까지 이어지는 체형관리 전문의 전문적인 관리가 탄생되었습니다.” 정 원장은 ‘에이프릴로제’의 문을 열며, 진정으로 체형을 완벽하게 잡아줄 수 있는 관리인 독소배출 체형관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대표적인 특별 관리 프로그램을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디톡스 마사지가 있는데, 설명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 몸의 중심축이 되는 골반이 틀어지면 몸 전체의 균형이 깨지면서 골반중심으로 몸의 순환이 되지 않습니다. 몸의 순환이 깨지면 체내에 노폐물이 쌓이게 되어 살이 찌고 몸의 전체적인 불균형 현상이 찾아오게 되지요. 이처럼, 체내에 쌓인 노폐물 배출을 돕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건강한 신체와 신체 곳곳에 퇴화된 근막, 골막을 풀어주게 되는데요. 이로써 변형된 근육과 뼈대모양을 바로 잡아줘 체형만 반듯하게 하면 건강은 물론, 예뻐지는 것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실제로, 기자는 ‘에이프릴로제’의 관리후기를 입소문으로 듣게 되었는데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좋아지는 느낌을 받아서 매우 만족스럽다”, “이곳과 인연이 닿아 관리를 받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등 많은 단골고객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체험사진들은 Before, After 사진들로 여과없이 에이프릴로제 사이트(www.aprilrosee.com)에 공개되어 있으니 단 한 번의 체험으로도 드러난 드라마틱한 변화가 궁금하다면 이곳을 둘러볼 것을 권한다. ‘마사지’라고 하면 혹자는 호화스러운 것, 여유 있는 특정부류만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 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정 원장은 단호히 말한다. 마사지는 호사스러운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말 생명과 같이 중요한 부분이 된다고. 그래서 이곳에 오는 이들은 모두 사연을 안고 찾아와 관리를 받은 후 “나 여기가 어떻게 좋아졌어”라며 저마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고. 쉼이 있는 공간이자, 치유가 이뤄지는 공간이며, 이야기 꽃이 피어나는 공간 ‘에이프릴로제’. 정승례 원장이 이끌고 있는 이 ‘에이프릴로제’는 청담 뿐 아니라 울산에도 크게 지점을 두고 있는데, ‘모든 이들의 건강함, 정신적인 건강함도 체형을 바로 교정함으로써 시작된다’는 원리를 적용한, 이 특별한 전신관리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속과 겉을 함께 다스려 건강과 아름다움을 케어해줍니다 대한피부미용사회중앙회 교육이사이기도 한 정승례 원장은 2009년도 대한피부미용사회 기자재 박람회 겸 피부미용대회에 강의를 시작으로 ‘건강학’ 강의에서 활약을 돋보여온 인물이기도 하다. “전국 강의를 맡은 첫 시간에는 ‘얼굴로 보는 건강학’을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는 ‘사이즈가 줄어드는 것을 직접 확인시켜주는 강의’를 선보였지요. 실제 복부 사이즈를 재고 시작했는데 관리 후 20분 만에 6cm가 줄어든 결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보고 많은 원장님들이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이 역시도 골반을 바로 잡아 체형을 반듯하게 하는 것을 기본 원리로 이뤄낸 관리라고 한다. 결국, 건강에 기반 한 관리 포인트와 그녀의 강의 실력이 입소문으로 알려지자 강의 요청이 곳곳에서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숍 운영과 함께 새벽 시간을 활용해 교육을 진행하는 날들이 많았다고. 한번은 대한피부미용사회에서 뇌호흡을 주제로 한 강의 덕분에 이에 대한 소문이 퍼져, 보건복지부 주최로 마련된 자리에도 그녀가 강의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정승례 원장의 미적 가치 기준은 무엇일까? 그녀가 생각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과 함께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을 물어보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인위적이지 않은, 건강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건강을 기초로 외면의 아름다움까지 같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고요. 사람들의 몸을 통해서 마음까지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마사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 시대에는 무엇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데 점점 신경계 질환이 늘어나는 상황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내 건강만큼은 내가 지킬 수 있는 스스로의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국민들이 건강관리를 꼭 해나갔으면 합니다.” 정승례 원장은 100세 시대에 대비해 몸관리 체형관리를 체계적으로 다루어가는 피부관리사, 관리실들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업계에서도 서로 마음을 열고 정보력을 빨리 습득하여 관리법에 대해 수용하고 고민하는 노력들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취재진은 정승례 원장의 의미 있는 삶을 돌아보며 건강의 중요성과 이를 바라는 그녀의 진심을 또렷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하면 안되는 게 없다는 그녀의 말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정 원장의 바람처럼, 소신 있는 이들이 에스테틱 시장에 뛰어들어 진정한 에스테틱을 일궈내기를 바라며 대한민국의 특유화된 마사지가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주간인물>이 힘을 실어 응원한다. profile서울 사당, 정승례 대체의학 연구원 발족수지침과 영양학 연구 및 강의대구지역 한의사들 일부청강 및 호평미국 텍사스, 대체의학 연구 및 영양학 임상강의미국 텍사스, 대체의학 연구 및 대체의학 임상발표서울 청담, 피부전문 클리닉 에이프릴로제 창업대한피부미용사회 중앙회 교육이사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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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24
  • [주필거미박물관 김주필 박사 특별인터뷰]거미를 사랑한 천생 학자, 김주필 박사의 아름다운 동행
    [주간인물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거미를 사랑한 천생 학자, 대한민국 생물학의 불모지에 꽃을 피우다! 김주필 주필거미박물관 관장 / (사) 한국거미연구소 소장 무지에서 오는 편견은 위험을 가져온다. 그것은 자신의 인식 안에서 섣불리 전체를 판단하는 일로, 사람 관계의 단절을 만들기도 하며, 무지는 의심을 낳고, 이러한 의심은 기존의 고정관념과 어울리면서 두려움으로 바뀌어 때론 사회 갈등을 만들거나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학문, 종교, 문화, 국가 등에 이르는 다양한 범주에서 그 사례를 발견할 수 있는 가운데, <주간인물>은 오늘 척박한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 현실 속에서 무지함이 가져온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 온 특별한 주인공을 만났다. 단지 생김새가 그렇단 이유로 사람들에게 혐오스럽거나 무서운 동물로만 인식되어 왔던 거미, 바로 그 거미 연구를 통해 국내 생물학의 발전에 한 획을 그어 온 김주필 박사의 이야기다. 오미경 기자 거미는 무서운 동물? NO!살아있는 생태계, 주필거미박물관 올해로 설립 된지 만 10년째에 이르는 주필거미박물관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최초로 세워진, 세계 최고의 유일한 사설 거미박물관으로 김주필 박사의 거미 연구 발자취가 그대로 옮겨져 있는 현장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자락에 위치한 그 곳에서 만난 설립자 김주필 박사는 먼저 거미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줘야 하지 않겠냐며 말문을 열었다. “거미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대부분 독이 없고, 사람을 물지도 않아요.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고, 환경의 지표가 되는 동물로서 사람에게 100% 이로운 녀석입니다. 또 거미줄은 나노과학을 탄생시켰고, 곧 그것을 이용한 신소재나 치매예방약도 개발될 예정이지요.” 주필거미박물관에는 산왕거미, 무당거미, 농발거미, 호랑거미 등 한국 고유 거미 200여 종을 포함해 김주필 박사가 전 세계에서 모은 약 40만 점의 거미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살아있는 각종 거미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이곳은 이 외에도 세계 각 지역의 희귀 광물 300여 점이 전시된 광물전시실과 식물 및 고·중·신생대의 화석 200여 점이 모아져 있는 화석전시실, 약 1,000여 점의 나비와 나방, 장수풍뎅이 등이 전시된 곤충전시실, 거미의 세부 부분을 관찰할 수 있고 어패류와 곤충 표본이 전시되어 있는 현미경 관찰실 등 총 11관으로 이뤄져있다. 이에 더해 김 박사는 야외조각공원, 장승공원 등을 만들고, 다양한 자연 체험과 놀이 프로그램 또한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Arachnida(거미류)와 Utopia(천국)을 결합한 의미의 아라크노피아 생태수목원으로 진화시켰으며, 이것은 거대한 자연 생태계를 오롯이 느끼게 해주는 학습의 공간이 되어 오고 있다. 불모지에 뛰어들어 40여 년 거미 연구, 세계 최초 거미박물관 세워 김주필 박사가 거미의 세계에 빠져든 건 사실 예견된 운명과도 같았다.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남한에 내려온 김 박사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성적은 늘 1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중3을 마칠 무렵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집안 형편을 따라 당시 교사였던 아버지가 재직하시던 농고에 들어갔는데 적응을 못했어요. 공부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던 저는 그 길로 무작정 가출 했고, 1년 남짓 방황하다 어렵사리 배재고등학교에 들어갔어요. 당시 중학생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머무르던 곳이 바로 생물학의 대가로 불리던 강영선 박사(당시 서울대 동물학과 교수)의 집이었는데 그 분의 반강제적(?) 추천으로 서울대 동물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지요.(웃음)” 대학에 들어가서 학과 공부를 접한 그는 교육의 양상이 유전과학 쪽으로만 치우쳐 기초과학인 분류생태학이 소홀히 여겨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다가올 환경문제를 예상하며 환경지표가 되는 동물인 거미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암울했던 196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혈혈단신으로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을 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학원 강의를 시작했고, 예상치 못하게 인기 강사에 오르면서 그것을 직업 삼기에 이르렀다. 이 후에는 학원을 경영까지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김 박사는 나이 마흔에 접어들 즈음, 다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인 거미 연구를 위해 1971년 동국대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 혼자만의 어려운 거미 연구 레이스를 시작하였다. 거미를 채집하기 위해 국내외로 밤낮없이 돌아다니던 중 산속을 헤매다 다치거나 독거미에 물린 적도 있었고, 남의 집 담벼락을 기웃대다 도둑으로 몰리거나 간첩으로 신고 당한 적도 여러 번. 갖은 고초 속에서도 거미 생각뿐이었다는 그는 1984년 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이듬해 거미 연구의 실질적인 활성화를 위해 거미연구소를 열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던 국내 거미 연구 인프라와 맨파워를 급속도로 따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미와의 동행을 시작한지 40여 년 만인 지난 2004년, 김주필 박사는 세계 최초로 발견한 거미만 140여 종에 이르는 그간의 활동 끝에 수많은 거미 표본을 보관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거미를 보다 가깝게 알리는 기회가 될 공간으로서 주필거미박물관을 세계 최초로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기초과학, 이제라도 제대로 서야 대한민국 미래 있다 거미박물관을 통해 오랜 연구의 결실을 맺은 김주필 박사는 “궁극적으로 기초 과학인 생물학의 발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국대 교수로 명예퇴직을 하기 전, 요청을 해오는 특수고 학생들에게 개인지도도 했었는데 청소년들을 가르치면서는 기초과학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어요. 그래서 범위를 넓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생물학의 중요성을 가르치리라는 생각으로 2010년 한국거미연구회를 발족시켰습니다.” 한국거미연구회는 초·중·고·대학생 및 일반인까지 거미 연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하여 생물학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다. 현재 60~70명에 이르는 한국거미연구회의 회원들은 짝수 달마다 모여 연구주제를 발표하고, 우수한 것은 본 연구회 학술위원회와 매년 2회 발행되는 연구회의 학술 전문잡지 ‘한국 거미’의 편집위원회 심사를 신중히 거쳐 학술지에 게재, 한국에서의 거미 연구 상황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있으며, 김 박사는 매년 여름 방학에 자연 학습원을 열어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기도 하다. 거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한 자발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이러한 교육 활동을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김주필 박사. 그는 “창조의 시대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 육성에 대한 중요성을 진지하게 깨닫고, 정부가 보다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지적하며 “학교와 부모는 아이들에게 생각의 틀을 벗어난 것에 대해 제재하는 억압적인 교육과 지나친 애착을 지양하고,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은 늘 ‘왜?’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품고 창의적인 사고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세상에게 받은 것을 나누며 인터뷰 내내 스스로를 잔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자기표현에 있어서는 영 인색한 모습을 보였던 김주필 박사였지만, 사실 그는 진정한 나눔의 행복을 알고,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삶을 걸어온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무덤덤한 표현들이 더욱 인상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2009년 주필거미박물관과 수석전시관, 동물 사육실 등 모두를 동국대에 기증하며 화제를 모았던 김 박사는 자신과 같은 생물학도들이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도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거미박물관 내에는 신인작가들이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미술관을 열어 두는 등 쉽지 않은 나눔의 행동을 실천해 왔다. “인생은 공수레 공수거 아닙니까. 우리가 가진 것은 결국 세상이 주는 것일 뿐, 온전히 내 것인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돈이든 자식이든 내 것에 대한 집착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장학금을 수혜 받아 공부 했고, 그렇게 노력해 모아진 재산이기에 더욱 의미 있게 써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박물관은 애초에 후학들에게 좋은 학습장으로 쓰이도록 하기 위해 세운 것이니 사유화 할 것이 아니었고, 기증이라는 좋은 방법을 찾은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대답에 이어, 김 박사는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일찍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자신에게 세상은 칼날 위를 맨발로 걷는 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했을 만큼 냉정한 곳이었지만,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처럼 묵묵히 거미 연구만을 생각하며 노력을 이어간 끝에 지금을 만날 수 있었듯,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주필거미박물관이 반드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그 날이 올 것 이라고.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학문을 연구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까지 한다는 것은 불모지에 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그 학문이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남다른 생각’과 ‘끈기’라는 돛대를 달고 사람들이 꺼리는 거미에 대한 연구를 위해 누구도 간 적 없는 망망대해를 홀로 지나 온 그의 삶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 왔다. <주간인물>은 김주필 박사의 바람처럼 이 시간 이후부터 거미를 사랑스럽게 보호해주는 이들이 더욱 많아질 거라 기대하며, 그와 거미의 아름다운 동행을 언제나 응원한다. profile. (학력사항)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물학과서울대학교 이학석사동국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과 이학박사 (경력 사항 및 연구 경력)건국대학교, 단국대학교 및 대학원, 중앙대학교 강사 外동국대학교 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동국대학교 생물학과 학과장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미국 Smithonian Institution 객원 연구원서울대학교 자연대학 동물학과 강사중국 Hebei Normal university 종신 겸직교수중국 Hunan Normal University 종신 겸직교수중국과학원 동물연구소 방문교수국립자연사박물관 추진위원회 재정위원장사단법인 한국거미연구소 소장사단법인 한국자연보전협회 이사사단법인 한국자연보호중앙협의회 학술이사 한국생태학회 이사 한국환경생물학회 회장 역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총 동창회 회장 外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17
  • 조용한 힘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세무법인 다솔, 안수남 회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최영하 기자, 이준영 기자] “편협함보다는 상생을 모색해야” ‘조용한 힘’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이 시대 진짜 professional ! 안수남 <세무법인 다솔> 대표|한국세무법인협회장 국민의 납세 의무는 실정법상 헌법이 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삶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다만, 삶과 직결된 부분일지라도 일반 국민들이 세금에 대해 직접 따져 묻고 계산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대개 세무사라는 전문가를 통해 세금 업무를 위탁하고 자산을 현명하게 관리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헷갈린다. 세무서를 방문할 일들이 회계법인이나 로펌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할 ‘세금’이기에 현명하게 조력해줄 전문가가 정확히 누구인지, 세무 영역에 대해 더욱 자세하고 정확한 갈피를 잡기 위해서 명망 있는 세무전문가와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양도소득세분야의 ‘장인’으로 통하는 세무법인 다솔 안수남 회장을 만나 그가 진심으로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리’를 담아 보았다._취재 이준영, 최영하 기자 | 글_ 최영하 기자 new paradigm ‘세무법인 다솔’ 말속에도 그 사람의 인품이 있다. 첫마디에 이미 도드라진 고운 어조 속에서 안수남 회장의 인품을 직감했고, 아니나 다를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의 인간적인 예의에 이내 매료돼 어려운 분야라는 편견을 벗어던지고 편안하게 마주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세금과 관련해 최고의 전문가인 세무사가 있는데, 대체 왜 대형 조세불복, 세무조사, 세무 컨설팅 등 주요 세무업무는 회계법인이나 로펌 쪽에서 관장하게 됐을까요?” 현재 국내 기업들의 조세불복, 세무조사, 세무컨설팅 등은 주로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으레 자리 잡았다. 안 회장은 “납세 의무자의 부탁을 받아 세금 업무에 관한 일을 대신 처리해준다는 면에서 로펌(변호사)과도 관련되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하면 세무대리 업무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이들이 세무사처럼 세법 전문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한 결과 ‘우리 세무사들 스스로가 인맥과 논리를 바탕으로 더욱 실력을 갖춰야겠구나!’라는 자기반성의 답을 찾았습니다. 국민이 이미 우리가 아닌 제삼자가 더욱 실력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며,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이신작칙(以身作則)의 자세로 ‘세무법인 다솔’을 만들게 됐으며, 다솔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고자 한 발 내딛게 됐다. “기장 중심의 세무사 시장의 한계를 극복해야 세무사들 모두가 상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세무사에서 만족하지 않고, 뛰어난 세무사들이 힘을 모아 큰 규모의 세무법인을 만들어 브랜드 파워를 쌓아가는 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솔’은 안수남 회장을 비롯한 쟁쟁한 동료 세무사들과 의기투합해 2년여를 고민한 뒤 만든 세무법인이다. 다솔은 각자 개인세무서 형태는 유지하되 규모가 큰 불복, 세무조사, 컨설팅 등은 회사(다솔) 내 협업을 통해 진행하는 원펌 형태 체계다. 이 시스템은 다솔이 국내 최초로써 개인 규모의 업무는 각자 존중하면서, 큰 규모의 일은 협업하는 형태이기에 안정화는 물론이요 부담도 훨씬 줄어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안 회장은 “법인다운 법인을 만들기 위해선 현 제도의 한계를 찾아 인정해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며, 편협한 생각보다는 세무법인 간에도 소통으로 노하우를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성공보다는 상생하자는 이들이 사명감을 갖고 이 업계의 단단한 디딤돌이 되고자 제시한 뚜렷한 목표의식은 세무사로서의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내보이기에 충분했다. 믿음과 신뢰가 쌓인 개개인이 만나서 더 큰 가치를 빚어낸다면, 세무업무가 세무사의 고유 영역임을 국민들이 자연스레 인식하고 먼저 찾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브랜드 파워가 아닐까. 양도소득세분야 NO.1 안수남 회장 “어릴 적 시골에서 어머님이 밀주를 단속당하는 걸 봤습니다. 당시 냉정했던 세무서 직원의 인상이 은연중에 강렬 했나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날 청량리 세무서에서 일할 때 밀주단속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안수남 회장은 국세공무원 출신 세무사다. 9급 국세공무원 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하게 됐고, 이후에는 7급 세무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길에 세무사가 됐다고 한다. “당시 나이도 어렸고, 경력도 못 미쳐 민원실에만 있어야 했던 환경 탓에 7급 세무공무원 보다는 전문적인 세무사의 길을 깊이 가는 게 더 맞겠다고 생각했지요.” 세무사의 기질을 스스로 빨리 깨달아서였을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이 통해서였을까. 양도소득세분야 1인자로 자리매김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터지만 그는 상당히 겸손했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모르는 것은 공부해서라도 답변해주다 보니 더욱 전문가가 되어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쌓여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강의도 하고, 살아 있는 경험을 토대로 책까지 집필하게 된 것이죠.” 양도소득세 강의의 대가인 안 회장은 현재 8년째 라디오를 통해 세무 상담을 하고 있으며, 그의 저서 ‘양도소득세 실무해설서는’ 정석으로 통한다. 안 회장 자신도 모르게 생긴 사명의식의 뿌리는 이제 개인의 꿈 차원을 넘어 ‘공인’이라는 마음가짐을 낳아 많은 이들에게 전문가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생의 힘이 되고 있다. Core Value 정직·유연한 사고·배려 “‘그네’ 타는 것과 인간관계는 참 많이 닮아 있어요. 밀어주는 이가 높이 올려줘야 타는 이가 높이 올라가듯 주변 이에게 도움을 주다 보면 역으로 그 힘이 제게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예쁜 말투가 제 장점이죠.(웃음)” 이러한 그의 인생철학이 바로 직업의식에도 투영되고 있었다. “국가에서 시험을 통해 일정한 자격을 부여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국가 재정 조달에 있어 국민들이 부당한 행위를 당했을 때 구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믿고 맡기는 만큼 도움을 주기 위해 오판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편이 협업·공생이 될 수 있기에 시스템 차원으로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참 소통’ 부재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 안수남 회장과의 대화는 지극히 소통으로 느껴져 깊이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정직과 유연한 사고, 배려를 강조하던 안수남 회장. 끝으로 그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보다는 공동체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나누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훈훈했던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제3대 한국세무법인협회장이자 세무법인 다솔 대표로서 업계흐름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후대를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을 ‘꼭’ 하고자 대안 책 마련에 매진하는 그의 진심어린 뜻이 기자에게 전해졌듯 많은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기대하며, 相生을 위한 그의 목표가 ‘역사’가 될 수 있도록 <주간인물>이 함께 응원한다. Profile <학력> 동신고등학교,남서울대학교 세무학과,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조세법 전공 <경력> 국세청 산하 세무서 14년 근무, 제27회 세무사 시험 합격, 세무사 사무소 개업(1990),우리세무법인 광명지점 대표세무사 / 한국세무사 고시회 회장 역임 / 한국세무사회 양도소득세 전담교수 / 한국세무사회 전문상담위원장 / 제11회 공인중개사시험 출제위원 / 전국부동산 중개인 연합회 세법전임강사 / 부동산TV 세무상담, KBS 제1라디오'성기영의 경제투데이'세무상담 / 現세무법인 다솔 대표이사 <저서> 양도소득세(광교이택스 발행)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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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16
  • [사랑인 김선욱 대표 특별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을 꿈꿉니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최영하 기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을 꿈꿉니다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주는 사랑의 메신저 ‘사랑인’ 김선욱 사랑인 대표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의 삶과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오늘 <주간인물>에서는 행복한 ‘결혼’으로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CEO <사랑인> 김선욱 대표를 만나 그가 말하는 행복의 길을 따라가 보았다. _취재 이선진, 최영하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아름다운 만남이 시작되는 곳, 사랑이 이뤄지는 곳 ‘사랑인’. 기자는 ‘결혼’이라는 주제를 놓고 현장성 있는 목소리를 듣고자 ‘소개팅·미팅·결혼중매’ 분야에서 내실있게 성장해온 기업 ‘사랑인’을 찾아가 김선욱 대표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선한 눈매가 한눈에 보기에도 인상적이었던 김선욱 대표. 취재진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그 덕분에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무르익어갔다. 소중한 인연의 끈을 만들어주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장 18절 말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하나가 아닌 ‘둘’이 보기 좋으셨던 것 같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짓기로 마음먹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 성경 말씀으로 인터뷰에 운을 뗀 김선욱 대표는 ‘결혼’을 참 많이도 갈망해온 사람이다. 집안이 기독교이다 보니 같은 크리스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하고 기도도 열심히 했다고. 그러나 ‘짝’을 만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30 40모임이라 해서 청년부 기도원 모임이 700명 규모에 달하는 어느 큰 교회에도 나가보았지만 기도 모임의 목적이 배우자 감을 찾기 위한 건 아니었기에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는 ‘동병상련(?)의 고민을 안고 있는, 혼기에 찬 솔로들이 많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내 일 같이 안타까웠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정작 자신은 짝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을 코칭해주거나 그의 인맥끼리 서로를 연결시켜주어 좋은 결과로 맺어지는 의외의 ‘결혼 성사 건’을 보고 그는 뿌듯함을 느꼈다. 개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에 분명 선하고 이로운 일 일테니 말이다. 자신이 중간 매개가 되어 서로 간의 만남 주선으로 좋은 인연을 이어가게 만든 사례들, 그 중에 어떤 사연을 그는 마음에 품고 있을까? “예전 직장에 다닐 때였어요. 직장 동료와 제가 알고 있던 은행 여직원을 서로 만나게끔 주선해주었지요. 저만의 안목으로 서로에게 잘 맞을 것 같은 매칭포인트를 찾아 소개해준 것이었지만, 정작 서로에게는 상대방의 조건 소위 말하는 스펙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세세한 조건을 들어 이야기 해주면 어느 하나가 충족되지 못했을 경우, 상대를 만나기도 전에 마음이 닫히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쉽지 않게 됩니다.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커플들은 얼마 전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결혼정보업에 뛰어든 과감한 시작과 도전 누군가를 소개시켜줄 때 그가 다가간 마음은 ‘내가 당신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깊은 공감! 진정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실해진 그는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을 박차고 나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꿈에 도전했다. 오랜 기간 근성 있게 직장생활을 해냈고 업무역량 평가에서 1등은 늘 자신의 몫이었던 김 대표. 그가 높은 연봉과 안정성이 보장된 직장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든 것은 무모한 결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젊음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그가 남다른 포부로 결혼정보회사 ‘사랑인’을 꾸려온 건 5년째 접어들었고 이젠 제법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 결혼하는 커플들을 살펴보면 결혼 연령의 변화를 눈에 띄게 체감할 수 있다. 결혼 연령은 갈수록 올라가 지난해 남성 평균 초혼 연령은 32.6세로 20년 전(28.5)보다 4.1세 높아졌고, 여성은 30.4세로 20년 전(25.7)세에 비해 4.7세 높아졌다고 한다. 이 같이 변화된 현실을 피부로 가깝게 느끼고 있는 김선욱 대표는 특별히 거듭 강조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라는 것’이었다! 결혼을 해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고. 김 대표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관점 등 학문적으로 결혼을 규정하고 있고, 결혼이 미치는 순기능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결혼의 순기능에 대해 일일이 나열하는 김 대표는 이처럼 결혼으로 충족해갈 수 있는 것들이 많기에, 기왕 할 거라면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모두가 자신의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물론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 보니 결혼정보회사를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아름다운 인연을 맺도록 도와주는 ‘결혼정보업’은 개인의 만족은 물론,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라고 김 대표는 힘을 실어 말한다. 결혼은 행복입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사랑인’ www.sarang-in.com 사이트를 보니 흥미로운 서비스가 돋보였다. 하나는 ‘셀프 프로포즈’요, 또 하나의 중요한 시스템은 ‘매니저 매칭 서비스’이다. ‘셀프 프로포즈’는 사랑인 사이트를 통해 1:1 만남, 전화, 메일 등 개인적으로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서비스이며, ‘매니저 매칭 서비스’는 매니저가 코칭해 주는 서비스이다. 한편, 콘셉트에 맞게 기획돼 단체 이색미팅이 이뤄지는 <사랑인 미팅>은 이미 청춘남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니저 매칭 서비스’인데, 그만큼 ‘커플 매니저’에 대한 역할이 크게 작용한단다. “매개체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중재자가 없이 본인들끼리 직접 연락을 취하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있고 만남이 지속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기곤 하는데요. 일단 중간 매니저가 개입을 하면 만남이 매끄럽게 진행되어 커플 성사 확률도 높아지게 됩니다.” 대한민국 청춘남녀, 더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가장 귀중한 인연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김선욱 대표. 그는 ‘결혼’을 무엇이라 정의내릴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은 행복이지요. 살아가며 좋은 일, 나쁜 일을 함께 의논할 상대가 있다는 건 기쁨이고 감사 아니겠어요? 가정을 꾸리고 행복을 맛보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며 편안하게 인터뷰를 리드했던 김선욱 대표. 향후 회원의 폭을 넓혀 장애인 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기부와 같은 좋은 활동상들을 이어가고 싶고 작게나마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건강한 가정의 탄생을 도우며 우리네 삶에 행복을 선사하는 기업 <사랑인>과 김선욱 대표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사랑인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13
  • [홍익공기수련회 대체의학 연구원 이완선 원장 특별 인터뷰] 대체의학의 기 치유로 전하는 희망스토리!
    [위클리피플= 오미경 기자] 절망에서 희망으로! 대체의학의 기 치유로 전하는 메시지_현대인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이완선 홍익공氣수련회 대체의학연구원 원장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무한 경쟁 속 우리네 삶은 스트레스로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물질문명 안에서 환경은 점점 오염되어 오히려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치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웰빙을 넘어, 웰에이징, 웰다잉을 논하는 시대에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 기술과 앞서나가는 맞춤 의료 서비스로 주목받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왜 이런 현실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삶에서 정신적, 육체적인 만족도를 얼마나 얻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전인적 관점에서 무너진 인체 저울의 추를 바로 잡아 자연적인 치유를 기대하는 보완·대체의학이 손꼽히고 있다. <주간인물>은 보완·대체의학을 대표하는 기 치유 분야의 전문가로 오랜 명성을 쌓아 온 홍익공기수련회 대체의학연구원의 이완선 원장을 만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그 길을 따라가 보았다. _ 오미경 기자 기 치유, 얼마나 아십니까? 서울시 서초동에 위치한 홍익공기수련회 대체의학연구원 사무실에 도착하자 이완선 원장은 아침 일찍 이곳을 찾은 환자를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잠시 후, 숨 가쁘게 자리를 마주한 이완선 원장은 궁금함 가득한 기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먼저 기와 기 치료에 대한 이해부터 도와주기 시작했다. “흔히 ‘기’를 에너지(힘)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기’는 사랑, 축복, 관심, 미움, 슬픔 등 사람 관계의 모든 감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계속 생성되고 변화하며 움직이는 겁니다. 움직임은 곧 생명이자, 창조와 소멸의 근원이지요. 이러한 기와 혈의 흐름에 이상이 생겨 우리 몸의 정상작동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물리적인 자극 없이 순수하게 인체의 에너지만을 활용하여 정상작동 하도록 하는 것이 기 치유인데, 이는 부작용이 없어 현대의학이나 기존의 동양의학이 해결하지 못한 여러 가지 난치병에 뛰어난 효과를 나타냅니다.” 이완선 원장은 기 치유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면서 마음도 치유하여 스스로의 자연치유력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건강한 몸으로의 회복을 돕는 것”이라며 홍익공기수련회 대체의학연구원은 이를 위해 기 수련법을 알리고, 대체의학으로서의 기 치유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 건강 증진 위한 기 치유 연구,‘인술’로 꽃 피우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홍익공기수련회 대체의학연구원은 단순한 기 수련과 치유를 위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절망에 가까운 기대를 안고 찾는 이들이 많은 만큼 이완선 원장은 무엇보다 기의 효용성을 바로 알리고, 올바른 수련과 치유 과정을 통해 그들이 근원적인 건강을 찾아, 행복을 누리도록 힘쓰며 진정한 ‘인술’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완선 원장은 기본적인 기 수련의 방법은 교육 하되, 그 후론 몸이 스스로 필요로 하는 수련의 행위를 취하게 함으로써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기 수련을 지향하고 있으며, 특히 독자적인 연구와 수련으로 많은 기 치유법을 창안해내기도 하였다. 그 중 30여 년 전 그가 체계화한 ‘흡압기공법’은 인체에 기혈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을 때 통증이 있는 부위는 냉기가 생기고, 염증이 있는 부위는 열기가 생기는데 이때 나쁜 기운은 흡수하고, 좋은 기운은 더해 자연스럽게 자가 치유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양생법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만의 독특한 손맛을 전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주었다. 이 외에도 그는 기혈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 골격을 바로 세우고 몸의 균형을 잡는 기 정체술, 유연성을 기르는 기체조법, 말초 혈액의 흐름을 북돋아 신진대사를 돕는 파동체조법 등을 창안하였을 뿐 아니라, 기인테리어, 칼라테라피, 기 풍수 등 생활 곳곳에 기를 접목시키며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기의 가치를 설명해 오고 있다. 대체의학의 기 치유 전문가 이완선 원장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이완선 원장은 사실 은행지점장 출신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력으로 더 주목을 받았다.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적인 직업의 길을 걸었던 그이기에 대체의학의 기 치유 전문가라는 비주류의 길을 선택한 그의 행보는 분명 이색적인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기를 접하고 활용해 왔다고 회고했다. “합기도를 접하면서부터 기의 기초를 알게 되었어요. 꾸준한 수련이 몸과 마음의 단련에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고, 운동으로 골격이나 경락의 개념도 알게 되면서 기 수련으로 사람의 치유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에 접근하게 되었죠.” 그 뒤 가족들의 건강과 직장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 한 언론에 미담사례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치른 이 원장. 그는 꾸준한 자기 수련과 치유의 경험을 통해 마침내 전문가도 인정하는 실력에 이르게 되었고, 은퇴 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전하는 기회를 갖고자 이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완선 원장은 쉽지 않은 분야에 몸 담아 오면서도 부침보단 보람을 느낀 일이 더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 기 치유에 대한 국내의 열악한 인식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기 치유를 대체의학으로 인정하고 여러 가지 교육과 수련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우리는 이것이 제도권 밖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방법이라고 하여 무턱대고 비과학적이라 여기고, 그 실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홍익공기수련회를 찾아 몸과 마음의 수련을 하는 이들 가운데도 스스로 기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조차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사실을 감추고 수련을 잇는 사례자도 있었고, 대부분은 기 치유의 효과에 반신반의하며 찾아올 정도이다. 이 원장은 이러한 현실을 향해 “실제 치유 사례들이 다수 있을 뿐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도 충분한 만큼 가급적이면 기를 체계화시켜 가르쳐야 한다”며 “특히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점점 높아지는 의료비와 난치병이 늘어가는 현실의 해결책으로서 대체의학의 활로가 트일 수 있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도 쉴 틈 없이 사랑을 담은 긍정의 기를 전하던 이완선 원장. 그의 내일은 이제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좋은 기는 건전하고 긍정적인 사고와 적절한 생활환경, 바른 생활 습관에서 시작되는 만큼 많은 국민들이 이 근본적인 기의 지혜를 터득해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돕고, 세계에 대체의학의 기 치유가 지닌 실질적인 가치를 알릴 수 있도록 국내의 관심과 참여를 도모하여 국민 건강 지킴이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주류와 비주류는 어느 사회나 존재하지만 이것은 결코 상하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많고 적음을 뜻하는 것일 뿐. 그렇기에 <주간인물>은 이완선 원장이 그리는 건강한 내일 속에 대가 없이 이어지는 그의 노력이 더욱 빛날 날이 반드시 오리라 굳게 믿는다. 홍익공기수련회 대체의학연구원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2동 1338-21 코리아 비즈니스센터 1415호전화번호 : 010 - 9003 - 2188 e-mail : asas7788@hanmail.net profile. 1966년 氣와 합기도 입문/ 氣 정체술 및 각종 수기법 병행 수련 및 지속적 연구 1980년대 초~ 기감을 통한 정체술(인체의 삐뚤어진 골격과 관절을 기에 의해 교정해주는 방법)과 흡압법(吸壓法:나쁜 기운은 빼주고 좋은 기운은 넣어주는 양생법의 비술)지속적 연구 및 시술 봉사1980년 7월 기업은행 입행1992년 초~ 기풍수와 기 인테리어, 수맥, 칼라테라피 등 지속적 연구 1996년~ 기업은행 내, 외부 강사 활동 및 무료 봉사 시행 등2011년 1월 기업은행 응암동 지점장으로 정년퇴직2011년 4월~ 홍익공기수련원, 대체의학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기 효용성을 전파 씨앗건강법, 기 풍수, 기인테리어, 수맥처방, 명상, 기수련, 기체조, 정체술, 지압체조, 칼라테라피등 대체의학 전수2013년 12월 19일 기업은행 지점장급 대상 기, 풍수 및 건강관리 강의 신문, 잡지 및 방송기사 1991. 10. 11 ‘일간스포츠’ “사랑의 숨은 인술 11년” 소개2013. 05. 03 ‘스포츠 월드’에 “사람 살리는 사랑의 인술”로 소개2013. 06. 01 ‘에코비전 21’ 월간 교양지 6월호 “선행천사”로 4면에 걸쳐 소개2014. 03 ‘Power Korea' ‘흡압기공법 대체의학의 새 지평을 열다’로 3면에 걸쳐 소개외 스포츠조선, 파이낸스투데이, 국제뉴스, 헤럴드경제 등 다수 언론의 조명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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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09
  • [K-FIT QUEENS 미용토탈샵 김경희 대표 특별 인터뷰] 반영구 메이크업에 한 길, 그 뜨거운 현장 속 이야기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최영하 기자] 반영구 메이크업에 외길 사랑을 외치다!아름다움의 한 길, 그 뜨거운 현장 속으로 김경희 K-FIT QUEENS 미용토탈샵 대표 _취재 이선진, 최영하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메이크업’으로 국내외 이름을 알린 specialist 국내 다수의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의 메이크업에 입소문으로 유명한 퀸즈에스테틱 김경희 대표. 한 눈에 보기에도 하얀 피부에 동안 미모가 돋보이는 그녀이지만 김경희 대표가 메이크업 분야에 종사한지는 어느덧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미술과를 졸업하고 처음 하게 된 분야가 메이크업이었습니다. 스물네 살 가을부터 ‘모델 이슈’라는 모델 학원에서 메이크업 강사 생활을 했었어요. 그리고 난 후 스물여섯 살 때 이대 홍대 쪽에서 처음 메이크업샵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오픈 당시에 우여곡절도 있었다. “메이크업샵을 시작할 때 저에게 자본이라곤 130만원이 전부였는데 그 때 전세금이 3000만원이었어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돈이든 주변의 염려든 그것은 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집 주인을 찾아가 매월 100만원 이상씩 드릴테니 보증금 없이 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허락을 받았어요.” 미술학도로서, 그것도 전문 메이크업만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 없던 시절. 그저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해 그렇게 신부메이크업에 발을 들이게 된 그녀는 실력을 인정 받으며 금세 유명세를 타게 된다. “국내 모델들, 웨딩 촬영을 앞둔 신부, 일반인 할 것 없이 예약을 받지 못할 정도로 물밀 듯이 손님들이 밀려왔습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 시작할 때 우려와는 다르게, 젊은 감각이 좋다며 몰려오시는 모습들을 보고 그저 신기하고 행복했습니다.” 여기에 그녀의 실력을 공식적으로 입증할 만한 영예로운 기회까지 얻게 됐다고. 1994년, 홍콩에서 개최한 세계 메이크업 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한 그녀가 최우수상, 베스트드레서상, 무대매너상까지 각종 상을 휩쓰는 영광의 기회를 누리게 된 것이다. ‘반영구 메이크업’ 분야의 새 길을 개척하다 ‘반영구’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 이런 김경희 대표가 반영구 눈썹과 반영구 메이크업을 접하게 된 건 우연한 기회에서였다고 한다. 메이크업으로 유명세가 더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미용실 원장들이 찾아와 그녀의 기술력을 전수 받아갔고, 그 중 찾아온 한 학생에 의해 그녀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학생이라기 보다는 나이가 좀 있는 아주머니였는데, 문신을 할 줄 아는 분이었다. “저를 찾아주신 그 언니학생이 눈썹 문신을 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어요. 그런데 눈썹을 정말 예쁘게 잘 그리시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제가 반영구 눈썹, 반영구 메이크업 분야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깊이 연구하자 의문이 드는 것이 많았다. 왜 문신 색은 하나같이 똑같을까? 짙은 회색이나 검은 색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우연치 않게 시작한 반영구 메이크업이었지만 그녀는 직접 자신의 몸에 테스트를 해가면서 할 만큼 열정이 가득했고, 미술학 전공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색을 혼합해 만드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내레이터 모델들이 그녀에게 반영구 메이크업을 받고자 단체로 찾아와 줄을 짓고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 것. 늦은 시각까지 이어지는 일 때문에 그녀는 잠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들을 보냈지만 더없이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하나의 사건이 그녀에게 운명처럼 기회로 다가왔다고 한다. “조카 친구네 엄마들 사이에서 제 이름이 알려져 어머니들이 찾아와 반영구 메이크업을 받는 가운데, 조카네 반 반장 어머니만 결정을 못하시는 상황이었어요. 알고 보니 그 분의 남편분이 병원장이셨지요. 반영구 메이크업을 받고자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관철이 어렵자 그 어머니의 부탁으로 병원장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께 피부와 인체에 아무런 해가 안 된다는 부분과 원리를 입증시켜 보여드리자 공감하셔서 사모님도 반영구 메이크업을 받게 되셨죠. 크게 만족해하신 그 사모님은 주위의 많은 분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이야기는 이 다음의 대목이다. 이것을 계기로, 이 병원에 방을 따로 둔 ‘샵인 샵’ 개념으로 병원 측과 손을 맞잡게 되었고 그녀에게 반영구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다름 아닌 ‘병원’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내과’병원에서. 의사들까지 맡긴다는 그녀의 실력과 기술의 안전성이 검증되며 그녀는 승승장구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반영구 메이크업 분야 ‘후학양성’에 기여하고자 누구나 그렇듯 기회가 있으면 위기도 있는 법. 지금이 있기까지 항상 탄탄대로로만 길이 열린 건 아니었음을 그녀는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한순간에 당한 사기로, 그 많은 돈을 언제 어떻게 모았냐는 듯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샵을 정리해야 하는 눈물의 시간도 있었다고. 그 눈물과 아픔은 그녀가 더 크게 도약해야만 할 이유이자 자양분이 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한 기업의 대표로서 어려움을 이긴 그녀는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일본 도쿄로 건너간 김경희 대표는 더 넓고 깊은 전문적인 미용지식 습득과 DIPLOMA 국제 자격을 취득하는 등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곳 일본에서 메이크업과 네일샵이 어우러진 샵앤샵 개념의 미용 토탈샵을 오랫동안 운영한 후에 귀국, ‘청담동 K-FIT QUEENS 미용 토탈샵’을 열게 되었다고. 청담동에 자리한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단다. 기자가 취재 차 찾아간 K-FIT QUEENS 미용토탈샵은 고급스러운 내부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는데, 이곳은 주로 교육장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그녀의 교육 반경은 국내외를 넘나든다. 특히 중국의 피부 전문가, 메이크업 전문가들이 그녀를 찾아와 3박 4일간의 교육을 받고 가는가 하면, 관광차 우리나라에 들른 외국인들이 그녀에게 반영구 메이크업을 받고 가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중국에도 메이크업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 수없이 많을텐데도 그녀에게 찾아와 교육을 받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것 또한 ‘국위선양’에 기여하는 바가 아닌가 하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자신의 명성이 알려진 것에 자만하지 않고 책임감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노력해온 김경희 대표.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반영구 메이크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녹아있었다. 중국에서는 반영구 눈썹 비용이 매우 비싸다고 한다. 잘 하는 곳은 천만 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 그러하기에 한국을 찾는 실정이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여성 뿐 아니라 사업가, 정치인 등 많은 남성들도 반영구 눈썹을 위해 문을 두드리는 추세다. 눈썹은 관상과 관련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신뢰감을 느끼게 해 면접에 붙을 수도 있고, 사회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상 좌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기자는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을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는데, 반영구 메이크업의 범위가 무궁무진 하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눈썹 뿐 아니라 아이라인, 입술, 헤어라인, 탈모 등 적용 범위의 폭이 넓으며 인체에 무해한 것은 물론, 많은 경험과 노하우 덕에 통증이 없기로도 유명하여, 이곳 K-FIT는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메이크업 분야에서 한 길을 달려온 김경희 대표. 그녀의 손은 거칠어보였지만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장인’의 손이었다. 긴 시간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녀에게 어떤 소회가 들까. “후회는 없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시작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걸 왜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일단 저지르고 보게 되었어요(웃음). 이 일이 그저 좋아서 아마 저는 계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국인 단골 손님 중에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달라고 이야기 해주시는 분도 계세요.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주실 때까지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돈을 좇아 생계를 위해 해온 일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그저 일과 흠뻑 사랑에 빠져온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를 바라보는 취재진은 행복했다. 반영구 메이크업 분야에 새 길과 비전을 제시해준 김경희 대표. 이 분야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도움을 기꺼이 내어주고 싶다며 이곳을 오랫동안 연구실처럼, 사랑방처럼 쓰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이 오랫동안 따뜻하게 남았다. 진정성 있게 한 길을 걸어온 그녀의 삶과 꿈을 <주간인물>이 함께 응원한다. ◈Profile-모델 이슈 메이크업 강사-이대입구 예진 메이크업 오픈-아현동 예진 메이크업 2ㆍ3호점 오픈-1994년 홍콩에서 개최한 세계 메이크업 대회 한국 대표 출전 (최우수상, 베스트 드레서상, 무대매너상 수상)-1995년 국제 바디 페인팅 대회 심사위원-국내 잡지 헤어메이크업 참여 (ceci, voguegile, ellegirl, cosmopolitan, marie claire, anan 등 다수)-앙드레김, 웨딩잡지(웨딩21, 마이웨딩 등), 패션카다로그-볼쇼이 발레단 메이크업 참여-김원희(웨딩화보), 최현(가수), 백보람(웨딩화보), 송혜교(웨딩화보), 유재석, 신동엽, 김윤희 등 국내연예인 다수-모닝구무스메(일본 아이돌) 미용참여-2000-2004년 도도화장품 기획실장 (주)셀렉 대표-2003년 한국 메이크업협회 위원장-2003-2008년 메이크업 전문인 자격시험 필기시험 출제자 및 감독-일본 도쿄 프리티 메이크업, 네일샵 오픈-일본 도쿄 K-FIT 미용 토탈샵 오픈-2009년 국제 미용대회 심사위원-청담동 K-FIT QUEENS 미용 토탈샵 오픈 국제 복장 디자인 수료에어로빅 강사 자격 수료미용 국가 자격증 취득드끌레오 피부과정 수료반영구 화장 2급 자격 수료메이크업 전문과정 3급 수료메이크업 전문과정 2급 수료메이크업 강사 인증 취득수료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09
  • 천국같은 마을을 꿈꾸는 해븐리병원, 병을 치료하기보다 삶을 치료하는 이은아 병원장 Story
    [주간인물위클리피플=이준영 기자] 천국 같은 마을을 꿈꾸다“병을 치료하기보다 삶을 치료하고 싶습니다.” 이은아 해븐리병원 병원장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은 형형색색의 꽃이 피고,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황홀한 음악이 연주되고, 시원한 바람이 살랑대며, 산해진미가 넘치는 이상향(理想鄕) 혹은 낙원(樂園)으로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사후에 영혼이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장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천국이 어떤 곳이건 간에 우리는 공통적으로 그곳이 아름답고,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아프고 힘든 일이 있을수록 사람들은 천국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를 원한다. 병에 걸린 환자들의 경우 이러한 갈망이 더욱 간절할 것이다. 병이 환자의 몸도 마음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몸과 마음 모두를 치료해 줄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식물, 음악, 미술과 함께 환자를 치료하는 ‘천국과 같은 마을’이 되고 싶다는 <해븐리병원>이 바로 그런 병원이다. <해븐리병원>에서 천국에 가장 가까운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이은아 병원장, 그녀를 만나 환자들에게 행복과 힐링을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이준영 기자 해븐리(heaven里), 천국에 가까운 병원을 꿈꾸다 현대사회는 고령화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대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게 될 전망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속도가 매우 빠른 상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이 매우 시급하다.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 의료 · 연금 ·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노인 복지에 대한 문제 등 고령화 사회에 해결해할 문제들이 우리 사회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특히, 노인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노인성 질환이나 뇌신경계 질환 치료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높아졌다. 노인성 질환 중 가장 잘 알려진 치매의 경우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도 함께 고통 받는 질환이기에 좋은 치료법과 치료기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다.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치매의 경우 보통 약물치료를 통해 치료가 진행된다. 약물치료는 증상의 완화와 급속한 진행을 막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치매를 치료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비약물적 치료도 매우 주목할 만하다. 뇌신경계 질환 · 노인성 질환 전문 <해븐리병원>의 이은아 병원장은 이러한 치매의 비약물적 치료로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의료인이다. “뇌기능이 저하된 분들을 위해 죽어가는 뇌세포들을 끊임없이 재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어요. 특히 감정을 조절하는 세포들을 활성화시켜줄 필요가 있죠. 언어적 기억보다 감각적 기억이, 어제 날짜보다 노래가사가 더 기억에 잘 남잖아요?” 이은아 병원장은 그래서 다양한 비약물적 치료들을 강조한다. “원예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다양한 비약물적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 환자, 노인성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어요. 보고, 만지고, 느끼는 활동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다양한 감각자극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암기하고 학습하도록 의사와 치료사가 함께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결과를 분석하며 치료하는 것이죠.” 식물을 심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며 치료를 받는다는 것, 분명 행복한 치료가 되겠지만 그만큼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물론 이은아 병원장은 이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치매에도 단계가 있어요. 예비치매환자, 초기치매환자, 중기치매환자, 말기치매환자 등 다양한 정도의 치매환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각종 치료법의 정도도 당연히 달라져야 하겠죠. 예비치매환자는 뇌기능을 회복하고 정서적 우울감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고, 중기치매환자는 반복적인 수행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두엽 기능을 회복 · 유지시키는데 주력을 하며, 말기치매환자는 몸을 가누기 어렵기 때문에 근육이 위축되지 않게 간단한 운동치료 · 원예치료를 하는 식이죠.” <해븐리병원>은 치매를 비롯한 각종 노인성 질환과 뇌신경계 질환에 있어서 최적의 치료법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븐리병원>의 이은아 병원장은 노인성 질환에 대한 ‘통합적’ 치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치매뿐만 아니라 두통, 어지럼증, 이명, 기억력 저하, 파킨슨 병 등 노인성 질환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질환을 치료합니다. 노인들은 뇌신경계 질환 뿐 아니라 통증 질환도 함께 앓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형외과와도 협력하는 등 통합치료를 하고 있어요. 또한 노인성 질환은 40~50대에 그 전조가 찾아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심해지기 전에 예방하고 병의 진전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진료하고 있습니다.” 비약물적인 치료를 위한 각종 시설도 완비되어 있다. <해븐리병원두뇌연구소>에는 이은아 병원장을 비롯한 많은 의사와 원예치료사, 음악치료사, 운동치료사 등과 같은 전문치료사들이 협력하여 최적의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병원 건물 7층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병원형 원예치료정원을 통해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원예치료를 더욱 전문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행복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보다 삶을 치료하는 병원 이은아 병원장이 처음부터 치매의 비약물적인 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노인성 질환 치료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공공의료기관에서 각종 활동을 하면서 부터였다. 삼성병원에서 전임의로 3년 동안 있었고, 최단기간 박사학위를 획득해 나름 주목받았던 이은아 병원장이 왜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당시 제가 선택했던 공공의료기관에서 새롭게 노인질환·치매센터를 설립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누구나 알 법한 이름 있는 병원에 갈 수도 있었지만 저는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그 곳의 치매센터를 성장시켜 나간다는 것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좀 일 벌리는 것을 좋아했나 봐요(웃음).” ‘접시를 닦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접시를 닦다가 깨뜨리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라는 주변사람들의 충고도 있었지만 이은아 병원장은 더 많이 활동하고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 특히 새롭게 설립한 노인질환 센터를 이끌면서 노인성 질환의 비약물적인 치료 방법들에 대한 노하우들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 서울시 의료정책 발전을 위한 각종 활동에도 참여하는 팔방미인(八方美人)이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치매의 비약물적인 치료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학술활동에 참여하며 학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어요. 인지치료 연구회에 참여하면서 각 분야에서 활약하시는 선생님들과 교류했고, 이때 원예치료를 처음 접하여 노인질환 센터에 적용해 보기도 했었죠.” 서울시의 의료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녀의 이력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의료정책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조언해야 더 좋은 정책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분야의 정책을 실무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정책을 설계할 때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시에서 치매지원센터를 설립할 때 이은아 병원장이 축적해온 지금까지의 노하우와 경험들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또한 그녀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의료인이었기에 인지치료 연구회와 서울시가 더 많은 교류를 할 수 있게 가교역할이 되기도 했다. 소위 말해 ‘잘 나가던’ 이은아 병원장이 개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원장은 “내가 하고 싶은 치료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원예치료정원을 만든다거나, 병원에 나오는 물을 건강에 좋은 약알칼리 이온수로 사용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자신이 개원한 병원이기에 가능했다. 또한 그녀는 “환자가 행복한 병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환자분들이 병원에 와서 무서워하기 보다는 행복해하기를 바랐어요.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삶을 치료하는 병원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공공의료기관에서 쌓아온 비약물적 치료의 노하우를 <해븐리병원>에 함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이러한 진정성을 환자들도 이해했기 때문일까?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때부터 치료받았던 환자들이 물어물어 일산의 <해븐리병원>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해븐리병원 부설 요양센터를 돌아보다보면 행복감을 느껴요.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져서 들어왔던 환자들이 행복해하고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면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을 느끼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살지, 불행하기 위해 살지는 않잖아요.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곳이 천국 아닐까요?” 이은아 병원장의 꿈은 소박하지만 위대해 보인다. 그녀는 “삶을 치료하는 하늘마을, 천국의 마을을 만드는 것”이 꿈이란다. 노인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노후생활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해븐리마을’. 노인성 질환 치료도 치매 치료도 결국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이은아 병원장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는 ‘천국’같은 그 마을을 어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해븐리병원 홈페이지 프로필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전임강사서울특별시립서북병원 신경과장 역임대한치매학회 홍보이사대한노인의학회 이사대한 신경과학회 노인의료위원, 홍보위원성균관 의과대학 외래조교수가천의과대학 신경해부학 외부 조교수삼육대학교 간호대학원 외부 교수(노인간호)미국 신경과 학회 정회원, 대한치매학회 정회원세계 이상운동 학회 정회원미국 노인의학회 정회원現 해븐리병원 병원장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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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9
  • ‘First'로 세상을 응원하다
    [주간인물위클리피플=최영하기자] ‘First'로 세상을 응원하다 ‘큰 선생님’으로 통하는 이 시대 진정한 humanist “아이들은 선물입니다” 조인경 IK엔터테인먼트 대표 모두가 한 번쯤 가져봤을 어릴 적 장래희망. 순수한 감성 충만했던 유년시절 ‘훌륭한 이가 되리라’는 거창한 꿈을 품은 학급 친구들 대부분이 대통령이나 운동선수, 혹은 과학자가 꿈이라던 시절이 있었다. 10~20년이 지난 뒤 2014년을 유년시절로 회고하게 될 요즘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최근 한 통계조사에 의하면 요새 어린 친구들의 맘을 사로잡은 장래희망 1순위는 ‘연예인’이 차지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장에 아역 스타가 되고자 엄마 손을 붙들고 엔터테인먼트를 찾는 친구들도 적잖을 터,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인 만큼 이 친구들을 케어해줄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단 생각이 먼저 스친다. 이런 가운데 오롯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꿈을 이뤄주고자 10여 년을 묵묵히 달려온 IK엔터테인먼트 조인경 대표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대표’라는 말보단 ‘선생님’이란 호칭이 자연스러운 그녀만의 Story를 <주간인물>이 담아보았다. 취재/글_최영하 기자 ‘인성(人性)’이 먼저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쩐지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만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줬던 그녀는 다소 딱딱한 느낌으로 전해지는 대표라는 옷보다는 ‘선생님’, ‘엄마’라는 옷이 꼭 맞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우여곡절 많았던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진지하게 하나둘씩 풀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경청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곳은 회사라기보다는 꿈을 키워나가는 현장이랄까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저는 무엇보다 인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성이 올바로 서면 나머지는 다 따라온다고 봐요.” ‘대통령이 꿈이고, 과학자가 장래희망이었던 때는 갔구나’ 하고 격세지감을 느끼면서도 아역 배우들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였던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보면 연예인이란 직업을 선호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경쟁 속에서 특히나 아역 배우로 유명세를 타기란 쉽지 않으며, 어린 나이기에 성인 배우와 달리 인성교육이나 교육적인 측면까지 더욱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다. 유난히 ‘연예인 병’에 난색을 표하며 예의를 중요시하던 조 대표. 그녀의 인성 교육관을 함께 공감해서였을까, 인터뷰 서두에 조인경 대표가 던진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시대를 관통하는 가시 있는 말 같아 어딘지 모를 시원함이 전해졌다. IK Entertainment Rises IK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최초 어린이 응원단 ‘First’의 탄생과 함께 막이 올랐다. “2005년 대학 강단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응원단에 매료됐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한번 가보자! 결심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아이들을 뽑기 시작했고, 이후 ‘진실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최초 어린이 응원단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응원단을 만든 이유는 상업적이기보단 누군가에게 힘을 주기 위함이었어요. 다만 TV 출연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더 알리고 싶어 했던 몇몇 학부모님들과 생각이 다르기도 했었죠. 남들이 가지 않던 길을 걷다 보니 아이들도 더 성장했고 저도 많은 보람을 느낀답니다.(웃음)” 첫술에 배부르랴, 이 과정에서 시련을 이겨내야 한 적도 있었다고. “어린이 응원단으로 이름을 한창 알리고, 해외 활동을 이어가던 당시 국내에서는 점점 First가 잊혀 갔어요. 그래서 팀에서 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일종의 ‘공백기’가 생겨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하는 흔들림도 있었고요.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에 가끔 쓴웃음을 삼키곤 한다는 그녀는 “그래도 지난 시간들이 모두 의미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라고 미소 짓는다. 힘든 시간을 직접 발로 뛰며 이겨낸 그녀는 자리만 지키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 아니라며 현장에서 할애하는 시간이 많은 열정이 넘치는 리더였다. “실무 현장에서 밑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부분이 힘든지를 직접 느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접 뛰다 보니까 힘든 점을 알겠더라고요.” 이렇게 10년을 노력한 수고가 있었기에 조인경 대표가 일궈낸 지금의 IK엔터테인먼트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미안해 나만 생각했어” 싸움이 없는 세상을 외치다 조 대표의 생일, 아역 배우 정찬비에게 받은 생일 편지를 그녀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선생님은 아기처럼 여린 마음을 갖고 계세요.’라는 편지 내용처럼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강한 대표지만 마음은 매우 여린 그런 여자였다. “평소 마음이 너무 약해서 스스로 독해져야지, 하고 독려하는데 천성이라 쉽지 않네요.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이들이 더 보고 배우는 게 많겠죠?(웃음) 그래서 아이들에게 대표 대신 큰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어요.(웃음)” 아이들을 ‘선물’이라고 표현하던 그녀의 속 이야기는 결코 작위적이지 않아 더욱 진정성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이끌어주려 노력하는 조인경 대표는 봉사하고 베푸는 마음도 놓치지 않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꽃동네나 자원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제가 가진 역량껏 재능기부 활동을 짬짬이 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앞으로도 재능기부와 물품 지원 활동은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입니다.(웃음)” 굳이 멀리서 찾기보단 주변 가까운 곳부터 나눔의 정을 실천해나가는 조인경 대표는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돼 줌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큰 선생님이 되기에 충분했다. 인터뷰 말미 벽 한켠에 걸린 “미안해, 나만 생각했어”라 적힌 이외수 선생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외수 선생님이 직접 써주신 글귀에요. 나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싸움도 없을 거란 말이라고 생각해요. 여긴 항상 주인공만 있는 세계에요. 주인공은 한 명이지만 주인공이 되고 싶은 아이는 수십, 수백 명이죠. 어른들부터가 아이들을 돈으로 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경쟁이 심하고 각박한 이 시장에서 아이들이 선함을 잊지 않고 나만 생각하지 않도록 저부터 노력할 거예요!” 더불어 조 대표는 힘들 때나 좋을 때나 10년째 변함없이 함께 해주는 김진경 실장이 있기에 큰 힘이 됐다며 김 실장에 대한 애정표현 역시 잊지 않았다. 설령 도중에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길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강조하던 조인경 대표. 분야를 막론하고 ‘경쟁에서 도태되면 패배자가 된다’는 식의 과잉 경쟁 인식이 강한 오늘날, 인성에 뜻을 두고 그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려는 그녀의 따뜻한 정신을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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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5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세월호 희생 故 이재욱 군 명예편입학식 개최
    [위클리피플= 오미경 기자]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고 이재욱 군(17)이 인성영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대안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교장 김나옥, 이하 벤자민 학교) 학생으로 편입해서 영혼으로나마 못 다한 꿈을 펼치게 됐다. 벤자민학교는 지난 28일 오후 충남 천안시 국학원에서 고 이재욱 군의 명예편입학식을 열고 이군을 28번째 학생으로 인정하는 입학 허가서를 이군의 어머니 홍영미 씨(48)에게 수여했다. 벤자민학교 학생 전원 27명과 교사 등이 참석한 이날 편입학식은 이군이 생전에 활동한 영상을 상영하고 재학생 대표의 환영사 낭독 그리고 이군의 어머니 홍 씨의 답사 순으로 진행됐다. 김나옥 교장은 축사를 통해“비록 재욱 군과 우리가 함께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우리는 세상을 밝히는 인성영재로서 함께 나아가게 될 것”이라며 “더 좋은 세상,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한 세상, 홍익인간이 사는 세상을 그렸던 재욱 군의 꿈은 우리의 꿈과 맞닿아있다. 그 꿈, 그 마음을 우리에게 맡겨준 것이니 절대 잊지 말고 우리가 그 꿈을 잘 펼쳐나가 보자”고 강조했다. 이어 재욱 군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시청한 뒤 벤자민학교 학생을 대표해 이태수 군과 조민영 양이 재욱 군에게 전하는 환영사를 낭독했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세상을 밝혀내겠다”고 전하자 재욱 군의 어머니인 홍 씨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들었다. 아이들의 환영사 낭독에 이어 단상에 오른 홍 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발 양심을 회복해 달라고, 인간성을 되찾아 달라고 우리 재욱이가 여러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며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곧 우리 재욱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꿈과 희망이 우리 재욱이, 그리고 세월호에 있던 친구들의 꿈과 희망”이라고 말했다. 홍 씨는 “여러분이 희망이라 믿는다. 반드시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어주길 바란다”며 “여러분이 밝은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재욱이의 꿈을 함께 이뤄주리라 믿는다. 여러분을 정말 마음 깊이 사랑한다”고 했다. 홍 씨의 이야기에 많은 아이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재욱군의 벤자민학교 편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이어 벤자민학교 학생들이 한 명씩 나와 재욱 군의 어머니 홍 씨를 포옹하며 함께 눈물도 흘리고 또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재욱 군을 환영했다. 홍 씨는 “오늘 하루 27명의 아들딸들이 생겨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홍 씨는 전달받은 위로성금을 벤자민학교 장학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벤자민학교 김상훈 군은 “처음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는 ‘안 됐다, 불쌍하다’하며 슬퍼했는데, 오늘 재욱이의 어머니를 이렇게 뵙고 나니까 정말 고맙고 또 미안했다. 그만큼 더 성장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성은 양은 “어머니의 말씀이 꼭 가족과 같이 느껴져서 많이 슬펐다. 세월호 아이들의 꿈을 내가 이뤄야겠다. 꼭 세상에 빛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대안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지난 3월 4일 설립식과 입학식을 한 뒤 1년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27명의 신입생에 이날 명예 편입학식으로 28명의 학생이 재학하게 된 벤자민학교는 기존 교육시스템 속 학생들에게 행해진 주입식 교육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인성영재’를 목표로 자기 주도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나가는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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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리더스
    2014-06-03
  • [다온교육연구소 이현선 소장 특별 인터뷰] 당신의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멘토, 내 인생의 ‘블루비타민’ 이현선 소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최영하 기자] 꿈, 행복, 성공을 부르는내 인생의 ‘블루비타민’ 이현선 소장을 만나다 이현선 다온교육연구소 소장 블루비타민(Blue Vitamin)! 이현선 소장의 고유 브랜드인 ‘블루비타민’은 ‘블루’라는 색깔이 자신의 철학을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 끝에 그녀가 지어낸 이름이다. ‘꿈, 희망, 성공을 내포할 수 있는 키워드가 무엇일까’를 고민한 그녀는 ‘푸르른 희망과 꿈의 색채심리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블루’와 ‘촉진제·helper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비타민’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를 합해 ‘블루비타민’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세상에 오픈, 브랜드에 걸맞는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해냈다. 자신의 인생 전부가 될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었던 ‘교육’을 매개로 사회에 희망을 주며, 많은 이들의 삶에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현선 소장. 이번 주 <주간인물>은 강의 분야의 신지식인 이현선 소장을 만나 그녀의 일이 아닌 ‘삶’이자 ‘인생’이었던 이현선 소장의 교육인생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았다. _취재 이선진, 최영하 기자/ 글 이선진 기자 ‘제대로 된 강사가 되어보자’는 교육자의 꿈 이현선 소장은 심리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전문분야로 강의하는 강사이지만, 사실 그녀의 전공은 특이하게도 심리학이 아닌 관광학과 경영학, 교육학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삼성화재에 공채로 입사하게 된 후, 우연한 기회로 사내 CS강사를 하게 되면서 교육 분야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면접 때였어요. 관광과 출신이 왜 여기에 지원했냐는 물음에 저는 대답했습니다. ‘보험회사는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는 관광학을 전공했기에 경영학 전공자 보다 제가 더 귀사에게 어울리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라고요.” 명쾌한 대답으로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된 그녀는 일을 인정받으며 입사 6개월 만에 친절상을 받게 되었고, 그로부터 2개월 후 ‘강사위촉장’까지 받게 된다. 입사 8개월 만에 강사임명장을 받고 ‘사내 CS강사’가 된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자네는 경청을 잘하고 공감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장점’이라며 저의 장점을 발견해주신 부장님의 추천으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진정한 교육자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것은 우연히 다가온 한 명의 교육생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강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 교육생 한 분이 따라 나와 그녀의 강의로 인해 인생이 달라졌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분 덕분에 번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얘길 했던 거지? 아, 강사의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거구나. 그동안 난 아무 생각 없이 입으로 내용만 전달했던 거였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 이현선 소장은 진정한 강의를 위해 변화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며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전문적이고 완벽한 강의를 위해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그 무렵 나름의 철학도 생겼다. ‘나는 전달자가 아니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스피커가 되리라’는 그녀의 철학! 수입을 재교육, 재투자에 쓰며 교육의 가치에 흠뻑 빠져있던 그녀에게 ‘제대로 된 강사가 되어보자’는 교육자로서의 꿈이 비로소 생긴 것이다. 꿈을 위해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재입사 교육 분야를 깊이 있게 경험하고 싶었던 그녀는 지점 영업소 관리 업무가 기본업무였기에 자신이 바라는 교육 업무만 할 수 없었던 조직의 환경 속에서 꿈을 위한 결단이 필요했다. 많은 이들이 취업하기를 원하는 대기업 정규직이었던 첫 직장을 꿈을 펼치기 위해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하자 가족은 물론 주변 지인들 모두가 반대와 우려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위한 목표가 뚜렷했기에 앞으로 겪게 될 시련이 두렵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교육의 기본적인 체계부터 운영과 사업까지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순수 교육업체인 ‘삼성SDS멀티캠퍼스’의 계약직 입사공고를 알게 된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과감히 입사지원을 하였다. 삼성의 정규직 출신이었던 그녀가 굳이 정규직을 박차고 나와 연봉과 계약조건이 현저하게 차이나는 계약직으로 재입사지원을 한 그녀를 주변 사람들과 삼성 임직원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입사 8개월 만에 강사임명장을 받은 이력도, 그 좋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계약직으로 재입사 한 케이스도 삼성 그룹에서 그녀가 최초였다. 그녀를 대변할 만한 한 에피소드에 의하면, 계약직 입사 면접 시 “이곳은 정규직이었던 경력 때와는 달리 연봉 차이가 많이 날텐데 괜찮습니까?”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그녀는 “저는 꿈이 있어 이곳에 지원했습니다. 돈이 우선이었다면 이곳에 지원하지 않았겠지요. 저는 제대로 배우고자 이곳에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제대로 가르쳐주실 수 없으실 것 같다면 저를 받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답했다. 꿈을 향한 당찬 외침으로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갔다. 입사 후, 교육에 대한 꿈과 의지가 컸던 만큼 그녀는 모든 일을 무섭게 섭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업으로부터 ‘교육팀장’ 자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됐다. “당시 사수에게 고민을 말하자 처음에는 말리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물었어요. 이 회사의 상사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조언해달라고요. 시간이 흐른 뒤 제게 돌아온 대답은 ‘가라’였습니다. 팀장으로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열심히 배우고 경험해서 차후에 멋진 강사의 모습으로 이곳에 다시 오라며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옮긴 회사는 다른 사업 분야를 확장하면서 교육사업 분야를 점차 축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결국 그곳을 나온 그녀는 다시 취업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원하는 기업마다 최종 면접까지 간 뒤 낙방하게 되는 경험을 수차례 겪게 된다.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한 인사담당자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경력으로 봐서는 팀장직이 적합하나 팀장직으로 갈 경우 팀조직 구성원보다 나이가 어리기에 갈등이 생길 것이고, 나이에 맞게 팀원으로 입사시킬 경우 위에 팀장보다 경험이 많아 상사와 갈등이 생기게 될 것이기에 기업 측에서는 수용이 어려울 수 있다며 따로 회사를 만들어 능력을 펼쳐보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언을 듣게 된 것이었다. 그 조언을 생각하며 깊은 고민에 빠진 그녀에게 때마침 한 개인병원의 교육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연치 않게 ‘다온교육연구소’ 설립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강사란, 당신에게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 올해로 강의 10년차가 된 이현선 소장은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활용 매직마케팅 과정’ 및 ‘성공을 부르는 심리활용 대인관계 전략’ 강의를 통해 관공서와 공공기관, 기업체, 의료기관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금의 그녀가 있게 된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과 확고한 철학, 신념들이 더해진 바. ‘할 거면 제대로 교육 효과를 낼 수 있게 하자’는 철학과 ‘교육자의 말 하나에 파생되는 힘이 얼마나 큰지. 강사란 촉진제 같은 사람, 자극제가 되어주는 사람, 당신이 빛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사란 위에서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밑에서 받쳐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념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천직이라 생각하는 내 분야를 빨리 만났고 교육생을 만나는 시간이 그저 행복했기에 항상 감사를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녀는 그래서 더, 형편이 어려운 복지기관의 강의를 자청해 나갔다. 그녀가 정말 대단해 보였던 건, 그리고 감동이 물씬 느껴졌던 건, 진심이 없었다면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일을 그녀는 당연한 듯 해내기 때문이었다.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하는 강의를 하기위해 수화까지 배운 그녀는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오히려 자신이 더 큰 감사를 배우고 느꼈다고 한다. “수화 통역사가 계셨지만, 제 소개와 강의 내용의 중요한 부분들은 그들과 직접 교감하기 위해 수화를 배워서 강의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교육생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자신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준 교육생들의 시간을 유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이런 이현선 소장의 강의에는 어떤 특별함이 숨어있을까. 그녀의 강의는, 강의가 끝남과 동시에 교육생들이 강의장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적용할 수 있는 실전 전략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 과정의 스토리도 특별했다. “대인관계 전략을 연구하기 위해 이론부터 공부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현장에서 직접 활용하고 있는 대인관계 고수들의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면 과연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전략을 접근하다보니 두 분야의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점술가와 마술사였지요.” 그녀는 전국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12명의 점술가를 찾아가 그들이 쓰고 있는 화술을 연구하고 마술사들의 행동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오랜 시간동안 직접 마술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그녀는 마술사들의 공간과 상황을 장악하는 무의식 심리기술을 실제 마케팅에 접목시켜 국내 최초로 ‘매직마케팅’이라는 고도의 심리 전략을 개발하였다.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활용 매직마케팅’은 강의 뿐 아니라 책으로 발간될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겠다. 이현선 소장은 관공서와 기업, 병원 등에 강의를 하는 것 외에 매주 월요일이면 대학으로 출강을 한다. ‘자기경영전략’에 관한 그녀의 강의는 국제대학교 전공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기대감을 품고 학생들을 대하는 그녀는 자신의 말 한 마디로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매순간 최선의 강의를 선보인다. 특히 감사와 긍정의 힘을 깨우치게 하여 많은 교육생들을 변화시켜온 이현선 소장. 그녀는 상대적으로 교육적 혜택이 적은 지방에서부터 전국을 아우르는 전국투어 세미나를 꿈꾸고 있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강의처럼 <주간인물>이 마주하여 듣게 된 5시간에 걸친 인터뷰, 그녀의 열정과 파워는 상상 이상이었다. 과거보다 현재가, 현재보다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던 이현선 소장. 그녀의 남다른 교육적 가치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고, 사회 구성원이 바뀌고, 전 세계가 변화되는 그날까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선사하고 있는 그녀의 꿈을 주간인물이 함께 응원한다. ◈profile[학력 및 약력]한국HRD협회 2011년 명강사 선정 2013년 국내최초 마술심리와 마케팅을 융합한 「매직마케팅」 개발현) 다온교육연구소 대표현) 국제대학교 초빙교수(NCS자기경영, 커뮤니케이션 스킬)현) (사)한국마술협회 교육마술 팀장 (마포지부)전) 삼성화재 공채 및 사내CS강사전) 삼성SDS멀티캠퍼스 교육담당자숭실대 교육대학원 평생교육HRD 석사 [교육 이수/자격]평생교육사 2급교육마술지도사 2급미술심리치료사 2급국제공인 NLP Practitioner 자격JC와인 스쿨 [소믈리에 과정] 수료한국교육컨설팅연구소 Inscape 리더십 강사과정 수료 [강의 이력]한국원자력연구원, 환경관리공단, 정부중앙청사, 서울인재개발원, 교육청삼성화재, 삼성전자, 대림산업, 동국제강, LG전자, PUMA, 현대해상 외 다수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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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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