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주간인물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거미를 사랑한 천생 학자, 대한민국 생물학의 불모지에 꽃을 피우다!


 

김주필 주필거미박물관 관장 / (사) 한국거미연구소 소장

 

 

무지에서 오는 편견은 위험을 가져온다. 그것은 자신의 인식 안에서 섣불리 전체를 판단하는 일로, 사람 관계의 단절을 만들기도 하며, 무지는 의심을 낳고, 이러한 의심은 기존의 고정관념과 어울리면서 두려움으로 바뀌어 때론 사회 갈등을 만들거나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학문, 종교, 문화, 국가 등에 이르는 다양한 범주에서 그 사례를 발견할 수 있는 가운데, <주간인물>은 오늘 척박한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 현실 속에서 무지함이 가져온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 온 특별한 주인공을 만났다. 단지 생김새가 그렇단 이유로 사람들에게 혐오스럽거나 무서운 동물로만 인식되어 왔던 거미, 바로 그 거미 연구를 통해 국내 생물학의 발전에 한 획을 그어 온 김주필 박사의 이야기다.  오미경 기자

 

 

거미는 무서운 동물? NO!
살아있는 생태계, 주필거미박물관

 올해로 설립 된지 만 10년째에 이르는 주필거미박물관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최초로 세워진, 세계 최고의 유일한 사설 거미박물관으로 김주필 박사의 거미 연구 발자취가 그대로 옮겨져 있는 현장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자락에 위치한 그 곳에서 만난 설립자 김주필 박사는 먼저 거미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줘야 하지 않겠냐며 말문을 열었다.
 “거미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대부분 독이 없고, 사람을 물지도 않아요.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고, 환경의 지표가 되는 동물로서 사람에게 100% 이로운 녀석입니다. 또 거미줄은 나노과학을 탄생시켰고, 곧 그것을 이용한 신소재나 치매예방약도 개발될 예정이지요.” 


 주필거미박물관에는 산왕거미, 무당거미, 농발거미, 호랑거미 등 한국 고유 거미 200여 종을 포함해 김주필 박사가 전 세계에서 모은 약 40만 점의 거미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살아있는 각종 거미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이곳은 이 외에도 세계 각 지역의 희귀 광물 300여 점이 전시된 광물전시실과 식물 및 고·중·신생대의 화석 200여 점이 모아져 있는 화석전시실, 약 1,000여 점의 나비와 나방, 장수풍뎅이 등이 전시된 곤충전시실, 거미의 세부 부분을 관찰할 수 있고 어패류와 곤충 표본이 전시되어 있는 현미경 관찰실 등 총 11관으로 이뤄져있다. 


 이에 더해 김 박사는 야외조각공원, 장승공원 등을 만들고, 다양한 자연 체험과 놀이 프로그램 또한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Arachnida(거미류)와 Utopia(천국)을 결합한 의미의 아라크노피아 생태수목원으로 진화시켰으며, 이것은 거대한 자연 생태계를 오롯이 느끼게 해주는 학습의 공간이 되어 오고 있다.

 

 

불모지에 뛰어들어 40여 년 거미 연구,
세계 최초 거미박물관 세워

 김주필 박사가 거미의 세계에 빠져든 건 사실 예견된 운명과도 같았다.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남한에 내려온 김 박사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성적은 늘 1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중3을 마칠 무렵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집안 형편을 따라 당시 교사였던 아버지가 재직하시던 농고에 들어갔는데 적응을 못했어요. 공부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던 저는 그 길로 무작정 가출 했고, 1년 남짓 방황하다 어렵사리 배재고등학교에 들어갔어요. 당시 중학생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머무르던 곳이 바로 생물학의 대가로 불리던 강영선 박사(당시 서울대 동물학과 교수)의 집이었는데 그 분의 반강제적(?) 추천으로 서울대 동물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지요.(웃음)” 


 대학에 들어가서 학과 공부를 접한 그는 교육의 양상이 유전과학 쪽으로만 치우쳐 기초과학인 분류생태학이 소홀히 여겨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다가올 환경문제를 예상하며 환경지표가 되는 동물인 거미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암울했던 196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혈혈단신으로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을 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학원 강의를 시작했고, 예상치 못하게 인기 강사에 오르면서 그것을 직업 삼기에 이르렀다. 이 후에는 학원을 경영까지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김 박사는 나이 마흔에 접어들 즈음, 다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인 거미 연구를 위해 1971년 동국대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 혼자만의 어려운 거미 연구 레이스를 시작하였다.


 거미를 채집하기 위해 국내외로 밤낮없이 돌아다니던 중 산속을 헤매다 다치거나 독거미에 물린 적도 있었고, 남의 집 담벼락을 기웃대다 도둑으로 몰리거나 간첩으로 신고 당한 적도 여러 번. 갖은 고초 속에서도 거미 생각뿐이었다는 그는 1984년 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이듬해 거미 연구의 실질적인 활성화를 위해 거미연구소를 열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던 국내 거미 연구 인프라와 맨파워를 급속도로 따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미와의 동행을 시작한지 40여 년 만인 지난 2004년, 김주필 박사는 세계 최초로 발견한 거미만 140여 종에 이르는 그간의 활동 끝에 수많은 거미 표본을 보관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거미를 보다 가깝게 알리는 기회가 될 공간으로서 주필거미박물관을 세계 최초로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기초과학, 이제라도 제대로 서야 대한민국 미래 있다

 거미박물관을 통해 오랜 연구의 결실을 맺은 김주필 박사는 “궁극적으로 기초 과학인 생물학의 발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국대 교수로 명예퇴직을 하기 전, 요청을 해오는 특수고 학생들에게 개인지도도 했었는데 청소년들을 가르치면서는 기초과학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어요. 그래서 범위를 넓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생물학의 중요성을 가르치리라는 생각으로 2010년 한국거미연구회를 발족시켰습니다.” 


 한국거미연구회는 초·중·고·대학생 및 일반인까지 거미 연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하여 생물학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다. 현재 60~70명에 이르는 한국거미연구회의 회원들은 짝수 달마다 모여 연구주제를 발표하고, 우수한 것은 본 연구회 학술위원회와 매년 2회 발행되는 연구회의 학술 전문잡지 ‘한국 거미’의 편집위원회 심사를 신중히 거쳐 학술지에 게재, 한국에서의 거미 연구 상황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있으며, 김 박사는 매년 여름 방학에 자연 학습원을 열어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기도 하다. 거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한 자발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이러한 교육 활동을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김주필 박사. 그는 “창조의 시대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 육성에 대한 중요성을 진지하게 깨닫고, 정부가 보다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지적하며 “학교와 부모는 아이들에게 생각의 틀을 벗어난 것에 대해 제재하는 억압적인 교육과 지나친 애착을 지양하고,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은 늘 ‘왜?’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품고 창의적인 사고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세상에게 받은 것을 나누며

 인터뷰 내내 스스로를 잔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자기표현에 있어서는 영 인색한 모습을 보였던 김주필 박사였지만, 사실 그는 진정한 나눔의 행복을 알고,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삶을 걸어온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무덤덤한 표현들이 더욱 인상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2009년 주필거미박물관과 수석전시관, 동물 사육실 등 모두를 동국대에 기증하며 화제를 모았던 김 박사는 자신과 같은 생물학도들이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도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거미박물관 내에는 신인작가들이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미술관을 열어 두는 등 쉽지 않은 나눔의 행동을 실천해 왔다. “인생은 공수레 공수거 아닙니까. 우리가 가진 것은 결국 세상이 주는 것일 뿐, 온전히 내 것인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돈이든 자식이든 내 것에 대한 집착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장학금을 수혜 받아 공부 했고, 그렇게 노력해 모아진 재산이기에 더욱 의미 있게 써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박물관은 애초에 후학들에게 좋은 학습장으로 쓰이도록 하기 위해 세운 것이니 사유화 할 것이 아니었고, 기증이라는 좋은 방법을 찾은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대답에 이어, 김 박사는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일찍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자신에게 세상은 칼날 위를 맨발로 걷는 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했을 만큼 냉정한 곳이었지만,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처럼 묵묵히 거미 연구만을 생각하며 노력을 이어간 끝에 지금을 만날 수 있었듯,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주필거미박물관이 반드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그 날이 올 것 이라고.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학문을 연구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까지 한다는 것은 불모지에 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그 학문이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남다른 생각’과 ‘끈기’라는 돛대를 달고 사람들이 꺼리는 거미에 대한 연구를 위해 누구도 간 적 없는 망망대해를 홀로 지나 온 그의 삶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 왔다. <주간인물>은 김주필 박사의 바람처럼 이 시간 이후부터 거미를 사랑스럽게 보호해주는 이들이 더욱 많아질 거라 기대하며, 그와 거미의 아름다운 동행을 언제나 응원한다.

 

 

 

profile.

(학력사항)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물학과
서울대학교 이학석사
동국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과 이학박사

(경력 사항 및 연구 경력)
건국대학교, 단국대학교 및 대학원, 중앙대학교 강사 外
동국대학교 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동국대학교 생물학과 학과장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미국 Smithonian Institution 객원 연구원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동물학과 강사
중국 Hebei Normal university 종신 겸직교수
중국 Hunan Normal University 종신 겸직교수
중국과학원 동물연구소 방문교수
국립자연사박물관 추진위원회 재정위원장
사단법인 한국거미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한국자연보전협회 이사
사단법인 한국자연보호중앙협의회 학술이사
한국생태학회 이사
한국환경생물학회 회장 역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총 동창회 회장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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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거미박물관 김주필 박사 특별인터뷰]거미를 사랑한 천생 학자, 김주필 박사의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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