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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인생의 길은 전공이 아니라 도전이 만든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컴퓨터의 선구자 앨런 케이가 한 말로 유명하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무슨 전공을 했는가?”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바꾸고, 최첨단 기술이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에는 전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평생 배우려는 자세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성숙 신임 국무총리다. 그녀는 공학도도, 컴퓨터공학 전공자도 아니었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인문학도였다. 그러나 졸업 후 컴퓨터 전문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기술의 미래를 읽었다. 이후 나눔기술을 거쳐 인터넷 포털 엠파스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국내 최초의 '열린 검색' 서비스를 기획하며 인터넷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어 NHN과 네이버에서 검색과 서비스 혁신을 주도했고, 2017년에는 네이버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CEO)에 올랐다. 그녀가 대표로 재직하는 동안 네이버는 웹툰, 간편결제, 인공지능, 글로벌 플랫폼 사업을 확대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되었고, 이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며 기업 경영과 공공행정을 모두 경험하는 보기 드문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성숙의 인생은 우리에게 묻는다. “전공이 미래를 결정하는가, 아니면 배움이 미래를 결정하는가?” 말이다. 답은 이미 그녀의 삶 속에서 드러났다. 교육학자 존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출발점일 뿐이다. 삶은 졸업 후에도 계속 배우는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선물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 CEO 가운데도 전공과 직업이 일치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중요한 것은 학과 이름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며,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이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과거 기술자가 아니었지만 기술을 이해했고, 경영학도가 아니었지만 조직을 성장시켰으며, 정치인이 아니었지만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까지 나아갔다. 이것이 바로 융합형 인재가 갖는 힘이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꿈이 무엇이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평생 무엇을 배우며 살아갈 것인가?”이다. 직업은 바뀔 수 있다. 산업도 바뀐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서도 살아남는다. 이 시대 최고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교육도 이제는 정답을 빨리 맞히는 학생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암기보다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지식을 저장하는 사람보다 지식을 연결하는 사람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한성숙 국무총리의 성공은 개인의 영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다. 오늘의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영어만 해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꿈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결론은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진리다. 교육은 직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많아질 때 사회는 발전하고, 그런 사람이 혁신을 이끌 때 국가는 미래를 얻는다. 이제 우리는 조용하지만 강한 교육적 메시지를 얻었다. “전공은 출발선일 뿐, 목적지는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날 우리의 청년들은 고용 절벽의 시대를 살아간다. 온갖 스펙으로 실력을 갖추었지만 40만~70만 명의 청년들이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그냥 쉬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어렵게 살아 온 순간의 삶과 축적한 지식, 실력을 그대로 사장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학에서의 전공은 하나의 경우일 뿐이다. 인생의 길은 전공이 아니라 도전이 만든다는 사실을 이 글의 주인공의 삶을 통해 느끼고 모델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교육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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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를 바라보는 교실에서 토론과 질문 중심의 교실로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한국 학생은 하루 대부분을 교실에서 보낸다. 교실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질서와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디지털 교과서도 도입했고, 인공지능 교육도 시작했다. 하지만 반세기 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풍경이 있다. 교사는 칠판 앞에서 설명하고 학생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듣는다. 정해진 진도가 가장 중요하다. 질문은 시간을 늦추는 변수이고, 토론은 진도를 마친 뒤에나 가능한 사치이다. 질문이 사라진 교실에서 자란 아이들은 토론보다 침묵에 익숙하다. 설득과 이해보다 승부와 경쟁에 익숙해졌다. 학교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회는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증폭시킨다. 민주주의는 투표장만이 아닌 교실에서 시작한다. 인간성은 교과서로만 길러지지 않는다. 공감은 대화할 때 자라고, 책임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며, 배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끝까지 들어 보는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문화이다. 그런 문화는 설명보다 대화에서, 경쟁보다 협력에서 꽃핀다. 국가 경쟁력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문명과 혁신도 언제나 한 사람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교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교실의 방향을 칠판이 아니라 학생에게 돌려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공개수업을 하거나 마무리 활동을 할 때만 이러한 학습 형태를 보여주기 위주로 한다. 하지만 거꾸로 학생토론중심 구조가 항시적이고 전체 공유가 필요할 때는 일시적으로 교사 중심 방향이어야 한다. 수업은 토론이 일상화된 학습 구조와 체계가 필요하다. 책상은 언제든 네다섯 명이 마주 앉아 토론할 수 있는 구조로 준비하여야 한다. 교사의 자리는 교실의 중심이 아니라 배움을 연결하는 자리여야 한다. 학생들은 설명을 듣는 시간이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질문과 토론'이 모든 교과에서 자연스럽게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실이 된다면 학교의 문화는 역동적으로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달라질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사고할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평가의 기준도 바꾸어야 한다. 정답을 얼마나 맞혔는가보다 어떤 질문을 만들었는지, 어떤 근거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어떻게 존중하며 토론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교사에게 수업을 연구할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질문 중심 수업은 훨씬 많은 준비와 성찰을 요구한다. 교육개혁은 교사의 희생이 아니라 국가의 투자로 이루어진다. 교실 풍경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도 바뀌지 않는다. 학생이 교사를 바라보는 교실에서 벗어나 서로를 바라보는 교실. 정답을 외우는 교실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교실. 결국 '질문과 토론' 교육 방식은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한 길이다. 이 길은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바뀌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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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피부로 드러나는 전신 염증의 신호 건선, 한의학적 접근을 통한 면역 불균형 정상화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닌 전신 면역 질환, 건선 - 건선(psoriasis)은 단순한 표피의 문제를 넘어, 유전적 소인과 환경적 요인, 그리고 면역 체계의 조절 장애가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전신 염증성 질환입니다. 임상적으로는 경계가 뚜렷한 붉은 반점 위에 은백색의 두꺼운 각질이 덮이는 것이 특징이며, 심한 가려움과 통증을 동반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건선의 핵심은 선천성 및 적응성 면역 체계의 비정상적인 활성화, 특히 IL-23/Th17 축(axis)의 조절 이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수지상세포 등에 의해 분비된 인터루킨-23(IL-23)은 Th17 세포의 분화와 생존을 촉진하며, 활성화된 Th17 세포는 IL-17을 비롯한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과다 분비합니다. 이러한 염증 매개체들은 각질형성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유발하고 염증 반응을 지속시켜 건선 특유의 두꺼운 각질 판을 형성하게 만듭니다. 2. 기존 약물 치료의 한계와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 - 현재 건선 치료에는 국소 스테로이드제, 비타민 D 유사체와 같은 바르는 약부터 메토트렉세이트(MTX), 사이클로스포린 등의 전신 면역억제제, 그리고 특정 염증 경로를 차단하는 생물학적 제제(Biologics)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IL-17이나 IL-23을 표적으로 하는 최신 생물학적 제제는 중증 건선 환자에게서 피부 병변을 개선하는 단기적 효과가 입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이같은 합성약물 치료만으로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생물학적 제제는 높은 치료 비용으로 인해 환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며, 장기 사용 시 약물 내성이 발생하거나 효능이 감소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기존에 널리 활용되어오던 전신 면역억제제는 간독성이나 골수 억제와 같은 부작용의 위험을 동반하며, 국소 스테로이드제의 장기 사용은 피부 위축이나 모세혈관 확장과 같은 비가역적인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약물 투여를 중단할 경우 높은 확률로 증상이 재발한다는 점은, 증상 완화를 넘어선 근본적인 면역 항상성 회복과 관련한 새로운 치료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3. 건선과 밀접하게 얽힌 '전신 대사 증후군'과 '장-피부 축' - 최근 학계에서는 건선을 단순한 피부병이 아닌 심혈관계 질환, 비만, 대사 증후군, 염증성 장질환 등과 동반되는 전신 질환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선 환자의 체내에서 지속되는 만성 염증은 혈관 내피세포 기능 장애를 유발하여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근래의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피부의 염증성 질환에 기여한다는 '장-피부 축(Gut-skin axis)' 이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장내 점막 장벽의 기능이 저하되면 미생물이나 대사 산물이 혈류로 유입되어 전신 염증 반응을 촉발하고, 이는 다시 Th17 세포 분화와 IL-17 발현을 통해 건선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이는 건선 치료가 피부 표면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체내 대사 및 면역, 장내 환경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임을 말해줍니다. 4. 건선에 대한 효과적 대안: 침, 뜸, 한약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최근 기존 약물 치료의 효과를 보완하고, 전신 면역 체계의 종합적 안정을 도모하는 한의학적 치료가 효과적인 대안으로 조명받고 있으며, 다양한 현대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그 효과와 작용 기전이 검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널리 활용되는 약물인 전신면역억제제인 메토트렉세이트에 전침(Electroacupuncture)을 병행한 치료는 피부 병변과 염증을 기존 약물 단독 치료보다 더욱 강력하게 완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연구에 따르면 전침 치료는 피부와 림프절에서 병원성 Th17 세포의 비율을 낮추고, 반대로 면역 반응을 진정시키는 조절 T 세포(Treg)의 빈도를 현저히 증가시켜 Th17/Treg 면역 균형을 회복시킨다고 합니다. 또한, 뜸(moxibustion) 치료는 건선 병변에서 세포 증식 및 발판 단백질 합성을 감소시키고, 혈관의 비정상적인 과다 증식을 억제하며, IL-8, IL-17A, IL-23과 같은 전염증성 인자의 발현을 뚜렷하게 낮추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한편, 건선은 면역계의 이상, 피부 세포의 과증식, 비정상적인 혈관 신생, 그리고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복합 질환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중 경로(multi-pathway)를 동시에 조절하는 한약 치료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각종 피부 질환에 널리 활용되어온 여러 한약 처방의 활성 성분은 여러 병리 표적에 대한 동시조절 기전을 통해 건선을 치료합니다. 예를 들어, 커큐민(curcumin), 바이칼린(baicalin) 등의 성분과 다수의 한약 처방이 NF-kB, MAPK, PI3K/AKT 및 IL-23/IL-17 신호 전달 경로를 동시에 억제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차단하고 각질형성세포의 과다 증식을 막아주는 효과가 규명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복합 한약 처방은 피부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피부 축(Gut-skin axis)'에 작용하여 무너진 장내 유익균의 다양성을 회복시키고 전신 대사 장애를 바로잡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살펴보신바와 같이 한의 치료는 면역 조절, 항염증, 혈관 신생 억제, 장내 미생물 환경 개선 등 신체 전반의 불균형을 총체적 관점에서 바로잡는 효과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근거가 갖춰져 있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건선 자가 관리법 - 성공적인 건선 관리를 위해서는 임상적 치료와 더불어 환자 스스로의 생활 습관 및 식단 교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지중해식 식단: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과일, 채소, 통곡물을 강조하는 지중해식 식단은 강력한 항염증 효과가 있습니다. 이 식단에 풍부한 오메가-3 고도불포화지방산과 폴리페놀은 전신 염증을 조절하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데 유익합니다. •체중 감량 및 저칼로리 식단: 비만은 건선의 진행 및 중증도 악화와 강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과체중 또는 비만인 건선 환자가 저칼로리 식단을 통해 체중을 감량할 경우, 건선 중증도 지수(PASI)가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기존 치료에 대한 반응률이 높아집니다. •간헐적 단식: 식사와 단식 시간을 조절하는 간헐적 단식은 아디포넥틴 분비를 증가시켜 국소 및 전신 염증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 임상 관찰에서도 한 달간의 간헐적 단식이 건선 환자의 PASI 점수를 유의하게 낮춘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글루텐 프리 식단: 셀리악병을 동반하거나 항글리아딘 항체(antigliadin antibodies)에 양성 반응을 보이는 건선 환자의 경우, 글루텐 프리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건선 중증도 감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건선은 평생에 걸쳐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며 삶의 질을 위협합니다. 전신의 면역 균형을 다스리고 피부의 과도한 염증 반응을 진정시키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올바른 식이 관리를 병행한다면, 붉은 반점과 각질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피부로 한걸음 더 다가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Prema SS, Shanmugamprema D. Systemic Psoriasis: From Molecular Mechanisms to Global Management Strategies. Clin Rev Allergy Immunol. 2025 Aug 7;68(1):79. doi: 10.1007/s12016-025-09089-4. 2.Leung A, Kranyak A, Marquez-Grap G, Bhutani T. Nutrition and Psoriasis: The Latest Evidence and How to Approach Nutrition in Clinical Practice. Am J Clin Dermatol. 2026 Jan;27(1):9-16. doi: 10.1007/s40257-025-00992-2. 3.Morrow S, Hawkins P, Griffiths CEM, Tektonidis TG, Harriss E, Scragg J, Jebb S. Impact of weight-loss interventions on psoriasis severity: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 Eur Acad Dermatol Venereol. 2026 Jun;40(6):980-993. doi: 10.1111/jdv.70247. 4.Armstrong AW, Nong Y, Merola JF. Systemic Pharmacological Treatments for Chronic Plaque Psoriasis. JAMA Dermatol. 2026 May 1;162(5):525-526. doi: 10.1001/jamadermatol.2026.0200. 5.Huang F, Zhang T, Li B, Wang S, Xu C, Huang C, Lin D. NMR-based metabolomic analysis for the effects of moxibustion on imiquimod-induced psoriatic mice. J Ethnopharmacol. 2023 Jan 10;300:115626. doi: 10.1016/j.jep.2022.115626. 6.Liu H, Chen Y, Xu S, Chen H, Qiu F, Liang CL, Mo X, Liu J, Lu C, Dai Z. Electroacupuncture and methotrexate cooperate to ameliorate psoriasiform skin inflammation by regulating the immune balance of Th17/Treg. Int Immunopharmacol. 2024 Oct 25;140:112702. doi: 10.1016/j.intimp.2024.112702. 7.Gamus D, Shoenfeld Y. Acupuncture therapy in autoimmune diseases: A narrative review. Autoimmun Rev. 2025 Jan 31;24(2):103709. doi: 10.1016/j.autrev.2024.103709. 8.Jo HG, Seo J, Jang B, Kim Y, Kim H, Baek E, Park SY, Lee D. Integrating network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validation to advance psoriasis treatment: Multi-target mechanistic elucidation of medicinal herbs and natural compounds. Autoimmun Rev. 2025 Jul 31;24(8):103836. doi: 10.1016/j.autrev.2025.103836. 9.Feng W, Liu H, Liang CL, Huang H, Chen Y, Dai Z. Immunoregulatory effect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nd its ingredients on psoriasis. Int Immunopharmacol. 2025 Jun 26;159:114896. doi: 10.1016/j.intimp.2025.114896.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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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대학 간판을 떨쳐낸 SK하이닉스, 그럼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나?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시대를 지배할 인류의 생존 조건으로 아주 독특한 “3대 근육”을 제시했다. 그것은 헬스장의 바벨을 들라는 게 아니라, 미래 인재가 반드시 탑재해야 할 “세 가지 정신 근육”이다. 첫째, ‘생각 근육’으로 AI에게 제대로 질문하고 답을 융합하는 비판적 사고력이다. 둘째, ‘적응 근육’으로 기술 격변의 파도 속에서 빛의 속도로 변신하는 유연성이다. 셋째, ‘공감 근육’으로 기술에 인간성을 불어넣고 타인과 연대하는 소통 능력이다. 이 발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AI 반도체의 심장인 SK하이닉스가 전격적인 행동에 나서 신입사원 채용에서 수십 년간 당연시되던 ‘4년제 학사 학위 이상’이라는 학력 제한을 전면 폐지했다. 즉, 고졸이든 대학 중퇴든 상관없이, 최 회장이 말한 3대 근육만 짱짱하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한민국 최고의 일터로 채용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그동안 말로만 “학벌 철폐”를 외치던 사회에 던진 거대한 폭탄이자, 대학 간판만 믿고 안주하던 교육계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친 유쾌한 인간 승리 선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까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30년 전 삼성 그룹은 이미 학벌 철폐의 선도자로서 발걸음을 떼었고 공공기관에서도 이력서에 출신 학교를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또 다른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즉, 이력서에서 간판을 지웠더니, 제한된 시간 내에 눈에 띄는 ‘말만 번지르르한 지원자’나 ‘고액 사교육으로 떡칠된 외부 스펙자’가 합격하는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밤낮 코피 쏟아 명문대에 간 학생들은 “내 학창 시절의 성실함을 증명할 기회조차 빼앗겼다”며 역차별을 호소했고, 일부 기관에서는 주관적 평가 개입으로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하이닉스의 이번 결단이 본격적인 ‘학벌 철폐’와 ‘인재 혁명’으로 이어지려면, 이제 학교 교육의 판 자체를 새로 짜는 획기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첫째, ‘생각 근육’ 단련을 위해 오픈 AI ‘피신(Piscine)’ 프로젝트의 운영이다. 프랑스의 혁신적인 IT 교육기관인 ‘에꼴 42(Ecole 42)’에는 교수도, 교재도, 주입식 시험도 없다. 오직 동료들과 한 달간 맨땅에 헤딩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피신(Piscine, 수영장)’이라는 서바이벌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의 진짜 역량을 길러내고 있다. 우리의 학교 평가 기준도 ‘암기한 정답’이 아니라, AI에게 어떤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힌트를 얻고, 이를 어떻게 자신만의 논리로 융합하는가의 과정이어야 한다. 둘째, ‘적응 근육’ 단련을 위해 ‘학년 팝업(Pop-up :경계 파괴)’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 오토매틱(Automattic)은 채용 전, 지원자들에게 몇 주간 실제 직무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맡겨 이들이 새로운 툴과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지를 검증한다고 한다. 교육도 이 방식을 적용해 아침에는 로봇 공학 프로젝트를 하다가, 오후에는 기후변화 뮤지컬을 제작하는 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학년의 경계를 넘어 매번 바뀌는 동료와 낯선 과제 속에서 뒹굴어봐야, 어떤 위기가 와도 카멜레온처럼 ‘적응 근육’이 생긴다는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셋째, ‘공감 근육’ 단련을 위해서 ‘동료 평가(Peer Review)’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는 인재를 뽑을 때 아무리 천재라도 독불장군이거나 팀워크를 해치는 자는 가차 없이 탈락시킨다고 한다. 철저히 동료들의 다면 평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 성적표에서 교사의 주관적 평점이나 줄 세우기식 등급을 지워야 한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서로의 협업 태도와 인성을 평가하는 동료 평가 시스템을 공교육 성적의 핵심 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청(소)년들이 스펙 성형외과를 찾아다니며 자소서에 넣을 형식적인 위장 줄글을 만드느라 청춘을 낭비하는 대신, 매일 아침 자신만의 ‘생각과 적응, 그리고 공감’을 키울 아령을 들어 올리는 학교, SK하이닉스가 던진 학벌 철폐의 공을 받아 안는 학교로의 구습 타파 ‘인재 양성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작년 고1 학생 1만 명이 넘게 자퇴한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의 책가방 속에 스트레스 유발의 시험지만 잔뜩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대신 ‘미래를 살아갈 단단한 근육’ 즉, ‘삶의 힘’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환할 때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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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봉선화 물들이기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봉선화 물들이기 구순 앞둔 아버지, 옥상 봉선화를 따 말려 절구에 정성스레 찐다. 이순 앞둔 딸, 손가락과 발가락에 꽃을 올리고 어머니는 실로 살며시 묶는다. 딸의 고운 모습에 모녀는 함께 웃는다. 붉은 꽃비처럼 사랑이 번져간다. 노을빛 속, 시간은 살짝 눈길을 보낼 뿐 지금, 이 순간,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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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육의 ‘정치적 면역계’를 구축하자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 제도를 뜯어고치고, 교육 거버넌스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와 기구를 신설하는 등 주로 ‘제도적 외과 수술’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아무리 법률을 바꾸고 구조를 개편해도, 적대적 거대 양당 정치라는 강력한 구조는 교실이라는 공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선거철만 되면 교육 현장은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가장 자극적인 실험실로 전락하곤 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가 교육을 지배하는 이 고질적인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외과적 수술을 넘어, 교육 현장 스스로가 정치적 외풍을 이겨내는 자체적인 ‘면역계(Immune System)’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제도나 정치인의 선의(善意)에 기대는 독립이 아니라, 교실 내부의 체질을 바꾸어 정치가 감히 침투할 수 없도록 만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 할 것이다. 과거 우리가 거시적인 제도 개혁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이, 정작 교육의 미시적 생태계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왔다. ‘교육 현장의 정책 수용도’ 연구에 따르면, 상향식(Top-down)으로 하달되는 정치권발 교육 정책이 학교 현장에 안착하는 비율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교사들의 교육과정 편성 자율권을 침해하여 공교육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OECD 교육 지표에서도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확보된 국가일수록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일관된 교육 성과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정치가 교육을 흔들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교실이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단기적 성과 위주의 공약들은 학교를 장기적인 안목이 실종된 ‘피로 사회’로 만들 뿐이다. 이에 우리는 제도적 독립을 넘어, 정치의 논리가 교실 문턱에서 스스로 차단되도록 만드는 획기적인 실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과정의 ‘블록체인(Blockchain)화’를 통한 정책 불변성 확보다. 중앙정부나 정치권이 교육과정을 손쉽게 주무르지 못하도록, 국가 교육의 핵심 뼈대를 분산형 시스템인 ‘블록체인’처럼 상호 검증 구조로 묶어야 한다. 지역 사회, 현장 교사, 학부모, 그리고 학계가 공동으로 승인한 교육의 핵심 가치와 장기 로드맵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단독으로 수정할 수 없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는 정치가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합의체만이 교육을 진화시킬 수 있는 안전한 ‘잠금장치’라 할 것이다. 둘째, 진영 논리를 파쇄하는 ‘메타-비판(Meta-Critical) 사고’의 훈련이다. 정치인들이 교육을 도구로 삼는 이유는 대중이 진영 논리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특정 정치적 이념을 가르치는 대신, “왜 저 정치인은 저런 주장을 할까?”, “저 공약 뒤에 숨은 이해관계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분석하는 ‘미디어 및 정치 리터러시’ 수업의 강화가 필요하다. 정치적 수사와 선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아이들 앞에서는, 어떤 정치인도 교육적 야합이 불가할 것이다. 이는 핀란드의 체계적인 ‘가짜 뉴스’ 판별 교육과 같은 맥락이다. 셋째, 세대의 서사로 이념의 독소를 녹이는 ‘격대(Gyeok-dae)교육’의 구조화이다. 정치적 이념은 대개 동시대의 갈등을 먹고 자라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역사적 경험은 갈등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이는 현대의 이념 대립으로 얼룩진 교과서 밖으로 나와, 아이들이 격동의 한국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조부모 세대의 서사를 직접 채록하고 아카이브로 구축하는 프로젝트라 할 것이다. 정치인의 외침이 아닌, 평범한 이웃이자 가족인 조부모 세대의 날 것 그대로의 삶의 궤적을 마주할 때, 아이들은 인위적으로 가공된 진영 논리를 초월해 연대감과 따뜻한 인성의 가치를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제 세계의 미래 교육의 도도한 흐름은 이미 정부 중심의 규제에서 벗어나, 학습자 스스로가 삶의 주체로 우뚝 서는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정치가 교육을 걱정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이제는 교육이 정치의 미성숙함을 걱정하고, 이를 치유할 인재를 길러내야 할 때다.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요요현상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교실 내부의 면역력을 키워 굳건한 교육의 자존감을 세워야 한다. 정치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깊고 단단한 사유의 숲을 아이들의 내면에 심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장 혁신적인 교육 자율성의 확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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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에필로그 - 길 위에 피어난 숨결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풀꽃은 한 번도 길을 만들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그저 뿌리를 내리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비가 오면 물을 마시고, 햇살이 오면 잎을 펼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 순순한 생이 모여 낯선 땅을 부드럽게 덮고, 발길이 닿는 자리를 잇는다. 길은 누군가의 계획이 아니라 풀꽃이 스스로 세상에 쓴 사소한 문장, 그 문장이 켜켜이 이어진 흔적이다.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애써 닦은 자취보다 한 줌의 숨, 한 방울의 기다림이 더 멀리 길을 연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작은 풀잎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건너는 다리가 된다. 나는 이 칼럼을 쓰며, 길은 결국 살아 있는 것의 향기로 남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넘어진 자리에서 새로 피어나는 풀처럼 우리의 실패도 다시 길이 된다. 멈춤과 고요가 빛을 잃을 때조차 보이지 않는 뿌리가 토양을 흔들며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이제 칼럼을 마치는 순간, 당신의 발밑에도 이름 없는 풀꽃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숨결이 당신을 부드럽게 밀어 또 하나의 길을, 또 하나의 삶을 피워낼 것이다. 바람이 그 길을 따라 불고, 햇살이 그 길 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모두 풀꽃처럼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상을 피워낼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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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에필로그 - 길 위에 피어난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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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경계를 넘어, 세계를 품는 교육을 위하여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단지 한 나라의 정치 슬로건을 넘어서, 글로벌 질서 전반에 거센 파장을 몰고 왔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동맹보다 보호무역과 자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는, 국제사회가 오랜 시간 쌓아온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뒤흔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민족주의와 고립주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고, 그 여파는 한국의 미래세대 교육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한국의 아이들에게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로 ‘경계를 넘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다. 이는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는 인재가 아니라, 타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세계 문제에 공감하는 시민을 키우는 교육을 말한다. 이는 이념의 대립을 넘어선 인류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는 길이며, 대한민국이 작지만 강한 나라로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길이기도 하다. 핀란드의 교육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핀란드의 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 공감 수업’이 일상이다. 아이들은 세계 각국의 문화를 배우고, 난민과 이주민의 삶을 체험하는 롤플레잉 활동을 통해 차이를 이해하는 법을 익힌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와 ‘그들’을 나누기보다, ‘우리 안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감수성은 나중에 국가 경쟁력으로 살아나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는 국제 분쟁 해결과 평화중재 분야에서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희망의 씨앗은 많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지구시민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기후변화, 난민 문제, 불평등 이슈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활동을 한다. 그중 한 학생은 아프리카 난민 캠프에 깨끗한 물을 보내는 캠페인을 자발적으로 기획해, 전교생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교육의 힘이 아이를, 아이의 힘이 공동체를 바꾼 것이다. 이제는 고질적인 대학입시 중심의 ‘경쟁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즉, ‘내 새끼 지상주의’ 교육관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런 시야로는 글로벌 리더를 길러낼 수 없다. 오히려 협력과 공존을 배워야 할 시기에 ‘비교’와 ‘서열’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배우게 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미래의 위기를 함께 해결하기보다 회피하거나 방관하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할 것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취약한 생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전 세계가 함께 협력하지 않고는 그 어떤 백신도, 경제 회복도 가능하지 않았다. 한국이 K-방역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공동체를 위한 시민의식과 배려, 그리고 과학 기반의 합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교육은 이제 ‘국경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의 한 전설적인 경영 구루(guru)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이 아닌, 세계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해결하려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진짜 세계시민 교육이다. 아이들이 단지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better) 곳으로 만들기 위한 세계시민이자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 교육이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역할이다. 미국이 ‘자국 우선’을 외칠수록, 우리는 ‘함께’를 외쳐야 한다. 거센 파도 앞에 작고 약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에 심는 ‘연대’와 ‘공감’의 씨앗은 결국 세계를 바꾸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가슴에는 인류애를 품고 눈은 국경을 넘어 저 멀리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는 교육, 이는 시대적 요구이자 우리가 진정한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이정표이자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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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경계를 넘어, 세계를 품는 교육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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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사유하는 인간을 위한 학교 교육의 길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 389쪽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출간한 『슈퍼인텔리전스』에서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초지능 컴퓨터의 위험을 알려주고 있다. 클립공장에서 초지능 컴퓨터 한 대를 구입하고 컴퓨터에게 클립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라는 간단한 업무를 지시한다. 그러자 컴퓨터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구를 정복하고 모든 인간을 죽이고 탐사대를 보내 다른 행성들까지 모조리 점령하더니 결국 그 어마어마한 자원을 사용해 은하계 전체를 클립공장으로 가득 채운다. 컴퓨터는 시킨 일을 정확히 수행했다. 컴퓨터의 문제는 사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없는 특별히 강력한 실행력을 가진 존재라는 데 있다. ‘이용자 참여를 극대화하라’는 목표를 설정한 유튜브는 분노와 정치적 편향을 부풀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짜뉴스로 블로거는 돈을 벌고 유튜브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각국에서 가짜뉴스에 기반을 둔 음모론과 극단적 주장이 세력을 확장하여 상대방을 근거 없이 공격했다. 교육이 경제 논리와 성과주의에만 종속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교육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기존 명제에서 벗어나면 교육은 인간을 도구화하게 된다. 한국 교육정책은 학생을 ‘사유하는 인간’이 아닌 ‘정답을 맞히는 기계’로 길러왔다. 정부의 혁신은 입시 제도 개편에 불과할 뿐이었다. 학생은 점수와 등급에 갇혀 있고 교사는 행정과 입시에 짓눌려 있다. 정답 찾기에 매몰된 한국의 교실에는 미래가 없다. 사유의 문을 닫고 정해진 답만으로 달리게 하는 교육은 시효가 다한 교육이다. 기계를 효율적으로 많이 만드는 것은 이제 로봇공장이나 컴퓨터 공장에서 하면 된다. 학교는 생각하는 인간을 키우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인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침묵을 강요하는 교실에서 사유는 자랄 수 없다. 질문하는 교실로 만들어야 한다.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모색하는 경험을 학생에게 많이 주어야 한다. 사유는 자유다. 사유는 창조의 근원이다. 답습이 아닌 새로운 길을 펼쳐가는 힘은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다. 사유는 창의적 미래를 열어가는 동력이다. 사유 없는 교육과 사유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사유 없는 교육은 사유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은 여론에 휘둘리고 정책 권력의 수동적 소비자가 될 뿐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창의와 혁신을 외치지만 사유 없는 창의는 공허하다. 질문을 억누르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교실은 그래서 사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정답 공장’이라는 교실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높은 시험점수로 일류대학에 진학시키는 교육이 아닌 성찰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사유하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학교 교육의 본분이다. 교실을 사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되돌려주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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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사유하는 인간을 위한 학교 교육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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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매미탈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매미탈 은행나무 밑둥에 가벼운 화석 하나, 탯줄처럼 남았다. 어두운 땅속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희망 품고 나온 몸. 고요한 번뇌 끝에 자신을 찾다가 스스로를 버렸다. 목소리까지 벗은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외롭지 않다. 햇빛도, 바람도, 새소리 머물다 간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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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매미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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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경계를 넘는 붉은 꽃 - 석산(상사화)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이 꽃은 그저 아름다움을 넘어, 깊은 의미와 전통을 지닌 존재로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꽃이 피면 잎이 없고, 잎이 돋으면 꽃이 없다. 석산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안고 핀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존재와 소멸이 한 몸에 깃들어 있다. 붉게 타오르는 꽃잎은 강렬하지만, 그 안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애틋함이 깃들어 있다. 하나로 이어질 수 없는 인연, 그러나 끊어질 수도 없는 존재. 석산은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다. 무덤가와 절벽, 길 끝자락에서 불길처럼 타오른다. 그 붉은 빛은 소멸을 노래하며, 동시에 부활을 속삭인다. 열매를 맺지 않는 꽃.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생명. 땅속 깊이 묻힌 알뿌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싹을 틔운다. 죽음 속에서도 끝나지 않는 순환이 있다. 석산은 단절을 상징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연결을 암시하는가? 무덤가에 피어난 붉은 꽃은 떠난 자와 남은 자가 함께 숨 쉬는 자리.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석산의 붉은 빛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석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별을 넘어서, 다시 피어날 준비가 되었는가? 슬픔이 삶을 멈추게 할 것인가,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될 것인가? 석산은 말없이 보여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생명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고. 무덤에서 자궁으로 뿌리내린다. 붉은 빛 속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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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경계를 넘는 붉은 꽃 - 석산(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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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반공일을 아시나요. 예전엔, 토요일 전날이면 괜히 기분 좋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그 반공일이 온공일이 되었지만, 설렘은 반으로 줄었지요. 이틀 쉬는 게 당연해진 탓이겠지요. 요즘은 주 4.5일 근무제도 슬며시 고개를 든다지요. 그 젊은 날, 바쁨 속에 숨어 있던 작은 행복 ㅡ 반공일이, 코시오스코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속에서 문득, 미소처럼 떠오릅니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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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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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작은 성공 경험’의 힘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공부를 어려워하는 요즘 학생들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자신감 부족이다. 많은 학생들이 ‘나는 공부를 못해’, ‘나는 머리가 나빠’, ‘나는 해도 안 돼’라는 말을 자주 말하는 것은 언뜻 단순한 푸념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반복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공부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가장 절실하다. 이를 위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작은 성공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게 해주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몇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작은 성공 경험을 쌓게 하는 방법들 첫째, 목표를 작게 나누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간고사 1등급 받기’, ‘전 과목 90점 이상’과 같은 크고 추상적인 목표를 세운다. 이는 아마 “목표는 클수록 좋다”는 말에서 온 오해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도달하기 어렵고, 실패했을 때 좌절감만 더 커진다. 따라서 교사나 부모, 혹은 학생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목표를 작고 구체적으로 쪼개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 수학 문제 5개만 정확히 풀기”, “영어 단어 10개 외우고 스스로 시험 보기”처럼 당장 실행 가능한 단위로 나누면 성취 경험이 생기고, 이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감정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즉각적인 피드백과 긍정적 강화가 필요하다. 작은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반드시 즉각적인 피드백과 긍정적인 강화가 필요하다. 이는 뇌가 성공을 학습하고, 더 큰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뇌 과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여기에는 “잘했어, 오늘 목표 달성했네.”, “이 문제는 너 혼자 힘으로 풀었잖아” 같은 짧은 칭찬 멘트가 아이의 내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이 성적이라는 외부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느끼는 데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나만의 공부 방식 찾기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공부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말하면서 외우는 것이 효과적이고, 누군가는 글로 써야 기억이 잘 된다. 누적된 실패 경험을 지닌 학생일수록 “나는 이런 식으로 해봤자 안 돼”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이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학습 루틴이 생기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자기 효능감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비교보다 자기 성장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감을 잃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타인과의 ‘비교’다. 특히 요즘은 SNS나 학교 내 성적 시스템 등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되며, 이로 인해 무기력감이 더 심해진다. 따라서 학부모나 교사는 학생이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스스로 성장을 인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에는 이 개념을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와 같은 피드백이 반복되면, 학생은 공부를 통해 발전하는 자신을 체감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상승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 심어주기 결국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대단히 거창하거나 복잡한 방법이 아니다. 핵심은 작은 성공의 반복, 긍정적인 피드백, 개인화된 학습 전략, 그리고 비교가 아닌 성장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학생의 마음속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장기적으로 학습에 대한 자발성과 의욕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 자기 주도 학습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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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작은 성공 경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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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폐쇄적 시험의 나라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배움의 나라로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지금의 입시제도 개선이 한국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첫 단추이다. 성장보다 족쇄가 되는 한국의 대학 입시 구조를 조만간 걷어치워야 한다. 점수 경쟁의 굴레를 끊고 과정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의 입시는 고쳐 쓰려고 하지 말고 폐기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은? [보기]에서 올바르게 고른 것은?’ 이런 질문을 6년 이상 받고 그런 시험 결과로 줄 세우는 교육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런 교육으로 미래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한국 중등학교 교육위기의 뿌리는 입시 중심 패러다임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모두가 입시 공룡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 패러다임은 매우 견고하다. 이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입시의 굴레를 끊고 성장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입시의 굴레를 끊어야 한국 교육이 산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 진학을 객관식 위주의 일회성 수능시험 점수에 맡기는 현재 구조가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 AI 기반 평가 시스템을 활용해 탐구 과정, 프로젝트 참여, 사회봉사 경험까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기록하여 공정성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가 직접 ‘공교육형 AI 학습 플랫폼’을 운영하여 무상으로 수준별 학습 콘텐츠를 활용하게 해야 한다. 고액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학습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열, 점수, 사교육의 삼중고를 넘어서야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이 있다. 뗏목은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한다. 대학 입시는 단일 시험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기반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에서 경험한 탐구, 프로젝트, 사회적 기여가 입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점수 경쟁이 아닌 성장의 가능성을 보는 교육 방식이어야 한다. 학벌의 사슬도 끊어야 한다. 입시 문제의 핵심에 ‘대학 서열’이 있다. 모든 교육과정이 그 목표에 종속된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학 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인재 선발 방식을 학벌이 아닌 방법으로 대신해야 한다. 사회도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역량 기반 채용을 확산시켜야 한다. 인재 선발은 프로젝트와 경험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정착시켜서 ‘어느 대학 출신인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살리는 길은 분명하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장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며,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용기다. 대학 서열 해체, 평가의 다원화, 공교육 강화, 사회적 채용 혁신. 이러한 혁신이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 잘못을 분명히 알면서도 혁신을 거부하는 사회는 미래를 포기하는 사회다. 입시 철폐가 공허한 구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것만이 미래 세대에게 ‘시험이 아닌 삶을 위한 교육’을 돌려줄 수 있는 길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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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폐쇄적 시험의 나라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배움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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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흔들리는 갈대, 부러지지 않는 삶 - 갈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고요함과 흔들림, 공허와 충만, 생각과 내려놓음 사이의 균형 속에서 성장과 기쁨을 찾을 수 있다.” 갈대는 흔들린다. 바람이 불면 휘어지고, 강물이 흐르면 몸을 맡긴다. 단단한 나무처럼 버티지 않고, 흔들림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갈대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 비밀은 속을 비운 데 있다. 텅 빈 줄기는 바람이 지나갈 길을 내주고, 강한 저항 대신 유연하게 흐름을 따른다. 버티려 하지 않지만, 쓰러지지도 않는다. 부러지는 것은 언제나 단단한 것들이다. 우리도 그렇다. 삶은 예상할 수 없는 바람과 같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고, 고민과 선택의 순간마다 방황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더 단단해진다. 흔들리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함이다. 바람이 거세도, 갈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고,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흔들려도 괜찮다. 흔들리면서 길을 찾고, 흔들리면서 강해진다. 갈대가 속삭인다. “흔들릴지라도, 사라지지 말라.”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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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문부엉이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문부엉이 우리 집 현관문엔 부엉이 한 마리 살고 있다. 자기 혼자는 울 수도 없는 새. 하지만 그 침묵은 영롱해 더 슬프다. 영겁의 연(緣)에 갇혀 하늘로 날 수는 없지만. 밤낮 뜬 눈으로 안으로 담금질하며, 조용히 먼 둥지 그려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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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변화에 춤추는 존재 - 뚝새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변화에 대처하려면 호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은 위험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다.” 뚝새풀은 논에서도, 밭에서도 자란다. 땅이 다르면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논에서 자라는 뚝새풀은 뿌리를 깊이 내려 안정을 찾고, 밭에서 자라는 뚝새풀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진다. 하나는 머물고, 하나는 떠난다. 머무르는 것이 안전할까? 떠나는 것이 더 강할까? 논형 뚝새풀은 같은 자리에서 자란다. 자가수분을 통해 유전자를 유지하며, 익숙한 환경에서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안정 속에서 성장하지만, 변화에는 취약하다. 변화의 바람이 불면, 그 강함은 오히려 약점이 된다. 반면, 밭형 뚝새풀은 바람을 타고 떠난다. 타가수분을 통해 다양성을 키우고, 새로운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한다.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유연한 존재가 결국 살아남는다. 삶도 그렇다. 익숙한 환경 속에서 머물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기회로 삼을 것인가?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전할지 모르지만 한계가 생긴다.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일 때, 더 넓은 가능성이 열린다. 뚝새풀은 묻는다. “당신은 논형인가, 밭형인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예상할 수 없는 흐름이 몰아친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단단함이 아닌 유연함, 익숙함이 아닌 도전.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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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니체가 교사에게 건네는 철학적 위로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너 자신이 되어라.” 이 단순하고 짧은 말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 불리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가장 울림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는, 바로 지금 교실에 앉아 있는 중고등학생들이고, 그 메시지를 가장 먼저 건네야 할 사람은 교사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교사는 어린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인성)지도 등 교육에 책임지고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매일 수많은 아이들과 마주하는 교사에게는 때로는 지치고, 속상하고, 답답한 순간들이 찾아 온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집중하지 못할까,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할까, 왜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할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는 말한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존재’다.”라고 말이다. 학생들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것조차 두려운 나이다. 그들은 ‘정답’을 찾고 외우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혼란에 빠진다. 시험의 점수는 명확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니체는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너는 너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조각가다. 너는 아직, 되어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교사는 아이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변화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때로는 조용히 지켜봐 주고, 때로는 무너지려는 아이에게 “괜찮아,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니체는 인간의 본질을 ‘극복’이라 했다. “인간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다.” 이 말은 교사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때로는 이 아이가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이대로 어른이 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니체는 “한 사람의 가능성은 그가 지금 어떤 모습이냐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는 누군가는 상처를 품고 있고, 누군가는 깊은 불안을 껴안고 있으며, 누군가는 어른에게 실망한 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그런 아이들은 쉽게 분노하고, 무기력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은 하나의 외침이다. “선생님, 저는 아직 저를 잘 모르겠어요. 저도 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겠어요.” 니체는 또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교사들에게도 적용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규율을 지키고 수업을 하다보면, 때로는 ‘통제’가 ‘이해’보다 앞설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억누르고 틀 안에 가두려 할수록,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니체는 “아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교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배운다는 것이다. 학생이 자기 자신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한 사람의 어른, 즉 교사가 그를 믿어줘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삶을 견디게 만드는 힘은, 그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 현실은 많은 아이들이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그들에게 교사는 ‘나를 믿어준 단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교사는 교사라는 존재로서 충분히 의미 있고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작게, 조용히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성적표나 태도점수로는 보이지 않지만, 한 번의 눈빛과 한마디 말로 시작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지금 이순간도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행동을 한다면 이는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성장통을 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아이는 아직, 되어가는 중이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역시, 교사로서 계속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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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니체가 교사에게 건네는 철학적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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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사람은 병 없이 살 수 없다. 감기처럼 스쳐 가고, 암처럼 삶을 뒤흔들며 불쑥 찾아오는 가족처럼 곁에 있다. 몸이 멀쩡해도 마음은 주저앉고, 겉은 웃고 있어도 속은 텅 비어간다. 병은 염색처럼 감추지 말고, 반려처럼 조용히 안아야 한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서로를 알아가는 일ㅡ 그것이 병과 함께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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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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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특별한 사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어 이런 말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외신들은 '아무것도 아닌'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외신은 각각 '하찮은(insignificant)', '보잘것없는(a nobody)', '중요하지 않은(no importance)' 등으로 번역했다. 사전에서 ‘아무것’이 ‘아니다’를 만나면 ‘특별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아무것’이 ‘특별한 것’이란 뜻을 갖게 된 건 ‘아무것도 아니다’를 ‘별것 아니다’로 바꿔 쓸 수 있고, ‘별것’이 특별한 것이란 뜻이니 ‘아무것이 아니다’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뜻이 된다. 일상적으로는 자신이 스스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오’라고 말하면 그 말은 자신의 겸손함을 표현하는 어법이다.‘ (한겨레신문’, 8월 7일자, ‘말글살이’ 참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 공신은 ‘보통 사람 노태우입니다’라는 선거 문구였다.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김대중, 김영삼 후보와 경쟁하면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워 당선되었다. '보통 사람 노태우' 이미지가 당시의 국민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태우 대통령도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일반사람은 보통 사람이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보다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어 한다. 사교육. 5세 고시. 의대에 미친 교육, 우수반 편성은 특별한 대우에 대한 욕망이다. 영재교육, 국제학교, 특별한 학교를 좋아하는 학부모의 심리도 그런 욕망의 표현이다. 공직자의 기관장에 대한 자리다툼도 특별함에 대한 욕망이다. 특별대우에 대한 욕망은 경쟁, 차별, 열등감, 갈등을 만들었다. 빗나간 자식 사랑 경쟁은 모두를 지옥으로 내몰았다. 교육과 예술 분야는 ‘욕망의 부재’가 ‘진정한 특별함’을 만든다. ‘얀테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10가지 규칙이 있지만 요약하면 '당신 스스로 남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특별하다 생각하지 마라.'라고 한다. 이 법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평등사회와 복지 선진국으로 이끈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얀테의 법칙에 따르면 왕족조차 '높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정말로 왕족조차 권위를 드러내기보다는 소탈해지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대동소이하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다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먹고 화장실에 가고 비슷한 내장과 뇌와 손발을 가지고 있다. 다만 좀 키가 크거나 암기를 잘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할 뿐이다. 사자와 개미, 전나무와 채송화처럼 아주 다른 종이 아니다. 선생은 학생이 진정으로 타인과 공감을 이루고 겸손함으로 세상을 살게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와 학생이 ‘특별함에 대한 욕망’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계와 가정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학생은 없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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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상을 뚫다 - 방동사니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힘의 원천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진정한 힘이란 외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방동사니는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잡초라 부르며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거친 아스팔트를 뚫고 솟아나는 강한 생명이다. 누구도 보살피지 않지만, 스스로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모으며, 어느 순간 세상의 틈을 뚫고 얼굴을 내민다. 그 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방동사니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깊이 내린다. 단단한 돌 틈 사이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버틴다. 제초제가 뿌려지고, 수없이 밟혀도 다시 살아난다. 장애물이 클수록 뿌리는 더욱 깊어지고,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만든다. 우리도 그렇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노력이 가장 강한 힘을 만든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서 단단하게 쌓인 힘이 어려운 순간을 뚫고 나올 수 있게 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한 자만이 끝내 길을 연다. 방동사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다시 살아나며, 그 존재를 증명한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고,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키운다면 어떤 어려움도 뚫고 나아갈 수 있다. 방동사니가 묻는다. “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힘을 키우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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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자식이 있어도 제 살기 바빠 안부조차 잊는 세상. 결혼을 해도 아이 키울 엄두 없어 자식조차 낳지 않는 현실. 후진과 개발, 선진이 뒤엉킨 세대, 풍요와 편리함은 더 깊은 고독을 잉태했다. 이제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시대. 자식도 찾지 않는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는 반려인가, 부모 되기를 포기한 무자식 상팔자의 반려인가. 반려동물의 눈을 바라본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문득, 나도 누군가의 반려인간이면 좋겠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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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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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사고와 공립고, 진정한 교육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은 오랫동안 ‘입시 중심’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 특목고의 기능을 대표하는 유형))와 공립고(일반고의 대표적 유형)다. 자사고는 “자율”이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했지만, 실상은 경쟁 위주의 교육을 심화시키는 제도로 전락했고, 공립고는 형식적인 평등에 갇혀 교육의 질적 다양성을 놓치고 있다. 이 두 제도가 과연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과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자사고의 존재 이유를 보자. 그것은 한마디로 다양성과 자율성에 있다. 학교마다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해 학생의 개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겠다는 것이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상당수 자사고는 명문대 진학률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입시 사관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방의 한 자사고는 2024년도 약대 및 의학계열(의⋅치⋅한⋅수)의 진학률이 졸업생의 40~50%에 이르렀다. 가히 ‘의대 사관학교’인 셈이다. 이런 성향으로 보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 할 것이다. 서울 강남의 일부 자사고는 내신(수시전형)보다 수능(정시전형)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단편적인 총평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공교육의 정상적인 흐름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는 점이다.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고착화시키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는 교육 기회의 불균형을 초래하며, 가정의 경제력이 곧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이른바 ‘부의 세습’을 부추기는 불공정한 환경을 조장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전국적으로 일반화 되어가는 경향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공립고는 제도적으로 평등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거주지 학군 내 무작위 배정을 통해 진학하며 교육의 형평성과 접근성 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공통 교과 위주의 교육은 평균적인 학생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뛰어난 학생이나 특별한 관심사를 가진 학생에게는 도전이나 자극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교사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학교 자체도 혁신적 시도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한다. 그 결과, 공립고는 때때로 ‘관리형 교육’에 머무르며 학생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자사고와 공립고 모두 교육의 본질에서 어긋난 점이 드러나고 있다. 부연하자면 자사고는 지나친 경쟁과 서열화로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공립고는 제도적 평등에 안주한 채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과 성장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 양극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교 교육은 단순히 대학 진학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삶을 설계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시기여야 한다, 입시 실적이 아니라 교육의 질과 다양성, 그리고 학생의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학교 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고교체제 개편 논의는 입시 결과가 아닌 교육의 본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부는 자사고 폐지나 전환을 단순한 ‘형평성’ 차원이 아니라, 공교육 전반의 질적 향상과 연계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둘째, 공립고에도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확대해 각 학교가 지역 특성과 학생의 요구에 따라 특색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점차 확대하려는 자율형 공립고(자공고) 2.0 정책의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화해 교육의 주체로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자사고, 공립고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제 ‘어떤 학교가 더 좋은가’를 묻기보다는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성적이 아닌 삶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자사고든 공립고든, 그 학교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미래를 살아갈 민주시민의 자질과 역량을 길러주는 곳이라면, 비로소 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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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사고와 공립고, 진정한 교육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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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즐거운 인생을 위한 예술교육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사는 것이 즐거우신가요? 나이가 들수록 되도록 즐겁게 살고 싶다. 사는 것이 즐겁게 느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즐겁다는 것은 보람을 느끼거나 재미가 있거나 보상이 크거나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거나 성취감을 느낄 때일 것이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때는 지루하거나 실패하거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을 할 때이다. 사는 일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왕 사는 거라면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멋진 삶, 의미 있는 삶, 성공한 삶, 건강한 삶이 있지만 즐겁지 않다면 인생은 숙제일 뿐이다. 근대에 와서 쇠사슬에 묶여 강제 노역을 하는 전통적 노예는 없어졌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엇인가에 지배를 당하는 심리적 노예는 많다. 돈은 가장 강력한 족쇄이다. 보이지 않는 세련된 방식의 구속으로 지배를 당하는 현대인은 항상 일에 바쁘다. 돈, 건강, 의무, 성과에 매몰되어 살다보면 출구에는 커다란 허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일상을 장악하면서 인정 욕구에 예속되기도 한다. 인공지능마저 인간의 사고를 알고리즘으로 예속하려고 한다. 인간의 인정 욕구는 생리적 욕구가 아닌 심리적 욕망이다. 남에게 인정받는 일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통하여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이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자신의 진정성을 속이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재미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새로운 것이 재미를 준다. 여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 ‘여행’이 많은 것은 그런 이유이다. 배운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과 대면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하려면 예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 학교, 사회, 국가가 예술교육에 지금보다 더 노력, 시간,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쇼생크의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죄수들에게 들려오는 아리아는 예술의 마력을 보여준다. ‘앤디’라는 남자주인공이 간수를 화장실에 가두고 감옥 전체에 들려주는 음악은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나오는 이중창 ‘산들바람이 불고’라는 아리아이다. 공간은 여전히 교도소 마당이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곳은 마법처럼 아름다움이 오로라처럼 일어난다. 실수와 반성에서 내면의 성장이 있다. 전기밥솥에 물만 맞추어 부으면 밥이 간편하게 된다. 타지도 않고 질지도 않다. 실패가 없다. 이야기도 없고 성장도 없다. 밥을 태우거나 질게 하거나 되게 하거나 해야 웃음이 있고 반성이 있고 이야깃거리가 있다. 손으로 당기고 밀고, 입으로 불고, 손가락으로 힘들여 튕기고 여닫는 동작으로 소리가 나온다. 그 소리는 같은 듯 다르다. 그 다른 것을 느끼러 연주회장에 간다. 다른 것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인생을 즐기려면 예술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선진국이 왜 예술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는가를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점점 예술교육의 필요성이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학생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학교에서 예술과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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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즐거운 인생을 위한 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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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교육계에 몸담은 지난 40년 세월 동안 필자는 수없이 이 질문을 되뇌었다. 교사로, 교감으로, 그리고 교장으로 다양한 학교와 아이들을 만나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삶 속에서 찾고자 노력해 왔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특히 학교의 관리자가 되어 봉직했던 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 현장이 중요한 마무리이자 사고의 큰 전환점이 되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첫째, 좋은 교사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A학교에서 한 학생이 잦은 지각과 무기력한 태도로 교내 문제아로 낙인찍히곤 했다. 그 아이와의 쉽지 않은 대화를 통해 밝혀진 것은, 아침조차 거르며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힘겹게 상당한 거리의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필자는 담임교사와 함께 아침 간식을 제공하며 생활지도를 병행했고, 점차 그 학생은 자율적으로 교내활동에 참여하고 수업에도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을 통해 결과보다 과정을, 성적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교사의 시선, 그것이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째, 좋은 교사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B학교 재직 당시, ‘자기주도 학습 프로젝트’ 운영을 권장하고 관리하며 교실 구조를 바꾸는 공간 혁신을 통해 교육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기존의 일방향 수업 대신 학생 주도 토론과 탐구 과제를 중심에 둔 일명 프로젝트 수업(PBL)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답이 없으면 어떻게 공부하나요?”라는 학생들의 불안한 질문이 많았지만 필자는 선생님들도 답을 모를 수 있고, 따라서 교사-학생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교육이라고 학생들과의 진솔한 대화 시간을 이용해 설득해나갔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틀려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스스로 탐구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진짜 배움은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 발표를 통해 한 뼘씩 크게 성장한 사실이 놀라웠다. 셋째, 좋은 교사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C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학생회 학생들과 1:1 면담을 실시했던 일이 있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복도나 운동장, 또는 도서관에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즉시 말을 건넸다. “○○야, 오늘 하루 어땠어?”, “◇◇야,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어?”라는 짧은 질문에도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교감 선생님이 제 이름을 알아요.”라는 한 학생의 말에서 필자는 교육의 본질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진심 어린 관심은 지시보다 강력하고, 사랑은 어떤 교육 기술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재 필자는 교직을 떠났어도 여전히 우리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교육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사유하며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좋은 교사란 어떤 사람인가?”를 쓰면서 과거 필자 자신도 결코 완성된 교사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좋은 교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 아이들 앞에 진심으로 서려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실 어딘가에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교사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스스로 묻기를 바란다. 당신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교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말이다. 좋은 교사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AI)과 로봇,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질문하는 학생’에 중점을 두고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좋은 교사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 아이들의 실수나 과오를 너그럽게 수용하고 오히려 이를 격려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교육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사도를 걸으며 ‘교학상장’, ‘청출어람’ ‘솔선수범’의 교육사상과 철학을 실천하며 교사 본연의 길을 가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저절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앞선다. 좋은 교사는 결코 화려한 언변이나 계획된 꾸밈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선도하는 사람(First Mover)이 되어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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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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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이름을 넘어 피어나다 - 개여뀌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모두 이름에 담긴 의미보다,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정의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개여뀌, 이름부터 남루하다. ‘개’가 붙는 순간, 진짜가 아닌 가짜가 된다. 사람들은 이름만으로 그것을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이름이 본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전부라면, 그 속에 숨은 진짜 가치를 놓치게 된다. 개여뀌는 화려하지 않다. 진짜 꽃처럼 보이도록, 가짜 꽃봉오리를 단다. 겉모습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다.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자연의 지혜다. 우리도 그렇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흔들리지만, 이름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겉모습에 가려진 노력과 인내가 진짜 삶을 만든다. 개여뀌는 눈에 띄지 않아도 살아남는다. 가짜 꽃을 피우지만, 결국 진짜 꽃을 준비한다. 우리는 이름을 넘어야 한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의 본질로 살아가야 한다. 개여뀌가 묻는다. "네가 가진 이름이 아니라, 너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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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이름을 넘어 피어나다 - 개여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