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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재학의 교육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교육계에 몸담은 지난 40년 세월 동안 필자는 수없이 이 질문을 되뇌었다. 교사로, 교감으로, 그리고 교장으로 다양한 학교와 아이들을 만나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삶 속에서 찾고자 노력해 왔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특히 학교의 관리자가 되어 봉직했던 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 현장이 중요한 마무리이자 사고의 큰 전환점이 되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첫째, 좋은 교사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A학교에서 한 학생이 잦은 지각과 무기력한 태도로 교내 문제아로 낙인찍히곤 했다. 그 아이와의 쉽지 않은 대화를 통해 밝혀진 것은, 아침조차 거르며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힘겹게 상당한 거리의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필자는 담임교사와 함께 아침 간식을 제공하며 생활지도를 병행했고, 점차 그 학생은 자율적으로 교내활동에 참여하고 수업에도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을 통해 결과보다 과정을, 성적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교사의 시선, 그것이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째, 좋은 교사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B학교 재직 당시, ‘자기주도 학습 프로젝트’ 운영을 권장하고 관리하며 교실 구조를 바꾸는 공간 혁신을 통해 교육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기존의 일방향 수업 대신 학생 주도 토론과 탐구 과제를 중심에 둔 일명 프로젝트 수업(PBL)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답이 없으면 어떻게 공부하나요?”라는 학생들의 불안한 질문이 많았지만 필자는 선생님들도 답을 모를 수 있고, 따라서 교사-학생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교육이라고 학생들과의 진솔한 대화 시간을 이용해 설득해나갔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틀려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스스로 탐구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진짜 배움은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 발표를 통해 한 뼘씩 크게 성장한 사실이 놀라웠다. 셋째, 좋은 교사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C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학생회 학생들과 1:1 면담을 실시했던 일이 있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복도나 운동장, 또는 도서관에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즉시 말을 건넸다. “○○야, 오늘 하루 어땠어?”, “◇◇야,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어?”라는 짧은 질문에도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교감 선생님이 제 이름을 알아요.”라는 한 학생의 말에서 필자는 교육의 본질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진심 어린 관심은 지시보다 강력하고, 사랑은 어떤 교육 기술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재 필자는 교직을 떠났어도 여전히 우리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교육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사유하며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좋은 교사란 어떤 사람인가?”를 쓰면서 과거 필자 자신도 결코 완성된 교사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좋은 교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 아이들 앞에 진심으로 서려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실 어딘가에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교사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스스로 묻기를 바란다. 당신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교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말이다. 좋은 교사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AI)과 로봇,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질문하는 학생’에 중점을 두고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좋은 교사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 아이들의 실수나 과오를 너그럽게 수용하고 오히려 이를 격려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교육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사도를 걸으며 ‘교학상장’, ‘청출어람’ ‘솔선수범’의 교육사상과 철학을 실천하며 교사 본연의 길을 가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저절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앞선다. 좋은 교사는 결코 화려한 언변이나 계획된 꾸밈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선도하는 사람(First Mover)이 되어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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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01
  • [풀꽃 산책] 이름을 넘어 피어나다 - 개여뀌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모두 이름에 담긴 의미보다,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정의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개여뀌, 이름부터 남루하다. ‘개’가 붙는 순간, 진짜가 아닌 가짜가 된다. 사람들은 이름만으로 그것을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이름이 본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전부라면, 그 속에 숨은 진짜 가치를 놓치게 된다. 개여뀌는 화려하지 않다. 진짜 꽃처럼 보이도록, 가짜 꽃봉오리를 단다. 겉모습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다.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자연의 지혜다. 우리도 그렇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흔들리지만, 이름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겉모습에 가려진 노력과 인내가 진짜 삶을 만든다. 개여뀌는 눈에 띄지 않아도 살아남는다. 가짜 꽃을 피우지만, 결국 진짜 꽃을 준비한다. 우리는 이름을 넘어야 한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의 본질로 살아가야 한다. 개여뀌가 묻는다. "네가 가진 이름이 아니라, 너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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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31
  • [김홍제의 목요칼럼]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존중의 아름다운 말하기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대낮에 시각장애인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서로 몸을 부딪쳤다. 한 사람이 말했다. “아니 이 사람아, 두 눈 똑바로 뜨고 다니지 못해?” 그러자 다른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말한다. “보면 모르냐?”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대하여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고 대응한다. 직장에서 가장 힘든 업무는 자기가 맡은 일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만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정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힘든 상황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힘들면 상대방에게 소리를 쳐도 괜찮고 무례를 범해도 된다는 태도와 논리가 사회에 만연하다. 실제로는 상대방도 더 힘든 상황에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거친 말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힘드니 상대방이 양보해야 한다고 한다. 악성 민원도 이런 태도에서 나온다. ‘내로남불’도 자기중심적 이중잣대의 공격언어이다. 공정한 ‘역지사지’의 태도가 아쉽다. 어릴 때 읽은 동화 내용이 가끔 떠 오른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금은보화가 나오는 아가씨와 징그러운 파충류가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아가씨 이야기이다. 불쌍한 노파를 도와준 아가씨는 말할 때마다 입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온다. 이를 부러워 한 다른 아가씨가 우물에 갔지만 노파를 도와주지 않고 비난만 하고 집에 오자 온갖 징그러운 생물들이 말할 때마다 입에서 마구 나왔다. 살아가면서 이 단순한 이야기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하루종일 어떤 말을 하며 하루를 지냈는가를 반성한다. 내가 힘들다고 느낄 때면 상대방의 요구에 거친 말이 나오게 된다. 내 힘겨움을 알아주지 못하는 마음에 서운한 말을 하기도 한다. ‘혀 밑에 도끼가 들었다’는 속담도 있고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상대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말이 더 소중하다. 부부와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존중의 아름다운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언어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언어는 관계를 이어 나가는 주요 수단이다. 존중받는 존재로 살고 싶은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따스한 말로 하루를 시작하자. 사는 것이 힘들지만 아름다운 말은 어둡고 힘든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주는 한 줄기 빛이 된다. 세상살이가 각박하고 힘들어도 선생님은 말을 곱게 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때로는 학생이나 학생 부모에 대한 비난 한마디가 평생 가슴에 남기도 한다. 교사는 매일 학생에게 많은 말을 해야 하는 존재이다. 교사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징그러운 뱀인가 아름다운 보석인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교실에 뱀을 한가득 풀어놓은 교사가 되지 말자. 학생에게 삶에 도움이 되는 보석보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말을 하자. 말은 관계 회복의 열쇠가 되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키워주기도 한다. 아름다운 말은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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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4
  • [전재학의 교육칼럼] 왜 학교는 학생들의 운동량을 높여야 하는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국내 언론들은 청소년들의 신체활동 실천율 즉, 운동량이 ‘세계 꼴찌’ 수준임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로는 “학원 다니기 힘들고 운동할 곳이 없다”라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운동량은 중학생일 경우 22%, 고등학생이 되면 13%로 급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에 학교와 교육 당국은 건강상의 이유는 물론 학습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도 학생들의 운동량 확보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다양한 측면에서 강화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국내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중학생 A양(15)은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해 체육 시간을 꺼린다. 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녀 하루 10분 남짓 걷는다. 주말에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느라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녀는 “주변에 마땅히 운동할 공간도 부족하고, 학원만 다녀와도 힘들어서 운동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뿐이랴. 매일 한 번에 최소 10분 이상을 걸었다는 여학생 비율은 겨우 절반을 넘는다. 이는 외국의 또래에 비하면 운동 부족 현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최근 질병관리청의 ‘2025년 국민건강 통계 플러스’ 보고서에 의하면 학생들의 운동량(하루 60분, 주 5회 이상)은 중학생 21.5%, 고등학생 12.9%로 밝혀졌다. 이는 입시부담이 커질수록 운동에 소홀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국가별 비교로 보면 2023년 한국 고교생은 13.4%로 미국 고교생의 46.3%보다 월등히 낮았다. 특히 한국의 여고생은 6.6%로 미국 여고생의 36.0%에 비해 1/5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분석 결과에서도 한국의 청소년은 운동 부족 상태가 94.2%인 반면에 세계 평균은 81%, 미국 72%, 싱가포르 76.3%와 비교해서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거 70년대 우리의 상당수 전통 명문교의 지덕체 교육활동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학교는 정규 체육 교과 수업과는 별도로 교육의 특성화에 나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1인 1운동을 적극 실행하였다. 이는 1인 1악기 교육과 함께 소위 ○○학교하면 태권도, 유도, 검도, 기타, 하모니카 등으로 학교의 이미지가 자동 연계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과는 다른 교육과정운영으로 가능했지만 여기엔 학교장과 교사들의 교육철학과 고유한 학교문화 즉, 전통 만들기에 열정과 사명감이 함께 하면 현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는 어찌 보면 여건이 과거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라 할 수도 있다. 왜냐면 잘 나가는 K팝처럼 K댄스로 학생들의 건강과 운동량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콘텐츠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K댄스를 전교생을 대상으로 주 2~3회 10~30분씩 운영한다면 이 또한 긍정적인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이랴. 요즘 건강상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는 ‘맨발 걷기’도 학교 운동장을 활용하면 학생들의 관심과 성과를 거둘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춤과 노래에 익숙한 신세대들이 학교에서 장려하는 (맨발)걷기 운동까지 함께 한다면 우리 청소년들에게 보다 건강을 위한 운동량 확보에 최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는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서도 실행 의지만 갖는다면 비용이 들지 않고도 걷기 운동을 생활화할 수 있다. 매일 10분 이상 걷는 청소년은 주 5일 미만 걸을 때보다 운동량이 3배가량 높았고 학교 체육 수업에서도 주 3회 이상 직접 운동하는 학생은 전혀 운동하지 않는 학생보다 약 2.5배 높은 연구 결과도 확증할 것이다. 이는 최근 경고음을 내는 학생들의 비만율과 스트레스 인지율을 낮추는 효과에도 탁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학생들의 운동이 생활화되도록 적극 실천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학생들의 ‘학교 선택 선호도’와 학부모의 ‘학교 참여’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학교 차원에서 학교장의 철학과 교사들의 협조와 추진력만 있으면 ‘학교 재량 시간’을 활용해 교육과정에 적용할 수 있다. 이밖에 학생들의 운동량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창의적인 방안은 학생의 성장⋅발전과 바람직한 학교문화 창조, 그리고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 및 행복지수 등 부가적인 측면과 궁극적으로는 학력향상에도 지속적인 플러스의 효과를 유발할 것으로 확신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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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8
  • [풀꽃 산책] 끊임없이 피어나는 꽃 - 참나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삶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모나 결과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노력과 인내에서 비롯된다.” 참나리는 쉽게 피지 않는다. 봄이 와도 성급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어둠 속에서 오래도록 견디며, 차가운 흙과 바람을 받아들이며 힘을 키운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그 안에서는 생명이 자라고 있다. 비바람이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참나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덩이뿌리는 뜯겨도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 난 자리에서 다시 싹을 틔우고, 꺾인 곳에서도 생명을 이어간다. 쉬운 길은 없다. 그러나 시련은 참나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참나리는 붉은 꽃을 연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단단하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찬란하다. 꽃은 아래를 향하고, 호랑나비는 애써 날갯짓해야 꿀을 얻는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참나리는 말없이, 그러나 강하게 삶의 진리를 보여준다. 쓰러졌는가? 그럼 다시 일어나라. 부서졌는가? 그렇다면 다시 피어나라. 참나리는 묻는다. “아픔이 있는가? 그렇다면 너는 더 강해질 것이다.” 상처는 끝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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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7
  • [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름다운 인연으로 가꾸는 멋진 직업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사람이 사는 일은 ‘인연’을 맺으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 국가, 친척, 친구, 학교, 선생님과 인연을 맺는다. 선택이 의지와 무관할 때 운명이라고 여긴다. 선진국에 태어난 아이도 있고 북한처럼 힘겨운 나라에 태어난 아이도 있다. 아직도 거리에서 사주팔자를 알려준다는 간판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어한다. 운명적 만남은 생애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정말 다양하다. 30년 동안 담임을 해도 항상 새로운 것이 학생이다. 하나하나가 다르다. 반응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다. 같은 이야기에도 반응이 다르다. 감동을 받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잔소리가 많다고 싫어하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에게서 보람을 얻기도 하고 실망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직업은 10년이면 숙달이 되어서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서 달인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30년이 넘게 교사를 한 사람이 학생 지도의 달인이라고 나온 일을 본 기억이 없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수십만 갈래의 바둑 수보다 복잡하다. 많은 교사가 힘들어하는 것은 사람의 깊이가 학생마다 달라서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물에 돌을 던져서 떨어지는 소리로 그 깊이를 짐작하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깊이를 가진 것이 인간 마음이라는 우물이다. 3월 2일 개학날. 담임 발표를 할 때 아이들은 한껏 긴장을 한다. 담임도 어떤 학생들과 한 해 동안 만날 것인가 긴장한다. 처음 담임 학급 출입문을 열 때의 마음은 외국의 거리로 처음 나설 때처럼 긴장과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설렘으로 만나서 일 년간을 그야말로 지지고 볶는 관계로 얽히고설키게 된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이 학교이고 교사이다. 자동차 바퀴를 다루기는 인간 마음을 다루기보다 쉽지만 수십 년이 지나서 바퀴가 나에게 연락을 하지는 않는다. 어렵지만 소중한 인연들은 시간이 지나 사제 간의 고민의 크기만큼 소중한 추억이 된다.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것은 사랑으로 상대를 변화시킨 인연이다. 오직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를 변화시키고 감동을 준다. 세상이 바뀌고 물질이 풍족해도 변함이 없는 것은 사랑이 부족한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그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다. 교사에게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과 열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교사가 아름다운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어서 학생이 든든한 거목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보람이다. 학생들은 어떤 교사가 사랑으로 가르쳤는가를 귀신처럼 알아낸다. 학생과의 인연은 매우 소중한 존재와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교사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면 학생을 무조건 사랑하자. 다만 사랑의 방법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학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내가 아닌 상대방이 바라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수많은 인연을 아름답게 만들며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직업은 그리 많지 않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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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0
  • [전재학의 교육칼럼]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진짜 교육’을 실현하려면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무엇이 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는 서로 다른 질문 같지만 사실은 그 이면은 거의 흡사한 질문이다. 왜냐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꿈꾸지만 여기에는 높은 지위에 올라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쳐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혹자는 사람은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그것이 행복을 가늠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무엇이 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확실한 보장이라고 믿는 성향이 강하다. 이처럼 출세와 성공지향의 목표와 방법을 철저히 숭배하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잘 되어야, 너도 있고 너를 도울 수 있다”는 권력자나 리더의 말에 쉽게 현혹돼 그에게 무조건적, 무사유적인 절대 맹종과 충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최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공모하여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민주주의에 크게 역행하고 위헌적, 비법치적 쿠데타를 도모하다 법의 냉엄한 심판을 받고 있는 자들이 방증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교육이 배출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뒤틀린 가치관과 사고, 리더십 부재의 전형적인 인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행태에 빠져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과도한 특혜를 누리는 자들이 남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려는 성향을 널리 용인해 왔다. 이는 소위 ‘배워서 남 주는’ 이타적인 인간이 아니라 ‘배워서 남위에 우뚝 서는’ 욕망의 인간으로 육성해온 우리 교육의 자업자득이다. 즉, 치열한 경쟁교육을 통해 각자도생을 추구해온 결과이다. 결국 우리의 학교와 교실에서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력과 연대로써 상생을 추구하여 이 사회와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이타적인 인간 양성의 ‘진짜 교육’이 결여된 반쪽짜리 인재들을 교육해 온 것이다. 문제는 우리 교육의 최고 수혜자인 엘리트들이 사회 곳곳에서 “내 사전에는 부끄러움은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어려서부터 야만적인 경쟁으로 남을 딛고 우뚝 서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교육 가치를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학교는 그런 경쟁보다 나눔과 배려, 칭찬과 격려, 연대와 협력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함께 잘 사는 진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은 곧 나의 경쟁자이자 타도해야 할 적이라는 의식을 완전 불식시켜야 한다. 지난 달 이 땅에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을 표방하는 새로운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섰다. 말 그대로 이제부터 모든 정부 기구와 조직체가 오직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한 초석은 바로 교육에서 시작된다. 새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의 권한을 키우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부의 기능은 축소하겠다는 취지의 선거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교육기관들을 통합해 실질적인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정책 의지도 내비쳤다. 이로써 우리는 비로소 국가의 장기적인 교육 비전을 비롯한 실용적인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디자인하고 집중적으로 실행해 나가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 교육은 진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걸 맞는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교육대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보다 표준화된 세계적 기준(Global Standard)에 다가서는 바람직한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 그것은 보다 강력한 민주시민이자 세계시민을 육성하는 교육과정으로의 집중적인 디자인과 실행에 달려있다. 여기에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전 세계로 도약하려는 교육에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이 필요할 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하듯이 새 정부는 21세기 디지털 대문명에 보다 적합한 새로운 교육으로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 과학기술의 적용은 물론, 다양한 인문학적 사상에 기초하는 인간존중사상(Humanism)을 심화하여 바람직한 인간을 육성하는 인재교육에 보다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사회와 세계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이타적인 인재들을 육성하는 ‘진짜 교육’으로 탈바꿈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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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4
  • [풀꽃 산책] 경쟁하지 않는 꽃 - 메꽃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경쟁은 불신을 낳고, 협력은 신뢰를 쌓는다. 각자의 색깔을 지닌 꽃들이 협력하여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다.” 나팔꽃이 아침을 노래할 때, 메꽃은 한낮의 태양 아래 조용히 피어난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따라 꽃을 연다. 부드러운 빛깔이지만, 그 뿌리는 깊고 질기다. 보이지 않아도 살아 있다. 겨울을 지나 땅속에서 숨을 고르고, 어느 날 다시 피어나는 생명. 침묵 속에서도 준비되고, 사라진 듯 보여도 사라지지 않는다. 경쟁 없이도 피어난다. 빛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메꽃은 말한다. “서로 다르게 피어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아름답다.” 누구나 자신만의 때가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피어날 권리가 있다. 메꽃처럼, 조용히, 그러나 깊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면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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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3
  • [김홍제의 목요칼럼] 미래 비전 보이지 않는 교육정책, 재건축이 필요한 교육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차로 출근하다가 놀라운 변화에 감탄했다. 옛집과 밭이 늘어서 있던 곳이었다. 출근길에 신도시 개발구역을 지나갔다. 새로운 아파트와 상가가 하나둘 들어서더니 풍경이 놀라보게 달라졌다. 하늘과 맞닿은 경계선만이 아니라 간판의 종류도 달라졌다. 운동시설과 상가, 병원, 공원, 산책로 등의 시설이 보였다. 앞으로 이 신도시에 오는 주민은 새로운 문화를 즐기게 될 것이다. 신도시 건축을 위해 설계와 기초공사, 공사 기간에 따른 얼마나 많은 인력과 노력이 있었을까 상상하게 된다. 새로운 신도시는 설계가 실천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다.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청사진을 가지고 노력하고 실천할 때 인생은 새로운 모습으로 괄목상대할 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미리 외국어를 배워서 해외 기관장을 하는 동료를 보거나 목표를 세워 꾸준히 글을 써서 책을 내는 후배를 볼 때 그런 생각을 한다. 명확한 목표와 꾸준한 실천이 눈부신 성과를 만드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과거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있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작하여 1996년까지 7차례의 5개년 계획을 끝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경제 성장 발전에 대한 목표를 달성했다. 오직 잘살아 보겠다는 명확한 청사진과 목표가 있었고 실천 방향을 하나하나 실천했다. 교육에서도 모두가 자식에게 고등교육을 마치게 하여 성공한 삶을 살게 하고자 했던 의지로 가득했다. 이 두 가지가 한국을 지금의 선진국 대열로 들어서게 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교육도 50년이 넘었다면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을 해야 한다. 세계 100개 우수대학교에 한국은 3개 대학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그나마 예년에 비해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 초중고의 학제 개편, 인문계 위주의 진학풍토 개선, 전문계 방면에 우수자원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의지가 분명하고 명확하게 교육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추상적인 미사여구로는 새시대 변화 파도에 적응할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섰어도 교육에 대한 비전과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 대선이 끝났다. 대선에서 교육에 대한 비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나 교권에 대한 법적 도움이 이 시대의 비전이 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불의 발견에 비견될 만큼 세상을 바꾸고 있다. 주변 강대국의 지도자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달리고 있다. 경제는 내수와 무역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앞으로 수출에 의지하던 한국경제는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은 다시 변곡점에 다다르고 있다. 위기이며 기회이다. 우리는 기회를 위기로 만들고 있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이 새도시에 대한 설계와 실천으로 멋지게 변한 곳이 있는가 하면 계획도 없이 사 두었던 공터들은 잡풀이 우거지고 흉물로 남아있다. 구체적 비전과 열정적 도전 없이 벽지만 교체하는 리모델링 수준의 교육정책이 계속된다면 이 위기의 시대에 한국은 황무지로 남을지 모른다. 제2의 교육 도약이 절실한 시기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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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26
  • [전재학의 교육칼럼] 세계를 매료시킨 K-콘텐츠와 창의성 교육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국인의 잠재력은 어디까지 일까? 최근 한국의 토종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미국 연극⋅뮤지컬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무려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엔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극본상, 연출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 등을 석권한 것이다. 토니상은 오스카상(영화), 에미상(TV), 그래미상(음악)과 함께 미 대중문화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우리에게 이제는 그래미상만 남았다. 이 또한 현재까지의 BTS, 블랙핑크 등 빌보드 차트를 휩쓰는 K-팝 그룹의 활동으로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머잖아 ‘그랜드 슬램’을 이룰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인의 창의성 저력은 그저 어쩌다 우연히 주어지는 상황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국산 기술과 자본으로 제작된 에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기록적인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미 오스카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을 뛰어넘는 실적이다. 이런 놀라운 성과는 잠재력이 뛰어난 한국인의 두뇌에서 충분히 입증이 되고 있다. 한국인은 오래 전부터 국민 평균지능지수(IQ)가 전 세계의 상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2024년 핀란드의 지능 테스트 기관 윅트콤(Wiqtcom)의 109개국 IQ 테스트 결과에서도 세계 평균 99.64를 훨씬 뛰어넘는 110.80으로 5위를 기록했다. 이번 토니상 수상은 2016년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시작된 토종 뮤지컬이 세계 뮤지컬계의 심장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 배경에는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격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들의 사랑 이야기인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평가단에서 “한국적인 기발함을 바탕으로 보편적 인간애를 녹여낸 수작”이란 호평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기발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평범함(일반성)을 뛰어넘은 일종의 창의성으로 한국인의 잠재력이 창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 교육은 2022 개정교육과정의 실현을 통해 방향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곧 상상력과 창의력 등 미래 역량의 계발에 의해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이미 ‘모방’에 있어서는 넘사벽의 세계적인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그 결과는 ‘한강의 기적’과 같은 산업화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그 모방에 또 다른 모방을 가미하는 창의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우리의 초중고 학교 교육은 ‘미래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학교마다 슬로건으로 내건지 오래다. 이제 전국의 중학교 이상 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창업(스타트업) 교육’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각종 참신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이용한 제품 개발 및 연구에 어린 학생들의 관심과 열정이 더해지고 있다. 산업인력공단과 청소년 창의성 관련 재단들이 후원하고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우수한 수능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을 접고 창업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고교생들이 등장하면서 창의성의 주역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 이들에 대한 지원과 창의력 배양은 새로운 교육의 물길로 방향을 전환할 때이다. 우리 교육은 앞으로 초중고 학생들의 창의력을 더욱 돋우기 위해 각종 ‘창의성 대회’를 개최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함은 물론 이를 적극적으로 키우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대학입학전형에도 창의성 관련 수시전형을 널리 확대하고 국가는 창의적인 기발한 아이디어를 계발한 청소년들에게는 적극 후원하는 제도를 공식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행 중고교의 창업 스쿨을 동아리나 방과후 활동 차원에서 정식 교과 과정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창업과 관련해 보다 많은 관심과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이스라엘이나 중국 등 모범적인 청년 창업 국가들을 보고 듣고 배우는 연수를 확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창의성 계발은 이제 국가의 미래가 달린 교육의 목표이자 국가 비전으로 온 나라가 나서 힘을 모아 크게 성장시켜야 할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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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21
  • [풀꽃 산책] 이름을 초월한 꽃 - 털별꽃아재비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이름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구속하고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털별꽃아재비는 늦가을, 찬바람 속에서도 피어난다.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묵묵히 살아간다. 사람들은 ‘쓰레기풀’이라 부르지만, 이름이 본질을 결정할 수는 없다. 이름 없이도 꽃은 피고, 계절이 바뀌어도 다시 살아난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대부분 이름이 불리는 순간 의미가 정해진다. 그러나 털별꽃아재비는 말한다. “나는 어떤 이름에도 갇히지 않는다.” 자연은 원래 이름이 없다. 우리는 이름으로 존재를 가두지만, 삶은 이름을 넘어선 곳에서 더 자유롭다.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털별꽃아재비처럼, 우리도 경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로 피어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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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20
  • [김홍제의 목요칼럼] 질문하기라는 시대적 과제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제주도에 있는 대정고등학교는 질문탐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은 구하지 않는다. 질문을 만들고 하고 듣는 과정에서 사색과 평가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질문은 질높은 사고의 과정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질문하기는 중요한 삶의 기술로 떠올랐다. 질문을 한다는 것이 우선 중요하고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서점에도 올바른 질문하기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질문 자체가 더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질문은 상대방의 능력을 끌어내는 유용한 능력이다.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애매한 지시를 하면 실무자는 엉뚱한 보고서를 올릴 수 있다. ‘예쁜 춘향이를 그리라’고 하면 자기가 생각하는 ‘예쁘다’는 기준에 따라 인물을 그리게 된다. ‘예쁘다’는 감정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크게 다르다. 사람마다 연상 내용은 당연히 다르다. 타인은 자신과 똑같은 개념으로 연상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에서 문제상황은 상대도 나를 전적으로 이해했다고 하는 환상을 가질 때이다. 챗GPT에 큰 기대를 하지만 애매한 질문으로 기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 실망만 얻을 뿐이다. 종처럼 때리는 힘이 클수록 소리도 큰 법이다. 질문은 능동적 삶의 수단이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의미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기 쉽다. 태어났기에 산다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삶에 대한 능동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삶은 변화가 본질이고 주체성은 능동성을 본질로 한다. 산업화 시대에 ‘왜’를 따지는 것은 불손한 것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어떻게 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것인가’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었다. 변화의 세상에서 주체성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듣기, 읽기 중심에서 말하기, 쓰기의 자기주도와 능동성이 필요하다. 참여와 능동성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비판적이고 건전한 의식을 만든다. 우리 교육이 바라는 미래의 모습은 지식을 받아먹는 콩나물키우기의 수동적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는 능동적 교육이 되어야 한다. 질문하기가 그래서 필요하다. 질문하는 학생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서, 토론, 도전이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질문이 없는 학교, 웃음이 없는 학교, 토의가 없는 학교, 지시와 통제만 있는 학교는 변화가 필요하다. 선풍기에서 에어컨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부채의 개선에 힘을 쏟는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교사는 이제 답을 말하는 존재에서 답을 찾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육은 내면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질문 없이 맹목적으로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동물들처럼 불행할 수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삶은 위험하고 허무하다. 질문이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 답을 찾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답은 컴퓨터가 찾아 줄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질문도 없다. 올바른 질문으로 주도성을 키워주는 교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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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19
  • [풀꽃 산책] 땅 위의 작은 별 - 별꽃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작은 존재에도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으며, 그 소박한 존재는 우리 삶을 밝히는 지혜와 강인함을 보여준다.” 별꽃은 땅 위의 별이다. 하늘에서 빛나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꽃잎은 다섯 개지만, 열 개처럼 보인다. 작지만, 스스로를 확장하며 살아간다. 별꽃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씨앗을 멀리 퍼뜨리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바람에 실려 떠나고,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린다. 우리는 종종 화려함만을 위대함이라 믿는다. 크고 웅장한 것만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별꽃은 말한다. “작고 소박한 것도 충분히 빛난다.” 진정한 가치는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화려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발길 아래에서도 별꽃은 조용히 빛을 낸다. 눈부신 조명이 없어도, 고개를 들어 바라볼 이가 없어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눈에 띄지 않아도, 조용히 빛을 내며 살아가는 것. 별꽃이 빛나는 이유는 하늘에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빛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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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6
  • [김홍제의 목요칼럼] 정서와 교감이 가득한 학교를 위하여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벽제 승화원에 다녀왔다. 형수가 졸지에 돌아가셨다. 장례지도사가 손가락 길이의 쇠막대 3개를 들어 보였다.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면서 몸속에 넣었던 쇠였다. 허리가 안 좋은 줄만 알았지 쇠막대의 존재는 몰랐다. 수분을 모두 말려버린 유골 가루 봉투는 작았다. 한약 한 첩 크기보다 약간 큰 크기였다. 자그마한 향나무 밑에 묻었다. 형수는 치매가 온 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었다. 요리 솜씨가 좋았던 형수는 우리 아들, 딸에게 돼지갈비와 곱창구이를 맛나게 손수 만들어 주셨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주민등록 사진을 확대했다는 영정사진은 왠지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 줌의 재와 뼛가루로 남는 실상을 목도하면 인생이 참으로 무상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형은 어깨를 들썩이며 미안하고 고맙다며 울었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는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살아 있을 때는 생명체이기에 욕심이 있고 자존감이 있기에 부딪치고 고집을 세운다. 갈등과 오해와 자존감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지는 삶. 그러다가 느닷없이 모든 것이 정지되어 돌아보면 그 많은 오해와 고집이 다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 정서가 부족하다. 매를 들어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교감이 있던 때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있다. 인권을 위한 촘촘한 규정이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매는 없어졌어도 그 자리에 악성 민원과 고소와 법과 처벌이 생겨났다. 학교를 졸업하면 스승도 제자도 없이 졸업장과 학교생활기록부만 남는다. 진정한 친구도 없고 추억도 없는 학교생활은 모든 물기(정서)가 사라진 유골 가루만 남게 되는 셈이다. 만남과 친함과 정서가 있는 학교와 교실이 정말 사람 사는 삶이다. 방식은 어떻게든 좋다. 관리자는 학교에 그런 정서적 공간과 정서적 시간과 정서교류의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며 남는 것이 졸업장만이 되면 안 된다. 얼마나 정서적인 교류를 친구와 교사와 나누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학교에 꽃을 심고 화단을 가꾸고 긴 벤치를 놓고 도서관을 카페처럼 꾸미고 곳곳에 도서대를 비치하고 대화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웃음과 반가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학교가 좋은 학교다. 동창회에서 2학년 기말고사 수학 점수를 논하는 친구는 없다. 같이 먹었던 라면, 진로를 고민하던 대화, 함께 다녔던 추억, 교사의 진정한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폭력, 폭언, 악담, 악행을 기억하기도 한다. 그것은 나무에 찍힌 도끼 자국이나 벽에 박힌 못처럼 삶에 오랜 기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십수 년이 지나서 유명인이 학창시절에 친구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학교폭력을 당한 친구의 고발 때문이다. 교도소처럼 형기를 마치는 학교가 아닌 즐거운 추억이 가득 한 학교. 훗날 동창회에서 아픈 기억보다 행복한 추억이 많은 학교를 만들어 주는 것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부탁드린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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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5
  • [전재학의 교육칼럼]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참교육이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는 시대를 앞서 갈만큼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인재들이 많았다. 그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온갖 역경과 고난의 시대를 살면서 후대에 전하는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의 뒤편에서 당대에 충직하고 의로운 삶을 살다간 영웅들도 많다. 문헌에서 전하는 그들에 관한 서사(敍事)는 참신할 뿐만 아니라 더욱 진한 감동을 남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었던 강항(1567~1618)은 다섯 살 때 한시로 ‘각도만리심교각(脚到萬里心敎脚)’을 썼다고 한다. 이는 ‘다리는 만 리를 간다. 그렇게 시키는 것은 마음이다’는 뜻이다. 아이의 상상력과 관찰력이 놀라울 뿐이다. 강항이 누구인가?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 억류 중 일본의 문인들과 교류하였고 귀국할 때 외교적으로 노력하여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강항의 고향인 전남 영광군과 강항이 포로 생활을 했던 일본 오즈시는 2001년에 자매결연 맺고 교류하고 있다. 오즈시 중심가에 강항 현창비가 있는데 그 옆의 안내문에는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적혀 있다.(이승하, 조선일보, 2025. 3.19. 참조) 선조와 광해군 때의 문신 박엽(1570~1623)도 어릴 때 쓴 한시에 ‘등입방중야출외(燈入房中夜出外)’가 전해 온다. 이는 ‘등잔불이 방에 들어오니 밤은 밖으로 나가는구나’ 라는 뜻이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한문 공부를 일찍 시작했기도 하겠지만 오늘날과는 달리 과거에는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게 자랐기 때문이 아닌지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이 두 인물을 이 시대에 소환하는가? 그것은 바로 어릴 때부터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하기 위함이다. 이를 일러 소위 ‘참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흔히들 교육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능력을 밖으로 끄집어내는(引出) 것’이라 정의한다. 20세기 대표적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인간은 누구나 천재”라 말했다. 결국 인간 개개인의 천재성을 어떻게 인출해 키울 것인가는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지나친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어려서부터 각자도생, 적자생존의 정글법칙만을 연마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당연시하며 아이들을 과도한 사교육으로 몰아간다.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 등은 최근에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는 교육적 효과가 극소수 아이에게만 해당한다.”는 사교육 종사자들의 고백이 무색하게 초등 아이들이 5~7개의 학원을 돌며 거의 좀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형국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는 2024년 29조 2000억 원에 이르렀다. 혹자는 비공식적으로 40조에 달할 것이라 예측한다. 가히 사교육 공화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고 초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사교육비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어릴 적에 한창 또래들과 놀아야 할 아이들을 지나치게 혹사해 그들에게 생각하는 시간, 창의적인 삶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이를 ‘자녀 사랑’이라 칭하며 자랑삼아 말하는 부모들은 지나치다 못해 아동학대의 범죄자들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두 인물처럼 어려서 매우 놀라운 사고력을 발휘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고 오직 특정한 과목(영어, 수학, 논술 등)에 매달려 오히려 다양한 천재성을 사장(死藏)시키는 것이 이 땅의 오랜 고질병이라 할 것이다. “아이는 놀면서 배운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적인 능력계발에만 치우쳐 바람직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회성, 인간관계의 미성숙은 어찌할 것인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지명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폴 부르제(Paul Bourget, 1852~1935)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놀 여유와 시간도 없이 학원을 뺑뺑이 돌며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이 전환의 시대에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인간 존엄을 위한 참교육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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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3
  • [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나무 그늘 아래에서...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2025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라가 참 시끄럽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와 더불어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사회 전반적으로 힘든 일이 많기도 하지만, 거기에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가 싫다고 무인도로 떠나버릴 수도 없다.(요즘은 자발적 은둔 형 외톨이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쉼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몸도 휴식이 필요하지만, 정신적 쉼도 매우 중요하니깐. 가끔 이어폰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세상을 둘러볼 때 세상이 평소보다 아름답게 보이던 경험, 한 번쯤은 누구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은 내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들으면 딱 좋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사실 이 곡은 너무나 유명해서 누구나 들으면 ‘아~~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럴 만큼 대중적인 멜로디가 된 것 같다. 보통 ‘라르고(Largo)’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사실 라르고는 원래 제목은 아니고 ‘아주 느리게’를 의미하는 빠르기말이다. 이 곡의 빠르기가 ‘Largo’이기 때문에 아마도 라르고라는 제목으로 널리 연주되어 왔지만, 원래의 제목은 옴브라 마이 퓨(Ombra mai fu)라고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Serse)> 1막에 등장하는 아리아다. 오페라에서는 페르시아의 왕 세르세가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앉아 쉬며 삶의 피로와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평화와 위안을 찾는 모습을 노래한다. 이 곡은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대한 찬사와 그곳에서 느끼는 평화, 그리고 왕 자신이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쉼에 대한 감사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페라의 전체 줄거리와는 별개로 이 아리아는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순수하게 자연 속에서의 평화와 위로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인지 성악가들에 의해 불려질 뿐만 아니라 여러 악기에 의해서도 연주되어 듣는 이에게 평화와 맘의 위안을 주는 곡이다. 이 곡은 헨델의 다른 곡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보통 헨델의 곡들은 웅장하고 극적 긴장감이 있거나 경쾌하고 화려한데, 이 곡은 평화롭고 위로를 주는 분위기와 조용하고 내면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점이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곡은 단순히 나무를 찬양하는 노래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평화와 위로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는데, 우리가 감동을 받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은 결코 대단한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마음에 위안과 위로를 주는 것은 어떤 화려함이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살면서 종종 느낀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다 보면 가끔은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고 지칠 때가 있지만, ‘옴브라 마이 퓨(Ombra mai fu)’ 노래 내용처럼 잠시 나무 그늘에서 숨을 고르며 나무가 주는 위안을 깊이 호흡해 보는 일이 우리에겐 종종 필요하지 않을까. 때로는 멈추는 것이 가장 큰 전진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쉬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작은 휴식을 선물하자. 그 쉼이 내일의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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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30
  • [전재학의 교육칼럼]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한 인성교육을 강화할 때이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세상의 수많은 금과옥조 같은 가치(價値) 중에 다른 가치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고 빛나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 정의, 나눔, 배려, 용기, 선행, 기부, 사랑, 공존, 상생…, 이들 아름다운 가치들은 어느 것 하나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자 모두가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종합하듯 “용기 내어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지난 4월 타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세상 모든 선남선녀, 필부필부에게 어떻게 세상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제시하는 길잡이라 할 수 있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핵심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실에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조차 진정으로 사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특히나 이 땅에서 수많은 피와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망가뜨리고 갈등과 미움, 증오를 확산시킨 사람(들)을 용기 내어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휴머니즘에 근거해 서로를 사랑하고 공존하기 위한 교육을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수는 없다. 이 세상의 인간관계상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고 여러 가지 어긋난 행태로 감정이 얽히고설킨 상태에서 갈등과 증오 유발자(들)를 사랑하고 그(들)를 위해 사랑과 평화의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웬만한 성정의 보통 시민으로서는 실천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이성은 가능하나 감정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인간적 본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우리 중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거든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수많은 만남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리 저리 얽히고설키며, 때론 사랑하다가 때론 죽도록 미워하는 지경에도 이른다. 좋은 만남이고 좋은 관계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잘못된 만남이고 처음부터 뒤틀려 버리면 전혀 원하지 않는 감정의 상태로 심각해지고 악화된다.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기도 너무도 짧은 것이 우리 인생인데 이처럼 전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철천지원수 같은 존재가 되고 끝없이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기는 너무 힘들다. 정의구현 종교 수도자들은 “어찌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고 크게 반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가르침은 “네 원수를 사랑하여라.”라고 아주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가장 실천하기 힘든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감정을 통제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어려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깨닫고 서로 사랑하고 공존하려는 인성교육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류애를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고 상생하기 위한 교육은 그 어느 지식교육보다도 중요한 인성교육이라 할 것이다. 특히나 경쟁이 국시(國是)처럼 되어버린 우리의 경우 이는 그 어느 교육 가치보다 우선해야 할 소중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도 크게 갈라져 있다. 12⋅3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크게 훼손되고 인간 존엄을 명시한 헌법정신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땅의 정치 엘리트들은 오직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해 지지를 얻고자 한다. 그들은 과연 어떤 교육을 받고 이 땅의 엘리트가 된 것인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자기 정당화에 온갖 궤변을 쏟아내며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가치를 파괴한 이 땅의 최고 엘리트(들)를 보면서 우리 교육은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용기 내어 사랑하세요.”라고 말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의 메시지는 다시금 우리가 학교에서 어떻게 인성교육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그것은 ‘나 우선(Me, first)’ 에서 ‘상대 우선(You, first)’의 사상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교육이며 이는 결국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교육 가치임을 잊지 말고 이를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우리가 되길 기대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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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3
  • [풀꽃 산책] 도꼬마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한 가지 기준에 얽매일 필요 없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어린 시절, 도꼬마리 열매는 재미있는 놀이 도구였다. 옷에 착 달라붙던 작은 ‘찍찍이’는 우리와 자연을 이어주었다. 하지만 도꼬마리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그 속에는 생존과 성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도꼬마리의 씨앗은 두 개다. 하나는 빠르게 싹을 틔우고, 하나는 천천히 준비한다. 속도가 다르다. 방법이 다르다. 하지만 둘 다 살아남는다. 성장은 속도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급하게 나아가는 것도, 신중히 기다리는 것도 각자의 전략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배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자라야 할 필요는 없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배우는 아이가 있고, 천천히 깊이 익히는 아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이다. 도꼬마리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적응하고 공존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우리 사회도 그래야 한다. 지나친 경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의 성장을 인정할 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도꼬마리의 씨앗이 묻는다. “너는 너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가?” 우리는 비교 속에서 흔들릴 필요 없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자라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성장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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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2
  • [김홍제의 목요칼럼] 일상에 던지는 착한 조약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불확실 시대를 아름답게 건너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선함의 원인이 되어야 한다. 느닷없이 땅이 꺼져서 사람이 죽고 비행기가 떨어지고 거대 텔레콤 통신회사의 서버가 해킹을 당하고 전쟁이 나고 계엄이 선포되고 상담을 하던 학생이 교직원과 행인에게 문구용 칼을 휘두르는 세상은 불안하고 위험하다. 불교에서는 세상이 촘촘한 인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도 운명이 아닌 ‘선택의 결과’이다. 원하는 미래가 있다면 그에 맞는 선택을 지금부터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미래에 영향을 주는 원인은 만들 수 있다. 4월 28일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있었다. 지하철과 전철, 고속철도가 멈추고 수십만 명이 고립되었다. 핸드폰과 컴퓨터는 무용지물이었다. 신용카드 단말기도 꺼졌다. 현대문명이 전기에 의존하는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기로 세상이 굴러가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전기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자기장이나 전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현대 인류는 복잡해지는 땅위를 피해 땅속에 전선, 상하수도관, 인터넷 선, 사람이 다니는 지하도, 전철을 만들었다. 땅속은 보이지 않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온전히 알 수 없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고 분명한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느닷없는 범죄는 예상할 수 있는 범죄보다 더 불안하고 무서움을 준다.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공포는 더욱 커진다. 우리는 이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하여 불안과 공포에만 시달리며 살아야만 하는가. 알 수 없고 불안하고 위험한 일상에서 벗어날 길을 없는가. 생각해 보면 자신도 세상이나 타인에게 하나의 분명한 원인이다. 내 생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선하고 진실한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그 물결은 세상의 원인이 될 것이다. 착한 행위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도 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불안하고 혼란한 세상의 원인은 욕심과 거짓과 태만이라는 의롭지 않은 원인 때문이다. 세상의 작은 파동을 제어할 수 없고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목숨마저 ‘느닷없는’ 결과에 맡기고 산다. 하지만 아름다운 삶은 자신이 선한 원인이 되어 세상에 선함의 동심원을 만드는 삶이다. 많은 선함의 동기가 모여서 시민운동이 되고 기부문화가 되고 산불로 타버린 이재민의 후원자가 되고 기댈 곳 없는 학생에게 따스한 온정이 되는 것이다. 착한 원인이 하나둘 쌓이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비록 알 수 없는 함정들이 곳곳에 있는 위험한 일상이지만 우리가 디딜 수 있는 선한 징검다리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꽃길이 된다. 괴로움이나 공포가 가득한 어두운 여정이 아니라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이 있는 삶의 여정이 된다. 오늘 ‘느닷없는’ 기쁨의 원인이 되는 나를 꿈꾼다. 선한 행위의 조약돌을 답답한 일상에 던져보려 한다. 상대방도 행복해지는 선한 동심원이 많아지면 답답한 학교와 사회, 형식적인 동료관계도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착한 조약돌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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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5
  • [전재학의 교육칼럼] 체험(體驗)을 넘어 경험(經驗)으로 승화시키는 교육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말 사전은 체험(體驗)을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이라 정의하고, 경험(經驗)은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또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을 가리키는 철학 용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어로는 똑같이 “experience”라 한다. 실제 우리는 체험이나 경험을 거의 동일한 용어로 의미상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경제의 마케팅 입장에서는 이를 보다 쉽게 구분하여 체험은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 경험은 “사람들에게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는 정보제공을 통한 효과인 이해(理解)는 사실과 정보의 전달에 기반을 두는 이성의 영역이지만, 정서를 불러일으켜 공유하는 것은 감정(感情)의 영역이다. 이를 반영하듯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선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선 감정이 논리를 이긴다고 피력했다. 그래서 인간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에토스(ethos)가 이성에 의해 논리적 설득을 감행하는 로고스(logos)보다 우월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을 언급할 때 ‘경험’이라 하지 ‘체험’이라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통의 여행이 경험에 가까운 이유는 이것이 우리에게 정보가 아닌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거부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꾸며 살아간다. 여행이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에 그친다면 얼마든지 책이나 영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은 단순한 지식의 폭을 넓혀주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바로 정서적 공유인 공감을 나눌 수 있다. 만약 여행이 낯선 풍경을 체험하는 것에 그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여행이 아닌 관광이라고 말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곧 여행은 단순히 보고 싶은 곳을 보는 것을 넘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풍경의 체험을 쌓는 관광객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각을 통해 기존의 지식과 편견으로 쌓은 관념의 벽을 허물고 지평을 넓히며 자신을 확장시키는 여행객이 될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할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단 한 번의 여행이라면, 우리는 관광객의 태도로 삶을 체험할 것인가, 아니면 여행자의 태도로 삶을 경험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때 당연하게도 우리는 삶이 단순히 하나의 체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경험이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우리에겐 삶이 단순한 지식을 축적하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의 볼거리를 즐기는 체험의 수준을 넘어 인간적인 정서를 공유하며 마치 소풍을 즐기듯이 삶 자체가 아름다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경험으로 승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학생들에게 단지 체험의 기억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경험의 기억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공할 것인가?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은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한다. 이는 마치 특정 브랜드에서 커피를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한 맛의 체험을 넘어 해당 브랜드가 표방하는 공간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과 흡사하다. 단지 커피를 체험하려면 집에서 커피 원두만 있으면 되지 않겠나? 따라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식과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체험이라면 경험은 유⋅무형의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통해 학생들에게 특정한 정서와 감정을 통한 관계를 형성시킨다. 학생들에겐 단순한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정서적 관계를 맺도록 하고 개인의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지대한 역할이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요즘 초·중·고에서는 현장체험학습조차 망설이고 아예 학사일정 편성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인솔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몰아 학교의 사법화를 부추기는 현실에서 벗어나 체험학습을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교육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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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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