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7(일)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는 과거를 읽는 일이지만, 단지 지나간 세월을 정리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국호(國號), 즉 나라의 이름을 새삼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어원 풀이가 아니다. 이름은 정체성이고, 그 이름에 담긴 뜻은 후대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큰 자산이 된다.
우리에게 백제는 교과서 속에서 흔히 “한반도 서남부의 소국,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최근 학계와 현장의 발굴은 그 단순화된 서술에 물음표를 던진다. 백제의 범위는 더 넓었고, 영향력은 훨씬 깊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이름이 지닌 의미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풍부했다. 
 
□ 백제라는 이름의 여러 얼굴
문헌과 금석문에는 백제의 국호가 한 가지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百濟(백제) 말고도, 광개토대왕비에는 百殘(백잔), 다른 기록에는 十濟(습제), 또 이체자인 佰濟, 남부여(南扶餘)라는 표기도 보인다. 일본에서는 倶太羅(구다라), 百濟(일본식 발음 구다라)라 불렀다. 더 나아가 은유적 표현으로 扶桑, 風谷, 半島라는 지칭까지 섞여 있다.
이처럼 다층적이고 이질적인 표기들이 얽혀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이 찾는 것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어원 열쇠”이다. 
 
□ ‘백’과 ‘제’, 문자에 담긴 빛과 물
먼저 ‘백(百)’이라는 글자를 보자.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본래 엄지손톱의 흰빛을 그린 상형이었다. 그 흰빛이 곧 밝음, 순수함을 뜻하게 되었고, 후대에 ‘많다’의 의미가 붙으며 수사 ‘백(100)’이 된 것이다. 결국 그 뿌리는 ‘밝음’이었다.([그림 30] ‘百’ 참조)
‘제(濟)’는 본래 제나라의 ‘제(齊)’에서 갈라져 나온 글자다. 물(水) 변이 붙으며 강과 관련된 뜻으로 발전했다. 중국의 제수(濟水)와 연결되고, 후대에는 ‘건너다’, ‘구제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러니 百濟는 문자적으로도 ‘밝음’과 ‘강’이 결합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그림 30] ‘濟’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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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군 묘지명에 새겨진 단서
2011년, 중국 서안에서 발견된 한 묘지명은 백제사 연구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백제계 인물로 추정되는 ‘예군(禰群)’의 묘지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日本餘燼(일본의 여초, 전란 뒤 살아남은 무리)”, “扶桑에 의지하여 죽임을 면했다.”
여기서 ‘일본’을 단순히 열도, 즉 야마토로 읽을 수는 없다. 당시 맥락에서 ‘餘燼(여초)’는 멸망한 나라의 잔민을 뜻했으니, 이는 분명 백제를 가리킨 것이다. 같은 문맥의 ‘扶桑’이 일본 열도를 가리키는 은유로 쓰였음을 고려하면, 문장은 이렇게 읽힌다. “망국 백제의 유민이 일본(扶桑)에 의지하여 살아남았다.”
즉, 묘지명 속 ‘日本’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로 백제를 지칭했다고 보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 왜가 일본이 되다, 그리고 백제
『신당서』는 함형 원년(670)에 왜가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고 기록한다. 『삼국사기』 문무왕 10년조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하지만 『구당서』와 『신당서』의 서술은 미묘하게 다르다. 한쪽은 “일본이 예전 작은 나라였는데 왜를 병합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왜가 일본을 병합했다”고 전한다. 명칭이 혼용되던 전환기의 혼란이 드러난다.
해석은 이렇다. 백제 멸망 이후 유민과 지배층이 열도 정치에 깊이 편입되었고, 그 결과 670년 국호 ‘일본’ 채택은 백제 재기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단순히 왜의 새로운 이름이 아니라, 백제인의 자의식이 투영된 이름이었다. 
 
□ ‘해의 근본’, 일본과 백제를 잇다
여기서 흥미로운 언어학적 연결고리가 등장한다. 고구려 건국지로 알려진 ‘졸본(卒本)’은 광개토왕비에는 ‘홀본(忽本)’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홀’은 ‘해’를 뜻하는 말과 음운적으로 이어지고, 결국 ‘日(해)의 本(근본)’이라는 ‘日本’의 의미망과 연결된다.
소서노가 졸본계 부여 혈통이라는 전승, 해모수·주몽의 태양적 신화 계보와 겹쳐 보면, ‘해의 근본’이라는 관념이 이미 고대 건국서사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백제, 밝음의 나라
우리 고대 국호 가운데는 태양과 광명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조선(아침 해가 비치는 나라), 부여(벌판, 햇볕이 드는 곳), 고구려(높음, 태양), 발해(큰 바다에 뜨는 해) 모두 그렇다. 백제도 예외가 아니다.
국어학자 양주동은 백제를 ‘밝은 성(城), 곧 광명성’으로 풀이했다. ‘백’은 밝음, ‘제’는 성·고을을 뜻하는 자을(齊)의 음차라는 것이다. 결국 백제는 ‘밝은 땅, 해가 비치는 나라’라는 뜻으로 확장된다. 이는 예군 묘지명의 ‘日本(해의 근본)’ 은유와도 정확히 호응한다.
‘박달’이라는 말도 같은 계열이다. ‘밝-달(양달, 해가 드는 곳)’이 ‘배달’로 발전했고, 이는 곧 밝은 나라, 태양의 나라를 뜻했다. 백제의 이름도 바로 이 ‘밝음’의 계열에 속한다. 
 
□ 다양한 별칭과 변이
물론 백제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도 있었다. ‘十濟(습제)’는 몽골어·튀르크어의 ‘온(온, 열)’과 연결짓는 가설이 있지만, 『수서』의 “백가가 바다를 건너 백제라 부름”과 같은 후대식 설명에 가깝다. ‘남부여(南扶餘)’는 부여계 혈통을 강조한 표기였다.
일본에서 부른 ‘구다라(倶太羅)’는 어원설이 다양하다. ‘큰 나라(쿠) + 타라(땅)’라는 풀이, 공주 구드레 나루에서 비롯되었다는 지명설, 심지어 브리야트계 민족명과의 연결까지 제기된다. 일본어 속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 하찮다)’가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설까지 있지만, 아직 분분하다. 
 
□ 맺으며
사료, 금석문, 언어학, 신화적 상징을 종합하면, 백제라는 이름은 결국 ‘밝음, 해, 근본’이라는 의미장으로 수렴한다. 예군 묘지명 속 ‘日本’이 백제를 지칭했다는 해석은, 백제의 멸망 이후에도 그 이름과 상징이 일본 열도 속에서 살아남아 정치적 재편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660년 백제가 무너진 뒤, 불과 10년 만에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사실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제인의 기억과 정체성이 열도에 깊이 뿌리내린 사건이었다.
결국 백제는 ‘밝은 땅, 해의 나라’였다. 그 이름 속에는 태양의 힘과 동아시아를 가로지른 백제인의 활력이 함께 담겨 있다. 오늘 우리가 백제를 다시 불러내는 까닭은, 단순히 잊힌 나라를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에 깃든 빛을 오늘의 자존과 내일의 역량으로 되살려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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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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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백제의 이름, ‘밝은 나라’에서 ‘일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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