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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승호 경기도의원, 4년 의정 성과와 미래 교육 비전 밝혀
[교육연합신문 박소연 기자]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문승호 의원(더불어민주당·성남1)이 지난 5월 26일(화) 교육연합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년간의 의정 활동을 돌아보고 교육 격차 해소와 미래 교육 환경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밝혔다. ■ "작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정치의 핵심" 문승호 의원은 평소 "정치란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크게 듣는 능력"이라고 정의해왔다. 이날 간담회에서 그 철학의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큰 목소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잘 들린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생각이야말로 정치가 귀 기울여야 할 곳이다. 그런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정치는 일부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문 의원은 방송인 강호동의 말을 인용해 "프로는 상상하는 대로 되고, 아마추어는 걱정하는 대로 된다"며 교육 현장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실 면적, 복도 폭, 층수까지 법으로 정해진 틀을 유연하게 바꾸고 AI 시대에 맞는 상상력과 표현력 중심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간 재구조화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화변기 교체부터 500억 예산까지 … '효능감 정치' 실현 문 의원은 4년 재임 중 지역구에 가져온 교육 예산만 5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으로 희망대초등학교 화변기 양변기 교체 사업을 꼽았다. "재개발로 새 아파트에 살던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 난생처음 보는 화변기가 있었다. 변을 못 보고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생겼죠. 5천만 원이라는 작은 예산으로 방학 중 전면 리모델링을 했는데, 그 작은 변화가 학부모들에게 '내 아이를 생각해주는 의원이 있다'는 신뢰로 이어졌다. 거창한 정책 못지않게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 '효능감을 주는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 전국 최초 '학교 급식 잔식 기부 조례' … 일석삼조의 성과 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교육청 학교 급식 잔식 기부 활성화 조례'는 전국 최초 입법으로, 현재 서울·세종·전북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교 급식에서 매년 110억 원 이상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를 인근 사회복지법인과 푸드뱅크에 기부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예산 절감, 복지 서비스 확대, 환경 보호라는 세 가지 효과가 동시에 난다. 중간에 식약처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담당 공무원과 함께 끈질기게 소명해 2시간 이내 조리·적정 온도 유지 조건 하에 기부가 가능하도록 지침을 바꾸는 성과도 거뒀다."라고 밝혔다. ■ 학교폭력 피해학생 보호 … "피해자가 학교 옮기는 구조는 불합리"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상급학교 분리 배정 제도화 건의안과 관련해 문 의원은 현행 제도의 불합리함을 강하게 지적했다. "현재는 가해 학생이 배정된 학교를 피하려면 피해 학생이 스스로 다른 학교를 찾아가야 한다. 피해자가 제2, 제3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분당 서현 학군처럼 좋은 학교에 가해자들이 먼저 배정되면 피해자는 그 학교를 포기해야 한다. 도의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 국회 촉구 건의안을 제출했고, 하루빨리 법이 개정돼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 고등동 중학교 설립 … '도시형 캠퍼스'로 돌파구 성남 고등동 중학교 설립 문제에 대해서는 3년 이상 싸워온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4천 세대 신규 입주 단지 옆에 LH가 마련한 학교 부지가 4년째 공터로 방치되고 있다. 아이들은 사설 차량을 월 7만 원씩 이용하며 30분 거리 학교로 통학하고 있다. '21학급'이라는 설립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다. 올해 도입된 '도시형 캠퍼스' 제도를 활용해 소규모 형태로라도 학교가 생길 수 있도록 본회의 5분 발언, 2천 명 서명부 전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통학로 안전 … "문제의식의 공유가 협력의 시작" 단대초·신흥초 등의 통학로 안전 개선 사례를 소개하며 기관 간 협력의 노하우를 밝혔다. "공문보다 현장이 먼저다. 관계자들이 회의실이 아닌 아이들이 실제 걷는 길 위에서 만날 때 문제의 심각성이 눈으로 보인다. 단대초는 교육청과 성남시가 서로 부지를 내주지 않으려 했는데 교장 선생님의 결단으로 학교 부지를 10미터 물리기로 했고 6월 교육장과 구청장 간 MOU 체결로 보·차도 분리의 토대가 마련됐다. 행안부 예산만 확보되면 단대동 일대 통학 환경이 크게 바뀔 것이다."라고 뜻을 전했다. ■ "교육 격차 없는 스타트라인" … 정치 입문의 초심 재확인 문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원도심 중학교를 나와 분당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자부했던 실력이 분당에서는 한참 부족했고, 생활 수준과 교육 환경 모두 눈에 띄게 달랐다. 교육 격차는 결국 학력 격차,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최소한 교육에서만큼은 공평한 스타트라인을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하루에 학교 급식이 유일한 한 끼인 아이들이 여전히 있다. 일에 파묻혀 잊고 있던 그 초심을 다시 새기고, 그 아이들을 위한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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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人포커스] 도성훈 인천광역시교육감 후보를 만나다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본지는 오는 6월 3일 전국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전국시도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민주적인 교육자치 발전을 위하여 국민들에게 교육감 선거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나, 후보자의 자질과 공약으로 국민으로부터 선택받는 교육감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각 후보자를 인터뷰하여 소개하는 선거특집을 마련하였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 편집자 주 이번 호에서는 도성훈 인천광역시교육감 후보를 만나보았다. 이날 인터뷰에는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후보와 윤용상 대변인, 그리고 오승한 국제교류특보가 함께 배석했다. 다음은 도성훈 후보와의 일문일답이다. ▣ 제10대, 제11대 인천광역시교육감으로서 지난 8년의 소회를 밝혀 달라. 위기와 혁신이 공존한 8년이었다. 첫 번째 임기 4년은 노란 점퍼를 입고 위기에 대응하는 데 보냈다. 적수 사태, 돼지열병, 스쿨 미투를 하나하나 풀어가던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교육청에서 퇴근하지 않고 한 달 이상 먹고 자며 대응했다.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저녁마다 직원들과 미래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토론하고 정리하기를 반복하며, 수업의 변화와 새로운 학교들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임기는 인천만의 특화 교육인 읽걷쓰, 바다학교, 아이플라토 등을 만들어 전국화·세계화의 길을 열었다. 공약이행률 99.1%, 3년 연속 공약이행 평가 최우수 SA등급. 어떤 위기 앞에서도 시민과의 약속을 생명처럼 지키겠다는 책임 행정의 결과다. 교육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몸으로 확인한 8년이었다. ▣ 지난 2기 인천시교육감으로서 추진했던 정책 중 만족할 만한 성과는 무엇인가? 가장 큰 성과는 '읽걷쓰'다. 2022년 말 ChatGPT 등장으로 AI가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술 문명에 휩쓸리지 않는 인간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읽기·걷기·쓰기를 결합한 읽걷쓰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13만여 명의 학생 저자가 탄생하고 8,300여 권의 책이 나왔다. 구글이 "AI가 나왔을 때 모든 나라가 기술로 접근했는데 인천에서만 인간 중심으로 접근했다"며 협약을 체결한 유일한 교육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168개 섬과 바다를 가진 인천의 지리적 여건을 살린 바다학교, 아이들의 사회·정서 역량을 기르는 아이플라토도 인천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프로그램이 됐다. 직업계고 분야에서는 2025년 졸업자 기준 취업률 55.7%로 수도권 1위, 2024년 졸업자 유지취업률 85.3%로 전국 2위를 기록했다. 전국 최초로 교육감 직속 교육활동보호담당관을 신설해 교사들이 혼자 교권 침해에 맞서지 않아도 되는 구조도 만들었다. ▣ 지난 2기 인천시교육감 임기 중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가장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현장 교사들이 정책의 체감도가 낮다고 지적한 부분이 가장 무겁게 남는다. 교육활동보호담당관 신설, 특수교육 여건 개선 등 제도는 만들었지만 실제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느끼는 변화로 완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교사가 바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끝맺지 못한 과제들도 있다. 고교학점제 운영의 현실화, 교원 정원 확대, 교원 처우 개선, 서해 5도 교원 지원 등은 교육부와 중앙정부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로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학교현장지원방안 100선과 특수교육 여건개선 33개 과제도 임기 안에 모두 마무리하지 못한 채 다음 임기로 넘어가게 됐다. 지방교육재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교운영비 부족으로 여름에 에어컨을 꺼야 했던 학교가 생긴 것은 교육감으로서 시민께 송구한 일이다. 이 모든 미완의 과제들을 완성하는 것이 3선에 나선 또 하나의 이유다. ▣ 지난 인천시교육감 임기 중 추진해 왔던 '읽.걷.쓰' 교육정책에 대해 말씀해 달라. '읽걷쓰'는 2023년 1월 시작할 때부터 학교 안과 밖을 동시에 공략했다. 교육과정 속에 넣으면서, 동시에 인천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문화가 될 때 질적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득하며 시민 문화 운동으로 함께 키워왔다. 단순한 교육청 정책이 아니라 인천 시민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었다. 국내외 학술대회를 거치며 읽걷쓰의 이론적 깊이를 더했고, 2025년 9월 구글과의 협약으로 세계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읽걷쓰의 핵심 철학은 명확하다. AI 시대일수록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인간의 기본기가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몸으로 걷고 직접 손으로 쓰는 과정이 아이들의 사고력과 정서 회복에 직결된다. 현재까지 13만여 명의 학생 저자가 탄생하고 8,300여 권의 책이 출간됐다. ▣ 우리 교육계에도 AI를 활용하는 교육이 도입되고 있다. 향후 인천교육의 AI 도입에 따른 '읽.걷.쓰' 교육정책의 변화는 무엇인가? 읽걷쓰와 AI의 결합, 즉 '읽걷쓰 AI'가 그 답이다. 핵심 원리는 'H-A-H(Human-AI-Human)'다. 인간이 먼저 생각하고 질문하며, AI를 전략적 도구로 활용해 정보를 구조화하고, 다시 인간의 성찰과 직접 쓰기로 마무리하는 순환 구조다. 이 원리로 우리 아이들을 AI 시대의 지휘자인 '에르디토'로 키워내겠다. 생애주기별로도 적용된다.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는 독서 골든타임을 지켜주고 손끝·발끝 교육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키운다. 초등~중학교까지는 긴 글쓰기를 통해 자기표현과 AI 과의존 예방, 통제된 환경에서의 AI 활용 능력을 기른다. 고교에서는 AI를 주도적으로 활용하되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창의적 학습자로 완성한다. AI는 읽걷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읽걷쓰로 다진 인간의 사고력 위에 얹히는 날개다. ▣ 이번이 인천시교육감 3선 도전인데 후보님의 주요 공약을 밝혀 달라. 이번 임기의 출발점은 하나다. 기초부터 다시 다진다. 5세~9세를 독서 골든타임으로 묶고, 모든 초등학교에 기초학력 전담교사를 세운다. 원도심 20곳에 자기주도학습센터를 열어 부모 지갑 사정과 무관하게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AI를 활용하는 방안도 세우겠다. 5개 권역 AI융합교육센터를 통해 어느 동네 아이든 AI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매년 1만 명을 세계로 보내는 세계로배움학교로 인천 아이들의 시야를 세계로 넓히겠다. 진로의 선택지도 다양하게 만들겠다. AI 과학고·체육중학교·예술통합중학교를 새로 짓고, 직업교육 안심취업 10년 보장제를 법으로 못 박아 특성화고 졸업생이 불안정한 출발선에 서지 않도록 하겠다. 민주주의 교육과 학생자치권도 강화할 계획이다. 학생 정부회장이 직접 예산을 쥐고 공약을 이행하도록 고 500만·중 300만·초 200만 원의 공약이행비도 보장한다. 디지털 시대에 심리적 불안을 겪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통합지원센터를 설립하고 1교 1상담 인력을 배치하겠다. 신도심 업무를 담당하는 영종·검단 교육지원청 개청도 반드시 하겠다. 선거가 끝나도 이 약속들은 살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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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문해력 붕괴 시대, ‘토론·글쓰기·독서’ 교육 혁신이 국가 경쟁력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디지털 기기의 범람 속에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한 수위를 넘어섰다. 글자는 읽지만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의 속출은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적 위기다. 우리는 단언한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토론, 글쓰기, 독서 수업을 파격적으로 확대하는 것만이 이 벼랑 끝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문해력이 모든 학습과 사고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읽고(독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며(글쓰기), 타인과 소통하며 검증하는(토론) 과정은 지식 습득을 넘어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필수 과정이다. 이 뿌리가 흔들리면 수학 문제를 읽지 못해 틀리고, 과학적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입시 위주의 현 교육 시스템에서 이러한 수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항변한다. 국·영·수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시급한 상황에서 독서나 토론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치스러운 학습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태도다. 기본 독해력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 풀이 기술만 익히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인공지능(AI)이 지식을 생산하는 시대에 단순 암기는 더 이상 무기체가 될 수 없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문해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 방식이 효율적이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문해력을 갖춘 학생이 장기적으로 학습 효율과 문제 해결 능력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낸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결국 해법은 교육 현장의 과감한 체질 개선에 있다. 교과서 진도 빼기에 급급한 수업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학생들이 직접 읽고 쓰고 말하는 시간을 교육 과정의 중심에 배치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이를 단순히 권장할 것이 아니라, 필수 이수 단위 확대와 평가 방식 혁신으로 강제해야 한다. 문해력은 개인의 능력을 넘어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자격이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본질인 문해력 강화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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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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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변화의 파도 앞, 주저함보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이 우선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핵심 쟁점은 단순한 현상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명확하다. 첫째, 데이터와 통계가 증명하듯 기존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체된 구조 속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으며, 이는 곧 사회 전반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진다. 둘째, 글로벌 표준과의 격차다. 세계 주요국들이 발 빠르게 체질 개선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만 과거의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자발적 고립이나 다름없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물론 일각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존 질서에서 혜택을 받던 계층의 반발이 예상되며, 초기 적응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안정적인 점진적 변화가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변화를 늦춰서 얻는 일시적인 안정이 나중에 치러야 할 기회비용보다 크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모호한 절충안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초래해 갈등만 장기화할 뿐이다. 초기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하며, 체계적인 보완 대책을 병행한다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하게 나아가는 결단력이다. 눈앞의 작은 손실에 매몰되어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뜻으로 새로운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만이 정체를 벗어나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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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육감 선거, 정치 이념을 넘어 교육 행정과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백년대계인 교육의 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가 매번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이념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교육은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제는 정치가와 이념가들을 교육 현장에서 배제하고, 오직 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고민하는 진정한 교육 전문가에게 지휘봉을 맡겨야 할 때다. 무엇보다 교육감 자리에 정치적 야욕을 가진 정치가나 특정 이념에 편향된 인사가 들어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하며, 학생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갖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편향된 이념 교육은 아이들의 비판적 사고를 가로막고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다. 따라서 차기 교육감은 풍부한 경험을 갖춘 교육행정가 출신이어야 한다. 교육청이라는 거대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고 일선 학교 현장의 복잡한 현안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행정적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이 교육감이 될 경우, 조직 장악력 부족으로 인한 혼선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의 피해로 돌아간다. 정치권의 입김이 교육을 흔들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행정 전문가가 소신 있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다. 진정한 교육감이라면 눈앞의 지지율에 연연하기보다 교육의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갖춰야 한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맞설 수 있도록 문해력의 뿌리인 고전 읽기를 강화하고, 국가 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수학과 과학 등 기초 학문 교육에 매진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질문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다. 이번 선거가 정치색을 빼고 교육의 본질과 행정의 전문성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의 본질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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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과서도 못 읽는 아이들, '후천적 난독'의 늪에서 구해야
- [교육연합신문=사설] 단순히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도구인 문해력이 무너지면 공교육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어휘력 부족으로 인한 국어 사교육비가 타 과목보다 가파르게 상승(10.8%)했다는 사실은, 공교육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해력 결핍이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해력 교육을 단순히 국어 수업의 일부가 아닌, 전 국가적인 생존 전략으로 다루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위기의 핵심 원인은 디지털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1분 내외의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긴 글을 읽을 때 시선이 방황하고 집중력을 잃는 ‘후천적 난독’ 증상을 보인다. 뇌가 즉각적인 보상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지면서, 인내심을 갖고 문맥을 짚어가는 고차원적 사고 기능이 마비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시대적 변화로 보기도 한다. 종이책보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에게 과거의 독서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며, 이미지와 영상 중심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키워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텍스트 중심의 교육이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영상 매체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할 뿐,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지 못한다. 모든 고등 사고와 학문의 기초는 정교한 텍스트의 이해에서 출발한다. 어휘를 몰라 교과서를 완독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초 체력 없이 기술만 배울 수 없듯, 문해력 없는 디지털 활용 능력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정부와 교육계는 지금이라도 읽기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숏폼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긴 호흡의 독서 교육’을 의무화하고, 교과서 어휘를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사교육비 폭증을 잡고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들의 손에 다시 책을 쥐여주고, 문장을 끝까지 읽어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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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과서도 못 읽는 아이들, '후천적 난독'의 늪에서 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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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孔子의 진채지액(陳蔡之厄)에서 배우는 ‘역경 극복의 기술’: ‘자가 동력’입니다.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삶은 외부의 자극을 넘어 스스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 사회는 ‘동기부여’의 과잉 시대입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열정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로 가득 차 있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쉴 새 없이 우리에게 성공한 이들의 조언을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러한 외부적 자극은 휘발성이 극히 강합니다. 누군가의 강연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졌다가도, 다음 날 아침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면 그 열정은 마치 일회용 배터리처럼 금방 방전되어 버리곤 합니다. 우리는 왜 금새 무기력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동력의 근원이 ‘나’의 내부가 아닌 ‘외부’의 보상이나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응원과 달콤한 보상이 끊기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인생에는 반드시 에너지가 바닥나는 순간, 즉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서야 하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결정적 동기(Self-Determined Motivation)’이자,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자가 동력(Self-motivation)’입니다. 이는 외부의 칭찬 없이도 돌아가는 내장형 발전기와 같습니다. 2,500년 전, 죽음의 문턱에서 거문고를 켰던 공자의 일화는 이 자가 동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럼, 자가 동력을 구축하는 세 가지 기둥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기 긍정(Self-Affirmation)입니다. 훼손되지 않는 본질적 가치의 발견입니다. 기원전 489년,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유람하던 중 인생 최악의 사건인 ‘진채지액(陳蔡之厄)’을 맞이합니다. 초나라로 가던 길에 진나라와 채나라 대부들의 방해로 외딴 들판에 포위된 것입니다. 7일간 끼니가 끊겼고, 제자들은 굶주림과 공포에 질려 쓰러졌습니다. 그 절망적인 정적 속에서 공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었습니다. 울분을 토하는 제자인 자로에게 공자는 답합니다. “군자고궁(君子固窮), 소인궁람(小人窮濫).” 군자는 역경에 처하면 더욱 단단해지지만, 소인은 역경 앞에 도리를 어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단단함(固)’은 단순한 인내를 넘어선 ‘강력한 자기 긍정’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진정한 자기 긍정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상황은 비록 비참할지언정, 나의 존재 가치와 내가 지향하는 도(道)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단단한 자아 수용입니다. 환경이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내 안의 중심축을 지키는 힘이 자가 동력의 첫 번째 연료입니다. 둘째는 자기반성(Self-Reflection), 원망의 에너지를 성찰의 에너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군자가 곤경 속에서도 자가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내면을 정화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포위된 상황에서도 제자들과 문답을 나누며 자신의 도가 현실과 어긋난 지점을 점검했습니다. 이는 맹자가 강조한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 反求諸己)”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책(Self-Blame)은 에너지를 안으로 고이게 하여 자존감을 썩게 만듭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물음은 동력을 갉아먹습니다. 성찰(Reflection)은 에너지를 밖으로 흐르게 하여 다음 단계를 준비하게 합니다. “나의 방법이 부족했는가? 아니면 시대가 담기에 너무 큰 것인가?”를 묻는 비판적 사고는 자가 동력을 더욱 정교하게 만듭니다. 원망의 화살을 외부(세상, 타인, 환경)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피해자가 되지만, 그 화살을 나 자신의 성장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상황의 주인이 됩니다. 셋째, 관점의 변화(Reframing)는 시련을 가치의 증명으로 재정의 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스승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의 도는 지극히 커서, 천하가 능히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통찰은 현실의 실패가 곧 진리의 실패는 아님을 선언하는 ‘인지적 재구성’입니다. 7일간의 굶주림은 공자에게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평생 구축해 온 철학이 죽음이라는 극한의 물리적 압박 앞에서도 유효한지 검증하는 ‘결정적 실험’이었습니다. 심리학의 재구성 기법처럼, 시련을 ‘막다른 길’이 아닌 ‘나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로 재정의할 때 동력의 흐름은 바뀝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수동적 물음에서 “이 상황을 통해 나는 무엇을 완성할 것인가?”라는 주체적 질문으로 전환될 때, 인간은 비로소 환경을 활용하는 거인으로 거듭납니다. 질문하는 자에게는 구제 불능이란 없습니다. 자가 동력을 갖추기 위한 자기 긍정, 자기반성, 관점의 변화보다 더 근원적인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머물고 있는 생각의 지점’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남이 해주는 위로와 조언을 내 동력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남의 생각에서 빌려온 에너지는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누구의 생각대로 나를 살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자기부정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공자는 무언가에 마음을 쓰지 않고(無所用心), 안일하게 지내는 것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고난이 오는 곤란함보다,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는 곤란함이 훨씬 큽니다. 질문을 던지는 그 찰나, 우리 마음의 엔진은 이미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질문하는 자에게는 결코 ‘구제 불능의 상태’란 찾아오지 않습니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로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이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불인 동시에, 불필요한 껍데기를 태워버리는 정화의 불꽃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눈앞이 캄캄해진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당신 내면의 발전기를 가동할 가장 완벽한 기회입니다. 거문고를 들었던 공자처럼, 이제 당신만의 질문을 던지십시오. 당신의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 타오르는 불꽃이 되십시오. 저도 이 순간, ‘나만의 무대에서 나만의 불꽃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묻습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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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孔子의 진채지액(陳蔡之厄)에서 배우는 ‘역경 극복의 기술’: ‘자가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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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은 판단하는 ‘자세’에서 대상에게 머무는 ‘태도’만큼 존재한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근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박홍근 선생이 쓰고, 윤용하 선생이 곡을 붙인,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다. 이때가 자기 생각을 하는 시기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이 세계는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과 생각의 결과인 문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먼저 만든 물건이 없고, 먼저 만든 제도도 없다고 한다. 이 말은 먼저 생각한 적이 없다.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를 받아들여서 살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며 산다. 그래서 미디어 평론가나 토론자들이 하는 말을 자기의 생각으로 숭배하며 산다. 따라서 자기의 생각을 바꿀 방법을 모른다. 다른 사람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살기 때문에 바꾸려는 생각을 못하게 된다. 생각은 현실에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은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구하며 산다. 자기는 없다. 모양은 자기일지 몰라도 생각은 자기가 아니다. 남이 ‘정해준 마음’으로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해진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는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정해진 마음’이 주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정해진 마음’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로 바뀐다.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 ‘정해진 마음’에 갇힌 자기를 장례 지내라.” “장자는 실력 없는 삶을 정당화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내내 실력 있는 삶을 살다 가라고 독려했다.” 또 ‘자존과 독립과 주체와 존엄’을 중시했고, 가치(價値)보다는 사실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으며, 무엇보다도 어떤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했던 사상가였다. 따라서 《장자》는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서사)들을 통해 정해진 마음을 깨부수고, 자기를 잃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차원을 향해 건너가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다. 변화를 범주로 하는 책이다. 문명은 인간의 문화적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다. 무엇을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 문명 세계에서 탁월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거나 만들어서 야기하는 이 일을 잘한다는 의미다. 최진석 교수는 보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이 보여주는 것과 무관하게 내가 보고자 하는 대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뭐 어렵다고 저렇게 푸념을 하느냐 하겠지만,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이것이 세상이 보여주는 그 자체인지, 아니면 내가 보고자 하는 방식을 거친 것인지 사실 구분할 수 없다. 무엇인가 보고 들을 때 이미 내가 ‘보고자 하는 방식’이 알게 모르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보고 싶은 지표만을 봐서는 안 된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다툼에서 승리를 거둔 유방이나, 손권, 유비 등과 천하 패권을 다퉜던 조조 그리고 당나라의 태종 등이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방법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천민 출신 유방은 중앙집권제를 취했던 진나라의 한계를 알고 있었고, 귀족 출신이었던 항우는 중앙집권제의 한계를 보지 못하고 패권에만 관심을 뒀다. 그래서 유방은 중앙집권제와 봉건제를 혼합한 지배 시스템을 제시해 천하의 우군을 모아 항우와 싸울 수 있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에 해결해야 될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높고, 가장 치명적인,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와의 투쟁으로 나온 것이다. 남이 만들 때는 머릿속에 없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데 따라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머릿속에만 있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이 매커니즘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냥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만 받아서 쓰고 만족한다. 그러니까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려고 할 때 인간이 되는 것이다.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컴퓨터를 알려고 하는 사람 사이에 생존의 질과 양은 어느 쪽이 더 크고 높겠는가? 그 컴퓨터의 구성 원리나 작동 원리를 아는 사람이 그 컴퓨터를 가지고 훨씬 더 높고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알려고 할 때,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원시적 지적 본능이 작용하고, 이 원시적 지적 본능이 작용하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보다 훨씬 더 질과 양면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알려고 하는 욕구는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고 삶을 자기한테 이로운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는데, 어떤 큰 출발점이 된다. 문명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다 합쳐서 문명이라고 한다. 이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 때, 생각을 사용해서 만든다. 그래서 문명은 ‘생각의 결과. 질문의 결과, 불편함을 해결한 결과, 문제를 해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각, 질문, 불편함, 문제는 어디서 오는가? 현실에서 온다. 생각, 질문, 불편함, 문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서 오지 않고, 그 세계를 자세히 보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것이다. 앞서가려면, 문명에서 더 우위에 서려면, 생각해야 되고, 질문해야 되고, 문제와 불편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생각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불편함을 찾아내고, 질문하는 이런 일들은 다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 호기심이 발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불교에서는 相을 짓지마라(정해진 생각)고 한다. 그다음에 정해진 기능에만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숟가락을 들고 이것을 밥 먹는 도구로만 이해해서는 자기의 지적 유연성이나 어떤 동질성을 발견하는 은유력이 개발되지 않는다. 이 세계에 모든 창조 활동은 전부 은유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모든 새로운 것들은 다 이미 있는 것들의 연결이다. 다시 말해서 창의성은 연결이다. 창의성은 은유다, 스마트폰을 보자. 그 이전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물건이다. 전혀 새로운 물건이다. 스마트폰 안에 있는 부속품을 보자. 다 이미 있던 것들이다. MP3, 이미 있었던 것들이다. 전화기, 이미 있던 것이다. MP3하고 전화기가 연결됐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은유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창조 행위는 다 은유다. 이 세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싶으면, 이미 있는 ‘유’들을 연결하여야 한다. 이미 있는 ‘유’의 연결이 창의고 창조다. 누가 세계를 움직이는가? 낯설게 볼 줄 아는 사람이 움직이게 한다. 그다음에 동질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낯설게 보고, 동질성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낯설게 보려는 의지가 나와야 한다. 연결하려는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 의지가 나오는 원천이 바로 이 세계에 대한 사랑, 이 세계에 대한 자비심이다.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고, 이 세계를 볼 수 없다. 이 세계에 대한 자비심이 없으면, 이 세계를 볼 수 없다. 이 세계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이 없으면, 그냥 익숙한 판단, 습관적인 인식으로 살게 된다. 이 세계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이 있으면, 습관적인 인식을 넘어서서 이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다음에 하나는 뭐냐? 이 세계를 사랑하고, 이 세계에 대한 자비심이 있으면 나한테 야망이 생긴다. 포부가 생긴다. 야망과 포부가 강렬하거나 절실하면, 이 세계를 습관적으로 보지 않게 된다. 이 습관을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이 세계가 익숙함을 벗고 전혀 새로운 얼굴로 여러분 앞에 다가올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보는 사람이 될 것이고, 은유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해처럼 하는 게 어떤 것이냐? 해는 누구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일을 할 뿐이다. 인격이나 의식의 차원이 높다. 이것이 사람이 나아갈 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다. 그냥 모든 일은 내가 할 일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가족,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된다. 이게 우리 弘益情神의 핵심이다. 한자 공부는 은유의 지름길이다. 한글을 알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한자에 쓰이는 말이 모두 우리말이다. 외우려고 하는 순간에 한자 공부는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雨(비 우), ‘비’를 ‘우’라고도 한다는 말이다. 雨 자를 보면, 어떤 것을 생각해야 되느냐? ‘비’를 왜 ‘우’라고 했을까를 생각해야 된다. 글자를 외우려고 하지 말고, 아이들이 생각하기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자의 훈과 음은 모두 詩다. 알고 싶어 하도록 해야 사람이다. 이제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문화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한자의 훈과 음은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코드다. 생각을 키우는 방법으로 한자를 활용하자. 상상력, 사고력을 키워주는 논리적인 연계성을 일깨워주는 이런 공부가 지금 절실하다. 이제 판단에서 자세히, 낯설게 보는 사람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탈 때이지 않은가? 과감하게!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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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은 판단하는 ‘자세’에서 대상에게 머무는 ‘태도’만큼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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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행정통합 뒤에 숨은 ‘교육재정 절벽’ 대책을 마련하라
-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와 국회는 행정통합에 따른 교육재정 감소 대책을 법안에 즉각 명시해야 한다.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교육계는 지방 교육 재정의 대폭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재정 대책 없는 통합은 지방 교육을 고사시킨다. 정부는 교육 재원 확보 방안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교육재정 공백은 아이들의 학습권 침해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별법은 지방세 세율 조정 특례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교육교부금의 기반인 세입 구조를 흔든다. 교육감협의회는 최대 1.9조 원의 재정 축소를 경고했다. 노후 시설 개선과 돌봄 사업이 중단될 위기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수입 구조의 공백을 지적했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장기적으로 교육 재원을 확충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행정 효율화로 중복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강력한 자치권은 지역 맞춤형 교육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면 교육 투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경제 논리에 따른 낙수효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재정 감소는 당장 교실 환경 악화로 나타난다. 통합 지역 내 교육 소외 현상도 심화될 수 있다. 비통합 지역과의 역차별 문제 역시 심각한 갈등 요소다. ‘선 통합 후 보완’ 방식은 교육 현장의 혼란만 초래한다. 국회는 특별법 최종 의결 전에 교육재정 보전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특별교부금 신설 등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재정의 안정성 없이는 행정통합도 성공할 수 없다. 교육은 지방자치의 핵심적인 축이다. 국회는 교육계의 정당한 우려를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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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행정통합 뒤에 숨은 ‘교육재정 절벽’ 대책을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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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人포커스] 윤건선 교육장이 걸어온 길 40년…"교육은 결국 사람"
- [교육연합신문=김병선 기자] 인천광역시북부교육지원청 윤건선 교육장이 정년퇴임을 맞는다. 교사로 교단에 선 뒤 교감·교장(인천국제고), 장학사·장학관을 거쳐 교육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자취는 한 개인의 이력을 넘어 학교 현장을 지키고 지원해 온 ‘교육의 시간’으로 읽힌다. 윤 교육장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교육은 결국 사람”이라며, 제도와 성과를 넘어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교육의 본질을 강조했다. ■ “교직에 미련 없던 청년이 교사가 되기까지… 운명처럼 다가온 ‘교학상장’” 윤 교육장의 교육 여정은 다소 독특하게 시작됐다. 사범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도 교직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고백한 그는 육군 학사장교로 복무하며 ‘아이디어 뱅크, 전략통’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제대 후에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결국 “내가 누구인지”라는 질문 앞에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선택한 길은 교학상장(敎學相長), 즉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교사의 길이었다. 윤 교육장은 군과 기업을 거친 경험이 오히려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학생을 가르치며 번 수입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포럼·세미나·학술연구회와 각종 교과교육학회 활동을 이어가면서 “가르치며 배우는 삶”을 체질처럼 받아들였다. 특히 첫 학교에서 교장에게 연구회 원고 기고 제안을 받았던 기억은 “평교사가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절, 교육자가 성장하는 첫 문”으로 남았다. 교직 8개월 만에 사회·도덕 교과수업 발표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험은 그가 연구와 수업에 몰입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 성적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진로상담” 윤 교육장이 꼽은 가장 큰 보람은 ‘성과’가 아니라 ‘개별화된 교육’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였다. 고3 담임을 7년 맡으며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성적 중심으로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중년 교사가 되며 보이기 시작했다는 고백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그는 교직 17년을 마무리한 뒤 장학사 시험에 합격해 교육전문직으로 전직하면서, “지원받는 입장에서 지원하는 입장으로” 역할이 바뀌었다고 했다. 진로 업무를 맡으며 깨달은 것은 학생의 삶이 한 줄 성적표로 평가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한 여중생에게 흥미·적성·잠재력에 기반한 진로상담을 진행하고, 오랜 시간 격려와 기다림으로 동행한 끝에 그 학생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찾아와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던 순간을 그는 ‘교직의 대가’라고 표현했다. “그 제자는 지금도 제게 소통하며 제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길잡이”라고 덧붙였다. ■ “교사와 교육행정가 사이… 둘 다 중요, 그러나 기준은 언제나 ‘현장’” 윤 교육장은 교사와 교육행정가의 역할을 “우열이 아닌 상호 필수”로 설명했다. 교사는 학생을 직접 만나 성장의 과정을 돕고, 교육행정가는 그 경험을 토대로 더 많은 학교와 교사를 지원한다. 그는 1980년대 후반 교직 입문 이후 여러 학교에서 학생을 길러냈고, 이후 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지역교육청에서 학생생활지도·방과후학교·교원인사, 시교육청에서 인성교육·학교폭력예방·학생 안전과 건강·교육과정·진로 등 폭넓은 업무를 담당하며 ‘현장 지원의 언어’를 축적해 왔다. 특히 교육과정 분야는 그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교육부 및 관련 학회 활동을 지속해 오며 2009·2015 개정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 안착하도록 지원했고, 초등 프로젝트 교육과정–중학교 자유학기·학년제–고교학점제의 흐름이 연결되도록 ‘꿈 이음 교육과정’ 등 연계 모델을 학교에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제도 개선과 함께 교사·관리자 연수, 교육환경 개선 지원이 병행돼야 현장에 뿌리내린다”는 그의 말은 행정의 역할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 “교육장의 핵심은 ‘정책을 현장 언어로 번역하는 일’… 학생 성공 시대를 위한 지원행정” 교육장으로서 윤 교육장이 강조한 역할은 단순 명령·관리자가 아니라 교육감의 정책을 지역 단위에서 ‘현장에 맞게 적용’하는 행정가다. 그는 인천교육의 방향인 “모두가 다 성공하는 학생 성공 시대”를 위해 학교 현장의 행·재정 지원, 맞춤형 진로지도, 융합교육, 기후·생태·환경교육까지 학교 지원의 범위를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윤 교육장은 유·초·중 학생의 성장·발달 단계에 적합한 지원에 초점을 두며, 가장 기본이 되는 안전과 건강을 토대로 학력·문화예술·독서·특수교육·세계시민교육·폭력 예방·늘봄 지원 등 다층적 지원을 전개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원칙 아래 학교를 직접 방문하고,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까지 연결하는 방식으로 ‘지원행정의 실천’을 이어왔다고 했다. ■ “1학교 1학생 1예술, 그리고 읽걷쓰… ‘성장’의 언어를 학교에 심다” 윤 교육장이 특히 강조한 분야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문화예술교육, 둘째는 독서교육이다. 그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려면 학생이 자기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1학교 1학생 1예술’의 방향을 제시했다. 지역 축제와 결합한 문화예술교육은 예술 감수성뿐 아니라 향토 이해, 지역기관 협력 체제 구축으로 이어져 교육청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모델로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 독서교육은 ‘읽기–말하기–쓰기’의 기본기이자 사고력의 뿌리다. 윤 교육장은 ‘읽걷쓰’ 교육을 통해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한다. 교육과정 연계 출판 지원, 역량 강화 연수, 참여 프로그램 운영 등에서 높은 만족도를 확인했고, 2026년에는 가정 중심의 ‘책밥’, 가족 야간 독서캠프 확대, 학생 주도 토론 독서캠프, 필사·서평쓰기 지원, 지역 서점 연계 출판 프로젝트 등으로 확장 구상을 밝혔다. “독서는 루틴이 될 때 힘이 된다”는 그의 메시지는 ‘기초를 세우는 교육’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 “나는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 구성원이 빛나도록 ‘존이구동’의 리더십” 윤 교육장은 취임 당시 “교육장이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각자 빛날 수 있도록 돕는 반사체가 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는 이 문장을 책상 앞에 두고 수시로 되새기며 스스로를 점검해 왔다고 했다. 조직 운영 원칙은 직원의 건강과 행복, 공동체 의식, 그리고 존이구동(尊異求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되 공통의 목표를 찾는 태도)이었다. 업무 담당자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주되, 교육장과의 열린 소통을 통해 책임과 권한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수요자 만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취약계층 학생 의료지원(무료 치과 치료 협약)과 같은 현장 제안형 사업이 실행될 수 있었다. 또한, 일탈 학생의 성찰과 회복을 돕는 ‘든든 디딤’ 프로그램을 도서관·경찰서·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해 운영하며, 처벌 중심이 아닌 성장 중심의 생활지도를 지향했다. ■ “코로나19 이후 가장 어려웠던 결정… 수업보다 먼저 ‘관계’부터 세우는 SEL” 코로나는 교육의 방식뿐 아니라 학생들의 관계 맺기와 공동체 감각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윤 교육장은 원격수업과 단절의 시간이 학생·학부모 모두에게 자기중심적 사고를 강화시키고 갈등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그가 내린 중요한 결단은 신입생 입학과 동시에 일정 기간을 ‘학생 적응 기간’으로 설정해 인간관계 교육과 공동체 활동을 교육과정에 적용한 사회정서학습(SEL)의 강화였다. “수업 이전에 관계가 회복돼야 배움도 회복된다”는 판단이었다. 늘봄 참여 확대에 따른 등하교 안전 문제도 주요 과제였다. 그는 지역 노인 일자리와 연계한 안전 인력 지원, AI 기반 안전관리(‘AI 안전울타리’) 적용, 학교 안전점검·컨설팅과 예산 지원 등을 통해 안전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힘썼다고 밝혔다. ■ “현장에서 발견한 절실한 과제… 방충망 하나가 교실의 집중력을 바꾼다” 윤 교육장은 ‘현장 방문’이 상징적 이벤트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 중학교를 혼자 방문했다가 교실과 복도에 방충망이 없어 말벌과 곤충 유입으로 학습 집중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관계 부서와 협의해 해결한 사례를 들었다. “작아 보이는 불편이 실제로는 교육활동 전체를 흔드는 경우가 많다”는 그의 말은 지원행정의 감각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보여준다. ■ “인천교육의 정체성과 10년… ‘기초·기본’이 튼튼해야 미래도 선다” 윤 교육장은 인천교육의 과제로 기초·기본 교육의 체감도를 꼽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교육에 충분히 신경 쓰기 어려운 가정, 다문화 학생 증가 등 지역 현실 속에서 기본 학력과 언어 지원을 강화할 제도적 장치가 더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인천국제고, 외고, 과학고, 영재학교 등 다양한 학교 유형과 진로진학 지원체계가 확장되며 역전입 사례가 늘어나는 변화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기초가 탄탄해야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의 변화를 신뢰한다”며 읽걷쓰를 통한 기본기 강화가 향후 인천교육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아쉬움으로 남는 장면들… 더 따뜻하게, 더 배려했어야 했다” 윤 교육장은 정년을 앞두고 “껄(그럴 걸)”이라는 후회를 솔직히 꺼냈다. 특히 진로진학 지도에서 학교 실적에 매여 학생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던 순간이 가장 미안하게 남는다고 했다. 반면, 어려운 가정형편과 건강 문제로 고통받던 학생을 위해 담임교사들과 모금 활동을 조직하고, 교직원과 학생들이 함께 치료비를 마련해 수술을 지원했던 경험은 “교육공동체의 힘”을 확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 “퇴임 후의 계획… 진정성 있는 공부, 100대 명산, 그리고 청소년 곁의 봉사” 윤 교육장은 자신의 삶을 “20년 공부, 20년 가르침, 20년 교육전문직”으로 정리하며, 퇴임 이후에는 동서양 사상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온·오프라인 학습을 통해 “진정성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운동과 등산, 명상과 서예도 계획에 담았고, 무엇보다 청소년기 갈등과 일탈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에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 “초심으로 돌아가며… ‘수구초심’과 화양연화의 감사” 윤 교육장의 마지막 한 문장은 ‘초심’이었다. 그는 “큰 과오 없이 무탈하게 정년을 맞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야 안다”며 동료·후배·선배의 도움에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마음으로 교직 첫날의 다짐을 다시 떠올린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선물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윤건선이라는 이름의 교육자는 퇴임을 맞지만,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학교 현장을 향한다. 결국 교육은 사람이고, 사람을 세우는 일은 초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마지막까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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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人포커스] 윤건선 교육장이 걸어온 길 40년…"교육은 결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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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실질적 지원 없는 학맞통, 공교육 붕괴를 가속할 것인가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육부의 ‘학교맞춤형 교육지원 체계(학맞통)’는 현장에 업무 폭탄을 투하했다. 교총은 이번 대책이 공교육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부는 인력 지원을 포함한 실질적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발표에는 실질적인 ‘학교 밖 지원’ 대책이 빠져 있다. 행정 업무의 외부 이관이나 전담 인력 배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력 확충 없는 협업 강조는 교사에게 업무를 독박 씌우는 결과만 낳는다. 교사는 잡무에 시달려 본연의 교육 활동을 포기하게 된다. 교육부는 데이터 기반의 시스템 구축이 행정 효율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어 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논리다. 이를 통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력 없는 시스템은 관리와 입력이라는 새로운 짐일 뿐이다. 구체적 운영 계획 없는 협업은 학교 내 갈등만 부추긴다. 신학기를 앞둔 시점에 현장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업무 주체가 불분명한 정책은 결국 갈등 폭발의 도화선이 된다. 교육부는 ‘협업’이라는 말로 교사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교육지원청으로의 업무 이관 등 체감 가능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정책의 최우선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책은 즉각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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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실질적 지원 없는 학맞통, 공교육 붕괴를 가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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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 민주당 경선 앞두고 고개 드는 ‘세 과시 정치’
- [교육연합신문=정윤영 기자] 부산 지역 더불어민주당이 공천 경선을 앞두고 내부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전직 구청장 출신 인사들이 연대 움직임을 보이며 특정 후보 중심의 구도를 형성하자, 당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세 과시 정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전직 구청장 출신 인사들이 공동 출마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후보론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후보는 정해진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론이 난 듯한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경선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경험 많은 인사들의 조언과 연대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직력과 인지도를 앞세운 세 과시가 경선 이전부터 이어질 경우, 민주적 경쟁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은 당원과 시민의 선택을 묻는 핵심 과정”이라며, “세력화된 움직임이 결론을 기정사실화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부산 민주당의 중장기 전략과도 맞물린다. 인지도 중심의 후보 구도가 반복될 경우, 정책 경쟁과 미래 비전 제시는 설 자리를 잃고 정치 신인들의 도전은 위축될 수 있다. 당명에 ‘민주’를 내건 정당이라면 결과보다 과정에 더 엄격해야 한다. 부산 민주당의 이번 경선은 인물 경쟁을 넘어,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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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 민주당 경선 앞두고 고개 드는 ‘세 과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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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카산드라의 眞面目?, 지식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길?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신화 속 카산드라의 비극은 단순한 ‘미래 예지’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이 타인의 내면에 가닿지 못하는 ‘소통의 단절’이자, 편견에 갇혀 본질을 외면하는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카산드라는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기후 위기를, 누군가는 사회적 재앙을, 누군가는 조직의 붕괴를 예견하며 외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길한 소리’라며 귀를 막습니다. 이 글에서는 카산드라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왜 배워야 하며, 지식을 어떻게 삶의 지혜로 승화시켜 ‘진면목’을 찾아갈 것인지 말하고자 합니다.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안개 속에서 사물의 형체를 정확히 식별하기 위한 ‘빛’입니다. 첫째, 지식은 현상 너머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합니다. 카산드라가 목마 안의 죽음을 보았던 것처럼, 지식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협과 기회를 읽어내는 힘을 줍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대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식은 타인의 언어를 해석하는 도구입니다. 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청취는 단순한 소리의 전달에 불과하지만, 지적 토대가 마련된 상태에서의 경청은 상대방의 ‘절박함’과 ‘선의’를 읽어내는 고도의 해석 행위가 됩니다. 결국 지식은 나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단단한 가교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단절보다는 연결고리를 찾는 물음이 더 중요합니다. 현대 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적 지식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갈등은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요? 그 원인은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습니다. 孔子는 사람을 판단할 때, 시(視)·관(觀)·찰(察)의 단계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현대인은 첫 번째 단계인 ‘시(視)’, 즉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훑어보는 수준에 머뭅니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이라는 틀에 지식을 끼워 맞추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그것은 나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아니라, 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허영의 장식품’이 되고 맙니다. 또한 지식이 현실의 문제와 충돌하며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내면화되어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을 때, 그것은 ‘금송아지’를 집에 모셔두고 굶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지식이 지혜로 승화될 때 우리 삶은 양적으로 확장되고 질적으로 심화합니다. 삶의 양적 제고(Quantity Increase)와 연관되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지식(察)은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난제들을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게 합니다.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 삶의 물리적 지평을 넓힙니다. 지식은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데 쓰여져야 합니다. 삶의 질적 제고(Quality Increase)와 관계되는 지식은 우리에게 ‘유연함’을 선물합니다. 타인의 의견을 단순히 ‘나와 다름’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이면의 본질을 살피는 힘(觀)은 인간관계의 깊이를 바꿉니다. 단절의 아픔을 공감의 환대로 바꾸는 지적 성찰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철학자들의 문장이 박제된 지식이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그것을 ‘현장의 땀’과 섞어야 합니다. 먼저, 철학자의 말을 나를 성찰하는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대상을 단순히 보는(視) 것에서 나아가 그 동기를 살피고(觀), 그 본질을 분석하는(察) 과정을 매일의 습관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그의 말(視)만 듣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觀), 그 기저에 깔린 불안이나 욕구는 무엇인지(察)를 들여다보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지식이라는 씨앗을 현실의 갈등이라는 토양에 심고, 실천의 거름을 줄 때 비로소 철학은 나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뼈대가 됩니다.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면목(眞面目)’의 회복에 있습니다. 불교적 의미에서 진면목은 나의 참모습을 뜻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요구라는 화장품으로 스스로를 덧칠합니다. 배움은 이 두꺼운 화장을 지워내고,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 내가 아는 것이 진정 나의 것인지를 묻는 과정입니다. 진정으로 배우는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내가 아는 것이 빙산의 일각임을 깨닫고, 진실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 배움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며, 세상을 향해 낼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목소리를 갖게 됩니다. 카산드라의 비극을 끝내는 열쇠는 아폴론의 저주를 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명확합니다. 단순히 현상을 보는 ‘시(視)’에 머물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관(觀)’과 세밀하게 분석하는 ‘찰(察)’의 태도로 세상을 대해야 합니다. 지식을 축적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세상의 온도를 1도 올리는 실천적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의 진면목을 바로 세우고, 타인의 의견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환대의 지성’을 가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카산드라의 외로운 절규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지성은 세상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칼이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게 품는 넓은 품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 이상을 꿈꿉니다.’ ‘꿈’은 불가능을 품는 것이 아닐까요?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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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카산드라의 眞面目?, 지식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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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인천대 입시 의혹, 공정의 근간을 흔들지 마라
- [교육연합신문=사설] 국립대 교수들의 면접 점수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대한민국 입시 제도의 근간인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번 사안은 사회적 성역인 입시를 침범한 중대 범죄로 규정한다. 특정 수험생을 밀어주기 위한 조직적 담합 정황이 매우 구체적이다. 도시공학과 수시 면접에서 점수 담합이 있었다는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특정 내신 등급의 학생을 합격시키라는 지시가 오갔다고 한다. 정성평가가 비리의 통로로 악용된 셈이다. 이는 성실한 수험생들의 기회를 가로채는 행위다. 이에 교육부와 수사 기관은 인천대 입시 비리 의혹을 엄중히 조사하라. 수사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직은 의혹 단계이므로 대학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교수의 평가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물증이 명확한 상황에서 침묵은 비리를 방조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녹취 기록이 이미 세상에 드러났다. 교육부도 사안을 엄중히 보고 현지 감사에 착수했다. 결과를 기다리기보다 즉각적인 인적 격리와 피해자 구제 논의가 우선이다. 그래야 대학의 남은 신뢰라도 지킬 수 있다. 입시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고 무관용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비리가 사실로 확인되면 관련자들을 즉각 퇴출해야 한다.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인천대는 국립대로서 책무를 다하라. 투명한 면접 시스템 구축을 위한 근본적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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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인천대 입시 의혹, 공정의 근간을 흔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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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삶? 단단해지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인생이란?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이런 고통과 혼돈의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인류의 고전에 물어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그 해결의 과정에서 “자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먼 산을 보며 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나의 삶과 연결시켜보려눈 노력은 하고 살았을까? 조선시대의 서화가이자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문학가였다. 특히 서화에 능했던 김정희 선생은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대성시켰으며, 예서, 행서의 새로운 전형을 남긴 분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도 유배를 포함해 다양한 인생 역정을 겪었던 그가 1844년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국보 180호로 지정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을 받는 이유도 버림을 받게 되는 이유도 다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세한도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孔子가 춘추 말 전국 시대 초, 새로운 사회 질서를 건립하고자 했을 때, 그 기반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고 할 때, 인간에게 있는 바로 그 이유 내지는 근거가 바로 인(仁)이다. 孔子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신에게 있다고 하는 그 믿음 체계를 벗어나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인간에게서 발견하였다. 엄동설한에도 시들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松)와 잣나무(柏) 그림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에게 있다.”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어려운 시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믿는다. 세한도 왼쪽에는 추사가 직접 쓴 글이 있다. 논어의 한 구절이 들어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세상이 추워지고 온통 눈으로 뒤덮여 추위와 바람만이 가득할 때 푸름을 잊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의 기상을 그린 세한도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를 깨달을 때쯤은 언제일까? 위기가 닥쳐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평소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정감 많은 사람이 위기가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의리와 신념을 쉽게 포기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나’를 두고 한 말 같은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에 어떤 나무가 정말 강한 나무인지 알 수 있듯이,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은 그 사람의 정신력과 위기 대응 지수를 알게 해 주는 좋은 기회다. 논어(論語)에서는 군자(君子)를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사람을’, 君子固窮’으로, 소인(小人)을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쳐버리는 사람’, ‘小人窮濫’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세상을 주유(周遊)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진(陳)나라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많은 제자들이 병들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을 때였다. 다혈질로 유명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따졌다. 선생님! 군자가 이렇게 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까? 공자를 믿고 따르는 아무 죄 없는 제자들이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를 따지고 든 셈이다. 공자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인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곧 원칙을 버리고 넘치고 마는 사람으로 나타내고 있다. 세한도는 君子다운 삶을 버리고 小人輩들로 넘쳐나는 모습을 질타하는 모습이다. 이말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두 가지 형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즉 어려움(窮)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궁(窮)한 상황에서 더욱 단단해(固)질 것인가? 아니면 넘쳐(濫)흘러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할 것인가? 자신은 어떠한가? 성공한 사람, 행복한 사람들은 그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각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면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1999년 5월 31일 ‘Time’ 매거진은 ‘It’s True. Asians Can’t Think.’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다. 신밍 셔우라는 기자는 싱가폴 정치인인 키쇼 마부바니가 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1,000년 전 송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 서방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아시안들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했다.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에게는 먼저 만든 제도, 물건, 생각이 없다. 그 말은 우리가 먼저 생각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생각은 가치다. 수준 높은 가치를 가지려면 우리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왜? 그런가? 책 속에는 높고 넓은 가치의 생각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가방도 좋지만, 좋은 책을 들고 다니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왜 생각을 하는 나라와 생각을 하지 않는 나라로 나뉘어질까? 또 왜 생각을 하는 사람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갈리는 걸까? 우리는 인간의 노력이 투입되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땀과 피가 들어가서 이루어지는 문명이라는 두 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문명사회라고 한다. 따라서 문명사회를 일구어 가는데 책임을 지닌 사람들은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를 움직이고 이해하고 통제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 세상이 인위적으로 되어 있는데, 이 세상에 맞추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삶 자체가 인위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다 일부러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왜? 생각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은 생각의 결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과 인간이 만들지 않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각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이루어놓은 것을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문화가 주도한다. “K-culture” 모든 삶의 비밀은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에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텨낸 고궁(固窮)의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위기 때 애국심을 발휘해 자신의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고전은 어떤 것보다 나를 지켜주는 단단한 갑옷이 된다. 고전으로 점철된 자기를 만드는 길은? 당신, 지금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나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고, 앞으로도 그리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시대의 흐름에 몸을 채 못 가누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파도가 높을수록 자세를 낮추고 정신을 또렷이 차려야 하는 법, 모든 게 뒤바뀌고 엎어지는 시기일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삶의 무게 중심이다. 격변의 흐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에, 우리의 하루하루는 너무도 소중하다. 이제는 ‘자기로 존재하고 자기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우리’를 강조하는 사회여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시대가 새로워지고 새로운 꿈을 가지려면 기존에 있는 모든 것들과 결별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자기 것을 다 잃어야 새로운 것을 가질 수 있다. 기존에 있는 것과 불화를 빚지 않고 새로운 전진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거다. 자기가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기준이 자기한테 있지 않고 외부에 있으면 안 된다. 자기를 보는 시선이 외부에 있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행복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롭지 않으면 창의적일 수 없게 된다. 자기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주인이고, 자유로움과 차이도 내가 기준이고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 행위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 바람직함에 매몰되지 말고 자기가 바라는 것에 더 집중하고, 해야 하는 것에 매몰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추구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주인으로 사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희망을 만들어내려고 덤비느냐, 덤비지 않느냐다. 단 한 명이라도 정말 진실하게, 정말 가장 높은 지성적 차원에서 역사와 사회를 걱정하고 헌신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주역(周易)에 ‘지중유산(地中有山)’이란 말이 있다. ‘땅속에 산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큰 산을 마음속에 품지 않으면 이념의 노예가 되거나 기준의 노예가 된다. 큰 산 하나를 품고 있으면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 된다. 남의 위대함에 대해 손뼉 치고 숭배하는 삶은 이제는 접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위대해지는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묻고 결정하는 사람의 삶? 멋지지 않은가? 오늘은 문득 ‘나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를 생각해 본다. 살다 보면 수많은 어려움과 마주한다.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들 앞에서 무너질 때도 많다. 그래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단지 강해지는 게 아니다. 부러지지 않고 버티는 게 아니다. 그보다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보면서, 삶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하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서 자신이 한 답으로 살아가는 삶? 단단해지는 삶이 아닐까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제대로 된 당신을 꿈꾼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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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삶? 단단해지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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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안리를 넘어 골목으로
- [교육연합신문=김진 기고] 부산 수영구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분명하다. 광안리의 바다, 광안대교의 야경, 관광과 축제의 공간. 그러나 이 이미지가 수영구 행정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다시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바다에서 몇 걸음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수영구가 펼쳐진다. 시장과 골목, 주거지와 학교, 그리고 그 안에서 이어지는 주민들의 일상이다. 도시의 얼굴과 삶의 중심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정은 화려한 상징보다, 조용히 반복되는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최근 수영구를 둘러싼 여러 논의의 중심에는 행정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광안리만 수영구가 아니다”라는 문제의식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이는 특정 인물이나 선거를 전제로 한 주장이 아니라, 수영구 행정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화두로 읽힐 수 있다. 관광 중심의 외형 성장은 도시의 인지도를 높이고 활력을 불어넣어 왔다. 하지만 동시에 생활권과의 간극, 주민 체감도의 한계라는 과제도 남겼다. 이 지점에서 골목경제, 주거환경, 노인과 청년의 삶을 행정의 중심 의제로 다시 바라보자는 제안은 충분히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도시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보다, 그 성장이 주민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에서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갈등 관리다. 개발, 복지, 예산 배분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행정을 ‘결정의 속도’가 아닌 ‘조정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협치와 소통이 필수 조건이 된 오늘의 지방자치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특정 개인의 강점이라기보다, 앞으로의 지방행정이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역량에 가깝다. 아울러 행정을 개인의 성과 경쟁이 아니라 조직과 지역 공동체의 협업 구조로 이해하는 관점도 중요하다. 공직자와 의회, 주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도 지속되기 어렵다. 보여주기식 성과보다 과정의 투명성과 참여가 강조되는 이유다. 결국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진다. 수영구는 앞으로도 상징과 이미지의 도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생활과 일상이 기준이 되는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이는 특정 인물을 평가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수영구 행정 전반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지방자치는 인물을 넘어 방향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바다를 넘어 골목으로’라는 문제 제기는, 수영구의 다음 행정을 상상하고 논의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진 ◇ 부산수영구 출생(1964년생), 50년 지역 거주 ◇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 ◇ KBS 방송작가 10년 ◇ 제8, 9대 수영구의회 의원 ◇ 제8대 수영구의회 의장(의회 청렴도 평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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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안리를 넘어 골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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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 CCTV, 교육을 ‘감시’로 대체할 수는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안전과 예방이라는 명목하에 추진되는 교실 내 CCTV 설치는 교육의 공간을 거대한 ‘감옥(파놉티콘)’으로 변질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학교는 통제와 감시가 아닌, 신뢰와 성장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실 내 CCTV 설치 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지극히 사적인 교육의 공간이다. 모든 발언과 행동이 24시간 기록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육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방어적 수업에 치중하게 되고, 학생들은 감시받는 환경 속에서 자율성을 상실한 순응하는 기계로 길러지게 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인격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처사다. 설치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학교 폭력이나 교권 침해 상황에서 CCTV가 객관적인 증거 자료가 되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식별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각지대를 없앰으로써 범죄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기술적 감시가 인간의 도덕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CCTV는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없는 곳으로 문제를 옮기는 ‘풍선 효과’를 불러올 뿐이다. 무엇보다 교육 현장에 불신의 씨앗을 심어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신뢰 관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문제의 해결은 감시 장비 도입이 아니라, 상담 인력 확충과 교육적 회복 프로그램 강화라는 근본적 대책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CCTV 설치는 교육적 해법을 포기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감시 카메라 아래에서 진정한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감시받고 있으니 조심하라’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존중하라’는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학교를 감시의 공간으로 만드는 CCTV 설치 계획을 철회하고, 무너진 교육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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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 CCTV, 교육을 ‘감시’로 대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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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의 하루는 어디까지 이어져야 할까
- [교육연합신문=한난희 기고] 권씨 집안 며느리들이 모인 자리는 늘 그렇듯 정겨운 온기로 시작된다.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 위로 웃음이 번지고, 아이들 이야기가 오가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그러나 그 온기 아래에는 쉽게 꺼내지 못한 현실의 무게가 함께 놓여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버텨낸 이들이 안부를 묻다 보면, 대화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멈춘다. “둘째는 생각도 못 해요.” 그 한마디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수없이 고민하고 계산한 끝에 나온 솔직한 고백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 또 한 명의 하루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이 장면은 특정 가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설렘 뒤에는 많은 부모들이 비슷한 현실과 마주한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정규 수업은 대체로 정오 무렵, 길어도 오후 1시 전후면 마무리된다. 아이의 하루는 아직 한참 남아 있지만, 학교에서의 시간은 그 지점에서 멈춘다. 부모에게 그 이후의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을 요구받는 순간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돌봄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가정으로 이동하지만, 모든 가정이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혼자 두기 어렵고, 일터를 비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들은 여러 선택지 앞에 선다. 그중 가장 손쉬운 대안은 학원이다. 그렇게 사교육은 교육의 연장이기보다 돌봄의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하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계의 몫으로 남는다. 최근 초등 저학년을 위한 다양한 돌봄 정책이 논의되고 시행되고 있다. 이는 분명 필요한 시도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돌봄이 ‘선택’의 형태로 제공될 때, 그 선택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보호를 위한 제도가 아이들에게 또 다른 구분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정책의 방향을 한 번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돌봄을 별도의 선택으로 남겨두기보다, 초등 저학년의 하루를 오후 3시까지 하나의 연속된 교육 과정으로 설계할 수는 없을까. 오전에는 기존 교과 수업을, 오후 시간에는 AI 기반 기초학습과 디지털 소양, 예체능과 탐구 활동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는 담임교사의 부담을 늘리는 구조가 아니라, 전담 교사와 전문 인력이 역할을 나누어 함께하는 체계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하교 시간을 늦추는 문제가 아니다. 사교육으로 흘러가던 돌봄 비용을 공교육 안에서 흡수하고, 아이의 하루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구조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나누지 않고, 모든 아이가 같은 시간·같은 공간에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 동시에 청년 인재와 지역 강사가 학교로 유입되며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아이를 낳으라는 말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이미 태어난 아이의 하루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부모가 일터에서 시계를 보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사회, 아이가 학교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정오 무렵 멈춰버리는 아이의 하루를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단단하게 이어보자는 제안. 그것이야말로 출산 장려라는 구호보다 먼저, 아이의 하루를 책임지는 사회가 지금 교육 정책에 가장 시급하게 던져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 한난희 ◇ 모동중학교 학부모 운영위원 ◇ 前모동중학교 학부모 운영위원장 ◇ 前부산광역시교육청 학부모 운영위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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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의 하루는 어디까지 이어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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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알맹이 빠진 교권 보호, 이재명 정부는 ‘학생부 기재’ 즉각 수용하라
-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는 중대 교권 침해 사항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를 포함한 실효적인 교권 보호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강화 방안은 현장의 비극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교사 폭행과 성범죄 수준의 교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도 학생부에 기록되지 않아 학생들은 자신의 행위를 가볍게 여긴다. 학생부 기재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는 최소한의 교육적 장치다. 또한 이는 대다수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예방 조치다. 일부에서는 학생부 기재가 학생에게 ‘주홍글씨’가 되어 낙인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재를 피하기 위한 학부모의 무분별한 소송 제기가 남발되어 학교 현장이 법적 분쟁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낙인을 우려해 범죄 수준의 폭력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방임이다. 소송 남발의 문제는 ‘교육활동 소송 국가책임제’와 같은 강력한 법적 지원 체계를 통해 해결할 일이지, 기록 자체를 포기할 근거가 될 수 없다. 가해 학생의 인권만 보호하느라 피해 교사의 생존권과 교실 질서가 무너지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는 ‘알맹이 없는 선언’을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학생부 기재를 포함하여 교총이 제시한 ‘5대 핵심 과제’를 국정 과제로서 완수하라. 실효성 없는 대책은 모래 위에 지은 성일 뿐이며, 교권이 무너진 교실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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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알맹이 빠진 교권 보호, 이재명 정부는 ‘학생부 기재’ 즉각 수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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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省察?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금 우리의 경제 구조, 정치 구조, 교육 구조가 새로운 방향으로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교육자들도,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기업인들도 다 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누구의 철학을 취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것!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포착해야 할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나타난 철학을 훈고하거나 끌어들여 사용해 보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신적 독립을 시도해 보는 일이 아닐까? 선진 사회, 선진 국가 수준으로 상승하는 일이 아닐까? 이쯤에서 1880년에 태어나 1936년에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의 말을 다시 듣는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생각, 즉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사회나 모두 각자가 가진 시선의 높이를 넘어서 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살아야 딱 시선의 높이만큼 산다. 그래서 시선의 높이는 치명적이다. 시선이 높아야 마음이 크고, 시선이 낮으면, 마음도 작다. 작은 마음은 쉽게 차고, 큰마음은 어지간한 양으로도 잘 차지 않는다. 쉬이 차는 작은 마음은 쉽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르는 마음에 자만과 교만이 깃든다. ‘마음의 크기’가 삶의 크기다. 그래서 老子도 말한다. ‘大器免成’, 진정 큰 그릇에는 완성이 없다. 큰 그릇이 되는 건 끝이 있는 '완료형'이 아닌 계속해서 완성해 나가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만족함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혁신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큰 가르침이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근대 유럽의 정치구조가 나타나는 계기가 된 평화조약)부터 문명은 ‘국가’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적인 새로운 국제질서가 시작되었는데, 1800년대 중반부터 ‘근대’의 큰 흐름이 동아시아에 닥칠 때,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 처해있어, ‘근대’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학습·수용할 수 없었다. 공부도 시켜서 할 때와 주체적으로 알아서 할 때 사이의 실력에 큰 차이가 나듯이, 국가나 문명의 형성과 학습도 주체적이냐 종속적이냐에 따라 큰 실력 차이를 내게 된다. 개인이건 사회이건 국가이건, 앞선 생각으로 주도권을 갖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갖는 분기점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입인들만 앞장 서서 실천을 한다. 왜, 실천을 하느냐? 안 하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교육자들, 관료들은 앞장서서 실천을 안 해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기업인들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한 공동체의 승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인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데,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동시에 생각하는 예민함이 있다. 인문학은 생존과 직결되며,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 서는 예민함의 필요함을 일러주므로 기업가들이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늘 어떻게 해야 할까?, 즉 전방에 보초를 서는 척후병처럼, 모든 주변 상황을 예민하게 주시하는 경계 태세, 즉 조짐을 찾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불안하고 모호하다. 불안과 모호함을 견디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경계에 서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다. 결국, 모호함과 두려움을 오롯이 감내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용기이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함량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려준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려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선진국에서, 즉 일류 국가에서 인류와 미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메시지’, ‘비전’, ‘생각들’을 받아들여서 그 사람들 대신에 잘 수행해 왔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인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창의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을 조금 더 앞서가는 일이다. 그럼,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계속 꿈꿔보는 일이다. 그럼, 창의력과 상상력을 높이는 길은 무엇일까? 대답하는 인재보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높이는 문화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특히 교육은 모든 정치 구조, 인재의 틀을 만드는 디딤돌이다. 한국 사회에서 요체는 뭐냐? 국민 각자가 역사적 책임성을 갖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의 역할’을 몸소 수행하는 것이다. 교육은 역사적 책임을 몸에 배게 하는 훈련장이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시민이 제대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 교육, 행정을 가지고 욕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시민들이 다 만들었다. 시민들이 만든 정치 구조며, 교육 구조, 교육 정책이다. 다 우리가 만든 것이다. 시민이 국가 운영의 방관자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 관료, 교육자들을 욕하기에 앞서, 그분들을 만든 근본이 우리 국민이라는 역사적 책임성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 역사와 사회를 내가 책임진다고 하는 자각과 실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역사적 책임성을 갖추는 것은 한국 사회의 발전과 관련되는 일이고, 우리의 생존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이것을 자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연수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는 일로써 자신의 역할이 끝나서는 어렵다. 이 역사는 우리의 눈물과 피와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일은 앞으로도 쉼 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모두가 曾子 선생의 ‘吾日三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曾子 선생의 성찰은? 인간성의 실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모든 정치, 경제, 교육의 구조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발휘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이 말도 曾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선조들의 진정한 삶의 가치인 ‘살림살이’, 즉 ‘三一哲學’에 이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주로 제자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숙제는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인간의 본질을 묻게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만드는 존재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인간은 변화를 만들며 산다.’고 최진석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문화적 존재다. 인간이 만든 세계, 곧 문명, 인간이 안 만든 세계,자연, 두 무대에서 사는 인간은 보이던 것에서 살다가 안 보이던 것으로 이동해서, 자기 영토를 건축하는 존재다. 해석되지 않은 것을 꿈꾸는 존재고, 생각하는 존재다. 어떻게 변화를 이루는가? 관념에 대한 생각과 질문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 변화는 어떻게 만드는가? 생각을 통해서다. 질문하고 관념을 깨고,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변화를 만드는 삶을 살 것인가? 변화를 수용하는 삶을 살 것인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종속적인 삶을 살 것인가? 자신에게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짐으로써 자신을 변화시켜 간다. 행복과 자유 또한 질문의 대상이지, 행복과 자유는 실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꿈꿀 수 있어야, 자유나 행복을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세계에만 매몰되지 말고, 질문하며 추상의 세상을 사유하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고 묻는 성찰의 시간이 현재의 자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왜? 인간이 변하고 달라지는가?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해결해야 될 내용과 방법도 달라진다. 그 해결하는 내용과 방법을 다르게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인간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은 그냥 들쑥날쑥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人文이라고 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크고 작은 선택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하나둘, 세어보는 삶, ‘自快’하는 삶의 길이지 않을까?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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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省察?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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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능 5등급 절대평가 전환, 교육 정상화의 마중물이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과 내신을 ‘5등급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았다. 수시와 정시 운영 시기를 통합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입시 전쟁터로 변한 학교를 구할 결단이다. 미래 교육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첫째, 상대평가 체제는 수명이 다했다. 9등급 상대평가는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2028 개편안처럼 내신만 완화하면 수능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 수능 점수만을 따기 위한 자퇴생도 늘어날 것이다. 수능을 5등급 절대평가로 바꿔야 학교 수업이 정상화된다. 둘째, 대학 서열화와 사교육 고리를 끊어야 한다. 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줄 세우기는 끝내야 한다. 절대평가로 등급 폭을 넓히면 점수 경쟁이 완화된다. 대학은 점수 대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보게 된다. 공교육은 비로소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크다.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 대학별 고사가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다. 1등급 안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2028 대입안도 시행 전인데 다음 단계를 논하는 건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는 선발의 편의만 생각한 계산이다. 대학별 고사 부활은 정교한 가이드라인으로 막을 수 있다. 소수점 점수 경쟁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더 크다. 교육 제도는 1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입시 지옥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기성세대의 직무유기다. 대입 제도의 핵심은 선발이 아닌 교육이어야 한다. 수능 5등급 절대평가는 학생을 공포에서 해방하는 첫걸음이다. 공교육을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입시 업계의 반발에 흔들리지 마라. 정부와 대학도 미래 인재를 뽑을 공정한 평가 시스템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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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능 5등급 절대평가 전환, 교육 정상화의 마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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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답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힘을 갖춘 사람’으로!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주역(周易)은 중국 고대의 철학적 경전으로, 변화와 우주의 법칙을 설명하는 체제입니다. 주역은 64괘(卦)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괘는 음양(陰陽)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의 모든 변화를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합니다. 주역의 핵심은 변화의 원리에 있으며, 이는 개인의 삶에서의 선택과 결정을 돕는 지혜로 여겨집니다. 주역은 음양의 조화와 자연의 흐름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역』이라는 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상의 삶에 묻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변역(變易)’, ‘불역(不易)’, ‘이간(易簡)’의 세 가지 의미로 설명되는데, 음양의 변화를 통해 이 우주 자연과 모든 존재들이 생겨났고, 음양의 규칙적인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변화해 간다는 음양 사상은 『주역』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저를 매료시키기에 차고 넘칩니다. 특별히 제 마음을 사로잡는 곤위지괘(坤爲地卦)의 괘상의 설명을 보면,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깊은 사유를 요구하며, 하늘이 창조하고 주도하는 힘이라면, 땅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끝내 생명으로 길러내고, 스스로 말하지 않고, 앞서 나서지 않으며, 다만 모든 것을 감당한다. 그러나 그 침묵과 낮음 속에는 만물을 살리는 근본의 힘이 있다.’ 하니 홀로 그런 사람을 사유하게 괘상입니다. 그래서 주역은 믿음의 시대에서 생각의 시대인 철학의 시대에서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를 가지고 욕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시민들이 다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이 만든 정치구조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핵심은 뭐냐? 역사적 책임성이라고 믿습니다. 왕정에서는 권력의 중심이 누구한테 있느냐? 왕에게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의 중심이 누구한테 있느냐? 市民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왕정에서 통치가 제대로 되려면, 왕이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통치가 제대로 되려면, 시민이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주역』에서 언급되는 주옥같은 말들이 우리 시민의식의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올바른 시민으로 거듭나는 일이고, 이 일에 앞장서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곤위지괘가 말하는 삶의 태도는 ‘이기는 삶’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삶’이며,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지탱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곤위지괘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君子以厚德載物”,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 땅은 스스로 높아지지 않지만, 모든 것을 떠받친다. 슬픈 일, 안타까운 현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닥쳤을 때, 나의 인생이 절망스러워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 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뇌의 심연에 빠졌을 때 그냥 순순히 응하며 흐름에 흘려보내는 때’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정해진 말을 따르지 않고 세계의 진실을 마주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이념, 개념, 지식은 세계의 공통된 부분만을 짜맞추어 놓은 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현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 말이 지시하고 있는 세계의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 주역의 핵심은 뭐냐? 역사적 책임성입니다. 이 시대 역사적 책임성이 왕에서 시민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왕이 책임진다고 하면 왕정이고, 아니여, 시민이여, 우리가 책임자면, 그러면 민주주의입니다. 이제는 시민 각자가 왕입니다. 왕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이 시민입니다. 이 시민의식이 없으면. 대통령을 왕으로 알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그러고 있습니다. 이 역사와 사회를 내가 책임진다고 하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대통령입니다. 소하는 한나라 건국의 중심에 있었으나 스스로를 중심에 세운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유방처럼 결단으로 돌파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한신처럼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소하의 자리는 언제나 뒤였습니다. 군량을 마련하고(糧道),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制度), 인재를 관리하는 일(任人)을 맡아, 전쟁이 가능하도록 보이지 않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싸움이 눈앞의 승부라면, 소하는 그 싸움이 성립되게 하는 땅이었습니다. 이는 주역 곤위지괘(坤爲地卦)가 말하는 자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곤(坤)은 앞서지 않고(不先), 다투지 않으며(不爭), 감당함으로 만물을 싣는 덕입니다. 또한 ‘월하추한신(月下追韓信)’의 일화는 곤(坤)의 성품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유방이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떠나보내려 했을 때, 소하는 밤길을 달려 한신을 붙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공을 내세우지 않았습다. 한신은 장수의 자리에, 유방은 주인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질서(位)를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소하는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고(不居功), 공을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坤卦의 가르침인 ‘암말의 바름’(利牝馬之貞)과 닮아 있습니다. 따르되 흐트러지지 않고, 낮되 자리를 잃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소하는 끝까지 그 땅의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면에 서지 않았으나, 그가 무너지지 않았기에 제국은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老子를 흔히 세상과는 등지고 사는 반문명적인 성인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孔子와 老子 둘 다 급변하는 현실을 타개할 통치 질서를 모색하려고 했던 위인들이었습니다. 공자는 당시를 혼란으로, 노자는 변화로 보았던 것입니다. 둘 다 현실 타개에 대한 다른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老子를 말하면 흔히 ‘無爲’라고만 기억합니다. 그런데 본래의 글자는 ‘無爲而無不爲’, 즉 무위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帝國’의 꿈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곤위지는 성취의 괘가 아니라 수용의 괘입니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네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지금 또는 앞으로 필요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나를 알고, 내가 왜 사는지 분명하고 확실해졌을 때, 잠시 멈춘 걸음을 다시 걷고, 가속력을 더해 달려가면 됩니다. 지식이 지식으로만 머물고, 실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모습은 창고에 쌓아 둔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그 자체로 생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땅에 심고 물을 주지 않으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곡식의 이름과 성질을 줄줄 외우고 있어도 밭에 뿌리지 않는다면 굶주림은 그대로인 것과 같습니다. 지식은 머릿속에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사용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대로 살게 됩니다. 생각은 그냥 머릿속을 스치는 게 아니라, 삶의 방향, 선택, 태도까지 결정짓는 근본적인 힘이라는 것입니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결국 내 인생의 판을 새롭게 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답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힘을 갖춘 사람’, 우리의 꿈이 아닐까요? 모든 것은 일상의 변함없는 지속, 그리고 선택과 집중에 있지 않을까요?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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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답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힘을 갖춘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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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행정통합의 거대 담론 속에 ‘교육’이 보이지 않는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의 메가시티 전략도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교육’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교육을 배제한 행정통합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교육 중심의 통합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은 지역 정주 여건의 핵심 요소다. 젊은 층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교육 환경 탓이 크다. 행정 구역만 합치는 것은 알맹이 없는 통합이다. 교육 격차 해소 방안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교육과 행정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메가시티가 성공한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통합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행정 체급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시각이다. 교육 자치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따라서 행정 통합 이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이는 선후관계를 오판한 것이다. 교육 인프라가 뒤처지면 주민 불편과 비용만 늘어난다. 세종시 출범 당시의 혼란이 이를 증명한다. 교육은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통합의 전제 조건이다. 교육 자치는 소외의 핑계가 될 수 없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즉각 구성해야 한다. 메가시티 논의에 교육 전문가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교육이 빠진 메가시티는 미래 세대에게 외면받는다. 경제 논리를 넘어 교육 중심의 통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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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행정통합의 거대 담론 속에 ‘교육’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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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자 프로배구, 강서에서 확인한 잠재력
- [교육연합신문=김상수 기고] 부산 강서실내체육관이 주황빛 열기로 가득 찼다. 남자 프로배구 OK저축은행 읏맨의 첫 부산 홈 개막전 입장권이 티켓 오픈 하루 만에 전석 매진되며, 경기 당일에는 3층 스탠드까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단 한 경기만으로도 부산 시민이 얼마나 오랫동안 배구를 기다려 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OK저축은행 읏맨의 부산행은 상징성이 크다. 안산에서 부산으로 연고를 옮기며 ‘영남권 최초 남자 프로배구단’을 공식화했고, 이는 한국배구연맹 이사회 승인을 통해 확정됐다. 이로써 부산은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에 이어 프로배구까지 더한, 4대 프로스포츠 구단을 모두 보유한 도시가 됐다. 흥행 성적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개막전 대한항공전 4,300여 명을 시작으로 현대캐피탈전 3,500여 명, KB손해보험전 2,500여 명, 삼성화재전 2,100여 명, 우리카드전 4,300여 명이 입장했다. 홈 초반 경기 평균 관중은 3,3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수도권과 충청권이 아닌 지방에서도 프로배구가 충분히 흥행할 수 있다는 분명한 근거다. 이 열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부산에는 초·중·고 13개 배구팀과 실업선수 197명, 생활체육 배구동호인 약 1,700명이 활동하는 탄탄한 저변이 있다. 그동안 프로구단이 없었을 뿐,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현장에서 축적된 에너지가 이번 연고 이전을 통해 ‘우리 팀’을 만난 셈이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경기장 밖의 변화다. 경기가 열린 강서실내체육관 일대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과 타지역 원정 팬들이 몰리며 활기가 넘쳤다. 문화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서부산권에 새로운 동력이 더해졌고, 지역 상권에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홈경기 평균 관중 3,000명 기준으로 연간 약 5만 명이 강서체육공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수단과 구단 관계자의 숙박·외식·카페 이용, 경기일 주변 상권 매출 증대까지 고려하면 프로배구는 서부산권 지역경제 활성화의 확실한 촉매가 될 수 있다. 구단과 지역의 상생 구상도 본격화되고 있다. 배구단은 유소년 배구교실과 초등학교 대상 찾아가는 배구교실, 시민 참여형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부산시 역시 배구 꿈나무 육성과 생활체육 저변 확대, 시설 개선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시즌 내내 꾸준한 관중 참여를 유지하고, 유소년·학교·생활체육을 아우르는 촘촘한 배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나아가 부산의 경제·문화·관광과 결합한 장기적인 스포츠 도시 전략을 마련하고, 영남권 전체가 함께 응원하는 광역 팬 베이스를 형성해야 한다. 강서실내체육관에서 시작된 이 열기가 부산 전역, 더 나아가 영남 전역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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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자 프로배구, 강서에서 확인한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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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염에 갇힌 교실…‘찜통 교실’이 학생 학습권을 위협한다
- [교육연합신문=이윤규 기고] 해마다 반복되는 여름철 폭염은 이제 예외적 재난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대응은 여전히 임시방편에 머물러 있다. 특히 옥상층 교실은 낮 동안 축적된 열이 밤새 빠져나가지 못해, 아침부터 ‘찜통 교실’이 된다.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집중력을 잃고 두통과 피로를 호소하며, 교사는 수업을 이어가기조차 버거운 상황에 놓인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온 환경은 학습 집중도와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장시간 노출 시 학생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육의 질과 학생의 안전이 동시에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학교의 주된 대응책은 에어컨 가동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 냉방을 강화할수록 전력 소비는 급증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교육 예산과 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학교 전기요금은 급격히 늘었고, 냉방이 에너지 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냉방을 강화해도 옥상층 교실의 구조적 열 유입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전국 학교 전기요금은 7260억 원으로, 2020년 4223억 원 대비 72% 늘었다. 특히 여름철(6~7월) 전기요금은 전년 대비 42.8% 증가했으며, 학교 에너지 소비 중 냉방 비중은 약 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상층 교실의 경우 열 축적으로 인해 냉방 부하가 기준 대비 30~40% 이상 초과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으나 현장 체감도는 낮다. 교육부는 2024~2028년까지 학교 시설 개선에 총 29조 원을 투입하고, 이 중 냉난방 및 창호 교체에 9.5조 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연간 냉방 시설 개선 예산은 515억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장에서는 이미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아침부터 교실이 달궈져 에어컨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시설 담당자의 말은, 지금의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일부 학교가 옥상층 수업을 지하나 1층으로 옮기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후퇴’에 가깝다. 현장에서는 이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 냉방을 강하게 하면 에너지 절약 지침에 걸리고, 가동을 줄이면 학생 불만과 학습 저하가 발생한다. 결국 갈등의 책임은 학교장과 교사에게 전가된다. 이는 명백한 정책 실패의 결과다. 이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핵심은 분명하다. ‘냉방을 늘리는 정책’에서 ‘열을 차단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이미 충분히 검증돼 있다. 첫째, 옥상층 교실의 단열 성능을 우선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최소한 옥상층이라도 고반사·복사냉각(Radiative Cooling) 도료를 통해 태양 복사열 유입을 구조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셋째, 교실에는 천장형 공기순환팬을 표준 설비로 도입해 냉기가 교실 전체에 효율적으로 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냉방 부하를 30~40%까지 줄일 수 있으며, 전기요금 절감과 탄소 저감이라는 이중 효과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학생이 체감하는 실내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된다. 이제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의지다. 학교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폭염 속 교실 문제를 ‘예산 부족’이라는 말로 반복 설명하는 데서 멈출 것인가? 교육부와 교육청은 결단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여름철 평균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찜통 교실’ 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 건강과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학교 건물의 친환경 개보수와 지속 가능한 냉방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찜통 교실 문제를 시설 관리의 부차적 사안이 아닌, 교육의 핵심 인프라 문제로 규정해야 한다. 단년도 예산이 아닌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폭염 취약 학교부터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학생에게 “조금만 참아라”라고 말하는 교육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매년 같은 여름’, ‘같은 고통’, ‘같은 책임 회피’가 반복될 뿐이다. 폭염 시대의 교육은, 건물과 기술을 바꾸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폭염은 앞으로 더 잦아지고 더 강해질 것이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매년 같은 논쟁과 같은 고통이 반복될 뿐이다. 에어컨 몇 대를 더 설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 건물과 기술을 바꾸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고, 교육 현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 이윤규 ◇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실내환경관리센터 센터장 ◇ 한국환경한림원 홍보협력위원장 ◇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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