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7(금)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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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200만 원짜리 거짓말을 한다. 영화의전당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16년. 직장 옆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 불리는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 규모만큼이나 사람도 넘쳐난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낮에도 도로가 주차장처럼 막히기 일쑤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5시 야외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나는 오후 2시에 출근한다. 연주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리허설을 지켜본 뒤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차를 가지고 가려면 정오 무렵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두 시간쯤 지나면 백화점 인파로 도로가 꽉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 체증 속에서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백화점 식당가에는 언제나 다양한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1년 전 오늘, 2025년 4월 1일 화요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오전 10시, 부산의료원장이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새로 취임한 배우 출신 대표에게 병원 홍보영상 제작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원의 회생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준비 중이라는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11시에는 서울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생중계 회의가 진행됐다. 예상보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관객들에게 따뜻한 복장을 안내하는 문자 발송과 현장 안내판 설치까지 세세한 논의가 이어졌다. 회의를 마친 뒤 공연팀 동료들과 백화점 식당가로 향했다. 그날의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라면과 우동사리를 추가해 배가 터질 듯 먹고 나왔다. 

 

그러나 배부름도 잠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신호가 찾아왔다. 급히 1층 스타벅스 뒤편 화장실로 향했다. 두 번째 칸에 들어가 앉는 순간, 시야에 낯선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왼쪽 휴지걸이 위에 놓인 큼지막한 손지갑. 순간 손이 멈췄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오만원권 지폐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대략 100장, 500만 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여긴 CCTV 천국이다.’ 짧은 갈등 끝에 나는 안내센터로 향했다. 분실물 습득 신고를 하고 명함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 괜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후 3시, 부산시의회 정책지원담당관 미팅이 있어 자리를 옮겼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운대경찰서 우동지구대였다. 조금 전 습득한 지갑과 관련해 확인할 사항이 있으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보상금. 법적으로 습득자는 일정 비율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20%라면 100만 원. ‘100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구대에 도착하자 경찰관은 신분 확인을 마친 뒤 봉투 하나를 건넸다. 지갑 주인께서 감사 인사와 함께 전해달라고 하셨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오만원권 40장. 200만 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잠시 망설이자 경찰관이 덧붙였다. “보상금은 100만 원이고, 나머지는 법적 기준에 맞게 전달된 금액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갑 주인은 어떤 분입니까?” 경찰관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해운대역 인근 사찰의 스님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스님은 신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봉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때 경찰관이 작은 종이 하나를 건넸다. 사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펼쳤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한 줄을 바라보았다. 만우절. 이 이야기를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사람들은 처음엔 진지하게 듣는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 ‘200만 원 봉투’ 대목에 이르면 분위기는 금세 달아오른다. “대박이다!”, “오늘 저녁은 네가 쏴라!”, “회에 소주 가자!” 그들의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나는 마지막 한 줄을 꺼낸다. "그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었냐면, 만우절.”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한숨과 야유가 터져 나오고, 곧 웃음이 번진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짧은 이야기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웃음으로 끝나는 시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연극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또 하나의 거짓말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웃음을 남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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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승우 

◇ (재)영화의전당 공연본부장 

◇ 동천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 부산시 영화영상정책위원회 위원 

◇ 부산 남구립예술단 운영위원 

◇ 부산연극연극상 선정위원 

◇ 부산창작오페라단 이사 

◇ 前부산문화재단 이사 

◇ 前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운영위원 

◇ 前부산국제연극제조직위원회 부집행위원장 

◇ 前부산연극협회 부회장 

◇ 2025년 국무총리표창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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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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