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6(토)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춘하추동”이라 부른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나타내는 이 네 글자는 마치 처음부터 추상적인 시간의 구분을 뜻하는 듯하다. 그러나 갑골문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훨씬 생생하다. 계절을 나타내는 글자들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고대인이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관찰한 자연과 생명의 순간들이 그림처럼 새겨진 흔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춘풍(春風), 하계(夏季), 만추(晩秋), 동면(冬眠) 같은 단어를 쓰며 계절을 언어로 호명한다. 하지만 이 네 글자가 어떻게 지금의 형태로 정착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가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깊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 봄 - 새싹이 움트는 순간, 春
봄은 언제나 시작의 계절이다. 갑골문 속 春은 해(日)와 땅에서 막 솟아나는 새싹을 그린 모습이었다. 마치 한 점 씨앗이 움트며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장면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그림 18] ‘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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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금문에서는 풀(艹의 전신)과 뿌리내림(屯의 초기형)이 결합되고, 거기에 해(日)가 더해졌다. 결국 해서체에 이르러서는 艹(풀) + 屯(싹 틔움) + 日의 구조로 정리되어 오늘의 春자가 되었다.
즉, 봄이라는 계절은 추상적인 “시간 단위”가 아니라 햇살을 받아 씨앗이 깨어나는 생명의 관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입춘(立春), 춘설(春雪) 같은 말 속에도 늘 생명과 새로움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 여름 - 더위에 지친 몸, 夏
여름은 뜨겁다. 갑골문 속 夏는 해 아래서 팔다리가 축 늘어진 사람의 형상을 담았다. 태양의 열기에 머리에서는 열기가 솟고, 사지(四肢)는 힘없이 처져 있다. 글자 하나에 “더위에 지친 몸”이라는 생생한 체험이 담겨 있는 셈이다.
금문으로 가면 이 사람 형상 위에 해(日)가 얹혀진다. “뜨거운 햇볕 아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소전 단계에서는 머리 부분이 頁(혈)의 전신으로 정리되고, 해서체에 이르러서는 팔이 생략되고 다리만 夂 모양으로 남아 지금의 夏자가 완성되었다.([그림 18] ‘夏’ 참조)
우리가 하복(夏服)을 입고, 하계(夏季)를 보내며, 여름방학을 즐긴다고 말할 때, 그 속에는 사실 고대인이 더위에 늘어진 몸을 문자로 남겨둔 기억이 숨어 있는 것이다. 
 
□ 가을 - 귀뚜라미와 곡식의 계절, 秋
가을, 한자로 秋를 쓰면 흔히 벼(禾)와 불(火)의 결합이라고 배운다. 볕에 벼가 익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초기의 秋자는 귀뚜라미를 옆으로 눕혀 그린 상형이었다. 다리와 더듬이가 표현된 이 작은 곤충은 울음소리가 “추추”로 들려 가을을 알리는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리로 계절의 변화를 느꼈고, 글자에도 담았다.([그림 18] 秋 참조)
이후 금문 단계에서 귀뚜라미 옆에 벼(禾)와 불(火)이 더해졌다. “볕에 곡식이 익는다”는 농경적 의미가 추가된 것이다. 소전과 해서에 이르러서는 곤충 도상이 생략되고 禾와 火만 남아 오늘날의 ‘秋’ 자가 되었다.
그래서 추호(秋毫, 털끝처럼 미세함), 만추(晩秋), 추상(秋霜) 같은 말 속에는 단순히 곡식만이 아니라, 곤충 소리에 귀 기울이던 고대인의 감각이 함께 녹아 있다. 
 
□ 겨울 - 차가움과 탯줄, 冬
겨울은 차갑고 고요하다. 그런데 갑골문 속 冬은 의외로 갓난아이의 탯줄을 닮은 형상에서 출발했다. 둥글게 휘어진 선이 마치 배꼽과 탯줄을 연결한 듯하다.
왜 겨울에 탯줄일까? 갓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은 바로 “춥다”는 것이었다. 고대인은 이 신체적 체험을 겨울이라는 계절에 빗댄 것이다.
금문에서는 그 안에 해(日)가 들어가 ‘계절의 한 시점’을 강조했고, 소전에서는 해 대신 얼음을 뜻하는 부호(冫의 전신)가 자리 잡았다. 해서에서는 위쪽의 움직임 표지 夂와 좌측의 冫이 결합해 오늘날의 冬이 되었다.([그림 18] 冬 참조)
그래서 동계(冬季), 동면(冬眠), 월동(越冬) 같은 단어에는 단순히 추위 이상의 삶과 탄생의 기억이 겹겹이 깔려 있다. 
 
□ 문자에 새겨진 시간의 철학
춘하추동, 이 네 글자는 갑골문에서 출발해 금문, 소전, 해서로 이어지며 점점 간결해졌다. 처음에는 그림 같은 도상(icon)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부수와 구조가 정제되며 체계적인 문자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이 단순히 필기 효율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연의 관찰(햇살, 초목, 곤충, 추위)과 인간의 체험(더위에 지친 몸, 아기의 탯줄)이 문자로 응축되었고, 그 의미가 세대를 거쳐 농경적·사회적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춘추전국(春秋戰國)’이라든가 ‘하계 올림픽(夏季)’,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동지(冬至)’처럼 당연하게 쓰지만, 그 뿌리에는 고대인의 감각적 경험과 생명에 대한 통찰이 배어 있다. 
 
□ 오늘의 독자에게
이제 “춘하추동”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것은 단순히 사계절을 나열한 말이 아니다. 씨앗이 움트는 새싹, 더위에 지친 몸, 귀뚜라미 소리, 아기의 탯줄 같은 구체적 체험이 문자로 응고된 언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글자 하나하나는 사실 자연과 인간이 나눈 오래된 대화의 기록이다. 그래서 한자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뜻을 아는 일이 아니라, 그 속에 새겨진 수천 년 전 사람들의 감각과 세계관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춘하추동은 시간의 이름이자,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관계의 압축 파일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순간, 우리는 언어를 넘어 삶과 문화의 깊은 층위에 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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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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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 속에 새겨진 계절의 기억(春夏秋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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