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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매달 반복되는 원발성 월경통, 프로스타글란딘과 중추신경 감작의 연결고리 풀기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자궁이 보내는 경고음, 원발성 월경통의 원인과 유병률 - 원발성 월경통(Primary dysmenorrhea)은 골반 내 뚜렷한 기질적 이상 없이 월경 주기에 맞춰 발생하는 하복부의 경련성 통증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70개국 자료를 종합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원발성 월경통은 여성 인구에서 매우 높은 유병률을 보이며 일상생활과 학업·업무 수행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대표적 여성 건강 문제로 지목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이 통증의 핵심은 자궁 내막에서 과도하게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염증 매개 물질이 자궁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고 혈류량을 감소시켜 허혈성 통증을 유발하는 데 있습니다. 월경통으로 인해 반복되는 통증 신호는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되며, 점차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 상태를 초래하여 신경학적 만성 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2. 진통제만으로 월경통 관리가 어려운 이유와 숨은 위험성 - 현재 원발성 월경통의 1차 치료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와 경구 피임약이 주로 처방됩니다. 이들 약물은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차단하여 급성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진통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거나, 장기 복용 시 위장관 장애, 신장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어 복용을 중단하곤 합니다. 식물 유래 한약 치료(plant-derived therapies)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러한 기존 약물의 한계와 부작용 우려 때문입니다. 특히 현재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대상 질환에 월경통이 포함되면서, 표준화된 한약 치료에 대한 치료 접근성도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월경통이 동반하는 심리적 부담입니다. 매달 반복되는 심한 통증은 신경면역학적 불균형을 유발하여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진통을 넘어 신체 전반의 신경학적 안정과 염증 제어를 돕는 다각적인 접근이 절실합니다. 3. 뇌 신경망 연구를 통한 월경통의 뇌과학적 재해석 - 최근 뇌과학 연구는 월경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의 신경영상 기법을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 원발성 월경통을 앓은 여성들은 통증을 지각하고 조절하는 뇌의 특정 네트워크(대뇌피질-변연계 등) 구조와 활성도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자궁에서 시작된 말초의 염증 신호가 뇌의 통증 조절 회로를 교란시켜,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월경통 치료가 자궁 수축 억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중추신경계의 과흥분을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4. 원발성 월경통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과 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이러한 맥락에서 한의학 치료는 월경통 관리에 있어 효율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효과와 기전이 최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침 치료는 뇌의 통증 조절 네트워크를 정상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fMRI를 이용한 연구에서 침술은 월경통 환자의 비정상적인 뇌 기능적 연결성을 조절하여 중추성 진통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양한 침 관련 치료를 비교 분석한 네트워크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침 치료는 통증 강도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대만에서 19년간 진행된 대규모 코호트 추적 연구에서는 원발성 월경통 환자에게 꾸준히 침 치료를 시행한 결과, 신경면역 조절 기전을 통해 향후 우울증으로 이행될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침 치료가 단순 진통을 넘어 중추신경계 보호 효과를 지님을 의미합니다. 한약 역시 다양한 약리 성분이 여러 병리적 표적에 동시에 작용하여 자궁 내 염증 환경과 혈류 개선에 기여합니다. 월경통에 다용되는 대표적 처방인 온경탕은 최신의 인공지능 기반 약리분석 연구를 통해 염증 발현의 핵심 경로인 PI3K/AKT/NF-κB 신호 전달을 억제하여 하복부의 혈류에 장애를 야기하는 원인 염증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근래의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에서는 월경질환 치료에 오랜 기간 활용돼 온 계지복령환이 위약군에 비해 월경통 강도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특정 처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발표된 국내 다기관 전향적 관찰연구에서도 환자 맞춤형 한약 치료가 진통제 복용량을 줄이고 통증 지속 시간을 단축하는 데 유의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월경통 자가 관리법 - 임상적인 한의 치료와 함께, 일상생활에서의 적극적인 관리 요법을 병행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만성 월경통을 관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 요법 :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천연 진통제입니다. 29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를 종합한 네트워크 메타분석에 따르면, 규칙적인 요가, 스트레칭, 중등도의 유산소 운동은 골반 내 혈류 순환을 개선하고 통증 유발 물질을 배출시켜 월경통 강도를 뚜렷하게 감소시킵니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기저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온 유지와 하복부 보온 : 한의학에서 말하는 '한응혈어(寒凝血瘀, 차가운 기운이 혈액을 뭉치게 함)'는 실제 생리학적 혈관 수축과 일치합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유지하여 골반 근육의 긴장을 풀고 미세혈류 순환을 돕는 것이 좋습니다. 생리통을 '여성이라면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진통제에만 의존한 채 위장 장애와 우울감을 감내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궁의 국소적 염증을 다스리고 중추신경계의 예민함을 잠재우는 과학적인 한의 치료와 올바른 운동 습관을 통해, 매달 찾아오는 통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을 누리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de Arruda GT, Barbosa-Silva J, Driusso P, Pathmanathan C, Armijo-Olivo S, Avila MA. Worldwide prevalence of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cross 70 countries. Pain. 2026 Jan 1;167(1):41-55. doi: 10.1097/j.pain.0000000000003768 2.Iacovides S, Avidon I, Baker FC. What we know about primary dysmenorrhea today: a critical review. Hum Reprod Update. 2015 Nov-Dec;21(6):762-78. doi: 10.1093/humupd/dmv039. 3.Cho SI, Jung HJ, Park M, Kim DI. Effectiveness and safety of herbal medicine on treatment of dysmenorrhea: An analysis of a multicenter, prospective observational study. Integr Med Res. 2026 Mar;15(1):101209. doi: 10.1016/j.imr.2025.101209 4.Wu L, Xu Lou I, Hu Z, Wang G, Deshpande SV, Cáceres-Matos R. Efficacy of Plant-Derived Therapies for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Phytother Res. 2026 Apr 15. doi: 10.1002/ptr.70324 5.Tsai IC, Hsu CW, Chang CH, Lei WT, Tseng PT, Chang KV.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Different Exercises for Reducing Pain Intensity in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Sports Med Open. 2024 May 30;10(1):63. doi: 10.1186/s40798-024-00718-4. 6.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2023:8307249. 7.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 Feb 18;2023:8307249. doi: 10.1155/2023/8307249. 8.Liao CC, Lin CL, Tsai FJ, Chien CH, Li JM. Acupuncture's long-term impact on depression prevention in primary dysmenorrhea: A 19-year follow-up of a Taiwan cohort with neuroimmune insights. J Affect Disord. 2024 Jan 1;344:48-60. doi: 10.1016/j.jad.2023.10.013. 9.Li XL, Jin Y, Gao R, Zhou QX, Huang F, Liu L. Wenjing decoction: Mechanism in the treatment of dysmenorrhea with blood stasis syndrome through network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verification. J Ethnopharmacol. 2025 Jan 30;337(Pt 1):118818. doi: 10.1016/j.jep.2024.118818. 10.Luo Y, Mao P, Chen P, Li C, Fu X, Zhuang M. Effect of Guizhi Fuling Wan in primary dysmenorrhea: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 Ethnopharmacol. 2023 May 10;307:116247. doi: 10.1016/j.jep.2023.116247.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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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제철 음식과 탄소 중립 그리고 환경교육의 재인식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작년 겨울, “할아버지, 이 딸기 맛이 좀 이상해~.” 제철이 지난 시기에 어린 손녀가 먹던 딸기를 내려놓으며 하던 말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철 지난 과일의 맛은 6살 아이의 기억과 입에도 낯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딸기 한 알을 우리 식탁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됐는지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지구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우리는 날로 무더운 여름을 나면서 인내의 한계를 넘을 만큼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나 과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가뭄, 폭우, 태풍, 식량 위기까지, 우리의 삶은 이미 기후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런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을 뛰어넘는 ‘지속 가능한 삶의 선택’을 가르쳐야 한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도 가까운 곳, 바로 우리의 식탁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제철 음식은 그 자체가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농산물이나 비제철 작물의 경우, 수송 과정에서 평균 11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인공조명, 난방, 수분조절 등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곧 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예컨대, 2020년 녹색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겨울에 먹는 딸기 1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탄소 배출량은 약 3.4kg의 CO₂로 밝혀졌다. 반면에, 제철인 봄에 재배된 딸기는 0.8kg의 CO₂로 훨씬 적다. 같은 딸기이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철 급식’을 운영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철저한 탄소 중립 교육에 나서야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는 2022년부터 ‘제철 급식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영양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참여해서 한 주일씩 제철 재료로만 구성된 메뉴를 만들고, 식사 후에는 환경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한 학생은 “처음엔 낯선 반찬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자연이 지금 주는 맛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적었다. 또 다른 학생은 “내가 먹는 음식이 지구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니, 앞으로 장을 볼 때도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은 단순히 환경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를 이끄는 울림 있는 실용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제철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계절에 맞는 재료를 소비함으로써 난방, 냉방, 장거리 운송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농업의 활성화이다. 식재료는 대개 지역 농산물이다. 이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음식의 이동 거리를 줄이는 ‘로컬푸드’ 실천이기도 하다. 셋째, 식문화의 회복이다. 제철 음식은 자연이 주는 최적의 영양 상태를 가진다. 건강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넷째, 소비자로서의 책임 교육이다. 아이들이 직접 음식 선택의 윤리성과 환경적 영향을 배움으로써, 더 넓은 차원의 ‘지속 가능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전남 순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제로 푸드 마일(Zero Food Mile)’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한 학생이 쓴 글이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이 지구에 무게가 될 수도, 지구를 쉬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철이라는 건 단지 맛있는 시기가 아니라, 자연이 숨 쉬는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제철 음식 먹기’는 단지 건강을 위한 선택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작은 실천이자 위대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탄소 중립은 거창한 기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식탁에서 지구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환경교육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기초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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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오지선다형 수능, 개선해야 할 교육의 본질을 가로막는 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지선다형 수학능력시험(수능)은 효율성과 공정성을 앞세워 오랜 기간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이제 교육 전문가들과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 체제가 AI 시대, 최첨단 과학·기술의 디지털 시대에는 대한민국 교육의 발전을 가로막는 강력한 틀이라는 사실에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배출한 유능한 엘리트들은 실제로는 교육 현장에서 빠른 시간에 정답을 찾는 ‘기술’을 익히는 구조에 남다르게 익숙한 인재들이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수업 중 학생들이 ‘답이 몇 번이냐’를 먼저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지적하며, 문제해결보다는 시험 요령에 집중하는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이 같은 경향은 사교육 의존을 심화시키는 구조로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이루어 왔다. 왜냐면 객관식 수능은 ‘선택지를 제거하는 기술’을 요구하는 형태고, 이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일수록 전문 사교육이 의존해 효과를 얻어 결국 계급의 세습화를 부채질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국내의 수능 운영 방식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제한적이다. 다만, 2028학년도부터 서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며, 이를 통해 사고력 평가 강화가 기대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다만, 공정성과 비용 문제는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논의들은 개관식의 한계를 통계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있다. 예컨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같은 서술·논술형 대입 시험은 사고력과 표현력을 측정하는 데 유리하며,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서술형 문항 도입에 대해 “학생들의 사고력이나 깊이 있는 성찰 능력을 측정할 수 있어 진일보한 방법”이라며, “2028학년도부터의 도입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 입시 전문가는 “서술형 문항은 전산 채점이 어렵고, 채점 기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빈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시 채점의 신뢰성과 관리 비용 문제는 현실적인 장애물로 지적된다. 앞서 말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통적인 논술형 중심 평가 방식으로 역사적으로 사고력과 논리적 표현을 핵심으로 여겼다. 프랑스어 과목은 수험생이 출제된 주제에 대한 긴 글을 작성해야 하며, 수학은 풀이 과정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도 유사한 방식의 논술·서술형 대입 평가를 채택하고 있어, 학습자의 ‘사고하는 능력’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흐름은 우리 교육도 단순한 지식 암기가 아닌 사고력 중심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수능은 평가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만, 교육이 지향해야 할 사고력, 창의성, 다양성이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정답 중심의 구조는 이미 변화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에 따라서는 수능 문제의 ‘해킹’조차 가능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선발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상을 위한 ‘교육’이다. 여기엔 질문을 만들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으로의 전환은 필수다. 이제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수능의 고득점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교 시절 내내 문제 풀이 기술을 익혀 빠르게 정답을 찾는 것만이 학창 시절의 고정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이렇게 길러진 우리의 엘리트들은 토의⋅토론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인재로 고위직에 올라 공인된 인재들임에도 ‘공부머리’와 ‘일머리’의 극심한 부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객관식 정답 찾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기존의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층의 완강한 저항과 반발로 밖에 볼 수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랴”는 말처럼 수능 개혁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개선이 가능한 핑계 수단일 뿐이다.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퇴행한다. 이제 수능 개혁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의 미래 세대들을 위한 것이기에 더욱 필요성이 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수능 개혁을 도모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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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차트는 읽지만 삶은 읽지 못하는 시대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오늘의 한국 사회는 차트를 읽는 데는 민감하지만 삶의 방향을 읽는 데는 서툴러지고 있다. 투자 광풍과 가짜 정보가 범람하는 이유에 한국 교육의 책임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보다 ‘따라가는 법’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주식 열풍은 결국 돈에 대한 욕망만이 아니라 양극화와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집단 심리의 거울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모든 시대의 광풍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암호화폐 열풍도 당시에는 모두 새로운 질서와 미래의 약속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끝내 남는 것은 본질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이성의 힘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 공식은 배웠지만 자본의 원리는 배우지 못했다. 문제를 푸는 훈련은 반복했지만 위험을 판단하는 능력은 익히지 못했다.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진 사회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을 만든다. 삶은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잔인한 진실은 세상이 객관식 시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상승하는 종목들을 보라. 반도체와 인공지능, 전력과 에너지 전환 산업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반영하고 있다. 상승하는 자산의 본질은 ‘변화에 대한 감각’에 있다. 전력 기업의 상승은 에너지 질서의 전환을 예고하고 인공지능 기업의 부상은 인간의 노동과 사고 체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미래의 방향을 읽고 있는데 우리의 교육은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주식은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낼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교육보다 시장의 움직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주가를 확인하면서도 정작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무관심하다. 자본은 사회를 움직일 수 있지만 인간의 품격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존재는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고 말했다. 지금 교육에 필요한 것도 단순한 제도의 개편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다. 질문할 수 있는 인간, 의심할 수 있는 인간,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다. 교육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유행하는 답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힘은 긴 독서와 토론, 예술과 철학, 그리고 혼자 사유하는 시간 속에서 단련된다. 속도의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깊은 내면이다. 차트를 읽는 능력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만 삶의 방향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못한다. 결국 미래를 살아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다. 미래를 주도적으로 살아갈 학생에게 교육에서 그 힘을 길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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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허리를 펴야 삶이 편안해진다 : 만성 비특이성 요통을 다스리는 추나요법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원인 모를 허리 통증, '만성 비특이성 요통'의 굴레 - 싱그러운 5월, 산과 들로 나들이를 떠나고 싶지만 허리 통증 때문에 선뜻 걸음을 내딛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특히 X-ray나 MRI 검사를 받아도 뚜렷한 디스크 파열이나 뼈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이상 뻐근함과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를 '만성 비특이성 요통(Chronic non-specific low back pain)'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성 요통은 단순히 허리 근육이 뭉친 것을 넘어, 척추 주변 근육과 관절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통증이 몸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걷거나 앉아 있는 일상적인 동작조차 버거워지며, 근육 감소 및 우울감까지 초래하여 일상생활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의 중요 대안으로 자리 잡은 '추나요법' - 이렇게 굳어지고 틀어진 척추와 골반의 균형을 바로잡는 한의학적 수기치료가 바로 '추나요법'입니다. 국제 학술지인 통합의학연구(Integrative Medicine Research, 2014)에 소개된 바와 같이,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인체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척추와 관절의 구조적 문제를 교정하는 한의학적 수기치료법입니다. 최근에는 만성 통증 관리 분야에서 추나요법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4년 국제 저명 학술지(Complementary Therapies in Medicine)에 발표된 서지학적 분석 연구에 따르면, 만성 통증에 대한 추나요법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를 분석한 2025년 대규모 후향적 연구(BMJ Open)에서는 추나요법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이후 근골격계 질환 환자들의 추나 치료 활용이 매우 안정적으로 정착하였으며, 국민의 척추 건강 관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최신 연구에서 입증된 추나요법의 통증 완화 및 기능 회복 효과 - 추나요법의 치료 효과는 엄격하게 설계된 임상연구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2026년 영국 의학저널(BMJ Supportive & Palliative Care)에 게재된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만성 비특이성 요통 환자에게 추나요법을 시행하면 통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 기능도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나요법은 다른 보존적 치료와 병행할 때 더욱 강력한 시너지를 냅니다. 2026년 발표된 실용적 임상연구(BMC Complementary Medicine and Therapies)에서는 추나요법과 일반 물리치료를 병행한 그룹이 단독 치료 그룹에 비해 만성 요통 개선에 더 뚜렷한 개선 효과를 보였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퇴행성 변화가 심한 '증상성 퇴행성 요추 전방전위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2025년 다기관 임상시험(Mayo Clinic Proceedings)에서도 추나를 포함한 비수술적 통합 치료가 척추 기능 회복에 도움을 주고 통증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대안임이 입증되었다는 점입니다. 신경을 재생하고 근육 위축을 막는 추나의 분자생물학적 효과기전 - 최근의 기초 과학 연구들은 추나요법이 단순히 뼈를 맞추는 물리적 자극을 넘어, 우리 몸의 세포와 신경 기능 조절을 통한 통증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손상된 신경의 재생을 돕습니다. 2025년 정형외과 연구 저널(Journal of Orthopaedic Surgery and Research)에 발표된 동물 실험 연구에 따르면, 추나 치료의 물리적 자극은 세포 내 특정 경로(Piezo1/YAP/TAZ)를 활성화하여 신경을 감싸는 보호막인 '수초(myelin)'의 재생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둘째, 신경 손상으로 인한 근육 소실을 방지합니다. 요통이 오래되면 다리가 가늘어지고 힘이 빠지기 쉬운데, 2024년 발표 연구에서는 추나요법이 근육 회복과 관련된 세포 신호 (PI3K/Akt)를 조절하여 좌골신경 손상으로 유발된 근육 위축을 효과적으로 완화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셋째, 중추신경계의 통증 민감도를 낮춥니다. 2026년 세포 분자 의학 저널(Journal of Cellular and Molecular Medicine)에 실린 연구는, 추나가 척수 내 성상세포의 특정 경로(NDRG2/GLT-1)를 조절해 뇌로 전달되는 통증 신호의 증폭을 억제함으로써 만성적인 신경병증성 통증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바른 척추로 되찾는 100세 시대의 든든한 일상 - 성공적인 요통 관리를 위해서는 임상적 치료와 더불어 생활 습관 교정이 필수적입니다. •자세의 인체공학적 관리: 의자에 앉을 때는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넣고 척추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유지하며 허리를 세워야 합니다. 특히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허리를 숙이는 대신 무릎을 굽혀 하체의 힘을 이용하는 습관은 요추에 가해지는 과도한 압축력을 분산시켜 구조적 변형을 예방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운동 요법 : 하루 30분 이상의 평지 걷기나 수영은 척추를 지탱하는 핵심 코어 근육을 강화합니다. 이는 추나 치료가 자극하는 근육 회복 신호와 결합하여, 신경 손상으로 인한 근육 위축을 방지하고 척추의 지지력을 높여줍니다. •근육 이완과 스트레칭 : 틈틈이 허리와 골반 주변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하는 자가 스트레칭은 척추 주변 신경에 가해지는 기계적 압박을 줄여줍니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근육 이완은 척추 주변의 긴장을 줄이고 통증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몸의 긴장을 완화해 만성 통증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줄이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만성 요통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지만, 단순히 진통 약물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한 개선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한의 치료와 올바른 생활 관리를 병행하여, 지긋지긋한 통증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활기찬 일상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Kim K, Yan D, Bauer BA, Choi JC, Wang Z, Jung JE, Kim J, Kim TH, Eldrige JS, Mauck WD, Holmes BD, Bublitz SE, Seo M, Qu W. Nonsurgical Integrative Treatments for Symptomatic Degenerative Lumbar Spondylolisthesis: A Multinational Randomized Controlled Clinical Trial. Mayo Clin Proc. 2025 Nov 2:S0025-6196(25)00334-9. doi: 10.1016/j.mayocp.2025.05.030 2.Tan ICC, Wong HEM, Qiao F, Chong WM, Soh CCR, Ho CE, Cheong KCP, Chen LTJ, Bong PA, Seet IHN, Lim XW, Ma QY, Zhou X, Shen LB, Yang J, Chen JX, Bauer BA, Tay BK. Effectiveness of tuina and physiotherapy to manage pain for patients with chronic low back pain: a pragmatic randomized clinical trial. BMC Complement Med Ther. 2026 Jan 9;26(1):47. doi: 10.1186/s12906-025-05234-w 3.Baek GG, Ha IH, Lee YJ, Shin YJ, Shin BC. Analysis of the utilisation of Chuna manual therapy for musculoskeletal disorders after its coverage under national health insurance in Korea: a retrospective analysis. BMJ Open. 2025 Aug 8;15(8):e094099. doi: 10.1136/bmjopen-2024-094099. 4.Huayu L, Jiamin Y, Xudong S, Mengchao Z, Shunqin Y. Tui Na therapy for pain and function in chronic low back pain: a systematic review. BMJ Support Palliat Care. 2026 Mar 3:spcare-2025-005896. doi: 10.1136/spcare-2025-005896. 5.Xu H, Wang Z, Wang Z, Lei Y, Chen J, Zhou H, Li M, Diao J, Bian Y, Zhou B, Zhou Y. Recent trends in Tuina for chronic pain management: A bibliometric analysis and literature review. Complement Ther Med. 2024 Sep;84:103068. doi: 10.1016/j.ctim.2024.103068. 6.Park TY, Moon TW, Cho DC, Lee JH, Ko YS, Hwang EH, Heo KH, Choi TY, Shin BC. An introduction to Chuna manual medicine in Korea: History, insurance coverage, education, and clinical research in Korean literature. Integr Med Res. 2014 Jun;3(2):49-59. doi: 10.1016/j.imr.2013.08.001. 7.Zhang H, Chen L, Jiang J, Huang L, Huang H, Huang L, Chen S, Lin Z. Tuina Inhibits Synaptic Plasticity Through the Astrocytic NDRG2/GLT-1 Pathway to Alleviate Neuropathic Pain. J Cell Mol Med. 2026 Jan;30(1):e71013. doi: 10.1111/jcmm.71013. 8.Zhang Y, Zhang H, Liu J, Sun J, Xu Y, Shi N, Zhang H, Yan J, Chen J, Wang H, Yu T. Tuina alleviates the muscle atrophy induced by sciatic nerve injury in rats through regulation of PI3K/Akt signaling. J Orthop Surg Res. 2024 Dec 31;19(1):892. doi: 10.1186/s13018-024-05270-1 9.Xu Y, Rentuya N, Yu T, Yan J, Zhang H, Zhang Y, Zhang H, Sun J, Liu J. Tuina promotes nerve myelin regeneration in SNI rats through Piezo1/YAP/TAZ pathway. J Orthop Surg Res. 2025 May 12;20(1):454. doi: 10.1186/s13018-025-05794-0.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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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유모차 없는 거리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유모차 없는 거리 저출산 시대, 유모차 지나가면 낯선 반가움. 그 안엔 아이 없이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 대형 매장 아이 코너엔 강아지, 고양이 반짝이는 무대.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 출산 정책은 바람에 날리는 종잇장. 결혼도 독립도 뒷전, 답답함은 세상 탓일까, 우리 탓인가. 유모차 없는 거리, 우린 무얼 기다리나.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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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우리 교육에 자기반성의 오답노트라는 것이 있는가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비행기도 멈추고 공사장 일도 멈추고 구급차 소리도 멈추게 하는 수능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공부에서 오답노트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학교는 원래 올바른 인성을 기르고 학문을 배우는 곳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지금 학교는 내신점수를 따거나 보육원 같은 기능을 더 중시하고 있다. 수많은 학생이 학교를 즐거워하지 않고 교사들이 힘들다고 해도 행정관계자는 귓등으로 듣는다. 개선을 한다고 하고 법도 만든다고 했지만 실질적인 체감 온도는 낮기만 하다. 권리는 없고 권한과 책임만 무거워진다. 무엇보다 보람을 느끼는 교사가 없어지고 있다. 현재의 학교가 정상적인 학교의 기능을 다한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교육자와 사명감으로 학생을 잘 성장시키는 학교도 많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학원에 많은 부분을 빼앗기고 있다. 인성교육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변호사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인성교육은 법적 처벌이라는 지뢰밭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작업이다. 교육이 일회성 행사가 되면 안 된다. 한 학년을 보내고 나서 교원들이 만나서 학생의 생활지도와 수업과 행사내용을 반성하고 새롭게 개선하는 일들에 형식적인 면이 많다. 몇몇 혁신학교를 제외하고는 진정한 피드백은 보지 못했다. 그저 행사를 하듯이 수업이 끝나고, 시험이 끝나고, 행사를 끝내고, 졸업을 시키면 그걸로 끝이다. 1년 교사와 30년 교사의 차이는 얼마나 누적하고 반성하고 오류를 분석해서 새롭게 자신의 수업과 태도를 개선하는가에 달려있다. 1년 교사는 일 년 동안 그저 그때그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점검이 없다. 30년 교사는 자신의 수업을 점검하고 자신을 끝없이 개선하고 성장하는 교사이다. 전 주의 수업과 전 달의 수업을 점검해서 새롭게 업그레이드를 하는 그런 교사는 드물다. 인간을 가르치는 교사는 부단한 자기반성과 개선을 해야 한다.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 과학은 끝없는 축척과 개선을 통하여 목성에까지 위성을 보내는 성과를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에 근접할 정도이다. 하지만 인간을 직접적으로 대하는 교육에서는 정작 반성과 개선이 드물다. 부끄러움도 없다. 개선하지 않으니 같은 실수를 해마다 반복한다. 교육에서의 오답노트는 양심의 문제다. 학생 자살율이 높고 학교에서 우울증을 느끼고 경쟁과 반목과 열등감과 열패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반성하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을 올바로 키우는 것은 임시방편으로 안 된다. 끝없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수능 시험생만이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철저한 자기반성의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오류를 실천해 나가야 교육이 교육다운 교육의 얼굴을 지닐 수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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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우리 교육에 자기반성의 오답노트라는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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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에서의 진로 지도, 이대로 괜찮은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바야흐로 전국의 고등학교는 2025년 고교학점제의 의무적인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수년에 걸쳐 연구학교 및 시험학교를 거쳐 장단점을 분석하고 숱한 논쟁을 거치면서도 아직도 한편에서는 그 실행의 시기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마침내 본격적인 실행을 눈앞에 둔 것이다. 이는 ‘학생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대의에 이제는 그 장단점 분석과 실행의 머뭇거림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아직도 당사자인 고등학생들이 진로 선택을 두고 망설이거나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꿈 많은 학창시절을 지나면서도 명확한 진로 선택의 방향을 잡거나 원하는 직업에의 결단을 내리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모습 말이다. 이는 어쩌면 긴 인생여정에서 쉽게 결단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이동 수단부터 선택하려니 막막한 것은 당연하다. 이런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에서 진학과 직업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이는 진로 선택은 현시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학생이 원하는 미래에서 현시점을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왜냐면 자신이 원하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정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은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행복한 삶을 보내는 미래 모습을 먼저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행복한 미래의 모습에 크게 이끌려야 한다. 직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 ‘vocation’이나 ‘calling’이 있다. 그런데 이의 어원은 ‘부른다’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자기를 부르는 사람이 ‘미래의 나’라면 더없이 반갑고 즐겁고 듬직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왜냐면 행복한 미래의 나 즉, Future Self를 만나기 위한 과정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설렘과 즐거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학교에서 진로 지도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먼저 희망을 가슴에 꼬~옥 품어야 한다. 비전과 꿈을 간직하고서 말이다. 지금은 인생 100세 시대라 부르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하루하루 버티기에 온 몸과 마음을 다 소진한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교육에 생사를 걸고서 숨조차 쉴 틈도 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분주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10년, 20년... 후의 모습에 대한 사색은 차라리 사치라 부를 만큼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학생은 자신의 진로 선택을 위해 꿈과 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다시금 진로 지도의 핵심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목적을 정하기 어렵고 인생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이는 곧 10년, 30년, 50년, 그 이후의 자신의 모습에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목적지를 먼저 정하고 그에 따른 수단을 선택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진로 지도에서 흔히 중요한 점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선택이다. 문제는 이것이 대개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따른다는 것이다. 운이 좋아 양자가 일치한다면 매우 다행이고 복이 주어진 것이다. 학생들은 대개 부모나 교사가 권하는 ‘해야 할 일’과 자신이 택하는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최선의 방법은 이 양자를 만족시키는 것이고 이는 성공과 행복을 부르는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진로 지도에서 유념할 것은 학생들이 단지 자신이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삶의 목표가 지극히 이기적이면 훗날 혼자 남아 외롭거나 고독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땅, 이 세계를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누군가 해야 할 일’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전통적인 명문 대학들은 타인과 공동체, 나아가 세계 인류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비전과 목표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N수생이 고3 재학생보다 많게는 164%, 적게는 114%에 이르는 의대 진학 상위 10개 고교에 과연 진로 지도는 존재하는가? 의사에 매몰된 비정상적인 진로교육은 자랑이 아닌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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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에서의 진로 지도,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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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분석하면서 읽기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어떤 면에서 봤을 때 글쓰기는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르다. 가변적이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앉아서 펜을 잡고 생각하면서 쓰는 행위를 한다는 의미에서 글쓰기는 같다. 반면에 칼럼 쓰기, 책 쓰기, 단편소설 쓰기 모두 글쓰기의 방법이 다르다. 칼럼은 짧은 글 안에 함축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선별된 주제와 의견, 주장을 담아야 하고, 출간을 위한 원고 쓰기는 목차에 따라 좀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내용을 담을 필요가 있다. 단편소설은 더 어렵다. 아주 짧은 분량 위에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야 한다. 그에 비하면 장편소설은 더 할 말이 없다.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많은데, 분석하면서 읽기도 그중 하나다. 다양한 작품을 읽으면서 분석하는 습관을 기르면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다. 일례로 황순원의 <소나기>나 김유정의 <동백꽃>은 국내에서 발표된 단편소설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단편소설로 꼽힌다. 나무를 한 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닭이 죽는 소리를 친다. 이거 뉘 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래졌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동백꽃>중에서, 김유정 짧은 소설 속에서 애틋한 사랑을 깊고 풍부하게 표현해 내는 단편소설과 달리, 신문은 다르게 작성된다. 마을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지역 댄스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한단다. 이 학교에서 바트와 아이들도 함께 공부한다. '바트와 아동교육기금'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은 크리스마스는 바트와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 "어떤 사람들은 왜 저들을 위해 나서느냐고 저를 비난해요." 그는 개의치 않는다. 동네 유기농 커피 협동조합 일에서부터 바트와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 일까지, 할 일이 너무 많다. -<한겨레신문> 2024년 7월 13일자 15쪽 '동물보호' 이유로 터전 잃은 '숲사람들의 희망가' 중에서 분석하면서 읽기는 퇴고 작업을 진행할 때 무척 많은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이라도 한 가지 방면에 전문가일 뿐,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란 어렵다. 정보전달용 글쓰기가 익숙해지면, 소설 쓰기와 단편산문 쓰기에도 도전해 보자. 좁고 깊은 주제로 글을 쓰기보다는, 넓고 얕은 주제로 글쓰기를 배워두면 요긴하게 쓰일 데가 많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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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분석하면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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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폭압의 힘이 지배하는 시대 건너기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47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민자에 대한 강한 어조와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태도에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승리를 했다. 한국 대통령은 국회와 협치를 원한다고 선언했지만 24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럽에서도 이민자에 대한 증오의 보수 정당이 호응을 얻고 있다. 힘의 논리가 다시 세계를 휘감고 있다. 두 개의 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1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복구 기간으로는 350년을 예상한다. 이제 가자지구에서 수십 명의 민간인이 죽는 것은 큰 뉴스도 아니다. 크로아티아와 러시아의 전쟁은 점입가경이다. 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피해는 가난한 자, 약한 자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남과 북의 대결 양상에 국민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과거에 폭력과 강한 톤의 목소리로 학교를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다. ‘사랑의 매’라는 역설적 말이 있었다. 과거에 교육은 폭압의 현장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문 앞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단체기합이나 체벌은 일상이었다. 교칙을 크게 어기지 않았어도 학교는 공포의 공간이었다. 모의고사 성적에 따른 등수를 모두가 보는 복도에 붙여 놓는 것도 당시는 학생에게 성취동기와 자극을 준다는 명목이었을 것이다. 교사나 교장의 순위를 게시판에 붙이면 더 잘 업무를 수행할까. 이러한 개념은 교원능력을 학생과 학부모, 동료가 평가해서 동기유발을 시킨다는 해괴한 논리와 다르지 않다. 열린 사회를 지향할 때 국가와 사회는 번영했다. 하지만 패망으로 가는 조짐이 보일 때는 폐쇄적이고 폭압과 불평등이 커질 때이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폭압은 퇴행의 조짐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시대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이다. 폭압의 시대는 불행한 어둠의 시대이다. 성숙한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한 기반은 폭압이 없는 올바른 교육이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간 이야기를 했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라는 죄명으로 극심한 고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재오 이사장은 “40일간 물고문, 전기고문, 몽둥이찜질 등 고문이란 고문은 다 받아봤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한스러워 죽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노벨위원회는 예상을 뒤엎고 왜 젊은 한강을 수상자로 정했을까? 한강이 인류의 보편적 고민거리인 인간의 폭력성에 천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4년은 어떤 시대로 기록될 것인가. 그 안에 사는 우리는 인간의 폭력성에 둔감해지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트럼프의 나라가 나온다. 트럼프 병사들은 하트 여왕의 명을 받아 흰 장미를 붉게 칠한다. 흰 장미를 붉게 색칠하는 ‘이상한 나라’가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게 해야 한다. 상식과 배려와 공정이 있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이다. 인간에 대한 폭압을 멈추게 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교육이 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는 이 폭압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은 상생의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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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폭압의 힘이 지배하는 시대 건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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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 교육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하이터치(High Touch)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이테크(high tech)’가 압도적인 사회가 되었고 더 나아가 세계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박람회인 CES 2024에 참여한 4,000여 세계적인 첨단기술 기업 중 한국 기업이 무려 20퍼센트를 차지한 것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동시에 ‘하이터치(high touch)’를 지향하는 사회로 나아가 가정이나 학교, 사회가 물리적 성장⋅발전 위주에서 정서적⋅감성적 차원에서의 동반성장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40여 년 전 1982년,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트는 『메가 트렌드』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하이터치 하이테크(high touch high tech)라는 개념의 신조어를 강조했다. 이는 첨단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감성과 따뜻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곧 첨단 기술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인간관계가 얼마나 좋은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로써 우리의 행복과 안전, 평화... 등 소중한 정신적 가치에 대한 ‘하이터치’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잠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자. 대한민국은 기술적 측면에서 이미 세계 10위권의 최첨단 하이테크 사회를 이루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각 가정은 하이터치가 아니라 노터치(no touch) 사회가 되고 있다. 왜냐면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더니 이제는 혼족 사회가 되어 혼자 사는 1인가구가 이미 30퍼센트를 넘었고 매해 증가하면서 탈가족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갈수록 차갑고 딱딱한 돌처럼 굳어져 간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마음 씀씀이’라는 말처럼 마음은 쓰라고 있지만 이제 그 고유의 의미는 점차 퇴색하고 있다. 왜냐면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관계와 연결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조율하는 것이 날로 퇴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배움터이자 생활의 터전인 학교에서라도 하이터치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인간의 성장⋅발달과정에서 아이는 따뜻하고 섬세한 관심과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곧 학교에서는 따뜻한 하이터치로 아이의 마음건강을 지켜주어야 하고 이를 혁신교육으로 연계해야 한다.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개혁을 강력하게 부르짖었으나 그것은 주로 한두 가지의 입시 정책을 손질하는데 그쳤다. 현 정부 역시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디지털 교과서 등 하이테크 측면보다 사람다운 사람, 마음 씀씀이가 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기르는 하이터치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우리의 학교는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률,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 약물 중독 및 마약 복용까지 심각한 상태다. 이는 마약을 할 때 느껴진다는 평온함과 안전감, 연결감을 가정과 학교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책조차 학교 정규 교과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고 방과 후 프로그램, 위(Wee) 센터, 정신과 등 외부 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학생의 문제를 외부 기관에 맡기면 편리는 하지만 학교가 점점 무의미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학생의 문제는 학교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고 학교는 법이 아니라 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제 학교에서 아이가 단절감과 불안감을 극복해 마음건강을 찾기 위해서는 첫째, 학교는 마음건강을 위한 방법과 기술을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행복’ 교과를 개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예비교사는 교과과정으로 철저하게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 여기엔 교대, 사대의 교육과정에 회복탄력성 같은 자기 조율, 감정코칭과 같은 관계 조율, 연결실천 같은 갈등 조율 등 하이터치와 관련된 이론과 실용 기술이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 하이터치 기술을 교사, 학부모에게 교육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부터 생각과 감정 사이를 조율하고, 행동과 욕구 사이를 조율하는 마음의 기술을 연수해야 한다. 학교에서의 하이터치 교육은 우리 사회가 날로 빈부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그늘진 사회와 인간의 소외가 악화되는 것을 대응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이제 우리 교육이 지나친 하이테크 의존에서 벗어나 마음과 정신건강의 하이터치 시대로 가는 용기와 결단, 추진력이다. 이제 학교의 교육방식이 변할 때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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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 교육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하이터치(High To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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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과 탐구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유클리드 기하학에는 다양한 명제와 수식이 등장한다. 이름도 그리스어로 쓰여 있는데 코덱스 codex, 피거 figure, 다이아그램 diagram 등등 다양하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하학 저서이자 수학의 기초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러나 원론을 펼쳐보면 단순해 보이는 명제, 이론적 지식과 정보만을 전달하는 듯한 논리 때문에 약간은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유클리드 기하학, 혹은 고등수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이미 오래전 위대한 철학자에 의해 그 정당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입법자가 보편적인 원칙으로 인정해야 할 것은 수의 나눔과 변화는 수에 내재하는 것도 평면과 입체와 소리와 상하운동과 회전운동에 내재하는 것도 모든 분야에 유용하다는 것입니다.(중략) 가정 살림을 위해서든 정체를 위해서든 모든 전문 기술을 위해서든 아이들을 위한 어떤 교과목도 산술 공부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산술 공부의 가장 큰 이점은 꾸벅꾸벅 조는 무식꾼을 깨우고 쉬 배우게 하고 기억력이 좋게 하고 총명하게 만들어, 그가 이 신적인 기술에 힘입어 타고난 능력 이상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 지식은 훌륭하고 적절한 교과목이 될 것입니다. -<법률 Nomoi> 747b, 플라톤 글쓰기와 기하학의 공통점을 찾기란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고전문학의 즐거움에 대한 논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사고의 크로스체크를 반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무슨 일에서든지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자세는 좋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핵심이 된다.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유클리드 기하학의 명제들을 하나하나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해가다 보면 명제 위의 명제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A와 B가 직선이고, B와 C가 직선일 때 AB=AC라는 명제가 나온다면, AB=AC=BC라는 명제도 만들어낼 수 있고, 새로운 한 점, 즉 BC사이의 D라는 가상의 점 Imaginary point을 만들어서 AD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입증해 내는 결과물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명불허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위대한 저서들이 위대한 이유는 창의적인 데다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뜻 없이 시대의 낙숫물을 견뎌낸 것이 아니다. 굳이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어도 된다. 다양한 방면으로의 교착훈련은 좋은 글을 만드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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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과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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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흑백요리사’ 같은 수업경연대회는 불가능한가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가 인기 상한가이다. 20명의 유명 요리사 ‘백수저’와 재야의 고수 ‘흑수저’ 80명이 요리 대결을 펼치는 이 프로그램의 인기몰이 이유는 무엇일까. 출연자들의 공정한 진검승부로 시청자 관심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 결과이다. 처음 착상은 셰프 100인의 요리 서바이벌이었다고 한다. ‘무명 요리사’라는 제목으로 발전한 기획은 ‘발상 전환’을 거쳐 ‘흑백요리사’를 만들었다. ‘계급 전쟁’을 표제로 걸고 매회 ‘스타 셰프’를 만들었다. 요리에 대한 진심, 공정에 대한 관심, 결과에 대한 보상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본다. 수업연구에도 그러한 진심과 관심과 보상이 있는 대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과거에 수업연구대회라는 것이 있었지만 승진 가산점을 따기 위한 보여주기 수업이 많았다. 수업연구대회로 하는 수업을 볼 때 학생을 관객으로 하는 잘 짜여진 한편의 보여주기 수업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수십 년 수업을 해도 수업의 최고전문가라고 자신하기 어려운 것이 수업이다. 우리는 얼마나 수업에 진심이었던가. 우리에게도 요리 고수의 셰프처럼 전국적으로 내세울 만한 수업전문가 교사는 많이 있을 것이다. 재야 고수라 할 수 있는 훌륭한 교사의 교수방법이 사장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교에서 수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의 진심이 과연 수업에 방점이 있는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분명 잘못된 것이다. 수업으로 존경받고 수업으로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교사가 평교사로 남는 일이 많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교감, 교장이 되려면 대부분 승진 점수와 윗사람에게 좋은 근평을 얻어야 하는 승진 제도를 통과해야 한다. 교사에게 수업이 최고라고 하지만 현실은 최고의 수업을 하는 교사가 뒷자리에 있다. 흑백요리사와 같은 수업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연간 최고의 수상자 100명에게 교장을 시켜준다면 수업 현장은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수업 개선에 대한 진정성이 있으면 할 수 있는 방안이다. 승진 가산점수, 윗사람의 비위 맞추기로 승진에 연연하는 사람들만이 중요한 위치를 맡게 하는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 제도는 필요하면 만들면 된다. 흑백요리사처럼 공정과 기회와 보상을 주는 수업경연제도는 교원능력개발평가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여겨진다. AI 교과서나 고교학점제에 따른 공간 개선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수업에 초점이 더 맞추어지기를 바란다.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요리보다 진정한 맛으로 경쟁하기 위해 눈을 가리는 흑백요리사의 평가방식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수업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학생에게 어떤 것이 가장 이해가 잘 되는 교수방법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흑백요리사’처럼 계급장 떼고 교장과 교감이 교사와 수업에서 대결할 분을 모집한다면 얼마나 지원자가 있을까 궁금하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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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흑백요리사’ 같은 수업경연대회는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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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대한민국 교육, 입시(入試)보다 입지(立志)를 우선해야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 교육은 표류(漂流)하고 있다. 표류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물 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감’이라 정의하고 있다. 즉, 확고한 목적지가 없이 그저 파도에 의해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이다. 그러니 암초에 부딪히고 조난당하고 온갖 풍파에 시달리며 결국은 너덜너덜 형체만을 유지한 채 간당간당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형체가 된다. 그곳에는 선장은 있으나 그는 이미 리더십을 상실했고 선원들은 각자도생하며 오직 제 살 길만을 좆기에 연대와 협력이란 공동체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오직 힘이 세고 강한 자만이 눈길을 끌고 또 전체를 압도하게 된다. 이미 시스템이 붕괴된 가운데 누군가 목소리 크고 군림하는 자의 주변에 모여 그에게 부역하면서 철저히 자신만 출세하면 된다는 가치관이 우선한다. 이런 조직에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인 삶의 가치는 희소할 뿐이다. 그저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에 의해 기득권층에 편입하려는 성공 전략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표류하는 우리 교육이 낳은 엘리트들의 적나라한 모습이고 그 중심에 ‘입시(入試)’라는 괴물이 굳건하게 똬리를 틀고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그 입시가 낳은 온갖 후유증과 부작용이 갈수록 정상적인 교육을 위협하고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입시 중심의 교육을 어떻게 바람직한 교육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 역사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선조 때 율곡 이이(李珥)는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격몽요결』이란 교과서 격인 책을 편찬했는데 그 첫 장 제목을 ‘입지(立地)’라 했다. 이는 ‘뜻을 세워라’는 가르침으로 모든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훗날 인조는 전국에 있는 향교에 이 책을 내려 보내 교재로 삼게 했다. 이는 뜻을 세우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으로 조선 500년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후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교육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만큼 우리 교육은 아직도 낡은 방식에 집착해 과거 산업화 시대의 인재를 키우는 방식과 경쟁교육에 의한 시험능력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21세기 교육은 ‘창의적 인재 육성’으로 결집된 교육 목표를 설정하고 있지만 이의 가장 큰 걸림돌이 입시라는 괴물인 것이다. 입시는 인간성회복을 외치는 인성교육과 OECD 최하위권의 학생 행복도를 바꾸는 데도 가장 큰 방해물이다. 이제는 우리 교육의 관점을 입시에서 입지로 달리해 근본을 살려야 할 때다. 이는 곧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공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세우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입시는 교육을 위한 여러 수단 중의 하나일 뿐이고 입지가 주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입시 교육에는 초지일관 하나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 출세와 성공지향의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배워서 남 주자는 우리의 전통적인 홍익인간(弘益人間: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사상과는 반대로 타인 위에 군림하고 자신만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현재 SKY 대학 서열체제를 공고히 하는 입시 시스템, 의사라는 특정 직업만을 선호는 천박한 진로교육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에 각종 귀족학교라 칭하는 자사고, 영재고, 과학고, 예술고 등은 특별한 교육과정 운영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변칙적 운영으로 세속적 야망을 부추기는 결정체일 뿐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입시교육이 배출한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을 보라. 그들의 공부머리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역량 있는 일머리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단지 무엇이 되어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출세와 성공지향의 가치관에 몰입되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이타적인 인재가 되고자 뜻을 세우는 입지에 지나치게 소홀하거나 무시한 결과다. 이제 우리는 입시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타인의 행복과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입지로 나와 공동체, 국가를 더불어 행복하게 만드는 교육으로 나가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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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대한민국 교육, 입시(入試)보다 입지(立志)를 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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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낯선 경험을 통한 배움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나의 어린 시절 꿈은 작가였지만, 정확한 목표 없이 막연한 꿈을 꾸는 정도였다. 어느 날 의도하지 않은 책이 덥석 출간되고 난 뒤에도, 글쓰기 자체에 관한 관심 이외에 더 나은 원고를 출간해야 한다는 압박은 별로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새로운 원고를 꾸준히 쓰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글을 쓰는 일을 함에 있어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색다른 경험이 색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듯이, 늘 똑같은 패턴의 글을 쓰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을 통한 글쓰기를 하는 것이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장편소설, 희극, 방송대본, 부동산, 세법, 심리학 등등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는 확실히 좋은 기회가 된다. 탐사보도 기자 출신으로 일본 최고의 지성인으로 알려진 故다치바나 다카시는 10만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고양이 빌딩의 소유주였으며, 공산당 연구, 천체물리학 등 정치, 사회, 과학을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히 깊이 있는 저작들을 많이 남겼다. 미지의 경계를 철저히 파고들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저서 한 권을 집필할 때마다 평균 500여 권의 논문과 관련도서를 탐독한다고 밝힌 그는 평생 3만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술회한 적 있다. 다독이 다작으로 이어지고, 다작은 곧 다양한 저서를 출간하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교육분야와 독서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 어떤 분야의 책이나 원고도 평소부터 깊은 관심을 갖고 읽어왔거나 쓴 경험은 별로 없다. 다만 낯선 경험을 좀 더 새로운 지식으로 벼르고 익히기 위한 노력이 활자로 남기는 과정이었던 것은 맞다.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험을 하고, 평소에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책을 읽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논문을 검토하는 일들이 모두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기회들이었던 셈이다. 글을 쓰는 일 앞에서 기준점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세계관에 국한되기 마련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배운 만큼 아는 법이다. 신문, 책, 논문, 잡지 가릴 것 없이 눈과 귀를 열어놓는 열린 마음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이유다. 5일장, 7일장에서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심지어 시대의 흐름을 따라 활성화되고 있는 SNS에서도 보고 배울 게 많다.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웹툰, 스레드, 릴스, 쇼츠에서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흐른다. 글은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모두 사람을 향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어디에든지 사람들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곧 낯선 경험이 되고, 낯선 기회로 이끈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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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낯선 경험을 통한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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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노벨 문학상 수상과 한국 교육의 독서 지평 넓히기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탔다. 의대 정원, 정치권 다툼, 교사 이탈, 경제 어려움 등 우울한 뉴스가 많던 가을날에 한줄기 신선한 계곡 바람 같은 소식이다. 번역이 아닌 한국어로 노벨 문학상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감격이 밀려온다. 이제 한국 문학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는 기쁨도 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는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 가부장제, 폭력, 슬픔, 인간애 등의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해 왔다"고 소개했다. 이제 우리 문학이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고 한국의 문화와 생활과 생각이 수출될 것이다. 우리가 과거 유럽이나 북미의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국적은 프랑스가 16명, 미국 13명, 영국 12명, 스웨덴 8명, 독일 8명 등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이다. 한강 작가는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분류됐던 작가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과거에 특정 단체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한 사건이다. 한강 역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룬 '소년이 온다'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지원하는 해외 문화교류 행사 지원 배제 지시 대상이 됐었다고 한다. 우리가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종교나 정치적 편향에 따라 문학이나 교육을 재단하고 강제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오늘날 글은 많이 읽지만 책은 거의 읽지 않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43.0%에 불과하다. 한 해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어른이 절반이 넘는 셈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거의 핸드폰을 보고 있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책을 읽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많은데 굳이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이 전환시대에 학교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은 ‘책 읽는 학교’이다. 정치·경제·사회·환경·교육·언론 등 위기에 처하지 않은 곳이 없다. 과도기의 전환시대이다.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책 읽는 문화에 있다. 미친 경쟁을 계속 독려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다양한 독서를 하지 않으면 창의적인 학습은 불가능하다. 책을 읽으며 토론하고 성찰하는 시민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책을 꼭 읽어야 하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내적 요인은 ‘독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으며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에서 아무리 많은 글을 읽어도 훑어보기를 통해서는 깊은 사고가 생성되지 않는다. 김누리 교수는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책에서 세계 최악의 경쟁 교육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학생들은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라는 내용을 인용하기도 한다. 그 불행에서 학생을 구해낼 방안도 책읽기라고 단언한다. 미래의 핵심은 ‘창조’이다. 문화창조, 창조경제, 4차산업, 미래창의교육의 기본이 창조이다. 책을 읽지 않고는 창조를 못 한다. 입시 시험만 준비하는 나라가 아니라 책 읽는 나라로 바꿔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국가는 몰락한다. 위대한 시대는 책의 시대였고 독서의 시대였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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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노벨 문학상 수상과 한국 교육의 독서 지평 넓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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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내 새끼 지상주의’, 우리 교육의 블랙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부모의 ‘자식 사랑’에는 끝이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약과에 불과하다. 자식을 위해 ‘우골탑’ 신화는 물론 ‘기러기 아빠’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때로는 자식을 위해 한 목숨 기꺼이 바치는 것이 부모의 ‘자식 사랑’이다. 이런 마음에 누가 돌을 던지고 비난의 화살을 쏟을 것인가? 문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듯이 지나침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으로 과도한 맹목적인 사랑이 문제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이면의 국민적 묻지마식 관용과 포용은 물론 묵언의 지지와 동의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자식 사랑’을 넘어 차라리 ‘내 새끼 지상주의’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내 새끼 지상주의’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민주화가 가져다준 권리의식의 성장, 수요자 중심주의가 낳은 교육수요자의 권리확대로 인해 자녀에 대한 절제 없는 사랑을 정당화시켰다. 어떤 형태의 권리침해도 허용하지 않는 ‘금쪽이’의 탄생, 내 자식의 안전과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IMF 구제금융 이후 혹독한 환경에서 각자도생의 형질을 획득했고, 그것이 부모가 된 뒤 자식의 안전한 환경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과보호로 나타났다.(송원재, 『교사가 아프다』) 오늘의 학교 현장은 “우리 아이가 싫어한다”, “우리 아이를 중심으로 해 달라”... 등의 민원으로 모든 아이의 평등한 권리를 부정하고 자기 자식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담긴 내용을 다루지 말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내 새끼를 돌보기 위해 다른 아동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행위를 자기 자식의 정당한 권리로 여기고, 이에 반(反)하는 교사의 행위는 아동에 대한 부당한 폭력이나 정서 학대로 간주하여 학부모가 교사를 공격하는 핵심 논리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내 새끼 지상주의’는 “자기 자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의 자식을 해치는 육아원리이자 이데올로기이며, 작은 불이익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관계망 전체를 왜곡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내 아이가 털끝만한 손해도 입지 않게 하려는 생각은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를 축소시킴으로써 자녀의 사회화를 지체 내지 정체시키고 있다. 주목할 사실은 이런 특성이 특히 자녀에게 투자할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상류층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자기 자녀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위해 다른 아이에게 돌아가야 할 기회를 빼앗고 교사의 정당한 지시와 통제를 무력화함으로써 학교질서를 무너뜨린다. 설상가상으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교사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내 새끼 지상주의’가 결국 아동의 성장을 방해하는 근본적 이유다. 이런 행위는 자녀를 무균실에서 키우려는 부모에게서 나타난다. 그들은 아이가 교사에게서 어떤 싫은 소리라도 들어서도 안 되고, 친구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서도 안 되며, 손해를 보고 지는 느낌 역시 경험해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이는 결국 무균실 밖에서는 도태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게 만든다. 학교는 애벌레가 나비로 태어나기 직전에 겪어야 하는 중간 단계인 번데기와 흡사하다. 이 과정을 겪지 않고는 아름답고 성숙한 성체인 나비가 될 수 없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아동의 이런 정상적인 성장⋅발달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학부모들이 교사를 대상으로 정서적 아동학대라고 우기는 대부분의 것이 자기 아이를 영영 번데기로 살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를 원하는 부모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위기로부터의 면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면역력이다. 부모는 제 자식 귀한 줄만 알지 자신들의 행위가 종국적으로 자식을 망치는 교육의 블랙홀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이제 부모도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좋은 부모 되기’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임을 깨닫고 내 새끼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마음의 수양과 내 새끼에 대한 욕망의 절제, 타인의 자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균형을 이루는 부모로 탈바꿈하길 기대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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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내 새끼 지상주의’, 우리 교육의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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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부모 ‘민원처리 시스템’을 신속히 제도화해야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늘날 우리의 초중고 학교마다 학부모의 악성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히 민원공화국이라 불릴만하다. 문제는 한두 명의 ‘악성 민원러’만으로도 학교가 거의 압사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에 학교는 학부모가 제시하는 의견의 내용과 방식이 교육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학교의 교육활동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것인지의 선별과 이에 대한 원만한 해결이 급선무다. 왜냐면 현재 우리의 학교는 악성민원으로 교권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모든 교육활동에 제동이 걸리며 심지어 교사가 자살을 최후의 해결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무한 반복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공공기관은 어떤가? 민원이 들어오면 민원 담당자가 먼저 검토해서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고, 심사위원회로 넘겨 수용 여부를 결정해서 회신을 보낸다. 민원인이 회신 내용에 불복하면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낸다. 민원인이 담당자를 찾아와 고성을 지르거나 폭행을 하면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는다. 따라서 일반 공공기관에서는 그런 일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유독 학교라는 공공기관에서만 민원인이 교실에 쳐들어와 교사를 폭행하거나 학생들 보는 앞에서 온갖 불미스러운 일이 자행되고 있다. 과연 이런 불공정을 언제까지 감수하고 교사만이 그 희생양이 되고 생존의 문제로 비화될 것인가? 학교는 일반 공공기관과 달리 민원실도 없고 민원처리 담당자도 없다. 따라서 필자는 학교에 ‘민원처리 시스템’을 즉각 도입할 것을 제기 한다. 학교의 민원은 교사 개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것이 지나쳐 이제 학교는 민원으로 죽어 가는 가장 대표적인 공공기관이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원인이 교사를 직접 만나 압박을 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민원인과 교사가 대면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제 학교 민원도 ‘민원처리 시스템’으로 접수하고 교사에게 찾아와 항의하거나 요구하고 심지어 협박과 폭행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예방해야 한다. 또 접수된 민원은 당사자가 직접 답변하지 않고 ‘민원처리 시스템’에 의해 담당자나 전담팀이 대신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한 교육당국의 예산 확보와 대응책이 매우 시급하다. 이미 교육선진국들은 민원처리의 주체를 학교장 또는 위임을 받은 전담자나 전담팀이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 수업을 위한 교육력을 최대로 확보하여 교육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우리는 한없이 부러워하기만 할 것인가? 우리 교육은 단지 교사의 사명감에만 호소하거나 강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학교는 강력한 민원처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만약 민원인이 회신에 불복한다면 상급 기관에 이의신청하는 절차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그것이 민원인의 정당한 권리이자 공공기관인 학교의 의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여기엔 적법절차에 따르지 않고 같은 내용의 민원을 반복 제기하거나 당사자 개인에게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반드시 기각 처리된다는 사실도 널리 주지시켜야 한다. 어떤 경우든 교사 개인에 대한 항의나 보복은 불법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각인돼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교권침해를 차단하는 합법적이고 유효한 수단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교육의 ‘내 새끼 지상주의’에 의한 민원은 반드시 제동이 필요하다. 이는 지나치면 없는 것만 못하거나 오히려 독이 되는 ‘과유불급’의 표상이다. 이제 학부모에게 격앙된 감정을 폭발하지 않고 자신을 객관화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른바 ‘한 박자 쉬어 가는’ 해결의 지혜다. 교사 또한 과도한 방어에 의존하지 말고 교육활동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 학교에도 학부모가 민원 전화 한 통에 만사 오케이라는 잘못된 행태에 제동을 걸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교사와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여, 그간 거친 말과 폭행으로 감정을 드러내거나 무작정 교장실로 직행하던 방식을 폐기해야 한다. 학교가 더 이상 악성민원으로 고통의 근원지가 되고 교사가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학교 현장에 무엇보다 급선무인 교육적 과업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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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부모 ‘민원처리 시스템’을 신속히 제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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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다시 돌아보는 학교 존재 이유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무엇인가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자교과서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붇고 늘봄사업에 돈과 인력을 쏟아 붓는다. 수업보다는 홍보와 보육이 우선으로 보인다. 입시와 점수와 기계적인 평가가 학교에 가득하다. 학교에 희망적이고 건전한 미래가 있는가. 신명이 나지 않는다. 일을 안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자교과서나 늘봄사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의 의견이나 준비부족을 말해도 무시되고 밀어붙이면서 교육계에 심리적인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학교는 왜 필요한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이 국가미래보다 정권이나 민간자본에 휘둘리면 본질에서 멀어진다. 호모 사피엔스가 30만 년 전 출현한 이래 가장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점차 불평등은 커지고 있다. 미래역량을 키우고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은 표면적 목표이다. 실질적인 이면적 목표는 인정받는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학교는 국가, 자본가, 대기업, 산업체를 위한 정치적, 경쟁적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함께 조화롭게 사는 ‘공동체 협력’ 교육을 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참여와 소통, 예술과 운동, 독서와 토론, 봉사와 기부 등의 개념이 기반이 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생태교육과 과학교육, 윤리교육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는 단순히 지식전달이 아니라 친구와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경험의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지식교육이 전부인양 돌아서고 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컴퓨터는 효용성이 없다. 미래사회는 ‘연결과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홀로 1등을 추구하는 한국교육은 연결과 소통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근대공교육으로 서구와 대한민국은 크게 성장했다. 이제 목표를 달리해야 한다. 명실상부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함께 사는 시민의식, 깨어있는 시민의식, 주인의식을 지닌 책임을 지닌 민주시민, 사회에 도움을 주는 민주시민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교육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학교는 근대국가건설과 산업일꾼의 깃발을 달고 경주마처럼 달렸었다. 다양성이나 개인의 성향은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그런 달리는 일은 자동차나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학교는 필요 없다. 증오와 갈등과 경쟁과 점수가 인간답고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정권의 정치이념이나 학벌조장이나 대학선발의 하부기관, 기계부속품을 만드는 교육이 되어서는 미래가 없다. 존중과 배려와 협력과 합리적 이성이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고 학교는 그런 사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답을 외우거나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학생이 아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모둠토론을 하고 동아리활동과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학습으로 사회와 함께하며 배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학교는 교육다운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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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다시 돌아보는 학교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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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에필로그(주역산책을 마무리하며)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내 나이 50 무렵. 인생의 절반을 넘어선 그때. 그것도 인생의 절정기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지점에서 내가 잡은 동아줄은 바로 『주역』이었다. 『주역』의 문장들은 고조선 대륙의 벌판을 스치고 지나가는 흙바람 속에 실린 싯귀들이었다. 태고의 바람은 『주역』의 지혜를 싣고 고조선의 광활한 평원을 누비며 비밀을 속삭인다. 『주역』은 변화를 향한 64가지 경로다. 그 경로는 회복을 향한 문학적 생명선이다. 인생에 실패한 젊은이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복귀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면 알게 된다. 그 길들이 고전이라는 사실을. 64개의 경로에서 우리는 만물의 상호 연결성과 존재의 순환적 본질에 대한 깊은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주역』은 우리에게 적응성과 탄력성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바람이 갈대를 휘게 하듯이 우리도 도전과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갈등 관계로 뒤엉킨 인생의 고단한 길을 무사히 걸어갈 수 있게 한 동무가 바로 『주역』이었다. 『주역』은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와의 만남이다. 물질적 세계는 8괘 즉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으로 이루어진 자연 현상이다. 그것들을 겹쳐서 8 × 8 = 64. 64괘로 정신적 세계를 만들었다.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면 철학이 된다. 『주역』도 물질적 세계를 먼저 만들고 이어서 정신적 세계로 승화시켰다. 즉 SEIN의 세계(물질적 세계)에서 SOLLEN의 세계(도덕적 의무)로 전환된다. 물질의 세계가 인간의 감각에 의해 뇌 속으로 들어가 의식 작용을 일으켜 정신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은 물질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철학적 의미를 가진다. 하여 물적 영역과 영적 영역 사이의 경계에 서서 상호 연결성을 살펴보았다. 경계에 서서 그 너머를 보았다. 『주역』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건곤일희장(乾坤一戱場) 인생일비극(人生一悲劇)’이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모든 연극을 위해 펼쳐진 무대일 뿐이고, 우리 인생은 그 무대 위에서 연출된 하나의 비극이라는 말이다. 이 칼럼은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의 만남, 그리고 그들 간의 유기적인 연결성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물질적 세계의 8괘를 시작으로 64괘의 정신적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주역』은 우주의 음양 조화를 통해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이 칼럼은 우리가 어떻게 환경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우리의 생명을 순환시키는 데에 필요한 지혜와 미덕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지혜를 통해 우연과 필연, 하늘과 땅, 음과 양, 그리고 모든 삶의 순환적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현대인들은 자극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잊고 산다. 욕망이란 결국 더 자극적인 것을 찾고 즐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극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인간의 마음이 지니는 표준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 표준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주역』이다. 인간다운 삶의 표준은 자기 자신을 위한 성실함(誠)과 남을 위한 배려(孚)다. 성(誠)과 부(孚)가 주역의 핵심 알갱이다. 이 두 가지를 좌우로 삼아 인생길을 걸어가야 한다. 표준에서 멀어지는 자극적인 욕망으로 인해 샛길로 가는 것이다. 성적 자극, 금전적 자극 등에 의해 정도에서 빗나가는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없는 차이가 생긴다. 자신의 삶 자체를 후회하게 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주인공처럼 소설의 마지막에 다락방에 올라 기차 소리가 들려오자 울음을 터트리는 후회의 눈물, 자신이 목표로 한 추상적인 것을 이루려 하지만, 잠깐의 한눈을 팔면 목표는 저만치 물러나고, 시간이 흘러 나 혼자만 경계선 밖에서 경계선 안의 생활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생은 간다, 봄날처럼. 그렇지만 인생에서 잠깐의 한눈팔이가 문학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고, 그것이 사람을 울린다. 목표가 확실한 사람은 성(誠)과 부(孚)를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면 모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삶에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희생하는 삶에 박수친다. 예수가 그랬고, 간디가 그랬다. 마지막으로, 『주역』은 우리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많은 과제와 도전에 대한 안내서다. 우리는 이 칼럼을 통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인류와 지구 생물의 미래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깨달을 수 있으며, 지구와 우주 안의 모든 존재와 함께 공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주역』은 과거와 미래, 물질과 정신, 음과 양,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와 연결성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을 제공하며, 우리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더 나은 생명을 유지할지에 대한 영감을 준다. 이 칼럼은 우리의 삶에 대한 고찰과 탐구를 지속할 가치 있는 동반자다. 의식을 좀 더 확장하여 문학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갈등과 화해를 이야기하는 예술 장르라 할 때 문학작품을 64괘의 렌즈를 통해 살펴보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라 여겨진다. 그것이 변화하는 세상에 먼지와도 같은 인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책무일 것이다. 아직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노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어.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지” 인간의 삶은 실수와 후회로 점철되어 있지만, 시간이 다할 때까지 싸우고 견뎌야 한다. 그것이 삶에 대한 예의다. 『주역』은 묻는다. 바람 같은 인생(人生), 당신이 이 세상에 다녀간 이유는 무엇인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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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에필로그(주역산책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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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사는 어떻게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하는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때 ‘세계의 교사 상’을 수상한 케냐 출신의 피터 타비치는 훌륭한 교사가 되려면 “행동을 더 많이 하고 말을 더 적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로서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과거, 케냐의 시골 지역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과학, 수학,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맡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교육, 지속가능성, 평화에 초점을 맞추는 지역 공동체프로그램에 매월 월급의 80%를 기부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라면서 교사로서의 길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진흙으로 만든 오두막이 학교였어요. 어느 것도 충분치가 않아서, 도서실도 없고, 불을 켤 전기도 없고, 신발도 없고, 심지어는 탄탄한 나무 바닥도 없었어요. 어디나 먼지투성이였어요. 항상요. 우리가 침을 뱉으면 먼지가 가득했죠.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은 우리 앞에 서 있는 선생님들한테서 나오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선생님들께 의지했죠.”(안드리아 자피라쿠 지음, 장한나 옮김 『세계의 교사』) 피터 타비치는 자신을 가르쳐주었던 바로 그 선생님이 되었고, 또 그 이상이 되었다. 그는 여러 동아리를 설립해 학교의 다양한 영역과 더 넓은 공동체에 도움을 주었고, 하나하나 모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과학 동아리는 2018년에 케냐에서 높이 평가 받는 과학 엔지니어링 대회에 나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다른 학교들을 제치고,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측정 장치 발명품으로 우승을 했다. 이 동아리는 계속해서 미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도 실력을 드러내어, 식물로 전기를 만드는 기술로 수상했다. 그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학생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학생들의 행동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이는 그의 향기가 만 리까지 퍼져 나가는(人香萬里) 스승의 표상이자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줌으로써 가능했다. 즉, 가능성을 향해 눈을 뜨도록 한 것이다. 또 학생들에게 그치지 않고, 더 넓은 공동체도 눈을 뜰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시대가 바뀌면서 젊은 세대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기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여자아이를 학교에 나오도록 했다. 이른바 ‘교육무류(敎育無類)’의 실천에 앞장섰다. 지극히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케냐 젊은 세대들에게 수없이 많은 자극과 동기를 제공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성공한 사람으로 키운 피터 타비치의 교육관 덕분에, 케냐는 아직도 선순환을 이루어 곳곳에서 제자들이 인재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그의 교육자로서의 헌신과 봉사의 삶에서 소중한 결과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사람을 키우고 공동체의 발전을 이끄는 교사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증명해 보였다. 그로 인해 교사는 공인(公人)으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큰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터가 교육자로서 걸어온 삶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의 교육 환경은 과거 케냐처럼 빈곤의 그늘에 가려 어렵게 생활하던 시절에 비해 물질적, 사상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또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의식과 성장 동력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러기 아빠’를 탄생시킨 높은 교육열의 민족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존재하던 그야말로 순수한 배움과 가르침 즉, 교육에의 열정과 신념, ‘배워서 남 주자’는 교육 가치는 얼마나 우리 사회에 지속가능한지 이 시대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때다. ‘영감을 불어 넣는다’는 영어 inspire는 원래 ‘숨을 들이 마신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교사는 바로 학생에게 “성장의 공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면 교사는 학생들이 살아가고 성장할 수 있는 공기를, 생명의 힘을,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 넣어 주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을 만나는 모든 교사는 그들에게 낙관주의와 열정, 연대와 협력, 창의력과 상상력, 나눔과 배려, 봉사와 헌신 등 핵심 교육 가치들이 흠뻑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이 시대의 교사는 단순히 과거에 교육받은 것을 뛰어 넘어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선구자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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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사는 어떻게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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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마음에 성(誠)이 없으면 대축해도 허망하게 끝나기 쉽다(산천대축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산천대축괘는 위에 산(☶)이 있고, 아래에 하늘(☰)이 있는 모양이다. 하늘이 산 속에 온축되어 있는 모습이다. ‘대축(大畜)’의 ‘축(畜)’은 玄(실타래) + 田(농작물)을 쌓아둔다는 말로 ‘크게 축적케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쩨쩨하게 살지 말고 커다란 스케일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허망해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마음에 ‘성(誠)’을 지니지 못한 채 대축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재물을 쌓으려 하지 말고, 덕성을 온축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문학작품이 바로 1925년에 출판된 F.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소설인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다.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가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인물이기 때문에 대모험의 삶과 관련이 있다. 그는 모험과 야망의 삶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개츠비의 초기 생애는 수수께끼에 쌓여 있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유하고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부를 이용하여 그의 인생의 사랑인 데이지 뷰캐넌을 되찾는 가장 큰 소망을 추구한다. 데이지를 쫓는 개츠비는 자신의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열고 자신의 부와 성공으로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하는 대모험을 시작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열정과 결단력으로 자신의 꿈을 좇아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모험의 삶과 관련이 있다. 개츠비는 부와 축적의 동기가 대동 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과거 자신의 사랑이었던 데이지 뷰캐넌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것도 조직범죄와 연루된 대축이었다. 개츠비의 마음속에 ‘성(誠)’ 없었다. 성(誠)이 없는 결과는 비극이다. 개츠비의 삶이 모든 외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으로 끝나는 소설의 결말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그의 부와 그가 창조한 거창한 인물은 그를 구원할 수도 없고 그가 추구하는 행복을 가져다줄 수도 없다. 그가 깊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 사회에서 크게 무시된 그의 죽음은 그의 노력의 궁극적인 허영심과 불성실한 기초 위에 세워진 삶의 공허함을 상징한다. 개츠비의 불성실함과 피상적인 이상에 대한 집착은 실패로 이어지며, 이는 진실한 마음 없이는 진정한 성공과 성취를 이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부자의 성(誠)은 무엇인가? 다름 아니라 봉사와 기부다. 그리고 그것을 몸소 체감하여 육화시키는 것이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문명의 편견을 넘어 인간의 보편에 도달해야 한다. 산천대축괘의 93효사에도 매일 수련하고 연마해야만 모험을 감행하여 앞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말하고 있다. 92효사에도 수레의 바퀴살이 빠졌다. 바퀴살이 없으면 수레는 굴러가지 않는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군자(리더)는 국민을 잘 살게 만들어야 한다. 재물이 많으면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 조선시대 경상도 지방에 조씨라는 아주 짠돌이가 살았는데, 재벌이었다. 그런데 평소 먹는 음식도 평민들이 먹는 음식으로 매일 똑같은 반찬만 먹는 짠돌이였다. 마을에 산사태가 올 것을 미리 안 조씨는 자기집 쌀 창고를 불태워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그동안 모았던 쌀을 내주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좋은 사례다. 그 외에도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처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며 삼백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이웃을 위해 곳간 문을 활짝 열였던, 그리고 그 때문에 행복했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산천대축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부의 축적은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정당성을 확보한다.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준다. 철저하게 근검 절약했고, 나라와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썼던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는 세계 역사를 통틀어 삼백 년이나 부를 유지했던 가문은 거의 유일하다. 부불삼대(富不三代)란 말이 무색할 만큼 졸부가 아닌 명부의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최부잣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단순히 한 번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무려 300년 동안 유지했던 것이다. 그것은 매일 수련하고 연마했다는 말이다. 산천대축 효사 93을보면 “한 발자국 물러나 매일 수련을 하라. 수레몰이를 연습하고 호위무술을 연마해라. 실패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했다. 우리는 왜 삼성가나 현대가를 보면 욕부터 하는가. 그들이 졸부라서 그런가. 아니다. 그들은 수레로부터 빠진 바퀴살을 찾아 넣는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을 보면 영국 국민이 왕실에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영국 왕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몸에 체득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지원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고, 늘 봉사와 기부를 생활화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체화·육화될 때까지 연마하고 수련한다. 기쁜 대축의 마음으로 대동 사회를 열어가려면 매일 수련과 연마가 이루어져야 한다. 산천대축괘의 효사를 보자. 지(地)의 자리다. 자연과 벗삼아 소몰이하던 목동이 자라 청년이 되었다. 그런데 수도권 지역에 개발이 되어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놓고 하는 현대화의 바람이 불었다. 청년의 집과 땅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결국 청년은 졸부가 되었다. 인(人)의 자리다. 그 청년은 돈방석에 앉았다. 내심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이 생각났다. 도박, 여자, 마약 등을 일삼으며 아주 불성실하게 살았다. 그렇게 인생을 낭비했다. 그 결과 가족, 친지, 친구와도 헤어지고 거리를 헤매이는 노숙자가 되었다. 그는 졸부가 되었을 때부터 성실과 중부를 버렸다. 그리고 유혹을 취했다. 목동으로 자랄 때 가졌던 성실함과 자연이 베풀어 준 중부의 마음을 내팽개친 결과였다. 천(天)의 자리다. 늙으막에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성실함과 중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 보아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반성하며 삶을 살아야 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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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마음에 성(誠)이 없으면 대축해도 허망하게 끝나기 쉽다(산천대축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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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교사에게서 교권은 고사하고 인권도 보장이 안 된다는 자조 섞인 말을 듣는다.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온 교직에서 떠나고 싶다는 젊은 교사의 목소리도 들린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교사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존감마저 없어진다면 사명감이 생길 수 없다. 입시, 경쟁, 법적 고발, 민원에 교육 현장은 갇혀있고 의견수렴은 형식적이었다. 초중등 교사는 정치기본권을 제한받고 있다. 63년이면 연필 문화에서 스마트폰 문화로 바뀔 만큼 긴 시간이다. 통제 당시는 군사 쿠데타 이후로 정치적으로 예민한 국민통제시대였다. 교육현장과 사회, 경제도 괄목상대할 만큼 변화하였다. 교육을 하는 학교는 가장 민주적 기제가 작동해야 함에도 정권의 휘둘림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교육백년대계는 먼 이야기이다. “교사의 교육활동 보장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의 목소리에 이제 국회와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 백승아 국회의원이 지난 7월에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한 7건의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 발언이다. 교원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로 60년 이상 정치적인 기본 권리에서 벗어나 있다. 50만 현장 교사의 교육 전문성이 국가 교육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OECD 소속 38개 나라 중 교사에게 투표권 이외의 대부분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 프랑스 등 OECD 국가에서는 교사가 출마를 위해 사직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전국 유·초·중등·특수 교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한 교사의 98.2%가 '교사의 목소리가 국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정치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금 학교는 정치에서 온전하게 자유로워졌는가? 교육계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입시제도, 교과서, 미래교육에서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교육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더구나 정치적 중립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이 문제가 된다면 캐나다의 경우처럼 정치적 중립에 대한 법률을 만들어 적용하면 된다. 차 사고가 우려되어 아예 운전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비이성적 태도이다. 그러한 위험성을 미래 예견하고 법을 만들고 적절한 제재를 하는 것이 법과 정치가 할 일이다. 60년이 넘도록 정치 청정지역으로 남은 교사와 교육계는 지금 무기력하다.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서 중요한 권리를 상실한 것이다. 문제는 교육에서 정치를 배제하면서 정당한 국민 청원이나 국민 발의도 불온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풍토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세금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올바른 정책을 실현하는 일이다. 교원에 대한 권리 박탈로 교육을 위한 정당한 발언이나 의견에도 힘이 실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시대적 역행을 계속할 것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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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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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교육이 배출한 엘리트들의 ‘공부 머리’와 ‘일 머리’ 유감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왜 대한민국 교육이 배출한 대다수 엘리트들은 ‘공부 머리’와 ‘일 머리’가 크게 다른 것일까?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입각하는 국무위원들을 비롯한 장⋅차관급 엘리트들은 대한민국 학벌(學閥)의 정점에 있는 S대 출신들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S대 법대 출신인 현 대통령조차 인사를 단행할 때마다 대상의 인사들을 놓고 첫 마디가 “어느 대학 출신인가?”라고 물을 정도로 기본부터 특정 대학 출신들이다. 특히 S대 법대 출신의 전⋅현직 법조인(판⋅검사⋅변호사)들이 집중적으로 발탁되는 이유다. 이들은 대한민국 교육이 낳은 ‘공부 머리’가 탁월한 엘리트들이다. 대개는 예비고사 출신인 60대 이상과 학력고사 출신인 50대 이상으로 고교 재학 당시엔 뛰어난 학력(學力)을 소유한 ‘공부의 달인’으로 불렸다. 그들은 대학 재학 중에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각종 국가고시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재들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들에 거는 기대만큼 ‘일 머리’에는 많은 부실함과 도덕적, 양심적인 인성조차 결여상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은 집단 토론문화에 약하고 상명하복식 명령체계, 권위의식에 매우 익숙하다. 필자는 1983~1985년 사이 26개월 동안 미 육군(ARMY)에 증원된 한국군, 소위 카투사(KATUSA)로 근무한 적이 있다. 매번 중대, 또는 대대 단위에서 부대의 현안(이슈)을 놓고 전체 협의(미팅)를 할 때 비록 그들의 상당수가 고졸의 학력을 가진 지원자들이었지만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발표하며 진지하게 토론하고 경청하는 문화에는 깊은 울림과 감동이 있었다. 그때마다 “이것이 세계 최강대국의 힘이구나”하며 한껏 부러워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상명하달의 지시나 명령이 아닌 민주적인 방식의 소통과 의결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응집력이자 규율의 정착된 모습이었다. 우리는 집단의 토의⋅토론 문화에 한없이 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주입식 암기 교육에 의해 대화와 토의⋅토론 없이 일방적인 각자도생의 경쟁교육에 의해 길들여진 결과다. 특히 우리 교육이 낳은 엘리트들은 대개 성실한 모범생들이나 그들은 그저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메모해서 그대로 시험지에 옮겨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른바 ‘공부의 달인’들이다. 한때 널리 소개된 S대 최우등 졸업생들의 비결은 바로 교수의 설명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통째로 메모하고 암기해 거둔 결과라는 사실에는 씁쓸한 마음마저 들었다. 여기엔 소위 창의성과 상상력, 자기 생각과 의견이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직도 우리 교육이 배출하고 있는 엘리트들의 내면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교육의 실상이다. 그것도 부족해 이른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기계적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빠르게 문제풀이 기술을 습득한 학생만이 고득점을 할 수 있는 최악의 평가 시스템이다. 매년 수능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둔 졸업생들은 자신들이 고교 시절에 받은 교육은 “그저 시험문제풀이 기술을 배워 익숙하게 풀어낸 것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공부 머리’와 ‘일 머리’가 따로따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의 배경은 결국 출세와 성공 지향의 맹목적인 교육가치가 우리 교육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배워서 남 주자’는 교육가치는 이제 ‘배워서 남을 지배하고 잘 살자’는 가치로 바뀌었다. 이는 S대 법대 출신들이 국가의 주요 요직에 대거 포진해 있지만 그들의 ‘일 머리’는 ‘공부 머리’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것으로 입증된다. 그것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에 몰입된 까닭에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예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장관, 고위직에 오르는 것이 가문의 출세와 영광을 드러내는 것보다 먼저 이 나라를 어떻게 경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하며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개인철학을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육은 엘리트들이 이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better place)으로 만드는 이타적인(beneficial) 존재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우주에서 바라본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하나 밖에 없는 이 지구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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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교육이 배출한 엘리트들의 ‘공부 머리’와 ‘일 머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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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나무(중풍손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풍손괘는 위와 아래에 공통으로 바람(☴)이 있는 모양이다. 중풍손은 바람의 특징 중 하나인 무질서한 흐름과 나무의 겸손한 모습을 상징한다. 풍은 나무와 바람의 상징이다. 이것이 두 번 겹쳤다. 나무에 바람이 불어 마치 나무가 춤을 추는 모습이다. 바람의 특징은 구석구석 아니 미치는 데가 없이 분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바람은 신바람이다. 옛 임금들이 쓰는 왕관에도 나무 모양의 장식이 3개에서 5개 정도가 조각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낸 예술작품이다. 또 이 왕관을 쓴 임금이 걸을 때 짤랑짤랑하는 소리를 낸다. 바로 이것이 바람의 청각적 표현이다. 임금이 정치를 할 때 바람이 불어 나무가 춤을 추듯이 그렇게 백성들을 잘 살게 만들어 준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중풍손(重風巽)’의 ‘손(巽)’은 갑골문에 보면 위에 있는 쌍의 뱀사(巳)자 모양은 나중에 생긴 것이고, 원래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손(巽)자 아래에 있는 함께 공(共)자는 제단을 뜻했다. 그것이 세월이 지나자 원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부수자로 글자를 만들었던 『설문해자』에 와서 모양이 변조됐다. 따라서 중풍손은 제단 위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나무’의 모습이다. 오늘날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이다. ‘받아들이다’의 의미도 지녔다. 또한 손괘는 겸양・겸손을 나타낸다. 종교는 신과 인간의 소통이다. 임금과 백성의 소통은 정치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잘 아는 훈민정음의 창제도 결국 소통의 문제 해결이었다. 옛날에는 백성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정책의 변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상황이 많았다. 정보가 소통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종대왕도 훈민정음을 제정 반포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나무처럼 생각했다. 당시의 어문 생활은 사대부 양반층의 한문과 서리인 중인층의 이두로 나누어진 이원 체제였다. 따라서 왕의 어명이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웠고, 백성들도 양반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세종의 ‘신명행사(申命行事)’ 로 문자와 철자법이 완성되었다. 한글 28자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두루 쓰게 하여 소통의 나라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소통의 나라가 되면서 점차 민주주의라는 의식이 쌓이게 되었다. 한글은 자음은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 떠 만들고, 모음은 천지인 삼재(三才) 즉 ・(하늘은 둥글다), ㅡ(땅은 평평하다), ㅣ(사람은 서 있다) 는 3재를 기초로 적절히 조합하여 초출자(ㅏ, ㅓ, ㅗ, ㅜ), 재출자(ㅑ, ㅕ, ㅛ, ㅠ) 등을 만들었다. 중풍손괘와 관련있는 문학작품은 김수영의 시 「풀」이다. 김수영은 신동엽과 더불어 1960년대 한국시에 있어 쌍두마차로 평가된다. 투철한 역사 인식과 건강한 민중성에 기초를 둔 신동엽에 비해, 김수영은 모더니즘 속에서 자라난 모더니즘의 비판자로서 4.19를 계기로 강한 현실 의식에 바탕을 둔 참여시에 가담하였다. 그러한 맥락 위에 놓인 작품이 바로 「풀」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누구나 풀의 움직임을 관찰한 적이 있겠지만 바람이 불면 풀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땅에 몸을 누인다. 그런데 바람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나 싶게 풀은 다시 몸을 일으킨다. 바람이 불 때만 잠시 몸을 누일 뿐이고 풀은 다시 일어서며 생기발랄한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렇게 풀은 바람과의 관계 속에서 눕고 일어서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러한 풀의 모습에 착안하여 시인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즉 ‘풀’이라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듯한 존재를 통해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본다. 『논어』에도 “통치자의 덕은 스치는 바람과도 같고, 백성들의 덕은 풀과도 같다. 풀 위에 바람이 스치면, 풀은 누울 뿐이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우선 명령을 계속해서 바람처럼 발하여 아니 미치는 곳이 없이 충분히 숙지시켜야 한다. 다음에 실제로 그 명령을 시행하는 사업을 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바람이 나무의 이파리까지 구석구석 부는 것을 보고 ‘신명행사(申命行事)’하라는 말이다. 즉 명령을 계속해서 바람처럼 발하여 아니 미치는 곳이 없이 충분히 숙지시켜야 하고, 실제로 그 명령을 시행하는 사업을 행하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보편화 되면서 민중들의 힘은 커진다. 순자의 ‘군주민수(君舟民水)’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즉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그런 민중의 힘을 노래한 작품이 「풀」이다. 중풍손괘는 결국 흉으로 끝난다. 고정된 가치관에 복속되면 흉운이 된다. 변통없는 진리는 없다. 고정관념에 딱딱해지면 굳은 바위가 된다. 우리의 뇌를 항상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겸손은 유순하다는 말이 아니다. 유순하면 우유부단한 인간이 된다. 우유부단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망친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다. 겸손함이 극에 달하면 강건함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세종도 겸손하고 유순했지만 백성을 위한 일에는 강건했다. 최만리 등 사대부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에도 굴하지 않고 훈민정음을 제정하고 반포했다. 이때 만약 굴복했다면 오늘날 지식 정보화 시대에서 한글 없이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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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나무(중풍손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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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생명의 축복은 어디에 있나(중택태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택태괘는 위와 아래에 공통으로 연못(☱)이 있는 모양이다. 연못 두 개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다. 두 개의 연못은 지하 수맥을 통하여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수량을 도와주고 있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붕우들과 더불어 앉아 서로 강론하고 서로 학습하고 서로의 배움을 돕는다.’고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관계 즉 연결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인간 존재의 즐거움도 연결과 교섭에 있다. 이것은 공감, 협력, 상생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확충한다. 중택태(重澤兌)의 ‘태(兌)’는 ‘八+口+人’의 회의자다. 兄은 ‘사람의 입’이고, 八자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숨’이다. 그래서 ‘신적인 떨림’의 엑스타시 상태의 신기(神氣)의 모습이다. ‘들어가다(入)’의 의미다. 들어간다는 말은 단순히 형이상학적 관념적 개념과는 다르다. 느낌의 세계에서는 들어감이란 실제로 물리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수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兌)가 들어가는 한자어로는 說, 悅, 脫이 있다. 설(說)은 말의 주고 받음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혼자서 말을 하면 아무런 즐거움이 없다. 말을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배움에도 이 괘가 관련이 있다. 배움이라는 것도 스승이 말을 하고 제자가 말을 받음이다. 또한 붕우끼리 말을 교환하면서 서로 배운다. 연결이다. 서로에게 들어감이다. 열(悅)은 붕우강습(朋友講習)을 말한다. 즉 공부를 친구와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이다. 공부를 할 때 독학하면 안 된다. 독학은 배움이 고루하고, 듣는 것이 너무 적어 자칫 왜곡과 망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탈(脫)은 자기를 버린다는 의미다. 무아나 몰아를 말한다. 신과의 소통은 일종의 엑스타시 상태다. 우리가 흔히 신기가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 즉 무아(無我)와 몰아(沒我)는 즐거움을 준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기쁨이다. 중택태는 인간 존재의 즐거움에 대한 괘이기 때문에 중택태 괘사에도 ‘형(亨), 이(利), 정(貞)’이 나와 있다. ‘원(元)’만 없다. 존재의 기쁨, 생성의 기쁨이다. 괘의 격이 높다. 생명의 축복은 공감, 협력, 상생을 통해 존재한다는 중택태괘의 주제를 잘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있다. 1960년에 씌여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라는 성장 소설이다. 원래 앵무새가 아니라 ‘흉내쟁이 자빠귀’라는 새인데, 이 새는 다른 새들의 소리를 잘 흉내낸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새여서 ‘앵무새’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다. 작품의 배경은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이다.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같은 일자리를 두고 백인과 흑인이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종 차별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의 배경인 메이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축소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의 작가인 넬 하퍼 리는 앨라배마 주 먼로빌에서 1남 3녀의 막내딸로 태어난다. 이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스카웃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루이즈 핀치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스카웃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3년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그 3년이 물론 육체적으로도 성장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 성장과 영혼의 개안을 가져온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의 역할이 무척 크다. 그리고 스카웃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안내자로 역할을 한다. 어떻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나? 바로 남에 대한 공감, 협력, 상생을 통해서다. 이것은 중택태괘의 주제와 일치한다. 먼저 공감이다. 애티커스 핀치는 스카웃에게 “그 사람의 피부 속으로 들어간 그 안에서 돌아다닐 때까지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그렇다.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는 스카웃이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두려움과 미스터리의 인물이었던 은둔 이웃인 부 래들리(Boo Radley)와의 상호작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카웃은 부의 관점(그의 외로움, 수줍음, 핀치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열망)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두려워하는 것에서 그에게 공감하는 것으로 옮겨진다. 이러한 공감은 평화로운 공존으로 이어지며, 부는 스카웃과 그녀의 남동생 젬을 위험에서 구하게 된다. 다음으로 협력이다. 톰 로빈슨의 재판은 협력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다. 메이콤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로 인해 법률 시스템이 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티커스 핀치는 톰과 그의 가족이 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진실성과 헌신으로 그를 대표하여 협력한다. 법정에서의 묵묵한 존중 표시와 재판 후 음식 선물로 상징되는 애티커스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 간의 협력은 일종의 연대와 상호 지원을 보여준다. 이러한 협력은 법정을 넘어 확장됩니다. 핀치 가족의 가정부인 캘퍼니아는 흑인과 백인 공동체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스카웃과 젬을 교회로 데려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동체 지원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협력 감각은 인종 차별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변화와 상호 존중의 씨앗을 심는, 인종을 초월한 더 깊은 이해와 존중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공존이다. 특히 소설의 결론은 부 래들리라는 인물을 통해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때 두려움과 오해를 받았던 부는 핀치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며 온화하고 보호적인 인물로 밝혀진다. 부가 밥 이웰에게서 스카우트와 젬을 구해내면서 두려움이나 편견이 아닌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존의 힘을 보여준다. 결국, 밥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밥 웰을 죽인 후 부가 자신의 칼에 쓰러졌다고 말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부를 대중의 눈으로부터 보호하기로 한 커뮤니티의 결정은 자비와 존경의 행동이었다. 이는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사생활을 존중하며, 차이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자리를 갖는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공존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앵무새 죽이기』는 도덕적, 공동체적 번영으로 대표되는 삶의 축복이 공감과 협력, 공존을 통해 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애티커스 핀치나 스카우트처럼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캐릭터는 개인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더욱 공정하고 이해심 많은 커뮤니티에 기여한다. 편견과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도 소설은 이러한 가치가 진정한 번영, 평화 육성, 상호 존중, 인류애 공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즐거움이란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는 만족감이다. 만족한 마음이 나란히 있다는 말은 서로 공감하는 마음의 연결을 의미한다. 공감으로 연결하는 마음은 협력할 수 있는 마음이다. 이렇게 즐거움에서 출발하는 노력, 그것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이미 사회를 움직이고 국가를 움직이고 나아가서는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하물며 다수의 이러한 마음들이 공감으로 연결되어 어느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협력할 수만 있다면 인간의 어떠한 일도 어려운 것이 없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인간은 하루도, 또 누구도 고립하여 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부단히 서로 접촉하고 교섭을 가지고 어떠한 관계로 서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가 모두 유쾌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사회 구조의 고도화는 어느 사이에 인간을 집단 속의 개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 상호 관계는 거대한 기계의 회전 속에 하나하나의 톱니바퀴로서의 연결이 강요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것은 연대감, 의무감, 중압감을 느끼게 하고 어쩔 수 없는 체념을 가지게 하는 관계다. 인간은 점점 노예로 변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즐거운 협력이란 꿈은 이 이해관계 앞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기쁜 마음을 서로 연결하며 살 수 있을까? 그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도자의 인격이다. 지도자는 외유내강(外柔內剛)하는 미덕을 갖추어야 하고, 스스로 선두에 서서 실천하는 선구자적인 용감성이 있어야 한다. 외유(外柔)한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와 몸에 밴 예절과 수양에서 오는 세련됨으로, 남과의 사교를 부드럽고 선의에 찬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한다. 내강(內剛)이란 것은 마음 속에 바르고 선한 것에 대한 부동의 신념이 있어서 한결같이 의젓하여 변함이 없음을 의미한다. 남을 즐겁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 매슬로우(Meslow)의 욕구 5 단계설을 무시하고서라도 잠깐의 쾌락적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라 보기 어렵다. 선두에 서서 실천한다는 것은 진정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남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을 따라오게 할 수 있는 길이다. 자신이 진정 즐거워하는 마음이라면 남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따라오게 된다. 『맹자』에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 하였으니, 언제나 백성을 먼저 기뻐하도록 해주면, 백성이 자기의 수고로움을 다 잊어버리고 나라를 위해 힘껏 일하고, 어려운 일에 임금이 솔선수범하여 뛰어들면, 백성은 죽음을 불사하고 앞장서서 뛰어든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두 권장할 만한 일이 된다. 중택태괘는 공감하고 협력해서 상생하는 괘다. 『앵무새 죽이기』란 작품은 제목이 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애티커스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사주면서 다른 새를 죽이는 것은 몰라도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고 말한다. 다른 새들과 달리 앵무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 곡식을 먹거나 창고에 둥지를 트는 등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부 레들리나 톰 로빈슨은 바로 앵무새와 같은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편견이나 아집 때문에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스카웃이 숙녀가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다룬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첨가하자면 작품의 처음 배경이 여름이었는데, 작품의 후반부에 와서는 가을이 중심적인 시간적 배경이 된다. 가을은 조락과 소멸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퍼 리가 문학적 장치를 아주 치밀하게 배열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을과 더불어 스카웃은 비로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중택태괘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계절의 변화처럼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생명의 축복은 공감, 협력, 상생의 길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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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생명의 축복은 어디에 있나(중택태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