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07(목)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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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화님의 「나도 냉이다」란 시를 보자.

길바닥 갈라진 틈을 보아 비집고 다붙어
용쓰고 애쓰고 곁가지도 뻗으며
솔솔한 웃음기를 바람에 띄우면서
초여름 햇살을 바라지하는
거기 소문 없이 냉이 꽃이 피어 있다.
곁에서 잊고 사는 이 땅의 이름이여.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서운해할 겨를도 없이
도시의 한 구석배기를 차지하고
다물고 치뜨고 하늘을 바라고
들어봐 안쓰럽게 밭은 소리를 외고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소문 없이 우리 주위에서 쉽게 피어난 냉이꽃을 본다. 그러나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상큼한 향기의 봄을 가졌다. 그래서 냉이는 카이로스로 꽉 채워졌다. 
 
냉이는 발아하기 적당하다고 한꺼번에 싹을 틔우지 않는다. 순식간에 모두 죽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잡초는 발아 시기를 늘려가면서 위험의 분산을 꾀한다. 냉이도 발아 시기가 길다. 이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주거환경이 원인이다. 냉이는 봄날이 아니라 여름에도 가을에도 계속해서 싹을 틔우고 있다. 하지만 땅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냉이는 방사성 모양으로 잎을 땅 위에 납작 엎드린 채로 땅 위로 부는 찬바람을 견딘다. 땅바닥에 편평하게 누워 있기에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하면서도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모은다. 가장 추운 달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열쇠다. 마침내 봄이 오면 냉이는 꽃을 피우고 번식할 준비를 한다. 보상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돈다. 인내와 준비는 항상 새로운 성장과 풍요로 보상된다. 
 
잎을 펼치고 있기에 겨울 동안에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라이벌이 적은 시기에 조금 일찍 꽃을 피우면 꽃을 찾아오는 벌레를 독차지 할 수 있다. 냉이가 광합성을 하면서 거친 바람을 피하기 위해 땅에 가까이 붙어 있는 것처럼, 인간도 조용하고 겸손한 방법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필요는 없다. 냉이는 경쟁자가 없는 틈을 이용하여 꽃가루 매개자의 관심을 확보하기 위해 일찍 꽃을 피운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타이밍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거나 조건이 적절할 때 기회를 포착하면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겨울 동안 냉이의 자세는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낮게 유지되지만 봄에 일찍 꽃을 피울 준비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과 때가 되면 주도권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변화와 항상성은 삶을 살아가는 균형 인자다.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치가 모두 필요하다. 
 
희랍어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둘이다.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다. 전자는 ‘흐르는 시간’을 말한다.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가는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 자신을 던져 넣는 삶이다. 이런 삶은 세월의 주름살만 흔적으로 남는다. 후자는 의미 있는, 가치 있는, 보람 있는 시간을 말한다.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돌려놓아야 한다. 낚시할 때 미끼를 꿰어놓고 낚싯대에 물고기가 걸려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은 크로노스다. 이것을 카이로스로 바꾸려면 대어를 낚아야 한다. 물고기를 낚아야 물고기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뀐다. 삶에서 크로노스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미래를 위하여 투자해야 한다. 재미 없는 책도 읽어야 하고, 혹독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 냉이도 혹독한 추위 속에서 찬 바람을 견디는 것은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꾸려는 의도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냉이의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의 행동이다. 이듬해 봄에 푸릇한 새순으로 피어올라, 이른 봄, 꽃들의 향연으로 만들려는 의도다. 이렇게 냉이는 카이로스로 채워진다. 
 
냉이꽃의 꽃말은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친다’이다. 이 꽃말에서 모든 것은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로 채워진 냉이는 당신에게 바칠 자격이 있다. 인간이 냉이꽃에 배워야 할 교훈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는 냉이의 생명력과 냉이의 베풂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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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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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801
목요칼럼

인간과 식물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하나로 휘돌며 생명의 깨달음을 주는 듯 합니다.
2025년에도 건필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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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냉이꽃 - 거기 소문 없이 피어 있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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