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07(목)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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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눈을 의심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계엄’이라는 단어는 다시는 안 보고 싶은 단어였다. 이 단어가 파생시킨 역사적 퇴행을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서 본 것이 얼마 전이었다. 
 
한밤에 국회로 달려가 군인을 막아선 시민들이 있었다. 국회의 창문을 부수고 공수부대 군인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았다.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는 포고문은 전쟁의 언어들이었다. ‘이것이 현실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상처를 입은 것은 국회 집기만이 아니다. 경제, 대외 국가신뢰도,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평범한 일상에 대한 기대도 모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경제는 곤두박질하고 외신은 한국의 계엄 선포 상황을 실시간 보도했다.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이듬해 처형됐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 정책 가담자로서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의 관리 책임자였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법률을 준수하는 것은 공직자가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라며 “저는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상명하복'의 주장이 이 시대에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명령을 준수했을 뿐이라거나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12·3 계엄 사태 당시 방첩사 활동에 대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말로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끔찍하고 엄청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특별히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었다. 그들의 특징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유불능성이다. '사유불능성'은 '어떤 선악에 대한 구별이나 고민을 못하는 정신상태'다. 악행은 평범한 사람이 잘못된 목표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발생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 있을까. 그것을 교육에서 올바로 감당하고 있을까.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어떤 것이 올바른 태도인지 직시해야 한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사마천이 한국의 계엄 사태를 보고 있었다면 무엇이라 기록할 것인지 우리 교육자는 되새김질해야 한다. 정치의 기본이 국민 행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교육도 인간의 존중에서 벗어나면 위험하다. 교육이 인간 존중보다 편의주의나 행정을 우선하면 위험하다. 교육은 그 후유증이 더 오래 지속되고 깊숙이 가기에 교육에서는 백년대계와 신중함과 정도(正道)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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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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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계엄 선포의 시대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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