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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매달 반복되는 원발성 월경통, 프로스타글란딘과 중추신경 감작의 연결고리 풀기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자궁이 보내는 경고음, 원발성 월경통의 원인과 유병률 - 원발성 월경통(Primary dysmenorrhea)은 골반 내 뚜렷한 기질적 이상 없이 월경 주기에 맞춰 발생하는 하복부의 경련성 통증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70개국 자료를 종합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원발성 월경통은 여성 인구에서 매우 높은 유병률을 보이며 일상생활과 학업·업무 수행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대표적 여성 건강 문제로 지목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이 통증의 핵심은 자궁 내막에서 과도하게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염증 매개 물질이 자궁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고 혈류량을 감소시켜 허혈성 통증을 유발하는 데 있습니다. 월경통으로 인해 반복되는 통증 신호는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되며, 점차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 상태를 초래하여 신경학적 만성 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2. 진통제만으로 월경통 관리가 어려운 이유와 숨은 위험성 - 현재 원발성 월경통의 1차 치료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와 경구 피임약이 주로 처방됩니다. 이들 약물은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차단하여 급성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진통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거나, 장기 복용 시 위장관 장애, 신장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어 복용을 중단하곤 합니다. 식물 유래 한약 치료(plant-derived therapies)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러한 기존 약물의 한계와 부작용 우려 때문입니다. 특히 현재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대상 질환에 월경통이 포함되면서, 표준화된 한약 치료에 대한 치료 접근성도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월경통이 동반하는 심리적 부담입니다. 매달 반복되는 심한 통증은 신경면역학적 불균형을 유발하여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진통을 넘어 신체 전반의 신경학적 안정과 염증 제어를 돕는 다각적인 접근이 절실합니다. 3. 뇌 신경망 연구를 통한 월경통의 뇌과학적 재해석 - 최근 뇌과학 연구는 월경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의 신경영상 기법을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 원발성 월경통을 앓은 여성들은 통증을 지각하고 조절하는 뇌의 특정 네트워크(대뇌피질-변연계 등) 구조와 활성도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자궁에서 시작된 말초의 염증 신호가 뇌의 통증 조절 회로를 교란시켜,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월경통 치료가 자궁 수축 억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중추신경계의 과흥분을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4. 원발성 월경통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과 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이러한 맥락에서 한의학 치료는 월경통 관리에 있어 효율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효과와 기전이 최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침 치료는 뇌의 통증 조절 네트워크를 정상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fMRI를 이용한 연구에서 침술은 월경통 환자의 비정상적인 뇌 기능적 연결성을 조절하여 중추성 진통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양한 침 관련 치료를 비교 분석한 네트워크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침 치료는 통증 강도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대만에서 19년간 진행된 대규모 코호트 추적 연구에서는 원발성 월경통 환자에게 꾸준히 침 치료를 시행한 결과, 신경면역 조절 기전을 통해 향후 우울증으로 이행될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침 치료가 단순 진통을 넘어 중추신경계 보호 효과를 지님을 의미합니다. 한약 역시 다양한 약리 성분이 여러 병리적 표적에 동시에 작용하여 자궁 내 염증 환경과 혈류 개선에 기여합니다. 월경통에 다용되는 대표적 처방인 온경탕은 최신의 인공지능 기반 약리분석 연구를 통해 염증 발현의 핵심 경로인 PI3K/AKT/NF-κB 신호 전달을 억제하여 하복부의 혈류에 장애를 야기하는 원인 염증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근래의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에서는 월경질환 치료에 오랜 기간 활용돼 온 계지복령환이 위약군에 비해 월경통 강도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특정 처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발표된 국내 다기관 전향적 관찰연구에서도 환자 맞춤형 한약 치료가 진통제 복용량을 줄이고 통증 지속 시간을 단축하는 데 유의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월경통 자가 관리법 - 임상적인 한의 치료와 함께, 일상생활에서의 적극적인 관리 요법을 병행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만성 월경통을 관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 요법 :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천연 진통제입니다. 29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를 종합한 네트워크 메타분석에 따르면, 규칙적인 요가, 스트레칭, 중등도의 유산소 운동은 골반 내 혈류 순환을 개선하고 통증 유발 물질을 배출시켜 월경통 강도를 뚜렷하게 감소시킵니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기저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온 유지와 하복부 보온 : 한의학에서 말하는 '한응혈어(寒凝血瘀, 차가운 기운이 혈액을 뭉치게 함)'는 실제 생리학적 혈관 수축과 일치합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유지하여 골반 근육의 긴장을 풀고 미세혈류 순환을 돕는 것이 좋습니다. 생리통을 '여성이라면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진통제에만 의존한 채 위장 장애와 우울감을 감내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궁의 국소적 염증을 다스리고 중추신경계의 예민함을 잠재우는 과학적인 한의 치료와 올바른 운동 습관을 통해, 매달 찾아오는 통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을 누리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de Arruda GT, Barbosa-Silva J, Driusso P, Pathmanathan C, Armijo-Olivo S, Avila MA. Worldwide prevalence of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cross 70 countries. Pain. 2026 Jan 1;167(1):41-55. doi: 10.1097/j.pain.0000000000003768 2.Iacovides S, Avidon I, Baker FC. What we know about primary dysmenorrhea today: a critical review. Hum Reprod Update. 2015 Nov-Dec;21(6):762-78. doi: 10.1093/humupd/dmv039. 3.Cho SI, Jung HJ, Park M, Kim DI. Effectiveness and safety of herbal medicine on treatment of dysmenorrhea: An analysis of a multicenter, prospective observational study. Integr Med Res. 2026 Mar;15(1):101209. doi: 10.1016/j.imr.2025.101209 4.Wu L, Xu Lou I, Hu Z, Wang G, Deshpande SV, Cáceres-Matos R. Efficacy of Plant-Derived Therapies for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Phytother Res. 2026 Apr 15. doi: 10.1002/ptr.70324 5.Tsai IC, Hsu CW, Chang CH, Lei WT, Tseng PT, Chang KV.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Different Exercises for Reducing Pain Intensity in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Sports Med Open. 2024 May 30;10(1):63. doi: 10.1186/s40798-024-00718-4. 6.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2023:8307249. 7.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 Feb 18;2023:8307249. doi: 10.1155/2023/8307249. 8.Liao CC, Lin CL, Tsai FJ, Chien CH, Li JM. Acupuncture's long-term impact on depression prevention in primary dysmenorrhea: A 19-year follow-up of a Taiwan cohort with neuroimmune insights. J Affect Disord. 2024 Jan 1;344:48-60. doi: 10.1016/j.jad.2023.10.013. 9.Li XL, Jin Y, Gao R, Zhou QX, Huang F, Liu L. Wenjing decoction: Mechanism in the treatment of dysmenorrhea with blood stasis syndrome through network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verification. J Ethnopharmacol. 2025 Jan 30;337(Pt 1):118818. doi: 10.1016/j.jep.2024.118818. 10.Luo Y, Mao P, Chen P, Li C, Fu X, Zhuang M. Effect of Guizhi Fuling Wan in primary dysmenorrhea: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 Ethnopharmacol. 2023 May 10;307:116247. doi: 10.1016/j.jep.2023.116247.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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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제철 음식과 탄소 중립 그리고 환경교육의 재인식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작년 겨울, “할아버지, 이 딸기 맛이 좀 이상해~.” 제철이 지난 시기에 어린 손녀가 먹던 딸기를 내려놓으며 하던 말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철 지난 과일의 맛은 6살 아이의 기억과 입에도 낯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딸기 한 알을 우리 식탁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됐는지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지구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우리는 날로 무더운 여름을 나면서 인내의 한계를 넘을 만큼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나 과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가뭄, 폭우, 태풍, 식량 위기까지, 우리의 삶은 이미 기후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런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을 뛰어넘는 ‘지속 가능한 삶의 선택’을 가르쳐야 한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도 가까운 곳, 바로 우리의 식탁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제철 음식은 그 자체가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농산물이나 비제철 작물의 경우, 수송 과정에서 평균 11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인공조명, 난방, 수분조절 등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곧 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예컨대, 2020년 녹색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겨울에 먹는 딸기 1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탄소 배출량은 약 3.4kg의 CO₂로 밝혀졌다. 반면에, 제철인 봄에 재배된 딸기는 0.8kg의 CO₂로 훨씬 적다. 같은 딸기이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철 급식’을 운영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철저한 탄소 중립 교육에 나서야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는 2022년부터 ‘제철 급식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영양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참여해서 한 주일씩 제철 재료로만 구성된 메뉴를 만들고, 식사 후에는 환경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한 학생은 “처음엔 낯선 반찬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자연이 지금 주는 맛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적었다. 또 다른 학생은 “내가 먹는 음식이 지구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니, 앞으로 장을 볼 때도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은 단순히 환경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를 이끄는 울림 있는 실용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제철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계절에 맞는 재료를 소비함으로써 난방, 냉방, 장거리 운송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농업의 활성화이다. 식재료는 대개 지역 농산물이다. 이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음식의 이동 거리를 줄이는 ‘로컬푸드’ 실천이기도 하다. 셋째, 식문화의 회복이다. 제철 음식은 자연이 주는 최적의 영양 상태를 가진다. 건강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넷째, 소비자로서의 책임 교육이다. 아이들이 직접 음식 선택의 윤리성과 환경적 영향을 배움으로써, 더 넓은 차원의 ‘지속 가능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전남 순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제로 푸드 마일(Zero Food Mile)’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한 학생이 쓴 글이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이 지구에 무게가 될 수도, 지구를 쉬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철이라는 건 단지 맛있는 시기가 아니라, 자연이 숨 쉬는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제철 음식 먹기’는 단지 건강을 위한 선택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작은 실천이자 위대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탄소 중립은 거창한 기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식탁에서 지구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환경교육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기초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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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오지선다형 수능, 개선해야 할 교육의 본질을 가로막는 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지선다형 수학능력시험(수능)은 효율성과 공정성을 앞세워 오랜 기간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이제 교육 전문가들과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 체제가 AI 시대, 최첨단 과학·기술의 디지털 시대에는 대한민국 교육의 발전을 가로막는 강력한 틀이라는 사실에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배출한 유능한 엘리트들은 실제로는 교육 현장에서 빠른 시간에 정답을 찾는 ‘기술’을 익히는 구조에 남다르게 익숙한 인재들이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수업 중 학생들이 ‘답이 몇 번이냐’를 먼저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지적하며, 문제해결보다는 시험 요령에 집중하는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이 같은 경향은 사교육 의존을 심화시키는 구조로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이루어 왔다. 왜냐면 객관식 수능은 ‘선택지를 제거하는 기술’을 요구하는 형태고, 이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일수록 전문 사교육이 의존해 효과를 얻어 결국 계급의 세습화를 부채질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국내의 수능 운영 방식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제한적이다. 다만, 2028학년도부터 서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며, 이를 통해 사고력 평가 강화가 기대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다만, 공정성과 비용 문제는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논의들은 개관식의 한계를 통계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있다. 예컨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같은 서술·논술형 대입 시험은 사고력과 표현력을 측정하는 데 유리하며,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서술형 문항 도입에 대해 “학생들의 사고력이나 깊이 있는 성찰 능력을 측정할 수 있어 진일보한 방법”이라며, “2028학년도부터의 도입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 입시 전문가는 “서술형 문항은 전산 채점이 어렵고, 채점 기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빈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시 채점의 신뢰성과 관리 비용 문제는 현실적인 장애물로 지적된다. 앞서 말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통적인 논술형 중심 평가 방식으로 역사적으로 사고력과 논리적 표현을 핵심으로 여겼다. 프랑스어 과목은 수험생이 출제된 주제에 대한 긴 글을 작성해야 하며, 수학은 풀이 과정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도 유사한 방식의 논술·서술형 대입 평가를 채택하고 있어, 학습자의 ‘사고하는 능력’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흐름은 우리 교육도 단순한 지식 암기가 아닌 사고력 중심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수능은 평가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만, 교육이 지향해야 할 사고력, 창의성, 다양성이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정답 중심의 구조는 이미 변화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에 따라서는 수능 문제의 ‘해킹’조차 가능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선발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상을 위한 ‘교육’이다. 여기엔 질문을 만들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으로의 전환은 필수다. 이제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수능의 고득점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교 시절 내내 문제 풀이 기술을 익혀 빠르게 정답을 찾는 것만이 학창 시절의 고정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이렇게 길러진 우리의 엘리트들은 토의⋅토론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인재로 고위직에 올라 공인된 인재들임에도 ‘공부머리’와 ‘일머리’의 극심한 부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객관식 정답 찾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기존의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층의 완강한 저항과 반발로 밖에 볼 수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랴”는 말처럼 수능 개혁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개선이 가능한 핑계 수단일 뿐이다.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퇴행한다. 이제 수능 개혁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의 미래 세대들을 위한 것이기에 더욱 필요성이 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수능 개혁을 도모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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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차트는 읽지만 삶은 읽지 못하는 시대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오늘의 한국 사회는 차트를 읽는 데는 민감하지만 삶의 방향을 읽는 데는 서툴러지고 있다. 투자 광풍과 가짜 정보가 범람하는 이유에 한국 교육의 책임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보다 ‘따라가는 법’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주식 열풍은 결국 돈에 대한 욕망만이 아니라 양극화와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집단 심리의 거울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모든 시대의 광풍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암호화폐 열풍도 당시에는 모두 새로운 질서와 미래의 약속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끝내 남는 것은 본질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이성의 힘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 공식은 배웠지만 자본의 원리는 배우지 못했다. 문제를 푸는 훈련은 반복했지만 위험을 판단하는 능력은 익히지 못했다.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진 사회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을 만든다. 삶은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잔인한 진실은 세상이 객관식 시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상승하는 종목들을 보라. 반도체와 인공지능, 전력과 에너지 전환 산업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반영하고 있다. 상승하는 자산의 본질은 ‘변화에 대한 감각’에 있다. 전력 기업의 상승은 에너지 질서의 전환을 예고하고 인공지능 기업의 부상은 인간의 노동과 사고 체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미래의 방향을 읽고 있는데 우리의 교육은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주식은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낼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교육보다 시장의 움직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주가를 확인하면서도 정작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무관심하다. 자본은 사회를 움직일 수 있지만 인간의 품격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존재는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고 말했다. 지금 교육에 필요한 것도 단순한 제도의 개편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다. 질문할 수 있는 인간, 의심할 수 있는 인간,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다. 교육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유행하는 답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힘은 긴 독서와 토론, 예술과 철학, 그리고 혼자 사유하는 시간 속에서 단련된다. 속도의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깊은 내면이다. 차트를 읽는 능력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만 삶의 방향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못한다. 결국 미래를 살아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다. 미래를 주도적으로 살아갈 학생에게 교육에서 그 힘을 길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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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허리를 펴야 삶이 편안해진다 : 만성 비특이성 요통을 다스리는 추나요법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원인 모를 허리 통증, '만성 비특이성 요통'의 굴레 - 싱그러운 5월, 산과 들로 나들이를 떠나고 싶지만 허리 통증 때문에 선뜻 걸음을 내딛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특히 X-ray나 MRI 검사를 받아도 뚜렷한 디스크 파열이나 뼈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이상 뻐근함과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를 '만성 비특이성 요통(Chronic non-specific low back pain)'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성 요통은 단순히 허리 근육이 뭉친 것을 넘어, 척추 주변 근육과 관절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통증이 몸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걷거나 앉아 있는 일상적인 동작조차 버거워지며, 근육 감소 및 우울감까지 초래하여 일상생활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의 중요 대안으로 자리 잡은 '추나요법' - 이렇게 굳어지고 틀어진 척추와 골반의 균형을 바로잡는 한의학적 수기치료가 바로 '추나요법'입니다. 국제 학술지인 통합의학연구(Integrative Medicine Research, 2014)에 소개된 바와 같이,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인체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척추와 관절의 구조적 문제를 교정하는 한의학적 수기치료법입니다. 최근에는 만성 통증 관리 분야에서 추나요법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4년 국제 저명 학술지(Complementary Therapies in Medicine)에 발표된 서지학적 분석 연구에 따르면, 만성 통증에 대한 추나요법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를 분석한 2025년 대규모 후향적 연구(BMJ Open)에서는 추나요법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이후 근골격계 질환 환자들의 추나 치료 활용이 매우 안정적으로 정착하였으며, 국민의 척추 건강 관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최신 연구에서 입증된 추나요법의 통증 완화 및 기능 회복 효과 - 추나요법의 치료 효과는 엄격하게 설계된 임상연구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2026년 영국 의학저널(BMJ Supportive & Palliative Care)에 게재된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만성 비특이성 요통 환자에게 추나요법을 시행하면 통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 기능도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나요법은 다른 보존적 치료와 병행할 때 더욱 강력한 시너지를 냅니다. 2026년 발표된 실용적 임상연구(BMC Complementary Medicine and Therapies)에서는 추나요법과 일반 물리치료를 병행한 그룹이 단독 치료 그룹에 비해 만성 요통 개선에 더 뚜렷한 개선 효과를 보였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퇴행성 변화가 심한 '증상성 퇴행성 요추 전방전위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2025년 다기관 임상시험(Mayo Clinic Proceedings)에서도 추나를 포함한 비수술적 통합 치료가 척추 기능 회복에 도움을 주고 통증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대안임이 입증되었다는 점입니다. 신경을 재생하고 근육 위축을 막는 추나의 분자생물학적 효과기전 - 최근의 기초 과학 연구들은 추나요법이 단순히 뼈를 맞추는 물리적 자극을 넘어, 우리 몸의 세포와 신경 기능 조절을 통한 통증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손상된 신경의 재생을 돕습니다. 2025년 정형외과 연구 저널(Journal of Orthopaedic Surgery and Research)에 발표된 동물 실험 연구에 따르면, 추나 치료의 물리적 자극은 세포 내 특정 경로(Piezo1/YAP/TAZ)를 활성화하여 신경을 감싸는 보호막인 '수초(myelin)'의 재생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둘째, 신경 손상으로 인한 근육 소실을 방지합니다. 요통이 오래되면 다리가 가늘어지고 힘이 빠지기 쉬운데, 2024년 발표 연구에서는 추나요법이 근육 회복과 관련된 세포 신호 (PI3K/Akt)를 조절하여 좌골신경 손상으로 유발된 근육 위축을 효과적으로 완화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셋째, 중추신경계의 통증 민감도를 낮춥니다. 2026년 세포 분자 의학 저널(Journal of Cellular and Molecular Medicine)에 실린 연구는, 추나가 척수 내 성상세포의 특정 경로(NDRG2/GLT-1)를 조절해 뇌로 전달되는 통증 신호의 증폭을 억제함으로써 만성적인 신경병증성 통증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바른 척추로 되찾는 100세 시대의 든든한 일상 - 성공적인 요통 관리를 위해서는 임상적 치료와 더불어 생활 습관 교정이 필수적입니다. •자세의 인체공학적 관리: 의자에 앉을 때는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넣고 척추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유지하며 허리를 세워야 합니다. 특히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허리를 숙이는 대신 무릎을 굽혀 하체의 힘을 이용하는 습관은 요추에 가해지는 과도한 압축력을 분산시켜 구조적 변형을 예방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운동 요법 : 하루 30분 이상의 평지 걷기나 수영은 척추를 지탱하는 핵심 코어 근육을 강화합니다. 이는 추나 치료가 자극하는 근육 회복 신호와 결합하여, 신경 손상으로 인한 근육 위축을 방지하고 척추의 지지력을 높여줍니다. •근육 이완과 스트레칭 : 틈틈이 허리와 골반 주변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하는 자가 스트레칭은 척추 주변 신경에 가해지는 기계적 압박을 줄여줍니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근육 이완은 척추 주변의 긴장을 줄이고 통증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몸의 긴장을 완화해 만성 통증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줄이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만성 요통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지만, 단순히 진통 약물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한 개선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한의 치료와 올바른 생활 관리를 병행하여, 지긋지긋한 통증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활기찬 일상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Kim K, Yan D, Bauer BA, Choi JC, Wang Z, Jung JE, Kim J, Kim TH, Eldrige JS, Mauck WD, Holmes BD, Bublitz SE, Seo M, Qu W. Nonsurgical Integrative Treatments for Symptomatic Degenerative Lumbar Spondylolisthesis: A Multinational Randomized Controlled Clinical Trial. Mayo Clin Proc. 2025 Nov 2:S0025-6196(25)00334-9. doi: 10.1016/j.mayocp.2025.05.030 2.Tan ICC, Wong HEM, Qiao F, Chong WM, Soh CCR, Ho CE, Cheong KCP, Chen LTJ, Bong PA, Seet IHN, Lim XW, Ma QY, Zhou X, Shen LB, Yang J, Chen JX, Bauer BA, Tay BK. Effectiveness of tuina and physiotherapy to manage pain for patients with chronic low back pain: a pragmatic randomized clinical trial. BMC Complement Med Ther. 2026 Jan 9;26(1):47. doi: 10.1186/s12906-025-05234-w 3.Baek GG, Ha IH, Lee YJ, Shin YJ, Shin BC. Analysis of the utilisation of Chuna manual therapy for musculoskeletal disorders after its coverage under national health insurance in Korea: a retrospective analysis. BMJ Open. 2025 Aug 8;15(8):e094099. doi: 10.1136/bmjopen-2024-094099. 4.Huayu L, Jiamin Y, Xudong S, Mengchao Z, Shunqin Y. Tui Na therapy for pain and function in chronic low back pain: a systematic review. BMJ Support Palliat Care. 2026 Mar 3:spcare-2025-005896. doi: 10.1136/spcare-2025-005896. 5.Xu H, Wang Z, Wang Z, Lei Y, Chen J, Zhou H, Li M, Diao J, Bian Y, Zhou B, Zhou Y. Recent trends in Tuina for chronic pain management: A bibliometric analysis and literature review. Complement Ther Med. 2024 Sep;84:103068. doi: 10.1016/j.ctim.2024.103068. 6.Park TY, Moon TW, Cho DC, Lee JH, Ko YS, Hwang EH, Heo KH, Choi TY, Shin BC. An introduction to Chuna manual medicine in Korea: History, insurance coverage, education, and clinical research in Korean literature. Integr Med Res. 2014 Jun;3(2):49-59. doi: 10.1016/j.imr.2013.08.001. 7.Zhang H, Chen L, Jiang J, Huang L, Huang H, Huang L, Chen S, Lin Z. Tuina Inhibits Synaptic Plasticity Through the Astrocytic NDRG2/GLT-1 Pathway to Alleviate Neuropathic Pain. J Cell Mol Med. 2026 Jan;30(1):e71013. doi: 10.1111/jcmm.71013. 8.Zhang Y, Zhang H, Liu J, Sun J, Xu Y, Shi N, Zhang H, Yan J, Chen J, Wang H, Yu T. Tuina alleviates the muscle atrophy induced by sciatic nerve injury in rats through regulation of PI3K/Akt signaling. J Orthop Surg Res. 2024 Dec 31;19(1):892. doi: 10.1186/s13018-024-05270-1 9.Xu Y, Rentuya N, Yu T, Yan J, Zhang H, Zhang Y, Zhang H, Sun J, Liu J. Tuina promotes nerve myelin regeneration in SNI rats through Piezo1/YAP/TAZ pathway. J Orthop Surg Res. 2025 May 12;20(1):454. doi: 10.1186/s13018-025-05794-0.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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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유모차 없는 거리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유모차 없는 거리 저출산 시대, 유모차 지나가면 낯선 반가움. 그 안엔 아이 없이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 대형 매장 아이 코너엔 강아지, 고양이 반짝이는 무대.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 출산 정책은 바람에 날리는 종잇장. 결혼도 독립도 뒷전, 답답함은 세상 탓일까, 우리 탓인가. 유모차 없는 거리, 우린 무얼 기다리나.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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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저주의 속삭임 "나이파이한필베"(뢰택귀매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나이파이한필베” 저주의 예언이다. 김진명의 소설 『풍수전쟁』에 나오는 저주의 예언이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 책을 반쯤 읽었을 때 그 뜻을 알게 되었다. 2025년 세계 국가 경쟁력의 순위다. 즉 나이지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이란, 한국, 필리핀, 베트남 순으로 국가 경쟁력을 나열해 그 첫음절을 딴 것이다. 이것이 저주의 예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구절벽 때문이다. 이제는 ‘인구절벽’이란 말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인구소멸’이란 신조어가 쓰인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 출산율이 미국은 1.87명, 한국은 0.78명이란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출산율 정책을 출산장려금으로 퉁 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해결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연간 28조원의 예산을 쓰고도 올해 출산율이 0.78명이라면 그 정책은 이미 쓸모없다는 말이 아닌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00억 달러(약 81조 4600억 원)가 넘는 돈을 썼다. 그리고는 올해 우리나라에 초등학교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157개교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또 올해도 출산장려금을 올렸다. 진정 이 방법밖에는 없는가. 국민 모두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2050년이 되면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없어질 것이란 예측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용묵의 「병풍에 그린 닭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1939년에 쓴 이 소설은 우리나라 여인의 운명적 비애를 쓴 이야기다. 이 소설의 끝부분에 애를 낳지 못해 시집에서 쫓겨난 박씨는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집을 떠날 수 없으며, 죽어도 그 집에서 죽고, 살아도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면서 20리 밤길을 걸어 집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에 대한 순종과 그 각성을 보여주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당시 전통적 가치관의 완고함과 그로 인한 삶의 고달픈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주역』의 뢰택귀매괘를 보면서 인구소멸시대에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대상전」에 뢰택귀매괘를 보면 ‘연못 위에 우레가 있는 모습이다. 연못으로부터 수증기가 증발하여 하늘에 구름이 끼고 그것이 하늘의 기운과 방전하고 우레를 일으킨다는 것을 고대인들도 인식하였다. 그러한 번개, 천둥 현상을 음양의 교합으로 생각하였고, 우리 인간, 남녀 간의 사랑 또한 그 기쁨과 환희가 번개같고 또 천둥과도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환희처럼 더 큰 우레가 어디 있으랴!’고 되어 있다. 귀매(歸妹)의 귀(歸)는 며느리를 뜻하는 (빗자루帚) + 언덕퇴(阜) + 그칠지(止)의 합으로 이루어진 형성자다. 옛날에 여자는 본래 있어야 할 곳이 시집이었다. 원래 친정은 잠시 있는 곳이고 때가 되면 시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즉 여자는 시집가서 평생 머물러 산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귀매(歸妹)’는 ‘시집가는 색시’다. 상고의 시대에는 남녀 차별이 일체 없었다. 고대에는 대체로 모계로써 그 성을 삼았다. 귀매괘는 결혼 그 자체를 의미하는 괘다. 여자의 입장에서 결혼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 왜 시집가는 것이 낡아져 죽음을 향하는 것인가? 고조선과 같은 옛날 풍속에서는 남자가 아내를 얻으려면 먼저 처가에 가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장가(처가) 일을 보살피다가 첫 아이를 낳게 되면 비로소 색시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결혼은 남녀 1 : 1의 결합이 아니라 한 가족 대 자기라는 복수적인 결합인 셈이다. 그래서 ‘시집’이라면 남편이 아니라 ‘남편 집’을 의미한다. 또한 ‘장가’(간다)는 ‘장인(장모)의 집’을 가리킨다. 원래 한국에는 개인의식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한 가족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인격이 인정되어 있지 않았다. 남편 자체가 이미 가족 전체에 예속되어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자연히 결혼한 여인도 남편과의 독립된 관계가 아니라 그 집안 전체의 가족 관계를 한층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소위 그 ‘시집살이’라는 기형적인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그래서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란 말이 나왔다. 귀머거리처럼 못 들은 체, 벙어리처럼 말 못하는 체, 그렇게 6년을 살아야 시집살이를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집살이 개집살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외나무 다리 어렵대야 시아버지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동서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시아버지 뽀릉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시집살이 노래」를 봐도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자유스런 생활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가족과의 모든 관계가 구속과 반목으로 시종되어 있다. 그 인간관계는 불만과 억압으로 얽혀 있다. 그러한 틈에서는 남편과의 사랑도 원만할 리가 없다. 그러다가 겨우 남편을 독점할 무렵이면 이미 “메꽃 같은 얼굴이 호박꽃이 다 되고, 삼단 같은 머리털이 비싸리총이 다 되고, 백옥 같은 손길이 오리발이 다 되었을 때”이며, 아름답던 젊은 날의 의상은 “눈물을 씻다가 썩어버리고” 난 후인 것이다. 남편은 그때 첩을 얻는 게 보통이다. 여기서 시집살이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군다. 앞에서 언급한 계용묵의 「병풍에 그린 닭이」란 단편소설에 잘 나와 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뒤집어 보면 알 수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는 까닭은 자식의 사랑을 독점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어머니 역시 젊었던 시절엔 시집살이를 했던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아들은 좌절된 남편에의 사랑을 보상하는 내용물이며 모든 고통과 고독을 승화시킬 수 있는 돌파구인 셈이었던 것이다. 부부 생활의 좌절이 시집살이의 악순환을 일으키게 되고, 그러한 악순환 속에서 한국의 가족은 분열, 반목, 질시, 분란을 거듭했다. 우리는 타자(아들)를 완전히 자기 안에 흡수하려 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불화가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올 김용옥도 뢰택귀매괘를 설명하면서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이 괘는 음양의 교합이 얼마나 이 우주의 중심 과제인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면서 ‘남녀가 독신주의를 선호하고, 근원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인지하는 시대적 풍조에서 『주역』의 주장은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자아낸다’고 하였다. 탁견이다. 오늘날은 발랄한 청춘의 사랑을 새롭게 구가해야만 하는 시대다. 단백질의 살아있는 최고 형태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성스러운 음양의 교합이다. 「대상전」에서는 뢰택귀매괘를 번개, 천둥의 현상을 음양의 교합으로 생각하였고, 우리 인간, 남녀의 사랑 또한 그 기쁨과 환희가 번개 같고 또 천둥과도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환희처럼 더 큰 우레가 어디 있으랴! 『주역』의 탁견은 ‘영종지폐(永終知敝)’에 있다. 남녀의 결합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다. 끝이 끝이 아니라 영속의 한 고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성을 위하여, 종(終)(죽음)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는 것이다. 종료와 영속은 상반되는 개념 같지만 음양의 우주에서는 종료가 곧 영속되는 것이다. 끝남을 영속으로 만드는 것이 영종(永終)이다. 지폐(知敝)라는 단어에 『주역』의 날카로운 견해가 숨어 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것은 새로움을 창출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들이 낡아져 버린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새로움을 창출하는 만큼 낡아져 죽음을 향하는 것이다. 여인의 위대함은 그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행위에 있다. 삶의 지혜다.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집을 떠날 수 없으며, 죽어도 그 집에서 죽고, 살아도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여주인공 박씨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요즘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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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저주의 속삭임 "나이파이한필베"(뢰택귀매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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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오해들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하루에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으로 두 번 수염을 깎는 친구가 있었다. 그처럼 깔끔한 사람이다. 그가 연락을 끊었다. 1년 동안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 처음에는 많이 아프다고 생각하고 걱정을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뜻밖이었다. 내가 지역 학교 방문을 할 때 자기를 반갑게 대해주지 않아 마음이 상해서 그런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직도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답이 없다. 평교사로서 꼿꼿하게 살아가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되어있기에 크게 반가워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안톤 시나크(Anton Schnack)의 글을 보면 성공한 친구의 거만한 모습이 나온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라는 구절이 나온다. 친구가 성공해서 거만한 모습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모습에 작가도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슬픈 것은 서로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엇갈려서 마음을 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형제간에 오해가 생겨 명절에도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며느리와 시부모와의 갈등,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갈등이 있어서 인연을 끊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잘못된 판단으로 벌어진 오해인데도 인연을 끊는 상황이다. 스승과 제자,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교사 사이도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던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상태와 마음을 내 마음의 상황으로만 판단하다 보면 오해가 생긴다.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고 존중받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교사, 학생, 학부모, 관리자, 교육청 모두 이왕이면 학교가 활기차고 즐겁고 보람이 있는 장소이기를 바란다.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보다는 자신만의 판단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오해를 한다. 정치이념이 다르면 밥도 함께 먹기 싫다는 극단적 편향시대이다. 북한과 남한 동포도 만나지 못한 기간만큼 오해와 증오는 커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공동체의 할 일은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수요일 오후 수업은 하지 않고 학생에게 예체능과 동아리 활동을 하게 해 주면 좋겠다. 교사들은 오후에 소통의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 수업에 대한 토의, 학생지도에 대한 토의, 학교 공문과 업무에 대한 소통, 관리자와 교사, 행정실과 교무실, 학부모와 학교가 모여서 어떻게 학교에서 학생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가를 토의하는 시간을 꼭 가졌으면 싶다. 오해로 인한 관계의 단절보다 더 슬픈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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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오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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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다스림의 역할과 그림자-'동물 농장'(지택림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지택림괘는 위에 땅(☷)이 있고, 아래에 연못(☱)이 있는 모양이다. 연못 위에 대지가 펼쳐진 모습이다. 즉 대지 위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는 다스림의 상이다. 臨자는 금문에 보면 큰 눈을 가진 사람이 무언가를 보는 모습이다. 설문해자에도 臨은 내려다 보며 감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중을 포용하고 보호하는 자세가 대지와도 같이 넓어야 한다. 괘사에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의 4덕(德)이 들어 있다. 『주역』에 4덕이 들어있는 괘는 중천건, 중지곤, 수뢰준, 지택림, 천뢰무망, 택화혁의 6괘다. 이 ‘다스림(~에 임하다)’과는 정반대되는 문학작품이 있다. 20세기 영미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 농장(Animal Farm)』이다. 이 소설은 ‘정치 권력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빼어난 우화’, ‘문학의 사회 비판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긴 위대한 풍자소설’이라 평가받는다. 조지 오웰은 이 소설에서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혁명을 이루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 동물공동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통해 구소련의 역사를 재현하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등장인물은 인간 주인인 존즈(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를 상징),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메이저(마르크스), 독재자 나폴레옹(스탈린), 나폴레옹에게 축출당하는 스노볼(트로츠키) 등이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그것이 어떻게 변질되고,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히 그린 이 우화는 특정한 시대에만 한정되어 읽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 때부터 벌어진 ‘독재’를 함축적인 등장인물과 사건을 통해 그려내어 시대와 관계없이 유효한 풍자를 담고 있다. 나폴레옹이 동물농장을 공산화하고 우상화가 진행된다. 동물농장은 겉으로 공화국으로 바뀌고, 나폴레옹은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된다. 스노볼이 만든 7계명은 단 하나의 계명으로 바뀐다. 바로 그 유명한 문구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다만 몇몇은 더 평등하다.”로. 그런 와중에 주변 농장의 주민들이 동물농장의 초대를 받고 만찬이 벌어진다. 그 후 만찬장은 난장판이 된다. 바로 카드놀이에서 서로 속임수를 썼다고 다투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동물들은 이제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다며 한탄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마지막 장면이 『동물 농장』의 압권이다. 이는 초기 동물주의의 이념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간접적으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조지 오웰은 스탈린으로 인하여 변질된 공산주의를 비판하고자 동물농장을 썼지만 실제로 동물농장 내용과 같은 사례는 많다. 시민혁명으로 왕과 귀족을 몰아낸 부르주아들이 자본과 법으로 새로운 지배층이 되거나 독립운동으로 외세를 몰아낸 독립운동가들이 외세 못지 않는 악질적인 지배자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노동운동으로 선출된 노조위원장이 사업자들 못지않게 같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례 등 현재 주변 갑질 사건을 보면 인간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인(小人)은 세상을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고 본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어느 위치건 어느 환경이건 상관없다. 그것이 조직이든 나라든 말이다. 우리는 『동물 농장』의 소설을 다스림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동물 농장』은 풍자소설로서 바로 이러한 점을 지적한다. 공산주의라는 허울 좋은 이념을 사람들에게 세뇌시켜 나라를 건설하고 그런 다음 권력을 잡고, 우상화하고, 독재가 시작되는 것이다. 김일성의 삼대에 걸친 일가의 모습이다. 북한도 공식 명칭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다. 북한은 인민들을 위한 국가인가? 아니다. 왜? 인민을 위한 국가가 자기 아들에게 세습하는가. 인민들은 이들을 위한 희생양이자 도구다. 『주역』의 지택림괘는 말한다. 다스림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단계가 있다고. 함림(咸臨)→감림(甘臨)→지림(至臨)→지림(知臨)→돈림(敦臨)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다스림은 ‘돈림(敦臨)’이다. 다스림이란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지혜, 공감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교만하지 않고, 정의로운 세력들을 도와 포용하는 다스림을 취해야 한다. 군자도 사익을 취하면 소인이 될 수 있고, 소인도 대의를 쫓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 남을 다스림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필독하기 바란다. 베트남의 통일 영웅인 호치민도 평상시에 『목민심서』를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지 않는가. 지택림괘의 효사는 ‘다스림’의 다섯 단계를 말하고 있다. 먼저 ‘함림(咸臨)’은 ‘느끼면서 임한다’는 뜻으로 감응하는 사회를 말한다. 토론하는 사회보다는 토의, 협의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감림(甘臨)’은 ‘달콤하게 임한다’의 뜻으로 자신의 운명이 잘못될 것을 걱정하여 그 자세를 뜯어고치는 자세를 말한다. 대중에게 진실로 대하지 않고 꾀를 부려 감언이설, 교언영색하며 다스리는 사회다. 이런 사회는 아무런 이득을 가져 오지 못한다. ‘지림(至臨)’은 ‘지극 정성으로 임한다’의 뜻으로 상하가 교류하고 친하게 소통하며 임하는 자세를 말한다. 유현덕이 제갈량을 찾듯이 자기를 낮추고 소통하며 교류하는 다스림이다. 이는 머리로 다스리지 않고 몸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지림(知臨)’은 ‘지혜로써 민중에게 임한다’는 의미다.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처럼 신하들과 토론(강연)하고 거기서 얻은 지혜로 민중의 도움이 되게 다스리는 것이다. 마지막은 ‘돈림(敦臨)’인데, 이는 ‘대군의 본보기를 따라 민중에게 임한다’는 의미로 가장 높은 자리에서 교만하지 않고 정의로운 세력들을 도타운 마음으로 포섭하는 자세를 말한다. 다스림의 단계 중 가장 높은 위치의 자세다. ‘허명(虛明;텅 빈 햇살)’처럼 본인이 다스리지만 대중은 누가 다스리는지 알 수 없는 다스림이다. 중국의 삼황오제의 요순시대처럼. 보다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대중을 다스리려 하지 말고, 바다와 같은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대중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가는 다스림이어야 한다고 『주역』은 말한다. 김민기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노래 「봉우리」라는 가사에도 ‘산봉우리’와 ‘바다’와의 비교를 통해 높고 뾰족한 산봉우리를 오르려 하지 말고, 저 아래 낮은 데로 흘러 고인 바다를 봐야 한다고. 기독교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고. 오늘 밤에는 김민기의 「봉우리」 노래에 취해 봐야겠다.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뭇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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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다스림의 역할과 그림자-'동물 농장'(지택림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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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원영적 사고’ ≧ 전화위복 ≒ 긍정적 사고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요즘 Z세대들의 초긍정적인 ‘원영적 사고’가 화두다. 이는 걸그룹 ‘아이브(IVE)’의 멤버인 장원영의 특별한 곳에서의 특별한 사고에서 명명된 사고방식이다. 사연인즉, 스페인의 어느 빵집에서 자신이 사려던 빵이 품절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불평하는 대신에 “앞 사람이 제가 사려던 빵을 다 사가서 너무 럭키(lucky)하게 제가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라고 말 한데서 출발했다. 이런 초긍정적인 사고가 조금은 낯설게 느끼지만 Z세대는 열광하고 있다. Z세대는 1997~2010년대 초반 출생으로 통칭 만 11세에서 24세를 일컫는다. 'Z'는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라는 의미다. 이들은 디지털에 익숙한 부모 세대의 영향을 받아 IT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높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자라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라고도 불린다. Z세대는 페이스북, 유튜브, 아이폰의 발전 과정을 지켜본 세대로, SNS에 가장 친숙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스타그램, 스냅챗, 유튜브, 틱톡 등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그야말로 눈이 부시게 빛나는 디지털 신세대다. 이들은 일상에서 짜증이 날 법한 상황에서도 결코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모두(冒頭)의 일화에서와 같은 상황에서 ‘원영적 사고’라는 신조어를 낳았으며 현재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기성세대들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 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현재 장원영의 말투를 흉내 내는 인터넷의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빠르게 퍼졌고 조회 수도 수백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 ‘흙수저’ ‘이생망’ ‘3포 세대’란 말이 난무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Z세대는 왜 이런 사고방식에 열광하는 것일까? 심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런 사고가 유행하는 이유로 학업, 취업 등으로 어려운 현실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상황을 합리화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으려는 심리를 그 배경으로 주목한다. 이는 철저하게 실용주의를 선호하는 Z세대의 특성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 심리학’과 같은 맥락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가 예부터 극과 극의 상황에서 긍정의 결과를 기대하며 기회로 삼던 전화위복(轉禍爲福)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라 할 것이다. 요즘 Z세대는 교육의 효과에서 그 빠르기가 마치 스펀지와 같다. 그들은 통상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요소를 신속하게 흡수하여 일상에서의 많은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빠른 회복력을 기반으로 재도전하거나 새롭게 기획하고 한 단계 높게 디자인하는 등 회복탄력성을 최대로 높이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는 냉혹한 경쟁 교육을 받고 살아남은 그들 부모 세대에서 받은 영향력도 크지만 자체적으로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체험(경험)하고, 전문가로부터의 직간접적 교육을 받아서 획득한 우수한 역량을 갖춘 세대라고 평가받는다. 이제 우리 교육은 청소년들의 사회적 관계 및 회복탄력성 배양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정책 구현이 필요하다. 여기에 바로 그 의식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원영적 사고’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지나친 낙관성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역효과를 경계하는 것이 요구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어니 J 젤린스키에 의하면 우리는 평소 96%의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중에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며, 22%는 사소한 것, 4%는 바꿀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Z세대의 장점을 더욱 살리는 것은 21세기 우리 교육이 감당해야 할 과업이라 믿는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나서 ‘원영적 사고’로 무장하도록 청소년들을 습관화시키고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교육에 나서는 것은 세계적으로 불명예스런 청소년 자살률을 비롯한 Z세대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비결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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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원영적 사고’ ≧ 전화위복 ≒ 긍정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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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어둠 속에 묻혀진 새로운 시대-'장미의 이름'(지화명이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지화명이괘는 위에 땅(☷)이 있고, 아래에 불(☲)이 있는 모양이다. 땅 속으로 태양이 들어가, 그 밝음이 가려져 버린 모습이다. ‘지화명이(地火明夷)’의 ‘명이’는 ‘어둠’을 뜻한다. 일몰 후 어둠이 깔리는 것과 같다. 즉 먼동이 트기 직전의 암흑이다. 암흑의 시대, 난세다. 이럴 때는 자신의 밝음을 숨겨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 15장에 “누가 능히 자기를 흐리게 만들어 더러움을 가라앉히게 물을 맑게 할 수 있겠는가?(孰能湯以 靜之徐淸)”라고 했다. 이 말은 지화명이괘의 상(象)에서 말한 ‘자신의 지혜를 밝게 빛내기보다는 흐리게 만들어 오히려 그들과의 관계를 여유롭고 명료하게 만든다(用晦而明)’는 말과 유사하다. 이로 보면 지화명이괘의 본질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다. 도광양회(韜光養晦)란 말은 덩샤오핑이 내세운 외교정책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거지가 된 유비에게 조조가 찾아와 식사하던 중, “이 시대 영웅이 나, 조조와 자네 유비다”라고 말하자, 유비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이때 조조는 유비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이처럼 그믐밤 같은 어둠 속에서 칼빛을 감춘다는 의미로,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배양해야 할 때 쓰는 말이다. 도광양회하려면 ‘맞서지 말라’, ‘적을 만들지 말라’, ‘깃발을 올리지 말라’, ‘선두에 서지 말라’의 4가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지화명이괘와 관련 있는 작품으로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던 작가이자 기호학자, 철학자이자 평론가다. 그는 평생을 기호학 연구에 바쳤으면서도 죽어있는 기호보다 살아 움직이는 만물의 변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지식과 질서는 언제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새로운 변화 앞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장미의 이름』은 신앙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과 자연과학 중심의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안에는 시대의 변화 앞에서도 신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을 지켜야 한다는 맹목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눈먼 노 수도사(호르세)가 등장한다. 그는 신앙심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이단으로 취급하며 이 지식의 전파를 막기 위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이렇게 변화를 등지고 자신의 신념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님 호르세 수도사는 맹목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변화를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만을 고집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지식과 변화를 거부하며 마침내 파국으로 이끈다. 작가는 이를 통해 변화에 대한 고집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호르세는 소크라테스의 『시학』을 하느님의 세계를 위협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오랫동안 장서관의 가장 깊숙한 밀실에 감춰뒀던 것인데, 수도사들 사이로 이 책의 위치가 새어나가자 그는 측근을 통해 책장에 치명적인 독을 묻혀둔다. 남몰래 이 『시학』을 읽은 사람은 죽게 된다. 습관처럼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기 때문이다. 한편 윌리엄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되자 호르세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가 등잔불을 치며서 붙은 불이 양피지로 옮겨붙게 되고, 이어 장서관과 수도원 전체를 집어삼킨다. 그 불길을 뚫고 나온 윌리엄이 제자 아드소에게 하는 말, 여기에 이 소설의 주제가 있다. “가짜 그리스도는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자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지리가 아니겠느냐?”하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닌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 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장미의 이름』에는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명이괘와 윌리엄이라는 인물이 연결되어 있다. 윌리엄은 예리한 지성과 연역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숨기고 숙련된 조사자이자 사상가로서의 명성을 경시한다. 이야기에서 윌리엄은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단순한 프란체스코 수사로 가장하여 지적 능력을 가장한다.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거나 관심을 끌지 않고 수도원의 다른 수도사들과 섞이는 것을 선호한다. 그의 비밀 전략은 그가 조사를 방해하는 사람들로부터 의심이나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수도원 내의 미스터리를 밝히면서 신중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수도원의 벽 안에 숨겨진 금지된 지식과 살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점차 밝혀낼 수 있게 된다. 이는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명이괘의 모습과 유사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하며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지를 작가는 경계한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자신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변화의 흐름을 조심스럽게 따른다. 이는 어둠에 가려진 밝은 지혜와 영리한 전략을 상징한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지켜내야 할 영원한 질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고 세상의 변화 앞에서 지금 당장 질서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더 높은 곳, 더 넓은 곳으로 다가갈 수 있는 모험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색(色)도 공(空)도 아닌, 현상(現象)을 보아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통하여 내 머릿속을 꽉 채운 변치 않는 신념보다 눈 앞에 피어난 한 송이 장미의 변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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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어둠 속에 묻혀진 새로운 시대-'장미의 이름'(지화명이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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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어둠의 시대, 교사가 걷는 '광야'를 밝히려면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어둠이 칠흑 같던 일제 강점기, 고뇌하고 번민하며 수도자처럼 살아갔던 저항시인 이육사는 그의 시 <광야(廣野)>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든 못 하였으리라/끊임없는 광음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민족시인 이육사의 삶은 해방 직전까지, 39세의 나이로 끊임없이 저항하고 실제 영어(囹圄)의 몸으로 모진 고문에 의한 극도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민족을 위한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그의 유물 속에서 발견된 <광야>는 부끄럽지 않게 이 시대를 살아가려는 교사들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것은 단지 비정상적인 교육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향한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만을 상상하고 기다리지 않고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보자는 결의를 다지게 만든다. 정철희는 『교사의 고통』에서 ‘리더는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교사는 이 시대의 리더 중의 한 사람이다. 이는 교사가 마치 정원사처럼 단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사유에서 빗댄 말이기도 하다. 왜냐면 교사들이 매일 하는 일이 즉석 효과가 나타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예쁜 꽃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흙을 가꾸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다. 이육사는 자신의 시에서 생명을 기르는 ‘땅’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땅의 회복을 원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이육사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일제가 빼앗은 땅을 다시 우리 민족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선구자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시대 교사들은 어떻게 공교육 붕괴의 어둠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사도(師道)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 교육의 척박한 땅과 생명을 살리는 과업을 견지하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을 되찾고 끝없이 공회전하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수많은 교육정책들을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3대 개혁 과제 중의 하나인 교육개혁은 아직 뚜렷한 방향과 궤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각종 설익은 정책들이 중구난방으로 발표됐다가 이내 곧 교사와 교원단체의 저항에 부딪혀 사라지곤 한다. 왜냐면 사전에 어떤 대화와 소통, 타협의 시간이 없이 그저 상명하달식으로 전달되고 강제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사들이 무턱대고 침묵하고 저항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교육 정책의 중심에 학생과 교사를 두고서 기타 기성세대의 이기심과 기득권을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년 서울의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이후 이제는 교사의 생명을 살리자는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그간의 줄기찬 노력으로 ‘교권 5법’도 통과되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떤가? 아직도 교사는 그 변화의 체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학부모는 여전히 악성 민원과 갑질, 아동 학대 소송을 불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1,3학년)이 지각 지도에 반발해 담임교사를 폭행하고 교실에서 밀쳐내었고, 무단 조퇴를 지도하는 교감을 폭행하고 심지어 뺨을 때리는 패륜까지 저지르고 있다. 이제 교사는 우리 교육의 풍토를 바꾸는 고독한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이대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학생들에게는 경쟁교육과 입시에 찌들어 우울과 폭력의 정서를 협력과 연대의 씨앗을 뿌려 상생하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학교에게는 관료제의 오랜 병폐를 주체성과 다양성이 충만한 문화의 씨를 뿌려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생명 존중과 인간 존엄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이는 결코 어느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하다. 교사의 집단 지성과 교원단체의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교사가 가꾸어야 할 광야는 학생, 교사의 생명이 존중 받고 상호 간에 존경의 씨앗을 뿌리는 배움의 터전이어야 한다. 이 땅의 고독한 교사 제위여, 교직이 척박한 광야가 되어 버린 이 시대에 그래도 교육이 희망임을 노래하고 미래를 여는 선구자가 되는 깨어있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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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어둠의 시대, 교사가 걷는 '광야'를 밝히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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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방패연은 왜 가슴에 구멍을 내었는가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갈등이 존재하고 관리가 필요하다. 무풍지대인 직장은 없다.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학생, 학부모, 교사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이 미풍일 때도 있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태풍을 몰고 와서 공동체의 마음을 다 찢어 놓기도 한다. 교직에 온 것을 후회하는 교사도 있고 드물게는 관리자가 된 것을 후회하는 이도 있다. 요즘은 마음이 심란하다. 상대방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 민원, 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직원과 인간성을 중시하는 직원 사이의 갈등,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해 사업이 진행되는 도중에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을 폭발시키는 사람. 저급한 언어와 높은 목소리로 자기를 높이려는 사람.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여 말없이 연락을 끊고 응답을 하지 않는 사람 등 사람과의 갈등은 크고 작은 물결로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다. 연이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 연은 바람을 이용해 하늘에 띄우는 놀이 기구이다. 방패연은 방패를 닮은 연이라고 해서 방패연이라고 한다. 방패연은 연 가운데 구멍이 크게 뚫려있다. 방패연은 연에서 3분의 1쯤을 지름으로 한가운데를 오려내어 구멍을 뚫는다. 이것을 방구멍이라고 한다. 방구멍은 바람이 약할 때는 연 표면에 닿는 공기가 방구멍을 통과하면서 상승 에너지를 발생시켜 연이 떠오르게 한다. 바람이 강할 때는 방구멍으로 바람을 내보내서 바람에 대한 저항을 줄여준다. 그 덕분에 연줄은 끊어지지 않고 연은 오래 날 수 있다. 유연성과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지금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하던 디지털세대이다. 산천을 뛰놀고 전봇대 주변에서 놀던 아날로그 세대와는 경험치가 다르다. 정신을 구성하는 원소와 세포가 다르다. MBTI를 보면 인간의 성향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시와 훈계보다는 경청과 질문과 피드백으로 합리적 대안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철로 만든 무쇠는 강하지 않다. 다양한 재료가 모여서 합금이 되었을 때 금속은 더 강해진다. 리더십에 정답은 없다. 사람도 환경도 조직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탄력성과 적응력이 필요하다. 갈등을 항상 바람처럼 맞으며 조화롭게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 지도자(리더)의 숙명이다. 방향도 없이 바깥과 안에서 갈등의 바람이 분다. 바람 따라 멀리 떠나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연이 되고 싶다. 손동연 시인은 ‘방패연’이라는 동시에서 ‘방패를 버리고서야 하늘을 품었습니다’라고 했다. 하늘 높이 떠올라 가는 방패연은 방패를 버리고 하늘을 품는다. 그 순간은 나를 버림으로써 더 큰 나를 얻는다. 넓은 하늘을 품으며 날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바람이 필요하다. 모두가 날고 싶지만 갈등은 싫어한다. 갈등이라는 바람이 있어야 더 높이 하늘로 오를 수 있다. 방패연의 방구멍이 연을 떠오르게 한다. 가슴에 포용이라는 큰 구멍을 내고 오늘도 힘차게 비상해 보자.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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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방패연은 왜 가슴에 구멍을 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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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심문'(화택규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화택규괘를 보면 ‘불이 위에 있고 연못이 아래에 있는 모습이다. 불은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어, 이는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질성을 보여준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근원적인 대세의 흐름이나 비전의 궁극적 목표에 관해서는 동일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걸어가는 구체적인 삶의 자세에 관해서는 이질성을 고수한다.’고 되어 있다. ‘화택규(火澤睽)’의 ‘규(睽)’는 ‘반목하다’, ‘서로 등지다’의 의미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생각이 화합되지 않으면 큰 일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하다. 반목은 괴리를 낳고, 불통으로 이어진다. 불통은 확증 편향적인 사고를 부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증오는 부메랑처럼 나에게 되돌아온다. 화택규괘와 관련있는 소설로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단편소설인 '심문'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의심으로 인해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내용이다. 플로베르의 탁월한 심리 묘사와 세밀한 상황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인간의 불안과 의심이 어떻게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범죄 혐의를 받으며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억울하게도 살인 혐의를 받게 되고, 심문 과정에서 그의 내면의 갈등과 두려움이 점점 커져간다. 심문관은 주인공을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그의 증언의 모순점을 파고들며, 결국 주인공은 극심한 심리적 압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살인을 자백하게 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통해 의심과 불신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심문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인간의 연약한 심리 상태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한 개인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괴리의 시대, 꼴 보기 싫은 놈들도 과감하게 만나야 한다.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 동이이(同而異)나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자세를 견주해야 한다. 보편적으로는 타자들과 같은 길을 가지만 구체적으로는 자기만의 다른 색깔을 보여야 한다. 마치 민주주의라는 커다란 길을 함께 가는데, 저마다 개성에 맞는 옷 색깔을 입은 것처럼. 그룹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란 노래가 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중략) 이주엽은 '이 한 줄의 가사'에서 80년대 들국화의 앨범은 한 권의 교양서였다고 찬양했다. “하지만 후횐 없지/울며 웃던 모든 꿈/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전인권의 목소리가 홀연히 솟구칠 때, 역사와 이념의 격정이 들끓던 광장과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곳은 존재의 고독, 불안, 결핍으로 가득했다. 80년대 서울의 봄은 아직 멀었고 갈 길은 많이 남았으나 청춘의 열정은 계속된다. 불운과 맞닥뜨릴 때 삶은 갱신된다. 생의 기쁨은 언제나 한 쌍으로 따라오는 불안에 자리를 내주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화택규괘는 큰길은 잘못되고 있으나, 작은 길에는 희망이 있고 길하다. 전략은 승리했으나 전쟁에는 진다는 말처럼, 하지만 후회는 없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노자의 무위와 유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자는 세상을 보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봐야 하는 대로’ 보는 방식이다.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과거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여지는 대로’ 보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간다. 무의 태도를 지녀야만 변화하는 진실과 접촉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항상 일을 그르치게 된다. 예를 들어 ‘내 아들을 반드시 의사로, 검사로 만들어야겠다’는 부모의 선의가 자녀를 탈선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이 세상을 살면서 ‘보이는 대로’ 살아야지, ‘봐야 하는 대로’ 살면 인생 자체가 피곤해진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타야 하는 버스가 막 지나쳐버린 적이 있잖은가. 이럴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아이, 좀 기다려주지’ 하거나 ‘내가 조금 빨리 왔더라면’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는 아무 생각 없이 그 환경을 보이는 대로 수용해버리는 사람이 있겠다. 어떤 사람이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가는 사람일까, 바로 맨 마지막 사람 즉 ‘보이는 대로’ 보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내가 ‘봐야만 하는 대로’ 세상을 보고 산다면 모든 일을 망치게 된다. 그것은 그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결국 사회를 망치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명심하라. 노자의 무위의 원칙을 지키는 한 만사는 저절로 형통해진다는 사실을. 화택규괘의 효사를 보자. 먼저 지(地)의 자리다. 화택규는 불과 물이 함께 있는 상태를 상징한다. 불은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습성이 있다. 불과 물의 마음, 서로 어그러져 일치하지 못한다. 인(人)의 자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불과 물처럼 그 천성이 다르고 생활의 신조가 다르고 마음의 방향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면서 어느 같은 공동체 속에 묶여져 공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가족도 마음이 꼭 같은 사람만이 한 가족으로 탄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모순과 괴리와 대립과 반목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이러한 일치할 수 없는 인간관계에 대처하는 길은 세 가지다. 첫째는 무조건 참고 견디며 고민과 갈등을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길이다. 둘째는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발전하면서 부단히 정반합의 법칙을 반복하는 길이다. 셋째는 상이하고 모순되는 너, 나의 특성을 각각 살리면서 한 개의 커다란 목적 속에 종합시키어 조화를 이룩하는 대승적 방법인 것이다. 천(天)의 자리다. 주역에서는 ‘하늘과 땅은 서로 다르나 그 영위하는 일은 같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나 그 뜻은 서로 통하고, 만물이 제각기 서로 다르지만 그 작용은 유사하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괴리와 상반이 반드시 인류 사회에 비극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선용하고 조화함으로써 도리어 인류 사회는 다채롭고, 흥미있고, 싫증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즐길 수 있고, 각자의 힘을 진심으로 다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행복과 발전과 번영을 거기에서 얻을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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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심문'(화택규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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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인재육성 교육으로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의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 대학교의 최초 동양인 총장을 역임하고 세계은행 총재까지 봉직한 김용 교수는 높은 지명도를 가진 학자였다. 그런데 그가 성공을 거둔 배경은 다소 특이하다 할 수 있다. 무엇일까?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철저한 가정교육 아래 “세계를 향한 너의 꿈은 무엇인가?”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공부에 임했으며 결국 자기 자신을 넘어서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든 이타적인 지식인이었다. 세계의 유명 대학들은 진리와 정의의 전당인 캠퍼스 곳곳에 ‘세계를 이롭게 하는 이타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필자가 수년 전에 우연한 기회에 방문했던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미국 전 대통령 부시의 모교)의 본부인 오스틴 캠퍼스는 대학 건물에 이 목표를 세기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의 전당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당시 필자는 공무원 임용 시험에 높은 합격률을 성과로 내세우는 국내 명문대학들과는 달리 미국 내 최고 수준의 대학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넘어서는 이타적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에 크게 감동했다. 우리는 예로부터 ‘배워서 남 주자’를 실천하는 이타적인 행동주의자, 정의로운 인간이 되기를 꿈꾸던 학창시절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베이비부버 세대들은 이를 교육의 목표이자 개인적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는 필자가 교육자의 길로 입문한 계기였다. 재직 중에도 이런 의식으로 학생교육에 우선하였으며 학생들의 진로⋅진학지도에도 단골메뉴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경제 구루 고(故) 김우중 회장을 모델로 소개하곤 했다. 당시 이타적인 인재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격려했던 것과 제자들이 현재 다수의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근무하며 세상에 기여하는 것은 그들이 감히 자기를 넘어선 교육의 힘이라 믿는다. 필자는 평생 동안 중등교육에 헌신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고자 한다. 그럴 때마다 과거 학생들이 필자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사회의 곳곳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놀랍기만 하다. 이는 필자가 무엇보다 먼저 강조했던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국가와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이타적인 인간이 되도록 교육한 것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에 더욱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일전에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의 이사가 된 제자들이 필자에게 수시로 분에 넘치는 예의와 행동을 보여 주어 지난 삶에 강한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제가 자신을 넘어서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만큼 저는 그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했습니다. 이것이 타인과 회사의 인정을 받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도록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동기부여를 하셨습니다.”라고 비슷한 취지로 고백했다. 이 고백은 아직도 필자 자신에게도 유효하다. 지금도 새벽 시간에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는 모든 글은 공동체와 국가를 위한 목적을 우선한다. 그 배경에는 가톨릭 신앙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엄사상을 담고 있다. 이는 필자부터 주어진 여건에서나마 이타적인 인간으로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소 버겁다고 느껴질지라도 솔선수범의 자세를 잃지 않고,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며, 특히 이 나라의 희망인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이들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행동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교육자는 늘 십대의 청소년이 이기적이고 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은 기후변화와 인종차별과 도시 빈곤, 사회적인 사안들을 제법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루며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는 단적인 예이다. 이들이 기후위기 대처와 생태⋅환경 보존에 나설 때 진심어린 격려와 응원, 칭찬과 지지를 보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며,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욕구와 바람과 필요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육의 위대한 힘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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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인재육성 교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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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가정의 화목은 성(誠), 부(孚), 애(愛)의 조화로부터-'여자의 일생'(풍화가인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풍화가인괘를 보면 ‘불이 바람을 타고 잘 타오르는 모습’이다. 불이 타면 따뜻한 바람이 일듯이, 한솥밥을 먹으며 화목한 집안을 가꾼다는 뜻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평소의 언행을 정의롭게 한다.’고 되어 있다. 가인(家人)은 가족을 의미한다. 가족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가정의 평화는 결국 여성에 의하여 유지되기 때문이다. 옛 고조선의 가인(집을 지키는 사람)들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잘 간수하는 것이 생활의 중대사였다. 남자가 사냥을 하러 나가면 여자가 집에 남아 불을 지켰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火),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風) 말(馬)을 달리고” 이 시에도 풍(風), 화(火)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전통으로 가정에서 원만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본분을 지키고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이를 일컬어 ‘언행유항(言行有恒)’이라 했다. 결국 퐁화가인괘는 집 안에서 축적된 도덕성이 밖으로 미치게 되었다는 인간 세상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밥상머리 교육이 유지되고, 이것이 있기 때문에 세상읜 윤리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언행유항(言行有恒)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문학작품이 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이다. 모파상은 19세기 유럽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자연주의 문학은 인간의 삶을 아무런 의도 없는 객관적인 자연 현상처럼 바라보는 문학을 말한다. 『여자의 일생』은 모파상을 프랑스 문학의 스타로 만들어준 대표작이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진 잔느라는 여인이 온갖 삶의 비극을 거치며 그 환상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냉정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여주인공 잔느를 너무 많은 풍파 속으로 밀어넣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환상과 낙관이란 예측할 수 없는 자연 현상 같은 삶 앞에서 얼마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또 이렇게 삶의 풍파에 나약하게 흔들리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명이란 것도 보여준다. 17살 잔느는 노르망디 지역의 푀플성을 소유한 남작 부부의 외동딸이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처녀다. 어느날 마을 사제의 소개로 매혹적인 외모의 귀족 청년 줄리앵을 만난다. 곧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결혼 후에도 줄리앵은 백작부인과 불륜은 맺고, 시녀인 로잘리도 겁간한다. 그 사건 후 잔느는 그의 아들 폴을 집안에서만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폴은 그런 잔느의 숨막히는 치마폭 속에서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정신적 유아로 머물게 된다. 청년이 된 폴은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창녀와 사랑에 빠지며 빚을 지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폴의 빚 때문에 두 농장까지 저당 잡히게 된다. 홀로 남은 늙고 지친 잔느 앞에 어느날 남편의 사생아를 낳았던 로잘리가 찾아온다. 로잘리는 자신이 잔느의 아버지가 지참금으로 준 토지재산 덕분에 성실한 남편을 만나 평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고 얼마 전 아들을 장가보내고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지내고 있었다. 로잘리는 잔느의 집 살림도 하고 돈 관리도 알뜰하게 대신해 준다. 폴에게서 편지가 온다. 내용은 함께 지내던 창녀가 사흘 전에 자신의 딸아이를 낳고 죽어가는데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아이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기차역에서 아이를 받아 온 로잘리는 잔느에게 안겨준다. 죽음 같디 절망적인 삶을 살다가 너무나 오랜만에 생명의 환희를 느낀다. 아이에게 키스하는 잔느를 보며 로잘리는 말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랍니다.” 잔느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떤 불행한 삶이 건 행복한 삶이 건 해가 뜨는 날도 있고 소나기가 내리는 날도 있다는 것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처럼 흘러가는 게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절망에 빠진 잔느를 구한 것은 신이 아니라 과거의 유부남과 부정을 저질러 사생아까지 낳은 여인(로잘리)이었다. 모파상은 이를 통해 진정한 구원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부정을 저지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온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자모(慈母)에 패자(敗子)가 많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지나친 자애가 넘치는 어머니의 슬하에서는 도리어 방자하고 버릇없는 자식이 나온다는 말이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도 주인공 잔느는 그의 아들 폴에게 치마폭 사랑을 쏟아붓는다. 그것에 아들 폴은 질려 버리고 삐딱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훌륭한 부인은 집안을 잘 이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남편하기 나름이다. 결국 가정의 화목은 부부가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위할 줄 알아야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흔한 말이지만 그 말처럼 위대한 말도 없다. 공기처럼 흔하지만 되새겨 보아야 할 말이다. 가정이 잘되어야 사회가 잘되고 나라가 잘 된다. 그래서 맹자는 가인의 출발이며 종착지는 성(誠)이라 했다. 풍화가인괘의 효사 중 上9에 “유부위여(有孚威如)”라 했다. 집안을 다스리는 최초의 원칙은 성실함(誠),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이다. 조화로운 가정 생활을 조성하는 데 있어 이해, 용서 및 의사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풍화가인괘의 효사를 보자. 먼저 지(地)의 자리다. 初9 효사다. 결혼을 하면 3년 동안은 서로의 집안에 대해 배운다. 남남이 만났으니 서로의 집안에 대해 모른다. 무조건 양보하고 배우려 해야 한다. 그래야 집안이 평안하다. 그리고 부부지간도 서로의 법도를 세우며 지내야 한다. 3년 동안 그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집안의 여자(부인, 며느리)는 음식을 잘 만드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 음식을 잘 만들면 집안 사람들이 그 음식 곁으로 모이게 된다. 음식은 소통의 기본이다. 거기다 가정의 화목은 덤이 된다. 인(人)의 자리다. 누차에 걸쳐 말하지만 인의 자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민중계급에서 지배계급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어서다. 남편의 집안이 매사에 너무 엄격하면 집안 사람들이 헉헉댄다. 숨통이 조여 온다. 또한 집안이 엄격함이 없이 너무 너그러워도 안 된다. 며느리와 자식이 희희덕거리면 집안 꼴이 남사스럽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주말 드라마가 MBC방송에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김수현 작가와 박철 PD 연출로 만들어진 엄격한 현대판 자린고비 이 사장 집안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박 이사 집안이 사돈을 맺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린 홈드라마다. 당시 평균 시청률이 59.6%라는 경이적인 기록이었다. 이 사장네(김혜자와 이순재, 그의 아들 최민수)와 박 이사네(김세윤과 윤여정, 그의 딸 하희라)의 서로 다른 생활 양식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부모 세대의 전통적 가치관과 자식 세대의 자유분방한 가치관의 조화를 추구한 드라마다. 당시 세대갈등을 해결하는 모태가 된 드라마다. 上9 효사에도 나오듯이 가정을 잘 돌보려면 ‘유부위여(有孚威如)’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드라마였다. 천(天)의 자리다.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집안을 잘 다스린 사람들이다. 『대학』에 나오는 ‘수신체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다. 작은 집안도 분란을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그보다 큰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훌륭한 왕이라 일컫는 세종이나 정조도 그의 아들을 그렇게 잘 다스리지 못했다. 그래서 上9 효사에 ‘유부위여(有孚威如)’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즉 집안을 다스리는 최초의 원칙은 성실함(誠),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孚), 그리고 사랑(愛)인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즉, 풍화가인괘는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집안을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게 만들 수 있다는 평범한 지혜를 우리에게 준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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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가정의 화목은 성(誠), 부(孚), 애(愛)의 조화로부터-'여자의 일생'(풍화가인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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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No Problem’과 ‘Big Problem’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미국 환경운동가가 히말라야 기슭에서 티베트 승려와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파리 한 마리가 그녀의 찻잔 속에 빠졌다. 찻잔에 빠진 파리를 보자 그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티베트 승려는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단지 내 찻잔에 파리가 빠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평정심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승려는 ‘오오 찻잔에 파리가 빠졌군요!’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노 프라블럼’이라고 강조했다. ‘아무 문제없어요. 건져 내고 마시면 되요.’하고 손짓으로 말했다. 티베트 승려는 몸을 숙여 그녀의 찻잔에 손가락을 넣고 조심스럽게 파리를 건져 밖으로 나갔다. 회의는 재개되었다. 얼마 후 환한 얼굴로 승려가 회의장으로 돌아와서 기쁜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파리는 이제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그는 문밖의 나무 잎사귀 위에 파리를 올려놓고 파리가 날갯짓을 할 때까지 지켜보았으며 조만간 무사히 날아갈 것이니 염려하지 말하고 말했다. 조에나 메이시가 쓴 『내가 사랑한 세상』에 나오는 일화를 유시화 작가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옮겨 쓴 이야기이다. 문제가 되는가 아닌가의 기준이 자신인가 파리인가에 대한 문제를 말한 것이다. 자기 자신은 노 프라블럼이지만 찻잔 속 파리의 입장에서도 노 프라블럼인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중심에만 머물러 있는 관점은 ‘빅 프라블럼’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의 자리에 ‘너’와 ‘세상’을 앉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준이 아직 ‘나’에게만 머물러 있다면 일차원적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유시화 작가는 말하고 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이 자기중심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했다. ‘난 괜찮아’에서 벗어나 ‘너도 괜찮은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초임 때 수업준비를 엄청나게 해서 열심히 가르쳤지만 학생에게 수업 후에 형성평가를 해 보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학생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업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쉽고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이 가장 좋은 수업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노 프라블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중심에서만 머물러 있는 관점은 결코 ‘노 프라블럼’일 수 없다.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존재가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은 모든 상황을 자기중심, 자기 관점에서만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중심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둘러싼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진정한 ‘노 프라블럼’의 세상이 될 것이다. ‘빅 프라블럼’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세상에서 점차 몸집을 키워 갈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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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No Problem’과 ‘Big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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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개과천선(改過遷善)은 바람과 번개처럼 실천해야 한다(풍뢰익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풍뢰익괘를 보면 ‘바람과 우레가 같이 있는 모습이다. 바람은 좇는 성질이 있고, 우레는 움직임을 상징하고 있어, 아래의 움직임을 위에서 좇는 형상이 된다. 바람이 격렬하게 불면 우레의 소리도 신속하게 되고, 우레의 소리가 격렬해지면 바람도 격노하여 양자가 서로 도와가면서 그 세(勢)를 보태는 모습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자기를 보태는 방편으로써, 타인의 선함을 보면 바람처럼 즉각 실천에 옮기고, 자신의 과실을 자각하면 번개가 치듯 즉각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고친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이야말로 내 몸을 보태는 최대의 도다.’라고 되어 있다. ‘풍뢰익(風雷益)’의 ‘익(益)’은 皿(그릇) 위에 水(물)이 넘쳐 흐르는 모양이다. ‘보탠다’,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다. 아래를 더해줌이 진정한 보탬이다. ‘지배자의 부를 덜어내어 민중에게 보태준다’는 의미로 확대된다. ‘풍뢰익괘’의 ‘익’은 보태다, 더하다의 뜻이다. 윗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는 것이니 국가가 큰 토목공사를 하여 주민에게 이익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보다 아랫사람, 자기보다 약한 위치의 사람을 돕는 일은 성의에서 하는 일이요 남의 강요나 또는 갚음을 바라고 하는 마음은 아닌 것이다. 이 순수한 정성이 남을 감동하게 한다. 그러기에 손(損)하는 것 같으면서 결국은 큰 이익을 얻는 것이 이 괘의 모습이다. 자기 것을 남에게 보태주려면 우선적으로 자기 것이 많아야 한다. 보태주려는 마음만 가지고서는 도와줄 수가 없다. 남을 도우려면 우선 자기가 열심히 살아 재산이나 실력을 쌓아야 한다. 오래전에 필자가 중국 계림(桂林)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중국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는데, 무슨 집의 지붕을 건설하는 현장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 일에 참여했다. 이상했다. 우리나라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일의 효율적인 면에서 능률이 거의 없었다. 노인들, 여자들도 그 일을 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도와야 그 건설에서 번 돈을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자리 창출 효과, 불교에서는 이를 자비라 한다. 자비는 동정심과 다르다. 동정심은 자칫 잔혹한 마음으로 변치된다. 동정심에 연민을 느끼면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가해자를 미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비는 사물을 나와 평등한 존재로 사고하는 것이다. 사물, 예를 들어 노트북이 여기 있다고 하자. 노트북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다 처리해 주고, 나중에 쓸모가 없어서 버릴 때도 군소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떠난다. 만약 노트북이 사람이라면 그는 성자다.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사물들을 대할 수 있을 때 자비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보다 못한 남을 위해 보태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옛날 정나라의 정승이 겨울에 찬물을 건너는 백성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자기의 수레로 건너게 하니 정나라 사람이 모두 칭송하였다. 그러나 맹자는 그러한 태도는 은혜나 인덕이 아니라고 질타했다. 백성들을 깨우쳐 다리를 놓게 해야지 임시방편으로 수레를 빌려주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유대인에게서도 일어나는데, 유대인은 성인식을 하고 나면 으레 그 가족이나 지인들이 돈을 모아 성인식을 한 사람에게 선물로 준다는 것이다. 그 돈은 자립할 수 있는 행상 밑천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독립이다. 잘 자란 교목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독립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교목에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야 독립이다. 그런 의미에서 풍뢰익의 익(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와는 다른 것이다. ‘하늘은 에너지를 아래로 보내고 땅은 이것을 받아 사물을 낳으니 그 익(益) 되게 함이 비할 데 없다’고 『주역』은 말한다. 여기서 ‘이것을 받아 사물을 낳으니’라는 말에 주의하여야 한다. 하늘로부터 보탬을, 도움을 받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실력을 쌓아 자기와 같은 남을 도와주어야 한다. 남을 도와줄 때도 항상 생각해야 한다. 값싼 동정심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사람이 실력을 쌓아 또 다른 남을 도와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대동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려면 개과천선(改過遷善)해야 한다. 개과천선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를 보태는 방편으로써, 타인의 선함을 보면 바람(風)처럼 즉각 실천에 옮기고, 자신의 과실을 자각하면 번개(雷)가 치듯 즉각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풍뢰익괘는 말한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은 내 몸을 보태는 최대의 도라고.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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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개과천선(改過遷善)은 바람과 번개처럼 실천해야 한다(풍뢰익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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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사회가 단성(單性) 학교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대한민국은 남녀가 분리된 단성(單性) 학교를 선호하는 이유가 매우 단순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매우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왜냐면 남녀공학일 경우 이성교제를 우려하고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내신 성적이 불리하다는 단순한 인식을 하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단성 학교는 관리가 쉽고 상대적으로 면학분위기도 좋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학교 배정 후에 전학을 불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교육열이 놀라울 정도다. 초등학교에서 14년 차 근무하는 송은주 교사는 최근 그의 저서 『다시 일어서는 교실』에서 다음과 같은 직접 인터뷰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좋은 대학 진학률도 높은, 꽤 이름난 학교였습니다. 그런데도 30명이 넘는 남학생들을 한곳에 몰아넣으니 매일, 매시간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 같았어요. 그냥, 애들이 미친 사람 같았어요. 약간은 동물적인 본능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쉬는 시간이면 늘 싸우는 애들이 있었어요. 저도 주기적으로 정말 미친 척하고 책상을 엎는 것 같은 난리를 피우지 않으면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그런 환경이었어요.”(30대 남성 박재준) 이처럼 남성, 여성으로만 구성한 단성 학교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고 학생의 스트레스와 교사의 억제력이 충돌하면 갈등이 더 심화됨을 말하면서 구체적인 단점을 아래와 같이 첨언하고 있다. “한 성만 모여 있는 학교에서 학창시절을 거의 다 보냈어요. 성별에 상관없이 어울리는 사회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니 그 이후도 사회생활에 영향이 있어요. 성격에 따라서는 여자한테 말도 못 걸거나 그 여파가 큰 사람도 있고요. 공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거예요.” 우리 사회는 이처럼 단성 학교의 후유증이 사회적으로 꽤 큰 편이다. 예컨대 남녀 간의 성 역할과 자연스러운 소통과 표현을 배우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그들이 만드는 사회는 여전히 소통과 공존이 어렵다. 학교에서 그랬듯이 사회에서도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법칙에 익숙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단성 학교를 운영하는 것일까? 그것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과거 신문물을 도입하던 시기인 구한말에 여권 신장과 여성 교육에 집중하는 학교 환경이 필요했다. 이는 지금도 남녀 구분의 뿌리 깊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보수와 폐쇄성이 강한 우리 교육은 이렇게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오히려 자랑하는 경우가 아직도 흔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보다 문명화됨에 따라 남녀 구분의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성정체성을 존중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며 상호 존중하는 민주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남녀구분과 교복 착용을 철저하게 실행하던 시절에는 어른들의 인식은 학생들을 통제하여 헤게모니를 작동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학생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성향이 아직도 21세기의 디지털 대문명 사회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적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고인 물은 썩는다’는 자연의 이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언뜻 보아도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라는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의 진단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육은 최근 특정한 성을 비하하는 말이 난무하고 혐오를 조장하는데 유야무야로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경직된 학창시절이 편협한 어른을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학생들의 희생을 넘어 교사는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은 아직도 이런 단성 체제를 선호하는 교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지도 방식이나 학교 방침과도 연계된다. 중요한 것은 남녀 학생의 차이를 이해하고 특성을 존중하며 개별화된 맞춤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갈수록 단일성 집단의 정체성은 곳곳에서 깨지고 있다. 직업상으로도 남성으로 대표되던 군대, 경찰 조직이 단적인 예다. 이제는 양성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운데 합리적인 공존의 원리를 배우며 상호 간에 인간존중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학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함이 순리이며 학교의 존재 이유나 목표,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에도 꼭 필요한 시대적인 요구이자 흐름이다. 이제 일방적인 성별 분리에 의한 ‘고인 물 학교 정책’과 뿌리 깊은 ‘교육 가치’ 또한 변화만이 상수(常數)임에 틀림없음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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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사회가 단성(單性) 학교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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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죽음의 수용소에서'-간난의 시작과 인간의 의지(풍수환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풍수환괘를 보면 ‘바람이 물 위를 간다. 모든 것을 흩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간난이 생긴다. 환난의 시기에는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래서 흐트러진 인심을 다시 규합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풍수환(風水渙)’의 ‘환(渙)’은 ‘흩어지다’라는 의미다. 물이 흩어지는 모습이다. 어려움을 흩날려버리고, 험난한 고비를 근원적으로 풀어버리는 것을 일컬어 ‘환(渙)’이라 한다. 능히 험난을 풀어버릴 수 있으므로 형통하다. 이 괘사에도 형(亨), 이(利), 정(貞)이 있다. 괘의 격이 높다. 풍수환괘를 보여주는 문학작품으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에세이가 있다. 이 에세이의 작자인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으로 정신과 의사다. 그는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되었다가 1945년 종전과 함께 극적으로 수용소에서 해방된 인물이다. 정신과 의사답게 아주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수용소 생활에서의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는 과정들을 기술하고 있다. 죽음의 수용소로 떠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온 1,500명의 유대인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자 그들 중 90%는 곧장 가스실로 갔고, 나머지 10%의 사람들은 짐승처럼 온몸이 벌거벗겨진 채 털이 깎이고 이름이 아닌 수감번호로 불리며 나치 감시자들의 폭력과 욕설에 시달리게 된다. 가축우리 같은 수용소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하루 한 번 배급되는 빵과 묽은 수프가 그들이 먹는 음식의 전부였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명성이나 재산은 더이상 아무 의미가 없고 학대당하는 몸뚱이 하나만이 그들이 가진 전부가 되었다. 그들은 ‘집행유예 망상’이라는 정신상태가 된다. 수용소의 생활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믿고, 금세 이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시궁창 오물을 치우는 일에 배정되어 똥물이 얼굴에 튀어서 닦으면 감시자들이 가차없이 주먹질을 해대고, 조금만 힘든 모습을 보여도 동료 수감자들 앞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무감각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2시간 전에 자신과 얘기를 나누던 동료 수감자의 끔찍한 시체를 보고도 바로 수프를 먹을 수 있게 되고, 맨발로 눈길을 걸어야 하는 동료 수감자가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데도 아껴둔 빵을 개걸스럽게 먹느라 정신이 없다. 동료 수감자보다 건강하게 보여서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매일 깨진 유리로 면도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오로지 생존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된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지옥같은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른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첫째로 과거로의 도피, 둘째 어딘가 있을 나의 아내 생각, 셋째 정신적 영역으로의 도피다. 필자도 군대에서 겨울에 혹한기 훈련을 받을 때인데 밤에 보초를 서야 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2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때 대학 시절과 시골 생활 등 과거를 회상했다. 또한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 2시간이 훌쩍 가버린 기억이 있다. 또한 논산 훈련소 훈련병일 때 배가 너무 고파서 낮에 나눠준 건빵을 먹고 싶어 주머니에 한 줌 건빵을 넣고 화장실로 갔다. 문을 잠가 놓고 건빵을 개걸스럽게 먹었다. 3분이 지났다. 선임하사가 화장실로 왔다. 점검했다. 필자는 그것도 모르고, 건빵 먹는데 정신이 팔려 목이 매이는 것을 참으며 꾸역꾸역 건빵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갑자기 화장실 문이 활짝 열리며 문에 채여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건빵이 여기저기 흩어져 버렸다. 선임하사에게 끌려 나온 뒤 취조가 시작됐다. “사회에서 뭐하다 왔냐?”, “왜 화장실에서 건빵을 먹었나?” 등등을 묻고, 필자는 간단히 대답했다. “예, 사회에서 교사하다 왔습니다.”, “예,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선임하사는 필자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서 “내일 공급병을 뽑는데, 네가 손을 먼저 들어라.” 필자는 공급병이 뭘 병사인지도 모르고 손을 번쩍 들었다. 이후 공급병이 되어 훈련병들의 식기, 숟가락, 젓가락, 총에 꽂는 칼을 창고에서 공급받아 훈련병들에게 나눠주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 대신 공급병은 대부분의 훈련에서 예외가 되었다. 그 후 마음 편히 훈련병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인간은 고통을 가져다주는 외부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자신의 태도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성자가 될지 돼지가 될지는 결국 본인의 삶에 대한 의지로 결정나게 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수용소에서 꾼 꿈과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지옥같은 수용소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인간은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스실에 들어가며 주기도문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지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삶의 과제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문학작품이다. 우리네 인생은 모든 것이 모일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흩어지기만 할 때도 있다. ‘흩어짐’ 그 자체는 우리에게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우리 삶의 과제는 이러한 흩어짐 속에서 오히려 간난을 흩날려버리고 건공입덕(建功立德)하는 데 있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였다.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오게 되자 그의 인생은 흩어지게 된다. 가족을 잃고 자신의 쌓아온 명예와 부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지옥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깨닫게 되자, 그는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풍수환의 괘사에도 ‘과감한 행보의 모험을 감행해도 이(利)가 있다’고 했다. 풍수환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환(渙)은 어려움을 흩어버리는 것을 나타내지만 이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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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죽음의 수용소에서'-간난의 시작과 인간의 의지(풍수환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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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교육에 대한 진단과 처방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가 시사하는 바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대한민국의 진보교육학자인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일찍이 독일 유학의 경험과 수 차례의 일시적 체류를 통해 독일 교육에 대한 연구와 실태를 목격하고 이를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 또한 수많은 강연을 통해 우리 교육개혁에 던지는 줄기찬 함의는 어느 진보학자를 능가하고 있다. 한때는 전임 촛불정부에서 국무위원과 정부 각료를 대상으로 우리 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땅에 진보학자들이 많지만 그처럼 집요하게 선진 독일 교육의 실태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교육이 살 길을 제시하는 실천적인 지식인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에 유럽의 68혁명과 그 일환으로 1970년 독일의 교육개혁에 의거하여 ‘신독일인’의 양성과 그로 인해 놀라운 교육 선진국으로 변모한 독일의 교육에 대한 진단과 처방인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해냄출판사, 2024)를 출간하였다. 이는 이전의 저서를 기반으로 더욱 구체적이자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 독일과 대한민국의 교육 비교 저서로 이 땅의 교육자들과 교육계의 관료들이 읽고 정책 개발 및 새로운 교육의 구현에 참고할 매우 유용한 자료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전환할지를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제안하고 있다. 첫째, 교육의 원리 측면이다. 능력주의(Meritocracy)가 만능이 된 우리 교육이 이제는 인간에 대한 존엄주의(Dignocracy)로 탈바꿈해야 함을 강조한다. 능력주의가 낳은 부작용은 오늘날 우리 교육이 ‘반인권적’이고 ‘반교육적’인 모습으로 정착된 근본 이유라 할 수 있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한국인’이라는 진단은 어느 한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다. 이제 우리 교육은 존엄한 인간이 유능한 인간보다 앞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왜냐면 존엄성은 본질적 원리이고, 유능성은 기능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교육의 목표이다. 한때 우리는 교육부를 인적자원부로 개칭한 적이 있다. 이는 경제 분야의 신자유주의를 교육에 접목하여 인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판단하고 이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정부의 철학이었다. 이제 우리 교육은 학생을 경제 사상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인적 자원이 아니라 민주시민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자유시장의 요구가 아니라 민주사회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 성숙한 사회와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교육의 방식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시(國是)가 되어 버린 경쟁은 연대와 협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경쟁교육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디지털 대문명을 낳은 4차 산업혁명의 요구 또한 ‘경쟁형 인간’이 아니라 ‘융합형 인재’를 필요로 한다. 왜냐면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고 연대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융합이라는 현대적 창조를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젖은 불행한 ‘수직형 인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행복한 ‘수평형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 이상의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의 꿈과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빈곤의 상징국가이자 식민지를 경험한 개발도상국에서 꿈에 그리던 선진국으로 진입하였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195개 회원국은 만장일치로 한국을 선진국으로 승인하였다. 하지만 성공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은 주입식 경쟁 교육과 시험능력주의에 발목이 잡혀 낡은 교육제도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 미래학자나 세계 석학들의 중론이다. 그 방법은 바로 김누리 교수가 진단하고 처방한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쟁에 의한 한국식 대학입학시험과 계급의 세습을 부추기는 SKY 중심 대학서열을 폐지하여 13퍼센트를 차지하는 국립대의 네트워크화 및 87퍼센트를 차지하는 사립대의 공영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교육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악명 높은 대학등록금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결코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환경에서 이상주의적 허무맹랑한 백일몽이 아니며 국민과 국가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일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고 대다수 국민의 공감을 전제로 한 강력한 개혁을 통해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루어 21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을 시작해야 할 때임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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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교육에 대한 진단과 처방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가 시사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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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스크루지 효과(scrooge effect)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밤하늘을 보다가 저 많은 별이 있는 우주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우주에서 인간 개인은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오직 존재하는 그 자체 로 가치와 의미가 있다. 별 하나가 아니라 크고 작은 무수한 별이 함께 어우러질 때 더 아름답다. 동화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죽으면 저렇게 하나의 별이 될까. 죽음이 임박한 것과 같은 큰 고비를 넘기고 나서 이타적인 태도로 바뀌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스크루지 효과’라고 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주인공 스크루지는 수전노였다. 그는 이웃과 단절한 채 돈만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남 등쳐먹기 좋아하고 교활하고 악랄하고 치사하고 탐욕스럽고 추잡한 늙은이’였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7년 전 죽은 동업자 친구 말리 유령의 도움으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유령을 차례로 만난다. 죽은 후 비참한 취급을 받는 게 누구인지 모르던 스크루지가 자신의 묘비를 보고 그 망자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를 깨닫고 개과천선하여 타인을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이 된다. 세상을 떠날 때 더 많이 일하지 않았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더 사랑하지 못함’을 후회한다고 한다. 누구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기억을 남겼느냐가 그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결정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지금 있는 교육현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학생을 사랑하고 있는가. 스크루지는 돈만을 위해 살아왔기에 결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책을 좋아하는 순하고 착한 소년이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돈을 계속 벌어야 했으며 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성장한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가난하다고 외톨이가 된다. 스크루지는 돈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반드시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한국 사회의 가정이 건전한 교육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삭막한 경쟁 속에서 사랑이 부족했던 학생은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경쟁 속에서 경제적 성공이 유일한 성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사랑에 인색한 ‘현대판 스크루지’가 이 사회에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고 있다. 교육은 어린 영혼들의 앞날을 밝혀주는 보람 있는 일이다. 힘든 교육현장의 현실이 앞에 있지만 이타심을 발휘해서 ‘착한 스크루지’를 많이 육성해 보자. 마음을 바꾸면 상황도 바뀐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학교가 즐거운 곳이 되려면 학생을 사랑의 시선으로 보자. 하루의 기분도 바뀔 것이다. 굳이 죽음이 임박해서야 깨달을 필요가 없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잠시 서서 ‘나만을 위한 사랑’에서 ‘타인을 위한 행복’도 생각하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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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스크루지 효과(scrooge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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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예비는 미래를 밝게 비추는 등불(뢰지예)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다가올지, 미래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예측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예비’라는 개념에 있다. 「대상전」에 뢰지예괘를 보면 ‘우레가 땅속에 갇혀 있다가 지축을 박차고 뛰어나와 호령하는 모습’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레의 기운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이미지다. 예술이란 이렇게 뭉쳐있던 감동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음악이 없으면 예가 성립하지 않는다. ‘예(豫)’는 북을 본뜬 ‘予(북여, 줄여, 미리예)’와 ‘象(코끼리 상)’으로 이루어졌다. 북(予)을 왔다갔다 하며 옷감을 짤 때는 미리 무늬를 예상해야 하고, 코끼리도 죽을 때를 예감해 미리 자기들의 공동 무덤으로 찾아가기 때문에 ‘미리’라는 뜻이 되었다. 예괘의 ‘예’는 예비하다, 준비하다는 의미와, 기쁨을 나타내는 열락의 의미가 있다. 예비란 간단하게 말하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삶에서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그렇다. 홍수가 올 것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한 노아의 행동이 그 이야기의 핵심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노아는 배를 만들고, 동물을 태워 자신과 동물들의 생존을 확보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대재앙이 다가올 때 예비와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다. 예비를 통해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보기 전에 준비를 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금융 상황에서도 재정 계획과 투자를 예비하는 것은 안정적인 재정 상태를 만들어 준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 음식과 물을 미리 준비하고, 비상 연락 수단과 의약품을 준비하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비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노력이다. 하지만 예비는 더 나아가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키우는 데도 기여한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대비하고, 미래를 예상하며 계획을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필자의 청춘시대. 국어교사 시절. 교재 연구를 철저히 하여 다음 수업에 대비가 되었을 때는 수업 시작종이 왜 그렇게 늦게 치는지, 빨리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치 경주마가 트랙으로 들어서서 앞발을 들어 올려 막 질주하려는 바로 그 순간처럼 수업이 기다려졌다. 예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또한 걱정이 줄어든다. 자신감이 생긴다. 예비를 반복하게 되면 습관이 된다. 결국 인생이 자신감으로 가득차게 된다. 자신감은 도전정신을 가져오고, 도전정신은 긍정적 성과를 가져다준다. 그러면 인생이 바뀐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면 행동으로 옮길 때 조심해야 한다. 인간은 멀리 볼 수 없다. 기껏해야 2.0의 시력의 거리만큼만 볼 수 있다.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인간의 손엔 각자의 등불이 들려 있어 그 등불의 밝기만큼 앞을 비춰주고, 그 비춰주는 범위 안에서 안개와도 같은 앞길을 조심조심 걸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사라지게 할 치트키는 바로 예비다. 유비무환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데 방해 요소가 아니다. 예비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안정성을 제공하며, 미래의 불안감을 줄여 준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에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서 예비는 미래를 밝게 비추는 등불이 되고, 그 결과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예비는 우리 삶에서 꼭 갖추어야 할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뢰지예괘는 예(기쁨)의 종류를 5가지로 말하고 있다. 먼저 명예(鳴豫)다.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 만인의 기쁨이어야 한다. 소인과 군자의 차이다. 다음은 62의 개우석(介于石)이다. 지조와 정절을 지키는 고고한 삶의 태도다. 중국의 장개석 총통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다음으로 우예(盱豫)다. 눈알을 굴리면서 아첨하는 모습이다. “딸랑딸랑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렇게 남에게 아첨하는 행동으로 기쁨을 누리는 자는 지배계급이 될 수 없다. 지배계급이 되더라도 피지배계급으로 언제든지 강등될 것이다. 유예(由豫)는 정당한 사유로 말미암아 즐거운 기쁨이다. 크게 얻음이 있고 성의를 다하여 자기의 소임을 밀고 나가라. 그러면 지배계급으로 승격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6(上6)의 효사는 명예(冥豫)다. 지배계급이 되어 오래도록 자리를 보존하면 안일의 열락에 빠지기 쉽다. 마치 아편쟁이들처럼 모여서 아편을 태우며 혼미스런 기쁨에 빠져든다. 여기서 『주역』에서는 ‘이런 때는 우레처럼, 죽비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고 지혜를 말하고 있다. 그렇지 못하면 저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날개로 하늘 높이 날다가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는 모습과 같다. 상급의 지배계급자들이 늘 경계해야 할 기쁨이 바로 명예(冥豫)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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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예비는 미래를 밝게 비추는 등불(뢰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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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조기교육 효과는 지속가능한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유치원의 정규 교육이 끝나는 시간대인 오후 2시 경, 각 유치원 앞에는 학원의 미니 소형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둘씩 아동들을 예체능(태권도, 합기도, 음악 등) 및 수학, 언어, 영어 등 다양한 종류의 학원으로 실어 나르는 모습은 이 나라 조기교육의 실태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부모가 직장 생활을 하고 또 아이를 돌볼 조부모조차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런 이유 외에 우리의 과도한 조기 교육열이 초래하는 이런 모습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유치원 아동들에게 해당한다. 오후 4시 무렵, 유치원의 방과 후 학습이 끝나는 시간에는 더 많은 학원의 차량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아이들을 실어 나르기에 분주하다. 심지어 개별적인 이동이 아닌 소수 집단의 아동들이 함께 이동하기도 한다. 그들의 얼굴엔 피로감과 함께 이미 지쳐있다. 어느 날 궁금하여 필자가 묻는 질문에 한 아이는 “학원에 2번 가야 해서 힘들어요!”라고 푸념하듯이 말했다. 순간 그 어린 눈동자는 더욱 슬퍼보였다. 이렇듯 우리의 조기 교육은 불가피한 경우나 의도적인 경우나 어린 아이들을 지치게 만든다. 참으로 측은하기 짝이 없다. 최근 동아일보(2024. 5. 2.)는 “조기 학습한 초등생 성적 봤더니… 세 살 교육, 아홉 살까지만 갔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여기서 조기 교육 프로그램이 아이의 장기적인 학업 성과 향상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에 반하며 과학적인 근거 또한 부족함을 제기했다. 기사에 의하면 조기 교육으로 1997~2003년과 2007~2011년 미국 보스턴 공립 유치원이 운영한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10년 후에 나타난 결과는 조기 교육 자체의 효과보다는 성장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 환경적 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 테네시 유아원이 실시하는 2009~2010년 조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을 분석한 연구는 아이들이 학업 성취 향상이 초등학교 3학년(만 9세)까지만 관찰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이들은 프로그램의 마지막 단계를 이수할 즈음에는 읽기, 쓰기, 계산 평가에서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3학년이 되자 이런 학업 향상은 일부 과목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반면에 6학년(만 11세)이 되자 프로그램을 이수한 아이들 중 일부는 수학과 읽기 시험에서 비참여 아이들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일부는 학교 규정을 위반해 징계 받는 등 사회성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보였다. 최근 조기 교육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영향을 부정하는 대규모 연구 결과도 주목된다. 2002년 미국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인 ‘헤드 스타트(Head Start)’에 참여한 만 3~4세 아동 4667명을 분석한 결과, 단기적인 학업 성취도는 향상되었지만 1년 혹은 2년 과정의 프로그램을 거의 마칠 무렵에는 비참여 아이들과 비교해 읽기와 쓰기 능력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3학년이 되자 언어, 수학, 사회적 기술 등 세 가지 영역 중 어느 영역에서도 비참여자들 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음을 보고했다.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판단할 수 있다. 저마다 심혈을 기울여 실시하는 조기 교육 내지 선행 학습은 그 효과가 청소년기와 성인기까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의 중고등학교에서 정기고사 이후 주입식으로 우겨넣은 공부는 바로 잊어버린다는 사실과 같다. 대개 반짝하는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뿐이다. 이런 효과라도 얻기 위해서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육체적⋅심리적 피로의 누적은 결국 어린 나이부터 공부의 흥미를 잃는 등 부정적 효과에 압도당한다. 과연 이렇게 조기 교육을 시킬 것인지 진정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교육은 이제 ‘반인권적’ ‘반교육적’ 오명을 탈피해야 한다. 가정 경제마저 흔드는 사교육비는 2023년에 27조 1000억 원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조기 교육으로 인해 공부에의 열정과 호기심을 상실하는 것은 평생교육 시대에 필요한 교육의 지속성에도 큰 장애일 뿐이다. 매일매일 정신 줄을 놓고 학원으로 뺑뺑이 돌며 주입식 교육과 입시에 몰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이를 알고서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강행하는 우리의 조기 및 선행 교육은 이제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서의 학습 효과와 인간의 존엄성을 키우는 선순환으로 인성교육까지 겸하는 학습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조기 교육, 진정 누구를 위해 맹목적인가?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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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조기교육 효과는 지속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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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노인과 바다'-성대함과 삶의 본질(뢰화풍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뢰화풍괘를 보면 ‘풍요로운 시대에는 풍요로운 제사를 지내 온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상책이다. 우려하지 말라. 만사가 형통하리라.’고 되어 있다. ‘뢰화풍(雷火豊)’의 ‘풍(豊)’은 그릇(豆)에 수확물을 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크다’, ‘풍성함’, ‘충만함’을 뜻한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이런 성대함을 번개와 같은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대한 것은 반드시 쇠망하는 것이 천지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뢰화풍의 괘사를 보면 ‘풍요로운 시대에는 풍요로운 제사를 지내 온 국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상책’이라 되어 있다. 효사를 보면 풍기부(비바람을 막기 위해 덧대는 문), 풍기패(햇빛을 가리는 큰 장막), 풍기부(거적때기 덧문), 풍기옥(건물의 처마를 하늘 높이 치솟게 하는 집)으로 점점 햇빛을 차단한다. 여기서 햇빛은 성대함이다. 그늘은 성대함을 가리는 것이다. 건물은 거대해지고 그 속은 점점 어두워지기만 한다. 문명의 혜택으로 마천루는 햇빛을 보려고 계속 하늘 위로 올라가고, 그에 비례해 마천루의 높이만큼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진다. “풍기옥 부기가(豊基屋 蔀期家)” 풍요의 시대, 그 차양도 함께 길어져 햇빛을 가리게 된다.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여기 뢰화풍괘를 잘 보여주고 있는 문학 작품이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이 소설은 ‘성대함은 번개와 같은 순간, 즉 찰나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헤밍웨이를 만나러 쿠바로 가보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불필요한 미사여구나 과장도 없이 절제된 언어로 130페이지의 문장들을 통해 삶의 본질과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고전 문학이다. 노인은 84일째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노인을 비난하고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피한다. 그러나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빈곤과 불운의 생활 속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미끼를 정확하게 놓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빈틈없이 해내고 싶다.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이라며 망망대해를 나선다. 긍정적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노인의 관점은 앞으로 희망찬 미래는 도래하리라는 확신을 준다. 고기가 잡힌다. 그것도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청새치를 잡는다. 청새치와의 결투. 사투를 다한 싸움의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승리했다는 성취감뿐. 하지만 그 싸움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바다에 나가고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존재론적인 의미를 느낀다. 우리 손에 생긴 상처와 남아있는 청새치의 뼈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은 삶을 살면서 그것을 주름으로, 손과 발로 증명한다. 절대로 머리로 증명하지 못한다. 실천은 머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손과 발로 해야 한다. 머리는 힘든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와 문학은 손과 발을 기억한다. 청새치와의 혈투는 치열함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인은 청새치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인생에서 목표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노인과 같이 치열한 노력과 끈기를 가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삶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청새치를 잡았지만 진정한 시련과 위험은 그때부터다. 상어의 공격은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과 위기다. 노인은 도망가지 않고 상어를 물리치기 위해 칼을 뽑아 든다.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용기있게 맞서는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청새치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상어떼를 물리치기 위해 용기있게 맞서는 노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노인은 여러 차례 상어떼의 공격에 맞서 싸운 후 청새치의 살점을 모두 빼앗기고 뼈만 남은 채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은 침대에 눕는다. 소년은 노인이 부탁한 커피와 신문을 가져다 줄 것이다. 노인은 깊은 잠에 빠진다. 여전히 사자 꿈을 꾼다. 투쟁의 끝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치열하게 싸운 후 느끼는 승리감, 성취감이 전부다. 이것은 바다를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서다. 노인은 바다를 남들처럼 남성형 관사인 ‘엘’ 마르라 하지 않고, 여성형 관사인 ‘라’ 마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엘마르는 바다를 싸워야 할 적이나 일터로 보는 것이고, 라마르는 바다를 큰 은혜를 가진 여성으로 보는 것이다. 인생 자체를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거기서 닥치는 시련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시련과 고통 없이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삶은 덧없이 치열하다. 그 치열함 속에서 파괴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존엄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려면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을 가진 자세로 직면해야 한다. 노인의 ‘어부’라는 직업에 대한 자존감, 소명의식을 배워야 한다. 청새치와의 끈질긴 싸움과 상어 떼의 습격에 고통을 참으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노인과 바다』에서의 압권이다. 노인은 숙련된 어부로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는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적 한계, 나이, 고독한 삶의 대가를 극복해야 한다. 노인은 그걸 증명했다. 인생은 치열한 싸움이다. 도전과 응전이다. 결국 파괴 당할 순 있어도 패배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인내심을 만들고 결국 우리를 안온한 인생의 길로 이끈다. 노인은 내일을 꿈꾸며 돛대를 쥐고 돌아온다. 긴 투쟁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에서 만나는 시련과 고통을 견디는 힘이 결국 인생을 완성시키는 힘이 된다는 진실을 말해 준다. 인생 그것은 순간 순간을 치열하게 흔적을 남기며 또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인내의 흔적이다. 노인의 마지막 다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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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노인과 바다'-성대함과 삶의 본질(뢰화풍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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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다시금 대한민국의 교육개혁에 마음을 열면서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교육개혁이 먼저인가? 사회개혁이 먼저인가? 이는 전통적으로 매우 논쟁의 여지가 큰 물음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질문과 유사한 것으로 ‘의식’이 먼저냐 ‘제도’가 먼저냐의 우선다툼이라 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육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교육’도 넓은 의미의 ‘사회’의 한 영역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면 어느 한 쪽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 사회는 교육개혁이 사회개혁보다 우선되어야 함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진보교육학자인 김누리 교수의 입장(『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사회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는 대표적인 사회이다. 이로써 한국인들의 의식은 매우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교육개혁을 통해 학교에서부터 그릇된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 교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극단적으로 결여되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종심이 이렇게 강고한 사회는 대한민국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하고 있다. 예컨대 반공, 가부장, 발전, 경쟁, 능력주의, 공정, 소비 이데올로기 등이 아무런 이론적⋅사회적 저항도 받지 않고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 통용되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선진 독일 교육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의 68혁명 이후 1970년에 과감한 교육개혁을 이루어 이는 곧 사회개혁의 모태이자 동력이 되었다. 즉, 교육개혁이 완전히 ‘새로운 독일인’을 길러냈고 그들이 장기적인 지속성을 갖고 일관되고 안정적인 사회개혁을 이루어냈다는 것이 매우 합당한 증거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개혁의 바탕에 교육개혁이 우선이어야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지금도 개혁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 견고함이 여타의 역풍, 후폭풍을 극복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교육개혁이 이루어낸 ‘신독일인’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주도함에 의해 ‘가장 불우한 나라’에서 21세기의 ‘가장 존경받는 나라’로 탈바꿈한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들은 시리아 난민을 여타 유럽 아니 세계의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117만 명이나 수용하고 포용했으며 이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어떤가? 예멘 난민 500명이 제주도에 왔을 때 한국 사회가 온통 들끓고 반대하여 “한 명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한 젊은이의 주장이 청와대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올라 왔을 때 불과 며칠 사이에 수십 만 명이 동조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그뿐이랴. 최근 SKY소속 한 대학교에서는 시위하는 청소노동자들을 학생들이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 이전에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이 보인 태도는 어떤가? 이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버젓이 외치는 젊은이들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이런 모든 부끄러운 현상은 한국 교육이 낳은 병폐이자 심각한 실패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소위 국가의 인재, 엘리트들을 육성하여 배출하는 교육을 자행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를 볼모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료 파업을 강행하고 있으며 각종 사법 농단, 정치 실종, 교육 카르텔 등등의 범법행위와 일탈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미성숙한 사회의 구성원들로 인한 사회 문제는 교육에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교육개혁은 사회개혁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어떤 직업인이든 극심한 불평등 없이 정의로운 소득을 취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견지하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몇 사회개혁이 우선적으로 불가피하다. 하지만 교실에서부터 성숙한 민주시민을 키우고 그들이 보다 성숙한 민주사회를 실현해야 한다. 이는 국민적 공감혁명을 통해서 각자도생,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에 의한 반인권적인 우리의 교육을 개혁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우리 교육은 이제 행복한 아이, 성숙한 민주시민, 인간에 대한 존엄사상을 기르는 교육으로 가치와 사상을 바꾸고 이를 구현하는데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절치부심의 자세로 나설 때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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