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5(금)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나이파이한필베” 저주의 예언이다. 김진명의 소설 『풍수전쟁』에 나오는 저주의 예언이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 책을 반쯤 읽었을 때 그 뜻을 알게 되었다. 2025년 세계 국가 경쟁력의 순위다. 즉 나이지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이란, 한국, 필리핀, 베트남 순으로 국가 경쟁력을 나열해 그 첫음절을 딴 것이다. 이것이 저주의 예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구절벽 때문이다. 이제는 ‘인구절벽’이란 말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인구소멸’이란 신조어가 쓰인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 출산율이 미국은 1.87명, 한국은 0.78명이란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출산율 정책을 출산장려금으로 퉁 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해결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연간 28조원의 예산을 쓰고도 올해 출산율이 0.78명이라면 그 정책은 이미 쓸모없다는 말이 아닌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00억 달러(약 81조 4600억 원)가 넘는 돈을 썼다. 그리고는 올해 우리나라에 초등학교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157개교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또 올해도 출산장려금을 올렸다. 진정 이 방법밖에는 없는가. 국민 모두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2050년이 되면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없어질 것이란 예측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용묵의 「병풍에 그린 닭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1939년에 쓴 이 소설은 우리나라 여인의 운명적 비애를 쓴 이야기다. 이 소설의 끝부분에 애를 낳지 못해 시집에서 쫓겨난 박씨는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집을 떠날 수 없으며, 죽어도 그 집에서 죽고, 살아도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면서 20리 밤길을 걸어 집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에 대한 순종과 그 각성을 보여주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당시 전통적 가치관의 완고함과 그로 인한 삶의 고달픈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주역』의 뢰택귀매괘를 보면서 인구소멸시대에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대상전」에 뢰택귀매괘를 보면 ‘연못 위에 우레가 있는 모습이다. 연못으로부터 수증기가 증발하여 하늘에 구름이 끼고 그것이 하늘의 기운과 방전하고 우레를 일으킨다는 것을 고대인들도 인식하였다. 그러한 번개, 천둥 현상을 음양의 교합으로 생각하였고, 우리 인간, 남녀 간의 사랑 또한 그 기쁨과 환희가 번개같고 또 천둥과도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환희처럼 더 큰 우레가 어디 있으랴!’고 되어 있다. 귀매(歸妹)의 귀(歸)는 며느리를 뜻하는 (빗자루帚) + 언덕퇴(阜) + 그칠지(止)의 합으로 이루어진 형성자다. 옛날에 여자는 본래 있어야 할 곳이 시집이었다. 원래 친정은 잠시 있는 곳이고 때가 되면 시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즉 여자는 시집가서 평생 머물러 산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귀매(歸妹)’는 ‘시집가는 색시’다. 상고의 시대에는 남녀 차별이 일체 없었다. 고대에는 대체로 모계로써 그 성을 삼았다. 귀매괘는 결혼 그 자체를 의미하는 괘다. 여자의 입장에서 결혼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 왜 시집가는 것이 낡아져 죽음을 향하는 것인가? 고조선과 같은 옛날 풍속에서는 남자가 아내를 얻으려면 먼저 처가에 가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장가(처가) 일을 보살피다가 첫 아이를 낳게 되면 비로소 색시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결혼은 남녀 1 : 1의 결합이 아니라 한 가족 대 자기라는 복수적인 결합인 셈이다. 그래서 ‘시집’이라면 남편이 아니라 ‘남편 집’을 의미한다. 또한 ‘장가’(간다)는 ‘장인(장모)의 집’을 가리킨다. 원래 한국에는 개인의식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한 가족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인격이 인정되어 있지 않았다. 남편 자체가 이미 가족 전체에 예속되어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자연히 결혼한 여인도 남편과의 독립된 관계가 아니라 그 집안 전체의 가족 관계를 한층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소위 그 ‘시집살이’라는 기형적인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그래서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란 말이 나왔다. 귀머거리처럼 못 들은 체, 벙어리처럼 말 못하는 체, 그렇게 6년을 살아야 시집살이를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집살이 개집살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외나무 다리 어렵대야
시아버지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동서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시아버지 뽀릉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시집살이 노래」를 봐도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자유스런 생활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가족과의 모든 관계가 구속과 반목으로 시종되어 있다. 그 인간관계는 불만과 억압으로 얽혀 있다. 그러한 틈에서는 남편과의 사랑도 원만할 리가 없다. 그러다가 겨우 남편을 독점할 무렵이면 이미 “메꽃 같은 얼굴이 호박꽃이 다 되고, 삼단 같은 머리털이 비싸리총이 다 되고, 백옥 같은 손길이 오리발이 다 되었을 때”이며, 아름답던 젊은 날의 의상은 “눈물을 씻다가 썩어버리고” 난 후인 것이다. 남편은 그때 첩을 얻는 게 보통이다. 여기서 시집살이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군다. 앞에서 언급한 계용묵의 「병풍에 그린 닭이」란 단편소설에 잘 나와 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뒤집어 보면 알 수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는 까닭은 자식의 사랑을 독점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어머니 역시 젊었던 시절엔 시집살이를 했던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아들은 좌절된 남편에의 사랑을 보상하는 내용물이며 모든 고통과 고독을 승화시킬 수 있는 돌파구인 셈이었던 것이다. 부부 생활의 좌절이 시집살이의 악순환을 일으키게 되고, 그러한 악순환 속에서 한국의 가족은 분열, 반목, 질시, 분란을 거듭했다. 우리는 타자(아들)를 완전히 자기 안에 흡수하려 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불화가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올 김용옥도 뢰택귀매괘를 설명하면서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이 괘는 음양의 교합이 얼마나 이 우주의 중심 과제인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면서 ‘남녀가 독신주의를 선호하고, 근원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인지하는 시대적 풍조에서 『주역』의 주장은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자아낸다’고 하였다. 탁견이다. 오늘날은 발랄한 청춘의 사랑을 새롭게 구가해야만 하는 시대다. 단백질의 살아있는 최고 형태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성스러운 음양의 교합이다. 
 
「대상전」에서는 뢰택귀매괘를 번개, 천둥의 현상을 음양의 교합으로 생각하였고, 우리 인간, 남녀의 사랑 또한 그 기쁨과 환희가 번개 같고 또 천둥과도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환희처럼 더 큰 우레가 어디 있으랴! 
 
『주역』의 탁견은 ‘영종지폐(永終知敝)’에 있다. 남녀의 결합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다. 끝이 끝이 아니라 영속의 한 고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성을 위하여, 종(終)(죽음)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는 것이다. 종료와 영속은 상반되는 개념 같지만 음양의 우주에서는 종료가 곧 영속되는 것이다. 끝남을 영속으로 만드는 것이 영종(永終)이다. 지폐(知敝)라는 단어에 『주역』의 날카로운 견해가 숨어 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것은 새로움을 창출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들이 낡아져 버린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새로움을 창출하는 만큼 낡아져 죽음을 향하는 것이다. 여인의 위대함은 그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행위에 있다. 삶의 지혜다.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집을 떠날 수 없으며, 죽어도 그 집에서 죽고, 살아도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여주인공 박씨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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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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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저주의 속삭임 "나이파이한필베"(뢰택귀매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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