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균의 周易산책] 낯선 만남, 깨달음의 죽비 소리(천풍구괘)
두드리지 마라. 삶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천풍구괘는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바람(☴)이 있는 모양이다. 하늘 아래라 하는 것은 만물이요, 바람은 만물을 두루 만나는 것이다. 천풍구(天風姤)는 많은 남성들(5양효)이 한 사람의 여성(1음효)과 만난 상태를 상징한다. 남자만의 사회에 오직 한 사람의 여자가 출현한다면 이는 남자 사회에 여왕으로 군림할 가능성을 가진다. ‘천풍구(天風姤)’의 ‘구(姤)’는 ‘만남’이다. 그것도 약속 없이 문득 만나는 일이다. 낯섦이다.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낯익은 것과의 만남을 피하고 낯섦과의 만남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산속에서 깨달음의 도를 닦고 있던 한 스님이 ‘내가 진정 깨달음이 있는 것인가?’하는 의심이 들고 싫증도 느꼈다. 산속에서 속세로 만행(卍行)을 떠났다. 그때 프리다이빙을 접했다. 프리다이빙은 수중에서 호흡 장비 없이 무호흡으로 다이빙을 하는 활동을 말한다. 프리다이빙을 경험한 스님은 점점 재미있어진다. 10m, 20m, 30m, 이어서 100m까지 내려가 잠영하는 자유를 느끼는 정도가 됐다. 이제 프리다이빙이 없으면 삶에서 아무 재미를 못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물 속 깊이 들어가 숨을 참게 되면 뇌로 가는 산소가 적어져 몽롱하게 된다. 그런 몽롱함 속에서는 의식이 없어진다. 망허(忘虛)나 몰아(沒我)가 찾아온다. 선의 경지로 들어선다. 이 경험은 마치 산 속에서 명상하던 때의 경험과 유사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산속에서 명상하는 것이나 물속에서 잠영하는 것이나 명상하는 경험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프리다이빙을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낯섦과의 만남이다. 우리는 흔히 친구를 사귈 때 자기와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사귄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인 등산동호회, 음악동호회, 드럼동호회 등에 가입하여 친구를 사귄다. 물론 기쁨이 있다. 하지만 깨달음은 없다. 그럼 무엇이 깨달음인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선종에서 하는 간화선으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간화선은 화두(話頭)를 통해 무명을 타파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참선법 중의 하나다. 그럼 깨달음의 척도는 무엇인가? 객관적인 선의 경지를 측정할 수 있을까? 깨달음의 척도는, 자기가 원치 않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정도, 그리고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정도 여부다. 그러나 이것도 주관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다 객관적인 척도는 없을까? 여기에 프리다이빙을 통해 깨달음의 객관적인(과학적인) 척도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몇 미터 내려갔는가, 몇 시간동안 잠영했나? 하는 것을 시계로 잴 수 있다. 어떤 스님은 자살하려다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고, 숫돌에 칼을 갈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스님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원효스님의 경우도 있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의 길에 올랐다가 당항성에서 폭풍우를 만나 작은 동굴 속에서 이틀간 잠을 잤다. 첫날 밤은 꿀잠을 잤다. 이튿날 밤은 꿈에 귀신을 보게 되었다. 원효는 생각했다. 생각의 끝에서 ‘마음이 바뀌면 사물도 바뀌는 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원효는 세상 만물은 똑같으나 사람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 사물도 달라진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명상과 프리다이빙과의 낯선 만남, 그것은 사람의 의식을 한껏 높여주는 의식의 계단이 된다.
낯선 것과의 만남, 에이허브 선장과 거대한 흰 고래와의 조우, 모비 딕(Moby Dick)은 에이허브 선장이 가장 혐오하는 커다란 흰 향유고래로 다른 항유고래들에 비해 엄청나게 큰 몸집을 지녔으며(당시 존재했던 배들과 소설의 묘사로 간주했을 때 27미터가 넘는 거구로 추정) 다른 고래들과 달리 매우 교활하다. 수많은 고래잡이들을 죽이거나 불구자로 만들었으며, 작살에 아주 많이 맞아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듯 고래잡이들과 싸웠다. 에이허브 선장의 한쪽 다리를 잃게 한 고래다. 뱃사람들과 모비딕과의 만남은 마치 인류가 외계인들과 조우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 정신적 충격은 창조의 모태가 되고 창작에 영감을 준다. 버지니아 울프도 『모비딕』을 세 번 읽고 난 뒤 『폭풍의 언덕』과 비교하며 그녀의 일기에 “넓은 백지 상태의 바다에 고래의 지느러미가 날아오른다”는 비전으로 그녀의 작품이 『모비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렇다고 섭공(葉公)처럼 낮선 것을 대하면 안 된다. 섭공은 용을 아주 좋아했단다. 그는 집안의 대문이나 책상, 이불 등 어디든 용을 새겨 놓고 즐겼다. 그 소식이 용에게까지 전해져 실제 용이 섭공의 집에 찾아왔다. 진짜 용을 처음 본 섭공은 너무 무서워 얼굴이 창백해지며 혼비백산 도망갔다는 이야기다. 섭공호룡(葉公好龍)의 고사다. 낯선 것과의 만남도 그 진정한 내면의 깊이를 갖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고교 2학년 때 바다를 처음 보았다. 필자가 그동안 상상만 해오던 바다와는 차원이 달랐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낯선 것과의 만남은 이처럼 설레고 죽비처럼 자신의 고정관념을 탁하고 깨는 순간이어야 한다.
천풍구괘는 길운의 괘는 아니다. 그러나 각자의 신분의 한계를 자각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 간다면 행운으로 전환할 수 있는 괘다. 한 여자가 많은 남자를 상대로 하는 그러한 상황이 이 괘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만난다’는 뜻의 구(姤) 자체는 행운과 기쁨을 의미한다. 다만 만난 때의 서로의 마음의 자세와 몸가짐에 탈선이 없고 부자연스럽지 않고 사심이 없이 각자의 정상적인 위치를 고수한다면 구(姤)는 행복한 괘인 것이다. 『주역』은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만나서 만물이 개성을 발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괘가 행운이 될 수도 불운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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