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3(수)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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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7월이 되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추억의 교과서에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로 시작되는 이육사의 ‘청포도’가 등장한다. 이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모든 현대인의 작은 낭만이자 소회의 시간이다. 하지만 올해는 서이초 교사의 가슴 아픈 죽음을 애도하며 그동안 누리던 소시민의 문학적 낭만을 대체하게 되었다. 왜냐면 학교 공동체가 사람의 존엄을 기르는 대체 불가의 장(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디스 버틀러의 ‘애도의 철학’에서 출발해 학교가 만들어가야 할 ‘애도 공동체’의 탄생이다. 
 
애도는 상실을 마주하는 것으로 떠남과 죽음에 대한 공허함에서 연유된다. 곁에서 함께 하던 사람의 죽음은 지극한 슬픔이다. 그래서 부모의 죽음은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칭하며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고 불안과 두려움의 절정을 상기한다. 이러한 상실감의 정서를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애도의 시간이다. 교육철학 전문가이자 17년차 교사이며 작가인 정철희는 저서 『교사의 고통』에서 “애도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실을 견뎌낼 수 있는 근원적 힘”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 그에 의하면 ‘애도 상실의 문화’는 상실과 마주하는 시간을 ‘사치’로 여긴다. 애도가 잉여의 시간이 되면서 우리 사회의 상실에는 등급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죽음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묻기 시작했고, 그것이 어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애도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일찍이 이러한 ‘애도의 등급화’를 비판한 미국의 철학자가 바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 )이다. 
 
버틀러는 『위태로운 삶』에서 죽음을 온전히 애도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삶은 애도가 가능하고 어떤 삶은 애도조차 할 수 없는, 즉 ‘애도 가능성의 차등적 배분’이 우리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실례로 미국의 9⋅11 참사 이후에 벌인 생명에 대한 정치화는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희생자의 이름을 ‘공적 부고란’에 올리면서도 그 사건의 용의자들은 수용소에 무기한 감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삶으로 정치적 구별을 당했다. 
 
이와는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해 156명의 희생자 역시 허망한 죽음으로 애도의 대상자 이면서도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이라도 했나?”하고 이의를 제기하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부 정치권과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비판자들의 비윤리성으로 인해 그들의 유가족과 젊은이들을 자녀로 둔 다수의 국민들은 그 애통함을 달랠 길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진상 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억울한 희생자들의 영혼만 구천을 맴도는 것이 아닌가, 우려할 정도다. 
 
애도는 상실감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본질은 ‘영원한 변화의 인정’에 있음을 버틀러는 주장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수많은 교사들의 상실(최근 6년 사이에 100명의 죽음)에 진정한 애도를 보여주려면 그 상실이 가져올 영원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 상실을 초래한 원인을 근원적으로 바꾸기 위한 일들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회가 본질적인 애도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학교라도 그 역할을 기꺼이 해야 한다. 이는 더 이상의 죽음을 교사가 선택하지 않도록 영원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애도 공동체’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교사는 동료의 얼굴에서 눈빛이 아닌 눈치를 읽어내는 것에서 탈피하고 감정이 아닌 검증을 공식화해야 한다.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가는 교사들과 휴직을 청한 교사들이 건강한 마음과 몸을 회복하거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학교는 다정한 배려와 격려가 필요하다. 교사 상호 간에는 ‘너’없이 ‘나’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추모와 애도의 7월을 맞으며 그동안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동료 교사들에 대한 진정한 돌아봄의 시간을 통해 학교가 ‘애도 공동체’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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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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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가 ‘애도 공동체’로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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