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균의 周易산책] 신의 뜻을 따르는 열락의 기쁨(택뢰수괘)
두드리지 마라. 삶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택뢰수괘는 위에 연못(☱)이 있고, 아래에 우레(☳)가 있는 모양이다. 못 속에 우레가 들어있는 모습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자는 낮에는 활발히 움직이지만 저녁이 되면 집으로 들어가 편안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택뢰수의 수(隨)는 ‘따른다’의 뜻이고 따른다는 ‘때’를 말함이다. 못 속에 우레가 들어있는 모습, 그 때에 맞춰 군자도 저녁엔 집에 들어가 편안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현대의 바쁜 일상 중에 저녁이 있는 삶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주역』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택뢰수에서 말했다. 향회입연식(嚮晦入宴息)이다. 고대에는 해마다 봄이면 제사 음식을 싸서 가까운 산과 언덕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의 단오를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나온 게 수(隨)다. 수(隨)는 “阝(언덕)에 辶(오르는데) 左(손에는 주술 도구)와 月(肉-고기)를 든 모습”이다. 줄줄이 행렬을 이루던 데서 수행한다는 의미가 나왔다. 수시로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이때는 아름다운 옷들을 차려 입었고 산과 들에서 남녀의 교제도 자유로이 행해졌다. 실제로 남녀가 자유분방하게 어울리는 일도 허용되어, 이로부터 야합(野合)이라는 말도 나왔다.
인생은 언제나 미래로 향하는 여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여정이 때로는 우레로 덮인 연못같은 어러움과 도전으로 시작된다. 택뢰수괘는 우리에게 인생의 출발점에서 알아야 할 교훈을 제시한다.
이처럼 수(隋)는 ‘따름’이다. 따름은 신의 뜻을 묻는 것이며, 신이 계신 곳을 따라가는 것이다. 결국 택뢰수괘는 신이 사는 곳을 따라가서 그곳에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신의 뜻을 묻는 것, 신이 계신 곳을 따라가는 것'은 종종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와 관련된 문학 이야기 중 하나는 유명한 신화인 『오디세이아(Odyssey)』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이타케로 떠난 지 10여 년째 되는 어느 날로부터 시작하여 40여 일에 걸친 이야기가 모두 12,110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장편 서사시다. 그리스 알파벳 순서대로 24권으로 나뉘어 있다. 이야기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를 이용한 전략으로 트로이를 멸망시킨 후 전리품을 챙겨 금의환향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오디세우스는 600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12척의 배로 트로이를 출발했다. 하지만 그는 도중에 배와 부하들을 모두 잃었고, 고향인 이타케로 돌아가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을 온갖 고난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향인 이타케로 귀향하여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아내를 괴롭히고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 구혼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
『오디세이아(Odyssey)』는 서양 인문학의 뿌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택뢰수괘의 전형을 이루는 이야기로도 활용된다. 택뢰수괘는 ‘군자는 낮에는 활발히 움직이지만,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고 되어 있다. 오디세우스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온갖 고난과 맞서 싸워야 했다. 예를 들면 외눈박이 거인 커클롭스, 마녀 키르케, 괴물 스칼라와 카립디스 등을 물리치고 집에 도착하지만, 그의 집에는 불한당 무리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리고, 그의 재산을 허락도 없이 멋대로 탕진하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자기 아내에게 구혼한 자들을 모두 죽였다. 신과 인간들이 뒤섞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파란만장한 모험과 복수의 대서사시다. 아테나 여신과 제우스신 등의 조력을 받아 싸움을 그만두고, 화해와 평화의 서약을 맺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집에 들어가 편안과 휴식을 취한다’는 말처럼 오디세우스는 집을 나와 모험을 겪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20년이 걸렸다. 집에 돌아와 제반 정리를 하고 평화를 유지시킨 뒤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길고 힘든 여정은 그의 성품, 지혜, 신앙을 시험하는 수많은 시련으로 특징지어진다. 또한 여행 내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욕망과 신의 뜻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예를 들어,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했을 때 포세이돈의 분노를 샀고, 이로 인해 여행이 길어졌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절망에 굴복하는 대신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신, 특히 아테나의 인도에 대한 인내와 신뢰를 보여준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시련을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 힘, 보호를 제공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재회와 회복의 기쁨이 핵심인 성경의 탕자의 비유될 수 있다. 탕자가 아버지로부터 두 팔 벌려 환영을 받은 것처럼, 오디세우스도 정당한 자리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정한 길을 따를 때 은총과 은총의 상태로 돌아가는 기쁨을 상징한다. 다시 말하면 『오디세이아(Odyssey)』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쁨, 즉 믿음으로 시련을 견디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궁극적으로 더 높은 목적에 따른 여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평화와 기쁨, 성취를 찾는 기쁨에 대한 우화로 볼 수 있다.
수괘의 수는 ‘따르다’는 의미다. ‘수필’도 ‘붓을 따른다’는 의미로 자유롭게 쓰는 문학의 한 양식이다. 무엇을 따르는가? 바로 신을 따르는 것이다. 신이 계신 곳을 따라가는 것이다. 결국 『오디세이아(Odyssey)』는 신이 함께 하고 신이 계신 곳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 끝엔 무엇이 있나? 평화와 휴식이 있다.
하늘의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은 자기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말한다. 이순신처럼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부당한 결과로 돌아왔을 때도 백의종군하듯이 자신의 삶에서 성실한 자세로 임하여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 명량, 노량해전에서 대첩을 거두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그의 여정을 보라.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용이었던 사람이었다. -비록 내게 주어진 것이 작고 소박할지라도 성실하게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면 결국은 인생에서 승리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남과 비교하여 작다고 불평하면서 함부로 행동하면 승리는커녕 이미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만다. 『주역』의 핵심 요소는 성실함과 베풂이다. 성실함과 베풂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꿋꿋이 삶을 버텨나갈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가수 강산에의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은 택뢰수괘의 가르침과 공감이 잘 어울린다. 이 노래는 무엇이든 극복하며 나아가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으며, 그 끝에는 축복과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내가 걸어가고 있는/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딱딱해지는 발바닥/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의 부분이 그렇다.
택뢰수괘는 하늘이 준 운명에 순응하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늘의 뜻으로 믿고 언제나 성실한 자세로 일한다면 반드시 기쁜 일이 찾아오리라는 믿음이다. 우리의 인생길도 그 끝엔 평화와 휴식이 놓여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노인이 청새치를 잡고 그 청새치를 상어들이 먹어 뼈만 남은 청새치를 배에 매달고 항구에 도착한 후 깊은 잠에 빠지는 마지막 장면이 바로 택뢰수괘의 모습이다. 인내하고 모험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그 앞에 놓인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집으로 돌아와 평화와 휴식을 즐긴다. 그것이 열락의 기쁨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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