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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時論] 새로운 교육의 탄생
    [교육연합신문=시론] 1. 교육의 전환점 21세기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과 정보의 흐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하며, 전통적 교육 모델은 이에 적응하기 어려워졌다. 학교와 교과서 중심의 교육, 교사의 일방적 지식 전달, 시험과 점수로 평가하는 방식은 더 이상 현대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AI, 디지털 플랫폼, 글로벌 연결성, 평생학습 등은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과 목적을 재정의하는 계기다. 새로운 교육의 탄생은 기술과 인간, 사회와 배움의 관계를 근본부터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2. 배움의 주체 변화 과거 교육에서 주체는 교사였고, 학생은 수동적 수용자였다. 새로운 교육에서는 학습자가 주체가 된다. 자기주도적 학습, 흥미 기반 탐구, 프로젝트 중심 학습은 학생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질문을 만들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한 청소년이 환경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터넷 자료와 AI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한다. 교사는 안내자와 피드백 제공자로 존재하며, 학생은 주체적 배움의 경험을 쌓는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에서 인간의 성장을 중심에 두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3. 평가의 재구성 새로운 교육에서는 시험과 점수 중심 평가가 한계를 드러낸다. 정답만을 중시하는 평가 방식은 창의적 사고와 협력, 문제 해결 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 대신 과정 중심 평가, 프로젝트 기반 평가, 협업과 성찰을 포함하는 평가가 필요하다. 예컨대, 학생이 과학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학습 능력, 창의성, 협업 능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새로운 교육은 결과보다는 과정, 정답보다는 학습 경험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4. 기술과 인간의 공존 디지털 기술과 AI는 새로운 교육의 핵심 도구다. 학습자의 수준과 관심을 분석하고, 맞춤형 콘텐츠와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며, 학습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기술은 도구일 뿐, 배움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술을 활용해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를 확장하지만, 질문을 만들고 선택하며 윤리적·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영역은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은 기술과 인간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5. 평생학습과 자기주도 성장 새로운 교육은 특정 연령이나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변화와 직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배움은 평생 지속되는 과정이 된다. 개인은 자신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학습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새로운 역량을 쌓는다. 온라인 플랫폼과 AI는 개인별 학습 경로를 설계하고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해 평생학습을 지원한다. 이는 배움이 단순한 학교 교육을 넘어, 삶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6. 공동체적 배움의 강화 새로운 교육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을 배움의 핵심으로 강조한다. 개인적 학습뿐 아니라 공동체적 프로젝트와 협력적 학습 경험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 세계 학생들이 환경, 사회, 기술 문제를 공동으로 탐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배움과 사회적 연결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AI와 기술은 이를 지원하는 도구로 기능하며, 공동체적 학습 경험을 기록하고 분석해 학습자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7. 윤리와 인간다움의 교육 새로운 교육은 인간다움과 윤리적 성찰을 배움의 핵심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는 AI가 제공할 수 있지만, 공감, 윤리적 판단, 사회적 책임, 창의적 사고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에서는 기술 활용 능력뿐 아니라,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학습 과정에 통합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8.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의미 새로운 교육은 단순한 교실과 교과서 중심 교육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이는 배움의 주체를 학습자로 이동시키고, 평가와 학습의 기준을 재정의하며, 기술과 인간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확립하는 근본적 전환이다. 배움은 더 이상 특정 장소와 시간, 제도에 제한되지 않고, 평생 동안 사회적, 인간적 경험과 결합하며 이루어진다. 이는 교육의 민주화, 자기주도적 성장, 공동체적 참여, 인간다움의 실현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9. 결론: 교육의 미래와 인간의 성장 새로운 교육의 탄생은 우리 사회가 맞이할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기술과 인간, 개인과 공동체, 학습과 삶이 통합된 교육 모델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스스로 성장하고 성찰하며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도록 돕는다. 미래 사회에서 배움은 더 이상 제도적 틀과 점수, 정답에 갇히지 않는다. 학습자는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하며, AI와 기술을 도구 삼아 자신의 역량을 확장한다. 새로운 교육의 탄생은 인간과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시대의 출발점이며, 배움과 삶을 통합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5-10-20
  • [기자수첩]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해외취업의 꿈’이 덫이 되는 순간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최근 캄보디아 현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강제노역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층으로, SNS나 온라인 구직사이트를 통해 “고액 아르바이트”, “해외 콜센터 정규직 채용” 등의 문구를 보고 현지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숙소에 감금된 채하루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 한국인을 속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전락했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폭력과 감시, 협박이 일상인 감금형 콜센터였다. 탈출을 시도하면 폭행을 당하고, 일부는 몸값을 요구받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해외취업의 꿈’이 순식간에 지옥의 문으로 바뀌는 현실, 그곳이 바로 캄보디아다. 특히, 이 범죄의 핵심 연결망은 텔레그램이다. 모집부터 이동, 통제, 지시까지 모든 과정이 텔레그램 비밀채팅방에서 이루어진다. 익명성과 암호화 기능을 앞세운 이 앱은 범죄조직에게 완벽한 은신처가 된다.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를 유인하고, 명령을 내리고, 송금 수단과 계좌를 공유한다.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낼 때도 텔레그램이 사용된다.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 등지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단순한 전화사기를 넘어선 국제 범죄 네트워크로 진화했다. 이들은 인신매매, 감금, 폭력, 불법 송금, 암호화폐 자금세탁까지 모두 하나의 체계로 엮어 운영한다. 국경을 넘는 범죄이기에 수사망을 피하기 쉽고, 피해자 구출에는 현지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범죄의 출발점이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과 생활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500만 원’, ‘숙식 제공’, ‘합법 비자’라는 말 한마디가 절박한 이들에게는 구원의 줄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끝에는 자유도, 인권도, 희망도 없다. 오로지 범죄조직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버려지는 젊은 노동의 잔혹한 착취 구조만이 남는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한 ‘해외 보이스피싱’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건 명백한 현대판 노예시장이자,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디지털 인신매매다. 정부는 보다 강력한 외교·수사 공조체계를 가동해야 하며, 특히 텔레그램 등 익명 플랫폼을 이용한 유인·지시 행위에 대한 국제 공조 수사가 시급하다. 한 번의 클릭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그 클릭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나 자신과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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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5-10-18
  • [社說] 디지털 시대, 사라지는 한글 능력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글날을 맞아 우리 국어 교육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아동 상당수가 국어 기초 학력 기준에 미달한다. 세계는 K-pop과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에 주목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꾸준히 높아진다. 하지만 정작 국내 아동들은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진다. 문해력 부족은 사고력과 표현력에도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영상과 디지털 매체의 압도적 영향력이다. 유튜브, 넷플릭스, SNS 등 시각 중심 매체가 독서 시간을 잠식한다. 글보다 영상과 이미지가 더 쉽고 빠른 즐거움을 준다. 둘째, 학교와 가정에서 글쓰기와 읽기 습관을 지도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단순히 교과서 중심 학습으로는 사고력과 문장력 향상이 어렵다. 셋째, 즉각적 반응과 클릭 중심의 디지털 환경이 사고의 깊이를 약화한다.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학교에서 독서와 글쓰기 시간을 확대해야 한다. 짧더라도 매일 읽고 쓰는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둘째, 가정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을 관리하고, 부모와 함께 읽고 쓰는 활동을 늘려야 한다. 셋째, 영상과 게임 속에서도 읽기와 쓰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넷째, 교사 연수와 교육 정책을 통해 문해력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어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것과 달리, 국내 아동들의 기초 학력은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읽고 쓰는 능력은 단순 학습을 넘어 사고력과 삶의 기반과 직결된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는 문자와 언어의 힘을 지키는 책임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 세대 속에서도 읽고 쓰는 습관과 사고의 깊이를 지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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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5-10-13
  • [기고] 반성;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중국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대의 하나라 때, 제후인 유호씨(有扈氏)가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그의 아들 백계(伯啓)를 보냈는데,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부하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공격하자고 했는데, 백계가 진정시킨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군사가 그들보다 많고, 진지도 더 큰데, 우리가 졌다. 이것은 분명히 내 덕이 그만 못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기술이 그만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내 잘못을 고쳐 나가겠다.” 이때부터 백계는 일찍 일어나 근무 태도를 바꾸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고, 덕이 높은 사람을 받들었다. 이렇게 하며 1년을 보내자 유호씨가 스스로 와서 투항했다. 『論語』에서 曾子가 매일 세 가지 질문으로 스스로 반성하는 삶을 살았던 것(吾日三省吾身)을 실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반성으로만 발전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계는 어떻게 강해질 수 있었는가?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진실한 반성을 했기 때문이다. 반성은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백계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반성을 증명하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지식은 시대의 문제점, 병, 불편한 점을 치료한 결과들이 지적인 장치로 체계화된 것이다. 따라서 지식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원래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는 고뇌와 각성의 태도를 지닌다.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기에 헌신하면 지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적이지 못하다.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적(公的)이다. 따라서 지식인은 윤리적이고 공적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혼란은 지식인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업보를 겪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의에 저항하는 힘도 없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찾는 탐욕에 빠져 있다. 그들이 기득권을 만들고 유지하는 한, 우리의 희망은 달성되기 어렵다.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혁명이 필요하다. 교육은 모든 문제로 귀결한다. 교육의 본바탕을 회복하는 일부터 찾아야 한다. 배가 물의 흐름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교육이 아무리 제 자리를 잡아도 현실이 교육의 길을 반영해 주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질서를 잡아주어야 한다. 특히 ‘말의 질서’가 없는 대표적인 모습이 정치인에게서 보여진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현충원이다. 어떤 이는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서도 참배할 대통령과 참배하지 않을 대통령을 구분하여, 특정 대통령 묘소에는 가지 않는다. 이게 통치자의 모습인가? 현충원 참배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 갔다는 것인가? 교육자들이 현장에서 아무리 사람을 길러도 보이는 현실과의 부조화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두 국민 국가’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 정치인의 민낯인가? 많은 분들이 ‘정치가 실패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이건, 교육의 실패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없다. 국가를 움직이는 두 톱니바퀴 중에 하나면 얼마나 중요한 건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정치’, ‘정치인’에게만 관심을 쏟고 ‘교육’에는 무관심한 우리 국민 모두의 철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글자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성찰은 새로워지는 일입니다.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 인물은 탕(湯) 임금이다. 3600년 전, 그는 폭군이었던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쳐부수고 상(商: 일명 殷)나라를 세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리를 규합하거나 군대를 양성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날마다 세수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이었다. ‘날마다 새로워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건만 똑같은 일로 매일 매일을 부딪히다 보니 힘들다가 화도 나고 ‘다 그만둬 버리자’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하지만 삼일 후에 다시 작심삼일을 한다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어져 꾸준히 지속할 수만 있다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진실로 날마다 새롭게 하자. 어제의 어려움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새로움을 즐기는 ‘내’가 되자. 퇴계 이황 선생은 그야말로,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정신을 놓지 않으려’ 하였다.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설사로 인해 방 안의 요강에서 용변을 보면서, 윗목 한쪽에 놓여있던 분매(盆梅)를 다른 방으로 옮기도록 당부했다고 한다. “매화 형에게 불결할 터이니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는 역시 부단한 수행 속에서 순결해진 생명 감각으로 매화와 교감하는 한 단면을 영상처럼 보여주지 않는가? 사람들은 매일 샤워를 하면서 몸을 청결하게 관리한다. 더 나아가 얼굴과 몸매를 꾸미는 데 갖가지로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이처럼 육체적인 생명에는 노력과 정성을 다하면서도, 정작 마음을 곱게 가꾸는 정신 생명의 수양은 소홀히 한다. 옛날의 선비들은 오히려 정신 생명의 향상을 평생의 과제로 여겼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강한 종도 우수한 종도 아닌 변화하는 종”이라고 갈파하였다. 이는 지구상에 살아남는 종은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한 자라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진화를 거듭한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 사회에서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개인이나 조직에서 근간을 이루는 요소인 진화의 핵심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혁신의 힘이며 이는 스스로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워지는 일을 하는 것은 생존의 터전인 세계가 계속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옛 세포가 새 세포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병들거나 죽는다. 세계가 변화하는 것에 따라서 이념이나 가치관도 바뀌지 않으면, 그 이념, 가치관, 세계관의 주인도 도태된다. 바보는 과거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멈춰 서서, 가는 세상 탓, 남 탓만 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줄 것인가?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 않을 일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다. 이 표현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한 농부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농부는 우연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발견하고, 다시 그런 행운이 오기를 바라며 그루터기를 지키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토끼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교훈으로 사용된다. 우리말과 우리글 공부에서도 새로워지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의 방법으로 현재를 풀려고 하면 ‘守株待兎’한 농부처럼 된다. 그런데 바보들은 언제나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도 계속 같은 방법을 쓴다. 한국어는 고유어(순수 우리말), 한자어, 외래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컨대 ‘찬물’과 ‘헤엄’은 순수 우리말이고 ‘냉수’와 ‘수영’은 한자어이며, ‘버스’ ‘컴퓨터’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어도 있고 ‘버섯 피자’와 ‘교통카드’ 같이 여러 요소가 섞여 있는 혼종어도 있다. 국가의 3요소 하면 국민, 주권, 영토를 이야기한다. 이 말은 국가라는 의미는 이 3요소 중에서 하나라도 없으면 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자의 3요소는 허신이 AD 100년에 모양, 음(소리), 뜻으로 규정하였다. 예를 들어 日(해 일)이라는 한자를 보면 모양(日), 뜻(해), 소리(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천자문 식으로 한자 공부를 했다. 따라서 모양만을 익히려고 무조건 읽고 쓰는 것을 반복했다. 한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뜻을 표현하는데 첫 번째 우선은 소리이고, 다음이 모양(문자)이다. 또한 소리는 뜻과 모양을 연결하는 핵심 매개체인 것이다. ‘해’를 우리는 ‘일’이라고 읽고 배우는데, 일이라는 소리(음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모양을 익히는 학습에서 벗어나 뜻과 소리에 눈을 돌리게 되면 뜻밖에도 우리말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日’은 ‘해 일’로 풀이하는데, 이것은 모양과 의미를 고려한 것으로 ‘일’이라는 소리의 의미가 생략된 풀이다. 그러다 보니 ‘日’의 ‘해’가 어떤 해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일’은 ‘일찍, 일어나다, 일하다, 일해라’ 등으로 풀이한다. 일찍은 日直에서 유래한다. 이제는 한자를 ‘하늘 천’, ‘따 지’식으로 무조건 외우지 말고 ‘하늘을 왜 천이라 할까?’, ‘땅을 왜 지라고 할까?’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공부로 바꾸어야 한다. 한자를 이렇게 보기 시작하는 순간 한자는 음을 중심으로 엄정한 체계와 질서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天’의 처음 모양을 알고, ‘하늘’을 왜 ‘천’이라고 하는지 우리말을 알아야 한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한자 역시 음(소리)이 생명이며 한자의 가치와 의미는 음(소리)에 있다. ‘한글은 우리 글자, 한자는 중국 글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우리 글자인 한글을 두고 한자를 배우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한자와 한글을 잘 알지 못해서 비롯된 편견이며 오해다. 한자는 한글의 뜻풀이 사전이다. 한글은 한자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의 결합이 아니면, 우리말과 우리글을 제대로 풀이할 수 없다. ‘비’를 왜? ‘우’라고 하지? 이 한마디의 질문, 이런 공부 과정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기르고,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모든 변화는 갈등의 흐름이다. 공부 방법의 갈등을 체험하고 길을 찾는 것부터!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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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기고]서지연 부산시의원, “지금은 디지털 재난 상황, 지역의 데이터 주권 확보해야”
    [교육연합신문=서지연 기고] 지난 9월 26일 저녁,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현재(10월 10일), 복구율은 여전히 20%대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자원봉사 포털, 민원 서비스, 각종 행정서류 발급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들이 중단된 상태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단순한 화재사고의 복구가 아닌 디지털 재난 상황이다. 우리가 외면해 온 디지털 행정의 구조적 취약성이 폭발한 예견된 재난이며, 이제는 국민을 위해 일하던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간 중대한 사회적 비극이 되었다. 정부는 지금까지 복구율 수치만 발표했을 뿐, 어떤 데이터가 유실되었고 무엇이 복구 불가능한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국민은 자신의 행정 정보가 안전한지조차 알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한 건물의 화재로 대한민국 전체 행정 시스템이 이토록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 속 우리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가의 정보 인프라는 이중, 삼중의 백업 체계를 갖추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수사 자료, 안보 정보, 국가 기밀처럼 민감한 정보는 법적으로도 별도 보호 장치가 요구된다. 본 화재로 인해 백업 시스템은 작동했는지, 애초에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근본적 부실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최근 'AI 국가'를 선언하며 OpenAI 한국 진출을 환영했지만, 정작 AI가 학습하고 활용해야 할 공공 데이터의 무결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왜곡되거나 결손된 데이터 위에 구축된 AI 서비스는 국민을 오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허위정보 생성과 여론 조작의 도구가 될 위험마저 있다. 첨단 기술을 논하기 전에 기본 인프라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정보공개청구가 멈췄다. 민원이 처리되지 않는다. 사법 절차에 필요한 수사 자료의 안전성도 불투명하다. 행정이 멈추면 민주주의도 멈춘다. 시민이 정보에 접근할 수 없고 정부가 투명하게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부산의 데이터까지 대전에서 관리하고 있는가? 이번 사태는 중앙 집중형 정보 구조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부산만의 통계를 구축하고, 부산 시민의 빅데이터를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여전히 한계투성이다. 대전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나면 부산 시민의 민원도 멈추고, 부산의 자원봉사 기록도 사라지고, 부산 기업의 행정 서류도 발급되지 않는다. 지방자치 30주년의 한계가 여전하다. 데이터 주권은 단순한 기술적 이슈가 아니다. 자치와 분권의 핵심이다. 부산이 스스로 부산 시민의 정보를 관리하고, 부산의 미래를 설계할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위기 대응도 느리고, 지역 맞춤형 정책도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 곳의 재난이 전국적 마비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구조이다. 진정한 자치분권국가로 나아가려면 데이터 인프라부터 분산되고 독립되어야 한다. 정부는 신속하고 투명한 복구작업과 함께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 집중은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오히려 국가적 재난을 키우고, 현장의 공무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구조적 취약점이 되었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지방분권에 보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광역 자치단체들이 각자의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상호 백업하는 분산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곳의 재난이 전국을 마비시키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이에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즉각적이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실된 데이터의 종류와 규모, 복구 가능 여부와 일정, 민감 정보의 보호 현황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기술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 외부 감사가 실시되어야 한다. 백업 시스템 부실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더하여 근본적 시스템 개선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분산 저장 및 다중 백업을 의무화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정보 주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핵심 인프라에 대한 상시 점검 체계를 확립하고, 디지털 재난 대응 매뉴얼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진정한 지방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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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0
  • [기고] 김광명 부산시의원, "세븐브릿지 투어를 완주하며"
    [교육연합신문=김광명 기고] 지난 청명한 가을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열린 '2025 세븐브릿지 투어'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국내·외 3000여 명의 라이더들이 참가한 이번 행사에 저 역시 한 시민이자 시의원으로서 전 구간을 완주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세븐브릿지 투어는 부산을 대표하는 77㎞와 33㎞ 두 개의 코스로 구성됐다. 참가자들은 벡스코에 집결해 100명 단위로 광안대교로 이동한 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 등 4개의 해상 교량과 부산항, 낙동강 하구,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코스는 그 자체로 부산의 매력을 집약한 여정이었다. 행사 당일 오전에는 주요 도로가 한시적으로 통제되어 안전하게 행사가 진행됐으며, 교통 불편을 기꺼이 감내해 주신 시민들, 그리고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져주신 경찰과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헌신 덕분에 큰 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세븐브릿지 투어는 단순한 자전거 대회가 아니다. 이는 부산의 풍광과 국제도시로서의 역동성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관광 브랜드이자, 자전거라는 친환경 교통수단을 통해 건강한 생활 문화를 확산시키는 소중한 계기다. 동시에 시민이 함께 즐기고 화합하는 진정한 ‘시민축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행사의 의미가 더욱 커지기 위해서는 시민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참가자로 함께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족과 함께 현장에서 응원하거나 자원봉사로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축제를 빛낼 수 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부산시민들께서 함께해 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완주를 통해 한 가지 비전도 떠올렸다. 앞으로 세븐브릿지 투어가 부산을 넘어 국내 타 도시, 더 나아가 해외 원정 행사로 이어진다면, 부산은 세계 속에서 더욱 빛나는 스포츠·관광 허브로 성장할 것이다. 부산은 언제나 도전 속에서 성장해 왔고, 시민이 함께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저 역시 부산시민과 함께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 세계인이 찾는 매력적인 부산을 만들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김광명 부산시의원 ◇ 부경대학교국제대학원 정치언론학과 석사 ◇ 제9대 부산광역시의회 해양도시안정위원회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운영위원회 위원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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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0
  • [기고] AI, 학생 맞춤형 학습의 동반자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도구의 활용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학생들은 AI가 제공하는 학습 자료를 통해 자기 속도에 맞게 공부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배움에 몰입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 수업의 본질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취기준 달성이 여전히 교육의 핵심이며, AI는 그 목표를 지원하는 강력한 동반자다. AI가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맞춤형 학습이다. 과거에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는 학생이나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는 학생 모두 같은 교재와 수업 속도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AI는 학습자의 수준을 빠르게 진단하고, 적절한 난이도의 과제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학습 루트를 따라가면서 부담은 줄이고, 성취감은 높인다. 교실 속 격차를 줄이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기르게 된다. AI가 제공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검토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경험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학습하는 힘을 길러 준다. 교사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에도 AI는 학습의 파트너가 되어 학생 곁에서 끊임없이 돕는다. 물론, 교사의 역할은 여전히 핵심적이다. AI가 아무리 정밀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해도 성취기준이라는 나침반을 기준으로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AI의 제안이 때로는 과도하거나 적절치 않을 수 있기에 교사는 그 결과를 점검하고 학생의 학습 여정을 조율해야 한다. AI의 활용이 효과적이려면, 교사의 교육적 전문성과 결합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을 집필하며 이러한 점을 더욱 깊이 고민했다. 책 속에는 AI가 학생들을 위한 개별화 학습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사례와 함께 담았다. 결국 AI는 교사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사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메워주는 학습 동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다만 AI를 통한 맞춤형 학습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AI의 답변은 데이터 편향이나 오류를 포함할 수 있으며 학생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잘못된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길러주어야 한다. “AI가 말해 준 답이 정답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교사와 친구들과 토론하며 답을 다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비판적 사고와 학습 윤리다. 앞으로의 교실에서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가’가 아니다.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AI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AI를 학생 맞춤형 학습에 적절히 접목시킬 때, 학생들은 격차를 줄이고 자기주도적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AI는 교실에서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교사의 효과적인 설계와 만나는 그 지점에서, AI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돕는 든든한 학습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펼쳐낼지는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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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9
  • [社說] 고교학점제, 땜질식 처방으로는 무너진 교실을 살릴 수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육부의 발표는 공허하다. 유연화, 교원 정원 확대, 생활기록부 기재 조정. 모두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교실은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다. 현장의 고통은 단순히 시수나 지침의 문제가 아니다. 고교학점제 자체가 구조적 과부하를 안고 있다. 학생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교사는 관리와 행정에 파묻힌다. 수업의 본질은 뒷전이다. 유연화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미 보충수업은 서류용으로 전락했다. 강의 대신 유인물, 대체과제, EBS 강의. 이름만 남았다. 교사들은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완화’라는 말을 반복한다. 문제의 핵심을 외면한 것이다. 교원 정원 확대도 허울뿐이다. 전국 2,380개 고등학교에 1,600명. 학교당 한 명도 채 안 된다. 과목별 수요는 제각각이다. 한 명 늘어난다고 달라질 현실이 아니다. 현장은 이미 알고 있다. “어림없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한다. 국가교육위원회 논의 역시 희망적이지 않다. 위원들이 퇴임하고 2기 구성이 미정이다. 현장은 내년 시간표를 꾸리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불안정하다. 교사와 학생 모두 불안 속에 방치된다. 교육은 실험장이 아니다. 현장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 땜질식 처방은 혼란을 키운다. 고교학점제의 근본을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정책의 방향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교육부는 숫자로 현장을 달랠 수 없다. 구호로 교사의 피로를 덮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 개혁이다.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 제도적 폭주를 멈춰야 한다. 교실은 붕괴 직전이다. 교육부가 진정 학생을 위한다면, 고교학점제의 전면 재설계를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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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6
  • [기고] 만드는 즐거움, 나누는 배움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처음 3D프린터 수업을 시작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도전하는 것은 자기 이름표다. 단순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표를 손에 쥐었을 때의 성취감은 크다. 학교 교표를 출력해 상징색으로 색칠하며 학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도 좋은 계기가 된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작은 경험에서 출발한 메이킹은 점차 교과와 연결되며 확장된다. 수학의 입체도형 단원에서는 원기둥, 원뿔, 구를 활용한 구조물을 설계하고, 모둠별 협업을 통해 태양의 고도와 방위를 고려한 집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교과와 연계된 활동 속에서 아이들은 지식을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문제 해결에 적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메이커교육의 과정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손님이다. 종이, 나무, 디지털 도구 등 무엇을 활용하든 예상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출력이 잘 되지 않거나 모델링이 무너지는 경우는 교사인 나조차 매번 겪는다. 그러나 실패는 낙담이 아니라 학습의 일부다. 아이들은 수학 보드게임 「약통분의 피자가게」를 만들면서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단위분수 개념을 피자 모형으로 구현한 이 게임은, 처음에는 단순한 프로토타입으로 시작했지만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여갔다. 실패 없는 성공보다, 수정을 반복하며 얻은 성취가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경험은 단순한 교구 제작을 넘어, 학습과 놀이가 결합된 창의적 산물이 되었다. 이 보드게임은 학교 축제나 창의융합한마당 행사에서 공유되었고, 실제 상품화까지 추진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계약은 무산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생각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메이커교육의 또 다른 힘은 바로 협력과 나눔이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업이 불가피했을 때,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협업을 배웠다. 6학년 아이들과 진행한 ‘각기둥과 각뿔로 미래도시 건설하기’ 프로젝트는 100%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팀별 협업 공간을 공유 링크로 열고, 아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함께 모델링을 완성했다. 이 수업은 부산시교육청 수학과 대표 블렌디드 러닝 선도 사례로 기록되었다. 최근에는 ‘화성 거주지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해 모델을 완성한 뒤 실제 프린팅까지 진행했다. 그 결과물을 박람회에서 함께 전시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넘어 서로의 상상력을 나누고 연결하는 진정한 공유의 기쁨을 맛보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이 있다. 새 학급 명단에서 늘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표시되던 아이였다. 수업 중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뜯어내며 부정적인 지적을 자주 받곤 했다. 그러나 메이커교육 속에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3D모델링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친구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프로젝트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내며 모둠의 중심 역할을 했고, 학급 분위기에도 긍정적 변화를 불러왔다. 결국 그는 발명영재 과정에 진학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한 아이의 가능성을 깨우는 힘, 그것이 메이커교육의 진정한 가치다. 나는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면서 이러한 현장의 경험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담고자 했다. 이름표 출력처럼 단순한 활동에서 출발해 교과 연계 프로젝트, 협업과 공유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단계적 흐름을 안내했다. 무엇보다 교사가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한 이유는, 교사의 작은 용기가 아이들의 큰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아이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메이커교육은 기술의 습득을 넘어,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실패를 성장으로 바꾸며 협력과 나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놀이와 배움이 만나는 지점에서 아이들은 창의적 시민으로 성장한다. 지금 우리 교실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과물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도하고, 나누고, 공유하며 만들어가는 작은 발걸음이 곧 미래를 바꾸는 큰 힘이 될 것이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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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3
  • [기고] 사람을 만들고, 정치를 만드는 교육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태어나고,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인이 생겨난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교육이 기초․기본이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배워서 더 나아진 사람들로 채워지는 나라는 부강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갈수록 허약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가는 정치와 교육이라는 매커니즘으로 돌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이 국가의 기초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메시지다. “참된 사람이 있고 난 다음에야 참된 지식이 있다(有眞人 而後有眞知)”라는 莊子의 가르침은 사람다움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의 기조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도 철학이 중심 학문이 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철학, 인문학 중심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에서 말이다. 변죽만 울리지 말고 교육의 핵심 개념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나라의 행태를 보면서 갖게 되는 가장 강력한 느낌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교육의 실패”라는 생각이다. 외국의 제도를 들여올 때에도 우리의 형편을 따져서 들여와야 한다. 남이 하니까 덩달아서 ‘교육감 직선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폐해가 눈덩이처럼 쌓이는데도 고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일까?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국가와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재선, 3선 하겠다는 생각만 있고, 높은 권력을 잡아서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 속에는 ‘국민’이라고 쓰고, ‘오직 당선’이라는 말로 읽힌다. 국민은 선거 기간 동안에만 있는 단어라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 ‘국민’하는 정치인들은 ‘말의 질서’도 없다. 이것은 知的 破倫이다. ‘公約’은 ‘空約’이다. 앞으로 선거에는 홍보물에 ‘空約集’이라고 써야 할 것 같다. 합당한 수고를 하지 않고, 나아지는 일은 없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윤○○ 의원의 ‘국민은 내일, 모레, 1년 후면 또 달라진다.’, 즉 금방 잊어버린다는 말처럼 ‘국민’을 욕되게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자신들이 어떤 말을 해도 선거 당시만 잘하면 된다는 인격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왜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나라가 되었을까?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Émard Sartre, 1905년~1980년)의 철학은 “자유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고를 때를 생각해 보자. 아이는 햄버거를 먹을지, 피자를 먹을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햄버거를 선택했을 때, 햄버거가 너무 기름지고 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선택은 자유롭지만,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중요한 또 다른 개념은 “타인과의 관계”이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친구가 슬퍼할 때 그 친구를 도와주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을 지는 것처럼,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자유롭지만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자유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한 의미를 우리는 곱씹어야 한다. 우리 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용어는 성찰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병(病)과 문제점, 그리고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어떤 상황이 일어나면 현장을 보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한 이론과 지식에 의해서 살피거나 외국의 사례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는 어른들의 토론이 생중계되기도 한다. 우리와 외국은 세계가 다르다. 다름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해야 할 일인가? 우리의 운명은 ‘생각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에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높고, 가장 치명적인,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와의 투쟁으로 나온다. 즉 추상 능력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남들이 만들 때는 머릿속에 없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런데 따라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이 매커니즘(어떤 대상의 작동 원리나 구조)은 경험하지 못한다. 그냥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만 받아서 쓴다. 그러니까 보이고 만져지는 것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여지고 만들어지는 것을 만들어내는 원리적인 것은 경험되지 않는다. 힘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여기에 우리 교육의 함정이 들어 있다. 일일삼성(一日三省) 혹은 삼성오신(三省吾身)은 하루에 세 가지 일을 살피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맹자로 이어주는 제자인 증자(曾子: BC 506∼BC 436)의 말이다. 《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에서, 증자는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살핀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실하지 않았는지, 벗과 함께 사귀는데 신의를 잃지 않았는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했다. 이 말씀은 《논어》(학이편)의 첫 단락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가,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는 말을 재해석하고 확장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일상에서의 수양이고, 개인의 수양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가 여기에서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유학, 유교, 유도’(儒學, 儒敎, 儒道)가 고리타분하고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문명화된 현대인이 이 정도의 자기 관리를 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이 고전을 많이 가까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니면 책꽂이에 꽂아두고 곱씹어 보는 일은 바래서는 안 되는 일일까? 국민의힘 남양주 당협위원장이 대중 앞에서 ‘정동영, 개○○’라는 표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도자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을 나라의 병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어》의 가르침이 낡고 유효기간이 상실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이 그만큼 비천(卑賤)해짐으로써 그것이 본래의 위치보다 더 ‘고원’(高遠)해지고, 그것을 현대인은 이솝의 신포도처럼 ‘시어서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까운 일은 아닐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다. 숟가락 드는 법부터 밥 먹는 것도 배워야 한다. 말하는 것도 배운다. 걷는 것도 배운다. 모든 과정이 배우는 과정이다. 배우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삶은 배움이고 앎의 운동이다. 즉 생명이란 앎을 향한 운동이다. 왜 배우는가? 자기한테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에게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을 갖춰가는 과정을 말한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갖춰지지 않은 것을 갖추려고 하는가? 왜 그런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식은 문제를 해결한 결과들이다. 세상의 문제를 치료하고 풀기 때문에 공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다. 제대로 된 지식인이란? 시대를 아파하고, 느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치료하고 시대도 치료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을 ‘인재’라고 하는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너는 과연 누구냐?’,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물음을 교육과정에 편성하는 일보다는 선거 주민을 만나는 것이 더 급한 일일 수도 있다? 지금 ‘문해력’의 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문해력이 급선무라고 떠드는 사람만 있고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나서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만 너무 예민한 것일까?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명언이 귓전을 맴돈다. 이 말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가를 지닌 인재를 키워가야 할 것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찰’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들어보면 ‘성찰’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성찰이 무엇이며, 자신은 어떻게 하였는데,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지는 자기를 발견하는 교육 과정을 만드는 길은 없는지? 알고도 안 하는지? 못 하는지? 교육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서로 소통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찾는 길을 연구하는 시간은 필요 없는 것일까? 물음은 제대로 된 나라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교육이 국가다’라는 비전을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물음으로 바꾸는 사유가 필요하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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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30
  • [社說]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미래 교육의 공정한 발걸음
    [교육연합신문=사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AI 서·논술형 평가시스템 도입을 본격 논의했다. 잘하는 일이다. 교육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안한 ‘하이러닝(Hilearning)’ 모델은 문제 출제부터 채점, 피드백까지 한 번에 처리한다. 자동화된 과정은 사람의 편견을 줄인다. 평가의 일관성을 보장한다. 국어, 사회, 과학에서 이미 시범 운영 중이다. 다른 교과로 확대되는 것이 옳다. 서울, 대구, 충남 등도 자체 시스템을 개발한다. 교육청 간 협력은 필수다. 협의회가 속도를 높이기로 한 결정은 현명하다. 기술만의 발전이 아니다. 미래형 공정평가로 가는 전환점이다. AI 평가가 대입에만 쓰일 필요는 없다. 학교 현장 전체로 퍼져야 한다. 형평성 높은 평가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학생은 공정한 기회를 얻는다. 교사는 채점 부담을 덜 수 있다. 학부모는 결과를 신뢰한다. 물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연구 성과를 토대로 법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보안과 알고리즘 투명성도 챙겨야 한다. 그러나 멈출 이유는 없다. 사립학교 교원 징계제도, 학교폭력 대응, 특수학급 지원 등 다른 안건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핵심은 단연 AI 평가였다. 미래 교육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다. 공정한 평가 없이는 미래도 없다. AI 서·논술형 평가는 그 출발점이다. 교육계가 한발 더 나아간 지금, 우리는 그 결정을 힘껏 지지해야 한다. 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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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9
  • [기고] 디지털 도구, 학습의 날개가 되다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칠판과 교과서가 중심이던 수업은 이제 인공지능, 생성형 AI, 3D 프린터와 같은 디지털 도구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보조 교구’의 차원을 넘어 교실의 문화를 바꾸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디지털이 수업의 본질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업의 본질은 언제나 성취기준 달성에 있으며, 디지털 도구는 그 목표를 더 깊고 넓게 확장하는 강력한 ‘날개’가 되어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놀랍다. 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는 수준과 속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맞춤형 학습 경로를 제시한다. 덕분에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학생, 반대로 너무 쉬워 흥미를 잃던 학생 모두 자기 맞춤형 학습을 이어갈 수 있다. 생성형 AI는 학생들의 질문에 빠르게 대응하며 탐구의 폭을 넓혀준다. 학생들은 단순히 답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설계하고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한 단계 더 깊은 사고로 나아간다. 3D 프린터는 상상을 눈앞의 실물로 구현하며 배움을 지식 습득 이상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아이들은 놀이와 도전이 결합된 활동 속에서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친구들과 협력하며 학습을 즐긴다. 제가 집필한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생성형AI반·3D프린트반』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교사들이 디지털 도구 활용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잘 모르면 학생들에게 해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 안내만으로도 학생들은 금세 자기 생각을 구현해내며, 오히려 교사보다 더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지식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도전하려는 교사의 용기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학생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디지털 도구 활용에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과제도 따른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편향과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며, 무비판적 수용은 학습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도구의 오·남용은 학습 태도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디지털의 가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교사의 전문성과 윤리적 지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가 된다. 학생들이 연령에 맞는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정직한 태도로 기술을 활용할 때 비로소 디지털은 학습의 자산이 된다. 교사의 지도는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결국 수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교사의 설계, 학생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성취기준 달성이 교육의 중심이다. 다만 디지털 도구는 그 과정을 더 쉽고, 더 즐겁고,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앞으로 교실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이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올바르게 선택하고 활용할 때, 디지털 도구는 학습의 질을 한층 끌어올리고 학생들에게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길러줄 것이다. 기술은 결코 수업의 주인이 아니지만, 수업을 더 멀리 날게 하는 날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날개를 어떻게 펼치느냐는 결국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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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4
  • [기고] 상상을 현실로, 교실 속 메이커교육의 힘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CEO들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차고지다. 허름한 차고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스스로 만들며, 수많은 실패를 겪었던 경험이 결국 혁신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교실 속 무한상상실이야말로 그 차고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패와 재도전을 거듭하며, 협력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발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메이커교육은 몇 해 전 우리 교육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전국의 학교에 무한상상실이 조성되고, 3D프린터를 비롯한 다양한 장비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안전과 건강 문제로 장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먼지를 쌓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메이커교육을 특정 장비 체험으로만 오해하거나, 결과물 중심의 전시 활동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메이커교육의 가치는 장비 자체가 아니라, 아이들이 상상을 실현하고 실패와 재도전을 경험하며 배우는 그 과정에 있다. 나는 3D프린터를 ‘성취의 덫’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사실 모델링과 프린팅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교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반 4학년 학생들과 함께 기초 모델링 수업을 진행해 보면, 불과 두세 시간 만에 자기 상상을 입체적인 작품으로 구현한다. “체육보다 3D 모델링 시간이 더 재미있다”는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쉬는 시간에도 스마트기기로 자기만의 모델링을 이어가며 친구들과 협업하는 모습은 메이커교육이 지닌 힘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메이킹은 놀이이자 도전이고, 또 하나의 배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커교육은 여전히 많은 교사들에게 ‘낯선 영역’이다. 교과와 별개의 특별 활동으로만 생각하거나, 결과물의 완성도에 지나치게 집착해 시도를 꺼린다. 그러나 본질은 결과물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가며, 실패 속에서 다시 도전하는 그 과정에 있다. 수학 시간에 보드게임을 만들고, 과학 시간에 친환경 제품을 설계하며, 미술 시간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시도하는 모든 활동이 메이커교육이다. 교사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시도를 열어주면, 교실은 순식간에 혁신의 차고지로 바뀐다. 나는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면서 이 지점을 가장 고민했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장벽을 낮추기 위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3D 모델링과 프린팅은 결코 거창한 전공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기본적인 안내만으로도 학생들은 곧바로 자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교사가 부담 없이 수업에 도입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학생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단순히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아니다. 상상을 실현하는 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협력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다. 메이커교육은 바로 이러한 미래 시민의 자질을 키우는 교육이다. 지금 우리 교실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기계 작동법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시도하고 부딪히려는 용기다. 무한상상실에서의 작은 시도가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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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3
  • 윤웅석 前국기원연수원장, 제18대 국기원장 선거에서 압승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윤웅석 前국기원 연수원장이 제18대 국기원장 선거에서 최종 당선되며, 국내외 태권도계의 새로운 리더로 공식 선임됐다. 9월 19일 치러진 온라인 투표에서 총 2,314명의 선거인 중 1,561명이 참여(투표율 67.46%)한 가운데, 윤 당선인은 737표(47.21%)를 획득하며 안용규 후보(544표, 34.85%)와 남승현 후보(280표, 17.94%)를 제치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번 선거는 국기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강남구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해 후보자 등록, 정책토론회, 확대된 국내외 온라인 투표 시스템(K-Voting) 활용 등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진행됐다. 윤 당선인은 태권도 9단으로 국기원 연수원장을 역임했으며, 대한태권도협회 부회장과 기술전문위원회 의장 등 핵심 보직을 두루 맡아 태권도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도장 지원사업, 국기원 조직 단합, 심사제도 및 교육 혁신, 국제협력 강화 등 실질적 발전 과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윤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이번 당선은 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국내외 태권도 가족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변화의 결실”이라며, “말이 아닌 실행으로 보답하여, 국기원이 세계 속에서 신뢰받는 본부로 자리매김하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의 임기는 2025년 10월 7일부터 3년간이며, 같은 날 오후 6시 30분 국기원 강의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당선증을 공식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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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0
  • [社說] 의대 쏠림과 두뇌 유출, 한국의 미래는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은 지금 인재의 황무지가 되고 있다. 자연계 최상위권은 의대로 몰리고, 남은 AI 인재마저 해외로 떠난다. 두뇌 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유능할수록 한국을 떠난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서울대 공대 신입생 5명 중 1명이 의대로 이탈한다. 공학의 심장에서조차 인재가 빠져나간다. 이들은 안정된 직업과 높은 수익을 좇는다. 국가가 키운 인재가 첨단 산업 대신 의료로만 몰린다. 그 결과, AI·반도체·양자 분야는 속이 비어간다. 남아 있는 소수의 AI 인재마저 실리콘밸리로 떠난다. 구글, 애플, 엔비디아는 성과 기반 보상과 개방적 문화를 내세운다. 한국의 연공서열과 단기성과 중심 체계는 매력이 없다. KAIST 연구실의 제자들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뇌 유출은 곧 국력 손실이다. 공교육비, 세수 손실까지 계산하면 인재 1명당 수억 원의 손해다. 첨단 산업 경쟁에서 뒤처지는 대가는 그보다 크다. 세계는 AI 인재 전쟁에 나섰다. 중국은 ‘천인 계획’으로 석학을 불러들이고, 일본은 고급 인력에 영주권까지 내준다. 미국은 빅테크를 앞세워 수억 달러 보상으로 인재를 사들인다. 반면 한국은 인재를 지켜내지도 못한다. AI 인재는 빠져나가고, 의대 정원은 늘어난다. 산업 현장은 인력난에 허덕인다. 기업의 80%가 AI 인력이 부족하다. 2027년엔 1만 명이 넘는 AI 인력이 공백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대로는 AI 강국은커녕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한다. 의대 공화국과 두뇌 수지 적자는 국가적 재앙이다. 정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성과 중심의 보상, 연구 인프라 확충, 국제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 동시에 의대 쏠림을 완화할 전략이 시급하다. 지금의 흐름을 방치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의대와 해외만 바라보는 인재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경쟁력을 포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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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5-09-15
  • [時論] 배움의 진짜 얼굴
    [교육연합신문=시론]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오늘날 교육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성취도’, ‘평가’, ‘입시’, ‘스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시험에서 몇 문제를 맞혔는지가 배움의 척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고 외우는 것을 넘어선다. 배움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Humanness)은 단순한 도덕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이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는 힘이다. 이 힘은 자율성과 주체성, 그리고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말했다. “진정한 자아는 결코 외부의 규칙에 맞추어질 수 없다.” 교육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배움이란 외부 기준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를 발굴해가는 여정이다. 사례 ① 몬테소리 교육: 스스로 피어나는 배움 이탈리아의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를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보았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탐색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전통 수업에서는 교사가 시간표와 커리큘럼을 정하지만, 몬테소리 교실에서는 아이가 교구를 직접 선택하고 흥미를 따라 탐구한다. 아이 안에 있는 자기 주도성과 내적 동기를 깨우는 것이다. 몬테소리는 말했다. “아이 안에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힘이 있다.” 교사는 억누르지 않고, 조율하고 안내하는 조력자 역할만 한다. 교육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의 열망이 피어나는 장이어야 한다. 사례 ② 핀란드 교육: 경쟁 없는 배움의 공동체 핀란드는 교육 만족도와 학업 성취도를 동시에 높이는 나라로 유명하다. 놀랍게도 전국 단위 시험이 거의 없다. 학생들은 등수에 신경 쓰지 않고, 학습의 즐거움을 우선한다. 핵심은 ‘협력과 토론’이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주제로 조별 토론이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자료를 조사하고 의견을 나눈 뒤, 함께 해결책을 도출한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과 사회적 공감 능력을 키우는 수업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진 연결성과 공동체 감각을 길러주는 배움이다. 배움은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과정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소유할 때 비로소 자유롭다.” 배움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자기 사유의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생각을 소유한다는 것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품는 인간을 기르는 일이 되어야 한다. 실천 방안: 배움의 중심을 학생에게 1. 학습자 중심 수업 설계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촉진자(facilitator) 역할 학생이 스스로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할 수 있는 열린 과제 제공 다중 지능 이론 기반 개인 맞춤형 학습 경로 구성 2. 평가의 혁신 기존 상대평가와 표준화 시험은 개인 고유성을 평가하지 못한다. 포트폴리오, 서술형 수행평가 중심으로 전환 실험, 창작, 프로젝트 활동 등 다양한 표현 방식 허용 성장 중심 피드백으로 학습 동기 고취 3.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확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학습자가 지식 생산자로 변모 예: 지역 환경 문제 다큐 제작, 사회적 이슈 캠페인 기획 창의력, 협업 능력, 문제 해결력 등 핵심 역량 강화 교과 경계를 넘는 융합적 사고 훈련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교육 진정한 교육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학생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타인과 관계하며,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한다.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그 도구를 어떻게 느끼고, 연결하고, 사용할지를 고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답게 배운다. 교육은 지금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아니면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작은 결론 배움의 목표는 외적 성취가 아니라, 내적 성장이다. 평가 방식은 숫자와 등수가 아닌, 성장과 발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생의 호기심과 열망을 깨우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AI와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다움은 인간이 길러야 한다. 지식은 빠르게 확산되지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교육의 진정한 승리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늘도 질문해야 한다. 시험 문제를 맞히는 인간을 만드는가, 아니면 생각하고 느끼고 연결할 줄 아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그 질문이 바로, 미래 교육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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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8
  • [기고] 익히고 되새김질하는 고전의 밥상으로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식이 단순히 인식의 차원에 머물고,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삶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면서 객관적인 세계와 직접 접촉하지 못하고, 항상 가치와 이념을 매개로 관계하게 되는데, 세계와 관계할 때 사용하는 자신만의 특정한 가치론적 규정을 莊子는 ‘成心’이라고 표현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정해진 마음 즉 편견을 스승처럼 받드는데”, 그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큰 오류로서 ‘세계의 진상과 인간을 크게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타자에게 마음 쓰는 존재다. 인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 타자를 나와 같은 존재로 여기고 서로 협력하는 탁월한 공감력 없이 인류의 집단 성취인 문명은 불가능했다. 요즘 이런 생각에 머문다. 열심히 뭘 하긴 하는데, 가슴 한구석에 ‘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해야 한다고 동서양 막론하고 성현들은 말한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게 맞아, 그렇게 해야지.’라고 주먹을 불끈 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한 후배에게 이런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 같네.’라고 하니까 ‘형님, 그럼 말씀 하지 마세요. 잘 살아왔고, 잘 살고 계시는 겁니다.’라는 답변에 약간의 치유를 받았지만, 도로아미타불,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그 말이 요즈음 나를 휘감는다. ‘내 생각’과 내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어리석고 밉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의 본질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러한 시작도 결국에는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에 귀결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배움의 장이다. 왜 그런가? 알지 못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배워야만 살 수가 있다. 그 아는 만큼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을 또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앎과 생명은 분리되지 않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주 거창한 질문인 것 같지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생명은 앎을 향한 운동이다. 이것 포기하고 외부의 기준에 맞춰버리면 소외의 삶, 인생 자체가 의미도 재미도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동안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붙들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미친다. 요즘 남학생들도 이마에 여드름만 좀 나도 학교가 아니라 마사지 숍을 간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시대’가 된 것이다. 자기를 위한 투자, 자기 계발,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거, 정말 헌신적인 삶인 것 같다. ‘헌신적’이란? 자기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직 타인을 위한 헌신이라는 말이다. 왜 이렇게 남을 위해 애를 쓰는 걸까? 나한테 이로운 건 별로 없고, 오로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내 삶이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정 욕망이라고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지수는 훨씬 줄어든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언어가 귀에 못이 박혔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욕망과의 거리 두기가 더 중요한 시대는 아닌가? 『東醫寶鑑』을 배우면서 몸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리듬을 잘 타려면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우리의 감정, 즉 칠정은 항상 널뛰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일상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사춘기에나 하는 짓인데, 나는 평생을 사춘기로 살고 싶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문다. 사람의 감정은 원숭이 같다고 한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원숭이한테 가장 어려운 일이 앉아서 명상하는 일이라고 한다. 『西遊記』를 보면, 손오공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딱 한 가지,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것만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을 타고난다고 한다. 그래서 내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는가가 내 일생, 그리고 내가 맺는 관계를 결정하게 되는 거다. 감정은 훈련을 통해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지,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나를 제멋대로 끌고 다니게 된다. 『東醫寶鑑』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이 들어가 있는데, 도교는 주로 단전호흡을 통한 정기신(精氣神)의 순환을 통한 양생의 기예를 펼치고 있다. 유학은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기준이다. 이 오상에 맞춰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이 제도화되고 예법화되어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누구든 다 인의예지신을 지켜야 한다. 지키면 군자, 못 지키면 소인이 되는 거다. 왜 지키지 못할까?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수신제가(修身齊家)는 물론이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불가능하다고 성현들은 말한다. 동양에서 고대의 지혜라고 하면 유교, 불교, 도교를 말할 수 있다. 중화문명에서 유교와 도교가 발달했고, 나중에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삼교가 서로 혼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공부할 때, 삼교회통(三敎會通)을 중시했다. 지금도 이 정도의 기본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인류 지성사의 기초․기본이기 때문이다. 『논어』 외우고, 『불경』 외우고, 『동의보감』도 외우면 평생 자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권위자가 아니어서 그럴까? 고전은 다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지혜란 본디 중생과 만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무슨 자격이나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그걸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반드시 해야 하는 소명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매한 경전일수록 일용할 양식으로 써야 하다. 고전을 아득한 시공에 모셔두기만 하면 안 된다. 가장 고귀한 것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하듯이,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빛이고 공기고 물인 것이다. 빛과 공기, 물을 이해한 다음에 사는 게 아니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일단 암송한 다음 계속 되새겨야 한다. 자기 몸에 딱 붙여야 한다. 장자(莊子)의 천도(天道)편에 나오는 제(齊)나라 15대 왕 환공(桓公)과 수레바퀴 깎는 장인 윤편(輪扁) 사이의 이야기다.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은 그 앞 정원에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는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대청으로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 “외람되오나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을 기록한 것입니까?” “옛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환공이 노해서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감히 바퀴를 만드는 자가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내가 납득하도록 설명하면 모를까 아니면 너는 죽은 목숨이다.” 윤편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퀴의 구멍을 깎을 때 느슨하게 하면 헐렁해서 빠지고, 빠듯하게 하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빠듯하지도 않은 것은 손에 익고 마음이 그에 호응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비밀이 거기에는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아들에게도 가르치지 못했고, 아들 역시 저에게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저는 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과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그런즉 폐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일 뿐입니다.” 『繫辭傳上篇』12-2장에 ‘書不盡言(서부진언), 言不盡意(언부진의)’라는 말이 있다.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가슴 속의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조선에는 공자가 들어오면 왜 공자의 조선이 되려고 하지? 조선의 공자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조선 말 신채호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보자. 『般若心經』에서 관세음의 ‘觀’은 ‘본다.’보다도 ‘보여준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들, 그 현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보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11면의 얼굴을 지닌 보살이 바로 관세음(관자재)보살이라고 한다. 미래에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을 내게 보여준다. 사실을 전한다는 기자는 많아도 이상호 기자처럼 세상의 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숨겨진 소리, 보통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안 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찾아 나선다. 기자는 모름지기 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그토록 용감하게 자신을 현장에 던지고 사는 기자는 많지 않다. 세월호 속에 사라진 슬픈 소리도 이상호의 대변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호는 그러한 삶의 자세 때문에 본인이 항상 아프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으면 같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상호를 박해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수없이 고소를 당하면서 얼마나 깊은 시련을 겪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저도 철이 드는 걸까? 옛말에 ‘생긴 대로 논다, 산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心經』을 만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더 생각하고, 타인의 苦厄을 동감하며, 진리에 대하여 개방적 자세를 유지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야 살아가야 할 소명을 더 생각하고 생각한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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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6
  • 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 이득재 신임 이사장 취임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광역시학교안전공제회는 9월 3일자로 이득재 신임 이사장이 공식 취임했다고 밝혔다. 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는 부산 지역의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와 재해로부터 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하고, 안전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부산 교육 안전망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에 취임한 이득재 이사장은 교육 현장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부산 교육계에서 신뢰와 리더십을 인정받아 왔다. 특히, 학생 안전과 교직원 복지 증진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어, 공제회의 혁신과 발전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득재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부산 교육의 안전과 신뢰를 지키는 막중한 책무를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통해 신뢰받는 공제회를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어 그는 “안전은 한 개인이나 기관의 힘만으로 지켜낼 수 없는 공동의 가치”라며, “부산 교육가족과 시민사회, 관계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 흔들림 없는 교육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현장의 목소리에 직접 귀 기울이고, 체감할 수 있는 지원으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제회가 되겠다”며, “부산 교육 현장을 안전하고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득재 이사장은 일선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활동 안전을 위한 ‘여행자보험 제도’ 도입을 핵심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체험학습, 수학여행, 해외연수 등 다양한 교육활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공제회 차원에서 통합 보험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학교 현장의 안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학부모의 불안까지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기존 여행자보험 운영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동안 학교는 사보험사를 통해 학생 개별 가입을 진행해야 했고,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취합하고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컸다”며, “보험료가 소액이어서 민간 보험사의 관심이 낮았고, 업무 담당 교사들의 부담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제회가 추진하는 ‘여행자공제사업’은 ▲간편한 가입 절차 ▲보다 저렴한 보험료 ▲신속한 보상처리 체계 등을 갖춰, 학교의 행정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실질적인 안전 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이사장은 “교육활동은 교실을 넘어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안전 리스크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며 “공제회가 든든한 방패가 되어 학생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광역시학교안전공제회는 각종 사고와 재해로부터 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하고, 교육활동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이번 이득재 이사장의 취임과 함께 여행자보험 제도를 포함한 특색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부산 교육의 안전 지원 체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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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4
  • [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의 두뇌 수지 적자가 심각하다. OECD 38개국 중 35위라는 성적표는 단순한 순위가 아니다. 젊고 유능한 인공지능 인재들이 한국을 떠난다. 들어오는 인재는 줄어든다. 이 현실은 국가 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진다. 미래를 떠받칠 뿌리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상의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2024년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은 0.36명이다. 2022년에는 0.04명, 2023년에는 0.3명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수치는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독일, 캐나다는 인재 유입국이 되었다. 세계의 두뇌가 모이는 곳은 번영한다. 인재가 떠나는 곳은 쇠락한다. 원인은 단순히 연봉이 아니다.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제도와 문화에 있다. 평가는 단기 실적에 치우쳤다. 보상은 연공서열에 묶여 있다. 연구 인프라는 열악하다. 국제 협력의 기회도 부족하다. 이 구조에서 창의는 자랄 수 없다. 김정호 KAIST 교수의 제자들조차 구글과 엔비디아로 간다. 이것이 현실이다. 고급 인력 한 명이 떠날 때마다 국가는 손실을 본다. 그 규모는 약 5억 원이다. 이 계산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이미 대학과 연구소의 역량이 줄고 있다. 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에 시달린다. 산업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한다. 정부는 AI 세계 3대 강국을 외친다. 100조 원 펀드도 약속했다. 그러나 돈만으로 인재는 붙잡히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전환이다. 인재 유출 억제는 소극적이다. 세계의 인재가 몰려오게 해야 한다. 성과와 보상이 연동돼야 한다. 근로 제도는 유연해야 한다. 연구 생태계는 세계와 연결돼야 한다. 창의적 도전을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인재는 국력이다. 인재가 떠나는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한국은 두뇌 유출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젊은 두뇌가 떠날 때 남는 것은 쇠락의 그림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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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1
  • [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교육연합신문=사설] 수능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심장이다. 그러나 그 심장은 오래된 방식으로 뛰고 있다. 학생들의 꿈과 가능성을 재단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폐지론자는 수능을 사교육의 온상이라 비판한다. 유지론자는 수능이 공정의 최후 보루라 주장한다. 양측의 논리는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존폐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학생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것인가다. 수능은 공정성을 보장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이 구조는 지역·학교 간 격차를 줄이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수능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시험의 그림자를 짙게 만든다. 따라서 수능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개선과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수능을 공교육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가도 충분히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AI 튜터와 같은 맞춤형 학습 지원을 공교육이 제공해야 한다. 학생의 지역, 환경, 학습 조건에 맞춘 균형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수능의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학력평가와 적성평가는 달라야 한다. 지식의 축적을 측정하는 시험과 진로·탐구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을 나눠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길에 맞는 시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그 결과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수능 한 장의 성적표가 인생을 좌우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배움의 과정, 도전의 기록, 지속적인 성장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꾸준한 학습이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서울·경기 학생들의 토론은 귀한 결론을 남겼다. 공정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합의다. 존폐의 논쟁을 넘어, 교육의 본질로 접근한 것이다.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이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답을 내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결단할 차례다. 수능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공정은 지켜져야 한다. 시험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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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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