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학원에서 그라운드까지, BAT 10년
[교육연합신문=유정걸 기고]
야구장은 늘 시간표와 닮았다. 1회 초가 종이 울리는 첫 교시라면, 경기 종반은 스탠드 의자가 비어 가는 밤 10시의 마지막 수업이다. 부울경 학원인들이 BAT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린 지 꼭 10년, 칠판의 가루를 털던 손으로 미트의 흙먼지를 털었고, 빨간 펜으로 채점하던 집중력으로 스트라이크 존의 모서리를 공략해 왔다. 이른 아침에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학원원장과 강사들이 백여 명에 이르렀고, 그들은 일상을 야구로 설명하고 야구로 버텼다.
■ 공격-수업의 첫 문장처럼, 초구를 간다
공격은 늘 문제 제시다. 수업에서 “오늘 목표”를 칠판 맨 위에 적듯, 타석에 서면 우리는 초구를 어떻게 대할지부터 계획한다. 번트로 출루율을 높일지, 과감히 초구를 당겨 장타를 노릴지. 학원 현장도 같다. 새 단원을 열어 갈 때는 작은 점수가 필요하다. 쉬운 예제로 분위기를 잡는 번트, 기초 개념을 쌓는 희생플라이. 때를 만나면 파생 개념까지 묶어 장타를 뽑는다. 홈으로 뛰어드는 건 학생이지만, 작전표는 벤치가 쥔다. 원장은 반 편성을, 강사는 학습 루틴을 짠다. 그리고 외친다. “오늘은 초구 노린다. 개념의 한가운데를.”
■ 수비-상담은 실점 방지다
수비의 핵심은 첫 플레이를 지키는 일이다. 무심코 흘린 송구 하나가 이닝을 길게 만든다. 학원에서의 상담이 그렇다. “우리 아이가 요즘 집중을 못 한다.”라는 포구를 제대로 받아야 다음 공이 쉬워진다. 데이터를 꺼내고(최근 출결, 과제 수행률, 단원별 정답률), 커버링을 부른다(담임–과목 선생–부모–아이). 실수는 감춘다고 줄지 않는다. 에러를 에러로 적는 용기, 코치의 첫 자격이다. 수비 위치를 한 발 앞당기듯, 상담도 한 주 먼저 잡으면 실점은 줄고 경기 흐름이 바뀐다.
■ 주루-시간표 위의 90피트
주루는 타이밍의 수학이다. 스타트가 0.2초 느리면 세이프가 아웃으로 바뀐다. 강사의 하루도 그렇다. 오후 4시 수업 전에 교재 업데이트 15분, 쉬는 시간 5분 퀴즈 피드백, 수업 후 상담 10분. 이 30분의 주루가 학기 전체의 득점을 만든다. 더그아웃에서 스톱워치를 쥐고 “지금”을 외치는 코치처럼, 우리는 알람으로 시간을 쪼개고, 학원 문을 닫을 때까지 베이스를 훑는다. 가끔은 오버런을 해도 괜찮다. 돌아오는 길에 학생의 질문 하나를 더 챙겨 세이프를 만든다면.
■ 교재연구-스카우팅 리포트의 힘
교재연구는 상대 투수 분석과 똑같다. 어떤 구종이 많은가, 카운트 싸움은 어떻게 하는가. 타자별 핫존을 칠해서 스프레이 차트를 만들 듯, 단원별 오개념 지도를 만든다. “지수법칙을 이유 없이 외우는 학생” “도형 이동에서 기준 좌표를 놓치는 패턴”. 이 리포트를 들고 들어가는 수업은 매 타석이 준비된 스윙이다. 덕분에 우리는 “왜 틀렸는지”를 보여 주는 코칭으로 바꿨다. 정답보다 증거를 말하는 법을 야구가 가르쳤다.
■ 더그아웃-동료라는 이름의 불펜
십 년 사이 가장 큰 변화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평일 오전, 도시락과 물통이 쌓인 더그아웃에서 우리는 학생 상담 사례와 수업 장치를 공유했다. 한쪽 끝에선 아이스팩으로 손목을 식히고, 다른 쪽에선 다음 주 모의고사 해설 포인트를 메모한다. “저 타자는 초구에 약간 뒤늦게 반응해.” 라는 속삭임이, “그 학생은 시작 문제에서 시간을 잃어.”로 바뀐다. 불펜에서 나와 한 타자 승부를 해내듯, 동료의 메모 한 줄이 어떤 날엔 우리 모두를 세이브한다.
■ 일상의 점수표-야구가 바꿔 놓은 것들
그들의 일정표에는 야구장이, 승용차 트렁크에는 공·글러브·배트가 함께 산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목소리는 낮아지고, 채점은 밤으로 밀린다. 장마엔 경기와 수업이 함께 미뤄지고, 개학·중간고사·파이널은 늘 불펜 가동 주의보다. 그러나 시즌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알았다. 흙먼지와 땀냄새가 소진을 성취로 바꾸는 냄새라는 걸. 학부모 상담에서 “선생님도 야구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오면, 우리는 미소로 대답한다. “네, 그래서 더 오래 가르칠 수 있다.
■ BAT의 의미-낭만만이 아니라 근거와 품격
BAT는 우리에게 낭만이 있다. 하지만 낭만만으로 버틴 건 아니다. 기록이 있었다. 매 경기의 포지션 변화와 타석 결과처럼, 우리는 학생의 학습 로그를 쌓았다. 서로의 실책을 덮지 않고 공처럼 정확히 주고받으면서, 탓이 아닌 해결의 언어를 익혔다. “누구 탓이냐” 대신 “다음 공은 어디로”를 묻는 습관이 학원에도 스며들었다. 그게 이 리그가 만든 품격이다.
올해도 가을이 왔다. 플레이오프의 긴장과, LED등 아래 교실의 고요가 묘하게 겹친다. 어떤 날은 파울 플라이처럼 아슬아슬하게 잡고, 어떤 날은 몸을 던져 라인을 지킨다. 그리고 가끔은, 스코어보드의 숫자보다 더 큰 승리를 안고 돌아온다. 한 학생의 표정이 바뀌었을 때, 한 문장의 설명이 스스로의 말로 정리됐을 때.
십 년 전, 십여 명의 원장과 강사 몇 명이 작은 공터에 섰다. 첫 배트는 가벼웠고, 첫 스윙은 어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덜 휘청이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야구장에선 여전히 초구가 날아오고, 학원에선 종이 또 울린다. 우리는 오늘도 작전표를 확인한다. 공격·수비·주루, 그리고 가르침.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