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Home >  기획·연재
-
[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취업이 끝이 아니라 성장의 시작이다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많은 사람들이 취업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취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한 번 취업했다고 평생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역량을 키우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게 되고, 기업 역시 인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최근 산업현장은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기술 확산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직무의 형태는 세분화되고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도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직업훈련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업들은 채용보다 더 큰 고민을 이야기한다. 어렵게 채용한 인재가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빠르게 이탈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채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개인의 성장은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기업의 성장은 다시 지역경제의 성장으로 연결된다. 기업과 구직자를 만나며 느끼는 것은 교육은 취업 전보다 취업 후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조직문화를 이해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질 때 개인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기업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공공기관과 기업을 대상으로 직무교육과 역량강화교육을 운영하며 조직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교육을 획일적으로 제공하기보다 기관과 기업의 특성, 직무, 조직문화, 교육 목적을 분석하여 맞춤형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무 중심 교육을 운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조직활성화와 리더십 교육, 팀워크 향상을 위한 참여형 워크숍, 특별민원 응대교육, 공공재정환수법 교육, 장애인 고용 담당자 역량강화 교육, 취업지원 슈퍼바이저 교육, ESG 및 컨설팅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조직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함께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AI 활용 교육과 디지털 업무혁신 교육을 확대하여 변화하는 산업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실무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성과는 교육장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업무를 더 잘 수행하고, 동료와 협력하며,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 갈 때 비로소 교육은 가치를 갖는다. 사람의 성장은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기업의 경쟁력은 다시 지역사회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HRD는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산업현장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함께 고민하며, 사람과 조직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며, 사람에 대한 투자는 가장 확실한 미래 투자로 이어질 것이다. 취업은 목표가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다. 사람의 가능성을 키우는 교육은 기업의 경쟁력을 만들고, 기업의 성장은 지역사회의 미래를 만든다. 사람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현장의 변화에 귀 기울이며 지속 가능한 HRD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직업훈련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가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사람과 기업이 직접 만나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가는 온·오프라인 채용박람회와 일자리 연계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
[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수능 전 논술, 준비된 학생에게 기회가 온다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이제부터의 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수능만 바라보며 달려가기도 벅찬 시기지만, 논술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바로 수능 전에 실시되는 논술고사다. 일부 대학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기 전부터 논술고사를 실시한다. 특히, 10월 초부터 논술 일정이 시작되는 만큼 해당 대학을 지원한 학생들은 수능과 논술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와 자신에게 맞는 전략이다. 필자는 오랜 세월 학생들의 논술과 면접을 지도하면서 늘 이렇게 말해왔다. “입시는 많이 하는 학생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학생이 강하다.” 논술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많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지원 대학의 공식자료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 대학이 어떤 사고력과 답안방식을 요구하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 10월부터 시작되는 논술 레이스 2027학년도 수시 논술전형은 수능 이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10월 3일에는 서울시립대와 홍익대 서울캠퍼스 자연계열 논술고사가 예정돼 있다. 홍익대는 자연계열에 이어 10월 4일 인문계열 논술고사를 진행한다. 이처럼 논술은 수능이 끝난 뒤 준비하는 시험이 아니다. 특히 수능 전 논술을 선택한 학생은 지금부터 대학별 기출문제와 모의논술을 직접 풀어보며 실전감각을 키워야 한다. “수능을 잘 본 뒤 논술을 생각해 보겠다”는 전략은 수능 전 논술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지원했다면 준비해야 한다. 준비했다면 실제 답안까지 써봐야 한다. ■ 수능최저가 없다고 쉬운 시험은 아니다 수험생들이 논술전형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수능최저학력기준이다. 대학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떤 대학은 논술을 잘 보더라도 수능최저를 충족해야 최종 합격이 가능하다. 반대로 수능최저를 적용하지 않는 대학도 있다. 여기서 학생들이 자주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수능최저가 없으면 합격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수능최저가 없는 대학에서는 논술 자체가 당락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수능최저가 없다는 것은 문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논술 자체가 문턱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모의고사 성적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논술 실력, 대학별 문제 유형, 지원 학과의 경쟁률과 전형조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 수능과 논술은 서로 싸우는 공부가 아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수능 공부도 바쁜데 논술까지 해야 합니까?”.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논술을 준비한다고 해서 수능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문논술은 제시문을 읽고 핵심을 찾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시험이다. 이 과정은 국어의 독해력과 사고력과 연결된다. 자연계 수리논술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개념을 문제 상황에 적용하며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힘을 본다. 결국 논술의 바탕도 학교공부와 수능공부다. 논술은 그 위에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더하는 것이다.따라서 논술 준비 때문에 수능공부를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수능을 중심에 두되, 주 1~2회라도 실제 논술시험처럼 시간을 재고 답안을 써보는 것이 좋다. 짧더라도 꾸준해야 한다. ■ 김광휘의 첫 번째 비법, ‘답보다 질문을 먼저 읽어라’ 논술을 오래 가르치면서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글을 잘 쓰는 기술이 아니었다. 문제를 제대로 읽는 법이었다. 학생들은 문제지를 받으면 곧바로 답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논술에서 가장 위험한 습관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출제자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정확히 읽어야 한다. ▲‘비교하라.’ ▲‘분석하라.’ ▲‘평가하라.’ ▲‘설명하라.’ ▲‘논하라.’ 이러한 동사가 답안의 방향을 결정한다. 비교하라고 했는데 자기 의견만 길게 쓰면 안 된다. 분석하라고 했는데 단순히 제시문을 요약해서도 부족하다. 논술은 많이 아는 학생보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읽는 학생이 강하다. 문제를 정확히 읽으면 답안의 절반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 두 번째 비법, 제시문을 ‘한 문장’으로 줄여라 긴 제시문을 읽다 보면 학생들은 내용에 끌려다니기 쉽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각 제시문을 읽고 반드시 한 문장으로 줄여보라고 했다. “이 글이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의 핵심을 잡지 못하면 비교도 어렵고 분석도 어렵다. 인문논술에서는 각 제시문의 핵심주장과 차이를 빠르게 정리해야 하고, 자연계 논술에서는 문제에서 어떤 수학개념을 요구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길게 읽되, 짧게 정리하는 힘. 그것이 논술의 중요한 능력이다. ■ 세 번째 비법, 첫 문장은 ‘멋’보다 ‘정확함’이다 학생들은 좋은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첫 문장을 지나치게 어렵게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럴 필요가 없다. 논술은 문학작품이 아니다. 채점자는 화려한 표현보다 학생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했는지를 먼저 본다. 그래서 첫 문장은 간결하고 분명해야 한다. 나는 늘 말한다. “첫 문장은 멋있게 쓰려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써라”. 첫 문장에서 답안의 방향이 보이면 다음 문장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네 번째 비법, 자연계 논술은 ‘정답’보다 ‘과정’을 보여줘라 자연계 수리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과정이다. 최종 답만 맞힌다고 좋은 답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이 공식을 사용 했는지, 어떤 조건을 이용 했는지, 어떤 순서로 결론에 도달 했는지를 답안지에 보여줘야 한다. 채점자는 학생의 머릿속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식과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했다. “내 풀이를 처음 보는 사람이 이 답안만 읽고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좋은 수리논술 답안에 가까워진 것이다. ■ 다섯 번째 비법, 반드시 시간을 재고 써라 논술은 집에서 천천히 완성하는 글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읽고, 생각하고, 써야 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연습도 실제 시험처럼 해야 한다. 기출문제를 풀 때는 반드시 시간을 재야 한다. 읽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는지, 한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지는 않는지, 마지막 검토시간은 남기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가능하면 마지막 5~10분은 검토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이 좋다. 문제를 빠뜨리지는 않았는지, 문장이 끊기지는 않았는지, 수식과 계산에는 오류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논술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 여섯 번째 비법, 모범답안을 외우지 마라 학생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 모범답안을 외우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조금만 달라지면 외운 답안은 사용할 수 없다. 모범답안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문장 자체가 아니다. 구조다. 어떻게 시작하는지, 근거를 어디에 배치하는지, 문단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결론을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봐야 한다. 답을 외우지 말고, 답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실전에 강한 공부다. ■ AI 시대에도 자기 생각은 대신할 수 없다 요즘 학생들은 AI를 이용해 논술문제의 해설을 찾고 답안도 만들어볼 수 있다. 분명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사용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읽고 답안을 작성해 보는 것이 좋다. 그다음 AI나 대학의 공식 해설자료를 활용해 빠진 관점과 약한 논리를 점검할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AI가 답을 줄 수는 있어도, AI가 곧 답은 아니다. 실제 논술시험장에서 학생을 대신해 문제를 읽어주고 답을 써줄 수는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손으로 써내는 힘이다. AI는 공부를 돕는 도구이지 생각을 대신하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 대학별 기출문제가 가장 좋은 교과서다 논술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가장 좋은 교재는 무엇일까. 나는 단연 지원대학의 공식 기출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마다 출제방식이 다르고 원하는 답안의 형태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을 정했다면 먼저 입학처 홈페이지의 모집요강, 기출문제, 모의논술, 논술가이드북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직접 풀어봐야 한다. 문제만 읽고 해설을 보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실제 시험시간에 맞춰 답안을 작성하고, 대학이 공개한 출제의도와 예시답안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찾아야 한다. 논술은 눈으로 배우는 시험이 아니라 손으로 익히는 시험이다. ■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2027학년도 수능과 논술을 준비하는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들이 몇 문제를 풀었는지,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누가 더 빨리 준비했는지만 바라보면 자신의 공부가 흔들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다. 자신이 지원할 대학을 정확하게 알고, 그 대학의 공식자료를 확인하며, 매일 조금씩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다. 논술은 특별한 학생만 잘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다. 정확하게 읽고, 차분하게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꾸준히 한 학생에게 기회가 열린다. 수능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성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오늘 공부한 한 문제, 오늘 정리한 한 개념, 오늘 써본 한 편의 답안이 쌓여 결국 시험장에서 힘을 발휘한다. 입시를 준비하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고, 논술답안이 마음대로 써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포기하기보다 자신의 공부방법을 다시 돌아봤으면 한다. 입시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속도를 지키는 긴 과정이다. 수능 전 논술은 부담만 있는 시험이 아니다. 준비한 학생에게는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대학이 논술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도 결국 단순한 암기력이 아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정보를 판단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대학에서 공부하고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도 필요한 힘이다. 그래서 나는 논술을 단순한 입시과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술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이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남은 기간 동안 수능과 논술을 차분하게 준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끝까지 믿었으면 한다. 그리고 시험장에서는 남의 답이 아니라 자신이 준비해온 생각과 실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준비한 학생에게 기회는 반드시 온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청소년들의 연암(燕巖) 발자취 답사 열풍과 교육적 효과 및 과제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교육계와 인문학계에서는 청소년들이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연행(燕行) 경로와 국내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는 ‘몸의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연암 박지원은 해학적이자 여행을 통한 배움과 문화 탐방의 길을 튼 역사상 매우 소중한 문학인 《열하일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난 중국 문명의 신비로운 모습과 탐구 정신은 우리 문학사에 주옥같은 걸작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 글에서는 관념적 지식 전달 위주의 기존 인문 교육에서 벗어나 현장 기반의 실증적 사유를 재현하고자 연암의 발자취를 찾는 흐름의 주요 실태와 교육적 효과 및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청소년들의 답사와 기행 코스는 서울-의주-압록강을 거쳐 중국 심양, 북경, 열하(承德)로 이어지는 《열하일기》의 이동 경로를 청소년들이 직접 추적하는 장기 기행 프로젝트다. 이는 단순 관광이 아닌, 연암이 머물렀던 주요 거점(구련성, 요양, 산해관, 피서산장 등)에서 연암의 텍스트를 현장에서 낭독하고 사료와 현지 문물을 대조 분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각 지역 교육청 및 공공도서관, 청소년 수련관을 중심으로 연암 박지원의 문학적·사상적 거점을 탐방하는 답사 코스(서울 감의재 터, 함양 안의현감 시절의 물레방아 유적지, 연암골 등)가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는 고교 고전 독서 클럽과 연계하여 텍스트 분석 후 현장을 방문하는 ‘선(先)독서 후(後)답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현장 미션 수행형 융합 학습(PBL) 프로젝트로 단순 견학을 넘어 청소년들이 연암의 시선으로 현대의 도시 구조나 기술, 타 문화 요소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경이로운 것은 연암이 똥더미나 흙벽돌에서 기술적·교육적 가치를 발견했듯, 학생들 역시 특정 미션을 받아 현장의 물물(物物)을 정밀 관찰하고 현대판 《열하일기》를 디지털 매체나 보고서로 재창작하는 활동이 병행된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되는 답사 운동의 교육학적-학술적 실태 및 특징을 살펴보자면 첫째, 지식의 체화다. 이는 교실 내 텍스트 읽기에 국한되던 인문학을 물리적 이동과 신체적 체험으로 확장하여 연암이 겪었던 행군의 고됨과 기후 환경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고전의 맥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비판적 텍스트 재해석이다. 이는 연암이 당시 사대부들의 성리학적 명목주의를 비판했듯, 학생들 역시 당대의 주류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기법을 현장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셋째, 텍스트와 현장의 융합이다. 《열하일기》 내 지명과 현지의 실제 지리·문화적 변화를 비교하는 실증적 탐구를 시행하여, 고전학과 지리학, 역사학을 아우르는 학제 간 학습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보다 학술적으로 연계하기 위해서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교육의 현대적 구현을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매체의 확산으로 정보의 파편화와 추상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연암의 답사길 추적은 학생들에게 ‘정밀한 관찰’과 ‘실증적 탐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구체적인 교육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이를 보다 체계화하고 지속적으로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교육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과제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으로의 체계화 필요성이다. 현재의 답사 열풍이 단순 일회성 체험 학습이나 이벤트성 기행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 정규 교육과정(자유학기제, 국어·사회 융합 프로젝트 등)과의 심도 있는 연계와 전문 지도 인력의 양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더불어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연암의 《열하일기》를 수준별로 편집한 고전 읽기 운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할 필요성에 보다 주목할 것을 제언하고자 한다.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작품을 통해 글쓰기와 사고력 확장의 교육 목표로 삼을 뿐만 아니라, 타국의 문물을 대하는 포용적인 자세와 열린 마음을 고취하여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소극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를 넘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포용력의 확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학교에서는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 “교육은 삶 그 자체여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하고 철저하게 접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배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우리는 흔히 배움을 학교를 다니는 시기에만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졸업장을 받으면 교육도 끝났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산업구조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한 번의 배움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제 배움은 특정 시기의 선택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계속되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평생교육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부족한 지식을 보완하는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고, 사회와 다시 연결되며,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성장의 과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청년에게는 미래를 준비하는 힘이 되고, 중장년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며, 지역사회에는 함께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배움의 기회에서 소외되어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교육을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찾지 못해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기도 한다. 특히 경계선지능인을 비롯한 느린학습자는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도 자신의 특성과 속도에 맞는 교육을 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평생교육은 모두에게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특성에 맞는 배움의 기회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현장에서 평생교육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지역마다 필요한 교육의 모습이 다르다는 점이다. 평생교육은 정해진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변화와 요구를 함께 고민하고, 지역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공공 평생교육기관과 협력하여 시민교수 사업을 운영하며 시민이 교육의 수혜자를 넘어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지역사회와 나누는 교육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시민 한 사람의 경험과 재능이 또 다른 시민의 배움으로 이어질 때 평생교육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지역사회의 자산이 된다. 또한, 경계선지능인 진로교육을 비롯해 보호자 특강과 교육담당자 대상 교육 등 다양한 평생교육 시범사업을 운영하며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교육 의제를 고민해 왔다. 경계선지능인의 자립은 당사자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자신의 적성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진로교육, 자녀를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보호자 교육, 그리고 현장에서 적절한 지원 방법을 고민하는 교육담당자의 역할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제과·제빵, 플로리스트, 주얼리 제작 등 직무 중심 교육은 참여자들에게 단순한 기술 습득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스스로 만든 결과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며,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보호자 특강은 자녀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시간이 되었고, 교육담당자 교육은 지역사회가 함께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생교육은 한 사람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까지 함께 성장시키는 과정임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평생교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다양한 계층이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하며, 시민 모두가 배우고 가르치는 주체가 되는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평생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배움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은 지역사회를 변화시킨다. 평생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지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적 투자이다. 누구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지역사회, 그리고 배움을 통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평생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가치이며 앞으로도 함께 만들어 가고 싶은 미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취업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직장 적응을 지원하는 사후관리와 재직자 성장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
[전재학의 교육칼럼] EBS 《위대한 수업》이 던지는 교육적 효과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늘날 대한민국 가정의 거실과 아이들의 방 안 풍경을 잠시 가만히 들여다보자.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손바닥 크기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15초짜리 숏폼 영상이 끊임없이 넘어가고, 알록달록한 자극과 도파민 폭탄이 아이들의 뇌를 실시간으로 마비시키고 있다. 그뿐이랴. 자극적인 자막과 무의미한 웃음이 범람하는 TV 매체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매 순간 더 강렬한 감각적 자극을 찾아 헤매는 어른과 아이들에게, 과연 방송 매체는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절망적인 매체 환경의 사막 한가운데서 마치 오아시스처럼 빛나는 프로그램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EBS1의 'EBS 위대한 수업, Great Minds'(이하 '위대한 수업')이다. 만약 누군가 “현재 대한민국 TV 매체 중 미래 세대에게 가장 교육적 의미와 효과가 탁월한 프로그램이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교양 프로그램을 넘어, 인류가 축적해 온 지혜의 정수를 안방극장에 직배송해 주는 거대한 ‘지적 축제’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지성 복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BS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공동 기획한 '위대한 수업'은 격이 다른 클래스로 출연진 라인업을 보고 있으면 입이 떡 벌어진다. 리처드 도킨스, 마이클 샌델, 유발 하라리, 슬라보예 지젝, 주디스 버틀러, 폴 크루그먼 등 세계적인 사상가, 과학자, 경제학자, 예술가들이 줄지어 출연한다. 이름만 들어도 대학 도서관 깊숙한 곳에 꽂힌 두꺼운 전공 서적이 떠오르는 이 거장들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국의 미래 세대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다. 이 프로그램의 진가는 지식의 ‘눈높이 배송’에 있다. 세계적 지성들이 자신의 평생 연구 업적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고 직관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을 아우르는 이 명강의들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등등 수많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숏폼 영상의 파도 속에서 산산조각 난 아이들의 집중력을 다시 묶어 세우고, 깊은 사고의 호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강력한 지적 인력(引力, Gravity)을 발휘하는 것이다. '위대한 수업'이 지닌 교육적 잠재력을 200%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시청 방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획기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리추얼(Ritual)이 결합되어야 한다. 첫째, ‘단 하나의 반론’ 던지기로 석학과 맞짱 뜨는 질문 시합이 필요하다. 이제는 방송을 본 뒤 아이들에게 요약정리를 시키는 고문 아닌 고문을 중단시켜야 한다. 대신 “오늘 강연자의 말 중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들거나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를 찾아 석학에게 반박하는 질문을 쓰라”는 미션을 줄 필요가 있다. 둘째, ‘10분 가상 난상 토론’으로 교실과 거실을 소크라테스의 학당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학교 교실이나 가정에서 방송 시청 후 딱 10분간 ‘가상 토론회’를 열어 본다. “네가 오늘 나온 마이클 샌델 교수라면 정의란 무엇이라고 답할래?”라는 질문 하나가 아이를 수동적 시청자에서 능동적 질문의 주체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지적 영웅의 ‘디지털 스크랩북’ 만들기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포토 카드를 모으듯, 아이가 감명 깊게 본 석학의 핵심 명언과 자신의 생각을 적은 ‘지성 카드’를 디지털이나 노트에 수집하게 한다. 이는 지식을 점수로 환산하는 차가운 입시 도구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멋진 지적 유산’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감성적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당장이라도 아이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가만히 내려놓게 하고 거실 TV 채널을 틀어보자. 그리고 세계의 거장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앞에 아이와 함께 앉아보자. 아이가 스크린 속 석학의 눈빛에서 호기심의 불꽃을 발견하고 “엄마, 저 사람은 왜 저런 생각을 했을까?”라고 물어오는 순간, 대한민국 교육을 바꿀 위대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김홍제의 목요칼럼] 학교의 목적을 다시 묻다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학교 가야지!” 어린 시절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들었던 말이다.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스스로 묻지 않았다.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가니까 나도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학생을 위해 학교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는 시대마다 국가의 필요, 산업의 요구, 대학입시의 질서에 맞추어 모습을 바꾸어왔다. 학교는 근대국가가 만든 가장 성공적인 제도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가 여전히 미래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배움의 공간인지, 아니면 오래된 운영체계를 관성처럼 반복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학교는 아직도 19세기 산업사회의 공장과 너무 닮아있다. 같은 시간에 등교하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내용을 배우고, 같은 시험을 치르고, 순서대로 평가받는다. 아이들의 삶은 더 이상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위에 있지 않다. 학교는 시대의 요구에 충실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 수단이 목적을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명이 쇠퇴하는 징후 가운데 하나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제도는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된다. 학교도 달라져야 한다. 학교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가. 대학 시험은 배움을 돕기 위한 도구였지만 시험이 교육이 되었다. 성적은 성장의 기록이어야 했지만 인간의 가능성을 재는 잣대가 되었다. 대학은 교육의 한 과정이어야 하지만 대학입시는 학교교육의 종착점이 되었다.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5·31 교육개혁이 있었다. 교육개혁위원회는 공급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획일적 교육에서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으로, 통제에서 자율과 책무성으로 교육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 뒤로도 많은 교육개혁과 교육과정 개편이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묻는다. 왜 교육은 개혁을 거듭하면서도 입시의 벽을 넘지 못하는가. 제도를 고치면서도 교육의 목적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 인재를 길러야 한다. 맞는 말이다. 대학도 좋은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학교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학생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올바로 답하지 않고 평가 제도만 바꾸는 것은 체온계를 바꾸면서 열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쓸모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을 할 때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런 사회가 결국 국가의 진정한 힘이 된다. 교육이 가야 할 길도,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도 그 순서에서 시작된다. 순리를 역주행하는 위험한 질주에서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제 내려와야 한다. 학교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기억하는 것. 우리 교육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왜 존재하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실시간 기획·연재 기사
-
-
[구본희 반려詩選] 약손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약손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투박한 손마디가 마른 배를 더듬는다 “엄마 손은 약손” 낮은 주문에 통증은 잠들고 눈을 뜨면 아픔은 먼 데로 물러나 있다 지금 우리는 앓고 있다 서로의 상처를 할퀴는 시대 조건 없이 덮어 줄 그 손길이 유난히 그립다 그 손 끝에서 시작될 평온한 하루를 다시 기다려 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약손
-
-
[오피니언리더스] 최종원 학교법인 건국학원 기획관리실장…교육 관점에서 본 지방의원의 역할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 주변의 안전, 통학로의 환경, 돌봄과 방과후 체계, 청소년의 문화·체육 공간, 평생교육 인프라까지 아이들의 성장은 지역의 선택과 행정의 방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이 지점에서 지방의원의 역할은 단순한 예산 심의나 조례 제정을 넘어선다. 지방의원은 곧 지역 교육의 설계자이자 조정자다. 사하처럼 학교와 주거, 산업이 맞닿아 있는 지역일수록 그 책임은 더욱 무겁다. 학부모의 불안은 교문 앞에서 시작되고, 아이들의 하루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지역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지방의원에게 요구되는 자질 역시 분명하다. 교육 현장을 이해하는 감수성, 행정 구조를 읽는 전문성, 그리고 사람의 성장을 우선에 두는 태도다. 교육 관점에서 본 지방의원상에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현장을 아는 사람이다. 학교의 사정과 학부모의 목소리를 ‘자료’가 아닌 ‘경험’으로 이해해야 통학 안전, 교육 환경 개선, 돌봄 연계와 같은 생활 밀착형 정책이 가능하다. 둘째,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교육청과 지자체, 학교와 지역 기관 사이의 칸막이를 낮추는 역할은 지방의원의 핵심 책무다. 제도와 예산을 아이들의 하루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지속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교육은 단기간의 성과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며, 꾸준히 책임지고 지켜보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준 속에서 지역에서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 최종원 시의원 출마예정자다. 그는 교육을 하나의 정책 분야로 보기보다, ‘사람을 키우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시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육과 행정, 국제 현장을 두루 경험했지만, 이를 앞세우기보다는 지역의 일상과 학교 주변의 작은 문제부터 살피는 태도가 눈에 띈다. 지방의원이 교육을 대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행사 중심의 접근’이다. 사진이 남는 정책보다 아이들의 생활이 실제로 바뀌는 정책이 중요하다. 학교 앞 안전한 횡단보도 하나, 방과후 공백을 메우는 작은 연계 하나가 아이와 학부모의 삶을 바꾼다. 이러한 변화는 현장을 존중하는 정치에서 비롯된다.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자, 현재에 대한 책임이다. 지방의원은 교육청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이 교육을 제대로 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오가고, 배움이 지역으로 확장되며, 청년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 그 출발점에 지방의원의 역할이 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교육연합신문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기준도 여기에 있다. 누가 더 많은 공약을 내놓는가가 아니라, 누가 교육의 언어로 지역을 이해하는가이다. 지방의원의 한 선택이 아이들의 10년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지역 정치는 비로소 교육이 된다. ▣ 최종원 ◇ 사동초·사하중학교 졸업(부산 사하구) ◇ 부산국제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 부산대학교 금융대학원 석사 졸업 ◇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전공 석사과정 ◇ 학교법인 건국학원 법인 기획관리실장 ◇ 2026 사하구자원봉사센터 우수자원봉사자 ◇ 사단법인 사하구 당리동청년회 상임부회장 ◇ 사단법인 한국산림보호협회 사하구지회 지회장 ◇ 부산광역시 레슬링협회 이사 ◇ 사하구 아이파크 U12 유소녀 축구단 단장 ◇ 한미연합회(AKUS) 부산광역시지부 청년위원장
-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
[오피니언리더스] 최종원 학교법인 건국학원 기획관리실장…교육 관점에서 본 지방의원의 역할
-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Living Korean folk traditions: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With the start of the new year, it is the perfect time to visit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to mark the passage of time and new beginnings. Located on the grounds of Gyeongbokgung Palace in Seoul, the museum is one of Korea's many heritage sites, with its historical artifacts reflecting the lives of traditional Korean people. The museum was established to preserve and present the everyday lives of ordinary Koreans throughout history. Unlike other sites centered on royal courts or political events, the National Folk Museum focuses on folk traditions, customs, and market culture that shaped daily life across centuries. The museum was officially founded in 1945, following Korea’s liberation. It strived to reflect a broader effort to reclaim and protect national identity after years of colonial rule. It went through numerous changes in terms of name and location from 1945 to 1993, finally ending up as the museum it is today. Now, within the grounds of Gyeongbokgung Palace, the museum symbolically connects the lives of common people with Korea’s royal and political past. Its collections follow Korean society from prehistoric times through the Joseon Dynasty and even the modern days, highlighting development in traditions in agriculture, family life, religion, and seasonal rituals. Through its artifacts, reconstructions, and folk objects, the museum situates Korean heritage not only in historical events but also in lived experiences. The permanent exhibitions include: “History of the Korean People”, the “Korean Way of Life”, and the “Life Cycle of Koreans”. The “History of the Korean People” includes artifacts from daily life from prehistoric times all the way through the Joseon Dynasty. Moreover, the “Korean Way of Life” section highlights food, clothing, and tools, while the “Life Cycle of Koreans” exhibit features birth, coming of age, marriage, aging, and death throughout history.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brings traditional Korean life vividly into the present. By preserving everyday customs, artifacts, and rituals, the museum itself celebrates the richness of Korea’s cultural heritage beyond royal history. For visitors all around, it is both an educational journey and a reminder of Korea’s enduring traditions. Whether exploring its exhibits or strolling through its outdoor replica of a folk village, the museum connects the past and present, making Korea’s folk heritage accessible for all generations.
-
-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Living Korean folk traditions: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
-
[전재학의 교육칼럼] 실존주의 철학사상이 다시금 우리의 교실에 던지는 질문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는 한때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방식에 반대해 수상을 거부한 적이 있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장 폴 사르트르가 지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상징적인 문장이다. 이 문장은 철학사의 명제이자, 오늘의 교육을 향한 질문이다. 인간은 어떤 ‘정해진 틀’로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급진적인 자유의 철학은 성취와 효율을 중시해 온 대한민국 사회, 특히 교육 현장에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학생의 본질을 성적으로 규정해 왔다. 등수와 점수는 학생을 설명하는 가장 간편한 언어였고, 대학 서열은 가능성의 지도를 대신했다. 그 결과 학생은 ‘아직 무엇이 될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 ‘이미 평가된 존재’로 취급되곤 했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교육이 가장 경계해야 할 오류라 할 수 있다. 왜냐면 학생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형성해 가는 과정 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롭도록 단죄된 존재”라고 말했다. 이는 선택하지 않을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이 명제는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은 진로를 선택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대신 정해 주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밀려간다. 이를 반영하듯이 한때 우리의 청소년들은 대학에 진학하고서도 부모가 교수에게 학점을 따지며 관리하고, 심지어 군대에 가서도 지휘관에게 훈련 및 모든 과정을 밝히길 요구하며, 취업에도 일일이 나서 관여하는 등 매사 개입하고 지시하는 등 믿기지 않는 상황들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비록 일부라 하더라도 우리의 청소년들이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의 책임을 배울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의 역할은 명확하다. 교육은 정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선택을 사유하고 그 결과를 성찰하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 프로젝트 수업에서의 실패, 토론 수업에서의 소수 의견, 진로 탐색 과정에서의 흔들림은 제거해야 할 잡음이 아니라 교육의 핵심 장면이다. 그 경험 속에서 학생은 “나는 내가 한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라는 감각과 책임의식을 얻게 된다. 잠시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어느 고등학생이 안정적인 진학 경로 대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탐구 활동을 선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선택이 당장 높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이미 중요한 배움을 얻었다. 즉,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판단으로 삶의 방향을 고민해 보았다는 사실이다. 실존주의적 교육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를 지도해야 할 교사 역시 변화가 요구된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도록 돕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다른 선택은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수업 기법을 넘어, 학생을 존재의 주체로 존중하는 태도다. 사르트르는 개인의 선택이 곧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라고 보았다. 이는 우리 교육의 목표인 민주시민 양성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자신의 결정이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는 학생은 규칙에 의거 길들여진 존재가 아니라, 책임 있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한다. 교육은 결국 인간을 다루는 일이다. 점수와 결과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실존주의는 다시 오늘의 우리 교실에 이렇게 묻고 있다. “이 학생은 어떤 점수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이 학생은 어떤 선택을 통해 자기 자신이 되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 교육은 다시 휴머니즘을 간직한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실존주의 철학사상이 다시금 우리의 교실에 던지는 질문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정치, ‘정(正)’을 잃고 방황하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정치 뉴스는 피곤하다. 규범은 무너지고, 도덕은 잊혔으며, 정직과 원칙은 자취를 감췄다. 정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상실했고, 정당은 권력을 쫓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시민들의 냉소가 깊어지는 이유다. 정치인은 마치 배가 산으로 가듯 제 갈 길을 잃었다. 비전도, 원칙도 없이 권력욕만 쫓는 현실은 참담하다. 대통령 후보에게 우리가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은 단 두 가지다. 첫째,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둘째,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가 내세우는 공약과 화려한 말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정치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을, 오래된 갑골문 속 글자들이 우리에게 들려준다. □ ‘정(正)’ - 똑바로 가는 발걸음 ‘정(正)’의 갑골문을 보면 놀랍게도 한 사람의 발자국 모양에서 출발한다. 목표를 향해 “곧게 나아가는 발걸음”이 바로 ‘정’의 원형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걷는 동작을 넘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가치가 담겼다. ([그림 14] ‘正’ 참조) 또 다른 맥락에서는 회초리를 든 모습도 함께 들어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선 이를 바르게 돌려세우는 의미다. 따라서 ‘정’은 올곧음과 추진력을 동시에 품은 글자였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다. 방향을 바로 잡아주고, 추진력을 실어 사회를 앞으로 끌고 가는 것. 목표 없는 정치는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추진력 없는 정치는 제도만 남기고 무너진다. □ ‘민(民)’ - 눈을 깔아야 했던 사람들 그렇다면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갑골문에서 ‘민(民)’은 눈을 아래로 내리깐 사람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그림 14] ‘民’ 참조) 고대 사회에서 신분이 낮은 백성은 권력자 앞에서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래서 ‘민’은 단순한 ‘사람(人)’이 아니라, 권력 앞에서 눈을 깔아야 했던 낮은 신분의 백성을 가리켰다. 그래서 우리는 ‘인민(人民)’이라는 표현을 쓴다. 권력자와 구별되는 보통 사람들, 즉 정치의 대상이자 동시에 정치의 주체가 되는 존재다. 정치가 바로 서려면, 권력자는 백성을 위하는 ‘인의(仁義)’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 ‘관(官)’ - 집 안의 엉덩이 ‘관(官)’의 기원은 조금 익살스럽다. 갑골문 속 관(官)은 집 모양 안에 놓인 엉덩이 그림에서 시작했다. 이는 우두머리가 집 안에 앉아 지방을 다스리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14 ]‘官’ 참조) 점차 ‘관’은 벼슬아치, 나아가 행정기관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본질은 여전히 같다. ‘관료’는 집 안에 앉아 명령만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을 돌보고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관료제는 때때로 집 안에서만 권력을 행사하는, 폐쇄적 ‘엉덩이’로 변질되곤 한다. □ ‘군(軍)’ - 병거를 둘러싼 병사들의 집단 ‘군(軍)’은 병거를 중심으로 둘러선 병사의 무리에서 유래했다. 전쟁의 현장에서 집단적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이후 군사, 군대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그림 14] ‘軍’ 참조) 정치에서 군대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다. 백성을 보호하는 방패이자, 때로는 권력을 지키는 칼이 되었기 때문이다. ‘군’의 기원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군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백성을 위한 병사 집단이었는지, 권력자를 위한 무력 장치였는지. 정치가 ‘정(正)’을 잃으면 군대 또한 본래의 역할을 잊는다. □ 정치의 본질 - 목표, 추진력, 그리고 관계 이처럼 ‘정(正)’, ‘민(民)’, ‘관(官)’, ‘군(軍)’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정치의 뼈대를 구성하는 개념들이다. 정치란 목표를 향해 똑바로 가게 하고(正), 잘못된 길을 고쳐주는 추진력을 가져야 한다. 그 대상은 눈을 깔며 살아야 했던 보통 백성들(民)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집단은 행정을 맡은 관료(官)와 공동체를 지키는 군대(軍)다. 네 가지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정치가 바로 선다. 오늘의 정치는 이 균형을 잃었다. 백성을 외면하고, 관료는 책임 대신 기득권을 지키며, 군은 정치화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정치 자체가 ‘정(正)’의 본질을 잃었다. 목표와 추진력이 없는 정치가 백성과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수 있겠는가. □ 맺으며 - 다시, 정치를 묻다 결국 정치에서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복잡하지 않다.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정치인 누구에게나 던질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왜 권력을 잡으려 하는가?” “그 권력을 잡아 무엇을 하려 하는가?” 갑골문 속 오래된 글자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정치란 곧게 나아가는 발걸음이며, 잘못된 길을 고쳐주는 힘이다. 백성을 주인으로 삼고, 관료와 군대는 그 뒷받침이어야 한다. 정치가 이 본질을 잃는 순간, 사회는 방향을 잃고 흔들린다. 오늘 우리의 정치는 다시 ‘정(正)’을 배워야 한다. 똑바로 가는 발걸음, 회초리로 바로잡는 힘,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을 향한 마음. 고대 갑골문이 새겨진 글자 속에서, 정치가 되찾아야 할 길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정치, ‘정(正)’을 잃고 방황하다
-
-
[오피니언리더스] 이상호 前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부산진구의 다음 10년을 설계"
- [교육연합신문=정윤영 기자] 부산진구청장 출마를 결심한 이상호 前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은 부산진구의 미래 해법으로 ‘교육 중심 도시 전략’을 제시했다. 그의 구정 비전은 교육을 행정의 한 분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과 문화, 지역경제를 함께 움직이는 도시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구정 담론과 결을 달리한다. 부산진구는 국제중학교와 국제고등학교, 과학영재학교, 글로벌빌리지, 수학문화관 등 부산 최고 수준의 교육 인프라가 밀집된 지역이다. 이상호 前행정관은 이를 “부산진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시 자산”으로 평가한다. 그는 “이 교육 시설들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글로벌 인재와 과학 인재를 동시에 키울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라며, “이제는 교육 인프라를 도시 전략의 핵심 축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구상하는 교육 중심 도시는 학교와 지역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다. 국제고 학생들의 관광 통역 활동,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의 지역 환경 프로젝트 참여, 전통시장과 연계된 외국인 체험 프로그램 등 교육 활동이 교실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되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이 곧 지역 참여와 도시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교육과 연계한 관광 전략도 주목된다. 서면 메디컬스트리트, 서면·부전시장, 부산시민공원, 삼광사, 전포 카페거리 등 부산진구는 이미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집중되는 도심이다. 이상호 前행정관은 “관광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원을 하나의 이야기와 동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의료관광과 전통시장 체험, 시민공원 힐링 코스, 사찰 문화, 전포 카페거리 야간 관광을 하나로 묶은 ‘부산진구형 관광 루트’를 통해 교육·체험·관광이 결합된 도시 모델을 제시했다. 문화 정책 역시 교육과의 연계를 중심에 둔다. 부산국악원과 콘서트홀, 시민공원 등 기존 문화시설을 학생 체험형 문화교육, 외국인 대상 상설 전통문화 프로그램, 시민 참여형 거리 공연과 축제로 확장해 문화가 일상 속 배움과 경험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문화가 일부 계층의 소비 대상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삶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상호 前행정관의 비전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실행 가능한 행정’에 대한 강조다. 그는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관광·문화 정책을 부서별로 나누는 방식에서 벗어나, 통합 기획과 연계 예산, 성과 공유 체계로 운영하는 ‘구정 통합 설계 방식’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정책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그는 부산진구를 “배움이 곧 기회가 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다. 학생과 청년들이 지역 활동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 경험이 진로와 취업, 창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교육 정책이 인구 정책이자 지역 지속성 전략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상호 前행정관은 자신을 ‘행정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는 “부산진구는 이미 충분한 교육 자산을 갖춘 도시”라며, “이제 필요한 것은 관리가 아니라 설계다. 교육을 중심으로 관광과 문화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부산진구의 다음 10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부산진구청장 선거는 단순한 인물 선택을 넘어, 교육을 도시 성장의 중심에 둘 것인지, 그리고 그 교육이 지역의 미래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를 묻는 선택이 될 전망이다. ▣ 이상호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 前대통령비서실 행정관(경제수석실·일자리수석실) ◇ 前부산광역시 정무보좌관 ◇ 제22대 부산진구(을)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 ◇ 前더불어민주당부산시당 시정평가대안특위 부위원장 ◇ 국립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정치언론 석사 ◇ 부산 양정초·동의중·양정고 졸업 ◇ 경남 사천 출생·부산진구 43년 거주
-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
[오피니언리더스] 이상호 前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부산진구의 다음 10년을 설계"
-
-
[오피니언리더스] 부산연제구의회 차성민 의원, 생명 나눔으로 증명한 아름다운 열정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우리 사회는 늘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를 묻는다. 성과와 숫자는 판단의 기준이 되고, 말과 약속은 종종 행동보다 앞선다. 그러나 어떤 숫자는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태도와 삶의 방향을 말해준다. 136. 이 숫자는 단순한 횟수가 아니다. 설명보다 깊고, 말보다 분명한 메시지다. 차성민 의원이 또 한 번 헌혈의자에 앉았다. 지난 1월 21일 오전 9시 30분, 전혈 400cc. 혈액 비중 13.6, 소요 시간 4분 10초. 짧은 시간 안에 끝난 헌혈이었지만, 그 몇 분의 시간 안에는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선택과 결심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헌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는 날도 있고, 일정이 겹치는 날도 있으며, 마음이 느슨해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능한 날이면 헌혈을 선택해 왔다. 특별한 각오를 다지기보다, 해야 할 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그래서 그의 헌혈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이다. 그는 헌혈을 마친 뒤 담담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빵도 주고, 음료도 주니 좋네요. 쪼매 건강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소박한 말 속에는 헌혈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포장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누군가의 박수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바로 그 점에서 그의 헌혈은 더 깊은 울림을 갖는다. 차 의원의 헌혈에는 구의원다운 열정과 따뜻한 온정이 함께 스며 있다. 그 시간만큼은 직함도, 정치적 역할도 내려놓는다. 오직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떠올린다. 혈액이 전달될 누군가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팔을 내미는 이 행위는, 제도보다 앞서는 인간적인 연대이며 공동체를 향한 가장 직접적인 배려다. 정치는 종종 말의 영역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지역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의 신뢰는 결국 삶의 태도와 반복된 선택에서 쌓인다. 주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손이, 동시에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수십 년간 이어왔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정책 이전의 이야기이며, 정치 이전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아름다운 열정은 요란하지 않다. 앞세우지 않고, 설명을 강요하지 않으며, 묵묵히 이어진다. 차성민 의원의 136번째 헌혈은 하나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조용한 메시지다. 이 사회는 아직 서로를 살피는 마음으로 버텨가고 있으며, 그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
[오피니언리더스] 부산연제구의회 차성민 의원, 생명 나눔으로 증명한 아름다운 열정
-
-
[김홍제의 목요칼럼] 성심당 빵집이 던지는 질문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내 고향은 대전이다. 초,중,고 학교를 대전에서 다녔다. 대전은 유명한 ‘노잼 도시’였다. 그런데 새롭게 관광명소가 된 곳이 있다. 역사적인 사찰도 아니고 단풍이 고운 명산도 아니다. 빵집이다. 성심당 빵을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주변 칼국수 가게까지 사람이 늘더니 대전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주말과 평일 가리지 않고 대전 중구 은행동 성심당 본점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쟁반 가득 빵을 골라 담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궁금했다.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하는 성심당의 힘은 무엇인가. 빵에 대한 진심, 합리적 가격, 약자를 위한 기부 등 성심당이 실천하는 '착한 기업'의 가치가 인기의 비결이라고 한다. 과연 성심당은 어떻게 70년 동안을 이어오고 있을까. 우리가 배울 점은 없는가. 학교도 이렇게 학생이 오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성심당은 빵집의 본질이 ‘빵의 맛’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본질에 대한 집요함이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 교육의 본질은 입시 성과나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배움이 실제로 일어나는 교실이다. 보여주기식 정책, 단기 성과, 수치화된 결과에 몰두하면 정작 수업의 질과 교사의 전문성이라는 핵심은 뒤로 미뤄진다. 성심당이 반죽과 오븐 앞을 떠나지 않듯 교육 역시 교실과 아이들 곁을 떠나면 안 된다. 성심당은 빵을 통해 말한다. 교육도 그래야 한다. 성심당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빵집이 되지 않았다. 대신 ‘대전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빵집’으로 남았다. 모든 학교가 똑같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똑같은 성취 기준만을 좇는 현실에서 학교는 특색이 없다. 학교는 지역의 역사와 삶, 아이들의 현실을 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과거에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심당은 등록상표 43건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의 입맛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부단한 연구와 상품개발을 통해 입맛을 선도하는 빵집이라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원칙이 있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과거의 틀을 고집하는 분야에서 성장은 없다. 성심당은 1956년 문을 연 이래 복지단체에 빵 기부, 수억 원 넘는 장학금, 미혼모와 신생아를 위한 병원 진료비 기탁 등을 해왔다고 한다. 법인 설립 뒤 20여 년 동안 펼쳐온 기부활동은 모두 12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성심당의 인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상승장만 가는 주식이 없듯이 언젠가는 내리막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빵을 만들어서 한 지역을 관광명소로 만드는 일은 드문 일이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배울 점이 있다. 성심당 임선 이사가 강연에서 밝힌 성심당 성공 공식은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고객이 느끼는 가치에 집중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한 적이 있다. 오늘 학교는 과연 본질에 충실하면서 따뜻한 가치를 존중하는가. 대전의 작은 빵집이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다. 성심당은 묻는다. “우리는 빵을 통해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가치가 있다. 오늘날 학교는 과연 무슨 가치로 교육을 하고 있는가”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성심당 빵집이 던지는 질문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자가 들려주는 오래된 윤리학 - ‘인(仁)’과 ‘의(義)’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흔히 공자를 떠올리면 “인(仁)”이라는 글자를 함께 떠올린다. 공자가 평생토록 강조한 핵심 덕목이자, 동아시아 유교 전통의 근본 기둥이다. 맹자 역시 공자의 계보 위에서 ‘인의예지’ 네 가지를 세우며, 그 가운데 특히 ‘의(義)’를 인(仁)과 나란히 놓았다. 그래서 “어진 마음과 의로운 행동”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윤리의 상징처럼 쓰인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 과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인”과 “의”라는 글자의 의미는 본래부터 그랬을까? 대부분의 교과서 해설은 한자의 모양을 단순히 분석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仁)은 사람(人)과 둘(二)의 결합이다. 두 사람이 마주해 있는 모양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짊’이 생겼다.” 얼핏 그럴듯하다. “의(義)” 역시 ‘양(羊, 희생 제물)’과 ‘나(我)’가 합쳐져,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바친다는 뜻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는 모두 지금의 한자 모양을 근거로 한 후대적 추측에 가깝다. 실제로 은자(殷字)를 들여다보면, 인(仁)과 의(義)의 뿌리는 훨씬 더 생생하고 구체적인 그림에서 시작한다. 글자가 태어나던 순간, 고대 동이족의 삶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 ‘인(仁)’ -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사람 은자에 나타난 ‘인’의 초기 형태를 보자. 얼핏 보면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다. 사람의 정강이 부분에 난 다리털, 그리고 심장 모양이 결합된 형상이다. 다리털은 많음을 상징했다. 그래서 여기서는 ‘천(千)’, 곧 무수히 많다는 뜻으로 쓰였다. 심장은 말 그대로 마음, 정서, 동정심을 나타낸다. 이 두 요소를 합쳐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단순히 ‘사람 두 명’이 아니라, 무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품는 너그러움과 연민, 곧 ‘어짐’이 글자의 기원인 셈이다.([그림 13] ‘仁’ 참조) 이후 갑골문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의미가 더 확장된다. ‘천 개의 마음’ 대신에 ‘윗 상(上)’ 기호가 들어가, 윗사람이 백성을 향해 어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발전한다. 다시 말해, 임금이 여러 백성을 향해 자애로운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정치적 함의가 덧붙여진 것이다. 즉, 인(仁)은 공자보다 수천 년 앞서 이미 동이족 사회에서 윤리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자가 새롭게 창안한 덕목이 아니라, 문자 속에서 오랫동안 숙성된 사유의 계승이었다. □ ‘의(義)’ - 정의를 세우는 무기 맹자가 강조한 또 다른 핵심은 ‘의’였다. 흔히 우리는 ‘의’를 추상적 개념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은자 속 ‘의’는 매우 실천적이고 구체적이다. 은자를 보면, ‘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윗부분은 ‘수양’이라 불리는, 집단 내 권위와 리더십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아래는 ‘戈(과)’라는 창 모양, 당시 특수한 무기였다. 이 둘을 합쳐 ‘의’는 “집단 내 질서를 지키고 옳은 일을 위해 무력이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뜻했다. 다시 말해, 의(義)는 단순히 마음속의 정의감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무기를 들고라도 정의를 실천하는 행위였다. 사회 질서를 세우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적극적 윤리의 실천이 바로 ‘의’의 뿌리였던 것이다.([그림 13] ‘義’ 참조) □ 동이족이 남긴 철학적 사유 이처럼 은자 속 ‘인(仁)’과 ‘의(義)’는 사람과 사회, 마음과 행동의 결합을 보여준다.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어진 사람’, ‘질서를 세우기 위해 무기까지 드는 정의’는 추상적 덕목을 단순한 도덕 규범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 표현한 것이다. 이는 흥미롭게도 후대 서양 철학자들이 논한 사회계약론이나 정의론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 권력과 정의의 균형, 개인의 도덕성과 집단 질서의 유지라는 질문은 이미 수천 년 전 문자 속에서 제기되고 있었던 셈이다. 공자와 맹자의 사유는 이러한 오랜 축적 위에서 다시 체계화된 것이다. □ 오늘의 의미 - 인의의 정신은 살아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에서 ‘인’과 ‘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민과 배려를 가리킨다. 자연재해 때 서로 돕는 손길,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 나와 다른 존재를 향한 공감은 모두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인간의 실천이다. ‘의’는 억압과 불의에 맞서는 용기로 드러난다. 역사 속 의병 활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현대 사회에서 불의한 제도에 맞서는 집단적 저항도 그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 정신, 그것이 바로 의(義)다. 은자 연구는 단순히 글자의 원형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 동이족이 남긴 윤리학의 맥락을 오늘에 불러오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인의예지”라고 말하는 개념은 수천 년 전 문자 속에서 이미 실천적 윤리 개념으로 형상화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 맺으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인(仁)과 의(義)의 해설은 대체로 지금의 글자 모양을 근거로 한 후대적 추측이다. 그러나 은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仁)은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어진 사람’, 의(義)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무기와 권위를 동원하는 실천’이었다. 이 발견은 단순히 학문적 흥밋거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동아시아 사상의 뿌리가 단순한 도덕 훈계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장면에서 출발했음을 일깨운다. 다시 말해, ‘인의예지’는 교과서의 추상적 표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회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 규범이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불평등, 불공정, 분열의 문제 앞에서 “어진 마음”과 “의로운 실천”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결코 낡은 구호가 아니다. 은자가 전해주는 오래된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천 개의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가?, 당신은 옳음을 위해 무기를 들 용기를 지니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자가 들려주는 오래된 윤리학 - ‘인(仁)’과 ‘의(義)’
-
-
[오피니언리더스] 김광명 부산시의원이 보여주는 지방자치의 기준…"지역을 먼저 돌보는 정치"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지방자치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주민의 일상에서 불편을 발견하고, 그 불편을 제도와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책임감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부산광역시의회 김광명 의원의 의정 활동은 지방정치가 지향해야 할 한 가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지역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정치’다. 김광명 의원은 의정 현장에서 줄곧 같은 원칙을 강조해 왔다. “정치는 멀리 보기 전에, 내가 맡은 지역의 삶부터 살펴야 합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신념의 표명이 아니라, 그의 의정 활동 전반을 관통하는 실천의 기준이다. 지역 민원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구조를 짚고 행정과 예산, 조례로 연결하려는 접근 방식은 지방의원의 본래 역할에 충실하다. 특히 재난·안전 분야에서의 문제 제기는 김 의원 의정 활동의 중요한 축이다. 그는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화재 대응 역량 강화, 방연 물품 확충, 현장 대응 시스템 점검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사고는 예고 없이 오지만, 대비는 선택의 문제”라는 그의 발언은 재난을 운에 맡기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이는 통계와 보고서가 아닌,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현장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다. 교육과 미래 산업에 대한 시선 또한 종합적이다. 김광명 의원은 “아이들이 살아갈 도시를 준비하지 않는 정치는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교육의 기본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과 함께, 인공지능과 신산업 기반 조성을 통한 지역 경쟁력 강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의 오늘을 돌보는 동시에,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광역의원의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정치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속도’보다 ‘순서’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주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변화를 먼저 생각한다. 화려한 수사보다 현장 점검을 택하고, 일회성 이벤트보다 제도 개선을 선택한다. 그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기록에 남기기보다, 주민의 기억에 남아야 합니다.” 지방의회는 중앙정치의 그림자가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곳이다. 김광명 시의원의 의정 활동은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환기시킨다. 지역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정치, 생활 가까이에서 답을 찾는 정치가 결국 지방자치의 신뢰를 지탱한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의미가 크다. 정치는 결국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 평가는 말이 아니라 삶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시작된다.
-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
[오피니언리더스] 김광명 부산시의원이 보여주는 지방자치의 기준…"지역을 먼저 돌보는 정치"
-
-
[전재학의 교육칼럼]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 멀리 미국의 미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는 지난 1월 6일~9일까지 미국 소비자 가전협회에서 주관하는 ‘CES 2026’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진행되었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 영역까지 넘보는 AI 시대, 올해는 피지컬 AI인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 로봇의 진화된 모습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진 우리의 자랑스런 스타트업 기업들의 AI 시대를 선도하는 모습에 진한 감동과 함께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학생들은 이미 생성형 AI와 함께 글을 쓰고, 문제를 풀며, 진로를 탐색한다. 그러나 정작 학교 교육은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만 머물러 있고, “AI와 함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드시 학생들에게 읽혀야 할 책이 있다. 바로 MIT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의 『라이프 3.0: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미래』이다. 이 책이 AI 시대의 필독서로 등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라이프 3.0』은 기술 사용법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인공지능 이후의 인간 정체성, 윤리, 교육, 민주주의를 다룬 사유의 대표성을 가진 책이기 때문이다. 테그마크는 생명의 진화를 라이프 1.0(본능에 의해 결정되는 생명), 라이프 2.0(학습은 가능하지만 신체와 지능은 스스로 설계할 수 없는 인간), 그리고 라이프 3.0(스스로 지능과 목적을 재설계하는 존재)으로 구분한다. 인공지능은 인류를 라이프 3.0의 문턱에 세운 존재이며, 문제는 “가능한가”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이다. 교육적으로 이 책을 강력히 권장하는 이유는 정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묻는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설정해야 하는가?”, “효율이 최선의 가치가 될 때,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한 철학 담론이 아니라, 교실에서 토론 수업과 프로젝트 학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실제 사례를 들어 본다. 한 고등학교에서 『라이프 3.0』의 일부를 읽고 ‘AI가 교사가 되는 사회’라는 주제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AI 튜터의 장점(개별 맞춤 학습, 공정성)과 한계(공감의 부재, 가치 판단의 문제)를 스스로 분석했다. 이후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AI는 답을 잘 주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깨달음이야말로 AI 시대 교육의 핵심 성취라 할 것이다. 『라이프 3.0』은 교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은 AI가 빠르게 대체할 수 있지만, 가치를 해석하고 책임을 가르치는 일은 인간 교사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학생뿐 아니라 예비 교사, 현직 교사, 교육 정책가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은 더 많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라이프 3.0』은 그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책을 교실로 들여와야 하는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AI를 두려워하지도, 맹목적으로 숭배하지도 않고, 책임 있게 설계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학생들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와 함께 글을 쓰고, 문제를 풀며, 진로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 교육은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만 머물러 있고, “AI와 함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AI 시대에 반드시 읽고 이해할 필요성과 가치가 큰 서사에 눈길을 돌릴 계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각급 학교에서는 독서를 적극 권장하고 활용하여 혁명적인 AI 시대의 흐름과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발전 모습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실용적인 교육을 실시할 것을 기대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
-
[김홍제의 목요칼럼] 새해에 내 안을 단순하고 깨끗하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직원과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에 전화가 왔다.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지인이다. 전화하는 대부분은 부탁을 하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에 부탁을 하는 것이다. 부탁을 듣고 나니 소화가 안 된다. 나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살다 보면 잡다한 고민이 많다. 선택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준다. 무엇을 내가 중요시하는지도 알려 준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나에게 문제를 던져 주는 상대방은 주로 내가 나쁜 사람 역할하기를 원한다. 사료를 먹고서 졸고 있는 개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고 남에게 부탁을 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본능에 충실한 삶이 평안을 준다. 옛날보다 쌀밥과 고기반찬을 더 많이 먹는데도 행복감이 적다. 인간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얕고 넓은 모임이 많아지고 선택은 고민을 낳는다. 청렴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비우는 것이다. 깨끗한 것이다. 욕심이 없는 사람. 가을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 되어보자. 매일 조금씩 버려보자. 법정의 ‘무소유’에서 비움의 철학을 살뜰히 말하지 않았던가. 물건을 버리면 집착이 없어진다. 삶이 불편할 정도로 비워내고 싶다. 현대는 적어서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차고 넘쳐서 병이 되고 있다. 이발을 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고 샤워를 하고 거실에 누워 눈을 감으면 실구름처럼 몸은 가볍고 마음은 평안하다. 담담함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형형색색의 간판이 있는 도시의 거리보다 조용한 오솔길을 걸을 때에 얼마나 영혼이 충만하고 좋았던가.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차곡차곡 빈틈없이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쓸모가 없어진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사람이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도 버리자.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을 보라. 그들은 잠자가 죽자 모두 훌륭하게 자신들의 생활을 잘 꾸려 나갔다. 세상일에서 내가 아니면 망할 것 같은 망상을 버리자. 세상은 내가 아니어도 잘 돌아간다. 자유롭고 싶다면 비우자. 비우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손에 움켜쥔 것을 놓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짐승들은 몸이 아프면 단식을 한다. 자신의 몸을 비운다. 비우는 것이 자연이 가르치는 최상의 치유 방법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잠자던 반려견처럼 자신에게 충실해 보자. 신이나 타인에게 주는 관심을 자기 내면으로 돌려보자. 새해가 되어 많은 성취를 꿈꾸고 체계적인 계획을 구상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겨울나무처럼 중요한 뼈대만 남기고 정리해야 한다. 너무 많은 계획도 욕심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서 내면을 깨끗이 하자. 새해맞이 집안 대청소도 필요하지만 내면의 묵은 때를 벗기는 시간도 필요하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했는지 내 안을 들여다보자. 자기가 아닌 나머지는 버리자. 2026 병오년 말처럼 자유롭게 달리려면 먼저 안장 위 짐을 확 줄이자.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새해에 내 안을 단순하고 깨끗하게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법 속에서 사라진 짐승, 해치(獬豸)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어릴 적 나는 “법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이 굽이쳐도 끝내 바다로 흘러가듯, 법도 억지로 틀을 짜 맞추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과 공평함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법은 종종 불공정했고, 정의와 거리가 멀었다. 법정의 판결이 “옳음”과 “그름”을 나눈다기보다 권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기울어져 있다는 체험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법은 본디 무엇이었을까? 문자학의 눈으로 ‘법(法)’이라는 한자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놀랍게도 오늘의 법이 잃어버린 무언가가 보인다. 갑골문과 금문 속 ‘법’에는 신수(神獸), 곧 해치(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 해치(獬), 옳고 그름을 가르는 짐승 해치는 전설 속 동물이다. 뿔이 하나 달린 짐승인데, 사람 사이에 시비가 벌어지면 반드시 그 가운데 옳은 사람을 알고, 그쪽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반대로 잘못한 자에게는 뿔로 들이받아 징벌을 가했다고도 전한다. 그래서 중국 고대의 재판 이야기를 담은 문헌들에는 해치가 법정 옆에 있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관복에 해치 무늬를 새겨 넣어 “나는 공정하게 판단하겠다”는 다짐을 상징하기도 했다. 갑골문 속의 ‘법’자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水), 해치(獬), 그리고 거(去). 물은 평평히 흐르는 성질, 곧 공평함을 뜻했다. 거는 제거한다는 뜻, 곧 불의와 부정을 없앤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해치는 정의의 화신이었다. 세 요소가 함께 있을 때, 법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신성한 정의를 상징했다. 오늘날 법에 대한 회의적 인식과 달리, 고대의 법은 적어도 문자 속에서는 자연법적·정의론적 기초를 품고 있었던 셈이다. □ 사라진 해치, 남은 법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문자는 단순화되고 통일되었다. 진시황의 문자 정리 과정에서, ‘법’에서 해치가 빠져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法자는 물(水)과 거(去)만 남아 있다.([그림 12] ‘法’ 참조) 이 변화는 단순히 글자의 획수가 줄어든 문제가 아니다. 법이라는 개념에서 정의의 상징이 지워진 것이다. 이제 법은 해치의 뿔 같은 초월적 기준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규칙을 뜻하게 되었다. 법이 곧 정의라는 자연스러운 연상이 약해지고, ‘성문법’과 ‘실정법’이라는 제도적 의미가 강화된 것이다. 우리가 법정을 떠올릴 때, 판사 뒤에 앉아 있는 해치 대신 국가의 문장(紋章)이나 국기가 걸려 있는 모습은 이 전환의 문화적 결과다. □ ‘율(律)’이라는 또 다른 길 법과 짝을 이루는 글자로 ‘율(律)’이 있다. 이 글자 역시 흥미롭다. 갑골문을 보면, 손이 붓을 들고 길(道)에 무언가를 적는 형상이다. 곧 “길을 글로 적는다”, 다시 말해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문서로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그림 12] ‘律’ 참조) 따라서 ‘율’은 처음부터 성문법, 제정된 규칙의 세계를 가리켰다. 반면 ‘법’은 본디 자연스러운 정의, 해치가 상징하는 옳고 그름의 감각을 담았다. 그렇다면 고대 사회에서 법과 율은 서로 보완적 관계였다. 하나는 정의의 원칙, 다른 하나는 그 원칙을 글로 고정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법 체계는 ‘율’, 곧 성문화된 규범 쪽으로 훨씬 기울어져 있다. 법조문이 두껍게 쌓이고, 조항이 무수히 늘어날수록, 해치의 자리는 더욱 희미해졌다. □ 이름의 흔적 - ‘해태’는 왜 해치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음운학적 문제도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해치를 ‘해태’라고 부른다. 마치 잘못된 이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대의 운서(韻書)와 사전 기록을 보면, 獬(해)의 발음은 시대에 따라 [태], [해], [치] 등으로 달라졌다. 즉 [해태]라는 발음은 전승 과정에서 나온 오류가 아니라, 역사적 음운 변화의 산물이었다. 서울 광화문 앞의 돌짐승 ‘해태’는 그래서 결코 잘못된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 변화를 품은 문화사의 흔적이라 할 만하다. □ 자연법과 실정법 사이에서 문자학적 분석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해치가 포함된 ‘법’은 자연법적 의미, 곧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초월적 기준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문자에서 해치가 제거되면서, 법은 점점 성문법과 실정법의 세계로만 기울게 되었다. 물론 문자의 단순화는 행정 효율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법이 정의의 상징을 잃어버린 것은 문화적 손실이기도 하다. 이제 법은 권력이 정한 규범을 집행하는 제도적 장치로만 이해되기 쉽다. 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우리의 체감은, 어쩌면 갑골문 속 해치의 부재와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 오늘의 법, 그리고 잃어버린 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법치’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크다. 그러나 그 ‘법치’가 과연 정의를 보장하는지는 늘 의문이다. 권력자에게 유리한 판결, 돈에 따라 달라지는 법의 무게를 보며 사람들은 법을 불신한다. 이럴 때 갑골문 속 해치의 그림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법은 본래 물처럼 공평해야 하고, 불의를 제거해야 하며,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신성한 눈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법의 제도적 개혁만이 아니라, 법에 내재된 정의의 상징을 복원하려는 문화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법은 다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 맺으며 법(法)의 옛 그림은 단순하지 않았다. 물(水), 제거(去), 그리고 해치(獬). 그 셋이 함께 있을 때 법은 비로소 법다웠다. 해치가 사라진 뒤, 우리는 규칙만 남은 법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효율적일지 모르나, 때로는 정의를 잃은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문 지면마다 터져 나오는 법의 불공정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다시 광화문 앞의 돌해태를 떠올린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약간은 귀여운 그 모습. 하지만 그 뿔은 여전히 곧게 하늘을 향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눈과 뿔을 되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법이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법 속에서 사라진 짐승, 해치(獬豸)
-
-
[김홍제의 목요칼럼] 학교의 위치와 한국 사회의 철학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학교는 언제인가부터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입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교육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집단적 고백이다. 도시는 가장 비싼 땅에 무엇을 세우는지를 통해 사회의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백화점, 고급 주거지, 상업시설이 중심을 차지하는 동안 학교는 늘 외곽으로 밀려났다. 아이들의 미래보다 더 값진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학교는 가장 비싸고 좋은 땅에 있어야 한다. 나는 시골 지역에서 교장을 할 때 학생 화장실에 비데 있는 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행정실에서 돈이 없다고 했지만 우선 층마다 몇 개라도 만들자고 했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다. 학생이 꿈을 꿈꾸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며 한 사회의 철학이 형성되는 장소이다. 민주시민의 경험이 길러지는 공적 공간이다. 그렇기에 학교는 접근성이 가장 좋고 안전하며 문화, 자연, 공공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학교는 문화센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육 시설의 열악함은 무관심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낡고 비좁으며 비인간적이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세계의 교육 선진국들은 학교를 도시의 자산으로 인식한다. 학교는 지역의 문화 거점이다. 공원과 도서관, 예술 공간과 연결되며, 주민과 함께 숨 쉬는 장소로 설계된다. 학교가 좋은 땅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특권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사회중심에 두겠다는 선언이며 교육을 투자로 보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좋은 자리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분명하게 올바른 철학을 학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 대답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다. 학교는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고 가장 멋진 투자이다. 공간을 같이 쓴다면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학교는 공공기관으로서 가장 많은 지역에 있다. 이 시설이 주민과 하나가 되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문화시설, 회의실, 영화관, 수영장, 도서관, 농구장, 공연장이 학교와 같이 한다면 학생과 주민이 모두 성장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60년대 석탄이 이제 전기 난방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학교 부지와 시설은 가난하다. 오죽하면 학생에게 학교를 생각하라고 하면 감옥을 연상하겠는가. 중고등학교도 강당만이 아닌 도서관과 동아리실, 수영장, 운동시설, 휴게실, 회의실을 모두 모아놓은 학생회관 건물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지역의 군수나 시장과 협의하여 주민시설을 학교 옆에 지어서 함께 이용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과감하고 놀라운 결단으로 학교 부지와 시설을 가장 좋은 곳으로 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학생은 나라의 가장 귀한 보배이고 미래이다. ‘학교를 어느 곳에 세우고 어떤 대우를 하느냐’라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교육 철학을 보여준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학교의 위치와 한국 사회의 철학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갑골문이 들려주는 ‘道德’의 뿌리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도덕(道德)’이라는 말을 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도덕 교과서를 배우고, 정치인들은 늘 도덕성을 강조하며, 신문 지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고 적힌다. 하지만 가만히 물어보자. ‘도덕’이라는 말은 원래 어디서 온 것일까? 길(道)은 어디서 왔고, 덕(德)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리고 행(行)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한자의 가장 원초적인 그림, 곧 갑골문이 우리를 맞이한다. 갑골문은 상나라 사람들이 점을 치며 거북 껍데기와 짐승 뼈에 새겨 넣은 글자다. 그곳에 새겨진 낯선 형상들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추상적 개념이 사실은 매우 신체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 사거리에서 시작된 ‘행(行)’ ‘행(行)’의 갑골문을 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네 갈래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의 스케치다. 오늘날 우리가 ‘行’을 보면 길을 가는 사람, 행동하다, 행위라는 뜻을 떠올리지만, 본래의 출발점은 그냥 길 모양이었다.([그림 11] ‘行’ 참조)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그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가 덧붙었다. 그렇게 ‘길 → 걷다 → 행동하다’라는 의미 확장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행동’이란 본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저 길 위를 걷는 구체적인 몸짓이었다. □ 길이 철학이 되기까지 - ‘도(道)’ ‘도(道)’ 역시 갑골문에서 출발한다. ‘도’는 본래 ‘행(行)’과 거의 같은 그림, 즉 사거리 모양에 ‘사람이 걷는다’는 요소가 더해진 글자였다. 뜻은 단순하다. “사람이 다니는 길”.([그림 11] ‘道’ 참조) 그런데 후대에 이 ‘길’이라는 물리적 의미는 놀라운 확장을 겪는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 세상의 원칙, 마침내 노자에 이르러서는 우주 만물의 근본 법칙을 뜻하게 된다. ‘도’가 철학적·형이상학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자학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애초에 들어 있던 뜻이 아니라, 후대 사상가들이 덧씌운 해석이었다. 처음의 ‘도’는 그저 네거리와 사람의 그림일 뿐이었다. □ 눈과 심장이 들어온 ‘덕(德)’ 그렇다면 ‘덕(德)’은 어떨까? 덕의 갑골문을 보면 ‘행(行)’, 즉 사거리의 모양에 눈(目)과 마음(心)이 덧붙는다. 앞을 똑바로 보며 걷는 마음, 곧 올곧게 나아가는 태도를 상징한 것이다.([그림 11] ‘德’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덕의 의미가 단순히 개인의 미덕이나 인격적 성품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서 재해석되었다는 점이다. 상(商) 왕조는 혈통을 통해 통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주(周) 왕조는 달랐다. 그들은 혈통 대신 ‘덕’을 앞세웠다. 군주가 덕을 지니면 하늘이 그에게 천명을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정권은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는 식이었다. 공자 역시 이를 이어받았다. 그는 군자가 백성을 다스리려면 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통치 질서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장치였다. ‘덕’은 본디 사거리와 눈, 심장의 그림이었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천하를 다스리는 근거’로 둔갑한 셈이다. □ 교육에서 ‘도덕’이 변한 길 이처럼 ‘도·덕·행’의 의미가 바뀌어 온 과정을 생각해 보면, 현대의 교육사도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식민지 시절 ‘수신(修身)’이라는 과목을 통해 충성스러운 신민을 길러내려 했다. 해방 후에는 과목명이 ‘국민윤리’로 바뀌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도덕’이라는 이름이 굳어졌다. 최근에는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같은 이름이 병용되고 있다. 과목명이 바뀔 때마다,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도 달라졌다. 충성하는 신민, 국가에 헌신하는 국민, 도덕적인 시민, 혹은 합리적이고 사유할 줄 아는 주체. 도덕과 윤리라는 말은 단순한 학문적 개념이 아니라, 시대가 바라는 인간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도구였다. □ 오늘의 사례 - 여전한 정치적 도덕 담론 이러한 맥락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강의에서 인용된 사례 하나를 보자. 2024년 중국의 대학입시, 곧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은 한 학생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 글은 유려한 문장으로 가득했지만, 결국 핵심은 ‘개인은 덕을 지켜야 하고, 덕은 곧 국가와 민족을 위한 책임’이라는 메시지였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담론의 흔적이 있다. ‘덕’을 강조하는 순간, 그것은 언제든 국가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이끌 수 있는 장치가 된다. 3천 년 전 주 왕조가 그랬듯, 오늘의 국가들도 여전히 ‘덕’을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 갑골문이 전하는 비판의 눈 그렇다면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문자학적 기원을 되짚는 일이 오늘의 도덕 논쟁에도 비판적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행(行)’은 단순한 사거리 그림이었고, ‘도(道)’는 사람이 걷는 길이었으며, ‘덕(德)’은 눈과 심장이 더해진 올곧은 마음이었다. 그것이 정치와 사상의 필요에 따라 추상화되고, 정당화되고, 제도화된 것이다. 오늘날 도덕 교육이나 정치 담론 속의 ‘덕’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따질 때, 우리는 이 긴 역사를 함께 봐야 한다. 그래야만 논의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권력이 만든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 마무리 - 길(道)에서 덕(德)으로 결국 갑골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도덕은 원래 길 위의 몸짓에서 출발했다. 네거리를 걷는 사람, 앞을 똑바로 보는 눈, 곧은 마음. 그것이 문자로 새겨졌고, 후대에 철학과 정치가 그 위에 층층이 의미를 덧입혔다. 오늘의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도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 각자의 길을 비추는 마음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도구인가? 갑골문의 옛 그림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도덕의 뿌리는 언제나 길 위의 사람과 마음에 있다.” 그 단순한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도덕은 다시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실천의 언어가 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갑골문이 들려주는 ‘道德’의 뿌리
-
-
[전재학의 교육칼럼] 2026년 고전의 가르침으로 시작하는 교육개혁의 길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 아침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희망을 품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는다. “우리 교육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시대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변화의 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만큼은 보수적 성향의 특성대로 아직도 과거의 형틀에 묶인 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 새해 정초의 시점에 우리는 지혜의 보고(寶庫)인 고전(古典)의 지혜를 빌려 교육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고, 과감한 개혁의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일찍이 스승 공자는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有教無類)”고 했다. 빈부의 격차나 지위고하의 출신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정한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교육의 첫 원칙이라는 뜻이다. 그는 스스로 그렇게 3,000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키웠다. 2,5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지역·계층·학교에 따라 기회가 갈리고, 출발선의 격차가 결과의 격차를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다. 국가가 올해 반드시 세워야 할 교육개혁의 첫 축은 바로 공정한 출발선의 회복, 곧 공자가 말한 ‘차별 없는 배움’의 실천이어야 한다. 맹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 했다. 이는 단순 암기 중심의 지식 축적이나, 근거 없는 사유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지금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AI)이 지식을 대신 정리하는 시대, ‘잘 외우는 학생’보다 ‘깊이 생각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학생’을 길러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탐구를 설계하고 경험을 조합할 수 있는 학습경험의 혁신, 교실을 넘어 지역·대학·기업과 연결되는 확장된 배움의 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순자는 “국가의 밝음은 교육을 바로 세움에서 비롯된다(國之明在於興學)”고 강조했다. 교육의 질은 곧 국가 경쟁력이며,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은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 행정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구조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사는 과도한 행정과 무분별한 민원의 파도 속에 본연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교사를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습의 설계자’ 또는 ‘학습의 길잡이’로 재정립하고, 전문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을 확고히 해야 한다. 교실을 교사에게 돌려주지 않고는 어떤 교육개혁도 현장에서 실현될 수 없다. 《대학》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말하며, 모든 변화는 개인의 성찰에서 시작한다고 일깨운다. 교육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정권마다 바뀌는 정책, 이해관계의 충돌로 흔들리는 행정, 현장의 피로를 외면하는 결정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개혁이 불가능하다. 교육의 원리에 기반한 정책의 일관성, 공론을 통해 지혜를 모으는 협치 체계, 그리고 국가·교육청·학교 간의 명확한 책임 구조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교육정책은 정치에 예속되어 갖은 변덕이 아니라 흔들림 없이 인재를 기르는 ‘도(道)’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제 병오년의 아침은 우리에게 새로운 교육 과제를 던진다. 변화의 기운이 움트는 해라면, 교육도 그 변화의 문을 열어야 궁합이 맞을 것이다. 고전의 가르침이 일러주듯, 교육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며, 국가의 백 년 기틀을 다지는 작업이다. 한 세대가 미루면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짐이 더 무거워질 뿐이다. 올해만큼은 더 이상 말을 앞세우지 말고, 교육위기라 일컫는 이 시대에 보다 합당한 실천과 결단을 수행해야 할 때다. 병오년 정초에 다시 새기자. 교육개혁은 희망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희망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교육계의 지혜와 사회의 신뢰, 국가의 책임이 하나로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세대에게 떳떳한 미래를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눈앞에 펼쳐질 내일이 오늘의 많은 교육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한 해가 되도록 과감한 결단과 함께 그의 실행을 기대하고자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2026년 고전의 가르침으로 시작하는 교육개혁의 길
-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12월의 독립운동가 윤동주
-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12월 30일, 별을 헤던 어느 때, 별을 노래하는 시인 윤동주가 태어났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 시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에서 일제의 만행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됐다. 그때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조선에 적용해 한민족 전체를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윤동주는 일제의 탄압을 보고 역사적 무게감을 느끼며 자기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어 글을 쓰지 않다가, 1941년부터 그 압박감을 시로 써 내려가며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의 고뇌와 번민을 자신의 시에 담으며 일제와 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윤동주는 일제에 대한 격렬한 반항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일제가 억압해 지우려고 했던 한민족의 아름다움까지도 글로 기록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으며 아직까지도 감동을 느낀다. 1943년, 일제에 대한 반감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서일까. 그는 일본 유학 도중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겨우 29년 동안 일제의 탄압 속에 내던져졌지만 그의 시는 이제 자유롭다. 윤동주는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독립운동가가 아닌 것은 아니다. 윤동주도 그만의 방법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일제에 저항했고 한민족의 문화를 계승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새해, 2026년에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는 것을 목표로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시들을 읽으며 윤동주의 삶을 따라가고 그때의 생각들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12월의 독립운동가 윤동주
-
-
[오피니언리더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사람 중심 도시, 교육에서 답을 찾다"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이 머무르며, 배움이 일상 속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도시는 미래를 갖는다. 인구 구조 변화와 기술 환경의 급격한 전환 속에서 ‘도시의 미래’를 다시 묻는 이유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은 “지금은 성장의 속도를 논할 때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며,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그릇”이라고 강조한다. ■ "미래도시는 교육에서 시작된다" 김광회 이사장은 미래도시의 출발점으로 기술이나 행정이 아닌 교육을 꼽는다. 그는 “기술과 행정은 도구이지만 교육은 사람을 만든다”며, “사고 방식과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래도시는 첨단 시설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배움과 성장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도시라는 설명이다. 교육이 흔들리면 젊은 세대는 도시를 떠나고, 그 순간 도시는 빠르게 늙어간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 "사람 중심 도시로의 전환" 김 이사장이 강조하는 ‘사람 중심 도시’는 기존의 개발 중심 도시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그동안 도시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크게 성장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면, 이제는 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묻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 하나, 건물 하나를 설계하더라도 차량 흐름뿐 아니라 아이들의 통학, 어르신의 보행, 장애인의 접근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 사람 중심 도시의 핵심이다. 이는 복지 차원을 넘어 도시의 품격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 “교육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국가의 책임” 김 이사장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는 구조는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한다. 모든 아이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며, 교육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강조했다. ■ AI 시대, 공교육의 역할 AI와 미래교육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김 이사장은 교육 격차 해소의 핵심 원칙으로 공공의 선제적 책임을 꼽았다. AI 교육이 사교육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공교육 안에서 충분히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은 잘못 쓰이면 격차를 키우지만, 제대로 설계하면 오히려 격차를 줄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산, 글로벌 교육특구의 가능성 김 이사장은 부산, 특히 해운대를 글로벌 교육특구의 출발점으로 평가했다. 이미 국제적 도시 인프라를 갖춘 해운대에 교육 콘텐츠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된다면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단순한 외국인 학교 유치가 아니라, 지역 학생과 세계가 함께 배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 "도시가 캠퍼스가 되는 미래" 김 이사장이 구상하는 글로벌 교육특구는 학교 단위를 넘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캠퍼스가 되는 모델이다. 학교, 대학, 연구기관, 산업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교육이 지역 발전 전략의 중심에 놓이는 구조다. 이는 부산만의 실험이 아니라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인재 구조를 분산시키는 국가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는 “부산의 성공은 대한민국 교육과 도시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는 건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라고, 배움이 이어질 때 도시의 미래는 현실이 된다." 김광회 이사장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육이 바뀌면 도시가 바뀌고, 도시가 바뀌면 국가의 내일도 달라진다. ▣ 김광회 이사장 ◇ (사)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 ◇ 부산광역시 미래혁신정책 고문 ◇ 前부산광역시 미래혁신 부시장 ◇ 前부산광역시 경제 부시장 ◇ 前부산광역시 균형발전실장 ◇ 前부산광역시 행정관리국장 ◇ 부산대학교 예술학 박사 수료 ◇ 美 일리노이대학교 행정학 석사 ◇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해운대 초·중·고등학교 졸업
-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
[오피니언리더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사람 중심 도시, 교육에서 답을 찾다"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해돋이의 나라, ‘한(韓)’이라는 이름의 비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선포했다. 구한말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국가 명칭 이상의 상징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韓)’이라는 글자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왜 하필 우리 민족은 ‘한’이라는 이름에 자기 정체성을 담았을까. 이 물음은 단순히 한 글자의 뜻풀이를 넘어,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해왔는지, 또 이 땅의 역사가 어떤 빛을 받아왔는지를 되묻는 과정이 된다. 문자학과 문헌, 그리고 역사적 전승을 두루 살펴보면, ‘한(韓)’이라는 글자 속에 해돋이의 빛과 그것을 지키려는 무리의 서사가 고스란히 숨어 있다. □ 빛날 간(倝) - 해돋이의 광휘 먼저 ‘한(韓)’의 왼쪽 부분, 즉 ‘간(倝)’을 살펴보자. 이 글자는 단순히 ‘방해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자형을 거슬러 올라가면 풀 사이, 혹은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그린 도상에서 비롯한다. 전국시대 금문에서는 태양의 광휘가 강조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소전에서는 ‘풀 사이의 해돋이’ 형상으로 정리되었다. 해서에 이르러 ‘빛날 간’으로 정착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침 조(朝)’와의 비교다. ‘조’가 단순히 “해가 떠오른다”는 출현의 순간을 그렸다면, ‘간’은 그 가운데서도 찬란히 퍼져나가는 빛 자체를 강조했다. 다시 말해, ‘간’은 동방의 아침, 곧 해가 솟아오르며 세상을 밝히는 그 순간의 광휘를 담아낸 글자다.([그림 10] 참조) □ 가죽 위(韋) - 둘러 지키는 힘 그렇다면 오른쪽의 ‘위(韋)’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은 ‘무두질한 가죽’이라는 뜻으로만 쓰이지만, 원래는 ‘성곽을 둘러싼 발자국’, 즉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비롯했다. 성벽을 에워싸며 수호하는 형상에서 ‘둘러싸다’, ‘지키다’라는 뜻이 나왔고, 이후 ‘위(衛)’와 ‘위(圍)’ 같은 글자로 분화했다.([그림 10] 참조) 가죽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었다. 몸을 덮고 보호하며, 물건을 감싸 단단히 고정하는 성질 덕분에 ‘둘러 지킨다’는 상징성을 오래 간직했다. 흔히 쓰이는 고사 ‘위편삼절(韋編三絕)’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공자가 경전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만큼 탐독했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위’는 물질적 가죽임과 동시에 지식과 도를 지탱하는 상징으로도 기능한다. □ 韓 - 해의 빛을 받는 나라를 지키는 무리 이제 두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진 ‘韓’을 보자. ‘간’이 뜻하는 해돋이의 빛, ‘위’가 지닌 둘러 지킴의 의미가 합쳐져 “해돋이의 나라를 둘러 지키는 사람들”, 혹은 “해의 빛을 받는 나라”라는 뜻이 된다. 문자 자체가 곧 동방, 해뜨는 곳, 광명의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대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속에는 ‘동방의 빛을 이어받은 나라, 스스로를 지켜내는 무리’라는 깊은 상징이 담겨 있었다.([그림 10] 참조) □ ‘우물 난간’ 해석의 한계 물론 『설문해자』에서는 ‘韓’을 달리 풀이한다. 韓을 “우물의 난간”으로 설명하며, 단순히 구조물의 일부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금문과 소전, 해서에 이르기까지 글자의 도상 변천을 추적해보면, ‘해와 빛, 그리고 둘러 지킴’의 모티프가 일관되게 보인다. 우물 난간이라는 해석은 국호로서의 상징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특히 소전 단계까지 남아 있던 ‘사람(人)’의 흔적이 해서에서 간략화되는 과정을 보면, 이 글자가 본디 사람들의 무리와 연관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韓은 사람, 빛, 보호의 의미망이 얽힌 글자라 할 수 있다.([그림 10] 참조) □ 문헌 속의 ‘한’ ‘한’이라는 명칭은 중국 고대 문헌에도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사기』나 『한서』에서는 ‘삼한’의 직접적인 기술이 희박하지만, 『위략』(3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기록이 늘어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시경』 속 ‘韓奕(한혁)’이라는 구절이다. 후대 왕가의 『잠부론』에서는 이를 인용하며 “한성(韓城)은 연나라와 인접한다”고 했다. 『수경주』(6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성의 위치를 지금의 북경 남쪽, 유주 일대와 연결짓기도 한다. 즉, ‘한(韓)’이라는 명칭은 이미 기원전 9세기 시가 전승 속에 등장했고, 연 인근의 지명 전승과 함께 동북 지역 문화권과 맞닿아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비정에는 학계의 논란이 따른다. 한성의 위치를 북경권으로 볼지, 아니면 한반도와 연결할지는 여전히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삼국시대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동방과 해돋이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이다. □ ‘진(辰)’과 ‘한(韓)’의 울림 여기서 ‘진(辰)’과 ‘한(韓)’의 관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진’은 본래 동남, 곧 해돋이의 방위를 뜻하는 글자로, 후한·삼국시대 기록에서는 삼한의 전신으로서 ‘진국(辰國)’이 언급된다. 이때 ‘진’은 “해가 떠오르는 나라”라는 상징을 품고 있었다. ‘한’ 역시 어원 해석이 분분하지만, 공통적으로 태양성과 광명성을 강조한다. ‘하나(One)’, ‘하라’, ‘해’ 같은 소리와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있다. 종합하면, ‘진’과 ‘한’ 모두 결국 동방과 해돋이를 지향하는 이름이 된다. 이는 아사달(해 뜨는 터), 배달·박달(밝은 땅) 같은 우리 고유의 명명 전통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 ‘대한’이라는 국호의 의미 이 모든 맥락을 종합해보면, 韓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그것은 해의 빛을 받는 나라를 둘러 지키는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시경』의 전승, 삼한·진국의 기록, 그리고 국호 ‘대한’으로의 계승까지, 韓은 동방의 해돋이와 수호의 상징을 이어온 이름이었다. 오늘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부를 때, 그 속에는 단순한 행정적 명칭을 넘어선 긴 역사의 기억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해가 떠오르는 나라, 빛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무리,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온 공동체의 서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 ‘한(韓)’에서 ‘대한민국’까지 - 이름에 담긴 서사 우리가 지금 부르는 국호 ‘대한민국’은 사실 긴 역사의 강줄기를 따라 흘러온 결과다. ‘한(韓)’이라는 이름은 고대 삼한에서 시작해 고려·조선의 역사적 경험을 거쳐, 대한제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주되면서 이어져 왔다. □ 삼한(三韓) - 동방 세 무리의 나라 먼저, ‘한’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무대는 삼한이다. 후한서 등 중국 정사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언급되는데, “본래 모두 진국에서 나왔다”라는 설명이 붙는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살펴본 ‘진(辰)’과 ‘한(韓)’의 연결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해 돋는 나라’라는 동방적 상징이 삼한의 뿌리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삼한은 단순히 세 나라가 아니라, 동방의 여러 부족 공동체가 느슨하게 연합한 형태였다. 그 이름을 중국인들은 ‘삼한’이라 불렀고, 이는 곧 “세 무리의 해 돋는 나라”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한’은 여기서 공동체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자리 잡는다. □ 고려와 조선 - ‘한’의 잠재된 기억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국호 자체에 ‘한’이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한’은 여전히 우리 민족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 있었다. 고려 후기의 문인들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같은 표현으로 ‘삼한’을 곧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삼한’은 여전히 문화적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스스로를 ‘삼한의 후손’이라 부르며, ‘삼한의 문장’, ‘삼한의 학문’ 같은 표현을 즐겨 썼다. ‘조선’이라는 국호 아래에서조차, ‘한’은 여전히 뿌리 깊은 정체성의 이름이었다. □ 대한제국 - ‘한’이 국호로 부활하다 그러던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선포하면서 ‘한’은 다시 국호의 전면으로 돌아온다. 이는 단순한 이름의 변경이 아니었다. 조선이라는 국호가 지닌 봉건적 이미지를 벗고, 삼한의 전통을 잇는 새로운 국가임을 선포하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대한’이라는 이름은 곧 삼한의 계승자라는 자부심, 동방의 해 돋는 나라를 지켜온 무리라는 상징을 담았다. 당시 열강의 압박 속에서 국호 ‘대한’은 어쩌면 마지막 자존심이자, 민족적 정체성의 불씨였다. □ 대한민국 - 빛을 잇는 이름 1919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국호는 다시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었어도, 이름만큼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민국’이라는 두 글자가 붙으면서, ‘대한’은 더 이상 단지 삼한의 계승을 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 민주와 자치의 나라라는 지향을 품게 되었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우리 모두의 삶과 함께 살아 있다. ‘한(韓)’이라는 글자가 품은 해돋이의 광휘와, 둘러 지키는 무리의 의미는 이제 국가 공동체 전체를 지탱하는 상징이 되었다. □ 이름에 깃든 빛 이렇게 ‘한’이라는 이름은 삼한에서 시작해 고려·조선을 거쳐,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해돋이의 나라, 스스로를 지켜온 사람들의 무리라는 상징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시대마다 새로운 옷을 입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부를 때, 그 속에는 단순히 네 글자가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과 무수한 사람들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한반도의 동쪽 바다에서 여전히 떠오르는 태양처럼, ‘한(韓)’이라는 이름은 오늘도 우리를 비추고 있다. □ 맺으며 역사란 이름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종종 그 안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새롭게 발견한다. ‘한(韓)’이라는 이름은 동방의 해돋이를 품은 글자이자, 우리 스스로를 지켜온 힘의 은유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12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금 묻는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해돋이의 빛을, 우리는 여전히 지켜내고 있는가. ‘한’이라는 이름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빛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해돋이의 나라, ‘한(韓)’이라는 이름의 비밀
-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Myeongdong Cathedral, Seoul’s Historic Catholic Landmark
-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The Myeongdong Cathedral(명동성당) is located in Seoul, South Korea, and stands as one of the most visited and populous churches in Korea. It is officially known as the Cathedral Church of the Virgin Mary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and is located at the heart of Myeongdong. As Korea’s first Catholic cathedral, it is a powerful symbol of Korean Catholicism and religious freedom. The site itself has been sacred since 1784, when Korea’s first Catholic community secretly gathered there during the Joseon Dynasty–a period when Christianity was banned. The official construction of the current cathedral began in 1894 under the supervision of French missionaries. King Gojong laid the first stone, and the building was completed on May 29, 1898. At the time, it was the largest building in Seoul and the first Gothic-style church in Korea. The Myeongdong Cathedral now serves as the birthplace of organized Korean Catholicism and a sanctuary for persecuted believers in the past. It is a symbol of religious tolerance and national identity. The cathedral itself houses the relics of the Korean martyrs, especially the martyrs of the 1866 persecution, making it a central pilgrimage site. Myeongdong Cathedral has been a center for social justice, democracy, and peace movements in Korea in the modern era. Rallies and vigils have been held there during times of significant political change, thereby underscoring the cathedral’s impact on modern Korean society. The site, of course, remains a safe, public place of worship for anyone to pray, protest, or reflect. During the winter season and Christmas, Myeongdong Cathedral has become a major Christmas destination, hosting special Christmas masses, midnight masses, carol concerts, and other public events. The cathedral and Myeongdong district together create a vibrant Christmas atmosphere. As a living monument of Korea’s religious history, Myeongdong Cathedral continues to inspire faith and national identity, especially during holidays such as Christmas. It is heavily recommended for all, believers and nonbelievers, to visit the beautiful site with warm clothes and open hearts.
-
-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Myeongdong Cathedral, Seoul’s Historic Catholic Landm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