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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과도한 N수 열풍, 학벌주의 해법 없이는 교육 공멸을 막을 수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대학 서열화와 학벌 중심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N수생 급증과 사교육비 폭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올해 수능 접수자 중 N수생의 비율이 3분의 1을 넘어 2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불수능 여파와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매년 수만 명의 청년들이 더 나은 대학을 향해 재도전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가계 경제를 파탄 내는 사교육비와 N수 현상은 결국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가 삶의 기회를 좌우하는 왜곡된 구조에서 비롯된다. N수 생활에는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전체 N수 사교육비 규모만 해도 1주년 기준 3조 원을 웃돈다. 이로 인해 부모의 경제력이 곧 학생의 재도전 기회를 결정하는 '교육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작 수많은 비용을 투입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임에도 이들이 학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학벌이 개인의 사회적 생존과 직결되는 한국 특유의 구조적 병폐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N수생 증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자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자연스러운 경쟁 과정이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N수 현상을 단순히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나 역량 발전을 위한 투자로만 볼 수는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무한 경쟁을 통해 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변별력을 확보하는 것이 교육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또한 수능 난이도 조절이나 입시 제도를 보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작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공정한 경쟁으로 포장된 승자독식 구조의 폐해를 외면하는 무책임한 진단이다. 현실의 N수 경쟁은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는커녕,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 유리한 부모 찬스의 장으로 변질되어 있다. 게다가 10명 중 7명이 실패의 고통을 겪고, 고3 재학생들까지 가중된 부담으로 인해 원치 않는 N수로 내몰리는 상황은 교육이 사회적 통합이 아닌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정부와 사회는 입시 제도의 지엽적 수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학벌 중심의 사회적 보상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평생의 간판이 되는 학벌주의 타파와 일자리 간의 임금·근로 조건 격차 해소가 동반되지 않는 한, N수생 행렬을 막아 세울 방법은 없다. 교육은 청년들을 무한 경쟁의 나락으로 내몰고 가계의 등을 휘게 하는 소모전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입시 지옥의 악순환을 끊어낼 거대한 구조적 대전환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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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경일인데 태극기는 어디로 갔는가
[교육연합신문=김광명 기고] 삼일절과 광복절, 개천절과 한글날이 되면 예전에는 골목마다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였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걸었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국경일의 의미와 나라사랑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일깨워 주었다. 태극기 게양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국민의 일상이었으며, 공동체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소중한 문화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국경일에도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를 둘러보면 태극기를 게양한 가정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관공서와 주요 도로변을 제외하면 국경일이라는 사실조차 실감하기 어려운 풍경이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며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여 왔다. 그러나 정작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국민의 일상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태극기를 다는 일에 점점 소홀해지고 있는가. 이러한 현실을 단순히 국민의 애국심 부족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주거환경의 변화와 공동주택 중심의 생활문화, 국경일에 대한 인식 변화, 국가상징 교육의 부족, 생활 속 실천 기회의 감소 등 복합적인 원인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특히, 국경일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선열들의 희생을 되새기는 뜻깊은 날이 아니라 단순히 쉬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태극기는 단순한 깃발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을 걸고 높이 들었던 민족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이 걸어온 역사의 현장을 함께해 온 국가의 얼굴이다. 태극기의 흰 바탕에는 밝음과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정신이 담겨 있다. 가운데 태극 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와 균형을 상징하며,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는 각각 하늘과 땅, 물과 불을 나타낸다. 이처럼 깊은 역사적 의미와 철학적 가치를 지닌 태극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충실하게 가르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태극기 게양 문화의 회복은 단순한 국기 달기 운동을 넘어 역사교육의 가치를 높이고, 공동체 의식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살리는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부산 남구가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바로 남구 각 동의 주요 관문과 상징성이 높은 장소에 대형 국기게양대를 설치해 태극기를 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우리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라면 어떻겠는가. 주민들에게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상징물이 되고, 방문객들에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나아가 미래세대에게는 태극기를 일상에서 마주하며 나라의 역사와 국가상징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물론 대형 국기게양대 설치가 단순히 높은 깃대를 세우는 사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의 역사성과 주변 도시경관을 충분히 고려해 조화롭게 설계하고, 태극기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시설을 비롯해 주민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작은 쉼터, 품격 있는 야간 경관조명 등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설치 장소의 적정성과 보행환경, 강풍에 따른 시설물 안전, 사업비와 유지관리 비용 등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충분한 공감대와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부산 남구 17개 동 가운데 접근성과 상징성이 높은 장소를 우선 선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그 성과와 주민 만족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러한 사업은 단순한 도시 미관 개선을 넘어 국가상징을 생활 속에 정착시키고,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교육의 가치를 높이는 미래지향적 공공사업이 될 수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학생들이 국기게양대를 직접 방문하고, 태극기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의미를 배우는 체험교육을 운영한다면 교육적 효과 또한 더욱 커질 것이다. 아울러 가정에서의 태극기 게양 문화도 함께 회복해야 한다. 국경일을 앞두고 행정복지센터와 학교, 공동주택 관리주체, 주민자치단체 등이 협력해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전개하고, 국기 구입과 올바른 게양 방법을 쉽게 안내하는 등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태극기를 가까이하는 문화는 일회성 행사나 형식적인 구호가 아니라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지속적인 생활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 태극기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진영의 상징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국기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존중하고 지켜야 할 국가의 상징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살아온 시대와 지역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태극기가 갈등과 대립의 상징이 아니라 화합과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세계적인 스포츠 무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 한마음으로 감동하고 환호한다. 국가적 위기와 어려움 앞에서도 태극기 아래 뜻을 모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다. 그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이제는 우리 동네와 가정, 학교의 일상 속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국경일마다 태극기 게양을 독려하는 구호를 반복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자연스럽게 태극기를 가까이하고 국가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을 입구에서는 태극기가 주민들을 맞이하고, 아이들은 그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선열들의 희생을 배우며, 국경일이면 집집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도시를 상상해 보자. 그 의미 있는 변화의 출발점을 부산 남구에서 만들어 보면 어떻겠는가. “마을마다 태극기 하나, 동네마다 대한민국의 자부심 하나.” 대형 국기게양대가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태극기를 중심으로 세대가 소통하며 나라의 소중함을 함께 되새기는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태극기는 바람이 불어야 펄럭인다. 그러나 태극기를 다시 국민의 마음속에 높이 세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다.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을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제 태극기를 우리 삶의 가까운 곳으로 다시 불러와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와 자유의 가치, 공동체의 자긍심을 다음 세대에 당당하게 물려주어야 한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빛나게 하는 일은 국가만의 책무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실천해야 할 소중한 책임이다. 국경일에 태극기가 다시 골목마다 힘차게 펄럭이는 대한민국, 그 뜻깊은 변화가 부산 남구에서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 김광명 ◇ 前부산광역시의회 의원(제8·9대) ◇ 前부산광역시 남구의회 의원(제6·7대) ◇ 前(사)부산광역시 남구청년연합회 회장 ◇ 前부산남부교육지원청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 ◇ 前부산남구청소년지도협의회 회장 ◇ 前(사)용호지역발전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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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물은 세워진다, 도시는 기획된다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야경일까, 유명한 축제일까, 아니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랜드마크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도시의 경쟁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건물만 보러 도시를 찾지 않는다. 그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기대 이상일 때, 도시는 관광지를 넘어 목적지가 된다. 부산은 이미 적지 않은 것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인 축제와 다양한 공연, 해변과 항구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경, 역동적인 음식문화가 있다. 부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고,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도 예정돼 있다. 이제 부산 관광의 과제는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보다, 이미 가진 자산으로 어떤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의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분명한가에 따라 완성된다. 파리의 문화적 매력은 에펠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런던의 관광 경쟁력도 빅벤이나 버킹엄궁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도시에는 예술과 공연, 전시와 스포츠, 미식과 일상이 끊임없이 새로운 방문 동기를 만들어 내는 구조가 있다. 관광객은 특정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여행하는 시기에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경험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서 부산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부산에도 축제는 많고 공연도 열린다. 문제는 행사의 유무가 아니라 개별 행사가 도시 전체의 매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가에 있다. 각각의 축제와 공연이 저마다의 성과를 내는 것과, 그 모든 경험이 ‘부산에 가야 하는 이유’로 축적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부산을 여행하려는 외국인이 특정 공연을 발견하고, 그 일정에 맞춰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하며, 낮에는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공연을 관람한다면 공연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다.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핵심 동기가 된다. 반대로 공연이 열려도 해외에서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예약과 관람이 불편하며, 여행 일정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이 차이가 부산 관광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수 있다. ■ 오페라하우스가 부산의 미래를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2027년 개관을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부산의 문화와 관광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유치하고, 부산의 예술적 위상을 높이며, 북항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건축물이 완성되는 순간 세계적인 오페라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공연장은 외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평가받는다. 어떤 작품을 올리는가, 어떤 예술가를 키우는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가, 시민과 관광객이 얼마나 자주 그곳을 찾는가가 중요하다. 개관 기념 공연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다음 해, 그다음 시즌에도 사람들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을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다. 한 번의 화려한 개관보다 오랜 시간 축적되는 예술적 신뢰가 도시의 브랜드를 만든다. 또한, 오페라하우스가 독립된 섬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부산콘서트홀과 기존 공연장, 영화제와 지역 축제, 전시공간과 관광업계가 서로의 관객을 연결해야 한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부산의 다른 문화공간을 찾고,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 다음 공연을 예약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진정한 성공은 그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공간이 부산 전체의 문화적 활력을 얼마나 확장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 축제의 도시에서 ‘문화적 목적지’로 부산은 축제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도시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축제와 공연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결해야 하는 도시다. 필요한 것은 행사 목록의 확대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프로그램처럼 기획하는 발상이다. 봄에는 어떤 예술을 경험할 수 있고, 여름에는 바다와 음악이 어떻게 만나며, 가을에는 영화와 공연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겨울에는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계절별 축제를 배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을 방문하는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와 여행 시기에 따라 도시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흩어진 프로그램을 하나의 이야기로 편집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해외 관객이 부산의 오페라 공연을 예약하면 인근 전시와 관광 프로그램을 함께 발견할 수 있고, 영화제를 찾은 방문객이 지역 공연과 미식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행사가 관객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부산 체류를 함께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결은 홍보의 문제인 동시에 산업의 문제다. 공연 기획자와 관광업계, 숙박업계, 지역 상권이 일정과 상품을 함께 설계한다면 문화행사의 효과는 공연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관광 소비를 이끌고, 관광은 다시 예술의 관객과 재원을 넓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 세계인의 시선보다 먼저, 관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지향할수록 해외 유명 공연과 국제적인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기 쉽다. 그러나 외부의 명성을 빌려오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문화적 자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세계적인 예술단체를 초청하는 일과 함께 부산의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지역의 공연단체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부산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다른 나라의 무대에 오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예술이 부산에 도착하는 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의 예술이 세계로 나가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공연장을 찾고 축제를 즐기며 지역 예술을 지지할 때 문화 인프라는 비로소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관광객만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은 특정 시기의 방문객에 의존하기 쉽지만,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 결국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경험의 수준은 그 도시가 평소 축적해 온 문화의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시민이 평소에도 좋은 공연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 관광객 수를 넘어, 도시의 선택받는 힘으로 관광객 수는 분명 중요한 지표다. 부산이 세계적인 관광도시들과 경쟁하려면 방문객 규모를 확대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다만 숫자의 성장만으로 도시의 국제적 위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부산을 방문한 사람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여행 중 무엇을 가장 인상 깊게 경험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공연과 축제가 실제로 숙박 예약과 지역 소비, 재방문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화행사의 관객 수와 관광객의 만족도, 지역경제에 미친 효과를 함께 분석해야 다음 기획도 정교해질 수 있다. 이제 부산 관광정책에는 관광과 문화예술을 따로 바라보지 않는 관점이 필요하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면서 관광 동기이고, 축제는 시민의 문화행사이면서 도시의 국제적인 홍보 자산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능력이 앞으로 부산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부산은 더 이상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미 가진 자산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다. 오페라하우스의 개관은 그 가능성을 시험할 중요한 기회다. 건물의 완공을 도시의 성취로 끝낼 것인지, 새로운 문화관광 시대의 출발점으로 만들 것인지는 앞으로의 운영과 기획에 달려 있다. ■ 도시는 건축으로 모습을 갖추지만, 기획으로 기억된다. 부산이 지향해야 할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가 많고 축제가 화려한 도시만이 아니다. 세계인이 부산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축제의 일정에 맞춰 방문하며, 그 경험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도시다. 부산에는 이미 무대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무대들을 하나의 도시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안목과 실행력이다. 오페라하우스의 불이 켜지는 날, 부산의 관광도 함께 새로운 막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부산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꿈꾸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인이 찾아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도시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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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늘봄학교 전면화의 명암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초등 방과 후와 돌봄을 통합한 '늘봄학교'가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초등 1~2학년까지 정착되며 학부모의 양육 부담 완화와 국가 책임 돌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기존 돌봄교실의 높은 대기 수요를 흡수하고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에게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는 정책적 취지는 교육 가족 모두가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제도가 현장에 안착해 가는 과정에서 학교가 겪는 공간의 과밀화와 관리 체계의 과부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엄중한 과제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늘봄학교 추진 현황」에 따르면, 초등 1~2학년으로 대상이 확대된 이후 참여율은 8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기존의 돌봄 대기 수요를 사실상 해소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 나타난 공간 여건의 격차는 여전히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대도시 과밀 지역의 경우 일반 정규 교실을 늘봄과 함께 쓰는 '겸용 교실' 비율이 늘면서 교사의 수업 연구 및 학생 상담 공간이 잠식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반면 농어촌 및 원도심 학교는 전문 강사 수급의 어려움과 방과 후 안전 관리 인력 부족이라는 상반된 난관에 직면해 있다. 학교 담장 안으로 모든 돌봄 수요를 흡수하려는 물리적 집중이 낳은 구조적 한계다. 학교는 통계표 위의 숫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배움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삶이 자라나는 공간이다. 모든 돌봄과 보육의 책무를 학교라는 단일 기관의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 한다면, 교원은 본연의 교수·학습 연구와 학생 지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돌봄 서비스의 질적 도약 또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질 높은 교육'과 '안정적인 공공 돌봄'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나누는 패러다임의 확장이 요구된다. 우선, 학교 중심의 돌봄을 넘어선 '지자체 책임형 협력 거버넌스' 확대가 절실하다. 학교 밖 유휴 공공시설, 청소년수련관,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등을 거점형 늘봄센터로 적극 발굴·연계해야 한다. 공간이 부족한 학교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해 질 높은 예체능 및 놀이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도록 지자체가 통학 및 공간 운영을 전담하는 '온 마을 돌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학교 내 '교육'과 '돌봄'의 운영 체계를 행정적·공간적으로 정교하게 분리해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교원 조직과 늘봄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늘봄지원실 전담 인력의 업무 경계를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 늘봄전담사 및 관리 인력의 고용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안전 관리와 시설 유지보수, 예산 집행 등의 행정 부담이 일반 교사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을 빈틈없이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양적 수용'을 넘어 아이들의 정서적 쉼을 보장하는 '돌봄 질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시간 때우기식 프로그램이나 과도한 특별활동을 강요하기보다, 자유 놀이와 쉼, 또래 간의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아동 친화적 쉼터를 조성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종일 이어지는 빽빽한 통제가 아니라 안전 속에서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편안한 품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의 완성을 위해서는 학교에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보듬는 성숙한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 박진우 ◇ 교육학 박사 ◇ 부산 칠암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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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고려대학교 논술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고려대학교 논술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시험이 아니다. 주어진 제시문과 자료를 정확히 읽고, 문제의 요구에 맞게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그것을 논리적인 답안 구조로 연결하는 시험이다. 김광휘 ‘논술의 왕’식으로 정리하면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문제의 요구를 먼저 파악하고, 제시문을 요약이 아니라 논거로 바꾸어라.” 수험생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고려대 논술 대비 비법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보다 문제를 먼저 읽어라 논술 답안의 방향은 제시문이 아니라 문제의 명령어에서 결정된다. ‘비교하라’, ‘분석하라’, ‘비판하라’, ‘평가하라’, ‘설명하라’, ‘해결방안을 제시하라’는 지시어에 따라 답안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비교하라’는 문제에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밝혀야 하고, ‘비판하라’는 문제에서는 대상의 한계나 논리적 약점을 지적해야 한다.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문제에서 제시문 요약만 반복하면 좋은 답안이 될 수 없다. ○ 비법 포인트 문제를 읽을 때 명령어에 밑줄을 긋고, 답안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결정하라. ■ 제시문은 따로 읽지 말고 관계 속에서 읽어라 고려대 논술에서 중요한 것은 제시문 하나하나의 단순 요약이 아니다. 여러 제시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악해야 한다. 제시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관계로 연결된다.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한 제시문이 다른 제시문의 한계를 보완한다. ▲두 제시문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하나의 제시문은 원인을, 다른 제시문은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따라서 제시문을 읽을 때는 “이 글이 무슨 내용인가?”에서 멈추지 말고, “다른 제시문과 어떤 관계인가?”까지 파악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제시문 요약이 아니라 제시문 간 상관관계 파악이다. ■ 공통 개념을 뽑아라 여러 제시문과 자료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찾아야 답안의 중심이 잡힌다. 예를 들어 자유, 평등, 공정성, 경쟁, 연대, 공동체, 다양성, 책임, 효율성, 인간 존엄, 기술 발전, 사회적 약자, 불평등 같은 개념들이 자주 활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키워드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제시문 속에서 어떤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 예시 ▲자유 vs 평등 ▲경쟁 vs 연대 ▲효율성 vs 공정성 ▲개인의 권리 vs 공동체의 책임 ▲성장 vs 분배 ▲기술 발전 vs 인간성 ▲다양성 vs 사회 통합 ○ 비법 포인트 주제를 외우지 말고, 주제 속에 숨어 있는 가치 대립 구조를 찾아라. ■ 자료는 나열하지 말고 한 문장으로 묶어라 표, 그래프, 통계, 사례 자료가 나올 경우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자료를 하나씩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답안은 자료들을 관통하는 공통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 여러 자료가 소득 격차, 교육 기회 차이, 지역 불균형을 보여준다면 다음과 같이 묶을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기회 격차가 여러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자료를 종합해 핵심 문제를 규정해야 이후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 제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비법 포인트 자료를 설명하지 말고, 자료가 함께 가리키는 사회문제를 찾아라. ■ 제시문은 요약하지 말고 논거로 바꿔라 논술 답안에서 제시문은 단순히 정리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 ▲나쁜 답안 : 제시문 A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좋은 답안 : 제시문 A가 강조하는 공동체적 연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적 협력과 제도적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 이처럼 제시문의 내용을 자신의 논리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 ○ 비법 포인트 “이 제시문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이 제시문을 내 주장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 답안은 결론부터 설계하라 논술 답안을 처음부터 써 내려가면 논지가 흔들리기 쉽다. 먼저 결론을 정하고, 그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배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결론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제도적 개선과 공동체적 연대가 함께 필요하다.” 그러면 본론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불평등의 원인 분석 ▲개인 책임론의 한계 ▲사회적·제도적 해결방안 제시 ○ 비법 포인트 답안은 쓰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정하고 본론을 배치하라. ■ 해결방안은 개인·사회·제도 차원으로 구체화하라 해결방안 문제에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와 같은 추상적 표현만 쓰면 설득력이 약하다. 해결방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효과적인 방식은 세 층위로 나누는 것이다. ▢ 개인 차원 개인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줄이고, 타인의 권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사회 차원 사회는 공감, 연대, 협력의 문화를 확산하고, 차별과 배제를 줄이는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 ▢ 제도 차원 국가와 제도는 교육,복지,노동,지역 정책 등을 통해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해결방안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드러나야 한다. ■ 옹호·비판형 문제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하라 특정 주장에 대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문제가 나오면 입장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비판한다고 해놓고 본론에서 옹호 논리를 쓰거나, 결론에서 애매하게 “둘 다중요하다”고 마무리 하면 답안의 힘이 떨어진다. ■ 안정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대상 주장의 핵심 정리 ▲자신의 입장 제시 ▲제시문을 근거로 활용 ▲반대 입장 간단 검토 ▲자신의 결론 재확인 ○ 비법 포인트 어느 입장을 선택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입장을 끝까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반드시 피해야 할 답안 유형 고려대 논술에서 피해야 할 답안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 요약형 답안 ▲제시문 내용을 반복하지만 자신의 논리로 연결하지 못하는 답안 ▢ 자료 나열형 답안 ▲표와 그래프를 하나씩 설명하지만 공통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답안 ▢ 입장 혼란형 답안 ▲옹호와 비판이 뒤섞여 논지가 흔들리는 답안 ▢ 구호형 답안 ▲ “노력해야 한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만 반복하는 답안 ▢ 배경지식 과시형 답안 ▲ 문제와 직접 관련 없는 이론이나 시사 사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답안 ○ 비법 포인트 논술은 많이 쓰는 시험이 아니라 정확히 쓰는 시험이다. ■ 실전 답안 기본 공식 고려대 논술 답안은 다음 공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 명령어 확인 → 제시문 핵심 파악 → 공통 개념 추출 → 자료 종합 → 입장 결정→ 근거 배치 → 결론 정리 사회문제 해결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을 활용할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의 원인은 ○○에 있으며, 제시문 A는 이를 □□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한 제시문 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식 변화, 사회적 연대,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옹호·비판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이 안정적이다. 제시된 주장의 핵심은 ○○이다. 나는 이 주장을 옹호한다/비판한다. ▲첫째, 제시문 A는 ○○의 측면에서 이 주장의 타당성/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제시문 B는 □□의 관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반대 입장에서는 ○○라고 볼 수 있으나, 이는 ○○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따라서 이 주장은 옹호/비판되어야 한다. ■ 최종 정리 김광휘 ‘논술의 왕’식 고려대 논술 비법은 결국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정확히 읽고, 관계를 파악하고, 구조적으로 써라.고려대 논술은 예상 주제를 맞히는 시험이 아니다. 낯선 제시문과 자료가 나오더라도 문제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제시문을 자신의 논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수험생은 배경지식 암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문제 독해, 제시문 분석, 자료 해석, 논거 구성, 답안 구조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 한 줄 비법 고려대 논술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정확히 읽고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사람이 이긴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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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학생 감소 시대,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신동현 칼럼] 우리나라 학생 수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빈 교실이 생기고 소규모학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과 반대로 빠르게 늘어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특수교육대상자입니다. 「2026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는 2022년 10만 3,695명에서 2023년 10만 9,703명, 2024년 11만 5,610명, 2025년 12만 735명, 2026년 12만 4,195명으로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4년 만에 2만 500명, 19.8%가 늘어난 것입니다. 특히 자폐성장애 학생은 같은 기간 1만 7,024명에서 2만 8,798명으로 69.2% 증가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곳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2026년 특수교육대상자 가운데 특수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은 3만 1,993명인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 학생은 7만 2,784명,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학생도 1만 9,202명입니다. 전체의 74%가량이 일반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특수교육은 특수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특수교육 체계는 이렇게 빠르게 늘고 다양해지는 교육수요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까요? 현행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 제22조는 특수교육 담당 교원을 특수교육대상자 4명마다 1명씩 배치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네 명이라도 필요한 지원은 전혀 다릅니다. 수업지원만 필요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의사소통, 이동, 신변처리, 행동·감각조절 등에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도 있습니다. 교사가 한 학생의 위기상황이나 신변처리를 지원하는 동안 다른 학생의 수업이 멈출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교사와 지원인력의 부족은 학생이 받아야 할 교육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수학교를 계속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2022년 192교였던 특수학교는 2026년 199교로 7교 늘어난 데 그쳤습니다.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같은 기간 1만 2,712학급에서 1만 5,426학급으로 2,714학급, 21.3%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2017년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일부 주민의 반대 과정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일도 경험했습니다. 특수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필요한 지역에 곧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닌 현실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특수학교를 더 짓고 특수학급을 하나씩 늘리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화한 교육환경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의 대안은 학생 감소로 여유 공간이 생기는 일반학교, 특히 소규모학교를 활용한 ‘거점형 특수학급’입니다. 지역의 특수교육 수요와 접근성을 고려해 몇몇 학교를 거점으로 정하고, 일반 특수학급보다 충분한 특수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감각조절실·심리안정공간·신변처리시설을 갖추고 행동·의사소통 지원 등 전문적인 기능도 함께 두는 것입니다. 거점의 전문인력이 인근 학교를 찾아가 학생과 교사를 지원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한 학교에 모으자는 것이 아닙니다. 특수교육의 전문성과 인력을 거점에 모아 여러 학교가 함께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일반학교 안에 ‘SEN Unit’과 ‘Resourced Provision’을 두어 전문적인 인력과 시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가 모든 전문인력과 시설을 각각 갖추기 어렵다면, 일반학교 안에 전문성을 집중하면서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이제 ‘일반학교냐 특수학교냐’라는 두 가지 선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학급과 순회지원, 일반 특수학급, 거점형 특수학급, 특수학교로 이어지는 촘촘한 지원체계를 만들고 학생 수뿐 아니라 실제 지원요구도에 따라 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학생이 줄어 교실이 비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수교육을 받을 공간과 교사, 전문인력이 부족합니다. 이 두 문제를 따로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학생이 줄어드는 학교의 공간과 특수교육의 전문성을 연결하는 것. ‘한 명의 특수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특수교육’에서 ‘여러 교사와 전문가, 지역의 학교가 한 아이를 함께 지원하는 특수교육’으로 바꾸는 것. 그곳에서 학생 감소 시대, 우리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 신동현 ◇ 부산 강서초등학교 교장 ◇ 前 부산 장서초등학교 교감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정책연구소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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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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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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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변화의 파도 앞, 주저함보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이 우선이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핵심 쟁점은 단순한 현상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명확하다. 첫째, 데이터와 통계가 증명하듯 기존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체된 구조 속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으며, 이는 곧 사회 전반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진다. 둘째, 글로벌 표준과의 격차다. 세계 주요국들이 발 빠르게 체질 개선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만 과거의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자발적 고립이나 다름없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물론 일각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존 질서에서 혜택을 받던 계층의 반발이 예상되며, 초기 적응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안정적인 점진적 변화가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변화를 늦춰서 얻는 일시적인 안정이 나중에 치러야 할 기회비용보다 크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모호한 절충안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초래해 갈등만 장기화할 뿐이다. 초기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하며, 체계적인 보완 대책을 병행한다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하게 나아가는 결단력이다. 눈앞의 작은 손실에 매몰되어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뜻으로 새로운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만이 정체를 벗어나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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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변화의 파도 앞, 주저함보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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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가 일하는 사회, 인간 역할의 재정의
- [교육연합신문=오양환 기고] “그분이 아주 뛰어난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IT 혁신을 맡겨도 될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너무 우수해서 오히려 ‘위험’합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이 기묘한 대화는 어느 기업의 채용 자문 현장에서 실제로 오간 것이다. 최고의 찬사가 되어야 할 ‘우수함’이 어째서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일까. 이 역설적인 경고는 AI가 일의 심장부로 침투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서늘한 미래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재 한 명이 조직을 살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단 한 명의 초우수 인재와 AI의 결합이 기존의 조직 체계를 통째로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시대다. 어느 한 중견기업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증명한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한 명의 인재가 투입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그 기업은 인류가 수 세기 동안 정립해온 ‘고용’과 ‘협업’이라는 근간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10명의 업무를 대체한 단 하나의 지능 그 인재는 부임 직후 회사의 모든 사무 공정을 현미경처럼 분석했다. 그리고 AI 기반의 가상 직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10명이 넘던 관리·사무직 부서는 순식간에 해체되었고, 사무실에는 단 한 명의 임원만 남게 되었다. 전화 응대는 남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상황에 맞게 톤을 조절하는 AI가 맡았고, 복잡한 문서 작성과 보고, 고객 소통은 실시간으로 처리되었다. 심지어 정기 세무조사를 위해 방문한 세무 공무원들조차 AI의 완벽한 응대에 압도당했다. 수만 페이지의 회계 자료를 단 몇 초 만에 분석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AI 앞에서 인간의 추궁은 무력했다. 법적으로도 문제는 없다. 기업은 효율화를 선택할 자유가 있고, AI 활용을 규제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은 사무직에 그치지 않았다. AI가 공정 설계와 로봇 제어를 직접 결합하면서 블루칼라 업무까지 빠르게 자동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과 6개월 만에 ‘사장 혼자만 남은 회사’가 등장했다. 인간 직원이 사라진 자리를 무한한 지능과 지치지 않는 기계가 채운 것이다. ‘AI 자기 복제’가 가져올 인재의 대홍수 이 이야기의 결말은 더욱 큰 충격을 안긴다. 그 초우수 인재는 결국 자신의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 방식을 학습한 이른바 ‘AI 자기 복제본’을 만들어냈다. 이제 기업은 사람을 새로 채용하고 교육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 검증된 인재의 사고 능력을 그대로 복제한 ‘가상 인재’를 도입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고 빠르며, 확장성 면에서도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 명의 천재와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 천재를 본뜬 수십, 수백 개의 가상 지능이 동시에 일하는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가져왔던 ‘희소성’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다. 기술의 속도가 아닌, ‘사회적 준비’의 속도를 고민할 때 이 사례는 단순히 어느 효율적인 기업의 성공담이 아니다. AI가 가져올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 뒤에 숨겨진 ‘일자리 실종’과 ‘구조적 소외’를 예고하는 경고등이다. 국가 입장에서는 기업 이익이 늘어 세수가 확보될지 모르나, 그 안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의 존재는 거대한 사회적 숙제로 남게된다. 이제 우리는 AI를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로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AI를 도구로 삼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로 인간을 재정립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AI 시대에 인간이 준비해야 할 핵심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 그리고 ‘현장과의 공감 능력’을 갖춘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다. AI 사회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술의 속도에 발맞춰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재설계하는 사회적 합의의 속도다. 미래의 공장은 AI와 인간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성세대와 리더들의 마지막 책무일 것이다. ▣ 오양환 ◇ (유)코아시스템 CEO ◇ 경남대학교 AI·SW융합전문대학원 원우회장 ◇ (사)한국인공지능기술산업협회 부산경남 지회장 ◇ 前인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 ◇ 前창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 ◇ 일본 동경 Coredump SW사 근무 ◇ 창녕군 남지초·중학교·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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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셀프 심사’가 만든 국가대표…공정성은 어디에 있었나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국가대표 선발 과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공정성과 투명성이 최우선으로 담보되어야 하는 공적 절차다. 특히 국가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지도자를 선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국민적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수중핀수영협회의 이번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 과정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스스로 허물었다. 심사를 맡은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각각 감독과 코치에 지원했고, 심사 과정에도 참여한 뒤 최종 선임됐다.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셀프 심사’ 구조다. 이해관계자는 심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공공 영역의 최소 기준이다. 이는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공정성을 지탱하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 선이 무너진 순간,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란이 커지자 협회는 선발을 무효화하고 재공모에 나섰다. 그러나 그 사이 발생한 행정 혼선과 시간 손실은 오롯이 선수단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대회를 앞둔 국가대표에게 지도자 공백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에 직결되는 심각한 변수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해충돌 관리 실패, 독립성 없는 심사 구조, 불투명한 기준, 그리고 사전 검증 부재까지.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더욱이 여성 선수 비중이 상당한 대표팀에서 여성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선발되지 않았다는 점은 시대 흐름과도 어긋난다. 적합 판정을 받은 후보가 있음에도 관례를 이유로 배제됐다면, 이는 공정성 이전에 구조적 문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 선발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도 존중받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이해충돌 방지 장치의 실질적 작동,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독립적 심사 구조, 그리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국가대표는 특정인의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자리다. 그 자리가 ‘누가 뽑았는지’가 아니라 ‘왜 뽑혔는지’로 설명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뢰는 회복된다. 이번 논란이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체육계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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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셀프 심사’가 만든 국가대표…공정성은 어디에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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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육감 선거, 정치 이념을 넘어 교육 행정과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백년대계인 교육의 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가 매번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이념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교육은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제는 정치가와 이념가들을 교육 현장에서 배제하고, 오직 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고민하는 진정한 교육 전문가에게 지휘봉을 맡겨야 할 때다. 무엇보다 교육감 자리에 정치적 야욕을 가진 정치가나 특정 이념에 편향된 인사가 들어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하며, 학생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갖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편향된 이념 교육은 아이들의 비판적 사고를 가로막고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다. 따라서 차기 교육감은 풍부한 경험을 갖춘 교육행정가 출신이어야 한다. 교육청이라는 거대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고 일선 학교 현장의 복잡한 현안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행정적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이 교육감이 될 경우, 조직 장악력 부족으로 인한 혼선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의 피해로 돌아간다. 정치권의 입김이 교육을 흔들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행정 전문가가 소신 있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다. 진정한 교육감이라면 눈앞의 지지율에 연연하기보다 교육의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갖춰야 한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맞설 수 있도록 문해력의 뿌리인 고전 읽기를 강화하고, 국가 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수학과 과학 등 기초 학문 교육에 매진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질문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다. 이번 선거가 정치색을 빼고 교육의 본질과 행정의 전문성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의 본질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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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육감 선거, 정치 이념을 넘어 교육 행정과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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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서울대 10개 만들기’, 지방소멸 막을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거점국립대를 향한 파격적 재정 투입은 대학 서열화와 지방 소멸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국가적 승부수다. 정부가 발표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은 단순히 대학에 예산을 나눠주는 차원을 넘어선다. 9개 거점국립대 중 우선 선정된 3개교에 5년간 매년 1,000억 원씩, 총 5,000억 원을 집중 투자하여 교육 여건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매우 담대한 시도다. 이는 수도권 집중이라는 병폐를 끊어내기 위한 불가피하고도 시급한 선택이다. 대학의 경쟁력이 곧 지역의 경쟁력이며, 양질의 교육 인프라 없이는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와 거점국립대 간의 학생 1인당 교육비 격차는 약 3배에 달한다. 인재들이 지역을 떠나 ‘인서울’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히 간판 때문만이 아니라, 압도적인 교육 자원과 취업 기회의 차이 때문이다. 거점국립대를 세계적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육성하고 지역 전략 산업(성장엔진)과 연계한다면, 인재가 머물고 기업이 모여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특정 국립대에만 예산을 몰아주는 방식은 사립대학의 고사를 초래하고 교육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이 배제된 채 국립대에만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것을 경계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이미 한계 상황에 부딪힌 지방 사립대들이 이번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소멸이 가속화되어, 결국 ‘지방대 100개 죽이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대학을 동시에 살릴 수 없는 현실에서, 거점국립대를 ‘허브’로 삼는 전략적 선택과 집중은 고육지책이다. 한정된 국가 예산을 모든 대학에 균등 배분하는 것은 하향 평준화만을 초래할 뿐이다. 먼저 거점국립대를 성공 모델로 구축한 뒤, 이를 중심으로 지역 내 사립대와 교육 과정 및 장비를 공유하는 ‘공유대학’ 체제를 확산시켜야 한다. 거점 대학이 무너지면 지역 교육 생태계 전체가 붕괴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먼저 일으켜 세우는 것은 사립대를 포함한 지역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우선순위다. 정부는 단순 예산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이번 정책을 국토 균형 발전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려면 1회성 지원이 아닌, 2030년까지 계획된 4조 원 이상의 투자가 차질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또한, 대학의 자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규제 혁파와 함께 졸업생들이 지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산업 정책과의 유기적인 결합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을지는 이 ‘서울대 10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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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서울대 10개 만들기’, 지방소멸 막을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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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의 미래!’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에서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과거의 경험이 남긴 '기억'이라는 강력한 데이터베이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공의 기억과 실패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우리 뇌의 회로에 관여하여 개인의 미래의 행동 방향을 결정짓게 됩니다. 성공을 경험할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을 분출합니다. 이는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하여 "이 행동은 유익하니 다시 반복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자기효능감'을 만들어 냅니다. "위대한 일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자기효능감은 타고나는 기질이라기보다 훈련을 통해 근육처럼 키울 수 있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반면, 실패의 기억은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실패의 기억은 생존에 위협적인 신호로 인식되어 성공보다 훨씬 선명하게 저장되는데, 이를 잘못 관리하면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이들의 편도체를 잠재우고 전두엽을 깨우는 것은 교육자의 따뜻한 시선과 일관된 지지입니다. 교육자의 태도는 아이가 실패의 기억에 함몰될지, 아니면 그 실패를 딛고 성장의 디딤돌로 삼을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선물하는 것은 거창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어른들의 단단한 지지와 믿음입니다. 실패의 기억을 '나의 무능력'이 아닌 '수정해야 하는, 충분히 변화가 가능한 경험적 데이터'로 해석할 때, 뇌는 비로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마인드셋'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실패의 기억을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의지'로 연결한 인물은 《논어(論語)》와 《회남자(淮南子)》 등에 등장하는 위나라의 현자 거백옥입니다. 그의 삶은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한 인간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거백옥은 쉰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난 49년 동안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이 불편한 기억들을 회피하는 대신, 매일 아침 "어제의 나의 실패를 직시하는 것"에서 변화의 의지를 끌어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논어》 〈헌문(憲問)〉편에서 공자와 거백옥의 사자가 나누는 대화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蘧伯玉 使人於孔子 (거백옥 사인어공자)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자를 보내니, 孔子 與之坐而問焉 曰 (공자 여지좌이문언 왈) 공자가 그와 더불어 앉아 묻기를, "夫子 何爲?" (부자 하위?) "선생(거백옥)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對曰 "夫子 欲寡其過而未能也" (대왈 부자 욕과기과이미능야) 사자가 대답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허물을 줄이고자 하시나, 아직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십니다.“ 거백옥은 남들이 우러러보는 현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신의 뇌 속에 저장된 '실패'의 기억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억들을 현재의 자신을 담금질하는 정(釘)으로 삼아, 매일같이 스스로를 새롭게 빚어냈습니다. 거백옥의 ‘직시’가 주는 메시지는 메타인지의 용기입니다. 공자와 거백옥의 대화는 ‘완성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 첫째는 불편함의 수용입니다. 자신의 49년 치 실패를 낱낱이 꺼내 놓는 것은 뇌의 방어기제를 거스르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직시’만이 고도의 메타인지를 활성화합니다. 둘째로, 겸손한 혁신입니다. “허물을 줄이고자 하나 능히 하지 못한다.”는 고백은, 변화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정질(담금질)하는 태도가 진정한 현자의 조건임을 말해줍니다. 현대의 스티브 잡스 역시 거백옥과 닮은 꼴의 궤적을 보입니다. 1985년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해고당한 일은 그에게 치욕적인 실패의 기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억에 매몰되어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독단적이었던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잡스는 훗날 이 시기를 통해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가벼움'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잡스의 사례는 ‘실패를 통한 유연성의 획득’을 시사합니다. 그 첫째는 중압감에서 가벼움으로입니다. 성공의 신화에 갇혀 있던 자아를 버리고, 실패라는 치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유’로 치환입니다. 둘째는 경직된 회로의 파괴입니다. 과거의 독단적 성공 기억이 만든 경직된 사고 회로를 실패라는 충격요법으로 끊어내고, 더 창의적이고 수용적인 리더로 거듭나는 ‘자기 혁신’의 모델을 보여줍니다. 이는 거백옥이 쉰 살에 과거의 허물을 씻어내고자 했던 노력과 궤를 같이합니다. 실패의 기억을 통해 기존의 경직된 사고 회로를 끊어내고,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리더로 거듭난 것입니다. 거백옥과 공자가 지향한 삶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입니다. 남들의 칭송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입니다. “지나온 세월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역설적으로 “앞으로의 시간은 다를 수 있다.”는 강력한 낙관론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미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토대로 오늘 우리가 내리는 해석과 실천의 총합입니다. 거백옥이 매일 자신의 허물을 줄여가며 스스로를 혁신했듯이, 우리 역시 실패의 기억을 '나를 무너뜨리는 상처'가 아닌 '나를 완성하는 동력'으로 삼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육자와 부모는 아이의 편도체를 안정시키는 ‘따뜻한 지지대’가 되어야 하며, 아이의 실패를 ‘수정 가능한 데이터’로 인식하게 돕는 것이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주시는 선생님들의 그 ‘따뜻한 시선’이 아이들의 편도체를 잠재우고 위대한 전두엽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잊지 마시길 응원합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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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의 미래!’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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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부경(天符經) 철학으로 본 삶과 배움의 가도(街道)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태양과 만물 공생의 기저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빛(태양)이라고 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태양 에너지를 근간으로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살이(삶) 근거의 99.86%가 태양에 의지한다고 합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 광선을 유기 화합물로 전환하며, 동물과 인간은 그 에너지를 섭취함으로써 삶을 영위합니다. 해(태양)는 차별 없이 모든 만물을 비추며, 자신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조건 없는 사랑’과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천부경에는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의 본래 마음은 본래 밝은 태양과 같다.”는 뜻으로 광명성과 보편성, 자각의 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어둠을 밝히는 태양과 같은 순수한 지혜와 밝음이 이미 존재한다는 선언이며, 이는 광명성(光明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편성은 태양이 하늘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비추듯, 우리 마음의 본질 또한 사사로운 욕심에 가려지지 않는다면 만물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각의 철학은 외부에 있는 태양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태양(본성)을 깨우고 회복하는 것이 인간 완성의 길임을 가르칩니다. 또한 천부경은 운명공동체의 가치관을 말합니다. 천부경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로 시작해서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로 끝납니다. 이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운명공동체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 첫째로 가치관을 이야기합니다. ‘나'와 ‘남’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된 하나라는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고 외칩니다. 또한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공감의 자세, 그리고 조화와 상생을 중시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독점보다는 공유를 실천하는 삶이 천부경적 공동체 삶의 핵심입니다.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 주는 현대적 교훈은 현대인들에게 ‘자존감의 회복’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안의 밝은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열정(빛)을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자아실현과 사회 공헌의 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처럼 하는 배움의 자세와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배움은 해처럼 하는 것’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학습의 자세를 시사합니다. 해가 매일 어김없이 뜨듯, 배움 또한 쉼 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속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가리지 않고 섭취하되,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무차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운 것을 가슴 속에만 가두지 않고, 행동과 실천을 통해 세상에 이로운 영향력을 발휘(방사)해야 합니다. 즉 발산해야 합니다. 저 하늘에 해를 봤더니, 해는 말이야, 우리를 위해서 일하지 않아. 그냥 해는 자기 일을 할 뿐이야. 그런데 그의 영향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해처럼 살아야 돼’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면서, 교훈이면서, 명령이면서, 인류에게 주는 천명(天命)입니다. 모든 경전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를 알아야 우리 홍익인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 나무 막연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게 관념적으로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교육법 1조에 ‘홍익인간’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관념적으로만 이해하니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 ‘홍익인간’, 좋은 말이지. 그런데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한자를 우리처럼 하면, ‘홍익’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해처럼 하나 됨’,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홍익’이라고 문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 가르침, 으뜸가는 가르침이 천부경에 담겨 있고, 천부경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 삶의 방식,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때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한 결정적 해답이 ‘해처럼’입니다.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들은 내일부터 해가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나도 해처럼 살아야지’, ‘해는 어떻게 하고 있지?’ 해를 보는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망치로 한 방 맞은 것 같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누구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고, 매번 반복해서 듣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자기 내면에서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천부경의 결정적 명령!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 그것이 ‘해와 같이’, ‘해처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치고, 천부경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81자의 한자를 자기 마음대로 풉니다. 수백 명이 천부경을 썼는데, 책마다 내용이 다릅니다. 천부경은 한국 철학의 핵심이며, 세계인의 양식입니다. 양식은 일상입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은 가치관과 인생관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우리말(한국어)과 우리글(한글)은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관입니다. 하늘(·), 땅(ㅡ), 사람(ㅣ)이 어우러진 글자 구조처럼,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순응하며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줍니다. 둘째, 수평적 소통입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만든 한글은 ‘지식의 민주화’와 ‘모두가 존엄한 세상’을 꿈꾸는 인본주의적 인생관을 반영합니다. 弘益人間(홍익인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홍익인간은 단순히 ‘남을 돕는다.’는 수준을 넘어, ‘인간 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한다.’는 통치 철학이자 삶의 목적입니다. 이는 나의 존재 가치를 타인의 행복 속에서 찾는 고차원적인 이타주의입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ility)과 지구촌 공생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설마 한국인으로서 ‘살림’, ‘살림살이’라는 말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홍익을 어렵게(?) 느낄만한 많은 장삼이사들을 배려해서 만든 용어가 ‘살림’이고 ‘살림살이’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삶, 살아감을 ‘살림’ 또는 ‘살림살이’라고 말합니다. ‘살림’, ‘살림살이’가 무슨 말인가? 누군가를, 무언가를 ‘살리는 것을 자기 삶의 목표로 하겠다.’는 다짐이 바로 ‘살림’이고 ‘살림살이’입니다. 전쟁과 폭력, 이해타산이 난무하는 정글과도 같은 세상에서 권력이나 명예나 각종의 이익 추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겠다는 각오가 훨씬 현실적으로 보이는데, 한국인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이어서 평생 수신제가도 힘겨울 듯한 사람들조차도 자기 삶의 목표를 ‘살림’이라는 거창한 말로 부르는 것일까요? 더구나 누구도 회피할 수조차 없도록 아예 생활 용어로 못 박아, 노상 고백하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장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국인의 공동체적 철학, 사고의 경향을 알지 못하고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홍익’의 개념을 정립한 이들이 누구인가? ‘홍익’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면 ‘홍익’ 본연의 근본 이념에 반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근기가 조금 부족한 사람들일지라도 ‘홍익’에 동참할 수 있는 방편으로 배려한 장치가 바로 ‘살림’이라는 말이다. 살면서 노상 ‘살림’을 생각하라는 의미다. ‘살림살이’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말 ‘살림’은 ‘살리다.’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진정한 경제 활동이나 일상생활(살림살이)의 목적은 나를 포함한 주변의 생명을 ‘살려내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죽이는 경쟁이 아니라 살리는 상생의 미학이 진정한 살림살이의 지혜입니다. 천부경의 핵심 명령은 ‘해처럼 살아라.’입니다. 해처럼 산다는 것은 ‘자각(自覺)과 방사(放射)’의 삶입니다. ‘자각’은 ‘자발적 삶’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처럼 주도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따뜻한 포용’입니다. 차가운 이성이 아닌 따뜻한 감성으로 만물을 품어주는 삶입니다. 셋째는 ‘어둠의 소멸’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갈등과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과 희망이 샘솟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천부경이 제시하는 최종적인 천명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입니다.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대행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천명은 내 안의 태양을 찾아(本心本太陽),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며(弘益人間), 모든 생명을 살리는(살림살이) 것입니다. 우리는 한 점의 빛으로 시작해 온 우주를 밝히고, 다시 그 거대한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부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준엄하고도 따뜻한 명령입니다. 天符經을 찾아, 天符經의 부름을 따라 힘찬 발걸음을 옮겨봅시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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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부경(天符經) 철학으로 본 삶과 배움의 가도(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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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교실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교단에 서는 사람에게 학생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며,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우리가 잠시 맡아 기르는 존재다. 그래서 교사는 늘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배웅한다. “잘 다녀오너라.” 그 말은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4년 봄, 그 약속은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오지 못한 비극이었다. 그날 이후 교사들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결석’이 남았다. 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는가. 아이들의 잘못은 없었다.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안전보다 효율을 앞세운 구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대응 체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회가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재난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다. 사회는 하나의 교실이며, 국가는 가장 큰 교육자다. 반복되는 사고는 잘못된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책임을 묻고, 교훈을 제도화해야 한다. 진상 규명은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며,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조치는 반복을 막기 위한 사회적 기준이다. 국가의 사과와 배상 역시 공동체 책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기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명안전 기본법 제정, 독립적인 재난조사 체계 구축, 예방 중심의 안전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세월호 12주기를 맞아 다시 다짐한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던 그날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남은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겠다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해 왔다. “너희는 우리의 미래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그 미래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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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교실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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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험이 경쟁력이다…우리 아이 교육,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김미혜 기고] 입시 중심 교육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점수와 등급, 스펙을 쌓는 데 집중해 온 결과, 아이들은 많은 지식을 갖추었지만 정작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식은 넘치지만 질문은 줄어들고 있다. 정답을 찾는 데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데는 서툰 것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제 교육의 방향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 그리고 그 경험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다. ■ 교실을 넘어 세계로 나가는 교육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적응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며,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역량은 단순한 교실 수업만으로는 길러지기 어렵다. 실제 상황 속에서 부딪히고, 소통하고, 해결해 나가는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외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단순한 ‘어학연수’를 넘어, 실제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또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 속에서 배우는 교육은 교과서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명문 사립고에서 운영되는 글로벌 리더십 캠프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학생들은 3주 동안 현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미국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한다. 이 과정에서 영어는 ‘과목’이 아닌 ‘도구’가 되고, 학습은 ‘시험’이 아닌 ‘경험’으로 전환된다. ■ ‘짧지만 깊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성장 일각에서는 “3주라는 시간이 과연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난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처음에는 서툴고 두렵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워간다. 낯선 언어로 말을 걸고, 다른 문화 속에서 관계를 맺고, 스스로 하루를 계획하며 생활하는 경험은 아이에게 강한 자기 효능감을 심어준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한 학습 동기를 넘어, 인생 전반을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래 외국 학생들과의 교류는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앞으로의 글로벌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다. ■ 학부모의 선택이 아이의 방향을 바꾼다 결국 교육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과거에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다. 변화가 빠른 사회일수록, 정해진 길보다 스스로 길을 찾는 힘이 더욱 요구된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스스로 꿈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오늘날 학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보호를 넘어 ‘기회의 제공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경험이 스펙을 넘어 ‘자산’이 되는 시대 이제 경험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아이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입시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단순한 성적보다 과정과 성장, 그리고 경험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 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은 단순한 해외 체험이 아닌, 아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주라는 시간은 짧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얻는 깨달음과 변화는 아이의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흔적으로 남는다. ▣ 김미혜 ◇ 국제진로전문가 ◇ 위스콘신대학교 한국입학홍보처 이사 ◇ UHR Korea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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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험이 경쟁력이다…우리 아이 교육,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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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2026년의 교정, ‘기술의 속도’보다 ‘교육의 깊이’를 고민할 때
- [교육연합신문=사설] 2026년의 봄이 교정에 당도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새 학기의 설렘 속에 올해는 유독 묵직한 시대적 과제가 우리 교육계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인공지능(AI)이 일상의 인프라가 되고 학령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파고가 교육 현장을 휩쓰는 지금, 교육 당국은 단순한 정책 집행자를 넘어 미래 세대의 삶을 설계하는 '문명의 건축가'로서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 먼저, AI 디지털 교과서의 전면 도입에 따른 ‘기술의 인간화’에 전력을 다해주길 바란다. 2026년은 디지털 전환의 과도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기술은 도구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화려한 인터페이스와 맞춤형 알고리즘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하는 힘과 비판적 성찰 능력을 자극하는 지적 지렛대가 되도록 세심한 관리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 기계가 답을 주는 시대일수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올바른 질문을 가르치는 철학적 교육 모델이 시급하다. 둘째,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교육 생태계의 질적 재편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을 위기가 아닌, 개별 맞춤형 교육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거대 담론 위주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단 한 명의 아이도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촘촘한 교육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들이 행정 업무에 함몰되지 않고 오롯이 학생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수업의 질에 집중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당국의 최우선 과제다. 셋째, 학교 공동체의 신뢰 회복과 정서적 치유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교육 현장은 갈등과 상처로 얼룩진 순간이 적지 않았다. 교육 당국은 교권 보호와 학생 인권이 대립하는 가치가 아닌, 상호 존중이라는 하나의 토양 위에서 피어나는 꽃임을 증명해야 한다. 법과 규정으로 통제하는 차가운 행정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심리적 자존감을 높여주는 따뜻한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당장 눈앞의 성과나 수치에 연연하는 근시안적 행정은 미래 세대에게 빚을 지우는 일이다. 2026년 새 학기, 교육 당국은 변화하는 기술에 기민하게 대응하되 교육의 본질인 ‘사람다움’이라는 가치는 끝까지 수호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교실의 창을 여는 아이들의 눈동자에 불안이 아닌 희망이 맺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교육 당국에 부여된 가장 엄중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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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2026년의 교정, ‘기술의 속도’보다 ‘교육의 깊이’를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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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다시 문해력인가"…시선추적기술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 〔교육연합신문=석윤찬 기고〕 교실에서 우리는 자주 비슷한 장면을 마주한다. 아이는 교과서를 펴고 고개를 숙인 채 줄을 따라가며 읽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읽는 듯하다. 그러나 내용을 물으면 답이 비어 있고, 문제를 풀게 하면 엉뚱한 선택지를 고른다. 이때 교사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이 아이는 읽지 않은 것일까,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읽는 척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해력의 문제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해력이 더 이상 국어 한 과목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문장제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 사회 교과서의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 과학 실험 절차를 해석하는 능력,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선별하고 신뢰도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거의 모든 학습은 문해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문해력은 특정 교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전반을 떠받치는 기초 역량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의 문해력을 어떻게 보아 왔을까. 대체로 결과 중심이었다. 시험 점수, 독후감, 발표, 수행평가, 교사의 관찰 기록이 주요 판단 근거였다. 물론 이런 지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만으로는 읽기의 과정을 충분히 볼 수 없다. 문장을 천천히 읽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읽기 능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낱말은 읽지만 문장 의미를 통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오히려 매우 신중하게 읽는 좋은 독자일 수도 있다. 반대로 빨리 읽는 아이가 반드시 잘 읽는 것도 아니다. 빠르게 훑으면서 핵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정답을 맞혔는가만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읽었는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선추적기술은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선추적은 아이의 읽기 결과가 아니라 읽기 과정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학생이 화면이나 글의 어느 부분을 오래 보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느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지, 어떤 순서로 정보를 탐색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던 읽기의 흔적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물론 시선추적기술이 교사를 대신해 문해력을 자동 판정해 주는 마법의 도구는 아니다. 교육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아이의 읽기 행동은 컨디션, 배경지식, 과제 난도, 정서 상태, 수업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되읽기라도 어떤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수 있고, 다른 학생에게는 줄을 놓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시선 데이터는 정답이 아니라 해석의 단서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교육적으로 읽어 내는 교사의 전문성이다. 그럼에도 시선추적기술의 의미는 크다. 지금까지 교사는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와 ‘실제로 읽고 있는 아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교실 안에 20명, 30명의 학생이 있을 때 개별 학생의 눈 움직임까지 살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선 데이터는 읽기의 미세한 흔적을 보여 준다. 어떤 학생은 첫 문단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물고, 어떤 학생은 핵심 문장을 건너뛰며, 어떤 학생은 문제의 선택지를 먼저 훑고 본문을 대충 읽는다. 이런 정보는 단순한 연구자료가 아니라 수업 설계와 피드백, 상담의 언어를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좀 더 집중해서 읽어 보자”는 말은 흔하지만 학생에게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반면 “너는 제목과 첫 문단은 오래 보았지만, 문제의 조건이 있는 부분은 빨리 지나갔구나” 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멈추기보다 앞뒤 문맥을 먼저 보자”와 같은 피드백은 훨씬 구체적이다. 시선추적기술은 문해력 지도를 태도 중심의 지시에서 전략 중심의 지도 쪽으로 옮겨 갈 수 있게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의 문해력 담론은 때로 지나치게 무겁고,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AI 시대이니 새로운 기술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깊은 이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을 들인다고 곧바로 읽기 능력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읽기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일이다. 문해력은 글자를 읽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미를 연결하고, 맥락을 추론하고,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고, 스스로 이해를 점검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미세하다. 그래서 이제 문해력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실제로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시선추적기술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그것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학생의 읽기 과정을 더 면밀히 보고, 더 섬세하게 이해하며, 더 정확하게 돕기 위해서다. 앞으로의 문해력 교육은 두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하나는 인간 교사의 해석력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던 학습 과정을 드러내는 기술이다. 교사는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한다. 다만 앞으로의 좋은 교사는 아이의 답안지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읽기 과정까지 읽어 내는 사람일 것이다. 문해력의 미래는 더 많은 시험지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가 한 문장을 읽을 때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되돌아가며 무엇을 놓치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 석윤찬 ◇ 서울대 전기공학부 ◇ 비주얼캠프 대표 ◇ 시선추적(Eye-tracking) 기술 분야 창업가 ◇ AI 기반 시선추적 소프트웨어 “SeeSo” 개발 ◇ 문해력코스웨어 리드포스쿨 공급 ◇ 기술혁신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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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다시 문해력인가"…시선추적기술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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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아이들의 ‘놀 권리’ 되찾아줄 영유아 사교육 규제 반드시 실행돼야
- [교육연합신문=사설] 영유아 대상 지식 주입형 교육 규제는 정당하다. 정부의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은 시의적절하다. 만 3세 미만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 만 3세 이상도 하루 3시간 초과 교습을 제한함이 마땅하다. 영어유치원의 과도한 선행학습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아동의 발달권 보호와 과열된 사교육 시장 정상화가 시급하다. 영유아기는 신체와 정서가 고르게 발달해야 하는 시기다. 발달단계를 무시한 지식 주입은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 현재의 ‘4세·7세 고시’는 아동의 발달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장시간 학습은 영유아의 창의성과 사회성 발달을 가로막는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고 사회적 불안을 조장한다. 교육의 자유 침해와 영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조기 교육이 글로벌시대의 경쟁력이라는 시각도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 음성적인 고액 과외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영어 학습 시간이 줄어들면 공교육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묻는다. 발달단계에 어긋난 교육은 경쟁력이 아니라 학대다. 하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억지 암기가 아닌 건강한 두뇌 발달에서 나온다. 뇌 과학 전문가들도 영유아기 과잉 학습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선택권이라는 명분 아래 아이들의 휴식권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음성적 과외는 강력한 단속과 신고포상금제로 충분히 억제 가능하다. 공교육 내실화와 병행한다면 학습 결손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법적 근거 마련을 통해 영유아의 건강한 성장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부는 학원법 개정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지식 주입형 교습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위반 시 매출액 50% 수준의 과징금 등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영유아의 ‘놀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번 대책이 아이들을 사교육 광풍에서 구출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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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아이들의 ‘놀 권리’ 되찾아줄 영유아 사교육 규제 반드시 실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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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늦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
-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사람은 언제까지 배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부산 남구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에는 조금 특별한 학생들이 있다. 대부분 노년의 학습자들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시대 속에서 배움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이 다시 교실에 앉는다. 오상호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박춘화 할머니는 만주에서의 유년 시절을 지나 평생을 생계에 묶여 살아왔다. 두 사람에게 학교는 언제나 ‘다음에’로 미뤄진 삶의 영역이었다. 처음은 쉽지 않다. 글자는 낯설고, 손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한 글자를 쓰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교실에서는 그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다. 배움의 속도가 아니라, 배움의 지속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선언이다. 해람학교의 교실에서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과정이다.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다. 입학식에서 교장은 말한다.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는 다시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왔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걸어왔느냐입니다.” ‘시와 음악의 밤’과 같은 자리에서는 배움이 단순히 글자를 익히는 것을 넘어, 삶을 노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배움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이어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삶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오랫동안 ‘못 배운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따라다녔던 자기 인식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다. 그 변화는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드러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를 읽고, 거리의 간판을 소리 내어 읽고, 키오스크 앞에서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제 와서 배우느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편지를 쓰고 싶어서입니다.” 자식들에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글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 편지는 과거의 자신에게 닿는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어린 날의 자신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방식으로. 해람학교의 교실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장소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다림이 있다. 조급함이 아닌 기다림, 비교가 아닌 존중, 경쟁이 아닌 동행. 이러한 교육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다. 성인 문해교육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사회 참여를 회복하는 공공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는 오랜 시간 한글교육을 이어오며, 늦게 시작한 배움이 결코 늦지 않았음을 증명해 왔다. 이곳에서 졸업장은 학력의 증명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했다는 기록이다.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 다만 시작이 있을 뿐이다. 오늘도 이 교실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간다. 서툴지만 분명하게, 그 문장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 황영식 ◇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 교장 ◇ (재)하정육영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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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늦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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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마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 [교육연합신문=고선화 기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루하루 기적이 쌓이는 과정이다. 아이마다 성장의 속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시간은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한다. 작은 변화 하나에 담긴 기쁨,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결코 한 가정만의 몫이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성장하기까지는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제도의 뒷받침이 함께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다.누군가는 말이 느리고, 누군가는 움직임이 불편하다. 또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고, 교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함께 웃고 싶고, 함께 배우고 싶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바람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안과 밖을 구분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할 때다. 아이를 기준으로 세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 학교는 더 따뜻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돌봄과 교육 역시 더 이상 가족에게만 맡겨질 문제가 아니다. 그 책임은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 다행히 지역사회 곳곳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함께하는 프로그램, 주민과 봉사자들이 참여하는 돌봄 활동,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손을 잡아주고, 한 걸음을 함께 내딛어 주는 일.그 사소한 실천이 아이들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큰 힘이 된다. 아이들이 차별 없이 웃을 수 있는 사회, 부모가 조금 덜 불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그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곁에 있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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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마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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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200만 원짜리 거짓말을 한다. 영화의전당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16년. 직장 옆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 불리는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 규모만큼이나 사람도 넘쳐난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낮에도 도로가 주차장처럼 막히기 일쑤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5시 야외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나는 오후 2시에 출근한다. 연주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리허설을 지켜본 뒤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차를 가지고 가려면 정오 무렵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두 시간쯤 지나면 백화점 인파로 도로가 꽉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 체증 속에서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백화점 식당가에는 언제나 다양한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1년 전 오늘, 2025년 4월 1일 화요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오전 10시, 부산의료원장이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새로 취임한 배우 출신 대표에게 병원 홍보영상 제작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원의 회생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준비 중이라는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11시에는 서울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생중계 회의가 진행됐다. 예상보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관객들에게 따뜻한 복장을 안내하는 문자 발송과 현장 안내판 설치까지 세세한 논의가 이어졌다. 회의를 마친 뒤 공연팀 동료들과 백화점 식당가로 향했다. 그날의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라면과 우동사리를 추가해 배가 터질 듯 먹고 나왔다. 그러나 배부름도 잠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신호가 찾아왔다. 급히 1층 스타벅스 뒤편 화장실로 향했다. 두 번째 칸에 들어가 앉는 순간, 시야에 낯선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왼쪽 휴지걸이 위에 놓인 큼지막한 손지갑. 순간 손이 멈췄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오만원권 지폐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대략 100장, 500만 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여긴 CCTV 천국이다.’ 짧은 갈등 끝에 나는 안내센터로 향했다. 분실물 습득 신고를 하고 명함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 괜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후 3시, 부산시의회 정책지원담당관 미팅이 있어 자리를 옮겼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운대경찰서 우동지구대였다. 조금 전 습득한 지갑과 관련해 확인할 사항이 있으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보상금. 법적으로 습득자는 일정 비율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20%라면 100만 원. ‘100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구대에 도착하자 경찰관은 신분 확인을 마친 뒤 봉투 하나를 건넸다. 지갑 주인께서 감사 인사와 함께 전해달라고 하셨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오만원권 40장. 200만 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잠시 망설이자 경찰관이 덧붙였다. “보상금은 100만 원이고, 나머지는 법적 기준에 맞게 전달된 금액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갑 주인은 어떤 분입니까?” 경찰관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해운대역 인근 사찰의 스님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스님은 신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봉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때 경찰관이 작은 종이 하나를 건넸다. 사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펼쳤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한 줄을 바라보았다. 만우절. 이 이야기를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사람들은 처음엔 진지하게 듣는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 ‘200만 원 봉투’ 대목에 이르면 분위기는 금세 달아오른다. “대박이다!”, “오늘 저녁은 네가 쏴라!”, “회에 소주 가자!” 그들의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나는 마지막 한 줄을 꺼낸다. "그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었냐면, 만우절.”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한숨과 야유가 터져 나오고, 곧 웃음이 번진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짧은 이야기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웃음으로 끝나는 시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연극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또 하나의 거짓말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웃음을 남기기 위해... ▣ 서승우 ◇ (재)영화의전당 공연본부장 ◇ 동천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 부산시 영화영상정책위원회 위원 ◇ 부산 남구립예술단 운영위원 ◇ 부산연극연극상 선정위원 ◇ 부산창작오페라단 이사 ◇ 前부산문화재단 이사 ◇ 前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운영위원 ◇ 前부산국제연극제조직위원회 부집행위원장 ◇ 前부산연극협회 부회장 ◇ 2025년 국무총리표창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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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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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시간, 보호관찰
- [교육연합신문=김미정 기고] 뒷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한 드라마에 빠져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다양한 이유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이 병동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다. 정신병동 간호사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드라마는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해와 회복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울한 주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의 회복은 극적인 완치가 아니라 조금 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보호관찰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최근 보호관찰 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 문제를 동반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개인과 가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문제가 이제야 사회 밖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과 같은 질환을 숨기거나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치료를 통해 증상이 조절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이해가 확산되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고 있어 사회가 한 걸음 더 책임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관련된 강력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불안은 결국 ‘누가, 어떻게, 계속 이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살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호관찰은 바로 그 지점을 담당하며 치료와 사회내 관리를 이어주는 안전장치의 기능을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대상자에 대한 보호관찰은 판결문을 검토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범죄의 내용, 양형의 이유를 꼼꼼히 살피고, 보호관찰 기간 중 지도·감독의 방향과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대상자는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하여 판단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로 판명되면 보호관찰 기간 중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기적인 진료 및 복약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보호관찰관이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다. 2023년부터는 보호관찰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정신질환자의 보호관찰 종료사실을 경찰과 지자체에 통보하여, 종료 후에도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소유예 마약사범의 회복과 사회복귀를 위한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보호관찰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재범이나 보호관찰관의 정당한 지시를 위반할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보호관찰 대상자를 지역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보호관찰관은 생계지원이 필요하면 행정복지센터와 협력하고, 치료 지속여부를 더 면밀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한다. 취업과 자립을 돕기 위해 법무보호복지공단 등 다양한 지역자원과 협력하는 일도 보호관찰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다. 드라마 속 의료진이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의미를 두듯, 보호관찰관의 현장도 그렇게 흘러간다. 보호관찰 대상자의 극적인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없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일,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정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일이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일, 그것이 지금 보호관찰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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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시간, 보호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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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AI라는 거울 앞에 선 교육, ‘인간의 자리’를 묻다
- [교육연합신문=시론] 인공지능(AI)이 교실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질문 한 줄에 일목요연한 답이 쏟아지고, 개인별 맞춤형 학습 알고리즘이 교사의 분필을 대신한다. 바야흐로 ‘교육의 대전환기’다. 그러나 기술의 화려한 편리함 이면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교육의 역설’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AI가 던진 효율의 덫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을 다시 정립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먼저, ‘지식의 과잉이 낳은 사고의 빈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교육이 망망대해에서 지식이라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면, 이제 AI는 가공된 통조림을 입 앞까지 배달해 준다. 결과는 참담하다. 학생들은 정답을 얻는 속도는 빨라졌으나, 정작 ‘왜 그러한가’를 묻는 사유의 근육은 퇴화하고 있다. 스스로 고민하며 지식을 체화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AI가 뱉어낸 문장을 자기 생각이라 착각하는 ‘인지적 태만’이 확산되고 있다. ‘효율의 역설’ 또한 뼈아픈 대목이다. 학습에서 시행착오와 실패는 성장을 위한 필수 자양분이다. 그러나 AI는 최단 경로의 정답만을 제시하며 학습자를 ‘지름길’로만 안내한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서툰 문장을 고쳐 쓰며 느꼈던 그 고통스러운 희열이 사라지고 있다. 고생 없는 학습은 머리에 남지 않는다. 지름길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인생의 복잡한 난제를 만났을 때 과연 스스로 해결할 끈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평가의 무력화’는 교육 시스템의 근간을 흔든다. AI가 대필한 과제물과 인간의 노력이 뒤섞인 성적표는 더 이상 학생의 역량을 증명하지 못한다. 결과물의 완벽함이 오히려 학습자의 실력을 가리는 장벽이 된 셈이다. 이제 결과 중심의 평가는 한계에 다다랐다. 학습의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서 학생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중심의 평가’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관계의 결핍’이다. AI 튜터는 학생의 취약점을 정확히 짚어내지만, 낙심한 학생의 어깨를 두드려줄 손이 없다. 교육은 단순한 데이터의 전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속에서 피어나는 영감의 과정이다. 친구와 논쟁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스승의 삶을 보며 가치관을 정립하는 ‘사회적 지성’은 알고리즘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AI 시대 교육의 사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 AI가 ‘How(어떻게)’를 독점할 때, 인간은 ‘Why(왜)’를 물어야 한다. 학교는 지식을 주입하는 창고가 아니라, AI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윤리적 가치를 판단하는 ‘사유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기술이 지능의 영역을 대신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 기계가 가질 수 없는 공감과 비판적 사고, 그리고 끈기 있게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AI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우리 교육이 지켜내야 할 마지막 보루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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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AI라는 거울 앞에 선 교육, ‘인간의 자리’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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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10분도 버거운 긴 글 읽기, ‘숏폼’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고등학생 3명 중 1명이 10분 이상의 글 읽기에 고통을 느낀다는 통계는 우리 교육 현장의 심각한 위기를 보여준다. 뇌가 짧고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긴 호흡의 글을 읽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집중력 저하의 주범은 일상화된 숏폼 콘텐츠다. 설문 응답자의 78.4%가 시청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습관적으로 앱을 켠다고 답했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수동적인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분석해야 하는 텍스트 읽기는 뇌에 과도한 피로감을 주게 된다. 결국 수능 지문이나 교과서 같은 고차원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정보 습득의 매체가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시각도 있다. 짧고 효율적인 영상 콘텐츠가 정보 전달의 핵심이 된 세상에서, 과거의 방식인 긴 글 읽기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영상 매체가 주는 파편화된 지식은 사고의 깊이를 담보하지 못한다. 학업 성취도와 논리적 사고력의 핵심은 긴 텍스트 속에서 맥락을 파악하고 핵심 정보를 도출해내는 능력에 있다. 영상에만 의존하는 뇌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이해하거나 추론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이는 곧 지적 성장의 한계로 직결된다. 따라서 이제는 학생 개인의 의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교육 차원에서 ‘디지털 디톡스’와 ‘심층 독서’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 공부 시간만큼이라도 스마트폰을 격리하고, 신문 기사나 단행본 등 긴 글을 끝까지 완독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문해력은 미래 경쟁력의 근간이며, 그 근간은 숏폼의 자극이 아닌 텍스트를 향한 인내심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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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10분도 버거운 긴 글 읽기, ‘숏폼’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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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아 완성! 시대의 거친 바람을 이기는 나만의 고결한 향기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알고리즘의 시대, ‘나’에 대한 본질을 묻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AI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초연결 시대’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타인이 정해 놓은 유망 직종이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길에서 ‘천직(天職)’을 찾으려 방황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참된 천직은 단 하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직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직업’이 아니라, 내면의 씨앗이 꽃을 피우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天職은 배움과 실천으로 빚어내는 자신만의 길이고 모습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말합니다. ‘태생적 천재’는 없다, 오직 ‘구하는 자’만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흔히 천직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라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인(聖人) 공자조차 『논어』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구하는 자(好古敏以求之者)일 뿐이다.” 공자가 강조한 천직의 핵심은 ‘역동적인 배움’입니다. 배움은 지식을 채우는 행위를 넘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끊임없이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즉, 천직은 완성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자가 ‘배움의 태도’를 말했다면,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배움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으로 구현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난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밤새 읽은 문장을 다시 써보는 ‘재구성 훈련’을 통해 지식을 손끝의 감각으로 익혔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인격을 닦기 위해 ‘3가지 덕목’을 세우고, 매일 밤 검은 점을 찍으며 자신을 점검했습니다. 절제: 배부르도록 먹지 말 것, 결단: 결심한 것은 반드시 실행할 것,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절제, 결단, 겸손, 이 세 가지 덕목이 자신의 몸에 흐르도록 하고, 그것를 점검하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자기 수련(Self-Discipline)을 통해 그는 인쇄공에서 과학자로, 다시 외교관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에게 직업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수련의 장’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천직이란 특정 직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자아 완성의 과정입니다. 우세남의 시 <선(蟬)>에 등장하는 매미가 생각납니다. “居高聲自遠(거고성자원), 높은 곳에 머무니 소리 절로 멀리 퍼지는 것이지, 非是藉秋風(비시자추풍), 가을바람을 빌린 것이 아니라네. 매미의 울음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은 가을바람, 외부의 환경이나 타인의 도움 덕분이 아니라, 높은 곳, 고결한 인격과 수련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남의 힘을 빌려 돋보이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닦아 빛을 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읽은 한 줄의 문장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자신을 지키고 키워주는 내면의 힘이 되어 비로소 하늘이 내린 단 하나의 진짜 직업, ‘자아 완성’의 천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완성을 넘어 ‘공동체의 완성’으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경계를 허무는 공감, 초연결 시대의 기술은 우리를 잇지만, 마음은 단절시키기 쉽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나’라는 개인은 비로소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프랭클린이 자신의 덕목을 사회적 헌신(외교, 과학적 발견)으로 연결했듯, 지속 가능한 배움과 나눔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져야 합니다. 외부의 평가나 알고리즘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인격을 닦는 사람들의 ‘고결한 향기’가 모일 때, 인류는 비로소 기술에 매몰되지 않는 존엄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가을바람을 빌리지 않아도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처럼, 당신의 진심 어린 실천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세계인을 향한 공동체 의식과 ‘더 나은 나’를 위한 묵묵한 발걸음만이 ‘나’를 ‘나’이게 하고 ‘세계’를 ‘세계’이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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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아 완성! 시대의 거친 바람을 이기는 나만의 고결한 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