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제의 목요칼럼] 다시 돌아보는 학교 존재 이유
"존중과 배려와 협력과 합리적 이성이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고 학교는 그런 사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무엇인가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자교과서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붇고 늘봄사업에 돈과 인력을 쏟아 붓는다. 수업보다는 홍보와 보육이 우선으로 보인다. 입시와 점수와 기계적인 평가가 학교에 가득하다. 학교에 희망적이고 건전한 미래가 있는가.
신명이 나지 않는다. 일을 안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자교과서나 늘봄사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의 의견이나 준비부족을 말해도 무시되고 밀어붙이면서 교육계에 심리적인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학교는 왜 필요한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이 국가미래보다 정권이나 민간자본에 휘둘리면 본질에서 멀어진다. 호모 사피엔스가 30만 년 전 출현한 이래 가장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점차 불평등은 커지고 있다.
미래역량을 키우고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은 표면적 목표이다. 실질적인 이면적 목표는 인정받는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학교는 국가, 자본가, 대기업, 산업체를 위한 정치적, 경쟁적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함께 조화롭게 사는 ‘공동체 협력’ 교육을 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참여와 소통, 예술과 운동, 독서와 토론, 봉사와 기부 등의 개념이 기반이 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생태교육과 과학교육, 윤리교육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는 단순히 지식전달이 아니라 친구와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경험의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지식교육이 전부인양 돌아서고 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컴퓨터는 효용성이 없다. 미래사회는 ‘연결과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홀로 1등을 추구하는 한국교육은 연결과 소통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근대공교육으로 서구와 대한민국은 크게 성장했다. 이제 목표를 달리해야 한다. 명실상부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함께 사는 시민의식, 깨어있는 시민의식, 주인의식을 지닌 책임을 지닌 민주시민, 사회에 도움을 주는 민주시민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교육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학교는 근대국가건설과 산업일꾼의 깃발을 달고 경주마처럼 달렸었다. 다양성이나 개인의 성향은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그런 달리는 일은 자동차나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학교는 필요 없다. 증오와 갈등과 경쟁과 점수가 인간답고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정권의 정치이념이나 학벌조장이나 대학선발의 하부기관, 기계부속품을 만드는 교육이 되어서는 미래가 없다. 존중과 배려와 협력과 합리적 이성이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고 학교는 그런 사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답을 외우거나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학생이 아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모둠토론을 하고 동아리활동과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학습으로 사회와 함께하며 배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학교는 교육다운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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