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조선의 유일무이 최고의 국립대학 '성균관'
쉴 틈 없이 공부한 성균관 유생의 하루
[교육연합신문=전해연 학생기자]
어느덧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시험을 준비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무슨 시험을 봤고, 어디에서 공부했을까? 그 당시에도 기말고사와 같은 지필고사가 있었을까? 지금부터 조선시대 고등교육을 책임졌던 ‘성균관’에 대해 알아보자.
성균관은 조선의 유일무이 최고의 국립대학이었다. 성균관은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하는 기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균관에 들어가기는 정말 힘들었는데, 과거시험인 생원(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을 시험) 혹은 진사(문예창작능력을 시험)를 통과한 학생들에게만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학생들은 성균관 입학 후 대과를 준비했다. 대과를 통과한다는 것은 고위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었는데, 현재의 공무원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성균관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동재’와 ‘서재’가 성균관의 기숙사였다. 성균관에 신입생이 들어올 때마다 성균관 유생들은 기숙사의 앞마당에서 신입생들을 환영해 줬다. 이를 ‘신방례’라고 한다. 또한, 동재 앞에는 돌판이 하나 있다. 유생들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다가 자신이 나태해졌다고 느끼면 이 돌판에 올라 스스로 회초리를 쳤다. 그렇다면 성균관 유생의 하루는 어땠을까?
성균관의 아침은 북소리로 시작됐다. 이 북은 학교 종소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매일 성균관 유생들은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이렇게 첫 번째 북소리에 기상을 한 후 두 번째 북소리에 새벽 공부를 시작했다. 세 번째 북소리에는 식당으로 향했다. 바로 이 식당에서 출석을 확인했다.
성균관은 자기주도학습이 주된 교육방식이었다. 유생들은 각자 시간을 정해 공부를 했고 예습을 한 후 선생님이 하시는 질문에 대답을 했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과 유생이 토론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매일 시험을 치르기도 했는데, 연말에 성적을 합산한 후 성적 우수자는 대과 급제에 해당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매일 몰아치는 시험으로 공부에 지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렇듯 성균관의 유생들은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만큼 정말 바쁜 하루를 보냈고 쉴 틈 없이 공부했다. 만약 우리가 성균관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금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