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 고감한지엔페이퍼, 가업 3代 한지로 세계를 잇다
전통 한지 현대화·세계화 이끈 백철희 대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도
[교육연합신문=김병선 기자]

전북 전통 한지 기업 고감한지엔페이퍼(대표 백철희)가 3대에 걸친 가업승계와 한지의 현대화·산업화·세계화 공로를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번 표창은 40여 년간 한지 제조업 한 우물을 판 백철희 대표의 걸음에 주어졌다. 전통 수제 한지의 한계를 넘어 현대 산업 수요에 맞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특허 기술을 확보하고, 해외 판로를 적극 개척해 전통 한지산업의 대중화와 고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점이 평가받았다.

■3대째 이어온 대한민국 대표 한지 기업
고감한지엔페이퍼는 1982년 천양제지공업사로 출발해 3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한지 제조·유통 전문기업이다.
대량 생산 체계와 수도권 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용도별 맞춤형 한지 제품인 ‘지멋대로’, ‘씨감’, ‘머그라지’ 등을 공급한다. 특허 기술력과 벤처기업 인증을 앞세워 미국 아마존과 유럽 시장 등에 우리 전통 한지를 수출하고 있다.
뿌리는 백 대표의 부친 고(故) 백준선 선생이 세운 작은 제지 공방이다. 한지를 한 장 한 장 떠내던 그 공방이 40년 넘게 이어진 가업의 출발점이 됐다.
백철희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천양제지 전무이사로 현장을 지켰다. 이 시기에 한지의 전통 초지 기술과 경영 전반을 몸으로 익혔다. 2008년 천양산업을 설립했고, 2011년 상호를 ‘고감한지엔페이퍼’로 바꾸며 독립 경영과 가업승계를 완성했다.
가업은 이제 3대로 이어지고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백 대표의 딸이 최근 합류해 미국 아마존 온라인 매장 운영과 해외 수출 실무를 맡고 있다. 선대가 쌓은 전통 제조 기술에 현대적 브랜딩과 글로벌 유통 경쟁력이 더해지면서 ‘3대 42년 가업승계 성공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공업의 한계를 넘다
백 대표가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생산 방식이었다. 기존 수공업 중심의 영세한 생산에서 벗어나 대량 생산과 품질 균일화를 이루기 위해 연간 약 100톤 규모의 한지를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최대급 생산 인프라를 갖췄다.
한지를 서예용 종이에만 가두지도 않았다. 백 대표는 현대 산업 수요에 맞춰 용도별 맞춤 브랜드를 만들며 시장을 넓혔다.
인쇄용 한지 ‘지멋대로’는 인쇄 적성을 크게 끌어올린 제품이다. 산업·포장용 한지 ‘씨감’은 산업 및 포장재 시장을 겨냥해 내놓았다. 건축·인테리어와 조형 예술 분야에서는 아트한지 ‘머그라지’가 활용된다. 서예용 종이로 알려진 한지가 인쇄물과 포장재, 공간 디자인까지 쓰임새를 넓힌 것이다.
과감한 제품 다각화와 전국 단위 유통망, 전문 온라인 쇼핑몰 구축에 힘입어 매출도 꾸준히 올랐다. 2021년 17억 1100만 원, 2022년 20억 3400만 원, 2023년 21억 원으로 늘었다. 전통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숫자로 보여준 셈이다.

■특허와 인증으로 쌓은 기술 경쟁력
기술 투자도 이어갔다. ‘인쇄성이 향상된 데클엣지 한지라벨지 제조방법’으로 특허를 취득했고, 무명천 한지 시트지 특허를 출원하는 등 전통 소재의 기능성을 끌어올리는 신기술을 계속 개발해 왔다.
기반도 하나씩 갖췄다. 2022년 7월 연구개발전담부서로 인정받았고, 2023년 4월 벤처기업 인증과 9월 ISO 14001 환경경영인증을 얻어 품질·환경 경영체계를 완비했다. 2024년에는 정부조달업체로 지정돼 공공 조달 시장에 진입할 발판도 마련했다.

■아마존에서 유럽까지, K-한지의 영토 넓히다
해외 시장 개척도 두드러진다. 2019년 스페인 파트너사와 거래를 시작한 데 이어, 2020년 9월 미국 아마존(Amazon US)에 정식 입점하고 미국 특허청에 자사 브랜드를 등록했다. 이후 스페인, 모로코, 독일 등으로 수출망을 넓혔고 2021년에는 ‘수출유망중소기업’으로 지정됐다.
고감한지엔페이퍼의 한지는 2016년 남북정상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집에도 쓰였다. 전통 한지벽지와 창호지를 공급·시공해 한민족 고유의 품격과 전통 건축미를 세계에 알렸다.

■한지 생태계와 지역사회를 위한 발걸음
백 대표는 회사 밖에서도 한지의 미래를 가꿨다. (사)한지문화진흥원 이사, 아름다운한지협동조합 이사장, 전주한지문화축제 조직위원, 기능경기대회 기술·심사위원 등을 맡으며 전통 한지 생태계 보존과 장인 육성에 힘썼다. (재)희현장학회 이사로 인재 양성 장학 사업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공헌도 꾸준히 실천했다. 이런 공로로 ‘전북천년명가’와 ‘백년소공인’에 연이어 지정됐다.

■“한지는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미래 소재”
백 대표는 수상 소감에서 공을 주변에 돌렸다. “이번 표창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한지 제조 현장을 지켜 온 임직원들과 선친의 장인정신, 그리고 가업을 함께 잇고 있는 가족 모두의 땀방울이 맺은 결실”이라고 말했다.
한지를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히 했다. 백 대표는 “한지는 과거의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인쇄, 친환경 포장, 건축 인테리어, 생활용품 등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지닌 미래형 친환경 소재”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백 대표는 “‘한지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라는 비전 아래 연구개발과 디지털 글로벌 플랫폼 확장을 지속해, 전북의 전통 한지가 글로벌 명품 신소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술 혁신과 해외 시장 개척에 총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가업이 이어지는 곳에 전통도 이어진다
종이 한 장을 뜨던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시작해 아들이 현장을 배우고 독립 경영으로 키웠고, 이제 딸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한 가족이 3대에 걸쳐 지켜 온 시간이 곧 한국 전통 한지의 맥이 이어져 온 시간이다.
한지가 박물관 속 유물에 머물지 않고 인쇄물과 포장, 인테리어를 거쳐 해외 소비자의 손에 닿는 지금, 고감한지엔페이퍼의 42년은 전통이 어떻게 오늘의 산업으로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답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