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미술거장 문 빅토르 작 ‘운명의 연대기’에 새겨진 100년의 눈물
국권회복에 모든 것 바친 선조들, 후손은 국내 귀환 후 외국인노동자로 전락
[교육연합신문=장삼석 기자]

최근 일부 유명 연예인을 둘러싸고 선조의 친일 행적이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면서, 일제강점기의 선택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기억과 책임으로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물을 수는 없다. 연좌제 역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권을 되찾기 위해 삶의 터전과 재산을 버리고 국경을 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조상의 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살아가며 농촌 일용직과 공장 노동, 파견근로 등 힘겨운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나라를 되찾겠다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후손은 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갈 곳을 찾아 헤매야 하는가.”
’역사마을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세계적인 고려인 미술거장 문빅토르 화백의 작품 ‘운명의 연대기’가 이처럼 서로 엇갈린 역사의 현실을 한 화면에 담아 오늘의 대한민국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23일(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문 화백이 2025년 제작한 ‘운명의 연대기’는 60×78㎝ 크기의 캔버스에 수채화와 아크릴로 완성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와 전쟁, 강제이주와 유랑으로 이어진 고려인의 굴곡진 역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작품은 위에서 아래로 세 개의 장면이 이어진다. 군인과 피란민, 말을 끌고 이동하는 사람들, 수레와 짐을 진 인물들이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하지만 이들의 발걸음과 수레바퀴는 하나의 긴 흐름처럼 연결돼 있다.
고려인의 역사 또한 그러했다. 고려인 선조들은 국권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정든 고향과 삶의 터전을 뒤로한 채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러시아 연해주와 북간도로 향했다. 그곳에서 학교와 신문을 만들고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했으며 독립군에게 식량과 군자금을 지원했다. 최재형과 홍범도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연해주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방된 조국에서의 평온한 삶이 아니었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은 연해주 고려인들을 일본의 첩자로 의심해 탄압했고, 많은 지도자와 지식인이 희생됐다. 이어 고려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화물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다.
수천㎞에 이르는 이동 과정에서 질병과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 앞에는 집도 농토도 없는 황무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려인들은 움막을 짓고 맨손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남았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녀들을 키우고 공동체를 지켜내며 한민족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랑은 끝나지 않았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각국의 사회환경이 급변하면서 일부 고려인들은 언어와 민족적 배경 등의 이유로 다시 불안과 차별을 경험했다. 결국 이들의 시선은 선조들이 그토록 되찾으려 했던 조상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귀환의 현실 역시 녹록지 않았다. 고려인동포들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한민족의 후예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품고 한국을 찾았지만, 현실에서는 외국 국적 동포라는 법적 지위와 언어 장벽, 취업과 체류자격의 제약을 마주했다. 일부는 체류제도의 한계 속에서 불법체류자로 내몰리거나 단속과 추방의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던 시절도 겪었다.
현재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고려인동포 상당수도 농촌 일용직과 공장 노동자, 용역업체를 통한 파견근로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려운 노동환경 속에서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생활 기반을 하나씩 다졌으며, 주민들이 힘을 모아 학교와 의료·복지시설, 문화관과 미술관, 방송국 등 공동체 시설을 세우며 광주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선조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경을 넘었지만, 그 후손들은 되찾은 조국에서 다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증명해야 했다.
문 화백의 ‘운명의 연대기’가 단순한 역사화를 넘어서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붉은 인물들은 시대마다 반복된 배신과 폭력, 권력과 욕망을 상징한다. 화면 아래 금전과 보물, 쾌락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은 개인의 욕망과 선택이 한 공동체의 운명에 얼마나 긴 그림자를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친일 행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 역시 이러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조상의 잘못 때문에 후손을 비난하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일제강점기 권력에 협력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반대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했는지는 반드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국권회복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았던 고려인 선조들의 후손들이 오늘날 조상의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다름없는 처지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 더욱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문 화백은 “나는 운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려인과 한국인의 역사를 보면 시대는 달라도 비슷한 상황과 역할이 반복된다”며 “이를 역사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해 결국 운명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과거의 운명만이 아니다”며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결국 다음 세대가 살아갈 또 다른 연대기가 된다”고 말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우리 고려인은 나라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경을 넘었던 사람들의 후손”이라며, “그 후손들이 100여 년의 유랑 끝에 다시 조상의 땅으로 돌아와 삶을 일구고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이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친일의 역사를 후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독립을 위해 희생한 이들과 그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함께 돌아보자는 것”이라며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오늘 세대의 책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빅토르의 ‘운명의 연대기’ 속 사람들은 지금도 걷고 있다. 나라를 잃어 연해주로 떠난 첫걸음,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두 번째 걸음, 소련 해체 후 다시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 세 번째 걸음, 그리고 마침내 조상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향한 네 번째 걸음이다.
100년 넘게 이어진 그 발걸음이 이제는 더 이상 ‘유랑’이 아닌 온전한 ‘귀환’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남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았던 사람들의 후손에게, 우리는 어떤 조국으로 기억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