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0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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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죽은 자의 발자국, 살아 있는 자의 기억-은자 ‘복(復)’의 이야기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낯설고도 친근하다. 눈앞에 있는 돌 하나, 땅속에서 나온 기와 조각 하나에도 수천 년의 기억이 서려 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읽어내는 방식은 시대와 권력, 그리고 우리의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갑골문 이야기도 그렇다. 중국에서는 흔히 갑골문을 ‘중화문명의 뿌리’라 부른다. 맞는 말이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정작 갑골문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 글자 하나하나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갑골문 글자 하나만 해독해도 10만 위안을 번다더라”는 식의 괴담이 대중 속에 퍼져 있을 정도다. 귀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막상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신비하고도 난해한 문자일 뿐이다. 하지만 갑골문을 단순히 난해한 고문자로만 본다면 그 속의 생생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오늘 다루려는 ‘복(復)’자가 바로 그렇다. 우리는 보통 ‘복’이라 하면 ‘되돌아온다, 회복한다’는 뜻을 떠올린다. 하지만 갑골문 속 ‘복’은 조금 다르다. 글자의 형상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돌아옴’ 이상의, 생과 사를 오가는 깊은 상징을 만나게 된다. □ 발자국, 집을 나서다 먼저 글자의 아랫부분을 보자. 거기에는 ‘止(지)’라는 모양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이 글자를 오늘날 ‘그칠 지’라고 읽지만, 본래의 뜻은 달랐다. ‘발자국’ 혹은 ‘발이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상형이었던 것이다. 즉, ‘앞으로 걸어간다’는 의미가 기본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복’자의 갑골문에서는 이 발자국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모양새다. 발길이 안쪽을 향하지 않고 바깥으로 향한다는 점이 중요한 대목이다. 이 발자국 위에는 직사각형 구조물이 놓여 있다. 마치 성곽이나 움집처럼 보이는 그림이다. 그 중앙에는 삼각형, 혹은 역삼각형의 표시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출입구를 뜻하는 기호로 자주 쓰였다. 그렇다면 이 모양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히 해석하면 ‘집에서 발길이 밖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갑골문은 늘 단순한 그림 이상이다. 당대의 삶과 죽음을 담아내는 기호였으니, 여기서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죽은 자의 거처, 곧 신옥(神屋)이나 무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발자국이 밖으로 향하는 장면은? 바로 ‘죽은 자의 영혼이 집을 나서 세상으로 나온다’는 뜻이다.([그림 20] ‘復’ 참조) 즉, 복(復)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발길이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을 담고 있는 셈이다. □ ‘아(亞)’와 ‘복(復)’의 친연성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것은 ‘아(亞)’자와의 연관성이다. ‘亞’ 하면 우리는 흔히 ‘버금, 차순위’의 뜻을 떠올린다. 하지만 원래 이 글자는 조상의 영혼이 거처하는 종묘를 둘러싼 길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귀신의 집’이라는 뜻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림 20] ‘亞’ 참조) 시간이 흐르면서 ‘亞’는 단순히 위계나 순서를 표시하는 용도로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갑골문 단계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장소’를 뜻했다. ‘복(復)’자가 ‘죽은 자의 발자국’이라면, ‘亞’는 그 발자국이 오가는 길과 공간이었다. 두 글자는 같은 세계관 속에서 서로 호응하며 만들어진 셈이다. □ 고고학이 말해주는 것들 갑골문 해석은 종종 고고학의 발견과 맞닿는다. 하북성에서 발견된 조조의 무덤을 보자. 무덤 구조가 ‘복’자의 형상과 닮아 있다. 직사각형의 집 모양, 출입구, 바깥으로 향한 통로. 조조 무덤이 실제로 그 시대의 것인지 여부를 떠나, 이 형식이 상나라 이래 이어져 온 전통임을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건 한반도의 사례다. 2007년 경북 문경의 고모산성에서 5세기 지하 목조건물이 발굴되었다. 고고학자들은 그 내부 구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직사각형의 집 모양과 출입구, 그 배치가 갑골문 속 ‘복(復)’자의 형상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상나라의 건축 전통, 나아가 동이족 문화권의 신앙과 생활양식이 한반도 신라에까지 전승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결국 ‘복’자는 단순히 문자 차원의 해석이 아니라, 건축, 장례, 종교적 의례 전반과 연결되는 문화적 상징이었던 것이다. □ 돌아옴은 곧 ‘영혼의 귀환’ 우리는 흔히 ‘복’이라는 글자를 일상적으로 쓴다. 회복, 반복, 복귀. 모두 되돌아옴을 뜻한다. 하지만 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그 되돌아옴은 단순히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영혼의 귀환’을 가리켰다. 죽은 자가 저승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발자국, 그것이 곧 ‘복’이었다. 동이족의 세계관에서는 죽음은 단절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문을 열고 드나드는 관계였다. 영혼은 저승으로 떠났다가도 제사와 의례를 통해 언제든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무덤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양쪽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였고, 갑골문 속 ‘복’은 그 문턱에서 찍힌 발자국이었다. □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기서 우리는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다. 왜 동이족은 죽음을 ‘복’이라 불렀을까. 왜 발자국이 집을 나서는 장면을 글자로 새겼을까. 그것은 아마도, 죽은 자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존재’임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산다. 영혼의 귀환 같은 이야기는 미신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믿음이 담고 있던 삶의 태도, 곧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되돌아옴’으로 바라보던 시선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단절 대신 순환을, 끝 대신 이어짐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다. 문경 고모산성 지하 건축물의 발자취를 바라보며, 혹은 갑골문 속 ‘복’자를 마주하며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삶과 죽음을 하나의 길 위에서 바라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발자국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것을.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갑골문 속 작은 발자국 하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귀환이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다시 ‘복’할 존재라는 것. □ 맺으며 중국에서조차 대다수는 알지 못하는 갑골문. 그러나 그 안에는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 나아가 한반도까지 이어진 깊은 문화의 흔적이 숨어 있다. ‘복(復)’자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단순히 돌아옴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상징,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통로였다. 이제 우리는 ‘복’자를 다시 읽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반복되는 일상의 귀환이 아니라, 선조들의 영혼이 오늘도 우리 곁에 되돌아오는 발자국이다. 고대의 무덤과 건축물, 그리고 문자 속에 살아 있는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한 답도 조금은 가까워질 것이다. 죽은 자의 발자국은 살아 있는 자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갑골문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오래된, 그러나 가장 따뜻한 위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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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1
  • [구본희 반려詩選] 뽀샵하는 사회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뽀샵하는 사회 언제부턴가 아름다움도 만들어졌다. 사실보다도 더 진짜 같은 가짜 현실 속에서ㅡ 마법 거울은 묻는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모두 백설공주 되어 나만의 만족을 좇는다. 왜곡된 옷을 입은 진실도 조용히 비틀리고, 모두 획일화된다. 진짜 나를 잃어간다. 꾸밈이 기본 예의인 이 사회 속에서ㅡ 사진 속 얼굴도, 화장 뒤 표정도, 오늘 우리는 가면을 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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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0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Changgyeonggung: The history of Restoration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Changgyeonggung Palace is one of the main 5 palace of Joseon. It was built in 1483 by Joseon’s 9th king, Seongjong(성종). It’s original name was Suganggung, but when Seongjong expanded it for three grandmas, he changed this palace’s name into Changgyeonggung. A lot of kings of Joseon were born in this palace which makes it special and important. Howeve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Japanese people harmed it and displayed animals and plants in there and opened it to public. They had degraded the name into Changgyeongwon. After the colonial era ended, in 1983, people restored Changgyeonggung palace and found its own form again. It now is one of the beautiful palace in Korea and became a must-visit spot for tourists. Why don’t you pick Changgyeonggung for spring flower sightseeing? Walk across Okcheongyo(Bridge) and appreciate the wonderful look of Changgyeonggung palace and what it had over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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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2026-03-08
  • [전재학의 교육칼럼] 이제는 ‘뽑는 교육’에서 ‘키우는 교육’을 지향해야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오랫동안 인재를 국가의 동량(棟梁)으로 간주해 우수한 인재만을 뽑으려고 몰입해 왔다. 그래서 역량을 키워 잠재력이 높은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 학교가 소위 ‘명문고’, ‘명문대’로 이 사회에서 우위를 독점했다. 이는 처음부터 능력이 출중한 인재를 학교에서 교육의 기능을 발휘해 더욱 출중한 인재로 키웠다고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다.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또래 집단의 경쟁을 통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우수한 결과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우리는 인재를 길러 왔다고 스스럼 없이 말해 왔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은 인재를 ‘키운’ 것이 아니라, 미리 자라난 아이를 골라내는 일에 더 익숙했다. 시험은 능력을 발견하기보다 순위를 만들었고, 학교는 성장을 돕기보다 선발을 준비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인재 양성의 방향은 뽑는 것 즉, 선발이 아니라 키우는 것, 성장이라고 말이다. 선발 중심 교육은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짧은 시간 안에 상위 몇 퍼센트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은 무시된 채 사라진다. 성장할 수 있었던 아이, 늦게 피는 아이, 다른 방식으로 빛날 아이들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든다. 선발은 결과를 가르지만, 성장은 가능성을 키운다. 교육이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세계의 교육 선진 사례는 이미 이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핀란드는 조기 선발과 학교 서열화를 철저히 배제하고, 모든 학생이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성과를 유지하면서도 학력 격차는 작다. 이는 특별한 아이들만을 골라낸 결과가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원한 결과다. 국내에서도 작은 변화의 가능성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경쟁 대신 과정 중심 평가를 도입한 학교, 성취 수준보다 학습의 변화와 노력을 기록하는 교사들, 뒤처진 학생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성장시키는 학급 운영 사례들은 이를 말해 준다. 아이들은 서열이 낮아서가 아니라, 기다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던 것임을 말이다. 성장 중심 교육은 느리고 번거롭다. 단기간에 성과를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고,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교육은 본래 느린 일이다. 씨앗을 뿌린 다음 날 열매를 요구하지 않듯, 아이의 가능성 역시 시간과 신뢰 속에서 자란다. 선발은 관리가 쉽지만, 성장은 돌봄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래서 성장 중심 교육은 곧 기성 세대의 각오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선언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더 빨리 앞서가는 아이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성장하도록 돕는 것임을. 시험은 줄 세우기보다 학습을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하고, 평가는 탈락의 근거가 아니라 성장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학교는 선발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가능성이 안전하게 자라는 공간이어야 한다. 인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 그리고 그 출발선은 결코 같지 않다. 교육의 역할은 출발선의 차이를 이유로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정의 본래 의미이며, 미래 사회가 교육에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뽑는 교육’에 머물 수 없다. 이제 교육은 선언해야 한다. 인재 양성의 길은 선발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말이다, 그 선언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학교는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이는 곧 학교와 국가의 존재 이유인 사회적 신뢰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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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6
  • [김홍제의 목요칼럼] 자본주의 시대의 금융교육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돈의 심리학』과 『돈의 방정식』이라는 책을 설날 연휴에 읽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돈에 대한 개념이 너무도 없다는 자각에서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대중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지구 위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테마는 경제, 즉 돈이다. 정치, 교육, 사회, 환경에 모두가 돈이 들어가 있고 전쟁도 돈이 들어가 있다. 돈이 중세 시대의 종교처럼 군림하고 있다. 이를 직시하고 올바른 경제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을 사랑한다면 학생이 돈 중심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교육이 옳은 방향이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도 그만큼 커지리라고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족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 건강, 경험, 존경 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꽃이 하나도 없는 외계에서 온 사람은 이 지구상에 있는 많은 꽃을 보면 감탄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소중한 것이 너무도 흔하고 많으면 우리가 그 감사함을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월급이 딱 2배만 더 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한단다. 2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400만 원이면 행복할 듯하고, 4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800만 원만 벌면 행복하다고 하고, 8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1억 600만 원을 벌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런 행복은 일시적이라고 했다.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을 얻고 멋진 결혼을 하는 것은 사실 일시적인 행복을 위한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일시적인 것에 있지 않다. 지속적인 행복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경, 사랑의 관계 속에 있다. 행복과 돈의 관계를 거시적이고 진솔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학생 중심 교육이라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의무이고 양심적 태도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않고 도구로서의 교육을 한다면 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영교육과정은 아이즈너(Eisner)가 『교육적 상상력(Educational Imagination)』에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정을 가리켜 영(null) 교육과정이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배울 만한 가치가 있지만 공식적 문서에 포함되지 않거나 포함되어 있어도 실제 수업이나 운영에서 다루어지지 않아 학생이 학습할 기회가 없는 교육 내용이나 경험’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과정 속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는 없다. 어떤 것은 선택되고 또 다른 내용은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교육과정의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가 변하면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 중에서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빠지지 않았는지를 반성하고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사회에 나가서 노동이나 경제활동을 해서 수입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 당연히 회사의 근무에 대한 교육, 일의 정당성, 권리의 주체성, 진정한 행복과 경제 등을 교육에 넣어야 한다. 현대의 노동은 노예의 노동이 아니다. 현대 시민은 창조적이고 효율적이고 협력적이고 나라와 국가를 위한 태도와 방식을 고민하는 시민 근로자여야 한다.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문맹’은 불편할 뿐이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위협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 경쟁력과 개인 행복을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청소년기 금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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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5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무지개, 한자 속에 새겨진 색과 신화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무지개는 누구에게나 신비롭다. 비가 갠 뒤 하늘에 걸리는 곡선, 일곱 가지 색이 겹쳐진 장면을 우리는 자연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 과학책에서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순으로 줄 세워 배웠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이 현상은 단순한 스펙트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고대 동이족 사회에서는 무지개의 색을 자연 관찰과 신화, 인간과 연결해 해석했고, 그 흔적이 한자 속에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먼저 서양에서 무지개 색을 기억하는 방법을 떠올려보자. 영어권에서는 R.O.Y.G.B.I.V.라는 이니셜, 즉 Red(빨강), Orange(주황), Yellow(노랑), Green(초록), Blue(파랑), Indigo(남색), Violet(보라)를 외운다. 15세기 영국, 요크 공작 리처드의 장미 전쟁 패배와 연결해, 교육과 기억을 돕는 장치로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세기도 코구세이(世も世も今や昔)'’란 이름으로 비슷한 체계를 가졌지만, 중국이나 고대 동이족 사회에는 이렇게 알파벳식 축약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무지개의 색은 자연과 인간, 신화적 존재를 결합해 문자와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 홍색(빨강) - 용과 불타는 색의 상징 무지개의 첫 색, 빨강은 동이족에게 단순한 색상이 아니었다. 갑골문 속 기록을 보면 무지개는 ‘북쪽에서 내려와 강에서 물을 마시는 신비한 생물’로 묘사되었고, 종종 머리가 두 개인 용으로 그려졌다. 이 용은 암용과 수용으로 나뉘는데, 수용은 화려한 색, 특히 빨강을 띠었다. 초기 갑골문에서는 뱀과 공(큰 것)을 합쳐 거대한 용으로 표현했고, 이후 소전과 해서에 이르러 용이라는 상징이 정교하게 확립되었다.([그림 19] 참조)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 빨강을 ‘불타는 붉은색’으로, 중국에서는 비단에 염색한 ‘홍자’로 표현했다. 관련 글자로는 적(赤), 홍(紅), 주(朱), 단(丹), 비(緋) 등이 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색을 넘어, 인간과 신화적 상상, 그리고 제의적 의미까지 포괄한 색이었다. □ 주황색 - 등자와 황자 주황색은 자연과 인간의 생활을 연결한 색이다. 한국에서는 ‘불굴 주자’와 ‘황자’를 합쳐 주황색을 표현했다. 등자는 인도에서 유래해 한국에서 재배가 어려웠지만, 색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채택됐다. 황색은 갑골문에서 태반과 출산 장면을 묘사하면서 발전했다. 갓 태어난 아이의 피부색, 건강과 번식의 상징, 그리고 귀중함을 나타내는 황금과 황제, 옥토와 연결된다. 이렇게 주황과 황색은 단순한 색을 넘어 생명과 번영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그림 19] 참조) □ 초록색 - 풀과 우물, 생명의 색 초록은 무지개의 자연적 색상을 대표한다. 갑골문에서는 우물가의 싱싱한 풀 그림에서 비롯됐다. 당시 동이족은 녹색과 청색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으며, 자연 속 푸른 풀과 물빛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소전과 해서에 이르러서는 명주실과 우물물 그림으로 발전해, 청록빛을 표현하는 문자가 만들어졌다. 즉 초록색은 자연의 생명력과 물의 신비를 동시에 담은 색이었다.([그림 19] 참조) □ 파란색 - 쪽람과 청자 파란색은 쪽람, 즉 쪽 염색과 연결된다. 소전 단계에서는 풀과 감 그림으로 발전해, 쪽을 물에 적셔 햇볕에 말린 청색 천을 상징했다. 우리가 잘 아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속담은 청자가 먼저 있었고, 쪽람은 소전 시대 이후 등장했다는 연구가 많다. 동이족의 색 개념에서 파랑은 염색 기술과 자연의 색이 결합해 문자가 된 사례다.([그림 19] 참조) □ 자주색 - 명주실과 색의 혼합 마지막으로 자주색은 명주실에 빨강과 파랑을 혼합해 얻은 색이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사람, 발, 명주실 그림이 합쳐져 자주빛을 나타내는 글자로 정착했다. 현대적 감각에서 자주색의 범위가 넓어 명확한 정의는 어렵지만, 혼합과 조합을 통한 색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그림 19] 참조) □ 무지개 색과 문화적 의미 이처럼 무지개는 단순히 하늘의 현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고대 동이족은 비 온 뒤 나타난 하늘을 통해 자연, 인간, 신화적 존재를 연결했다. 각 색은 생명, 풍요, 불, 물, 염색 기술 등 구체적 경험과 결합해 의미화되었다. 문자의 발전도 흥미롭다. 갑골문에서는 그림처럼 구체적 도상을 사용했고, 금문과 소전을 거치며 도상과 의미가 점차 추상화됐다. 해서에 이르러 현대 한자로 정착하면서도 초기 의미와 상징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지역별로 색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한국과 일본은 동이족 전통의 색상과 상징을 비교적 그대로 유지했지만, 중국에서는 문화적, 지역적 차이에 따라 일부 색상을 선택하거나 방식이 달라졌다. □ 결론 : 무지개, 자연과 인간의 기록 무지개의 색은 단순한 스펙트럼이 아니었다. 고대 동이족에게는 인간, 자연, 신화가 결합된 문화적 상징이었다. 그 의미는 문자 속에 새겨졌고, 시대를 거치며 한자로 정착했다. 오늘날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느끼는 경이로움 속에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고 기록한 경험이 겹겹이 쌓여 있다. R.O.Y.G.B.I.V.라는 영어 축약법은 현대인의 기억 장치일 뿐, 동이족은 용, 풀, 물, 명주실, 신화적 존재를 통해 색을 이해했고, 문자로 남겼다. 한 글자, 한 색 속에는 자연 관찰, 인간 생활, 신화, 사회적 의미가 결합되어 있다. 무지개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 긴 시간과 문화의 흐름을 함께 보는 셈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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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4
  • [구본희 반려詩選] 갯골의 함성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갯골의 함성 -제107주년 삼일절 기념 헌시- 소래나루 갈매기 떼 낮게 선회하고 소금기 마른 갯골 붉은 퉁퉁마디 사이 그을린 얼굴 새끼줄 여민 무명 바지 품속 깊이 숨겨 온 그날의 태극기 하나둘 들불로 번질 때 “대한 독립 만세” 포구는 시린 함성으로 흰 파도처럼 일렁였다 색바랜 필름 속 낮은 바람으로 맴도는 그날의 파열음 내 심장에 아직 타오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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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4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3.1절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며"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 엄숙한 낭독이 울려 퍼졌다. 독립선언서를 읽기로 한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자진 체포되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였지만 기다리던 학생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와 독립선언서를 대신 낭독했다. 그렇게 3·1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의 불길은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 나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일에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는 유관순 열사 및 다른 주도자들에 의해 거사가 이루어졌다. 그 전날 거사를 위한 봉화를 올렸고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봉화를 따라 올렸다. 수천 명이 참여해 규모가 엄쳤났던 이 만세운동에서는 희생자들이 많이 나왔다. 집계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19명이 사망했고 30명 정도가 중상을 입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도 이때 순국했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도 곧 검거되어 18살의 나이로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했던 사람들도 감옥 안에서 차례차례 순국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까지 저버린 용기와 대담함이 이뤄낸 값진 것이다. 2026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희망에 차 독립과 만세를 외친 숭고한 영혼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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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 [전재학의 교육칼럼] 새로운 학기, 내 인생의 '참주인'으로 당당히 서는 법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새로운 학기를 앞둔 전국의 초중고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새 학기의 시간표를 받아 든(들)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이번 학기는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되는데'라는 조급함이 함께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적과 진학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싣기 전, 여러분이 반드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참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이 짜놓은 각본 위의 연기자로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청소년들이 자기 인생의 참주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동서양의 지혜의 보고(寶庫)인 고전(古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당나라의 고승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진실)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거나, 어른이 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만 내 인생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제 선사가 말하는 '주인'은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타인과의 비교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다. 예컨대, 친구가 나보다 수학 성적이 높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내 기분을 '친구의 성적'에 맡겨버린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 환경에 휘둘리는 '객(客)'일 뿐이다. 둘째, 현재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내가 나의 성장을 위해 이 시간을 선택했다"라고 마음먹는 순간, 지루한 학습 공간은 나를 위한 단련의 장으로 변할 것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외친 망치를 든 철학자라 불리는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변화 단계를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는 낙타이다. 이는 타인이 지운 짐을 묵묵히 지고 "해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하는 단계다. 둘째는 사자이다. 이는 기존의 가치에 "아니오"라고 외치며 자유를 쟁취하려는 투쟁의 단계다. 셋째 단계는 바로 '어린아이'이다. 이는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하나의 놀이다“에 근거하고 있다. 즉, 어린아이는 자기 일에 몰입해 주변을 잊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진정한 자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참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낙타처럼 억지로 짐을 지는 것도, 사자처럼 매사에 반항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가 놀이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듯, 자신의 삶을 하나의 '놀이'이자 '창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자기 삶의 주인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참주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여기에 그 세 가지 지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나만의 언어'를 소유하라. 남들이 좋다는 학과, 남들이 입는 옷, 남들이 쓰는 유행어에만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주권(主權)은 내 생각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언어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작은 승리'를 매일 목표로 하길 바란다. '오늘 단어 10개 외우기', '쉬는 시간 5분 명상하기'처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완수할 수 있는 작은 성취들이 모여 스스로의 삶은 통제 가능하다는 강력한 주인 의식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셋째, 실패할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라. 결과가 나쁘더라도 "이건 내가 선택한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이미 주인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 제위여, 학교에서 스스로를 '입시 기계'나 '평균 이하의 존재'로 정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철학자 칸트가 말한 '자율적 인간'이며,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의 잠재력을 가진 귀중한 존재이다. 새 학기,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교문을 들어설 때 마음속으로 이 한 문장을 새겨보길 바란다. "이 시간의 주인은 나다. 나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오늘을 선택했다"고 말이다. 여러분이 당당한 '참주인'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길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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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 속에 새겨진 계절의 기억(春夏秋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춘하추동”이라 부른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나타내는 이 네 글자는 마치 처음부터 추상적인 시간의 구분을 뜻하는 듯하다. 그러나 갑골문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훨씬 생생하다. 계절을 나타내는 글자들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고대인이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관찰한 자연과 생명의 순간들이 그림처럼 새겨진 흔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춘풍(春風), 하계(夏季), 만추(晩秋), 동면(冬眠) 같은 단어를 쓰며 계절을 언어로 호명한다. 하지만 이 네 글자가 어떻게 지금의 형태로 정착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가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깊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 봄 - 새싹이 움트는 순간, 春 봄은 언제나 시작의 계절이다. 갑골문 속 春은 해(日)와 땅에서 막 솟아나는 새싹을 그린 모습이었다. 마치 한 점 씨앗이 움트며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장면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그림 18] ‘春’ 참조) 시간이 흘러 금문에서는 풀(艹의 전신)과 뿌리내림(屯의 초기형)이 결합되고, 거기에 해(日)가 더해졌다. 결국 해서체에 이르러서는 艹(풀) + 屯(싹 틔움) + 日의 구조로 정리되어 오늘의 春자가 되었다. 즉, 봄이라는 계절은 추상적인 “시간 단위”가 아니라 햇살을 받아 씨앗이 깨어나는 생명의 관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입춘(立春), 춘설(春雪) 같은 말 속에도 늘 생명과 새로움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 여름 - 더위에 지친 몸, 夏 여름은 뜨겁다. 갑골문 속 夏는 해 아래서 팔다리가 축 늘어진 사람의 형상을 담았다. 태양의 열기에 머리에서는 열기가 솟고, 사지(四肢)는 힘없이 처져 있다. 글자 하나에 “더위에 지친 몸”이라는 생생한 체험이 담겨 있는 셈이다. 금문으로 가면 이 사람 형상 위에 해(日)가 얹혀진다. “뜨거운 햇볕 아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소전 단계에서는 머리 부분이 頁(혈)의 전신으로 정리되고, 해서체에 이르러서는 팔이 생략되고 다리만 夂 모양으로 남아 지금의 夏자가 완성되었다.([그림 18] ‘夏’ 참조) 우리가 하복(夏服)을 입고, 하계(夏季)를 보내며, 여름방학을 즐긴다고 말할 때, 그 속에는 사실 고대인이 더위에 늘어진 몸을 문자로 남겨둔 기억이 숨어 있는 것이다. □ 가을 - 귀뚜라미와 곡식의 계절, 秋 가을, 한자로 秋를 쓰면 흔히 벼(禾)와 불(火)의 결합이라고 배운다. 볕에 벼가 익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초기의 秋자는 귀뚜라미를 옆으로 눕혀 그린 상형이었다. 다리와 더듬이가 표현된 이 작은 곤충은 울음소리가 “추추”로 들려 가을을 알리는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리로 계절의 변화를 느꼈고, 글자에도 담았다.([그림 18] 秋 참조) 이후 금문 단계에서 귀뚜라미 옆에 벼(禾)와 불(火)이 더해졌다. “볕에 곡식이 익는다”는 농경적 의미가 추가된 것이다. 소전과 해서에 이르러서는 곤충 도상이 생략되고 禾와 火만 남아 오늘날의 ‘秋’ 자가 되었다. 그래서 추호(秋毫, 털끝처럼 미세함), 만추(晩秋), 추상(秋霜) 같은 말 속에는 단순히 곡식만이 아니라, 곤충 소리에 귀 기울이던 고대인의 감각이 함께 녹아 있다. □ 겨울 - 차가움과 탯줄, 冬 겨울은 차갑고 고요하다. 그런데 갑골문 속 冬은 의외로 갓난아이의 탯줄을 닮은 형상에서 출발했다. 둥글게 휘어진 선이 마치 배꼽과 탯줄을 연결한 듯하다. 왜 겨울에 탯줄일까? 갓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은 바로 “춥다”는 것이었다. 고대인은 이 신체적 체험을 겨울이라는 계절에 빗댄 것이다. 금문에서는 그 안에 해(日)가 들어가 ‘계절의 한 시점’을 강조했고, 소전에서는 해 대신 얼음을 뜻하는 부호(冫의 전신)가 자리 잡았다. 해서에서는 위쪽의 움직임 표지 夂와 좌측의 冫이 결합해 오늘날의 冬이 되었다.([그림 18] 冬 참조) 그래서 동계(冬季), 동면(冬眠), 월동(越冬) 같은 단어에는 단순히 추위 이상의 삶과 탄생의 기억이 겹겹이 깔려 있다. □ 문자에 새겨진 시간의 철학 춘하추동, 이 네 글자는 갑골문에서 출발해 금문, 소전, 해서로 이어지며 점점 간결해졌다. 처음에는 그림 같은 도상(icon)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부수와 구조가 정제되며 체계적인 문자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이 단순히 필기 효율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연의 관찰(햇살, 초목, 곤충, 추위)과 인간의 체험(더위에 지친 몸, 아기의 탯줄)이 문자로 응축되었고, 그 의미가 세대를 거쳐 농경적·사회적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춘추전국(春秋戰國)’이라든가 ‘하계 올림픽(夏季)’,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동지(冬至)’처럼 당연하게 쓰지만, 그 뿌리에는 고대인의 감각적 경험과 생명에 대한 통찰이 배어 있다. □ 오늘의 독자에게 이제 “춘하추동”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것은 단순히 사계절을 나열한 말이 아니다. 씨앗이 움트는 새싹, 더위에 지친 몸, 귀뚜라미 소리, 아기의 탯줄 같은 구체적 체험이 문자로 응고된 언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글자 하나하나는 사실 자연과 인간이 나눈 오래된 대화의 기록이다. 그래서 한자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뜻을 아는 일이 아니라, 그 속에 새겨진 수천 년 전 사람들의 감각과 세계관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춘하추동은 시간의 이름이자,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관계의 압축 파일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순간, 우리는 언어를 넘어 삶과 문화의 깊은 층위에 닿게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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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Celebrating Seollal at the Korean Folk Village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Seollal in Korea is a time of remembrance and family. It is celebrated by visiting your family, paying respects to your ancestors, and going back to the original Korean traditions. One place that is an amazing location to go to during this holiday is the Korean Folk Village(한국민속촌). Located in Yongin, not too far from Seoul, the Korean Folk Village has everything, from authentic restorations of real houses from the Joseon Dynasty village from each province to traditional performances to ghost houses. Spread across the map are many different houses from different provinces and social class areas. All 270 of them have been relocated and restored to provide visitors with an authentic experience. These houses contain numerous small details that reveal aspects of the homeowners’ daily lives, such as the tools, decorations, and even the house's structure itself. Some notable locations include the Landowner’s House in the Southern Region, the Provincial Governor’s Office, the Nobleman’s Mansion in the Central Region, and the Kumryonsa Buddhist Temple—all located in the Folk Village. With many houses to walk through and sights to see, the Korean Folk Village presents a perfect opportunity to learn about Korean traditional culture in an interactive way. Other than the Folk Village, there are also interactive elements within the location. The Korean Folk Village includes the “four seasons festival”, with festivals 365 days a year. For example, “Welcome to Joseon” runs from March to June, “A Flash of Water in the Dry Sky” from July to August, “The Ghost World” from September to November, and “A Christmas with the King” from November to March. There are also yearly performances with traditional arts, from musical instruments to farmers' music and dance to parades. The location also has a Market Village and a Market Place with food and souvenirs. The Amusement Village is a fun place to go for families to rest after walking around the Folk Village, where Viking ships, horror house experiences, and even slow sled fields (only available in the winter) await. As a place rich with heritage and authentic traditional experiences, the Korean Folk Village stands as one of the best places to go during Seollal for anyone of all ages. Whether it’s strolling around through the houses or engaging in traditional Korean festivities, the museum reanimates the past, allowing visitors to step into Korea’s history and experience its customs in a lively and immersiv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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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0
  • [전재학의 교육칼럼] ‘독서국가’의 선언, 그러나 사서교사는 어디에 있는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가 ‘독서국가’를 선포했다는 소식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매우 반가운 사실이다. 문해력 저하, 사고력 빈곤, 학습격차 심화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독서를 국가 교육의 핵심 전략으로 재정립하겠다는 선언은 분명 시대에 부응한 요청이다. 그러나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정책은 사람을 통해 구현된다.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사서교사의 전국 배치율이 16%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은 ‘독서국가’가 아직 구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서교사는 단순히 책을 정리하고 또 관리하는 인력이 아니다. 교과 수업과 연계한 정보활용교육, 독서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원이다. 핀란드나 독일 등 독서 선진국에서는 학교 도서관과 사서교사가 교육과정의 한 축을 담당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도서관은 있어도 사람은 없다”는 말이 교육 현장의 자조처럼 회자되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우리의 사서교사 양성과정에 있다. 현재 사서교사는 교원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지만, 양성과정은 극히 제한적이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일부 대학에서만 사서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며, 매년 배출 인원도 매우 적다. 그 결과 임용시험 자체가 거의 열리지 않거나, 열리더라도 극소수만 선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비 사서교사들은 수년간 임용을 준비하다 결국 진로를 포기하거나, 기간제·비정규직 형태로 현장을 떠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양성과정의 질적 수준이다. 많은 과정이 여전히 ‘도서관학’ 중심에 머물러 있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요구되는 교육역량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 중학교에서 사서교사가 교과교사와 협력해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려 했지만, 협력수업 경험이나 교육과정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양성과정에서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충분히 길러주지 못한 구조의 문제다. 현장 사례는 사서교사의 효과를 분명히 증명한다. 사서교사가 상주하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10분 독서’가 형식이 아닌 생활이 되었다. 교과 연계 독서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책을 ‘과제’가 아니라 ‘생각의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글쓰기와 토론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반면 사서교사가 없는 학교에서는 도서관이 자물쇠로 잠긴 채 창고처럼 방치되거나, 단순 대출 공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속 교사 또한 학생 앞에ㅓ 책 한 권을 선도해 읽는 학교 문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독서 격차는 곧 교육 격차로 이어진다. 이제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사서교사 양성과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국립대와 교육대학을 중심으로 사서교사 전공 트랙을 신설하고, 안정적인 임용 규모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양성과정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과정 이해, 수업 설계, 교과 협력,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핵심 역량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셋째,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전환·연수 과정도 적극 도입해 학교도서관 전문인력을 단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말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한때 일본은 책읽는 민족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 27명을 배출한 선진국으로 변모했다. “내 인생의 8할은 어려서 마을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는 빌 게이츠의 말은 이미 널리 회자된 바가 있다. 역사상 물줄기를 크게 바꾼 세계적 위인들이 한때 책 읽기에 몰입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서사로 전해지고 있다. ‘독서국가’는 책의 양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질문하고, 연결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서교사는 독서국가의 장식물이 아니라 엔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선언이 아니라, 그 엔진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실질적인 결단이다. 사서교사 양성이나 임용 없는 독서국가는 모래 위에 지은 집 즉,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다시금 확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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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0
  • [오피니언리더스] 한효섭 부산한얼고 교장 퇴임…“수고는 무슨 수고인가”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 한얼고등학교 한효섭 교장의 퇴임은 단순한 임기 만료가 아니다. 전국의 교장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자, 교육 리더십에 대한 깊은 성찰의 메시지다. 올해 80세로 최고령 학교장에 속하는 한 교장은 4년의 임기를 마치며 연임 요청을 받았지만, 정년이 남아 있는 후배에게 학교 경영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더 머무를 수 있었지만, 그는 떠날 때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언제까지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언제 내려놓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답이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휴일을 가리지 않고 학교를 지켰다. 교육 환경 개선, 재정 안정화, 조직의 화합을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성과를 내세우기보다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을 쏟았고, 학교를 ‘내 업적의 무대’가 아니라 ‘공동체의 터전’으로 여겼다. 퇴임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학교는 한 사람의 힘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나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월급 받고 일했는데 무슨 수고인가.”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공직의 본질에 대한 선언이다. 직무는 희생이 아니라 책임이며, 자리는 특권이 아니라 맡겨진 역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교육 현장은 급변하는 정책 환경과 학령인구 감소, 학교 공동체 갈등 등 복합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리더의 태도는 더욱 중요하다. 성과를 과시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리더십. 권한을 행사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책임을 완수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한효섭 교장의 퇴임은 전국의 교장들에게 묻는다. 자리는 얼마나 오래 지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지키다 떠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학교는 나의 성취를 위한 공간인가, 아니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인가. 그는 화려한 수식 대신 담백한 한 문장으로 교육자의 품격을 남겼다. “수고는 무슨 수고인가.” 그 울림은 특정 학교를 넘어 전국 교장들에게 향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있다. 떠나는 순간까지 품격을 잃지 않은 그의 선택은 오래도록 교육 현장에 남을 하나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한효섭 교장 ◇ 학교법인 한얼교육재단 설립자(이사장) ◇ 한얼고등학교 교장 ◇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 회장 ◇ 한국노인교육연합회 회장 ◇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 부산동성고등학교 졸업 ◇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중등교육행정 석사 ◇ 컬럼비아퍼시픽대학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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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9
  • [김홍제의 목요칼럼] 성공을 가르친 교육, 침묵을 배운 사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2019년 미국 금융가이자 사교계 인사였던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이 미성년자 성착취과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엡스타인은 정계·재계·학계·문화계 가릴 것 없이 돈과 권력, 명성을 가진 자는 누구나 자신의 섬으로 초대했다. 그 섬은 나중에 미성년 피해 여성들이 최소 1,000여 명 정도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초대받은 사람 중에 성착취를 했다고 인정한 사람은 없다. 이들의 성범죄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는 엡스타인 파일 속에 담긴 수많은 이메일과 사진뿐이다. 엡스타인 사건의 핵심은 범죄의 잔혹성만이 아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단죄되지 않았는가에 있다. 많은 사회 유명 인사들이 그와 교류했지만 문제 제기는 거의 없었다. 권력자들의 네트워크는 서로를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엡스타인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입사하기 전에는 사립학교 교사였다. ‘엡스타인 사건’ 연루 주요 인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빌 게이츠 MS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놈 촘스키 교수, 영국 앤드루 전 왕자, 뵈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 총재 등이다. 그 명성이 충격적이다.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은 한 범죄자의 타락으로만 읽기엔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다. 그것은 권력, 돈, 명성이라는 이름의 ‘성공’이 어떻게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어디에 들어갔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명문대, 대기업, 고소득 직업. 어릴 때부터 성취와 경쟁의 언어로 살아왔다. 성공의 기준이 단선적이다. 그럴수록 성공을 둘러싼 윤리적 질문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엡스타인 사건에서 보듯이 사회적 지위는 때로 면죄부처럼 작동했고 주변의 엘리트들은 침묵을 선택했다. 능력과 네트워크가 도덕적 판단보다 앞설 때 사회 정의는 쉽게 무너졌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라캉의 말을 보면 인간은 단순히 욕구를 충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권력과 부, 명성과 네트워크는 곧 상징계에서의 승인이다. 엡스타인은 그 상징적 권력을 매개로 욕망의 중심에 서 있었고 많은 이들은 그 주변에서 침묵을 선택했다.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 가르쳐왔는가. 명문대, 자산, 인맥을 향한 경쟁 속에서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도록 교육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로서 윤리적 주체 대신 상징적 지위를 좇는 주체로 학생을 길러낸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라캉에게 욕망은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자각하고 책임져야 할 구조다. 교육은 바로 그 책임을 가르치는 장이어야 한다. 엡스타인 사건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욕망을 성찰하지 못한 사회의 실패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무엇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주체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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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9
  • [구본희 반려詩選] 와우디족(Wow-di 族)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와우디족(Wow-di 族) 손끝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세대들. 웃음도, 분노도 쇼츠처럼 스쳐간다. 느림은 지루하고 침묵은 불편해, 스크롤 속에서 하루를 소비한다.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대화는 댓글 몇 줄이면 족하다. 밥을 고르고 영화를 클릭하며 우리는 '와우'에 중독된 삶을 산다. 손안의 세상ㅡ 화면은 눈부시지만, 마음은 에덴강 너머 어스름 속에 잠긴다. ※와우디족(Wow-di 族): Wow와 Digital 이 합성된 신조어.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디지털 소비에 심취한 세대를 성찰.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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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8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에 새겨진 나침반(東西南北)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동서남북’을 너무나 당연하게 쓴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 서쪽은 해가 지는 곳, 남쪽은 따뜻한 곳, 북쪽은 차가운 곳. 그러나 이 네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곰곰이 물어본 적이 있는가. 방향이라는 추상 개념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고대인의 삶과 도구, 그리고 눈앞의 자연을 관찰한 결과였다. 이에 갑골문 해석은 흥미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전통적 해석은 ‘동(東)’을 나무와 태양으로, ‘서(西)’를 새의 보금자리로 풀이하지만, 이 강연은 생활사적 흔적에 주목한다. 즉, 방향 문자는 일상 도구와 행위에서 비롯되었고, 후대에 의미가 정제되어 오늘날의 동서남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 동(東) - 자루를 메고 떠난 사냥꾼 갑골문 속 ‘東’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나무(木)와 해(日)를 합친 모양이 아니다. 오히려 굵은 막대와 잔가지를 엮고 짐승 가죽으로 씌운 자루의 그림과 닮았다.([그림 17] ‘東’ 참조) 고대인에게 자루는 삶의 필수품이었다. 사냥으로 얻은 고기, 채집한 열매를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도구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 자루가 해 뜨는 쪽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냥과 채집은 이른 아침, 동쪽에서 떠올리는 태양과 함께 시작되었다. 자연스레 ‘자루’라는 그림은 곧 해 뜨는 방향, 동쪽을 뜻하게 되었다. 그 후 문자 변천의 과정을 거치면서, 갑골문의 자루 그림은 금문과 소전에서 도식화되었고, 해서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쓰는 ‘東’자가 되었다. 이처럼 문자 속 자루 하나가 인류의 동쪽 인식의 뿌리가 되었으니, 동방을 ‘해 뜨는 쪽’으로 이해한 관습이 단순한 천문학적 관찰을 넘어 생활 도구와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 서(西) - 물항아리에 깃든 석양 ‘西’자는 흔히 둥근 새집 속 새가 날아드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갑걸문은 다른 길을 제시한다. 홍산문화의 채색 토기, 즉 물 항아리 그림과 ‘西’자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그림 17] ‘西’ 참조) 고대 농경사회에서 하루의 마지막은 물과 함께 정리되었다. 사냥에서 돌아와, 밭일을 마치고, 저녁을 준비하는 시각. 그때 물항아리가 중요한 도구로 등장했다. 해가 지는 서쪽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풍경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서쪽(西)’은 단순한 방위가 아니라, 하루가 저무는 시간과 행위를 상징했다. 이후 ‘서양, 서구’ 같은 의미로 확장되었지만, 그 기원에는 물항아리를 들고 석양을 바라보던 고대인의 일상이 스며 있다. □ 남(南) - 악기와 따뜻한 바람 ‘남쪽’은 의외로 음악과 관련이 깊다. 은허에서 출토된 고대 악기 모양의 도상이 곧 ‘南’의 초기 형태라는 해석이다.([그림 17] ‘南’ 참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발음이다. 고대 중국어에서 ‘南’[남]과 ‘暖(따뜻하다)’[난]의 발음이 비슷했다. 이 때문에 악기의 이름이 따뜻한 방향, 곧 남쪽을 가리키는 말로 차용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남쪽을 따뜻한 지역으로 인식한다. 계절풍의 영향으로 북반구에서 남쪽은 햇볕이 강하고 기후가 온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골문 속 남자는 단순히 기후적 특징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던 악기의 이미지와 언어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자에 담긴 남쪽은 따뜻한 바람처럼, 음악처럼 사람의 감각을 자극하는 방향이었다. □ 북(北) - 그림자의 방향 네 방향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北’이다. 갑골문 속 ‘北’은 등진 두 사람처럼 보인다. 왜 사람 둘이 서로 등을 지고 있을까?([그림 17] ‘北’ 참조) 설명은 이렇다. 고대인은 늘 남쪽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냈다. 그렇게 남쪽을 마주할 때, 사람의 그림자는 북쪽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곧, 그림자가 지는 방향이 북쪽이었다. 그러나 그림자는 문자의 형태로 옮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 둘이 서로 등을 지고 선 형상으로 단순화한 것이 오늘날의 ‘北’자가 되었다. 북쪽은 차갑고 음울한 방향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갑골문 속 북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태양과 사람, 그림자의 구체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징이었다. □ 문자 변천과 해석의 여지 동서남북 네 글자는 갑골문에서 출발해, 금문과 소전, 해서로 이어지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굳어졌다. 처음에는 그림에 가까운 표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단순화·도식화되었다. 강연자는 이 과정에서 주류 문자학의 해석, 특히 ‘동=나무와 태양’ 같은 전통 설명에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대신 고고학 유물, 생활 도구, 풍습을 바탕으로 새 해석을 제안했다. 물론 이는 추정과 상상력을 포함한다. 따라서 문자학·고고학의 더 많은 증거와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문자는 삶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동서남북은 단순한 나침반의 방위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인이 들었던 자루, 썼던 항아리, 울려 퍼지던 악기, 그리고 태양 아래 드리운 그림자의 기억이다. 우리는 그 기억을 문자라는 껍질 속에 간직한 채 오늘도 “동쪽 해가 떴다” “서쪽 하늘이 붉다” 말하고 있다. 이제 동서남북을 떠올릴 때, 단지 지리적 방향만이 아니라 그 속에 새겨진 고대인의 삶과 상징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문자가 곧 문화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새로운 풍경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한자는 풍경이요, 스냅샷이요, 압축 파일인 것이다. □ 한눈에 보는 동서남북 문자 기원 ㅁ동(東) : 자루 그림 → 해 뜨는 쪽(사냥·채집의 시작) ㅁ서(西) : 물항아리 그림 → 하루 끝, 해 지는 쪽 ㅁ남(南) : 악기 모양 → 따뜻한 발음과 연결 → 남쪽 ㅁ북(北) : 사람+그림자 → 그림자가 향하는 쪽 → 북쪽 방향은 언제나 길을 찾게 해준다. 그러나 문자가 말하는 방향은 단순한 나침반의 좌표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인의 눈과 손, 그리고 삶의 궤적이 새겨진 문화적 나침반이다. 오늘 우리가 동서남북을 부르는 순간, 사실은 수천 년 전의 사냥꾼, 농부, 음악가, 제사장의 세계와 조용히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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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8
  • [오피니언리더스] 이현우 부산서구의원, “정치는 골목에서 시작됩니다”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광역시 서구의 한 골목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의원님, 이제 밤길이 무섭지 않아요.”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랫동안 쌓여온 불안과 안도의 감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 골목은 오래된 주택가 사이에 있었다. 가로등은 희미했고, 계단 난간은 손으로 잡으면 흔들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기가 마르지 않아 미끄러웠고, 어르신들은 늘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집으로 향해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시설 보수’일지 모르지만, 그곳을 매일 오르내리는 주민들에게는 하루의 안전이 달린 문제였다. 그날 한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 좀 봐주세요. 넘어질까 무서워요.” 그 말을 듣고 멈춰 선 사람이 있다. 바로 이현우 의원이다. ■ "민원은 숫자가 아니라 얼굴입니다" 이 의원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밤의 밝기와 그림자, 계단의 경사와 난간의 흔들림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담당 부서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쳤다. 단순 요청이 아니라 예산 반영 가능성과 공사 시기, 주민 불편 최소화 방안까지 꼼꼼히 챙겼다. 조명은 교체되었고, 난간은 보강되었다. 몇 주 뒤, 같은 어르신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는 손주 손 잡고 다닐 수 있어요.” 그 순간, 그 골목은 단순히 밝아진 것이 아니라 ‘안심’이라는 감정을 되찾았다. 이 의원은 말한다. “민원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일상이 바뀌면, 그게 정치의 이유입니다.” 기자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정치는 언제부터 보고서와 통계가 되었는가. 정치는 원래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아니었는가. ■ 지역일꾼의 자세 그는 자신을 ‘의원’보다 ‘지역 일꾼’이라 부른다. 큰 정책보다 주민 한 사람의 불편을 먼저 살핀다. 통학로의 균열, 경로당 냉난방 문제, 상인의 간판 조명, 폭우 뒤 배수로 정비…. 작은 민원 하나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민원을 듣고, 현장을 걷고, 행정과 연결하고, 처리 과정을 점검하고, 다시 현장을 찾는다. 그 반복 속에서 신뢰가 쌓인다. 주민들은 말한다. “연락하면 끝까지 챙겨주는 사람이다.”, “결과를 꼭 알려준다.”, “해결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서구 해결사’다. 하지만 그가 해결하는 것은 단지 시설 문제가 아니다. 주민의 불안을 덜어주고, 일상의 안정을 되돌려 주는 일이다. ■ 봉사에서 배운 정치 겨울 부산연탄은행 나눔 봉사 현장에서,폭염 속 경로당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태풍이 지나간 뒤 파손된 시설을 살피는 골목에서. 그는 늘 먼저 와 있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이웃이 불편하면 저도 편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직업이 되기 전에, 그는 먼저 이웃이었다. 그래서 그의 정치는 따뜻하다.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손을 내민다. 성과를 자랑하기보다 주민의 말을 먼저 듣는다. ■ 정치의 본질을 다시 묻다 정치는 멀리 있지 않다. 골목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 그곳이 정치의 자리다. 이현우 의원이 밝힌 골목은 어쩌면 작은 공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서 시작된 변화는 주민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어두웠던 길이 밝아졌고, 흔들리던 난간이 단단해졌으며, 무섭던 밤길이 안심의 길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가 정치의 이유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부산 서구에는 오늘도 묵묵히 골목을 걷는 한 지역 일꾼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한 정치. 우리는 어쩌면 그런 정치인을 오래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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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2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에 새겨진 동이족의 삶(學, 孫, 布, 妻)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가 매일 쓰는 한자는 단순히 뜻을 전하는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인의 삶과 습속, 주술과 의례, 노동과 놀이가 응축된 문화의 기록이다. 특히 갑골문 속에서 네 글자-學(배울 학), 孫(손자 손), 布(펼 포), 妻(아내 처)-의 기원을 살펴보면, 동이족의 생활 풍습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흔적으로 이어져 내려왔는지를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다. □ 學(학) - 윷판에서 시작된 학문 오늘날 ‘학교’의 ‘학(學)’은 배움, 교육을 뜻한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그 뿌리는 의외로 점(卜), 그것도 윷점에서 비롯되었다. 자형을 보면 두 손이 막대기 네 개를 쥐고 있고, 그 위로 집(宀)이 얹혀 있다. 막대기 네 개는 오늘날의 윷과 꼭 닮았다.([그림 16] ‘學’ 참조) 즉, ‘학’이란 원래 ‘윷점을 배우는 집’이었다. 고대 동이족은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윷을 던지고 점을 치며 우주의 이치를 탐구했다. 점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세상 이치를 해석하는 지적 훈련이었다. 은나라 시절, 이 글자는 학문을 닦는 관청의 이름으로 쓰였고, 한나라에 이르러 중앙 교육기관을 뜻하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라는 개념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설날마다 즐기는 윷놀이가 수천 년 전의 윷점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이다. 놀이로 남은 윷이 사실은 학문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배운다(學)’는 말 속에 이미 동이족의 놀이와 점술, 그리고 학문의 기원이 함께 숨어 있는 것이다. □ 孫(손) - 탯줄과 새끼줄에 담긴 자손의 의미 ‘손자 손(孫)’의 갑골문을 보면, ‘아들(子)’과 더불어 배꼽에서 이어지는 선이 그려져 있다. 이는 다름 아닌 탯줄이다. 아이와 어머니를 잇는 생명의 끈이 바로 자손(子孫)의 연속성을 상징한 것이다.([그림 16] ‘孫’ 참조) 동이족은 출산 후 집 대문 앞에 새끼줄을 걸고, 고추나 솔가지를 달아 아이의 성별을 알렸다. 새끼줄은 부정을 막는 주술적 도구였고, 동시에 자손 번영을 기원하는 표식이었다. 지금도 설이나 장례 때 대문에 금줄을 치는 풍습이 남아 있다. ‘孫’의 변천을 보면, 처음에는 탯줄 모양이 강조되다가, 점차 ‘작을 소(小)’와 결합하며 ‘이어짐, 계승’이라는 의미가 굳어졌다. 그래서 손자는 단순히 자녀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혈맥과 삶의 연속성을 나타낸다. 문자 속 탯줄의 그림은 지금도 우리가 자손을 ‘대(代)를 잇는다’고 말할 때 그 깊은 뿌리를 전해주고 있다. □ 布(포) - 다듬이질 소리에 남은 기억 ‘펼 포(布)’는 오늘날 ‘배포하다, 보급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은자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두 손에 방망이를 들고 천을 두드리는 모습, 곧 다듬이질이다.([그림 16] ‘布’ 참조) 고대 동이족 여성들은 짠 천을 두드려 반듯하게 펴고 매끈하게 만들었다. 그 리듬 있는 소리와 동작이 글자에 남아 ‘布’가 되었다. 다듬이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 여성들의 생활을 이끄는 리듬이자 노래였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포(布)’의 발음은 우리말 ‘배’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고대에는 ‘괴 → 배’로 발음이 변해왔는데, 직물을 펴고 나누는 행위가 ‘배(포)’라는 말로 이어졌을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포포하다’ 대신 ‘배포하다’라고 한다. 문자 속 다듬이질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발음과 뜻에 남아 있는 것이다. □ 妻(처) - 머리를 올린 여인의 상징 마지막으로 ‘아내 처(妻)’를 보자. 갑골문에서 妻는 무릎 꿇은 여인 위에 손이 얹히고, 머리에 장식이 얹힌 모습이다. 이는 ‘머리를 올린 여성’을 가리킨다.([그림 16] ‘妻’ 참조) 동이족 사회에서 머리를 올리는 행위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소녀에서 성인 여성으로 넘어가는 성인식, 그리고 혼인 의례에서 여인은 머리를 올렸다. 머리를 올린다는 것은 곧 성숙, 결혼, 새로운 역할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 풍습은 오랫동안 이어져, 조선시대까지도 혼례 때 여인이 쪽을 찌는 관습으로 남았다. 문자 속에 담긴 상징이 수천 년 뒤의 생활까지도 영향을 준 셈이다. 그래서 妻라는 글자는 단순히 아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의 인생 전환점을 기록한 문화적 표지였다. □ 문자 속에 남은 동이족의 삶 네 글자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한자는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고대인의 생활 풍습과 주술, 놀이와 노동이 굳어져 남은 문화의 화석이다. 學은 윷판에서 하늘의 뜻을 배우던 점술에서 출발해, 오늘날 ‘학교’로 이어졌다. 孫은 탯줄과 새끼줄에서 비롯되어, 자손 번영과 생명의 연속을 상징했다. 布는 다듬이질의 소리와 동작에서 나와, ‘펼치고 나누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妻는 머리를 올린 여인의 모습에서 시작해, 성인식과 혼례의 풍습을 문자에 새겼다. 이 글자들은 모두 동이족의 삶과 직결되어 있으며, 지금도 우리의 언어와 풍습 속에 숨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 오늘의 우리에게 우리는 문자 속에서 과거를 읽는다. 學, 孫, 布, 妻라는 네 글자는 동이족의 놀이와 주술, 노동과 혼례가 어떻게 언어와 문화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과거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언어와 풍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설날 윷놀이를 하면서, 집 앞에 금줄을 보면서, 다듬이질 소리를 떠올리면서, 혼례 때 쪽진 머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고대의 기억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는 죽은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이며, 문화의 기억이고, 시간을 건너온 메시지다. 學, 孫, 布, 妻 네 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희가 쓰는 말과 글 속에는 이미 우리의 삶이 남아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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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1
  • [오피니언리더스] 박수영 의원, 의정보고회 성료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광역시 남구 국회의원 박수영 의원은 2월 7일(토) 오후 2시 부경대학교 컨벤션홀에서 2025년 의정보고회를 개최하고, 지난 1년간의 의정활동과 지역 발전 성과를 구민들에게 직접 보고했다. 이날 의정보고회에는 지역 주요 인사와 남구 구민 등 약 800여 명이 참석해 좌석을 가득 메우며 성황을 이뤘다. 행사장은 시작 전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며 박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높은 관심과 기대를 보여줬다. □ 박형준 시장·지역 국회의원·당 지도부 총출동 의정보고회에는 박형준 부산시장을 비롯해 김민전 국민의힘 국회의원, 서지영 국회의원, 조승환 국회의원 등 지역과 중앙을 대표하는 주요 정치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화상 축전을 통해 “박수영 의원은 민생과 국가 재정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해 온 정책통 정치인”이라고 평가했으며, 송언석 원내대표도 서면 축전을 통해 입법·예산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 ‘국쫌만’ 264회… 현장에서 답을 찾다 박 의원은 보고를 통해 “국회의원 ‘국쫌만(국회의원 좀 만납시다)’을 총 264회 진행하며 주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며, “정치는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기네스북감”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 대표발의 14건·본회의 통과 8건… 민생·기업 입법 성과 박 의원은 제22대 국회에서 대표발의 법안 14건 가운데 8건을 본회의 통과시키는 실질적인 입법 성과를 거뒀다(2025년 12월 기준) ▲중기협동조합법 개정 ▲항공기 부품 관세 면제 ▲저도주 세율 인하 ▲스트롱K칩스법, e스포츠 세액공제법 ▲배당소득 분리과세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100억 원 상향 및 동학개미 보호법 ▲공익법인 상속세 한도 상향 등은 ‘민생을 살리고 기업을 날게 하는 박수영표 법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 2026년도 남구 예산 416.7억 원 확보… 동별 국비 성과 구체화 박 의원은 2026년도 남구 관련 예산 총 416억 7천만 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국비는 346억 6천만 원으로, 부산시 특별교부금과 행정안전부·교육부 특별교부금 등이 포함돼 생활 SOC 확충과 안전·교육 환경 개선에 활용될 예정이다. □ 동별 국비 확보 성과도 구체적으로 제시 부산 남구지역 대연동 101억 2천만 원, 용호동 7억 5천만 원, 문현동 114억 3천만 원, 우암·감만·용당동 98억 5천만 원의 국비가 각각 확보되며, 남구 전역에 걸친 균형 있는 재정 성과를 이뤄냈다. 이들 예산은 ▲생활 SOC 확충 ▲도시 기반시설 개선 ▲주거·안전 환경 정비 ▲교육·복지 인프라 강화 등에 투입돼,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는 남구 전반의 체질 개선과 생활 여건 향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 “우리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 교육 1번지 남구로” 이날 의정보고회에서는 교육 성과가 핵심 성과로 강조됐다. 박 의원은 “우리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며 최근 5년간 부산 남구 교육발전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총 1,475억 원 규모의 교육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당 예산은 ▲학교 교육환경 개선 ▲노후 시설 개보수 ▲미래형 교육 인프라 구축 ▲안전한 통학 환경 조성 ▲교육 격차 해소 등에 투입돼 남구를 ‘대한민국 교육 1번지’로 도약시키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국정감사 종합 1위… “야성의 저격수, 송곳 질의” 박 의원은 2025년도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종합 1위를 기록하며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마약 밀수, 가상자산 해외 유출, 외환시장 불안, 조세 형평성 문제 등을 집중 추궁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 “1년을 4년처럼”… 일등 남구 향한 책임 정치 박 의원은 “지난 1년은 임기 4년에 버금가는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현장에서 답을 찾는 정치로, 아이 키우기 좋고 살기 좋은 일등 남구를 반드시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의정보고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성과로 말하는 정치”, “교육·민생·경제를 모두 챙긴 의정활동”이라며 큰 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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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7
  • [김홍제의 목요칼럼] 정성스러운 한 걸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딱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주말에 1박 2일로 고창 선운사에서 하는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눈도 오고 혹한 날씨에 볼이 따갑도록 추웠지만 마음은 충만함을 얻었다. 새벽 4시 새벽예불이나 캄캄한 밤길을 걸어서 가는 길이나 법당의 불빛이 사진처럼 가슴에 선명하게 저장되었다. 짧은 체험 중에 배운 것은 ‘지금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실천이다. 미완성이고 부족한 인간이 욕망과 욕심으로 충돌하여 갈등을 만들고 아파하며 고통을 겪는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서 구름 밑에 보이는 도로와 집을 보면 그 많은 갈등이 개미 다리보다 작고 하찮은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 하찮은 것들이 모여서 지지고 볶는 세상이 되고 그 안에서 금방 후회할 일로 싸우고 속이고 힘들어한다. 생명체의 우연과 필연으로 삶은 욕망의 연료로 하루를 시작한다. 만족과 불만족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다. 산다는 것이 별것 아니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산다는 것처럼 놀라운 축복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렇게 알맞은 온도와 햇살과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이곳이 바로 기적 같은 천국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작품인가. 신문에서 ‘5,000일 기도해 보니 지금 이 순간, 한 걸음이 소중’(조선일보, 1월 30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5,000일이나 기도하고 무엇을 얻었을까. 호기심이 생기는 기사 제목이었다. 광주광역시 무각사 주지 청학 스님은 19년간 이어온 ‘5,000일 기도’를 2월 7일 마친다. 스님의 기도는 2007년 8월 13일 주지 부임한 날 시작됐다. 매일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6시 하루 세 차례 1시간 30분씩 108배하고 목탁 치며 금강경을 독송했다. 기도는 치열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없앴고 바깥출입을 끊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이 목탁 3개가 깨져 나갔고 가사, 장삼, 방석은 얼마나 해지고 기웠는지 모른다. 50대 중반에 시작하여 5,000일 기도를 올리는 사이 70대 중반에 이른 청학 스님의 말이다. “5,000일 기도를 마치면 나한테 큰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 적도 있어요. 아니에요. 가장 큰 깨달음은 오직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걸음이란 현실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오직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 5,000일을 수행하면서 얻는 거대한 깨달음이다. 생각과 말만 무성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교육계에 ‘정치의 바람’이 불고 있다. 6월 3일로 예정된 교육감 선거 얘기다. 연일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들의 출판기념회, 출마 선언 소식이 들려온다. 지인 얼굴도 현수막에 올라왔다. 진정으로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교육감 후보의 얼굴이 지면에 올라온다. 교육은 진정성과 안목을 가진 지도자가 이끌어 가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많은 공약이 난무할 것이다. 공약은 많았지만 정작 교육은 과거의 정책을 재탕하거나 퇴행하는 일이 많았다. 정성스러운 한 걸음은 올바른 실천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를 통해 진정성 있는 교육 성장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올바른 선택도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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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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