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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잠 못 드는 밤의 이유: 장(腸)과 뇌(腦)를 잇는 불면의 과학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 "오늘 밤은 잠들 수 있을까?" 만성 불면증과 수면제의 딜레마 불면증은 단순히 잠이 부족한 상태를 넘어, 수면의 양이나 질에 대한 주관적 불만족이 지속되어 일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잠들기 어렵거나, 잠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일찍 깨는 증상이 주 3회 이상, 최소 3개월간 지속될 때 만성 불면증으로 진단합니다. 주요 원인으로는 스트레스, 신체 질환, 약물 부작용 및 부적절한 수면 위생 등이 꼽힙니다. 현재 임상에서 많이 활용되는 수면제는 단기적인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나, 장기 복용 시 약물 의존성, 내성, 그리고 인지 기능 저하와 같은 부작용 위험이 있어 장기적 관리를 위해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잠 못 드는 진짜 이유, 뇌가 아닌 '장(腸)'에 있을 수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장내 미생물과 뇌 기능의 상호작용인 '장-뇌축(Gut-Brain Axis)' 경로가 불면증 발생의 중요 병리 기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은 장내 미생물의 조성 및 대사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균형이 깨지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dysbiosis)'은 불면증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이 생성하는 단쇄지방산(SCFA) 등 대사물질은 혈액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신경전달물질 및 뇌의 염증 반응 조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즉, 장 건강이 나빠지면 전신 염증 상태가 유발되고, 이것이 다시 뇌의 수면 조절 시스템을 교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 장내 유익균을 살리고 신경을 달래는 한의 치료의 현대 과학적 효과 현대 한의학에서는 바로 이러한 장-뇌축 경로를 조절하여 불면증 치료 효과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불면증 치료에 활용된 한약 처방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에 기록된 ‘쌍하탕(双夏汤)'은 최신 연구기법인 다중오믹스(multi-omics) 분석을 통해 장내 유익균인 Bacteroides와 Akkermansia를 증식시키는 동시에, 로즈마린산(Rosmarinic acid) 등의 유효 성분을 통해 수면 박탈로 유도된 신경 염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현대 한의약 임상에서도 널리 활용되는 여러 활용되는 여러 한약재는 장내 미생물의 핵심 대사물질인 단쇄지방산(SCFA) 농도를 정상화합니다. 이 물질은 혈액-뇌 장벽(BBB)을 통과하여 신경 염증과 스트레스 조절 축을 안정화함으로써 불면을 유발하는 생체 환경을 개선합니다. 특히 산조인의 주요 성분인 스피노신(Spinosin) 등은 GABAA 수용체의 기능을 정밀하게 조절하여 수면 구조를 안정화합니다. 이들은 기존 수면제가 유발하는 내성이나 인지 기능 저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최신 한의약 연구의 성과입니다. ○ 최근 연구에 따르면 침은 뇌의 기능적 연결성을 조절하고 신경 염증 관련 유전자 발현 형태를 변화시켜 만성 불면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최근의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는 침전기자극술(electroacupuncture) 치료가 우울증을 동반한 불면증 환자가 겪는 수면의 질 저하 및 심리 상태 문제를 개선하는 효능이 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침치료의 작용 기전에 관한 연구에서도 침은 한약처럼 장내 미생물 군집의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뇌의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등 인체의 여러 영역에 작용함으로써 불면의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 수면제 없이 자연스럽게 잠드는 습관을 기르는 일상 속 자가관리 건강한 수면 관리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치료와 더불어 생활 습관 교정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인지행동치료 원칙 준수: 일정한 시간에 기상하고, 낮잠을 피하며, 침대에서는 수면 외의 활동(스마트폰 사용 등)을 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 수면 환경 최적화: 침실을 어둡고 시원하게 유지하며, 취침 전 카페인, 알코올, 과도한 식사는 피해야 합니다. - 장 건강을 고려한 식단: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돕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은 장-뇌축을 안정화하여 숙면을 돕습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신체와 정신의 회복력을 약화시키는 큰 부담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한의 치료와 올바른 생활 관리를 통해 장과 뇌의 균형을 회복해 활기찬 100세 시대를 위한 건강한 수면 기반을 마련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Junna MR, Lipford MC, Auger RR. Approach to Insomnia. Mayo Clin Proc. 2026 Feb;101(2):310-317. doi: 10.1016/j.mayocp.2025.11.014. 2.Zhao D, Zou B, Do QL, Wu SK, Shen Y, Yang Y, Kang JX, Su KP, Wang B. Circadian rhythms and gut microbiota Dysbiosis: emerging gut-brain axis pathways in insomnia pathophysiology and Therapeutics. Brain Behav Immun. 2026 Feb;132:106203. doi: 10.1016/j.bbi.2025.106203. 3.Liu R, Wu H, Zhang J, Yang Y, Wang J, Li T, Yu G, Guan J, Fang L, Sun Y, Zhang C. Elucidating the mechanism of the first Chinese herbal formula Shuangxia Decoction to alleviate insomnia using multi-omics technologies. Phytomedicine. 2025 Apr;139:156454. doi: 10.1016/j.phymed.2025.156454. 4.Feng W, Yang Z, Liu Y, Chen R, Song Z, Pan G, Zhang Y, Guo Z, Ding X, Chen L, Wang Y. Gut microbiota: A new target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for insomnia. Biomed Pharmacother. 2023 Apr;160:114344. doi: 10.1016/j.biopha.2023.114344. 5.Zhang B, Wang Q, Zhang Y, Wang H, Kang J, Zhu Y, Wang B, Feng S. Treatment of Insomnia With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Presents a Promising Prospect. Phytother Res. 2025 Apr 18. doi: 10.1002/ptr.8495. 6.Zhao FY, Spencer SJ, Kennedy GA, Zheng Z, Conduit R, Zhang WJ, Xu P, Yue LP, Wang YM, Xu Y, Fu QQ, Ho YS. Acupuncture for primary insomnia: Effectiveness, safety, mechanisms and recommendations for clinical practice. Sleep Med Rev. 2024 Apr;74:101892. doi: 10.1016/j.smrv.2023.101892. 7.Yin X, Li W, Liang T, Lu B, Yue H, Li S, Zhong VW, Zhang W, Li X, Zhou S, Mi Y, Wu H, Xu S. Effect of Electroacupuncture on Insomnia in Patients With Depression: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Netw Open. 2022 Jul 1;5(7):e2220563. doi: 10.1001/jamanetworkopen.2022.20563. 8.Lin W, Yu L, Xu H, Xiao X, Xia Z, Dou Z, Hu D, He Y, Yang L, Yang J, Zhu T, Zeng F, Yu S. Neuroinflammation-informed neuroimaging-transcriptomic signatures explaining acupuncture's therapeutic effects in chronic insomnia. Chin Med. 2025 Nov 28;20(1):207. doi: 10.1186/s13020-025-01236-5.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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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권 추락 속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 그 교육적 함의는?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여러 통계에서 중·고등학생이 희망하는 미래 직업 1위가 10년째 ‘교사’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아이러니하다. 교권 침해, 학부모 민원, 과도한 업무 부담 등으로 교사는 ‘위험한 직업’ 또는 3D 업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 시대에 말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왜 교사를 꿈꾸는가? 이 현상은 단순한 직업 선호가 아니라, 어쩌면 전화위복으로 우리 교육이 품고 있는 희망의 신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바라보는 ‘교사’는 현실의 피로한 교사가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켜 준 한 명의 교사, 마음을 지탱해 준 어른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그러한 긍정적판단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 한 학생은 의대에 복수 합격했지만 교사의 꿈을 키우기 위해 사범대학에 진학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이 더 강했기 때문에 결단했다고 한다. 최근 부산의 한 고등학생은 학업 부진과 가정불화로 학교를 떠날 뻔했지만 담임 교사의 끈질긴 관심과 대화 속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관계적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다. 교사의 사회적 명성은 낮아졌지만, 청소년이 느끼는 교사의 존재감은 결코 추락하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교사는 안정적이다’라는 오래된 통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10년 넘게 1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학생들이 직업을 안정적인 ‘생계 수단’보다 ‘의미 있는 삶’으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생계 수단으로 삼으면 최근 교직에서 이탈하는 많은 젊은 교사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청소년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관계, 보람, 가치와 같은 비가시적 요소를 중시한다. 그리고 그 정점에 ‘사람을 성장시키는 직업’,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과 같은 존재감이 있다. 교사라는 직업은 바로 이런 정서에 가장 잘 부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이 우리나라 교육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첫째, 학생들이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오히려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 진로 교육은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는 직업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거나 ‘안정성·수입’ 중심의 안내에 머무른다. 그러나 미래세대는 이미 ‘일의 의미’를 중심으로 진로를 탐색하고 있다. 진로 교육은 학생이 자신의 가치관, 강점, 성향을 탐구하고 직업의 본질적 의미와 연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현장 경험 중심, 즉 삶의 힘을 기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는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실제 학교 업무를 교사와 함께 체험하는 ‘미니 티칭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참여한 학생 대부분이 “교사가 이렇게 복잡한 직업인지 몰랐다”고 했지만 동시에 “힘들지만 보람 있다”고 답했다. 이 경험은 ‘환상 속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현실의 가치 있는 직업’으로 교사를 이해했다. 이제 학교에서의 진로 교육은 (특정) 직업을 미화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되 지혜롭게 삶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교육은 ‘좋은 어른’, ‘인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어야 한다. 진로 선택의 상당 부분은 정보보다 ‘관계’에서 나온다. 학생의 진로가 흔들릴 때,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해 주는 보다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인 어른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교사는 바로 그 어른이 될 수 있다. 결국 교사는 학생과 깊은 신뢰 즉, 래포(rapport)를 형성한 인격의 소유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처럼 교권이 흔들리는 시대에도 학생들은 여전히 교사에게서 ‘좋은 어른’, ‘의미 있는 삶’,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힘’을 보고 있다. 청소년의 교사 선호는 오늘의 교육 현실을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학교는 학생들이 꿈꾸는 가치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가? 교사는 본질적인 교육의 역할을 제대로 실천하는 성숙한 어른인가? 이 질문에 믿음과 성실로써 증명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교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메시지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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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성(姓)과 씨(氏), 우리 이름 뒤에 숨은 오래된 이야기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모두 성을 가지고 있다. 김씨, 이씨, 박씨...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앞에 붙는 그것.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묘하다. 왜 굳이 성과 이름을 나누어야 했을까? 더구나 옛 문헌을 보면 성(姓)과 씨(氏)는 본래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한다. 지금은 하나로 뭉뚱그려졌지만, 그 기원은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신비로운 세계와 맞닿아 있다. 성과 씨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족보의 문제가 아니라, 고대 사회의 생식 숭배, 조상 숭배, 정치 권력의 재편, 그리고 문자와 기록의 편집 과정이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 성은 왜 ‘여자(女)’에서 시작했을까 ‘성(姓)’이라는 글자를 보자. 전통적 해석은 단순하다. ‘여자가 낳는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단순한 ‘출산’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다. 원형에는 여성의 형상, 풀과 씨앗, 불꽃 같은 생명의 상징이 섞여 있었다. 성은 곧 생명의 원천, 생식력을 이어가는 힘을 가리켰다는 것이다.([그림 24] ‘姓’ 참조) 하지만 세상이 변한다. 부계 중심 사회가 등장하면서, 문자의 모양조차 달라졌다. 원래 여자 그림이 들어있던 글자가 어느 순간 인(人) 자로 바뀌거나, 여성적 요소가 사라지고 추상적 부계 표지가 들어섰다. 문자학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글자의 뼈대를 다시 짠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의 모습은 그 변형의 결과물이다. □ 씨(氏), 씨앗일까, 말뚝일까 ‘씨(氏)’의 기원은 더욱 난해하다. 학계에는 다섯 가지 설이 있다. 오이를 닮았다느니, 동굴의 형상이라느니, 흐르는 물을 뜻한다느니, 절벽을 본뜬 글자라느니… 심지어 남성 성기를 상징했다는 주장까지 있다. 그중 ‘씨앗설’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본다. 곡식을 뿌리는 사람의 동작,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씨앗의 힘이 글자의 뿌리였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고대 묘지(소화 묘지)에서는 남녀 무덤마다 다른 말뚝과 목주가 세워져 있었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성기 상징과 생식 숭배의 흔적으로 본다. 씨(氏)라는 제도 역시 이런 신앙과 깊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그림 24] ‘氏’ 참조)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씨는 씨앗이자 말뚝, 곧 생식과 토지, 신분을 함께 뜻했을 수 있다. 문자와 유물, 민속 상징이 한데 얽혀 만들어진 다층적 개념이었다. □ 조상 숭배는 곧 생식 숭배였다 오늘날 우리는 제사를 조상에 대한 예의로 이해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조상 숭배는 곧 생식력 숭배였다. 선조가 자손을 낳아 이어주었듯, 제사와 제의는 ‘생명이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의식이었다. 타클라마칸 미라 옆에 세워진 남녀 상징 말뚝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성과 씨라는 제도가 단순히 ‘가문 구분’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를 제도화한 장치였음을 시사한다. □ 정치와 권력이 성씨를 바꿔 놓다 그러나 생명의 상징은 곧 권력의 도구가 된다. 주나라 이후 정치 권력은 모계 중심 전통을 약화시키고, ‘덕(德)’과 ‘천명(天命)’ 같은 추상적 개념을 내세워 지배의 정당성을 재편했다. 사마천 같은 역사 편찬자들은 성과 씨의 구분을 흐리게 적었고, 후대 독자들은 그 차이를 잊어버렸다. 진(秦)의 중앙집권은 성씨 제도를 또 한 번 바꿔 놓았다. 호적과 행정 체계가 정비되면서 씨(氏), 곧 봉토와 신분을 구분하던 표식은 의미를 잃고, 성과 통합되어 버렸다. 이제 성씨는 혈통과 행정이 결합한 제도가 되었다. □ 한국에서 성씨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한국의 성씨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성씨가 사회 전반에 정착한 시기는 4~6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귀족층만 성씨를 가졌고, 일반 백성은 이름만 있었다.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왕권이 호적 제도를 정비하면서 성씨가 확대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성을 가지게 되었다. 동이계 후손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씨의 뿌리는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다만 기록이 부족해 단정하기는 어렵다. □ 이름은 곧 역사다 성과 씨는 단순한 가계 표지가 아니다. 그것은 생식과 조상 숭배의 상징이었고, 사회 구조와 권력 재편의 흔적이었으며, 문자와 행정 제도의 변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결과물이다. 우리가 성씨를 부를 때마다, 사실은 수천 년 전의 신앙과 생활, 권력의 흔적을 동시에 불러내고 있는 셈이다. □ 남은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강 선생은 문자 연구와 고고학 발굴, 민속 연구를 종합해 성씨의 원형을 더 치밀하게 밝히는 과제를 제안한다. 타클라마칸 묘지의 말뚝, 갑골문 속의 여성 형상, 고려·조선의 성씨 확산 과정은 그 단서가 될 수 있다. 성씨 제도를 둘러싼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단순한 과거 탐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누구인지를 새삼 자문하는 일이다. 우리가 오늘도 부르는 성씨. 그것은 단지 행정상의 호칭이나 족보의 표지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전, 생명을 숭배하고 조상을 기렸던 인간의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증거다. 우리의 이름 앞에 붙은 글자 하나에, 그렇게 깊고 먼 역사가 겹겹이 스며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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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AI 시대의 생존 전략: 한국직업교육원과 전남광주직업교육원 설립을 제안하며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특이점이 목전에 다가왔다.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 역시 근본적인 전환점에 서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은 직업교육이다. 이제는 단순히 개인의 기술 습득을 넘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직업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다. 그 해법으로 중앙 정부 수준의 한국직업교육원(가칭)과 광역 단위의 직업교육 거점, 특히 행정과 교육의 대통합을 이뤄낸 지역 모델로서 전남광주직업교육원(가칭) 설립을 적극 제안한다. □ 정치적 이해타산을 넘어선 국가적 책무 반세기 전 故김대중 前대통령은 옥중에서도 지식산업 사회와 초지능 시대의 등장을 예견하며 인본주의적 기술관을 강조했다. 이러한 통찰은 이후 보수와 진보라는 정권의 색채와 상관없이 기술이 곧 국력이라는 명제 아래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이어져 왔다. 직업교육은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생존이 걸린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우리 사회의 허리를 지탱해야 할 특성화고와 전문대, 폴리텍대학은 여전히 견고한 학벌주의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기업은 현장에 바로 투입할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치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한숨짓는 인력 미스매치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교육이 산업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지금의 구조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 학벌의 늪을 건너 실무 중심의 고등교육 개편으로 뿌리 깊은 학벌 중심 사회는 유능한 청년들조차 현장 대신 대학 간판을 쫓게 만든다. 심지어 일부 특성화고 학생들마저 직업교육 그 자체보다 대입 가산점을 위한 통로로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직업교육원의 설립은 이러한 왜곡된 흐름을 바로잡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이곳은 단순히 기관 하나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로 이어지는 직업교육의 끊어진 고리를 잇고, 간판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를 만드는 고등교육 구조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교육의 형식이 아닌 내용에 집중할 때 우리 청년들은 비로소 당당한 전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 칸막이를 허무는 통합적 컨트롤타워 현재 우리나라 직업교육은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로 이원화되어 있다. 부처 간의 행정적 칸막이는 현장의 목소리를 빠르게 반영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새로 설립될 직업교육원은 교육부가 주관하되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긴밀히 협력하는 범부처 통합 기구여야 한다. 학문적 기반과 현장의 실무 훈련이 한데 어우러지는 AI 시대의 기술 사령탑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독일 경제를 지탱하는 저력은 학교의 이론과 기업의 실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이원화 시스템(Dual System)에서 나온다. 독일에서 직업교육은 단순한 기술자 양성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인간의 품격을 완성하는 빌둥(Bildung), 즉 자기 형성의 과정이다. 우리도 산업과 교육이 유기체처럼 움직여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독일식 구조의 강점에 주목해야 한다. □ 통합 전남광주교육청의 핵심 과제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 전남과 광주는 행정과 교육의 대통합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이 통합의 시너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모델이 바로 전남광주직업교육원이다. 이곳은 초등과 중등 단계의 진로 탐색부터 고등 단계의 전문 교육까지 아우르는 지역 인재 양성의 거점이 될 것이다. 광주의 인공지능 및 데이터 산업과 전남의 에너지 및 모빌리티 등 지역 전략 산업을 직업교육과 직접 연결해야 한다. 지역 내 기업과 학교가 하나로 묶여 한국형 독일식 교육을 구현할 때 우리 아이들은 기술의 부속품이 아닌 세계적인 전문가로 자라날 수 있다. □ 사유하는 직업인 기술의 주인을 기르는 길 직업교육은 단순히 먹고사는 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넘어선다. 인간이 노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본주의적 과정이다. 이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교육 행정가들은 교육의 본질을 바꾸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국직업교육원과 전남광주직업교육원은 우리 아이들이 거친 인공지능 시대의 파도를 헤쳐 나갈 든든한 구명정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는 힘을 가진 자유인이자 숙련된 전문가를 길러내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가장 인간답게 살아낼 따뜻하고도 확실한 해법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에너지경영학과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2024 칼만 해외석학(독일 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 前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한국전문대학평가인증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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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교육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가야 할 길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국 교육은 과거에 국제사회에서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되어 왔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재임 중에 “한국 교육을 보라”며 높은 교육열을 부러워하며 한국 교사들을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한국은 3년마다 실시되는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특히 수학과 과학에서 강세를 보이며 세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는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 학생들의 노력,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어우러져 만든 성과다. 그러나 세계가 한국 교육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은 우려도 깊다. 이 글에서는 우리 교육의 양면적 평가에 대해 고찰해 보고 나아갈 길을 제언하고자 한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보다 높은 학업 성취도다. 성실성과 근면함, 목표를 향한 집중력은 한국 학생들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힌다. 또한 전자 교과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 등 ICT 기반의 교육 환경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학습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체계적이고 일관된 커리큘럼, 우수한 교원 역량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높은 성취’의 이면에는 입시 위주의 과도한 경쟁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우리 교육의 단골 비판 메뉴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경쟁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정답 맞추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시험 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은 비판적 사고와 자기주도성을 키우기 어렵게 만든다. 세계 언론은 이를 “점수는 높지만 창의성은 낮은 교육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교육의 또 다른 그림자는 사교육이다. 이는 역으로 공교육의 불신과 퇴보를 의미한다. 수능과 내신에 대한 부담은 학부모를 사교육 시장으로 이끈다. 이로써 가계의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는 교육 본연의 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야 하며, 그 평등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오늘날 세계는 4차 산업혁명과 최첨단 디지털,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는 창의성과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정해진 답보다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이제는 점수 중심의 지능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며 건전한 비판과 창의적 판단을 끌어낼 수 있는 지성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도한 경쟁을 줄이고, 협력과 탐구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러 가지 비판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한국 교육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그 시스템을 어떻게 조율하고 개선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성적’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한때 공부의 신이라 불리던 한국 교육의 엘리트들이 사회와 공직에 진출해 ‘공부 머리’와 ‘일 머리’가 부조화를 이루어 무능의 대명사로 낙인찍히는 것을 최근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이는 우리 교육이 양성한 최고 엘리트들의 한계로 우리 교육의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제 우리 교육은 무엇보다 학생이 행복하게 배움에 열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부산 여고생 3명의 집단 자살처럼 우리의 청소년들은 세계적으로 연 10년째를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과도한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와 경쟁 교육에 대한 불안과 우울증이 겹쳐 발생하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학생이 행복하고 교사가 존중받으며 사회가 교육을 신뢰하는 환경이 바로 진정한 교육 강국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산업화 시대의 ‘한강의 기적’을 이룬 1등 공신이라는 성취에 아직도 도취해 있기보다는 세계의 석학들과 교육 전문가들의 진정 어린 변화의 충고에 귀를 열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멀다(We have so many miles to go before we sleep)”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 한 구절을 가슴 깊숙이 품고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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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실 안의 네잎클로버 찾기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찾고 기대하고 찾아낸다. 네잎클로버는 그 작은 성과를 상징한다. 네잎클로버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네잎클로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희귀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네잎클로버는 단순한 행운의 상징이 아니다. ‘발견하려는 의지’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토끼풀을 ‘클로버’라고 부른다. 토끼풀 이름 유래는 3가지다. 토끼가 즐겨 먹기 때문이라는 것과 잎이 토끼 발자국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과 마지막으로 하얀 꽃봉오리가 토끼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네잎클로버는 세잎클로버의 돌연변이로 10만 개 중 하나 정도로 생긴다고 한다. 혹자는 네잎클로버(행운)를 찾으려고 세잎클로버(행복)를 무심히 지나치는 어리석음을 비유로 말하기도 한다. ‘비정상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상성’을 하찮게 여기는 셈이다. 정말로 행운은 희귀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일까? 행운을 행복으로 바꾸는 비법은 간단하다. 행운의 네 잎에서 욕심이라는 잎 하나를 버리면 된다. 하나 덜어내는 순간 행복의 세 잎 클로버가 된다. 사람들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세잎클로버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고 네잎클로버는 우리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실을 떠올리면 이런 풍경이 연상된다. 비슷한 시간표, 비슷한 시험과 평가. 이 안에서 학생들은 종종 ‘세잎클로버’처럼 보인다. 각자 다른 생각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제도와 기준 속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정렬한다. 학교는 평범한 ‘세잎클로버’ 속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실에는 성적이 뛰어난 학생, 특정 재능이 두드러진 학생, 혹은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그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발굴’이나 ‘육성’이라고 부른다. 교실 안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일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하게 정해진 틀에 맞춰진 뛰어난 학생을 골라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네잎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열어두느냐에 있다. 교육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소수의 ‘네잎’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 각자가 자신의 형태를 이해하고 확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 모든 학생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능성은 단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교실 안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네잎’이 있다. 다만 아직 그것을 ‘네잎’이라고 불러주지 않았을 뿐이다. ‘네잎을 찾는 일’은 스치듯 지나치면 실패한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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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사람 중심 도시, 교육에서 답을 찾다"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이 머무르며, 배움이 일상 속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도시는 미래를 갖는다. 인구 구조 변화와 기술 환경의 급격한 전환 속에서 ‘도시의 미래’를 다시 묻는 이유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은 “지금은 성장의 속도를 논할 때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며,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그릇”이라고 강조한다. ■ "미래도시는 교육에서 시작된다" 김광회 이사장은 미래도시의 출발점으로 기술이나 행정이 아닌 교육을 꼽는다. 그는 “기술과 행정은 도구이지만 교육은 사람을 만든다”며, “사고 방식과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래도시는 첨단 시설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배움과 성장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도시라는 설명이다. 교육이 흔들리면 젊은 세대는 도시를 떠나고, 그 순간 도시는 빠르게 늙어간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 "사람 중심 도시로의 전환" 김 이사장이 강조하는 ‘사람 중심 도시’는 기존의 개발 중심 도시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그동안 도시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크게 성장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면, 이제는 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묻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 하나, 건물 하나를 설계하더라도 차량 흐름뿐 아니라 아이들의 통학, 어르신의 보행, 장애인의 접근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 사람 중심 도시의 핵심이다. 이는 복지 차원을 넘어 도시의 품격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 “교육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국가의 책임” 김 이사장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는 구조는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한다. 모든 아이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며, 교육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강조했다. ■ AI 시대, 공교육의 역할 AI와 미래교육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김 이사장은 교육 격차 해소의 핵심 원칙으로 공공의 선제적 책임을 꼽았다. AI 교육이 사교육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공교육 안에서 충분히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은 잘못 쓰이면 격차를 키우지만, 제대로 설계하면 오히려 격차를 줄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산, 글로벌 교육특구의 가능성 김 이사장은 부산, 특히 해운대를 글로벌 교육특구의 출발점으로 평가했다. 이미 국제적 도시 인프라를 갖춘 해운대에 교육 콘텐츠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된다면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단순한 외국인 학교 유치가 아니라, 지역 학생과 세계가 함께 배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 "도시가 캠퍼스가 되는 미래" 김 이사장이 구상하는 글로벌 교육특구는 학교 단위를 넘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캠퍼스가 되는 모델이다. 학교, 대학, 연구기관, 산업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교육이 지역 발전 전략의 중심에 놓이는 구조다. 이는 부산만의 실험이 아니라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인재 구조를 분산시키는 국가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는 “부산의 성공은 대한민국 교육과 도시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는 건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라고, 배움이 이어질 때 도시의 미래는 현실이 된다." 김광회 이사장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육이 바뀌면 도시가 바뀌고, 도시가 바뀌면 국가의 내일도 달라진다. ▣ 김광회 이사장 ◇ (사)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 ◇ 부산광역시 미래혁신정책 고문 ◇ 前부산광역시 미래혁신 부시장 ◇ 前부산광역시 경제 부시장 ◇ 前부산광역시 균형발전실장 ◇ 前부산광역시 행정관리국장 ◇ 부산대학교 예술학 박사 수료 ◇ 美 일리노이대학교 행정학 석사 ◇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해운대 초·중·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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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사람 중심 도시, 교육에서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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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해돋이의 나라, ‘한(韓)’이라는 이름의 비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선포했다. 구한말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국가 명칭 이상의 상징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韓)’이라는 글자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왜 하필 우리 민족은 ‘한’이라는 이름에 자기 정체성을 담았을까. 이 물음은 단순히 한 글자의 뜻풀이를 넘어,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해왔는지, 또 이 땅의 역사가 어떤 빛을 받아왔는지를 되묻는 과정이 된다. 문자학과 문헌, 그리고 역사적 전승을 두루 살펴보면, ‘한(韓)’이라는 글자 속에 해돋이의 빛과 그것을 지키려는 무리의 서사가 고스란히 숨어 있다. □ 빛날 간(倝) - 해돋이의 광휘 먼저 ‘한(韓)’의 왼쪽 부분, 즉 ‘간(倝)’을 살펴보자. 이 글자는 단순히 ‘방해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자형을 거슬러 올라가면 풀 사이, 혹은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그린 도상에서 비롯한다. 전국시대 금문에서는 태양의 광휘가 강조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소전에서는 ‘풀 사이의 해돋이’ 형상으로 정리되었다. 해서에 이르러 ‘빛날 간’으로 정착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침 조(朝)’와의 비교다. ‘조’가 단순히 “해가 떠오른다”는 출현의 순간을 그렸다면, ‘간’은 그 가운데서도 찬란히 퍼져나가는 빛 자체를 강조했다. 다시 말해, ‘간’은 동방의 아침, 곧 해가 솟아오르며 세상을 밝히는 그 순간의 광휘를 담아낸 글자다.([그림 10] 참조) □ 가죽 위(韋) - 둘러 지키는 힘 그렇다면 오른쪽의 ‘위(韋)’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은 ‘무두질한 가죽’이라는 뜻으로만 쓰이지만, 원래는 ‘성곽을 둘러싼 발자국’, 즉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비롯했다. 성벽을 에워싸며 수호하는 형상에서 ‘둘러싸다’, ‘지키다’라는 뜻이 나왔고, 이후 ‘위(衛)’와 ‘위(圍)’ 같은 글자로 분화했다.([그림 10] 참조) 가죽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었다. 몸을 덮고 보호하며, 물건을 감싸 단단히 고정하는 성질 덕분에 ‘둘러 지킨다’는 상징성을 오래 간직했다. 흔히 쓰이는 고사 ‘위편삼절(韋編三絕)’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공자가 경전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만큼 탐독했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위’는 물질적 가죽임과 동시에 지식과 도를 지탱하는 상징으로도 기능한다. □ 韓 - 해의 빛을 받는 나라를 지키는 무리 이제 두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진 ‘韓’을 보자. ‘간’이 뜻하는 해돋이의 빛, ‘위’가 지닌 둘러 지킴의 의미가 합쳐져 “해돋이의 나라를 둘러 지키는 사람들”, 혹은 “해의 빛을 받는 나라”라는 뜻이 된다. 문자 자체가 곧 동방, 해뜨는 곳, 광명의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대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속에는 ‘동방의 빛을 이어받은 나라, 스스로를 지켜내는 무리’라는 깊은 상징이 담겨 있었다.([그림 10] 참조) □ ‘우물 난간’ 해석의 한계 물론 『설문해자』에서는 ‘韓’을 달리 풀이한다. 韓을 “우물의 난간”으로 설명하며, 단순히 구조물의 일부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금문과 소전, 해서에 이르기까지 글자의 도상 변천을 추적해보면, ‘해와 빛, 그리고 둘러 지킴’의 모티프가 일관되게 보인다. 우물 난간이라는 해석은 국호로서의 상징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특히 소전 단계까지 남아 있던 ‘사람(人)’의 흔적이 해서에서 간략화되는 과정을 보면, 이 글자가 본디 사람들의 무리와 연관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韓은 사람, 빛, 보호의 의미망이 얽힌 글자라 할 수 있다.([그림 10] 참조) □ 문헌 속의 ‘한’ ‘한’이라는 명칭은 중국 고대 문헌에도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사기』나 『한서』에서는 ‘삼한’의 직접적인 기술이 희박하지만, 『위략』(3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기록이 늘어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시경』 속 ‘韓奕(한혁)’이라는 구절이다. 후대 왕가의 『잠부론』에서는 이를 인용하며 “한성(韓城)은 연나라와 인접한다”고 했다. 『수경주』(6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성의 위치를 지금의 북경 남쪽, 유주 일대와 연결짓기도 한다. 즉, ‘한(韓)’이라는 명칭은 이미 기원전 9세기 시가 전승 속에 등장했고, 연 인근의 지명 전승과 함께 동북 지역 문화권과 맞닿아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비정에는 학계의 논란이 따른다. 한성의 위치를 북경권으로 볼지, 아니면 한반도와 연결할지는 여전히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삼국시대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동방과 해돋이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이다. □ ‘진(辰)’과 ‘한(韓)’의 울림 여기서 ‘진(辰)’과 ‘한(韓)’의 관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진’은 본래 동남, 곧 해돋이의 방위를 뜻하는 글자로, 후한·삼국시대 기록에서는 삼한의 전신으로서 ‘진국(辰國)’이 언급된다. 이때 ‘진’은 “해가 떠오르는 나라”라는 상징을 품고 있었다. ‘한’ 역시 어원 해석이 분분하지만, 공통적으로 태양성과 광명성을 강조한다. ‘하나(One)’, ‘하라’, ‘해’ 같은 소리와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있다. 종합하면, ‘진’과 ‘한’ 모두 결국 동방과 해돋이를 지향하는 이름이 된다. 이는 아사달(해 뜨는 터), 배달·박달(밝은 땅) 같은 우리 고유의 명명 전통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 ‘대한’이라는 국호의 의미 이 모든 맥락을 종합해보면, 韓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그것은 해의 빛을 받는 나라를 둘러 지키는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시경』의 전승, 삼한·진국의 기록, 그리고 국호 ‘대한’으로의 계승까지, 韓은 동방의 해돋이와 수호의 상징을 이어온 이름이었다. 오늘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부를 때, 그 속에는 단순한 행정적 명칭을 넘어선 긴 역사의 기억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해가 떠오르는 나라, 빛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무리,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온 공동체의 서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 ‘한(韓)’에서 ‘대한민국’까지 - 이름에 담긴 서사 우리가 지금 부르는 국호 ‘대한민국’은 사실 긴 역사의 강줄기를 따라 흘러온 결과다. ‘한(韓)’이라는 이름은 고대 삼한에서 시작해 고려·조선의 역사적 경험을 거쳐, 대한제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주되면서 이어져 왔다. □ 삼한(三韓) - 동방 세 무리의 나라 먼저, ‘한’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무대는 삼한이다. 후한서 등 중국 정사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언급되는데, “본래 모두 진국에서 나왔다”라는 설명이 붙는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살펴본 ‘진(辰)’과 ‘한(韓)’의 연결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해 돋는 나라’라는 동방적 상징이 삼한의 뿌리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삼한은 단순히 세 나라가 아니라, 동방의 여러 부족 공동체가 느슨하게 연합한 형태였다. 그 이름을 중국인들은 ‘삼한’이라 불렀고, 이는 곧 “세 무리의 해 돋는 나라”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한’은 여기서 공동체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자리 잡는다. □ 고려와 조선 - ‘한’의 잠재된 기억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국호 자체에 ‘한’이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한’은 여전히 우리 민족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 있었다. 고려 후기의 문인들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같은 표현으로 ‘삼한’을 곧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삼한’은 여전히 문화적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스스로를 ‘삼한의 후손’이라 부르며, ‘삼한의 문장’, ‘삼한의 학문’ 같은 표현을 즐겨 썼다. ‘조선’이라는 국호 아래에서조차, ‘한’은 여전히 뿌리 깊은 정체성의 이름이었다. □ 대한제국 - ‘한’이 국호로 부활하다 그러던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선포하면서 ‘한’은 다시 국호의 전면으로 돌아온다. 이는 단순한 이름의 변경이 아니었다. 조선이라는 국호가 지닌 봉건적 이미지를 벗고, 삼한의 전통을 잇는 새로운 국가임을 선포하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대한’이라는 이름은 곧 삼한의 계승자라는 자부심, 동방의 해 돋는 나라를 지켜온 무리라는 상징을 담았다. 당시 열강의 압박 속에서 국호 ‘대한’은 어쩌면 마지막 자존심이자, 민족적 정체성의 불씨였다. □ 대한민국 - 빛을 잇는 이름 1919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국호는 다시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었어도, 이름만큼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민국’이라는 두 글자가 붙으면서, ‘대한’은 더 이상 단지 삼한의 계승을 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 민주와 자치의 나라라는 지향을 품게 되었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우리 모두의 삶과 함께 살아 있다. ‘한(韓)’이라는 글자가 품은 해돋이의 광휘와, 둘러 지키는 무리의 의미는 이제 국가 공동체 전체를 지탱하는 상징이 되었다. □ 이름에 깃든 빛 이렇게 ‘한’이라는 이름은 삼한에서 시작해 고려·조선을 거쳐,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해돋이의 나라, 스스로를 지켜온 사람들의 무리라는 상징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시대마다 새로운 옷을 입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부를 때, 그 속에는 단순히 네 글자가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과 무수한 사람들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한반도의 동쪽 바다에서 여전히 떠오르는 태양처럼, ‘한(韓)’이라는 이름은 오늘도 우리를 비추고 있다. □ 맺으며 역사란 이름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종종 그 안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새롭게 발견한다. ‘한(韓)’이라는 이름은 동방의 해돋이를 품은 글자이자, 우리 스스로를 지켜온 힘의 은유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12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금 묻는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해돋이의 빛을, 우리는 여전히 지켜내고 있는가. ‘한’이라는 이름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빛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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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해돋이의 나라, ‘한(韓)’이라는 이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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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Myeongdong Cathedral, Seoul’s Historic Catholic Landmark
-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The Myeongdong Cathedral(명동성당) is located in Seoul, South Korea, and stands as one of the most visited and populous churches in Korea. It is officially known as the Cathedral Church of the Virgin Mary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and is located at the heart of Myeongdong. As Korea’s first Catholic cathedral, it is a powerful symbol of Korean Catholicism and religious freedom. The site itself has been sacred since 1784, when Korea’s first Catholic community secretly gathered there during the Joseon Dynasty–a period when Christianity was banned. The official construction of the current cathedral began in 1894 under the supervision of French missionaries. King Gojong laid the first stone, and the building was completed on May 29, 1898. At the time, it was the largest building in Seoul and the first Gothic-style church in Korea. The Myeongdong Cathedral now serves as the birthplace of organized Korean Catholicism and a sanctuary for persecuted believers in the past. It is a symbol of religious tolerance and national identity. The cathedral itself houses the relics of the Korean martyrs, especially the martyrs of the 1866 persecution, making it a central pilgrimage site. Myeongdong Cathedral has been a center for social justice, democracy, and peace movements in Korea in the modern era. Rallies and vigils have been held there during times of significant political change, thereby underscoring the cathedral’s impact on modern Korean society. The site, of course, remains a safe, public place of worship for anyone to pray, protest, or reflect. During the winter season and Christmas, Myeongdong Cathedral has become a major Christmas destination, hosting special Christmas masses, midnight masses, carol concerts, and other public events. The cathedral and Myeongdong district together create a vibrant Christmas atmosphere. As a living monument of Korea’s religious history, Myeongdong Cathedral continues to inspire faith and national identity, especially during holidays such as Christmas. It is heavily recommended for all, believers and nonbelievers, to visit the beautiful site with warm clothes and open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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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Myeongdong Cathedral, Seoul’s Historic Catholic Land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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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전쟁과 올바른 교육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전쟁은 먼 이야기이고 생뚱맞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계에서 전쟁이 그칠 날은 거의 없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전쟁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국지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전쟁은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최후의 수단이다. 전쟁은 무력을 써서 행하는 싸움이다. 전쟁은 살상을 초래하고 일상의 온전한 파괴를 감수한다. 오직 상대를 굴복하기 위한 가장 비참한 수단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다녀왔다. 기말시험이 끝나서인지 힉셍들이 현장체험으로 많이 왔다. 전쟁은 기념할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기념하기보다는 기억해야 할 사건이다. 승자의 역사에서 전쟁은 영웅을 기념하지만 우리는 살상과 잔악함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무엇보다 비인간적이다. 전쟁은 인간을 숫자로 환원한다. 전사자 수, 난민 규모 같은 통계 속에서 개인의 얼굴은 사라진다. 경쟁 교육 역시 그 얼굴을 닮고 있다. 성적, 등수, 진학률로 줄 세울 때 교육은 전쟁의 언어를 닮아간다. 경쟁과 승패, 효율과 성과만이 강조될 때 교육은 평화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거대한 범죄는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생각하지 않는 교육, 질문하지 않는 수업, 정답만 외우는 학습은 언제든 폭력의 토양이 될 수 있다. 과거 학교에서 교련을 배우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진정한 질문은 없었다. 폭력은 일상적인 것이었고 순종만이 미덕이었다. 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공감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이성, 갈등을 언어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화에 대한 교육은 모든 수업에 녹아있어야 한다. 국어 시간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 이야기를 읽고 역사 시간에는 승자의 기록뿐 아니라 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과학 시간에는 기술의 윤리적 책임을 함께 토론해야 한다. 세계가 종교, 민족, 영토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은 현재도 휴전상태에 있다. 전쟁은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올바른 교육은 ‘다른 선택은 없는가’를 계속 묻는다. 전쟁을 상상하기 이전부터 교육은 인간의 존엄을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교실에서 사유와 양심, 명령보다 질문, 적대보다 공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의 시대일수록 교육은 무엇보다 인간다운 인간을 가르쳐야 한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믿는다. 인류가 전쟁을 없애지 않으면 언젠가 전쟁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다. 전쟁은 명령에 따르는 인간을 원한다. 올바른 교육은 질문하는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 세계에서 ‘공존과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종주국이 되는 꿈. 그 꿈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교육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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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전쟁과 올바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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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는 누가 만들었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한자’라는 이름의 기원, 그리고 잊힌 흔적들 우리는 흔히 문자를 ‘한자(漢字)’라고 부른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은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쓰던 글자를 결코 ‘한자’라 부르지 않았다. ‘한(漢)’이라는 이름은 훗날 한나라가 들어선 뒤에야 생겨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시황이 소전으로 문자를 통일했을 때조차 그런 명칭은 없었다. ‘한자’라는 말이 굳어진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원나라 시기 몽골 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조금씩 쓰이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가나와 구분하려 ‘漢字’를 적극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1920년대 이후, 식민지 교육 과정에서였다. 그렇다면 그 이전 사람들은 문자를 뭐라고 불렀을까? 조선과 고려, 삼국, 더 멀리 은·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서계(書契)’, ‘문자(文字)’, 혹은 ‘진서(秦書)’라 불렀다. ‘한자’라는 이름은 없었다. □ ‘문(文)’ - 무늬에서 학문으로 ‘문(文)’은 흔히 ‘무늬’나 ‘문신’을 뜻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갑골문을 보면 원형은 조금 다르다. 가축 암컷의 발정 상태를 표현한 흔적과 닮았다. 발정 → 색 변화 → 무늬. 이 과정을 상징하면서 ‘문(文)’은 ‘표식’, ‘무늬’를 뜻했고, 나중에는 ‘글’과 ‘학문’으로 확장됐다. 글자가 처음부터 지적 상징이었던 게 아니라, 몸과 생활의 흔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그림 9] 참조) □ ‘자(字)’ - 집에서 아이를 낳다 ‘자’는 갑골문에는 없고, 금문에 와서야 등장한다. 모양은 ‘집(宀)’과 ‘아이(子)’의 결합이다. 원래 뜻은 ‘집에서 아이를 낳다’였다. 여기서 파생해 ‘아이를 낳는다 → 문장을 낳는다 → 글자를 낳는다’로 발전했다. 즉 ‘글자’라는 개념 자체가 주나라와 진나라 시기를 거치며 서서히 정착된 셈이다.([그림 9] 참조) □ ‘서(書)’ - 점괘를 적던 손길 ‘서’는 오늘날 ‘쓰다’, ‘책’을 뜻한다. 하지만 은나라 시절에는 아직 붓도, 벼루도 없었다. 갑골문 속 ‘서’는 손, 나뭇가지, 먹물, 입의 조합이다. 점을 치고 나온 괘를 나뭇가지나 먹물로 기록하는 행위를 표현했다. 즉 본래 의미는 ‘점괘를 기록하다’였다. 훗날 붓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글을 쓰다’라는 뜻을 덧입게 된 것이다. 글쓰기가 처음에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점술과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그림 9] 참조) □ ‘계(契)’ - 약속의 흔적 ‘계’는 지금도 ‘계약’의 뜻으로 쓰인다. 갑골문을 보면 칼과 나무·뼈를 새긴 표시가 그려져 있다. 동이족은 약속을 맺을 때 나무나 뼈 조각을 쪼개 나누었는데, 두 조각이 맞아야 약속이 확인됐다. 여기서 ‘약속하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소전에 이르러 ‘팔 벌린 사람(大)’이 추가되면서, ‘성인 앞에서 맺는 약속’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주역의 “옛날에는 매듭으로 다스리다가 서계로 발전했다”는 구절도 이 맥락과 이어진다.([그림 9] 참조) □ 문자 속에 남은 동이의 기억 이 네 글자의 기원을 모아보면 공통점이 뚜렷하다. 모두 생활문화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발정기의 징표, 아이를 낳는 장면, 점괘를 기록하던 손길, 나무를 쪼개 나누던 약속. 그리고 이 문화적 배경은 은나라를 비롯한 동이계 전통과 깊게 연결돼 있다. 즉, 갑골문은 단순히 중국 한족의 창작물이 아니라, 동이계 문화권 속에서 태어나 공유된 문자 체계였다. □ 이름 하나가 바꾸는 역사 인식 오늘날 우리는 ‘한자’를 당연히 중국 문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 명칭은 20세기 이후에야 굳어진 것이다. 만약 지금도 ‘서계’라고 불렀다면, 글자를 한족만의 유산으로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자란 생활의 언어에서 태어나 권력에 의해 통일되고, 후대의 이름 붙이기 속에서 재구성된다. ‘문·자·서·계’라는 글자들은 생활의 흔적이자 동이와 화하가 함께 남긴 기억이다. □ 마무리 문자 기원을 더듬어 보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삶과 정치, 민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한자=중국 문자’라는 등식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역사는 언제나 이름 붙이는 자의 것이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 속 글자들은 묵묵히 다른 목소리를 전한다. 문자란 권력의 기록이 아니라, 생활에서 비롯된 흔적이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도 한층 넓어진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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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는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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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요즘 한국의 교육 현실은 낙관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고, 교사의 권위는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했으며, 학부모와 학교는 자녀 교육을 위해 한곳을 바라보는 동반자가 아닌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서 있다. 지역·계층에 따른 학습 격차는 심화되고, 디지털 환경의 급변은 학생들의 집중과 정서를 흔들고 있다. 교실은 더 복잡해졌고, 교사는 갈수록 지쳐 간다. 이제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조차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라는 회의가 먼저 떠오르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 말고 무엇이 희망을 가져다줄 것인가? 사회적 양극화, 기술 격차, 세대 간 단절, 빠른 변화 속의 불안 등 오늘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에서 결국 해답은 사람의 역량, 태도, 감수성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량을 가장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영역이 바로 교육이다. 현실이 결코 녹록하지 않기에 그럴수록 교육은 더 강한 희망이어야 한다. 얼마 전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2학년 한 학생은 스마트폰 중독과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잦은 문제 행동으로 교사와 친구들에게 부담이 되는 아이였다. 학교는 촘촘한 상담 지원과 기초 학습 코칭, 또래 멘토 프로그램을 함께 적용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성적이 아니라 ‘관계’였다. 친구 한 명이 자신의 조용한 관심을 계속 기울이자, 그 학생은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미워하지만은 않는구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1년 뒤 그는 단번에 모범생이 되진 않았지만, 지각이 줄고 담임교사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고, 교내 드론 동아리에도 참여했다. 한 교사, 한 또래의 작은 손길이 한 아이의 삶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는 교육이 변화시키는 것은 성적표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사례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종 제도 개편과 규정 강화에만 눈을 돌린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이 희망이 되려면 제도의 효율이 아니라 관계와 의미의 회복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곳,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곳, 불확실한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을 내면의 기준을 세우는 곳, 이 모든 것은 교육이 아니면 대신할 수 없다. 더 나아가 AI 시대가 오히려 교육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술은 많은 것을 대신하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스스로 사고하는 힘,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결코 대체할 수 없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인간다움을 기르는 교육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기반이어야 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진 교육현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는 말은 현실을 외면한 낭만이나 로망이 아니다. 지금의 혼란은 교육이 중요한 만큼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는 방증이며,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교육만이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교육은 오늘 당장의 성과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희망은 교육이 완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비록 학교는 혼란스럽고 교사는 지치고 학생들은 불안해도,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을 붙들어야 한다. 교육을 포기하는 순간,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피력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희망은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을 통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내일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신뢰하는 한, 현실은 흔들리더라도 미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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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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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세 개의 방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세 개의 방 우리 집엔 아이들 방이 세 개 있다. 기숙사처럼 복도형 구조, 거실에서 보면 큰애는 맨 끝방, 둘째는 가운데, 막내는 가장 가까운 방ㅡ 보살핌과 작은 비밀을 고려한 배치다 한때는 왁자지껄하던 방들, 지금은 적막하다. 아이들 물건도 그대로인데, 금방이라도 "엄마, 배고파!" 하며 들어올 것 같은 현관문은 무료하게 졸고 있다. 어릴 땐 직장과 돌봄에 지쳐 빨리 커서 독립하길 바랐는데, 막상 하나둘 떠나고 자주 못 보게 되니 괜히 서운하다. 이젠 가족 단톡방에서나 말 섞고, 성장이 멈춘 가족사진을 보며, "자식도 품어야 자식이다"라는 말이 오늘따라 가슴 깊이 사무친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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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세 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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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 자율성과 교육의 품격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과거에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는 교육법 75조 규정에 매여 있어야 했다. 1998년에 ‘교장의 명’이 아닌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는 내용으로 바뀌기 전까지의 일이다. 교육에서 창의성과 자율성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면 그 시작은 교사의 자율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율성이 없다면 전문성도 기대할 수 없다. 학교 상황은 천태만상이지만 모두 같은 지침에 매여 있다. 자율성이 없는 교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진정으로 학생을 성장시키려면 교사를 믿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변화는 늘 더디고 제한적이었다. 교사가 교실의 주체로 설 수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교육의 전문가로서 기초적인 자율권마저 행사할 수 없는 환경이 근원적인 걸림돌이다. 교육 혁신은 결국 교사의 손에서 완성되지만 정작 교사는 경직된 행정 체계, 촘촘한 평가 기준 속에 갇혀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는 만큼 할 수 없는’ 현실이 교사를 무력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오늘날 교실은 다양한 요구와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와 흥미는 천차만별이다. 디지털 기술은 학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습 환경을 설계하고 학생의 경험을 조율하는 ‘교육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수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해도 과도한 평가 기준과 행정 규정에 막히기 일쑤다. 교사는 교육과정과 평가와 복무에 대한 자율성은 없고 민원과 상담과 부가적 업무에만 자율성을 강요받고 있다. 교사의 자율성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학생의 특성과 지역의 환경에 따라 효과적인 교육 방식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교실과 농촌의 교실, 학습 동기가 높은 학생이 많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 체제는 모든 학교가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동일한 방식으로 수업하도록 강요한다. 교사는 교실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이다. 교사에게 더 큰 판단권과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은 교사를 편하게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율성은 곧 책임을 의미한다. 교사가 수업 방식과 교육과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전문성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야 한다. 교사가 수업 연구와 연수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를 대폭 줄여야 한다. 학생 수준과 교실 조건의 복잡한 과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주체가 바로 교사다. 교육정책에서 ‘교사를 믿는가 통제하는가’는 중대한 핵심 요소이다. 교사를 믿지 않는 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 세계 주요 선진국이 교사에게 높은 자율성과 전문적인 판단권을 부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교사의 자율성은 교사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품격은 통제와 규제 중심의 체제가 아닌 자율과 책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교육은 교실에서 일어나며 교실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교사의 자율성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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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 자율성과 교육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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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권력은 어떻게 역사를 조작했는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역사는 왜 늘 패배자를 탓하는가 역사를 읽다 보면 늘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무너져가는 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술과 여색에 빠져 나라를 망쳤다는 이야기다. 『삼국사기』의 백제 의자왕,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은나라 주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방탕했기 때문에 나라가 무너졌을까? 사실 당시 모든 군주는 사냥과 연회, 술자리를 즐겼다. 그것은 권위를 과시하고 신하들과 결속을 다지는 통치 행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망한 나라의 군주만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라는 낙인이 찍혔다. 후대 사관이 새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 이야기였던 셈이다. □ 폭군 대 성인 - 오래된 이분법 사마천은 진시황을 ‘정신병자 같은 군주’로 묘사했다. 김부식은 신라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의 왕들을 깎아내렸다. 진수 역시 한나라의 권위를 세우려 진나라 군주를 매도했다. 새로운 권력이 옛 권력을 비난하는 방식, 이것이 역사의 오래된 패턴이다. □ 진시황과 공자, 정통성의 싸움 이 패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분서갱유다. 진시황이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묻었다는 사건이다. 흔히 ‘광기의 폭군’ 이미지로 소개되지만, 그 본질은 지식인 탄압만이 아니었다. 공자와 유생들은 화하족 중심의 정통 서사를 세우려 했다. 반면 진시황은 동이족과 연결된 뿌리를 지니면서도, 자신을 화하 문명의 적자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공자가 순임금의 입을 빌려 “한나라는 야만”이라고 폄훼한 기록은 진시황에게 치명적인 도전이었다. 분서갱유는 곧 정권의 정체성과 역사적 위치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 1917년, 땅속에서 나온 반격 이 갈등을 비춰주는 증거가 1917년 중국 감숙성에서 드러났다. 진나라 선조의 제기에서 “혁사만하(虩事蠻夏)”에서 온 말이다. 즉 공자보다 앞서 100년 전에 공언한 진목공의 “혁사만하(虩事蠻夏)”를 뒤집은 말이다. 진목공이 ‘하족의 나라를 야만스러운 놈들’이라고 지목한데 대한 반발로 공자는 거꾸로 100 년 후에 나타나 진나라가 속한 이(夷) 족을 오랑캐라고 한 것이다. 그것도 이(夷) 족 출신의 순(舜) 임금이 말한 것처럼 꾸며서 완전범죄를 기도했다. '혁사만하(虩事蠻夏)'는 “오랑캐 하나라를(蠻夏) 두려워 떨게 하고 괴롭히라”는(虩事) 말이다. 공자가 태어나기 1세기 전에 새겨진 글자였다. 여기엔 진나라가 이미 화하 중심의 정통 서사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음이 기록돼 있다. 제기에는 12대 조상의 이름도 적혀 있는데, 동이족 시조인 소호와 연결되는 흔적이 보인다. 진나라의 기원이 화하족만의 계보가 아니라는 증거다. □ 글자 속의 갈등 흥미로운 건 ‘혁사 만하(虩事蠻夏)’라는 네 글자다. ‘만(蠻)’은 원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뜻했지만, 후대로 갈수록 뱀이 덧붙으며 ‘야만’으로 굳어졌다. 반면 ‘하(夏)’는 원래 ‘여름 더위에 지쳐 앉은 사람’을 뜻했는데, 유가 지식인들이 이를 문명의 상징으로 끌어올렸다. 결국 동이와 화하의 긴장은 문자 자체에 각인됐다. 혁사 만하라는 표현은 진나라가 화하 중심 서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 유물의 목소리 은허의 갑골문 발견 이전까지 중국 학자들은 하·은 시대를 전설로 치부했다. 그러나 발굴된 갑골문과 청동기 명문은 사마천의 기록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를 드러냈다. 진시황을 왜곡한 서술과 달리, 유물은 진나라가 동이와 화하의 경계에서 성장한 집단이었음을 증언한다. 혁사 만하 명문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학계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불편한 증거가 우리가 역사 서술의 이면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 역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진시황은 폭군으로, 공자는 성인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립은 단순히 ‘폭군 대 성인’의 구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권 정통성과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었다. ‘혁사 만화’라는 명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사관의 기록인가, 아니면 땅속 유물이 남긴 증언인가? 역사는 늘 권력에 의해 쓰인다. 하지만 글자와 유물은 권력이 지우려 한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제 우리는 교과서 속 정통 서사 너머, 실제로 남겨진 기록을 다시 읽어야 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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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권력은 어떻게 역사를 조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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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떡볶이, 궁궐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음식
- [교육연합신문=원선재 학생기자]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푸드(K-Food) 열풍의 중심에는 매콤달콤한 맛으로 남녀노소 모두를 사로잡는 떡볶이가 있다. 단순한 길거리 음식을 넘어 한국의 상징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떡볶이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즉석 떡볶이’의 성지인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 다녀왔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매우 많았고 각 가게마다 들어가기 위해 줄들이 길에 늘어서 있었다. 20분가량 대기하고 들어간 매장은 매우 컸으며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큰 냄비에 떡, 라면, 오뎅, 튀김 등등 원하는 재료를 넣어 끓어 먹으며 마지막에는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는 메뉴가 꿀맛이었다. 어떻게 이런 떡볶이가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부터 최근에는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되었는지 떡볶이의 유구한 역사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 떡볶이의 기원-간장 양념의 궁중 음식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빨간 떡볶이와 달리, 떡볶이의 기원은 궁중 음식에 뿌리는 두고 있다. 고추가 임진왜란(1592년) 이후에야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떡볶이는 고추장이 아닌 간장을 주로 양념으로 사용했다. 조선시대의 궁중 떡볶이는 왕이 먹던 고급 음식으로 맵지 않고 쇠고기와 다양한 채소를 곁들여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찜 종류의 요리였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떡볶이가 처음 등장하며 볶는 것보다는 양념장에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 형태에 가까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 현대 떡볶이의 탄생-고추장과의 만남과 대중화 현재의 고추장 떡볶이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개발되어 대중적인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 전후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유입됨녀서 비싼 쌀 대신 밀가루 떡을 활용한 분식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이는 떡볶이 제작 단가를 낮추어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국민 간식으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신당동 떡볶이 골몰의 탄생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현대적인 고추장 떡볶이의 시초이자 ‘즉석 떡볶이’ 문화를 이끈 마복림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마복림 할머니가 서울 중구 신당동 동화극장 앞에서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떡볶이를 팔기 시작한 것이 신당동 떡볶이 역사의 출발점이다. 피난민들이 몰려들던 당시, 할머니의 독특한 양념 떡볶이는 큰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후반 가스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손님이 직접 테이블에서 떡볶이를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 무렵 주변에 유사한 떡볶이 가게들이 밀집하기 시작하며 ‘떡볶이 골목’이 형성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는 떡볶이 집마다 ‘DJ박스’를 도입하여 손님의 신청곡을 틀어주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먹거리와 놀거리를 동시에 제공하며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청춘들의 명소로 만들었고 골목의 번성기에 크게 기여했다. 이 곳은 단순한 음식 거리를 넘어 한국의 격동적인 현대사와 분식 문화의 발달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 글로벌 K-푸드로서의 떡볶이 위상 BTS, 블랙핑크 등 K-팝 스타들이 떡볶이를 즐겨 먹는 모습이 전파되고,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레시피가 소개되면서 떡볶이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K-푸드로 자리매김했다. 매운맛을 즐기는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쌀떡, 밀떡, 다양한 토핑, 퓨전 소스 등 무한한 변형 가능성을 가진 요리로 미래 한식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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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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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떡볶이, 궁궐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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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양산 풍경요양병원 제창민 병원장, "항암치료 이후가 진짜 시작"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안녕하십니까? 풍경요양병원 병원장 제창민입니다.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누구나 큰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치료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저는 환자분들이 단지 병을 치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신의 자리로 편안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병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풍경요양병원은 환자의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되는 곳입니다. 면역력 회복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환자 한 분 한 분의 회복 과정에 함께 동행하는 병원이 되고자 합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단 하나입니다. '암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며, 그 길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 암환자들을 위한 암재활요양병원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무엇인가? 암환자들은 갑작스런 암 진단과 함께 힘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힘들기도 하지만 치료의 성공 여부, 재발에 대한 두려움 등 심리적인 불안감도 많아, 이 분들도 편안하게 치료 과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 건강한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병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풍경이라는 이름도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에서 따왔다. 그 노래 가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는 부분이 있다. 제 의도와 너무 일치하는 것 같아 이름짓게 되었고 환우분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 도대체 우리는 왜 암에 걸리는 것인지 설명해 달라. 제가 입원하는 모든 환자분들에게 처음에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다. 환자분들께 "왜 본인이 암환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남들에게 생기지 않는 암세포가 특별히 나에게만 생겨서 암환자가 되었다고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는 매일 수만 개 정도의 암세포가 생긴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암환자한테만 암세포가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모든 사람들에게 매일 많은 수의 암세포가 생긴다면 다 암환자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리 몸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면역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이 시스템이 작용하게 되면 우리 몸에서 생기는 암세포는 파괴되거나 파괴되지 않더라도 증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암환자가 아니라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고 있는데, 내가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언젠가부터 내 몸 안의 정상세포들이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컨디션을 만든다면, 그래서 내 몸의 정상세포들이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컨디션이 된다면, 이런 암세포들은 본인의 세포 특성에 따라 중단없는 증식을 하게 되어 궁극에는 종양의 형태로 우리에게 발견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암환자가 되는 것은 남들한테 생기지 않는 암세포가 특별히 나에게만 생겨서 암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면역력이 어느 순간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암세포에게 증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므로써 암환자가 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암으로 진단받고 나면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많이 당황해 한다. 그걸 받아들이는 모양새는 다 다르지만, 은연중에 생명의 위협에 대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씩은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암은 이제 희귀 질환이 아니고 너무나 흔한 질환이 되어 있다. 암 발생률이 40%에 육박할 정도가 되었으니 그 어떤 질병보다 발생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신 발생률은 높아졌지만 이겨내고 계속적인 생을 살아가는 비율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드문 병도 아니고 흔한 병이며, 치료가 불가능한 병도 아니라는 인식을 먼저 가지고 의료기관에서 치료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면 차분하게 치료를 받는 게 일차적인 접근이 되겠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의학적 치료는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지만, 그럼 지금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되나 하는 것을 철저하게 고민하고, 알아 보고, 또 이것을 실천하는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내가 암환자가 된 것은 내 나름에는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온 생활습관이 나도 모르게 내 몸안의 환경을 내 몸의 정상세포가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런 상태에서 의학적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내가 내 생활습관을 이전과 똑같이 한다고 하면, 나는 계속해서 내 몸의 환경을 암세포한테 유리한 환경을 만들면서 살겠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암으로 진단된 이후에는 내 생활을 되돌아 보면서 내 몸의 컨디션을 저해하는 생활습관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도움되는 생활습관들은 반드시 실천해서 내 몸안의 환경을 내 세포들이 정상 기능을 할 수 있는 컨디션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암환자들을 치료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학적 치료에 중점을 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암환자의 재활의 필요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앞서 설명했다시피 우리가 암환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면역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현대의학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암을 정복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의학적 치료만으로는 우리 몸의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치료가 안 된다는 것이냐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비록 완벽하게 제거하지는 못할지라도 우리 몸의 암세포의 세력을 많이 줄일 수 있다면, 나머지는 우리 몸의 면역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일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 몸 안의 암세포를 증식 못하는 수준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러면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 우리 몸의 면역력이 많이 저하되는 부분을 막을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서 떨어진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심할 경우 항암치료의 정도를 조절해야 하며 생활면에서도 음식, 운동, 정서적 안정, 수면, 기타 정상적 컨디션 회복에 도움되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내 몸의 면역력의 정상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암 치료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우리의 면역력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현재의 암도 치료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암에 대해서도 대응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암재활요양병원은 정확히 어떤 치료를 하는 병원인가?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암환자들은 대학병원급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주 치료 방법이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 등이 되겠다. 그런데 이런 치료들이 치료과정에서 내 몸의 정상적인 컨디션을 오히려 많이 저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암재활요양병원에서의 첫 번째 목표는 이런 치료 과정을 잘 견뎌내게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 부분을 환자 혼자서 해내기가 쉽지가 않기에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물론 가족들이 많이 도와주겠지만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전문의료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에 대해서 관리를 해주거나 환자의 컨디션이 저하된 부분의 회복을 위해 의학적 도움을 주는 역할 등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암환자의 약화된 면역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의학적 요법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습관의 개선이 중요하다. 음식,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 일상의 활동에서 우리 몸의 정상 컨디션을 저해하는 요소는 배제하고,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을 습득하기 위해 교육상담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 우리가 우리 몸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통 암환자들이 주위에서 많이 권하기도 하고, 본인들도 무슨 특별한 방법이 없는가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내 몸의 정상화는 그냥 내 생활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햇볕은 잘 쐬는지, 평소 심리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냥 잠에서 깨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아니 수면까지 포함해서 내 생활에서 과연 이런 생활들이 내 몸의 컨디션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방해가 되는지를 고찰하고 방해되는 습관들은 배제하고 도움되는 습관들은 실천하다 보면 당연히 내 몸 안의 환경이 변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내 몸 안의 환경은 내가 하는 이런 생활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우리 몸의 컨디션 정상화를 위해 습관들을 고찰할 때 무엇을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우리 몸은 우리는 한 개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사실 우리 몸은 60조 이상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개체다. 그리고 이 세포들은 각각의 생명체다. 이 생명체들이 진화들 하면서 혼자 생활하는 것보단 이렇게 모여서 다핵세포로 살아가는 게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모여서 살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의 정상화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세포가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이냐가 관건이다. 그럼 이 각각의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여건이 있지만 제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게 이 세포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잘 공급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 세포들이 그걸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우리 몸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세포들이 대사되고 남은 노폐물이라든지 불필요한 독성물질들을 잘 배출시켜줘야 한다.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위해서 아주 기본적인 이 두 가지가 잘 이루어 져야 한다. 내 몸에서 이 세포들에게 이렇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고 필요 없는 것들은 치워 주는 역할을 누가 할 것이냐라고 할 때 혈액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환자들이 내 몸의 정상화를 위한 생활습관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이 과연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습관인지 방해가 되는 습관인지가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겠다. ■ 풍경요양병원에서는 암환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 여러 가지 의학적 치료와 의학 외적인 관리를 병행하고 있는데 ▲의학적 치료-항암치료의 부작용 관리, 면역증강치료 ▲교육-암에 대한 개념잡기, 내가 무얼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찰(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을 위한 생활습관에 대한 고찰) ▲상담-불안과 걱정 두려움등 부정적 감정과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 주위에선 많이 접하게 되는 수많은 정보로부터의 혼란을 교육 및 상담을 통해 알맞은 정보 제공을 통한 심리적 안정 획득 ▲음식-정상적인 컨디션에 도움되는 식단 구성 ▲운동-신체 활동의 활성화를 통한 호흡 개선, 혈액순환 개선, 정서적 안정 ▲호흡, 명상-신체내의 원할한 산소 공급 및 정서적 안정을 도모 ▲그림그리기외 각종 집중향상 프로그램-일상에서 일어나는 잡생각 해소 등을 들 수 있다. ■ 풍경요양병원만의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첫 번째로 타병원에서 의학적 치료에만 주로 의존하고 있는데 반해 풍경은 환자의 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이 암치료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인식하고, 이를 위해 환자들에 대한 교육, 상담 그리고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환자들 스스로 정상적인 컨디션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향후 일상생활에 복귀해서도 계속적으로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한 시스템이 타병원에 비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풍경요양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교육, 상담, 음식, 운동(산책, 요가), 호흡 명상 프로그램을 제공받음에 있어서 타병원에 비해서 좋은 점이라고 평가해 주고 있다. 두 번째로는 저희 병원은 통도사와 영축산 앞에 위치해 환자들이 산책하고 운동하기에 좋은 지리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또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면서 환자들을 케어하고 있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풍경요양병원의 운영 철학과 향후 비전은 무엇인가? “제대로 된 삶을 되찾아 내 몸을 건강하게 하자”이다. 여기서 제대로 된 삶이란 육체적, 정서적으로 최대한 편안한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습관에서 내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을 최대한 멀리하고, 정서적으로는 세상을 좀 더 편하게 또는 감사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의 중요성에 대해 환자들에게 많은 상담 및 교육을 제공하고 있고, 환자들이 공감하면 같이 실천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드리고 있다. 풍경의 목표는 환자들이 단순히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그렇게 하므로써 건강한 신체로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풍경요양병원의 비전은 ▲암요양 표준 모델 구축 ▲면역력 강화 프로그램 확대 ▲힐링정원·명상실 조성 ▲퇴원 후 재택의료 지원 강화 ▲항암 부작용 연구 및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환자 한 분 한 분이 스스로를 건강한 몸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병원이 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암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최근에 암환자들의 치료 후 정상 생활로의 복귀 성공률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 암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이해하고 올바른 치료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 암치료는 암세포에 대한 공격도 중요하지만 내 몸의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아주 주요한 요소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의사에게 맡겨 놓고,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를 파악하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수행해 나가다 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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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양산 풍경요양병원 제창민 병원장, "항암치료 이후가 진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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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가 말해주는 권력의 역사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글자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흔적 우리는 매일 한자를 만난다. 신문 지면에 실린 사자성어, 관공서 현판, 옛 비석의 문구까지. 그런데 그 글자들, 단순히 의미만 전달하는 도구일까? 강준식 선생은 최근 강의에서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회와 권력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적 장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만(蠻)·이(夷)·하(夏)’ 같은 글자에는 동아시아 고대사의 정체성과 권력 관계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 말이 꼬여 들리던 이방인, ‘만(蠻)’ 오늘날 ‘남만(南蠻)’이라고 하면 흔히 남쪽 오랑캐를 뜻한다. 하지만 원래 ‘만’자는 그렇게 험악한 뜻을 지니지 않았다. ‘만(蠻)’은 갑골문에는 없고, 금문엔 있는데, 재미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양쪽에는 실타래 같은 선이 있고, 가운데엔 혀 모양이 들어가 있다. 마치 말소리가 얽혀 뒤죽박죽 들리는 듯한 모습이다. 즉,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뜻했던 셈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글자에 뱀 모양이 추가됐다. 단순히 언어가 다른 집단이었던 ‘만’은 어느 순간 “사악하고 위험한 오랑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고스란히 글자의 변천에 반영된 사례다.([그림 8] 참조) □ 활로 규정된 타자, ‘이(夷)’ ‘동이족’ 하면 중국 동방의 집단을 떠올린다. 글자의 변화 과정을 보면 그 이미지가 어떻게 굳어졌는지 알 수 있다. 초기의 ‘이’는 단순히 사람을 뜻하는 기호였다. 그런데 주나라 말기로 가면 활과 화살, 주살 모양이 들어간다. 동이족이 활을 잘 다루는 집단으로 인식되면서 글자 속에 “활의 민족”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하지만 동이족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었다. 철기·청동기 문화와 사상 형성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집단이기도 했다. ‘이’자는 활로 대표되는 타자 이미지이자 동시에 동방 문화의 흔적을 담은 표식이었다.([그림 8] 참조) □ 여름에서 문명의 이름으로, ‘하(夏)’ ‘하(夏)’ 하면 떠오르는 건 중국 문명의 대명사다. 화하(華夏)라 부르면 곧 스스로를 ‘문명의 중심’이라 칭하는 호칭이다. 그런데 갑골문 속 ‘하(夏)’는 달랐다. 원래는 ‘태양 아래 지쳐 앉아 있는 사람’의 그림이었다. 말 그대로 ‘무더운 여름’을 나타낸 글자였다. 하지만 춘추전국 시대 이후, ‘하(夏)’는 단순한 계절 이름에서 벗어나 ‘중원의 문명’을 뜻하는 상징이 됐다. 후대 학자들은 ‘하(夏)’를 ‘크고 중심적인 것’이라 풀이하며, 아예 중국 국가의 기원을 ‘夏 왕조’에 두려 했다. 여름 더위를 뜻하던 글자가 곧 정통성의 이름으로 변한 것이다.([그림 8] 참조) □ 글자가 말해주는 것 세 글자의 변천을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다. 글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한 줄, 한 점이 추가되면서 집단의 정체성, 권력의 시선이 담겼다. ‘만(蠻)’은 뱀을 품고 오랑캐가 되었고, ‘이(夷)’는 활을 들고 타자가 되었으며, ‘하(夏)’는 더위를 넘어 문명의 이름이 되었다. 문자는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권력이 필요로 하는 서사를 품었고, 후대의 해석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됐다. □ 우리가 읽어야 할 것 오늘 우리가 쓰는 글자에도 오래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단순히 언어학적 기호로 볼 게 아니라, 고고학과 문헌학, 정치사상사와 함께 읽어야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만(蠻)’의 뱀, ‘이(夷)’의 활, ‘하(夏)’의 태양 아래 앉은 사람. 이 작은 그림들은 모두 시대의 목소리다. 글자를 다시 읽는 일은 곧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였는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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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가 말해주는 권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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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KBS '트랜스휴먼'이 던지는 교육적 메시지와 미래교육의 길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즈음에 우리는 오래된 질문 앞에 다시 선다. “인간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최근 KBS의 다큐멘터리 '트랜스휴먼'은 인공지능, 유전공학, 뇌과학, 로봇기술이 결합하며 인간 능력의 경계를 다시 쓰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과학 소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교육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미래 세대를 책임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방송이 보여준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을 돕고, 유전자 편집이 질병을 지우고, 인간의 사고와 기계가 연결되는 세상, 이 변화 앞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물음을 피할 수 없다. 기존의 지식 전달 중심 교육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기계는 인간을 능가해 지식을 더 많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암기한다. 따라서 단순 지식의 우열을 가리는 교육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트랜스휴먼'이 주는 가장 큰 교육적 의미는 ‘교육의 목적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지능과 초연결의 세계에서 교육은 더 이상 지식을 나열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확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초인류’를 만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미래교육은 기술을 선도하는 교육이 아니라 기술을 이끄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할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보다 더 큰 사고력, 즉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학생들은 정답을 찾는 법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술의 목적을 묻고, 기술의 한계를 고민하는 윤리적 상상력이야말로 초겸손의 미래를 살아갈 진짜 능력이 될 것이다. 둘째, 초인류 시대일수록 감성·공감·관계 능력 배양이 더욱 중요하다. 기계는 계산할 수 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안아주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다. '트랜스휴먼'이 보여주는 기술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감성과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따라서 미래교육은 학생들에게 협력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는 어떤 AI도 대신해 주지 못할 인간의 본질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셋째,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의 유연성이다. 급변하는 미래는 정해진 길(定道)을 따르는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 실패를 통한 성찰, 끊임없는 자기 재창조가 가능한 학습 환경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외우는 힘’이 아니라,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혁신의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넷째, 미래교육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시대에 진짜 위기는 ‘능력의 격차’가 아니라 ‘존재의 균열’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기보다 “너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를 묻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트랜스휴먼'은 우리에게 인간을 기술 뒤에 놓지 말고, 기술 앞에 세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 초인류가 오는 시대, 교육의 역할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대비’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길잡이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사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 길의 끝에 어떤 인간이 서게 될지는 교육이 결정한다. 기술은 인간을 확장시키지만, 교육은 인간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완성은 더 빠른 인간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으로 향하는 길이어야 한다. 초인류의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을 넘어서, 초인류의 시대를 이끌 인간을 기르는 교육, 그것이 바로 '트랜스휴먼'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강력한 교육적 메시지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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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KBS '트랜스휴먼'이 던지는 교육적 메시지와 미래교육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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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차선 변경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차선 변경 어차피 목적지는 정해졌는데, 운전을 하다 고민한다. 차선을 바꿀까, 다른 길로 돌아갈까. 그 고민이 도리어 더 아프게 한다. 인생도 그렇다. 고민했고, 망설였고, 그러다 그냥 흘러갔다. 그래도 도착한다.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 이룬 하나의 길. 그러려니 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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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차선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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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나라와 주나라, 그리고 동이족의 뿌리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국 고대사의 서막을 장식한 두 나라가 있다. 은나라(상商)와 주나라(周). 중국인들에게는 오랫동안 이 두 나라가 "중국 문명의 뿌리"처럼 이야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간 축적된 고고학 연구와 고문헌 해석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두 나라가 사실상 “동이족의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이족’ 하면 곧바로 중국이 말하는 ‘오랑캐’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건 진실의 절반만 보여주는 시선이다. 동이는 단순한 주변 세력이 아니라, 황하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고대 동방의 주역이었고, 심지어 은과 주, 즉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에 깊숙이 관여한 주체였다. □ 알에서 태어난 시조, 은나라와 동이 신화의 닮은꼴 은나라 시조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사기』 은본기에서 사마천은 은나라의 시조를 “설(契)”이라 적는다. 설의 어머니 간적(簡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새의 알을 삼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른바 “난생(卵生) 신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장면이 보인다.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 신라 혁거세가 알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은나라와 한반도의 신화가 같은 원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는 은나라가 분명히 동이 문화권 속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단서다. 물론 은나라 시조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죽서기년』은 순(舜) 임금의 아들 의균(義均)이 상(商)에 봉해져 시조가 되었다고 하고, 『노사』에서는 그가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전한다. 『금문신고』 같은 다른 기록에서는 설의 부친이 곤(鯀), 조부가 전욱(顓頊)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계보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흐름이 있다. 바로 은나라와 주나라 시조의 뿌리가 모두 “제곡(帝嚳)”이라는 사실이다. 제곡은 누구인가? 바로 동이족의 대표적인 제왕, 소호(少昊)의 손자다. 즉, 부계 혈통에서 은과 주는 모두 동이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 은과 주, 형제의 나라 주나라의 시조는 후직(后稷, 棄(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농업의 신으로도 숭배되었다.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은의 시조 설과 주의 시조 후직은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만 다른 형제다. 다시 말해, 은과 주는 처음부터 같은 씨족 혈통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시조의 이름이 설이든 의균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였고, 주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순(舜) 임금 역시 맹자가 ‘동이족 출신’이라고 못박았으니, 그의 아들이 시조가 되었다는 『죽서기년』의 기록 역시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즉, 중국 고대사의 첫 장을 연 두 나라, 은과 주의 뿌리는 동이족이었다. □ 은허의 발굴과 불편한 진실 문헌만으로는 믿기 어렵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고학 증거가 이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은허(殷墟). 하남성 안양에서 발굴된 이 유적은 은나라가 실존했던 국가임을 처음으로 입증한 현장이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학계는 하(夏)와 은(殷)을 “전설 속 왕조”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은허가 모습을 드러내자, 은나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임이 명백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은나라가 실재했다는 사실은 곧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이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뜻했기 때문이다. 한족(漢族) 중심의 역사관을 강조해온 중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결과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역사공정’이다. 하나라(夏)를 실존 국가로 만들려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 말이다. 왜냐하면 은을 첫 국가로 인정하면, 중국사의 출발은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중국은 실체가 불분명한 하나라를 억지로 실존 국가로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 동이족, 잊혀진 주인공 결국 고대 문헌 기록, 신화 전승, 고고학 증거를 종합하면 분명한 결론이 나온다.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까지, 이 두 왕조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여전히 세부 논쟁이 많다. "은나라의 실제 시조가 설이냐, 의균이냐" 같은 문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가지의 문제일 뿐,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동이족의 피와 문화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이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중국 고대사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다. 동이는 더 이상 ‘주변부 오랑캐’가 아니라, 문명의 동반자이자 때로는 중심이었다. 황하의 문명과 요동·한반도·산동의 문화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낸 다중적 기원이 바로 동아시아 고대사의 출발점이었다. □ 기억을 되살리며 오늘날 "동이"라는 말은 중국의 시각에서 주변을 부르던 호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실체는 오히려 우리가 찾아야 할 기억이다. 우리가 쓰는 문자, 신화, 언어의 뿌리 곳곳에 은과 주, 그리고 동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 신화가 은나라의 신화와 닮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골문과 청동기 문양 속에서 동이계 도상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언어로 쓰인다. 오랫동안 동이는 ‘남이 적은 역사’ 속에서 주변인으로 왜곡됐다. 그러나 문헌과 신화, 그리고 땅속에서 나온 유물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은과 주,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에서 동이는 결코 주변이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공정은 하나라를 내세워 은나라의 동이적 뿌리를 가리려 하지만, 땅속에 묻힌 증거와 오래된 신화는 여전히 그 사실을 증언한다. 은과 주, 중국사의 두 시원은 동이족의 나라였다. 이름이 무엇이든, 시조가 누구든, 그 뿌리만은 변하지 않는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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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나라와 주나라, 그리고 동이족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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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The Jongmyo Autumn Ancestral Rite: Honoring royal spirits through centuries of tradition
-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With autumn fast arriving and quickly fleeting, the various palaces of the Joseon Dynasty are the perfect places to go to witness Korea in its four seasons. With the gray skyline and modern buildings forming a backdrop for vivid shades of red, yellow, and gold, Seoul creates a unique seasonal charm. Jongmyo, with its quiet pathways and serene traditional architecture, is one of the most peaceful places in Seoul to experience this autumn atmosphere. Jongmyo Shrine is located right next to these palaces, and with the cultural opportunities it offers, the heritage site holds significance for many, especially this time of the year. Jongmyo Shrine is the premier state shrine in the country to hold ancestral rites for kings and queens, emperors and empresses of Joseon and the Korean Empire. It was initially built to the east of Gyeongbokgung Palace in 1395, and at that time, there was only the Jeongjeon Shrine. In this single shrine, five kings–the four ancestors of reigning kings, including King Taejo, the founder of Joseon–were enshrined. However, King Sejong found that the deities of kings who deviated from the four ancestors required shrines, and therefore built Yeongnyeongjeon Hall. King Yeonsangun later changed the system of enshrinement, dividing the place by establishing “Sesil” and “Jocheon”. A “Sesil” was a king who had succeeded or had high merit, and a “Jocheon” was for kings with a short line of succession, or who had passed away. The “Sesil” was kept in Jeongjeon Hall, while “Jocheon” was moved to the Yeongnyeongjeon Hall. Source: Official Website of the Jongmyo Daeje (https://jongmyo.net/57) Jongmyo Shrine was inscrib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 1995 for its well-preserved original structure and distinctive architectural style. Even more significant, however, are the Jongmyo Jerye Ritual and Jongmyo Jeryeak Music performed at the shrine, both of which are registered as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These traditions are uniquely Korean and represent a rich, comprehensive cultural heritage. The Jongmyo Jerye is a royal ancestral ritual held at Jongmyo Shrine, where the spirit tablets of past kings and queens of the Joseon Dynasty are enshrined. This year, the Jongmyo Autumn Ancestral Rite took place on November 1, marking the conclusion of the 2025 ceremonies, which occur annually on the first Sunday of May and the first Saturday of November. The ritual itself consists of two parts: the Substitute Rite and the Royal Rite. The ritual itself follows in this order: Chwiwi (positioning), Singwan-rye (Purification Rite), Cheonjo-rye (food offerings), Choheon-rye (first wine offering), Aheon-rye (second wine offering), Jongheon-rye (final wine offering), Eumbok-rye (Sharing of Blessings), Songsin-rye (farewell to the spirits), Mangnyo-rye (fire offering), and finally Mangnyo (completion). In addition, the Jongmyo Daeje includes Jeryeak, royal ancestral ritual music, and Ilmu, court dance. These extensive traditions reflect the significance of the history of these kings in Korea. Jongmyo Shrine features numerous rocky pathways, with signs warning against walking on them, as they are reserved for the spirits that roam the area. These small details are what make Korea such a historically and culturally significant location. In addition to the beautiful autumn foliage and sights, Jongmyo Shrine offers a cultural context of Korea, with traditions that honor the past while engaging the people of the present–a rare, yet beautiful opportunity for anyone visiting or living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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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The Jongmyo Autumn Ancestral Rite: Honoring royal spirits through centuries of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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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이제 그만해야 하는 대입수학능력시험 제도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11월 13일 목요일 전국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연 이 시험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수능은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의 상징’이 아니다. 학생은 ‘사람’이 아니라 ‘정답생산기’로 길러진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수능 폐지는 단순히 시험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객관식 선다형 사고로 사는 나라에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라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교사들은 신분상의 위험까지 안고 수능 감독관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한다. 학교에서 어린 나이순으로 감독관 참여를 강요받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작은 몸짓과 언어에도 소송이 뒤따를 수 있다는 위험은 교사에게 공포에 가까운 것이다. 돈을 내고라도 수능 감독시험에 착출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수능 업무에 대한 힘겨움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수능은 학교교육과정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수능을 위한 EBS 수업을 정규 수업시간에 공공연히 한다. 교실 수업은 오직 수능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진행되다가 수능이 끝나면 모든 수업을 할 수 없는 ‘시장판 교실’이 된다. 교사들이 이 과정에서 겪는 자괴감은 매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수능을 치르고 난 후 고등학교 교실은 교과과정이 유명무실해진다. 교사가 교실에서 앉아 있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체적으로 많은 행사를 하지만 이미 대입에 실패한 학생이나 입학이 확정된 학생에게 아무런 참여 의지가 없다. 교사의 권위나 말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자괴감을 교사가 느끼는 계절이다. 수능이 지속되는 이유는 효율성과 공정성 때문이다. 수능 존치론은 공정성, 효율적 선발, 기초학력 검증을 말하고 폐지론은 창의력 억압, 불평등 심화, 한 번의 시험이라는 비인간적 제도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대안이 한 번에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능 폐지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 대안을 만들어 시행해 나가야 한다. 학교생활 전반을 평가하는 과정 중심의 학생부 중심 종합전형을 해야 한다. 학습 태도와 성실성을 반영하고 꾸준한 노력과 성장 과정을 보아야 한다. 물론 학교와 교사의 평가 신뢰성, 지역별 교육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교육과정 붕괴의 수능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충실히 하는 학생이 대학에서도 존중받는 학생이 되도록 그 길로 가야 한다. 수능으로 미래 사회형 인재를 선발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학생 사고력, 표현력, 가치관을 평가하는 방식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볼 수 있는 평가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이 있다. 나중에는 어찌 되든 당장 좋은 것만 취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곶감먹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다. 학교, 학부모, 교직원, 교육청, 학생이 고통받는 제도와 학생의 미래역량에 역행하는 제도는 이제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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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이제 그만해야 하는 대입수학능력시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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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뼈 위에 새겨진 동이의 기억, 오늘을 비추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어와 문자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의 뿌리였다. 종이에 활자를 찍고, 휴대폰 자판 위에 글자를 두드리는 오늘 우리의 일상은 사실 수천 년 전 뼈와 거북등에 새겨진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동이(東夷)’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바다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과 맞닥뜨리게 된다. □ 거북등 위의 언어 상나라 말기, 제사의 밤을 떠올려 보자. 제관이 붉게 달군 쇠침을 거북등 위에 갖다 대면, 번개처럼 균열이 번진다. 왕은 그 무늬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제관은 그 내용을 뼈 위에 상형으로 새겨 넣는다. 오늘날 ‘갑골문(甲骨文)’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 장면이다. 날씨, 수확, 전쟁, 병세, 사냥. 삶의 모든 것이 그 위에 적혔다. 그러나 이 문자는 단지 ‘중원의 문자’만은 아니었다. 고고학은 말한다. 상나라 이전, 이미 요하 유역과 산동 반도, 한반도 서북부에서 동이계의 상징과 문양이 나타났다고. 그 무늬가 글자가 되고, 글자가 체계가 되어 상나라 제사의 언어 속으로 스며들었다. 갑골문은 곧, 동이와 중원이 만난 지점에서 태어난 언어였다. □ 바다와 강의 사람들, 동이 동이는 고대 중국 문헌에 ‘동쪽의 활 잘 쏘는 사람들’로 기록된다. 『산해경』은 그들을 ‘해가 뜨는 곳의 사람들’이라 불렀고, 『사기』는 요서와 요동, 산동에 흩어진 부족들을 그렇게 묘사했다. 그들의 삶은 물과 함께였다. 농사도 지었지만,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조개껍질과 옥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다. 남방과 북방을 잇는 해상 교역에도 능했다. 당연히 이런 삶은 기록 체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항로, 계절풍, 물고기 떼, 조류. 단순한 그림처럼 보이는 기호가 사실은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언어였던 셈이다. 오늘 우리가 갑골문에서 물결(氵), 배(舟), 물고기(魚)를 발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동이의 세계관이 새겨진 자취다. □ 제의의 언어, 정치의 권력 동이와 중원에서 문자는 곧 권력이었다. 제사를 통해 왕은 통치의 정당성을 얻고, 균열무늬 속에서 미래를 읽었다. ‘풍년’, ‘전쟁’, ‘사냥’ 같은 글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왕국의 운명을 가르는 질문이었다. 동이 사회에서도 제사는 중심 의식이었다. 바다와 강의 신에게 제물 바치고, 조상 영혼에게 곡식과 짐승을 올렸다. 그때 쓰인 상징은 돌, 뼈, 옥에 새겨졌고, 훗날 갑골문 속으로 흡수됐다. 문자란 곧 신과 인간을 잇는 계약서였다. □ 자연과 함께 숨 쉬던 언어 갑골문을 보면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긴밀했는지 알 수 있다. 해(日), 달(月), 산(山), 바람(風), 비(雨). 동이 사람들에게 자연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었다. 해는 어머니였고, 바람은 메신저였으며, 비는 은총이었다. 글자는 이를 담았다. ‘雨’의 갑골문은 빗줄기와 받치는 그릇을 그렸고, ‘風’은 바람 속에 깃든 벌레를 표현했다. 인간과 자연이 한 호흡을 나누던 시절의 언어였다.([그림 7] 참조) □ 증거는 형태와 유물 속에 중국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을 확대해보면, 단순한 직선과 곡선이 아니다. 해와 달이 겹쳐 있는 독특한 조형이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은 요하 유역 홍산문화 옥기 무늬와 닮아 있다. 고고학자 장광지는 “문자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도상문화의 축적 위에서 세워진다”고 했다. 갑골문의 해(日) 점 하나, 달(月) 곡선 하나는 신석기 도상에서 이어진 것이다. 문자 탄생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긴 문화적 기억의 집합이었다. 산동 반도의 토기, 요동의 청동기, 홍산의 옥기에서 발견된 기호들 역시 갑골문과 겹친다. 중국 학계도 인정하듯, 문자는 ‘황하 문명 단일 중심’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피어난 다중 중심의 산물이었다. □ 언어의 흔적, 이동하는 문화 언어학자들은 갑골문 속 일부 발음이 현대 중국어보다 오히려 한국어나 일본어의 옛말과 가깝다고 말한다. ‘바다(海)’, ‘물고기(魚)’, ‘배(舟)’ 같은 어휘가 그렇다. 갑골문은 문자일 뿐 아니라, 언어의 교류 흔적이기도 하다. 동이계 부족이 남하하거나 동진하면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이주했을 때, 그 언어와 문자가 함께 전해졌다. 고조선과 삼한, 일본 고훈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기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림 7] 참조) □ 문화의 흡수와 소멸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융합과 동시에 소멸을 불러왔다. 주나라가 변방 부족을 제후국으로 편입하면서 언어와 문자는 표준화되었다. 동이 제관이 새기던 갑골문은 궁정 속 전서체로 바뀌었고, 그의 아들은 그것을 ‘옛 글자’라 부르며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문화는 흡수되고, 기억은 단절되었다. □ 다시 발견된 동이의 목소리 20세기 초 은허 발굴 이후 갑골문은 ‘중국 최초의 문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요하문명과 산동·요동 해안, 한반도 서북부에서 연이어 발견된 부호들은 그 통설에 균열을 냈다. 어떤 연구자는 발굴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중원의 언어가 아니라, 동이족의 목소리입니다.” 그 말은 곧, 갑골문이 특정 왕조의 소유물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 전체가 공유한 유산이라는 선언이었다. □ 문자, 정체성의 뿌리 왜 오늘날 우리가 다시 갑골문을 읽으려 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고대학자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문자는 정체성의 뿌리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것은 곧 우리가 누구인가에 답하는 일이다. 동이의 문자 전통을 복원하는 것은, 잊힌 세계관을 복원하는 것이다. □ 뼈 위의 기억에서 미래의 언어로 문자는 과거의 유물인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이다. 뼈 위에 새겨졌던 갑골문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오늘의 한글과 디지털 코드로 이어졌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우리 손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뼈 위에 새기던 그 날카롭고 간절한 손길을 기억하는 한, 우리의 언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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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뼈 위에 새겨진 동이의 기억, 오늘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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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국인의 문자 DNA, 갑골문에서 한글까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를 돌이켜보면,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작게 여기곤 한다. 국권을 빼앗기고, 가난에 시달리며, 세계의 변방에서 소외되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세계 최하위권이었고, ‘가난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을 보라. K-팝과 K-드라마가 전 세계를 누비고, 첨단 반도체와 IT 기술이 지구촌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과연 기적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축적된 저력의 발현일까? 나는 후자라고 믿는다. 한국인의 창의성과 생명력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문자와 기술의 발명에서 이어져 온 정신의 결실이다. 갑골문, 금속활자, 한글. 이 세 가지는 한국인의 저력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한 흔적이다. □ 거북선과 금속활자, 그리고 한글 우리는 종종 창의성과 발명 정신을 이야기할 때 이 세 가지를 빠뜨리지 않는다. 거북선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기발한 발상이었고,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보다 수 세기 앞서 문자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한글은 더욱 독보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라 불리는 이 발명은 문자 해방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일까? 아니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 오래된 ‘문자 DNA’가 우리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열쇠가 바로 갑골문이다. □ 갑골문의 발견과 충격 1899년, 중국의 학자 왕의영은 ‘용골(龍骨)’이라 불리던 약재에서 우연히 낯선 문양을 발견한다. 후에 밝혀진 것은 그것이 상나라 사람들이 거북 껍질과 소의 뼈에 새긴 문자, 곧 갑골문이었다. 이후 안양 일대에서 수십만 조각의 갑골이 발굴되면서, 상나라의 정치·사회·종교가 구체적으로 되살아났다.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문자와 기록으로 확인된 최초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이 문자 발명의 출발점이었는가?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더 오래된 흔적이 있다. 도자기에 새긴 도문, 뼈에 새긴 골각문자가 그것이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문은 갑골문보다 천 년 이상 앞서는 원시 문자로 추정된다. 2000년대 들어 재조명된 골각문자 역시 갑골문의 전신으로 평가받는다. 즉, 문자의 역사는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글자로, 끊임없는 진화를 거쳐온 것이다. □ 동이족과 문자, 그리고 전파의 길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런 문자 흔적이 발견되는 지역이 바로 만주, 산동, 홍산 등 동이족이 살던 영역과 겹친다는 점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 지역의 문자 전통이 남하하면서 중국 상나라의 갑골문으로 정착했다고 본다. 또 해상로를 따라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수많은 복골(점복용 거북 껍질)이 출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원, 부산, 김해, 경산, 무산 등지에서 ‘무자 갑골’이 보고되었다. 글자가 남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것이 단순한 공백인지, 혹은 소실된 흔적인지는 아직 논란 중이다. 어쨌든 이 발견들은 문자와 의례가 동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히 교류했음을 시사한다. □ 논쟁의 중심, 홍도관 사건 문자와 유물 연구가 늘 순탄한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한국에 들어온 한 붉은 도자기(홍도관 [그림 6] 참조)는 학계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그 표면에 갑골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감정 결과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어떤 기관은 “진품, 고대 유물”이라고 했고, 또 다른 기관은 “근대의 모조품”이라 단정했다. 심지어 어떤 연구팀은 방사성 연대 측정을 통해 더 오래된 시기로 판정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진위 논란을 넘어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고고학은 감각이나 직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과학적 분석과 국제적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말과 글, 정체성의 근원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우리는 갑골문, 도문, 골각문자 같은 오래된 문자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말과 글은 정체성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한 민족이 언어를 잃으면 기억을 잃고, 기억을 잃으면 존재의 뿌리마저 흔들린다. 한글이 오늘날 한국인의 자존과 자부심의 근원이 되는 이유도, 문자 없는 백성은 목소리 없는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골문과 그 전신들을 탐구하는 일은 단순한 고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정체성의 깊은 뿌리를 더듬는 작업이며, 동아시아 문명의 복잡한 혈맥을 밝히는 일이다. □ 미래를 향한 희망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복골의 진정한 성격은 무엇인지, 일본 대량 출토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홍산문화의 도문이 어떤 경로를 거쳐 갑골문으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미완의 질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더 많은 발굴, 더 정밀한 과학적 분석, 더 넓은 국제 협력이 이어진다면, 이 고대 문자의 비밀은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동이족의 피와 한국인의 저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갑골문에서 금속활자, 한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문자와 기술의 발명족이었다. 지금의 성취는 기적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온 저력의 자연스러운 결실이다. 과거의 문자가 미래의 길을 밝히듯,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유산을 더 깊이 연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하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한국인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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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국인의 문자 DNA, 갑골문에서 한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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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AI 3대 강국’을 외치면서 인재를 유출하는 현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강력한 ‘AI 3대 강국’을 꿈꾸고 있다. ‘국가과학자’제도를 신설해 AI인재 해외유출을 막으려 하고 있다. 5년간 100명을 뽑아 개인당 연 1억을 지원하겠다는 정책도 논의되고 있다. 또한 AI 분야 등 해외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하겠다며 “과학 문명 투자한 국가는 흥해”라는 대통령 발언도 강조하고 교육부, 과학기술부, 대학 총장들까지 나서 총체적으로 AI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제 AI가 미래 산업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과거에도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AI 대학원을 설립하고, 코딩과 데이터 과목을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겉으로는 혁신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구호 뒤에는 한 가지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지금도 AI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어렵게 석·박사 과정을 마친 젊은 연구자들이 미국, 중국, 캐나다, 유럽의 연구소나 빅테크 기업으로 향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연구 환경이 열악하고, 창의적 연구보다 ‘성과 지표’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연구실은 여전히 상명하복식 구조에 묶여 있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혁신의 싹을 자르고 있다. 정부는 “AI 인재 10만 명 양성”을 외쳤지만, 정작 그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토양은 만들지 못했다. 이 모습은 단지 AI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 전체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찍어내는 공장형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 교실은 여전히 정답 중심, 주입식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하기보다 ‘어떤 전공이 유망한가’를 계산하며 진로를 택한다. 인문학적 사유와 예술적 감성은 ‘비경제적’이라며 밀려나고, 교육이 산업의 수요에 종속되면서, 청년은 점점 더 좁은 틀 안으로 몰리고 있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AI 강국’을 표방하면서도, AI 인재를 잃어가는 나라가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 한국 출신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연구보다 보고서를 쓰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디어보다 상사의 눈치를 먼저 봐야 했죠.” 그의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느끼는 시스템적 피로의 고백이다. 우리가 청년을 ‘미래 자원’으로만 대하는 한, 그들은 언젠가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나 캐나다의 교육을 보면, 그들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 억지로 “AI 전공자를 늘리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창의와 실패의 자유를 보장하는 교육 생태계를 만든다. 학생이 철학을 전공하다가 데이터 과학으로 옮겨가도, 사회는 그것을 ‘진로 방황’이 아니라 ‘탐색’으로 이해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선택한 계열이 평생의 족쇄가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스템의 불편한 존재로 취급된다. 정작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AI 기술이 아니라 AI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상상력을 두려워하고, 다른 길을 걷는 청년을 ‘비효율’로 본다. 미래는 기술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철학, 윤리, 창의력이 함께해야 한다. 우리가 “AI 강국”이라는 구호에 취해 있는 사이, 귀한 청년들은 떠나고 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 자율이 없는 문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때문이다. 지금처럼 교육이 국가의 산업정책을 위한 하청 구조로 머무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의 ‘두뇌 유출국(Brain Drain)’으로 남게 될 것이다. 청년을 낭비하지 않는 교육은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교실은 인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니라, 인간이 꿈꾸는 실험실이어야 한다. “AI 3대 강국”이라는 구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강국을 이끌 청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한국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교육이 없는 한, 우리의 미래는 구호 속 숫자로만 남을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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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AI 3대 강국’을 외치면서 인재를 유출하는 현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