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9(화)

칼럼·피플
Home >  칼럼·피플  >  사설

실시간 사설 기사

  • [社說] 문해력 붕괴 시대, ‘토론·글쓰기·독서’ 교육 혁신이 국가 경쟁력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디지털 기기의 범람 속에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한 수위를 넘어섰다. 글자는 읽지만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의 속출은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적 위기다. 우리는 단언한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토론, 글쓰기, 독서 수업을 파격적으로 확대하는 것만이 이 벼랑 끝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문해력이 모든 학습과 사고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읽고(독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며(글쓰기), 타인과 소통하며 검증하는(토론) 과정은 지식 습득을 넘어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필수 과정이다. 이 뿌리가 흔들리면 수학 문제를 읽지 못해 틀리고, 과학적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입시 위주의 현 교육 시스템에서 이러한 수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항변한다. 국·영·수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시급한 상황에서 독서나 토론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치스러운 학습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태도다. 기본 독해력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 풀이 기술만 익히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인공지능(AI)이 지식을 생산하는 시대에 단순 암기는 더 이상 무기체가 될 수 없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문해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 방식이 효율적이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문해력을 갖춘 학생이 장기적으로 학습 효율과 문제 해결 능력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낸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결국 해법은 교육 현장의 과감한 체질 개선에 있다. 교과서 진도 빼기에 급급한 수업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학생들이 직접 읽고 쓰고 말하는 시간을 교육 과정의 중심에 배치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이를 단순히 권장할 것이 아니라, 필수 이수 단위 확대와 평가 방식 혁신으로 강제해야 한다. 문해력은 개인의 능력을 넘어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자격이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본질인 문해력 강화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5-11
  • [社說] 변화의 파도 앞, 주저함보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이 우선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핵심 쟁점은 단순한 현상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명확하다. 첫째, 데이터와 통계가 증명하듯 기존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체된 구조 속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으며, 이는 곧 사회 전반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진다. 둘째, 글로벌 표준과의 격차다. 세계 주요국들이 발 빠르게 체질 개선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만 과거의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자발적 고립이나 다름없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물론 일각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존 질서에서 혜택을 받던 계층의 반발이 예상되며, 초기 적응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안정적인 점진적 변화가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변화를 늦춰서 얻는 일시적인 안정이 나중에 치러야 할 기회비용보다 크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모호한 절충안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초래해 갈등만 장기화할 뿐이다. 초기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하며, 체계적인 보완 대책을 병행한다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하게 나아가는 결단력이다. 눈앞의 작은 손실에 매몰되어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뜻으로 새로운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만이 정체를 벗어나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5-04
  • [社說] 교육감 선거, 정치 이념을 넘어 교육 행정과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백년대계인 교육의 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가 매번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이념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교육은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제는 정치가와 이념가들을 교육 현장에서 배제하고, 오직 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고민하는 진정한 교육 전문가에게 지휘봉을 맡겨야 할 때다. 무엇보다 교육감 자리에 정치적 야욕을 가진 정치가나 특정 이념에 편향된 인사가 들어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하며, 학생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갖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편향된 이념 교육은 아이들의 비판적 사고를 가로막고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다. 따라서 차기 교육감은 풍부한 경험을 갖춘 교육행정가 출신이어야 한다. 교육청이라는 거대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고 일선 학교 현장의 복잡한 현안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행정적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이 교육감이 될 경우, 조직 장악력 부족으로 인한 혼선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의 피해로 돌아간다. 정치권의 입김이 교육을 흔들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행정 전문가가 소신 있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다. 진정한 교육감이라면 눈앞의 지지율에 연연하기보다 교육의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갖춰야 한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맞설 수 있도록 문해력의 뿌리인 고전 읽기를 강화하고, 국가 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수학과 과학 등 기초 학문 교육에 매진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질문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다. 이번 선거가 정치색을 빼고 교육의 본질과 행정의 전문성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의 본질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4-27
  • [社說] ‘서울대 10개 만들기’, 지방소멸 막을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거점국립대를 향한 파격적 재정 투입은 대학 서열화와 지방 소멸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국가적 승부수다. 정부가 발표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은 단순히 대학에 예산을 나눠주는 차원을 넘어선다. 9개 거점국립대 중 우선 선정된 3개교에 5년간 매년 1,000억 원씩, 총 5,000억 원을 집중 투자하여 교육 여건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매우 담대한 시도다. 이는 수도권 집중이라는 병폐를 끊어내기 위한 불가피하고도 시급한 선택이다. 대학의 경쟁력이 곧 지역의 경쟁력이며, 양질의 교육 인프라 없이는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와 거점국립대 간의 학생 1인당 교육비 격차는 약 3배에 달한다. 인재들이 지역을 떠나 ‘인서울’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히 간판 때문만이 아니라, 압도적인 교육 자원과 취업 기회의 차이 때문이다. 거점국립대를 세계적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육성하고 지역 전략 산업(성장엔진)과 연계한다면, 인재가 머물고 기업이 모여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특정 국립대에만 예산을 몰아주는 방식은 사립대학의 고사를 초래하고 교육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이 배제된 채 국립대에만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것을 경계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이미 한계 상황에 부딪힌 지방 사립대들이 이번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소멸이 가속화되어, 결국 ‘지방대 100개 죽이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대학을 동시에 살릴 수 없는 현실에서, 거점국립대를 ‘허브’로 삼는 전략적 선택과 집중은 고육지책이다. 한정된 국가 예산을 모든 대학에 균등 배분하는 것은 하향 평준화만을 초래할 뿐이다. 먼저 거점국립대를 성공 모델로 구축한 뒤, 이를 중심으로 지역 내 사립대와 교육 과정 및 장비를 공유하는 ‘공유대학’ 체제를 확산시켜야 한다. 거점 대학이 무너지면 지역 교육 생태계 전체가 붕괴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먼저 일으켜 세우는 것은 사립대를 포함한 지역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우선순위다. 정부는 단순 예산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이번 정책을 국토 균형 발전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려면 1회성 지원이 아닌, 2030년까지 계획된 4조 원 이상의 투자가 차질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또한, 대학의 자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규제 혁파와 함께 졸업생들이 지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산업 정책과의 유기적인 결합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을지는 이 ‘서울대 10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4-20
  • [社說] 2026년의 교정, ‘기술의 속도’보다 ‘교육의 깊이’를 고민할 때
    [교육연합신문=사설] 2026년의 봄이 교정에 당도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새 학기의 설렘 속에 올해는 유독 묵직한 시대적 과제가 우리 교육계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인공지능(AI)이 일상의 인프라가 되고 학령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파고가 교육 현장을 휩쓰는 지금, 교육 당국은 단순한 정책 집행자를 넘어 미래 세대의 삶을 설계하는 '문명의 건축가'로서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 먼저, AI 디지털 교과서의 전면 도입에 따른 ‘기술의 인간화’에 전력을 다해주길 바란다. 2026년은 디지털 전환의 과도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기술은 도구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화려한 인터페이스와 맞춤형 알고리즘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하는 힘과 비판적 성찰 능력을 자극하는 지적 지렛대가 되도록 세심한 관리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 기계가 답을 주는 시대일수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올바른 질문을 가르치는 철학적 교육 모델이 시급하다. 둘째,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교육 생태계의 질적 재편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을 위기가 아닌, 개별 맞춤형 교육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거대 담론 위주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단 한 명의 아이도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촘촘한 교육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들이 행정 업무에 함몰되지 않고 오롯이 학생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수업의 질에 집중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당국의 최우선 과제다. 셋째, 학교 공동체의 신뢰 회복과 정서적 치유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교육 현장은 갈등과 상처로 얼룩진 순간이 적지 않았다. 교육 당국은 교권 보호와 학생 인권이 대립하는 가치가 아닌, 상호 존중이라는 하나의 토양 위에서 피어나는 꽃임을 증명해야 한다. 법과 규정으로 통제하는 차가운 행정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심리적 자존감을 높여주는 따뜻한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당장 눈앞의 성과나 수치에 연연하는 근시안적 행정은 미래 세대에게 빚을 지우는 일이다. 2026년 새 학기, 교육 당국은 변화하는 기술에 기민하게 대응하되 교육의 본질인 ‘사람다움’이라는 가치는 끝까지 수호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교실의 창을 여는 아이들의 눈동자에 불안이 아닌 희망이 맺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교육 당국에 부여된 가장 엄중한 책무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4-13
  • [社說] 아이들의 ‘놀 권리’ 되찾아줄 영유아 사교육 규제 반드시 실행돼야
    [교육연합신문=사설] 영유아 대상 지식 주입형 교육 규제는 정당하다. 정부의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은 시의적절하다. 만 3세 미만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 만 3세 이상도 하루 3시간 초과 교습을 제한함이 마땅하다. 영어유치원의 과도한 선행학습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아동의 발달권 보호와 과열된 사교육 시장 정상화가 시급하다. 영유아기는 신체와 정서가 고르게 발달해야 하는 시기다. 발달단계를 무시한 지식 주입은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 현재의 ‘4세·7세 고시’는 아동의 발달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장시간 학습은 영유아의 창의성과 사회성 발달을 가로막는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고 사회적 불안을 조장한다. 교육의 자유 침해와 영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조기 교육이 글로벌시대의 경쟁력이라는 시각도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 음성적인 고액 과외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영어 학습 시간이 줄어들면 공교육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묻는다. 발달단계에 어긋난 교육은 경쟁력이 아니라 학대다. 하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억지 암기가 아닌 건강한 두뇌 발달에서 나온다. 뇌 과학 전문가들도 영유아기 과잉 학습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선택권이라는 명분 아래 아이들의 휴식권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음성적 과외는 강력한 단속과 신고포상금제로 충분히 억제 가능하다. 공교육 내실화와 병행한다면 학습 결손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법적 근거 마련을 통해 영유아의 건강한 성장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부는 학원법 개정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지식 주입형 교습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위반 시 매출액 50% 수준의 과징금 등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영유아의 ‘놀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번 대책이 아이들을 사교육 광풍에서 구출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4-06
  • [時論] AI라는 거울 앞에 선 교육, ‘인간의 자리’를 묻다
    [교육연합신문=시론] 인공지능(AI)이 교실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질문 한 줄에 일목요연한 답이 쏟아지고, 개인별 맞춤형 학습 알고리즘이 교사의 분필을 대신한다. 바야흐로 ‘교육의 대전환기’다. 그러나 기술의 화려한 편리함 이면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교육의 역설’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AI가 던진 효율의 덫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을 다시 정립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먼저, ‘지식의 과잉이 낳은 사고의 빈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교육이 망망대해에서 지식이라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면, 이제 AI는 가공된 통조림을 입 앞까지 배달해 준다. 결과는 참담하다. 학생들은 정답을 얻는 속도는 빨라졌으나, 정작 ‘왜 그러한가’를 묻는 사유의 근육은 퇴화하고 있다. 스스로 고민하며 지식을 체화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AI가 뱉어낸 문장을 자기 생각이라 착각하는 ‘인지적 태만’이 확산되고 있다. ‘효율의 역설’ 또한 뼈아픈 대목이다. 학습에서 시행착오와 실패는 성장을 위한 필수 자양분이다. 그러나 AI는 최단 경로의 정답만을 제시하며 학습자를 ‘지름길’로만 안내한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서툰 문장을 고쳐 쓰며 느꼈던 그 고통스러운 희열이 사라지고 있다. 고생 없는 학습은 머리에 남지 않는다. 지름길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인생의 복잡한 난제를 만났을 때 과연 스스로 해결할 끈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평가의 무력화’는 교육 시스템의 근간을 흔든다. AI가 대필한 과제물과 인간의 노력이 뒤섞인 성적표는 더 이상 학생의 역량을 증명하지 못한다. 결과물의 완벽함이 오히려 학습자의 실력을 가리는 장벽이 된 셈이다. 이제 결과 중심의 평가는 한계에 다다랐다. 학습의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서 학생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중심의 평가’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관계의 결핍’이다. AI 튜터는 학생의 취약점을 정확히 짚어내지만, 낙심한 학생의 어깨를 두드려줄 손이 없다. 교육은 단순한 데이터의 전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속에서 피어나는 영감의 과정이다. 친구와 논쟁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스승의 삶을 보며 가치관을 정립하는 ‘사회적 지성’은 알고리즘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AI 시대 교육의 사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 AI가 ‘How(어떻게)’를 독점할 때, 인간은 ‘Why(왜)’를 물어야 한다. 학교는 지식을 주입하는 창고가 아니라, AI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윤리적 가치를 판단하는 ‘사유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기술이 지능의 영역을 대신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 기계가 가질 수 없는 공감과 비판적 사고, 그리고 끈기 있게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AI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우리 교육이 지켜내야 할 마지막 보루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3-30
  • [社說] 10분도 버거운 긴 글 읽기, ‘숏폼’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고등학생 3명 중 1명이 10분 이상의 글 읽기에 고통을 느낀다는 통계는 우리 교육 현장의 심각한 위기를 보여준다. 뇌가 짧고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긴 호흡의 글을 읽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집중력 저하의 주범은 일상화된 숏폼 콘텐츠다. 설문 응답자의 78.4%가 시청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습관적으로 앱을 켠다고 답했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수동적인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분석해야 하는 텍스트 읽기는 뇌에 과도한 피로감을 주게 된다. 결국 수능 지문이나 교과서 같은 고차원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정보 습득의 매체가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시각도 있다. 짧고 효율적인 영상 콘텐츠가 정보 전달의 핵심이 된 세상에서, 과거의 방식인 긴 글 읽기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영상 매체가 주는 파편화된 지식은 사고의 깊이를 담보하지 못한다. 학업 성취도와 논리적 사고력의 핵심은 긴 텍스트 속에서 맥락을 파악하고 핵심 정보를 도출해내는 능력에 있다. 영상에만 의존하는 뇌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이해하거나 추론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이는 곧 지적 성장의 한계로 직결된다. 따라서 이제는 학생 개인의 의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교육 차원에서 ‘디지털 디톡스’와 ‘심층 독서’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 공부 시간만큼이라도 스마트폰을 격리하고, 신문 기사나 단행본 등 긴 글을 끝까지 완독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문해력은 미래 경쟁력의 근간이며, 그 근간은 숏폼의 자극이 아닌 텍스트를 향한 인내심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3-23
  • [時論] '정답'의 시대가 가고, '질문'의 야생이 온다
    [교육연합신문=시론] □ 우물 벽에 금이 가다: ‘박제된 지능’의 종말 오랫동안 우리 교육은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계산적 지능을 숭상해 왔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기계 신(Deus ex Machina) AI는 우리가 신봉해온 지능이 사실은 거대한 데이터의 박제에 불과했음을 폭로한다. 암기와 계산이라는 우물 안의 평화는 깨졌다. 이제 인간이 기계보다 더 기계적으로 성실할 때, 그 성실함은 미덕이 아닌 대체 가능성의 지표가 된다.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의 땀방울을 자랑하는 교육은 이제 멈춰야 한다. □ 나무에서 풀밭으로: 리좀(Rhizome)적 사유로의 전환 질 들레즈가 말한 수목형 사고는 뿌리에서 줄기, 가지로 이어지는 위계와 정답의 체계다. 하지만 AI 시대의 지능은 정해진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이제 교육은 거대한 나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든 뻗어나가고 접속하는 리좀(Rhizome)의 풀밭을 가꾸는 일이 되어야 한다. 중심이 없는 네트워크, 경계를 허무는 탈영토화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정해진 경기장 안에서 규칙을 외우는 우등생보다, 경기장 밖에서 판을 새로 짜는 돌연변이들이 생존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 지식의 소유자에서 대화의 기술자로 지식의 소유권은 이미 챗봇에게 넘어갔다. 이제 인간의 가치는 결핍에서 나온다. 모든 답을 가진 기계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프롬프트는 단순한 기술적 명령어가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정교함이자, 기계와 공명하는 앙상블 지능의 핵심이다. 지식을 머리에 쌓아두는 고체 지능의 시대는 끝났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흐르고 접속하는 액체 지능을 가진 호모 프롬프투스(Homo Promptus)를 길러내야 한다. □ 결론: 우물을 허문 개구리가 마주할 야생의 지도 시스템의 오류를 기회로 바꾸고, 나만의 변칙을 설계하는 자만이 진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교육의 역할은 더 이상 안전한 우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우물 벽을 허물고 나가는 고통을 격려하며, 광활한 야생에서 길을 잃지 않을 질문의 나침반을 쥐여주는 것이다. 정답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질문의 야생이 시작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3-16
  • [社說] 세습의 도구가 된 교육, 다시 '사다리'로 복원하라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육은 소수 카르텔의 신분 세습 도구가 아니다. 마땅히 국민의 계층 이동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학벌을 결정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특권층의 정보 독점과 복잡한 전형은 불평등을 고착화한다. 이는 사회적 역동성을 가로막고 공정의 가치를 뿌리째 흔든다. 물론 교육의 자율성과 수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수 인재 양성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필수적인 과제다. 부의 대물림을 제도적으로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격차는 개인의 노력을 무력화하는 수준이다. 출발선이 뒤틀린 경주는 공정한 경쟁이라 부를 수 없다. 기회의 불평등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체제의 안정성을 해칠 뿐이다. 정부는 무너진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입시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교육이 다시 희망의 통로가 될 때 사회는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3-09
  • [社說] 교과서도 못 읽는 아이들, '후천적 난독'의 늪에서 구해야
    [교육연합신문=사설] 단순히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도구인 문해력이 무너지면 공교육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어휘력 부족으로 인한 국어 사교육비가 타 과목보다 가파르게 상승(10.8%)했다는 사실은, 공교육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해력 결핍이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해력 교육을 단순히 국어 수업의 일부가 아닌, 전 국가적인 생존 전략으로 다루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위기의 핵심 원인은 디지털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1분 내외의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긴 글을 읽을 때 시선이 방황하고 집중력을 잃는 ‘후천적 난독’ 증상을 보인다. 뇌가 즉각적인 보상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지면서, 인내심을 갖고 문맥을 짚어가는 고차원적 사고 기능이 마비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시대적 변화로 보기도 한다. 종이책보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에게 과거의 독서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며, 이미지와 영상 중심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키워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텍스트 중심의 교육이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영상 매체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할 뿐,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지 못한다. 모든 고등 사고와 학문의 기초는 정교한 텍스트의 이해에서 출발한다. 어휘를 몰라 교과서를 완독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초 체력 없이 기술만 배울 수 없듯, 문해력 없는 디지털 활용 능력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정부와 교육계는 지금이라도 읽기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숏폼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긴 호흡의 독서 교육’을 의무화하고, 교과서 어휘를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사교육비 폭증을 잡고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들의 손에 다시 책을 쥐여주고, 문장을 끝까지 읽어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3-02
  • [社說] 행정통합 뒤에 숨은 ‘교육재정 절벽’ 대책을 마련하라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와 국회는 행정통합에 따른 교육재정 감소 대책을 법안에 즉각 명시해야 한다.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교육계는 지방 교육 재정의 대폭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재정 대책 없는 통합은 지방 교육을 고사시킨다. 정부는 교육 재원 확보 방안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교육재정 공백은 아이들의 학습권 침해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별법은 지방세 세율 조정 특례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교육교부금의 기반인 세입 구조를 흔든다. 교육감협의회는 최대 1.9조 원의 재정 축소를 경고했다. 노후 시설 개선과 돌봄 사업이 중단될 위기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수입 구조의 공백을 지적했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장기적으로 교육 재원을 확충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행정 효율화로 중복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강력한 자치권은 지역 맞춤형 교육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면 교육 투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경제 논리에 따른 낙수효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재정 감소는 당장 교실 환경 악화로 나타난다. 통합 지역 내 교육 소외 현상도 심화될 수 있다. 비통합 지역과의 역차별 문제 역시 심각한 갈등 요소다. ‘선 통합 후 보완’ 방식은 교육 현장의 혼란만 초래한다. 국회는 특별법 최종 의결 전에 교육재정 보전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특별교부금 신설 등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재정의 안정성 없이는 행정통합도 성공할 수 없다. 교육은 지방자치의 핵심적인 축이다. 국회는 교육계의 정당한 우려를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2-23
  • [社說] 실질적 지원 없는 학맞통, 공교육 붕괴를 가속할 것인가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육부의 ‘학교맞춤형 교육지원 체계(학맞통)’는 현장에 업무 폭탄을 투하했다. 교총은 이번 대책이 공교육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부는 인력 지원을 포함한 실질적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발표에는 실질적인 ‘학교 밖 지원’ 대책이 빠져 있다. 행정 업무의 외부 이관이나 전담 인력 배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력 확충 없는 협업 강조는 교사에게 업무를 독박 씌우는 결과만 낳는다. 교사는 잡무에 시달려 본연의 교육 활동을 포기하게 된다. 교육부는 데이터 기반의 시스템 구축이 행정 효율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어 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논리다. 이를 통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력 없는 시스템은 관리와 입력이라는 새로운 짐일 뿐이다. 구체적 운영 계획 없는 협업은 학교 내 갈등만 부추긴다. 신학기를 앞둔 시점에 현장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업무 주체가 불분명한 정책은 결국 갈등 폭발의 도화선이 된다. 교육부는 ‘협업’이라는 말로 교사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교육지원청으로의 업무 이관 등 체감 가능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정책의 최우선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책은 즉각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2-16
  • [社說] 인천대 입시 의혹, 공정의 근간을 흔들지 마라
    [교육연합신문=사설] 국립대 교수들의 면접 점수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대한민국 입시 제도의 근간인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번 사안은 사회적 성역인 입시를 침범한 중대 범죄로 규정한다. 특정 수험생을 밀어주기 위한 조직적 담합 정황이 매우 구체적이다. 도시공학과 수시 면접에서 점수 담합이 있었다는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특정 내신 등급의 학생을 합격시키라는 지시가 오갔다고 한다. 정성평가가 비리의 통로로 악용된 셈이다. 이는 성실한 수험생들의 기회를 가로채는 행위다. 이에 교육부와 수사 기관은 인천대 입시 비리 의혹을 엄중히 조사하라. 수사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직은 의혹 단계이므로 대학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교수의 평가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물증이 명확한 상황에서 침묵은 비리를 방조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녹취 기록이 이미 세상에 드러났다. 교육부도 사안을 엄중히 보고 현지 감사에 착수했다. 결과를 기다리기보다 즉각적인 인적 격리와 피해자 구제 논의가 우선이다. 그래야 대학의 남은 신뢰라도 지킬 수 있다. 입시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고 무관용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비리가 사실로 확인되면 관련자들을 즉각 퇴출해야 한다.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인천대는 국립대로서 책무를 다하라. 투명한 면접 시스템 구축을 위한 근본적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2-09
  • [社說] 교실 CCTV, 교육을 ‘감시’로 대체할 수는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안전과 예방이라는 명목하에 추진되는 교실 내 CCTV 설치는 교육의 공간을 거대한 ‘감옥(파놉티콘)’으로 변질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학교는 통제와 감시가 아닌, 신뢰와 성장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실 내 CCTV 설치 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지극히 사적인 교육의 공간이다. 모든 발언과 행동이 24시간 기록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육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방어적 수업에 치중하게 되고, 학생들은 감시받는 환경 속에서 자율성을 상실한 순응하는 기계로 길러지게 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인격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처사다. 설치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학교 폭력이나 교권 침해 상황에서 CCTV가 객관적인 증거 자료가 되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식별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각지대를 없앰으로써 범죄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기술적 감시가 인간의 도덕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CCTV는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없는 곳으로 문제를 옮기는 ‘풍선 효과’를 불러올 뿐이다. 무엇보다 교육 현장에 불신의 씨앗을 심어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신뢰 관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문제의 해결은 감시 장비 도입이 아니라, 상담 인력 확충과 교육적 회복 프로그램 강화라는 근본적 대책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CCTV 설치는 교육적 해법을 포기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감시 카메라 아래에서 진정한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감시받고 있으니 조심하라’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존중하라’는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학교를 감시의 공간으로 만드는 CCTV 설치 계획을 철회하고, 무너진 교육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2-02
  • [社說] 알맹이 빠진 교권 보호, 이재명 정부는 ‘학생부 기재’ 즉각 수용하라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는 중대 교권 침해 사항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를 포함한 실효적인 교권 보호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강화 방안은 현장의 비극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교사 폭행과 성범죄 수준의 교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도 학생부에 기록되지 않아 학생들은 자신의 행위를 가볍게 여긴다. 학생부 기재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는 최소한의 교육적 장치다. 또한 이는 대다수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예방 조치다. 일부에서는 학생부 기재가 학생에게 ‘주홍글씨’가 되어 낙인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재를 피하기 위한 학부모의 무분별한 소송 제기가 남발되어 학교 현장이 법적 분쟁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낙인을 우려해 범죄 수준의 폭력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방임이다. 소송 남발의 문제는 ‘교육활동 소송 국가책임제’와 같은 강력한 법적 지원 체계를 통해 해결할 일이지, 기록 자체를 포기할 근거가 될 수 없다. 가해 학생의 인권만 보호하느라 피해 교사의 생존권과 교실 질서가 무너지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는 ‘알맹이 없는 선언’을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학생부 기재를 포함하여 교총이 제시한 ‘5대 핵심 과제’를 국정 과제로서 완수하라. 실효성 없는 대책은 모래 위에 지은 성일 뿐이며, 교권이 무너진 교실에 미래는 없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1-26
  • [社說] 수능 5등급 절대평가 전환, 교육 정상화의 마중물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과 내신을 ‘5등급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았다. 수시와 정시 운영 시기를 통합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입시 전쟁터로 변한 학교를 구할 결단이다. 미래 교육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첫째, 상대평가 체제는 수명이 다했다. 9등급 상대평가는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2028 개편안처럼 내신만 완화하면 수능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 수능 점수만을 따기 위한 자퇴생도 늘어날 것이다. 수능을 5등급 절대평가로 바꿔야 학교 수업이 정상화된다. 둘째, 대학 서열화와 사교육 고리를 끊어야 한다. 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줄 세우기는 끝내야 한다. 절대평가로 등급 폭을 넓히면 점수 경쟁이 완화된다. 대학은 점수 대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보게 된다. 공교육은 비로소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크다.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 대학별 고사가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다. 1등급 안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2028 대입안도 시행 전인데 다음 단계를 논하는 건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는 선발의 편의만 생각한 계산이다. 대학별 고사 부활은 정교한 가이드라인으로 막을 수 있다. 소수점 점수 경쟁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더 크다. 교육 제도는 1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입시 지옥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기성세대의 직무유기다. 대입 제도의 핵심은 선발이 아닌 교육이어야 한다. 수능 5등급 절대평가는 학생을 공포에서 해방하는 첫걸음이다. 공교육을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입시 업계의 반발에 흔들리지 마라. 정부와 대학도 미래 인재를 뽑을 공정한 평가 시스템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1-19
  • [社說] 행정통합의 거대 담론 속에 ‘교육’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의 메가시티 전략도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교육’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교육을 배제한 행정통합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교육 중심의 통합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은 지역 정주 여건의 핵심 요소다. 젊은 층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교육 환경 탓이 크다. 행정 구역만 합치는 것은 알맹이 없는 통합이다. 교육 격차 해소 방안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교육과 행정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메가시티가 성공한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통합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행정 체급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시각이다. 교육 자치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따라서 행정 통합 이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이는 선후관계를 오판한 것이다. 교육 인프라가 뒤처지면 주민 불편과 비용만 늘어난다. 세종시 출범 당시의 혼란이 이를 증명한다. 교육은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통합의 전제 조건이다. 교육 자치는 소외의 핑계가 될 수 없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즉각 구성해야 한다. 메가시티 논의에 교육 전문가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교육이 빠진 메가시티는 미래 세대에게 외면받는다. 경제 논리를 넘어 교육 중심의 통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1-12
  • [社說] 2026년 교육현장, ‘선발’을 넘어 ‘성장’을 위한 평가 혁신으로
    [교육연합신문=사설] 2026년 현재 우리 교육은 여전히 소수점 차이로 학생들의 등급을 가르는 줄 세우기식 입시에 매몰되어 있다. 인공지능(AI)이 일상화된 시대임에도 정답만을 찾는 낡은 평가 체제는 미래 인재를 기르는 데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2028 대입 개편안 등 기존의 대책만으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수능의 강력한 변별력과 내신의 상대평가 구조에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찾기보다 남을 이기기 위한 문제 풀이 기술 습득에만 막대한 시간을 허비한다. 경쟁 중심의 구조 속에서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은 점차 소멸한다. 그동안 정부는 여러 대입 개편안을 통해 변화를 시도했으나 변별력 유지라는 명분에 갇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미세한 점수 차이로 학생을 고르는 기존 방식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부분적인 제도 수정은 사교육 시장의 변칙적인 대응만 불러왔다. 이제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선발’에서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다각도로 살피고 평가의 주도권을 인간의 고유한 사고력에 두는 가치 정립이 시급하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검증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2032년부터 수능을 7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서·논술형 문항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AI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내신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독서와 글쓰기 기반의 인문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입시의 본질적인 변화를 통해 공교육 현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 칼럼·피플
    • 사설
    2026-01-05
  • [社說] 고교학점제, 속도조절과 내실화가 먼저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는 고교학점제의 외형적 확대를 멈추고 교육 격차 해소와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선택권을 중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한다. 대도시 학교는 과목 개설이 쉽다. 반면 농어촌 소규모 학교는 교사 인력이 부족하다. 이는 결국 지역 간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적성에 따른 선택이 아닌 환경에 따른 차별이 발생한다. 교육 당국은 온라인 학교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역 사회와 연계한 공동 교육과정도 강조한다.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수업은 대면 수업보다 집중도가 떨어진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정서적 교감도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평가의 공정성이다. 학교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다. 학생들은 적성보다 점수 따기 쉬운 과목을 찾는다. 입시 제도와의 엇박자가 지속되면 제도 취지는 퇴색된다. 고교학점제는 가야 할 방향이 맞다. 하지만 제도 시행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교원 충원 대책이 시급하다. 대입 제도와의 정교한 연계도 필요하다. 준비 없는 제도는 현장의 혼란만 부추긴다. 내실 있는 인프라 구축이 성공의 전제 조건이다.
    • 칼럼·피플
    • 사설
    2025-12-29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