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02(토)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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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한글활자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

 

1. 미 군정기(1945~1948년)

1945년 해방을 맞아 신조선의 조선인을 위한 교육으로 미 군정 시대가 시작됐다. 미 군정기에는 학교교육을 통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식민지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했다. ‘교육에 대한 긴급 조치’를 통해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수업이 시작돼 우리말과 글과 역사를 가르치게 됐다. 미군정청 학무국에 의한 교육 방침에 따라 교수 용어는 일본어 대신 한국어로, 또 조선의 이익에 반하는 교과목들, 특히 일제 황민화 교육을 주도했던 과목들이 일체 금지됐다.


▮ 미 군정기는 불과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때 현대 한국 교육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 미군은 반공 이념이 투철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성향을 지닌 한국인 미국 유학생들을 발탁해, 미군정 학무국과 한국교육위원회 및 조선교육심의회에 배치했다.


▮ 미 군정은 인문 학교와 실업 학교의 학제가 완전히 분리돼 있던 복선형 학제를 단선형 학제로 바꿈으로써, 종전의 인문 교육과 실업 교육의 제도적 분리에서 기인한 빈부에 의한 학교 진학의 차이를 없애려 했다. 또, 미국식 수업 연한을 도입해, 학제를 6·3·3·4제로 개편했다. 이들은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38선 이남에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목표를 고려해 국민학교를 의무교육화 했다.


▮ 이 시기의 주요 특징으로는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공민과를 신설했으며, 우리의 말과 글 중심의 국어 교육을 강화했다. 또, 우리의 국사 교육도 시행했다.


8월 15일 해방 후 미 군정이 시작되면서 국민학교는 9월 24일에, 중등학교는 10월 1일에 교과서 한 권도 없이 교실 문을 열게 된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교사들조차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교과서 대신 임시적으로 칠판에다 쓰고 공책에다 베끼고, 임시로 제작된 교과서를 사용하다가 11월에 가서야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한글 첫걸음』이라는 국어 교과서가 발행된다. 종이가 부족하고 활자도 없던 어수선한 시대인 관계로 3개월의 진통 끝에 만들어진 교과서였다.


▮ 『한글 첫걸음』을 비롯한 국어 교과서를 가장 먼저 편찬 발행한 미군정청 학무국은 계속해 『공민』, 『역사』, 『지리』, 『음악』, 『잇과』 등의 교과서를 발행했다.


『한글 첫걸음』은 국판(A5판) 크기의 50쪽으로 구성돼 있다. 말살됐던 국어 교육을 급속히 회복하기 위해 국민학교의 『초등 국어 교본』과 중학교의 『중등 국어 독본』을 각각 편찬했으나, 특수한 사정은 상급 학년일지라도 모두 한글을 배우지 못해 읽을 수 없었다. 따라서 국민학교 1·2학년은 『초등 국어 교본』 상권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3학년 이상과 중학교에서는 교과서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글 첫걸음』으로 먼저 한글을 익히게 했다. 정인승(鄭寅承) 선생을 책임자로 해 장지영(張志暎)·윤재천(尹在天) 선생 3인의 기초 위원에 의해 편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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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추진되어 온 교과서 편찬 사업은 미 군정이 끝날 무렵인 1948년 6월에는 『한글 첫걸음』, 『초등 국어』, 『공민』, 『중등 공민』, 『우리나라 발달』, 『국사 교본』, 『사회 생활』,  『중등 국어』, 『초등 셈본』, 『잇과』, 『노래책』, 『글씨본』, 『가사』, 『농사짓기』 등 54종의 교과서를 발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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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기에 배웠던 교과목을 살펴보면, 국민(초등)학교는 모두 12교과로 공민, 국어, 역사, 지리, 산수, 잇과, 체조, 음악, 습자, 도화·공작, 요리·재봉, 실과이며 학년별 주당 수업 시간 수는 22~33시간이었다.

중등학교는 모두 14교과로 공민, 국어, 지리·역사, 수학, 물리·화학·생물, 가사, 재봉, 영어, 체육, 음악, 습자, 도화, 수예, 실업이 있었으며 학년별 주당 수업 시간 수는 32~36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일제 강점기의 잃어버렸던 한글(국문)에 대한 교육이 최우선이었다. 『한글 첫걸음』을 비롯해서 『국문 독본』과 같은 한글 교육에 대한 교육 교재들이 많이 만들어졌던 시기였다.


▮ 체제 면으로 볼 때, 당시의 교과서는 4×6판과 국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면수가 적고 지질이 아주 나빠 마분지 같은 용지를 썼다. 그리고 활자가 아주 나빴을 뿐만 아니라 자형도 가지각색 였다. 컬러 인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흑백으로 인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2. 교수요목기와 6.25 전쟁 시기(1946~1953년)

1946년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 군정청은 일부 교수요목이 포함된 각급 학교 교육과정을 공포했다. 그래서 1946년 9월 1일에는 ‘국민학교 교수요목’을 전달했고, 1946년 9월 20일에는 중학교의 학제 변경에 따른 교과목별 주당 수업 시간표를 정하고, 교과목별 교수요목을 전달했다.


▮ 이 교수요목에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교과별 교수요목에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칠 교수 내용의 ‘주제’ 또는 ‘제목’을 열거했다. 둘째, 구성 체계는 교과별로 각론이 중심이 됐다. 셋째, 교과별로 각 교과의 지도 내용을 상세히 표시하고, 기초 능력을 배양하는 데 주력했다. 넷째, 교과는 분과주의를 채택해 체계적인 지도와 지력의 배양에 중점을 뒀다. 다섯째 홍익인간의 정신에 따라 애국 애족의 교육을 강조했으며 한글 전용과 우리말 도로 찾기 및 우리 말 용어 제정 등과 같이 일제 잔재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육과 관련해 획기적인 변화는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의 제정·공포였다.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채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바둑이와 철수』는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문교부에서 최초로 편찬·발행해 첫 정규 교과서로 사용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용 국어 교과서다. 이 교과서는 12개 단원을 하나의 이야기 학습 체제로 잇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도입했으며, 교과서 일부를 컬러로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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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이와 철수』 표지와 본문◀


『바둑이와 철수』가 발행된 1948년 10월 5일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한국교과서연구재단, 한국교과서협 등은 매년 10월 5일을 ‘교과서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 교수요목은 정부 수립과 교육법의 제정에 따라 새롭게 개정될 예정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중단된다. 6.25 전쟁으로 인해 한 때 교육이 마비되자, 정부는 「전시 하 교육 특별 조치 요강」을 발표해 전쟁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계속 제공하고자 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문교부는 1951년에 학생들의 전시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재로서 초등학교용 『전시 생활』 9종과 중등학교용 『전시 독본』 3종 등 12종을 발행해 피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배부하며 교육을 이어갔다.


▮ ‘전시 생활’은 6.25 전쟁 시기에 편찬·발행된 초등용 교과서이다. 전시 상황에서의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과서로, 전쟁 시기이기 때문에 교과서명이 매우 특이했다. 초등학교 1~2학년용의 경우에 『비행기』, 『탕크』, 『군함』 등과 같이 전쟁 물자와 관련된 교과서명을 사용했고, 초등학교 3~4학년용인 『싸우는 우리나라』,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씩씩한 우리 겨레』 등과 초등학교 5~6학년용인 『우리나라와 국제연맹』, 『유엔군은 어떻게 싸웠나?』, 『우리도 싸운다』 등은 전쟁과 관련된 교과서명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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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생활’ 교과서들◀


▮ ‘전시 독본’은 전쟁 시기에 편찬·발행된 중등학교용 전시 교과서이다. 즉, 전쟁 중에 임시로 교육하기 위한 조치로, 교과서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한 채 전시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과서이다. 이 중등학교용 ‘전시 독본’은 『침략자는 누구냐?』, 『자유와 투쟁』, 『겨레를 구원하는 정신』의 1종 3집 3책으로 편찬됐는데 공급이 가능한 수복 지역에 보급해 학습 자료로 활용됐다.


▮ 6.25 전쟁 시기에 (주)미래엔의 경우에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공장을 부산으로 이전하게 된다. 직원 몇 명이 목숨을 걸고 공장 설비를 트럭도 아닌 우마차를 이용해 인천으로 옮기고 군함의 도움을 받아 부산으로 어렵게 이전하게 됐고, 부산 공장에서 전시 교과서를 출판해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교육에 대한 사명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었더라면 목숨을 건 이러한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 시기에는 물자가 부족해 책의 지질도 좋지 못하고 책의 두께도 얇고, 크기도 4×6판인 지금 교과서의 반절 크기로 발행한 특징이 있다.


▮ 운크라, 즉 국제연합 한국재건위원단과 자유아시아위원회,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원조한 종이와 지원금으로 교과서를 계속 인쇄할 수 있었는데, 『국어 6-3』과 『과학 공부 4-3』이라는 교과서는 학년, 학기(학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종이가 원조되는 대로 1학기와 2학기 교과서를 나눠서 인쇄한 순서를 표시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어려웠던 시기의 교육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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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이 전하는 교과서 이야기 ㈐ – 미 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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