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9(일)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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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할 초헌관(왼편)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총장(왼편) 이수자 회장(중앙)

 

(사)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회장 이수자)는 4월 18일 오전 11시, 부산 수영구 수영동 수영사적공원 내 수강사에서 ‘안용복 장군 330주년 연례제향’을 봉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수영구청을 비롯한 시민단체 및 지역 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안용복 장군의 애국정신과 해양영토 수호 의지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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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관 (제주) 강성할 전 부산일보 부국장

제향은 김용만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본 사업회 법인이사이자 前 부산일보 강성할 부국장이 초헌관(제주)으로 나서 제향을 올렸다.


주요 참석자로는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류동근 총장, (재)독도재단 박경근 교육연구부장과 박정광 교육부차장,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 오동석 총재, 백경원 BIEAF 국제환경예술제 운영위원장, 전 부산노인대학협의회 홍종희 회장, UN 5사무국 부산유치시민연합 박원전 사무차장, 전통애등연구개발원 강선미 부원장,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김남두 사무국장, 수영성마을박물관 전미경 관장, 부산경상대학교 실용생활디자인과 김종대 교수, 전 KBS 이동영 보도국실장, UN사무처 부산유치시민운동본부 박원전 사무처장, 사하구미술협회 최영희 회장,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 황오규 대표, 나누리봉사단 이정현 사무총장, 달뚜기예술기획 홍철영 대표, 홍안의상상 안희정 작가 등이 참석했다.


17세기 조선, 바다를 지킨 이름 ‘안용복’. 안용복 장군은 부산 출신으로, 1693년(숙종 19년) 동래 어민들과 함께 울릉도로 어로 활동을 나갔다가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돼 인슈(因州, 현 돗토리)로 끌려갔다.


이 사실이 이케다 쓰나키요 돗토리번주에 의해 막부에 보고되자, 막부는 안용복 일행을 조선으로 송환할 것을 명령했다. 이후 같은 해 6월 30일, 일행은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숙종실록에 따르면, 안용복은 일본 호키국 번주와의 담판을 통해 울릉도의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했고, 그 결과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鬱陵島非日本界)”라는 내용의 서계를 받아냈다.


이어 1696년 1월 28일, 막부는 일본인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했으며,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건너가 일본 어부들을 몰아내고 오키섬까지 건너가 외교적 대응을 이어갔다. 

 

그는 스스로를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 칭하며 일본 측에 항의했고, 결국 대마도 번주를 통해 울릉도 인근 출어 금지 조치가 조선에 공식 통보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는 당시 공도 정책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던 울릉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에서, 조선의 권리를 지켜낸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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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안용복 백일장대회 및 제1회 독도사랑등 창작대회

“독도 사랑, 미래세대 교육으로 이어져야”이번 제향과 함께 ‘독도 안용복 백일장 대회’ 및 ‘제1회 전국 독도사랑등 창작대회’가 열려 장애인과 학생, 일반 시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참가자들은 안용복 장군의 업적과 호국정신을 되새기며 독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김용만 상임이사는 “전 세계 청년을 중심으로 ‘100만 청년 안용복 위원회’를 조직해 안용복 장군의 리더십과 해양영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교육·문화·환경 분야까지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며,


“부산에는 제2의 안용복을 길러낼 리더십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산시와 경상북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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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 330주년 연례제향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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