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1(월)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풍손괘는 위와 아래에 공통으로 바람(☴)이 있는 모양이다. 중풍손은 바람의 특징 중 하나인 무질서한 흐름과 나무의 겸손한 모습을 상징한다. 풍은 나무와 바람의 상징이다. 이것이 두 번 겹쳤다. 나무에 바람이 불어 마치 나무가 춤을 추는 모습이다. 바람의 특징은 구석구석 아니 미치는 데가 없이 분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바람은 신바람이다. 옛 임금들이 쓰는 왕관에도 나무 모양의 장식이 3개에서 5개 정도가 조각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낸 예술작품이다. 또 이 왕관을 쓴 임금이 걸을 때 짤랑짤랑하는 소리를 낸다. 바로 이것이 바람의 청각적 표현이다. 임금이 정치를 할 때 바람이 불어 나무가 춤을 추듯이 그렇게 백성들을 잘 살게 만들어 준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중풍손(重風巽)’의 ‘손(巽)’은 갑골문에 보면 위에 있는 쌍의 뱀사(巳)자 모양은 나중에 생긴 것이고, 원래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손(巽)자 아래에 있는 함께 공(共)자는 제단을 뜻했다. 그것이 세월이 지나자 원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부수자로 글자를 만들었던 『설문해자』에 와서 모양이 변조됐다. 따라서 중풍손은 제단 위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나무’의 모습이다. 오늘날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이다. ‘받아들이다’의 의미도 지녔다. 또한 손괘는 겸양・겸손을 나타낸다. 
 
종교는 신과 인간의 소통이다. 임금과 백성의 소통은 정치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잘 아는 훈민정음의 창제도 결국 소통의 문제 해결이었다. 
 
옛날에는 백성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정책의 변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상황이 많았다. 정보가 소통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종대왕도 훈민정음을 제정 반포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나무처럼 생각했다. 당시의 어문 생활은 사대부 양반층의 한문과 서리인 중인층의 이두로 나누어진 이원 체제였다. 따라서 왕의 어명이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웠고, 백성들도 양반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세종의 ‘신명행사(申命行事)’ 로 문자와 철자법이 완성되었다. 한글 28자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두루 쓰게 하여 소통의 나라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소통의 나라가 되면서 점차 민주주의라는 의식이 쌓이게 되었다. 한글은 자음은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 떠 만들고, 모음은 천지인 삼재(三才) 즉 ・(하늘은 둥글다), ㅡ(땅은 평평하다), ㅣ(사람은 서 있다) 는 3재를 기초로 적절히 조합하여 초출자(ㅏ, ㅓ, ㅗ, ㅜ), 재출자(ㅑ, ㅕ, ㅛ, ㅠ) 등을 만들었다. 
 
중풍손괘와 관련있는 문학작품은 김수영의 시 「풀」이다. 김수영은 신동엽과 더불어 1960년대 한국시에 있어 쌍두마차로 평가된다. 투철한 역사 인식과 건강한 민중성에 기초를 둔 신동엽에 비해, 김수영은 모더니즘 속에서 자라난 모더니즘의 비판자로서 4.19를 계기로 강한 현실 의식에 바탕을 둔 참여시에 가담하였다. 그러한 맥락 위에 놓인 작품이 바로 「풀」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누구나 풀의 움직임을 관찰한 적이 있겠지만 바람이 불면 풀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땅에 몸을 누인다. 그런데 바람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나 싶게 풀은 다시 몸을 일으킨다. 바람이 불 때만 잠시 몸을 누일 뿐이고 풀은 다시 일어서며 생기발랄한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렇게 풀은 바람과의 관계 속에서 눕고 일어서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러한 풀의 모습에 착안하여 시인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즉 ‘풀’이라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듯한 존재를 통해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본다. 
 
『논어』에도 “통치자의 덕은 스치는 바람과도 같고, 백성들의 덕은 풀과도 같다. 풀 위에 바람이 스치면, 풀은 누울 뿐이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우선 명령을 계속해서 바람처럼 발하여 아니 미치는 곳이 없이 충분히 숙지시켜야 한다. 다음에 실제로 그 명령을 시행하는 사업을 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바람이 나무의 이파리까지 구석구석 부는 것을 보고 ‘신명행사(申命行事)’하라는 말이다. 즉 명령을 계속해서 바람처럼 발하여 아니 미치는 곳이 없이 충분히 숙지시켜야 하고, 실제로 그 명령을 시행하는 사업을 행하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보편화 되면서 민중들의 힘은 커진다. 순자의 ‘군주민수(君舟民水)’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즉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그런 민중의 힘을 노래한 작품이 「풀」이다. 중풍손괘는 결국 흉으로 끝난다. 고정된 가치관에 복속되면 흉운이 된다. 변통없는 진리는 없다. 고정관념에 딱딱해지면 굳은 바위가 된다. 우리의 뇌를 항상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겸손은 유순하다는 말이 아니다. 유순하면 우유부단한 인간이 된다. 우유부단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망친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다. 겸손함이 극에 달하면 강건함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세종도 겸손하고 유순했지만 백성을 위한 일에는 강건했다. 최만리 등 사대부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에도 굴하지 않고 훈민정음을 제정하고 반포했다. 이때 만약 굴복했다면 오늘날 지식 정보화 시대에서 한글 없이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육우균.jpg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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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나무(중풍손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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