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Home >  기획·연재 >  연재
-
[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왜 지금 ‘음악’ 인가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벌써 9월, 올 해도 여덟 달이 훌쩍 지나고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직 낮엔 그래도 더운 공기가 물러나진 않았지만, 계절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누구보다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질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수험생들일 것이다. 9월은 수능 60~70일 정도 남은 시점이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 왔을 테지만 남은 기간 누구보다 불안이 정점에 있을 시기이기도 할 것 같다. 이 시기 수험생의 가장 큰 적은 ‘잠’과 ‘불안’이다. 다행히 잠과 불안은 따로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취침 전 음악 청취는 성인의 주관적 수면 질을 개선하고, 시험 전 15분 정도의 차분한 기악 음악은 학생의 불안을 유의미하게 낮춘다고 한다. 또 서울대 병원 신경정신과 실험에서는 시험 기간 매일 20분 클래식 음악 청취 그룹이 스트레스 자각 점수 30%, 불안 25% 감소를 보였다는 결과도 있다. 잠을 잘 때 음악은 분당 60~80박자(BPM)의 느린 템포가 가장 효과적이다. 왜냐면 저 템포가 사람이 안정되었을 때 심박 수와 비슷해 신경을 이완시킨다고 한다. 또한 볼륨은 대화 소리보다 작게 들릴 듯 말듯 하게 설정해야 오히려 신경 쓰이지 않고 수면 의식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예전엔 잠을 줄이고 공부해야 성공한다고 생각했던 어이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잠을 잘 자야 공부도 건강도 더 좋아진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특히 잠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필히 잘 자야 한다. 잘 자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이나 카페인 제한, 침실 환경 같은 조건들이 필요 하겠지만 거기에 음악이 보조 수단으로 결합되었을 때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렬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은 뇌를 각성시켜 잠 잘 땐 도움이 안 될 것이고, 다이내믹의 변화가 적은 곡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느린 템포와 단조가 결합된 곡은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와 이완에 기여하는 경향이 있다. 쇼팽의 ‘녹턴’ 2번,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의 3악장 아다지오’ 같은 곡들을 추천해 주고 싶다. 또한, 시험 전 불안 완화를 위한 음악으로는 예측 가능한 리듬과 가사 없는 기악곡을 추천한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2악장’,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프렐류드’, 드뷔시의 ‘달빛’ 같은 곡들이 좋을 것 같다. 수험생에게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기억을 저장하는 시간’이다. 잠을 충분히 잔 그룹이 기억 유지율이 20~30% 높고, 반대로 수면 시간이 5시간 이하로 떨어지면 기억 용량이 눈에 띄게 줄고, 이해나 응용문제에서 실수가 늘어난다고 하니 잘 자야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험생 친구들이 좋은 음악과 더불어 잘 자는 루틴을 만들어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 수 있기를 응원한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여행가이드 및 여행기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치열한 경쟁을 넘어, 교실에서 ‘함께’ 노래할 수 있다면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토요일 밤에 TV 프로그램 앞에 앉아 한 방송을 시청하면서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다니...?”, “아, 참 ‘함께’하는 것이 이렇게 의미 있고 행복할 수가 있구나!”, “이 시대에, 이 프로그램의 존재와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 좋을텐데...”라는 감동과 감격을 느낀 적이 있었다. 물론 개인적 정서의 반영이기에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출연팀 및 평가단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감격하고 역시 함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다는 현실에서 필자의 고백은 솔직하고 순수한 감정의 표명임을 밝히고 싶다. 이 이야기는 바로 방송 <KBS Joy>의 《해피투게더 - 혼자가 아니어서 좋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개는 경연대회가 타인을 밀어내고 오른 고독한 승자의 자리가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하는 생각이 오버랩되었다. 이는 메마른 경쟁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흔히 서바이벌 방송이 선택하는 자극적인 경쟁 대신, 오직 ‘팀’으로서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 그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아름다움과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삶의 청량제이자 활력소와 같았다. 출연진들은 2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들이 출연해 각기 다른 배경과 음색을 가진 각자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눈을 맞추며 때로는 눈물짓는 모습이 우리 가슴속에 잊고 있던 공동체적 감동을 일깨웠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깊은 울림은 서로를 향한 배려와 연대에서 비롯된다. 무대 위에서 피어난 그 하모니는 단지 방송용 기획이 아니라, 우리 교육과 삶이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지향점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지난 9월 5일에 데뷔 17년 만에 지상파에 첫 출연한 <썸데이>는 원택, 라도, 정세영이라는 세 명의 남성 멤버들로서 지난 시절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때, “나는 해도 안되는구나”라며 노력의 배신을 원망하며 살던 일화와, 결혼식장을 전전하며 축가를 불러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그들이 결국 삶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팀을 해체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꿈이었던 가수의 길을 잊지 않고 재결합한 이후 출연한 처음의 방송이었다. 그들이 17년 전에 부른 그 노래를 다시 부를 때는 이런 노래가 왜 방송에 등장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며 깊은 감동을 주었다. 참으로 ‘함께’라는 의미의 진정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는 냉혹한 정글과 닮아있다. 줄 세우기와 각자도생의 치열한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남을 넘어서야만 내가 살아남는 잔인한 공식을 몸으로 익힌다. 상대의 실족이 나의 기회가 되고, 동료의 성장보다 나의 상대평가 등수가 우선하는 공간. 그곳에서 ‘함께’라는 고귀한 가치는 이상주의자들의 한가한 수사에 불과한 것처럼 치부된다. 그러나 함께하는 화음이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넘어 가슴을 울리는 진한 감동으로 바뀌어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인지는 이 시간을 놓친 이들에게 ‘다시 보기’를 통해 꼭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권장하고자 한다. 교육의 목적은 타인을 짓밟고 홀로 서는 독주자를 키우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결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되,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교육의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홀로 얻은 1등의 성취는 외롭고 쉽게 바래지만, 함께 역경을 딛고 도달한 완성의 기쁨은 평생을 지탱하는 삶의 자산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줄 세우기’라는 거대한 관성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마음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더 빨리 달려라”라고 채찍질하는 대신, “옆에 서 있는 친구의 손을 잡으라”고 말해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TV 화면 속 참가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만들어낸 그 아름다운 연대의 풍경이 교실마다 펼쳐지기를 진정으로 꿈꾸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아침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교실이 서로의 그늘을 가려주고 온기를 나누는 ‘함께 하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 교육 현장은 차가운 서바이벌의 늪을 벗어나 따뜻한 희망의 배움터로 변모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김홍제의 목요칼럼]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은행나무 아래를 천천히 걷는다. 늙은 은행나무는 떨어지는 잎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닿는다. 자연은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놓으면서 더 큰 자신으로 나아간다. 꽃이 지는 것은 나무의 실패가 아니다. 완성을 향한 버림이다. 인간은 무엇을 버려야 자신의 진정한 삶에 닿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얻으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여긴다. 돈, 명예, 높은 직위를 얻거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욕망에게 만족이란 없다. 정상에 오르면 산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더 놓은 산이 보인다.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더 높은 산이 보인다. 노자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비움’을 말했다. 그릇은 비어 있기 때문에 쓰임이 있고, 방은 비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머물 수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를 계속 채우기만 하는 삶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성장은 자기 그릇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불교의 연기(緣起)도 우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홀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와 조건 속에서 잠시 이루어진 모습이다. 우리는 그 ‘나’를 붙잡는다. 내 명예, 내 재산, 내 생각, 내 성공, 내 자존심을 ‘나’라고 여기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현대인의 고통은 거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붙잡으려는 집착 때문이다. 젊음, 재산, 명예, 사랑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떠난다. 우리는 우정과 사랑에게 변하지 않기를 요구한다. 삶이 주는 변화와 부질없이 싸운다. 강물은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자신의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다. 물은 결국 바다에 닿는다. 바다는 강물이 자기 모습을 끝까지 지킨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모습을 내려놓을 줄 알았기 때문에 도달하는 궁극적인 평화이다. 인생의 전반부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라면, 후반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어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공을 내려놓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내가 옳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놀랍게도 역설적인 일이 일어난다. 비워냈는데 오히려 내가 더 선명해진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잔의 차가 따뜻하고, 저녁의 바람이 고맙고, 오래된 친구의 얼굴이 새롭게 보인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것만으로 충분하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듯, 강물이 강의 이름을 버리고 바다가 되듯, 인간도 욕망의 이름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본래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삶의 마지막에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다.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다.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 얼마나 깊이 살아냈는가, 얼마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는가일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
[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경험이 진로를 바꾼다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을 가장 어려워한다.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실제 산업현장을 경험할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다. 직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입사 후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느끼거나 진로를 다시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좋은 선택을 위해서는 정보보다 경험이 먼저 필요하다. 기업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고 싶지만 기업을 제대로 알릴 기회가 부족하고, 어렵게 입사한 인재가 조직과 직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조기에 이직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과 기업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더 좋은 만남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탐방형 일경험 프로그램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단순히 기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현장과 업무환경을 직접 살펴보고, 현직자와의 대화를 통해 직무를 이해하며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험은 막연한 취업 준비를 현실적인 진로 설계로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된다. 우리는 다양한 기업탐방형 일경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구직자와 기업이 서로를 이해하는 연결의 장을 만들어 왔다. 대학생과 직업계고 학생은 물론, 유관기관과 연계한 북한이탈주민 등 다양한 구직자층을 대상으로 산업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기업을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 과정과 업무환경을 체험하고, 현직자와의 대화를 통해 직무를 이해하며 자신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시간을 갖는다. 기업 역시 미래 인재와 직접 소통하며 조직과 직무를 소개하고, 필요한 인재상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기업탐방은 단순한 견학이 아니다. 기업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기술과 역량을 바탕으로 성장하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구직자는 자신의 적성과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다. 특히 우수한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갖춘 중소기업들은 현장을 직접 경험한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막연했던 기업의 모습은 생생한 경험으로 바뀌고, 취업 준비의 방향도 한층 분명해진다. 현장을 경험한 참여자들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관심이 없던 산업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기도 하고, 막연했던 직무가 구체적인 진로 목표로 바뀌기도 한다. 기업 역시 구직자들의 다양한 시각과 질문을 통해 조직을 돌아보고, 채용과 인재 육성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처럼 기업탐방은 사람과 기업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진로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산업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기업과 소통하며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의 구직자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의 일경험을 넓혀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고용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좋은 진로는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경험은 선택에 확신을 더한다. 다양한 구직자들이 산업현장을 경험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기업과 사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연결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기업탐방형 일경험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가치이며, 우리가 현장에서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청년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과 기업 지원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
[전재학의 교육칼럼] ‘적자생존(積字生存)’, 기록하는 인간만이 미래를 지배한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인류 문명사에 획기적인 기원을 이룩한 찰스 다윈, 그의 생물학적 메타포였던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이 오늘날 우리 교육과 사회 현장에서 한층 경이로운 비유로 재탄생하고 있다. 즉, “적자생존(積字生存):자기 사유를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지금은 생성형 AI와 디지털 미디어가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완전히 전복시킨 ‘만인 저작 시대’다. 스스로 읽고 쓰며 자신의 행위와 사유를 서사적 기록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인간의 존엄과 지적 생존을 결정짓는 교육의 핵심 역량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장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극심한 ‘문해력의 빈곤’과 ‘글쓰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타인이 만든 숏폼 영상과 인공지능이 즉석에서 출력해 주는 문장에 일상을 내맡긴 아이들은 점차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언어로 정립하는 단계를 건너뛴 채, 선다형 정답만을 빠르게 찾아내는 획일화된 교육의 그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사유의 도구여야 할 글쓰기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사회는 결국 자율적 사고를 포기한 수동적인 인간을 양성할 뿐이다. 우리는 왜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야 하는가?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파편화되어 떠도는 감정과 생각에 정교한 형상을 부여하는 높은 차원의 자아 성찰이자 지적 연마 과정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는 “자장서저신(子張書諸紳)”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공자의 제자 자장이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띠(紳)에 즉시 기록했다는 장면이다. 기록은 흘러가 버릴 찰나의 사유를 불멸의 철학으로 고정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역시 유배지라는 절망적 환경 속에서 5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기며 “붓을 들지 않는 사유는 안개와 같다”고 경계했다. 결국 끊임없이 적고 구성해 ‘적자(積字·記字)’만이 영원히 생존함을 증명한 것이다. 글쓰기 교육은 결코 청소년기나 대학 진학을 앞두고 급조할 수 있는 단기 테크닉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고 기록하는 일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일기, 독서록, 나만의 경험을 담은 작은 관찰기록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관조하는 또 하나의 눈을 키워줄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을 서사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 아이는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며, 정서적 위기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자아를 통제하는 강력한 심리적 탄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육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첫째, 학교 현장에서의 글쓰기가 ‘평가를 위한 시험’에서 ‘자기표현과 소통을 위한 즐거운 여정’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정해진 모범답안에 맞춰 문장을 반복하는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아이들이 느낀 솔직한 감정과 개성 있는 시각이 존중받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가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일상적 기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매일 한 줄의 문장을 나누고, 지역 도서관과 학교가 연계하여 어린이들의 기록을 한 권의 책이나 디지털 서사로 출판해 주는 경험을 제공할 때, 아이들은 비로소 ‘글쓰기의 효능감’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가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글쓰기 수업(Harvard College Writing Program)을 전 학생 필수 과정으로 고집하며 “좋은 사고를 하려면 반드시 좋은 글쓰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를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AI가 순식간에 수만 줄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기일수록, 역설적으로 ‘직접 고민하고, 손으로 적어 내려가는 인간의 사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보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경쟁 사회의 비정한 도생(圖生)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스스로 기록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고, 거친 타자의 언어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진실을 지켜내는 영혼의 자립을 의미한다. 지금은 아이들의 손에 다시 펜을 쥐여주고,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서사를 담대히 적을 수 있도록 공교육의 사명을 다해야 할 때다. 기록하는 아이가 미래를 지배하고, 기록하는 사회만이 결코 흔들림이 없는 지적 유산을 대대손손(代代孫孫)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만남이 기회가 될 때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취업은 결국 사람과 기업이 만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가 있어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만나지 못하면 기회를 얻기 어렵고, 기업 역시 좋은 인재를 찾지 못하면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일자리는 연결에서 시작된다. 과거의 채용은 구인공고를 올리고 지원자를 기다리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채용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고, 구직자 역시 자신에게 맞는 기업을 직접 경험하며 선택하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채용은 단순한 모집이 아니라 사람과 기업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변화하고 있다. 채용박람회는 이러한 연결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일자리 플랫폼이다.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직접 만나 기업문화와 직무를 소개할 수 있고, 구직자는 다양한 기업을 비교하며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채용박람회를 운영하며 단순한 행사 진행을 넘어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 현장을 만들어 왔다. 인천 상설 채용박람회와 뿌리기업 채용박람회, 직업계고 취업박람회, 기업 매칭데이 등 대상과 산업 특성에 맞는 다양한 일자리 행사를 기획·운영하며 구직자와 기업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만남의 장을 마련해 왔다. 이러한 경험은 채용박람회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일자리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플랫폼임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하는 채용환경에 맞춰 운영 방식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병무청 온라인 보충역 채용박람회이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줄인 비대면 방식으로 운영하여 전국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고, 온라인 상담과 채용정보 제공을 통해 기업과 구직자가 보다 편리하게 만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이는 단순히 행사를 온라인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채용 서비스를 제시한 사례였다. 반대로 오프라인 박람회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기업의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고 채용담당자와 상담하며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 있고, 구직자는 자신의 강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온라인의 편리함과 오프라인의 현장성을 적절히 결합할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양한 운영 경험을 통해 확인해 왔다. 채용박람회의 성과는 행사 당일의 참여 인원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기업에는 필요한 인재를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구직자에게는 새로운 진로와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지역의 산업 특성과 기업의 수요를 이해하고, 구직자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채용박람회는 비로소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낸다. 앞으로 일자리 환경은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채용 방식을 계속 바꾸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신뢰를 쌓고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채용박람회 역시 단순한 채용행사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기업을 이어주는 만남이 있어야 하고, 그 만남이 새로운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다양한 채용박람회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연결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현장에서 계속 만들어 가고 있는 일자리 플랫폼의 가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청년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탐방형 일경험 프로그램과 현장 중심 진로지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실시간 연재 기사
-
-
[전재학의 교육칼럼]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4년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학교폭력 예방 교사 연수에서 한 교사는 담당 학생이 “도와주고 싶었지만, 나까지 왕따당할까 봐 그럴 수 없었어요”라고 고백했음을 밝혔다. 이 실화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왕따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고백으로 많은 교사들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 사례는 요즘 학교 현장에서의 단순한 방관이 아닌, 용기를 내기 어려운 교육 환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청소년들에게 공감의 중요성, 배려의 의미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는 ‘용기’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사랑도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 할 것이다. ■ 혐오와 냉소가 일상이 된 시대, 청소년은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있는가? 청주 A고 교사 간담회 사례 공유(2025.03, 충북교육청 주관)자료에 의하면 반 단체 채팅방에서 어느 학생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암묵적으로 침묵하거나 방관했다. 그러나 다음 날, 조롱당한 학생에게 “말리진 못했지만, 그런 분위기가 싫었어.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보낸 친구가 있었다. 이 학생은 평소 담임교사에게서 “친절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단지 교훈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메시지와 모델을 통해 행동을 배운다. ■ 청소년에게 ‘사랑의 용기’를 가르치기 위한 3가지 방향 1. 사랑을 감성보다 ‘결단’의 문제로 설명하자 요즘 공감 능력, 정서 교육이 더 없이 강조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공감은 행동으로 옮겨질 때만 의미 있는 가치가 될 수 있다. 단지 “친구를 도와줘야 한다”는 말은 이제 한계를 내포한다. 이제는 다음과 같이 언어를 바꿔야 한다. “사랑은 그냥 착한 게 아니라, 네가 강하다는 증거야.”, “누군가를 감싸줄 때, 너는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이처럼 용기와 성장을 직접 연결 짓는 언어가 필요하다. 2. 사례 중심 교육으로 ‘사랑의 순간’을 구체화하자 학교에서는 ‘배려’와 ‘존중’을 말하지만, 그 장면이 대개는 추상적이고 이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함께 토론할 수 있다. ‘누군가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친구가 실수했을 때, 감싸주는 것과 질책하는 것 중 어떤 선택이 더 어렵고 의미 있는가?’ 이러한 사례 중심 수업은 교육부가 2023년부터 보급한 ‘공감과 상생’ 인성교육 자료집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장면에 대한 역할극, 글쓰기, 감정 나누기 등을 통해, 아이들이 사랑을 ‘실천의 기술’로 체득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3. 교사와 어른들이 ‘사랑의 용기’를 먼저 보이자 아이들은 어른의 말보다 행동을 기억한다. 따라서 교사나 부모가 실수한 학생에게 여유를 보이고, 소외된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을 말하기 전에, 그 모델이 되는 일상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 가장 어려운 교육, 그러나 가장 가치 있는 교육 우리는 혐오 표현, 조롱, 무관심이 일상이 되어 갈수록 자연스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분명히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어색함을 견디고, 한 발 먼저 다가가는 아이가 늘어날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따뜻한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사랑도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교실에서부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선택을 가르쳐야 하는 골든타임을 살고 있다. 여기에 교사의 역할과 사명이 중요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
-
[김홍제의 목요칼럼] I have a dream today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서 마틴 루터 킹 2세 박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다른 인종과 피부색과 배경을 가진 모든 국민이 민주주의의 미국에서 함께 자유를 나누는 꿈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조지아주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소유주의 후손들이 식탁에서 형제애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꿈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도 꿈이 있다. 책 읽는 학교, 운동하는 학교, 즐거운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인간다운 교육이 최우선이 되는 학교를 꿈꾸었다. 오전수업만 하는 학교.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과 취미활동만 하는 학교. 대학처럼 수영장과 학생회관이 있는 학교. 지역사회에도 열려 있는 학교. 눈을 뜨면 오고 싶은 학교. 양치질을 화장실에서 하지 않고 전용 양치 시설에서 하는 학교.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만들어서 하는 학교. 무엇보다도 존중받고 존경하는 사제관계를 경험하는 학교. 자체 규범을 만들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고 보람 있고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드는 학교. 토의와 토론을 하고 음악을 즐기고 사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학교. 외국 신문과 잡지와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고 훌륭한 교사들이 세계로 성장하는 진로를 설계해 주는 학교. 학생이 새로운 기대와 설렘으로 교실에 들어서는 학교. 옷장과 세면대, 간식과 좋은 화분이 가득한 교무실. 수업에 대한 열정과 학생에 대한 성장을 위한 대화가 넘치고 그런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는 학교. 분기마다 석학의 책 한 권을 가지고 토론하는 학교. 밤샘 독서 시간을 가지는 도서관. 주말에 1박2일 별을 보고 캠프파이어를 하고 환경, 저출산, 경제, 전쟁, 윤리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하는 학교. 주말 오후에는 공연을 하는 학교, 일년내내 학생들의 작품이 학교 여기저기에 전시되고 어우러지는 학교. 봄, 여름, 가을, 겨울 4번의 소풍을 6명의 모둠이 함께 계획해서 가는 학교. 지역사회 어르신을 모시고 인생 강의를 1시간씩 듣고 인생에 대해서 배우는 대담을 하는 학교. 유학을 가고 싶은 학생들에게 독서실을 제공하고 아무 때나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학교, 공부가 싫증나는 학생에게 체험활동을 연계해 주는 학교. 자전거 일주, 마라톤, 100km 걷기,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등 다양한 자기 극기와 봉사를 배우는 행사가 계속되는 학교. 졸업을 하면 입학 때보다 정신적 성장이 서너 배 이상 커지는 학교. 주말에는 영화를 부모와 함께 보는 학교. 아버지가 자녀와 축구를 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는 학교. 교육공동체가 서로를 신뢰하여 모든 일에 참여와 소통을 잘하는 학교. 교육공동체가 협력하면 학교를 지상의 천국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꿈이 있다. 비현실적인 이상향이 아닌 지금 우리 스스로가 이 공간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 꿈은 혼자 꾸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을 믿고 싶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I have a dream today
-
-
[풀꽃 산책] 에필로그 - 길 위에 피어난 숨결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풀꽃은 한 번도 길을 만들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그저 뿌리를 내리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비가 오면 물을 마시고, 햇살이 오면 잎을 펼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 순순한 생이 모여 낯선 땅을 부드럽게 덮고, 발길이 닿는 자리를 잇는다. 길은 누군가의 계획이 아니라 풀꽃이 스스로 세상에 쓴 사소한 문장, 그 문장이 켜켜이 이어진 흔적이다.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애써 닦은 자취보다 한 줌의 숨, 한 방울의 기다림이 더 멀리 길을 연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작은 풀잎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건너는 다리가 된다. 나는 이 칼럼을 쓰며, 길은 결국 살아 있는 것의 향기로 남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넘어진 자리에서 새로 피어나는 풀처럼 우리의 실패도 다시 길이 된다. 멈춤과 고요가 빛을 잃을 때조차 보이지 않는 뿌리가 토양을 흔들며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이제 칼럼을 마치는 순간, 당신의 발밑에도 이름 없는 풀꽃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숨결이 당신을 부드럽게 밀어 또 하나의 길을, 또 하나의 삶을 피워낼 것이다. 바람이 그 길을 따라 불고, 햇살이 그 길 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모두 풀꽃처럼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상을 피워낼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연재
-
[풀꽃 산책] 에필로그 - 길 위에 피어난 숨결
-
-
[전재학의 교육칼럼] 경계를 넘어, 세계를 품는 교육을 위하여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단지 한 나라의 정치 슬로건을 넘어서, 글로벌 질서 전반에 거센 파장을 몰고 왔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동맹보다 보호무역과 자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는, 국제사회가 오랜 시간 쌓아온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뒤흔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민족주의와 고립주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고, 그 여파는 한국의 미래세대 교육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한국의 아이들에게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로 ‘경계를 넘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다. 이는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는 인재가 아니라, 타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세계 문제에 공감하는 시민을 키우는 교육을 말한다. 이는 이념의 대립을 넘어선 인류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는 길이며, 대한민국이 작지만 강한 나라로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길이기도 하다. 핀란드의 교육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핀란드의 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 공감 수업’이 일상이다. 아이들은 세계 각국의 문화를 배우고, 난민과 이주민의 삶을 체험하는 롤플레잉 활동을 통해 차이를 이해하는 법을 익힌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와 ‘그들’을 나누기보다, ‘우리 안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감수성은 나중에 국가 경쟁력으로 살아나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는 국제 분쟁 해결과 평화중재 분야에서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희망의 씨앗은 많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지구시민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기후변화, 난민 문제, 불평등 이슈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활동을 한다. 그중 한 학생은 아프리카 난민 캠프에 깨끗한 물을 보내는 캠페인을 자발적으로 기획해, 전교생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교육의 힘이 아이를, 아이의 힘이 공동체를 바꾼 것이다. 이제는 고질적인 대학입시 중심의 ‘경쟁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즉, ‘내 새끼 지상주의’ 교육관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런 시야로는 글로벌 리더를 길러낼 수 없다. 오히려 협력과 공존을 배워야 할 시기에 ‘비교’와 ‘서열’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배우게 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미래의 위기를 함께 해결하기보다 회피하거나 방관하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할 것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취약한 생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전 세계가 함께 협력하지 않고는 그 어떤 백신도, 경제 회복도 가능하지 않았다. 한국이 K-방역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공동체를 위한 시민의식과 배려, 그리고 과학 기반의 합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교육은 이제 ‘국경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의 한 전설적인 경영 구루(guru)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이 아닌, 세계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해결하려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진짜 세계시민 교육이다. 아이들이 단지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better) 곳으로 만들기 위한 세계시민이자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 교육이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역할이다. 미국이 ‘자국 우선’을 외칠수록, 우리는 ‘함께’를 외쳐야 한다. 거센 파도 앞에 작고 약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에 심는 ‘연대’와 ‘공감’의 씨앗은 결국 세계를 바꾸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가슴에는 인류애를 품고 눈은 국경을 넘어 저 멀리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는 교육, 이는 시대적 요구이자 우리가 진정한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이정표이자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경계를 넘어, 세계를 품는 교육을 위하여
-
-
[김홍제의 목요칼럼] 사유하는 인간을 위한 학교 교육의 길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 389쪽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출간한 『슈퍼인텔리전스』에서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초지능 컴퓨터의 위험을 알려주고 있다. 클립공장에서 초지능 컴퓨터 한 대를 구입하고 컴퓨터에게 클립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라는 간단한 업무를 지시한다. 그러자 컴퓨터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구를 정복하고 모든 인간을 죽이고 탐사대를 보내 다른 행성들까지 모조리 점령하더니 결국 그 어마어마한 자원을 사용해 은하계 전체를 클립공장으로 가득 채운다. 컴퓨터는 시킨 일을 정확히 수행했다. 컴퓨터의 문제는 사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없는 특별히 강력한 실행력을 가진 존재라는 데 있다. ‘이용자 참여를 극대화하라’는 목표를 설정한 유튜브는 분노와 정치적 편향을 부풀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짜뉴스로 블로거는 돈을 벌고 유튜브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각국에서 가짜뉴스에 기반을 둔 음모론과 극단적 주장이 세력을 확장하여 상대방을 근거 없이 공격했다. 교육이 경제 논리와 성과주의에만 종속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교육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기존 명제에서 벗어나면 교육은 인간을 도구화하게 된다. 한국 교육정책은 학생을 ‘사유하는 인간’이 아닌 ‘정답을 맞히는 기계’로 길러왔다. 정부의 혁신은 입시 제도 개편에 불과할 뿐이었다. 학생은 점수와 등급에 갇혀 있고 교사는 행정과 입시에 짓눌려 있다. 정답 찾기에 매몰된 한국의 교실에는 미래가 없다. 사유의 문을 닫고 정해진 답만으로 달리게 하는 교육은 시효가 다한 교육이다. 기계를 효율적으로 많이 만드는 것은 이제 로봇공장이나 컴퓨터 공장에서 하면 된다. 학교는 생각하는 인간을 키우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인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침묵을 강요하는 교실에서 사유는 자랄 수 없다. 질문하는 교실로 만들어야 한다.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모색하는 경험을 학생에게 많이 주어야 한다. 사유는 자유다. 사유는 창조의 근원이다. 답습이 아닌 새로운 길을 펼쳐가는 힘은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다. 사유는 창의적 미래를 열어가는 동력이다. 사유 없는 교육과 사유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사유 없는 교육은 사유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은 여론에 휘둘리고 정책 권력의 수동적 소비자가 될 뿐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창의와 혁신을 외치지만 사유 없는 창의는 공허하다. 질문을 억누르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교실은 그래서 사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정답 공장’이라는 교실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높은 시험점수로 일류대학에 진학시키는 교육이 아닌 성찰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사유하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학교 교육의 본분이다. 교실을 사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되돌려주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사유하는 인간을 위한 학교 교육의 길
-
-
[구본희 반려詩選] 매미탈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매미탈 은행나무 밑둥에 가벼운 화석 하나, 탯줄처럼 남았다. 어두운 땅속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희망 품고 나온 몸. 고요한 번뇌 끝에 자신을 찾다가 스스로를 버렸다. 목소리까지 벗은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외롭지 않다. 햇빛도, 바람도, 새소리 머물다 간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매미탈
-
-
[풀꽃 산책] 경계를 넘는 붉은 꽃 - 석산(상사화)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이 꽃은 그저 아름다움을 넘어, 깊은 의미와 전통을 지닌 존재로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꽃이 피면 잎이 없고, 잎이 돋으면 꽃이 없다. 석산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안고 핀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존재와 소멸이 한 몸에 깃들어 있다. 붉게 타오르는 꽃잎은 강렬하지만, 그 안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애틋함이 깃들어 있다. 하나로 이어질 수 없는 인연, 그러나 끊어질 수도 없는 존재. 석산은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다. 무덤가와 절벽, 길 끝자락에서 불길처럼 타오른다. 그 붉은 빛은 소멸을 노래하며, 동시에 부활을 속삭인다. 열매를 맺지 않는 꽃.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생명. 땅속 깊이 묻힌 알뿌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싹을 틔운다. 죽음 속에서도 끝나지 않는 순환이 있다. 석산은 단절을 상징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연결을 암시하는가? 무덤가에 피어난 붉은 꽃은 떠난 자와 남은 자가 함께 숨 쉬는 자리.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석산의 붉은 빛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석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별을 넘어서, 다시 피어날 준비가 되었는가? 슬픔이 삶을 멈추게 할 것인가,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될 것인가? 석산은 말없이 보여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생명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고. 무덤에서 자궁으로 뿌리내린다. 붉은 빛 속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연재
-
[풀꽃 산책] 경계를 넘는 붉은 꽃 - 석산(상사화)
-
-
[구본희 반려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반공일을 아시나요. 예전엔, 토요일 전날이면 괜히 기분 좋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그 반공일이 온공일이 되었지만, 설렘은 반으로 줄었지요. 이틀 쉬는 게 당연해진 탓이겠지요. 요즘은 주 4.5일 근무제도 슬며시 고개를 든다지요. 그 젊은 날, 바쁨 속에 숨어 있던 작은 행복 ㅡ 반공일이, 코시오스코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속에서 문득, 미소처럼 떠오릅니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
-
[전재학의 교육칼럼]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작은 성공 경험’의 힘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공부를 어려워하는 요즘 학생들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자신감 부족이다. 많은 학생들이 ‘나는 공부를 못해’, ‘나는 머리가 나빠’, ‘나는 해도 안 돼’라는 말을 자주 말하는 것은 언뜻 단순한 푸념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반복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공부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가장 절실하다. 이를 위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작은 성공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게 해주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몇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작은 성공 경험을 쌓게 하는 방법들 첫째, 목표를 작게 나누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간고사 1등급 받기’, ‘전 과목 90점 이상’과 같은 크고 추상적인 목표를 세운다. 이는 아마 “목표는 클수록 좋다”는 말에서 온 오해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도달하기 어렵고, 실패했을 때 좌절감만 더 커진다. 따라서 교사나 부모, 혹은 학생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목표를 작고 구체적으로 쪼개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 수학 문제 5개만 정확히 풀기”, “영어 단어 10개 외우고 스스로 시험 보기”처럼 당장 실행 가능한 단위로 나누면 성취 경험이 생기고, 이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감정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즉각적인 피드백과 긍정적 강화가 필요하다. 작은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반드시 즉각적인 피드백과 긍정적인 강화가 필요하다. 이는 뇌가 성공을 학습하고, 더 큰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뇌 과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여기에는 “잘했어, 오늘 목표 달성했네.”, “이 문제는 너 혼자 힘으로 풀었잖아” 같은 짧은 칭찬 멘트가 아이의 내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이 성적이라는 외부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느끼는 데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나만의 공부 방식 찾기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공부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말하면서 외우는 것이 효과적이고, 누군가는 글로 써야 기억이 잘 된다. 누적된 실패 경험을 지닌 학생일수록 “나는 이런 식으로 해봤자 안 돼”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이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학습 루틴이 생기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자기 효능감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비교보다 자기 성장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감을 잃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타인과의 ‘비교’다. 특히 요즘은 SNS나 학교 내 성적 시스템 등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되며, 이로 인해 무기력감이 더 심해진다. 따라서 학부모나 교사는 학생이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스스로 성장을 인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에는 이 개념을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와 같은 피드백이 반복되면, 학생은 공부를 통해 발전하는 자신을 체감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상승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 심어주기 결국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대단히 거창하거나 복잡한 방법이 아니다. 핵심은 작은 성공의 반복, 긍정적인 피드백, 개인화된 학습 전략, 그리고 비교가 아닌 성장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학생의 마음속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장기적으로 학습에 대한 자발성과 의욕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 자기 주도 학습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작은 성공 경험’의 힘
-
-
[김홍제의 목요칼럼] 폐쇄적 시험의 나라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배움의 나라로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지금의 입시제도 개선이 한국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첫 단추이다. 성장보다 족쇄가 되는 한국의 대학 입시 구조를 조만간 걷어치워야 한다. 점수 경쟁의 굴레를 끊고 과정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의 입시는 고쳐 쓰려고 하지 말고 폐기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은? [보기]에서 올바르게 고른 것은?’ 이런 질문을 6년 이상 받고 그런 시험 결과로 줄 세우는 교육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런 교육으로 미래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한국 중등학교 교육위기의 뿌리는 입시 중심 패러다임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모두가 입시 공룡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 패러다임은 매우 견고하다. 이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입시의 굴레를 끊고 성장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입시의 굴레를 끊어야 한국 교육이 산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 진학을 객관식 위주의 일회성 수능시험 점수에 맡기는 현재 구조가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 AI 기반 평가 시스템을 활용해 탐구 과정, 프로젝트 참여, 사회봉사 경험까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기록하여 공정성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가 직접 ‘공교육형 AI 학습 플랫폼’을 운영하여 무상으로 수준별 학습 콘텐츠를 활용하게 해야 한다. 고액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학습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열, 점수, 사교육의 삼중고를 넘어서야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이 있다. 뗏목은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한다. 대학 입시는 단일 시험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기반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에서 경험한 탐구, 프로젝트, 사회적 기여가 입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점수 경쟁이 아닌 성장의 가능성을 보는 교육 방식이어야 한다. 학벌의 사슬도 끊어야 한다. 입시 문제의 핵심에 ‘대학 서열’이 있다. 모든 교육과정이 그 목표에 종속된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학 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인재 선발 방식을 학벌이 아닌 방법으로 대신해야 한다. 사회도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역량 기반 채용을 확산시켜야 한다. 인재 선발은 프로젝트와 경험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정착시켜서 ‘어느 대학 출신인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살리는 길은 분명하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장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며,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용기다. 대학 서열 해체, 평가의 다원화, 공교육 강화, 사회적 채용 혁신. 이러한 혁신이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 잘못을 분명히 알면서도 혁신을 거부하는 사회는 미래를 포기하는 사회다. 입시 철폐가 공허한 구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것만이 미래 세대에게 ‘시험이 아닌 삶을 위한 교육’을 돌려줄 수 있는 길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폐쇄적 시험의 나라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배움의 나라로
-
-
[풀꽃 산책] 흔들리는 갈대, 부러지지 않는 삶 - 갈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고요함과 흔들림, 공허와 충만, 생각과 내려놓음 사이의 균형 속에서 성장과 기쁨을 찾을 수 있다.” 갈대는 흔들린다. 바람이 불면 휘어지고, 강물이 흐르면 몸을 맡긴다. 단단한 나무처럼 버티지 않고, 흔들림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갈대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 비밀은 속을 비운 데 있다. 텅 빈 줄기는 바람이 지나갈 길을 내주고, 강한 저항 대신 유연하게 흐름을 따른다. 버티려 하지 않지만, 쓰러지지도 않는다. 부러지는 것은 언제나 단단한 것들이다. 우리도 그렇다. 삶은 예상할 수 없는 바람과 같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고, 고민과 선택의 순간마다 방황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더 단단해진다. 흔들리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함이다. 바람이 거세도, 갈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고,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흔들려도 괜찮다. 흔들리면서 길을 찾고, 흔들리면서 강해진다. 갈대가 속삭인다. “흔들릴지라도, 사라지지 말라.”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연재
-
[풀꽃 산책] 흔들리는 갈대, 부러지지 않는 삶 - 갈대
-
-
[구본희 반려詩選] 문부엉이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문부엉이 우리 집 현관문엔 부엉이 한 마리 살고 있다. 자기 혼자는 울 수도 없는 새. 하지만 그 침묵은 영롱해 더 슬프다. 영겁의 연(緣)에 갇혀 하늘로 날 수는 없지만. 밤낮 뜬 눈으로 안으로 담금질하며, 조용히 먼 둥지 그려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문부엉이
-
-
[풀꽃 산책] 변화에 춤추는 존재 - 뚝새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변화에 대처하려면 호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은 위험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다.” 뚝새풀은 논에서도, 밭에서도 자란다. 땅이 다르면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논에서 자라는 뚝새풀은 뿌리를 깊이 내려 안정을 찾고, 밭에서 자라는 뚝새풀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진다. 하나는 머물고, 하나는 떠난다. 머무르는 것이 안전할까? 떠나는 것이 더 강할까? 논형 뚝새풀은 같은 자리에서 자란다. 자가수분을 통해 유전자를 유지하며, 익숙한 환경에서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안정 속에서 성장하지만, 변화에는 취약하다. 변화의 바람이 불면, 그 강함은 오히려 약점이 된다. 반면, 밭형 뚝새풀은 바람을 타고 떠난다. 타가수분을 통해 다양성을 키우고, 새로운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한다.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유연한 존재가 결국 살아남는다. 삶도 그렇다. 익숙한 환경 속에서 머물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기회로 삼을 것인가?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전할지 모르지만 한계가 생긴다.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일 때, 더 넓은 가능성이 열린다. 뚝새풀은 묻는다. “당신은 논형인가, 밭형인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예상할 수 없는 흐름이 몰아친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단단함이 아닌 유연함, 익숙함이 아닌 도전.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연재
-
[풀꽃 산책] 변화에 춤추는 존재 - 뚝새풀
-
-
[전재학의 교육칼럼] 니체가 교사에게 건네는 철학적 위로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너 자신이 되어라.” 이 단순하고 짧은 말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 불리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가장 울림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는, 바로 지금 교실에 앉아 있는 중고등학생들이고, 그 메시지를 가장 먼저 건네야 할 사람은 교사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교사는 어린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인성)지도 등 교육에 책임지고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매일 수많은 아이들과 마주하는 교사에게는 때로는 지치고, 속상하고, 답답한 순간들이 찾아 온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집중하지 못할까,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할까, 왜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할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는 말한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존재’다.”라고 말이다. 학생들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것조차 두려운 나이다. 그들은 ‘정답’을 찾고 외우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혼란에 빠진다. 시험의 점수는 명확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니체는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너는 너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조각가다. 너는 아직, 되어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교사는 아이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변화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때로는 조용히 지켜봐 주고, 때로는 무너지려는 아이에게 “괜찮아,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니체는 인간의 본질을 ‘극복’이라 했다. “인간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다.” 이 말은 교사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때로는 이 아이가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이대로 어른이 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니체는 “한 사람의 가능성은 그가 지금 어떤 모습이냐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는 누군가는 상처를 품고 있고, 누군가는 깊은 불안을 껴안고 있으며, 누군가는 어른에게 실망한 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그런 아이들은 쉽게 분노하고, 무기력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은 하나의 외침이다. “선생님, 저는 아직 저를 잘 모르겠어요. 저도 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겠어요.” 니체는 또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교사들에게도 적용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규율을 지키고 수업을 하다보면, 때로는 ‘통제’가 ‘이해’보다 앞설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억누르고 틀 안에 가두려 할수록,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니체는 “아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교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배운다는 것이다. 학생이 자기 자신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한 사람의 어른, 즉 교사가 그를 믿어줘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삶을 견디게 만드는 힘은, 그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 현실은 많은 아이들이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그들에게 교사는 ‘나를 믿어준 단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교사는 교사라는 존재로서 충분히 의미 있고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작게, 조용히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성적표나 태도점수로는 보이지 않지만, 한 번의 눈빛과 한마디 말로 시작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지금 이순간도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행동을 한다면 이는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성장통을 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아이는 아직, 되어가는 중이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역시, 교사로서 계속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니체가 교사에게 건네는 철학적 위로
-
-
[구본희 반려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사람은 병 없이 살 수 없다. 감기처럼 스쳐 가고, 암처럼 삶을 뒤흔들며 불쑥 찾아오는 가족처럼 곁에 있다. 몸이 멀쩡해도 마음은 주저앉고, 겉은 웃고 있어도 속은 텅 비어간다. 병은 염색처럼 감추지 말고, 반려처럼 조용히 안아야 한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서로를 알아가는 일ㅡ 그것이 병과 함께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
-
[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특별한 사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어 이런 말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외신들은 '아무것도 아닌'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외신은 각각 '하찮은(insignificant)', '보잘것없는(a nobody)', '중요하지 않은(no importance)' 등으로 번역했다. 사전에서 ‘아무것’이 ‘아니다’를 만나면 ‘특별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아무것’이 ‘특별한 것’이란 뜻을 갖게 된 건 ‘아무것도 아니다’를 ‘별것 아니다’로 바꿔 쓸 수 있고, ‘별것’이 특별한 것이란 뜻이니 ‘아무것이 아니다’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뜻이 된다. 일상적으로는 자신이 스스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오’라고 말하면 그 말은 자신의 겸손함을 표현하는 어법이다.‘ (한겨레신문’, 8월 7일자, ‘말글살이’ 참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 공신은 ‘보통 사람 노태우입니다’라는 선거 문구였다.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김대중, 김영삼 후보와 경쟁하면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워 당선되었다. '보통 사람 노태우' 이미지가 당시의 국민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태우 대통령도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일반사람은 보통 사람이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보다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어 한다. 사교육. 5세 고시. 의대에 미친 교육, 우수반 편성은 특별한 대우에 대한 욕망이다. 영재교육, 국제학교, 특별한 학교를 좋아하는 학부모의 심리도 그런 욕망의 표현이다. 공직자의 기관장에 대한 자리다툼도 특별함에 대한 욕망이다. 특별대우에 대한 욕망은 경쟁, 차별, 열등감, 갈등을 만들었다. 빗나간 자식 사랑 경쟁은 모두를 지옥으로 내몰았다. 교육과 예술 분야는 ‘욕망의 부재’가 ‘진정한 특별함’을 만든다. ‘얀테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10가지 규칙이 있지만 요약하면 '당신 스스로 남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특별하다 생각하지 마라.'라고 한다. 이 법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평등사회와 복지 선진국으로 이끈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얀테의 법칙에 따르면 왕족조차 '높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정말로 왕족조차 권위를 드러내기보다는 소탈해지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대동소이하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다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먹고 화장실에 가고 비슷한 내장과 뇌와 손발을 가지고 있다. 다만 좀 키가 크거나 암기를 잘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할 뿐이다. 사자와 개미, 전나무와 채송화처럼 아주 다른 종이 아니다. 선생은 학생이 진정으로 타인과 공감을 이루고 겸손함으로 세상을 살게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와 학생이 ‘특별함에 대한 욕망’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계와 가정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학생은 없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특별한 사람
-
-
[풀꽃 산책]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상을 뚫다 - 방동사니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힘의 원천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진정한 힘이란 외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방동사니는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잡초라 부르며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거친 아스팔트를 뚫고 솟아나는 강한 생명이다. 누구도 보살피지 않지만, 스스로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모으며, 어느 순간 세상의 틈을 뚫고 얼굴을 내민다. 그 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방동사니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깊이 내린다. 단단한 돌 틈 사이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버틴다. 제초제가 뿌려지고, 수없이 밟혀도 다시 살아난다. 장애물이 클수록 뿌리는 더욱 깊어지고,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만든다. 우리도 그렇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노력이 가장 강한 힘을 만든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서 단단하게 쌓인 힘이 어려운 순간을 뚫고 나올 수 있게 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한 자만이 끝내 길을 연다. 방동사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다시 살아나며, 그 존재를 증명한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고,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키운다면 어떤 어려움도 뚫고 나아갈 수 있다. 방동사니가 묻는다. “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힘을 키우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연재
-
[풀꽃 산책]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상을 뚫다 - 방동사니
-
-
[구본희 반려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자식이 있어도 제 살기 바빠 안부조차 잊는 세상. 결혼을 해도 아이 키울 엄두 없어 자식조차 낳지 않는 현실. 후진과 개발, 선진이 뒤엉킨 세대, 풍요와 편리함은 더 깊은 고독을 잉태했다. 이제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시대. 자식도 찾지 않는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는 반려인가, 부모 되기를 포기한 무자식 상팔자의 반려인가. 반려동물의 눈을 바라본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문득, 나도 누군가의 반려인간이면 좋겠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
-
[전재학의 교육칼럼] 자사고와 공립고, 진정한 교육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은 오랫동안 ‘입시 중심’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 특목고의 기능을 대표하는 유형))와 공립고(일반고의 대표적 유형)다. 자사고는 “자율”이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했지만, 실상은 경쟁 위주의 교육을 심화시키는 제도로 전락했고, 공립고는 형식적인 평등에 갇혀 교육의 질적 다양성을 놓치고 있다. 이 두 제도가 과연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과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자사고의 존재 이유를 보자. 그것은 한마디로 다양성과 자율성에 있다. 학교마다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해 학생의 개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겠다는 것이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상당수 자사고는 명문대 진학률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입시 사관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방의 한 자사고는 2024년도 약대 및 의학계열(의⋅치⋅한⋅수)의 진학률이 졸업생의 40~50%에 이르렀다. 가히 ‘의대 사관학교’인 셈이다. 이런 성향으로 보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 할 것이다. 서울 강남의 일부 자사고는 내신(수시전형)보다 수능(정시전형)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단편적인 총평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공교육의 정상적인 흐름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는 점이다.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고착화시키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는 교육 기회의 불균형을 초래하며, 가정의 경제력이 곧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이른바 ‘부의 세습’을 부추기는 불공정한 환경을 조장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전국적으로 일반화 되어가는 경향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공립고는 제도적으로 평등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거주지 학군 내 무작위 배정을 통해 진학하며 교육의 형평성과 접근성 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공통 교과 위주의 교육은 평균적인 학생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뛰어난 학생이나 특별한 관심사를 가진 학생에게는 도전이나 자극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교사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학교 자체도 혁신적 시도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한다. 그 결과, 공립고는 때때로 ‘관리형 교육’에 머무르며 학생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자사고와 공립고 모두 교육의 본질에서 어긋난 점이 드러나고 있다. 부연하자면 자사고는 지나친 경쟁과 서열화로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공립고는 제도적 평등에 안주한 채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과 성장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 양극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교 교육은 단순히 대학 진학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삶을 설계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시기여야 한다, 입시 실적이 아니라 교육의 질과 다양성, 그리고 학생의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학교 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고교체제 개편 논의는 입시 결과가 아닌 교육의 본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부는 자사고 폐지나 전환을 단순한 ‘형평성’ 차원이 아니라, 공교육 전반의 질적 향상과 연계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둘째, 공립고에도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확대해 각 학교가 지역 특성과 학생의 요구에 따라 특색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점차 확대하려는 자율형 공립고(자공고) 2.0 정책의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화해 교육의 주체로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자사고, 공립고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제 ‘어떤 학교가 더 좋은가’를 묻기보다는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성적이 아닌 삶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자사고든 공립고든, 그 학교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미래를 살아갈 민주시민의 자질과 역량을 길러주는 곳이라면, 비로소 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자사고와 공립고, 진정한 교육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
-
[김홍제의 목요칼럼] 즐거운 인생을 위한 예술교육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사는 것이 즐거우신가요? 나이가 들수록 되도록 즐겁게 살고 싶다. 사는 것이 즐겁게 느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즐겁다는 것은 보람을 느끼거나 재미가 있거나 보상이 크거나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거나 성취감을 느낄 때일 것이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때는 지루하거나 실패하거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을 할 때이다. 사는 일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왕 사는 거라면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멋진 삶, 의미 있는 삶, 성공한 삶, 건강한 삶이 있지만 즐겁지 않다면 인생은 숙제일 뿐이다. 근대에 와서 쇠사슬에 묶여 강제 노역을 하는 전통적 노예는 없어졌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엇인가에 지배를 당하는 심리적 노예는 많다. 돈은 가장 강력한 족쇄이다. 보이지 않는 세련된 방식의 구속으로 지배를 당하는 현대인은 항상 일에 바쁘다. 돈, 건강, 의무, 성과에 매몰되어 살다보면 출구에는 커다란 허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일상을 장악하면서 인정 욕구에 예속되기도 한다. 인공지능마저 인간의 사고를 알고리즘으로 예속하려고 한다. 인간의 인정 욕구는 생리적 욕구가 아닌 심리적 욕망이다. 남에게 인정받는 일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통하여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이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자신의 진정성을 속이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재미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새로운 것이 재미를 준다. 여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 ‘여행’이 많은 것은 그런 이유이다. 배운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과 대면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하려면 예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 학교, 사회, 국가가 예술교육에 지금보다 더 노력, 시간,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쇼생크의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죄수들에게 들려오는 아리아는 예술의 마력을 보여준다. ‘앤디’라는 남자주인공이 간수를 화장실에 가두고 감옥 전체에 들려주는 음악은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나오는 이중창 ‘산들바람이 불고’라는 아리아이다. 공간은 여전히 교도소 마당이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곳은 마법처럼 아름다움이 오로라처럼 일어난다. 실수와 반성에서 내면의 성장이 있다. 전기밥솥에 물만 맞추어 부으면 밥이 간편하게 된다. 타지도 않고 질지도 않다. 실패가 없다. 이야기도 없고 성장도 없다. 밥을 태우거나 질게 하거나 되게 하거나 해야 웃음이 있고 반성이 있고 이야깃거리가 있다. 손으로 당기고 밀고, 입으로 불고, 손가락으로 힘들여 튕기고 여닫는 동작으로 소리가 나온다. 그 소리는 같은 듯 다르다. 그 다른 것을 느끼러 연주회장에 간다. 다른 것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인생을 즐기려면 예술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선진국이 왜 예술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는가를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점점 예술교육의 필요성이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학생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학교에서 예술과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즐거운 인생을 위한 예술교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