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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지끈거리는 편두통, 뇌와 경추의 신경학적 연결고리로 풀어내기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뇌신경이 보내는 경고음, 편두통의 원인 - 편두통(migraine)은 단순한 두통을 넘어, 뇌신경계의 비정상적인 흥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복합적인 신경혈관 질환입니다. 임상적으로는 일측성 또는 양측성의 박동성 통증이 중등도 이상의 강도로 발생하며, 구역질, 구토, 빛 번짐(광과민), 소리 공포증 등을 동반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편두통의 핵심은 삼차신경혈관 시스템(trigeminovascular system)의 활성화와 관련성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외부의 자극으로 삼차신경이 흥분하면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 산화질소(NO) 등 혈관 활성 신경펩타이드가 방출됩니다. 이 물질들은 뇌수막 혈관을 확장시키고 비만 세포를 탈과립시켜 국소적인 신경성 염증을 유발하며, 이는 통증 신호가 증폭되어 중추신경계로 전달되는 원인이 됩니다. 2. 진통제만으로 편두통 관리가 힘든 이유 - 현재 편두통의 급성기 치료에는 트립탄(Triptans),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 디탄(Ditans), 게판트(Gepants) 등이 사용되며, 예방 치료에는 CGRP 단일클론항체(mAbs)와 항우울제, 항경련제 등이 처방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 치료로 잘 해결되지 않는 편두통도 많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약 30~40%의 환자는 위와 같은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심혈관계 질환 위험 요인이 있는 환자에게는 혈관 수축 작용을 하는 약물의 사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위장관 장애, 인지 기능 저하,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있는 환자의 경우 약물의 복용 중단율이 높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통증 조절을 위해 급성기 진통제를 과용할 경우, 오히려 두통의 빈도와 강도가 악화되는 '약물과용두통(medication overuse headache)'으로 만성화될 위험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3. 편두통과 밀접하게 얽힌 '경추기원성 두통(cervicogenic headache)' - 최근 경추의 관절, 디스크, 인대 또는 근육의 병리적 이상으로 인해 유발되는 경추기원성 두통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질환이 편두통 관리에서 중요한 이유는 편두통 환자의 최대 90%가 목 통증을 동반하여, 임상적으로 두 질환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해부학적 중첩은 삼차경수복합체(trigeminocervical complex)라는 신경 구조로 설명됩니다. 상부 경추에서 기원하는 구심성 통증 신경과 뇌신경인 삼차신경의 구심성 섬유는 뇌간에서 융합됩니다. 이 때문에 경추부의 통증 신호가 편두통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반대로 편두통 발작이 경추부의 방사통으로 발현될 수도 있습니다. 4. 편두통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 침, 추나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근래에 이와 같은 약물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의학적 치료가 대안으로 조명받고 있으며, 현대과학적 연구방법론을 통해 그 효과와 작용기전이 검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다수의 무작위 대조 시험을 종합한 우산 고찰(Umbrella review) 연구에서는 침 치료가 기존 약물 치료와 비교해 부작용이 현저히 적으면서도 편두통 발생 일수와 통증 강도를 유의미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최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한 커넥톰(connectome) 기반 예측 모델 연구에서는, 편두통 환자에게 4주간 침 치료를 시행한 결과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피질하-소뇌 네트워크 간의 기능적 연결성 조절을 통해 진통 효과와 장애 개선이 나타남이 입증되었습니다. 더불어, 편두통의 경추성 유발 요인을 제어하기 위해 상부 경추 및 흉추에 이루어진 추나와 침전기자극술 병행치료는 단순 수기치료 및 운동보다 두통의 빈도와 강도를 3개월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이들 효과는 생물학적으로 침 치료가 보이는 CGRP 및 NO 방출 억제와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조절을 통한 신경 염증 완화 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울러 천궁(Chuanxiong rhizoma), 천마(Gastrodiae rhizoma), 백지(Angelicae dahuricae radix) 등 두통에 널리 활용되는 한약을 중심으로 구성된 복합처방은 뇌혈류를 개선하고 신경성 염증을 억제합니다. 이들 한약의 유효 성분은 혈액-뇌장벽(BBB)의 투과성을 안정화하고, CGRP 및 NF-κB 염증 신호 전달 경로를 억제하여 중추 및 말초의 통증 감작을 차단함으로써 편두통의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편두통 자가 관리법 - 성공적인 편두통 관리를 위해서는 임상적 치료와 더불어 생활 습관 교정이 필수적입니다. •식이 및 영양 관리 : 금식이나 불규칙한 식사는 혈당 저하를 유발해 편두통의 촉발 인자가 되므로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합니다. •운동 요법 : 규칙적인 중등도 유산소 운동 및 저항성 근력 운동은 뇌의 베타-엔돌핀 및 BDNF 수치를 높여 편두통 빈도와 강도를 줄입니다. 단, 두통의 발작기에는 신체 활동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운동을 피해야 합니다. •근육 이완과 스트레칭 : 경추부와 두피에 대한 가벼운 자가 이완 및 스트레칭은 통증 유발 물질인 Substance P와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켜 두통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잦은 편두통은 삶의 질 전반을 위협하지만, 진통제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뇌 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경추의 구조적 긴장을 해소하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올바른 생활 관리를 병행하여, 지긋지긋한 통증의 굴레에서 벗어난 평온한 일상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Kollenburg L, Kurt E, Mulleners W, Arnts H, Robinson CL, Poelen J, Meier K, Dominguez M, Ashina S, Vissers K. Bridging the gap: molecular mechanisms, regional activity and connectivity in headache disorders. Brain. 2026 Mar 5;149(3):710-735. 2.Schiller J, Niederer D, Kellner T, Eckhardt I, Egen C, Zheng W, Korallus C, Achenbach J, Ranker A, Sturm C, Vogt L, Gutenbrunner C, Fink MG, Karst M. Effects of acupuncture and medical training therapy on depression, anxiety, and quality of life in patients with frequent tension-type headache: A randomized controlled study. Cephalalgia. 2023 Jan;43(1):3331024221132800. 3.Cropes M, Deacon A, Nelson EO, Deuel D, Sandgren A, Abd-Elsayed A, Houdek T. Exploring Pain Phenotyping in Cervicogenic Headache Management. Curr Pain Headache Rep. 2025 Dec 13;29(1):122. 4.Raggi A, Leonardi M, Arruda M, Caponnetto V, Castaldo M, Coppola G, Della Pietra A, Fan X, Garcia-Azorin D, Gazerani P, Grangeon L, Grazzi L, Hsiao FJ, Ihara K, Labastida-Ramirez A, Lange KS, Lisicki M, Marcassoli A, Montisano DA, Onan D, Onofri A, Pellesi L, Peres M, Petrušić I, Raffaelli B, Rubio-Beltran E, Straube A, Straube S, Takizawa T, Tana C, Tinelli M, Valeriani M, Vigneri S, Vuralli D, Waliszewska-Prosół M, Wang W, Wang Y, Wells-Gatnik W, Wijeratne T, Martelletti P. Hallmarks of primary headache: part 1 - migraine. J Headache Pain. 2024 Oct 31;25(1):189. 5.Robinson CL, Christensen RH, Al-Khazali HM, Amin FM, Yang A, Lipton RB, Ashina S. Prevalence and relative frequency of cervicogenic headache in population- and clinic-based studie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Cephalalgia. 2025 Mar;45(3):3331024251322446. 6.Pereira PA, Marto CM, Oliveiros B, Botelho MF. Acupuncture is an effective alternative to medication for migraine: An umbrella review. J Integr Med. 2025 Oct 13:S2095-4964(25)00162-1. 7.Zhang X, Chen Q, Liu Y, Li J, Nie L, Miao Q, Fu F, Lyu T, Tan Z, Kong Y, Li B, Liu L. Acupuncture for Migraine Without Aura and Connection-Based Efficacy Prediction: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Netw Open. 2026 Jan 2;9(1):e2555454. 8.Chen Y, Wang S, Wang Y. Role of herbal medicine for prevention and treatment of migraine. Phytother Res. 2022 Feb;36(2):730-760. 9.Dunning J, Butts R, Zacharko N, Fandry K, Young I, Wheeler K, Day J, Fernández-de-Las-Peñas C. Spinal manipulation and perineural electrical dry needling in patients with cervicogenic headache: a multicenter randomized clinical trial. Spine J. 2021 Feb;21(2):284-295.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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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지역의 기억과 문화를 교육으로 잇는 문화강국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필자에게 매일 저녁 KBS '6시 내고향'과 매주 토요일 늦은 오후 시간에 방송되는 '동네 한 바퀴'는 은근히 기다려지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이는 빠른 이동과 소비가 일상이 된 시대에, 한 지역의 특산물을 소개하고, 또 천천히 걷는 방식으로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 속에서 만나는 지역의 장인과 명장들은 화려한 성공담의 주인공만은 아니다. 그들은 한자리를 지키며, 사라져 가는 우리의 토종 기술과 생활 문화를 묵묵히 이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있으며, 또 전하려고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말이다. 이 질문은 곧 우리 교육의 방향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의 삶과 연계된 배움, 지역과 함께하는 교육을 강조해 왔다. 지역 연계 교육과정, 학교–마을 협력, 학교 밖 학습 자원의 활용은 이제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정책의 핵심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성과 달리, 실제 학교 현장에서 지역은 여전히 ‘부가적 체험 공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바로 지역의 장인과 무형문화유산이다. 국가유산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제도>를 통해 전통 기술과 예술을 보호하고 전승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축적한 지식과 태도를 몸으로 간직하고 있는 살아 있는 교육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한지 장인의 작업에는 자연 재료의 과학적 이해와 생태적 감수성이 담겨 있고, 옹기 장인의 삶에는 지역 산업과 생활사의 변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러한 자원은 역사·국어·과학·미술·기술·진로 교육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으며, 교과 간 경계를 넘는 융합 교육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지식을 암기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학문의 경계와 맥락을 이해하는 탐구자로 성장할 수 있다. 국제사회 역시 이러한 교육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전통문화와 무형유산 교육을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핵심 요소로 규정하며,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학생의 정체성 형성과 창의적 사고를 강화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 교육이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 역량을 기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실행이다. 지역(마을) 연계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교사의 개인적 열정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지역 문화 자원과 학교를 연결하는 제도적 플랫폼을 구축하고, 수업 자료 개발, 교원 연수, 행정적 지원을 체계화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역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야만 지역 자원이 일회성 체험이나 행사로 소모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교육 내용으로 축적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조국의 광복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는 평생 자신의 소원이 우리가 세계 속의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라 말했다. 이는 현대에 와서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생산량이나 수출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이해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창의적 문화시민을 길러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KBS의 두 방송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각 지역의 장인과 명장의 삶은, 그 출발점이 멀리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교육이 지역의 기억과 문화와 손을 맞잡을 때, 교실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교육부 정책이 진정으로 현장과 연계하여 이루어질 때, 문화강국의 길은 교육으로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명실공히 교육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지역의 인적 자원과 문화 요소를 풍부한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강화하여 다시 살려내는 것은 이 시대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 위대한 교육적 과업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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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당신의 수업을 어떻게 기억할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초등학교는 가장 순수하게 친구를 만나는 시기이다. 네이버 ‘동창 찾기’ 밴드로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며 한동안 활발하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한동안 시들해졌다. 그러더니 이제 나이가 들어 늦바람이 불었는지 모임에 꼭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오랜만에 본 동창들은 부쩍 늙어 보였다. 자신도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다. 유난히 장난을 좋아했던 친구 하나가 불쑥 말을 건넸다. “야, 우리 솔직히 수업 내용 기억나냐?” “근데 말이야. 나를 무시하던 그 선생 표정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70년대 학교는 폭력의 장소였다. 대나무 뿌리, 당구 큐대, 봉걸레, PVC 등 도구 종류도 많았다. 엉덩이나 손바닥이 주요 대기 장소였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시절의 다양한(?) 추억을 깔깔거리며 이야기했다. 교직에 있는 나로서는 함께 웃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배우지만 졸업을 하면 대부분을 잊는다. 하지만 ‘비인간적 대우를 받은 상처’는 잊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지만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태도와 감정의 축적이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학생은 무엇을 배웠는지는 잊어도 자신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는 오래 기억한다는 점이다. 존중받았던 순간은 자존감을 키우지만 무시당한 경험은 마음 깊은 곳에 화상으로 남는다. 학생은 무엇을 배웠는지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대우받았는지를 기억한다. 교사가 하는 그림에 대한 칭찬이 화가를 만들고 글쓰기에 대한 칭찬이 작가를 만들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과 무시하는 말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오늘날 학교 현장은 여전히 성취와 경쟁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학생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태도다. 오늘날처럼 경쟁과 비교가 심화된 교육 환경에서는 학생이 쉽게 위축되고 자신을 낮게 평가하기 쉽다. 한 학생의 인생 방향이 단 한 번의 인정과 격려로 바뀌는 일도 드물지 않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지하는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좋은 수업은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학생에게 남는 것은 설명의 완벽함이 아니라 태도의 진실함이다. 아무리 명강의를 해도 그 속에서 한 학생이 모욕을 느꼈다면 그 수업은 실패한 것이다. 수업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 잊힐 수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 느꼈던 감정은 한 사람의 삶에 오래 남는다. 교육의 진정한 성과는 시험 점수가 아니다. 학생의 마음속에 남겨진 기억이다. 교사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모르냐’는 말 한마디가 어떤 학생에게는 질문할 용기를 영영 빼앗는다. 반대로 ‘좋은 질문이네’라는 짧은 인정은 한 사람의 인생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성적표는 몇 년 후 사라지지만 교실에서 받은 감정은 수십 년을 버틴다. 그 감정은 또 다른 사회로 번져간다. 동창회에서 들었던 말들이 질문으로 가슴에 남는다. 선생님의 오늘 수업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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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위기의 교육을 극복하기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때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세계 대회인 2022 롤드컵 조별 1라운드에서 유럽의 강팀 Rogue에게 패배한 후, 한국팀 DRX의 주장 ‘데프트(Deft)’ 김혁규 선수와의 인터뷰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한 기자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유튜브 영상 제목에 “로그전 패배 괜찮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달았다. 이를 시작점으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포르투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극적인 역전승으로 16강에 오르자, 관중석에서 환호하며 흔든 태극기에 쓰여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지상파 뉴스에 널리 송출되면서 약어인 ‘중꺾마’는 전 국민이 공유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격상되었다. 서두에서 특별히 중꺾마에 얽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를 우리 교육에 반영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오늘의 교육 현장은 다층적, 복합적 위기에 놓여 있다. 학습격차는 커지고, 교권 논쟁은 끊이지 않으며, 학생들은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교육 정책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현장의 체감 변화는 미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핵심은 바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할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교육을 움직이는 근본적 지혜이자 현실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다음의 상황을 보자. 첫째, 학습 격차 문제다. 팬데믹 이후 교실에서는 같은 교과서를 배우면서도 전혀 다른 수준의 학생들이 섞여 있다. 어떤 학생은 이미 문제를 다 풀었고, 어떤 학생은 문제를 읽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많은 학생이 “나는 원래 공부를 못한다”고 스스로 가능성을 접는다. 그러나 소위 수포자인 한 중학생이 매일 20분씩 문제를 풀며 1년을 버텨 상위권으로 올라선 사례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교육이 할 일은 바로 학생들에게 작은 성취를 반복시키고, 실패를 학습으로 수용하게 할 때 비로소 꺾이지 않는 마음을 배울 것이다. 둘째, 교권과 교실 갈등 문제다. 교사는 교육을 설계하는 전문가이지만 동시에 감정노동의 직업이기도 하다. 학부모 악성 민원, 학생과의 갈등, 과도한 행정 업무 속에서 많은 교사들이 소진 상태다. 그러나 교육의 변화는 교사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는 문제 행동이 잦은 학생에게 벌점 대신 매일 아침 3분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몇 달 후 학생의 행동 변화를 이끌었다. 규칙보다 관계가 먼저였고, 그 관계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교사의 꺾이지 않는 교육적 신념이었다. 셋째, 디지털 시대의 집중력 붕괴다. 스마트폰과 숏츠 영상 때문에 학생들은 깊이 있는 학습을 어려워한다. 교실에서조차 5분 집중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그러나 집중력은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훈련되는 습관이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10분 몰입 학습’을 실험했다. 수업 중 짧은 시간이라도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반복했고, 학생들은 점차 10분을 20분으로 늘렸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다시 시도하는 자세였다. 이렇듯 꺾이지 않는 마음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다시 한번 해보자”는 반복적 선택이었다. 넷째, 진로 불안의 시대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미래 직업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흔히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때 교육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특정 직업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다. 직업은 바뀔 수 있지만 배움의 태도는 평생을 결정한다. 실패해도 다시 배우고, 넘어져도 다시 시도하는 회복탄력성 즉, 꺾이지 않는 마음은 결국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외에 마음을 키우는 일이다. 시험 점수는 한 학기면 잊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경험은 평생 남는다. 학생이 “나는 끝까지 해봤다”는 기억을 갖는 것, 그것이 교육의 가장 강력한 힘이라 할 것이다. 결국 교육혁신은 거대한 제도 개편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한 번 더 설명하려는 교사의 다정한 마음, 다시 풀어보려는 학생의 끈기 있는 마음, 그리고 그 과정을 기다려주는 학교의 인내심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의 해답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교육은 그 마음이 자라도록 포기하지 않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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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교육 단상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교육 단상 카페 구석, 처음 만난 아이가 매미를 봤다 한다. 짧은 속삭임, 엄마는 미소 짓는다. 수학, 외국어, 논술, 예체능ㅡ 노는 것조차 학원인 세상. 관심과 무관심 사이, 성공과 실패가 저울 위에 놓인다. 행복은 아이 마음 속 씨앗에 숨어 있다. 스스로 길을 찾아 품에 안고 물 한 모금 주면, 열매는 서서히 익어간다. 교육은 그 길목에 선 겸손한 농부. 아이 안에서 조용히, 답이 싹튼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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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사의 성장이 주는 교육적 함의(含意)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현재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성장’이라는 화두는 익숙하지만, 때로는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연수 점수를 채우고 새로운 에듀테크 기술을 익히는 것이 성장의 전부인 양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적 의미에서 교사의 성장은 외적인 스펙의 확장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내면을 재구성하는 ‘존재론적 변화’여야 한다.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그의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The Courage to Teach)』에서 "가르치는 일은 교사의 내면 상태를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설파했다. 즉, 교사가 성장을 멈추는 순간, 교실이라는 생태계는 정체되고 만다. 이 글에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교사상, 즉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사’의 교육적 함의를 세 가지 차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무지의 스승’이 건네는 겸손의 연대이다. 교육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무지한 스승(The Ignorant Schoolmaster)』을 통해 혁명적인 교육관을 제시한다. 스승이 모든 것을 알고 제자에게 전수하는 전통적인 ‘설명 모델’에서 벗어나, 스승 역시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와 겸손, 탐구의 여정에 나서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거울 신경망(Mirror Neurons)과 성장의 전파성이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에게 강력한 모방의 기제를 제공한다.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가 발견한 ‘거울 신경망’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의도와 감정까지도 모방한다고 한다. 교사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펼치고,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의 뇌는 ‘성장의 진수’를 학습할 것이다. 셋째, 관계 속에서의 재탄생하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다. 사회 학자인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I and Thou)』에서 “인간은 관계를 통해 비로소 존재한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이라는 '너'를 만나 교사라는 '나'가 새롭게 정립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경기도의 한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던 한 교사는 교실 속 갈등 상황에서 아이들의 거친 언행에 큰 상처를 입었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교사상에 머물렀다면 그는 징계와 훈육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의 반항 이면에 숨겨진 결핍과 불안을 마주하며 자신의 ‘내면 아이’를 대면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심리학 서적을 읽고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서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는 전문가로 성장했다. 아이들은 변화된 교사의 태도에 마음을 열었고, 교실은 치유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아이들의 도전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 교사가 보여주어야 할 회복탄력성이라 할 수 있다. 교사의 성장은 '완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행군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마주하는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 그 자체’이다. 가르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비워진 그 자리는 아이들이 전해주는 생동감과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시 채워진다. 이것은 비움으로써 다시 채워진다는 진리이기도 하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상호 간의 성장을 견인하는 '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교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교육의 미래이다.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가장 훌륭하고 멋있는 모습이다. 이는 교사에 따라서는 학생 지도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어른으로서 감동을 주면서 삶의 의미와 참가치를 보여주는 것과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으로 인해 중고등학생들이 연 10년을 넘게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를 굳건하게 지킨 근본 배경이고 핵심이라 믿는다.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로 인해 흔들리지만 이를 극복하며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사의 성장을 응원하고 격려를 보낸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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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내면에 충실한 음악, 그리고...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2025년 4월 현재, 세상은 참으로 혼란스럽고 거짓과 교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긍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황이며, 지구 온난화로 야기된 기후 변화가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위기 상황에 부딪히게 만들고 있으며,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가 병들고 있음을 이젠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있고 늦은 것이 아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발전하기도 했지만, 또 그로 인한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 또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AI가 많은 부분에 답을 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에 완벽한 정답은 없으며 여전히 인간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들이 훨씬 많다. 문화 예술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AI가 몇 초만에 그림도 뚝딱 그려내고 새로운 곡도 완성해 만들어 주지만, 그 안에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영혼은 아직 없다. 기술적으론 첨단이지만, 혼이 없는 예술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앞으로 인간이 고민해야 할 또 다른 질문 중에 하나다. 예술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없어질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마도 모든 시대,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세상이 지금처럼 첨단 과학화 되고 화려해지면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예전보다 더 많이 화려하게 연주하고,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화려함 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더 멋있어 보이고 심금을 울리게 만들기도 한다. 음악 연주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는 뭔가 화려하고 거창한 것이 더 멋져 보이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본이 중요하다는 걸 점차 깨달아 알아가서 더 그런 걸까? 클래식 음악 연주자 중에서도 가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한 것으로 유명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기술적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음악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쇼팽 음악에서 인위적인 과장 없이 곡의 낭만적인 정신을 전달하려고 애쓴 연주자이다. 그는 무대에서의 태도와 연주에서도 꾸밈없이 진솔함을 보여 주었고, 청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마치 응접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편안하고 온화한 태도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객과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기술적 완벽함을 넘어 감정을 전달하는 연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현재 음악가들이 단순히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것을 넘어, 곡의 내면적 의미를 강조하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루빈스타인은 ‘전문가’라는 말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보통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연주가 어느 부분을 빠르게 연주하는지, 또 어느 부분을 틀리게 연주했는지 그런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서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것보다는 청중과 교감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음악가라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89세라는 굉장히 늦은 나이까지 연주 활동을 하고 은퇴했는데, 은퇴한 이유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가 아니고 단지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악보 보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매번 연주 때마다 굵직하고 깊은 음색을 보여줬는데 그의 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쇼팽의 녹턴을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그의 음악과 함께 나의 음악도, 또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의 충만함도 기대해 본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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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평초 - ‘마주 잡을 손 하나’의 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부평초는 물 위를 떠다니며 자라는 개구리밥으로, 그 꽃말은 '떠돌이'와 '나그네'이다. 그 이름처럼, 떠돌이의 삶을 상징한다. 부평초는 구조적으로 단순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떠다니는 동안도 중요한 뿌리를 놓지 않는다. 부평초는 물 위에서 떠 있기 위해 엽상체라 불리는 특수한 기관을 발달시킨다. 이 기관은 공기 방을 통해 물에 뜨게 한다. 그럼에도,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뿌리는 중요하다. 부평초는 세력을 늘려가며, 그 유대감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존재들과 연결된다. 마치 사람들도 떠돌이처럼 생존하며, 유대감과 인정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부평초는 겨울이 오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겨울을 준비한다. 이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그 생존전략의 핵심은 ‘단순화’와 ‘기본적인 뿌리의 중요성’에 있다. 이것은 부평초의 생명력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 삶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부평초는 떠돌이 삶을 살지만, ‘마주 잡을 손 하나’만 있으면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 유대감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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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평초 - ‘마주 잡을 손 하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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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국가별 행복지수 56위 한국,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늘려 주자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3월 19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웰빙 연구센터와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국가별 행복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행복 점수 7.736점을 받은 핀란드였다. 8년 연속 가장 행복한 국가로 올라와 있다. 한국은 58위(6.038점)로 작년(52위)보다 6계단 떨어졌다. 높은 순위에 북유럽 국가들이 많다. 북유럽은 사회복지국가 체제로 경쟁적 자본주의보다 사회복지에 힘쓴 국가들이다. 연구진은 특히 배려와 나눔이 사람들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조사 결과 타인의 친절에 대한 믿음이 행복과 훨씬 더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타인과 자주 식사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누구와 친한지 알고 싶으면 그 학생이 학교 급식 시간에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지 보면 된다. 왕따 학생은 보면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계의 단절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식사를 어떻게 영양에 맞게 먹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대화를 하면서 먹느냐도 중요하다. 밥은 생존을 위한 사료의 의미만이 아니다. 식사에는 공감과 관계의 의미가 중첩한다. 행복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보다는 내면의 만족과 감사함에서 온다.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는 행복은 외부가 아닌 소박한 내면의 충족에서 온다고 했다. 행복은 경쟁에서 오지 않는다.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의 책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말살하는 심각한 인식인지를 비판하고 있다. 행복은 경쟁이 아닌 만족과 감사, 공감과 배려의 관계에서 온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낀 것은 코로나19 시대로 학교가 정상적인 등교를 못할 때였다. 당시에 지식은 원격수업으로 가능하지만 인성과 공동체 교육은 등교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의 존재이유가 바로 그 경험의 공유라는 것을 사회는 크게 깨달았었다. 벌써 그것을 모두 잊어버린 듯하다. 행복은 함께하는 것에서 온다. 함께하려면 배려하고 공감해야 한다. 배려와 공감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과정에서 온다. 학생의 행복을 위해 학교는 공유의 경험을 늘려야 한다. 서로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배려와 공감을 위해 학생들이 서로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토의, 토론, 동아리, 캠프, 상담, 친교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도시락 반찬을 나누어 먹고 학급 단위로 합창 연습을 하고 학원에 가기보다는 친구들과 운동과 놀이를 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라면을 먹었던 그 시절에는 행복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서로 함께여서일 것이다. 학교가 단지 지식을 위한 기관이라면 원격으로도 충분하다. 학교는 학생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 배우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기쁨을 느끼는 경험의 장을 최대한 많이 제공해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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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국가별 행복지수 56위 한국,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늘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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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땅빈대(비단풀) - 땅바닥이 천국이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최진규(약초학자) 님이 남미에서 어렵게 구해온 비단풀을, 결국 자신의 사무실 마당에서 발견하고는 탄식했다고 한다. 비단풀은 땅빈대라고도 불리며, 쇠비름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이름처럼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란다. 이 풀의 생즙을 상처에 바르면 신기하게도 곪지 않고 잘 낫는다. 내가 과일을 깎다가 손을 깊게 베었을 때, 비단풀을 짓찧어 붙였더니, 따가운 느낌이 잠시 들더니 피가 멈췄다. 비단풀은 사마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남미 사람들은 사마귀가 생기면 비단풀을 붙여,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귀가 떨어진다고 한다. 최진규 님에 따르면 비단풀은 항암작용이 뛰어난 식물 중 하나로, 특히 뇌종양, 골수암, 위암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거나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돋게 하고 기력을 늘려준다고 한다.(출처: 위키백과) 비단풀의 꽃말은 '집착', '가슴앓이', '희생적인 사랑'이다. 뿌리를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집착의 식물이지만, 암환자에게는 생명초가 된다. 한방에서도 ‘지금초’(지금처럼 땅에 펼쳐진 비단 같은 풀)라는 이름으로 약용된다. 땅빈대는 이름 그대로 땅바닥에 붙어 살아간다. 사람의 발에 밟히기 쉬운 고난의 땅에서 살지만, 그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단풀과 개미의 아름다운 공생은 신도 미소 짓게 만든다. 땅빈대를 보면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가 떠오른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세상의 모든 식물은 햇빛을 향해 자꾸만 뻗으려 한다. 하지만 땅빈대는 처음부터 땅에 엎드려 살아가기 때문에, 밟혀도 부러지지 않는다. 땅빈대는 햇살을 경쟁하지 않고 독점하며 살고, 꽃가루는 나비나 벌이 아닌 개미가 나른다. 꽃도 작고, 수술 하나, 암술 하나로 아주 간단하다. 가성비 최고의 잡초라 할 수 있다. 세상의 가치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땅빈대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에밀리 디킨슨의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를 보자.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 너도 - 역시 - 아무도 아니니? 그럼 우린 한 쌍이 되네! 말하지 마! 그들이 떠벌릴 거야 - 너도 알잖아! 정말 피곤해 누군가가 된다는 건! 유명한 사람이 된다는 건 개구리 같아 자기 이름 알리려고 기나긴 유월 내내 귀 기울여 듣는 늪에 울어대는! 디킨슨의 시는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회복력을 노래한다. 그녀의 「나는 아무도 아니다! 당신은 누구요?」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땅빈대처럼 겸손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기쁨과 단순한 생활 속에서 진정한 성장과 회복력이 나온다는 점을 말한다. 땅빈대의 생존 전략은 인간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키 큰 식물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과 달리, 땅빈대는 불필요한 경쟁 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 사회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에 맞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둘째, 단순함 속의 탄력성이다. 땅빈대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단순한 삶 속에서 우리는 강하고 유연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셋째, 겸손한 만족이다. 땅빈대의 꽃은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효율성에 중점을 둔다. 작은 행동이 더 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겸허함 속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과 성장만을 중요시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땅빈대처럼 회복력 있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조용하지만 심오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개성을 존중하고, 단순함을 신뢰하며, 내면의 회복력을 꽃피우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땅바닥이 천국이다. 땅빈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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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땅빈대(비단풀) - 땅바닥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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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주인 교육’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누구나 학창시절에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역경과 고비의 순간마다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경쟁 체제의 교육에서 그저 앞만 보고 걸어와 인지적 비교⋅판단능력이 염려가 될 때, 이 소설은 위로와 격려가 되며 삶의 힘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다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 믿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꼬박 사흘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상어 떼와도 거침없이 맞붙는다. 노인의 초인적 행동은 어부의 존엄을 갖춘 데서 나온다. 노인은 말한다. “난 될 수 있으면 돈을 빌리지 않고 싶구나. 처음엔 돈을 빌리지, 그러나 나중엔 구걸하게 되는 법이거든.” 도전과 고난의 바다는 같은 바다다. 그 바다 위에서 도전과 고난을 자신의 힘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다는 어머니처럼 품어주기도 한다. 수많은 물줄기가 산과 계곡에서 흘러 내려와 개울과 내를 이루고 강을 지나 드디어 바다에 이른다. 우리 인생의 과정이 이와 같다. 결국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드넓은 공간을 내주어 우리에게 무수한 보상을 베풀어 준다. 하지만 바다가 포효하고 거센 파도를 휘몰아칠 때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를 헤쳐 나가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청새치와 상어와 싸워 나가는 바로 그 힘과 용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금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운명을 개척할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최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등 집에서 쉬고 있는 청년 백수가 지난달 1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청년층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역시 1년 전보다 1만5천명 증가한 420만 9천명을 기록했다. 이 중 별다른 활동 없이 '그냥 쉬는' 청년은 50만4천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경제 성장의 둔화와 내수 부진, 제조업·건설업 불황, 기업들의 경력직·중고 신입 선호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백수'가 늘어난 것이다. 국가는 우선적으로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그들에게 잠재력과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입만 벌리고 하릴 없이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운명을 직접 찾아 나서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예컨대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귀농(귀어)을 하면 농산어촌 지자체 대부분은 상당한 비용을 지원하고 자립할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학벌 타파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모두가 가려는 길만이 정도(正道)는 아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려면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읽고 다양한 지혜를 쌓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목록1호여야 한다. 학창시절, 배움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 어려서 책을 읽는 습관은 평생 든든한 자산으로 기능한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어려서부터 책 읽는 좋은 버릇은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 길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멀리서 어렵게 그 비결을 찾지 말자. 이는 학교에서 배움에 열중하는 가운데 책과의 친화력이 주는 선물임을 잊지 말자. 교육의 역할은 자명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지향점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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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주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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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실질적 학교 교육 강화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현재는 민주국가와 자본주의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육계는 마치 허공에서 살기라도 하는 듯이 경제와 정치를 되도록 학생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국어, 영어, 수학만이 최고의 공부라고 생각하게 하고 있다. 입신양명은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근대국가로 오면서 학력은 국가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봉건사회와 산업사회를 지나서 이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민주시민과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세계화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와 살아가는 환경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유교적 출세주의나 산업화 성장주의가 아닌 선진국의 경제와 민주적 공동체를 지닌 환경으로 전환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시대이다. 세계는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자국의 이익과 자국의 국민의 이익을 강조하고 있다. 살기가 어려워진 결과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제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국민의 인식이다. 교육 현장에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교육은 수박 겉핥기로 보인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과를 나오지 못하면 기본적인 경제 개념조차 희박하다. 경제는 삶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생활에서는 정치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회비용과 경상수지, 디지털 화폐, 소비자신뢰지수, 유동성, 어닝쇼크, 공매도, ELS, 환차임, 모라토리엄, 매매계약에 대한 것을 많은 예시와 실질적인 토의와 토론으로 배워야 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정치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수업에 정당의 공약을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학생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우리는 그런 수업을 할 수 없다.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는 한국이 이룬 선진국 경제 수준과 동떨어진 꼴찌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교육에서 정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탓도 있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성장해서도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경제와 정치는 우리 일상과 밀접한 영역이다. 기준금리, 물가, 부동산, 환율, 무역에 따른 사회변화를 알아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와 ESG경영도 경제와 연관이 있다. 정치에 따라 새로운 사회 변화도 이루어진다. 우수한 몇 명의 결정만으로 국가 경제를 만들어가는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도 정치인 몇 명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국민이 주권의식을 가지고 경제대국, 민주국가를 올바르게 세워가려면 우선 교육에서 그 국민에게 올바르고 실질적인 경제교육과 정치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은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에 보여 준 모범적인 혁신 국가이다.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오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굳건한 국민 의식과 교양, 정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주체성을 지닌 국민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교육은 현실에서 유리될 수 없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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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실질적 학교 교육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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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2 개정교육과정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주어진 교과목과 교과 지식의 부적합성, 교과목과 교육 내용의 과다, 지속적인 개선 노력 부족 등으로 인해 정작 교육과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각 교과의 기득권에 밀려 새로운 교과 운영으로 완전하게 틀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역대 정부는 한때 교육과정 수시개정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생각과 실행의 괴리를 겪으며 흐지부지한 상태에 머무르면서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못했다. 그렇다면 결과가 이렇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과정 개편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교육과정위원회의 구성에서 해당 교과 관련 전문가와 교사가 융합을 이루기보다는 교과의 이기주의를 내세우기 급급했다. 둘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구성을 살리지 못했다. 셋째, 교과 내용의 과다로 창의적 인재 육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창의융합적 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 운영의 주요 장애물은 바로 교사가 교과 지식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어, 이를 활용하고 융합하는 교과서가 과다한 교과목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과정 개정이 기존의 틀을 시대에 합당하게 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일정 시점이 되면 해당 법이 자동 폐기되는 교과목과 교과 내용 일몰제의 적용이 요구된다. 현 제도가 촉발한 문제점은 현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먼저 교사는 각 교과의 핵심적 내용 간 상호 연계성, 학년 간 내용의 위계성을 이해하고 실천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통합된 시각을 가지고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는 교사가 수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창의성은 ‘모방의 모방’이라고 하듯이 기초 개념을 포함한 핵심 지식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이를 응용하는 교사의 역량이다. 또한 교사는 학생의 학습 개선을 돕는 평가, 학생 스스로 하는 성찰적 평가 등 과정중심 평가에도 교육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때 순간순간의 과정 이해 확인 및 총괄평가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핵심 지식의 인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교사는 학생들이 배움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탐구학습 및 협동학습에 기꺼이 참여하고 적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국가와 교육청은 교사가 이런 역량을 갖추도록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 전문학습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및 법정 교사 확충도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부 장관을 지낸 리처드 라일리는 “우리는 아직 발생하지고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 개발되지도 않은 기술을 사용하며, 아직 세상에 없는 직업을 준비하도록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준비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방증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창의력을 배양하기 위해 끈기와 인내력,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려는 집념 등 창의력의 토대가 되는 역량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 또한 창의적인 인재는 창의성이라는 필요조건과 따뜻한 인간애라는 충분조건을 갖추도록 교사로서의 고유 역할에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교사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방법으로 가능한 한 유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노자 성인의 가르침을 제언하고자 한다. “봄날의 새잎은 부드럽고 가을 나뭇잎은 딱딱하다.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고 굳어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다. 상대의 주장이 나와 다를 때 화가 치민다는 것은 내가 굳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모두가 같은 길로 나아가더라도 급류를 차고 튀어 오르는 연어처럼 한 번 거슬러 올라 역행하는 용기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이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교사가 갖추어야 할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역량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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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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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바랭이 - ‘마디’를 만드는 일, 인생 성공의 비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바랭이는 농부들을 가장 귀찮게 하는 풀이다. 어쩌면 농부의 한 해는 ‘바랭이와의 한 판 승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랭이는 잡초의 여왕이다. 바랭이는 땅 위를 기면서 줄기 밑 부분의 마디에서 새 뿌리가 나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간다. 그래서 옛날 우리 부모님들의 허리가 휘도록 밭을 매게 한 잡초가 바로 이 바랭이 풀이다. 줄기를 옆으로 뻗으면서 뿌리도 함께 내리니 미리 뽑지 못하면 결국 뽑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바랭이가 독하고 질기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이보다 더 독하고 질긴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독하고 억센 생명력과는 달리 바랭이는 단맛이 나는 풀이다. 그래서 소나 염소 등 초식동물들이 매우 좋아한다.(출처 : 뉴스서천(http://www.newssc.co.kr)) 대개 잡초의 생존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옆으로 퍼져가며 자신의 생활영역을 점점 늘려가는 진지확대형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 자라며 빛을 독점하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우위성을 도모하는 진지 강화형 전략이다. 바랭이는 여왕답게 이 두 가지의 전략을 다 쓴다. 즉 넓게 트인 곳에서는 줄기를 옆으로 가듯이 뻗어가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고, 라이벌의 작물이 있는 곳에서는 위로 뻗어가며 상대 누르기에 골몰한다. 이것이 바랭이의 생존전략이다.(출처 : 풀들의 전략) 그런데 바랭이의 생존전략 가운데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줄기의 마디다. 바랭이는 줄기 가운데에 반드시 마디를 만드는데, 이 마디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라면서 줄기 가운데 마디를 만들고, 거기로부터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뻗으면 뻗을수록 줄기 끝은 원뿌리로부터 멀어진다. 필요하면 마디에서 뿌리를 만들고 그곳을 통해 최전선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다. 이렇게 바랭이는 마디 뿌리를 이용하여 자꾸 줄기를 뻗어갈 수 있는 것이다. 멀리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갈 수 있다. 그래서 비바람이 거칠게 불어도 쓰러진다거나 꺾인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인간에게 베이거나 뽑히는 일이 있을 때도 바랭이는 괜찮다.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면 된다. 바랭이가 마디를 만들지 않았다면 잡초의 여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디! 인생도 마찬가지다. 긴 인생을 알차게 살려면 마디를 두어야 한다. 인생의 마디는 무엇일까? 그것은 돌, 입학식, 졸업식, 성년식, 결혼식 등 인생을 살면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마디는 휴식이다. 대나무는 외부의 충격에도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가있기 때문이다. 삶의 마디마다 축제를 벌여야 한다. 그러면 삶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축제가 없는 삶은 인간을 쉬 늙어버리게 만든다. 마디를 만들어 젊게 살자. 지속 가능한 삶은 마디가 있는 삶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고비를 만나게 되고. 그 고비를 넘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고비로부터 성장을 향한 재출발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마디를 만들어 고비가 될만한 행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각종 이벤트, 페스티벌, 축제, 기념일 따위다. 부질없는 일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날을 잘 챙기는 것이 결국은 성공의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기념일은 생의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1년은 12달이다. 1월에 세운 계획을 계획대로 행하지 못했을 때, 2월이 있다. 이런 식으로 각 달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된다. 인생에서 마디를 만든다는 것은 인생의 마라톤에서 완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히말라야산(8,848m)을 완등하기란 매우 힘들다. 전문등산가들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 1지점, 제 2지점하는 식으로 일정한 구간을 나누어 등정한다. 한번에 쉼없이 등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도 생각하기에 따라 히말라야산 만큼이나 길다. 바랭이는 베이거나 뽑히더라도 거기에 한 마디만 남아 있으면 거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역경을 넘는 바랭이의 비밀은 튼튼한 마디에 있다. 500~1,000페이지의 책을 앍으려면 책의 챕터별로 나누어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온종일 공부하는 일도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50분, 중학교는 45분 하는 식으로 수업 시간을 나누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온종일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마디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바랭이 풀에서 배워야 할 전략이다. 바랭이의 마디 뿌리는 안정성을 제공하여 멀리 퍼질 수 있고 바람이나 비와 같은 외부 힘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인생에서 이는 기반을 무너뜨리거나 잃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응 가능한 전략과 지원 지점을 갖는 것의 가치를 시사한다. 또한 마디는 여러 위치에 뿌리를 내리고 다양한 지점에서 자양분을 끌어낼 수 있는 미니 지원 시스템 역할을 한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멀리 나아가더라도 우리를 키우고 안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연결과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의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바랭이는 잘리거나 훼손되더라도 마디에서 다시 자란다. 이는 좌절에 직면했을 때 회복력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바랭이처럼 튼튼한 기초가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회복하고 새롭게 성장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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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바랭이 - ‘마디’를 만드는 일, 인생 성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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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비행기에 몇 개의 탁구공을 채워야 가득 찰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비행기 안에 탁구공이 얼마나 들어갈까요’라는 내용을 면접에서 질문받으면 얼마나 당황할까. 바로 구글 회사의 면접 질문이었다. 얼마 전 구글 한국지사에 다녀왔다. 창업자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정보검색을 찾았다고 했다. 구글은 2명을 시작으로 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정말 탁구공이 몇 개나 들어갈까. 답이 아닌 사고 과정을 보려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자면 먼저 어떤 비행기인지, 승객은 있는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자신의 판단만으로 비행기 내부를 자기가 상상해서 판단하고 계산해서 수만 개의 탁구공을 계산하여 답변하면 불통의 이미지만 줄 뿐이다. 세상살이에 정답이 있는가. 답이 없는 인생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지식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을 당해낼 수 없다. 호기심과 질문이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방식이다. 질문하고 성찰하는 인재가 더욱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질문을 해야 다양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판단을 하고 성찰을 해야 한다. 시키는 대로 우격다짐으로 빠른 답이라도 내놓은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인간의 역할은 답변하는 위치에서 질문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개인의 ‘질문 능력’을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을 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정답 찾기와 지식 암기의 기존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질문을 찾는 능력은 인공지능 시대 개인의 역량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능력을 키울 수 없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새로운 교육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왕성한 호기심과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능력이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핵심 능력이다. 차별과 혐오를 놀이로 삼는 학생들의 행동이 요즘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혐오를 ‘유머’나 ‘장난’으로 소비하는 현상이 여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벌어졌던 혐오 정치가 교실까지 확산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이나 사고보다는 남들이 하는 장난을 군중심리로 따라 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른 폐해는 심각하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24년 5월에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2023년 47위에서 15계단 하락한 62위였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를 평가하는데 '좋은 상황(Good Situation), 만족스러운 상황(Satisfactory Situation), 문제적 상황, 어려운 상황(Difficult Situation), 매우 심각한 상황(Very Serious Situation)' 등 5개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대한민국은 '문제적 상황(Problematic Situation)'에 속하고 있다. 질문하는 인간과 성찰하는 인간이 민주시민교육의 토대가 될 것이다. 시대는 인성과 창의성을 갖춘 성찰하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교육자는 이 혼란한 세상에도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사명이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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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비행기에 몇 개의 탁구공을 채워야 가득 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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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허용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학교는 학생을 교육하는 공간이다. 이는 실수나 잘못을 통해 학생 스스로 또는 교사를 통해 뭔가를 깨닫고 배우는 공간이 학교라는 의미다. 그런데 학교는 학생이 수업을 듣고, 받아쓰고, 반복해서 외우기를 제외한 뭔가를 하면 자꾸 제동을 당한다. 따라서 학교에 다닐수록 실수든, 잘못이든 뭔가 할 기회가 차단된다. 그뿐이랴. 만약 학생이 교사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했을 때는 심하게 야단을 맞거나 철저히 설득당하거나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독한 자기 검열을 반복하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때론 억울한 일을 당해 문제 제기라도 하면 ‘모난 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학생은 ‘학습된 비관’이 생기고 침묵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굴종적인 시민으로 훈련되는 것이다. 이는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의 목표와는 유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교는 ‘생활지도’라는 명분으로 이런 교육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실시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해도 보수성이 강하고 수구적 성향의 학교는 사회의 타 분야와 달리 변화의 속도가 대부분 늦은 편이다. 그런데 이조차 학교별,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이 이른바 그 학교의 전통적인 문화가 되고, 결과적으로 교사나 학생이나 사회적 불의와 부정을 보아도 무신경하게 되는 교육을 초래한다. 잠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모 중학교에서 시험 전 A교사는 교과 진도가 일찌감치 끝나 학생들에게 자습시간을 주었다. 그러자 B학생은 습관대로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A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해 압수했다. B학생은 다소 어안이 벙벙해 일단 쉬는 시간에 A교사의 오해를 풀며 사정해 보기로 작정했다. B학생은 A교사로부터 휴대폰 예절을 비롯해 ‘내 자습 시간에는 공부만 해야 한다’는 꾸중과 훈계를 받고 1~5일간의 압수 기간을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A교사는 자신의 담당 학급 복도 바닥을 청소시켰다. 이를 알게 된 담임교사 C는 성정이 여린 관계로 동료교사의 지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 결국 B학생은 A교사 학급의 복도 청소를 하고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이는 사건 자체가 매우 비상식적이고 비교육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학교 특유의 ‘칸막이 문화’로 인해 교사들 간에도 학생지도 방식에 큰 차이를 드러낸다. 이 사건 뿐만이 아니다. 교사에 따라서는 학급 학생이 자신의 지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 곧 바로 괘씸하다는 감정에 치우쳐 청소를 한 뒤에 10분~30분, 심지어는 그 이상의 시간을 학급 전체를 기다리게 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길들이기도 한다. 교사들은 이를 흔히 ‘생활지도’라 부르며 몇 번만 반복하면 학생들이 잘 따른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는 득보다 실이 크다. 당연히 학부모가 민원 제기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방과 후 계획에도 지장을 주는 연쇄적인 부정적 파급 효과를 유발한다. 그런데도 일부 학생들은 그런 담임의 행동을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수용을 하며 길들여지기를 감수한다. 이렇게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을 교육해 왔고 이에 대해 획기적인 개선 없이 오늘에 이르렀고 안타깝게도 지금도 교사에 따라서는 이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가혹 행위를 즐기는 ‘사디스트’로 비교육적인 것은 물론 비인간적이다. 다양한 생각 자체를 억압하고 특히 청소년들의 다양한 의견과 건전한 비판의식을 차단함으로써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목표를 크게 훼손한다.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 발생하는 일들은 학급회나 학생회에 안건으로 위임해 자체적으로 이를 성찰하고 협의에 의해 결정도록 허용하는 방식의 교육을 널리 견지해야 한다. 이것이 학교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보다 배움에 이르는 공간으로 다가서고 자체적인 협의와 공론화의 과정에 따라 학생 자치능력을 최대로 키우는 민주시민교육의 구현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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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허용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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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들 -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어릴 때 연못가에 가면 핫도그가 땅에 박혀 있는 모습의 식물을 본 적이 있다. 그냥 뽑아서 먹어도 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자라서 보니 그게 부들이라는 식물이었다. 꽃가루받이를 할 때 부들부들 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국의 어떤 사람이 부들 줄기를 먹었는데 식감이 젖은 마분지를 씹어먹는 것 같다고 했다. 부들은 갈대와 함께 하천의 수질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주요 식물이기도 하다. 군락을 이루는 습지식물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물을 여과하고 흐름도 조절해 준다. 또한 부들 군락은 하천에 사는 수많은 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꽃말은 '거만'. 서양에서는 꽃이삭이 고양이 꼬리처럼 보여서 그런 꽃말이 생겼나 보다. 꼿꼿한 꽃대가 거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라 붙여진 꽃말일지 싶다.(출처: 생생비즈 https://www.livebiz.today) 『시경』 「진풍(陳風)」 제10편 택피 3장(澤陂三章)에 아름다운 부들과 연꽃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가 있다. 연못가 저 언덕에 부들 연꽃 한창이네 멋있는 저 사나이 훤칠하고 근엄해서 자나 깨나 하릴없이 뒤척이며 지셉니다 ‘저 연못가 언덕에 피어 있는 부들과 연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여, 너로 하여금 내가 속상하고 병 된들 어떠하리오, 자나 깨나 네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물 콧물만 줄줄 흐르는구나.’로 해석된다. 부들을 남성에, 연꽃을 여성에 비유하며 조화롭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들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가에서 한 여인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를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부들의 잎과 줄기의 생김새가 호탕한 성격을 갖고 있어 남성적이고, 연꽃의 꽃잎은 여성스럽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가까이 있으면 좋을텐데, 나는 홀로 있으니 눈물만 흐른다고 그리운 마음을 호소하고 있는 시다. 그 옛날에도 문학적인 소재로 부들이 쓰였다는 방증이다. 부들은 ‘여우의 촛불’로도 부른다. 부들 이삭에 알코올이나 석유 같은 걸 충분히 적셔서 불을 붙여보면 마치 촛불과 같은 예쁜 불꽃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들은 수술과 암술이 너무 가까워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묻기 쉽다. 그래서 수꽃이 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암꽃을 피우게 된다. 또한 부들은 풍매화이기 때문에 부들 씨앗의 아래에는 부들의 이삭털이라 하는 흰 털이 붙어있다. 마침내 때가 되면 이삭 안으로부터 부들 씨앗이 솟아오르듯 나타나 흰색의 이삭털을 이용하여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간다. 부들 이삭 하나에는 씨앗이 대략 35만 개 이상 들어있다. 작은 이삭 하나 속에서 35만 개 이상의 생명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삭 하나에 35만 개의 꽃이 모여 피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래서 부들은 단순한 구조와 크기도 서로 양보하는 것처럼 작게 만들고 있다. 35만 개의 꽃이 모여서 틈 하나 없는 이삭 하나를 이루고 있다. 힘을 모은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구에 살고 있는 65억 인류에게 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어떻게 65억 인류가 하나로 모아질까? 흔히 우리는 하루를 낮과 밤으로 경계 짓는다. 낮은 가시성과 더불어 좋은 것으로, 밤은 어둠과 함께 나쁜 것으로 관계지어 서로 반대쪽에 놓는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하루는 태양을 기준으로 한 지구의 자전의 두 측면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실제는 하나를 가지고 둘로 나누어 경계 짓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즐거움과 고통, 성공과 실패, 선과 악에 대해 언어로 경계 짓고 한쪽의 삶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스트레스와 불만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이원성의 한 면에 집착하면서 다른 면을 거부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계곡 없는 산을 가지려 하는 것과 닮았다. 악 없는 선, 고통 없는 쾌락, 실패 없는 성공은 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해안선을 보라. 그 경계 안에는 바닷물과 모래가 뒤섞여 있다. 경계는 언어가 만들어낸 마법의 환상에 불과하다. 극과 극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불화는 조화로 사라지고, 투쟁은 춤으로 변하며, 오랜 적들은 연인이 된다. 우리는 언어가 준 마법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무한한 자유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실재하는 세상은 무경계다. 경계는 언어가 준 마법의 환상이다. 실제 위에 덧씌운 경계 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면 인류는 하나가 된다. 이진경이 『노마디즘2』에서 말했다. “모든 사람의 적은 자아(自我)다.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라고.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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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들 -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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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기다림의 시간들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연주를 하러 다니다 보면 참으로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어떤 곡을 연주하는 시간보다도 어떨 땐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으니 나의 삶에서 기다림이란 음악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크게는 연주하는 장소까지 오고 갈 때의 기다림, 연주 순서를 기다릴 때의 기다림, 세부적으로 들어가 본다면 연주하는 순간순간에도 악장과 악장 사이의 기다림, 쉬는 부분이 나올 때, 그리고 나의 악기가 다시 나오는 부분을 연주할 때까지의 작은 기다림까지. 삶이 기다림의 연속이다. 굳이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림에 쓰고 있을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린다던가, 로또에 당첨될 날을 기다릴 수도 있고 자신이 목표한 소망이 이뤄질 날을 기다리기도 하고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음악사에서도 보면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곡들도 있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수정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곡들도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세상의 빛을 미처 보지 못하는 곡들도 있다.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도 우리가 아는 7곡은 있지만 나머지 한 곡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향곡의 작곡가로 알려질 만큼 그의 7개의 교향곡은 훌륭하며, 그 자신도 교향곡은 인생의 각 단계에 대한 신앙고백과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8번째 교향곡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대단했던 것 같다. 마지막 교향곡 7번도 작품의 구상부터 완성까지 거의 8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걸 보면 역시 예술작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어쨌든 7번째 교향곡을 완성한 것이 그의 나이 59세 때인데 그 이후로 91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신곡을 세상에 내놓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낄 만큼 예민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8번째 교향곡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오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작곡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아 스스로 벽난로에 던져 태워버렸다고 한다. 시벨리우스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이전의 곡들보다 더 나은 곡들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삶도 오래 준비하고 시도하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긴 기다림에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기다림이라는 오랜 시간이 반드시 해피 앤딩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 보다. 사람들은 기다림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을 것이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기다림에 조급함을 가지기도 하며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급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다림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을 통해 인내심을 배우고, 사색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때로는 희망을 동반하기도 하지 않던가. 결국은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와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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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기다림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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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애국과 인간 존엄 교육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일반적으로 위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애국을 거론할 때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삶을 증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른바 가면을 쓰고 둔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제로는 국가를 해치는 매국의 속성이 배어 있다. 왜냐면 뒤에서는 자신과 집단의 이익과 권력을 철저히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민 전체를 폄훼하고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위정자들이 국민을 그저 ‘혜택 받는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구가한 수법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고통과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분투는 은폐되고 개인은 말없이 희생되기 마련이다. 이런 애국은 충성과 당위만을 강요하고 국민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정자들이 망치는 나라를 국민이 되찾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그 이면에 자기 삶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굳게 내재한다. 개인의 존엄은 누구도 뺏을 수 없고 함부로 폄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제 1조 1항이다. 여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제10조에 대해 의무를 진다. 결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춧돌인 것이다. 우리의 뿌리는 이 땅에서 일군 고단한 국민으로서의 삶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위정자가 규정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도 우리 전체를 결코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국민 개개인의 삶을, 서로를, 지극히 존중해야 한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일갈했다. 누구에게는 더러웠는지 모르지만 고단했던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대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을 전통과 역사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 삶 자체는 한없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고개 숙이거나 지배당할 수는 없다. 이 땅에서 우리 개개인이 살아 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존중받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 왜 위정자와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진흙탕에 빠져 험난한 탈출을 구가하고, 가슴앓이하며 절망 속에서 한숨을 쉬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추어 저 멀리 남미와 아프리카 국민들처럼 퇴락한 국가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것도 부족해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며 살아야 하나? 인간 개개인의 존엄을 어디서 다시 찾아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하루하루 평온하고 안정된 호흡을 하며 살 수가 없다. 대통령부터 자국민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싹 다 정리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과 더불어 평화스럽게, 상호 존중을 하면서 존엄한 인간답게 살 수는 없는가? 왜 이렇게 국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애국을 주장하면서, 나라를 매국으로 몰고 가는가? 인간에 대한 존엄 의식이 없고, 인간을 최고의 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출세와 성공, 권력 지향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이 배출한 최고의 엘리트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 사람이 그 모양인가? 일치와 사랑을 말하는 많은 종교인들조차 등을 돌리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우리의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의 핵심이다. 세상이 불만족스러울 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느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국민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개인은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에 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인간 존엄 교육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 추구하는 행복이고 인간의 권리다. 가면의 탈을 쓰고 애국을 강요하는 나라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나라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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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애국과 인간 존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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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바람개비와 산삼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축제를 하는 곳이나 관광지에 가면 바람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람개비는 자기 의지로 혼자 돌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돌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서 있다. 길가에 죽 늘어서서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바람개비의 삶에 고민은 없다. 그저 바람에 따라 자신의 몸을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고장이 나는 순간까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람개비의 숙명이다. 바람개비의 삶은 기계적 삶이고 순종적인 삶이고 사색 없는 삶이다.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일면 부지런하게 보이지만 바람개비의 삶에서 진실함을 느끼기는 힘들다. 신나게 도는 바람개비는 단지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고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바람이 그치면 바람개비는 혼자 돌지 못하고 돌고 싶은 의지도 없어 보인다. 다만 축제를 위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바람개비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고민도 생각 없는 편안한 삶. 월급이라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삶. 그런 사람은 주어진 일만 하면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바람이 역풍이든 순풍이든 그저 돌기만 하면 된다. 기계와 같다. 폐기가 될 때까지 그저 바람에 순응하며 살다가 낡아지면 폐기된다.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지만 자신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축제장의 바람개비들은 빛깔이 원색으로 화려하다. 그 화려함이 내면의 허전함을 더욱 커 보이게 한다. 산삼은 새가 삼의 씨앗을 먹고 날아가다가 떨어진 씨앗에서 자연 발아한 삼이다. 씨앗이 습하고 적절한 곳에 떨어지는 확률은 매우 적다. 그러한 곳에 떨어졌어도 혼자서 곰팡이균과 수분과 햇빛과 많은 위험을 오롯이 오랜 기간 견뎌야 한다. 인삼은 온전히 인간의 재배로 밭에서 키워진 것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간다. 장뇌삼은 인삼을 산에 옮겨서 심어 키우거나 인삼의 씨를 산에 뿌려 키운 인삼을 통칭한다. 다시 말해 사람 손으로 산에서 재배한 인삼을 말한다. 결국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산삼과 다르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고난이 산삼의 향을 짙게 하듯이 인간에게도 고난은 깊은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는 모든 것이 자동화하고 편리한 것을 우선한다. 그러한 시대의 양상이 인삼이나 바람개비 같은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공장에서 물품이 나오듯이 쉽고 값싸고 보람이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만들어 낸다. 인간에게 도전과 고난과 역경은 깊고 성숙한 인품의 바탕이 된다. 살면서 어려움을 피하고 쉽게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공허함과 허무함만 느끼게 된다. 산삼은 자라는 속도가 인삼보다 훨씬 느리다. 산삼은 인삼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인삼은 빠르게 자라고 크고 굵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쉽게 인간을 맞춤형으로 재배하려는 인식이 몰려오고 있다. 바람개비의 인생을 살 것인가. 산삼의 인생을 살 것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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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바람개비와 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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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칡 - 정작 칡은 갈등하지 않는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를 보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탈출하고 싶은 바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자리가 행복을 가져온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해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가 된다. 칡은 낮잠을 자는 식물로 상당히 게으른 풀이다. 빛이 너무 강하면 광합성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칡은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잎을 세워 지나치게 강한 햇살을 피한다. 또한 밤이 되도 광합성을 할 수 없다. 잠을 자면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입바늘’이라 하는 구조를 잎의 아랫부분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 높게 햇빛을 받아들인다. 칡꽃의 꽃말은 ‘사랑의 한숨’이다. 꽃말답게 산이든 들이든 정원이든 일단 칡에 잡히면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칡의 열매는 산속 굶주린 새들의 먹이가 되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 칡은 대단히 빨리 자라는 잡초다. 나무도 타고 나무를 탈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칡은 바로 땅 위로 줄기를 뻗어간다. 세상의 나무들이나 잡초들이 하늘로만 곧게 자랄 생각만 한다. 그래서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긴다. 칡은 생각을 바꾼다. 위로 올라갈 수 없으면 땅을 본다. 곧장 땅 위로 줄기를 뻗는다. 2022년 방송(tvN 토일 드라마)되었던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옛 애인이었던 동석(이병헌 역)을 찾아 제주에 왔다가 떠나는 장면에서, 동석은 자기처럼 후회하지 말고, 나중이 아닌 현재를 바라보라며 선아(신민아 역)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준다. “아버지 배 타다 죽고, 동희 누나는 물질하다 죽고, 엄마는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저기 떡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버지, 동희 누나, 죽은 바다도 안 볼 수 있는데...” 하며, 앞만 바라보는 선아에게 뒤를 보면 선아 편인 자신도 있다며 조언해 준다.(우리들의 블루스 10회) 우리는 삶을 살면서 수많은 갈등을 한다. 그런 갈등에 함몰되면 삶 자체가 망가진다. 그럴 때는 고개를 돌려 뒤를, 옆을, 아래를 바라보라. 거기엔 갈등이 없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의 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삶에서 갈등이 없으면 삶 자체가 맹맹하다. 싱겁다. 그래서 소설에도 갈등 구조가 있지 않은가.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춘향이와 이몽룡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다 죽었다”라고 한다면 누가 『춘향전』을 읽겠는가. 칡과 등나무의 갈등이 아무리 심해도 해소할 방법이 있다고 한다. 두 덩굴을 조금 느슨하게 감아 올라가게 해놓으면, 갈등을 해결하고 사이좋게 공생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이런 방법이 없는지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갈등 속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잃지 말자.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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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칡 - 정작 칡은 갈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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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원 감축은 교육개혁 의지의 실종과 같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5년 새 학년을 앞두고 17개 시⋅도 교원 정기 인사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교육개혁’을 부르짖는 정부의 개혁 의지는 있기나 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인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정부의 조치가 반복되고 있다. 차라리 교육개혁이란 말을 하지나 말지, 하는 아쉬움과 절망감이 압도한다. 이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당연히 줄여야 한다.’는 단순 사고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이처럼 간단한 것이라면 누가 교육문제와 교육개혁을 언급하겠는가? 최근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올해 초중등교원의 정원이 3000명 가까이 줄어든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월 3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교육행정기관 및 각급 공립학교에 두는 국가공무원 정원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교원정원 감축은 2022년 1,089명, 2023년 3,401명, 2024년 4,296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올해 역시 2998명 감원이다. 교원 정원 산정 기준을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하'로 설정할 때 지난해 학급당 학생수가 21명 이상인 초·중·고(일반고) 학급은 전체의 71.7%에 달하며, 26명 이상인 학급도 32.1%에 이른다. 이런 교원의 정원 감축은 교육부가 아닌 기획재정부 및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물론 교육부의 자료를 근거로 하겠지만 실질적인 담당 부서에서 초중고 학교 현장에 대해 느끼는 인식과 현실 감각은 크게 다를 것으로 본다. 이는 언뜻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만 보이는 각종 수치와 예산에만 집중해 탁상공론식으로 짜 맞춘 것이라 믿기에 여기에 과연 개혁이란 국가적 대과업에 대해 접근하는 자세와 태도, 즉 영혼이 없는 좀비의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정치는 생물’과 같다고 말한다. 이는 교육에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교육이 단지 숫자 놀음이나 퍼즐 맞추기와 같은 즐기는 게임이라면 누가 교육을 국가백년대계라 말하고 교사에게 사도(師道)를 요구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사랑과 봉사, 헌신을 말하겠는가? 우리는 만만한 천연자원조차 하나 없는 자연적 환경에서 오직 인재 육성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만큼 사는 것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것도 ‘교육의 힘’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요즘은 전국에 걸쳐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이는 거두절미하고 우리의 학교 환경에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 특히나 유능한 2030 MZ 세대들이 처우 및 교권에 대한 불만으로 교단을 등지고 있다. 또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일당백의 중견교사들도 악화된 ‘교권추락’과 ‘교사 때리기’에 절망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그 자리를 비정규직(기간제 15.4%) 충원이 학교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학년 내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교과에 따라서는 한 학년에 정규직이 한 명도 없이 전원 기간제로 채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 학교들의 민낯이다. 대도시의 과밀학급(학생 수 28명 이상), 과대학교(학년 당 12학급 이상)는 여전하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서울만 해도 13.2명이지만 강남구와 서초구는 각각 14.7명, 15.0명이다. 잠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덩치가 큰 학생들 32~34명이 가득 찬 교실을 상상해 보라. 거기엔 숨조차 쉴 공간의 여유가 없다. 그뿐이랴. 학생 식당이 없어 먼지가 풀풀거리는 교실에서 중식 배식을 하는 학교도 많다. 그 속에서 담임교사들은 제 때에 식사도 못하고 중식지도를 한다. 가장 중요한 교육 문제는 학생들이 교사와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하교를 하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많은 학생들에 비해 교사 수가 적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사례지만 교사의 부족으로 교육의 질 저하는 심각한 상태다. 고민이 많은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에게 개별적인 따뜻한 상담 기회조차 제공할 수 없다. ‘콩나물 교실’에 교사가 부족한 서울 등의 대도시 학교들은 개인별 맞춤식 교육은 먼 나라 얘기다. 단지 숫자 맞추기로 교원 감축을 함으로써 교육개혁의 의지가 상실한 것에 우려가 크다. 학령인구 감소보다 교사 정원 감축 속도가 더 빠른 현실에서 부디 법정 교원 정원만이라도 채우는 교육개혁을 속히 실행해 안정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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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원 감축은 교육개혁 의지의 실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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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달맞이꽃 -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밤의 촛불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이해인 수녀님의 「달맞이꽃」을 보자. 당신은 아시는지요? 달님 당신의 밝은 빛 남김 없이 내 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렇게 엷은 옷을 입었습니다 해질녘에야 조심스레 문을 여는 나의 길고 긴 침묵은 그대로 나의 노래인 것을, 달님 맑고 온유한 당신의 그 빛을 마시고 싶어 당신의 빛깔로 입었습니다 끝없이 차고 기우는 당신의 모습 따라 졌다가 다시 피는 나의 기다림을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 이해인, 『시간의 얼굴』(분도출판사, 1989) 당신은 하루 중에 낮이 좋은가? 밤이 좋은가? 위 시를 읽고 있으면 밤이 낮보다 좋을 것이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1996년에 발표된 ‘배영준’ 작사 작곡의 곡으로, 발매 이후 지금까지 오랜 사랑을 받아온 곡이다. 최근에는 뉴진스가 리메이크해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밤은 사랑을 위한 시간이다. 아름다운 밤을 만드는데 달맞이꽃도 한몫을 한다. 밤에만 꽃을 피운다고 하여 달맞이꽃이라 한다. 어둠 속에서 산뜻한 느낌이 드는 노란색 꽃을 피운다. ‘밤의 촛불’이란 독일 이름 그대로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말 없는 사랑, 밤의 요정’이다. 기다림은 애달프고 아름다운 일이다. 달맞이꽃은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일제히 꽃을 피운다. 마치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오면 활동을 개시하는 좀비처럼. 달맞이꽃의 생존전략은 경쟁을 피하는 데 있다. 낮의 격렬한 경쟁을 피해 큰달맞이꽃은 경쟁 상대가 적은 밤에 꽃을 피우는 길을 택했다. 밤은 벌레의 수도 적지만 경쟁이 되는 꽃도 적기 때문에 벌레를 독점할 수 있다. 진한 포도주 향기로 참새나방을 유혹하여 꽃가루를 옮기는 전략이다. 꽃가루는 끈기 있는 실로 이어져 꽃가루가 실처럼 이어서 딸려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기다린만큼 그리움은 깊어지고 그 뒤를 잇는 이별이 꼭 이런 느낌이리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노랗게 핀 꽃을 보고 있노라면 꽃이 하나의 인격체 같다. 높은 인품과 기품을 함께 지니고 있는 선비같은 꽃이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의 길을 홀로 꿋꿋이 가는 모습을 본다. 기다린다는 것은 수동적인 행동이다. 불안한 감정에 빠져드는 일도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품 있게 기다리고 있으면 그것이 비록 작은 풀 한 그루에 지나지 않더라도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감을 뿜뿜 내비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큰달맞이꽃과 같은 인물은 탱크맨이다. 탱크맨은 흔히 무명의 시위자로 부르는, 1989년 6월 5일 중국에서 일어난 톈안먼 사건 직후 천안문 광장 방면에 있는 거리에서 전차의 앞길을 가로막는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천안문 광장에 전차 18대가 행진하던 도중, 맨 앞에 있던 전차가 그를 피해 전진하려고 하나 계속 전진을 막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당시 영국의 언론 선데이 타임스에서는 19세였던 왕웨이린(王維林)이라고 보도했고, 본명이 장웨이민(張為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출처: 위키백과)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 당시 육군 수도경비사령관(소장 계급)이었던 장태완 장군이 그러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황정민 분)과 유일하게 맞섰던 장태완(정우성 분)의 모습이 큰달맞이꽃에 어른거린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들의 어둠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품 있는 정의로운 행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범이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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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권력과 폭력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강도가 든 총은 무서운데 경찰이 들고 있는 총은 왜 무섭지 않은가? 폭력의 시대를 걱정했던 바가 있다. 편협한 편가르기와 알고리즘에 의한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싹틀 때부터 그 조짐은 보여왔다. 상대방의 폭력은 민주주의 파괴이지만 자신들의 폭력은 방어권이라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충고합니다. 친구들이여 벌하고자 하는 충동이 강한 사람들을 모두 불신하십시오.’ 이 문장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니체는 처벌 욕구가 강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욕망이 있으며 이는 정의를 이루기보다 오히려 불의와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선진국에 들어서던 한국에게 고소와 고발을 남발하는 정치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이다.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와 사회가 주는 교육이야말로 실제적인 산교육이다. 다른 존재를 포용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보완의 대상이어야 한다. 화엄경의 핵심도 다른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갈등이 있다고 다른 쪽을 제거하면 세상은 무너진다. 공멸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항상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고 후유증도 깊었다. J.M.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라는 소설에서는 인간성과 권력의 대립을 통해 폭력의 본질과 권력의 잔혹함을 말하고 있다. 쿳시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두려움과 편견을 통해 만들어내는 ‘적’이 얼마나 허상적이며 폭력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이념이 만들어내는 사랑은 고귀하게 보이지만 거기에는 반성과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위험한 사랑이다. 거짓 권력의 정신에는 사랑이 없다. 욕망만 있을 뿐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가 1990년 펴낸 『권력이동』에서는 농업사회(제1물결)에서 산업사회(제2물결), 정보사회(제3물결)로 옮겨가면서 권력이 이동하는 현상을 탐구했다. 사회를 통제하는 힘은 물리력과 부에서 지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법에 의한 판단이 권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국가 권력은 국민 구성원의 합의된 약속이며 곧 국가 권력은 법의 형태로 발현되고 국가 권력자는 이 법을 실행하는 자이다. 이를 법치주의라고 한다. 서로를 견제하고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의 지혜이다. 이미 오랜 기간을 통해 검증된 방법이다.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진 것도 그 방법이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길이다. 쉬운 폭력의 길이 아닌 어렵더라도 사람다운 길을 가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각은 결국 전 세계를 장님으로 만들 뿐이다.’ 이 말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우리가 문명사회로 오면서 쌓아온 것은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갈등의 협상이다. 그것이 폭력이었다면 가장 쉬운 야만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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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양심 교육’에 보다 집중해야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옛적에 우리는 ‘양심에 털 난 놈’, ‘양심과 엿 바꿔 먹은 놈’ 등 양심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곤 했다. 또한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는 말로 정직하게 살 것을 권유함으로써 양심적인 행동을 강조했다. 최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올해 첫 자신의 저서인 「양심」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양심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양심을 “마음 속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그것”으로 규정하고 본인이 직접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여러 일화들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필자는 본고에서 우리가 왜 학교에서 ‘양심 교육’이 필요한가를 밝히고자 한다. 다시 최 교수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 ‘얼어 죽을 양심’이라 말하며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겪을만한 온갖 탄압을 다 겪었으며 때로는 전국 곳곳에서 쉬지 않고 걸려 오는 전화로 수없이 쌍욕을 들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다행히 감옥살이는 피했지만, 계좌 추적, 세무조사, 연구비 박탈 등을 감내해야만 했다고도 밝혔다. 이처럼 양심은 말처럼 쉽지 않으며 특히 양심에 근거한 행동이 불러오는 결과는 이해타산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극과 극의 뒷감당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맹자 성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을 구분하여 4단으로 언급했다. 이는 곧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과, 타인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갖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인간의 옳지 못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그리고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이 그것이다. 성인은 이런 4가지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님을 주장했다. 왜냐면 모두가 그 바탕에 인간으로서의 최소의 양심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성선설의 효시(嚆矢)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양심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은 사회에서 언어가 사라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단어의 쓰임새가 아예 없어졌거나 또 하나는 다른 단어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서두의 최 교수가 양심을 대체할 단어를 억지로 찾아낸 게 ‘쪽팔리다’였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양심을 강조하고 나선 데는 '공평+양심=공정'이란 등식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던 것으로 올라간다. 즉, 양심을 빼고는 공정을 얘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양심을 말하는 사회로 되돌려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의 양심 회복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의 단편적인 교육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어느 부모는 자신의 딸이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와 손을 잡고 내려온 후에 즉시 딸의 손을 떼어낸 뒤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깊이 성찰을 요하는 대표적 사례다. 양심, 말로는 쉽지만 행동은 참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한 양심적인 행동을 보다 습관화하고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현실은 철저하게 개인 기준으로 양심을 저버려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다 속여도 딱 하나는 속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양심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못 속여서 불편해하다가, 시차를 두고 올바른 선택, 올바른 행동으로 복귀하지 않는가? 이는 양심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기반이자 주춧돌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나 잘 해!’라고 말하며 학생들의 모든 것을 무조건 감싸고 도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자란 엘리트들은 독불장군이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불통과 고집, 오만과 무능, 무도의 인간으로 이 사회에 배출되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패권주의, 맹목적인 권력추구는 오직 성공과 출세의 교육 가치에만 몰입되어 한 치의 양심 교육조차 부재가 가져온 결과물임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누가 이를 감히 부정할 것인가?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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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양심 교육’에 보다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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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클로버(토끼풀) - 순간순간 몰입하라. 그것이 행복이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신순금님의 「세 잎 클로버」라는 시를 보자. 사람도 무리를 지어 산다. 처음에는 반가웠으나 곰곰이 살펴보니 낯익은 눈빛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라고 불 지른 잔디밭 한구석 빌려 뜻밖의 불길에 휩싸이던 계절을 버티고 돋았으니 네 잎이어도 세 잎이어도 그만하면 누군가의 마음에 진하게 남겠다. 돌연변이에 관심이 쏠려 주위는 돌아보지 않는 어떤 발자국이나 어떤 손길이 행운도 불행도 한 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새파랗게 흔들리는 우린 그저 그런 풀이다. 소나기가 지나고 쌍무지개 한 장 올려놓은 한 여름 오후를 찬찬히 바라본다. 들판이나 초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로버(토끼풀) 꽃은 단순한 꽃 그 이상을 상징한다. 클로버 꽃은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한 송이 꽃을 이루고 있다. 즉 흰색의 클로버 꽃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과거에 핀 꽃, 현재 피어있는 꽃, 앞으로 필 꽃이 순서에 따라 피워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오랜 기간 벌레들을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이 점진적인 과정은 타이밍과 끈기가 핵심인 인생에서 기회가 천천히 펼쳐지는 것을 상징한다. 이 점진적인 과정은 『주역』의 53괘인 풍산점괘와 유사하고, 들레즈가 말한 차이와 반복이다. 또한 베르그송의 약진력이다. 그 약진력이 창조적 진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추구한다. 행복한 인생은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은 행운이다. 행복이 아니다. 이 꽃은 곤충들이 꽃에 앉으며 뒷발로 꽃잎을 내리누르면 꿀이 있는 곳으로 난 입구가 열리게 돼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꽃잎을 내리누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진 곤충만이 클로버 꽃의 꿀을 맛볼 수 있다. 꽉 막힌 인생에서도 벽(壁)이 문(門)이라는 생각을 하는 지혜로운 자에게 인생의 보물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클로버의 꽃말은 잎의 수에 따라 다른데 세 잎은 행복, 네 잎은 행운, 다섯 잎은 대박, 여섯 잎은 건강이나 기적, 일곱 잎은 무한한 행복을 뜻한다. 그런데 네 잎 클로버가 생기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생장점이 상처를 입는 데 있다고 한다. 네 잎 클로버는 사람에게 자주 밟히는 곳에 많이 난다. 그래서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회복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클로버의 성장과 발밑 생존은 진정한 행복과 성취가 종종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안전한 곳이 아닌 투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런 생각은 기쁨과 성취가 종종 지속적인 도전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다. 클로버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행복은 보호된 정원이 아니라 삶이 압력을 가하는 곳에서 자란다. 회복력은 어려움을 견디고 성공하는 열쇠다. 클로버 꽃의 보잘것없는 세 개의 꽃잎은 인간 경험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네 잎의 행운의 클로버를 찾으려다가 세 잎의 행복의 클로버를 짓밟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행복이 우리 주변에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에 대해 이미 많은 철학자들이 해답을 제시했다. 행복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 양과 질이 증가하는 과정이 계속될 때 얻어진다고 한다. 고정된 고소득보다 소득이 증가하는 상태가 더 큰 행복감을 준다는 말이다.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소설에서 안진진의 이모가 너무나 행복한 일상에 지쳐 자살한다. 행복의 추구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그 권리를 누리려면 스스로의 변화를 먼저 주도해야 한다. 당신 스스로 뿌듯하여질 수 있는 주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 행복은 순간 기억이다. 순간을 붙잡아라. 괴테도 『파우스트』에서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빌려 “순간아, 멈추어라. 너 참으로 아름답구나.”라고 했다. 순간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몰입해야 한다. 행복은 순간을 붙잡는 것이고, 그 순간은 자신이 몰입할 때 찾아오고, 찾아온 그 순간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니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행복은 세 잎 클로버처럼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그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많은 일 중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행복은 그것을 찾는 사람에게 신이 주는 선물이다. 순간순간 몰입하라. 그것이 행복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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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클로버(토끼풀) - 순간순간 몰입하라. 그것이 행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