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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제의 목요칼럼] 정서와 교감이 가득한 학교를 위하여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벽제 승화원에 다녀왔다. 형수가 졸지에 돌아가셨다. 장례지도사가 손가락 길이의 쇠막대 3개를 들어 보였다.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면서 몸속에 넣었던 쇠였다. 허리가 안 좋은 줄만 알았지 쇠막대의 존재는 몰랐다. 수분을 모두 말려버린 유골 가루 봉투는 작았다. 한약 한 첩 크기보다 약간 큰 크기였다. 자그마한 향나무 밑에 묻었다. 형수는 치매가 온 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었다. 요리 솜씨가 좋았던 형수는 우리 아들, 딸에게 돼지갈비와 곱창구이를 맛나게 손수 만들어 주셨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주민등록 사진을 확대했다는 영정사진은 왠지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 줌의 재와 뼛가루로 남는 실상을 목도하면 인생이 참으로 무상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형은 어깨를 들썩이며 미안하고 고맙다며 울었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는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살아 있을 때는 생명체이기에 욕심이 있고 자존감이 있기에 부딪치고 고집을 세운다. 갈등과 오해와 자존감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지는 삶. 그러다가 느닷없이 모든 것이 정지되어 돌아보면 그 많은 오해와 고집이 다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 정서가 부족하다. 매를 들어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교감이 있던 때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있다. 인권을 위한 촘촘한 규정이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매는 없어졌어도 그 자리에 악성 민원과 고소와 법과 처벌이 생겨났다. 학교를 졸업하면 스승도 제자도 없이 졸업장과 학교생활기록부만 남는다. 진정한 친구도 없고 추억도 없는 학교생활은 모든 물기(정서)가 사라진 유골 가루만 남게 되는 셈이다. 만남과 친함과 정서가 있는 학교와 교실이 정말 사람 사는 삶이다. 방식은 어떻게든 좋다. 관리자는 학교에 그런 정서적 공간과 정서적 시간과 정서교류의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며 남는 것이 졸업장만이 되면 안 된다. 얼마나 정서적인 교류를 친구와 교사와 나누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학교에 꽃을 심고 화단을 가꾸고 긴 벤치를 놓고 도서관을 카페처럼 꾸미고 곳곳에 도서대를 비치하고 대화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웃음과 반가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학교가 좋은 학교다. 동창회에서 2학년 기말고사 수학 점수를 논하는 친구는 없다. 같이 먹었던 라면, 진로를 고민하던 대화, 함께 다녔던 추억, 교사의 진정한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폭력, 폭언, 악담, 악행을 기억하기도 한다. 그것은 나무에 찍힌 도끼 자국이나 벽에 박힌 못처럼 삶에 오랜 기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십수 년이 지나서 유명인이 학창시절에 친구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학교폭력을 당한 친구의 고발 때문이다. 교도소처럼 형기를 마치는 학교가 아닌 즐거운 추억이 가득 한 학교. 훗날 동창회에서 아픈 기억보다 행복한 추억이 많은 학교를 만들어 주는 것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부탁드린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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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5
  • [전재학의 교육칼럼]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참교육이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는 시대를 앞서 갈만큼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인재들이 많았다. 그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온갖 역경과 고난의 시대를 살면서 후대에 전하는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의 뒤편에서 당대에 충직하고 의로운 삶을 살다간 영웅들도 많다. 문헌에서 전하는 그들에 관한 서사(敍事)는 참신할 뿐만 아니라 더욱 진한 감동을 남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었던 강항(1567~1618)은 다섯 살 때 한시로 ‘각도만리심교각(脚到萬里心敎脚)’을 썼다고 한다. 이는 ‘다리는 만 리를 간다. 그렇게 시키는 것은 마음이다’는 뜻이다. 아이의 상상력과 관찰력이 놀라울 뿐이다. 강항이 누구인가?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 억류 중 일본의 문인들과 교류하였고 귀국할 때 외교적으로 노력하여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강항의 고향인 전남 영광군과 강항이 포로 생활을 했던 일본 오즈시는 2001년에 자매결연 맺고 교류하고 있다. 오즈시 중심가에 강항 현창비가 있는데 그 옆의 안내문에는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적혀 있다.(이승하, 조선일보, 2025. 3.19. 참조) 선조와 광해군 때의 문신 박엽(1570~1623)도 어릴 때 쓴 한시에 ‘등입방중야출외(燈入房中夜出外)’가 전해 온다. 이는 ‘등잔불이 방에 들어오니 밤은 밖으로 나가는구나’ 라는 뜻이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한문 공부를 일찍 시작했기도 하겠지만 오늘날과는 달리 과거에는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게 자랐기 때문이 아닌지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이 두 인물을 이 시대에 소환하는가? 그것은 바로 어릴 때부터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하기 위함이다. 이를 일러 소위 ‘참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흔히들 교육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능력을 밖으로 끄집어내는(引出) 것’이라 정의한다. 20세기 대표적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인간은 누구나 천재”라 말했다. 결국 인간 개개인의 천재성을 어떻게 인출해 키울 것인가는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지나친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어려서부터 각자도생, 적자생존의 정글법칙만을 연마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당연시하며 아이들을 과도한 사교육으로 몰아간다.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 등은 최근에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는 교육적 효과가 극소수 아이에게만 해당한다.”는 사교육 종사자들의 고백이 무색하게 초등 아이들이 5~7개의 학원을 돌며 거의 좀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형국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는 2024년 29조 2000억 원에 이르렀다. 혹자는 비공식적으로 40조에 달할 것이라 예측한다. 가히 사교육 공화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고 초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사교육비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어릴 적에 한창 또래들과 놀아야 할 아이들을 지나치게 혹사해 그들에게 생각하는 시간, 창의적인 삶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이를 ‘자녀 사랑’이라 칭하며 자랑삼아 말하는 부모들은 지나치다 못해 아동학대의 범죄자들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두 인물처럼 어려서 매우 놀라운 사고력을 발휘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고 오직 특정한 과목(영어, 수학, 논술 등)에 매달려 오히려 다양한 천재성을 사장(死藏)시키는 것이 이 땅의 오랜 고질병이라 할 것이다. “아이는 놀면서 배운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적인 능력계발에만 치우쳐 바람직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회성, 인간관계의 미성숙은 어찌할 것인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지명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폴 부르제(Paul Bourget, 1852~1935)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놀 여유와 시간도 없이 학원을 뺑뺑이 돌며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이 전환의 시대에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인간 존엄을 위한 참교육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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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3
  • [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나무 그늘 아래에서...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2025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라가 참 시끄럽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와 더불어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사회 전반적으로 힘든 일이 많기도 하지만, 거기에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가 싫다고 무인도로 떠나버릴 수도 없다.(요즘은 자발적 은둔 형 외톨이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쉼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몸도 휴식이 필요하지만, 정신적 쉼도 매우 중요하니깐. 가끔 이어폰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세상을 둘러볼 때 세상이 평소보다 아름답게 보이던 경험, 한 번쯤은 누구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은 내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들으면 딱 좋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사실 이 곡은 너무나 유명해서 누구나 들으면 ‘아~~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럴 만큼 대중적인 멜로디가 된 것 같다. 보통 ‘라르고(Largo)’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사실 라르고는 원래 제목은 아니고 ‘아주 느리게’를 의미하는 빠르기말이다. 이 곡의 빠르기가 ‘Largo’이기 때문에 아마도 라르고라는 제목으로 널리 연주되어 왔지만, 원래의 제목은 옴브라 마이 퓨(Ombra mai fu)라고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Serse)> 1막에 등장하는 아리아다. 오페라에서는 페르시아의 왕 세르세가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앉아 쉬며 삶의 피로와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평화와 위안을 찾는 모습을 노래한다. 이 곡은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대한 찬사와 그곳에서 느끼는 평화, 그리고 왕 자신이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쉼에 대한 감사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페라의 전체 줄거리와는 별개로 이 아리아는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순수하게 자연 속에서의 평화와 위로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인지 성악가들에 의해 불려질 뿐만 아니라 여러 악기에 의해서도 연주되어 듣는 이에게 평화와 맘의 위안을 주는 곡이다. 이 곡은 헨델의 다른 곡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보통 헨델의 곡들은 웅장하고 극적 긴장감이 있거나 경쾌하고 화려한데, 이 곡은 평화롭고 위로를 주는 분위기와 조용하고 내면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점이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곡은 단순히 나무를 찬양하는 노래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평화와 위로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는데, 우리가 감동을 받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은 결코 대단한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마음에 위안과 위로를 주는 것은 어떤 화려함이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살면서 종종 느낀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다 보면 가끔은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고 지칠 때가 있지만, ‘옴브라 마이 퓨(Ombra mai fu)’ 노래 내용처럼 잠시 나무 그늘에서 숨을 고르며 나무가 주는 위안을 깊이 호흡해 보는 일이 우리에겐 종종 필요하지 않을까. 때로는 멈추는 것이 가장 큰 전진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쉬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작은 휴식을 선물하자. 그 쉼이 내일의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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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30
  • [전재학의 교육칼럼]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한 인성교육을 강화할 때이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세상의 수많은 금과옥조 같은 가치(價値) 중에 다른 가치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고 빛나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 정의, 나눔, 배려, 용기, 선행, 기부, 사랑, 공존, 상생…, 이들 아름다운 가치들은 어느 것 하나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자 모두가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종합하듯 “용기 내어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지난 4월 타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세상 모든 선남선녀, 필부필부에게 어떻게 세상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제시하는 길잡이라 할 수 있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핵심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실에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조차 진정으로 사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특히나 이 땅에서 수많은 피와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망가뜨리고 갈등과 미움, 증오를 확산시킨 사람(들)을 용기 내어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휴머니즘에 근거해 서로를 사랑하고 공존하기 위한 교육을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수는 없다. 이 세상의 인간관계상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고 여러 가지 어긋난 행태로 감정이 얽히고설킨 상태에서 갈등과 증오 유발자(들)를 사랑하고 그(들)를 위해 사랑과 평화의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웬만한 성정의 보통 시민으로서는 실천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이성은 가능하나 감정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인간적 본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우리 중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거든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수많은 만남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리 저리 얽히고설키며, 때론 사랑하다가 때론 죽도록 미워하는 지경에도 이른다. 좋은 만남이고 좋은 관계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잘못된 만남이고 처음부터 뒤틀려 버리면 전혀 원하지 않는 감정의 상태로 심각해지고 악화된다.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기도 너무도 짧은 것이 우리 인생인데 이처럼 전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철천지원수 같은 존재가 되고 끝없이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기는 너무 힘들다. 정의구현 종교 수도자들은 “어찌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고 크게 반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가르침은 “네 원수를 사랑하여라.”라고 아주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가장 실천하기 힘든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감정을 통제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어려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깨닫고 서로 사랑하고 공존하려는 인성교육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류애를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고 상생하기 위한 교육은 그 어느 지식교육보다도 중요한 인성교육이라 할 것이다. 특히나 경쟁이 국시(國是)처럼 되어버린 우리의 경우 이는 그 어느 교육 가치보다 우선해야 할 소중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도 크게 갈라져 있다. 12⋅3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크게 훼손되고 인간 존엄을 명시한 헌법정신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땅의 정치 엘리트들은 오직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해 지지를 얻고자 한다. 그들은 과연 어떤 교육을 받고 이 땅의 엘리트가 된 것인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자기 정당화에 온갖 궤변을 쏟아내며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가치를 파괴한 이 땅의 최고 엘리트(들)를 보면서 우리 교육은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용기 내어 사랑하세요.”라고 말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의 메시지는 다시금 우리가 학교에서 어떻게 인성교육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그것은 ‘나 우선(Me, first)’ 에서 ‘상대 우선(You, first)’의 사상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교육이며 이는 결국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교육 가치임을 잊지 말고 이를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우리가 되길 기대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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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3
  • [풀꽃 산책] 도꼬마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한 가지 기준에 얽매일 필요 없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어린 시절, 도꼬마리 열매는 재미있는 놀이 도구였다. 옷에 착 달라붙던 작은 ‘찍찍이’는 우리와 자연을 이어주었다. 하지만 도꼬마리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그 속에는 생존과 성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도꼬마리의 씨앗은 두 개다. 하나는 빠르게 싹을 틔우고, 하나는 천천히 준비한다. 속도가 다르다. 방법이 다르다. 하지만 둘 다 살아남는다. 성장은 속도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급하게 나아가는 것도, 신중히 기다리는 것도 각자의 전략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배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자라야 할 필요는 없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배우는 아이가 있고, 천천히 깊이 익히는 아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이다. 도꼬마리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적응하고 공존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우리 사회도 그래야 한다. 지나친 경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의 성장을 인정할 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도꼬마리의 씨앗이 묻는다. “너는 너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가?” 우리는 비교 속에서 흔들릴 필요 없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자라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성장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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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2
  • [김홍제의 목요칼럼] 일상에 던지는 착한 조약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불확실 시대를 아름답게 건너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선함의 원인이 되어야 한다. 느닷없이 땅이 꺼져서 사람이 죽고 비행기가 떨어지고 거대 텔레콤 통신회사의 서버가 해킹을 당하고 전쟁이 나고 계엄이 선포되고 상담을 하던 학생이 교직원과 행인에게 문구용 칼을 휘두르는 세상은 불안하고 위험하다. 불교에서는 세상이 촘촘한 인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도 운명이 아닌 ‘선택의 결과’이다. 원하는 미래가 있다면 그에 맞는 선택을 지금부터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미래에 영향을 주는 원인은 만들 수 있다. 4월 28일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있었다. 지하철과 전철, 고속철도가 멈추고 수십만 명이 고립되었다. 핸드폰과 컴퓨터는 무용지물이었다. 신용카드 단말기도 꺼졌다. 현대문명이 전기에 의존하는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기로 세상이 굴러가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전기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자기장이나 전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현대 인류는 복잡해지는 땅위를 피해 땅속에 전선, 상하수도관, 인터넷 선, 사람이 다니는 지하도, 전철을 만들었다. 땅속은 보이지 않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온전히 알 수 없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고 분명한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느닷없는 범죄는 예상할 수 있는 범죄보다 더 불안하고 무서움을 준다.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공포는 더욱 커진다. 우리는 이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하여 불안과 공포에만 시달리며 살아야만 하는가. 알 수 없고 불안하고 위험한 일상에서 벗어날 길을 없는가. 생각해 보면 자신도 세상이나 타인에게 하나의 분명한 원인이다. 내 생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선하고 진실한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그 물결은 세상의 원인이 될 것이다. 착한 행위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도 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불안하고 혼란한 세상의 원인은 욕심과 거짓과 태만이라는 의롭지 않은 원인 때문이다. 세상의 작은 파동을 제어할 수 없고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목숨마저 ‘느닷없는’ 결과에 맡기고 산다. 하지만 아름다운 삶은 자신이 선한 원인이 되어 세상에 선함의 동심원을 만드는 삶이다. 많은 선함의 동기가 모여서 시민운동이 되고 기부문화가 되고 산불로 타버린 이재민의 후원자가 되고 기댈 곳 없는 학생에게 따스한 온정이 되는 것이다. 착한 원인이 하나둘 쌓이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비록 알 수 없는 함정들이 곳곳에 있는 위험한 일상이지만 우리가 디딜 수 있는 선한 징검다리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꽃길이 된다. 괴로움이나 공포가 가득한 어두운 여정이 아니라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이 있는 삶의 여정이 된다. 오늘 ‘느닷없는’ 기쁨의 원인이 되는 나를 꿈꾼다. 선한 행위의 조약돌을 답답한 일상에 던져보려 한다. 상대방도 행복해지는 선한 동심원이 많아지면 답답한 학교와 사회, 형식적인 동료관계도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착한 조약돌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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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5
  • [전재학의 교육칼럼] 체험(體驗)을 넘어 경험(經驗)으로 승화시키는 교육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말 사전은 체험(體驗)을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이라 정의하고, 경험(經驗)은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또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을 가리키는 철학 용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어로는 똑같이 “experience”라 한다. 실제 우리는 체험이나 경험을 거의 동일한 용어로 의미상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경제의 마케팅 입장에서는 이를 보다 쉽게 구분하여 체험은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 경험은 “사람들에게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는 정보제공을 통한 효과인 이해(理解)는 사실과 정보의 전달에 기반을 두는 이성의 영역이지만, 정서를 불러일으켜 공유하는 것은 감정(感情)의 영역이다. 이를 반영하듯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선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선 감정이 논리를 이긴다고 피력했다. 그래서 인간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에토스(ethos)가 이성에 의해 논리적 설득을 감행하는 로고스(logos)보다 우월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을 언급할 때 ‘경험’이라 하지 ‘체험’이라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통의 여행이 경험에 가까운 이유는 이것이 우리에게 정보가 아닌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거부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꾸며 살아간다. 여행이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에 그친다면 얼마든지 책이나 영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은 단순한 지식의 폭을 넓혀주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바로 정서적 공유인 공감을 나눌 수 있다. 만약 여행이 낯선 풍경을 체험하는 것에 그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여행이 아닌 관광이라고 말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곧 여행은 단순히 보고 싶은 곳을 보는 것을 넘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풍경의 체험을 쌓는 관광객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각을 통해 기존의 지식과 편견으로 쌓은 관념의 벽을 허물고 지평을 넓히며 자신을 확장시키는 여행객이 될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할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단 한 번의 여행이라면, 우리는 관광객의 태도로 삶을 체험할 것인가, 아니면 여행자의 태도로 삶을 경험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때 당연하게도 우리는 삶이 단순히 하나의 체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경험이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우리에겐 삶이 단순한 지식을 축적하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의 볼거리를 즐기는 체험의 수준을 넘어 인간적인 정서를 공유하며 마치 소풍을 즐기듯이 삶 자체가 아름다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경험으로 승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학생들에게 단지 체험의 기억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경험의 기억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공할 것인가?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은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한다. 이는 마치 특정 브랜드에서 커피를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한 맛의 체험을 넘어 해당 브랜드가 표방하는 공간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과 흡사하다. 단지 커피를 체험하려면 집에서 커피 원두만 있으면 되지 않겠나? 따라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식과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체험이라면 경험은 유⋅무형의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통해 학생들에게 특정한 정서와 감정을 통한 관계를 형성시킨다. 학생들에겐 단순한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정서적 관계를 맺도록 하고 개인의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지대한 역할이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요즘 초·중·고에서는 현장체험학습조차 망설이고 아예 학사일정 편성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인솔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몰아 학교의 사법화를 부추기는 현실에서 벗어나 체험학습을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교육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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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9
  • [풀꽃 산책] 안전지대에서 탈출하라 - 마름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가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안전지대에 안주하지 말라. 탈출하라. 그것이 자신의 생명력과 존재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마름은 떠난다. 안전한 둠벙을 뒤로하고, 물새의 날개를 타고 새로운 곳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익숙한 곳이 더 이상 터전이 아닐 때, 불편함을 감수하고 날아간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다. 성장을 위해선 떠나야 한다. 편안함 속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나지 않는다. 물에 떠 있는 삶이 익숙하다고, 그곳이 영원한 터전이 될 순 없다. 마름의 이동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그것은 확장이다. 낯선 곳에서, 불편한 환경 속에서, 더 강해진다. 떠남은 두렵다. 그러나 머무름은 더 큰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떠난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얻는 일. 마름이 묻는다. “너는 왜 머물러 있는가?” 세상은 넓다. 발을 떼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나아갈 용기가 있다면. 안전지대를 탈출하라.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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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8
  • [김홍제의 목요칼럼] 학생 도박과 절도에 대한 단상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30년도 넘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학생 절도 사건이다. 담임을 하는데 계속 우리 반만 도난 사건이 계속되었다. 심각했다. 돈과 신발과 전자기기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조회 시간에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고 양심적으로 물건을 갖다 놓으면 지나간 일은 다 용서한다고도 했고 이번이 마지막이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꼭 범인을 찾아 다른 학교로 보낸다고 엄포도 했다. 절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실 도둑질을 한 학생을 잡아도 사후 처리가 더 큰 고민이었다. 범인을 잡지 않으면 절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계속된 무기명 조사로 범인 윤곽이 드러나자 학생이 일부 물건을 갖다 놓아서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그뒤 분실은 없어졌다.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경찰에서 학생을 찾아왔다. 원인은 사이버 도박 때문이었다. 도박으로 돈이 부족해지자 다른 학생의 돈을 갈취하거나 협박을 한 것이다. 학생 기숙사에서 사이버 도박으로 잠을 자지 않고 도박을 하고 있어서 불빛 때문에 불편하다는 신고가 들어오기도 했다. 요즘 온라인에서 학생 도박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전부터 있어 온 문제였다. 데이비드 G 슈워츠 네바다대 교수는 ‘도박의 역사’라는 책에서 3,000년 전 ‘뼈 굴리기’부터 현대 카지노까지 유구한 도박의 역사를 보여 주었다. 도박을 금지하는 법은 무수히 많았지만 도박을 뿌리 뽑지는 못했다고 한다. 성공으로 얻는 보상과 희열이 중독을 가져오고 불확실한 세계는 인간을 어쩔 수 없이 도박꾼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놀이 안에 도박 중독의 위험성이 있다며 아이들이 하는 단순한 오락이라도 도박 중독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충동조절장애'로 불리는 도박 중독은 본인은 부정해도 질병에 가깝다. 단순히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온라인 도박이 교실로 스며들고 있지만 학생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줄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사실상 부족하다. 한국도박문제치유원이 발간한 ‘2024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4.3%는 평생 1회 이상 도박을 경험했다고 했다. 심각함의 중점은 도박의 중독성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다른 의무 교육을 하느라 도박 예방 교육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효과적인 도박 교육을 위해서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위험군에 대한 집중 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도박 중독 특성상 예방이 최우선인 만큼 학부모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도박이나 절도에 대한 상황은 30년 전과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상황을 고민하기보다는 방치하거나 선언적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도박과 절도가 쉽게 드러나는 속성이 아니기도 하고 문제 학생이 소수이어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그 학생은 평생을 감옥에 가거나 사기꾼, 삶의 실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기에 여기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고 교육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절도와 도박은 악마의 목구멍으로 넘어 가는 입구이다. 반드시 차단해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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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1
  • [전재학의 교육칼럼] 민주시민 교육의 힘과 우리가 나아갈 길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우리는 암흑 같은 터널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는 유⋅초⋅중⋅고 12~15년 기간의 바람직한 민주시민교육의 성과에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다. 이 믿음은 앞으로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는다. 왜냐면 우리 교육의 과도한 ‘경쟁’과 극단적 이기주의인 ‘내 새끼 지상주의’에서 마치 이를 부정하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와 협력 그리고 상생의 싹이 움트는 사회의 기운이 충만한 집단지성과 행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12⋅3 비상계엄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갈라진 민심을 추스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여기에는 각종 비상식과 비정상적인 언어의 배설이 극에 달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행태가 여전한 가운데 동방예의지국이자 기적 같은 선진국 진입이란 국가적 위상에 무색한 철학과 사유의 결핍을 도처에서 목격한다. 많은 사람들의 집단 도착 증상이 심각한 정도를 넘어 이제 그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더 큰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스며든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사고다. 이는 진보·보수 진영 간의 갈등을 넘어 이제는 상식과 비상식, 사유와 무사유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무지는 용서할 수 있어도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밝힌 ‘악의 평범성’은 이제 시대를 건너 21세기에도 현실에 대한 무감각 및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복종과 추종으로 똬리를 틀고 있음에 우려를 금치 못하겠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대학살의 집행자가 된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의 결핍과 철학의 빈곤, 즉 무사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시국은 한국형 ‘아이히만’의 출현을 도처에서 염려할 만큼의 상황이다. 특히 우리 교육이 낳은 엘리트들에게서 그런 경향을 발견함은 심히 우려할 일이다. 하지만 어둠이 압도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어디엔가 희망의 빛은 존재했다. 12⋅3 비상계엄 국면에서 국회 진입을 시도하던 장갑차와 특전사 군인들의 총부리에 맨손으로 맞선 민주시민들,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의 소극적인 대응과 망설임의 몸짓, 겨울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은박지를 온 몸에 둘러싸고 밤을 새워 시위 현장을 지키던 키세스 세대, 남태령 고갯길에 막힌 탄핵 촉구 농민 트랙터 행진에 밤새 응원봉을 흔들며 길을 터준 청년·시민들, 차가운 시위 현장에 따뜻한 커피와 음료, 먹거리를 제공한 민주시민들에게서 이 땅의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의 힘을 확인했다. 이는 진흙 속에서 발견한 진주처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것이었다. 이제 곳곳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MZ세대들의 열띤 정치 토론과 민주시민들의 행동하는 양심을 목도하면서 우리 교육이 길러낼 제2, 제3의 응원봉 세대가 만들어 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튼실한 시민 의식과 예리한 비판적 사유로 무장한 그들이 이끌어 갈 우리 사회는 상식과 사유의 풍성함이 충만할 것이다. 문제는 수구⋅꼴통 기성세대들이 갈수록 극단화되어 이 나라를 위험에 빠트리고, 87년 민주화 이후 이 땅의 ‘완전한 민주주위’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 ‘독재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부추겨 치명적인 민주주의의 퇴행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환경의 오염과 생태계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정(自靖) 작용을 통한 지구의 자생력을 믿듯이, 현재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각종 민주주의 퇴행의 실상에도 불구하고 한 쪽에서 희망의 불씨를 키워가는 이 나라의 젊은 세대들에게서 교육의 힘을 믿고자 한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꽃을 더욱 활짝 피우고 열매를 맺는 길은 이 나라의 미래 세대들을 보다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한 민주시민, 세계시민의 육성에 달려 있다. 회복력이 강한 우리 교육은 바람직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숭고한 교육목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미국의 민중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말한 대로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먼(We have so many miles before we sleep)’ 것이 우리의 교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한 치도 의심함이 없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한 교육에 더욱 힘찬 격려와 응원을 아낌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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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5
  • [풀꽃 산책] 다양성의 인정으로 열린 화엄 세계 - 피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다양한 존재들이 모여 아름다운 균형을 이룬 세상, 그것이 바로 화엄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 우리는 더 풍성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피는 쓸모없다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지혜가 있다. 벼를 방해하는 ‘잡초’라 불리지만, 피는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다. 벼와 닮은 모습으로 변신하며 논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변신술사.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바꾸고,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생명력의 상징. 피는 싸우지 않는다. 그저 벼처럼 모습을 바꾸고, 닮아가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킨다. 강한 것은 단단한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다. 피는 무용(無用)하지 않다. 척박한 땅을 되살리고, 자연의 균형을 이루는 존재. 우리는 너무 쉽게 구분한다. ‘유용’과 ‘무용’, ‘필요’와 ‘불필요’. 하지만 자연에는 버려질 것이 없다. 공존의 지혜. 우렁이 농법처럼, 자연과 함께할 때 길이 열린다. 정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답이다. 피는 말한다. “나는 잡초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우리도 세상의 기준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강한 삶 아닐까.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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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4
  • [김홍제의 목요칼럼]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경쾌한 멜로디와 풍자적인 가사로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가사의 일부분이다. 이 노래는 원래 밥 딜런이 불렀다. 이후 양병집이 번안하여 발표하였다. '역(逆)'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군사정권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김광석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가 말했다. 말을 듣기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이 드물다. 논어 학이 3장에 나오는 말이다. 겉모습만 번드르르하고 진심을 속이는 사람을 멀리하라는 의미이다. 요즘 언어와 행동의 이중성이 더욱 심각하다. 언어의 오염도 심각하다. 국민만을 위하겠다는 정치인이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백화점에서 소비자가 쉴 수 있는 의자가 너무 적다. 시골 할머니 간판을 단 음식점이 더 영악한 상술을 펼친다. 화려하고 반짝이고 기름진 언어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한 본능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 편이 이기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논리 방식이 커지고 있다.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한 행위는 알레고리를 통해서 심화하고 있다.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은 이러한 사고의 반영이다. 자기편 불법은 용서가 되고 상대편 불법은 용서가 안 된다. 국민이 체감하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온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간단한 상식이 복잡한 법률적용을 거치면 복잡해지고 아리송해진다. 당연한 것도 당연하게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죄가 없는데도 경찰서에 가면 불안한 이유는 죄가 없는데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대선이 6월 3일로 확정되었다. 전국에서 다양한 국가 공약을 담은 애드벌룬이 떠 오를 것이다. 현란한 언어, 달콤한 속삭임, 화려한 수사, 지방 현안 해결,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 예상된다. 교언영색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콤한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려 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공약도 난무할 것이다.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우리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다.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처럼 한숨만 쉴 수는 없다. 애드벌룬을 보고 아이처럼 들뜨기보다는 애드벌룬을 띄운 속내를 파악하고 진실로 참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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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7
  • [전재학의 교육칼럼] 실력 있고 열정적이던 선생님들에 대한 그리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1976년 필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시절, 대전의 D고교는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의 고교평준화로 인해 전국 최상위를 넘나드는 명문대 진학률을 기록하던 학교였다. 본관 건물 옥상 바로 아래에는 “전국 제패 학생 되고 끌어주는 스승 되자”는 슬로건이 학교의 위상을 대변하는 듯 했다. 입학 당시 고교 입학 학력고사 성적은 200점 만점에 191점이 커트라인이었으며 만점자와 1개 틀린 학생만도 한두 학급(12개 학급 중)이나 될 만큼 우수한 인재들이 전국에서 몰려 들었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공립학교로서 교육청의 정기 발령에 의해 순환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수업마다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은 지금 생각해도 실력은 물론 열정이 그야말로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 권의 참고서를 단권화 할 정도로 설명만으로도 더 이상 참고서가 필요 없던 국어 교과, 외국 대학 입시 문제를 가져다 교재로 쓸 만큼 고난도의 수학 교과, 해석과 문법 설명이 매끄럽고 막힘이 없던 영어 교과, 역사를 종과 횡으로 꿰뚫어 백과사전을 능가하는 역사 교과, 대한민국의 지형과 특징, 세부 사항 등을 현재의 구글 지도 보듯이 펼치는 사회(지리) 교과, 더 이상의 참고 유인물이 필요 없을 정도의 꼼꼼한 과학 교과 … 어느 것 할 것 없이 감탄연발의 수업은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만족으로 연계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교과의 전문성, 즉 실력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닌 열정의 결정체임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들른 교무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책상 위에는 마치 학생들이 단어 외우듯이 까맣게 써가면서 수업준비에 임하는 노력이 있었다. 특히 필자가 졸업 후 지방 대학의 영어영문학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긴 영어 선생님이 쓴 연습장(깜지)은 지금도 기억이 눈앞에 생생한 감동 그 자체였다. 수업 시간에 분필 하나만 들고서 칠판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필기하며 설명하시던 세계사 선생님은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The teacher, the student)’라 할 수 있듯이 필자는 교직 생활 내내 고교시절의 선생님들을 본보기 삼아 그 길을 따르려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잠자는 학생을 단 1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굴기이자 자존심은 어느 날 수업 종료 후 한 학생이 다가와 “선생님, 오늘 수업은 정말 끝내주었어요”라는 짧은 멘트에 완전 보상을 받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중고등학교 관리자(교감, 교장)로 재임 시 줄곧 수업에 대한 강조와 교내장학을 우선으로 학교 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수업하는 교실을 지나치며 교실 안의 학생들의 반응, 언뜻 보이는 교사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이 수업을 학원가의 강사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 수업을 내 자식에게도 믿고 참여시킬 수 있을까?” “이 수업만으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충분할까?” … 수없이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쩌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고 화기애애한 수업 분위기를 목격하면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의 얼굴을 보다 세심하게 응시하곤 했다. 그러면서 “학교 교사의 자존감을 보여주시고 학생들의 호응과 신뢰를 얻으시는 선생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를 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학교의 선생님들은 과거와 달리 수업에만 전념할 상황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물론, 각종 정서적 불안 증세를 겪는 위기의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그만큼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는 일반 행정 업무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몰입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알찬 교원능력평가가 시행되길 바라는 이유다. 세간에서 학원 강사와 학교 교사를 비교해 실력을 판단하려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자 잘못된 방향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교과지도에 보다 집중하여 실력과 열정으로 학생 교육에 나서게 해야 한다. 이제 모든 선생님들이 교단에서 자신감 있고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모습과 실력으로 우리의 미래 세대들에게 학교 교육의 만족도를 높이고 배움이 충만한 즐겁고 행복한 학교로 공교육의 위상을 견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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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1
  • [풀꽃 산책] 순수한 미니멀리즘의 상징 - 제비꽃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제비꽃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생명체로, 본질적인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단순함의 힘이다. 제비꽃은 조용히 피어난다. 바람결에 흔들려도 뿌리는 깊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충분하다. 떠들썩한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흐르는 물에 스스로를 비춘다. 제비꽃은 경쟁하지 않는다. 더 크게 피어나려 애쓰지 않고, 더 많은 햇빛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꽃을 피울 뿐. 세상은 더 높이, 더 빠르게를 외치지만, 제비꽃은 말한다. “조용히 머물러도 충분하다.” 제비꽃은 강하다. 비바람에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벌이 없어도 스스로 꽃을 피우고, 개미와 공생하며 생명을 잇는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진짜 빛난다. 단순함 속에서 완전해진다. 불필요한 욕심 없이도 풍요롭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쥐고 사는가. 제비꽃은 가르쳐준다. “본질만으로도 충분하다.” 제비꽃은 함께 살아간다. 개미와 씨앗을 나누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삶도 그렇다. 경쟁이 아니라 함께 피어나는 것. 그것이 제비꽃의 지혜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삶,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삶. 떠들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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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0
  • [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내면에 충실한 음악, 그리고...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2025년 4월 현재, 세상은 참으로 혼란스럽고 거짓과 교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긍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황이며, 지구 온난화로 야기된 기후 변화가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위기 상황에 부딪히게 만들고 있으며,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가 병들고 있음을 이젠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있고 늦은 것이 아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발전하기도 했지만, 또 그로 인한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 또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AI가 많은 부분에 답을 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에 완벽한 정답은 없으며 여전히 인간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들이 훨씬 많다. 문화 예술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AI가 몇 초만에 그림도 뚝딱 그려내고 새로운 곡도 완성해 만들어 주지만, 그 안에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영혼은 아직 없다. 기술적으론 첨단이지만, 혼이 없는 예술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앞으로 인간이 고민해야 할 또 다른 질문 중에 하나다. 예술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없어질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마도 모든 시대,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세상이 지금처럼 첨단 과학화 되고 화려해지면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예전보다 더 많이 화려하게 연주하고,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화려함 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더 멋있어 보이고 심금을 울리게 만들기도 한다. 음악 연주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는 뭔가 화려하고 거창한 것이 더 멋져 보이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본이 중요하다는 걸 점차 깨달아 알아가서 더 그런 걸까? 클래식 음악 연주자 중에서도 가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한 것으로 유명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기술적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음악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쇼팽 음악에서 인위적인 과장 없이 곡의 낭만적인 정신을 전달하려고 애쓴 연주자이다. 그는 무대에서의 태도와 연주에서도 꾸밈없이 진솔함을 보여 주었고, 청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마치 응접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편안하고 온화한 태도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객과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기술적 완벽함을 넘어 감정을 전달하는 연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현재 음악가들이 단순히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것을 넘어, 곡의 내면적 의미를 강조하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루빈스타인은 ‘전문가’라는 말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보통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연주가 어느 부분을 빠르게 연주하는지, 또 어느 부분을 틀리게 연주했는지 그런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서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것보다는 청중과 교감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음악가라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89세라는 굉장히 늦은 나이까지 연주 활동을 하고 은퇴했는데, 은퇴한 이유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가 아니고 단지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악보 보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매번 연주 때마다 굵직하고 깊은 음색을 보여줬는데 그의 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쇼팽의 녹턴을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그의 음악과 함께 나의 음악도, 또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의 충만함도 기대해 본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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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9
  • [풀꽃 산책] 부평초 - ‘마주 잡을 손 하나’의 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부평초는 물 위를 떠다니며 자라는 개구리밥으로, 그 꽃말은 '떠돌이'와 '나그네'이다. 그 이름처럼, 떠돌이의 삶을 상징한다. 부평초는 구조적으로 단순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떠다니는 동안도 중요한 뿌리를 놓지 않는다. 부평초는 물 위에서 떠 있기 위해 엽상체라 불리는 특수한 기관을 발달시킨다. 이 기관은 공기 방을 통해 물에 뜨게 한다. 그럼에도,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뿌리는 중요하다. 부평초는 세력을 늘려가며, 그 유대감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존재들과 연결된다. 마치 사람들도 떠돌이처럼 생존하며, 유대감과 인정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부평초는 겨울이 오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겨울을 준비한다. 이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그 생존전략의 핵심은 ‘단순화’와 ‘기본적인 뿌리의 중요성’에 있다. 이것은 부평초의 생명력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 삶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부평초는 떠돌이 삶을 살지만, ‘마주 잡을 손 하나’만 있으면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 유대감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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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4
  • [김홍제의 목요칼럼] 국가별 행복지수 56위 한국,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늘려 주자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3월 19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웰빙 연구센터와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국가별 행복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행복 점수 7.736점을 받은 핀란드였다. 8년 연속 가장 행복한 국가로 올라와 있다. 한국은 58위(6.038점)로 작년(52위)보다 6계단 떨어졌다. 높은 순위에 북유럽 국가들이 많다. 북유럽은 사회복지국가 체제로 경쟁적 자본주의보다 사회복지에 힘쓴 국가들이다. 연구진은 특히 배려와 나눔이 사람들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조사 결과 타인의 친절에 대한 믿음이 행복과 훨씬 더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타인과 자주 식사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누구와 친한지 알고 싶으면 그 학생이 학교 급식 시간에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지 보면 된다. 왕따 학생은 보면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계의 단절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식사를 어떻게 영양에 맞게 먹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대화를 하면서 먹느냐도 중요하다. 밥은 생존을 위한 사료의 의미만이 아니다. 식사에는 공감과 관계의 의미가 중첩한다. 행복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보다는 내면의 만족과 감사함에서 온다.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는 행복은 외부가 아닌 소박한 내면의 충족에서 온다고 했다. 행복은 경쟁에서 오지 않는다.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의 책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말살하는 심각한 인식인지를 비판하고 있다. 행복은 경쟁이 아닌 만족과 감사, 공감과 배려의 관계에서 온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낀 것은 코로나19 시대로 학교가 정상적인 등교를 못할 때였다. 당시에 지식은 원격수업으로 가능하지만 인성과 공동체 교육은 등교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의 존재이유가 바로 그 경험의 공유라는 것을 사회는 크게 깨달았었다. 벌써 그것을 모두 잊어버린 듯하다. 행복은 함께하는 것에서 온다. 함께하려면 배려하고 공감해야 한다. 배려와 공감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과정에서 온다. 학생의 행복을 위해 학교는 공유의 경험을 늘려야 한다. 서로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배려와 공감을 위해 학생들이 서로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토의, 토론, 동아리, 캠프, 상담, 친교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도시락 반찬을 나누어 먹고 학급 단위로 합창 연습을 하고 학원에 가기보다는 친구들과 운동과 놀이를 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라면을 먹었던 그 시절에는 행복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서로 함께여서일 것이다. 학교가 단지 지식을 위한 기관이라면 원격으로도 충분하다. 학교는 학생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 배우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기쁨을 느끼는 경험의 장을 최대한 많이 제공해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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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3
  • [풀꽃 산책] 땅빈대(비단풀) - 땅바닥이 천국이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최진규(약초학자) 님이 남미에서 어렵게 구해온 비단풀을, 결국 자신의 사무실 마당에서 발견하고는 탄식했다고 한다. 비단풀은 땅빈대라고도 불리며, 쇠비름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이름처럼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란다. 이 풀의 생즙을 상처에 바르면 신기하게도 곪지 않고 잘 낫는다. 내가 과일을 깎다가 손을 깊게 베었을 때, 비단풀을 짓찧어 붙였더니, 따가운 느낌이 잠시 들더니 피가 멈췄다. 비단풀은 사마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남미 사람들은 사마귀가 생기면 비단풀을 붙여,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귀가 떨어진다고 한다. 최진규 님에 따르면 비단풀은 항암작용이 뛰어난 식물 중 하나로, 특히 뇌종양, 골수암, 위암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거나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돋게 하고 기력을 늘려준다고 한다.(출처: 위키백과) 비단풀의 꽃말은 '집착', '가슴앓이', '희생적인 사랑'이다. 뿌리를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집착의 식물이지만, 암환자에게는 생명초가 된다. 한방에서도 ‘지금초’(지금처럼 땅에 펼쳐진 비단 같은 풀)라는 이름으로 약용된다. 땅빈대는 이름 그대로 땅바닥에 붙어 살아간다. 사람의 발에 밟히기 쉬운 고난의 땅에서 살지만, 그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단풀과 개미의 아름다운 공생은 신도 미소 짓게 만든다. 땅빈대를 보면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가 떠오른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세상의 모든 식물은 햇빛을 향해 자꾸만 뻗으려 한다. 하지만 땅빈대는 처음부터 땅에 엎드려 살아가기 때문에, 밟혀도 부러지지 않는다. 땅빈대는 햇살을 경쟁하지 않고 독점하며 살고, 꽃가루는 나비나 벌이 아닌 개미가 나른다. 꽃도 작고, 수술 하나, 암술 하나로 아주 간단하다. 가성비 최고의 잡초라 할 수 있다. 세상의 가치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땅빈대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에밀리 디킨슨의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를 보자.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 너도 - 역시 - 아무도 아니니? 그럼 우린 한 쌍이 되네! 말하지 마! 그들이 떠벌릴 거야 - 너도 알잖아! 정말 피곤해 누군가가 된다는 건! 유명한 사람이 된다는 건 개구리 같아 자기 이름 알리려고 기나긴 유월 내내 귀 기울여 듣는 늪에 울어대는! 디킨슨의 시는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회복력을 노래한다. 그녀의 「나는 아무도 아니다! 당신은 누구요?」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땅빈대처럼 겸손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기쁨과 단순한 생활 속에서 진정한 성장과 회복력이 나온다는 점을 말한다. 땅빈대의 생존 전략은 인간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키 큰 식물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과 달리, 땅빈대는 불필요한 경쟁 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 사회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에 맞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둘째, 단순함 속의 탄력성이다. 땅빈대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단순한 삶 속에서 우리는 강하고 유연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셋째, 겸손한 만족이다. 땅빈대의 꽃은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효율성에 중점을 둔다. 작은 행동이 더 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겸허함 속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과 성장만을 중요시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땅빈대처럼 회복력 있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조용하지만 심오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개성을 존중하고, 단순함을 신뢰하며, 내면의 회복력을 꽃피우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땅바닥이 천국이다. 땅빈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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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7
  • [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주인 교육’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누구나 학창시절에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역경과 고비의 순간마다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경쟁 체제의 교육에서 그저 앞만 보고 걸어와 인지적 비교⋅판단능력이 염려가 될 때, 이 소설은 위로와 격려가 되며 삶의 힘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다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 믿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꼬박 사흘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상어 떼와도 거침없이 맞붙는다. 노인의 초인적 행동은 어부의 존엄을 갖춘 데서 나온다. 노인은 말한다. “난 될 수 있으면 돈을 빌리지 않고 싶구나. 처음엔 돈을 빌리지, 그러나 나중엔 구걸하게 되는 법이거든.” 도전과 고난의 바다는 같은 바다다. 그 바다 위에서 도전과 고난을 자신의 힘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다는 어머니처럼 품어주기도 한다. 수많은 물줄기가 산과 계곡에서 흘러 내려와 개울과 내를 이루고 강을 지나 드디어 바다에 이른다. 우리 인생의 과정이 이와 같다. 결국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드넓은 공간을 내주어 우리에게 무수한 보상을 베풀어 준다. 하지만 바다가 포효하고 거센 파도를 휘몰아칠 때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를 헤쳐 나가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청새치와 상어와 싸워 나가는 바로 그 힘과 용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금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운명을 개척할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최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등 집에서 쉬고 있는 청년 백수가 지난달 1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청년층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역시 1년 전보다 1만5천명 증가한 420만 9천명을 기록했다. 이 중 별다른 활동 없이 '그냥 쉬는' 청년은 50만4천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경제 성장의 둔화와 내수 부진, 제조업·건설업 불황, 기업들의 경력직·중고 신입 선호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백수'가 늘어난 것이다. 국가는 우선적으로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그들에게 잠재력과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입만 벌리고 하릴 없이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운명을 직접 찾아 나서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예컨대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귀농(귀어)을 하면 농산어촌 지자체 대부분은 상당한 비용을 지원하고 자립할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학벌 타파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모두가 가려는 길만이 정도(正道)는 아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려면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읽고 다양한 지혜를 쌓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목록1호여야 한다. 학창시절, 배움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 어려서 책을 읽는 습관은 평생 든든한 자산으로 기능한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어려서부터 책 읽는 좋은 버릇은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 길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멀리서 어렵게 그 비결을 찾지 말자. 이는 학교에서 배움에 열중하는 가운데 책과의 친화력이 주는 선물임을 잊지 말자. 교육의 역할은 자명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지향점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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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7
  • [김홍제의 목요칼럼]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실질적 학교 교육 강화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현재는 민주국가와 자본주의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육계는 마치 허공에서 살기라도 하는 듯이 경제와 정치를 되도록 학생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국어, 영어, 수학만이 최고의 공부라고 생각하게 하고 있다. 입신양명은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근대국가로 오면서 학력은 국가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봉건사회와 산업사회를 지나서 이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민주시민과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세계화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와 살아가는 환경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유교적 출세주의나 산업화 성장주의가 아닌 선진국의 경제와 민주적 공동체를 지닌 환경으로 전환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시대이다. 세계는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자국의 이익과 자국의 국민의 이익을 강조하고 있다. 살기가 어려워진 결과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제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국민의 인식이다. 교육 현장에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교육은 수박 겉핥기로 보인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과를 나오지 못하면 기본적인 경제 개념조차 희박하다. 경제는 삶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생활에서는 정치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회비용과 경상수지, 디지털 화폐, 소비자신뢰지수, 유동성, 어닝쇼크, 공매도, ELS, 환차임, 모라토리엄, 매매계약에 대한 것을 많은 예시와 실질적인 토의와 토론으로 배워야 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정치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수업에 정당의 공약을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학생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우리는 그런 수업을 할 수 없다.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는 한국이 이룬 선진국 경제 수준과 동떨어진 꼴찌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교육에서 정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탓도 있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성장해서도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경제와 정치는 우리 일상과 밀접한 영역이다. 기준금리, 물가, 부동산, 환율, 무역에 따른 사회변화를 알아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와 ESG경영도 경제와 연관이 있다. 정치에 따라 새로운 사회 변화도 이루어진다. 우수한 몇 명의 결정만으로 국가 경제를 만들어가는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도 정치인 몇 명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국민이 주권의식을 가지고 경제대국, 민주국가를 올바르게 세워가려면 우선 교육에서 그 국민에게 올바르고 실질적인 경제교육과 정치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은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에 보여 준 모범적인 혁신 국가이다.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오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굳건한 국민 의식과 교양, 정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주체성을 지닌 국민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교육은 현실에서 유리될 수 없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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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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