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육칼럼]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참교육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이 전환의 시대에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인간 존엄을 위한 참교육이라 할 것이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는 시대를 앞서 갈만큼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인재들이 많았다. 그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온갖 역경과 고난의 시대를 살면서 후대에 전하는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의 뒤편에서 당대에 충직하고 의로운 삶을 살다간 영웅들도 많다. 문헌에서 전하는 그들에 관한 서사(敍事)는 참신할 뿐만 아니라 더욱 진한 감동을 남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었던 강항(1567~1618)은 다섯 살 때 한시로 ‘각도만리심교각(脚到萬里心敎脚)’을 썼다고 한다. 이는 ‘다리는 만 리를 간다. 그렇게 시키는 것은 마음이다’는 뜻이다. 아이의 상상력과 관찰력이 놀라울 뿐이다. 강항이 누구인가?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 억류 중 일본의 문인들과 교류하였고 귀국할 때 외교적으로 노력하여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강항의 고향인 전남 영광군과 강항이 포로 생활을 했던 일본 오즈시는 2001년에 자매결연 맺고 교류하고 있다. 오즈시 중심가에 강항 현창비가 있는데 그 옆의 안내문에는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적혀 있다.(이승하, 조선일보, 2025. 3.19. 참조)
선조와 광해군 때의 문신 박엽(1570~1623)도 어릴 때 쓴 한시에 ‘등입방중야출외(燈入房中夜出外)’가 전해 온다. 이는 ‘등잔불이 방에 들어오니 밤은 밖으로 나가는구나’ 라는 뜻이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한문 공부를 일찍 시작했기도 하겠지만 오늘날과는 달리 과거에는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게 자랐기 때문이 아닌지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이 두 인물을 이 시대에 소환하는가? 그것은 바로 어릴 때부터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하기 위함이다. 이를 일러 소위 ‘참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흔히들 교육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능력을 밖으로 끄집어내는(引出) 것’이라 정의한다. 20세기 대표적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인간은 누구나 천재”라 말했다. 결국 인간 개개인의 천재성을 어떻게 인출해 키울 것인가는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지나친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어려서부터 각자도생, 적자생존의 정글법칙만을 연마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당연시하며 아이들을 과도한 사교육으로 몰아간다.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 등은 최근에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는 교육적 효과가 극소수 아이에게만 해당한다.”는 사교육 종사자들의 고백이 무색하게 초등 아이들이 5~7개의 학원을 돌며 거의 좀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형국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는 2024년 29조 2000억 원에 이르렀다. 혹자는 비공식적으로 40조에 달할 것이라 예측한다. 가히 사교육 공화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고 초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사교육비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어릴 적에 한창 또래들과 놀아야 할 아이들을 지나치게 혹사해 그들에게 생각하는 시간, 창의적인 삶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이를 ‘자녀 사랑’이라 칭하며 자랑삼아 말하는 부모들은 지나치다 못해 아동학대의 범죄자들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두 인물처럼 어려서 매우 놀라운 사고력을 발휘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고 오직 특정한 과목(영어, 수학, 논술 등)에 매달려 오히려 다양한 천재성을 사장(死藏)시키는 것이 이 땅의 오랜 고질병이라 할 것이다.
“아이는 놀면서 배운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적인 능력계발에만 치우쳐 바람직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회성, 인간관계의 미성숙은 어찌할 것인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지명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폴 부르제(Paul Bourget, 1852~1935)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놀 여유와 시간도 없이 학원을 뺑뺑이 돌며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이 전환의 시대에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인간 존엄을 위한 참교육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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