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08(금)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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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있는 대정고등학교는 질문탐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은 구하지 않는다. 질문을 만들고 하고 듣는 과정에서 사색과 평가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질문은 질높은 사고의 과정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질문하기는 중요한 삶의 기술로 떠올랐다. 질문을 한다는 것이 우선 중요하고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서점에도 올바른 질문하기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질문 자체가 더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질문은 상대방의 능력을 끌어내는 유용한 능력이다.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애매한 지시를 하면 실무자는 엉뚱한 보고서를 올릴 수 있다. ‘예쁜 춘향이를 그리라’고 하면 자기가 생각하는 ‘예쁘다’는 기준에 따라 인물을 그리게 된다. ‘예쁘다’는 감정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크게 다르다. 사람마다 연상 내용은 당연히 다르다. 타인은 자신과 똑같은 개념으로 연상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에서 문제상황은 상대도 나를 전적으로 이해했다고 하는 환상을 가질 때이다. 챗GPT에 큰 기대를 하지만 애매한 질문으로 기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 실망만 얻을 뿐이다. 종처럼 때리는 힘이 클수록 소리도 큰 법이다. 
 
질문은 능동적 삶의 수단이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의미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기 쉽다. 태어났기에 산다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삶에 대한 능동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삶은 변화가 본질이고 주체성은 능동성을 본질로 한다. 산업화 시대에 ‘왜’를 따지는 것은 불손한 것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어떻게 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것인가’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었다. 
 
변화의 세상에서 주체성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듣기, 읽기 중심에서 말하기, 쓰기의 자기주도와 능동성이 필요하다. 참여와 능동성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비판적이고 건전한 의식을 만든다. 우리 교육이 바라는 미래의 모습은 지식을 받아먹는 콩나물키우기의 수동적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는 능동적 교육이 되어야 한다. 질문하기가 그래서 필요하다. 
 
질문하는 학생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서, 토론, 도전이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질문이 없는 학교, 웃음이 없는 학교, 토의가 없는 학교, 지시와 통제만 있는 학교는 변화가 필요하다. 선풍기에서 에어컨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부채의 개선에 힘을 쏟는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교사는 이제 답을 말하는 존재에서 답을 찾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육은 내면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질문 없이 맹목적으로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동물들처럼 불행할 수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삶은 위험하고 허무하다. 질문이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 답을 찾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답은 컴퓨터가 찾아 줄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질문도 없다. 올바른 질문으로 주도성을 키워주는 교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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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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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질문하기라는 시대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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