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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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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고병구 '어쩌다 의사가 되어'를 읽고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한 해의 작은 달 2월, 설 명절과 입춘이 들어 있는 달, 봄이 다가오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는 달도 벌써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었다. 옛말에 복(福)은 받는 것이고, 덕(德)은 쌓는 것인데, 손(手)으로는 나누고 발(足)로 걸어서 건강을 지키고, 얼굴(容)은 항상 미소를 짓고, 마음(心)으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책(冊)을 골라 독서 하면서 자아(自我)의 성숙과 마음을 키우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번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읽을거리를 찾다가 몇 권의 책 중에서 우연히 “어쩌다 의사가 되어”라는 에세이집을 발견하고 단숨에 반쯤 읽었는데 바로 이 병원의 대표원장이자 저자인 고병구 원장이 의사로서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면서 환한 얼굴로 설명하는 열정이 존경스럽고 위의 말에 부합된 분이라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둘째는 우리 교육연합신문 전국 애독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이 귀한 자료를 알리고, 국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향후 진로와 직업선택에 도움이 되고 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이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장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없는 이익에 대한 탐닉에 빠진 부류들이 많다. 노동을 조롱하고 성실함을 비웃으며 요행을 미덕처럼 기대하고 비트코인, 주식, 불법도박, 마약, 스포츠베팅 같은 투기에 쉽게 빠져드는 현실의 일탈에 젖어 드는 청소년들에게는 시금석이 되고 나침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노력으로 쌓은 인생만이 결국 흔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은 쉽게 버는 돈이 아니라 땀과 기다림, 인내, 그리고 정당한 성공, 공정함과 책임감, 사회적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고 ▲어쩌다 의사가 되어 ▲추억 속의 나날들 ▲내가 잘 할수 있는 것 ▲나를 위한 시간 ▲흔들리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시에 담다.로 나누어 구성됐다. ■ 보이지 않는 얼굴들 "의사로서 나 자신을 평가한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의사에 불가하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의사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보통의 의사다. 대부분 의사들처럼 내가 배운 지식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환자들과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저자 고병구 원장은 겸손(謙遜)이 넘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슈바이쳐 박사는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의사인데도, 40년 전에는 부산 1급지(광복동, 서면 등)에 개업해서 부를 창조했을 수 있는 충분조건에도 중심지를 벗어나 어렵고 불우한 환경의 당감동을 선택해, 지금의 준종합병원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외아들 고지환 원장도 부산의대를 졸업, 동 대학에서 소화기내과 진료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해에는 소화기 종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SCI급 국제학술지 저널 표지모델로 선정돼 장식한 능력가인데도 대학병원, 대형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족 3명의 의사와 외부 원장 3명과 함께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전혀 과시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다. 또, 책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 멋지게 지을 수 있는데도, 의사 가운을 입고 근엄한 모습을 취한다거나 진찰하는 모습을 택할 법한데, 순하고 연한 녹색 바탕에 별이 새겨진 나무(Tree) 한 그루가 전부일 만큼 겸손하다. 물론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책의 머리말에서 나오긴 한다. ■ 머리말 '무슨 말을 해야 할까?'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의 답으로 주말이면 가끔 아내와 함께 운전대를 잡고 시골길을 달릴 때 고향처럼 느끼는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고목의 모습을 본다. 그래, 저 나무처럼 살자. 저 나무처럼 늙어 가자. 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나는 웃으면서 떠나리라”는 문장을 대하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는 우리에게 열매를 제공하고, 잎은 그늘을, 봄에는 새싹으로 희망을, 여름에는 잎의 그늘로 쉬는 휴식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나목으로 우리에게 인내심과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고병구 원장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90년대 중반 한 직장 동료가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의 수좌스님을 뵈러 간다기에 금일봉을 보시했더니 법명을 하나 받아 왔는데 '하목(夏木)'이었다. 나의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인데 나는 깜작 놀랐다. 우연히도 내 한자 이름에는 나무목(木)이 3개 들어 있어, 나는 내 아이디도 hamoksong으로 쓰고, 호(號)도 하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잊을 수 없는 한마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을 본적이 없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 사람으로 여기던 한적한 시골, 산간벽지의 오지 경북 문경의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오직 농사일만 선택할 수 있었던 운명에서, 그래도 꿈이 있어 전액 국비 지원인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을 때, 김천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재종형(고무림 선생)이 찾아와 아버지와 나의 진로를 의논하던 중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하세요?“하던 그 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고무림 선생의 안내로 오늘날 고병구 저자가 된 것은, 마치 존 레논이 아들을 위해 작사한 Beautiful Boy의 가사 일부를 연상케 한다. ”너의 마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단다 날지 못한다고 미리 겁먹지 마라. 세상에는 너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있단다.“ 그 울타리는 가정, 부모, 형제, 학교, 선한 이웃 등이 있다. 문경에서 못살던, 오직 철도고를 꿈꾸던 소년에게 김천고와 경북의대를 안내한 울타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사람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인생길이 바뀌게 되는 숙명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바로 이 저자도 그 은혜를 입었지만,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과 행복은 유지할 수 없었다. 요즘도 의과대학에 진학 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과외를 받고, 고교 성적이 상위 1~5%에 들어야 하며, 경제적 능력과 부모의 관심과 본인의 숱한 어려움과 특출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드는데, 하물며 50년 전 국립의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재종형님의 선견지명과 본인의 얼마나 혹독(酷毒)한 노력을 했을지 예견할 수 있다. ■ 나의 모교 송설학원 김천고등학교 김천고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마지막 궁녀이자 육영사업가였던 최송설당 여사가 설립, 영친왕 보모상궁으로 책봉, 고종황제로부터 송설당 칭호 하사. 재산 전부를 해인사에 희사 예정이었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의 권유로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을 결심, 1931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평북 전주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와 더불어 민족사학 칭호. 개교 당시 영남의 오아시스로 통함. 지금도 3.1절에 입학하는 전통. 1907년 을사늑약 앞두고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 잡혀간 후 귀국 때는 부산에 상륙해 김천에서 내려 김천고 '정걸재'에 들려 송설당을 친견하였다고 함. 지금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로 전국적으로 240명 선발. 교훈은 ”깨끗하게, 부지런하게“(남자고 아닌 여자고 교훈처럼). 풀어 쓰면 마음(心)은 깨끗하게(眞實), 몸(身)은 부지런하게(誠實)라는 뜻이다. 저자는 김천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자부심이자 자신의 은혜로 여기고 있다.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올해(2026년) 3월 1일 모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 격려사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도산 안창호(1878 ~1938)선생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다.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할 것을 강조. 實은 힘쓰자는 것으로 진실, 성실, 거짓 없는 것을 말하며 역행은 반드시 이루자는 뜻. ■ 연좌제의 희생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무관 후보생으로 중위, 대위 계급을 받고 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6.25때 당숙의 월북으로 연좌제에 걸려 무관 후보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등병 의사가 되어 위생병으로 3년을 보낸 원통함이 있었다. 전역을 석 달 남긴 1980년 10월 어느 날 영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국보위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방송을 듣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은 3개월이라도 군위관으로 보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온다.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 아파 제대 후 한동안 동기들 모임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뒷자리로 물러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년 후 대전 군의학교에서 열리는 아들 지환 군(부산의대 졸)의 임관식에서 대위 계급장을 다는 아들의 모습에서 ”비로소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구나“하는 위로와 묘한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연좌제(緣坐制) : 범죄자의 친족 또는 기까운 사이, 범죄자의 주변인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제도. 해방 후 납북, 월북자 가족은 공무원은 물론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당함. 1980년 헌법 금지됨. ■ 잊을 수 없는 추억 추억에는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과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좋은 추억은 잔잔하게 스쳐 지나가는 산들 바람같은 어릴적 동심의 추억부터 기억하기 좋은 것. 나쁜 추억은 죄를 지었거나 상처를 입힌 잔인한 추억이고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은 미숙함으로 수치(羞恥)가 담겨있는 추억으로 자신이 좀 더 자랄 수 있었던 것이고, 가슴 아픈 추억은 칼날 같이 날카롭게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보석 같은 추억이고 나를 자라게 하는 추억이다. 저자는 시간은 과거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요술 지팡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세월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을 심어 주는 일에 내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 꽃과 바람과 물 사방이 병품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문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보이는 것이 산과 꽃과 바람과 물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 매일 병원 건물 사무실 속에서 환자만 대하는 숨막히는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만 산뜻한 들국화가 되고, 시원한 솔바람이 되고, 맑은 물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두고두고 이 자리를 지키다가 고향 언덕에 재로 뿌려지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한 부분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감을 느끼며, 70대 중반을 넘긴 저자나 독자인 내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면서 그래도 남은 삶의 막바지에서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로 1년 늦게 입학했고, 의예과 시절엔 고열, 오한을 동반한 장티푸스에 고생했고, 43세 땐 갑자기 대장에 천공이 생겨 장 절제 수술과, 곧 B형 간염에 걸려 친구들 사이엔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처럼 허약하고 병치레 심한 몸이 어느 날 B형 간염균이 사라졌고, 이것은 로또 당첨될 만큼 드문 확률이라고 한다. 그 후 식사를 잘하고 60이 넘어 운동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고기와 채소, 날과일과 비빔밥 등 ”밥이 보약이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즐겁게 먹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위의 내용은 의사의 전문적 처방이 아닌 일반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말하는 순수한 지혜의 덕담 같아서 더욱 친근감과 신뢰감이 든다. 의사인 저자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오래 사세요“란다.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면 이런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위 내용 외에도 '소 팔자 인생', '나를 위한 시간', '눈썹과 인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굽은 인생길' 등 수많은 울림과 되새겨야 할 내용과 말들이 많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생각 났다. ”절망을 느낄 때 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진리와 사랑의 방법은 늘 승리했다. 우리에겐 선과 진리와 사랑은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준다. 글 전체가 연좌제에 대한 불평 즉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약간 주먹을 쥐고 울분을 터뜨린 것 외는 모두가 긍정적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심장을 안정시켜 주었다. 결국 자기 직분을 다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기쁨과 행복이 멀리 있다 생각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지난 3월 1일(삼일절)날 모교 김천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로 ”격려사(檄勵辭)“를 한 내용을 소개한다. ■ "송설 후배들에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는 비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오늘 여러분처럼 김천고 입학이었으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김천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김천고는 내 정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우리 김천고는 일본의 압제하에 있던 암흑기에 대한의 미래를 위해 송설당 할머니께서 세운 민족학교이다. 초대 정열모 교장 선생께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학교는 공립전환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었다. 이처럼 유서깊은 학교에 여러분이 들어오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며 영광이다. ---중략--- 의사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후배 여러분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시오. 장차 술과 담배, 혹은 다른 약물들을 가까이 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단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70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큰 수술을 받았고, 수개월 동안 병을 앓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하루 8시간 이상 환자를 보고, 나머지 먹고 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은 뭔가를 하면서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진다. 별도의 휴식 시간을 갖지 않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나처럼 바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바빠도 성취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가진 비결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길을 찾아 실천하시기 바란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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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래의 만세, 기념을 넘어 도시의 품격으로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3월의 동래는 단순히 봄을 맞이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1919년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며, 도시의 정체성과 책임을 동시에 환기하는 무대가 되었다. 동래구가 주관한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는 해마다 열리는 기념행사라는 틀을 넘어, 지역 역사자산을 교육과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하려는 의지가 담긴 자리였다. 행사는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 참배로 시작됐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헌화는 형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어 내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이 이어졌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태극기를 들었다. 그 장면은 세대 간의 기억 계승이라는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동래구가 역사적 동선을 세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동래시장과 수안인정시장 일대를 잇는 만세 행렬은 1919년 당시 실제 만세운동이 전개됐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과거의 현장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게 함으로써 체험형 역사교육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래는 부산에서 가장 치열하게 3·1운동에 응답한 지역이다. 장터와 골목, 동헌과 읍성 일대는 민족의 자존을 외치는 공간이었다. 평범한 상인과 학생, 이름 없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래구가 이러한 역사적 자산을 도시 브랜드의 일부로 재해석한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올해 행사에서는 동래 출신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강화됐다. 지역 인물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구체적 서사로 전달했다는 점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역사적 인물을 지역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재조명한 점 또한 교육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수동식 태극기 인쇄 체험과 독립선언서 낭독 프로그램은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먹 냄새가 번지는 인쇄 체험 공간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나요?” 이 질문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성과일지 모른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는 순간 살아난다. 동래구가 마련한 이 재현의 장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3·1운동의 본질은 ‘만세’라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결단,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았던 책임에 있다. 오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그 장면을 되살린다. 그렇기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가치 앞에서 용기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래구의 이번 재현행사는 지역 역사자산을 문화·교육 콘텐츠로 확장한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학교 교육과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참여 확대, 역사 공간의 상시 해설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이어진다면 동래의 3·1정신은 도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품은 도시는 단단하다. 기억을 자산으로 만드는 도시는 품격이 있다.동래의 봄바람 속에서 울린 만세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동래가 어떤 도시로 서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기념을 넘어 교육으로, 교육을 넘어 책임으로 이어질 때, 동래의 3·1정신은 도시의 품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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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省察?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금 우리의 경제 구조, 정치 구조, 교육 구조가 새로운 방향으로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교육자들도,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기업인들도 다 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누구의 철학을 취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것!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포착해야 할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나타난 철학을 훈고하거나 끌어들여 사용해 보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신적 독립을 시도해 보는 일이 아닐까? 선진 사회, 선진 국가 수준으로 상승하는 일이 아닐까? 이쯤에서 1880년에 태어나 1936년에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의 말을 다시 듣는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생각, 즉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사회나 모두 각자가 가진 시선의 높이를 넘어서 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살아야 딱 시선의 높이만큼 산다. 그래서 시선의 높이는 치명적이다. 시선이 높아야 마음이 크고, 시선이 낮으면, 마음도 작다. 작은 마음은 쉽게 차고, 큰마음은 어지간한 양으로도 잘 차지 않는다. 쉬이 차는 작은 마음은 쉽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르는 마음에 자만과 교만이 깃든다. ‘마음의 크기’가 삶의 크기다. 그래서 老子도 말한다. ‘大器免成’, 진정 큰 그릇에는 완성이 없다. 큰 그릇이 되는 건 끝이 있는 '완료형'이 아닌 계속해서 완성해 나가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만족함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혁신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큰 가르침이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근대 유럽의 정치구조가 나타나는 계기가 된 평화조약)부터 문명은 ‘국가’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적인 새로운 국제질서가 시작되었는데, 1800년대 중반부터 ‘근대’의 큰 흐름이 동아시아에 닥칠 때,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 처해있어, ‘근대’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학습·수용할 수 없었다. 공부도 시켜서 할 때와 주체적으로 알아서 할 때 사이의 실력에 큰 차이가 나듯이, 국가나 문명의 형성과 학습도 주체적이냐 종속적이냐에 따라 큰 실력 차이를 내게 된다. 개인이건 사회이건 국가이건, 앞선 생각으로 주도권을 갖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갖는 분기점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입인들만 앞장 서서 실천을 한다. 왜, 실천을 하느냐? 안 하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교육자들, 관료들은 앞장서서 실천을 안 해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기업인들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한 공동체의 승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인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데,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동시에 생각하는 예민함이 있다. 인문학은 생존과 직결되며,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 서는 예민함의 필요함을 일러주므로 기업가들이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늘 어떻게 해야 할까?, 즉 전방에 보초를 서는 척후병처럼, 모든 주변 상황을 예민하게 주시하는 경계 태세, 즉 조짐을 찾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불안하고 모호하다. 불안과 모호함을 견디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경계에 서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다. 결국, 모호함과 두려움을 오롯이 감내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용기이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함량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려준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려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선진국에서, 즉 일류 국가에서 인류와 미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메시지’, ‘비전’, ‘생각들’을 받아들여서 그 사람들 대신에 잘 수행해 왔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인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창의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을 조금 더 앞서가는 일이다. 그럼,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계속 꿈꿔보는 일이다. 그럼, 창의력과 상상력을 높이는 길은 무엇일까? 대답하는 인재보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높이는 문화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특히 교육은 모든 정치 구조, 인재의 틀을 만드는 디딤돌이다. 한국 사회에서 요체는 뭐냐? 국민 각자가 역사적 책임성을 갖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의 역할’을 몸소 수행하는 것이다. 교육은 역사적 책임을 몸에 배게 하는 훈련장이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시민이 제대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 교육, 행정을 가지고 욕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시민들이 다 만들었다. 시민들이 만든 정치 구조며, 교육 구조, 교육 정책이다. 다 우리가 만든 것이다. 시민이 국가 운영의 방관자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 관료, 교육자들을 욕하기에 앞서, 그분들을 만든 근본이 우리 국민이라는 역사적 책임성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 역사와 사회를 내가 책임진다고 하는 자각과 실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역사적 책임성을 갖추는 것은 한국 사회의 발전과 관련되는 일이고, 우리의 생존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이것을 자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연수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는 일로써 자신의 역할이 끝나서는 어렵다. 이 역사는 우리의 눈물과 피와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일은 앞으로도 쉼 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모두가 曾子 선생의 ‘吾日三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曾子 선생의 성찰은? 인간성의 실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모든 정치, 경제, 교육의 구조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발휘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이 말도 曾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선조들의 진정한 삶의 가치인 ‘살림살이’, 즉 ‘三一哲學’에 이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주로 제자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숙제는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인간의 본질을 묻게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만드는 존재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인간은 변화를 만들며 산다.’고 최진석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문화적 존재다. 인간이 만든 세계, 곧 문명, 인간이 안 만든 세계,자연, 두 무대에서 사는 인간은 보이던 것에서 살다가 안 보이던 것으로 이동해서, 자기 영토를 건축하는 존재다. 해석되지 않은 것을 꿈꾸는 존재고, 생각하는 존재다. 어떻게 변화를 이루는가? 관념에 대한 생각과 질문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 변화는 어떻게 만드는가? 생각을 통해서다. 질문하고 관념을 깨고,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변화를 만드는 삶을 살 것인가? 변화를 수용하는 삶을 살 것인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종속적인 삶을 살 것인가? 자신에게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짐으로써 자신을 변화시켜 간다. 행복과 자유 또한 질문의 대상이지, 행복과 자유는 실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꿈꿀 수 있어야, 자유나 행복을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세계에만 매몰되지 말고, 질문하며 추상의 세상을 사유하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고 묻는 성찰의 시간이 현재의 자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왜? 인간이 변하고 달라지는가?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해결해야 될 내용과 방법도 달라진다. 그 해결하는 내용과 방법을 다르게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인간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은 그냥 들쑥날쑥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人文이라고 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크고 작은 선택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하나둘, 세어보는 삶, ‘自快’하는 삶의 길이지 않을까?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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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스마트팜으로 도약하는 중장년, 제2의 재배를 꿈꾸다
[교육연합신문=이고은 기고] 은퇴 이후의 삶은 더 이상 ‘일의 끝’이 아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지금, 중장년에게 은퇴는 또 하나의 선택지 앞에 서는 전환점이다. 문제는 선택의 폭이다. 제조업 구조조정, 기술 변화, 산업 전환 속에서 중장년이 다시 설 수 있는 현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농업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데이터와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제2의 재배’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스마트팜은 더 이상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농업이 아니다. 센서로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PLC와 제어 시스템으로 온·습도와 생육 조건을 관리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산업이다. 이는 기계, 전기, 설비, 자동화 분야에서 오랜 현장 경험을 쌓아온 중장년에게 결코 낯선 영역이 아니다. 공장에서 설비를 다뤘던 경험은 이제 작물을 키우는 기술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기반 스마트팜 운용·관리 교육과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해당 과정은 단순한 귀농 교육이 아니라, 스마트팜 자동화 이론, PLC 제어 실습, 센서·계측, 환경제어, 설비 보전, 빅데이터, 드론 활용까지 아우르는 실무 중심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충남캠퍼스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스마트팜 중장년 과정은 ‘배워서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쓰는 기술’을 목표로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마트팜을 단독 산업이 아닌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융합 영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팜 설비는 결국 기계와 전기, 제어, 유지보수의 집합체다. 센서 고장 진단, 제어 로직 수정, 설비 트러블 대응 능력은 중장년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 재배 인력을 넘어, 스마트팜을 ‘운영·관리’하는 전문 인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 산업 구조 측면에서도 스마트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충청남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 조성과 디지털 농업 확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설비를 운영하고 관리할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스마트팜은 지어졌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사람은 부족한 현실이다. 중장년 인력이 이 공백을 채운다면, 개인의 재취업 문제와 지역 산업의 인력 수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제2의 재배’란 단지 작물을 다시 심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경험을 새로운 산업에 옮겨 심는 일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던 손은 이제 스마트팜 설비를 관리하고, 데이터를 읽던 눈은 작물의 생육 상태를 분석한다. 과거의 경력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토양 위에서 다시 자라난다.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묻는다.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동시에 답을 제시한다. “당신의 경험은 아직 쓸모가 있다.” 기술로 재배되는 두 번째 인생,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선택이 아닌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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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장에 담긴 감사…세대 간 따뜻한 어울림
[교육연합신문=이정아 기고] 아침 등굣길에서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학교, 그 인사에 어르신들이 미소로 답하는 학교. 나는 그 짧은 순간이 교육의 시작이라고 믿어 왔다. 수영초등학교에는 오랜 시간 학교를 지켜 주신 지역 어르신들이 계신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고, 운동장과 복도를 정리하며,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맞아 주는 분들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였지만, 그분들의 하루하루가 모여 학교의 일상이 되었다. 학교는 대한노인회와 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들께 감사의 상장을 전달했다. 사실 상장은 형식에 불과했고,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고맙습니다”, 그리고 “존중합니다”라는 말이었다. 상장을 받으시던 한 어르신의 손이 떨리는 모습을 보았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상장”이라는 말씀에, 그동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도움을 받아 온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아이들한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지만, 학교는 그 마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단상에 오르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존중을 알고 있었다. 그 박수는 연습된 예절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쌓인 신뢰의 표현이었다. 수영초등학교는 현재 부산광역시교육청 인성교육 연구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인성교육은 특별한 프로그램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교문 앞 인사 한마디, 함께 지켜낸 하루의 경험 속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의 묵묵한 봉사는 아이들에게 책임과 배려, 공동체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사는 어르신들께 다시 학교에 오고 싶은 이유가 된다. 이 순환이 바로 학교와 지역이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의 힘이라고 믿는다. 학교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과 연결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앞으로도 수영초등학교는 어르신들과 손을 맞잡고,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따뜻한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상장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감사와 존중,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그 약속을 지켜 가는 것이, 내가 교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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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선행학습? 복습이 더 중요하다.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우리나라 제1호 뇌과학자라 칭송받으며, 치매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뇌과학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존경받는 석학인 가천대 의대 서유헌 석좌교수(한국뇌연구원 초대원장 역임)는 수많은 강연, 교육에서 항상 ‘적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필자는 원장님께 그 사유에 대해 물어보았으며, 다음과 같이 답변을 주셨다. “아동의 뇌는 발달 과정에 있기에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한 맞춤형 교육을 해야지 무리한 주입식 교육은 학습에 관한 뇌 부분을 손상시켜 지속적인 학습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아이마다 각자 다른 뇌 발달 과정이 있기에 학부모, 교사는 이를 항상 지켜보면서 적절한 언어학습을 해야지, 무리한 조기 영어교육은 언어에 관한 뇌 신경회로를 망쳐서 국어도 제대로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하시곤 했다. 현재 국내 다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신경과학자들이 과도한 선행학습의 폐해를 지적하며, 아동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고 경고하고 있으나, 선행학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남들은 다 하는데’와 같은 부모의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약 4조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초고령화 사회, 저출산으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내 아이만큼은 더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사교육 시장은 더 커지고 있다. 선행학습 대부분은 주입식 교육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의 주입은 나중에 정보를 수정하기 어렵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뇌는 인지된 정보를 일단 해마(hippocampus)에 저장한다. 그리고 수면 동안 그 정보를 다시 끄집어 내 고차원적 뇌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frontal lobes)과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서 정보를 분류하고 재조립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해마에 저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선행학습으로 뇌에 각인된 잘못된 정보는 수정하기 어렵기에 다수 전문가들은 선행학습을 말린다. 오히려 복습을 통해 정보의 정확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사교육 시장의 유명한 강사들도 방송 등에서 선행학습에 매달리지 말라고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유아기 때 발달된 뇌는 죽을 때까지 그 지능을 유지한다는 근거 없는 속설과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뇌는 망가지고 있다. 전두엽에 과잉 정보를 주입하는 것만으로는 학습량에 한계가 있다. 또한 주입식 교육으로 올바른 인성 육성,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는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할 수 있다. 최근 수능 만점자로 의대에 진학한 수재가 여자친구를 살해하였던 사건을 볼 때(물론 극단적인 사례로 보편화하기는 어렵다), 오로지 입시경쟁만을 위한 교육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유아기, 아동기는 입시경쟁보다는 교사, 학부모와의 강한 스킨십으로 오감을 자극하여 뇌가 전체적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에 자극을 주어 올바른 윤리관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한 외국어에서도 국어를 잘하는 아이가 외국어도 잘하는 말처럼 국어와 문법, 특히 문법에 대한 체계를 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도 인간처럼 의사소통을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언어와 다른 점은 문법에 있다. 동물은 생존 본능, 배고픔, 천적에 대한 공포 등을 위해 신호를 주고받지만 그게 전부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문법이 수반된 언어를 사용하기에 고차원적인 표현, 추상적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국어 문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문법에 대한 개념, 체계를 우리 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외국어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 주입식 교육으로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초연결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원하는 학습,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창의성도 발휘되고 언어능력도 발달이 되겠지만, 그것이 무리한 선행학습과 과도한 지식 주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다른 두뇌 발달 과정을 가진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돌봄의 의무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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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선행학습? 복습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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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다뉴브강의 야경 부다페스트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아내와 함께 동유럽과 발칸반도 6개국을 여행한 지 벌써 8일 차,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3시간 30분 버스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다. 동유럽 2대 야경 부다페스트에서 나이트 워킹 투어로 눈부시게 멋진 전경이 보이는 ‘어부의 요새’,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해 건설한 영웅광장, 역대 헝가리 국왕의 위관식이 거행된 마차시교회 전경 등을 관람해 밤 10시 30분에 예약된 다뉴브(도나우)강을 따라 유람선에 탑승하여 유럽 최고의 야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부다페스트 최고의 관광을 위해 우린 전용 유람선으로 1시간을 둘러봤다. 2001년 중국 상해, 계림, 항주, 소주를 여행했을 때 계림의 이강(離江)에서 배를 탔을 때는 주변 경치가 우리와 다른 이색적인 산으로 한 폭의 산수화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인공으로 된 디지털 문명으로 승화된 그림이랄까? 우리나라도 서울의 한강, 부산의 광안리 야경도 독보적이지만 세계인이 어울려 역사적 현장에서 보는 즐거움은 사치스러운 낭만도 함께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왜 하필 국명이 헝가리(Hungary)일까? 평소에 의문이 많았는데 그 나라를 직접 방문하니 더욱 궁금증이 발동했다. 훈족, 흉노(匈奴)족, 헝거리(배고픈) 등 연상되는 단어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기원전 3세기에 북아시아에 존재한 훈족은 몽골을 기원으로 스키타이와 게르만족의 혼혈이라고도 하는데 코트족과 게르만족을 정복, 로마 영토로 도망가게 한 후 유럽에서 방대한 영토를 세운 종족으로 전쟁 때는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가죽까지 벗겨 잔인한 살생을 했기 때문에 게르만족들뿐 아니라 유럽인들은 치를 떨었다고 한다. hun에서 어원을 연관시킨 것 같다. 흉노족 글자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어감이지 않은가? 중국의 진시왕은 흉노족 침입을 막으려고 그 장대한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하니 그 희생자는 얼마나 됐으며 부역을 한 첫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이 된다. 발음이 비슷한 영어의 ‘배고픈’( hungry)은 또 어떤가? 인간에게 가장 가혹해 비참한 것이 굶주림 즉 배고픔인데 그땐 영어를 하찮게 여겨 그런 국명을 지었을까? 그 수도 ‘부다페스트’는 또 어떤가? 언덕 지역인 부다와 평지 지역인 페스트가 합성된 수도 부다페스트는 더 어감이 좋지 않다. 페스트는 일명 흑사병으로 쥐벼룩에서 전염되는 병으로 1차 6세기~8세기에 5천만 명을, 2차 14세기~19세기까지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공포의 전염병에서 국명과 함께 수도(首都) 이름도 참 우연이고 묘한 이미지를 느끼는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사의한 나라다. 버스가 도착해 시내를 거니는 사람들 모습을 보니 얼굴은 서구인이지만 키가 대체로 작은 서양 사람인 점이 이색적이었다. 반대로 강 이름은 참 예쁘고 정감이 간다. 영어로 다뉴브, 독일어로는 도나우 강이다. 독일에서 발원해 중부 유럽과 남동유럽을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이 강을 거쳐가는 많은 나라와 수도들이 있지만 유독 다뉴브 하면 부다페스트가 유명해진 것은 그 화려한 야경 때문인 것 같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쓴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이오시프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도나우강의 잔물결’도 유명하다. 그 아름다운 강에 우리에게는 2019년 5월 29일 이 강에서 관광 중이던 한국인 25명이 다른 유람선과 충돌하여 침몰 사고를 당한 아픈 기억도 있다. 야경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 제2의 큰 국회의사당 전경이다. 세계 제1의 국회의사당 건물은 영국의 템스강 북쪽에 위치한 복도 길이가 4.8km나 되는 웨스트민스터 궁인데 20여 년 전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그 외모와 언뜻 비슷한 모습으로 보였다. 건국 천년을 기념해 세워진 건물 외벽에는 88명의 통치자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언덕인 부다와 평지인 페스트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인데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고전적이면서 웅장한 자태의 다리로 그 너머로 보이는 부다성, 마차시 성당, 그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19세기 후반 축조한 어부의 요새(어부들이 민병대를 조직해 성채를 지킨 데서 유래) 등이 조명과 함께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2002년도 코로나가 해제되고 난 후의 도나우강 선택 관광 비용이 20유로였다고 하는데 불과 2년 만에 3배 오른 1인당 60유로(약 한화 9만 원)이니 적은 비용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에서 선택 관광비 중 제일 높은 것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 방문이었는데 1991년 유고 내전 때는 연합군의 함포 공격을 막기 위해 유럽의 지식인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파괴를 막았다고 할 만큼 가치 있는 곳이었는데, 첫째 성벽 투어, 둘째 아드리아해를 배를 타고 성채 도시를 둘러보면서 약간 올려 보기, 셋째는 소르지아 산에 밴을 타고 올라가 성채 도시를 바다와 함께 내려다보기인데 1인당 110유로였다(한화 165,000원 정도). 바다를 낀 도시의 주황색 지붕과 하얀 대리석의 이색적인 마을 풍경과 코발트색 바다로 해양과 휴양도시를 감상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를 느낄 만한 코스였다.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전경은 낮에도 크고 웅장해서 멋있지만 밤에 보는 야경은 환상적이다. 우리는 전세 낸 그 유람선에서 선내와 선상을 오가면서 탄성을 질러가며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나이를 초월해 남녀를 불문하고 마치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에서 즐기는 그런 행동으로 봄의 쌀쌀한 야간의 날씨를 만끽하면서 다시 오기 힘들 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람선의 춘야를 맘껏 즐겼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보니 와이프는 소중히 여기던 선글라스도 없어진 줄 모르고 10여 년 전에 친구들과 방문했을 때는 낮에 유람을 해서 또 다른 풍경에 감탄을 했고, 아쉬움과 동시에 즐거움에 푹 빠진 하루가 됐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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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다뉴브강의 야경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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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하루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삼라만상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은 아마 이름일 것이다.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절대의 세계는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없기에 ‘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相對의 세계에서는 記憶하고 기리기 위해 이름을 짓는 것이었으리라. 우리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를 한자에서 살펴보면, ‘이름 名’이라는 글자는 ‘이름’과 ‘명’이라는 우리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름이라는 글자는 ‘∼에 이르다.’ ‘드러낸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名’이라는 글자는 ‘해의 발(夕)’이 현재에 이르는 곳(ㅁ)를 의미한다. 따라서 태어나서 현재에 이르는 곳이 名이다. ‘어디에 이르다.’이다. 그래서 이름을 듣거나 인터넷에서 이름을 치면 그 사람의 현재 위치나 상황을 알 수 있다. 名(이름 명)이라는 한자에서, 이름을 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우리말 명은 ‘드러나다’라는 뜻을 갖는다. 이름을 보거나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나이나 관직에 이르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지위에 맞게 언행을 일치하게 하려는 선인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사회 기풍은 어디에서 찾고 볼 수 있을까? 이제까지의 ‘이름 명’하고 외우는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자는 모양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왜 ‘명’이라고 했을까? 이름도 명도 우리 말이지 않은가? 우리말을 잘 알아야 한자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한자의 생명은 음가(소리)를 아는 데 있다. 그러면 우리말도 한자도 잘 알아서 어휘력의 신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어휘력이 중요하고 그래서 어휘력 신장을 위한 각종 연수회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 말의 의미를 가르치는 연수회는 있기나 한가?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을 대변한다. 그래서 인사 발령 시기가 되면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기관장으로 온다는 이름만 보고도 그 기관의 미래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인간의 언어 시작 또한 사물이나 인간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했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저물어가는 나라에 절망하고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이야기했던 한 청년인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의 첫아들에게 지어준 필립(必立)이라는 이름은 조국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역사에 기록된 사람의 이름을 보면서 손에 불끈 힘을 쥐면서 “나도 저처럼 되리라.”는 희망의 경험 아니면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 왜 그랬을까?”하고 힘이 빠지면서 이름값도 못한다고 생각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私心을 버리고 公心으로 살았다는 삶의 가치를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을 드리는 것이리라.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가치 있는 삶을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같은 이름을 갖고서 빛나는 이름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름에는 부모, 온 가족의 희망이 응축되고 이어져 내려와서 지금에 있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김소월이 ‘招魂’이란 시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에 헤어진 이름이여!”라고 절규한 것도 이름과 생명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룬 것이라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 사람의 이름에는 깊은 철학과 운명이 나타나 있다. 가르침이란 어쩌면 후세들에게 좋은 이름을 남기도록 마음을 다잡고 행동으로 옮기는 최고의 값있는 어른들의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배우는 사람이 “나도 저분처럼 되어야지”하고 다짐을 하게 하는 과정은 아닌가? 그저 남의 이론이나 먼저 읽은 것을 전달해 주거나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무나 돌에도 무늬가 있듯이 사람의 말과 행동에도 무늬가 있다. 가르침은 제자들로 하여금 진리에 도달하도록 하는 데 있다. 진리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삶의 이치인 것이다. 가르침의 내용은 실천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란 그 속에 사는 어른들의 모습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어른들이 소중히 여기는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럼 어른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는 모습은 아닐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외국의 우수한 문물을 받아들여서 우리의 것을 세계의 것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혹시나 외국에서 공부했던 것을 자랑하고 그 문물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혹시나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것을 폄훼하는 일은 없었는가? 더 나아가 우리 후세들에게 事大主義 사고를 주입하게 한 일은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말을 배우는 것보다 외국말을 먼저 배우게 하고, 거기에서 외국의 것이 우수하다는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일은 없었는가? 대화 중간에 영어를 섞어서 사용하면 많이 배운 사람이라는 태도를 부추기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가? 이름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로부터 구분되게 해줌으로써 ‘자아’를 부여하게 한다. 그래서 이름은 인간에게는 거룩하고 무거운 과제라고 이규호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남이 아닌 본인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학교에서는 이름을 소중히 하는 행사는 있는가? 아니면 출석부는 있는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눈 맞춤을 해 본 적은 얼마나 되는가? 자신의 마을 이름과 유래를 아는가? 가슴에 기억하는 이름은 누구인가? 이제마(李濟馬, 1838~1900)는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보약은 현인을 현인으로 알아볼 줄 아는 것 외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賢其賢의 사회 기풍이 보다 좋은 사회로 가는 보약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賢者들의 이름이 이야기되는 사회를 그려보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 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하는 안창호 선생의 외침이 주는 의미를 숙고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의 자세는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안부를 묻고 꿈과 희망을 그리는 자신과의 아침 인사는 유일무이한 삶의 향연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더 나아가 하루에 한 분의 성인을 불러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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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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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신경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최근 대구광역시 교육청에서 장애인 차별 발언 논란이 있었다. 장애인은 일반인과 다르다는 그릇된 인식이 여전히 사회에 팽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에는 유명 웹툰 작가의 자폐 아동 소송 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피해와 논란이 제기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장애인, 특히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개선은 미진하며, 계속 개선돼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사회적 구분에 의한 것이며, 신경과학적으로는 뇌의 구조와 기능이 각자 다르다고 본다. 예를 들면 자폐아의 경우, 뇌 발달 과정이 다른 아동보다 느려서 자폐 성향을 보이는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뇌 발달에 따른 아동에 대한 자세한 관찰로 이를 과학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뇌 구조와 기능이 일반인과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를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이라고 하며 ADHD, 자폐증, 서번트 증후군과 같이 유아 뇌 발달을 중심으로 다양한 증상을 연구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연구팀은 ADHD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ADHD의 대표적인 증상인 감각에는 빠르게 반응하나 지속력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원시시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수렵과 채집이 유일한 생존이었던 시대에는 자원을 빨리 채취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에 빠른 감각과 대응이 중요하며, 이러한 요소가 유전적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발표했다. 농경사회 이후, 정착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기준으로 ADHD를 보면 이상행동이지만, 신경과학적으로는 뇌에 저장된 생물학적 요소의 발현과 계발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다. 과거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며, 종속된 관계라고 오랫동안 인식되었으나, 르네상스와 근대 산업혁명 이후, 여성 인권이 향상되며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꽃인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0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극단적으로 정신적 질병으로까지 지목되었던 동성애는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인식이 전환돼 법률적 권리로까지 인정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기본권에 가까운 개념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최근 법률에서 동성 부부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현재 항소심 중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만큼은 잘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신체장애는 최근 신경과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융합기술 발전으로 다양한 혁신적인 대체 기기, 재활 기기가 등장하고 있어 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 정서장애를 겪고 있는 장애인은 외형으로는 일반인과 구분하기 어려우며, 또한 사회적 수용성이 낮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부는 「교육기본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정서장애를 포함하는 ‘국가교육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장애인과 일반인들의 통합학급을 운영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일상생활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장애인에 대한 교육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통합이라는 교육목표에도 불구하고, 교육-취업으로 이어지는 생애 전주기의 돌봄 과정의 활성화가 더 필요한 현실이다. 국가 주도의 장애인 통합 교육도 중요하지만, 학부모, 교사, 간병인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신경과학에 근거한 뇌 발달 성과의 적용, 그리고 교육-복지-의료의 각 분야에 대한 장애인의 처우 개선을 위한 통합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사회적 인식, 이해, 실천, 정서의 4개 분야에 대한 장애인의 입장에서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장애인 입장에서 우리 일상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과학에 기반한 경험적, 실증적 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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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신경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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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너무나도 복잡한 입시전략, 재미있고 쉽게 이해하는 통로가 필요해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필자가 얼마 전 유튜브와 같은 SNS를 사용하는 걸 최대한 자제하라고 했지만,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하여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SNS 사용 시간을 최대한 줄이면서 목적 지향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최근 관심 사항은 2028년 대학 입시 개편으로 고교학점제와 같은 정책 변화이다. 각종 검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교육부의 정책 자료는 너무 방대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각 대학별로 어떠한 입시전형이 나올지 모르기에 ‘공부 아닌 공부’를 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교육 크리에이터(Creator)를 중심으로 교육 정책, 입시전략 등을 압축해서 정리한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사교육 시장에서 유명한, 소위 ‘일타 강사’를 내세운 것부터 수험생들이 나와서 입시를 설명하는 것 등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교육 콘텐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채널은 따로 있다(구독자 수 약 150만 명). 크리에이터는 5수로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자로, 본인의 입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의 변화, 흐름, 전망을 제시하고, 학과 진로와 취업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한 개인 맞춤형 교육 컨설팅까지 제공하고 있어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 15분간의 영상임에도 실속 있는 내용, 예능으로 포장된 집중감으로 필자도 구독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교육정책 홍보에서도 재미와 예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뇌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두 가지로 구분한다. 2009년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공동연구팀은 뇌가 재미를 느끼는 원리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추리와 추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우측 전두엽(Frontal Lobes)이 크게 반응했으며, 논리적으로 충돌을 느낄 때(개그, 코미디적 요소)는 시각과 갈등을 담당하는 전대상 회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뇌는 두 가지 영역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고 한다. 재미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의 수준을 넘어서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등 뇌과학 기반의 교육 방법 개발에 큰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의대 증원으로 인해 수도권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의대가 아니면 대학이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는 것 같고, 초고령 사회, 저출산(저출생)으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에 적절한 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의대 말고도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회 변화의 새로운 물결에 대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것을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육과 정책 홍보를 위해서는 재미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뇌는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만 시각적, 청각적으로 반응한다. 대통령이 혁신 행정의 사례로 제시하였던 ‘충주시 홍보맨’과 같은 사례처럼 교육정책 홍보도 재미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 재미있는 가운데 진지한 콘텐츠의 내용과 시대의 흐름을 알려 정책 홍보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키워드만 강조하는 고리타분한 홍보 영상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기존의 획일적인 안내, 홍보방식에 뇌는 반응하지 않는다. 공부도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 효과성이 있듯이, 홍보에서도 재미를 강화하는 양질의 콘텐츠로 국민 수요를 충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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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너무나도 복잡한 입시전략, 재미있고 쉽게 이해하는 통로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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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프라하의 봄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이번 동유럽과 발칸반도 6개국 여행(2024.05.24.~06.04.)은 10여 년 전 아내가 친구들과 다녀온 많은 여행지 중 꼭 부부가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해서 과도한 부담과 활동 에너지를 고려해 함께 용기를 낸 곳이다. 笑而不答 心自閑(소이부답 심자한; 웃고 대답 안 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구나)의 자세로 경치나 사물을 보고 나 스스로 즐기기만 하면서 마음에 여유로움을 얻어 편안한 자세로 일정을 보내려고 했다. 위의 문구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중에 나오는 말로 나도 10년 후쯤 되면 “그 시절 참 아름다웠다. 지금은 내가 어떤 모습과 어떤 상태로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문득 들자 참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 제목을 ‘프라하의 봄’ 대신 2일 차 방문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으로 널리 알려진 ‘미라벨 정원’이 됐을 것이고, 음악을 좋아했다면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그림을 좋아했다면 비엔나의 ‘쉔부른 궁전’ 혹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이 됐겠지만, 나는 우리나라에 6.25 때 북한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미운 소련이 60년대 동구권인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동구 여러 나라에 절대적 세력을 떨쳤던 그 나라들에 청소년기에 깊은 연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고, 특히 1968년 1월 5일 집권한 알렉산드르 둡체크(당 제1서기)를 비롯, 개혁파들이 민주화를 시도하자 자본주의 부활이라 믿었던 소련이 8월 21일 밤 장갑차와 탱크를 보내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점령, 시민의 민주화 운동을 강제로 막아 전 세계의 비난이 가중되었고 72명이 사망하고 266명이 중상을 입은 역사적 사건이다. 1969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제가 수립돼 1993년 결국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고 60년대 경제 침체, 서툰 소비에트식 산업화 방식 등으로 한 때 공산주의 국가로 낙후됐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신성 로마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 독일과 국경을 이루면서 독일인의 박해와 지배를 받았고, 1945년 5월 나치독일 항복 후 소련군 진주, 1989년 11월 동유럽 혁명결과 바출라프 하벨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자유주의 정권이 됐으며 1990년 사회주의 공화국서 연방 공화국주의로 전환, 1991년 6월 체코 주둔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연방제 공화국이 되고 체코가 유럽연합, EU, 나토에 가입하자 반대하던 슬로바키아는 결국 연방을 해체하고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군사 무력 마찰 없이 해체된 이 사건을 ‘벨벳이혼’이라 부른다.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연속극 ‘프라하의 연인’을 방송해 어떤 이들은 프라하를 더 잘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패키지여행으로(package tour) 32명이 함께 출발했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동유럽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전 동독쪽) 등 6개국 12일간의 일정이다. 인천에서 KE945를 타고 프랑크푸르트까지 13시간 50분을 타고 갔다. 20여 년 전 서유럽 6개국을 여행했을 때는 독일항공 루프트한자를 타고 갔는데 10시간 정도 걸렸다.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라 러시아 상공을 통과할 수 없어 회항하기 때문에 똑같은 코스에 시간이 엄청 소모됐다. 패키지여행은 각자 다양한 집단이 모이기 때문에 때론 엄청 불편할 수도 있고 여행을 망칠 수도 있어 요즘 젊은 층들은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을 선호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고집과 주장이 주위를 어지럽게 만들며 반대로 한 팀의 배려와 향기가 여행을 향기롭고 훈훈하고 화목하게도 만들 수있다. 다행히도 이번 팀은 서로 배려하고 양보할 줄도 알고 상대를 위하는 팀들이라 여행이 끝난 지금도 그 얼굴들이 한 번씩 떠 오르고 또 역사적 배경과 설명으로 지적 양식도 고양되고, 분위기를 잘 리드한 K가이드와 각 나라 마다 친절한 현지 안내원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여행, 언제나 가슴 설레고 떠나고 싶은 욕망의 심연, 막스 피카르의 '사랑의 얼굴'이란 시 속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이 있다. 지구가 그 얼굴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다. 그러나 '그 얼굴 속에 꽃들이 남아 있다.'는 시구처럼 바로 여행 그 자체가 아름다운 여인이고 지구이고 내 마음 속에 꽃이 되어 남아 있다. 알프스 산속의 요정 같은 낭만적 오스트리아도 좋았지만 1917년 3월 러시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유라시아의 옛 국가사회주의 소비에트연방(소련)이 지배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는 꼭 가보고 싶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곳이다. 헝가리 하면 부다페스트, 그 부다페스트를 가로질러 흐르는 다뉴브(도나우)강에서 배를 타고 즐기는 야간 관광, 체코슬로바키아로 배웠던 우리는 1993년에 두 나라가 분리되었지만 동구 공산권 중에서 공업이 가장 앞섰고, 1968년도 ‘프라하의 봄’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새겨진 그 바츨라프 광장을 꼭 거닐어 보고 싶었다. 계절적으로 체코의 봄은 4~6월이고 여름은 7~8월 가을은 9~10월, 겨울은 11월~3월까지로 대체로 길고 여름이 짧다. 여기서 말하는 봄은 언제나 긴 겨울에서 벗어나는 그리움과 희망, 계절적 순환을 넘어서 삶의 한 단계 시작, 젊음과 생명의 상징, 생동감, 화창함, 소생, 화려하며 아름다운 계절이면서 함축의 미,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봄은 음악, 미술, 시와 소설 등 문학, 연극 등 모든 예술 속에 아름다움과 비애를 모두 표현하며 개인적 갈등을 넘어서서 역사성을 봄과 대립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상화(李相和)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에서도 자연의 순환적 질서와 인위적 박탈을 현실로 대립시키면서 느끼는 감정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고 봄에 낮잠을 자다 잠시 꾼 꿈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하고 덧없음을 표현한다. 프라하의 봄도 한낱 일장춘몽이 됐다. 여행 10일 차에 드디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했다. 저녁 메뉴는 보헤미안 립, 오리지널 갈비와 흑맥주 한잔으로 긴장된 기분을 풀었다. 저녁 식사 후 구시가지 광장을 방문했는데 세계 각국의 어마어마한 사람들로 가득했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 몇몇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이색적인 총각 파티를 하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거리에서 친구들이 요구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 하면서 우정도 돈독하게 하고 어른이 되는 험난한 과정도 익히며 추억도 쌓는 마치 우리의 ‘함잡이 행사’를 연상하게 됐다. 그리고 최고의 야경으로 일컬어지는 프라하의 야간경치를 보면서 밤에 볼타바(몰다우)강 위에 놓인 체코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의 하나인 ‘카를교의 야경’, 불이 들어온 프라하성을 직접 내려다보고 호텔로 향했다. 다음날 현지 교민 가이드를 만나 제일 먼저 프라하성에 도착했다. 프라하의 상징인 화려하고 웅장한 비투스성당을 방문했지만 미사가 열리는 관계로 실내 입장은 불가해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알찬 설명을 듣고, 아픈 역사를 가진 바츨라프광장에서 프라하의 봄에 관한 설명을 듣고 노면전차인 트램을 타고 카를교를 향했고, 다리 입구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행렬을 목격하고, 교탑에 올라 바라본 구시가지와 카를교의 모습을 촬영, 그 후 구 시청사와 천문시계의 정각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에는 기대와 함께 2분도 안 된 짧은 시연에 다소 실망을 느꼈다. 시가지를 걸어가는 여기저기 공원이나 공간에서는 어린 청소년들이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모두가 K-POP을 연습하는 모습이란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말을 배우려 하고 체코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는 인기가 높다고 한다. 20년 전 서유럽 관광 때와는 우리의 위세가 엄청 달라진 격세지감을 느끼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대형버스가 진입할 수 없는 프라하의 옛 모습을 ‘올드카’를 타고 둘러보는 선택 관광을 통해 걸어서 갈 수 없는 언덕까지 올라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행운도 맛봤다. 건축박물관이라 불리는 천년의 고도라고 할 수 있는 프라하는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양식, 바르크양식, 네오고딕 등 모든 양식을 아우르는 국제적 건물들을 보면서 한반도 국토의 1/3밖에 안 되고 전체 인구가 천만 명 정도인데 나라가 꼭 중세도시를 방문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체코의 대표적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 많은 예술가들이 거주했다는 황금소굴을 지나 다양한 볼거리로 항상 붐비는 구시가지 광장을 둘러보고 시청사와 시계탑, 수백 년 체코 조상들의 공간과 모습을 간직한 성당들, 즉 그들의 종교문화의 강성과 석조 문화건축의 융성 그 자체가 그들의 오랜 역사이자 삶이었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나라와 사람들과 역사를 보면서 그들의 위력과 장점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고 내 삶의 주인일 때 비로소 타인과의 이상적인 관계도 수립되고 동반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며 내가 나를 긍정할 때 세상에 대한 긍정의 힘도 생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내가 중심을 잘 잡을 때 모든 설명이나 사물들을 바르게 인식하게 된 것은 내 나이가 고희(古稀)를 지나 희수(喜壽)를 향해 가기 때문일까?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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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프라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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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메타버스, 뇌융합 기술로 다시 부상한다.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몇 해 전 메타버스(Metaverse)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었다. 페이스북(Facebook)은 회사명을 메타로 바꾸면서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메타버스는 고글을 이용한 시각 중심으로 게임 등 일부에서만 사용되다가 보니 다소 주춤했었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과 인공지능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메타버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 기기를 청각, 후각, 촉각 등과 연결하여 가상 세계에서도 실제 감각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가상 세계를 실제와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을 ‘Brain Machine Interface(BMI)’ 또는 ‘Brain Computer Interface(BCI)’ 하며, 의료계에서는 정서장애 치료를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기술을 응용해 실제 체감형 가상현실 세계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유럽,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동물보호를 위해 동물실험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미국은 화장품 개발 실험에서만 사용되던 동물실험도 2035년부터는 폐지하는 등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의생명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기존의 동물실험을 벗어나 메타버스를 이용한 전임상 실험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동물, 인간의 신체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여 가상 세계에서 실험하는 방법, 즉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으로 전임상 단계를 대체하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연구 과정, 데이터 실증 검증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메타버스는 교육 분야에서도 충분한 활용 가치가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문화 인프라(박물관, 전시관, 체험관 등)를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메타버스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교육 방법은 가상 세계에서 진짜와 같은 체험학습으로 다양한 두뇌 발달을 도모할 수도 있으며,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전 세계의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교육계는 학생들의 학습 의욕 고취를 위하여 게임과 교육을 합친 ‘게이미피케이션(Neuro-Gamification)’을 도입하고 있다. 교육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미국 교육학자 듀이(John Dewey)는 ‘놀이 중심의 교육이 학생들의 재미와 흥미를 일깨우고 교육 효과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메타버스와 게이미피케이션의 융합은 우리 교실에서 새로운 기회의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런 방법을 당장 적용하는 것은 아직 기술적 한계 등 여러 제약으로 시범사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시범사업을 확대하여 교육 성과를 축적하고, 실효성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뇌과학, 인공지능 기반의 메타버스와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교육은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강화하면서도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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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메타버스, 뇌융합 기술로 다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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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기유발과 안전교육
- [교육연합신문=서동욱 기고] 교사들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동기유발이다. 동기(motive)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뜻하며 동기유발은 동기형성(motivation)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교육학 용어로 일정한 동기가 발생하는 상태를 뜻한다. 모든 학습 행동은 동기유발에서부터 시작되며 교사들은 동기유발을 그날 수업의 성취기준과 연결하여 수업을 설계한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중장기 프로젝트가 있다면 확실한 동기가 있어야만 긴 시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확실하게 동기가 유발된 학생들은 차원이 다른 학습 능력을 보여준다. 나는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하고자 먼저 학생들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주로 포커스를 맞춘다. 긍지와 자부심을 원한다면 그 점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학급 교육과정을 설계하며 자신감을 원한다면 난이도를 조정하여 단계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학급 교육과정의 설계도를 수정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 점은 교사와 학생의 심리전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설계된 의도대로 학생들을 순차적으로 끌고 들어와야 하는 심리전. 나는 이 심리전에 매우 익숙한 편이며 나의 전문분야인 안전교육과 불조심 어린이마당 대회 준비과정에서 이러한 점은 빛을 발하기도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대회를 열심히 준비하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무리하지 못하도록 말린다. 건강이 상하니 무리하지 말라고. 그리고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취하라고. 열심히 하라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이미 동기유발은 실패한 것이다. 하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동기유발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는지 안 하는지 감독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스스로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그것이 동기유발의 기술이고 지도의 기술이다. 차원 높은 동기유발은 예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동기유발이 충분히 된 상태라면 이제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습방법을 제공하여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정신무장이 되어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달리기라는 재미없는 행위에 재미를 심어주는 것이다. 주로 초등학생들이다보니 인지발달 수준에 맞춘 게임 등을 개발하고 수업과 연계하여 자연스럽게 학습대상을 익히도록 설계한다. 놀이인데 놀이가 아닌 학습, 학습인데 학습이 아닌 놀이가 되도록 하면서 학습을 생활화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것이다. 자. 이제 동기유발과 흥미로운 학습방법의 제공이 있었다면 보상이 있어야 할 시기다. 어른들도 보상이 없는 채로 스스로 채찍질하며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는 쉽지 않은데 어린아이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학생들은 흥미로운 학습을 하다 보니 저절로 보상이 따라오게 되고 이 보상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과정에 대한 존중과 참여상과 같은 상을 주고 동시에 보상에 대해 적절히 차등을 준다. 즉, 출발점 능력이 다르니 노력한 정도를 측정하는 정성평가와 결과에 대한 전통적 정량평가를 같이 병행하는 것이다. 참여를 열심히 한 과정과 성장을 한 정도에 대해서는 정성적 평가를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면서 동시에 정량적 평가를 하여 더욱 잘 해야겠다는 동기를 다시 부여하는 것. 동기유발과 학습, 보상 다시 동기유발로 이어지는 무한궤도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임에 대한 확실한 언급을 한다. 나는 이미 내가 지도하는 대회에 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다. 이쯤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것을 해야 하는지 수업과 어느 부분을 연결해야 하며, 현재 학생들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학생이 진심으로 임하는지 아니면 하는 척만 하는 것인지 보면 바로 한눈에 파악이 된다. 최상의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길을 알려주지만 결국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학생이다. 내가 대신 그 길을 가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책임의식을 가르치는 것이 시대의 화두가 된 민주시민교육이기도 하다. 환경을 조성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를 하되 하지 않을 경우는 그에 대한 합리적인 책임을 지는 것. 종종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학습지도를 하는 경우 아이가 잘 하지 못하면 화가 나거나 감정이 앞서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나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 되었으면 하는데 자꾸 권하는 길로 가려고 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에 화라는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감정이 앞서면 결국 아이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 시대의 스승 법륜스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라고 하면 오히려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아이의 심리를 읽고 역(逆)으로 잘 활용하여 동기유발을 시키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이 방법은 아이마다 다 다르다. 정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교육에 대해 배운 교사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공학의 기술적 방법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안전교육에 대한 가장 확실한 동기유발은 무엇일까. 행복하고 건강하려면 안전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다치지 않고 슬기롭게 가족과 행복을 영위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동기유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서동욱 ◇ 초등학교 교사 ◇ 미국 화재폭발조사관(CFEI) ◇ 소방안전교육사 및 소방학교 외래강사 ◇ 한국119청소년단 지도교사 ◇ 소방안전교육사 국민안전교육실무 교재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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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기유발과 안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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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과 행동에 품격 있는 사람,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사람은 말과 글로 소통한다. 다른 동물들도 나름대로 소통 장치가 있지만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지성은 물론 살아온 환경까지 담아낸다.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말은 신중하고 또 진중해야 한다는 금언이다. 그래서 口禍之門이라 하지 않는가? 요즈음 사람 다르고 말 다르고 실천도 다르다는 말을 자주 하고 듣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않는진기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일까? 한 사람이 말을 걸면 상대는 자신의 휴대전화기에 집중한다. ‘너는 너 하고 싶은 것 하고, 나는 내 하고 싶은 것 한다.’는 요즘 대화의 풍경이다. 각자도생인가? 공자는 '부지언(不知言)이면 무이지인야(無以知人也)'라 했다. 말의 잘잘못을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정당성과 그릇됨을 분별할 수 없다는 말 아니겠는가? 더구나 우리말과 한자를 몰라 어휘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고, 그 말과 글의 어원을 모르고 말하기 때문에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도통 아리송할 따름인 상황을 맞고 있을 뿐이다. 가을밤 뜨는 ‘달’이란 무슨 의미인가? 처음 글자는 만든 사람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나타냈을까? 고등학교 교과목에서 ‘家庭科’인가 아니면 ‘家政科’인가? 만약 ‘家政科’가 옳다면 왜 그런가? 거기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말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될 것이고, 따라서 거기에 맞는 행동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지도자들의 말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한다. 같은 말과 글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익혀지는 횟수가 늘어가고, 그런 삶을 실제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많은 가치관의 혼돈과 좌절을 하게 된다. 말이란 실천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믿을 수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 말하는 사람만 있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불통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러한 불합리한 실제에 대처하는 기관이나 단체, 우리 사회에는 없는 것인가? 결과에만 매달려서 책임 지우려고만 하고,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자세, 책임을 지우려고만 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만 생각하는 사회? 후세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것인가? 말과 글이란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여 하나 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의 초석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말과 글이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다르게 생각하고, 왜곡된다면 사회 존립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매사에 일관된 모습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모든 꽃은 흔들리면서 줄기와 가지를 세운다. 만물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피어난다. 그것이 하늘의 섭리요 자연의 이치다. 개인이나 사회도 끊임없이 궤도 수정을 되풀이하면서 기준을 조정한다. 언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언행일치를 생각할 수 없다. 그 낱말이 지시하는 것에 맞는 행동이 언행일치다. 말의 정확한 이해가 없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행동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말의 뜻과 한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아울러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개념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다면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통합과 발전은 기대 난망하다 할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개념 정립과 아울러 가르치는 사람이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또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분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무자격자의 무한한 연수, 무엇을 얻고자 하는 일인가? 정말로 말과 행동에 품격 있고 기품 있는 그런 대통령, 지도자를 보고 싶다. 당연한 국민의 권리인데 간절한 소망이 된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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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과 행동에 품격 있는 사람,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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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SNS를 끊고 뇌에 휴식을 주자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초연결 사회 진입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돼 왔다. 다수의 선행연구에서 인터넷으로 바로 검색해 결과를 찾기에 인간의 사고력이 약해짐을 우려하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의존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구체적 예를 들면 조금이라도 긴 문장은 제대로 읽지 못하며, 흔히 말하는 ‘3줄 요약’이 아니면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이 만연하다. 특히, 유튜브의 쇼츠(Shorts), 인스타그램의 릴스(Reels)와 같은 압축적, 자극적 영상에 대한 의존은 뇌에 중독 현상까지 유발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 생물학적 원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도파민(Dopamine) 중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엔도르핀(Endorphin), 세로토닌(Serotonin)과 같이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은 뇌의 중뇌 흑질(Substantia Nigra)과 복측피개야(Ventral Tagmental Area)에서 분비되며, 쾌락, 의욕, 기억, 운동 등 다양한 신체기능을 조절한다. 우리가 어려운 과업을 달성해 내었을 때, 뇌는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하게 되며, 인간은 쾌락, 행복을 느낀다. 극단적 사례로 도박으로 큰돈을 벌거나 마약을 접했을 때, 뇌에 도파민이 과다 분비돼 쾌락은 극대화되며, 이런 작용이 순환돼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다른 호르몬과 달리 도파민은 임계치가 없다. 도파민에 중독될 경우, 도파민이 고갈될 때까지 뇌는 자극적인 보상을 갈구하게 되며, 결국 ADHD와 같은 정서장애, 심하면 조현병, 치매가 나타난다. 물론 인간의 중독 현상이 도파민에 의한 것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뇌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생물학적 기전 외에도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SNS 중독의 주된 원인으로 도파민을 거론한다. 온라인 영상 플랫폼이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그리고 쇼츠나 릴스의 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사고력과 통찰력에 지장을 주게 된다. SNS의 일방적이며, 사용자 맞춤형 알고리즘은 뇌의 편향성(Bias)를 극대화한다. 정치적 콘텐츠에서 이념적으로 극단화되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개인마다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 방법이 다르다. 이런 인지적 특징이 SNS 중독으로 이어지면 합리성을 왜곡하고, 비논리적 해석을 극대화한다. 이를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라고 하며, 개인의 인지 편향이 우리 사회에서 집단화할 경우, ‘집단적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우리 사회에 세대별, 경제적,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며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우려도 제기된다. 인공지능 기반의 SNS, 즉 사용자 맞춤형 콘텐츠 추천 방식은 ‘필터 버블(Filter-Bubble)’을 기반으로 한다. 정보 이용의 시간을 더 극대화하며, 기업들은 광고, 마케팅에 활용하여 이윤 창출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개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더 자극적인 것을 보도록 하는 필터버블은 결국 사용자의 태도, 의견, 지배 가치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최근 2024년 3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SNS로 인한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 14세 미만의 어린이는 SNS를 사용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최근 SNS로 인해서 우리의 뇌가 작아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뇌의 주름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고도의 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뇌에 주름 밀도가 중요하다. 대뇌피질에 많은 주름과 깊은 고랑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뇌의 신경 연결망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지능지수와 연결되며 고도의 창의력과 판단력을 키우게 된다. SNS에 집중하기보다는 책을 보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극적인 영상으로 구성된 SNS를 내려놓고 독서하는 것을 권장한다. 다른 장기와 달리 뇌는 늙어서도 계속 발달할 수 있다. 어떤 연구 결과에서는 7세 때 뇌와 80세의 뇌를 비교하였을 때, 지능지수가 똑같았다고 하였다. 뇌에 지적 자극을 계속 준다면 뇌는 계속 발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체적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 소식(小食)과 꾸준한 운동을 하듯이, 뇌 발달을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사고력 발달, 창의력 증진을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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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SNS를 끊고 뇌에 휴식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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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뇌건강을 위한다면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쳐라!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우리 사회는 만성 스트레스(Stress)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사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고, 고도화됨에 따라서 인간관계를 비롯해 다양한 관계 속에서 현대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직장 내, 세대 간, 젠더, 정치적 갈등 등 여러 상황에서 번아웃(Burnout)과 같은 증상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현대인들의 신체적 상황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교육현장에서도 심화하고 있으며, 아동과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9세와 17세 사이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살 충동을 겪는 비율도 이전에 비해 2% 증가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비롯된 학생들의 스트레스 문제는 미래 우리 사회에 큰 우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한 정신적,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일본 동경대 이케가야 유지(池谷 裕二) 교수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였다. 유지 교수는 그의 저서 ‘삶이 흔들릴 때 뇌과학을 읽습니다’에서 인간이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우리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와 뇌하수체(Hypophysis), 부신피질(Adrenal Cortex)의 축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하였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부신피질자극호르몬(A adrenocorticotropic Hormone)이나 글루코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될 경우, 식욕부진, 우울증과 같은 정서장애, 심하면 뇌 신경세포를 사멸시킨다고 하였다. 그만큼 스트레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다른 무엇인가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신다고 할 경우(술을 안 하는 것이 최고이지만),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자각하며 마시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즐거운 분위기를 돋우고 신나게 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완벽성을 기하고 내가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보다는 가끔씩은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푹 쉬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우울증 환자에게 절대 ‘힘내라’라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불필요한 공감대 형성은 환자의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저 푹 쉬라고만 권고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잠시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해결 방안이 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부끄러워하지 말고, 상황을 잊어버리는 것은 신체기능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과도한 학습과 성적을 요구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푹 쉬라는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낮추는 방법을 권고한다. 이런 상황 자체가 아이들에게 조급함을 줄 수도 있겠지만 뇌가 제대로 쉬어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공부가 수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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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뇌건강을 위한다면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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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인공지능 컴퓨터, 양자컴퓨터를 넘어 ‘바이오 컴퓨터’ 시대로
- [교육연합신문=강태우 기고] 2016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알파고(Alphago)가 등장한 지 10년도 안 되어 인류는 인공지능의 개발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기후변화와 같은 현안을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과 일자리 상실, 경제구조 변화를 비롯해 기술적 특이점으로 인간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 가운데 인공지능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사회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같은 특수한 분야를 비롯해 이제 일상생활에서도 인공지능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의존성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는 별개로 인공지능은 또 다른 한계성을 수반하고 있다. 바로 대규모의 전력(電力)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의 데이터 센터(Mega Data Center)가 필수적이며, 데이터 센터는 개발도상국 1개 국가의 전체 전력 사용량에 육박한다고 한다. 2023년 세계 지식포럼에서는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막대한 화석연료로 전력을 생산하는 문제와 이로 인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저전력, 고효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인간의 뇌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간의 뇌 작동원리를 모사하여 저전력을 유도하는 반도체를 뉴로 모픽(Neuoromorphic)이라고 하며, 2024년 3월 우리나라 KAIST에서 뇌를 모사한 초전력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였다고 하여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를 직접 컴퓨터에 이식하는 기술에 도전하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심장, 간과 같은 일반적 장기를 모사해 만든 인위적인 장기 기술개발이었으나, 이제 인간의 뇌를 직접 만들어 내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간의 줄기세포에서 만든 인공 뇌(Brain Organoid, 뇌 오가노이드)를 직접 컴퓨터에 탑재하여 중앙연산처리 장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얼마 전 뇌 오가노이드에서 지능이 발생하여 시각적 정보를 인식할 수 있었으며, 뇌 오가노이드를 유선으로 연결하여 컴퓨터 핑퐁게임을 한 결과, 인공지능보다 약 18배나 빠른 속도로 게임을 수행하였다는 결과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기도 하였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러한 지능을 가진 뇌 오가노이드를 컴퓨터에 탑재하여 새로운 컴퓨터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대표적으로 2023년 4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서도 ‘엔지니어링 오가노이드 인텔리전스’라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이런 뇌 오가노이드 바이오컴퓨터는 인간의 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또한 인간의 지성과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 개발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신경과학과 인공지능의 상호 순환적인 연구는 향후 인간과 기계가 융합하는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 도래할 것을 전망하고 있다. 21세기 초반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 이후, 20년 만에 우리 삶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인공지능과 신경과학의 융합은 단순한 상상의 영역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컴퓨터, 양자컴퓨터에 이어 이제는 뇌 오가노이드 바이오컴퓨터를 개발할 시대이다. 융합 기술을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촉진도 중요하지만 “디지털+바이오”의 융합인재를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관계를 분석하고 융합하는, 더 선진화되고 고도화된 연구와 교육의 융합 플랫폼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 강태우 ◇ 한국뇌연구원 책임행정원·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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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뇌과학 엿보기] 인공지능 컴퓨터, 양자컴퓨터를 넘어 ‘바이오 컴퓨터’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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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졸업식 회고사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밝고 희망찬 얼굴로 이 자리에 서 있는 252명 졸업생 여러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3년간 자신들의 삶을 유예하고 죄인으로 살았던 어머님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또 그들의 꿈과 이상을 위해 함께했던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께도 축하드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본교 교정에 들어서면 오륙도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다와 아치섬의 올망졸망한 전경, 영도 봉래산을 뒤로하고 확 트인 전망은 천하의 절경을 이룹니다. 그러나 학교까지 진입하기엔 교통도 불편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바람 불거나 비바람 치는 날에는 등하교하는 학생들에게는 가히 지옥에 가까운 3년을 잘 적응하고 인내해 준 여러분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평균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짧습니다. 계획과 목표를 세우되 시간을 아끼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복은 작은 데서 오고(福生于微), 화는 소흘함에서 옵니다(禍生于忽). 우리는 한 사람에 의해 변화되고 완성되며, 한 사건에 의해 치명적이 되고 훌륭하게 되며, 말 한마디에 의해 살인을 하고 출세를 하며, 한 권의 책이 인생관을 바꾸고 한 지방의 여행이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됩니다. 작은 것을 존중할 줄 알고 시간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여러분은 미래에 80% 정도는 성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화 중에 그가 경영하던 서점에 한 손님이 가격을 물었다. 이 책 얼마요? 1달러. 조금 싸게 안될까요? 1달러 15센트, 손님은 프랭클린이 잘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아니 깎자는데 더 달라고 하면 어쩝니까? 그럼 1달러 50센트 내십시오. 손님은 기가 막혀 화를 내자 프랭클린은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인데 손님께서 저에게 시간을 소비시켰으니 책값에 시간을 가산해야지요. 과연 플랭클린다운 위인의 그릇과 통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미국의 사상가 랠프 에머슨은 “모든 것은 사소한 일에서 출발한다. 한 알의 조그마한 씨앗이 하늘을 찌르는 큰 나무가 되는 것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행복도, 불행도, 실패도, 성공도 모두 그 시초는 조그마한 일에서 시작됩니다. 현대 사회를 노우웨어(Know-Where)시대라 하고 10대들을 “노우웨어족”이라 합니다. 즉 어느 곳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를 아는 게 경쟁력이란 의미인데 많은 지식과 정보는 가졌으되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는 부족함을 가진 디지털 치매 세대들에게 사고의 중심기관을 눈, 귀에서 코, 입으로 옮겨서 많이 경험하고 낯선 것들을 마음껏 음미하는 미래가 되기를 당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모교 광명고교와 가슴 뭉클한 어머니란 단어를 가끔 기억하세요. 12년간을 학습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고귀한 노력과 헌신을 꼭 기억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사회에 진출해 창업을 할 땐 광명이란 이름을 사용해 모교의 흔적을 기억해 주시고 여러분 앞길에 광명(光明)이 있기를 기원합니다.[2005년 2월 18일 광명고교 제14회 졸업식 학교장 회고사 중에서]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20여 년 전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졸업식 회고사가 책 속에서 뚝 떨어졌다. 읽어 보니 나도 감동했고 먼 추억이 돼 돌아왔다. 요즘은 결혼식에도 주례사 없이 다양한 형태로 재미나게 행하고, 특히 학교에서도 입학식, 졸업식 등 행사에 학교장 인사나 내빈 축사 등이 없어지고 재미나게 그 학교의 특징을 살려 창의적으로 진행한다고 들었다. 나는 20년 가까이 관리직을 하면서 모든 원고는 대필 없이 내가 직접 작성해 사용했다. 위 원고도 다시 보니 감회가 일고 또, 사라져가는 학교문화를 회상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교육단상으로 옮겨 본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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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졸업식 회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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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CCTV의 역설! 안전지킴이에서 해킹 수단으로 변질
- [교육연합신문=박상인 기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CCTV가 개인정보 등을 보호하지 못하고 해킹 위험에 노출돼 있어, 보안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CCTV는 범죄자들의 검거율에 크게 기여하는 등 주민들의 안전한 삶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나, 실질적 운영 측면에서 최근 강화된 개인정보보호 방침 등 정보 보안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CCTV는 그 기능상 외부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스위치 및 기타 통신장비 등 중요 부품은 폴(POLE) 외부 함체에 보관돼 있으나, 물리적으로 시건장치를 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열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CCTV 영상을 지자체 관제센터에 보낼 수 있는 산업용 스위치의 비어 있는 랜 포트를 통해 관제센터의 대규모 전송회선(Backbone)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CCTV 함체 내 스위치가 해킹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단 CCTV만의 문제는 아니다. 취재에 따르면, 공용화장실 및 학교 내 설치돼 있는 안심벨도 망 구성 형태에 따라 해킹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거의 모든 지자체가 CCTV 설치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이제는 CCTV 보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며, "대부분 담당공무원들은 우리 지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서울의 한 지자체는 주장과는 달리 쉽게 전송회선까지 접근할 수 있었으며, 폴에 부착되어 있는 함체의 시건장치도 드라이버와 같은 공구로 쉽게 열 수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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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CCTV의 역설! 안전지킴이에서 해킹 수단으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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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불신시대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아내가 서울에 일주일간 머물다 어제 집에 왔다. 아들, 딸이 소위 서울 유학 중이라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서울에 간다. 일요일 아침 집 청소를 대충하고 오후에 장안사(신라673년 원효대사 창건)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서울서 애들을 위해 고생하고 왔는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후환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중요한 월드컵 축구중계도 팽개치고 기사 노릇을 하러 갔다. 마침 자동차 2부제 시행에다 월드컵 기간 중이라 평일보다 차가 없었다. 장안사 입구의 기룡마을 앞의 들녘은 초여름 해 질 녘 운치를 맘껏 자랑하고 있었고, 그 풀내음은 내가 어릴 적 고향에서 먹고 자랐던 어머니의 내음 바로 그것이었다. 젊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그 맛, 그 향기를 요즘에는 아련하게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거다. 일몰의 풍요로운 대자연 속에 한 젊은 아가씨가 아스팔트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자연 속에 한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절경이지만 한 마리 새가 노니거나 사람이 어우러지면 더 좋고, 특히 젊은 남녀와 함께한다면 그 호수의 풍경은 천상의 조화를 이룰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도 사람과 어우러질 때 가장 극상의 풍경화를 만들 듯 혼자 고독하게 자연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길거리 화려한 음식점이 많았지만 좀 더 시골스러운 '포고나무집'으로 갔다. 시골스럽다 하면 그 주인장은 서운해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한적하고 허름한 그 집이 편안함과 안식을 주고 그 집 앞의 크지 않은 포고나무 한 그루가 향수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회국수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장안사에 주차를 하고 대웅전을 참배한 후 미타암과 척판암이 있는 곳까지 산책을 했다. 척판암(擲板庵)의 거짓말 같은 창건 일화도 재미있다. 원효대사가 암굴에서 기도할 때 중국 땅 장안성 종남산에 있는 운제사 대웅전에 1천여 명의 승려들이 기도 예불을 드리고 있었는데 원효대사의 눈에 대들보가 썩어 무너지고 있는 것이 보여 판자에 '해동원효척반구중'(해동에 있는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이란 여덟 글자를 적어 하늘 높이 비행기 보다 빠른 빛의 속도로 힘껏 던져 운제사 대웅전 앞에 윙윙거리며 도는 소리에 놀라 스님들이 뛰쳐나와 구경하는 중에 대웅전이 폭삭 무너지고 모두 생명을 구했단다. 그 후 천명의 중국 스님들이 해동 신라(기장군 척판암)로 와서 원효의 오묘한 법문과 가르침을 얻어 성불하고 산에서 열반을 해 돌이 되었고, 그 산을 천성산(千聖山 천명의 성인이 된 산)이라 불렀고, 판자를 던져 생명을 구한 암자를 척판암이라 하고 그 아래쪽 큰 절을 장안사(長安寺 당시 당나라 수도 장안)라 칭했다고 한다. 우리는 내려오면서 산속에 자동차로 만든 간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머지않은 장래 우리 미래를 얘기하고 아이들의 대학 졸업 후 진로, 아들의 병역 문제 등을 잠시 걱정하며 내려와 차를 타고 장안읍을 지나 일광으로 진입하던 도로에서 3시간 전 장안사 입구에서 보았던 그 아가씨가 혼자 도로가를 걸어가는 게 아닌가? 우리는 차를 세워 사연을 물어보게 됐다. 구포 덕천동까지 가는데 차비가 없어 그 먼 몇 십리 길을 걸어간다고 했다. 참 보기 딱한 젊은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무 순수하고 착하지만 융통성 없는 외통수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가는 곳까지 태워 준다고 했더니 우리의 눈치를 보면서 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까지 걸어온 성격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도 가지만 민망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나의 신분도 밝히고 우리의 딸 같아 도와준다고 해도 선뜻 마음을 내지 않는 처신에 이 시대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리 세태에 참 자괴감이 들었다. 친절도 함부로 베풀 수 없고 그 순수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학교에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생겼다. 여기서 구포지역까지 도보로 갈려고 하는 그 아가씨의 결심은 우둔한 것인지 아님 총명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집사람의 설득에 간신히 우리 차를 탔고 아내가 지갑을 열어 차비를 건네주었더니 말없이 받고는 뒷자리에서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먼 길을, 단순한 아스팔트길을 오랜 시간 걸었으니 얼마나 피로했을까? 집까지 데려다 줄까 생각했는데 너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동래고교 앞 버스 정류소에 내려 주고 우린 집으로 왔다. 보통 사람들은 지나가는 차를 세워 사정 얘길 했으면 편하게 귀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혼자 먼 길을 걸어가려고 한 그 처녀의 올곧은 마음은 이 시대 보기 드문 일이라 마음이 맑아지면서 한편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되기도 했다. 막 집에 도착해 TV를 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외출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고 아내의 기사 노릇이 정말 보람스러웠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의 지나가던 차들을 손들어 세웠을 때 스스럼없이 태워주던 그 인간적인 시대를 그리워 하면서...(2003년 6월 2일 일요일 씀 ) 이 원고도 지난주 책상 정리를 하다 발견된 글을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투고해 본다. 간혹 책장 속의 옛 노트를 펼치면 이렇게 기록된 글들이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나도 한 때 수필전에 응모를 해보려는 심정이었는데 너무 졸작인 것을 인지하고 포기했던 것 같다. 자신을 아는 일은 참 중요하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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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불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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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자 공부, 바뀌어야 합니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日(해 일)이라는 한자를 보면 한자의 3요소인 모양(日), 뜻(해), 소리(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천자문 식으로 한자 공부를 했습니다. 따라서 모양만을 익히려고 무조건 읽고 쓰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해’를 우리는 ‘일’이라고 읽고 배우는데, 일이라는 소리(음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모양을 익히는 학습에서 벗어나 뜻과 소리에 눈을 돌리게 되면 뜻밖에도 한자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日’은 ‘해 일’로 풀이하는데, 이것은 모양과 의미를 고려한 것으로 ‘일’이라는 소리의 의미가 생략된 풀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日’의 ‘해’가 어떤 해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은 ‘일찍, 일어나다, 일하다, 일 해라’ 등으로 풀이합니다. 이제는 한자를 ‘하늘 천’, ‘따 지’ 식으로 무조건 외우지 말고 ‘하늘을 왜 천이라 할까?’, ‘땅을 왜 지라고 할까?’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공부로 바꾸어야 합니다. 한자를 이렇게 보기 시작하는 순간 한자는 음을 중심으로 엄정한 체계와 질서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天’의 처음 모양을 알고, ‘하늘’을 왜 ‘천’이라고 하는지 우리말을 알아야 한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자 역시 음(소리)이 생명이며 한자의 가치와 의미는 음(소리)에 있습니다. ‘한글은 우리 글자, 한자는 중국 글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우리 글자인 한글을 두고 한자를 배우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한자와 한글을 잘 알지 못해서 비롯된 편견이며 오해입니다. 한자는 한글의 뜻풀이 사전입니다. 한글은 한자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실력의 핵심인 ‘어휘력 신장’이 놀랍도록 발전합니다. ‘물’의 보편적인 속성을 알아보기 위해 물을 생각해 봅니다. 물의 일반적인 성질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입니다. 물의 이런 성질 때문에 물이 처음 만들어지는 곳은 언제나 ‘위’여야 합니다. ‘위’ 어딘가에서 먼저 만들어지고 보관되다가 비가 되어 세상으로 땅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비’를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비’는 먼저 위 하늘 어딘가에 미리 만들어져 준비(準備)되어 있다가 때가 이르면 하늘에서 땅으로 물방울이 되어 날아오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까지 외우는 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利見大人이라는 『주역』의 글귀처럼 저의 생애를 되돌아보면 너무도 많은 大人들이 제 삶의 굽이굽이에 있었습니다. 여기에 큰 획을 그어 주신 ‘조옥구’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인터넷 강의를 모두 공책에 옮기고 또 옮긴 기록과 강의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을 컴퓨터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저서를 모두 탐독하고 컴퓨터에 기록하는 등 지난한 작업과 공부 내용을 일상과 연결하는 오랜 시간을 갖었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혼자 크지 않는다는 체험을 했습니다. 인간학은 가르침과 배움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자에서 ‘생명수’와 같은 ‘음가(소리)’를 공부함으로써 머리가 이렇게 깨끗하고 맑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성인들의 말씀이 이제야 제대로 마음으로 들어오는 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희열을 혼자만이 간직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해’를 왜 ‘일’이라고 했는가?"라는 물음을 놓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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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자 공부,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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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부부의 상(像)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3박 4일에 이어 올해 4월 초 봄꽃놀이를 경주에서 2박 3일로 멋지게 보냈다. 9788회는 97년 8월 8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전국 교장 자격연수를 받았을 때 끝난 날짜이고, 기숙사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1층에는 60대로 시작, 5층에는 젊은 40대 교장 10여 명이 생활했다(당시 65세 정년). 그중 6명이 마치면서 맺어진 연수동기 부부 모임의 이름이다. 보문단지에서 만나 호텔을 잡고 경주보문호의 벚꽃. 양동민속마을, 야간의 명품인 동궁과 월지, 첨성대 등을 돌아보고 둘째 날은 비가 오는 날인데도 학생 수학여행 일정처럼 불국사, 석굴암, 목월문학관(휴관), 감포해변가 횟집에서 점심 식사 후 서출지(書出池 21대 소지왕 때 글이 적힌 봉투가 나왔다는 못)와 무량사, 야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황리단길에서 저녁과 야경을 즐기고, 마지막 날에는 경북 청도 운문사와 언양불고기를 시식하고 다가오는 가을에는 설악산에서 3박 4일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충청도 2명(청주, 서산), 경상도 2명(부산, 대구), 전라도 2명(광주) 모두 6명이 12명의 부부로 만나서 벌써 27년을 1년에 두 번 국내 혹은 해외로 여행을 하면서 남자들은 연수기간 두 달여 친목을 가졌지만 각각 성향이 다른 사모님들이 과연 몇 년을 교합하며 친목을 다질 수 있을지 내심 의심스러워했다. 또, 각자 처한 지역과 현실이 각각 다른, 개성 강한 젊은 상태에서 우리 모두 가정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기적 같은 행운을 바라면서 이번 비 오는 날의 강행군에도 어느 한 사람 불평불만 없이 서로 격려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부부관계에 대해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불행히도 2년 전 경북대표 서 모 교장의 사모님이 지병으로 타계하고 첫해는 혼자서 참여했는데 그리움과 추억에 무너져 올해부터는 불참을 선언하는 비극도 있었다. 과연 이런 미약하게 시작해서 장구한 세월을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이 가능할까? 그해 부산에선 공·사립 교장 30명이 연수를 받았고 부부 동반 없이 연수자들만 '삼영회'란 이름으로 10여 년 유지하다 해산됐다(나는 시종 총무). 독일 심리학자 쉰들러 박사 외 2인이 쓴 '부부-가깝고도 먼 동반자(同伴者)'에서 7가지를 강조하는데 사랑과 애착에 대한 개념적 정리부터 시작, 그 마지막에 싸움을 줄이기를 숙제처럼 하라며 직접적, 구체적, 긍정적, 상호 간 부부 사이에 윈-윈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4가지의 단어 한 단어를 강조했다. 부부싸움 즉 배려, 대화, 갈등과 해결능력, 부부싸움의 최소화(악화 막는 법)는 꼭 명심해야 하고 체질화해야 한다. 결국 부부 사이는 사랑과 존중, 사랑과 신뢰, 사랑과 배려인데 무조건적 사랑이 최우선이다. 또, 내가 생각하는 부부는 서로 친구(Friends)가 되면 좋겠다. 영어의 이니셜로 풀이해 보면 1. Forever&Faith(해로와 신뢰) 2. Respect(서로 존중), 3. Education(자녀교육 성공-인생 80%가 성공하는 것), 4. Needs(상대방에게 서로 필요한 존재-인생은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데 서로 행복하고 즐거운 존재로) 5. Dependence&dailogue)-서로 의존하고 대화하되 부모 자식 간에는 의존하지 말라. 항상 필요할 때 도와주고 이끌어 주라. 6. Sucess-최대의 성공은 부부가 함께 건강(健康)하게 사는 것이고, 인생도 성공, 결혼도 성공, 경제적으로도 성공(노년의 빈곤은 가장 비참)해야 한다. 우리는 27년간+@의 오랜 벗이다. 서로가 행복한 사람들이다. 서로가 상대방보다 잘났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이해관계와 계산이 없고, 자신을 낮추고 양보해야 하며 상대 입장을 배려하고 남의 허물을 보지 말아야 오래 지탱할 수 있다. 회장(前전남여상 교장)을 비롯 모든 멤버들이 그 지역의 교육계에서는 중추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지만 양보와 배려로, 친구로, 동지로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즉 심신(心身)을 다해 타인을 이롭게 하고 자신을 성장시켜야 하심(下心)이 되고 자리이타(自利利他)가 되며 성공한 사람이 된다. 7각형과 18각형이 부딪치면 각이 조금씩 마모된다. 결국 원(圓)에 가깝게 닮아가는데 이것이 부부관계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각과 각이 부딪히는 것이 부부싸움이다. 원만한 부부가 되려면 남이 백(百)을 하면 나는 천(千)을 노력해야 한다. 인백기천(人百己千)이란 신라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의 말처럼 노력해야 원만한 부부상이 완성된다. 둘이 합치는 곳엔 언제나 거친 물살과 울음이 있게 마련이다. 시냇물과 시냇물이 만나는 개여울부터 바다와 바다가 만나는 울돌목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이 글을 쓰는 것은 45년 이상 부부로 살아왔고 27년+@간 이 모임을 해 오면서 각자 사이에도 상당한 아픔과 고통과 번뇌라는 삶의 덩어리를 가지고 있을 텐데도 한 올 한 올 풀면서 이렇게 멋지게 살아서 일 년에 두 번씩 만날 수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가슴 벅차게 느껴져서 우리의 관계가 마음(心)에서 시작하여 마음(心)으로 끝나는 무시무종(無始無終-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으로 마감하길 기도하면서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기대한다. 우리에게 장락(長樂)과 장춘(長春)은 없다. 다만 오늘의 시간이 첫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행복도 소득보단 신뢰도와 정서적 만족감과 유대감이 좌우한다. 말은 쉽지만 스스로 체득하고 느끼기엔 참 어렵다. 삼국지연의 중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에게 참패한 후 마음 각오를 한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를 말한 것처럼 우리 부부 관계도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는 각오로 창조적 지혜가 필요하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말 "선한 것은 명성이 없어도 그 자체로 선한 것(Goodness alone is good without name)"도 부부 사이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게 없겠네“라는 티베트 격언이 있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이 글은 우리 회원 다섯 명의 사모님들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쓴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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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부부의 상(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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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교급식 오수정화장치 올바른 구매 요령
- [교육연합신문=황진성 기자] 전라남도교육청(김대중 교육감)이 조리 종사자 질환 예방을 위한 학교급식 환경 개선으로 4월 1일(월) ‘2024년 학교급식 오수정화장치 구입과 관련 현안 사업비가 약 27억 원이 배포되면서 학교에 구매 기준이 없어 외부 압력 및 청탁에 의한 부적절한 제품의 선정이 우려된다. 전문가에 따르면, 첫째, 밀폐공간에서 인체에 유해한 오존의 해악을 강조하고 있다. 무색, 무미, 청색, 해조냄새 등 기체로 산화력이 강한 것이 특징이며 대류권에서 오존에 반복 노출 시 폐에 피해를 줄 수 있는데 가슴통증, 기침, 메스꺼움을 유발하고, 심하면 기관지염, 심장질환, 폐기종, 천식의 악화를 가져온다. 특히, 호흡기 및 심장질환, 노약자, 어린이들에게 악영향을 가져오므로 오존 시험성적서를 제출받아 발생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둘째, 제품의 내구성을 위한 오수정화장치 박스 및 배관은 반영구적인 스테인리스를 사용할 것이며, 한 번 팔고 사라지는 업체가 아닌 향후 A/S 발생 시 부품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한 직접생산증명서를 확인해야 한다. 셋째, 다양한 오수정화장치 제품들이 있지만 모 업체는 S2B(학교장터)에서는 보이지 않고, G2B(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는 ‘오수처리용산기장치’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규격서에 명시된 지정 특허기술을 적용하지 않고, 규격서상의 주요 자재를 누락하거나 그 재질이 다른 제품을 납품한 사실이 확인돼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부실, 조잡, 부정행위를 받은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음을 명시해야 한다. 넷째, 전남교육청 물품 및 용역 지역업체 활성화 조례 제4조(지역산업체 참여 활성화) 행정사항에 제품선정 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남 소재 업체와 공공구매 법정의무구매 대상제품 우선구매를 권장하고 있음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조리 종사자 질환 예방을 위한 학교급식 환경 개선과 생태환경(하수)을 보호해야 하는 목적으로 예산이 배부된 만큼 학교급식 공간을 쾌적하고 좋은 환경으로 구축하는 것은 학교 관계자의 몫이다. 전남교육청의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서 외부 청탁·압력과 무관하게 학교급식 공동체의 목적에 맞게 구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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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교급식 오수정화장치 올바른 구매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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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자기를 잃어버리고 산다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 보면 자기가 자신을 제일 잘 안다. 그렇지만 습관 때문에 곧 자신을 잊어버리고 반복된 행동을 한다. 인생길은 앞을 보면 까마득하고 뒤돌아보면 허망한 것 같다.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 번의 길이기 때문에 잘 준비하고, 준비된 것에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아부어 스스로 승화(昇化)시켜 나가야 한다. 나는 내 삶의 주체이고 삶을 이끌고 가는 주인이다. 삶이란 출생과 죽음 사이의 살아가는 과정으로 생명 있는 존재로서 길흉화복 관리, 생사 운명 주재, 영과 육 관리, 윤회가 있는지, 종교가 무엇인지 등 실존적 불안을 느끼며 끝없는 고민과 번뇌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서산대사는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달관했다. 몽테뉴는 삶의 효용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 How long~?)'가 아니고 '어떻게 사는지(How live~?)'로 결정된다고 했다. 이보다 이천 년 전 공자도 삶의 시간적 길이보다는 삶의 내용을 충실히 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러 유감이 없도록 함이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라 했다. 무엇을 부여잡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나를 돌아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자신의 안목을 충족시키려는 노력과 아울러 안목을 한 단계씩 높이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있다. 자기 안목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바다를 예를 들면, 사람에게는 물로 보이고, 천신에게는 쟁반으로 보이고, 물고기에게는 집으로, 아귀에게는 불로 보일 것이다. 안목을 키우는 방법은 역시 교육이 중요하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교육이 필요하다. 열심히 하면 삶이 나아진다는 확신이 들어야 하는데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 불과 30년 만의 노력으로 급격한 경제성장과 급변한 생활환경의 변화로 코인과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얻게 되면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노동의욕을 상실하고 창의력과 혁신의지가 없으며, 아이 출산도 거부한 채 황폐한 나라로 전략해 가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위기에 직면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에서 인간의 욕망(desire)은 자본주의 경제의 원동력이고 개인 탐욕(greed)이 넘치면 경제 불안정으로 다수의 피해가 온다고 강조했다. 지금 이 상태가 우리 젊은이들이 빠져 있는 현실이고 우리가 조속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이럴 땐 탐욕보단 비움이 더 필요한 자세다. 불교에서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 특히 보시와 지계 바라밀을 통해 베풀면서 자신을 통제하는 탐욕에서 해탈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 몸(身)과 이 마음(心)이 곧 나(我)라는 그릇된 관념에서 벗어나, 보시(베풂)를 통해 당기는 에너지를 주는 에너지로 전환해 욕됨을 참고 꾸준히 연습해서 탐욕을 억제하고 베푸는 에너지로 활기를 채우면 되는데 그것이 말보다 참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명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배려하라는 것인데 실천하기 어렵다. 베풀려면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가능하고 베푸는 삶이 손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촛불 한 개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탈무드의 핵심도 베풂이다. AI 시대는 더욱더 나를 잃어버리고 정제된 자아가 더 없어져 버린다. 얼마 전 어떤 단체에서 토론행사의 패널로 초청돼 '교육과 청렴'이란 원고를 청탁받은 적이 있다. 사무실 젊은 직원에게 챗GPT 사용법을 배워 간단히 원고 작성을 하려 했는데, 너무 무성의하게 보여 먼저 내 원고를 완성한 후 챗GPT로 교육과 청렴원고를 부탁했더니 몇 편의 원고를 어려움 없이 단 몇 초만에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론 원고 작성뿐 아니라 각 외국어 번역, 회화 등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성교육이고 특히 겸손, 공감, 배려는 더욱 중요할 것 같다. 옛날에는 가정교육(home schooling)과 밥상머리 교육(Table schooling)이 해결했지만 요즘은 입시교육과 인권교육에 밀려 어디에서 교육을 해야 할까?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슈바이처 박사가 잘 설명했다. 학교장 시절 월 1회 전체모임을 하면 학교장 훈화 순서가 있었다.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무척 공들여 열심히 했는데 듣는 학생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여고생들의 수용 태도는 좋은 편이고 남고생들은 보통, 중학생들은 아주 심각할 정도로 듣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론은 무조건 짧게 하는 것이다. 역사 이야기, 인성교육, 청렴교육, 바른 삶, 미래의 직업 등 다양한 주제로 준비를 한다. 단, 듣는 학생이 20%뿐이라 해도 열심히 준비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좋은 추억이었다. 이런 어린 학생들이 훗날 나이가 들면 또 스스로 발전해 느낄 때도 있을 거다. 우리의 삶은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할 수 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고, 또 한 번 생각나는 삶이었다고 반추해 볼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인생의 끝자락에라도 아름다운 긍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해 본다. 자존감(self-esteem), 자기 존중감, 자긍심,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감정을, 자신을 돌아보면서 키워나가는 멋진 사람이 되어 보자. 또, 때로는 무지계율(無知戒律)을 스스로 강조해 보자. “모른다”는 선언을 통해 나를 비워(겸손)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소통 공간도 만들어 보자. 소중한 것이 내 손안에 있을 때는 귀함을 알 수 없고 그것이 없어졌을 때 아쉬움과 후회가 남게 된다. 내 삶도 가끔 한 번씩 멀리 떨어져서 관조하며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넘치는지 또는 부족하고 채워야 할 것, 충만해서 절제해야 할 것 등 가끔씩 자기(自己)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5천 년을 배고프게 살아온 우리 대한민국은 초고속으로 압축 성장한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가! 스마트폰 하나면 카드결제를 비롯 교통카드, 아파트 열쇠 등 모든 것이 해결되고, 아파트나 주택엔 자동차가 넘쳐 주차난이 심각하며, 울창한 숲, 거미줄같이 뻗은 고속도로, 다목적 댐, 넘쳐나는 먹거리 등 이렇게 편리하고 풍요롭게 살면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하고 불만스럽게 지내는지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나를, 이웃을,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돌아보고 잃어버린 나(我)를 찾아 한번쯤 돌아보며 살자.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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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자기를 잃어버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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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학교는 삶의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
-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학생들에게 학교는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감상 작품이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읽듯이 학교를 읽고 듣는다. 학교 시설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학생들의 배움의 도구가 되어야 하고 예술성이 있고 감상이 가능한 건축물이 돼야 한다. 이러한 예술성을 가진 건물이 돼야 역사적 건물로 남을 수 있어 그 역사성은 학교로부터 읽기· 듣기를 끝낸 학생들의 쓰기· 말하기를 통해 하나의 큰 원으로 완결될 수 있다. 이제 학교는 학교의 공간과 구조를 포함한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 외부에서의 눈이 아닌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의 환경, 공간, 구조 등의 디자인을 고찰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지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지금껏 교사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대부분 관리자의 몫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디자인이란 학교 교사들의 관점에서 학교 환경과 공간을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디자인하고 개선점을 탐색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학교환경과 학교교육을 합쳐서 학교디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김교장, 퇴직한 지금도 그 관심은 진행 중이다. 김 교장이 근무하던 부산한솔학교(특수학교)의 학교디자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교실안내판 이야기▶ 일반적으로 학교에 가보면 학급(일반교실) 출입문 옆에는 담임 그리고 간단한 학급소개 안내판이 모두 부착되어 있다. 그러나 교사연구실, 특별실, 행정실 등에는 팻말 부착이 거의 대부분이다. 김 교장은 부임하면서 학교의 특별실을 포함한 모든 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진과 함께 필요한 간단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부착했다. 그리고 교장실에도 학교장을 소개하는 짧은 게시글과 함께 사진을 소개했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도 다양한 군의 근무자들이 있고 제일 중요한 우리 학생들이 있다. 각 교실에 누가 근무하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배려와 소통의 학교디자인인 것이다. ◀교문의 나비조형물 이야기▶ 교문은 막힌 울타리의 입구이고 그 학교의 얼굴이다. 학교 건물과 연계하여 더 상징적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의 소박한 조형물로 기능해야 하며 그 지역의 특색이나 예술성까지도 포함이 된다면 역사적 조형물로서의 가치도 포함이 될 것이다. 지역별로 여행하며 학교 교문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요즈음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마다 건물이 비슷하듯 교문 또한 개성이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의 금정산 기슭에 위치한 금성초의 교문은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 하려고 애쓴 흔적이 있는 디자인이라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있다.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설치물도 정감이 넘치는 디자인이다.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지는 학교이다. 부산한솔학교 교문의 나비조형물은 개교 당시에 설치된 조형물이 아니다. 부산교육청과 함께 외부기관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학교상' 공모에 당선되어 받은 상금을 김 교장은 의미있게 사용하고 싶어 여러 방안을 고민하던 중에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우리 학생들과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교문에 조형물을 설치하게 됐다. ◀중앙현관 바닥화 이야기▶ 현관에서 학교 숲으로 향하는 넓은 중앙 홀 바닥에는 '나비와 꽃'(2x2m)그림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학교 숲으로 가는 입구라는 안내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그림이기도 한 화사하고 감성적인 작품이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아궁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밟지 못하도록 차단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학생들이 밟고 다니며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된 그림이다. 꽃에 앉아 나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학생들도 있다. ◀학교외벽 LED 조명시계▶ 개교하고 학교 건물 외벽에 좀 특별한 대형시계를 설치하기 위해 많은 시간 고민을 했다. 학교는 밤에 불이 꺼지면 적막한 공간이 돼 있고 후미진 외곽에 위치한 학교나 도심에 위치한 학교 모두 약간의 기능적 조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녁에는 아파트의 가로등이나 조명등이 더 따뜻해 보이고 학교는 오히려 주변 시설이 보내는 조명의 덕을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이 돼야 하고 야간에도 지역사회에 따뜻한 빛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부산한솔학교에 설치한 조명시계와 같이 아파트의 긴 옹벽을 따라 설치된 환경조형물에 조명등 역할을 부여해 밝은 밤거리를 조성하는 환경디자인은 범죄를 예방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한 산책을 유도하기도 한다. 김 교장은 학교시계는 대부분 시계탑이나 동그란 모양으로 현관 중앙의 높은 곳에 설치한다는 편견을 깨고 반영구 LED전구와 함께 숫자 하나 하나를 외벽에 설치해 고급 전시관에 온 느낌의 외벽시계를 설치했다. 오후 8시부터 새벽4시까지로 자동 세팅하여 인근 지역도 따뜻하고 밝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감탄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비용 문제는 김 교장이 인근 2~3개 아파트시공업체 대표를 만나 위의 내용을 브리핑해 기부로 해결을 했지만 학교를 지을 때부터 이런 환경적인 학교디자인을 고민해 본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자신만의 색깔을 살린 학교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학생을 기를 수 있다. 창조적인 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창조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창조적인 인재가 될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할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창의성 있는 학생을 기르고 싶으면 창의적으로 디자인된 학교를 지어야 할 것이다.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전체에 창의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교과와 거기에서 다루는 내용의 배열을 뜻하는 교과과정이 아니라 학습의 내용으로서 교과과정과 그것을 다루는 활동계획과 교육방법의 계획도 포함하는 교육과정을 담는 그릇으로서 학교를 새로이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학교디자인의 고민은 조화로운 공간 환경을 추구해 더 나은 학교를 만들고 이를 사용하고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오는 곳이 아니라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는 진지한 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미래의 사회는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웃음, 게임, 놀이, 유머 등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놀이적 감성의 반영을 통하여 오감이 살아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학교는 삶의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이 되는 것이다. 메마른 사막에는 모래밖에 없지만 풍요로운 오아시스에는 나무와 물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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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학교는 삶의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