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28(목)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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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식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아내가 서울에 일주일간 머물다 어제 집에 왔다. 아들, 딸이 소위 서울 유학 중이라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서울에 간다. 일요일 아침 집 청소를 대충하고 오후에 장안사(신라673년 원효대사 창건)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서울서 애들을 위해 고생하고 왔는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후환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중요한 월드컵 축구중계도 팽개치고 기사 노릇을 하러 갔다. 

 

마침 자동차 2부제 시행에다 월드컵 기간 중이라 평일보다 차가 없었다. 장안사 입구의 기룡마을 앞의 들녘은 초여름 해 질 녘 운치를 맘껏 자랑하고 있었고, 그 풀내음은 내가 어릴 적 고향에서 먹고 자랐던 어머니의 내음 바로 그것이었다. 젊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그 맛, 그 향기를 요즘에는 아련하게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거다. 일몰의 풍요로운 대자연 속에 한 젊은 아가씨가 아스팔트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자연 속에 한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절경이지만 한 마리 새가 노니거나 사람이 어우러지면 더 좋고, 특히 젊은 남녀와 함께한다면 그 호수의 풍경은 천상의 조화를 이룰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도 사람과 어우러질 때 가장 극상의 풍경화를 만들 듯 혼자 고독하게 자연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길거리 화려한 음식점이 많았지만 좀 더 시골스러운 '포고나무집'으로 갔다. 시골스럽다 하면 그 주인장은 서운해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한적하고 허름한 그 집이 편안함과 안식을 주고 그 집 앞의 크지 않은 포고나무 한 그루가 향수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회국수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장안사에 주차를 하고 대웅전을 참배한 후 미타암과 척판암이 있는 곳까지 산책을 했다. 


척판암(擲板庵)의 거짓말 같은 창건 일화도 재미있다. 원효대사가 암굴에서 기도할 때 중국 땅 장안성 종남산에 있는 운제사 대웅전에 1천여 명의 승려들이 기도 예불을 드리고 있었는데 원효대사의 눈에 대들보가 썩어 무너지고 있는 것이 보여 판자에 '해동원효척반구중'(해동에 있는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이란 여덟 글자를 적어 하늘 높이 비행기 보다 빠른 빛의 속도로 힘껏 던져 운제사 대웅전 앞에 윙윙거리며 도는 소리에 놀라 스님들이 뛰쳐나와 구경하는 중에 대웅전이 폭삭 무너지고 모두 생명을 구했단다. 

 

그 후 천명의 중국 스님들이 해동 신라(기장군 척판암)로 와서 원효의 오묘한 법문과 가르침을 얻어 성불하고 산에서 열반을 해 돌이 되었고, 그 산을 천성산(千聖山 천명의 성인이 된 산)이라 불렀고, 판자를 던져 생명을 구한 암자를 척판암이라 하고 그 아래쪽 큰 절을 장안사(長安寺 당시 당나라 수도 장안)라 칭했다고 한다. 


우리는 내려오면서 산속에 자동차로 만든 간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머지않은 장래 우리 미래를 얘기하고 아이들의 대학 졸업 후 진로, 아들의 병역 문제 등을 잠시 걱정하며 내려와 차를 타고 장안읍을 지나 일광으로 진입하던 도로에서 3시간 전 장안사 입구에서 보았던 그 아가씨가 혼자 도로가를 걸어가는 게 아닌가? 우리는 차를 세워 사연을 물어보게 됐다. 

 

구포 덕천동까지 가는데 차비가 없어 그 먼 몇 십리 길을 걸어간다고 했다. 참 보기 딱한 젊은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무 순수하고 착하지만 융통성 없는 외통수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가는 곳까지 태워 준다고 했더니 우리의 눈치를 보면서 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까지 걸어온 성격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도 가지만 민망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나의 신분도 밝히고 우리의 딸 같아 도와준다고 해도 선뜻 마음을 내지 않는 처신에 이 시대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리 세태에 참 자괴감이 들었다. 

 

친절도 함부로 베풀 수 없고 그 순수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학교에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생겼다. 여기서 구포지역까지 도보로 갈려고 하는 그 아가씨의 결심은 우둔한 것인지 아님 총명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집사람의 설득에 간신히 우리 차를 탔고 아내가 지갑을 열어 차비를 건네주었더니 말없이 받고는 뒷자리에서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먼 길을, 단순한 아스팔트길을 오랜 시간 걸었으니 얼마나 피로했을까? 집까지 데려다 줄까 생각했는데 너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동래고교 앞 버스 정류소에 내려 주고 우린 집으로 왔다. 

 

보통 사람들은 지나가는 차를 세워 사정 얘길 했으면 편하게 귀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혼자 먼 길을 걸어가려고 한 그 처녀의 올곧은 마음은 이 시대 보기 드문 일이라 마음이 맑아지면서 한편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되기도 했다. 막 집에 도착해 TV를 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외출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고 아내의 기사 노릇이 정말 보람스러웠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의 지나가던 차들을 손들어 세웠을 때 스스럼없이 태워주던 그 인간적인 시대를 그리워 하면서...(2003년 6월 2일 일요일 씀 )

 

이 원고도 지난주 책상 정리를 하다 발견된 글을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투고해 본다. 간혹 책장 속의 옛 노트를 펼치면 이렇게 기록된 글들이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나도 한 때 수필전에 응모를 해보려는 심정이었는데 너무 졸작인 것을 인지하고 포기했던 것 같다. 자신을 아는 일은 참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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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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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불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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