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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칼럼/기고 기사

  • [기고] "노암 김문기 설립자의 상지정신으로 대학의 정체성 확립해야"
    [교육연합신문=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 기고] 국가의 앞날은 교육의 발전 정도에 의해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을 지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국가는 재정적 이유 등으로 책임의 일부를 개인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그리하여 국가의 백년대계는 막대한 사채 출연이란 희생을 기꺼이 감내한 독지가의 손에 맡겨진다. 그런 만큼 사학의 운영은 투철한 교육철학이나 교육적 사명 없이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영달을 꿈꾸었다면, 눈앞의 결실에 전전긍긍했다면 대한민국의 사학 설립자 어느 누구도 국가교육발전을 위한 육영사업에 헌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끝없는 자기희생의 자리이자 수십 년 수령樹齡은 지녀야 비로소 열매를 거둘 수 있는 평생의 과업인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상지학원·상지대학교를 설립한 노암 김문기 박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교육자임에 틀림이 없다. 노암 김문기 박사는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명문대학을 만들기 위해 원주시 우산동 660번지 일대 37필지 208,262㎡(62,999평)의 사재를 출연해 오늘날의 상지대학교 및 상지영서대학교의 부지를 조성한 후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교사동을 마련해 1974년 4월 2일 상지대학교를 개교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개교 당시부터 노암 김문기 설립자는 우리나라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인(仁)과 의(義)를 추구하는 선비정신 그리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5상에 바탕을 둔 상지정신(尙志精神)을 건학이념으로 손수 제정하여 학문적 지성과 도덕적 인격을 갖춘 참된 지식인을 길러내어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원대한 육영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상지정신의 모태를 이룬 선비는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으며, 죽음 앞에서도 추호의 두려움이 없다. 그 이유는 선비는 어질고 곧은 뜻을 숭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덕을 고루 갖춘 인격체인 선비는 우리 민족의 지성을 대표하며, 실천의 준거로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이르러 ‘선비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소외가 만연된 이 시대에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실천적 사표가 될 만한 인품을 지닌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참된 인성을 갖춘 인재의 확보는 한 기업, 나아가 한 나라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인성의 중요성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선비정신을 근간으로 한 상지정신은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체득해야 하는 최선의 가치임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과제는 남는다. 우리의 선비정신이, 인의예지신의 오상이 21세기 시대정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부단한 자기갱신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상지대의 건학이념인 상지정신이 우리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21세기 이후의 먼 미래에도 유효한 사상적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시대정신에 걸맞은 전통적 가치로 재창조될 수 있어야 한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상지정신(尙志精神)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으로 인격 도야에 힘쓸 때만이 개인은 비로소 주체적 생활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나아가 민주국가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 상지대학의 교훈이기도 한 성실과 협력과 봉사의 덕목을 스스로 정하신 대로 오늘날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몸소 실천하고 있으신 노암 김문기 설립자의 바람은 상지정신(尙志精神)을 두루 전하여 우리가 올곧은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전부임은 우리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 회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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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31
  • [학생기고] 아픈 역사, 그리고 양심의 목소리
    [교육연합신문=김수호 기고] 한일청소년평화교류는 매년 광주지역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광주교육청이 지원하는 역사기행을 통한 한일 간 평화운동 교육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주관한다. 여러 지원자를 물리치고 선발되었을 때 난 무척 기뻤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 조선 근대사의 이해를 통해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국제적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기 전 근로정신대에 관한 역사와 교류하고자 하는 일본 시민단체인 ‘나고야미츠비시·조선여자정신대소송을지원하는모임(약칭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활동, 그리고 정신대에 끌려가셨던 할머니들의 상황에 관한 사전교육을 받았고, 설레임과 걱정이 혼재되어 마침내 평생 처음으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의 창으로 비춰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비행시간 동안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일본에 도착한 첫 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방문한 곳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츠비시중공업 직원으로 근로정신대 소녀들과 같이 근무하셨던 무라마쓰 할아버지의 증언을 듣는 것이었다. 강제로 데려온 조선 소녀들은 위험한 곳에서 일하게 했고, 조금 더 안전한 곳은 ‘일본부인회’ 사람들이 일하게 했다고 하셨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노동을 조선 소녀들은 해야 했고, 일본 천황에 충성을 다하라는 말로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것, 임금은 일본인들과 달리 맨 아래 등급 즉, 가장 낮은 월급을 지급하도록 했다는 사실 등을 고령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증거 자료와 함께 생생히 증언해주셨다. 증언을 들으면서 나라 없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징용 당해 비인간적인 고통을 당하고도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죄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 상황에 대하여 분노와 답답함을 느꼈다. 증언을 들은 후 곧바로 이어진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모비 참배가 있었다. 일본에서 약 20여 년 동안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 내 양심 지식인들 모임인 나고야 소송지원회는 1988년 도난카이 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인 소녀 6명을 포함한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이 추모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이 추모비는 1944년 12월 7일 오후 1시 36분, 당시 지진 발생시각의 태양빛의 입사 각도와 직각이 되도록 경사를 맞추었으며, 창씨 개명된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을 새겼다고 했다. ‘나고야소송지원회’ 분들의 진실한 인간애가 느껴졌다. ‘평화란 인간애로부터 시작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은 나고야 외곽에 위치한 각왕산 일태사에 세워진 조선인 희생자 순난동포위령비를 탐방했는데 이때 나고야 소송지원회 사무국장이신 고이데 상의 설명이 있었다. 그분의 설명 마지막은 “나고야에서 돌아가신 조선인 남자들 열세 명 중 열두 명은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 분들을 알거나 이 분들의 유족을 알게 되면 연락을 주라”는 당부였다. 고령임에도 자신의 일에 끝까지 목표를 완성하려는 고이데 상을 보며 평화를 위해 애쓰시는 진실을 느꼈고, 그분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오후에는 나고야 시민들의 기금으로 건립고 운영되고 있는 ‘피스 아이치’ 평화회관을 방문했다. 전쟁당시 일본이 당했던 피해뿐만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731부대, 일본군 위안부, 근로정신대에 관한 사실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피스 아이치’를 보면서 세계평화를 향한 나고야 시민들의 훌륭한 양심을 배웠다. 이어서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쉼터 ‘코리안넷아이치’에서 그들의 삶의 상황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힘들게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느끼면서 재일동포 1세, 2세 노인들의 복지관 ‘세토마당’을 찾아 재롱을 피우고 이야기도 나눴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들은 대부분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셨고, 몇 번씩이나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깊은 민족애를 느끼게 하는 동포 할머니들의 눈물은 ‘우리민족의 슬픈 역사인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이 분들이다.’라고 생각케 했다. 일제강점기에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온 사람들이 해방 이후 일어난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으며, 돌아가더라도 분단된 두 조국을 두고 선택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이 분들 앞에 놓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는 아직 강점기에서 해방되지 못했다’는 말이 그 말이었구나. 넷째 날, 38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 당시 미츠비시중공업이 운영했던 세토 지하 군수공장 터가 있는 산으로 향했다. 그다지 높지 않는 산이었지만 찌는 듯한 오후 날씨와 극성스런 모기들의 공격에도 짜증내는 우리 교류단은 한 명도 없었다. 친구들과 나는 징용된 소녀들과 그때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그곳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막혀있는 군수공장 지하입구 터널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면서 나이 어린 소녀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에 따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본 학생들(대학생과 고등학생들)과의 토론 시간을 가졌다. 이 토론은 처음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중반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원했던 주제로 흘러갔다. 주로 우리 쪽 학생들의 질문으로 촉발된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강제징용문제, 이들의 분쟁해결방법, 한일 간 평화를 위한 과거사 해결 방안, 일본교과서 왜곡문제 등을 신랄하게 질문하면서 토론이 진행되었다. 결론을 내려야 할 즈음 토론회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팀 인솔교사로 참여하신 한 교수님께서는 평화를 위해서는 폐쇄적 민족주의 관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아울러 NGO나 NPO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과거 역사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 것으로 예기를 했고, 현재 닥쳐있는 문제에 대하여는 우리들과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예민한 문제에 대하여 자세히 예기할 즈음에 시간이 종료되어 큰 아쉬움을 남기고 서로 간에 인간적인 우정을 느끼며 헤어졌다. 이번 한일청소년평화교류의 소중한 경험 중 홈스테이도 빼놓을 수 없다. 나와 팀원 3명을 맡아주신 홈스테이 엄마 오오노상의 친절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좋은 음식은 물론 새벽에 목마를까봐 물을 챙기는 것, 에어컨 온도에 신경 써 주시는 것 등 세세한 부분까지 자식들 대하듯 챙겨주셨다. 일본문화의 이해를 위해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혀주시기도 하였다. 한 번 입는데 다섯 번이나 끈을 묶는 과정을 두 번씩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각자 입혀주셨다.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다이죠부데스까?", "아리가또고자이마스"라는 말을 연신 반복 했었다. 그분의 보살핌은 그분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으며, 좋은 추억과 함께 인간적인 정에 흠뻑 빠지게 했다. 행사를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나고야 소송지원회 대표님이신 다카하시 선생님은 우리를 배웅해주시면서 “우리는 이길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길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첫 날 무라마쓰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일본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증인으로서 생을 다할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 분들의 진심어린 말은, 평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번 더 일깨워 주었다. 진정한 평화와 진실은 거짓과 외면 속에서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이라는 것을……. ■ 광주송원고등학교 2학년 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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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30
  • [기고] 해외 연수를 다녀와서…
    [교육연합신문=문승옥 명예기자] 전라남도교육청 교육공무직 국외연수팀에 선발되어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다녀오게 되었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우리의 모습도 새삼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일반 기업체 같은 경우는 국외연수나 여러 가지 연수에 대해선 많은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전라남도교육청에서 전국 최초로 지난 8월 9 ~ 8월 15일 까지 교육공무직에 대한 국외 연수를 1, 2 차로 실시한바 있다. 캄보디아 와 베트남의 학교 그리고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장만채 교육감님을 비롯하여 예산정보과 담당 부서 직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 아직은 여러모로 우리나라보다 뒤 떨어지는 나라이지만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또 베트남의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교육활동에 있어서 우리나라 교육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음을 알았고 비록 한국학생들이지만 훌륭한 시설과 교육환경을 만들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현지에서 노력하고 계시는 파견 교사 및 직원들의 땀이 서려 있음도 확인하였다. 음식 과 생활이 맞지 않아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학생이 약 1200명정도에 학제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12학년제로 구분되어 있고 분위기도 워낙 여유 있는 학교생활이라 큰 문제가 없이 학교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 비해 캄보디아 학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다. 점심도 집에 가서 먹고 다시 학교로 와서 수업을 해야하는 어려움도 있고 특히 80년대 우리나라 교실을 보는 듯 했다. 학년제로 움직이며 우리가 방문한 학교는 약4000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속에서도 꿈을 위해 달리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눈망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특히 캄보디아에선 일정에 없던 고아원을 방문하여 사전에 가져간 옷을 기부하게 되었다. 누구하나 반대 할 것 없이 조용히 옷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한아름씩 꾸러미를 안겨 줄때는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너무나 어려운 환경이라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을 나누고 왔다고나 할까 나름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머지 일정들을 소화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을 지내고 있다. 서로 국외 연수를 다녀온 일행들과 정담을 나누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그 일상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게 일할 수 있게 되는 변화가 생기는 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이 나에게만 있는 것인지 물론 각자의 환경과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르지만 이번 국외연수를 다녀오고 난 뒤 다른 모든 교육공무직원들도 국외 연수를 다녀올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하는 기대가 생긴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전남교육 현장이 되길 바라며 그 속에서 웃음이 피어나는 근무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열정을 품고 있는가, 오늘도 활기찬 모습으로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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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25
  • [기고] 캠핑족을 위한 소형 견인차 면허를 아시나요?
    [교육연합신문=조영진 기고] 바야흐로 캠핑의 계절! 캠핑트레일러 운전도 별도의 면허가 필요한 거 알고 계셨나요?캠핑트레일러란 총 중량 750kg 초과, 3t 이하로 캠핑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차량에 연결해 이동할 수 있어 어디서든 캠핑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캠핑트레일러를 운전하려면 1종 특수면허의 트레일러면허를 취득해야만 했습니다. 트레일러를 캠핑과 레저용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수출용 컨테이너를 운반할 때 필요한 트레일러 면허를 취득토록 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경찰청은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7월 28일부터 기존의 1종 특수 트레일러면허를 대형견인차면허와 소형견인차면허로 구분하고 소형견인차면허를 신설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운전면허증을 시대 변화에 맞게 세분화하여 안전한 레저문화 활동의 기반을 마련하고 여가문화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운전경력 1년 이상의 1·2종 보통면허 소지자는 적성(신체)검사와 기능시험 후 면허발급, 운전경력 1년 이상의 1종 대형면허 소지자는 기능시험 후 면허발급이 되고 기능시험은 곡선, 굴절, 방향전환의 3가지 코스로 90점 이상 득점 시 합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설된 소형 견인차 면허 시험은 수도권 강남면허시험장, 충청권 대전면허시험장, 영남권 부산남부면허시험장, 제주권 제주면허시험장 등 전국 권역별 4개 시험장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캠핑트레일러 운전은 소형 견인차 면허로! 이번 휴가는 캠핑 어떠세요? ■ 창원서부경찰서 생활안전계 순경 조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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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25
  • [기고] "상지대학교의 실상을 국민에게 호소합니다"(2)
    [교육연합신문=상지정신실천협 기고] 인간의 삶은 유한합니다. 85세인 저는 유한의 끝자락에서 무한의 문턱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돈을 더 벌겠다는 욕심도 명예를 더 쌓겠다는 욕망도 없습니다. 누구와 싸워 쟁취하겠다는 투쟁심도 없습니다.저의 소망은 오로지 상지대학교가 세계중심대학으로 발전하는것입니다. 상지대학교 설립이란 육영의 뜻을 세운 후 제 인생은 상지대학교 그 자체였습니다. 근면하고 성실, 봉사의 자세로 상지대학교 발전만을 생각하고 실천했습니다. 상지대학교 발전이란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탈취당한 21년의 세월 동안 온갖 모욕을 이겨내고 분노를 삭일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의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 발전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발길이 바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상지대학교를 무법천지로 만든 사람들은 타당치 않은 이유로 제 노년의 열정과 희망을 꺾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해와 훼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잘못된 학생운동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 사람들이 1993년 임시이사라는 지렛대를 활용하여 상지대학교에 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없는 사이 상지대학교를 자신들의 잘못된 이념을 전파하고 실험하기 위한 투쟁의 해방구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전략과 전술에 따라 만들어진 매뉴얼대로 상교협의 이사회 무력화와 실질적 경영권 장악, 상교협 교수의 법인 사무국장(정 모 1996년 8월)과 학교 사무처장(임 모 1994년 3월) 취임 후 법인과 학교의 인사권 · 재정권을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은 상지대학교를 완전히 탈취하기 위해 상지대 도립화 추진과 원주시민대학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의 도립화 불가 표명과 원주시 유지들의 질책과 반대로 그들의 획책은 실패했습니다. 심지어는 상지대와 한신대, 성공회대 3개 대학을 민주대학 컨소시엄 결성이란 것으로 묶고 경인여대, 덕성여대, 세종대, 동해대 등 사학탈취 사건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윤덕홍 교육부 장관은 2003년 12월 시민대학 추진 정이사 선임 및 승인을 했습니다. 교육부에 의해 사립학교가 최초로 탈취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상지대학교를 탈취한 정이사 명단은 대한민국의 교육 역사에서 영원히 불명예로 남을 것입니다. 이사장 변 모, 이사 김 모, 이 모, 최 모, 김 모, 박 모, 하 모, 박 모, 김 모 등 그들이 누구인지는 자료를 통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상지대를 해방구로 삼은 이들은 2005년 6월말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대학과 교류협력을 타진했다는 방북 보고서까지 내 놓았습니다. 학교발전기금 241억 원을 임시이사 파견 1년 만에 흥청망청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썼습니다. 비대위 교수들은 학점을 볼모로 학생들을 선동하여 버스 안이나 집회현장에서 출석부에 서명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규 교과 시간에 집회 장소로 끌고 다니면서 불법집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심지어 학교 부지 4868평까지 불법매각했습니다. 학교 법인카드를 사용하여 유흥업소를 출입하고, 천문학적인 비자금도 마련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시이사 체제 하에서 학교 운영은 참담했습니다. 약 1조1천3백억 원을 집행하고도 2014년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당했고, 2015년 대학구조 개혁평가에서 D- 등급을 받는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제가 1974년 상지대학을 설립하여 1989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1992년 상지대 부속한방병원 개원하면서 5개년 발전계획수립(소요자금 241억원 조성) 등 20여년 만에 중부권 명문사학으로 발전시킨 것과 비교해 볼 때 지난 21년간의 상지대학은 불순세력들의 해방구로서 처참한 몰골 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1야당의 원내대표는 그들의 요구에 응해 상지대학교를 방문하여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은 후 상지대를 “어떤 법도 통하지 않는 김문기 독재체제의 아성과 같았다.”는 말로 저를 폄하하고 인격을 모독했습니다. 저도 3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했지만 국회의원이란 직함은 망나니가 칼을 휘둘러 대듯 가볍게 행동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법 절차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2014년 8월 14일 제8대 총장에 취임했습니다. 종전이사측 이사 4명, 학내 구성원측 이사 2명, 관할청 이사 2명, 임시이사 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책임경영을 위해 만장일치로 총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총장 취임 후 무보수 봉사와 기숙사 부지 무상 기증 그리고 글로벌 대학 추진을 위해 국제사업 다수를 성공시키고 해외 대학과 다수의 협약을 맺으면서 1974년 상지대 설립 당시의 초심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교육부가 특별종합감사를 실시했습니다. 임시이사 체제 21년간의 부정비리는 덮어 두고 저를 향한 표적 종합감사였습니다. 교육부는 2015년 7월 13일 행정업무 단순 사항으로 총장 해임을 통보 했습니다. 해임 이유는 ▲대학총장에게 배정된 관사를 상지대 한방병원장 숙소로 무상 임대 ▲계약 직원 2명 특별채용 ▲일부 교수에 의해 자행된 수업거부로 인한 수업결손이었습니다. 교육부는 총장 해임이 이뤄지지 않을 시는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하는 행정 계고를 했습니다. 교육부 감사 결과 지적사항을 모두 원상회복한 저는 그렇게 학교에서 또 다시 억울하게 쫓겨났습니다. 상지대 건학이념에 반하는 불순한 세력의 교수들이 대학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전략적 과대시위를 하고, 이를 빌미로 재임 4개월 만에 종합감사를 받고 해임되었습니다. 기숙사 신축과 한방병원 분원설치, 국제대학 설립, 직능·소상공인교육원 설립, 평생교육 단과대학 추진 등이 중단·지연되었습니다. 총장 취임 이후 일부 교수들이 학생들을 선동했습니다. 교내에 불법 시설물인 농성천막을 설치하여 학사일정과 행정을 마비시킬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임기 중에 대학 운영이 파행된 적은 없었습니다.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신축을 위해 사유지를 대학에 교지로 편입시켜 신축에 대한 절차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또한 한방병원분원 개원을 위해 강릉시 옥천동 요지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5층의 빌딩을 병원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80%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총장 해임 통보는 상지대의 중부권 명문사학으로 발전이 좌절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마지막 남은 꿈인 상지대학교를 세계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법원에서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도록 호소했습니다. 결국 2016년 2월 14일 교육부 총장해임 행정소송 무효판결에서 승소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초심을 세웠습니다. 모든 열정과 재산을 쏟아 반듯이 상지대학교를 중부권 명문사학이며 세계의 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사이에 제1야당 원내대표가 상지대를 방문했습니다. 뒤이어 사실 확인이란 기본을 무시하고 제 입맛대로 쓰는 일부 언론들이 마녀사냥하듯 상지대학교와 저를 매도하고 폄하하며 모욕을 주는 기사를 쏟아 냈습니다. 그런 뒤 일부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한 교육부는 8월 8일부터 19일까지 16명의 감사위원을 파견하여 종합감사를 벌이고 있고, 다시 감사기간을 8월 26일까지 연장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교육부의 종합감사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법치국가는 국가가 법에 의해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편타당한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법과 원칙이 무시되고 중상·음해모략, 떼법만이 무성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상지대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김문기의 소망은 단 하나입니다. 남은 인생의 열정을 바치고 사재를 출연하여 상지대학교를 홍익인간과 상지정신으로 경쟁력 있는 세계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과거 불순한 세력의 편에 선 사람들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 발전계획’ 이행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손을 잡고 함께 갈 것입니다. 반면 잘못된 사고와 행동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시위를 직업화하면서 학교 발전에 걸림이 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법질서에 따라 함께할 수 없을 것입니다. 21년 동안 불순세력들의 해방구가 된 상지대학교가 건학이념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희망세력들이 용기와 격려 그리고 행동으로 함께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학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으로 비대위의 도립대학 추진을 막아준 강원도민과 시민대학 추진을 무산시켜 준 원주시민 그리고 상지정신 실현에 앞장선 ‘상지대학교 총동창회’,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 등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또한 전국 NGO연대와 공동체의식개혁국민운동협의회(공개협) 등이 중심이 되어 2002년 3월 결성된 상지학원·상지대학교 진실규명 및 설립자학교찾아주기운동본부의 사회 지도층 인사와 430여 개 시민단체의 회원님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진실을 믿고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시련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상지대학교 정상화를 위해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희망을 찾아 준 상지대학교 이제는 지켜주십시오. 상지대학교를 설립한 저 또한 85세의 노구를 이끌고 현장에서 쓰러지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상지대학교를 세계중심대학,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될 수 있도록 설립자로서 열과 성을 다해 성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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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24
  • [기고] "상지대학교의 실상을 국민에게 호소합니다"(1)
    [교육연합신문=상지정신실천협 기고] "불순세력들은 상지대를 이른바 '해방구'로 정하고 잘못된 이념을 전파해 무법천지로 만들어 갖은 비리와 부정을 일삼았다" -상지대학교 설립자 겸 제8대 총장 김문기- 사실을 알리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1993년 정치적 사정에 의해 터무니없이 학원비리 설립자로 매도당해 상지대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인생을 다 바친 곳에서 쫓겨나 교도소에 갇힐 때 실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없는 죄를 인정하고 교도소에 간 것은 교직원들을 보호하고 학교발전을 보장하겠다는 집권당 사무총장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1년간 학교를 빼앗겼습니다. 임시이사와 임시총장 그리고 그에 영합해 교수가 된 자들에 의해 대학은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인내하고 진실을 알리는 노력 끝에 2014년 8월 14일 학교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제 나이 적지 않은 85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노력하라는 하늘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85년의 삶을 산 제게 71주년 광복절은 남달랐습니다.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상지대학교는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시련의 세월이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벽녘 하얀 화선지위에초심(初心)이란 글자를 썼습니다. 김문기의 초심은 무엇일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인생에서 저의 희망과 초심은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선진화와 통일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길러 내겠다는 사명이 그것입니다. 1974년 상지학원 설립 당시 건학이념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은 상지정신이 떠올랐습니다. 열네 살 때 맞은 광복의 기쁨이 그러했듯이 상지학원의 건학이념을 세상에 내 놓았던 마흔두 살 때의 가슴 벅참도 그랬습니다. 제가 창시한 건학이념은 이러합니다. “본 대학은 우리나라 교육이념인 홍익인간과 교육입국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예지를 닦고 역량을 길러 국가의 장래를 설계 창조할 지도자적 영재를 기르는 터전으로 세워졌다. 따라서 본 대학은 대학 자체의 기능인 진리탐구와 인격도야에 충실한 학풍을 진작하고 여기서 함양된 인재들은 대학이 인류사회에 져야 할 경세치용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지행합일의 교육을 지향한다. 특히, 본 대학은 설립자의 굉원(宏願)인 상지정신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아 인간의 존엄을 되찾고 인성의 선단(善端)을 확충하여 천지간 어디서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인간상을 정립하고 국가민족의 원기인 사풍을 진작한다. 또한, 본 대학은 지방에 위치한 특수성에 비추어 지역사회발전의 창조적 원동력으로 자임하고 필요한 연구시설과 훈련 기구를 부설하여 풍교순화와 산업개발 등 지역문화 향상에 적극 기여한다.” ‘상지정신’을 세상에 내놓을 때 심적 갈등이 심했습니다. 사업과 인연 그리고 조국의 미래 등으로 불면의 밤은 깊었습니다. 저는 촉망받는 청년사업가였습니다. 가구 분야의 국내 1위를 기반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자금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인연이었습니다. 당시 민관식 문교부장관과의 인연은 남달랐습니다. 가구 사업의 터전이 종로구인 관계로 맺어진 인연에서 그 분의 올곧음과 성실 근면함은 인생의 사표로 작용했습니다. 조국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도 갈등으로 다가왔습니다. 가구 사업의 세계진출과 대학설립을 통한 인재육성 중 어떤 것이 조국의 미래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인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학설립의 연원은 제1군사령부 한신 장군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원주는 제1군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부실하게 운영되던 청암학원의 원주대학(야간부)이 폐교된 이후 군인들이 배울 수 있는 대학이 없었습니다. 한신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원주지역에 대학 설립을 요청했습니다. 국군의 유능한 장교를 길러내기 위해 대학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박정희 대통령은 민관식 문교부장관에게 대학설립자를 찾아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민관식 장관은 우선 강원도 출신 실업인들을 대상으로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대학을 설립할 만한 재정 능력이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요청했지만 모두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 건물에 강원도민회 사무실을 무료로 내 줄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깊었습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저를 적극 추천했고, 민관식 장관은 제게 대학설립을 적극 권했습니다. 성장가도에 있던 기업이 세계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당시 산간벽촌이던 원주지역에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혼자 고민하다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보여준 조국 근대화에 대한 열정과 인간미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당시 청와대 건설공사에서 외부는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내부는 우리 회사가 맡았습니다. 가끔 현장을 찾던 박정희 대통령께서 차 한 잔 주시면서 “이봐, 젊은 김 사장 잘 돼가지.”라며 격려해 주시던 말씀이 새로웠는데 그 대통령께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원주에 대학 세울 사람을 찾는다고 하니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계시장 진출 대신 대학설립을 선택한 저는 인생의 목표를 대한민국과 세계가 필요한 대학을 만들 것을 다짐하면서 상지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런 상지정신이 상지대학교의 발전을 훼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김문기 우상화’로 매도당할 때 제 마음은 이루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상지(尙志)는 선비 정신으로서 인에 살면서 의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상지정신은 홍익인간과 선비정신이 구현된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입니다. 상지학원 설립 이후 오직 한 길로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상지학원은 1987년 대학원 설치인가를 받았고, 1989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습니다. 1992년에는 상지대학교 부속 한방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상지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발전하는 사이 조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남은 과제는 선진화와 통일입니다. 21년의 공백 끝에 상지대학교로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의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에 발맞춰 상지대학교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상지대학교를 중흥시킬 방안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 동안 대학환경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주인을 내쫓고 주인행세를 하던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행위를 탓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학비리가 바로 상지대’란 잘못된 인식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풀 한포기와 나무 한 그루에도 제 혼과 땀이 깃들어 있는 상지대학교 중흥만을 생각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정심정도(正心正道)로 나가면 조국의 선진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대학이 될 것으로 믿으며 초심으로 돌아가 발전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구상이 반영되어 구성원들은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였으며, 도전과 공영, 혁신과 창의, 소통과 화합의 3대 강화 전략과 7대 핵심역량을 수립했습니다. ▲핵심역량은 인성을 겸비한 글로벌 미래인재 양성 ▲더 잘 가르치는 교수 ▲더 열심히 배우는 학생 ▲더 헌신하는 직원 ▲끝까지 책임지는 교육 ▲끝까지 해결하는 행정 ▲본분을 지키며 하나 되는 상지공동체입니다. 이를 위해 36개 중장기 실행과제와 70개 중장기 세부 실행과제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6.25의 고교생 학도병 출신으로 보국헌신의 길을 기업에서 대학 설립으로 전환한 교육자로서 항상 언행일치를 강조했습니다. 기업 활동은 무엇보다 신뢰가 생명이었습니다. 믿음은 언행일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소신은 건학이념인 ‘상지정신’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 발전계획’도 그랬습니다. 실천이 뒤 따르지 않는 발전계획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치유와 관련된 많은 연구와 자료를 토대로 이 분야를 학문화 하고 더욱 발전된 국면을 위한 차원에서 자연치유원을 설치하고자 2016년 2월에 새로이 70만평의 임야를 확보했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을 상지대학교 발전에 아낌없이 출연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은 천지지지아지자지(天知地知我知子知)입니다. 하늘과 땅과 나와 상대가 알게 됩니다. 비밀은 없습니다. 제가 상지대학교를 설립하고 발전시킨 과정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제가 1993년 수사를 표적사정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으며, 2007년 대법원의 판결에서 승소할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김문기는 사학비리의 표본'이라는 인터넷상의 기사를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런 기사를 접하고 걱정해 주는 분들에게 사실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지대학교를 탈취하여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일부 정치권과 일부 언론을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상지대학교를 중부권의 우수한 대학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인은 상황을 탓하지 않고 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에 대한 음해 모략이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 되고 사면복권 후 임시이사 시절 교수로 들어와 학교를 파행으로 이끌어가다 비위사실로 파면된 자들과 그 동조자들은 야당 원내대표의 상지대학교 방문과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요청하는 등 상지대학교 발전의 방해 활동을 계속 전개했습니다. 파면된 교수들 중에는 김일성대학을 방문하고 상지대와 자매결연을 맺자고 주장한 교수도 있습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는 2016년 6월 21일 학교를 방문하여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돌아갔습니다. 그런 후 당의 제47차 비상대책위원회의 모두 발언에서 “상지대학교처럼 30년 이상을 김문기 전 이사장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이 중단 된 학교는 없다.”, “상지대는 무법천지인 것을 확인했다.”, “사실상 해임 된 상지대의 전 총장 김문기 씨가 학교 관계자들을 불러서 사실상의 결재권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21세기 대명천지에 대학생들을 상대로 김문기 선생의 철학을 인성교육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면 김일성 주체사상처럼 김문기 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면서 상지정신의 책을 욕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상지정신이란 책을 읽어 봤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홍익인간과 선비정신을 담은 상지정신을 김일성 주체사상과 비교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적으로 큰일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야당의 모 원내대표의 상지대학교 방문은 악의적인 편견에 기인한 정당의 포퓰리즘이었습니다. 민생투어를 핑계로 학생운동 시절 맺어진 인연의 사람이 그 동안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도 모르고 편파적인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행동이었습니다. 현재 대학은 학령인구의 감소와 대학 정원 조정 등 대내외적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상지대학교 구성원 모두는 글로벌 인재 양성과 중부권 명문사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과 헌신은 대학의 안정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부정과 비리에 관련된 교수들은 학내분규를 야기하면서 학사운영 전반을 파행으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21년 동안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특정 정치인과 언론을 이용하여 중상모략적인 음해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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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23
  • [기고] 설립자의 건학이념인 오상(五常)으로 상지대학 정체성 확립해야
    [교육연합신문=상지정신실천협 기고] 국가의 앞날은 교육의 발전 정도에 의해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을 지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국가는 재정적 이유 등으로 책임의 일부를 개인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그리하여 국가의 백년대계는 막대한 사채 출연이란 희생을 기꺼이 감내한 독지가의 손에 맡겨진다. 그런 만큼 사학의 운영은 투철한 교육철학이나 교육적 사명 없이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학의 교육적 사명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철학은 건학이념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건학이념은 사학의 자율성을 담보하는 최고의 가치인 동시에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비록 국가 권력일지라도 그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알려진 대로 노암 김문기 박사는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명문대학을 만들기 위해 원주시 우산동 660번지 일대 37필지 208,262㎡(62,999평)의 사재를 출연해 오늘날의 상지대학교 및 상지영서대학교의 부지를 조성한 후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교사동을 마련해 1974년 4월 2일 상지대학교를 개교하였다. 개교 당시 노암 김문기 설립자는 우리나라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인(仁)과 의(義)를 추구하는 선비정신 그리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5상을 바탕에 둔 상지정신(尙志精神)을 건학이념으로 손수 제정하여 학문적 지성과 도덕적 인격을 갖춘 참된 지식인을 길러내어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원대한 육영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영달을 꿈꾸었다면, 눈앞의 결실에 전전긍긍했다면 대한민국의 사학 설립자 어느 누구도 육영사업에 매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끝없는 자기희생의 자리이자 수십 년 수령(樹齡)은 지녀야 비로소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평생의 과업인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상지정신을 건학이념으로 삼아 상지학원·상지대학교를 설립한 노암 김문기 박사는 국가교육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대표적 교육자로서 손색이 없다. 상지정신의 모태를 이룬 선비는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으며, 죽음 앞에서도 추호의 두려움이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선비는 어질고 곧은 뜻을 숭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을 두루 갖춘 인격체인 선비는 우리 민족의 지성을 대표하며, 실천의 준거로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이르러 ‘선비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소외가 만연된 이 시대에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실천적 사표가 될 만한 인품을 지닌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참된 인성을 갖춘 인재의 확보는 한 기업, 나아가 한 나라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인성의 중요성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선비정신을 근간으로 한 상지정신은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체득해야 하는 최선의 가치를 지님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과제는 남는다. 우리의 선비정신이, 인의예지신의 오상이 21세기 시대정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부단한 자기갱신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상지대의 건학이념인 상지정신이 우리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21세기 이후의 먼 미래에도 유효한 사상적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시대정신에 걸맞은 전통적 가치로 재창조될 수 있어야 한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상지정신(尙志精神)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으로 인격 도야에 힘쓸 때만이 개인은 비로소 주체적 생활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나아가 민주국가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 상지대학교의 교훈이기도 한 성실과 협력과 봉사의 덕목을 스스로 정하신 대로 오늘날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몸소 실천하고 있으신 노암 김문기 설립자의 바람은 상지정신(尙志精神)을 두루 전하여 우리가 올곧은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전부임은 우리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 회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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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17
  • [서평] 지금은 내 탓이라고 말할 때
    [교육연합신문=장옥순 기고] 대한민국 교육,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 집합소 아픈 상처들의 백과사전 진흙탕에서 물고 뜯는 현장 고발 소설 썩어 문드러진 고름들, 난자당한 사람들의 피맺힌 울분 그들의 서러운 눈물, 죽어가는 풀꽃들의 울부짖음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 외면하고 살았던, 나는 아니라고 모두 제 할 탓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 내 아이만은 우리 집만은 그 대열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고개 돌리며 살아온 집단 무의식으로 최면 걸린 채 뜨거운 열탕으로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숨이 막혀가는 개구리를 보는 것 같아 답답하고 메스꺼운 토사물이 행간마다 넘실대는 착각을 들게 하는 책. 지금은 내 탓이라고 말할 때 대한민국 교육현장을 해부한 현장 고발서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의 이름을 달고 태어났으나 그 누구도 소설이라고 여기지 못할 만큼 고배율의 현미경을 들이대고 쓴 사실의 기록이다. 언론매체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했던 교육문제의 어두운 단면을 한 꾸러미로 엮은 종합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고발한 프랑스의 소설가를 보는 느낌이다. 이 책은 필독서다. 자식을 둔 부모도 읽어야 하고 선생님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학교장도 읽어야 하고 대학 교수도 읽어야 한다. 특히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국가의 교육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아야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내 자식이 내 제자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단, 이 책에 활자로 박힌 언어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라 현실임을 잊으면 안 된다. 내 집 이야기는 아니라고, 우리 학교 이야기는 아니라고 그 누가 소리 높여 말할 수 있으랴!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그대는 가해자가 되고 말리라. 아프디 아픈 교육의 현장에 발을 담그고 사는 이상, 이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상, 그 누구도 작금의 교육 현실에 남 탓을 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이 그 증거다. 오랜 기간 자료를 수집하고 폭넓은 취재 활동을 씨줄 날줄로 엮어 상처 받고 죽어간 원혼들의 목소리, 도리질 당한 영혼들의 피울음이 행간마다 넘쳐나는 까닭이다. 목울음 우는 풀꽃들이 작가의 가슴을 빌어, 작가의 손칼 위에서 작두를 타며 “풀꽃도 꽃이다, 나도 사람이다, 인간 대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고 외친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세월호의 가련한 풀꽃들이 책장마다 튀어나와 “우리는 살 수 있었다!”고 외치는 책이다. 교육문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작가는 상처를 낫게 하는 방법이 있음을 자신 있게 보여준다. 문제점의 원인을 진단했다는 것은 해결책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 교육은 서로 남 탓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그 피해는 오롯이 학생들과 자식들 목을 죄어왔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곳도 피할 방법도 없음을 직감한 작가의 분노를 피하지 말자. 작가는 분노하는 사람이다. 불의한 일에 나서야 하는 사람이다. 몸으로 항거하지 못하는 대신 글로 나서는 사람이 작가다. 조정래 작가는 지금 온 국민을 향해 가슴 속에서 철철 흐르는 피의 언어로 상소문을 썼다. 백발이 성성한 작가가 외친다. “성적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며 사는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100년의 약속, 교육을 함께 고민하자고!” 한 해 동안 학교를 떠나는 아이는 모두 7만 명, 초·중·고 680만, 1년에 40조가 꿈틀대는 거대한 교육 시장에서 내 아이만큼은 상위 1퍼센트여야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부모,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공부하는 학생들, 놀 시간이 가장 짧은 아이들, 가르치는 기쁨보다 회의와 좌절로 허탈한 교사들, 그렇게 올인하고도 남는 것은 헬 조선과 N포세대 젊은이들, 양극화 등등. 그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교육 문제가 첫 단추라는 한 두 문장을 이토록 처절한 외침으로 세상을 향해 분노의 깃발을 들어 올린 작가 조정래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그는 1943년생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앞날을 걱정하는 칠순을 넘긴 작가의 간절한 염원이 온 세상에 넘쳐서 산적한 교육 문제를 걱정하고 대책을 세워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물결들이 넘실대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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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16
  • [기고] 세월호 보고서 어디까지 왔나?
    [교육연합신문=장옥순 기고] 세월호 닮은꼴 美 '카트리나 모멘트' 지난 2005년 8월 29일,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이로 인해 지역의 80%가 침수됐고, 1836명이 사망했으며, 11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탓에 수만 명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하는가 하면, 수많은 주검들이 수습되지 못한 채 물 위를 떠다녔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 절박한 순간, 뉴올리언스 시장은 아무런 설명 없이 2시간이나 자리를 비웠다. 부시 대통령은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지 만 하루 만에 휴가에서 복귀했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간 현장 대응에 혼선이 발생하면서 구조 물자 지급이 지체되는 등 문제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 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고, 중간선거 참패와 공화당의 재집권 실패로 이어졌다. 이때 생겨난 정치용어가 바로, 대형 재난 등 특별한 계기로 정부 지지율이 급락하는 현상을 일컫는 '카트리나 모멘트'다. 미국은 카트리나의 비극을 잊지 않았다! 카트리나 참사 이후, 미국은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진상조사를 벌였다. 22번의 청문회를 가졌고, 325명을 증언대에 세웠다. 83만 8000쪽에 이르는 자료를 검토한 끝에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연방정부의 대응'이라는 보고서도 발표했다. 보고서의 부제는 '얻은 교훈들'이었다. 재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비, 지속적인 재난 대비 훈련을 위해 연방 재난관리청(FEMA)의 위상과 역할도 강화했다. 그리고 7년 뒤, 또 다른 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강타했다. 대형 참사를 야기할 만한 규모의 허리케인이었지만 2주 전 언론을 통한 예보, 3일 전 해안지대 주민들 의무 대피, 1일 전 침수 위험 주민 사전 대피 등 재해에 체계적으로 대비함으로써 대형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카트리나 참사에서 얻은 교훈들이 실현된 덕이다. (2016. 4.18. 노컷뉴스 인용) 실패를 반성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으면 반복된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벌써 2년을 넘었다. 그동안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미국이 카트리나 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22번의 청문회를 실시하여 관련자를 문책하고 방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한참 부족해 보인다. 카트리나 참사는 자연재해였음에 비추어 세월호 참사는 예고된 인재였으니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뼈저리게 아픈 사건이다. 우리 역사가 지속되는 한 가장 뼈아픈 참사로 기억되어야 하며, 그 처리 과정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할 사건이다. 그런데 진행 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제대로 돈 청문회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제대로 된 문책도 없으며 진정한 사과도 없으니! 분노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간간히 연명해 가는 듯하여 가슴이 답답하다. 미국이 자연재해임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방대한 자료와 기록을 남기며 청문회를 열고 관련자를 문책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한 것 아닌가? 일상의 삶이 바빠서, 내 자식의 일이 아니니까,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은 괴로우니까, 피해 보상을 받으면 되는데 언제까지 들먹여야 하냐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더 분통이 터진다. 살기도 바쁜데 더 이상 이야기도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참 많아서 놀란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이 무섭다. 역사를 잊어버리자는 말과 같다.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곪아터진 암 덩어리를 찾아 도려내는 것이 먼저다.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책임자를 처벌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패에서 배우는 못하고 덮어버리는 것은 더 큰 재난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다. 식민지 역사를 반성하지 못하고 도려내지 못한 채 그 물에서 활개 치던 사람들이 이어온 역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면서도 유야무야 덮기를 반복하는 현대사 덕분에 이 나라 곳곳에서 고름들이 터지고 있지 않은지 두렵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자라나는 세대와 젊은이들을 좌절과 절망으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다. 눈만 뜨면 불안한 뉴스와 갈팡질팡하는 정치 수장들이 국민의 생존권을 놓고 이랬다저랬다 영혼이 없는 말들을 쏟아낸다. 최고 학부를 나온 부장 판사의 성매매 일탈은 이 나라 고위직의 도덕성 수준을 가늠케 하기에 충분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 기회에 성매매를 합법화 하자는 목소리가 공공 방송에서 벌건 대낮 방송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성 충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니 법으로 얽매지 말아야 한다는 유명한 삼리학자의 괴변에 놀랐다. 그 분도 역시 이 나라 최고 학교의 심리학자다! 마치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면 훔쳐 먹어도 된다는 논리 같아서 아연실색했다. 장하준 교수가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고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주장한 내용을 보는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최고 학부를 나와서 지존의 자리에 있어도 군림하는 자리에 올라도 도덕성과 인간성이 결핍된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는 말이다. 지식은 갖추었으나 지성까지 갖추지 못했으니 한 순간의 일탈로 무너지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성매매가 한 인간의 파멸로 좁혀 볼 수 있음에 비해 세월호 참사는 거대한 해일이다. 결코 한 두 사람의 책임으로 몰고 갈 수 없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따지고 기록하며 부끄러운 역사를 남겨야 한다. 특히 너무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꽃송이를 보낸 애끓는 부모들을 위무하는 일은 돈이 아니다. 위로금 받았으니 그만 두라는, 이쯤에서 그만 잊자고 하는 사람을 나는 증오한다. 공감력이 없는 무서운 사람 같아서 친구건 친척이건 정나미가 떨어진다. 진심과 눈물을 담은 피맺힌 사과다. 그것도 오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위로와 반성으로도 피맺힌 한을 닦아 줄 수는 없지만 진정성만은 온 국민이 가져야 한다. 누구보다 정부 책임자와 그 많은 학생을 잃은 교육부는 두고두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도 카트리나 보고서와 같이 수 만 쪽의 기록물로 피맺힌 역사로 남아야 한다. 아프고 시린 세월호 보고서가 나오는 날까지 미안해하고 분노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 2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쯤 진행 결과를 담은 중간보고서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상처를 잊어야 살아남는 것은 개인에 한해서다. 국가가 그래서는 안 된다. 정부가 그,래,서,는 안 된다. 교육부가 그래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단원고 한 학교의 일이 아니다. 안산 지역 한 곳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아픈 역사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시리고 아프다. 세월호만 생각하면 아픔과 분노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으나 용기가 없으니 1인 시위도 못 하고 이렇게나마 한숨 내쉬며 소리 없는 아우성만 내지름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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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05
  • [기고] 군자삼계(君子三戒)
    [교육연합신문=이진수 기고] 공자님 말씀에 군자가 경계해야 할 것이 세가지 있다고 한다. “젊어서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아 색(色)을, 장년에는 혈기가 왕성해져 다툼을, 노년에는 혈기가 쇠약해져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요즘 성범죄 뉴스가 하루가 빠지는 날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계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성범죄 처벌이 강화되었지만 성범죄도 교묘하게 진화하여 언제 어느 곳에서나 휴대폰을 이용한 몰카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몰카’만 하더라도 성적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촬영행위 또는 촬영물을 반포, 전시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신상공개 처분을 받고 인터넷에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거나 경찰서에 와서 신고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깊은 후회를 하는 것을 보았다. 7월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름철 성범죄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2015년 30,651건 (2014년 29,517건 2013년 28,785건)으로 피해자가 수치심으로 신고하지 않은 사건까지 더하면 발생건수는 더 많을 것이다. 피서지 성범죄 유형으로는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이용하여 수영복 차림의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는 ‘몰카’와 인파가 많은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여성들의 몸을 더듬거나, 물놀이 중 여성의 신체를 접촉하는 성추행, 술에 취한 사람으로부터 성폭행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러한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예방이 중요하다.첫째. 범죄에 표적이 될 수 있는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고, 둘째.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과도한 음주는 하지 말아야 하며, 셋째.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이나 음료수나 음식을 권할 경우 정중히 사양한다.넷째. 불쾌한 성적 접촉이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강력하게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좋으며. 다섯째. 늦은 시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는 것은 주변상황을 판단할 수 없어 매우 위험한 행동이 된다. 마지막으로 피서지에서 운영중인 여름경찰관서의 위치를 알아두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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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9
  • [기고] '주인'과 '주인의식' - 상지대 최용석 교수
    [교육연합신문=최용석 기고] '주인'과 '주인의식'은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의지에 힘입어 주인의식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물질적, 정신적 희생을 치른 인물에게만 부여되는 명예로운 호칭이 바로 주인이기 때문이다. 부모 같은 마음을 지녔다고 해서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주인은 주인의식 그 이상이요, 부모 마음은 부모 같은 마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문제는 주인의식을 내세워 주인의 사소한 흠짐을 침소봉대하는 비열한 방법으로 주인이 심혈을 쏟아 이룩한 모든 물리적, 정신적 자산을 송두리째 빼앗고자 하는 사악하고 음흉한 심보이다. 사유 재산의 인정에 기반을 둔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사악한 심보는 사회 질서를 무너뜨려서 결국에는 우리 삶의 존립 근거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하루바삐 제거해야 할 암적 존재인 것이다. 간혹은 억한 심정이나 도둑놈 심보로 여기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세력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의 형국으로 귀결될 터이다. 이들 세력 역시 자신들이 일궈낸 물리적, 정신적 자산이 주인의식을 내세우는 다른 날강도나 협잡꾼에게 찬탈되는 것을 결코 원할 리 없기 때문이다. 교육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 요즈음, 지방 소재 대학의 경우 그 체감 정도는 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때,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학교법인 상지학원 설립자 노암 김문기 박사는 현 정이사 체제의 법인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지만 책임 경영과 대학 발전 기원의 차원에서 7월 19일 1억6천만 원을 기부하였다. 이 기부금은 2012년부터 누적된 학교시설 임대료 부족분을 충당하는 데 쓰였다고 현 법인은 밝혔다. 설립자는 이 기부금과는 별도로 법인운영 부족금 5억 8천여만 원을 기부해 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응하여 곧 충당할 예정이라 한다. 또 대학 대학본부 측으로부터 학생기숙사 수용시설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전해 들고 곧바로 사유지 1,652평방미터(약 500평)을 기증하고, 이곳에 연건평 14,880평방미터(약 4,500평) 15층 기숙사를 신축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주인의식만으로 이만한 일들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행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주인은 다르다. 주인만이 주인의식 이상의 책임의식과 사명감에서 자기희생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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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8
  • [기고] 개성 있는 낭송가를 찾아라
    [교육연합신문=김숙희 기고] 시낭송 경연대회 분위기를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배우고 시를 익히고 성장한다. 경연에서 수상하기 위해 그 지도자의 패턴을 따르고 수상자를 모방하면서. 이렇게 시낭송을 하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고 '시낭송이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 못박힌다. 그래서 시낭송 제조기란 신조어까지 생기며, 마치 우리나라 시낭송의 정석처럼 몇몇 대 시낭송가들이 시낭송 패턴의 큰 아류를 이루며 '우리, 서로, 자기와 다름'의 패턴을 인정하지 못하는 병폐! 시낭송은 감동과 자연스러움과 명료함의 기저에 수십 가지의 패턴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자연스러운 낭송이라 함이 일상적으로 대화하듯이 아닌, 그냥 흐느적거리는 듯함이 아닌 무용에는 연습된 무대 걸음걸이가 있고 춤에는 오랜 훈련의 춤 동작이 있듯이 자연스런 낭송도 일정한 수준의 기교가 필요함은 당연한 이치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 세세한 기교조차 모방으로 담습하며 큰 대세를 이루어 버리니 모두 다 같은 시낭송 기법이 물결치며 똑같은 패턴의 시낭송에 대한 인식과 집단화 형성으로 자기 장르 외에는 은근히 옳고 그름으로 거부하고 있다. 기성 낭송가들의 무리 속에 섞이면 타인의 낭송에 대해 칭찬하는 기류를 거의 읽을 수 없음도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여러 가지 패턴! 남이 아닌 우리 '류'를 찾아서 새로운 패턴의 감동적인 시낭송가를 발굴하고 분류된 힘들과 팬들이 다시 조금씩 결집되고 전파해서 결국은 시낭송 흐름을 시대에 맞게끔 폭넓은 다양성으로 유도해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시낭송 세계에 깊이 발을 담글수록 자기화! 자기 패턴만이 옳음으로 고정화 되어버린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피곤도가 높아지면서 대화의 문을 닫게 된다. 지금 현재도 3080 음악만 줄곧 고집하며, 전자음악이나 편곡이 많이 가미된 가락의 정형화 되지 않은 듯한 노래를 거부하고서, 듣자마자 즉시 꺼버리는 변화의 흐름을 수용치 못하는 친구와 오버랩 되며... 인기 음악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을 보라! ‘불후의 명곡’의 기존에서 탈피한 독특한 창법과 세련된 감동을! 초창기엔 인기가 없었으나 지금은 진정한 감동적 음악의 새로운 쟝르로 정상에 우뚝 올랐다. 시낭송 대회 초반에는 어제의 대상이 오늘의 예선 탈락자가 되고 어제의 예선 탈락이 우리나라의 인지도가 가장 큰 대회의 수상자로 기록되어, 상이한 방향의 선정으로 처음에는 조금 난해했던 심사기준!(공정성의 논란은 이 글의 관점 포인트가 아니니 접어두기로 한다) 이제 닻을 내리고 대회를 관조하고 조명해 보니, 대회마다 각기 다른 성향의 심사위원들이 차별적인 대회의 색조를 실어서 그 대회의 특색에 걸맞는 대상을 배출하는 것도, 시낭송가로서가 아닌 수십년 시를 애송한 관중 입장의 평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시낭송 발전의 장기적 안목으로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려 본다. 다행히도, 만연된 비슷한 패턴에서 차츰 개성적인 낭송가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대회들이 늘어남을 피부로 느끼니 아마도 새로운 취향을 가진 심사위원의 세대교체가 기성세대와 잘 융화되어 혼재해 간다면, 조금씩 낭송계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주된 요인이 되지 않을까! ■ 김숙희 시낭송가 ◆ 대학원 영문과 졸업, 공립 영암삼호고 현직 영어교사 ◆ 상록문화제 심훈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사단법인 한국명시낭송가협회 시사랑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천상병 전국시낭송대회 금상, 김소월 백일장 산문 준장원 및 시낭송대회 은상, 총 전국시낭송대회 9개대회 수상, 월간문학세계 낭송문인, 시낭송대회 기획, 시와 함께하는 대합창제 특설무대 초청낭송 등 수필가 등단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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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7
  • [기고] 상지대 상지정신실천협, "우리의 현실과 상지정신을 말한다"
    [교육연합신문 =최용석 기고] 우리의 현실과 상지정신을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는 말한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발자취를 돌이켜 보건대,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이뤄낸 이면 속에는 위기의 극복이라는 보편적인 역사적 사실이 어김없이 존재한다. 이러한 보편적 사실에서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는 급격한 근대화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과 붕괴, 무한 경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 및 소외, 사회 전반의 소통 부재, 물질만능주의 등에 의한 반윤리적 사회 분위기의 고착화이다. 이러한 정신적 타락은 가시적 위기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위기는 타계의 실마리를 찾거나 해결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반면, 정신적 가치의 타락은 점진적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까닭에 문제점이 쉽게 가시화되지 않고, 그 해결책 마련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폐한 정신적 가치가 누적되어 임계치(臨界値)를 넘어서는 순간, 그 파급력은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상을 초월한다.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부조리는 참된 인성의부재를 그 우선적 원인으로 밝힐 수 있다. 현재 교육부가 주체가 되어 올바른 인성함양을 위한 교육을 권장하고 있지만 올바른 인성교육의 구현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왜냐하면 현 제도권 교육은 ‘인성교육’보다 ‘취업교육’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취업교육과 인성교육이 착종(錯綜)되어, 취업을 위한 인성교육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왜곡된 인성교육을 본연의 인성교육으로 바로 세우려면 그 독립성이 확보돼야 하며, 그 영역 또한 다양한 학문과의 결합을 통해 실질적인 인성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확대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을 인성의 부재로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4년 12월에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인성교육진흥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한 바 있다. 인성교육진흥법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 육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에 따르면 인성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성교육의 사회적 이슈화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도와 의지에서 이루어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성교육은 과학적 지식의 합리성과 효율성에의 몰입 내지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흐트러진 인간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시도의 일환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의 내용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제도권 교육에서 지향하는 전인교육은 인간의 자질을 전면적이면서 조화롭게 육성하려는 교육이다. 그러나 근대 이래로 우리나라의 제도권 교육은 서양의 이성주의에 전도(顚倒)되어 실용적 지식기능만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은 날로 심화되어 제도권 교육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이 사상(死狀)되어 교육 불균형의 병폐를 낳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지에서 노암 김문기 박사가 건학이념으로 삼은 상지정신은 단연 주목을 끈다. 상지정신의 핵심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의미망은 고루한 과거의 사상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을뿐더러 황폐해져 가는 이 시대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유효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상지정신의 궁구는 서구의 근대적, 현대적 가치에 밀려났던 동양정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상지정신의 탐색은 유학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인문주의와 함께 미래지향적 사유를 겸할 수 있어 제도권 교육의 지식기능 교육과 더불어 인성을 존중하는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원주시 우산동에 사재를 출연해 1974년 4월에 상지대학을 설립한 노암 김문기 박사께서 尙志精神을 건학이념으로 삼고 尙志를 교명으로 정한 것은 교육의 백년대계를 예견한 교육적 신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김문기 박사의 상지정신은 忠孝를 體로, 우리나라 교육이념인 弘益人間과 仁義를 추구하는 선비정신, 그리고 仁·義·禮·智·信의 五常을 用으로 하는 건학철학이며, 尙志는 仁에 살면서義를 따르는(居仁由義) 선비를 가리킨다. 상지대학교의 건학이념인 상지정신 속에는 홍익인간과 선비정신, 충효사상과 오상(五常)이 습합(習合)되어 있는데, 이러한 상지정신의 의미망은 한국의 전통적 가치와 동아시아 철학의 핵심 사상으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편 시대정신에 따른 독창적 재해석의 가능성까지 내포한다. 상지대학교에는 설립자 김문기 박사의 건학이념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가 구성되어 있다.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의 핵심 가치는 상지정신이므로, 상지학원·상지대학교는 상지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배움의 터전일 따름이다. 상지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은 상지인(尙志人)으로서 자긍심을 드높이고 자기 수양에 보탬이 되며 타인, 공동체, 자연 등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의 함양에 기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지정신을 근간으로 한 인성교육은 개인, 사회, 국가가 당면한 위기를 타개할 교육적 수단이나 목적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16년 7월 21일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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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1
  • [칼럼]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개, 돼지" 발언을 되새겨보며...
    [교육연합신문=김용범 기고] 인간은 평등한가? 평등하다면 왜 평등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동물이다. 개, 돼지와 진화의 방향은 다르지만 영장류의 한 종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개, 돼지 같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없는 것은 아닌가? 인간을 개, 돼지 취급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는가? 누구도 인간을 개, 돼지 취급한다면 싫어할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이런 발언을 했던 교육부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 정치권, 일반 시민 할 것 없이 징계를 하라고 한다. 징계는 정부에서 할 것이니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있다. 생물학을 전공한 나는 인간이 개, 돼지와 같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또한 계급사회도 바라지 않는다. 1%와 99%를 나누는 것에는 더 더욱 동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근본을 생각해 보지 않은 주입식 교육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사망한 앨빈 토플러는 미래에 사용도 하지 않고 없어질 직업을 위해서 15시간씩 공부하는 나라라고 우리를 평가한 바 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교육은 많은 지식을 전달하고 또 암기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평등하다고 배웠기는 했지만 왜 평등한지를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렇게 살면서 경험하다 보니 암기한 것과 다른 어떤 벽을 느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암기한 바와 다른 이상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암기한 것과 다른 내용이라 반발하고 징계라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평등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라면 할 수 있을까? 개, 돼지와 무엇이 다르다고 말하라면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암기하는 교육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획득하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각각의 지식의 근본을 생각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인지 그 근본을 보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관련 학자들도 이런 부분에 동감하고 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다. 나는 교육부 고위 공직자의 발언이 바로 이런 우리 주입식 교육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토플러의 말처럼 인공지능의 시대에 사라질 직업과 필요 없는 지식을 위한 교육들이다. 그래서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많은 지식을 단기간에 강제로 머리에 넣는 교육이 아니라 지식의 근본을 찾고 자존감을 키워주며 자연을 경험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할 능력을 키워주는 형태로 가야한다. 만일 나에게 인간이 평등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자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내가 설명하는 것은 아주 쉽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다. 살아가는 환경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유전자 조합이 더 나을 것이라고 예견할 수는 없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가정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많은 유전자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분명히 어떤 측면에서는 더 나은 유전적 능력을 가진다. 다른 사람은 다른 능력이 있다.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인류의 생존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중대하고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가치를 인간이 이성적으로 지금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영재다. 지적 능력이 좋다고 달리기 잘하는 것은 아니고 또한 그림 잘 그린다고 해서 음악 잘하는 것 아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서 영재는 달라지기 기준의 상대성을 생각하면 영재 아닌 사람은 없다. 어떤 능력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즉, 모든 사람이 영재고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평등하다. 동시에 영재다. 1%와 99%로 나눌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스스로 근본에 대해서 궁구해보는 것은 주입식 교육으로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능력이 뛰어난 자가 있고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자가 있다는 관점을 가진 누군가는 어쩌면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의견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분연히 반대한다. 물론 한 인간이 모든 능력을 다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능력을 한두 가지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영재라고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진화의 긴 시간으로 보면 비록 저능아라 할지라도 미래에 달라질 환경에 그가 더 잘 적응해 살아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 영재로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그렇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런 결과가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발언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이제는 가르치는 자가 오히려 영재를 영재로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는 우리 교육의 한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와 같은 형식으로는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와 99%를 가르면 어찌되겠는가? 자본을 가진 소수가 다수 국민의 행복을 앗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당장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다니는 당신의 자녀들이 겪을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또 진화는 당신의 자녀는 이미 영재라고 말한다. 그 아이가 가진 타고난 능력은 기성 세대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디 당신의 자녀가 영재임을 믿고 영재로 키우기 바란다. 당신의 자녀를 영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틀과 가치로 덧씌우지 않아야 한다. 많은 다양한 것을 경험하게 하더라도 지식이나 어떤 틀을 어른의 시각으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 바를 토론하고 논의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이는 어른과 다를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15시간씩 공부할 이유는 없다. 아이들을 영재로 키우고 싶다면 여행을 하고 자연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배우고 익힐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좀 더 여유를 주고 시간을 주고 그들의 행복을 되찾아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렇게 서둘러 변화해야하는 이유는 분명하고 확실하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국영수 중심의 교육은 10여년 이내에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이 과거처럼 생각하고 아이들을 교육한다면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 아이들이 제대로 적응하고 선도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사고를 하루 빨리 바꾸어야 할 때이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영재 대우를 해주자. 그러면 그들은 미래에 영재로 거듭날 것이다. 어쨌거나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말을 들으며 우리 교육의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서 인간이 평등한 이유를 생각해 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했다. 다음에는 인간이 개, 돼지와 다른 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말 인간은 개, 돼지와 다른가? 혹시 인간이 개, 돼지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진화는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개, 돼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것은 맞지만 개, 돼지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 살아가는 모습은 개, 돼지보다 더 뛰어나지도 않다. 누간가 잘못하면 개도 야단을 치고 혼낸다. 다른 동물도 늑대도 이러하다. 돼지의 인슐린 유전자는 사람에게도 작동하며 돼지의 심장을 달고 살아가자는 이종장기이식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생각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다. 비둘기가 도박에 거는 비율과 사람이 동일하다. 과학이 알려주는 수많은 실험 결과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에 표를 던지게 한다. 적어도 우리가 암기식으로 현대과학이 알려주는 사실들을 외우기만 하며 우리가 사는 삶을 산다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물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강자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고 약자는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개, 돼지 같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비록 현실이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동물 같은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인간만이 세계의 그 어떤 동물과 달리 이런 수준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지금 우리가 동물의 수준에 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수전을 벗어나는 길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지금의 지면이 너무 짧다. 그러나 그 길을 단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사랑하라는 것이다. 물론 인이나 자비라는 이름으로 말해도 된다. 어떤 표현을 쓰느냐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무엇을 행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로 잘못하기도 하고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단죄하고 그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동물도 그렇게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뿐더러 해결할 수도 없다. 더 좋은 방법은 용서하고 사랑하며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해 바꾸기 전에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 번 주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인을 실천하며 자비를 베풀며 배려 보라. 그러면 우리가 동물과 다르며 동물의 수준을 벗어날 수 있는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만일 10여년 후에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가장 피해를 볼 사람들은 그 때 노후를 보낼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 고위 교육공무원 발언을 보며 우리 시대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발언을 한 자의 징계에 대한 부분은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니지만 그의 발언하나에만 발끈하고 그를 징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앞으로 다가올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행위를 한 근본을 생각하고 치료를 시작해야 할 때라 생각되어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런데 왜 자연을 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의아할 것이다.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그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가 창의력과 공감능력이고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창의력은 생산성과 다른데 둘 다를 동시에 얻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창의력을 얻으려면 생산성은 포기해야한다는 의미다. 이유는 창의력 향상을 위해서는 여유와 생각할 시간 등을 필요로 하지만 생산성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입식 교육은 추격형 모델에서 생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가올 시대의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유와 생각할 능력을 키우는 창의력을 위한 교육에 기존 주입식 교육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래서 자연을 벗하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공감능력 역시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인이나 자비를 실천하며 정을 나누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하는 주입식 교육과 시험 등 현실적 여건 때문에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주말에 단 몇 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어 가족이 함께 근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라. 그리고 편안히 뛰어 놀면서 가족들의 눈을 응시해보라. 시험성적을 내기 위해서 공부한 것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시험 때가 되었을 때 어차피 더 해야 한다. 제도가 바뀐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래를 대비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갈 필요는 있다. 시험을 위한 공부 시간을 약간 줄이고 다소 여유를 찾고 자연을 즐기며 중간에 운동도 하는 것이 사소하지만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교육의 길이다. ■ 필자 김용범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과 이학박사. UC Berkeley 식물미생물학과 post-graduated researcher, 순천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전문연구교수 역임. 현재 (사)푸른 아시아 홍보위원. 현재 (사)녹색환경운동 전문위원. 성신여대, 연세대(원주) 시간강사 ■ 저서 “나는 지구를 사고 싶다”, “배신의 유전자가 사회개혁을 말하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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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10
  • [칼럼] '교육', 사람답게 사는 길을 안내하는 시스템
    [교육연합신문=배태랑 논설위원] 국영수?... 우리는 교육이라는 화두와 시스템 속에서 초중고대학을 자연스럽게 가야 하는 걸로 착각하고 답습한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이해한다. 교육이란 왜 필요한 것인가? 사람답게 사는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를 잘 모시고(!) 때가 되면 독립해서 돈벌이(자본주의체제를 먼저 이해해야한다)를 스스로 잘하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잘 만나서 자아실현과 더불어 자식을 낳고 잘 키워서 공동체에 대한 기여(국가, 사회, 조직 등)를 하면서 웰다잉(잘 죽는 것 ; 후세들에게 그러한 합당한 시스템을 물려주는 것,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원망을 듣지 않고 목숨을 거두는 것, 계승-발전할 수 있는 정신과 삶의 궤적을 물려주는 것 등)의 절차를 복제해주는 시스템이다. 자아실현의 방향과 목표는 자신의 꿈과 직결된다. 매슬로우의 인간욕구위계 7단계가 자아실현이다.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일(사명)을 해내는 것이다. 5욕(식욕-수면욕-성욕-재물욕-명예욕)과 7정(희노애락오욕애)을 잘 다스리고 궁극적인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꿈이자 목표이다. 성공과 성취를 구별 못하는 현시대의 교육시스템은 그래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정부(교육부)에서 인성 교육진흥법을 만들어서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시행하도록 강제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 인성교육의 단초이다. 인성(人性)은 사실 교육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5욕7정은 타고난 것이고 그 타고난 성품이 현실 때문에 일그러지는 것을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만 잘 알아도 인성은 파괴되지 않는다. 측은지심(惻隱之心)-다른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 수오지심(羞惡之心)-부끄러움을 아는 것, 사양지심(辭讓之心)-자신의 위치와 도리를 아는 것,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것을 알게 되면 결코 인성이 나빠질 수 없다. 그 정도의 기본상식을 안내하는 것이 바로 인성교육의 시발점이다. 인성을 파괴하는 원인을 제거하는데 주안점을 두면 된다. 공부가 전혀 적성에 안 맞는 학생에게 공부 잘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고문이다. 그 방향을 돌려주면 된다. 돈 때문에 싸우고 가정이 파괴되고 고통받으면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면 된다.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면 일자리를 제공하는 길을 안내하면 된다. 건강이 안 좋으면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인성을 파괴하는 원인들을 제거하는 인성함양의 지름길이다. 현실은 전쟁인데 현실을 도피하고 정신적인부분만 강조하면 결코 답은 없다. 공부를 하는 이유를 먼저 알게 하고 학창시절에 무엇을 중점적으로 배워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것이 교육이다. 학과 중심의 일방적 지식전수와 현행 시험평가는 프랑스의 바깔로레아를 조금이라도 더 접목하고 유태인들의 하브루타 교육법을 더 접목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선진교육이다. 가르치고 육성하는 교육의 의미를 다시 점검해야할 때이다. 역사를 자세히 모르는 민족은 더 이상 발전이 없는데도 역사교과서를 임의대로 바꾸는 시행착오의 고통은 고스란히 후새의 몫이다. 전남도교육청의 독서토론수업은 그나마 다행스런 방침이다. 오바마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식장에서 주최 국인 한국의 기자들에게 질문(발언)권을 주었는데도 10여분간 답답하게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 결국 중국기자에게 발언권이 넘어간 부끄럽고 슬픈 장면은 눈물나는 우리교육의 현실이자 현주소이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피의 산물이다. 교육은 사람답게 사는 길을 현실적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더 이상 백년대계의 과업을 소홀히 하지 말라. 정치(政治)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태반인 시대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제 대국굴기(大國崛起)하는 중국의 변화를 참고하고 우리민족의 위대함을 펼치는 전략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내가 살아가는 나라의 비전도 모른 채 오늘도 책가방을 챙기는 미래주역들에게 우선 먼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라. 그것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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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28
  • [칼럼] 엔돌핀, 아드레날린 그리고 다이돌핀 국가
    [교육연합신문=배태랑 논설위원] 다이돌핀(didorhin)! 엔돌핀의 4000배 효과를 지닌 호르몬이다. 기분이 좋을 때 생성된다는 엔돌핀은 인간이 느끼는 극한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그 고통까지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암세포를 비롯하여 유해성분을 제거해 주기에 웃으면 기분이 좋아져 엔돌핀이 생성이 되므로 엔돌핀을 위해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천연진통제 엔돌핀! 뇌는 ‘베타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러나 이러한 호르몬은 육안으로 관찰하기가 힘들다. 오직 수행을 통해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이 육안으로 호르몬의 발생을 알 수 있는데, 인간의 몸에는 인간을 둘러싼 신비한 빛인 '오라(Aura)'가 있다. 오라(Aura)는 사람의 심적 상태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데, 심적 상태가 편안할 때는 우주에서 방출하는 초록색으로, 정상일 때는 분홍색이지만 짜증이 나고 마음이 우울할 때는 회색이 나오며, 극도로 화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흑갈색 빛이 돈다. 한 실험에서 흑갈색 오라(Aura)를 한 시간 동안 쪼인 먹이를 쥐에게 주자 80여 마리의 쥐가 즉사했다고 한다. 이 호르몬은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물질인데, 베타 엔돌핀은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뛰어나다. 세균에 의해 감염된 질병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심지어 에이즈와 같은 강한 병에도 강한 저항력을 발휘하게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엔돌핀이 체내에서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상태에 관계가 있다.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엔돌핀이 많이 생성되지만, 우울하고 속상하면 엔돌핀과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아드레날린이 생성된다. 아드레날린의 과다분비는 심장병, 고혈압, 노화촉진, 노이로제, 관절염, 편두통 등의 원인이 되며 한번 분비된 엔돌핀의 절반은 대개 그 효과가 5분 정도라고 한다. ‘엔돌핀’보다 더 강력한 그 무엇이 있다’라는 것에 주목해 의료계는 엔돌핀 이상의 ‘무엇’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마침내 신비의 호르몬 ‘다이돌핀’을 발견했다. 다이돌핀은 엔돌핀의 4000배 이상의 효과를 가진 호르몬으로 인간이 감동을 받을 때 발생한다하여 ‘감동호르몬’ 으로도 부른다. 좋은 노래를 들었거나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깊이 울려 퍼질 때,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성취했을 때, 매우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았을 경우, 마음 속 깊이 한없는 기쁨이 용솟음 칠 때 등이다. 이때 반응하는 신체적 변화는 시상하부의 뇌하수체로부터 화학적 호르몬이 분비되어 저밀도의 저단백으로 인한 혈류속도가 빨라지고 심박동이 증가하며 많은 산소가 유입되기에 순간 숨을 들어 마시게 되고 감동 뒤에도 여운이 남는다. 오감을 통한 감동은 환경에 의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변적이며, 한 번 감동을 느낀 후에 다시 '감동'을 받기 위해선 다른 자극이나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반면 영적인 감동은 우리 마음 속에서 지적이나 감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 번만으로도 그 영향력이 오래 가기도 하고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 스스로가 찾아낼 수도 있다. 가장 강력하게 다이돌핀이 생성될 때는 '감사'할 때라고 한다.그리고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라고 한다. 자!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주인은 건강하고 행복하고 오래 살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 종지부를 찍고 엔돌핀과 다이돌핀이 넘쳐나는 매일이 되어야 한다. 그건 바로 상식과 감동이 있는 국가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국가라는 존재가 주인을 매일 죽이고 있다. 필자는 생각한다. 매슬로우의 인간욕구 7단계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토크쇼를 개설해야할 시기이며 그 쇼를 통하여 사람살이의 기본에 대해 공감과 감동을 주는 매일을 만들고 싶다. “다이돌핀 토크쇼”다. 개인과 국가를 위한 컨텐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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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22
  • [교육칼럼] "미래는 마음의 제국"
    [교육연합신문=장옥순 기고] 공자의 후회 노요지마력(路謠知馬力)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 <명심보감-교우交友)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오래되어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채나라로 가던 도중 양식이 떨어져 채소만 먹으며 일주일을 버텼다. 걷기에도 지친 그들은 어느 마을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그 사이 공자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제자인 안회는 몰래 빠져 나가 쌀을 구해 와 밥을 지었다. 밥이 다 될 무렵 공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공자는 코끝을 스치는 밥 냄새에 밖을 내다봤는데 마침 안회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집어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안회는 평상시에 내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지금까지 안회의 모습이 거짓이었을까?그때 안회가 밥상을 공자 앞에 내려놓았다. 공자는 안회를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하다가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 지내라고 하더구나." 공자는 제사 음식은 깨끗해야 하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안회도 알기 때문에 그가 먼저 밥을 먹은 것을 뉘우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회의 대답은 오히려 공자를 부끄럽게 했다."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을 이미 먹었습니다."공자는 잠시 안회를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두어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교육의 달인'을 요구하는 세상학생들을 가르치기 참 힘든 세상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르침의 어려움은 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난무하는 문제점은 적었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힘들고 배우는 학생들도 힘들어하는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소통과 치유가 대세가 되고 있다. 그만큼 상처 받은 사람들이 넘친다는 증거다. 공부를 잘해도 고민, 못해도 고민인 학생들이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가르치며 상처 받는 일이 많아졌다.공자의 말처럼 본 것을 곧이곧대로 가르치다가 다치는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걱정이다. 담배 피우는 학생을 충고하다 역으로 당하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하는 학생을 제지하면 말대꾸는 기본에 대드는 것은 약과다. 때리고 덤비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버릇없이 구는 것은 아니겠지만 미꾸라지(나중에 잉어가 될지도 모르지만) 한 마리가 휘젓고 다니면 가르침과 배움이 어찌 일어날까? 그것이 문제다. 이제 선생님은 학생들의 언행을 보고 소통과 대화 , 공감과 설득과 같은 가치를 얼른 통합해서 종합적으로, 감성적으로 충고하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그러니 소모되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가. 공자는 안회와 같은 훌륭한 제자를 가르치면서도 자신의 눈과 머리를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현대의 선생님들은 상처 받은 학생들이 터뜨리는 불만의 대상이 되어 예고도 없이 달려드는 주먹다짐의 대상이 되었으니 슬픈 일이다. 이제 선생님은 고도의 심리학을 배워야 하고 소통의 달인이 되어야 하며 인내심의 한계조차 없애야 하는 공자와 같은 성인의 경지가 요구되는 현실이다. 이제는 어떤 교과의 지식이나 기술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기술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제 선생님은 '교육의 달인'을 요구하는 세상 속에 서 있다.소통과 대화, 설득과 공감이 없는 가르침은 공허한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교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마음을 얻지 못하는 가정과 세상의 단면이 교실로 옮겨온 것뿐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마음이 통하는 사제지간에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하더라도 대화를 통해서, 시간을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매우 사소한 한마디에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제 선생님들은 교육학을 공부하기 전에 '마음'에 관한 심리학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 교육심리학을 교과목으로 이수하고 교직에 들어오지만 그 후로도 끊임없이 접근해야 될 영역이 된 것이다.마음의 제국을 이끌어 갈 교육, 자기 이해 지능그러기에 일찍이 1943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학위 수여식에서 윈스턴 처칠이 "미래의 제국은 마음의 제국이 될 것이다."라고 한 말 속에는 위대한 선견지명이 담겨 있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 가치에 매몰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다. 그것만이 잘 사는 척도인 것처럼 모든 잣대를 그것에 대보고 저울질하며 달려왔다.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다소 흠결이 있어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쪽 눈을 감고 마음의 문제를 뒤로 미루며 살아온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을 재는 도구는 늘 경제 가치였으니, 그 폐단이 가져온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거기서 부터라고 생각한다.아픈 사람들이 넘친다. 특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넘친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외롭다. 외로우니 손에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다. 늘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아야 안심이 된다. 가상공간의 만남이라도 해야 외롭지 않으니 게임에 몰두하고 카카오톡으로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안 증세로 최신형 휴대폰에 매달린다.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가치에 몰입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기쁨과 쾌락을 혼동하여 빠져 나오지 못하는 범죄가 늘어난다.교육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자기 이해 지능이 우수한 사람으로 기르는 일에 몰두하는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시간과 힘을 집중시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이해 지능'이 높다고 한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의 틀이 잡힌 사람이니 외부의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의 제국에서 살아야 할 학생들에게 필요한 선생님은 곧 '마음공부'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일은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선생님은 자기 이해 지능을 길러주는 '교육의 달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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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20
  • [기고] 상지정신의 현대적 재현
    [교육연합신문=상지대 특성화기초학부장 최용석 교수] 상지, 뜻을 숭상함은 선비의 덕목이요, 자격이다. 선비가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으며, 죽음 앞에서도 추호의 두려움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어질고 곧은 뜻을 숭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인, 의, 예, 지, 신의 오덕을 고루 갖춘 전인격체로서의 선비는 근대사회가 시작되기까지 우리 민족의 지성을 대표했고, 실천의 준거가 되었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선비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인간성 상실과 소외의 시대에서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실천적 사표가 될 만한 인품을 가진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선비를 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부정적 의견 또한 존재한다. 근대로 향하는 세계사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나라를 문약에 빠뜨려 버린 존재, 국권 상실의 위기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고 파당의 쟁투에만 골몰하던 존재로 그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상지정신은 충효를 체로, 우리나라 교육이념인 홍익인간과 인의를 추구하는 선비정신 그리고 인의예지신의 오상을 용으로 하는 상지대학교의 건학철학이다. 상지라는 교명이 설립자 노암 김문기 박사에 의해 지어진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그 건학 이념인 상지정신이 누구에 의해 제창된 것인지 모르는 이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상지의 정신이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인의예지신의 덕목이 값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선비정신이, 인의예지신의 오덕이 21세기 현대사회에 얼마나 어울리는가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느냐이다. 어떠한 사회, 어떠한 문명의 빛나는 전통도 현대에 맞게 재창조되지 않으면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노암 김문기 설립자가 제창한 상지정신은 성현의 말씀이나 조상의 얼을 단순히 기념하자는 것이 아닌 까닭에 건학 당시인 1970년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도 곤란한 일이다. 우리 상지의 건학 이념이 21세기를 넘어 먼 미래에도 유효한 사상적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당대에 걸맞은 전통으로 늘 거듭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이거나 과거퇴행적인 것으로 상지정신을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자랑스러운 상지의 학생들이 미래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공동체의 중추로 기능할 수 있도록 우리네 선비의 정신을 21세기 현대에 재현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전한다. 이 말이 환기하듯 인의예지신의 올바른 뜻을 궁구하여 체득하는 것을 바탕으로, 당대는 물론 미래사회에까지 계승해 나갈 새로운 전통의 근거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상지대학교 구성원들이 상지의 건학이념을 이어받아 실천함으로써, 인격도야와 국제화 시대의 전문지식을 함양하고 체득하는 일은 상지정신의 현대적 재현의 도정에서 그 첫걸음에 해당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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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16
  • [교육칼럼] 독서 교육, 본보기가 정답이다
    [교육연합신문=장옥순 기고] 위대한 만남, 책인생은 만남으로 시작한다. 부모와의 만남을 비롯하여 선생님, 친구나 직장 그리고 사회, 조국. 더 멀리 가면 온 세계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만남이라는 말을 사람에 한정하고 말면 그 의미는 축소되고 만다. 만남을 인문환경에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남의 의미를 더 확장해서 자연환경이나 고양이 한 마리, 풀 한 포기, 구름 한 점, 바람 소리에 까지 이를 때,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진리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을 생각하면 만남이라는 단어조차 설명하는 일이 부질없을 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위대한 만남은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단연 책이 첫 손에 꼽힌다. 좌절하는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책이었고 슬퍼하는 나를 위로해 준 것도 책이 먼저였으니, 책을 빼놓은 내 인생은 껍데기가 되고 말리라. 인간은 평생 동안 자기 뇌의 10%도 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인류 역사상 뇌사용량이 최고라는 아인슈타인도 20%에 미치지 못한다. 그의 두정엽 사용량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최근 급격하게 부상한 분야가 뇌과학이다. 뇌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뇌과학을 다룬 영화중에 단연 으뜸은 <루시>였다.뇌과학을 등에 업은 영화 <루시>주인공 루시는 돌발적인 사고로 인해 뇌세포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세상의 지식을 순간적으로 흡입하고 상대방을 꿰뚫는 지혜를 가지게 된다. 세상의 온갖 사물들을 순간적으로 모두 알아버린다. 자신의 과거 기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까지 순간적으로 읽어내는 초능력자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주의 시원, 빅뱅의 한 점에까지 이르는 초고속 순간이동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마저 모든 만물에 깃들게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노자의 무위자연이 연상되는 장면, 부분이며 전체이고 없으면서도 있는 '그 무엇'이 된다.루시가 남긴 한 마디는 "시간이 존재다" 라는 돌직구였다. 인간의 한계는 바로 시간이다. 과거는 없고 미래는 모르며 현재만이, 바로 지금만이 존재하므로.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도 이미 지금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른 나인 것처럼. 뇌과학과 철학, 생명과학, 의학을 비롯하여 종교 차원의 접근도 인상적인 영화다. 영화 제작의 기법이 현란한 점, 컴퓨터 그래픽의 무궁한 응용이 전편에 깔려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할 만큼 집중시키는 영화였다. 영화 제작자나 대본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인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영화다.모름지기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엔딩 음악이 끝나고도 자리에 남아 영화의 주제와 목소리를 복기하며 생각그물 속에 대어를 낚는 손맛을 안겨주는 영화, 몰입도가 높은 영화여서 좋았다. 달달한 사랑 이야기도, 감성적인 흐름도 없는, 다소 폭력적이고 섬뜩한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는 영화라서 좋았다. 특히, 방대한 독서량이 바탕에 깔린 영화라서 더욱 좋았다.노자와 장자의 철학까지 바탕에 깔린 것도 참 좋았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뇌세포를 루시처럼 100% 활용하는 날이 온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가 먹은 약 중에 한 알만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지금의 상태보다 우수한 지성을 지닌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부러웠다.평범한 인간인 내가 사그라져 가는 나의 뇌세포의 노화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는 길은 단연 독서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루시도 지식을 흡입하는 것으로 뇌세포의 능력을 극대화시킨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나라 교육에 절실한 과제는 독서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강조하면서도 소홀한 대목이다. 이는 곧 어른들의 독서가 문제다. 좋은 책을 읽지 않으니 좋은 생각이 생길 리 없다. 책을 읽음은 나라를 일으키는 근본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음을 날마다 느낀다. 그 가시는 자신을 찌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나타난다. 무책임하게 내뱉는 언어들, 책임지지 않는 약속과 말의 난무로 세상이 흙탕물이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말꼬리를 잡고 시비가 붙고 들으려 하지 않으니 공감도 소통도 없다. 책방이 문을 닫고 부도를 내는 출판사들이 넘친다. 지도자가 읽지 않고 어른들이 읽지 않으니 독서교육은 일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행처럼 가을에만 반짝하고 만다. 부모가 읽지 않고 직장인이 읽지 않으며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곧 여름방학이다. 몰입독서를 하기 좋은 기회다. 책을 열심히 읽는 위정자와 리더, 부모와 선생님의 본보기만이 독서교육의 답이다. 말로 하면 반항하여도 몸으로 보여주면 통한다. 반복된 본보기 교육이 정답이다. 이 나라의 어른들이여! 부모님들이여! 선생님들이여! 아이들 앞에서 책을 봅시다. 책을 읽음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라는 명심보감의 충언은 진리이니! 아니, 한 사람을 일으키고, 집안을 살리며 직장을 세우며 이 나라도 세운다. 책을 버린 민족에겐 미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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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16-06-15
  • [칼럼] '기레기', '칼레기', '목레기'와 '새마음운동'
    [교육연합신문=배태랑 논설위원] 인간두뇌의 변연계와 전전두엽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5욕7정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변연계가 발달한 것이고 종합적 사고와 판단력이 부족하면 전전두엽이 문제가 있다. 쓰레기(garbage)란 버려서 없애야할 아이템이다. 물론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도 있다. 재활용이란 그나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 가능하다. 기자쓰레기, 칼럼니스트쓰레기, 목사쓰레기라는 신조어가 생겨나는 현실에서 인간의 궁극적 삶의 양태를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필자도 기자를 경험한 적이 있지만 팩트를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의 기준이 참 애매할 때도 있다. 그러나 기자는 늘 사실에 입각하여 형평성을 유지해야한다. 그리고 애매하거나 추상적인 표현으로 기사화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팩트를 기사화 하는 일이 스스로의 입장이 아니라 조직체계상 필터링 되고 왜곡되어 공표되기 때문에 늘 문제다. 세월호 참사의 보도에 대하여 KBS를 비롯한 전반적인 기사들이 국민의 공분을 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칼럼니스트들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칼럼과 논설을 쓰지만 늘 객관성과 당위성을 전제로 쓰되 모두가 지향해야할 바를 망각하지 않고 쓴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얄팍한 지식을 나열하면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주기적으로 돌출하는 목사들의 망언은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극도의 거부감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목레기가 된다. 이러한 모든 원인들은 필시 변연계가 발달한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고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양심을 팔고 균형감각을 상실하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필자는 돈에 대하여 경고(Warning)의 의미를 누차 강조하였다. 이성과 양심을 파괴하고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버린 이성의 마비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성의 시간을 빼앗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자기합리화와 생존을 위한 자기기만의 늪으로 몰아가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점은 바로 영혼과 이성이 있다는 점인데 우리사회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물질만능의 세태와 더불어 비틀거리는 정신문화는 인류를 반 미치광이들로 만들고 있다. 나라의 수준은 언론의 수준이라 하는데 쓰레기가 난무하니 쓰레기 수준이다. 결국 마음이고 정신이다. 본격적인 새마음 운동은 더 이상 미룰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란 사람도 새마음 갖기 운동을 유신시절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1979년 새마음의 길이라는 그녀의 첫 저서가 입증한다. 유신총화의 정신이 흐려진다는 취지하에 추진되었던 운동은 5공정권이 들어서면서 막을 내렸지만 이제 다시 부활해야할 당면과제이다. 더구나 국가개조를 위하여 사활을 걸겠다는 각오이니만큼 새마음운동은 우리사회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으로 다시 부흥시켜야 한다. 물질과 권력이 사람을 지배하는 동물적 삶을 정신과 영혼이 리드하는 인간중심의 세상으로 바꾸려면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는 국민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고공(雇工)이란 불리는 머슴을 노비로 착각하고 단어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 완장을 차고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들과 단체장들의 시각을 하루속히 바꾸는 길이기도 하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고 고용(선출)되어 그 주인을 섬기며 대가(세금)를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모든 고공들이 스스로가 머슴임을 가슴으로 자인할 때 새마음운동의 싹이 돗아나는 것이다. 기레기, 칼레기, 목레기에 이어 패레기가 있다. 종편이나 TV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하여 말도 안되는 편향적 시각을 드러내는 수많은 패널들이 바로 패레기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독버섯과 같은 패레기들의 활약을 막는 일도 바로 새마음운동이다. 선거에 당선된 함량미달의 머슴들이 스스로 머슴이라 각성하지 않는 한 국가나 지자체의 부채는 모두 주인 몫이다.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구별할 줄 알면서도 쓰레기를 양산하는 무리들과 끼리끼리 챙겨주기로 만수산 드렁칡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군상들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대물림을 할 수 밖에 없다. 당장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은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새마음운동만이 답이다. 정신과 영혼이 회복되는 나라! 국민 각자가 스스로 삶의 본질을 찾자! 돈과 자본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길이 곧 성공하는 삶이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이다. 새마음 운동은 브레이크 없는 전차를 세우는 최선의 국가개조 캠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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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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