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김용범 기고]
인간은 평등한가? 평등하다면 왜 평등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동물이다. 개, 돼지와 진화의 방향은 다르지만 영장류의 한 종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개, 돼지 같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없는 것은 아닌가? 인간을 개, 돼지 취급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는가? 누구도 인간을 개, 돼지 취급한다면 싫어할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이런 발언을 했던 교육부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 정치권, 일반 시민 할 것 없이 징계를 하라고 한다. 징계는 정부에서 할 것이니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있다. 생물학을 전공한 나는 인간이 개, 돼지와 같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또한 계급사회도 바라지 않는다. 1%와 99%를 나누는 것에는 더 더욱 동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근본을 생각해 보지 않은 주입식 교육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사망한 앨빈 토플러는 미래에 사용도 하지 않고 없어질 직업을 위해서 15시간씩 공부하는 나라라고 우리를 평가한 바 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교육은 많은 지식을 전달하고 또 암기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평등하다고 배웠기는 했지만 왜 평등한지를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렇게 살면서 경험하다 보니 암기한 것과 다른 어떤 벽을 느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암기한 바와 다른 이상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암기한 것과 다른 내용이라 반발하고 징계라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평등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라면 할 수 있을까? 개, 돼지와 무엇이 다르다고 말하라면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암기하는 교육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획득하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각각의 지식의 근본을 생각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인지 그 근본을 보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관련 학자들도 이런 부분에 동감하고 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다.
나는 교육부 고위 공직자의 발언이 바로 이런 우리 주입식 교육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토플러의 말처럼 인공지능의 시대에 사라질 직업과 필요 없는 지식을 위한 교육들이다. 그래서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많은 지식을 단기간에 강제로 머리에 넣는 교육이 아니라 지식의 근본을 찾고 자존감을 키워주며 자연을 경험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할 능력을 키워주는 형태로 가야한다.
만일 나에게 인간이 평등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자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내가 설명하는 것은 아주 쉽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다. 살아가는 환경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유전자 조합이 더 나을 것이라고 예견할 수는 없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가정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많은 유전자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분명히 어떤 측면에서는 더 나은 유전적 능력을 가진다. 다른 사람은 다른 능력이 있다.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인류의 생존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중대하고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가치를 인간이 이성적으로 지금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영재다. 지적 능력이 좋다고 달리기 잘하는 것은 아니고 또한 그림 잘 그린다고 해서 음악 잘하는 것 아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서 영재는 달라지기 기준의 상대성을 생각하면 영재 아닌 사람은 없다. 어떤 능력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즉, 모든 사람이 영재고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평등하다. 동시에 영재다. 1%와 99%로 나눌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스스로 근본에 대해서 궁구해보는 것은 주입식 교육으로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능력이 뛰어난 자가 있고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자가 있다는 관점을 가진 누군가는 어쩌면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의견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분연히 반대한다. 물론 한 인간이 모든 능력을 다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능력을 한두 가지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영재라고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진화의 긴 시간으로 보면 비록 저능아라 할지라도 미래에 달라질 환경에 그가 더 잘 적응해 살아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 영재로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그렇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런 결과가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발언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이제는 가르치는 자가 오히려 영재를 영재로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는 우리 교육의 한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와 같은 형식으로는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와 99%를 가르면 어찌되겠는가? 자본을 가진 소수가 다수 국민의 행복을 앗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당장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다니는 당신의 자녀들이 겪을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또 진화는 당신의 자녀는 이미 영재라고 말한다. 그 아이가 가진 타고난 능력은 기성 세대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디 당신의 자녀가 영재임을 믿고 영재로 키우기 바란다. 당신의 자녀를 영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틀과 가치로 덧씌우지 않아야 한다. 많은 다양한 것을 경험하게 하더라도 지식이나 어떤 틀을 어른의 시각으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 바를 토론하고 논의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이는 어른과 다를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15시간씩 공부할 이유는 없다. 아이들을 영재로 키우고 싶다면 여행을 하고 자연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배우고 익힐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좀 더 여유를 주고 시간을 주고 그들의 행복을 되찾아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렇게 서둘러 변화해야하는 이유는 분명하고 확실하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국영수 중심의 교육은 10여년 이내에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이 과거처럼 생각하고 아이들을 교육한다면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 아이들이 제대로 적응하고 선도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사고를 하루 빨리 바꾸어야 할 때이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영재 대우를 해주자. 그러면 그들은 미래에 영재로 거듭날 것이다.
어쨌거나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말을 들으며 우리 교육의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서 인간이 평등한 이유를 생각해 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했다. 다음에는 인간이 개, 돼지와 다른 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말 인간은 개, 돼지와 다른가? 혹시 인간이 개, 돼지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진화는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개, 돼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것은 맞지만 개, 돼지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 살아가는 모습은 개, 돼지보다 더 뛰어나지도 않다. 누간가 잘못하면 개도 야단을 치고 혼낸다. 다른 동물도 늑대도 이러하다. 돼지의 인슐린 유전자는 사람에게도 작동하며 돼지의 심장을 달고 살아가자는 이종장기이식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생각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다. 비둘기가 도박에 거는 비율과 사람이 동일하다. 과학이 알려주는 수많은 실험 결과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에 표를 던지게 한다. 적어도 우리가 암기식으로 현대과학이 알려주는 사실들을 외우기만 하며 우리가 사는 삶을 산다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물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강자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고 약자는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개, 돼지 같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비록 현실이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동물 같은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인간만이 세계의 그 어떤 동물과 달리 이런 수준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지금 우리가 동물의 수준에 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수전을 벗어나는 길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지금의 지면이 너무 짧다. 그러나 그 길을 단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사랑하라는 것이다. 물론 인이나 자비라는 이름으로 말해도 된다. 어떤 표현을 쓰느냐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무엇을 행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로 잘못하기도 하고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단죄하고 그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동물도 그렇게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뿐더러 해결할 수도 없다. 더 좋은 방법은 용서하고 사랑하며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해 바꾸기 전에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 번 주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인을 실천하며 자비를 베풀며 배려 보라. 그러면 우리가 동물과 다르며 동물의 수준을 벗어날 수 있는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만일 10여년 후에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가장 피해를 볼 사람들은 그 때 노후를 보낼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 고위 교육공무원 발언을 보며 우리 시대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발언을 한 자의 징계에 대한 부분은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니지만 그의 발언하나에만 발끈하고 그를 징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앞으로 다가올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행위를 한 근본을 생각하고 치료를 시작해야 할 때라 생각되어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런데 왜 자연을 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의아할 것이다.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그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가 창의력과 공감능력이고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창의력은 생산성과 다른데 둘 다를 동시에 얻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창의력을 얻으려면 생산성은 포기해야한다는 의미다. 이유는 창의력 향상을 위해서는 여유와 생각할 시간 등을 필요로 하지만 생산성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입식 교육은 추격형 모델에서 생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가올 시대의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유와 생각할 능력을 키우는 창의력을 위한 교육에 기존 주입식 교육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래서 자연을 벗하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공감능력 역시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인이나 자비를 실천하며 정을 나누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하는 주입식 교육과 시험 등 현실적 여건 때문에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주말에 단 몇 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어 가족이 함께 근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라. 그리고 편안히 뛰어 놀면서 가족들의 눈을 응시해보라. 시험성적을 내기 위해서 공부한 것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시험 때가 되었을 때 어차피 더 해야 한다. 제도가 바뀐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래를 대비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갈 필요는 있다. 시험을 위한 공부 시간을 약간 줄이고 다소 여유를 찾고 자연을 즐기며 중간에 운동도 하는 것이 사소하지만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교육의 길이다.
■ 필자 김용범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과 이학박사. UC Berkeley 식물미생물학과 post-graduated researcher, 순천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전문연구교수 역임. 현재 (사)푸른 아시아 홍보위원. 현재 (사)녹색환경운동 전문위원. 성신여대, 연세대(원주) 시간강사
■ 저서
“나는 지구를 사고 싶다”, “배신의 유전자가 사회개혁을 말하다”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