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균의 周易산책] 에필로그(주역산책을 마무리하며)
두드리지 마라. 삶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내 나이 50 무렵. 인생의 절반을 넘어선 그때. 그것도 인생의 절정기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지점에서 내가 잡은 동아줄은 바로 『주역』이었다. 『주역』의 문장들은 고조선 대륙의 벌판을 스치고 지나가는 흙바람 속에 실린 싯귀들이었다. 태고의 바람은 『주역』의 지혜를 싣고 고조선의 광활한 평원을 누비며 비밀을 속삭인다. 『주역』은 변화를 향한 64가지 경로다. 그 경로는 회복을 향한 문학적 생명선이다. 인생에 실패한 젊은이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복귀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면 알게 된다. 그 길들이 고전이라는 사실을. 64개의 경로에서 우리는 만물의 상호 연결성과 존재의 순환적 본질에 대한 깊은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주역』은 우리에게 적응성과 탄력성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바람이 갈대를 휘게 하듯이 우리도 도전과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갈등 관계로 뒤엉킨 인생의 고단한 길을 무사히 걸어갈 수 있게 한 동무가 바로 『주역』이었다.
『주역』은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와의 만남이다. 물질적 세계는 8괘 즉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으로 이루어진 자연 현상이다. 그것들을 겹쳐서 8 × 8 = 64. 64괘로 정신적 세계를 만들었다.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면 철학이 된다. 『주역』도 물질적 세계를 먼저 만들고 이어서 정신적 세계로 승화시켰다. 즉 SEIN의 세계(물질적 세계)에서 SOLLEN의 세계(도덕적 의무)로 전환된다. 물질의 세계가 인간의 감각에 의해 뇌 속으로 들어가 의식 작용을 일으켜 정신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은 물질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철학적 의미를 가진다. 하여 물적 영역과 영적 영역 사이의 경계에 서서 상호 연결성을 살펴보았다. 경계에 서서 그 너머를 보았다.
『주역』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건곤일희장(乾坤一戱場) 인생일비극(人生一悲劇)’이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모든 연극을 위해 펼쳐진 무대일 뿐이고, 우리 인생은 그 무대 위에서 연출된 하나의 비극이라는 말이다.
이 칼럼은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의 만남, 그리고 그들 간의 유기적인 연결성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물질적 세계의 8괘를 시작으로 64괘의 정신적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주역』은 우주의 음양 조화를 통해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이 칼럼은 우리가 어떻게 환경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우리의 생명을 순환시키는 데에 필요한 지혜와 미덕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지혜를 통해 우연과 필연, 하늘과 땅, 음과 양, 그리고 모든 삶의 순환적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현대인들은 자극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잊고 산다. 욕망이란 결국 더 자극적인 것을 찾고 즐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극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인간의 마음이 지니는 표준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 표준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주역』이다. 인간다운 삶의 표준은 자기 자신을 위한 성실함(誠)과 남을 위한 배려(孚)다. 성(誠)과 부(孚)가 주역의 핵심 알갱이다. 이 두 가지를 좌우로 삼아 인생길을 걸어가야 한다. 표준에서 멀어지는 자극적인 욕망으로 인해 샛길로 가는 것이다. 성적 자극, 금전적 자극 등에 의해 정도에서 빗나가는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없는 차이가 생긴다. 자신의 삶 자체를 후회하게 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주인공처럼 소설의 마지막에 다락방에 올라 기차 소리가 들려오자 울음을 터트리는 후회의 눈물, 자신이 목표로 한 추상적인 것을 이루려 하지만, 잠깐의 한눈을 팔면 목표는 저만치 물러나고, 시간이 흘러 나 혼자만 경계선 밖에서 경계선 안의 생활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생은 간다, 봄날처럼. 그렇지만 인생에서 잠깐의 한눈팔이가 문학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고, 그것이 사람을 울린다. 목표가 확실한 사람은 성(誠)과 부(孚)를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면 모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삶에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희생하는 삶에 박수친다. 예수가 그랬고, 간디가 그랬다.
마지막으로, 『주역』은 우리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많은 과제와 도전에 대한 안내서다. 우리는 이 칼럼을 통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인류와 지구 생물의 미래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깨달을 수 있으며, 지구와 우주 안의 모든 존재와 함께 공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주역』은 과거와 미래, 물질과 정신, 음과 양,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와 연결성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을 제공하며, 우리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더 나은 생명을 유지할지에 대한 영감을 준다. 이 칼럼은 우리의 삶에 대한 고찰과 탐구를 지속할 가치 있는 동반자다.
의식을 좀 더 확장하여 문학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갈등과 화해를 이야기하는 예술 장르라 할 때 문학작품을 64괘의 렌즈를 통해 살펴보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라 여겨진다. 그것이 변화하는 세상에 먼지와도 같은 인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책무일 것이다.
아직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노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어.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지” 인간의 삶은 실수와 후회로 점철되어 있지만, 시간이 다할 때까지 싸우고 견뎌야 한다. 그것이 삶에 대한 예의다.
『주역』은 묻는다. 바람 같은 인생(人生), 당신이 이 세상에 다녀간 이유는 무엇인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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