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균의 周易산책] 어둠 속에 묻혀진 새로운 시대-'장미의 이름'(지화명이괘)
두드리지 마라. 삶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지화명이괘는 위에 땅(☷)이 있고, 아래에 불(☲)이 있는 모양이다. 땅 속으로 태양이 들어가, 그 밝음이 가려져 버린 모습이다. ‘지화명이(地火明夷)’의 ‘명이’는 ‘어둠’을 뜻한다. 일몰 후 어둠이 깔리는 것과 같다. 즉 먼동이 트기 직전의 암흑이다. 암흑의 시대, 난세다. 이럴 때는 자신의 밝음을 숨겨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 15장에 “누가 능히 자기를 흐리게 만들어 더러움을 가라앉히게 물을 맑게 할 수 있겠는가?(孰能湯以 靜之徐淸)”라고 했다. 이 말은 지화명이괘의 상(象)에서 말한 ‘자신의 지혜를 밝게 빛내기보다는 흐리게 만들어 오히려 그들과의 관계를 여유롭고 명료하게 만든다(用晦而明)’는 말과 유사하다. 이로 보면 지화명이괘의 본질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다.
도광양회(韜光養晦)란 말은 덩샤오핑이 내세운 외교정책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거지가 된 유비에게 조조가 찾아와 식사하던 중, “이 시대 영웅이 나, 조조와 자네 유비다”라고 말하자, 유비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이때 조조는 유비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이처럼 그믐밤 같은 어둠 속에서 칼빛을 감춘다는 의미로,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배양해야 할 때 쓰는 말이다. 도광양회하려면 ‘맞서지 말라’, ‘적을 만들지 말라’, ‘깃발을 올리지 말라’, ‘선두에 서지 말라’의 4가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지화명이괘와 관련 있는 작품으로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던 작가이자 기호학자, 철학자이자 평론가다. 그는 평생을 기호학 연구에 바쳤으면서도 죽어있는 기호보다 살아 움직이는 만물의 변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지식과 질서는 언제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새로운 변화 앞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장미의 이름』은 신앙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과 자연과학 중심의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안에는 시대의 변화 앞에서도 신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을 지켜야 한다는 맹목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눈먼 노 수도사(호르세)가 등장한다. 그는 신앙심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이단으로 취급하며 이 지식의 전파를 막기 위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이렇게 변화를 등지고 자신의 신념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님 호르세 수도사는 맹목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변화를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만을 고집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지식과 변화를 거부하며 마침내 파국으로 이끈다. 작가는 이를 통해 변화에 대한 고집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호르세는 소크라테스의 『시학』을 하느님의 세계를 위협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오랫동안 장서관의 가장 깊숙한 밀실에 감춰뒀던 것인데, 수도사들 사이로 이 책의 위치가 새어나가자 그는 측근을 통해 책장에 치명적인 독을 묻혀둔다. 남몰래 이 『시학』을 읽은 사람은 죽게 된다. 습관처럼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기 때문이다. 한편 윌리엄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되자 호르세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가 등잔불을 치며서 붙은 불이 양피지로 옮겨붙게 되고, 이어 장서관과 수도원 전체를 집어삼킨다. 그 불길을 뚫고 나온 윌리엄이 제자 아드소에게 하는 말, 여기에 이 소설의 주제가 있다. “가짜 그리스도는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자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지리가 아니겠느냐?”하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닌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 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장미의 이름』에는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명이괘와 윌리엄이라는 인물이 연결되어 있다. 윌리엄은 예리한 지성과 연역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숨기고 숙련된 조사자이자 사상가로서의 명성을 경시한다. 이야기에서 윌리엄은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단순한 프란체스코 수사로 가장하여 지적 능력을 가장한다.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거나 관심을 끌지 않고 수도원의 다른 수도사들과 섞이는 것을 선호한다.
그의 비밀 전략은 그가 조사를 방해하는 사람들로부터 의심이나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수도원 내의 미스터리를 밝히면서 신중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수도원의 벽 안에 숨겨진 금지된 지식과 살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점차 밝혀낼 수 있게 된다. 이는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명이괘의 모습과 유사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하며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지를 작가는 경계한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자신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변화의 흐름을 조심스럽게 따른다. 이는 어둠에 가려진 밝은 지혜와 영리한 전략을 상징한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지켜내야 할 영원한 질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고 세상의 변화 앞에서 지금 당장 질서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더 높은 곳, 더 넓은 곳으로 다가갈 수 있는 모험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색(色)도 공(空)도 아닌, 현상(現象)을 보아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통하여 내 머릿속을 꽉 채운 변치 않는 신념보다 눈 앞에 피어난 한 송이 장미의 변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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