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균의 周易산책]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심문'(화택규괘)
두드리지 마라. 삶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화택규괘를 보면 ‘불이 위에 있고 연못이 아래에 있는 모습이다. 불은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어, 이는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질성을 보여준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근원적인 대세의 흐름이나 비전의 궁극적 목표에 관해서는 동일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걸어가는 구체적인 삶의 자세에 관해서는 이질성을 고수한다.’고 되어 있다. ‘화택규(火澤睽)’의 ‘규(睽)’는 ‘반목하다’, ‘서로 등지다’의 의미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생각이 화합되지 않으면 큰 일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하다. 반목은 괴리를 낳고, 불통으로 이어진다. 불통은 확증 편향적인 사고를 부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증오는 부메랑처럼 나에게 되돌아온다.
화택규괘와 관련있는 소설로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단편소설인 '심문'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의심으로 인해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내용이다. 플로베르의 탁월한 심리 묘사와 세밀한 상황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인간의 불안과 의심이 어떻게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범죄 혐의를 받으며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억울하게도 살인 혐의를 받게 되고, 심문 과정에서 그의 내면의 갈등과 두려움이 점점 커져간다. 심문관은 주인공을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그의 증언의 모순점을 파고들며, 결국 주인공은 극심한 심리적 압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살인을 자백하게 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통해 의심과 불신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심문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인간의 연약한 심리 상태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한 개인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괴리의 시대, 꼴 보기 싫은 놈들도 과감하게 만나야 한다.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 동이이(同而異)나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자세를 견주해야 한다. 보편적으로는 타자들과 같은 길을 가지만 구체적으로는 자기만의 다른 색깔을 보여야 한다. 마치 민주주의라는 커다란 길을 함께 가는데, 저마다 개성에 맞는 옷 색깔을 입은 것처럼.
그룹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란 노래가 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중략)
이주엽은 '이 한 줄의 가사'에서 80년대 들국화의 앨범은 한 권의 교양서였다고 찬양했다. “하지만 후횐 없지/울며 웃던 모든 꿈/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전인권의 목소리가 홀연히 솟구칠 때, 역사와 이념의 격정이 들끓던 광장과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곳은 존재의 고독, 불안, 결핍으로 가득했다. 80년대 서울의 봄은 아직 멀었고 갈 길은 많이 남았으나 청춘의 열정은 계속된다. 불운과 맞닥뜨릴 때 삶은 갱신된다. 생의 기쁨은 언제나 한 쌍으로 따라오는 불안에 자리를 내주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화택규괘는 큰길은 잘못되고 있으나, 작은 길에는 희망이 있고 길하다. 전략은 승리했으나 전쟁에는 진다는 말처럼, 하지만 후회는 없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노자의 무위와 유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자는 세상을 보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봐야 하는 대로’ 보는 방식이다.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과거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여지는 대로’ 보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간다. 무의 태도를 지녀야만 변화하는 진실과 접촉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항상 일을 그르치게 된다. 예를 들어 ‘내 아들을 반드시 의사로, 검사로 만들어야겠다’는 부모의 선의가 자녀를 탈선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이 세상을 살면서 ‘보이는 대로’ 살아야지, ‘봐야 하는 대로’ 살면 인생 자체가 피곤해진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타야 하는 버스가 막 지나쳐버린 적이 있잖은가. 이럴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아이, 좀 기다려주지’ 하거나 ‘내가 조금 빨리 왔더라면’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는 아무 생각 없이 그 환경을 보이는 대로 수용해버리는 사람이 있겠다. 어떤 사람이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가는 사람일까, 바로 맨 마지막 사람 즉 ‘보이는 대로’ 보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내가 ‘봐야만 하는 대로’ 세상을 보고 산다면 모든 일을 망치게 된다. 그것은 그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결국 사회를 망치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명심하라. 노자의 무위의 원칙을 지키는 한 만사는 저절로 형통해진다는 사실을.
화택규괘의 효사를 보자. 먼저 지(地)의 자리다. 화택규는 불과 물이 함께 있는 상태를 상징한다. 불은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습성이 있다. 불과 물의 마음, 서로 어그러져 일치하지 못한다.
인(人)의 자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불과 물처럼 그 천성이 다르고 생활의 신조가 다르고 마음의 방향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면서 어느 같은 공동체 속에 묶여져 공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가족도 마음이 꼭 같은 사람만이 한 가족으로 탄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모순과 괴리와 대립과 반목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이러한 일치할 수 없는 인간관계에 대처하는 길은 세 가지다. 첫째는 무조건 참고 견디며 고민과 갈등을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길이다. 둘째는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발전하면서 부단히 정반합의 법칙을 반복하는 길이다. 셋째는 상이하고 모순되는 너, 나의 특성을 각각 살리면서 한 개의 커다란 목적 속에 종합시키어 조화를 이룩하는 대승적 방법인 것이다.
천(天)의 자리다. 주역에서는 ‘하늘과 땅은 서로 다르나 그 영위하는 일은 같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나 그 뜻은 서로 통하고, 만물이 제각기 서로 다르지만 그 작용은 유사하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괴리와 상반이 반드시 인류 사회에 비극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선용하고 조화함으로써 도리어 인류 사회는 다채롭고, 흥미있고, 싫증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즐길 수 있고, 각자의 힘을 진심으로 다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행복과 발전과 번영을 거기에서 얻을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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