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민간외교관’이라 부른다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산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광안대교의 야경, 해운대의 푸른 바다, 감천문화마을의 알록달록한 풍경, 자갈치시장의 활기, 국제시장의 정겨운 골목, 돼지국밥 한 그릇의 따뜻한 맛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부산을 떠난 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어쩌면 풍경이나 음식이 아니라 ‘부산에서 만난 사람’일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부산 곳곳을 함께 걸으며 역사와 문화, 음식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관광통역사는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관광통역사는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우리말을 외국어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다. 부산을 설명하고 해석하며, 때로는 문화적 오해를 풀어주고 부산 사람들의 마음까지 외국인 관광객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관광통역사를 부산 관광의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민간외교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관광통역사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만날 때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Hi, I’m Jason. Welcome to Busan.”이 짧은 인사가 관광객에게는 부산과의 첫 만남이 된다. 그 순간부터 관광통역사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관광객이 질문하면 부산을 설명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궁금해하면 이해하기 쉽게 풀어줘야 한다. 낯선 음식과 예절, 문화적 차이까지 자연스럽게 설명해야 한다. 관광통역사의 말 한마디와 표정, 태도가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곧 ‘부산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관광통역사는 ‘번역기’가 아니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번역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상당 부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광통역사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기계는 문장을 번역할 수 있지만 도시가 지닌 역사와 문화, 정서와 맥락까지 온전히 번역하기는 어렵다. 외국인에게 돼지국밥을 “Pork soup with rice”라고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왜 부산 사람들에게 친숙한 음식인지, 부산의 근현대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까지 이야기한다면 관광객이 받아들이는 깊이는 달라진다.
관광통역사는 단어를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와 맥락을 번역하는 사람이다. 광안대교 역시 마찬가지다. “It is a beautiful bridge.” 이 한 문장으로 끝낼 수도 있지만, 좋은 관광통역사는 부산의 바다와 도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왜 광안리의 밤이 부산을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는지까지 이야기한다. 그 순간 관광은 단순한 ‘구경’에서 ‘이해’로 바뀐다. 관광객에게 부산은 ‘도시’가 아니라 ‘경험’이다
관광객은 부산을 평가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부산을 경험하기 위해 온다. 그리고 그 경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관광통역사가 웃으며 “Let me show you the real Busan”이라고 말하는 순간, 부산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들려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해운대에서는 바다를 이야기하고, 광안리에서는 부산의 밤을 이야기한다. 감천문화마을에서는 부산의 역사와 도시재생을, 자갈치시장에서는 부산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설명한다.
관광객이 낯선 음식을 바라보며 “What is this?”라고 묻는다면 관광통역사는 음식 이름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이런 순간에 관광통역사의 가치가 생긴다. 한 명의 관광객이 부산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산 이야기를 한다. 사진과 영상을 SNS에 올리고 “Busan was amazing!”이라고 말한다.

그 기억 속에는 부산의 풍경뿐 아니라 자신을 안내했던 사람의 친절과 설명, 도움도 함께 남아 있다.결국 한 관광객의 부산 경험은 또 다른 수십 명, 수백 명에게 전해질 수 있다. 이것이 관광통역사가 가진 민간외교의 힘이다. 외교관이 국가와 국가를 연결한다면 관광통역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일상적이고 직접적이다. 부산 관광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다
좋은 관광도시에는 호텔과 교통, 매력적인 관광콘텐츠와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설만으로 좋은 관광도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친절이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기억하게 만들고, 작은 불친절 하나가 도시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그래서 관광통역사는 부산 관같은 장소라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관광객의 경험은 달라진다.
“이곳은 ○○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Imagine you are standing here 70 years ago…”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관광통역사는 이제 정보 전달자를 넘어 이야기 전달자로 진화해야 한다.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방법은 많다. 국제행사와 광고, SNS, 유튜브, K-콘텐츠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관광객이 부산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만남이 부산에 대한 기억을 만든다. 이름은 서로 달라도 그들이 관광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일 것이다.
“Welcome to Busan.”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Let me show you why Busan is special.” 광안대교가 부산의 밤을 세계에 보여준다면, 관광통역사는 부산의 마음을 세계에 보여준다. 부산 관광의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늘도 부산 어느 거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향해 웃으며 인사하는 관광통역사가 있다. 그들이 바로 부산과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의 다리’, 부산의 민간외교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