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사회의 불편함과 문제점의 해결은?
지적 겸손과 성찰의 자세를 잃지 않는 태도와 자세입니다.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자]

얼마 전 초등학교 5, 6학년 대상으로 북두칠성과 관련된 한자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문자를 만든 사람들이 북두칠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주제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해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동쪽에서 떠오른 다음 천천히 하늘길을 걸어 서산으로 지는데,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일정한 주기(週期)를 반복하였으므로 모두가 해를 의지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해가 없는 밤이 되자 추위와 불안과 공포,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방향도 모르고 시간도 알 수가 없으니 밝은 밤은 온통 두려움이었습니다. 매일 밤 불안한 마음으로 어둠 속 하늘을 응시하던 고대인들에게 언뜻 커다란 국자 모양의 별 무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밤이면 북쪽 하늘에 위용을 자랑하며 등장하는 일곱 개의 별 무리를 이들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 불렀습니다. 북쪽 하늘에 보이는 일곱 개의 별 무리로 이루어진 두(斗)성이란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낮엔 해, 밤엔 북두칠성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들이 장독대에서 정한수(井華水의 비표준어) 떠 놓고 비는 모습 등 우리 한겨레의 관습과 가치관이 변화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시작으로 고대인들의 사물을 보는 관점을 유추하게 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한자를 알아가는 수업이었는데, 해가 지고 난 후 온통 세상을 덮는 칠흑 같은 어둠에 대한 감각을 아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원초적인 어둠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둠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수업이었습니다. 저도 밝음과 어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으며, 우리 조상들의 상대적인 것에 대한 의미는 결국 하나가 되기 위한 것이라는 중요한 가치관을 알아가는 수업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우리말로 배우는 한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제야 철이 들고 세상을 이치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는데 좋은 배움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바꾸어줍니다. 아이들에게도 지식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 세워가고 발전시키는 귀한 배움의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삶을 생각하지 않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들과 우리말을 풀어가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하는 힘’과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유치원 수업부터 교사의 일방적인 지시와 내용을 그대로 암기하는 수업에서 이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수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지도 교사의 자세와 태도의 변화가 시급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기 전의 상태는 오롯이 원초적인 어둠 곧 ‘암전(暗電)’의 상태여야 합니다. 대상에 대한 감각도, 문제의식조차 아직 싹트지 않은 순수한 시간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 무지의 상태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의식이 눈을 뜨기 직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득 자신의 비어 있음을 직면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것이 바로 ‘무지(無知)’의 발견입니다. 이 순간 이미 암전 상태는 끝난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수한 상태에 도달할 때, 마음은 비로소 한없이 맑은 백지가 됩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71장에서 이를 두고 “알지 못함을 아는 것이 으뜸이요,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병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라고 말합니다. 나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솔직한 인정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배움의 출발선입니다.
배움의 과정에서 가장 위태로운 지점은 완전한 어둠 속이 아닌, ‘어슴푸레한 빛’ 속에 머물 때 찾아옵니다. 윤곽만 겨우 보이는 모호한 빛 아래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 믿는 상태, 즉 자신이 아는 것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채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단계입니다.
이 경계에 선 사람들의 발걸음은 결국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살피고 인정하고 거듭 노력해서 모르는 영역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어설픈 확신에 기대어 스스로 만든 우물이나 동굴 속에 갇힐 것인가?
우리 사회의 선동, 혐오, 시기는 거의 모두가 기준이 없는, 혹은 기준을 제대로 가르치는 않는, 더 나아가 기준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의 무지와 행태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과 그보다 26세나 어렸던 고봉(高峰) 기대승이 나누었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에서 지적 겸손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을 생각해 봅니다. 당대 최고 학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고 있던 대 유학자 퇴계는, 이제 막 과거에 합격한 젊은 신진 학자 기대승이 자신의 학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편지를 보냈을 때 그것을 어설픈 오만으로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퇴계는 기대승에게 보낸 답신에서 오히려 “그대의 지적을 듣고 보니 나의 생각이 닿지 못한 곳이 많았다.”며 기꺼이 자신의 글을 수정하고 다듬었습니다. 편지는 수년간 이어졌고, 퇴계는 20대 후반의 젊은 학자를 ‘주자학의 정수를 함께 논하는 동반자’로 대하며 평생 배움의 자세를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배움을 대하고 있을까요? 미디어가 쏟아내는 수많은 요약 정보와 단편적인 지식 속에서, 현대인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환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내가 손에 쥔 몇 줄의 지식이 세상의 전부인 양 착각할 때 배움의 문은 닫히고 맙니다.
동양의 오랜 고사 중 ‘위편삼절(韋編三絶)’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배움이 왜 한순간의 완성이나 단편적 지식의 습득이 아닌 ‘평생의 습관’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공자는 인생의 후반기에도 죽간(竹簡)를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반복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공자(孔子)는 『논어』「술이편」에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탐구하는 사람일 뿐이다(吾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며 스스로의 한계를 낮추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승이라 추앙받으면서도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라는 교만을 내던지고, 평생 끊임없이 읽고 익히며 성찰하는 습관을 유지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새로 쌓기 위함이 아니라, 앎이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계속해서 채우고 다듬어가는 과정이 바로 배움입니다. 진짜 아는 사람은 자신의 앎을 드러내어 타인을 압도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배움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습관이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몸에 익히기까지 어려운 습관입니다.
“칸트가 나타났다, 지금은 3시 30분이다.” 칸트는 매일 오후 3시 30분만 되면 어김없이 회색 코트를 입고 지팡이를 든 채 산책을 나섰습니다. Königsberg(쾨니히스베르크)의 주민들은 그가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지금이 3시 30분이구나.” 하며 자신들의 시계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평생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고 합니다. 칸트가 이 규칙적인 산책을 딱 한 번 거른 적이 있는데, 장 자크 루소의 소설 《에밀》을 읽다가 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산책 시간을 놓쳤을 때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칸트는 철학적 사색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생활까지도 엄격한 규칙과 시간표에 맞춰 통제했던 철저한 인물이었습니다.
프로 야구 선수들도 자기 자세를 갖기 위해 실험과 기록으로 필사적으로 자신의 루틴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치 계절의 무게와 햇살의 기운을 받아 속을 채운 벼가 가을날의 들판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듯, 앎이 깊어질수록 성찰의 무게로 스스로를 낮추게 됩니다. 앎의 끝에 도달할수록 세상의 무한함과 자신의 미미함을 비로소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깊이 익은 지혜는 소란스럽지 않으며, 상대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그윽한 향을 지닙니다.
冊(책 책)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서 인생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책’입니다. 즉 부족한 점을 생각하고.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채우라.’는 의미입니다. 이제부터 책을 펴면서 ‘무엇을 채울까?’하고 자신에게 묻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요? 함께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