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위클리피플=오미경, 김형섭 기자]

 

 “친구 같은 한의사 될래요”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반짝반짝 한의사 홍예원,

 

길 위에서 진정한 길을 찾다

 

홍예원 예원윤앤송한의원 원장

 

신촌에 위치한 <예원윤앤송한의원> 홍예원 원장을 만나기로 한 건 꽤 오랜 설득 끝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우연찮게 그녀의 블로그를 접한 뒤, 젊은 여성 한의사가 풀어놓는 솔직담백한 일상 이야기의 신선함에 사로 잡혀 그녀라면, 흔히 아는 의료인 인터뷰와는 조금 다른 각도의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터뷰 요청을 한 지 몇 차례만의 수락이었다. 그런 그녀가 만나자마자 또 다시 의외의 답변부터 던진다. 한의사란 직업도, 블로그 활동도 시작은 반강제적인 권유에 의한 일이었다고. ‘그럼 마지못해 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싶어 순간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곤조곤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솔직한 화법의 그녀는 오히려 듣는 이의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기 충분할 만큼 솔직하고도 매력적이었다. _ 취재 오미경 취재부장 , 김형섭 기자/ 글 오미경 기자

 

가야금 타던 소녀에서 한의대 학생으로      
 
 “원래 중3때 까지 가야금을 전공했었어요. 의사라는 직업은 꿈도 꾸지 않았죠.” 의사를 꿈꾸지도 않았는데 의사가 되었다니. 얼핏 들으면 제법 샘이 날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로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홍예원 원장이 한의대에 진학한 건 고교 입시 당시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가야금을 하면서도 공부를 잘했던 그녀였기에 아버지는 자연스레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학문을 전공해 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데 좀 더 원활한 직업을 갖길 바랐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의학은 남을 돕는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원대한 비전이 있는 분야라고 여겨 외고에 진학하길 권유하셨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떠밀리듯 별 꿈 없이 외고에 진학한 그녀는 한의대 진학까지도 탈 없이 안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 자신의 의지나 꿈에 의한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권유로 선택한 길에 뜻을 품지 못한 그녀는 방황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대출(대리출석)도 많이 하고, 놀러 다니기도 많이 다녔어요. 어머니는 그런 제가 안타까워 학교는 대전이라도 서울에 와서 가야금이나 문화생활을 실컷 즐기도록 남몰래 지원해 주시기도 했지요. 그런데 놀면서도 성적은 비교적 잘 나오더라고요.(웃음)”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그 당시를 떠올리면서도 웃어 보이는 홍예원 원장.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스물 셋이던 해, 얼굴까지 덮어버린 심각한 아토피를 앓아야 했다. 외모에 한참 민감한 여대생에게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한의학 책을 찾아가며 자가 치료를 시작했고, 수개월 뒤 한의학 서적대로 자신의 체질을 알아가며 치료하자 씻은 듯 낫게 되었단다. 그러나 경험으로 한의학의 효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한의학을 전공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길 위에서 찾은 새로운 길, 한의학에 비로소 눈을 뜨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실에 맞춰 평범한 봉직 한의사의 길을 걸었지만, 스스로 꿈을 선택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력감 이었을까?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 속에 살던 그녀는 급기야 깊은 우울함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는 법. 길었던 그녀의 고민과 갈증이 풀리기 시작한 결정적인 일이 그 즈음 찾아왔다. “제가 한참 진로를 헤매고 있을 때 어머니는 이명을 앓고 계셨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당신의 치료를 담당 해주셨던 원장님께 감명을 받으셨는지 그 분께 마음을 못 잡고 있는 저를 가르쳐달라며 부탁을 하셨어요. 이야기를 들은 그 원장님께서는 저를 흔쾌히 도와주시기로 하셨죠. 저를 만나 그 분이 처음 하신 얘기 중에 ‘병을 고치는 사람은 영원히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이 참 많이 와 닿았어요. 원장님은 본인이 참여하시는 한의사들의 스터디 모임에 저를 부르셨죠.”

 홍예원 원장에게 한의사로서의 길을 새롭게 제시해준 이는 이명·난청 등의 난치성 질환 치료에 한방명의로 알려진 황재옥 원장이었다. 홍 원장은 그의 권유로 안질환을 공부하고 눈 건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시키고자 발족된 ‘선명안 한의안과학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 동안 자신도 몰랐던, 진로에 대한 목마름의 근원을 찾게 되었다.  


 “일흔의 연세에도 한의학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에게 인생의 선배가 되어줄 참스승에 대한 갈증이 있었음을 깨달았어요. 그 분들은 제가 롤 모델로 삼고 싶어 했던 인생 선배로서의 이상향을 보여주셨지요. 그 자극은 제가 그동안 간과하고 지나쳤던 한의학의 가치와 가르침들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요.” 학회에 참여할 당시 봉직의사를 관두고 방황하던 터라 그녀에겐 회비를 감당할 경제적인 여유마저도 없었지만 무조건 참여하기로 했다. 홍 원장은 “한의학계의 전반적인 위기 상황으로 인해 학회의 존립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긴 하지만 인간의 건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자 하는 학문적 취지가 좋은 만큼 함께하는 선배님들의 뜻을 더욱 알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그녀만의 색이 담긴 곳, 예원윤앤송한의원    
 
 홍예원 원장은 윤앤송한의원 네트워크 안에서도 신촌점의 가장 큰 자랑을 환자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꼽았다. 문을 연지는 이제 겨우 1년 남짓 이지만, 구성원들과의 끈끈한 호흡은 여드름과 탈모, 시력 개선 등의 주력 치료 분야에서 홍예원 원장이 환자들의 입소문을 탈 수 있게 도와준 큰 힘이었다. 특히 홍예원 원장은 인체의 균형이 어디서부터 깨졌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여드름 뿌리에 해당하는 피지선 하나하나를 모두 다 조절하는 자극을 이용해 재발을 최소화하고 여드름을 잡아나가는 피지선파괴침, 색소 및 패인 흉터를 복합시술법을 적용해 동시에 치료하는 흉터재생윤침과 같은 윤앤송 네트워크의 고유한 치료법을 선보이고 있다. 또 형상학의 관점을 치료에 활용하기도 하며 생활패턴, 나이, 환경 등 환자마다 다른 다양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해 환자들에게 근본적으로 건강을 찾아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 뚜렷한 그녀의 성향은 한의원 내부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아직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기에 대단한 무언가를 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예원윤앤송한의원’이란 이름을 손 글씨체로 담은 부분이나 약봉지에 고유의 디자인을 넣은 모습 등은 모두 그녀의 손을 거친 것들로 예사 솜씨는 아니었다. <예원윤앤송한의원>만의 색깔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는 홍 원장의 말처럼 이러한 면면은 결코 보여주기 식이 아닌, 자신의 보금자리에 대한 진지한 애정으로 기자에게 다가왔다.   

 한편, 홍 원장은 한의학이 지니는 매력에 대해서도 상기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두통 한 가지만 하더라도 ‘어지럽다’, ‘지끈거리다’, ‘매스껍고 콕콕 쑤시다’와 같이 제 각각의 표현을 쓰는 건 원인이 다르단 뜻이에요. 따라서 단순히 몸에 나타난 어떤 증상이 빨리 사라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 궁극적인 건강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죠. 한의학은 병의 다양한 원인을 종합적으로 찾아내는 정교함을 가지고 있고, 만고불변의 진리인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하기에 치료가 늦더라도 핵심으로 파고드는 힘이 강합니다. 무엇보다 핵심을 파고들기까지는 환자와 의사간에 대화를 바탕으로 한 공감과 인간적 교류가 자연스레 깊어지는 의학인 만큼 그 가치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목소리에 이제는 한의학에 대한 진한 자부심까지 묻어나고 있었다.   

 

 

<여행과 일상 속에서 홍예원 원장이 찍은 사진들, 출처: 반짝반짝한의사 홍원장 블로그 (http://starryhong.blog.me/)>

 

반짝반짝 한의사 홍예원의 일상, 그리고 꿈

 

 공감을 강조하는 홍예원 원장을 보며 블로그를 통해 느꼈던 그녀의 소박한 일상사와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처음엔 이전에 있던 한의원에서 홍보 및 안내용 블로그를 만들어보란 권유로 블로그를 시작했었어요. 그런데 저에게 치료받고 나은 환자가 제가 한의원을 옮겼는데도 그것을 보고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블로그의 가치를 새삼 느꼈다 할까요? 그래서 의무감으로 만들던 블로그를 지양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올려보자’는 생각으로 지금의 제 블로그를 만들었지요.” 


 

<블로그에 올려진 그녀의 요리&베이킹 일상>

 

 홍 원장은 어둠 속에서 소소하게 반짝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작은 빛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지향한단 의미로 ‘반짝반짝 한의사’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고, 가야금을 취미로 다루며, 여행을 좋아하고, 요리를 즐기는 그녀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 이 블로그 (http://starryhong.blog.me/) 는 평범함이 외려 매력이다. 정작 한의원과 관련된 정보는 많이 소개하지를 않다보니 ‘한의사 같지 않은 한의사’란 수식을 그녀에게 붙이는 것도 낯설지 않다. 홍 원장은 “다른 블로거들처럼, 나의 일상에 대해 평범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블로그를 보고 환자들 저를 친구, 이웃처럼 여겨 편안하게 찾는 것 같아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여행 역시 그녀의 오랜 취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조언으로 다니기 시작한 혼자만의 여행 경험은 한의사인 그녀에게 균형과 유연한 조화에 대한 감각을 갖도록 해주었다. “여행은 인생의 축약본이라 하잖아요. 직간접적인 경험들 속에서 긍정의 마음도 키우게 되고, 갑작스런 상황에는 혼자 대처도 해야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지금 제가 다양한 환자를 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힘을 키워준 것 같아요.” 실제로 처음에는 경력이 없어 보이는 앳된 한의사로만 여겨 의구심을 갖고 한의원을 찾았던 환자도 세심하게 상담하고, 원인을 찾아가며 오랜 고민을 해결해주는 홍 원장을 보고나면 그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곤 한단다.

 

 홍예원 원장은 마지막으로 한의학의 위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보탰다. 한의학 세계화에 대한 중앙 차원의 노력과 상업적인 시각이 아닌 본질적인 한의학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노력, 더 나아가 인문학의 정신을 키워 꿈을 찾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를 희망하며 자신과 같은 젊은 한의사들이 다양한 위치에서 역할을 펼쳐 한의학을 발전시켜야 하겠다고 되 내였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 쩍 넘겨 이야기를 마친 홍예원 원장. 그녀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을 법한 고민과 꿈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래서 더욱 이 만남이 즐거웠다. 그리고 솔직하고 순수하게 자기를 표현해 내는 그녀를 보면서 <예원윤앤송한의원>은 그녀의 꿈이 시작된 곳이자 앞으로도 그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뿌리를 내려줄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원(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관이 바로선 한의학으로 구성원들의 ‘재주’를 조화시켜 환자들이 믿고 찾는 으뜸 한의원을 만들겠다는 당찬 꿈 말이다. 이 꿈의 종착지는 파리다. 자신이 좋아했던 여행지에서 한의학을 알려나가는 1인이 되고 싶은 것이 그녀의 남은 로망이다. ‘파리의 한의사’라. 생각만으로도 근사하다. 불행도 행복 속에 스며들게 할 줄 아는 멋진 여성 한의사로 당당히 한 걸음 내딛은, 반짝반짝 빛나는 홍예원 원장. <주간인물>은 그녀의 유쾌한 일상을 언제까지나 응원한다.

 

 

profile.
대전외국어고등학교 중국어과 졸업
대전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일맥한의원 종로점 강남본점 원장
햇살고운한의원 부원장
대한한의학회 정회원
대한형상학회 정회원
선명안한의학회 총무이사
다수의 여행경험 소유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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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반짝반짝 한의사, 홍예원 원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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